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긴 하지만 여기도 이상향의 천국은 아니다.

내일은 임원진 회의에 처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실제 데이터를 갖고 모델을 테스트해 본 결과를 보고하는 거라 내용면에서는 긴장할 것이 없긴 하지만 인사해본 적 없는 비담당 임원들도 동석하는 자리에서 발표를 하는 건 어떨런지 모르겠다.

아직도 상사와 임원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다. 상사나 선임과 이야기하다가 부청장과 청장 (둘다 공교롭게 야콥이다.) 을 칭할 때 야콥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야콥이 이렇게 지시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참 불편하다. 뭐랄까… 미스터 할, 미스터 샴부엌 이런식으로 이야기하면 편할 것 같은데 말이다.

대화 중간중간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지난 주 전화로 다른 청 사람과 오랜 시간 통화했을 때 그 사람은 중간중간 내 이름을 불러가며 대화를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좋은 생각이다, 해인.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해인. 나도 네 생각해 동의한다, 해인. 그래서 그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해인. 이처럼 중간중간 이름을 부르니까 나도 애써 마티아스라는 이름을 애써 껴 봤다. 그렇게 하다보면 좀 더 친밀해지는 거 같긴 한데 (앞으로 협업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라 그래서 나쁠 건 없다.) 그러기까지는 입에 붙이려고 노력 많이 해야할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여기도 직장에 이상한 사람 있고, 그래서 갈등도 다 있게 마련이다. 커리어 컬럼에 “상사가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일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직장에 가기 힘들 때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것들이 실리는 게 흔한 일이니 말이다. 물론 그럴 경우 직장에서 문제시 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에서보다 그런 사람을 마주할 확률은 낮지만, 없지는 않다. 옌스는 우리 회사 분위기가 특별하다고 한다. 공공부문인데다가 정치적으로 독립성이 커서 장관이 좌지우지하기 어려운 기관에 전문성이 큰 기관이라 그런 거 같다고 한다. 그 점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사람 사는 곳 다를 것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났는데, 덴마크의 평등에 대해 과하게 왜곡된 정보가 한국에 떠돌고 있는 것 같다. 급여 부분에서 청소부를 하든 의사를 하든 급여가 별 차이가 없다든가 하는 정보 말이다. 그럴리가. 여기가 사회주의라는 건 공산주의라는 게 아니다. 나라에서 많은 부분의 복지를 민간에 맡기지 않고 공공에서 책임지고 떠맡는다는 것이고 그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걷는다는 것 뿐이지,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방식은 자본주의다. 신체노동을 수반하는 직업이나 사무직이나 기본적으로 최저 세전 임금수준이 높고, 직업이 없는 사람을 받쳐주는 사회안전망 덕에 빈곤선에 있는 사람이 적다는 거지 그 사람들이 어떤 조직의 위에 앉아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장기간의 교육이 필요한 전문직만큼 월소득이 높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의 경우 직업전선에 일찍 뛰어들어서 생애 소득 기간이 길어지니까 생애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고연봉자와 소득 차이가 더 줄어들 것이다.

시청청소부가 의사와 결혼을 한다던데 청소부 세후 소득이 월 기준 35000크로나(원화 600만원) 쯤 되고 의사는 별로 안번다 이런 글이 돈다고 이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글이 한인회에 올라왔다. 나도 블로그 여기저기에서 본 글이었다. 개인의 세율은 개개인별로 차이가 많이 나서 별로 안내는 사람도 있지만, 세후 소득이 35000크로나쯤 되려면 노동시장분담금, 개인소득세 해서 거의 50%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한다. 주변에 물어보니 가족들을 포함에 직원들도 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한다. 우리 청도 예산 절감에 대한 압박을 상시 받고 있고 그건 시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예산 문제로 여러가지 서비스를 외주로 돌리는 건 덴마크 공공부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거라 우리 청의 경우 외주로 돌아가 있다. 그리고 청소부문은 난민이나 비서구국가에서 이주온 이민자가 거의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교, 스포츠센터, 호텔, 기차역, 백화점 등 할 것 없이 청소하는 사람은 다 피부색이 어두운 이민자들이다. 간혹 한국의 단점을 강조하려 복지가 강하다고 이야기되는 덴마크를 예로 들어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한국을 못살 나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곳이라고 완전한 천국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직업에 상관없이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굴에 불쾌함을 드러내는 일 없이 (네 따위가 감히? 이런 류의 불쾌함) 말을 섞는다는 점에서 직업에 대한 차별이나 귀천 의식이 드러나지 않는 건 분명하다. 어쩌면 아주 부자가 아닌 한 18세 독립을 하면서 수퍼마켓에서 일하거나 신문을 돌리고, 청소를 하는 등의 아르바이트를 다 해본 경험이 있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아껴야 상대가 나를 아껴준다는 의식이 발로한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도 성공하고 싶어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어하고 내 배우자가 비슷한 백그라운드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보다 그런 사람이 적고, 그걸 표현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니까 그게 표면에 드러나는 일이 없을 지는 몰라도 그런게 아예 없는 게 아니다. (그런 걸 표현하는 경우 교양이 없는 사람이 경우나 교육을 잘 못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가 클 이나라가 앞으로도 살기 좋은 나라였으면 좋겠지만, 여기도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고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잘 사는 부모들이 자식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부모 세대의 불평등아 자식세대로 고착되는 경향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런 사회의 역동성이 사람들의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 주고 사회의 안전성과 시민간의 신뢰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큰 틀이 바뀌지는 않지만 곧 있을 선거가 (나는 투표권이 없지만) 조금이나마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덴마크, 월세가 비싼데 요즘 집 사야 하나?

한국에서만 살다가 해외, 그 중에서도 덴마크로 처음 나와 사는 사람들은 막대한 월세에 놀란다. 이 돈이 다달이 사그라지는 돈이라니!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전세제도라는 특유의 제도와 제대로만 사두면 가격이 올라 수익을 보장해주는 경험을 (직접경험 뿐 아니라 타인을 통한 간접 경험 포함) 한 한국인으로서는 다달이 남한테 가져다 바치는 이 돈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에서 가족에게 돈을 빌리거나 여기에서 다소 무리해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겠다는 경우를 종종 봤다. 빚을 내도 남에게 갖다 바치는 이자비용이라는 건 생기지만 그래도 내가 납입한 것만큼 원금은 남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월세는 내고 남는 내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사실 그건 꼭 맞는 말이 아니다. 월세를 내는 기간 나는 그 집에 살 권리를 갖는다. 그리고 부동산의 가격변동에 대한 리스크를 지지 않는다. 물론 가격 하락에 대한 리스크가 없는 만큼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혜를 입는 것도 없다. 다만 내가 납입한 것만큼 원금이 남는 건 집을 사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이 돈을 어디 다른데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만약 월세와 집을 사는데 드는 이자비용이 비슷하게 든다면 날아가는 돈은 똑같은 거이고, 집을 사는 사람이 원금을 집에 묻어두는 것처럼 월세를 사는 사람이 원금에 해당하는 돈을 다른 자산에 묻어둔다면 달라질 게 없다.

