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기 세례식 다녀온 날

우리 아파트 동에 정신질환이 있는 이웃이 있는데, 요즘 좀 안좋은 시기인지 밤에 자주 소리를 지르는데 마침 금요일 밤은 12시부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해서 2시 반에 앰뷸런스가 데리고 가기까지 정말 동네가 떠나가는 줄 알았다. 요즘 더워서 창문을 활짝 열지 않고는 잘 수가 없는데, 하여간 이날은 이래저래 잘 수가 없었다. 하나 방은 우리와 반대편 쪽에 있어서 이 소리에서 자유로웠다는게 다행이었는데, 하나가 5시에 깨면서 내가 애를 보다보니 거의 좀비상태가 되었다. 그바람에 오전에 잠깐 하나와 함께 깜빡 잠에 들어버렸더니 아뿔싸. 9시 40분까지 자버렸네. 친구네 아기 세례식이 있어서 11시까지 가야하는데… 난리가 나게 준비를 해서 11시 2분전에 간신히 도착했다. 하마터면 선물도 두고 갈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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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른 의자를 제법 꽉 채운다. 이번 여름 엄청 탔네.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까매진 하나. 🙂 5분도 못있다가 자꾸 쫑알대서 옌스와 함께 밖으로 내보냈다. 

어찌나 준비를 잘했던지. 결혼식도 그렇고 세례식도 그렇고, 준비를 정말 잘 했더라. 고생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동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아파트 단지에 있는 주민 공동 운영시설을 빌려서 파티를 준비했다. 점심 부페부터 오후 티타임까지. 바다에 붙은 아파트라 이 시설에 바다수영을 할 수 있게 하도록 데크며 실내 공간이 깨끗하게 되어 있는데, 손님이 쉽게 알아보라고 입구에는 레드카펫까지 깔아놓았다. 대단하네! 주인공인 아기는 세례식 내내 힘들었을텐데 막판에 오르간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울었던 거 빼고는 울지도 않고 대견했다. 옷도 낯선 세례식복이라 불편하고 더웠을텐데. 부모들도 그 바빴을 와중에 이쁘고 멋있게 차려입고.

파티장에서는 아이들이 많아서 하나가 시끄럽게 하는 걸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고, 어른들이 많아서 하나는 여기저기 인사하고 다니고 신나있었다. 음료를 차갑게 넣어두려고 얼음 띄워 물채워둔 큰 플라스틱 통이 두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여기에 들어있는 물과 음료캔에 꽂혀버렸다. 두번이나 빠져서 놀라 울고. 두번째는 덜 울긴 했지만. 나중에 한통이 거의 비고나자 친구가 아예 여기 음료를 옆에 통으로 옮기고 하나 놀게 하자고 제안해줘서 그 안에서 신나게 놀았다. 하나가 주인공 아기를 제외하고는 제일 어려서 바다수영은 영 부담스러웠고 또 다른 애들이랑 제대로 놀기엔 너무 어려서 이게 딱이었다. 완전 히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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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번 제대로 빠져서 옷을 갈아입혔는데, 또 한번 살짝이긴 해도 빠졌다. 금방 옷이 마르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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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는 바다수영을 한번 하고 나와 몸을 조금 말리는 중.  하나는 겁없이 데크 가장자리로… 아빠는 바짝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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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기저귀로 갈아입히기 전 나신의 하나. 나중에 말안들을 때 압박용으로 쓰자는 옌스. 그렇지만 중요 부위는 다 가렸는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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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의 욕조를 신나게 들락날락하고 있다. 어느새 선크림으로 뿌옇게 물든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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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신의 하나와 한장 남겼네. 즐거운 하루였어요 하나씨~

덕분에 하루 종일 낮잠 한번 안잔 하나는 끝까지 신나게 놀고 음식도 맛나게 먹고 잘 놀다가 집으로 왔다. 돌아오는 길, 유모차에서 3분안에 조용히 골아떨어져서 2시간이나 낮잠을 잤다. 요즘 한시간에서 길어야 한시간 반 자는데… 덕분에 평소보다 30분 이상 늦게 재우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재웠으니 그또한 괜찮았다.

친구네 시부모님과 같이 앉아서 점심을 먹었는데, 결혼식때도 뵙고 이래저래 이야기 전해서 많이 듣기도 했고, 시부모님도 내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던 터라 이야기가 편하고 재미있었다. 어머님이 워낙 상냥하신 분이시기도 하고 아버님도 편한 분이셨다. 오래 되지 않았는데, 이제 파티같은데 가서 앉아서 여럿이 대화해도 다 들리고 어린 아이들하고도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진 걸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파티 같은데서 느꼈던 이질감이 없어지면서 이런 자리 가는게 편해져서 불편함 없이 오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친구네 시부모님하고는 이번에 처음 길게 이야기 해봤는데, 우리 시부모님과는 또 다른 스타일이지만, 아무튼 비슷하게 따뜻한 분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국제결혼이라고 다 시댁과 잘 맞는 건 아닌데, 그녀도 시댁 스트레스 없을 좋은 분들 만나서 참 좋다는 생각이다.

이제 다음주 바짝 교정보고 최종 편집 해서 제출하면 논문도 우선은 일단락된다. 남은 건 디펜스뿐. 이렇게 여름의 피크가 지나가는구나. 올 여름 꽤나 괜찮았던 것 같다.

하나의 17개월 발달사항

요즘 하나가 사용하는 단어가 많이 늘고 있다. 우선 Nej만 쓰던 것에서 벗어나 Ja도 적극적으로 쓴다. 뭔가를 원할 때 주세요나 giv mig 같은 표현을 쓰기 어려우니, 고개를 강력히 끄덕이면서 ja를 반복하면 그게 맞다거나 달라는 뜻이다.

