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임산부가 된다는 것은?

옌스는 화요일이면 저글링클럽에 나간다. 나도 가족으로 멤버 등록은 되어있지만 세 번 가본 게 다이다. 스케이트 타다가 허리에 약간 무리가 간 이후로는 이도 줄였고,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바람이 거센 날이 많아지며 카약을 많이 못타고 있는데, 그래서 저글링클럽 가는 날이 무척이나 신나고 기다려지는가 보다. 188cm의 키에 74~76kg의 체중을 항상 유지하는 옌스는 모든 옷이 76kg을 기준으로 맞춰져있어서 그보다 살이 찌는 건 참을 수 없어한다. 그런데 요 며칠전 한동안 안재던 체중을 재더니 77kg이라면서 다이어트를 선언했다. 간식도 사오지 말란다. 난 간식을 사면 오랫동안 아껴먹는 편인데, 옌스는 있으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애초에 사오는 양으로 간식을 컨트롤 한다. 그러나 내가 사온 간식을 옌스가 다 먹어버리면 난 몇 입 먹지도 못한 탓에 또 사오고, 옌스가 또 먹고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나보다. 나야 뭐 다시 사오면 되니까 상관없었는데, 먹는 중에는 기쁜 마음으로 먹지만 살이 찌고나니 스트레스를 받았더라. 사실 보기엔 76~77kg가 가장 좋아보이는데, 본인의 지향점이라는 게 있으니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지. 뱃살 나오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는 남편인 것은 불평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옌스와 결혼할 때, 결혼했다고 생활습관 갑자기 바꾸고 운동을 안하거나 건강하지 않게 폭식하며 살찌지 말기를 당부받았다. 난 누가 강요하는 건 싫어하지만 약간은 관리를 받는 것을 좋아하고 (동기부여가 된다고나 할까? 혼자서 마음 독하게 먹기엔 마음속에 게으름의 악마가 항상 살고 있어서…) 살 안찌는 건 나도 바라는 바라 열심히 체중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임신하자마자 내가 두명분 먹을까봐, 임신했다고 두명분 먹는거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둘 다 뭘 하더라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에 기초해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 이야기가 섭섭하지 않았다. 실제 덴마크 보건당국 뿐 아니라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임신 기간 중 칼로리 추가 필요 섭취량을 초중기에는 150kcal, 후기에 250kcal 정도 로만 권고하고 있다. 이 또한 당근, 토마토, 사과, 호밀빵, 치즈, 요구르트, 햄 등 건강한 간식으로 조합해 먹으라고 하고 있다. 살면서 항상 건강하게만 먹고 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매일 건강하게만 먹겠냐만은 최대한 건강한 식품의 조합으로 평소 섭취량에서 크게 늘리지 않는 식으로 체중을 관리했다.

임신 기간 중 체중을 매일은 아니고 며칠 간격으로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기록해서 그래프로 항상 업데이트해 보고 있다. 어떤 패턴으로 체중이 늘어나는지 관찰하기 위함이다.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못먹으면 스트레스가 되서 애한테 더 안좋다는 이야기를 인터넷 맘카페 등에서 자주 접했는데, 의사에게 한번 물어봤더니 그런 건 그냥 핑계고 애를 핑계로 많이 먹어 과도하게 체중이 느는 것은 본인이나 애에게 좋지 않다고 단칼에 잘라 이야기하더라. 나는 평균체중에 속하니 12kg 정도 목표로 보고 관리하면 된다고하며 일일 기준으로는 정말 조금씩 변하는 것이니까 관리 잘하라고 했다. 특히 나처럼 만 35세를 넘은 고위험군 임산부는 임신중독증을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 모두 게을리하지 말라고…

