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감기에 걸린 하나 어린이

거의 매일 회사 컴퓨터를 집에 갖고 온다. 일을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애가 아플 경우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서. 그런데 오늘 바삐 나오다가 컴퓨터를 안챙겼다. 집에 다 와서 생각이 났는데, 설마 하나가 아플까 싶었다. 아뿔싸. 정말 아프네. 갑자기 저녁에 열이 오른다.

내일 모레 중요한 발표가 있어서 발표자료 내일 마무리하고 연습해야하는데 타이밍 한번 죽여주는구나. 왜 이런날 컴퓨터를 잊어버렸을까나.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치과예약을 해뒀는데 옌스는 오후 한시에 미룰 수 없는 회의가 있다고 하고 날이 참 공교롭기도 하지. 치과갔다가 아홉시 넘어 사무실 들렀다가 12시 반까지 집에 오는 건 너무 시간 낭비라 오늘 밤에 컴퓨터를 갖고 오기로 했다. 그 덕분에 하나를 재우고 난 뒤 옌스가 저글링 및 달리기를 마치고 들어오자마자 차를 끌고 나가서 컴퓨터와 보고자료를 들고 돌아왔다.

내일은 출근시간에 나가서 진료를 받은 후 근처 카페에서 발표자료 마무리 짓고 연습 좀 하다가 집에 와서 일을 하는 걸로 했다.

하나가 커서 말이 잘 통하니 좋은 점은 내가 열을 재기 위해 엉덩이에 채온계를 쓰겠다고 약을 넣겠다고 설명을 해줄 수 있고 하나도 정확히 이해는 못할지언정 대충은 이해하고 싫어하면서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고열은 아니고 38도 조금 넘는 정도의 열이긴 한데 애가 머리와 목이 아프다면서 양치질 하기 직전부터 잠자리에 들때까지 계속 울어서 해열진통제인 파노딜을 줬다. 그 약을 썼으니 금방 안아파질 거라면서 침대에 누워서 책 읽는 거 들으라고 했더니 울면서도 말은 잘 듣더라. 그리고나서는 맹장염으로 갑자기 배가 아파진 애가 엄마아빠랑 병원에 가서 검사 및 수술하고 퇴원해 친구들과 다시 만나 수술자리를 보여주는 책을 읽어줬는데, 자기에게 감정이 이입이 되는지 울다가도 울음을 그쳐보며 열심히 듣더라.

보육원에 오랫동안 같이 다녀오고 잘 놀던 친구 하나가 있는데 약간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혹 잘 놀다가도 하나를 때리거나 밀고 꼬집고 한 적이 제법 있었다. 하나가 말이 일찍부터 되었는 덕에 그날 있던 일들을 상세히 들어왔고 선생님들을 통해 그 이야기들을 컨펌받아와서 아는 바로도, 내가 직접 본 바로도 그런 일들이 제법 되었다. 애들 놀면서 그렇게 다치고 크는 거지 이렇게 생각은 했었지만 그 빈도가 자꾸 늘어나기도 했고 하나가 그 애가 때린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 슬펐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아이랑 같이 노는 거 재미있냐고 물어보면 또 그렇다고 답을 해서 그러려니 하고 뒀는데 지난주부터 그 아이랑 놀기 싫다고 다른 애들하고만 놀고 싶다 자꾸 그러는 거다. 그런데 오늘 애를 픽업했는데 발에 멍도 들었고 그 아이가 발을 밟고 밀었다는 거다.

그애는 그럴 수 있다. 말이 안통하면 아무래도 자기도 좌절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감정을 폭력적인 형태로 발산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하나는 누가 때려도 자기가 절대 때리는 법이 없는 애라 (보육원 선생님들 이야기도 그렇고 자기는 그냥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외친다고 설명한다. 내가 본 하나가 갑자기 뜬금없이 맞은 상황에서도 그러더라.) 자기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아무런 대응도 없이 친하게 잘 지내라고 하는 것도 의도치 않는 폭력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오늘은 보육원에 둘이 놀 때 그런 폭력적인 상황이 없도록, 또는 그런 상황이 오면 적극적으로 떼어내서 남은 시간 따로 놀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고 요청을 해뒀다.

애가 남을 때리지 않는 건 잘하는 일이다. 원칙에 대한 문제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느 타이밍인가에는 자기 방어에 대한 원칙도 가르치고 격투기 하나 쯤은 가르치려한다. 태권도가 되었든 주짓수가 되었든. 옌스가 주짓수를 했어서 그게 방어기술로는 좋을 거 같다고 하니. 애가 많이 컸고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신경 쓸 일도 많아진다. 수퍼에 갈 때마다 각종 사탕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거 뭐냐고, 사탕이냐고 물어서 그거 사탕은 몸에 안좋아서 안살 거고 그거 우리 거 아니라고 답 하는 일부터 소소한 힘겨루기가 많다. 그래도 참 애가 대화로 설득도 되고 커서 참 좋다.

30개월의 하나

30개월의 하나가 어떤지 기록이 되어 있어야나 나중에 돌아볼 수 있을 거 같다. 일로 가정생활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지만 짬을 내서 기록해본다. 

하나가 한국말과 덴마크어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건 대충 18개월  들어설 때 즈음부터였다. 사물이나 개념에 엄마와 아빠가 다른 표현방식을 쓴다는 것을 알고 그 표현방식에 한국어와 덴마크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덴마크어 어휘와 문장 구성이 한국어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내가 한국어로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덴마크어로 표현한 단어에 대해서 그건 한국어로 뭐냐고 물었을 때 한국어 어휘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묻든 대부분 덴마크어로 답하고 간혹 한국어로만 아는 단어 (예를 들어 맵다와 같이 보육원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나 덴마크어 문장에 섞어쓰는 게 일상이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듣기를 통해 이해하는 수동적 학습만으로는 부족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어휘를 선택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능동적 학습이 필요한데, 그걸 강요하자니 한국어를 싫어하게 될 것 같고 쉽지가 않다. 그나마 요즘 한국어로 이게 뭐냐고 묻는 게 늘어나서 한국어 어휘를 넓히는 기회가 생기는게 다행이다. 덴마크어로 의사소통하는 부분만 따지면 미묘한 뉘앙스도 살려가며 대화하고 있어서 이맘때쯤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거였구나 놀라곤 한다. 단어 열거로 의사소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말다운 말을 긴 문장으로 하는 건지.