집이 다른 자산에 비해 유동 상승세를 장기간 보일 게 예상이 된다면 물론 집을 사는게 이득일 수 있다. 그렇지만 꼭 그런게 아니라면 집을 사는 게 현명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코펜하겐과 인근지역, 덴마크 주요 대도시 아파트는 가격 상승세가 꺾여서 올해는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 2018년 초나 지금이나 가격이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땐 아파트를 사는 게 현명하지 않다. 자기 현찰이 100%로 사는 거이든 아니든 현명하지 않은데 부채를 끼고 집을 사는 경우 매우 현명하지 않은 결정이다. 부동산 가치의 하락은 내 자본만 잠식할 뿐 부채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큰 집이 필요해지든 어떤 이유로든 이런 상태에서 이사를 해야할 경우 집을 팔고 빚더미에 앉게되면 힘들어진다. 코펜하겐 인근 지역 주택은 앞으로도 연간 1-2%는 상승할 예정이라 한다. 그러니 굳이 사려면 주택을 사도록 하자. 상승장에서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건 내 자본이 커지는 데 있어 레버리지 효과를 주니 말이다. 집이라는 게 워낙 비싼 재화다보니 약간의 상승과 큰 레버리지 효과가 결합되면 내 자산의 빠른 증식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다른 자산의 수익률이 더 좋다면 어떤 게 좋을까? 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상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퍼지고 있는 타이밍이라면 굳이 집을 사야 한다는 압박에서 빠져나와도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내가 집을 사지 않았다 해도 내 돈이 놀지 않고 어딘가에 투자되어 불어나는 거니 월세 끝에 남는 게 없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월세를 내고 살다가 진짜 마음에 드는, 운명같은 집이나 아파트를 만나면 그때 살 수 있고 말이다. 굳이 집을 사야 한다는 압박에, 사람들이 우리만큼 이사를 자주 다니지 않아 좋은 집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닌 덴마크 주거용 부동산 시장에서 섣불리 안좋은 부동산을 사는 악수를 두는 것도 피할 수 있고 말이다.

덴마크에는 스웨덴 기업인 Nordnet을 통해 저렴하게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한국 주식은 거래가 안되지만 유럽 및 미국 시장 주식은 거래가 가능하다. 어쩌면 일본이나 싱가폴, 홍콩 상장 주식은 거래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빚내서 주식을 하는 게 아니라면 주식의 일중, 주중, 월중 등락에 민감해 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등락폭이 적고 꾸준히 상승하는 종목에 투자할 수 있다. 채권보다는 리스크가 아무래도 크니까 안정적 종목도 수익률이 제법 되는 편이고.

한국에서 주식은 거의 해보지 않았지만 별로 번 것도 잃은 것도 없이 정리하고 끝났었는데, 덴마크 나와서 지난 3년간 꾸준히 주식투자를 해온 결과 가중평균 수익률이 30%가 넘게 나왔다. 부부가 반씩 나눠서 저축하듯 은퇴 자금 확보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꽤나 쏠쏠하다. 물론 지금의 주식시장 활황은 저금리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어 금리 인상이 되면 주식시장은 조정을 받을 게 거의 분명하다. 그런데 주택시장도 금리가 오르면 크게 영향을 받을 거다. 다만 레버리지의 유무와 투자 시기, 투자시점의 가격 수준 등에 따라 가계가 받는 영향이 달라질 건데 거래 비용과 거래 기간, 여러가지 거래에 따른 부수 비용 등을 감안하면 지금같은 불확실성의 시기에 꼭 주택투자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주식투자가 주택투자보다 나은 투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서 “내집 장만”이라는 문화적 고정관념을 그대로 갖고 와서 이 나라의 월세 제도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덴마크 석사유학 후 정착이민?

덴마크에서 살려면, 덴마크 유학, 덴마크 이민… 요즘 눈에 띄는 유입검색어다. 덴마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나 했는데 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덴마크에 사는 건 어떤가? 난 덴마크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다. 다만 지금 좋아하는 덴마크의 모습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여기식의 삶의 모습은 현지 여건에 맞춰 살기 적합한 형태이다. 여기의 장점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도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살면서 좋다고 느꼈던 걸 여기로 다 갖고 오면서 덴마크의 좋은 점을 같이 취해서 살 수 있고 그런 건 없는 거다. 그게 가능하려면 엄청 부자이면서 여기 비자를 획득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아니 그래도 한국에서 좋았던 모든 것을 여기서 그대로 누릴 수는 없다. 돈으로 대접을 사는 게 힘드니까. 한국식 고객의 까다로움을 갖고 오면 스스로도 피곤하고 경멸의 눈길도 받을 수 있다.

유학으로 이민을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건 아닌데 꽤나 챌린징한 것 같다. 그전엔 좀 상대적으로 쉬웠는데 시간이 갈 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덴마크어가 안되면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서 더 그렇다. 영어만으로 취직을 하려면 글로벌 기업에 취업을 해야하는데, 대부분 아주 유창한 영어실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대기업이 채용하듯 대규모로 채용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영어를 모국어수준으로 사용하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그런 자리를 지원하니까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따라서 취업 가능성을 올리려면 덴마크어를 활용해서 일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게 유학기간 내에 학업과 병행해서 이 수준으로 올리기엔 대학원 학업 강도가 상당히 세다.