내 질문에 대해 의사가 직접 설명해준 내용과 읽어보라고 권해준 책자와 웹사이트 등의 정보를 종합해서 운동에 대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임신전의 활동에서 크게 조절을 할 필요가 없고, 다만 몸에 큰 충격이 오는 격투기나, 테니스, 승마 등을 피하고, 몸의 체온을 과하게 올리고 심장박동을 심하게 올리며 45분 이상 지속해서 하는 운동 (격한 달리기 등) 도 피하라고 했다. 중기 넘어서 배가 많이 무거워지면 바로 누워하는 운동 종류는 태아와 하반신으로 가는 혈류량을 감소시키므로 이 또한 피해야 한다고 한다. 이 시점부터는 크런치 형태의 복근운동은 피해야 한다. 혈류량 문제 뿐 아니라 복직근 이개와 같은 부작용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허리를 숙여 무거운 것을 들고 하는 것은 안되지만, 어느정도 무게가 있는 장바구니를 무릎을 굽혀 들어올리는 것은 괜찮다고 한다.)한국에서는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가장 안전한 운동 중 하나로 권고한다. 물론 넘어지면 이야기가 다른데, 이미 자전거가 익숙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다. 안장에 엉덩이가 퉁퉁거려서 태아에 충격이 간다며 우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 정도 충격은 태아에 위험을 유발할 정도의 충격과 거리가 매우 멀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노면이 거친 경우는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페달에 체중을 실어 타는게 정석이고,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타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하기에 괜찮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초기 유산에 대해서는 어떤 특별한 사고가 있어서 그런게 아닌 이상은 유전적으로 크로모좀에 이상이 있어서 1/4~1/5의 확률로 흔히 발생하는 일이기에 산모의 몸 관리 방법에 따른 게 아니므로 편히 생활하라고 한다. 사실 나는 이 말이 임신 기간 중 삶을 정말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생활에 대해서 실제 구체적으로 뭘 해도 좋고 안좋은지가 잘 정의되어 있다. 임신 기간 중 마신 총 술의 양을 따지자면 샴페인을 기준으로 2잔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반잔 씩 다섯번 정도 마신 것 같으니 말이다. 1주일에 술 한잔 (주종별로 한 잔의 기준이 따로 있었다. 주종에 상관없이 알콜 컨텐트를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양을 기준으로 보건 당국이 한 잔의 양을 정하고 있더라.)은 무방하다고 한다. 커피도 의학적으로 태아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은 밝혀진 바가 없으나, 성인에게도 카페인 양을 제한하도록 권고하는 만큼 산모도 하루에 두잔정도 마셔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달리 감기나 독감에는 별도로 약을 처방하지 않으니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처방이 필요하다고 하는 약은 그걸 먹는게 왜 안먹는 것보다 좋은지 설명을 해주며 산모에게 불필요한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한다. 예를 들면, 얼마전 처방받은 치질약이 그렇다. 약간 이물감이 있는 수준의 치질은 최대한 관리하며 버티도록 하고, 중기 이후 통증과 출혈을 수반한 치질은 관리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나는 상태가 안좋아지면서 좌약을 처방받았는데, 임신 초기에 이 약을 사용하는 경우 구순구개열을 유발하는 임상사례가 있는 약이었다. 의사와 상의를 통해 최대 복약기간과 중기 이후에는 부작용을 유발한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듣고 그냥 마음의 불편함 따위는 지워버리고 복약하기로 결정했다.

의사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을 보인 부분은 임신중독증이었다. 사실 나도 그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평소 저녁이면 몸이 전반적으로, 특히 하반신이 좀 붓는 경향이 있었던지라 임신을 해서 그게 심해지면 어쩌나 했었기 때문이었다. 사지 말단의 부종을 막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근력운동임을 평소의 부종 문제로 알고 있었기에 종아리는 플렉스-포인트, 허벅지와 둔부는 스쿼트, 사이드 스쿼트로 관리했고, 팔과 손목은 서서 벽에 기대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발레의 팔동작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단련했다. 체중이 증가하면서 고관절에 부담이 늘어 기존에 있던 고관절 인대 부상이 다시 안좋아지기 전까지는 주 1회 발레도 했다.