16개월인 친구네 애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은 되나 아직 발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하나는 언제 말을 시작했나 봤더니 만 15개월 되었을 때에는 아니오에 해당하는 엄마, 아빠, Hvad er det? (이게 뭐예요?), 하나 (자기 이름), 거북, nej (아니오), hej (안녕), bye 정도 말하고 기타 동물 소리흉내 (멍멍, 미야오, 구구, 꼬꼬 등)을 낼 수 있었다. 만 17개월이 되었을 때는 ja (예)를 사용하면서부터 조금 더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수월해졌다. 두달 사이 어휘가 빠르게 늘어서 할 수 있는 단어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보육원 애들 이름을 다 기억하고 부정확한 발음이나마 애들 이름을 이야기해서 내가 다른 애들 이름 기억하는 것도 쉬워졌다.  보육원에서 또래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였는데, 이중언어 하는 애들 중에 발화가 늦은 애도 있지만 하나처럼 오히려 더 잘 하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더랬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맞는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살려줄 지 고민을해봐야겠다.

하나가 만 두살이 되자마자 발레를 시켰다. 어른과 함께 가서 하는 발레인데 하나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도움이 될 활동 중 하나로 나도 즐길만할 걸 찾다보니 발레가 되었다. 처음엔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발레 수업 내내 노래에 맞춰 뛰려는 애를 잡아 함께하는 활동에 포함시키는 게벅찼다. 단 30분에 불과한 시간인데 말이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 규율에 애를 너무 맞추려다보면 애가 기분이 상해서 발레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애를 마음대로 풀어놓으면 방해가 되니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애를 통제하고 활동에 동참시키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진땀을흘린 날이 많았다. 거기다가 발레 수업이 끝나는 시간 때 즈음이 하나가 피곤해하는 타이밍이어서 안아달라는 하나를 안고 나 혼자 춤을 추느라 힘든 경우도 흔했다.

애가 발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바는 없지만, 발레가는 시간을 고대하고, 보육원에서 다리를 들고 까치발로 다니고 빙글빙글 돌고, 선생님들이 뭐하냐고 물어보면 발레한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하나를 Balletpige (발레소녀)라고 부를 정도기에 좋아하는구나 하고 추정할 뿐이다. 한달 반 정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이번 주말부터 클래스가 시작되었는데, 가는 길에부터 그전에 배운 걸 기억하고 이야기하길래 신기했다. 이제 꽤나 장기 기억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지금은 2-3세 사이 유아반에서 배우고 있는데, 두살 반이되서 그런지, 이번엔 시키는 것도 제법 따라하고 애 쫓아다니느라 고생하는 거없이 30분을 잘 보내고 왔다. 내년에 3세 반에 올라갈 때면 혼자 들여보내도 걱정이 없겠다 확신이 들었다.

페달 없는 자전거는 발을 땅에 대는 시간이 얼마 안되게끔 쌩쌩 뒤로 밀기 시작해서 우리가 뛰어다녀야만 쫓아다닐 수 있게 능숙해졌다. 정글짐에 기어 올라가서 높은 곳의 미끄럼틀을 타고 씽씽 내려오는 것도 능숙해졌고 아빠가 잡아주는 손에 크게 기대지 않은채로 외줄타기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반동을 활용해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까지도. 

어디 가서 크게 맞을 걱정은 하지 않는 게, 간간히 맞기는 하는 것 같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힘있게 팔을 뻗으면서 안된다고, 멈추라고 (Stop! Det må man ikke! Man må ikke slå!) 크게 외칠 줄 알아서 주변 어른의 시선을 쉽게 끌어낸다. 장난감이나 놀이터 시설 등에 대해서도 보육원에서 가르친 순서지키기, 적당히 놀고 양보하기 등을 이해하고 있어서 간혹 어른이 중재해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어졌다. 그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가르쳐서 그런지 빨리 배우더라. 하나가 다른 애를 때리는 경우는 상대가 먼저 때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본 적도 더 어렸을 때나 있었고, 보육원에 물어봐도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상대가 때린 경우에도 안된다 하고 크게 항의하는 거지 맞서 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어려서는 애가 워낙 활동적이고 힘이 좋아서 남들 때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이제는 그건 크게 걱정을 안하고 지낸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있던 일들을 이것저것 신나게 말해주는 편인데 궁금한 일 나중에 보육원가서 물어보면 되서 현황 파악이 쉽다. 친구 Feifei의 세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었는데, 자기는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었다며 시무룩하게 말하길래, 유당제한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그게 맞다고 이야기해주더라. 그리고 다른 애들이 자기들도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겠다고 해서 애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제 생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기 생일이 언젠지 자꾸 묻는다 최근 두어달사이에 애들 생일 잔치가 여럿 있었는데, 자기도 생일 주인공이 되고 싶었나보다. 하나 생일 땐 나도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텐데 쩝. 그날은 대충 휴가 내고 새벽부터 준비를 하던가 해야할 것 같다. 