요즘 다른 애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다른 애들이 노는 곳에 가서 같이 노는 것 같다. 데릴러 가서 하나에게 왔음을 알리기 전에 몰래 지켜보다보면 다른 애들이랑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행동을 따라하기도 하고 같이 어린 아이용 시소를 타기도 한다. 멀쩡히 가만히 있는 애에게 다가가서 옷을 당기거나 밀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다른 애들 이름에 관심을 부쩍 갖는다. 내가 아는 애들이야 주로 나와 비슷하거나 늦은 시간에 픽업하러 오는 부모를 두는 애들인데, 발음이야 미숙하지만 그 애들 이름은 내가 이해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 애들과 친해서 그런지 그 아이들 이름을 주로 연습한다. 어쩌면 내가 그 애들 이름을 주로 언급한 걸 듣고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애스거를 애꺼로, 앨마를 앨마와 앨나의 중간 발음으로, 앤톤, 요샌, 크리스치애이너 등등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아무튼 비슷하게 흉내낸다. 선생님들도 나도 알아듣고 있으니 말이다.

사물에 두가지 이름이 있다는 걸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엄마와 아빠가 같은 사물을 두고 다른 이름을 말하는 걸 이해하고 두가지 단어를 다 사용한다. 물론 덴마크어가 더 우위를 차지하는 건 분명하다. 신발은 스꼬, 양말은 껌퍼 (스트룀퍼의 룀이 굄과 비슷하게 들려서 그렇게 발음한다.) 와 양말, 빵은 빵과 꾈 (브뢸의 뢸이 꾈과 비슷하게 들린다.), 물은 맨(밴)… 아니 이제는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단어를 말한다. 애가 말이 통하기 시작하니 애도 수월하고 우리도 수월하다.

다양한 새를 보고 구분해서 내가 알려준 소리들로 꼬꼬꼬, 구구구, 까악까악, 삐삐삐, 꽉꽉꽉, 이런 소리를 내는 것도 놀랍다.

계단은 혼자 옆에 바를 잡고 오르내리고를 하고 미끄럼틀을 혼자 탄지는 벌써 몇달이 되었다. 요즘은 트렘폴린에서 몸을 튀기다가 손잡이를 잡고 뛰는 동작을 아주 미세하게 시작하는 것 같다. 팔과 배의 힘이 좋아져서 얼마 안있어 아기침대를 기어오를 것 같다. 침대의 한면을 곧 열어야 할 것 같다. 자칫하면 떨어지는 사고가 생길 수도 있으니.

밤중 수유를 15개월 좀 넘어서까지 했으니 좀 길게 했다. 밤중 수유를 끊는데는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그러고나니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7시부터 다음날 5시반-6시반 정도까지 쭉 잔다. 요즘 6시 반에 가까운 시간으로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 늦어진 것 같다. 보육원에서의 낮잠은 1시간 반으로 거의 패턴이 정해진 것 같다. 아직 집에서는 주말에 오전, 오후 두번 낮잠을 자지만 말이다.

어느새 애가 이렇게 컸을까? 사람들이 애를 낳고 키우는 건 힘든 일이지만 행복하다더니만 그게 뭔 이야긴지 겪고나니 알게 되었다. 매일 밤마다 침대에 누워서 옌스와 하나가 믿을 수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하며 맞장구를 치는데 이런 팔불출들이 따로 없다. 8월에 부모님이 오셔서 2주동안 하나와 바짝 같이 지내시고 가시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하나가 또 새롭게 잘 기억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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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가장 좋아하는 훈이(Hundi)를 데리고 달려가는 하나

16개월이 다 되어가는 하나와 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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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 있으면 하나는 16개월이 된다. 키는 대충 재도 80센치니 그보다 큰 것 같고 (어느새 갑자기 훌쩍 컸다.) 몸무게도 10킬로가 거의 다 되는 것 같다. 키에 비해 몸무게가 천천히 느는 거 보니 이제 아기가 아니라 유아기로 들어서는 것이 이에서도 느껴진다. 어금니도 왼쪽 두개는 확실히 나고 오른쪽도 윗니는 터지기 시작해서 하얀 게 보이니 그 아랫니도 금방 열릴 거 같다.

긴 음절의 말은 톤과 소리만이긴 하지만 대충 흉내도 내고, 두음절 단어는 처음 듣는 단어도 곧잘 따라 하곤 한다. 처음 강아지 소리를 듣고는 자기만의 소리로 “앞앞!” 이렇게 표현하더니 모르는 동물은 무조건 앞앞으로 표현한다. 강아지는 멍멍이라고 알려줬더니 멍멍이라고 하고, 고양이는 먀옹이라고 하고, 새는 처음에 집에서 닭 사진을 보면서 가르쳐걸 기억해서인지 무조건 꼬꼬 라고 하더니 각각의 새를 보고 가르쳐 준대로 까마귀를 보면 까까라고 하고 비둘기는 꾸꾸라고 한다. 덴마크어로 아니오의 뜻을 가진 Nej는 아주 여유있고 시크한 톤으로 말해서 나와 옌스를 웃게 하고, 예는 아직 말하지 못하지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서 표현하는 덕에 의사소통이 아주 수월해졌다.

자기 이름을 엄청 좋아하고, 엄마와 아빠는 한국어로만 말하는 하나지만, 그 외에 말은 고맙다는 tak, 만날 때, 헤어질때 하는 인사 모두 Hej, Hej hej, Bye bye 모두 덴마크어와 영어이다. 소방차 소리를 바부바부 내는 걸로 봐서도 역시 덴마크어가 우월한 입지를 차지한게 느껴진다. 보육원을 다니면서 덴마크어 노출이 압도적이 되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하나에겐 항상 한국어만 쓰고, 옌스가 꾸준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식사시간에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 등이 앞으로 하나의 한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논문은 꾸역꾸역 쓰고 있다. 우선 긍정적인 것은 가장 중요한 모델링의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론도 더 쓸 게 있고 몇가지 테스트할 것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델링의 결과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게으름이 뚫고나와서 나를 갑자기 퍼지게 하는 사태를 만들지 않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조심하는 부분이다. 교수가 덴마크 환경경제 컨퍼런스에 내 논문 요약문을 제출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요약문 쓰는 거는 조언을 해줄 수 있으니 한번 제출해보라길래, 우선 알겠다고 했다. 받아들여져서 발표를 하게될지까지야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기회를 갖는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옌스 말로는 논문 주제가 재미있기도 하고, 우선 모델링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으니 내보란 것 아니겠냐면서,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한다. 박사과정 지원도 한달밖에 안남았으니 이 또한 해야하는데… 뭔가 할 일은 많고 정신은 없다. 지난주까지 2주동안 하나가 아파서 모든게 또 정지해있는 상태였는데, 여름 동안 큰 탈 없이 지내서 논문을 잘 진행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 와중에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는 게 하나 있다면 덴마크어다. 우선 덴마크어 시험 중 읽기는 만점이 나왔다. 쓰기 결과는 나와봐야 알지만, 쓰기 점수는 모의고사를 통해서 꾸준히 올려오기도 했고, 배운 걸 잘 소화해서 시험을 본 만큼 큰 변동 없이 10점이나 12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말하기는 그 어느 것보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연습하고 있는 것이고, 이제 일상생활에서 영어 없이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만큼 upper-intermediate에 해당하는 B2 레벨을 인증하는 PD3 시험은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물론 영어만큼 덴마크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젠 덴마크어가 더 자연스럽고, 사고의 언어 1순위가 덴마크어가 된 만큼 갑자기 덴마크어에서 영어로 전환하려면 자꾸 덴마크어가 튀어나오려 하는 정도이니 말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생각하는 것만큼 낭비야 없지만, 그냥 조금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그랬다면 지금의 가족은 내 인생에 없었겠으니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기도 하네.

