출산 후 첫 공식 외출

동네 산책이나 병원 방문 등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외출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목적이 있는 외출 말이다. 남편과 매주 하던 주말 커피데이트가 그리웠다. 수퍼에 장보러가거나 산책을 겸해 남편 안경 맞추는 거 디자인 같이 보러 나가고,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해 돌아온 것 외엔 제대로 나가서 일반적인 활동을 해본지가 보름이 되었더니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병원 외출과 동네 산책으로 외출 준비는 해본 적이 있기에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이런 외출은 몰링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고 몇 개 없는 몰 중 어디로 갈 지 선택을 했다. Fisketorvet는 S tog로 한번에 가지만 내려서 플랫폼이 지상에 있는데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위로 올라가 좁고 긴 인도를 유모차를 밀며 걸어야 한다는 게 영 불편하게 느껴져서 제외. Field’s는 메트로가 붐비는 쪽 방면으로 오래 가야돼서 제외. S tog에서 메트로로 한번 갈아타야 하지만 붐비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메트로인데다가 환승시 지상으로 나올 일 없이 쉽게 갈 수 있는 Frederiksberg Centret로 가기로 했다. 항상 상대적으로 덜 붐비고 괜찮은 샵들이 적당히 분포되어 있는 이 곳이 그나마 애 데리고 가기에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가서 한 것이라고는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 한잔 하고 하나 먹을 비타민 D과 손톱깎이, 기타 옌스가 필요한 것을 산 것 뿐이다. 약간의 윈도우쇼핑과 함께. 그렇지만 그냥 그런 게 필요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시도는 옌스가 있을 때 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미 2주간의 출산휴가를 썼기에 옌스는 2주 후면 회사로 돌아가야 하고 말이다.

수유 한 번 하고 기저귀 한 번 갈아주는 정도였으니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커피마시는 때와 집으로 돌아오는 열차 길을 제외하곤 내내 안아주어야 해서 (우는 탓에) 팔이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성공적인 외출이었어서 주말 커피데이트는 우리와 하나의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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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출 인증샷. 아직 화장까지 할 여유는 없었다. 목에는 수유용 커버를 두르고… 

3주~한달 된 아기들의 외출은 봤으나 우리도 2주 갓넘은 아기의 외출은 본 바가 없으니 여기에서도 아주 흔한 건 아닌 모양이다. 몰에 애를 데리고 이 시기에 나오는 것이. 물론 여기 아기들은 1주일만 넘어도 다 밖에서 낮잠을 재우니 외출 자체가 드문 건 아니지만, 이런 몰 산책 말이다. 좀 오래 집에 박혀있었더니 생각보다 답답했던 모양이다. 다녀오고 나니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은 걸 보니.

하나가 태어나고 나서 삶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내 성격의 단점도 나오고 반성하게도 되고. 옌스가 집안일에 있어 나보다 서툰데, 좀 더 꼼꼼하거나 빠릿하게 일을 해주지 못하는 것으로 조금 더 못해주나 하는 마음에 짜증이 났다. 생각해보니 사실 일을 그렇게 꼭 잘 해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집을 내내 깔끔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내 페이스대로 해주지 않는 옌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은 진짜 중요한 것, 즉 우리 관계와 우리 삶을 간과하고 별 것 아닌 것에 집중하는 격이 아니던가. 갑자기 옌스가 내 로맨틱한 대상인 남편에서 내 아이의 아빠로 변하면서 관계의 축과 동력이 다 바뀌고 옌스에 대한 마음도 많이 바뀌었다. 진짜 가족이라는 강력한 유대감 같은 것이랄까? 그 전에도 이미 그렇다고 느끼고 있었다 생각했지만, 완전히 다른 새로운 차원의 그것이다.

외출을 하고 보니 그전보다 아기와 함께 있는 가족이 그렇게 눈에 많이 들어오더라. 또한 커플이 단 둘이 온 경우를 보니 우리가 그랬듯이 눈과 몸짓에서 로맨틱한 사랑이 묻어나오는 게 눈에 띄던데, 우리도 그런 로맨틱함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말이다.

 

덴마크 산후조리

영국 왕세자비가 출산 다음날에 퇴원한 것을 두고 한국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다. 한국의 산후조리 관점으로 봐서 동양인도 이럴 수 있느냐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우선 한국인의 출생시 머리둘레는 WHO 기준으로 평균이기에 애 머리가 커서 산후조리가 달라야 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또 흔히 이야기 되는 것으로 서양여성의 골반이 크고 근육량이 많아서 산후조리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있다.

같은 체중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서양모계가 동양모계보다 출산이 용이하다는 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논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학원을 다녀서 저널 논문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간혹 임신과정에 대해 일반 책자로 알 수 있는 이상 더 파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를 읽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인과 동양인의 혼혈아기 출산시 제왕절개율로 보는 서양인과 동양인간 출산 난이도 차이 같은 것 말이다. (Michael J. Nystrom, Aaron B. Caughey, Deirdre J. Lyell, Maurice L. Druzin,Yasser Y. El-Sayed (2008). Perinatal outcomes among Asian–white interracial couples in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 Gynecology 199 (4), (385.e1-385.e5) DOI:10.1016/j.ajog.2008.0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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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중요한 연구결과를 발췌한 표이다. Cesarean delivery (CD, 제왕절개)율을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의 자녀는 33.2%이고 백인 모계와 아시아 부계의 자녀는 23.0%이다. P value가 0.001보다도 낮아 매우 유의미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같은 아시아-백인 혼혈자녀를 출산할 경우 백인 모계 출산시 제왕절개율이 아시아 모계 출산의 경우보다 10.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골반 골격 차이 등을 포함한 생물학적 차이가 이런 차이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논외의 발견이지만, 각각의 하위그룹 중 인종간 커플의 샘플사이즈를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는 690,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는 178로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 결합이 훨씬 드문 것을 볼 수 있다.)