요즘은 수줍음을 조금 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낯선 남자에게 수줍음을 탄다. 인도에서 낯선 남자가 마주지나가면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뒤에 숨는다던가, 유모차에서 얼굴을 돌린다던가 한다. 그리고 나에게 Jeg er lidt genert. (저 조금 수줍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자는 매우 좋아해서 낯선 할머니나 아줌마 할 것 없이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냥 Hej?!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외치며 인사한다. 이 시기에 흔히 있는 거라고 하더니 수줍음의 수자도 모를 것 같던 하나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지난달에 친구가 와서 자고 가면서 자기도 남에 집에 가서 자고 싶기도 하고 그런가보다. 나는 걔네 집에서 언제 자냐고 간간히 묻는다. 우리 집에서 그 친구가 자던 날, 내가 책을 다 읽고 자라고 한 뒤 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옆에서 자는 척 했다. 그러자 지들끼리 나를 사이에 둔 두 침대에서 서서 대화를 나눈다. 

하나: 네 엄마는 어디에 가셨니?” 

친구: “우리 엄마는 일하러 가셨어.” (집들이 파티 가느라 우리집에 애를 맡긴 거지만 애들은 일하러 간 걸로 오해했다.) 

하나: “너희 엄마는 휴가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그러면 Lagkagehuset (체인점 빵집)”에 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히히. 그거 나야. 내가 오늘 lagkagehuset에 다녀왔어” 

이날 하나는 우리와 그 빵집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그걸로 농담까지 할 줄이야. 애들의 대화를 이렇게 들어볼 날이 없었는데 애들이 벌써 말장난도 치면서 노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미 가까이 잘 노는 친구가 생긴 것도 놀랐고. 

내가 선생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특정 친구와 놀기보다는 재미있는 걸 하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서서히 친한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툭하면 듣는 이름이 대충 열명 안으로 좁혀진 것만 봐도 그렇고. 

밤에는 옌스와 번갈아가며 책 읽어주고 재우는데, 간혹 주인공이 우는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티비에서 주인공이 울어도 같이 운다. 공감능력이 좋은 아이라고 보육원에서 들었는데 실제 우리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내가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인지라 그런 걸 볼 때 좋다 싶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살까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걸 보답하기 위해 부모가 그 나머지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은 적이 있다. 그 삼 년의 시간이 벌써 거의 다 흘렀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쁘고 사랑스러운 딸이겠지만 이 첫 삼 년의 시간은 참으로 기적같은 시간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 작은 핏덩이에서 이렇게 아이같은 아이로 성장한 기적.

두살 반의 하나

7월 첫주부터 3주간 휴가 후 사무실로 돌아오니 사무실 반 이상이 비어있다. 필요하지만 급한 일에 치여 뒤로 밀려나 있던 일을 처리하기에 좋은 기간이다. 한국에서의 휴가를 생각해보면 휴가 가서도 이메일을 완전히 접어둘 수 없고 다녀오면 자잘한 메일이 엄청 쌓여 있고, 일의 처리 기한이 휴가와 상관없이정해져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이메일을 한번도 열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이메일에 뭐가 들어왔는지를 모를 때의 불안함을 해결하기 위해 간간히 메일을 확인했으니까.

3주라는 기간이 꽤 길어서 그런가? 휴가 전과 후의 하나가 부쩍 다르게 느껴진다. 두돌이 지난 이후로 이미 하루하루 다르다 생각했지만 하나는 세살로 향하는 길의 반에 거의 다다라서 그런지 요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게 느껴진다. 덴마크어로는 복잡한 문형도 구사하고 발음도 또렷하고, 우리 식으로 ”~하잖아”에 해당하는 뉘앙스를 주는 단어도 여기저기 넣어서 테스트해보고 놀랍울 따름이다. Hvad laver du, mor? (엄마, 뭐하세요?)를 자주 물어보고 그 답에 Hvorfor det? (왜요?)를 끊임없이 붙인다.

지난 주말 스웨덴 당일치기 여행을 갔을 때 하나와 잠시 통화를 했는데, 나보고 뭐하냐고 묻길래 커피 마시면서 루바브 케이크를 먹는다고 답을 했다. 그러자 왜 그러냐는 질문의 연속. 맛이 있어서 먹어요. – 왜요? – 여름의 신선한 맛이니까요. – 왜요? – 여름에만 나는 거니까요. – 왜요? – 다른 날씨에는 너무 추워서 못자라요. – 흐음… 다행히 이 질문 놀이는 여기서 끝났다. 아마 자기가 못알아 들으면 멈추는 거 같다.

그에 비해 한국어 발음은 외국인이 한국어하는 발음이다. 주세요를 주시요 라고 발음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이북 발음 같기도 하고. 이거 한국어로는 뭐예요? 하고 물어보면 한국어 단어를 이야기해주긴 하는데 애초 어휘력 차이도 있고 한국어 단어는 헷갈리는 것도 많은 것 같다.

하나는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여기는 한국보다 애들 몸을 덜 사리게 한다. 다치고 흉지고 그런 것도 큰 사고가 아닌 이상 더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기준에는 나이에 비해 조금 위험한 일들을 하게끔 놔둔다. 하나는 몸을 잘 쓰는 편이라 그렇다고 했지만 13개월 때 보육원에 하나를 데릴러 가면 혼자 미끄럼틀을 올라가 타고 내려오곤 했었다. 작은 언덕위에 언덕을 따라 미끄럼틀이 설치되어 있어 옆으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을 구조이긴 했지만 나름 1미터가 넘는 높이의 제대로 된 미끄럼틀이었다. 솔직히 엄청 놀랐고, 혹시 선생님들이 실수로 하나를 방치해둔 건가 싶었지만, 짐짓 놀라지 않은냥, ”하나가 혼자서도 미끄럼틀을 타네요!”라고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저렇게 앉아서도 타고 배로도 타고 엄청 오래 타고 놀고 미끄럼틀 좋아해요. 혼자 타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서 우리 시야 안에서 혼자 놀게 뒀어요.”라고 답을 하는데, 나에겐 사실 엄청 놀라운 일이었다. 두돌 반인 지금, 내 키가 넘는 미끄럼틀에혼자 잘 기어올라가고 (물론 떨어질 리스크라는 건 항상 존재하니 바로 옆에서 잡을 준비하고 대기하긴 하지만) 점프하고 뛰고 페달 없이 발로 미는 두발자전거도 거침없이 밀고 타기 시작했다.