이제 딴 짓 그만하고 다시 논문을 써야겠다.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이런 길로 걸어왔을까? 참 인생은 살고 볼 일이다. 끊임 없는 놀라움의 연속…

4월 일기.

논문이 바빠지니 다른 것에 소홀해진다. 논문은 대충 첫번째 포스트에 도착한 것 같다. 원시적 모델링은 우선 되었으니 이제 이론 연구와 모델링을 병행하고, 그 다음엔 분석하고 논문을 써야한다. 그간 진행이 참 지지부진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1차 모델링을 하고나서 보니 어찌어찌해 절반은 왔구나. 약간이지만 안도가 된다.  물론 아직도 반 이상이 남았는데 시간은 반이 흘렀으니 긴장이 되는 게 더 큰다. 내 논문 생활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하나 있다면 항상 크리티컬한 관점으로 내 논문을 비판해 줄 남편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모델을 보여줬더니 이건 고려해봤느냐, 저건 고려해봤느냐, 이 건 왜 이런 함수형태를 취했느냐, 독립변수 선택의 전략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직 그 단계까지 안갔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무방비로 폭격을 당한 기분이었으나 나혼자 하는 씨름에 타인의 신선한 인풋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역시 연구는 남과 공유해야하는 법이다.

우리 학과가 속한 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 공고가 났다. 자금사정이 트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인스티튜트 아침식사시간에 같이 참여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도교수에게 박사과정에도 관심있다고 했더니 지원서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교수님이 있는데, 그분께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것도 보장되는 건 없지만 추천서만큼은 꼭 써주시겠다면서, 오히려 박사과정에 꼭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논문을 제외하고 학점이 10.9니까… 논문을 잘 쓰면 11점 정도로 학점은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완벽한 점수를 들이밀 걸 생각하면 아주 빼어난 점수는 아니라도 점수가 흠이 될 건 아닌 정도니 논문이 많이 중요하다. 사실 큰 기대는 못한다. 요즘 박사과정은 세계 각지에서 지원을 하니 경쟁률도 높고, 내가 원하는 연구방향과 인스티튜트에 가장 어필하는 방향이 매칭이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든 해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배웠으니까 우선은 지원을 해봐야겠다. 뭐 되든 안되든 간에 내가 박사과정까지 생각하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해봤고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역시 절대 안한다 못한다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

덴마크어 필기 시험도 한달이 채 안남았고, 구술은 그 뒤 한달뒤로 다가왔는데, 시험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을 잘 만난 덕에 쓰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느는 게 느껴졌다. 알듯말듯한 몇가지 문법이 자꾸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는데, 내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딱 꼬집어 지적을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이 좋아졌다. 작년 말 시험으로 모의시험을 쳐보니 읽기는 12, 쓰기는 약한 12 또는 강한 10이라한다. 말하기는 한달 시간이 있기도 하고, 읽기와 쓰기의 중간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부문이라 대충 10~12 사이로 모든 부문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보고 있다. 모듈 6를 하게 될지 아닐지는 지금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항상 옵션을 갖고 있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우선은 그대로 해보련다. 덴마크어 교육도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있고 그러다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더 미루지 않고 올해 초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다.

하나는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제법 아가씨 태가 난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면서 겁이 없어져서 그런지 위험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서 조금 걱정이다. 집에서 놀다가 살짝 휘청한 것 같았는데, 금속 바구니 테두리에 부딪혀서 앞니가, 그것도 윗니가 살짝 깨졌다. 다행히 신경은 안건드린 거 같긴 한데, 우선은 지켜봐야한다. 옌스도 같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하니 젖니 깨먹는 건 이 집안 내력인가 한다. 이일로 나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픈 하나를 보기위해 마침 휴가를 내고 있었던 옌스에게 애를 맡기고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로 인해 구역질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역질이 계속 나는데, 그걸 멈추기 위해서 산책을 해야했다. 원래 스트레스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으로 반응이 올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가 아닌 아이 일이라서 그렇다. 누가 있었어도 생겼을 일이었기에 나를 자책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애가 더 크게 잘못되었으면 어쨌나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구역질. 더 큰 사고가 나도 차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말로 단단히 먹어야한다.

하나는 참 씩씩한 아이다. 웬만해서는 넘어진 거나 부딪힌 걸로 울지 않는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보육원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씩씩한 아이인데, 그렇다고 튼튼한 건 아닌 것 같다. 감기나 설사 같은 걸로 자주 아픈편이고, 폐렴 입원도 그렇고 천식성 기관지염을 앓는 일이 꽤 잦은 것 같다. 오늘도 그로 인해 응급실을 다녀왔으니… 물론 이번엔 응급했다기 보다는, 일반 GP, 스페셜리스트로 올라가는 시스템을 이용하기에는 응급했다고 봐야하는 거니까, 그냥 적기의 진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겨울 아기로 겨울 초입부터 보육원을 시작해서 그런 것도 있다지만. 다행인 건 씩씩한 아이라 잘 견뎌준다는 것. 나도 생각해보면 어려서 자주 아팠던 것 같다. 항상 건강체질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자주 배가 아파서 학교를 많이 쉬었던 기억이다. 엄마도 내가 씩씩했었다는데, 지금도 꽤 씩씩한 거 생각하면 하나도 그런 면에서는 강한 아이일 것 같다.