사실 이런 운동이 없었으면 체중관리도 안되었을 것이고, 안그래도 무거워진 몸을 지탱해줄 근육을 잃게 되어 많은 관절 문제와 혈액순환 장애를 겪어 부종 등도 겪었을 것이다. 또 출산 이후 육아에 필요한 근력도 부족해 산후통증도 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임산부를 최대한 활동을 줄이게 하고 안정만을 추구하게 하는 게 사실은 임산부의 고통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는 게, 이런 일련의 과학적 사실과 내 개인적인 경험을 종합한 결론이다.

입덧으로 4kg 체중감소를 경험하며 일련의 활동 자체를 거의 할 수 없던 시기, 막대한 근손실로 이를 일부나마 회복하느라 이후 고생을 했는데, 그런 노력을 한 게 절대 아깝지 않았다. 간혹은 운동하면 배뭉침이 느껴진다고 하며 그러면 운동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사실 배뭉침은 브랙스턴-힉스 수축운동으로 임신 기간 중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현상이고 한시간에 네번을 넘어선 반복적인 수축이 조산의 신호일 수 있어서 주의해야 하는 것이란다. 이는 자궁이 출산을 위해 수축운동을 연습하는 것이므로 애가 스트레스를 받는니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부부관계 후 겪게 되는 브랙스턴-힉스 수축운동이 실제 출산을 유발하는 경우는, 이미 자궁경부가 짧아져서 조산기가 있거나 이미 만삭이 되서 태아가 출산의 준비가 된 경우에나 해당하기에 그걸 염려해 부부관계를 회피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초반에 마음을 좀 불편하게 했던 것은 영양제 복용이었다. 엽산과 철분은 여기서도 꽤나 강하게 권고하는 부분이다. 시어머니는 자기 때는 엽산이 뭔지도 몰랐다고, 그냥 자연에서 녹황색 채소를 통해 섭취한 걸로 떼웠지 일부러 먹지 않았다고 하셨다. 나는 임신 초기 심한 입덧과 변비 등으로 엽산이나 철분 등 중요 영양보충제를 먹다 안먹다를 반복하다가 중기부터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변비 부분은 2주만에 볼일을 보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한 이후로 의사의 상담에 따라 마그네슘제를 매일 500mg씩 먹고 수분 섭취량을 늘리면서 좋아졌다. 내가 경험한 치질은 변비때문은 아니었고, 순전히 증가한 복강내 압력때문이었다.) 다행히 2차 기형아 검사 시점에 신경계 결손 등의 장애가 발견되지 않아서 일말의 죄책감을 털을 수 있었다.

여기에선 별도로 태교라는 이야기를 안하는 것 같다. 내가 못들었거나. 그냥 다들 자기 하던 일 하고 생업에 종사하고 간혹 태담이나 하지 태교에 대해서는 별다른 내용을 보지 못했다. 3cm쯤 되는 두꺼운 임신 책자에서도 일련의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 나도 별도의 태교는 한 적이 없다. 학교 생활 및 덴마크어 공부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클래식이야 밤에 자기 전에 오페라를 틀어놓고 잠이 드니 이미 충분히 듣는 것고 있고 해서 평소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물론 실제 남들과 다른 임신으로 유의를 해야하는 산모들이 있고 (산모의 특이점, 다태아 등 태아의 특이점, 조산기가 있거나 기타 질병이 있는 산모 등), 그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권고사항 등이 있지만, 대부분의 건강한 산모들은 최소한 중기까지는 그냥 일상생활을 무리없이 해도 된다고 한다. 그게 사실 임산부를 위해, 태아를 위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임산부보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참견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임신을 하니, 사실 별도의 배려를 받는 거 없어도 난 훨씬 좋았다. 이제 예정일까지 2주 반 정도 남았는데, 다음주에 있을 기말고사도 잘 보고 출산을 하면 정말 더할나위없이 좋은 임신기간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다. (4kg 줄었다고 하면 심한 입덧이었나보다고 하는데, 하도 외할머니와 엄마의 최악 입덧 경험담을 듣고 자란 탓인지, 힘은 좀 들었지만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출산이 두렵지 않다.