퍼즐도 좋아하는데 벌써 30개짜리 복잡한 퍼즐도 진득하게 앉아서 하기도 한다.

그 밖에 가게놀이도 좋아하는데, 돈을 본 일이 없으니 돈 개념은 모르고 뭐 살거냐 묻고 달라하는 물건을 주는 척 하는 걸 반복한다. 그래서 그런지 물건마다 누가 사준 건지 묻고 기억하곤 한다. 이거 누구누구가 사준거예요? 엄마가 사준거예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시부모님이랑 시누이네가 사준 거, 나나 옌스가 사다준 게 대부분일 수밖에 없는 환경. 한국 가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이것 저것 재미있는 것 좀 사주셔야겠다. 그래야 그거 갖고 놀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자주 떠올릴테니.

요즘 하루에 한 두번 씩 애랑 씨름하는 일이 생긴다. 그런 일이 있고나면 동료와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하다보니 애 없는 부모들은 애 키우면 힘든 일만 있나 하는 생각을 할 만도 하다 싶다. 확실히 애 발달이 계단 오르듯 비선형적으로 점프한다 느껴지는 시기에 부쩍 더 씨름할 일이생기는것 같다. 보육원에 데려다주기 전 옷 갈아 입고, 양치질 하는 타이밍에서 그런 경우가 많고 (오전은 주로 옌스 담당) 보육원에서 데리고 집에 오는 길에 그런 경우가 또 많다 (이건 주로 내 담당). 한번 떼를 쓰면 정말 악을 쓰고 울고 땅에 드러눕는다. 얼굴에 실핏줄이 터져서 주근깨처럼 보이는 피멍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그 힘은 어디서 나온데?

다행히 이렇게 격하게 떼 쓰는 시기가 길지는 않은데 며칠 그러다 말고 또 며칠 그러다 말고 그런다. 세살을 정점으로 조금씩 좋아진다고 하다 다섯살 정도 대면 대부분의 아이가 이런 시기에 안녕을 고한다 하니 기다려봐야지. 매일 그렇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것 같다. 예전 하나 신생아 시절에 우리 아래층 앞집에서 애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울면서 현관 앞에서 버티면 그냥 엄마 혼자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는 일이 거의 매일 같이 있었는데, 지금 하나가 대충 그 시기인 것 같다. 그 아이는 좀 심한 편이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조금 그 엄마가 이해된다. 아마 싱글맘에 애가 둘이라 더 정신적으로 지쳐있었을 듯 하다.

이 밖에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순간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애가 제때 움직여주지 않아 스트레스 받는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하루에 한두번 정도 받는 걸 제외하면 애랑 보내는 순간은 참 좋다. 역시 지금도 생각은 첫 1년이, 그다음은 그 다음 1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힘 쓸 일이 줄어들고 애가 놀이의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애랑 있는 시간이 참 좋다.  그래서 이번 휴가가 조금 더 특별했었다.

세살이 되면 어떨까? 그리고 네살이 되면? 생각만 해도 설레고 기대가 된다.

29개월 하나의 성공적 플레이데이트

하나가 오늘 처음으로 다른 친구와 제대로 같이 놀았다. 왜 부모들이 친구니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플레이데이트를 하려는지 제대로 이해했다. 잘 맞는 아이들을 같이 놀리면 부모들이 애 보는 게 얼마나 쉬워지던지.

옌스의 동료인 피에르의 가족 세명을 만난 건 작년 겨울 옌스 상사네 집 파티에서였는데, 하나보다 불과 2-3주 빨리 태어난 리암이를 둔 부모였는데다가 덴마크-스웨덴 이중언어 가정이라는 데에서 우리와 맞는 부분이 많았다. 옌스와 같이 맡은 프로젝트가 새로 생겨 부쩍 그에 대해 듣게 되는 일이 많았는데, 서로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제법 나누다보니 언제 한번 만나서 놀자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직장동료와 친구가 되는 건 덴마크에서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도 듣지만, 또 옌스를 보자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게 옌스 직장 동료랑 가족끼리 밖에서 따로 보는 일이 제법 된다.)

서로간의 주말 일정으로 조율하다보니 6월초에 6월말 약속을 잡았고, 하도 오래되서 캘린더의 리마인더만이 기억을 나게 해줄 정도로 잊을때 즈음 되서 만나게 되었다. 큰 기대도 없었던 게 여지껏 내가 다른 가족들과 만나 한 플레이데이트가 나쁘진 않긴 했어도 신나서 다음을 고대하게 할 만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른들 모임에 애들이 낀 격이거나 애들 만남에 어른이 낀 격인 적만 있었고, 양쪽이 딱 맞아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아다리가 딱딱 맞는다라는 말처럼 모든 게 쏙쏙 들어맞았다.

20분정도 운전해서 가야하는 외곽에 있는 곳이었는데 근처에 덴마크에서 가장 큰 실내놀이공원 있다고 들었다. 세상에. 올해 여름 중 가장 더운 날 중 하루였던 이 날, 사람들은 다 해변으로 갔든가, 휴가 시즌 시작이라고 해외로 나갔든가 간에 우리가 이 놀이공원을 전세낸 것 같았다. 어른들도 애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었던 넓은 공간이었는데, 리암이에게는 자주 가봤던 곳이었고, 하나는 워낙에 겁이 없는 애라 둘이서 함께 놀기에 놀 수 있는 수준이 비슷했던 것 같다.