단지 이것만 놓고 이야기하면  동양 여성의 골반이 작아 산후조리도 더 길게 해야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백인커플과 동양인커플의 제왕절개율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더 크게 태어나는 태아로 인해 백인커플의 출산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골반 사이즈 등의 체격 조건은 서양 모계가 출산에 더 용이하지만 아기가 더 커서 서양인의 출산시 충격이 동양인보다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골반 사이즈 차이로 인해 서양여성이 더 쉽게 출산할 수 있고, 따라서 산후조리가 필요 없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근육량은 어떨까? 인종간 선천적 근골격계 질량 차이를 보면 설명이 될 것 같다. (Silva AM, Shen W, Heo M, et al. Ethnicity-Related Skeletal Muscle Differences Across the Lifespan. 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 : the official journal of the Human Biology Council. 2010;22(1):76-82. doi:10.1002/ajhb.2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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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래프의 여성 근골격량을 보면 빨간색이 백인, 보라색이 아시아인이다. 남성의 경우 아시아인은 생략되었다. (아마 적은 샘플사이즈 등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안나와서 생략된 것 같다.) 여성의 인종간 근골격량 차이는 남녀의 근골격량 차이에 비하면 근소한 차이를 보이나 회귀분석으로 나타나는 백인과 아시아인 여성간 근골격량 차이는 전연령대에 걸쳐 개략적으로 3-4킬로그램 정도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 근골격량의 차이가 모체에 주는 출산의 충격에 차이를 빚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근골격량 3~4킬로그램 차이는 백인여성과 아시아인 여성의 키차이를 고려하면 골반 인근 근골격량 차이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실 난 덴마크식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덴마크식 산후조리는 사실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조언하는 바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의학계의 산후조리에 대한 조언이 덴마크 의학계의 그것보다는 우리나라 전통 산후조리 방식에 근접해 있으나, 임신 기간 중 체중 관리 및 운동에 대한 조언과 출산 후 그것에 대한 조언은 원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산후조리방식은 사실 구전으로 내려온 전통적 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사실 이는 지금과 많이 다른 과거의 주거문화 및 생활방식에 기초해 형성된 것으로 지금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출산 후 산후조리의 차이는 임신 기간 중 산모의 신체관리 방식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에서는 임신 기간 중 꾸준한 운동을 권장한다. 근손실을 최대한 막아야 출산시 용이하고 출산 후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신중에는 무조건 휴식을 권장하고, 임신 초기 몸가짐을 조심하여 신체활동을 극히 줄이도록 주문하는데 그게 근손실에 큰 영향을 준다. 또한 의사가 체중관리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임신 기간 중 먹고 싶은 것 못먹으면 스트레스가 애에게 간다든지, 몸이 요구해서 먹는다든지, 그때 남편이 원하는 것 안사다주면 평생 한이 된다든지의 이유로 원하는 대로 먹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체중 증량은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 부종, 아이의 체중 증가 – 이는 아이의 장기적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살이 트는 것도 피부가 감당하기에 너무 빠른 체중 증량과 관계가 있다.)

근손실과 과도한 체중증가의 결합은 출산 후 신체가 받는 충격을 가중시킨다. 출산에 대비해 관절을 유연하게 만드는 릴렉신 호르몬의 본비는 출산후 6개월여까지 지속되는데, 이로 인해 출산 후 가볍게 걷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고, 애를 안거나 돌보는 일도 힘들어진다. 그 와중에 급격히 체중이 느는 아기를 돌보면서 집안일을 하다보면 신체에 무리가 오고 소위 말하는 산후풍이라는 것을 겪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모체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임신과 출산후 산후조리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신 전부터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 임신기간 중 일부 근손실에 대비하고 임신 기간 전체기간 중 기간별로 알맞는 운동을 통해 근육량의 손실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출산 후에도 초반부터 기간 별로 권장되는 운동을 함으로써 골반저 회복부터 시작해 신체 회복을 돕고, 가벼운 걷기를 포함해 서서히 정상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산 다음날 나는 퇴원을 해 복귀했는데, 경산의 경우 출산 후 6시간 내 퇴원하는 (산모가 난산 등으로 별도의 이유가 있지 않는한) 것이 이해가 간다. 나의 경우 초산이라 출산 후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잘 예상하기 어려워 산파와 건강상담사 (Sundhedsplejerske, 간호사 중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자격을 획득한 전문상담사) 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하루 머물렀지만, 지나고 보니 바로 퇴원해도 상관없었다.

물론 앞으로도 산후조리는 시간에 걸쳐 해야하는 일이기에 추가적으로 관찰해보고 판단할 사항들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시아인이라 해서 꽁꽁 싸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루하게 산후조리원에 앉아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초기 한달 정도는 모유 수유 및 기타 육아의 리듬과 패턴을 수립해 가는데 적응기간이 필요하기에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막대한 돈을 들여 산후조리원에 가서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사도우미를 쓰는게 더 낫지 않나 싶다. 그리고 모자 동실 쓰는게 엄청 힘들다고 하는 글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읽었는데, 사실 애가 가장 가볍고 요구사항이 가장 간단한 신생아 시절에 미리부터 아이에 대해 알아가고 밤중 수유의 패턴 등에 익숙해지는 것이 산후조리원 생활 이후 불쑥 커진 아기와 갑자기 둘이 앉아 그제서야 아이에 대해 배워가는 것보다 수월한 것 같다. 이제 13일차 된 하나를 보면 대충 뭘 원하는 지 우는 형태로 알겠고, 아이도 부모에 대해 빠르게 익혀가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게 여러모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다. 내 지인들은 내가 특별한 경우라고 하지만, 사실 내가 특별히 다른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유별나게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험을 공유함으로서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니 내가 쓰는 글이 절대적이거나 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덴마크 육아기] 아기 선천성 심장기형 코호트연구 참가기

출산후 열흘째 되는 날인 월요일, 출산 병원인 헤얼레우 병원에 다녀왔다. 2016년부터 2018년 기간 중 태어나는 아이를 대상으로 선천성 심장기형에 대한 전향적 추적연구 (Copenhagen Baby Heart, http://baby-heart.dk/)가 이뤄진다고 해서 참가를 신청하였다. 첫 초음파 검사를 하던 날 해당 연구에 대한 안내자료를 받았는데, 출생 직후 탯줄에서 제대혈을 체취해 연구용으로 보관하는 것과 출산 후 약 일주일 되는 시점에 병원에서 정밀 심장초음파 검사를 받는 것이었다.

덴마크에서는 매년 450명의 신생아가 선천성 심장기형을 안고 태어난다고 한다. 이중 70%가 성장과정 중 적절한 시점에 기형의 종류와 형태에 따라 맞는 치료를 받아야 하며 선천적 심장기형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현재 22,000명 정도라 한다.

