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즈즈즈즈…. 정전기로 충전된 하나

플라스틱 재질로 된 터널 타입 미끄럼틀을 탄 하나 머리가 정전기로 한올한올 곤두섰다. 이런 재질 미끄럼틀만 타면 이렇게 되는데 얼마나 웃긴지. 인생사진들 건진 것 같다. 🙂 땅에 내리는 순간 차르륵 내려앉는 머리가 정말 신기했다!

일상의 기록

나이 마흔이 다 되어가는 즈음에서야 내 부모의 훌륭함을 느낀다. 게을러지고 싶은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조차 꾸준함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 내 그리 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끈의 끝자락을 놓지는 않고 있다고는 하겠다.

바쁘다는 이유로 기록을 게을리했는데, 작은 하나하나 게을리하는 게 모여서 큰 게으름이 되는 것 같아 짧게라도 흔적을 남겨야겠다 마음 먹었다.

오늘 날이 좋다. 어제는 우박도 떨어지고 비도 엄청 왔다가 잠깐 해도 떴다하며 오락가락하더니 오늘은 차가운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이 어우러지는 전형적인 가을날씨다. 어제는 추석이었는데 여기서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가족이 그립다고 이야기하기에 내 주변에 떠들썩함이 없으니 딱히 그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일주일이나마 잠깐 방문을 할 계획이 있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부모님이 오고 가신지 오래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너무 적어진 것 같다. 내 발등에 떨어진 일들 때문인 것 같다. 해야할 일이 많을 때 사람들과의 교류를 줄이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좋은 습관은 아닌 것 같다. 줄이다 못해 거의 끊어지게 관리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보다 사람 관리를 못하게 된 것 같다. 내 인생의 중심이 사람에서 내 현재 생활에 뿌리를 내리는 것으로 옮겨진 것일테지. 그렇다고 뿌리를 내리는 일에 아주 몰입한 것만도 아니다. 요즘처럼 게으름이 다시금 움트고 있을 땐 죄책감 반 의무감 반으로 마음이 버무려져 다른 일에 손을 데기가 참 힘들다. 정신차려야지.

오늘 할 일이 있는데 이를 미루고 늦잠을 자다가 쨍하게 파란 하늘을 보면서 이를 못누린다 불평하며 이도저도 못하고 있구나 싶었다. 지금의 내 삶을 놓고 보면 부족함이 하나 없는데 뭐에 이렇게 움츠러 들었는지. 한동안 실천하던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조차 전에 실행하기” 원칙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운동을 줄여서 그런가? 덴마크어 학원을 다니면서 운동에 할당하던 시간이 애매해졌다.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을 조율해나갈 지 생각해봐야겠다.

이제 해야 할 일들을 조금 처리하고 난 후 하나를 데리러 가야겠다. 애를 보는 게 힘든 면이 있기야 하지만, 내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있다면 하나를 낳은 것이다. 이제 이틀이면 20개월이 된다.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지. 나의 보석 하나. 정말 눈에 넣어서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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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degården과 Flyvergrillen 방문기

하나가 크면서 주말에 최소 한번은 뭔가 활동을 하려고 한다. 옌스와 보는 Klovn (클로운)이라는 코미디 시리즈가 있는데,  이번 주말엔 여기에 나온 Flyvergrillen (플뤼워그렐른)이라는 데를 가보려다가 Bondegården까지 다녀왔다. Flyvergrillen은 핫도그와 햄버거 등을 파는 그릴바이다. 음식은 기대할 바가 전혀 못되지만 코펜하겐 국제공항 활주로에서 3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기반으로 엄청 성황리에 운영중이다. 마치 조류 관찰처럼 비행기 관찰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기종 매뉴얼과 엄청나게 큰 렌즈를 낀 고가의 카메라 또는 망원경을 갖고 와 관찰을 하기도 하고, 비행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부모가 가족 나들이로 비행기 구경을 하기도 한다. Klovn에서 이 비행기 관찰하는 것에 대해서 소위 말하는 “쪽팔리는 (pinligt)” 취미로 묘사하던데, 옌스가 거기 한 번 가볼만 하다고 해서 덴마크 문화체험 또는 (비행기 관찰이 취미가 될 수 있는)  문화의 부족함을 체험하기 위해서 가보자고 했다. 일주일 뒤 날씨가 어떨지 모르니 우선 대안으로 생각해두자고 하고 큰 기대는 안했는데, 예상외로 날씨가 좋아서 가는 걸로 정했다. 옌스는 이미 10년 전 매제 총각파티 때 다녀와 본 적이 있었다는데, 요즘 하나가 부쩍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관심을 갖고 비행기를 외치기도 해서 다시 가서 하나에게 비행기를 보여주고 싶다했다.

토요일에 옌스가 카약을 하는 동안 내가 하나와 나가서 미리 놀고 있고, 중간에 합류해서 그릴바로 가기로 했다. 코펜하겐 시에서 만든 코펜하겐 놀이터 지도를 펼쳐놓고 중간에 갈만한 놀이터를 물색해 보니 Bondegården (보너고언)이 가는 길에 잘 겹쳐있었다. 안그래도 친구들이 추천해줬던 곳이었기에 언젠간 가봐야하지 하면서도 멀어서 엄두를 못내고 있었는데, 이 참에 가봐야겠다 싶었다. 결국은 하나 낮잠과 꼬여서 토요일은 Bondegården, 일요일은 Flyvergrillen 이렇게 두번이나 이 먼 곳을 다녀왔는데, 둘다 잘 다녀오긴 한 것 같다.