여기 사람에겐 취업에 있어 학점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닌 거 같은데 유학 온 외국인에게는 학점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덴마크에서의 학업 후 유관분야로 신입 자리를 노리는 경우에는 더 그런 듯 하다. 내 한국에서의 이력이나 학력의 수준을 이들이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덴마크 학교내에서 보여주는 경쟁력으로 기존의 성과도 같이 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그러니 덴마크어 공부하면서 학업을 잘 관리한다는 게 쉽지 않다. 나도 학교 다니는 와중에는 덴마크어를 손에서 거의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냥 등하교길 신문 읽고, 라디오 듣고, 주말이나 저녁에 아주 간혹 티비 보고, 집에서 남편이랑 이야기하고 그런 거 외에는 말이다. 학원도 잠깐 다녀봐도 학교공부에 치여서 숙제를 몇번 못하고 자꾸 수업도 빠지다 보면 그만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원래 go against all odds, 불도저 같은 사람이다, 실패도 상관없이 도전하다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라고 말할 유형의 사람이라면 사실 어떻게든 여기서 자리잡고 잘 살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그런 타입이 아니라면, 녹록하진 않다. 나처럼 처음 일자리를 잡고 여기에 와서 덴마크어를 공부할 시간도 갖고, 현지인인 남편과 결혼해서 학비 없이 대학원 다니고 (그냥 유학생은 돈 내야한다.) 몇개월 실업기간동안 버틸 돈도 있고 직장다니고 있는 남편이 있어서 비빌 언덕이 있으면 좀 모를까.

오늘 생일인 직원이 있어서 그 직원이 구워온 초콜렛 케이크를 먹으며 20분정도 담소를 나눴는데, (생일인 사람이 케이크나 초콜렛이나 간식을 갖고 와서 나눠 먹으며 축하를 받는 기묘한 문화가 있다.) 나 채용할 때 같이 채용되어 들어온 다른 덴마크 직원 두명은 인성 검사만 받았고, 나만 적성검사(라 하고 아이큐 검사 비스무레한…)와 인성검사를 다 받았더라. 누군가는 적성검사만 보고, 누군가는 인성검사만 보고, 또는 다 보는 사람도 있는데, 채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조금 확인해보고 싶은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개별로 필요한 시험 타입을 정해서 알려준다고 한다. 오늘 보아하니 전체 센터에서 우리 청에 들어오기 위해 적성검사를 한 건 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인적성 검사는 우리 청에서 우리 센터가 가장 많이 활용한다고 한다. 농담으로 “내 지능에 의문을 가졌군! 다행히 내가 살아남았네!”라고 말했는데, 돌아서서 생각해보는데 외국인에게는 진입장벽이 알게모르게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덴마크 직장에 첫 발을 들이고 나면 그걸 기반으로 해서 다른 덴마크 직장으로 이직하는 건 수월해지지만 이런 진입장벽으로 인해 첫 발 딛는게 아무래도 더 어려울 수 있겠다. 집에 와서 옌스랑도 이야기해보는데, 아무래도 외국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일하는지 서로 잘 알지 못하니 불안함이 더 크고, 확인해보고 싶은 게 많지 않겠느냐 한다.

결론은 아무런 비빌 언덕 없이 2년동안 석사해서 바로 취직하는 걸 머리에 그리고 오는 유학이라면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다. 박사자리 오퍼받고 오는 건 다른 이야기다. 그건 한국과 달리 취직해서 오는 거니까. 물론 박사자리가 끝나서 무조건 스테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석사보다는 훨씬 높은 확률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월급도 아주 풍족하진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없을 정도로는 나오니까. 그리고 학계는 덴마크어가 모자라도 장기적으로 덴마크어를 배우면서 정착하기에 괜찮은 국제적인 환경이니까.

이 나라 사람들 영어 참 잘하는데, 그래도 모국어가 더 편하고, 영어가 그닥 안편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일을 하는데 굳이 영어로 일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 고객 업무가 있을 경우 고객을 불편하게 하기 싫을 거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 한국말 못하는 사람 안뽑듯이 여기도 덴마크어 안되는 외국인은 잘 안뽑는다. 영어를 잘하면 덴마크어 배우기 많이 수월해지지만, 그래도 분명 다른 언어도 배우는 데 시간이 또 걸린다. ‘덴마크 사람들이 영어 잘 하니까, 대학원 대부분의 과정이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거기서 석사 유학하고 나면 취직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한국에서 다른 나라 외국인이 한국어 없이 우리나라에서 취업하려는 것과 진배 없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만든다.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라기에 유학 이민을 꿈꾸는 사람일 경우라면 이런 이유로 매우 비추라고 말해주고 싶다. 올 경우 이런 상황에 대한 인지 후 엄청 노력해서 살아남을 각오를 하고 올 것을 추천한다.

힘들었던 체류 초기시절. 지금은 덴마크가 좋은 이유

5일의 시간이 어느새 흘러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휴가로는 딱 좋은 기간. 집에 돌아가고 싶은 이유 중 가장 큰 건 하나가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밤에 잠에 들기까지 우는 것도 그렇고 우리와 같은 방에서 자니까 아침 너무 일찍 일어나서 놀고 싶어해서 더이상은 휴가가 힘들다. 애가 좀 클 때까진 긴 여행은 힘들 듯 하다.

어제 저녁엔 시어머니가 여기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셨다. 시누가 남편 주재기간동안 두바이에 사는 건 돌아올 기약이 있는 건데 내가 여기에 사는 건 뿌리를 내릴 생각으로 사는 거니 그 무게가 다르니 간혹 내가 어떤 느낌을 갖는지 궁금하시단다. 그래서 생각을 과거로 더듬어가봤다.

지금이야 하나도 태어나고, 시댁 가족과 관계도 훨씬 돈독해져가서 옌스네 외가 가족이고 친가가족이고 가깝게 지내는데다가 내 친구도, 내 일(직장은 아니더라도)도 있고, 말이 통하니 더이상 내가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고 지낸다. 그래서 그런가 외국에서의 삶이라 힘들다거나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지가 꽤 되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힘이 들긴 했는데…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 (그래서 이렇게 글도 써서 가록으로 남기는 거지만) 다행인 건, 힘든 기억을 잊는다는 거다. 말이 잘 안통해서 가족 모임이나 친구 모임에서 애매하게 웃는 것도 웃지 않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나 혼자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면서 너무 딴짓하지 않는 척 보이게 앉아있었던 게 참 힘들었던 거 같다. 나를 위해 영어로 바꿔주는 것도 큰 모임에선 한계가 있었으니까. 물건 하나 사는 것 조차 구글 번역기를 돌려야 했을 때,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점원을 발견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때, 뭘 물어볼 때 누구한테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줄을 서야 하는 건지 아닌지… 진짜 사소한 것을 알 수 없어서 허둥지둥댈 때 힘들었다. 내 친구가 별로 없었을 때, 밤에 시차로 인해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을 때도 힘들었다. 이웃들끼리 가까이 지내는 거 같은데,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말도 잘 안통해서 듣는 거 하나하나가 긴장되는 순간이었을 때 힘들었다. 머리로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편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그리웠을 때 힘에 부쳤다.