Copenhagen Baby Heart에 따르면, 이 연구는 얼마나 많은 신생아가 심장 기형을 안고 태어나는지, 연구에서 시행하는 것과 같은 조기의 일상적인 심층적 초음파 검사가 신생아에게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이 연구에서 조기에 심장기형을 발견한 아이의 경우 장기적으로 추적검사를 하며 필요한 후속 진료를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선천적 심장기형이 어떻게 생애주기를 거쳐 발전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체취한 제대혈에서는 해당 심장질환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동의서를 읽어보니 보호자로서 우려할 수 있는 것은, 선천성 심장기형이 있다고 발견되었을 때 부모가 갖게 되는 심리적 우려였다. 우선 30%는 진료가 필요없는 경우인데, 이 또한 나중에 진행과정을 보면서 진료 필요 여부가 결정되고, 70%에 해당되도 즉각적인 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에 치료를 해야 하기에 그 시점까지 부모가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옌스가 보건경제학자라 병원에서 진행하는 코호트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했고, 미리 심장질환을 알 수 있다면 그게 더 낫다라고 생각을 했기에 우리는 연구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물론 출산한지 얼마 안돼서 병원을 가야한다는 것이 부담이긴 했으나 말이다.

열차로 두정거장 가서 버스를 타고 한 20분이면 가는 곳에 병원이 있는데 2시 반에 가기로 약속이 잡혔다. 1시 반에 집을 나서서 병원에 도착해 미리 수유를 하고 (검사 전 요건이었다.) 검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 간단히 본 것 뿐인데 4시 반이 넘었다. 애가 있으니 뭘 해도 행동이 느려지게 돼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하나는 울지 않고 검사를 잘 마쳤고, 검사하는 중 기저귀에 큰 실례를 하는 소리를 내며 소노그래퍼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소노그래퍼가 초음파 장비를 다루는 솜씨는 흡사 프로게이머가 마우스를 다루는 듯 하여 놀랐는데, 마침 옆에 있는 의사가 “당신처럼 장비를 빠르게 다루는 사람 처음 봤다.”고 말해서 내 놀라움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간에 하나가 약간 칭얼거리자 소노그래퍼가 새끼손가락을 입에 물려보라고 했다. 며칠전 집에 방문했던 건강방문사 (Sundhedsplejerske) 도 그렇게 하던데 싶어서 손가락을 물려보니 애가 젖을 물릴 때처럼 빨더라. 얼마나 강하게 빨던지 깜짝 놀랐다. 4주 정도까지는 공갈젖꼭지를 물리지 말라면서 애가 공갈젖꼭지로 살살 무는 것에 적응하면 힘들게 엄마 젖 안빨려 한다한 간호사의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손가락을 물리는 트릭으로 하나를 진정시켜 무사히 검사를 잘 마쳤는데, 다행히 하나는 문제가 없이 건강하다고 했다.

선천적 심장기형은 왜 발생하는지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 규명이 되지 않았는데, 임신 기간 중 정밀초음파로 확인할 수 없는 기형이 많기 때문에 출생 후 확인이 된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은 소아과 및 흉부외과의 진료 및 외과적 수술 등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 관리형 질병이라고 한다. 의료 비용에 있어 자기 부담 비중이 상시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덴마크는 나라에서 의료비용을 전액 부담하기에 (약제비용은 자가부담 비중이 있으나 연간 부담 상한이 있어 이를 초과하는 비용은 나라에서 부담하며 처방이 빈번한 만성질환용 약품의 경우 처방 빈도에 따라 자가 부담비중이 경감되는 구조로 설계) 이런 관리형 질병이 상대적으로 덜 부담된다. 그 점은 공공의료가 참 좋다. (일부 질병의 경우 철저히 가정의-전문의-종합병원 순으로 철저히 이뤄지는 공영의료 시스템이 병을 키우게 된다고 해 공공의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하나, 100% 공공재원으로 이뤄지는 공영의료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비용효과 (Cost effectiveness) 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갑자기 옆에서 자고 있는 하나가 꿈결에 까르르 웃더니 엄청 크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눈을 떠서 한번 더 씨익 미소를 짓더니 다시 꿈나라로 돌아갔다. 언제 이렇게 웃는 법을 배웠는고? 아이가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익힐 때마다 감격을 하는 우리는, “예전에 이런 것에 감동하며 웃는 사람들 보고 나중에 나는 그렇지 말아야지…”했던 기억을 하면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게 우습다.

첫 감기에 걸려 (심하진 않지만) 고생을 한 하나가 앞으로 크고 작게 아플 일은 많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라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다. 애가 조금이라도 아파 울면 마음이 영 좋지 않고 해결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는게 마음이 힘들어서 말이다.

[덴마크 육아기] 출산 후 5일간의 경험 – 한국과 덴마크의 차이점

금요일 새벽 6시 출산을 하고 난 뒤, 24시간의 입원 끝에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3일간 시부모님이 계시면서 집안일과 이것 저것 추가로 필요한 물건들 쇼핑, 신생아 대사검사 등을 도와주신 후 어제 떠나셨고, 어제부터는 남편과 나 둘만의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출산 이후 수면은 안녕. 낮잠을 자려 해도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아서 절대적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하다. 그나마 오전엔 좀 자는데, 그 땐 내가 잠이 깨서 어거지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질 않는다. 무엇보다 사흘째부터 젖이 돌면서 수유간 간격이 길어지면 가슴에 통증이 오는 관계로 잠이 더 잘 안온다.

기저귀 가는 법도 익숙해지고 모유수유도 익숙해지고, 집안일이야 집도 크지 않고 해서 크게 할 일도 많지 않으니 옌스가 식사 준비해주고 빨래, 설겆이 등을 도와주니 딱히 어려움은 없다. 청소도 힘쓰는 것은 옌스가 하니까. 정리나 물건 표면 닦고 그런 건 쉽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식 산후조리는 출산일까지도 활발하게 움직이던 성향 등을 고려할 때 원래도 내 체질에 맞지 않아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여기식 산후조리가 괜찮다. 여기도 산모 힘 쓰지 말라는 것이나 본격적 운동과 같은 체력 회복은 6주까지는 미뤄두라는 것 등 기조는 비슷하니까.

차이가 있다면 손님 방문이나 외출의 룰에 있다.