어제 사람들과 만나서 점심을 했다. 중간에 출산이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 답은 아니라고 했는데, 아직 출산이 임박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아니면 잘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출산이 무섭지 않은 이유는 그런 게 아니다. 사실 그 순간엔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냥 출산이 임박한 순간에도 그 고통이 무섭지 않을 거란 것은 안다. 물론 긴장은 되겠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그런걸까?

고통은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물리적 고통 자체를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 어떤 기약없는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두려워할 것 같다. 그러나 누구나 감내할 통과의례적 고통으로 어떤 특정 기간만 견뎌내면 되는 고통은 괜찮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고통이 아니라 어떤 결과다. 내가 정신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어떤 결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거나 하는 종류의 결과 말이다.

물론 출산과정 중 애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마음 한 켠에조차 없진 않다. 그러나 난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고, 사람들의 직업윤리를 믿고, 어떤 실수가 있더라도 그걸 만회할 정도의 상황이 되리라 믿기에 그 두려움이나 불안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럴 확률 또한 낮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삶이 한결 쉬워진다는 게 나의 믿음이다. 그게 나이브한 생각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믿음은 그런 거 아니던가? 타인이 생각하는게 중요하지 않은 것.

덴마크 뉴스 헤드라인 – 2016/09/28

Hvad er en ‘rigtig’ mor egentlig?

‘진정한’ 엄마란 정말 무엇인가?

기사 링크: http://www.b.dk/nationalt/hvad-er-en-rigtig-mor-egentlig  (Berlingske)

약 2주 전에 한 로펌의 여변호사가 출산 몇시간전까지 이메일을 쓰고 일하다가 일주일만에 일선으로 복귀한 기사가 베얼링스커 1면을 장식하며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른 적이 있다. 어느 나라나 아이를 양육하는 문제에 대해서 엄마의 전통적 성역할을 강조하듯이 덴마크 또한 그렇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보육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웨이팅 리스트가 긴 보육원을 제외하면 6개월부터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엄마는 직업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 전업주부로 눌러앉는 것은 사회의 복지시스템에 커다란 짐이 되기에 (덴마크 사회복지 시스템은 심신이 건강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일을 하며 세금을 낸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난하는 시선도 있지만, 엄마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아이를 남편이나 오페어(Au pair, 입주 가정부)에게 양육의 상당부분을 맡기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시선도 존재한다.엄마가 야근 열심히 하고, 애를 보육원에 일찍 맡기고, 늦게 픽업하면 비난의 시선이 꽂히고, 남편에 대해서는 이중적 잣대가 적용되어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인다. 결국 여기도 수퍼맘을 원하는 것이다.

해당 여변호사의 열혈 근로의욕에 대해서 진정한 엄마가 아니라는 평론도 실리는 등 뜨거운 토론이 되고 있는데, 오늘 기사는 오후스와 코펜하겐을 원거리로 통근하며 일주일 2회는 코펜하겐에서 지내되, 근로시간을 주 31시간으로 단축해 금요일은 집에 머물며 애들을 보육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에 대해서 다뤘다. 그녀의 경험담과 의견을 통해, 양육이 부부 양측의 합의에 의해 잘 조율되고 애들이 만족한다면 상관 없는 일이 될 것도, 자신의 이런 근로 방식에 대해 비난의 눈길이 쏠리는 현상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해당 여변호사처럼 열혈로 근무를 해야 커리어 우먼이 된다고 프레이밍하는 것도, 그렇다고 엄마가 애를 시스템이 수용해주는 대로 일찌감치 보육원에 보내고 일을 한다고 진정한 엄마가 아니라고 프레이밍하는 것도 모두 반대한다. 이런 때 보면 덴마크의 성평등은 진정한 의미의 성평등이 아니라 사회가 기반으로 설계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도 세금을 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를 가능하게 하려 남성이 양보를 조금 한 강요된 성평등의 면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진정한 의미에서 애를 키우는 것은 애가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18년이다. 그 외에는 더이상 키우는 게 아니라 같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족으로 함께 살고, 서로 기대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18년의 시간동안 나는 내 인생의 일부분을 희생해야 할 것이고 그게 힘들 것이지만 그 대신 얻게되는 기쁨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그렇지만 양육이 내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렇게 큰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면, 난 내 인생의 공허함을 느낄 것임을 내 성향으로 보아 충분히 알고 있으며, 나중에 그러한 희생이 내 아이에게 짐으로 작용할 것 또한 알기 때문이다. 내가 투사가 되어 페미니즘의 선봉에 서거나, 남편에게 나의 커리어 성공을 위해 당신이 무조건 양보하라 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편을 위해 내 커리어를 마냥 희생하고 싶진 않다. 솔직히 보면 남편보단 내가 권력욕이나 사회적 성공 욕구가 더 크기에 나의 희생이 효율적이지도 않다.