이 겁나는 부녀. 저기까지 올라가서 미끄럼틀로 내려왔다. ㅠㅠ
이제 셀카 찍으면 장난도 치고 여러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아가씨

처음 리암이네 집에서 만나서 아이스바 하나씩 빨아먹을 때 까지만해도 리암이가 너무 낯을 가렸는데, 내가 자기 장난감을 보고 너무 신기해하고 좋아하고, 하나도 옆에서 같이 붙어서 호감을 표하자 어색한 듯 조금 어울렸다. 그런데 놀이공원에서 조금 놀더니 둘이 엄청 가까워졌다. 집에 와서는 둘이 정원에서 얼마나 같이 놀던지… 오후 두시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같이 있었으니 무려 일곱시간이나 같이 보냈다. 그 중 어른들이 놀이공원에서 열심히 놀아준 (상처가 날 정도로 열심히 놀아줬다.) 다섯시 반까지 세시간 반을 제외하면 정말 잘 놀아줬다.

장난감을 잘 빌려주던 어른스러운 리암이

둘이 말을 할 수 있는 수준도 비슷했고 (이중언어 아이들 말이 늦다는 통설이 꼭 맞지 않는다는 걸 주변에서 놀랍게도 많이 보고 있다.) 둘이 성격이 잘 맞았는지 수다도 많이 떨고, 한번 어른들이 놀이 순서를 중재해준 거 외에는 다툼 한번도 없었다. 끝까지 둘이 너무 사이좋게 놀고 헤어질 때도 여러번 포옹을 나누었다. 잘가라고, 잘 있으라고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까지도 얼마나 이쁘던지.

역시 장난감으로 어색함을 풀어야지.

피에르나 그의 아내인 스티네 모두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다. 음식도 입에 꼭 맞았고,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 맛있고 섬세하게 배려된 시간을 마련해줘서 황송할 정도의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동안 마음도 참 편했고. 다음에 우리가 초대할 땐 이처럼 좋은 시간을 만들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린 어디를 데리고 가야하나?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하나? 생각을 좀 많이 해봐야겠다.

28개월 하나

특별히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좋은 게 아니면 하나는 밖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우리를 평균보다 힘들게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 자리에 각자 애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카페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나에게 와서 말을 걸긴 했어도 크게 힘들게 하지 않았다. 아빠랑 주말마다 가는 카페에서도 비슷하게 코너에 아이들 노는 코너가 있어서 그런지 왔다갔다는 해도 같이 먹기에 너무 힘든 아이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기다린다, 순서를 지킨다는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해서, “우리 이제 기다리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해주면 “Hannah venter! (하나는 기다려요)”를 조잘거린다. 수퍼마켓에서 자기 먹고 싶은 거 사달라고 해서 집어들고 계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그때도 “Vi skal betale først! (우리 계산부터 해야해요)”를 외치며 기다린다. 계산대에서 계산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라고 채근을 하기 시작하지만. 또 호기심 가는 물건을 만져보다가도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고 말하면 “Det er ikke vores!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며 내려놓을 줄 안다.

간식은 중간에 주더라도 식사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만 하고, 안먹겠다 하면 안먹어도 된다 하고 중간에 끝났으면 식탁을 떠나도 좋다고 한다. 굳이 먹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간혹 안먹는다 하면 한입정도 먹어보겠냐고 물어보는데 서서 한 입 먹어보고 나면 오래지 않아 우리가 앉은 자리에 와서 같이 먹으니 딱히 식사시간에 자리에 앉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굳이 와서 한 두입만 먹고 일어나는 걸로는 뭐라 하지 않는다. 처음엔 음식 남기는 거라든가 애써 만들었는데 안먹는 거라든가 하는 게 마음에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되었는데,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중에 배고프다고 따로 차려주고 하는 건 없으니 내가 더 육체적으로 힘들 건 없으니까. 안먹는 건 배가 안고파서 그러는 걸 것이라 생각하고 넘기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다. 애가 딱히 작은 것도 아니고, 보육원에서 애들하고 같이 먹으면 잘 먹는다니까 어느 때엔가는 잘 먹게 되겠지. 나도 만으로 9살까지는 진짜 잘 안먹어 작고 빼빼 마른 아이었으니까.

놀 때 순서지켜 놀라고 옆에서 상기시켜주면 순서 잘 지켜 놀고, 우리 것이 아니다 하면 금방 내려놓고, 우는 친구 있으면 안아줄 줄 알고, 인사하고 자리 뜨자 하면 씩씩하게 인사 잘 하고.

간혹 자기가 혼자 하려는 걸 우리가 도와주는 바람에 뒤로 넘어가 울고 난리법석을 떠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도 대부분 그 포인트를 아니까 그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일도 많이 줄었다. 이제 말로 많은 걸 표현할 줄 알고.

넘어지고 해도 잘 안우는 편이고. 높은 데 기어올라가고 뛰어내리고 스릴 넘치는 일들을 엄청 좋아한다. 조심도 하지만 조심보다는 스릴에 무게가 더 실린 듯 하다. 이처럼 힘이 넘쳐 우리가 옆에서 그런 활동을 지지해주다보면 육체적으로는 힘들다. 하지만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예민하지 않은 아이다.

기질 탓이 가장 크겠지만 보육원이나 집에서 많지 않은 대원칙만 지키면 대부분은 자유롭게 놔두는 편이라 자기도 그 규칙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다른 애들 사이에서 같이 놀아야하는 환경에 두었을 때 노는 걸 보면 잘 아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행동하는게 제법 다르다. 아예 공공장소에서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없이 놀면 그건 다른데 내가 만난 친구의 애들과 같이 논다던가 하면 조금 조용하게 관찰을 많이 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편이다. 곧잘 놀기도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조잘조잘하는 게 없어진다.

이제 만 28개월을 채웠는데 정말 많이 컸구나 싶다. 이제는 작은 인간이 되어서 부모와 여러 형태로 상호작용도 하고 대화도 제법 하고. 말이 많이 느니까 이렇게 수월해질 수가 없다. 이젠 예전에 아주 힘들었던 기억은 힘들었던 사실만 기억나지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다. 우리야 둘은 안낳을 거지만 이래서 둘 낳는구나 싶기도 하고. 젊었다면, 내가 다른 나라에 이주해 새 커리어를 시작한 것만 아니었다면 애 하나 더 낳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도 저도 아니니 말이다.