Bondegården은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거 형태로 일반적으로 가축사육지와 경작용 농지를 포함한다. 코펜하겐에 웬 농장? 싶지만 진짜 농장은 아니고 아이들에게 가축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놀게 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놀이터 같은 곳이다. 말, 소, 돼지, 염소, 닭, 토끼 정도를 보고 만질 수 있는데 염소의 경우엔 개방시간 내내 사육장에 들어가서 만져볼 수 있데 되어있었다.

하나는 동물은 중간중간 관심을 찔끔 보이는 것 이외에는 놀이터에서 노는 것에 꽂혔고, 특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각종 자전거와 페달 자동차류를 타는 것에 집중했다. 물웅덩이에 장화도 없이 첨벙첨벙 뛰고 넘어지기도 해서 옷과 신발이 다 젖었지만, 다행히 옌스와 내가 따로 움직였던 덕에 여분의 옷과 신발을 옌스에게 부탁할 수 있었다. 이제 비온 뒤 외출엔 반드시 비옷과 장화를 갖고 나가는 것으로!

다녀온 경험으로는 강추! 왜 여기가 코펜하겐에서 갈만한 놀이터 중 다섯손가락에 꼽힌다고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놀이터 자체는 Nørrebro (뇌어브로)에 있는 Wesselsgade(베셀스갤) 놀이터에 전혀 비할 바 못되지만 어린 아이들 관점에서는 더 놀 것이 많았고, 동물 체험이라는 게 앞으로도 더 매력적일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엔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필즈 쇼핑몰에 들렀다가 인근 Orestad 학교에 딸린 놀이터도 방문해보았다. 여긴 좀 놀이터 시설들이 구조설계물스러웠는데, 풍경도 좋고 시설도 깨끗했지만, 난 좀 더 구식 놀이터에 끌리더라. 구식 놀이터의 매력이라는 게 따로 있는 느낌이다.

오늘 다시금 시도한 Flyvergrillen은 그냥 아주 전형적인 그릴바로 음식은 핫도그 같이 간단한 것만 시킬 만한 곳인데,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여러 항공사 비행기를 보여주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런웨이 초반이라 아직 비행기에 속도가 많이 안붙었을 타이밍이고 그래서 그런지 소음도 하늘에 나는 비행기에서 들리는 것 이상으로 더 시끄럽지도 않았다.

애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 시설도 작게나마 마련되어 있어서 나쁘진 않았다. 다시금 또 간다면 하나가 비행기를 아주 보고싶다고 조르는 경우에 한해서 갈 의향이 있다. 우선 집에서 한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와 버스밖에 가지 않는 지리적 불편함이 가장 큰 이유이고 그거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게 주변에 없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Fuck Google ask me 티셔츠를 입은 비행기 관찰 동호회 사람들을 보고 이게 그 Klovn에서 같이 있기 쪽팔리는 그룹의 사람으로 묘사한 그 사람들이구만 싶었다. 좀 nerdy한 이미지를 팍팍 풍기던 사람들. 취미야 다양할 수 있으니 그걸로 평가하기는 그렇고, 그냥 그 티셔츠가 웃겼다.

이번 주말은 또 이렇게 저물었다.

 

친구 아기 세례식 다녀온 날

우리 아파트 동에 정신질환이 있는 이웃이 있는데, 요즘 좀 안좋은 시기인지 밤에 자주 소리를 지르는데 마침 금요일 밤은 12시부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해서 2시 반에 앰뷸런스가 데리고 가기까지 정말 동네가 떠나가는 줄 알았다. 요즘 더워서 창문을 활짝 열지 않고는 잘 수가 없는데, 하여간 이날은 이래저래 잘 수가 없었다. 하나 방은 우리와 반대편 쪽에 있어서 이 소리에서 자유로웠다는게 다행이었는데, 하나가 5시에 깨면서 내가 애를 보다보니 거의 좀비상태가 되었다. 그바람에 오전에 잠깐 하나와 함께 깜빡 잠에 들어버렸더니 아뿔싸. 9시 40분까지 자버렸네. 친구네 아기 세례식이 있어서 11시까지 가야하는데… 난리가 나게 준비를 해서 11시 2분전에 간신히 도착했다. 하마터면 선물도 두고 갈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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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른 의자를 제법 꽉 채운다. 이번 여름 엄청 탔네.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까매진 하나. 🙂 5분도 못있다가 자꾸 쫑알대서 옌스와 함께 밖으로 내보냈다. 

어찌나 준비를 잘했던지. 결혼식도 그렇고 세례식도 그렇고, 준비를 정말 잘 했더라. 고생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동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아파트 단지에 있는 주민 공동 운영시설을 빌려서 파티를 준비했다. 점심 부페부터 오후 티타임까지. 바다에 붙은 아파트라 이 시설에 바다수영을 할 수 있게 하도록 데크며 실내 공간이 깨끗하게 되어 있는데, 손님이 쉽게 알아보라고 입구에는 레드카펫까지 깔아놓았다. 대단하네! 주인공인 아기는 세례식 내내 힘들었을텐데 막판에 오르간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울었던 거 빼고는 울지도 않고 대견했다. 옷도 낯선 세례식복이라 불편하고 더웠을텐데. 부모들도 그 바빴을 와중에 이쁘고 멋있게 차려입고.