우리보다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진보적인 이 나라도 아직도 나아갈 길이 멀다. 오늘 기사에서 인터뷰한 여성이 언급한 것중에 크게 공감한 부분이 있다. ‘왜 남편이 잘 하고 있어도 내가 떨어져 있으면 애들이 불쌍하다고 하는 것인가? 우리 남편은 좋은 아버지이고 남편이 비는 날 내가 그의 빈자리를 잘 메우듯 그 또한 나의 빈자리를 잘 메울 수 있는데. 그리고 내가 떨어져 있음으로 애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 불쌍한 건 내 아이들이 아니라 나다.’

 

간혹 읽기 또는 공부하기가 싫어지는 이유

간혹 읽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물론 날이 좋아 놀고싶은 마음이 들어서인 경우도 있지만, 그런걸 떠나서 읽기위해 앉는 자체가 싫은 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왜 그런지. 지금처럼 읽을 거리가 많은 때 미뤄봐야 돌아오는 건 스트레스일 뿐인데.

두려움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다 못 읽을까봐. 읽어도 충분히 이해가 안갈까봐. 또는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텍스트가 설득력있게 다가와 혼란에 빠질까봐. 두려움의 근원은 다양하지만, 결국은 두려움이 나를 막는다. 얼마전 읽은 글에서 두려움을 나의 일부로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서 대항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라고 했는데, 내가 읽기 싫은 게 아니라 두려움이 나를 못읽게 하는 것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인 것을 또 한번 알게 되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내가 평생 싸워야 할 괴물이다.

난 완벽주의자로 살아왔다. 내가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고, 완벽하게 하지 못할 것 같은 건 쉬이 포기했다. 그렇게 하면 완벽하지 않은 내가 내 선택에 의해 이런 모습으로 구현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 학부 성적표가 A와 C로 대부분이 채워진 것을 들 수 있다. 딱 봐서 A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과목은 재미가 없다는 말로 포장하며 관심을 주지 않고 최소한의 것만 해 C가 나오게 하는 것이다.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 그렇다는 이유를 들며 포기의 여지를 주었다. 이러한 완벽주의는 일종의 정신 질환이다. 물론 아주 심각한 완벽주의를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는 것이고 내 완벽주의의 정도가 딱히 심각한 것이 아니기에 실제 병으로 분류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러한 성향이 있음을 언젠가부터 인지해왔다.

때론 이 완벽주의로 삶의 모든 분면에서 버둥거릴 땐 삶이 참 힘들어졌다. 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데 꽉 쥔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 흘러내리면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해 하지 말라는 말이 이런 순간에 큰 위안이 된다.  발에 쉬이 걸려차일 듯 널리고 널린 흔한 말일지언정 정말 중요한 말이다. 완벽을 추구하며 결과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한정지을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도전하고 노력해서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첫 시험 이후로 줄곧 12점을 받아온 터라 이젠 잃을 것만 있는 것 같고 두려움 마저 든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옌스는 꼭 최선만 다해서 네가 네 스스로에게 떳떳하면 되지, 결과에 연연해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느냐고 한다. 거기에 내가 최선을 항상 다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고 이야기 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힘들지 않은 삶이 어디있냐고. 삶은 항상 힘든 것이라고. 또한 그게 당연한 것이라는 걸 알면 고통스럽지 않거나 그 고통이 덜해진다고. 삶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 힘든 일이 생기면 그게 이상한 거고 마음이 고통스러운 건데, 누구나에게 삶은 힘든 것이라 생각하면 그건 당연히 다뤄야 하는 일이 되고, 고통스럽지 않다고.