시부모님도 나이가 많이 들어가시고 멀리 사시는데다가 우리 부모님은 이역만리 떨어져 계시니 더욱이 기댈 데도 마땅하지 않고. 출산부터 지금까지 급하게 애가 아픈데 휴가를 내기 어려워 하루 이틀씩 시부모님 손을 벌린 거 아니면 우리끼리 다 해야만 했기에 하나 더는 못하겠다. 애야 우리 애지 시부모님이나 부모님 애들이 아니니 못맡아주신다고 서운할 일도 아니고. 출산 이후 애 맡기고 옌스랑 단 둘이 밖에서 저녁식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도 그립고. 하나 더 생기면 그런 게 더 어려워질텐데… 하나로 부모가 되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 이를 두배로 굳이 늘리며 고난도 두배로 늘릴 생각은 잘 안드는 게 아마 나이 탓일 거라 괜한 나이 핑계를 대본다.

앞으로 하나랑 같이 해나갈 여러가지 일이나 기대해보며 한 명만 잘 키워보련다.

어른에게도 엄청 높은 미끄럼틀을 겁없이 타는 하나
뒤에 자기 키의 두배가 되는 장에 (기어 올라가도록 설계) 기어 올라가 뛰어내리기를 다섯번도 넘게 반복했다. 잡아주고 뛰어내리기 도와주느라 나도 힘이 들더라.
그네도 요상하게 타야하고. 재미있게 노는 법은 역시 애들이 잘 안다니까.

자녀을 이중언어로 키우는 어려움

애를 이중언어로 키우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아예 옌스와 한국어로도 대화를 하지만 그게 주가 아니고 우리간에 주언어가 덴마크어이다 보니 하나에게 따로 떼어서 한국어로 바꿔 말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 말에는 한 단어로 표현되는 게 덴마크어로는 두 단어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어서 그 차이를 구분해야 할 때 우리말을 쓰기가 어렵다. 그런 덴마크 단어를 한국어 문장에 섞어서 쓰다보면 내 뇌도 혼란스러워서 아예 덴마크어 문장을 말할 때가 있다. 때로는 하나에게 급히 상황을 설명하고 정확히 이해시켜야 하는 때가 있는데 – 예를 들어 위험한 상황 – 하나의 덴마크어 어휘가 한국어의 그것보다 압도적이어서 덴마크어로 설명하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있다. 이러다 저러다 보면 간혹 덴마크어로 아이와 대화하는 순간이 생긴다.

한국어를 꾸준히 가르치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주변의 인풋이 없이 순수히 나에게서 나오는 인풋만으로 덴마크어환경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게 아이의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주변에서 심어주는 맥락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도 다 힘들다.

직장생활을 하고 주말엔 밀린 집안일과 함께 부족했던 가족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른 사람과 만날 시간이 많지 않다. 또 시댁식구와 각자의 친구와 하나의 보육원 친구와 관련된 사람 등과의 일정을 잡으면 한국어 환경에 하나를 노출시킬 시간도 극히 적다. 한국사람이 많은 환경도 아니고, 또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된다는 것도 아니고. 2세가 한국말을 못하는 일이 많은 걸 이제 잘 이해하겠다.

애 한국어 교육을 노력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현실적 제약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을 갖고 죄의식 같은 것도 갖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사는 거지.

나도 여기서 살기 위해 한국어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살려고 하다보니 더욱 그런거 같다…

하나의 화해

아직도 간혹 밤에 이유 모르게 하나가 거세게 울며 엄마를 찾는 날이 있다. 흔하진 않지만 간혹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다. 18개월 이후 그런 게 심했던 시기가 있긴 했지만 빈도는 줄어들었다. 주로 엄마를 거세게 찾아서 옌스가 달래기 어렵고, 내가 달랜다 해도 우선은 울어내서 자기가 감정을 한템포 추스를 때까진 건드리면 안된다. 초반엔 달래본다고 안아도 봤는데 오히려 더 애의 감정폭발만 자극하고 말았다.

우선 건드리지 말고 옆에서 조금 달래주다가 하나가 저리 가라고 Gå væk! Lad være!를 외치면 (진짜 속된 말로 지랄한다는 말이 딱 맞을 상태로) 매트리스 깔고 누워서 자라고 달래는 말만 반복해준다. 그러고 자기가 감정을 추스르고 꾹꾹 소리내며 자는 가 싶으면 반드시 한번 또 일어나 서럽게 소리높여 운다. 아마 엄마랑 화해를 꼭 해야하는 거 같다. 이때는 안아달라고 하는 거 보면 말이다. 좀 안아주고 엄마는 하나 사랑한다 그런 말 나누고 다시 토닥여주면 쌓인 울움으로 여전히 끅끅하며 잠든다. 그리고 두어번 깨어나 짧게 소리높여 울고 달래주는 걸 반복하며 잔다. 이런 날은 나는 제대로 자긴 어려운 게 잠이 토막나기 때문이다.

다른 것보다 재미있는 건 그 화해의 프로세스이다. 이 나이의 아이도, 아니 이미 18개월부터 엄마와의 화해가 (나야 감정 상한게 없으니 하나 혼자만의 화해이긴 하지만) 필요하다는 것이 놀랍다. 내가 너무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과소평가를 해온 것 같다. 이렇게 놀라운 존재인데 말이다.