파티장에서는 아이들이 많아서 하나가 시끄럽게 하는 걸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고, 어른들이 많아서 하나는 여기저기 인사하고 다니고 신나있었다. 음료를 차갑게 넣어두려고 얼음 띄워 물채워둔 큰 플라스틱 통이 두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여기에 들어있는 물과 음료캔에 꽂혀버렸다. 두번이나 빠져서 놀라 울고. 두번째는 덜 울긴 했지만. 나중에 한통이 거의 비고나자 친구가 아예 여기 음료를 옆에 통으로 옮기고 하나 놀게 하자고 제안해줘서 그 안에서 신나게 놀았다. 하나가 주인공 아기를 제외하고는 제일 어려서 바다수영은 영 부담스러웠고 또 다른 애들이랑 제대로 놀기엔 너무 어려서 이게 딱이었다. 완전 히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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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번 제대로 빠져서 옷을 갈아입혔는데, 또 한번 살짝이긴 해도 빠졌다. 금방 옷이 마르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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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는 바다수영을 한번 하고 나와 몸을 조금 말리는 중.  하나는 겁없이 데크 가장자리로… 아빠는 바짝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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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기저귀로 갈아입히기 전 나신의 하나. 나중에 말안들을 때 압박용으로 쓰자는 옌스. 그렇지만 중요 부위는 다 가렸는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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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의 욕조를 신나게 들락날락하고 있다. 어느새 선크림으로 뿌옇게 물든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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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신의 하나와 한장 남겼네. 즐거운 하루였어요 하나씨~

덕분에 하루 종일 낮잠 한번 안잔 하나는 끝까지 신나게 놀고 음식도 맛나게 먹고 잘 놀다가 집으로 왔다. 돌아오는 길, 유모차에서 3분안에 조용히 골아떨어져서 2시간이나 낮잠을 잤다. 요즘 한시간에서 길어야 한시간 반 자는데… 덕분에 평소보다 30분 이상 늦게 재우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재웠으니 그또한 괜찮았다.

친구네 시부모님과 같이 앉아서 점심을 먹었는데, 결혼식때도 뵙고 이래저래 이야기 전해서 많이 듣기도 했고, 시부모님도 내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던 터라 이야기가 편하고 재미있었다. 어머님이 워낙 상냥하신 분이시기도 하고 아버님도 편한 분이셨다. 오래 되지 않았는데, 이제 파티같은데 가서 앉아서 여럿이 대화해도 다 들리고 어린 아이들하고도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진 걸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파티 같은데서 느꼈던 이질감이 없어지면서 이런 자리 가는게 편해져서 불편함 없이 오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친구네 시부모님하고는 이번에 처음 길게 이야기 해봤는데, 우리 시부모님과는 또 다른 스타일이지만, 아무튼 비슷하게 따뜻한 분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국제결혼이라고 다 시댁과 잘 맞는 건 아닌데, 그녀도 시댁 스트레스 없을 좋은 분들 만나서 참 좋다는 생각이다.

이제 다음주 바짝 교정보고 최종 편집 해서 제출하면 논문도 우선은 일단락된다. 남은 건 디펜스뿐. 이렇게 여름의 피크가 지나가는구나. 올 여름 꽤나 괜찮았던 것 같다.

하나의 17개월 발달사항

요즘 하나가 사용하는 단어가 많이 늘고 있다. 우선 Nej만 쓰던 것에서 벗어나 Ja도 적극적으로 쓴다. 뭔가를 원할 때 주세요나 giv mig 같은 표현을 쓰기 어려우니, 고개를 강력히 끄덕이면서 ja를 반복하면 그게 맞다거나 달라는 뜻이다.

요즘 다른 애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다른 애들이 노는 곳에 가서 같이 노는 것 같다. 데릴러 가서 하나에게 왔음을 알리기 전에 몰래 지켜보다보면 다른 애들이랑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행동을 따라하기도 하고 같이 어린 아이용 시소를 타기도 한다. 멀쩡히 가만히 있는 애에게 다가가서 옷을 당기거나 밀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다른 애들 이름에 관심을 부쩍 갖는다. 내가 아는 애들이야 주로 나와 비슷하거나 늦은 시간에 픽업하러 오는 부모를 두는 애들인데, 발음이야 미숙하지만 그 애들 이름은 내가 이해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 애들과 친해서 그런지 그 아이들 이름을 주로 연습한다. 어쩌면 내가 그 애들 이름을 주로 언급한 걸 듣고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애스거를 애꺼로, 앨마를 앨마와 앨나의 중간 발음으로, 앤톤, 요샌, 크리스치애이너 등등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아무튼 비슷하게 흉내낸다. 선생님들도 나도 알아듣고 있으니 말이다.

사물에 두가지 이름이 있다는 걸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엄마와 아빠가 같은 사물을 두고 다른 이름을 말하는 걸 이해하고 두가지 단어를 다 사용한다. 물론 덴마크어가 더 우위를 차지하는 건 분명하다. 신발은 스꼬, 양말은 껌퍼 (스트룀퍼의 룀이 굄과 비슷하게 들려서 그렇게 발음한다.) 와 양말, 빵은 빵과 꾈 (브뢸의 뢸이 꾈과 비슷하게 들린다.), 물은 맨(밴)… 아니 이제는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단어를 말한다. 애가 말이 통하기 시작하니 애도 수월하고 우리도 수월하다.