그런데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다. 5년은 그런 시간인가보다.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내 가치관도 바뀐다. 예를 들면 결혼에 대한 생각. 애를 낳고 보니 결혼은 그냥 서류일 뿐이다 라고 했던 옌스의 말을 이해하겠다. 우리야 비자 문제로도 결혼이 필요했지만 동거를 하다가 애를 낳고서야 결혼을 하는 (애가 생기면 혹여나 있을 지 모르는 일들로 인해 결혼을 하는 게 여러모로 수월한 경우가 많다.) 경우가 엄청 많은데, 이제는 그게 이해가 간다. 이런 걸로 예를 들며 서양사람들은 성에 개방적이다거나 문란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이야기같다. 어차피 연애를 하면서 성관계를 갖는 면에 있어서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매한가지인데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없는 척 한다는 점… 그래서 모텔 대실제도 생기고 성을 숨기다보니 왜곡된 성관념을 갖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건 오히려 동양이 훨씬 성에 몰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무튼 결혼이 제도적인 장치에 불과하고 가장 남녀사이를 강력하게 묶어주는 건 둘간의 사랑과 우정, 자녀라는 생각이다. 자녀는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고, 자녀가 있고도 헤어지는 사람도 있으니 자녀가 관계를 묶어주는 존재라는 건 아닌데, 한번 누군가와 자녀를 갖게 된다면 아무리 헤어져도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묶어준다는 이야기다.

덴마크에서의 삶이 좋은 건 아주 시내 한복판에 사는 거 아니면 내가 어렸을 적 느꼈던 이웃과의 정을 아직도 느낄 수 있고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과도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바쁨과 짜증이 스며나는 가식적 친절이 아닌 좀 수더분하고 거칠더라도 마음이 느껴지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점원들이 있는 상점이 좋다. 동네에 아이들이 어른 없이도 자기들끼리 놀이터에 나와서 모여 놀 수 있는 안전함과 유모차를 몰고 거의 모든 곳에 비난의 눈길 없이 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좋다. 차보다 자전거가 대우받고 자전거로 왠만한 곳에 갈 수 있도록 도시가 아담한 사이즈인게 좋다.

결국 느낀 건 언어가 중요하다는 거다. 영어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만큼 덴마크어 없이도 살 수 있는 이곳이지만, 언어가 열리면서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어지고 나면 그 전에 차가운 것 같던 사람들이 더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여주고 생활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준다. 못알아듣는 대화가 줄어들 수록 내가 나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고, 꾸밈이 없어지다보니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더 드는가보다.

직장까지 구하고 나면 정말 사회의 일원이 된 느낌을 강하게 받겠지. 한번에 하나씩 하자.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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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해안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들고 산책을 나섰다. 같은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간 커플이 마침 같은 해안가에 앉아서 아이스림을 먹고 있네. 

덴마크가 조금 더 열린 세상이 되길 바라며

대학원 친구가 생일이라며 바베큐 파티에 초대했다. 오후 세시에 초대했으니 그때부터 준비하고 뭐하면 대충 5시는 되어야 시작할 게 분명했다. 우리 대학원 친구들은 대충 그러니까. 하나와 집안일, 식사준비 등을 생각하면 저녁까지는 있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가까운 친구라 축하도 해주고 싶었고 해서 옌스에게 하나를 보라고 하고 페달 힘차게 밟아 후딱 다녀왔다. 놀라울 것 없이 역시나 두명을 만나고 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한명 더 만나고 싶은 친구는 늦게 온다 해서 다른 기회를 노리기로 하고.

공부를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라 그런가? 뭐랄까… 잘 모르겠는데 편하다. 한참 어린 친구들인데 그런 생각도 안하게 되고. 가정이 있고 한 탓에 저녁에 파티가고 술마시고 안하다보니 수업시간 외엔 비자발적 아웃사이더를 택했지만 그래도 뭔 일 있으면 끼워주는 친구들 덕에 완전히 아웃되지는 않는 게 다행이다.

스페인에서 온 친구 한명은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열심히 하는 열정 많은 친구인데, 직업을 찾기가 힘이 들었단다. 더이상은 덴마크에 질렸다면서 내일 떠난단다. 한동안 소식을 나누지 못했는데, 안타까운 소식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졸업한 친구들 모두가 취직을 한 건 아니지만 그녀가 취직을 못한 건 사실 좀 안타깝고 의아하다. 아직 내가 취업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아니니까 뭘 알 수는 없지만, 글로벌 기업 몇군데나 직종 특성상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덴마크어는 어쨌건 필요한게 분명하다는 것이 다른 친구들 의견이다. 그 친구는 지난 겨울 물어봤을 때 직업을 구하면 덴마크어를 공부하겠다고, 이 불확실성속에 덴마크어에 시간을 투자하기 아깝다고 했었는데, 그게 이유였을까?

우리 프로그램에는 비덴마크 EU 학생이 많은데, 외국인에게 갈수록 적대적인 정책들이 수립되는것에 다들 불편함을 표한다. 사실 살면서는 아시아인으로서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인 정서를 평소에 겪기는 어렵다. 인종차별이 여기에도 없겠냐만은 그게 아시아인이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 특히 무슬림을 향해있기에 평소에는 별다른 것을 느끼기 어렵다. 주변 사람들은 이건 무슬림을 향한 정책이라고, 전반적인 정서를 담은 건 아니라고 하지만, 경제가 좋은 상태에서도 이런데 경기가 안좋아지면 이런 정책 기조가 사람들에게 반 외국인 정서를 키우는 걸 더욱 자극하지 않을까?

덴마크에서의 내 삶에 만족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 시민권 시험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시험 문제를 풀어보니 너끈히 통과할 만큼 사회 제도와 정치, 경제에 관심을 갖고 언어도 공부하며 사회통합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만큼 이민자로서 남의 나라 땅에 살면서 무슨 소리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괜히 옌스와 하나에게 부끄러운 아내,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물론 옌스가 그런 걸 원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나혼자 그런 것일 뿐이지만. 그리고 주변 이웃이나 내가 만나는 길에서 랜덥하게 만나는 덴마크인들조차 다정하고 열린 사람들이지만. 아무튼 요즘과 같은 반외국인 정책기조는 은근히 불편하다.

