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어 학습방법

팔꿈치 신경이 눌려서 새끼와 약지손가락에 살짝 저림이 생겨서 의사를 만나고 왔다. 팔꿈치 터널 증후군때문인데 클라이밍에서 난이도를 올리면서 내 현재 팔 인대가 감당할 이상의 부하를 준 탓인 듯 하다. 팔을 접고 옆으로 누워 자는 자세도 한몫 한 것 같고.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는데, 저리다는데 쓰이는 표현을 søvnig라는 단어로 했는데, 약간 다른 sovende라는 단어로 표현했어야 했던 모양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졸려운”과 “자고 있는”의 차이인데 자고 있는에 해당하는 단어를 썼어야 했다. 의사가 정정을 해줘서 정확한 표현을 하나 알고 넘어가게 되었으니 하나의 수확. 아 대충 잠과 관련된 단어를 쓰는 것 같아서 søvnig로 썼는데, sovende였었냐며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진료가 끝나고 덴마크에서 산 지 얼마나 되었냐고 의사가 묻는다. 2013년 7월 말에 왔으니까 이제 9년이 좀 넘었다고 했더니, 놀랍다며, 진료하면서 보면 오랫동안 살아도 덴마크어 못하는 사람 정말 많은데 søvnig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라고.

연극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혼자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좋다. 그런데 의사가 말한대로 오래 산다고 해서 덴마크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같이할만한 친구가 많지 않다. 발레 친구들은 발레 보는 걸 좋아하지 연극을 좋아하지는 않더라. 사실 난 덴마크어를 잘 못할때도 연극을 종종 봤는데, 배경 지식을 갖고 들어가면 그런대로 따라갈만했고, 또 그런 경험을 통해 덴마크어가 조금씩 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욱 의식적으로 그런 활동을 찾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이해해서 온전히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take away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괜찮다는 어프로치로 감상하면 공부도 되고 문화생활도 되니 좋지 아니한가!

내 주변에 도대체 어떻게 덴마크어를 늘려갈까 고민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아이디어로서 영감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내 문화생활 파트너를 늘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심이 가득한 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스트레스받기도 하는 일이다. 이미 영어로 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비영어권 국가에 살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쉽지 않다. 굳이 그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새로운 언어를 쓰고 배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더듬어가며 바보같아 보여지는 상황에 나를 던져넣고 싶지 않고 싶은 건 대부분이 느끼는 심정일 거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나를 던져 넣지 않고 책으로 영화로 말을 늘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능독적 활용 없이 수동적 인풋만을 활용하는 학습만으로는 능동적 활용능력과 수동적 활용능력의 갭이 갈수록 커져서 능동적 활용을 오히려 꺼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덴마크어처럼 빠르게 말하고 우리 기준에서 매우 미묘한 차이를 가진 다수의 모음 음가를 지닌 언어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능동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어휘와 독해 능력 대비 타인이 내 말을 알아듣게 하거나 내가 타인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떨어지게 되서 시간이 갈 수록 자신감을 잃게 된다. 내가 쓴 시간에 비해 나아지는 게 크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 자신감을 잃게 된다.

성인이 되어 비영어권에 나와 언어를 배워야 되는 상황이라 하면 어떻게 하는 게 빨리 배우는 방법이 될까?