다양한 새를 보고 구분해서 내가 알려준 소리들로 꼬꼬꼬, 구구구, 까악까악, 삐삐삐, 꽉꽉꽉, 이런 소리를 내는 것도 놀랍다.

계단은 혼자 옆에 바를 잡고 오르내리고를 하고 미끄럼틀을 혼자 탄지는 벌써 몇달이 되었다. 요즘은 트렘폴린에서 몸을 튀기다가 손잡이를 잡고 뛰는 동작을 아주 미세하게 시작하는 것 같다. 팔과 배의 힘이 좋아져서 얼마 안있어 아기침대를 기어오를 것 같다. 침대의 한면을 곧 열어야 할 것 같다. 자칫하면 떨어지는 사고가 생길 수도 있으니.

밤중 수유를 15개월 좀 넘어서까지 했으니 좀 길게 했다. 밤중 수유를 끊는데는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그러고나니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7시부터 다음날 5시반-6시반 정도까지 쭉 잔다. 요즘 6시 반에 가까운 시간으로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 늦어진 것 같다. 보육원에서의 낮잠은 1시간 반으로 거의 패턴이 정해진 것 같다. 아직 집에서는 주말에 오전, 오후 두번 낮잠을 자지만 말이다.

어느새 애가 이렇게 컸을까? 사람들이 애를 낳고 키우는 건 힘든 일이지만 행복하다더니만 그게 뭔 이야긴지 겪고나니 알게 되었다. 매일 밤마다 침대에 누워서 옌스와 하나가 믿을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하며 맞장구를 치는데 이런 팔불출들이 따로 없다. 8월에 부모님이 오셔서 2주동안 하나와 바짝 같이 지내시고 가시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하나가 또 새롭게 잘 기억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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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가장 좋아하는 훈이(Hundi)를 데리고 달려가는 하나

16개월이 다 되어가는 하나와 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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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 있으면 하나는 16개월이 된다. 키는 대충 재도 80센치니 그보다 큰 것 같고 (어느새 갑자기 훌쩍 컸다.) 몸무게도 10킬로가 거의 다 되는 것 같다. 키에 비해 몸무게가 천천히 느는 거 보니 이제 아기가 아니라 유아기로 들어서는 것이 이에서도 느껴진다. 어금니도 왼쪽 두개는 확실히 나고 오른쪽도 윗니는 터지기 시작해서 하얀 게 보이니 그 아랫니도 금방 열릴 거 같다.

긴 음절의 말은 톤과 소리만이긴 하지만 대충 흉내도 내고, 두음절 단어는 처음 듣는 단어도 곧잘 따라 하곤 한다. 처음 강아지 소리를 듣고는 자기만의 소리로 “앞앞!” 이렇게 표현하더니 모르는 동물은 무조건 앞앞으로 표현한다. 강아지는 멍멍이라고 알려줬더니 멍멍이라고 하고, 고양이는 먀옹이라고 하고, 새는 처음에 집에서 닭 사진을 보면서 가르쳐걸 기억해서인지 무조건 꼬꼬 라고 하더니 각각의 새를 보고 가르쳐 준대로 까마귀를 보면 까까라고 하고 비둘기는 꾸꾸라고 한다. 덴마크어로 아니오의 뜻을 가진 Nej는 아주 여유있고 시크한 톤으로 말해서 나와 옌스를 웃게 하고, 예는 아직 말하지 못하지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서 표현하는 덕에 의사소통이 아주 수월해졌다.

자기 이름을 엄청 좋아하고, 엄마와 아빠는 한국어로만 말하는 하나지만, 그 외에 말은 고맙다는 tak, 만날 때, 헤어질때 하는 인사 모두 Hej, Hej hej, Bye bye 모두 덴마크어와 영어이다. 소방차 소리를 바부바부 내는 걸로 봐서도 역시 덴마크어가 우월한 입지를 차지한게 느껴진다. 보육원을 다니면서 덴마크어 노출이 압도적이 되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하나에겐 항상 한국어만 쓰고, 옌스가 꾸준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식사시간에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 등이 앞으로 하나의 한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논문은 꾸역꾸역 쓰고 있다. 우선 긍정적인 것은 가장 중요한 모델링의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론도 더 쓸 게 있고 몇가지 테스트할 것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델링의 결과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게으름이 뚫고나와서 나를 갑자기 퍼지게 하는 사태를 만들지 않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조심하는 부분이다. 교수가 덴마크 환경경제 컨퍼런스에 내 논문 요약문을 제출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요약문 쓰는 거는 조언을 해줄 수 있으니 한번 제출해보라길래, 우선 알겠다고 했다. 받아들여져서 발표를 하게될지까지야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기회를 갖는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옌스 말로는 논문 주제가 재미있기도 하고, 우선 모델링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으니 내보란 것 아니겠냐면서,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한다. 박사과정 지원도 한달밖에 안남았으니 이 또한 해야하는데… 뭔가 할 일은 많고 정신은 없다. 지난주까지 2주동안 하나가 아파서 모든게 또 정지해있는 상태였는데, 여름 동안 큰 탈 없이 지내서 논문을 잘 진행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 와중에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는 게 하나 있다면 덴마크어다. 우선 덴마크어 시험 중 읽기는 만점이 나왔다. 쓰기 결과는 나와봐야 알지만, 쓰기 점수는 모의고사를 통해서 꾸준히 올려오기도 했고, 배운 걸 잘 소화해서 시험을 본 만큼 큰 변동 없이 10점이나 12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말하기는 그 어느 것보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연습하고 있는 것이고, 이제 일상생활에서 영어 없이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만큼 upper-intermediate에 해당하는 B2 레벨을 인증하는 PD3 시험은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물론 영어만큼 덴마크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젠 덴마크어가 더 자연스럽고, 사고의 언어 1순위가 덴마크어가 된 만큼 갑자기 덴마크어에서 영어로 전환하려면 자꾸 덴마크어가 튀어나오려 하는 정도이니 말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생각하는 것만큼 낭비야 없지만, 그냥 조금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그랬다면 지금의 가족은 내 인생에 없었겠으니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기도 하네.