작은 나라로서의 불안함을 이해한다. 우리도 한국에서 똑같이 느끼는 부분이니까. 그럴 때 이런 쇄국정책으로 불안함을 해결하려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런게 좋지 않은 건 역사를 통해 배울만큼 배우지 않았던가? 뭔가 다른 정책이 필요한 건 아닐까? 아… 최소한 지금의 외국인 통합부 장관만큼은 정말 아닌거 같다.

여기서 살려면 덴마크어를 해야하니까, 그리고 내 애가 한국인이자 덴마크인이고 나도 여기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으니 덴마크어를 계속 열심히 할 것이지만, 여기처럼 영어 잘 하는 나라에서 꼭 덴마크어를 유창하게 잘 해야만 지원자격이 되는 회사들이 대부분인 것은 매우 안타깝다. 스페인에 가서 잘 자리를 잡을 거라고 믿는다. 덴마크에서 그녀가 직업을 굳이 찾으려고 했던 건 다른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였으니까… 굳이 그에 억매이지 않는다면 그녀의 모국에서 원하는 다른 일을 분명히 찾을 거다. 오늘 못봐서 아쉽네…

덴마크에서 임산부가 된다는 것은?

옌스는 화요일이면 저글링클럽에 나간다. 나도 가족으로 멤버 등록은 되어있지만 세 번 가본 게 다이다. 스케이트 타다가 허리에 약간 무리가 간 이후로는 이도 줄였고,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바람이 거센 날이 많아지며 카약을 많이 못타고 있는데, 그래서 저글링클럽 가는 날이 무척이나 신나고 기다려지는가 보다. 188cm의 키에 74~76kg의 체중을 항상 유지하는 옌스는 모든 옷이 76kg을 기준으로 맞춰져있어서 그보다 살이 찌는 건 참을 수 없어한다. 그런데 요 며칠전 한동안 안재던 체중을 재더니 77kg이라면서 다이어트를 선언했다. 간식도 사오지 말란다. 난 간식을 사면 오랫동안 아껴먹는 편인데, 옌스는 있으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애초에 사오는 양으로 간식을 컨트롤 한다. 그러나 내가 사온 간식을 옌스가 다 먹어버리면 난 몇 입 먹지도 못한 탓에 또 사오고, 옌스가 또 먹고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나보다. 나야 뭐 다시 사오면 되니까 상관없었는데, 먹는 중에는 기쁜 마음으로 먹지만 살이 찌고나니 스트레스를 받았더라. 사실 보기엔 76~77kg가 가장 좋아보이는데, 본인의 지향점이라는 게 있으니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지. 뱃살 나오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는 남편인 것은 불평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옌스와 결혼할 때, 결혼했다고 생활습관 갑자기 바꾸고 운동을 안하거나 건강하지 않게 폭식하며 살찌지 말기를 당부받았다. 난 누가 강요하는 건 싫어하지만 약간은 관리를 받는 것을 좋아하고 (동기부여가 된다고나 할까? 혼자서 마음 독하게 먹기엔 마음속에 게으름의 악마가 항상 살고 있어서…) 살 안찌는 건 나도 바라는 바라 열심히 체중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임신하자마자 내가 두명분 먹을까봐, 임신했다고 두명분 먹는거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둘 다 뭘 하더라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에 기초해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이야기가 섭섭하지 않았다. 실제 덴마크 보건당국 뿐 아니라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임신 기간 중 칼로리 추가 필요 섭취량을 초중기에는 150kcal, 후기에 250kcal 정도 로만 권고하고 있다. 이 또한 당근, 토마토, 사과, 호밀빵, 치즈, 요구르트, 햄 등 건강한 간식으로 조합해 먹으라고 하고 있다. 살면서 항상 건강하게만 먹고 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매일 건강하게만 먹겠냐만은 최대한 건강한 식품의 조합으로 평소 섭취량에서 크게 늘리지 않는 식으로 체중을 관리했다.

임신 기간 중 체중을 매일은 아니고 며칠 간격으로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기록해서 그래프로 항상 업데이트해 보고 있다. 어떤 패턴으로 체중이 늘어나는지 관찰하기 위함이다.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못먹으면 스트레스가 되서 애한테 더 안좋다는 이야기를 인터넷 맘카페 등에서 자주 접했는데, 의사에게 한번 물어봤더니 그런 건 그냥 핑계고 애를 핑계로 많이 먹어 과도하게 체중이 느는 것은 본인이나 애에게 좋지 않다고 단칼에 잘라 이야기하더라. 나는 평균체중에 속하니 12kg 정도 목표로 보고 관리하면 된다고하며 일일 기준으로는 정말 조금씩 변하는 것이니까 관리 잘하라고 했다. 특히 나처럼 만 35세를 넘은 고위험군 임산부는 임신중독증을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 모두 게을리하지 말라고…