요즘 얼마나 놀이터 생활을 즐기는지. 날이 좋아지면서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놀리게 되니 동네 아이들과도 교류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 때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던 아래층 이웃 아이는 아직도 간혹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게 줄었고, 그 아이의 오빠와 둘다 다정한 애들로 컸더라. 이제 곧 7살이 된다는 베어트람은 하나를 유독 이뻐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아마 여동생을 데리고 지낸 경험에서 우러나는 듯) 4살 여동생인 딕터도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었고, 둘다 하나와 함께 놀아주더라. 하나가 갖고 나온 공을 갖고 잔디밭에 삼각형으로 둘러 앉아 셋이서 공을 미는 놀이를 하는데 (그나마 하나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놀이로 배려해 준 베어트람이 놀랍다.) 곧잘 노는 게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놀라고 나는 빠져있는 건데 내가 중간에 괜히 옆에서 개입했나 싶었다. 말못하는 하나를 대변해준답시고, 아직 애가 이해를 못해서 그래, 하나야 앞으로 밀어봐, 이러면서 옆에서 참견을 했다. 그냥도 잘 했을 거 같고, 아니어도 오빠와 언니가 적당히 반응해가며 놀았을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다른 아이가 충분히 큰 경우 내가 조금은 더 뒤로 빠져서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해봐야겠다.

다음주에는 두바이에 주재중인 시누이네를 시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는데, 출산 후 거의 바로 이주한 시누이가족과는 하나가 처음으로 제대로 교류하게 될 거라 기대가 많이 된다. 조카들이 동생 만나서 놀아줄 기대로 부풀어있어서 더욱 기대된다. 수영복도 사고 이래저래 준비를 했는데 아픈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오늘 해가 엄청 쨍하고 더웠는데, 하나 데리고 오전에 응급실에서 3시간 씨름하고, 가장 해가 쩅한 시간에 나와 낮잠에 든 애를 두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밀고 싸돌아다녔더니 몸에 화기가 든 기분이다. 아마 피부가 많이 탄 모양이다. 밤에 잠이 잘 안올 것 같다. 나는 못자도 애가 좀 잘 자줬으면 좋겠다. 기침을 덜하는 걸 보니 오늘은 잘 자려나? 역시 병원에서 천식약 흡입한 게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다. 딱 쓰고나니 기침하네. 흠… 역시 입초사인가…

임신 때보단 육아가 훨씬 힘들긴 한데, 출산 후 100일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다. 지금은 다른 차원의 힘듦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애가 어릴 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얼마전 출산한 사람, 앞으로 출산할 사람 등 주변에 애 참 많이 낳는데, 신생아 냄새가 생각날 듯 하면서 그립기도 하지만 또 낳을 생각은 안난다. 다 잊혀져서 애를 또 낳는다는데, 힘든 기억은 잊혀졌지만 힘들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 애는 그만 낳고 남들 애기 보면서 신생아 이뻐하는 건 그걸로 끝내야겠다. 아… 신생아 볼 생각에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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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startede i vuggestuen!

 

Hannah er nu lidt over 10 måneder og kan meget mere end før. Det føles som om, hun har været sammen med os for altid, selvom der kun er gået 10 måneder. Tiden er gået meget hurtigt. Det er meget sjovt, at det føles sådan, fordi jeg nogle gange klagede over, at tiden gik rigtigt langsomt efter fødslen. Måske var det fordi, det var ret fysisk hårdt at passe et lille barn, der ikke kunne gøre så meget selv. Jo hun kan stadig ikke så meget – hun er kun 10 måneder – men hun er ikke længere bare en baby. Hun er næsten en tumling!

Hun startede officielt i vuggestuen i går, hvis jeg ikke regner det første uofficielle besøg i mandags som den første gang. Det gik udmærket. Hun havde det sjovt og kravlede hele vejen rundt i vuggestuen. Hun så ud, som om hun godt kunne lide at lege med andre børn eller i hvert fald at være sammen med dem.

Nogle gange kunne jeg mærke, at andre børn udviste lidt aggressiv adfærd, mens pædagogerne ikke kunne mærke det på situationen. Der var, for eksempel, en dreng, der var lidt aggressiv generelt og skubbede Hannah og trådte på hendes fod. Jeg blev nødt til at sige, at han ikke måtte gøre det, og tog hende væk fra ham. Men det kan altid ske, og jeg kan ikke være der altid for at beskytte hende fra den slags situationer. Der er mange af mine venner, der selv har børn, som har fortalt mig, at jeg skal vænne mig til at se hende komme hjem med nogle skader i forskellige grader, store eller små. “Det gør ondt at se hende blive skadet, men det er den måde, man vokser op på.”, sagde de. Ja. Der er også det udtryk, at man bliver klog af skade. Hun vil også blive klog på den måde. (Men det er jo nemmere sagt end gjort!)

 

논문 시작

수면교육을 시작한지 나흘째. 첫날이 가장 힘들었고, 그 다음부터 아주 조금씩이지만 쉬워지고 있다. 오늘은 저녁 먹을 시간에 늦은 낮잠을 잔 터라 막상 잠을 잘 시간에 잠이 깨서 그런지 옌스가 수면의식으로써 책읽어주기가 끝났는데도 영 상쾌해 침대에서 놀고 있었다. 잘 자라고 이야기하고 꺠어있는 하나를 뒤로한 채 옌스는 방을 나왔고, 저글링한다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그 사이에 하나는 혼자 놀기, 떠들기, 울기를 번갈아가며 반복하더니 어느새인가 잠이 들었다. 이와 함께 밤에 깨는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고, 밤중 수유도 줄어들었다. 건강방문사의 조언대로 배가 고파서 젖을 찾는게 아니라 습관이었던 것 같다.