옌스의 말과 어떻게 보면 같은 맥락이기도 하고, 다른 맥락일 수도 있는 말인데, 어디서 본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소화한 바로는 이렇다. 사회적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 같은 건 내가 노력한다고 꼭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순간에는 참 불공평한 것 같다는 분노가 들 때도 있지만, 그거에 분개해봐야 달라지는 것이 아닌 것이 참 불공평하지만 그게 현실이라고. 그러한 불공평함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보다 공평한 방향으로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불공평함에 싸우는 것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현실을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역할이 있기에 그 불공평함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때로는 그 불공평함이 나로 하여금 타인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부여하기도 하고. 이 글귀를 읽고 타인에 대한 부러움이나 그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자격지심 등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을 잊고 간혹 이런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이 많다. 내가 노력을 했는데도 안될까봐, 그러면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아니면 스스로에게 실망할까봐. 그런 때면 다시금 그 두려움은 괴물이라는 걸 생각하며 극복해야 한다.

덴마크 근현대 변화상을 보여주는 Matador

덴마크가 지금처럼 평등한 사회를 이룬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남녀간, 사회계층간 차이가 명확했던 사회가 지금의 모습으로 어떻게 탈바꿈 했는지 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 ‘마타도어 (Matador)’는 보드게임 ‘모노폴리(우리나라의 부루마블)’게임 또는 ‘실업계의 거물’, 두가지를 모두 의미한다. 실제 드라마에서 모노폴리 게임이 자주 등장하는데, 진정 의미하는 바는 Mads Skjern이라는 주인공의 사업이 성장해 해당 지역의 거물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덴마크가 어떻게 현대의 모습으로 바뀌어가는지를 그려낸다.

마타도어는 다음과 같은 2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 Episode 1.     Den Rejsende / 1929
  • Episode 2.     Genboen / 1929
  • Episode 3.     Skiftedag / 1930
  • Episode 4.     Skyggetanten / 1931
  • Episode 5.     Den Enes Død / 1932
  • Episode 6.     Opmarch / 1932
  • Episode 7.     Fødselsdagen / 1933
  • Episode 8.     Komme Fremmede / 1934
  • Episode 9.     Hen til Kommoden / 1935
  • Episode 10.   I Disse Tider / 1935
  • Episode 11.    I Klemme / 1936
  • Episode 12.   I Lyst og Nød / 1936-1937
  • Episode 13.   Et Nyt Liv / 1937-1938
  • Episode 14.   Brikkerne / 1938-1939
  • Episode 15.    At Tænke og Tro / 1939
  • Episode 16.   Lauras Store Dag / 1940
  • Episode 17.   De Voksnes Rækker / 1941-1942
  • Episode 18.   Hr. Stein / 1943
  • Episode 19.   Handel og Vandel / 1944
  • Episode 20.  Den 11. Time / 1945
  • Episode 21.   Vi Vil Fred Her til Lands / 1945
  • Episode 22.   Det Går Jo Godt / 1945-1946
  • Episode 23.   Mellem Brødre / 1946
  • Episode 24.   New Look / 1947

허구의 도시인 Korsbæk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가 꽤나 빠르게 진행되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다.

예전에 어떤 친구로부터 덴마크의 과거 남녀관계가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 할머니가 젊은 시절, 몸이 안좋아 남편에게 물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물을 들고 온 할아버지가 할머니 바로 앞에서 물잔을 뒤집어 물을 뒤엎으며, 본인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노발대발 했단다. 나보다 10살 어린 친구이니 대충 할머니, 할아버지 연배가 지금 80대쯤 되었을 거다. 보수적인 율란 출신이니 아마 코펜하겐보다는 더했겠지만, 놀랍기 그지없다.