내 질문에 대해 의사가 직접 설명해준 내용과 읽어보라고 권해준 책자와 웹사이트 등의 정보를 종합해서 운동에 대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임신전의 활동에서 크게 조절을 할 필요가 없고, 다만 몸에 큰 충격이 오는 격투기나, 테니스, 승마 등을 피하고, 몸의 체온을 과하게 올리고 심장박동을 심하게 올리며 45분 이상 지속해서 하는 운동 (격한 달리기 등) 도 피하라고 했다. 중기 넘어서 배가 많이 무거워지면 바로 누워하는 운동 종류는 태아와 하반신으로 가는 혈류량을 감소시키므로 이 또한 피해야 한다고 한다. 이 시점부터는 크런치 형태의 복근운동은 피해야 한다. 혈류량 문제 뿐 아니라 복직근 이개와 같은 부작용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허리를 숙여 무거운 것을 들고 하는 것은 안되지만, 어느정도 무게가 있는 장바구니를 무릎을 굽혀 들어올리는 것은 괜찮다고 한다.)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가장 안전한 운동 중 하나로 권고한다. 물론 넘어지면 이야기가 다른데, 이미 자전거가 익숙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다. 안장에 엉덩이가 퉁퉁거려서 태아에 충격이 간다며 우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 정도 충격은 태아에 위험을 유발할 정도의 충격과 거리가 매우 멀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노면이 거친 경우는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페달에 체중을 실어 타는게 정석이고,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타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하기에 괜찮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초기 유산에 대해서는 어떤 특별한 사고가 있어서 그런게 아닌 이상은 유전적으로 크로모좀에 이상이 있어서 1/4~1/5의 확률로 흔히 발생하는 일이기에 산모의 몸 관리 방법에 따른 게 아니므로 편히 생활하라고 한다. 사실 나는 이 말이 임신 기간 중 삶을 정말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생활에 대해서 실제 구체적으로 뭘 해도 좋고 안좋은지가 잘 정의되어 있다. 임신 기간 중 마신 총 술의 양을 따지자면 샴페인을 기준으로 2잔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반잔 씩 다섯번 정도 마신 것 같으니 말이다. 1주일에 술 한잔 (주종별로 한 잔의 기준이 따로 있었다. 주종에 상관없이 알콜 컨텐트를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양을 기준으로 보건 당국이 한 잔의 양을 정하고 있더라.)은 무방하다고 한다. 커피도 의학적으로 태아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밝혀진 바가 없으나, 성인에게도 카페인 양을 제한하도록 권고하는 만큼 산모도 하루에 두잔정도 마셔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달리 감기나 독감에는 별도로 약을 처방하지 않으니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처방이 필요하다고 하는 약은 그걸 먹는게 왜 안먹는 것보다 좋은지 설명을 해주며 산모에게 불필요한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한다. 예를 들면, 얼마전 처방받은 치질약이 그렇다. 약간 이물감이 있는 수준의 치질은 최대한 관리하며 버티도록 하고, 중기 이후 통증과 출혈을 수반한 치질은 관리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나는 상태가 안좋아지면서 좌약을 처방받았는데, 임신 초기에 이 약을 사용하는 경우 구순구개열을 유발하는 임상사례가 있는 약이었다. 의사와 상의를 통해 최대 복약기간과 중기 이후에는 부작용을 유발한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듣고 그냥 마음의 불편함 따위는 지워버리고 복약하기로 결정했다.

의사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을 보인 부분은 임신중독증이었다. 사실 나도 그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평소 저녁이면 몸이 전반적으로, 특히 하반신이 좀 붓는 경향이 있었던지라 임신을 해서 그게 심해지면 어쩌나 했었기 때문이었다. 사지 말단의 부종을 막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근력운동임을 평소의 부종 문제로 알고 있었기에 종아리는 플렉스-포인트, 허벅지와 둔부는 스쿼트, 사이드 스쿼트로 관리했고, 팔과 손목은 서서 벽에 기대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발레의 팔동작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단련했다. 체중이 증가하면서 고관절에 부담이 늘어 기존에 있던 고관절 인대 부상이 다시 안좋아지기 전까지는 주 1회 발레도 했다.

사실 이런 운동이 없었으면 체중관리도 안되었을 것이고, 안그래도 무거워진 몸을 지탱해줄 근육을 잃게 되어 많은 관절 문제와 혈액순환 장애를 겪어 부종 등도 겪었을 것이다. 또 출산 이후 육아에 필요한 근력도 부족해 산후통증도 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임산부를 최대한 활동을 줄이게 하고 안정만을 추구하게 하는 게 사실은 임산부의 고통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는 게, 이런 일련의 과학적 사실과 내 개인적인 경험을 종합한 결론이다.

입덧으로 4kg 체중감소를 경험하며 일련의 활동 자체를 거의 할 수 없던 시기, 막대한 근손실로 이를 일부나마 회복하느라 이후 고생을 했는데, 그런 노력을 한 게 절대 아깝지 않았다. 간혹은 운동하면 배뭉침이 느껴진다고 하며 그러면 운동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사실 배뭉침은 브랙스턴-힉스 수축운동으로 임신 기간 중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현상이고 한시간에 네번을 넘어선 반복적인 수축이 조산의 신호일 수 있어서 주의해야 하는 것이란다. 이는 자궁이 출산을 위해 수축운동을 연습하는 것이므로 애가 스트레스를 받는니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부부관계 후 겪게 되는 브랙스턴-힉스 수축운동이 실제 출산을 유발하는 경우는, 이미 자궁경부가 짧아져서 조산기가 있거나 이미 만삭이 되서 태아가 출산의 준비가 된 경우에나 해당하기에 그걸 염려해 부부관계를 회피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초반에 마음을 좀 불편하게 했던 것은 영양제 복용이었다. 엽산과 철분은 여기서도 꽤나 강하게 권고하는 부분이다. 시어머니는 자기 때는 엽산이 뭔지도 몰랐다고, 그냥 자연에서 녹황색 채소를 통해 섭취한 걸로 떼웠지 일부러 먹지 않았다고 하셨다. 나는 임신 초기 심한 입덧과 변비 등으로 엽산이나 철분 등 중요 영양보충제를 먹다 안먹다를 반복하다가 중기부터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변비 부분은 2주만에 볼일을 보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한 이후로 의사의 상담에 따라 마그네슘제를 매일 500mg씩 먹고 수분 섭취량을 늘리면서 좋아졌다. 내가 경험한 치질은 변비때문은 아니었고, 순전히 증가한 복강내 압력때문이었다.) 다행히 2차 기형아 검사 시점에 신경계 결손 등의 장애가 발견되지 않아서 일말의 죄책감을 털을 수 있었다.

여기에선 별도로 태교라는 이야기를 안하는 것 같다. 내가 못들었거나. 그냥 다들 자기 하던 일 하고 생업에 종사하고 간혹 태담이나 하지 태교에 대해서는 별다른 내용을 보지 못했다. 3cm쯤 되는 두꺼운 임신 책자에서도 일련의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 나도 별도의 태교는 한 적이 없다. 학교 생활 및 덴마크어 공부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클래식이야 밤에 자기 전에 오페라를 틀어놓고 잠이 드니 이미 충분히 듣는 것고 있고 해서 평소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물론 실제 남들과 다른 임신으로 유의를 해야하는 산모들이 있고 (산모의 특이점, 다태아 등 태아의 특이점, 조산기가 있거나 기타 질병이 있는 산모 등), 그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권고사항 등이 있지만, 대부분의 건강한 산모들은 최소한 중기까지는 그냥 일상생활을 무리없이 해도 된다고 한다. 그게 사실 임산부를 위해, 태아를 위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임산부보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참견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임신을 하니, 사실 별도의 배려를 받는 거 없어도 난 훨씬 좋았다. 이제 예정일까지 2주 반 정도 남았는데, 다음주에 있을 기말고사도 잘 보고 출산을 하면 정말 더할나위없이 좋은 임신기간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다. (4kg 줄었다고 하면 심한 입덧이었나보다고 하는데, 하도 외할머니와 엄마의 최악 입덧 경험담을 듣고 자란 탓인지, 힘은 좀 들었지만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출산이 두렵지 않다.