요즘은 why not에 해당하는 말에 꽂혔다. 안된다는 말에 대한 답이 아니라 하나의 웃긴 행동에 우리가 웃겨서 그걸 왜 그렇게 했냐고 묻는 질문에 하는 답으로 말이다. 내 긴 치마를 입는 모숨이 너무 웃겨서 물어보니 Hvorfor ikke? 이런다. 얼마나 웃겼는지.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우리를 더욱 웃게 만들련지 이 장난꾸러기. 🙂

3월 셋째주 기록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옌스와 소파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서 쉬고 있다. 요즘 일하면서 출퇴근 하면서 한국 노래를 많이 듣고 있다. 노래의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라든가 가사를 외우는 노래라든가 하는 게 별로 없는 탓에 그냥 그때 그때 떠오르는 장르의 노래를 듣는게 일상인데, 요즘은 어쩌다 god 노래를 듣게 된 이후로 한국 노래를 듣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20대엔 별로 좋은 지 몰랐는데 30대가 되면서 그 맛이 참 느껴지고 좋아졌다. 어찌나 이렇게 감미롭고 구슬픈지. K-pop 말고 다른 한국 노래는 없냐던 옌스도 김광석 노래는 마음에 든다고 한다. 밥딜런과 닐영 등의 가수를 좋아하는 옌스에게 김광석 노래는 나쁘지 않은 초이스일 거라 생각을 했는데 역시…

오늘 차를 인도받았다. 직불카드로 이렇게 큰 금액을 결제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결제를 할 수 있었다. 딜러도 괜찮다고 했고 은행 홈페이지에도 잔고내 결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또 사람 마음이 불안하려면 여러가지로 불안하니까. 매연은 싫다는 옌스와 전기자동차의 승차감을 좋아하는 내가 의기투합하여 고른 건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코나 전기자동차였다. 한번 충전에 500킬로미터를 뛸 수 있는 차는 인기가 너무 좋아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300킬로미터 차량에서 고르면 재고로 이미 있는 건 14일 안에 받을 수 있고 아니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했다. 우리는 재고에서 고르겠다 했더니 흰색, 빨간색, 애시드옐로우 색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애시드옐로우 색으로 골랐다. 흰색은 지루하고, 빨간색은 우리 취향이 아니고, 애시드옐로우색은 옌스가 좋아하는 밝은 연두색과도 맡닿아 있어서 쉽게 골랐다. 6개월 기다리는 건 우리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었으니까.

Acid yellow KONA electric

차값은 옌스가 냈으니 보험료는 내가 내라 해서 보험료는 내가 내기로 했다. 보험도 현대가 노르웨이 보험사랑 제휴해서 하는 것으로 골랐다. 옌스가 내 한국사랑을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 참 좋다. 핸드폰 바꿀 때도 중국폰이 조금 더 싸서 그걸로 바꿀까 하면, 한국거 사라고 밀어주거나, 이번 자동차 살 때도 가급적이면 한국차 사라고 하는 것 말이다. 일본차는 사지 말라고 말하는 센스(?)까지 겸비하다니. 😉

하나는 엄청 잘 크고 있다. 모토릭 부분에서도 언어발달에서도 자기 나이보다 훨씬 빠른 발달을 보이고 있고 주변을 잘 챙기는 성격이란다. 덴마크어가 빠르게 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한국어 사용은 매우 자제하더니 요즘 갑자기 한국어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애를 낳기 전과 애가 돌이 되기 전엔 꼭 한국어로만 말할 거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과 내가 뻔히 덴마크어로 소통하는 게 보이는데 덴마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내 한국어 질문에 하나가 덴마크어로 답을 하면 맞다고 하면서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 반복해 주고, 하나가 질문을 덴마크어로 하면 내가 그걸 또 한국어로 확인해준 후 한국어로 답을 해준다. 한국어로는 하나가 뜻을 모르는 단어의 경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한번 해주고 한국어로 세번 쯤 반복해 답을 해주는데 내가 하는 게 맞는 지 알 방법은 없지만 그냥 밀고 나갈 뿐이다.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 꾸준히 해봐야지.

고집도 성깔도 있지만 엄마가 단호하게 굴 때는 받아들일 줄도 알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울만큼 울고 나면 툭툭 털고 일어날 줄도 아는 쿨한 아가씨다. 발레춤 추는 걸 좋아해서 주말에 밖에 나갈 준비하면 발레춤추러 가냐고 하고 머리 빗으면 엉킨 머리 푸느라 땡기는 것 싫어하면서도 자기 전에는 꼭 머리 빗어달라고 하며 등을 내어주는 귀여운 아가씨다. 보육원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몸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 정말 잘 아는 작은 장난꾸러기지만 친구가 울면 가서 안아줄 줄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찍어가며 티비 프로그램을 골라 보지만 막상 조금만 무서운 게 나오면 엄마아빠를 불러 끌어안고 보는 겁도 있는 아가씨.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모두 섞어 갖고 태어난 하나. 우리에겐 너무나 축복같고 감사한 세상에서 가장 이쁜 아이이다. 다른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 사진을 열어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이쁘고 총명하냐며 탄복하는 팔불출이다. 다들 지금이 제일 이쁠 때라 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가보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단계는 돌을 시점으로 지난 거 같고 아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시기는 안온 것 같고 말이다. 즐겨야지. 머리와 가슴에 이 시기를 아로새기듯 기억해야겠다.

TV에 푹 빠진 하나

나는 이제 수습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얼마전 상사와 평가 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 1-2주동안 덴마크어로 일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건지 걱정하면서 혹시 잘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말하니, 절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라면서 지금 해당 경제분석 프로젝트 너무나 순항하고 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냐면서 놀라더라. 나도 지금은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나도 이걸 할 수 있음도 알고, 덴마크어로 보고서 쓰고 발표하고 이런 일련의 것이 다 가능함을 알기에 그런 걱정은 안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시간이 약이라고, 아직 점심시간 대화는 챌린징하지만 일 면에서는 다행히 잘 굴러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미래 상하수도 요금에 꽤나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기업, 이익단체 뿐 아니라 우리 경영진도 관심을 지대하게 갖고 있다. 경영진과의 미팅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보고의 비중이 늘어나고 하면서 내 이름도 더이상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고 기억해주게 되었으니 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최소한 잘릴 일이 없을 거란 생각과 함께 조직도 나의 경험을 염가에 쓰고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조직이나 나나 윈윈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발도 이제는 많이 나아져서 어제부로 목발은 졸업했다. 아직 절뚝거리며 걷고 통증과 함께 운동반경이 꽤 제한되어 있지만 천천히 집중해서 조심스레 걸을 땐 절뚝거리는 걸 거의 없앨 수 있을 정도이니 완전 감동이다. 삐면 전치 2주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2주정도면 그래도 심한 건 없어지니 말이다.