이제 딴 짓 그만하고 다시 논문을 써야겠다.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이런 길로 걸어왔을까? 참 인생은 살고 볼 일이다. 끊임 없는 놀라움의 연속…

4월 일기.

논문이 바빠지니 다른 것에 소홀해진다. 논문은 대충 첫번째 포스트에 도착한 것 같다. 원시적 모델링은 우선 되었으니 이제 이론 연구와 모델링을 병행하고, 그 다음엔 분석하고 논문을 써야한다. 그간 진행이 참 지지부진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1차 모델링을 하고나서 보니 어찌어찌해 절반은 왔구나. 약간이지만 안도가 된다.  물론 아직도 반 이상이 남았는데 시간은 반이 흘렀으니 긴장이 되는 게 더 큰다. 내 논문 생활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하나 있다면 항상 크리티컬한 관점으로 내 논문을 비판해 줄 남편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모델을 보여줬더니 이건 고려해봤느냐, 저건 고려해봤느냐, 이 건 왜 이런 함수형태를 취했느냐, 독립변수 선택의 전략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직 그 단계까지 안갔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무방비로 폭격을 당한 기분이었으나 나혼자 하는 씨름에 타인의 신선한 인풋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역시 연구는 남과 공유해야하는 법이다.

우리 학과가 속한 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 공고가 났다. 자금사정이 트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인스티튜트 아침식사시간에 같이 참여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도교수에게 박사과정에도 관심있다고 했더니 지원서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교수님이 있는데, 그분께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것도 보장되는 건 없지만 추천서만큼은 꼭 써주시겠다면서, 오히려 박사과정에 꼭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논문을 제외하고 학점이 10.9니까… 논문을 잘 쓰면 11점 정도로 학점은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완벽한 점수를 들이밀 걸 생각하면 아주 빼어난 점수는 아니라도 점수가 흠이 될 건 아닌 정도니 논문이 많이 중요하다. 사실 큰 기대는 못한다. 요즘 박사과정은 세계 각지에서 지원을 하니 경쟁률도 높고, 내가 원하는 연구방향과 인스티튜트에 가장 어필하는 방향이 매칭이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든 해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배웠으니까 우선은 지원을 해봐야겠다. 뭐 되든 안되든 간에 내가 박사과정까지 생각하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해봤고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역시 절대 안한다 못한다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

덴마크어 필기 시험도 한달이 채 안남았고, 구술은 그 뒤 한달뒤로 다가왔는데, 시험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을 잘 만난 덕에 쓰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느는 게 느껴졌다. 알듯말듯한 몇가지 문법이 자꾸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는데, 내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딱 꼬집어 지적을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이 좋아졌다. 작년 말 시험으로 모의시험을 쳐보니 읽기는 12, 쓰기는 약한 12 또는 강한 10이라한다. 말하기는 한달 시간이 있기도 하고, 읽기와 쓰기의 중간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부문이라 대충 10~12 사이로 모든 부문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보고 있다. 모듈 6를 하게 될지 아닐지는 지금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항상 옵션을 갖고 있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우선은 그대로 해보련다. 덴마크어 교육도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있고 그러다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더 미루지 않고 올해 초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다.

하나는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제법 아가씨 태가 난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면서 겁이 없어져서 그런지 위험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서 조금 걱정이다. 집에서 놀다가 살짝 휘청한 것 같았는데, 금속 바구니 테두리에 부딪혀서 앞니가, 그것도 윗니가 살짝 깨졌다. 다행히 신경은 안건드린 거 같긴 한데, 우선은 지켜봐야한다. 옌스도 같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하니 젖니 깨먹는 건 이 집안 내력인가 한다. 이일로 나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픈 하나를 보기위해 마침 휴가를 내고 있었던 옌스에게 애를 맡기고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로 인해 구역질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역질이 계속 나는데, 그걸 멈추기 위해서 산책을 해야했다. 원래 스트레스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으로 반응이 올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가 아닌 아이 일이라서 그렇다. 누가 있었어도 생겼을 일이었기에 나를 자책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애가 더 크게 잘못되었으면 어쨌나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구역질. 더 큰 사고가 나도 차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말로 단단히 먹어야한다.