어제 사람들과 만나서 점심을 했다. 중간에 출산이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 답은 아니라고 했는데, 아직 출산이 임박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아니면 잘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출산이 무섭지 않은 이유는 그런 게 아니다. 사실 그 순간엔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냥 출산이 임박한 순간에도 그 고통이 무섭지 않을 거란 것은 안다. 물론 긴장은 되겠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그런걸까?

고통은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물리적 고통 자체를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 어떤 기약없는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두려워할 것 같다. 그러나 누구나 감내할 통과의례적 고통으로 어떤 특정 기간만 견뎌내면 되는 고통은 괜찮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고통이 아니라 어떤 결과다. 내가 정신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어떤 결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거나 하는 종류의 결과 말이다.

물론 출산과정 중 애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마음 한 켠에조차 없진 않다. 그러나 난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고, 사람들의 직업윤리를 믿고, 어떤 실수가 있더라도 그걸 만회할 정도의 상황이 되리라 믿기에 그 두려움이나 불안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럴 확률 또한 낮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삶이 한결 쉬워진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그게 나이브한 생각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믿음은 그런 거 아니던가? 타인이 생각하는게 중요하지 않은 것.

덴마크 뉴스 헤드라인 – 2016/09/28

Hvad er en ‘rigtig’ mor egentlig?

‘진정한’ 엄마란 정말 무엇인가?

기사 링크: http://www.b.dk/nationalt/hvad-er-en-rigtig-mor-egentlig  (Berlingske)

약 2주 전에 한 로펌의 여변호사가 출산 몇시간전까지 이메일을 쓰고 일하다가 일주일만에 일선으로 복귀한 기사가 베얼링스커 1면을 장식하며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른 적이 있다. 어느 나라나 아이를 양육하는 문제에 대해서 엄마의 전통적 성역할을 강조하듯이 덴마크 또한 그렇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보육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웨이팅 리스트가 긴 보육원을 제외하면 6개월부터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엄마는 직업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 전업주부로 눌러앉는 것은 사회의 복지시스템에 커다란 짐이 되기에 (덴마크 사회복지 시스템은 심신이 건강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일을 하며 세금을 낸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난하는 시선도 있지만, 엄마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아이를 남편이나 오페어(Au pair, 입주 가정부)에게 양육의 상당부분을 맡기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시선도 존재한다.엄마가 야근 열심히 하고, 애를 보육원에 일찍 맡기고, 늦게 픽업하면 비난의 시선이 꽂히고, 남편에 대해서는 이중적 잣대가 적용되어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인다. 결국 여기도 수퍼맘을 원하는 것이다.

해당 여변호사의 열혈 근로의욕에 대해서 진정한 엄마가 아니라는 평론도 실리는 등 뜨거운 토론이 되고 있는데, 오늘 기사는 오후스와 코펜하겐을 원거리로 통근하며 일주일 2회는 코펜하겐에서 지내되, 근로시간을 주 31시간으로 단축해 금요일은 집에 머물며 애들을 보육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에 대해서 다뤘다. 그녀의 경험담과 의견을 통해, 양육이 부부 양측의 합의에 의해 잘 조율되고 애들이 만족한다면 상관 없는 일이 될 것도, 자신의 이런 근로 방식에 대해 비난의 눈길이 쏠리는 현상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해당 여변호사처럼 열혈로 근무를 해야 커리어 우먼이 된다고 프레이밍하는 것도, 그렇다고 엄마가 애를 시스템이 수용해주는 대로 일찌감치 보육원에 보내고 일을 한다고 진정한 엄마가 아니라고 프레이밍하는 것도 모두 반대한다. 이런 때 보면 덴마크의 성평등은 진정한 의미의 성평등이 아니라 사회가 기반으로 설계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도 세금을 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를 가능하게 하려 남성이 양보를 조금 한 강요된 성평등의 면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진정한 의미에서 애를 키우는 것은 애가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18년이다. 그 외에는 더이상 키우는 게 아니라 같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족으로 함께 살고, 서로 기대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18년의 시간동안 나는 내 인생의 일부분을 희생해야 할 것이고 그게 힘들 것이지만 그 대신 얻게되는 기쁨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그렇지만 양육이 내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렇게 큰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면, 난 내 인생의 공허함을 느낄 것임을 내 성향으로 보아 충분히 알고 있으며, 나중에 그러한 희생이 내 아이에게 짐으로 작용할 것 또한 알기 때문이다. 내가 투사가 되어 페미니즘의 선봉에 서거나, 남편에게 나의 커리어 성공을 위해 당신이 무조건 양보하라 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편을 위해 내 커리어를 마냥 희생하고 싶진 않다. 솔직히 보면 남편보단 내가 권력욕이나 사회적 성공 욕구가 더 크기에 나의 희생이 효율적이지도 않다.

우리보다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진보적인 이 나라도 아직도 나아갈 길이 멀다. 오늘 기사에서 인터뷰한 여성이 언급한 것중에 크게 공감한 부분이 있다. ‘왜 남편이 잘 하고 있어도 내가 떨어져 있으면 애들이 불쌍하다고 하는 것인가? 우리 남편은 좋은 아버지이고 남편이 비는 날 내가 그의 빈자리를 잘 메우듯 그 또한 나의 빈자리를 잘 메울 수 있는데. 그리고 내가 떨어져 있음으로 애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 불쌍한 건 내 아이들이 아니라 나다.’

 

간혹 읽기 또는 공부하기가 싫어지는 이유

간혹 읽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물론 날이 좋아 놀고싶은 마음이 들어서인 경우도 있지만, 그런걸 떠나서 읽기위해 앉는 자체가 싫은 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왜 그런지. 지금처럼 읽을 거리가 많은 때 미뤄봐야 돌아오는 건 스트레스일 뿐인데.