11월 들어 학교에는 나가더라도 밤에 같이 하나를 데리고 자는 덕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는데, 학교도 나가고 하나도 스스로 자다보니 아이와 보내는 질적인 시간이 확 떨어졌다. 주말에 좋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먹을 때 독립적으로 먹으려 하는 것부터 해서 이제 앞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작고 크게 하나가 독립해나가는 일들을 경험하게 될텐데 그때마다 대견함과 서운함이 섞인 복잡한 경험을 할 것임을 벌써부터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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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이 부은 하나. 엄마가 가방을 메면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가방을 맡으면 저도 같이 가나요?”

학교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옌스와 다툴일이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육아휴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힘에 조금씩 부치기 시작했는지 간혹 다툴 일이 있었는데, 사촌이나 엄마가 해주신 조언도 받아들이기도 한 덕도 있지만 우선 온전한 나의 시간이 길게 확보가 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옌스와 같이 한 지 어느덧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젠 진짜 겉과 속, 나의 가장 좋은 모습과 못난 모습 다 보여준 피를 나눈 것과 다름 없는 가족이 된 것이다. 서로 부딪혀가며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결국 더 아끼게 되었으니 하나를 갖게 된 것은 그 자체로도 축복이지만 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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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동네 도서관 탐방도 간혹 하곤 한다. 잠깐씩 나가서 나만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옌스. 육아휴직을 하더니 집안일도 더 돕고… 많이 늘었네.

 

논문이라는 건 듣기만 해도 뭔가 괴물같고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안개처럼 느껴진다. 막상 쓰기 시작하기 전엔 더 그렇다. 사실 교수를 서둘러 만난 건 천천히 여유있게 하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이 괴물을 작은 단위로 해체하지 않으면 마음 속에 큰 짐으로 남아있을 것 같아 서둘러 시작했다. 나는 나를 잘 못믿기 때문에 교수가 어떻게 논문 지도를 해줄지 물었을 때, 중간 중간 진행상황을 점검하며 채찍질해달라고 부탁했다. 미니논문 쓸 때도 그렇게 하고나니 진행이 수월했고, 결과물을 제때 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논문 계약서를, 오늘은 프로젝트 플랜과 dissertation statement를 보냈다. 처음엔 지난 1년동안 무뎌진 뇌를 닦고자 계량경제학 노트와 Economic valuation method와 CBA 노트를 읽어보고 그 다음 논문을 준비하려 했는데, 그렇지 않고 바로 논문에 뛰어들기로 했다. 목적없이 전체 노트를 리뷰하는 것보다 중간중간 필요할 때 리뷰하는게 더 집중하기 좋을 것 같아서이다.

이렇게 조금씩 발을 딛고 나니 안개에 휩쌓여 있던 아주아주 큰 괴물같던 녀석이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것 같고 잘 토막을 내 뼈와 살을 발라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프로젝트 플랜을 보내고, midway deliverables는 나중에 업데이트하기로 했는데, 그러려면 세부 프로젝트 플랜이 나와야 할 거라서 우선 관련 논문을 닥치는 대로 읽어보며 본격적인 리서치를 하기로 시작했다. 몇개 논문을 읽어보다보니 빈옥명이라는 East Carolina 대학교 교수님께서 쓰신 연구가 연관성도 높고 정리도 잘 되어있어 읽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외에서 연구를 하며 해외 자료를 찾다가 한국인이 쓴 자료가 나에게 큰 등불이 되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서 소소한 놀라움과 기쁨을 얻었다.

옌스가 오늘 좀 조용하다고, 괜찮냐고 묻는다. 나쁜 스트레스는 아니고, 앞으로 쓸 논문과 향후 진로 방향,  논문 뿐 아니라 덴마크어도 잘 공부해야하고 등등 생각하다 보니 그냥 약간의 긴장감이 돈 것 같다고 답했다. 정말 오랫만에 (거의 1년만에) 진득하게 앉아서 집중해야할 긴 읽을 거리가 생기니 좋은 긴장감이 든다. 주말은 잘 쉬고, 다음주엔 또 다음주의 할 일들을 열심히 해야지.

원래의 일상으로 천천히 복귀하는 중

한국에서 돌아온지도 어느새 보름이 되었다. 방안에서는 옌스가 하나 수면교육하느라 하나의 울음소리가 크게 새어나온다. 어제 건강상담사의 방문 이후 오늘부터 다 흐트러진 수면교육을 다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만 5개월을 지나면서 하나가 서서히 분리불안을 느꼈는데 밤에 처음 재우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중간에 깨면 난리를 치면서 울고 나에게서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탓에 혼자자던 리듬이 다 깨졌었다. 젖 물리는 것과 자는 것은 철저히 분리하라는 것도 그렇고 중간에 깨고 나면 내가 하던 일을 다 중단하고 하나와 같이 자기 시작했는데, 그렇고나니 저녁의 삶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고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게 불가능해졌었다.

한국에 가서도 이러한 일상이 지속되었고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돌발진을 앓으며 고열에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며 입맛 떨어진 애에게 수유를 늘렸는데, 밤중 수유가 늘어나며 낮에 잘 먹던 이유식 양도 줄고 하여간 여러가지가 꼬여있었다.

단호한 수면교육. 쉽지 않았다. 얼마나 울려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장시간 우는 게 트라우마로 남아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어 우선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고 어떻게 할 지 결정하기로 했다.

건강상담사는 하나의 정서적인 특성을 비롯해 발달상황을 관찰하고 수면 패턴과 수유에 대한 내 관찰사항을 듣고 나더니, 밤중 수유는 습관인 것 같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이건 내가 마음을 먹고 끊으려면 끊을 수 있는 것인데, 꼭 당장 끊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니 내 편할 대로 결정하라 한다. 다만 밤에 많이 먹으면 낮에 별로 안먹으려하니 그 점을 고려하라고 했다. 수면 부족으로 성장에 저해가 된다며 애의 밤중 수유를 꼭 끊으라는 글 등을 보고 마음이 영 불편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밤중 수유는 서서히 줄여보련다.