하나는 참 씩씩한 아이다. 웬만해서는 넘어진 거나 부딪힌 걸로 울지 않는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보육원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씩씩한 아이인데, 그렇다고 튼튼한 건 아닌 것 같다. 감기나 설사 같은 걸로 자주 아픈편이고, 폐렴 입원도 그렇고 천식성 기관지염을 앓는 일이 꽤 잦은 것 같다. 오늘도 그로 인해 응급실을 다녀왔으니… 물론 이번엔 응급했다기 보다는, 일반 GP, 스페셜리스트로 올라가는 시스템을 이용하기에는 응급했다고 봐야하는 거니까, 그냥 적기의 진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겨울 아기로 겨울 초입부터 보육원을 시작해서 그런 것도 있다지만. 다행인 건 씩씩한 아이라 잘 견뎌준다는 것. 나도 생각해보면 어려서 자주 아팠던 것 같다. 항상 건강체질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자주 배가 아파서 학교를 많이 쉬었던 기억이다. 엄마도 내가 씩씩했었다는데, 지금도 꽤 씩씩한 거 생각하면 하나도 그런 면에서는 강한 아이일 것 같다.

요즘 얼마나 놀이터 생활을 즐기는지. 날이 좋아지면서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놀리게 되니 동네 아이들과도 교류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 때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던 아래층 이웃 아이는 아직도 간혹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게 줄었고, 그 아이의 오빠와 둘다 다정한 애들로 컸더라. 이제 곧 7살이 된다는 베어트람은 하나를 유독 이뻐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아마 여동생을 데리고 지낸 경험에서 우러나는 듯) 4살 여동생인 딕터도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었고, 둘다 하나와 함께 놀아주더라. 하나가 갖고 나온 공을 갖고 잔디밭에 삼각형으로 둘러 앉아 셋이서 공을 미는 놀이를 하는데 (그나마 하나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놀이로 배려해 준 베어트람이 놀랍다.) 곧잘 노는 게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놀라고 나는 빠져있는 건데 내가 중간에 괜히 옆에서 개입했나 싶었다. 말못하는 하나를 대변해준답시고, 아직 애가 이해를 못해서 그래, 하나야 앞으로 밀어봐, 이러면서 옆에서 참견을 했다. 그냥도 잘 했을 거 같고, 아니어도 오빠와 언니가 적당히 반응해가며 놀았을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다른 아이가 충분히 큰 경우 내가 조금은 더 뒤로 빠져서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해봐야겠다.

다음주에는 두바이에 주재중인 시누이네를 시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는데, 출산 후 거의 바로 이주한 시누이가족과는 하나가 처음으로 제대로 교류하게 될 거라 기대가 많이 된다. 조카들이 동생 만나서 놀아줄 기대로 부풀어있어서 더욱 기대된다. 수영복도 사고 이래저래 준비를 했는데 아픈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오늘 해가 엄청 쨍하고 더웠는데, 하나 데리고 오전에 응급실에서 3시간 씨름하고, 가장 해가 쩅한 시간에 나와 낮잠에 든 애를 두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밀고 싸돌아다녔더니 몸에 화기가 든 기분이다. 아마 피부가 많이 탄 모양이다. 밤에 잠이 잘 안올 것 같다. 나는 못자도 애가 좀 잘 자줬으면 좋겠다. 기침을 덜하는 걸 보니 오늘은 잘 자려나? 역시 병원에서 천식약 흡입한 게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다. 딱 쓰고나니 기침하네. 흠… 역시 입초사인가…

임신 때보단 육아가 훨씬 힘들긴 한데, 출산 후 100일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다. 지금은 다른 차원의 힘듦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애가 어릴 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얼마전 출산한 사람, 앞으로 출산할 사람 등 주변에 애 참 많이 낳는데, 신생아 냄새가 생각날 듯 하면서 그립기도 하지만 또 낳을 생각은 안난다. 다 잊혀져서 애를 또 낳는다는데, 힘든 기억은 잊혀졌지만 힘들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 애는 그만 낳고 남들 애기 보면서 신생아 이뻐하는 건 그걸로 끝내야겠다. 아… 신생아 볼 생각에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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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startede i vuggestuen!

 

Hannah er nu lidt over 10 måneder og kan meget mere end før. Det føles som om, hun har været sammen med os for altid, selvom der kun er gået 10 måneder. Tiden er gået meget hurtigt. Det er meget sjovt, at det føles sådan, fordi jeg nogle gange klagede over, at tiden gik rigtigt langsomt efter fødslen. Måske var det fordi, det var ret fysisk hårdt at passe et lille barn, der ikke kunne gøre så meget selv. Jo hun kan stadig ikke så meget – hun er kun 10 måneder – men hun er ikke længere bare en baby. Hun er næsten en tumling!

Hun startede officielt i vuggestuen i går, hvis jeg ikke regner det første uofficielle besøg i mandags som den første gang. Det gik udmærket. Hun havde det sjovt og kravlede hele vejen rundt i vuggestuen. Hun så ud, som om hun godt kunne lide at lege med andre børn eller i hvert fald at være sammen med dem.