두려움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다 못 읽을까봐. 읽어도 충분히 이해가 안갈까봐. 또는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텍스트가 설득력있게 다가와 혼란에 빠질까봐. 두려움의 근원은 다양하지만, 결국은 두려움이 나를 막는다. 얼마전 읽은 글에서 두려움을 나의 일부로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서 대항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라고 했는데, 내가 읽기 싫은 게 아니라 두려움이 나를 못읽게 하는 것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인 것을 또 한번 알게 되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내가 평생 싸워야 할 괴물이다.

난 완벽주의자로 살아왔다. 내가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고, 완벽하게 하지 못할 것 같은 건 쉬이 포기했다. 그렇게 하면 완벽하지 않은 내가 내 선택에 의해 이런 모습으로 구현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 학부 성적표가 A와 C로 대부분이 채워진 것을 들 수 있다. 딱 봐서 A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과목은 재미가 없다는 말로 포장하며 관심을 주지 않고 최소한의 것만 해 C가 나오게 하는 것이다.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는 이유를 들며 포기의 여지를 주었다. 이러한 완벽주의는 일종의 정신 질환이다. 물론 아주 심각한 완벽주의를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는 것이고 내 완벽주의의 정도가 딱히 심각한 것이 아니기에 실제 병으로 분류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러한 성향이 있음을 언젠가부터 인지해왔다.

때론 이 완벽주의로 삶의 모든 분면에서 버둥거릴 땐 삶이 참 힘들어졌다. 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데 꽉 쥔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 흘러내리면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해 하지 말라는 말이 이런 순간에 큰 위안이 된다.  발에 쉬이 걸려차일 듯 널리고 널린 흔한 말일지언정 정말 중요한 말이다. 완벽을 추구하며 결과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도전하고 노력해서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첫 시험 이후로 줄곧 12점을 받아온 터라 이젠 잃을 것만 있는 것 같고 두려움 마저 든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옌스는 꼭 최선만 다해서 네가 네 스스로에게 떳떳하면 되지, 결과에 연연해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느냐고 한다. 거기에 내가 최선을 항상 다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고 이야기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힘들지 않은 삶이 어디있냐고. 삶은 항상 힘든 것이라고. 또한 그게 당연한 것이라는 걸 알면 고통스럽지 않거나 그 고통이 덜해진다고. 삶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 힘든 일이 생기면 그게 이상한 거고 마음이 고통스러운 건데, 누구나에게 삶은 힘든 것이라 생각하면 그건 당연히 다뤄야 하는 일이 되고, 고통스럽지 않다고.

옌스의 말과 어떻게 보면 같은 맥락이기도 하고, 다른 맥락일 수도 있는 말인데, 어디서 본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소화한 바로는 이렇다. 사회적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 같은 건 내가 노력한다고 꼭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순간에는 참 불공평한 것 같다는 분노가 들 때도 있지만, 그거에 분개해봐야 달라지는 것이 아닌 것이 참 불공평하지만 그게 현실이라고. 그러한 불공평함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보다 공평한 방향으로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불공평함에 싸우는 것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현실을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역할이 있기에 그 불공평함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때로는 그 불공평함이 나로 하여금 타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부여하기도 하고. 이 글귀를 읽고 타인에 대한 부러움이나 그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자격지심 등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을 잊고 간혹 이런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이 많다. 내가 노력을 했는데도 안될까봐, 그러면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아니면 스스로에게 실망할까봐. 그런 때면 다시금 그 두려움은 괴물이라는 걸 생각하며 극복해야 한다.

덴마크 근현대 변화상을 보여주는 Matador

덴마크가 지금처럼 평등한 사회를 이룬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남녀간, 사회계층간 차이가 명확했던 사회가 지금의 모습으로 어떻게 탈바꿈 했는지 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 ‘마타도어 (Matador)’는 보드게임 ‘모노폴리(우리나라의 부루마블)’게임 또는 ‘실업계의 거물’, 두가지를 모두 의미한다. 실제 드라마에서 모노폴리 게임이 자주 등장하는데, 진정 의미하는 바는 Mads Skjern이라는 주인공의 사업이 성장해 해당 지역의 거물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덴마크가 어떻게 현대의 모습으로 바뀌어가는지를 그려낸다.

마타도어는 다음과 같은 2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 Episode 1.     Den Rejsende / 1929
  • Episode 2.     Genboen / 1929
  • Episode 3.     Skiftedag / 1930
  • Episode 4.     Skyggetanten / 1931
  • Episode 5.     Den Enes Død / 1932
  • Episode 6.     Opmarch / 1932
  • Episode 7.     Fødselsdagen / 1933
  • Episode 8.     Komme Fremmede / 1934
  • Episode 9.     Hen til Kommoden / 1935
  • Episode 10.   I Disse Tider / 1935
  • Episode 11.    I Klemme / 1936
  • Episode 12.   I Lyst og Nød / 1936-1937
  • Episode 13.   Et Nyt Liv / 1937-1938
  • Episode 14.   Brikkerne / 1938-1939
  • Episode 15.    At Tænke og Tro / 1939
  • Episode 16.   Lauras Store Dag / 1940
  • Episode 17.   De Voksnes Rækker / 1941-1942
  • Episode 18.   Hr. Stein / 1943
  • Episode 19.   Handel og Vandel / 1944
  • Episode 20.  Den 11. Time / 1945
  • Episode 21.   Vi Vil Fred Her til Lands / 1945
  • Episode 22.   Det Går Jo Godt / 1945-1946
  • Episode 23.   Mellem Brødre / 1946
  • Episode 24.   New Look / 1947

허구의 도시인 Korsbæk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가 꽤나 빠르게 진행되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다.

예전에 어떤 친구로부터 덴마크의 과거 남녀관계가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 할머니가 젊은 시절, 몸이 안좋아 남편에게 물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물을 들고 온 할아버지가 할머니 바로 앞에서 물잔을 뒤집어 물을 뒤엎으며, 본인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노발대발 했단다. 나보다 10살 어린 친구이니 대충 할머니, 할아버지 연배가 지금 80대쯤 되었을 거다. 보수적인 율란 출신이니 아마 코펜하겐보다는 더했겠지만, 놀랍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도 경제성장과 함께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증가하면서 남녀관계의 볂화가 갈등의 형태로도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유교의 남존여비적 사상이 향후 20년 뒤에는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