물론 여기도 신생아가 있는 집에 오래 방문하지는 않더라. 시누도 엄청 조심하면서 안된다고 해도 이해한다는 말을 몇차례나 반복하면서 아주 잠깐만 들러도 되냐고 묻더라. 그게 일요일이었으니 출산 후 사흘째. 조카들 셋과 함께 방문한 시누는 이것 저것 선물을 가지고 왔다. 나는 10분 정도 있다가 하나 수유를 해야 해서 들어가고 시부모님과 옌스는 좀 더 앉아서 대화를 하다가 총 30분 정도 머물렀나? 곧 자리를 떴다.

앞집 이웃이 우리 출산 예정일을 알고 있었는데다가 시부모님이 우리집에 우리 없이 들락날락 하시는 것을 보고 출산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 모양이다. 여름에 입을 수 있는 예쁜 원피스를 선물해주셨는데, 인사 차 하나와 함께 방문을 했다. 20분 정도 앉아있었나. 안아보시라는 말에, 지금 집안일 하다가 맞이해서 몸에서 먼지와 세제 냄새난다고 사양하시더니, 그래도 한번 안아봐도 되냐고 하셔서 물론 된다고 말씀드렸다. 185센치미터로 엄청 키가 크신 할머니신데, 정말 좋아하셨다.

오늘은 이모님 내외 커플, 시누이네 남편이 두바이에서 잠시 출장으로 돌아오자마자 잠깐 들른다고 해서 두번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짧지만 분주한 수유 스케줄 속에서 맞이하다보면 다소 정신이 없기도 하다. 물론 그런 것을 이해하기에 방문이 30분-1시간 이내로 끝나니 크게 상관없기도 하고, 나도 옌스와 하나하고만 있으면서 집에 있으면 그것도 무료하니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손님 오시면 우리는 애 만지기 직전에 손을 씻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여기는 어느 집에 방문하던 손을 맨 먼저 씻곤 하니, 그 다음엔 굳이 애를 만진다고 손을 씻거나 하진 않는다. 집안에서 손에 묻히게 되는 오염물질은 부모나 손님이나 똑같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 나도 애 만진다고 매번 손 씻는게 아니라 특별히 손님에게 더한 청결을 요구할 이유도 없다.

오늘은 두번의 방문객 사이나 그 뒤로 잠깐 산책을 나갈 예정이다. 유모차도 한번 이용해보고 다음주 보육원 시설 설명도 들을겸 방문을 계획하고 있어서 그 전에 한번 연습삼아 외출을 짧게 해볼 계획이다. 옷을 따뜻하게 입혀 겨울에도 밖에서 재우는 덴마크인의 생활습관상 백일이 안된 신생아의 외출은 이상하지 않다.

시부모님은 이제 나의 각종 추한 모습은 다 보셨다.

떡지고 헝클어진 머리, 수유하면서 흐트러진 모습 등. 시어머니 뿐 아니라 시아버지도 내 모유수유 장면을 다 보셨으니 이젠 정말 가족이다. 흠흠. 엄마가 되면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포기해야한다는 건 아닌데, 엄마로서 있을 때의 헝크러진 모습이 외부에 드러내는 여성으로서의 나의 모습과는 괴리가 많이 있고, 아주 가까운 가족 아니면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보니 시부모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이런 계기가 아니면 기회가 없다.

산모영양식은 따로 없다.

과일과 채소를 잘 먹고, 탄수화물을 매끼 챙겨먹고, 기타 단백질과 지방을 모두 골고루 섞어 먹되 하루 300 킬로칼로리 정도 더 먹도록 양을 챙기라는 것 외에는 산모영양식은 따로 없다. 그리고 6개월 이내에 원래 체중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라는 건 여기도 동일하고, 원상태로 회복 없이 다음 아이를 임신할 경우 여러가지 임신 중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고 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천천히 체력관리를 할 생각이다. 출산하자마자 토스트를 먹은 것을 비롯해 집에 와서도 점심으로는 주로 잼과 버터바른 토스트에 우유를 곁들여 먹었다. 저녁은 시부모님이 잘 챙겨주셔서 이것저것 좋은 음식을 먹었다. 산후에 우리처럼 매끼 잘 챙겨먹는 것은 지양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는 차이점이었다.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아이를 관리한다.

이미 월요일에 간호사가 와서 아이의 몸무게와 키를 측정하고, 모유수유 방법을 보여달라고 해서 잘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추가적인 수유자세 하나를 가르쳐주고 갔다. 궁금한 점에 대해서 답변해주고, 다음번 방문할 일정을 설명해주고 갔다. 안그래도 아침에 신생아 대사검사 차 병원에 갔을 때 산파가 이것저것 상담해줬는데 그때 다 물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답변을 주고 가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일 또 한번, 다음주에도 한두번 방문이 예정되어 있는데, 아동학대나 무지로 인한 육아상의 실수 등을 체크하고 혹시 모르는 아이의 건강상 문제점 등을 초기에 발견해 대처하려는 데에 따른 시스템이다.

 

대충 그간 경험한 것들을 요약해봤다. 어느새 거의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하나는 반복되어 가는 일상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눈과 콧망울은 나를 닮았으나, 눈동자는 아빠를 닮았다. 약간 회색빛이 도는 파란색인데, 눈동자 색은 갈색눈이 아닌 이상 확정이 되는 시기가 아니라 언제고 더 짙어져서 초록, 갈색 등이 될 수 있고, 드문 경우로 이 색깔이 유지될 수도 있다 한다. 입술은 또렷한게 신랑을 닮았고, 귀는 내 귀를 닮았다. 옌스는 자기 귀 모양을 안좋아하는데 그게 나를 닮아 좋다.

가슴팍 골격을 보아하니 이건 시아버지와 옌스를 똑 닮았다. 팔다리, 손가락, 발가락 모두 엄청 긴데, 이 또한 아빠를 닮았다. 정말 오묘한 조화다. 머리나 털도 아빠를 닮은 것 같은게, 머리는 밝은 갈색, 몸 털은 금발이라 내 것일 수가 없다. 머리는 앞으로 더 검어질 수도 있지만, 몸 털 색은 그대로 가니까 그걸로 보면 대충 아빠 유전자라는 생각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아이는 다 동양인처럼 생겼다며 그렇지 않다고 하던 나와 다르게 주장해오던 옌스는 막상 자기 딸을 보더니, 내 말이 맞는 것 같다며, 하나는 코카시안에 더 가깝게 생긴 거 같다고 한다. 한국인 입양인이 많아 그들과 덴마크인의 혼혈 2세를 본 경험이 많은 옌스는 대부분 다 동양인의 유전자가 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인이 보면 혼혈은 서양애처럼 보인다는 말에 서로 자기에게 없는 것을 봐서 그런거 같다고 했지만, 하나는 어떨려나 모르겠다. 그래도 눈이 나를 닮으니 뭔가 인상면에서 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만족한다. 옌스를 닮아 좋은 부분들도 있지만, 내 딸이니 나의 흔적을 찾게 되는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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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래퍼의 기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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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가 많이 크다. 3개월짜리 모자라 그런 듯.