Nogle gange kunne jeg mærke, at andre børn udviste lidt aggressiv adfærd, mens pædagogerne ikke kunne mærke det på situationen. Der var, for eksempel, en dreng, der var lidt aggressiv generelt og skubbede Hannah og trådte på hendes fod. Jeg blev nødt til at sige, at han ikke måtte gøre det, og tog hende væk fra ham. Men det kan altid ske, og jeg kan ikke være der altid for at beskytte hende fra den slags situationer. Der er mange af mine venner, der selv har børn, som har fortalt mig, at jeg skal vænne mig til at se hende komme hjem med nogle skader i forskellige grader, store eller små. “Det gør ondt at se hende blive skadet, men det er den måde, man vokser op på.”, sagde de. Ja. Der er også det udtryk, at man bliver klog af skade. Hun vil også blive klog på den måde. (Men det er jo nemmere sagt end gjort!)

 

논문 시작

수면교육을 시작한지 나흘째. 첫날이 가장 힘들었고, 그 다음부터 아주 조금씩이지만 쉬워지고 있다. 오늘은 저녁 먹을 시간에 늦은 낮잠을 잔 터라 막상 잠을 잘 시간에 잠이 깨서 그런지 옌스가 수면의식으로써 책읽어주기가 끝났는데도 영 상쾌해 침대에서 놀고 있었다. 잘 자라고 이야기하고 꺠어있는 하나를 뒤로한 채 옌스는 방을 나왔고, 저글링한다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그 사이에 하나는 혼자 놀기, 떠들기, 울기를 번갈아가며 반복하더니 어느새인가 잠이 들었다. 이와 함께 밤에 깨는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밤중 수유도 줄어들었다. 건강방문사의 조언대로 배가 고파서 젖을 찾는게 아니라 습관이었던 것 같다.

11월 들어 학교에는 나가더라도 밤에 같이 하나를 데리고 자는 덕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는데, 학교도 나가고 하나도 스스로 자다보니 아이와 보내는 질적인 시간이 확 떨어졌다. 주말에 좋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먹을 때 독립적으로 먹으려 하는 것부터 해서 이제 앞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작고 크게 하나가 독립해나가는 일들을 경험하게 될텐데 그때마다 대견함과 서운함이 섞인 복잡한 경험을 할 것임을 벌써부터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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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이 부은 하나. 엄마가 가방을 메면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가방을 맡으면 저도 같이 가나요?”

학교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옌스와 다툴일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육아휴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힘에 조금씩 부치기 시작했는지 간혹 다툴 일이 있었는데, 사촌이나 엄마가 해주신 조언도 받아들이기도 한 덕도 있지만 우선 온전한 나의 시간이 길게 확보가 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옌스와 같이 한 지 어느덧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젠 진짜 겉과 속, 나의 가장 좋은 모습과 못난 모습 다 보여준 피를 나눈 것과 다름 없는 가족이 된 것이다. 서로 부딪혀가며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결국 더 아끼게 되었으니 하나를 갖게 된 것은 그 자체로도 축복이지만 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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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동네 도서관 탐방도 간혹 하곤 한다. 잠깐씩 나가서 나만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옌스. 육아휴직을 하더니 집안일도 더 돕고… 많이 늘었네.

 

논문이라는 건 듣기만 해도 뭔가 괴물같고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안개처럼 느껴진다. 막상 쓰기 시작하기 전엔 더 그렇다. 사실 교수를 서둘러 만난 건 천천히 여유있게 하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이 괴물을 작은 단위로 해체하지 않으면 마음 속에 큰 짐으로 남아있을 것 같아 서둘러 시작했다. 나는 나를 잘 못믿기 때문에 교수가 어떻게 논문 지도를 해줄지 물었을 때, 중간 중간 진행상황을 점검하며 채찍질해달라고 부탁했다. 미니논문 쓸 때도 그렇게 하고나니 진행이 수월했고, 결과물을 제때 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논문 계약서를, 오늘은 프로젝트 플랜과 dissertation statement를 보냈다. 처음엔 지난 1년동안 무뎌진 뇌를 닦고자 계량경제학 노트와 Economic valuation method와 CBA 노트를 읽어보고 그 다음 논문을 준비하려 했는데, 그렇지 않고 바로 논문에 뛰어들기로 했다. 목적없이 전체 노트를 리뷰하는 것보다 중간중간 필요할 때 리뷰하는게 더 집중하기 좋을 것 같아서이다.

이렇게 조금씩 발을 딛고 나니 안개에 휩쌓여 있던 아주아주 큰 괴물같던 녀석이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것 같고 잘 토막을 내 뼈와 살을 발라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프로젝트 플랜을 보내고, midway deliverables는 나중에 업데이트하기로 했는데, 그러려면 세부 프로젝트 플랜이 나와야 할 거라서 우선 관련 논문을 닥치는 대로 읽어보며 본격적인 리서치를 하기로 시작했다. 몇개 논문을 읽어보다보니 빈옥명이라는 East Carolina 대학교 교수님께서 쓰신 연구가 연관성도 높고 정리도 잘 되어있어 읽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외에서 연구를 하며 해외 자료를 찾다가 한국인이 쓴 자료가 나에게 큰 등불이 되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서 소소한 놀라움과 기쁨을 얻었다.

옌스가 오늘 좀 조용하다고, 괜찮냐고 묻는다. 나쁜 스트레스는 아니고, 앞으로 쓸 논문과 향후 진로 방향,  논문 뿐 아니라 덴마크어도 잘 공부해야하고 등등 생각하다 보니 그냥 약간의 긴장감이 돈 것 같다고 답했다. 정말 오랫만에 (거의 1년만에) 진득하게 앉아서 집중해야할 긴 읽을 거리가 생기니 좋은 긴장감이 든다. 주말은 잘 쉬고, 다음주엔 또 다음주의 할 일들을 열심히 해야지.