내일은 시부모님을 뵈러 보언홀름에 갈 거라 대충 가방을 쌌는데 하룻밤만 자고 올 거라 짐이 많지 않아 마무리는 내일 지으면 될 것 같다. 10시 비행기니 서둘러 나가야 하긴 하지만서도 하나 짐은 하나 자는 동안 쌀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나가 얼마나 좋아할런지.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방문은 가을로 미뤄두고 지금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방문으로 족해야지. 덕분에 우리도 코펜하겐을 잠시나마 벗어나보고. 저녁식사 준비도 손에서 놓고 시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 잘 먹고 잘 쉬다 와야지. 다행히 날씨도 나쁘지 않을 거 같으니 말이다. 이제 가서 자야지.

하나는 내 선생님

하나에게 이것저것 혼자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나름 내가 하는 말에 대답도 하고 제대로된 대화는 아닐지언정 내가 하는 이야기에 하나가 나름 반응해주면서 혼자의 이야기는 대화의 모습을 띈다. 

기차를 타면 창밖에 보이는 풍경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을 해주는데, 하나가 아는 단어를 섞어 말해주는 게 보통이다. “밖에 나무가 많이 서있죠? 그런데 날이 추워지면서 잎이 많이 떨어져서 앙상해졌어요. 남은 잎도 누렇게 색이 바뀌었죠? 왜 그렇죠? 그건 나무가 추운 겨울 얼어죽지 않고 생존을 하기 위해 올 해 할 일을 다한 나뭇잎에 남아있는 영양분과 수분을 최대한 거두고 떨어뜨리는 거예요. 그러면 겨우내내 준비해둔 싹눈이 추위가 끝날때쯤 잎을 틔우면서 내년에 다시 초록 나무가 되는 거예요. 삶은 원래 그래요. 크기 위해선 나를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게 어제 밖에 나서는 길에 하나에게 해 준 이야기인데, 오랫동안 삶이 바빠서 이런 저런 생각을 못하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았다는 걸 이 이야기를 하다가 느꼈다. 여유가 있을 땐 주변도 돌아보고 사색도 했는데, 한동안 정말 그냥 살았구나 싶었다.

하나 덕에 잊었던 생각들을 다시금 꺼내보게 된다. 그리고 나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금 중요한 것들을 되새기고 말이다. 애가 최고의 스승이라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보육원 학부모 면담

학부모 면담을 다녀왔다. 옌스가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새벽같이 집을 나선 탓에 하나를 보육원에 내가 보내고 바로 이어 면담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하나의 발달에 대한 두페이지짜리 리포트를 준비해두고 있었고, 우리와 선생님의 설문조사에 의거해 외부 컨설팅기관에서 분석한 내용을 도표로 만들어 선생님과 우리의 아이의 발달에 대한 인지상황을 비교해보았다. 우리보다 하나의 발달에 선생님이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몇가지를 제외하면 아이의 발달에 대해서 양측의 견해가 일치했다. 애들이 집과 보육기관에서 큰 편차를 보이지 않는 건 좋은 일이라고 했다. 

하나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잘 자라고 있었다. 사회성, 신체적 발달 (대근육, 소근육), 정서적 발달, 사회규범에 대한 적응 등 다방면에서 기대 이상의 발달을 보이고 있었다. 독특한 걸로는 신체적 접촉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손 잡는 건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제일 탁월한 능력은 언어능력이라고 했는데, 이건 그닥 놀랍지 않았다. 보육원에서도 다른 큰 애들보다 언어능력이 뛰어나다고 대단하다는 말을 거의 매일 듣고 있었는데다가 집에서 매일매일 놀라고 있었으니까. 꽤나 독립적인 아이이지만 간간히 도움을 청하는 걸 보고 좀 더 독립적이 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하나 했는데, 집에서보다 보육원에서는 훨씬 독립적인데다가 오히려 도움을 청하는 상황을 판단해서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발달단계상에서 후에 나타나는 일이라고 했다. 집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라고 했다. 이미 보육원에서 충분히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자기가 의지하고 편히 기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며. 그런 부분도 있구나 싶었다.  

앞으로 또 다른 힘듦이 있을 수 있겠지만 처음 1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육아휴직도 있는 거겠지만. 요즘은 힘든 것보다는 매일매일이 놀라움인 것 같다.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새로운 능력을 마주하는 놀라움. 

오늘 친구네 집에 가서 7개월 근처의 아이들을 보며 놀다 왔는데 그때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큼 지금과 그때는 너무 다르다. 지금의 생각으로 돌아보면 이렇게 빨리 자랄 줄 알았으면 덜 힘들었을 것 같다. 이미 익히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걸 내 시간 감각으로 예상하기엔 경험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그게 끝나면 곧 두돌이 될텐데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지. 내가 자는 애를 유모차에 끌고 미팅에 가려 나타났던 날,  지도교수는 세살 반만 되면 정말 다 키운 거라면서 그 다음엔 어휘의 차이일 뿐이지 거의 어른과 대화하듯 대화가 된다고 했는데 진짜 그럴 것 같다. 너무 빨리 자라지 마라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이 순간을 하나하나 내 마음에 아로새기듯이 기억을 하며 키우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그 시간이 새록새록 내 기억속에서 살아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