밤에 악몽을 꾸는 듯 일어나서 우는 것에는 여행으로 인한 중이염 등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흉내낸다했더니 그건 아닌 거 같다고 하고, 그 또한 혼자 스스로를 위로하며 잘 수 있게 해주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애가 새로운 습관에 적응하기까지 14일정도 걸리니 그때까지는 일정한 패턴으로 수면의식을 해주라더라. 14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기간이다. 그리고 아빠가 재우는 것이 조금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여 오늘부터 옌스가 애 잠을 재우는 것으로 한 것이다. 나야 덕분에 7시부터 자유를 누리고 있어 좋지만 방 안에서 20분이 넘도록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영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약 열흘의 적응기간을 거쳐 이제는 하나와 6~7시간을 떨어져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전날 이유식을 준비해두면 오후 4시에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애 밥도 먹이고 놀고 산책도 다니고 하면서 하루를 하나와 함께 보내는 건데, 생각보다 잘 하고 있다. 그 전에 집안 살림과 애 보는 것을 내가 다 하던 것과 달리 자기는 애만 보는 것인데도 힘들어서 그런가, 그러한 일과가 끝나고서도 설겆이며 여러 집안일을 좀 더 꼼꼼히 하고 있다. 자기가 경험해보니 전업주부 하며 애 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나보다. 역시 사람들은 역할도 바꿔보고 해야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법이지.

아기 보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옌스는 힘이 들겠지만, 나는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나 좋다. 애 보면서 이것저것 정신없이 처리하던 노동의 일상에 젖어있던 탓에 한 주제에 집중하는 게 좀 힘들었지만 오늘은 다른 날보다 그게 잘 되서 기분도 좋았다.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학교로 통학하자니 비오는 날 조차도 상쾌하고 좋다.

논문 작성할 수 있는 고정 데스크도 신청해서 자리를 배정받았고, 읽기도 시작하고, 뇌를 조금씩 쓰기 시작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 아무래도 아이가 아프면 집에 들어앉아 애도 봐야하고 할테니 여유있는 시작이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빠르게 돌아가는 것인데, 덴마크에선 대부분 생후 1년 이내에 기관에 애를 보내기도 하고 해서 이래저래 내 사정에도 잘 맞다. 오랫동안 영어도 안쓰다 보니 한국에서 옌스 및 친구와 함께 영어할 때 덴마크어가 자꾸 툭툭 튀어나오길래 영어도 퇴화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었다. 그런데 다시금 아예 영어로 대화하는 환경에 돌아가니 그런 것도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엄마로서의 내가 아니라 온전히 나로서 있을 수 있는 환경에 돌아간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12월 첫주까지는 옌스가 육아휴직중이라 둘이서 같이 하나를 보육원에 보낼 수 있다. 그 이후엔 1주간 나 혼자 하나의 적응기간을 지켜보고, 다음엔 나도 완전히 워킹맘으로서의 일상으로 복귀해야지.

30분만에 옌스가 하나를 재우고 나왔다. 엄청 울더니… 앞으로 이렇게 하자, 하나야. 엄마도 이제 저녁엔 엄마의 삶을 찾을게. 고마워.

시부모님 오시기 전 한국방문기간을 정리하며

아기와 함께 하는 고국방문은 전혀 다르리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유모차 하나로 대중교통 타고 다니며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던지라 아기가 하나 있는 게 크리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애가 카시트를 싫어하긴 했지만 금방 적응하리라고, 그전에 그랬듯이 애가 항상 건강할 것이라고, 밥은 항상 잘 먹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동경에도 가볼 수 있지 않겠냐면서 한번 계획해보자고 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황당무계한 상상이었는지.

시부모님 계시는 한주를 제외하면 거의 한달 반에 달하는 시간이었는데, 가족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보자고 약속을 하고 기대를 한껏 하고 왔던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뭘 쓰느냐고 물어서 답을 해줬더니 자기는 이번 여행은 자기가 예상한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육아휴직여행이지 놀러가는 휴가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냐한다. 내가 나이브했나?

하나는 도착해서 첫 2주를 감기로 고생하며 신고식을 하더니 지난 며칠은 돌발진이라는 것으로 고생을 했다. 사흘 정도를 고열로 고생을 하더니 갑자기 어제 열꽃이 피는 것이었다. 열꽃을 찾아보니 돌발진이라는 병명을 알 수 있었는데 증상이 정확히 하나와 일치하더라.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니 (혹여나 다른 병일 수도 있어서) 열이 내리면서 발진이 난 거면 돌발진이 맞고 (증상으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병이란다.) 그거면 힘든 부분은 다 지난거라며 열이 다시 오르는지와 가려워서 긁는 일이 있는지 등만 관찰하라고 했다. 39도가 넘어 끙끙거리던 밤만은 병원으로 가야하는지를 참 고심했는데, 결국은 안가기를 잘했다. 가봐야 해열제 처방 받는 거 외엔 크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한다.


최근 하나는 부쩍 컸다.

엄마, 아빠를 말하고, 드디어 책은 먹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뚜렷하게 인식한 것 같다. 새로운 단어를 반복해서 이야기해주거나 혀를 차는 것 같은 소리를 들려주면 한참 관찰하다 따라하곤 한다.

애가 이유를 모르게 찡찡댈 때 달래줄 수 있는 방법이 안거나 업어주는 것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놀아주는 것으로 상당부분 대체되었다. 좋아하는 인형을 주고 안아주는 거는 정말 피곤해서 쉬고싶을 때만 통한다.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이유식은 거의 다 거부한다. 자기가 손가락으로 탐험을 한 음식을 자기가 손으로 먹거나 포크로 먹기를 원하고,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싶어한다.

할머니가 안아주면 엄마가 방에 들어가서 쉬거나 외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할머니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안아주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생겼다. 물론 아예 내가 외출하는 경우는 아빠보다 할머니가 안아주는 것을 선호하고 할머니를 많이 따른다고 한다.

대문은 사람들이 사라지는 문이라는 것을 알게된 모양이다. 언젠가 그 앞에 가서 손가락질하며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더니, 그리로 누군가 옷을 입고 나가려면 싫다고 운다.