집에 와서 자던 두번째의 밤이자 출산 이후 세번째의 밤은 특히 힘겨웠다. 정말 매트리스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일어나고, 아직 초유밖에 없어서 그런지 엄청 칭얼거리면서 쉬지 않고 몇시간씩 수유를 요구하는데,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러다가, ‘아… 이게 원래 그런거다라고 받아들이고, 조금이나마 잘 타이밍을 나중에 찾으면 되니 내 페이스대로 애를 끌고 가지 말아야지… ‘라고 마음을 먹고나니 평화가 찾아왔다. 힘들 거 알고 있었는데 조금 편한 걸 찾으려니 그 괴리에서 마음이 고생을 하기에, 아예 그 괴리를 없애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 그러고 나니 편해지더라.

앞으로 더 힘들어지더라도 이런 마음을 유지하면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육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흐트러지지 않고 이런 마음챙김을 잊지 말아야겠다.

덴마크 출산기

마지막으로 신파를 만났던 날, 지난 목요일. 다녀와서 덴마크 출산 시 산모 내진에 대한 글을 크다가 저장을 해두었는데, 그날 밤 그 글을 다 쓰기도 전에 출산을 해버리게 되었다. 내진의 고통에 대한 여러가지 글들을 익히 읽어둔 터라 그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임신 막달 들어 흔히 내진을 하는 한국의 프랙티스와 이곳의 차이가 크게 다가오기도 했다.