원래의 일상으로 천천히 복귀하는 중

한국에서 돌아온지도 어느새 보름이 되었다. 방안에서는 옌스가 하나 수면교육하느라 하나의 울음소리가 크게 새어나온다. 어제 건강상담사의 방문 이후 오늘부터 다 흐트러진 수면교육을 다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만 5개월을 지나면서 하나가 서서히 분리불안을 느꼈는데 밤에 처음 재우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중간에 깨면 난리를 치면서 울고 나에게서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탓에 혼자자던 리듬이 다 깨졌었다. 젖 물리는 것과 자는 것은 철저히 분리하라는 것도 그렇고 중간에 깨고 나면 내가 하던 일을 다 중단하고 하나와 같이 자기 시작했는데, 그렇고나니 저녁의 삶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고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게 불가능해졌었다.

한국에 가서도 이러한 일상이 지속되었고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돌발진을 앓으며 고열에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며 입맛 떨어진 애에게 수유를 늘렸는데, 밤중 수유가 늘어나며 낮에 잘 먹던 이유식 양도 줄고 하여간 여러가지가 꼬여있었다.

단호한 수면교육. 쉽지 않았다. 얼마나 울려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장시간 우는 게 트라우마로 남아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어 우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고 어떻게 할 지 결정하기로 했다.

건강상담사는 하나의 정서적인 특성을 비롯해 발달상황을 관찰하고 수면 패턴과 수유에 대한 내 관찰사항을 듣고 나더니, 밤중 수유는 습관인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이건 내가 마음을 먹고 끊으려면 끊을 수 있는 것인데, 꼭 당장 끊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니 내 편할 대로 결정하라 한다. 다만 밤에 많이 먹으면 낮에 별로 안먹으려하니 그 점을 고려하라고 했다. 수면 부족으로 성장에 저해가 된다며 애의 밤중 수유를 꼭 끊으라는 글 등을 보고 마음이 영 불편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밤중 수유는 서서히 줄여보련다.

밤에 악몽을 꾸는 듯 일어나서 우는 것에는 여행으로 인한 중이염 등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흉내낸다했더니 그건 아닌 거 같다고 하고, 그 또한 혼자 스스로를 위로하며 잘 수 있게 해주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애가 새로운 습관에 적응하기까지 14일정도 걸리니 그때까지는 일정한 패턴으로 수면의식을 해주라더라. 14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기간이다. 그리고 아빠가 재우는 것이 조금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여 오늘부터 옌스가 애 잠을 재우는 것으로 한 것이다. 나야 덕분에 7시부터 자유를 누리고 있어 좋지만 방 안에서 20분이 넘도록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영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약 열흘의 적응기간을 거쳐 이제는 하나와 6~7시간을 떨어져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전날 이유식을 준비해두면 오후 4시에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애 밥도 먹이고 놀고 산책도 다니고 하면서 하루를 하나와 함께 보내는 건데, 생각보다 잘 하고 있다. 그 전에 집안 살림과 애 보는 것을 내가 다 하던 것과 달리 자기는 애만 보는 것인데도 힘들어서 그런가, 그러한 일과가 끝나고서도 설겆이며 여러 집안일을 좀 더 꼼꼼히 하고 있다. 자기가 경험해보니 전업주부 하며 애 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나보다. 역시 사람들은 역할도 바꿔보고 해야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법이지.

아기 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옌스는 힘이 들겠지만, 나는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나 좋다. 애 보면서 이것저것 정신없이 처리하던 노동의 일상에 젖어있던 탓에 한 주제에 집중하는 게 좀 힘들었지만 오늘은 다른 날보다 그게 잘 되서 기분도 좋았다.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학교로 통학하자니 비오는 날 조차도 상쾌하고 좋다.

논문 작성할 수 있는 고정 데스크도 신청해서 자리를 배정받았고, 읽기도 시작하고, 뇌를 조금씩 쓰기 시작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 아무래도 아이가 아프면 집에 들어앉아 애도 봐야하고 할테니 여유있는 시작이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빠르게 돌아가는 것인데, 덴마크에선 대부분 생후 1년 이내에 기관에 애를 보내기도 하고 해서 이래저래 내 사정에도 잘 맞다. 오랫동안 영어도 안쓰다 보니 한국에서 옌스 및 친구와 함께 영어할 때 덴마크어가 자꾸 툭툭 튀어나오길래 영어도 퇴화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었다. 그런데 다시금 아예 영어로 대화하는 환경에 돌아가니 그런 것도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엄마로서의 내가 아니라 온전히 나로서 있을 수 있는 환경에 돌아간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12월 첫주까지는 옌스가 육아휴직중이라 둘이서 같이 하나를 보육원에 보낼 수 있다. 그 이후엔 1주간 나 혼자 하나의 적응기간을 지켜보고, 다음엔 나도 완전히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으로 복귀해야지.

30분만에 옌스가 하나를 재우고 나왔다. 엄청 울더니… 앞으로 이렇게 하자, 하나야. 엄마도 이제 저녁엔 엄마의 삶을 찾을게.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