또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말이 뭔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게, 기저귀를 간다거나 손톱을 깎는 등 하나가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할 때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괜히 울면서 땡깡을 부린다. 구해달라는 듯이. 자기가 울면 애교를 떠는 사람들을 보고 그런 판단을 한 것 같다. 그러면 나 혼자 하겠다고 저리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한다. 이러나 저러나 해야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할 일을 하면 하나는 곧 딴 짓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안된다는 말을 이해하는 것 같은데, 안되는 일은 우리가 보지 않는 틈을 노리려는 모습을 보인다. 호시탐탐…

낯을 가리는 것이 얼굴을 보고 우는 것 말고 수다를 멈추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엄청 수다쟁이인 녀석이 낯선 사람이 있으면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가고 나면 그간 말을 못해 답답했던 듯 터진 둑처럼 수다를 떨기도 하고, 친해지고 나서 말을 많이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듣던 것처럼 기왕이면 젊은 사람을, 여자를 더 좋아한다. 특히 나이든 남자는 친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제 다음주 월요일에 짐 싸고 화요일에 호텔로 옮겨서 시부모님 공항에서 픽업하고 나면 일주일 여러 행사를 마치고 덴마크로 귀국하는 일만 남았다. 아이를 낳고서부터는 인간관계의 지평이 엄청 바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크게 느낀 여행이었다. 왜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달라지는지는 되고서야 이해하게 되더라. 내 딴엔 타인의 시선으로 이해하려 한다하면서도 그렇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내 아끼는 지인들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 정말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한국에서 맞이하는 8개월 육아단상

3개월 지나면서부터 수면교육을 시작했었고, 그런대로, 아주 쉽지는 않지만, 하나는 젖 없이 뉘여 재울 수 있고 한번 자면 다음날까지 통잠을 쭉 자는 아기였다. 그런데 뒤집기 시작하면서부터 밤에 자주 깨고 다시 잠에 못들고 젖을 그렇게 찾더니 그게 습관이 되면서 밤에 깨면 젖을 주게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7개월 들어서며 분리불안이 생기더니 밤에 잠에서 두어번 깨면 그 다음엔 나를 놓지 않는 것이었다. 거의 한달을 옆에 끼고 잘 수 밖에 없었다. 옌스는 직장에 나가야 하는 사람인데 옆에 뒤척이는 애를 같이 두고 자게 할 수 없었기에 하나 방에 매트리스를 넓게 깔고 잤다. 젖은 달라는 대로 다 줘가면서. 그간 쌓아온 작은 습관이 다 무너지는 거 아닌가 하며 걱정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수면교육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고 어제부터 시작했다. 어제는 한시간 울다가 잠이 들었고 오늘은 20분만에 잠이 들었다. 눕히면 앉고 서서 울어재끼는 아이를 2분, 3분, 4분과 같이 1분씩 늘리는 간격으로 다시 눕혔다. 오늘은 6분이 될 때 포기를 했는지 눕히자 마자 손가락을 두어번 빨더니 잠에 들었다. 짧으면 3~4일, 길면 1주일 걸린다는 수면교육이 가능한한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 젖을 자꾸 먹으면 깊게 못자게 되는 탓이었을까? 어제는 잘 깨지도 않더라. 한번은 그냥 두어번 토닥이니 다시 잤고, 한번은 3시가 넘어서였는데 토닥임도 안통해서 젖을 주니 많이 먹었다. 그리고 다시 누이니 그냥 잘 잤다.

사실 마음이 정말 안좋았다. 한시간이나 애가 우는 걸 보는 엄마 마음이 좋을 수가 없지. 순간 울컥하기도 하고, 멈춰볼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이렇게 끼고 자면 8개월부터는 떼라는 밤중 수유를 도저히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내가 자면서 엄마를 찾아 울부짖는 악몽을 꿨다. 엄마와 사이가 멀어지는데 서러워 하며 엄마를 찾는 꿈. 수면교육으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싶었더니 한번 직접 겪어보라는 거 같은. 지금도 자는 중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불쌍한 것.

이제 나흘이면 8개월이 되는 하나는 오늘 새로운 스킬을 완전히 굳혔다. 배를 땅에서 떼고 두 팔과 두 다리로 기기. 그리고 어제 수면교육에서 익힌 침대잡고 완전히 서기. 이걸 결합하니 벽타고 일어서기가 가능해지더라. 그리고 옆으로 걷기까지. 물론 아직 엄청 불안정하지만. 이미 가구잡고 서기를 하며 엉덩방아 찌며 다시 앉는 낙법을 익혀둔 터라 대부분은 잘 앉지만 위험한 순간도 연출되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지만 끊임없이 지켜봐야 해서 힘이 들기도 하다.

페이스타임 덕에 생후 5~7주 사이 봤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잘 기억한 덕일까? 낯가림 좀 하고 있는 중인데도 부모님은 전혀 어려워하지 않고 처음부터 너무 잘 웃고 잘 지냈다. 그제와 오늘 네시간 정도 떨어져 봤는데, 울지 않고 잘 지냈다 한다. 분리 불안이 조금 사라진 것인 사인인 것 같기도 하고. 11월에 옌스와 둘만 있게 하는 시간이 덜 걱정된다. 내가 없어져도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서 말이다.

자기 의지도 강해지고 갈수록 활동적이어져서 힘든 면도 있지만, 항상 너무나 잘 웃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하나가 있어 육아가 참 행복하구나. 앞으로 이렇게 부모님이 사위와 손녀와 장시간 같이 보낼 일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옌스 육아휴직 덕에 이런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정말 다행이고 행복하다.

한가지, 하나가 카시트를 너무 싫어해서 어디를 가기 힘들다는게 큰 애로사항인데, 그것도 수면교육의 결과로 좀 나아지거나 그런 일은 없으려나? 한국은 너무 크고 대중교통이나 여러 인프라가 차 없이 애 데리고 다니기 어렵게 되어 있어 서울로 이동하는 게 과하게 부담스럽다. 버스는 거의 유모차 들고 타기는 어렵고 간혹 계단이 장애물이 되기도 하고. (장애인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 이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두달 가까이 있는 기간 중 사람들을 오히려 별로 못만나고 갈 것 같아 그점이 많이 아쉽다. 그래도 애가 최우선일 수 밖에 없는 육아휴직 기간, 어쩌겠나…

6개월의 하나에게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 너는 6개월이 되었구나. 사실 6개월하고도 며칠 지났지. 너는 키도 크고 힘도 세 벌써 기기 시작한 걸 보면 엄마가 아기였을 때와는 참 다르구나 싶단다. 엄마는 팔다리가 너처럼 길지 않았고 한번 기지 못하고 엉덩이로 앉아 손으로 땅을 밀치며 다녔단다. 너는 벌써 머리가 길어서 거의 눈에 닿을 지경인데 엄마는 돌때가 되도록 솜털같은 머리만 있었더랬지. 엄마 어릴 적 사진 보면 그냥 둥글둥글 토실토실 아기라서 귀여웠던 얼굴인데, 너는 벌써 여자애같은 생김새가 또렷이 나타나기 시작해 예쁘구나. 사진으로 봐왔던, 이야기로 들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을 너에게서 발견하기도 하고, 우리의 차이를 발견하며 너와 나는 꼭 같지는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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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10분 뒤의 네 모습은 이랬단다.