예정일이 지나도 안나와 다음 약속한 시간에 산파를 만날 경우, 분만 유도의 일환으로 내진이 어떻게 활용되는 지, 기타 예정일 후 12일이 지나도 안나와 경우 유도분만이 어떻게 진행될지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안내되어 있는 문서를 받아들고 집에 왔었더랬다. 도대체 내 자궁경부는 얼마나 많이 열려있는지, 진행은 어떻게 될 지에 대한 신파의 견해도 궁금했기에 살짝 아쉬웠다. 뭔가 예정일 직전 마지막 면담에는 내진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 탓이었다.
그날 밤, 유독 하나가 많이 움직였다. 그 전에 하나가 많이 움직이면서 손가락으로 하나가 자궁경부를 파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 들이 있었는데, 그게 알고보니 자궁경부가 조금씩 얇아지거나 벌어지면서 생기는 느낌일 수 있다고 한다. 애의 태동과 동시에 나는 경우, 그건 머리가 움직이면서 생기는 마찰 때문에 느끼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니 손가락으로 파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 전날 브랙스턴 힉스 수축이 유독 강했던지라 그날 출근하려나 김칫국을 마신 경험을 하고 난 후였어서, 이날 밤 세번의 강한, 꼭 생리통 같았던 배뭉침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냥 하나의 격렬한 태동이 다소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다가 뭔가 왈칵하고 흐르는 느낌. 소변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분비물이라기엔 느낌이 수상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한번 더 왈칵하는 느낌이 들더니, 변기에 앉자마자 뭔가가 주르륵 쏟아졌다. 희뿌옇게 혼탁한 액체에 선홍빛 피가 섞여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자궁경부를 임신 기간 내 봉인하고 있었던 점액질의 플러그인가, 아니면 양수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선 화장실 분을 열고 자고있던 옌스에게 소리를 쳤다. “I think, my water just broke!.” 그리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때가 12:30. 한밤중이었다. 양수면 계속 흐른다고, 30분만 관찰해보고 다시 전화를 달라했다. 조금 지나고 보니 이게 말로만 듣던 양수였다. 다시 전화를 하니 6:30까지 진통이 4-5분 간격으로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단계에 돌입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와서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유도분만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는데, 사실 이미 심한 생리통같은 진통은 양수 터지기 시작 직전부터 브랙스턴힉스 수축의 형태로 세번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난 과연 6:30까지 아무일도 없으려나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었다.
다운 받아둔 진통 어플을 이용해 진통 간격 및 지속시간 등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진통 시작시점 기준, 분명 4-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면서 도래하는 진통이 1분여 정도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여부를 한두시간 정도 관찰하고 병원으로 연락을 하라 했었다. 그런데 이건 뭐랄까… 처음부터 7-10분 간격이었는데 그게 빠르게 7-8, 6-7분 간격으로 내려오더니 5분, 4분, 3분 간격으로도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이미 아주 심해져서 호흡을 관리하기 힘들었다. 산파의 설명을 들은 후 유투브 비디오도 보고 열심히 연습도 해두었는데.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할 거 같아서 양수 색을 확인하려고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가기 직전 진통이 끝나고 화장실 가자마자 한번, 나오는 길에 화장실 앞에서 한번, 물이라도 한잔 더 마시려는데 부엌에서 또 한 번 더. 이건 재보지 못했지만 삼분 간격인 것같았다.
옌스에게 병원에 전화해서 가겠다고 하라 했는데, 병원 출산동 응급라인이 통화중이란다. 택시부터 잡으라 했는데, 옌스도 정신이 없었는지 허둥대고 있었다. 나중에 이야기하기를, 택시 부르는 법이 순간 기억이 안났다더라. 그때가 3:55분. 4:10분에 부를지 20분에 부를지를 물어보길래, 그냥 기다리게 해도 좋으니 우리 준비되면 바로 떠나게 10분으로 부르라고 했다. 십분 더 기다려서 돈이 더 나오는게 (물론 십분 차이에 한 이삼만원 더 내야겠지만) 뭐 대수냐는 마음에 치밀어오르는 화를 눌렀다. 사실 평소였으면 너무 당연한 질문인 건데, 상황이 이런데도 그런 질문을 하다니!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히 이야기를 하고 옷을 입었고, 이미 싸둔 짐을 챙기고 병원에 추가로 연락해서 우리가 간다는 걸 알리는 모든 걸 다 해야하는 옌스는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전화가 연결되서 내가 상황을 설명하고, 가는 것으로 알렸다. 덴마크인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는 역시나 그 와중에도 신호를 꼬박꼬박 지켰으나, 달리는 순간 만큼은 속도 제한 내에서 엄청 달리는 게 느껴졌다. 십분을 달리는 와중 세네번의 진통을 겪고 병원에 도착했다. 출산동으로 복잡한 길을 헤매며 도착했더니 시간이 4:20의 되어있었다. 목이 말라 밤새 못마신 물을 두잔 마시고 났더니 속이 미식거렸다. 아마 진통이 시작되면서 소화가 멈췄었던지, 다섯시에 먹었던 김치찌개의 일부와 그 이후 먹은 과일의 흔적을 확인하게끔 말끔히 게워냈다.
산파는 처음으로 내진을 해주었고, 통증따위는 없었다. 양수가 내내 이런 색이었냐길래, 그렇다고, 내내 선홍빛이 돌았다 하니, 지금은 약간 초록빛이란다. 오기 직전까진 아니었는데, 그 사이 색이 바뀐 모양이었다. 자궁경부는 이미 4-5센치가 열렸고, 매우 부드럽고 얇아 금방 열릴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자기가 지금 마사지를 하고 있으니 조금 시원할 거라고 하는데, 시원하진 몰라도 말로만 듣던 고통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애 심장 박동은 무리가 없는데, 그냥 태변을 봐서인지, 그걸 먹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조금 모니터링을 해야한다길래 산모 접수실에서 모니터링을 조금만 더 하자고 했다. 오늘 분만실이 바쁘다며, 분만실 정리중이고, 모니터링 세팅은 추가로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내가 진통중 자세를 움직이면서 모니터링이 잘 안되자, 누군가 들어와서 이렇게 움직이면 안된다고 하고 다시 심장박동기를 세팅해주로 나갔다. 두번째 그런 일이 생기자 들어온 사람이 (산파가 아닌 듯했다.) 이러면 모니터링에 시간이 더 걸린다며 움직이지 말라면서 그 방에 십분 더 있으라고 했다. 그런 일이 한번 더 있고 나서는 옌스가 내가 움직이지 않게끔 옆에 앉아 날 잡아주었다. 정말 아파서 어쩔 수 없었고, 물론 움직이려면 움직일 수 있었지만, 옆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버틸 정신적 힘이 조금 더 생겼다. 다행히 하나의 심장박동은 괜찮았다. 이때 에피듀럴 혹시 맞는게 가능하냐고 한번 물어봤는데, 아무 대답을 못들어었고, 나도 원래 원하던 바가 아니었기에 더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진통은 빠르게 양상이 바뀌고 있었다. 갑자기 난 짐승과 같은 괴성이 섞인 긴 호흡을 내쉬고 있었다. 아주 긴 복식 호흡이 중요하다 해서 길게 내쉬고 있었는데, 이 호흡이 야수의 신음같이 나왔다. 그르릉 하는 소리로. 그리고 머리가 아래로 내려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빨리 산파 부르라고 옌스에게 말하고 나니 또 그런 진통이 왔다. 다시금 그런 느낌이 오는데 아직도 누가 안와서 옌스에게 화를 내며 재촉을 했다. 나 여기서 낳을 것 같다고, 빨리 부르라고.
나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던 야속한 그녀가 나를 데리고 휠체어로 분만실에 데리고 갔다. 가는 길에 또 한번의 진통이 와서 야수같은 호흡을 내뱉자, 그녀가 히히후 하는 호흡을 하란다. 내 산파가 그건 구식 호흡이라고 이야기해줬는데. 힘들게 호흡을 컨트롤 하고 있는데 자꾸 히히후를 강요해서 짜증이 났다. 나 호흡중이라고 쏘아붙이고 나니 더이상 가타부타 않는다.
분만실 도착해서는 침대에 올라가 앉으라길래 왼쪽으로 기대 앉았다. 하나의 심박을 모니터링하고 때 그 자세가 아이에게 가장 편한 자세라고 했었기에. 옌스는 내 옷을 벗기라는 명을 받았는데, 나에게 몸을 움직여 보라길래, 그냥 당겨서 빼라고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또 한번 강하게 오는 진통에 다시 짐승같은 호흡을 시작하자 산파가 잘 하고 있단다. 관장을 할 시간도 없었는데 뭔가 나온 것 같았다. 산파에 그 당황스러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기저귀를 벗기려는데, 옌스는 옆에 있고… 약간 지린 것이 맞았다. 이런… 그 와중이지만 민망하여 농담이 나왔다. 다 잊어버리라면서, 나 나중에 치매와서 벽에 똥칠하면 그 때 어차피 봐야하는 거니까 그렇게 본 셈 치라고. 농담을 할 힘이 난 건 좀 웃기긴 했지만 나도 오죽 민망했으면 그랬겠나.
그리고 또 한번 진통이 왔다. 이 진통이 끝날때쯤 이미 머리가 보였다고 하는데 진통이 멈추자 애가 다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진통에는 진통이 끝나고도 배에 긴장을 늦추면 안되겠구나 싶었다. 지금 정말 잘하고 있다고, 딱 그 느낌으로 하라는데, 다음 진통엔 애의 머리가 나오고, 그 다음엔 하나의 온 몸이 나왔다. 중간에 힘 멈추랄 때 멈추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애가 나오자마자 배에 하나를 올려주는 순간 사실 너무 얼떨떨했다. 그 정신없는 와중 탯줄 아빠가 잘라줄 거냐고 산파가 물어서 옌스 얼굴을 한 번 봤는데, 이미 둘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안자른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눈이 촉촉히 젖어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많이 울었다더라. 난 약간 실감도 안나고 해서 눈물은 안났고, 그럼 엄마가 자르겠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썩둑썩둑 잘랐다. 듣던대로 잘 잘라지지 않더라.
막상 분만기는 십오분에 불과했던건데, 가장 힘든건 이때보다는 자궁경부가 열리는 진통기였다. 특히 택시에서 내려 출산동으로 가는 시간, 태아 심박 모니터링하던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회음부 절개는 없었지만, 질이 일부 열상이 있어 여러 바늘 꼬맸는데, 마취 스프레이의 따가운 느낌도, 중간에 다소 깊은 열상을 꼬맬때의 따가운 통증도 느낄 만큼 통각이 살아있었다. 그만큼 산고의 시간이 짧있단 뜻인 것 같다. 괜찮냐는 산파의 질문에, 물론 괜찮긴 하다고, 출산도 했는데 이정도 못견디겠냐는 농담도 할 정도로 여유도 있었고, 실제 지쳐 쓰러질 것 같은 그런 게 없이 출산 후엔 상쾌했다. 하나의 첫 똥도 치우고. 내 손에 똥 범벅을 해 준 하나. 흠흠.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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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다섯시간만에 산모병실로 내려와서 하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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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병동 @ Herlev hos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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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에서 애 나오고나서 10분뒤 모습