우리나라도 경제성장과 함께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증가하면서 남녀관계의 볂화가 갈등의 형태로도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유교의 남존여비적 사상이 향후 20년 뒤에는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같은 분면의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이 두 개념은 같이 따라다녀야 하는 개념으로 오랜 시간 이해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내 머리속엔 그 두개의 개념이 혼재했으니 상당히 오랜시간 혼란을 겪었던 것이다. 일반사회를 선택했던 나에겐 정치에 대해서 제대로 배울 시간이 없었고, 대학교에 와서도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하며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일이 없었다.

그나마 공부를 적당히 했던 나는, 내가 기득권층에 속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보수쪽 입장을 취했다. 대학시절 이미 민주화가 충분히 될 만큼 되었는데도 여전히 민주화를 외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빨간색이라고 생각하면서.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우리 사회가 보다 민주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채널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확대되기도 하고. 그러나 공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정권의 변화에 따라 정치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자체 검열을 하며 일절 공개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게되며, 표현의 자유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비판적으로 파란색을 띄고 있던 내가 중도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내가 겪는 딜레마는, 이러한 나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정당의 부재로 어디를 찍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이분화된 정당구조가 가져다준 딜레마였다.

이런 양당구조에 익숙해있다가 넓은 정치적 스펙트럼과 다양한 경제, 사회 정책믹스가 존재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와서 살면서 느낀 것은 분배를 강조한다 하여 “사회를 전복하려는 의도를 가진 좌파”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 아주 빈국에 태어났어도 지금 갖고 있는 부와 성공을 누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누리고 있는 것은 그 사회가 가져다 준 것이기에 세금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그 분배의 정도를 얼마로 할 것인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분배시스템이 과연 사회에서 얼마나 합의가 된 것인가?

나는 한번도 비정규직이 되 본적이 없지만, 적지않은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관리하며, 비정규직 법률은 당초 목적과는 달리 악용이 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고, 부당함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음 또한 느꼈다. 내가 그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구조상 그렇게 비춰질 수밖에 없었고, 나도 살기 빠듯하고, 공기업에 근무해서 정치적 색깔을 드러낼 수 없으니 그 부당함을 역설할 입장도 아니라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내 나라에서 나는 이제 중간에 서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이국땅, 덴마크에서 나는 상당히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이다. 사회가 어떤 가치에 합의하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속한 사회에 따라 정치스펙트럼에 서있는 위치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너무 당연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 경험할 때는 그 충격이 크게 다가온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우리나라의 양당구조는 사회를 가르는 데 폭넓게 사용된다고 생각한다. 내 입장을 조금이나마 더 대변해주는 정당을 통해 정치성향이 대변되다보면, 이 당 아니면 저 당으로 소속이 바로 나뉜다. 사실 그 정당이 내 입장을 제대로 대변해 주는 것도 아니고, 상대도 같은 상황인데, 두 사람이 마치 큰 입장 차이를 가진 것처럼 양쪽으로 나뉜다.

나는 정당이 지금보다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려 각자의 당이 각자의 색깔에 맞는 정책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너무 넓은 스펙트럼을 커버하기위해 우왕좌왕하며 이도저도 아닌 정책으로 지지자에게 호소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큰 나라는 아니지만, 이보다 작으면서도 성공적으로 다수의 정당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가 많다. 이 사회가 너무 힘들어 헬조선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도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며,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해서 빨갱이나 종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기를 바란다.

내나라를 떠나 이국에서 평생을 살게 될 나이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태어날 내 아이들이 엄마의 나라를 봤을 때, 다양성(“창조”가 인정되는)이 존중되는 사회로 인식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는 내 결혼이 이미 한국에서는 표준에 벗어나 있고, 내 아이들은 단일민족이 아닌 두 민족이 만나서 생긴 아이일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마냥 믿기보다는 각자 행동해야 변한다는 사실, 씨앗을 뿌려야 열매가 맺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하고 조금씩이나마 각자의 영역에서 실천해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