네가 몸이나 마음 모두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컸으면 하는게 엄마 마음이지만, 그게 진정 너를 위한 것도 아니니 대범한 마음으로 키우고자 노력하고 있단다. 기다보면 여기저기 부딪히게 마련이고 멍도 들고 혹도 생기기 마련인데, 얼마만큼을 경험하게 해줘야 하는 건지 고민이 벌써 된단다. 미리 부딪히는 경험을 충분히 해서 조심하게끔 만들어줘야 하는 건지, 얼마만큼이 다쳐도 되는 만큼인지 등 확신이 안선단다. 더러운 것에 노출되는 것도 마찬가지고. 집안 곳곳의 것들을 핧아보고 빨아보고 싶은 너의 구강기 욕구를 만족시키면서도 통제할 건 통제해야하는데 그게 어느 수준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인지도 애매하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닦기도 하고, 닦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은 못빨게도 하지만 너를 100% 쫓아다닐 수도 없으니. 덴마크 아기들은 길바닥도 기어다니고 하던데 나는 그걸 얼만큼 허용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단다. 아빠와 상의해서 적당한 범위를 정하려고 하긴 하는데 너를 만나고 나니 그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구나.

오늘은 우리가 먹는 저녁과 거의 같은 것을 네가 처음으로 먹게 되서 기뻤단다. 시판 이유식은 맛도 제약이 크고 해서 결국은 엄마가 해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너를 위해 모든 음식을 따로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엄마도 사실 살림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하기가 벅찰 때가 있단다. 한국처럼 싸게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매 끼 다 직접 해 먹어야 하는데 네 음식 따로 준비하기가 마음에 버거운게 현실이란다. 미안해. 그래도 엄마가 너무 힘들면 너에게 마음을 다할 수 없어서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려면 적정 수준을 찾아야 하거든. 오늘은 가자미, 새우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네 거 따로 뺀 다음에 고추기름과 소금간만 하는 식으로 너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음식을 준비했단다. 네 걸 스르륵 갈고 맛을 봤더니 참 맛있더구나. 잘 먹어주길 바랬는데 정말 잘 먹어줘서 고마웠어. 앞으로는 좀 더 우리 식사와 같은 것으로 준비해보려고 한단다. 경험이 쌓이면 엄마도 음식 준비가 더 쉬워지겠지.

엄마에겐 집안을 엄청 깔끔하게 정리하고 먼지 한톨 없이 청소하시던 네 할머니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청소년 시기가 있었단다. 나는 그렇게 안치워도 되는데 할머니는 그렇게 치워야 하시니 덕분에 피곤해진다는 생각을 했었지. 사실 내 방 정리하나 하는 건데도 그렇게 피곤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엄마가 얼마나 게을렀는지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런 깨끗한 삶이 몸에 배어서 주변이 지저분하면 참을 수가 없어졌어. 물론 지저분함을 정리해야하는 피곤함과 지저분함에서 오는 스트레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터라 할머니를 따라잡을 수야 없지만 나이가 늘어갈 수록 할머니와 비슷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있어. 다행인 건 네 친할머니도 비슷하셔서 네 아빠가 나와 비슷하다는 점이란다. 내가 조금 더 깔끔을 떨긴 하지만 둘이 중점을 두는 부분이 조금 달라서 오히려 서로 보완이 되는구나. 아무튼 애가 있는 집에서 청결을 유지하려면 바쁘단다. 엄마가 너를 업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하고 바삐 움직이는 게 다 그래서란다. 사실 그런 이유로 네 음식을 처음엔 주로 사다먹이려 했는데, 몇번 사먹이다 보니 한계가 느껴져서 가족 식단을 준비하게 된 것이지.

널 키우면서 엄마도 너 임신하고 찐 살이 다 빠졌단다. 6개월 전에 살을 빼야 몸이 새로운 몸무게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길래 그때까지 빠질까 살짝 걱정했는데 걱정할 일은 아니었어. 오히려 임신전에 쪄서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벼르기만 하고 빼지 못하던 살을 덜어내고 있는 판이니 말이야. 엄마가 임신 전에 4kg가 쪘는데 그게 참 빼기가 힘든 살이었단다. 그 당시 주체못할 식욕 덕분에 살이 쪘었는데 임신 전에 그렇게 빼려고 해도 잘 안되더구나. 아무튼 너를 낳고 모유 수유하고 바삐 움직여서 그런지 다행히도 다 빠졌으니 너에게 고마워 할 일이다.

나는 그 전에 애들을 보며 열정적으로 웃는 엄마와 아빠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단다. 상상만으로도 진이 다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 사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웃을까 싶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웃는 것도 한계가 있지, 한참을 까르륵 웃으며 애와 놀아줄 수 있을까 싶었단다. 그런데 너와 놀다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구나. 네 웃음으로 여러 힘든 순간이 다 지워질만큼 너의 웃음은 특별하단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른 아이들도 같이 귀해졌단다. 다른 아이들의 웃음도 이쁘고, 너를 지켜주고 싶은 것처럼 그 아이들도 곱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란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네가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 느껴져서 고맙고 기쁘단다. 네가 어른이 되기까지 훈육도 해야 해서 항상 친구같은 엄마가 되어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항상 기댈 수 있고,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는 엄마라는 사실을 네가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구나. 엄마도 그에 걸맞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사랑한다, 하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