아침식사로는 토스트빵에 버터와 잼, 치즈(는 안먹었지만), 요구르트가 제공되었고 이를 먹으며 정말 한국과 다른 경험을 한다 싶었다. 출산이 바빴던 밤에 애를 낳은 탓에 산모병실이 안비어서 분만실에서 서너시간 지루하게 있다가 방을 옮겼다. 일인실인 방은 괜찮았고, 첫날부터 수유도 정상적으로 하고 밤도 무사히 잘 보냈다. 배는 바람빠진 듯 뭔가 이상한 감촉이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그냥 모든게 예상한 것보다 수월했다. 덕분에 바로 다음날 무리 없이 퇴원해 집에 올 수 있었는데, 정상으로 분만한 경산부가 여섯시간만에 집으로 가는게 어떻게 가능한 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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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로 아침식사가 배달되었다. 생일엔 대네브로(Dannebrog, 덴마크 국기)가 빠질 수 없다. 

이제 시작이지만, 그 시작이 수월해서 참으로 감사하다. (산파 왈, 이렇게 급격한 출산이 골반인대엔 그닥 좋지 않단다. 너무 급격하게 벌어지니 일종의 충격이… 그래도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긴 것보단 짧은 게 산모의 고통 입장에서는 나은 듯…?) 효녀 하나 덕분인 것 같다. 앞으로 잘 해보자 우리. 🙂

24 Jan 2017, Berlingske

»Der er ingen, der har lyst til at være den, der henter børnene sidst i børnehaven«


Danske forældre henter og bringer deres børn imellem klokken otte og 16. Men deres arbejdsliv foregår på alle tider af døgnet. Er det på tide at gøre daginstitutionernes åbningstider endnu mere fleksible?
MANDAG D. 23. JANUAR 2017 KL. 17:00

Det har altid været sådan. Mellem otte og ni er der gang i morgentrafikken hos landets daginstitutioner, og mellem 15 og 16 dukker forældrene op igen for at hente de små.
Ude i de danske familier fortsætter arbejdet dog alligevel: Man går til møder om aftenen, ringer til en kollega efter spisetid og svarer på vigtige mails efter børnene er blevet puttet.
Bruger de danske forældre så muligheden for at få passet børnene tidligere og senere?

En ny undersøgelse fra KORA bestilt af Børne- og socialministeriet her forud for regeringens dagtilbudsudspil til foråret, viser, at landets kommuner oplever en begrænset efterspørgsel efter pasning udenfor almindelig åbningstid.

Aften-, natte- og weekendtimer bliver sjældent benyttet. Det gør pasning i de tidlige morgentimer til gengæld hos de kommuner, der tilbyder det.
Børne- og socialminister Mai Mercado ser det bånd, som forældre lægger på hinanden, som en af forklaringerne.
»Forældre måler sig op imod hinanden. Der er ingen, der har lyst til at være den, der henter børnene sidst i børnehaven. Derfor ligger der det her pres. De fleste har en fuldtidsplads og derfor har forældre også en opfattelse af, at man skal aflevere tidligt om morgenen. Forældre er meget præget af en 8-16 kultur. Den må man godt give lidt slip på. Vi skal også tænke i løsninger, som passer bedre til forældrenes behov,« siger hun.

‘foregår take place, happen, go on, be in progress
foregår på be conducted in
gang walk, gait, step, course, progress, march, passage, aisle, corridor, hallway
være gang i take place, be busy
dukker op turn up, come up, show up
bliver puttet be tucked in, be laid on the bed
forud ahead, beforehand, in advance
udspil

(-let, -, -lene)

proposal, move, gambit, initiative, lead
en efterspørgsel efter – a demand for –
bånd band, ribbon, string, twine, hoop, tape, tie, restriction
opfattelse

(-n, -r, -rne)

perception, idea, conception, opinion, view, interpretation, comprehension
præger characterise, mark, permeate, pervade, impact on,
være præget af – be marked by -, be accompanies by -,
slip break, slip, slippage
give slip på – relinquish –
løsning solution, resolution, answer, settlement

http://www.b.dk/nationalt/der-er-ingen-der-har-lyst-til-at-vaere-den-der-henter-boernene-sidst-i

A short conversation in Korea 2

가. 저기에 커피샵이 하나 있어요. 저기로 갈까요?

나. 음… 아니오. 저기 커피는 맛없어요. 조금만 더 가면 다른 곳이 있어요. 거기로 가요. ‘테라로사’라고 하는 집이에요.

(In this case of referring the coffee shop as 집, 집 does not literally mean a house or home but means a place. It is interchangeable with 가게, where they sell things, e.g. clothes, food, coffee, etc.)

가. 아! 테라로사요! 저 거기 알아요. 우리 전에 아마 갔었지요?

나. 네. 맞아요. 당신이 커피가 맛있다고 했어요.

(두 문장을 한 문장으로 조합 – 짧은 대화 1의 문법 팁을 참고하세요.)

가. 네, 맞아요. 물론이지요. 거기로 가요.

다. 안녕하세요! 어떤 것으로 주문하시겠어요?

가. 저는 까페라테 큰 것으로 종이컵에 한 잔 주세요. 저지방 우유로 아주 뜨겁게 해주세요. 정말로 뜨겁게 해주세요. 혀가 데일 정도로요.

다. 저희는 저지방 우유가 없어요. 그리고 너무 뜨겁게 하면 맛이 없어져요.

가. 저지방 우유가 없어요? 알겠습니다. 괜찮아요. 그리고 그냥 아주 뜨겁게 해주세요. 저는 안뜨거운 커피를 싫어해요.

나. 저는 그냥 카페라테 주세요. 종이컵 말고 그냥 컵에 주세요.

다. 알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가. 저는 옌스입니다.

다. 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이 진동벨이 울리면 저쪽 카운터로 와서 받아 가세요.

가/나. 네. 고맙습니다.

 

단어 및 숙어! (Words and Expressions!)

-을 참고하세요 (참고하다.): Please refer -.

-져요 (-지다): a verbal conjugation. This implies the gradual change. In the conversation, 없어요 is conjugated to 없어져요. 맛이 없어요 (literally means that there is no taste) means that it does not taste good. When you say 맛이 없어져요, it means that the taste changes from existence to nonexistence. So it means that it will lose its taste.

진동벨: a buzzer. Most of coffee shops in Korea use buzzers to call in customers to pick-up their orders.

(저)쪽 : side. 저쪽 means that side. 이쪽 means this side.

카운터: a counter

받아 가세요 (받다 + 가다): Please receive(pick up) and go. When you need to move (come or go, in this case, go.) in order to do something, an action verb should be combined with 오다 or 가다 verb. 받아 오세요 means receive and come. Whether to use 오다 or 가다 depends on who says to whom and whether the action of moving ends or starts from the speaker’s point of view.

 

A short conversation in Korean 1

가. 오늘 뭐 할까요?

나. 집에서 영화 볼까요?

가. 좋아요. 무엇을 볼까요?

나. 재미있는 영화를 골라주세요.

가. 네, 그렇게 하지요. 어떤 영화를 보고 싶어요?

나. Sideways, 이 영화는 재미있어요?

가. 네. 그 영화는 재미있어요.

나. 제 친구도 이 영화가 재미있다고 (말)했어요. [Check the grammar tip below.]

(In this case of quoting a friend’s opinion, 말 can be omitted without losing any meaning. It is more frequently used this way.)

가. 아, 그랬어요? 네, 정말 재미있어요. 이 영화는 와인과 사랑에 대한 영화예요.

나. 저녁은 타파스로 하지요. 제가 준비할게요.

 

문법 팁! (A grammar tip!)

두 문장(two sentences) 을 한 문장으로 어떻게 조합할까요? 한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How to combine two sentences in one? One way to do it is as below.

문장 1: 제 친구도 말했어요.

문장 2: 이 영화가 재미있다.
The key sentence is the 문장 1 which lacks some information, and what my friend said is an additional piece of information that will complete the 문장 1. The piece should be inserted into the 문장 1.
This 문장 2 should always end with a verb conjugated in the formal form in order to be combined this way. (e.g. -다(statement), -라(imperative)) 문장 2 is written this way as seen above.
Right in front of the 말했어요 in the 문장 2, separate the sentence into two pieces: 제 친구도 + 말했어요. Insert the 문장 2 after adding -고 at the end of the 문장 2: 이 영화가 재미있다+고.
Then the 두 문장 become 한 문장: 제 친구도 이 영화가 재미있다고 말했어요. Voilà!

 

단어 및 숙어! (Words and Expressions!)

골라주세요 (고르다): Please choose. (to choose (among options))

-에 대한: about –

 

Short conversations in Korean

My husband Jens wanted me to write some short stories or conversations in Korean which he can relate to such that he can practice his Korean better.

He studies alone with books such as “Korean from Zero” and “The Korean Verbs Guide,” along with a list he made himself using an iPad application. I know what he knows by referring his books and the list, hence, I start to write some short conversations suitable for him at his level. In order for him to utilize these conversations in his real life in Korea when we visit there, they are written based on our experiences. Names of places and titles of movies or so are generally real except people’s names. For the clarification, when there are real names and titles are mentioned, there is no intention of advertisement or criticism.

l thought this could be helpful for those who study Korean. I am not a professional (not even amateur) Korean teacher, so there could be some errors or at least some unclarity in terms of explanations. Just keep that in mind.

I am a well-educated middle class person, who you can rely on. I do not use slangs or swearing words. I write colloquial Korean, but try not to use too colloquial Korean, in order for my husband not to be confused with how to conjugate verbs or not to mix a noun and a grammatical element, e.g. 무엇을 instead of  뭘.

Hope this helps. 😉

또 이렇게 봄이 오는구나…

봄이 오고 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옌스는 겨울은 공식적으로는 2월까지이고, 개인적으로는 3월까지라 생각한다고 반박한다. 그런 숫자를 떠나서 내가 봄이 오고 있다고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을 나고 꽃을 틔우는 식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2월 21일 동지가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 2~3분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이 때는 오전, 오후 각 1~2분씩 길어지는 거라 별로 티가 나지 않지만, 동지라는 반환점을 확실히 지나고 나면 하루 5분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어느날 갑자기 해지는 시간이 뒤로 밀렸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오게되는데, 요즘이 바로 그런 때이다.

4시 반이면 새카맣게 변해있던 하늘이, 오늘은 같은 시간임에도 푸른 조각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른 봄을 알리는 노란 꽃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아직 꽃잎을 활짝 벌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봄 내내 여기저기 피며 함께할 긴 시간을 생각하면 벌써 얼굴을 활짝 내어 보여주기에는 아직 이르다. 관목들도 서서히 가지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고 그 끝은 초록빛이 감돈다. 어떤 잎몽우리는 이미 껍질을 터뜨리고 나왔고,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리할 채비를 하는 몽우리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한낮엔 해가 쨍하니 코트 앞섶을 여미지 않아도 춥지 않았다. 영상 4~5도의 날씨에 해가 쨍한 겨울이라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100년만에 가장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 하더니만 몇번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거 외엔 크게 추운 날씨도 없었고, 비나 눈도 별로 오지 않았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후가 정말 변하고 있다. 이젠 뭐가 정상적인 건지 잘 모르겠다. 온난한 겨울은 덴마크에도 좋지 않은게 해수면 상승과 태풍 등이 결합하면 폭풍해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실제 이로 인해 얼마전 덴마크엔 작고 큰 해일 피해가 잇따랐다.

임신을 한 엄마의 두뇌는 아이에 초점을 맞추도록 회백질이 일시적으로 1~2년간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나도 그래서 그런가, 삶의 관심이 임신, 출산, 육아에 맞춰지고 있다. 날이 따뜻해지고 나니 예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아이에 생각이 또 미친다. 이제 벌써 봄이 시작되면 애를 유모차에 데리고 산책하기 좋겠네, 기기 시작할 때가 여름이라 잔디에서 놀게 하기 좋겠네, 등 소소한 생각 조각이 아이에게 가 있는 나를 발견하며 생소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