우선 일상에서 그 언어를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답답해서 영어로 전환하더라도, “내가 덴마크어를 배워야 돼서 덴마크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덴마크어로 하고 싶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거나 표현이 안되면 그때 영어로 일부 이야기하겠다.”라고 표현하면 여태까지 딱 한명 빼고는 다 기꺼이 덴마크어로 응대해줬다. 덴마크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음식을 주문하는데 필요한 표현, 상점에서 물건을 살때 가격을 묻고, 물건의 위치를 묻고, 결제 방법에 대한 대화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대화 표현을 학원에서 배웠으니 그걸 바로 써보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상 생활에서는 예상치못한 추가 질문이 따라오기도 하고 그를 이해하지 못해서 재차 물어보다가 이해 안되서 영어로 바꾸게 되는 일도 있고, 실수를 해서 엉뚱한 결과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 에피소드들은 일련의 대화를 더욱 쉽게 기억하도록 한다. 실수했던 일이야 말로 잘 기억이 나게 되서 다음에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수준보다 조금 어려운 것이라서 처음 한 챕터 정도는 내가 마주하는 단어의 10% 정도를 사전에서 찾아야 하는 책 정도가 좋다. 소설이든 뭐든 대부분 어떤 주제나 장르상의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같은 단어가 여러번 나오게 된다. 단어장을 만들어서 그냥 그 단어를 찾은 결과를 적어내려가면서 읽다보면, 동사와 같이 문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어중에서 자꾸 기억이 안나 여러번 사전을 찾아야 하는 단어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걸 왜 기억 못하지 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그냥 여러번 단어장에 기록을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타이밍에는 기억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엔 사전찾느라 정신없던 챕터 두어개가 지나고, 슬슬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구간이 나온다. 책 한권을 다 끝내지 못해도 좋다. 그렇게 몇 챕터 읽고 다른 책을 또 읽고 하다보면 작가별로 다른 어휘나 문장의 사용형태에 노출이 되면서 어휘와 표현을 늘릴 수 있게 된다.

책이 지겹거나 공부하기 싫을 땐 영화나 티비 트라마, 리얼리티쇼,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별로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보면 된다. 자막 띄워 놓고 다 이해한다는 목표 의식은 옆에 접어 두고 즐기면서 보되, 반복되는 모르는 단어때문에 이해에 방해가 된다 싶은 건 사전을 찾아보면서 본다. 시간이 흐른 후에 실력이 조금 더 늘었다 싶을 때 또 한번 본다. 그러면 그 전보다 더 많이 들리고, 더 많이 이해된다.

영상의 경우 음성보다 영상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더 많은 음성 노출을 위해서는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이용하는 것이 아주 좋다. 전적으로 음성에 의존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압도적인 양의 노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뭔가 읽으면서 해독할 수 있는 보조 매체가 없기 때문에 귀의 민감성이 고조된다. 쉐도윙을 하면서 굳이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따라 말하며 듣기도 하고, 굵직한 내용을 중심으로 따라가면서 관련 어휘들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대부분 주제에 따라 반복되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모르더라도 소리를 따라할 수 있고, 그게 워낙 중요한 단어의 경우 소리 비슷하게 구글 검색해보면 오타가 나더라도 비슷한 추천단어 검색결과를 볼 수 있고, 매체의 프로그램 소개 내용을 통해 관련 내용을 검색해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관련된 글 등을 찾아 읽어보면 음성으로 들었지만 정확히 뭔지 몰랐던 단어를 눈으로 마주했을 때, ‘아, 이건가?’하는 생각과 함께 사전을 찾아볼 수 있고,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을 때 경험이 그 단어를 보다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연극을 보는 것은 영상과 또 다르다. 중간에 멈추고 사전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영상보다 또박또박한 발음을 들을 수 있다. 발성에 있어서 전문가인 배우들이 나와서 공연을 하기 때문이다. 미리 내용을 학습하고 가서 볼 경우 그걸 토대로 상당 부분 따라갈 수 있다.

잘 이해될 수 있을 때쯤 봐야지, 들어야지, 경험해야지, 말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반대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말해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조언하고 싶다. 순서가 반대다. 공을 어떻게 차야하고 다루는 지에 대해 정말 잘 설명한 책을 자세히 읽는다 해도 축구를 직접 해서 몸에 익히지 않고서는 그 책에 기술된 내용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게 다 기술된 책을 찾을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완벽하지 않게라도 일상생활을 덴마크어로 완전히 전환하는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학업이 영어로 이뤄졌기에 전문적 영역에서의 덴마크어 전환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상황에 던져져서야 이뤄졌으니 정확히는 4년이 걸렸다고 할 수 있겠다. 어렵게 이력서를 써서 제출했기에 가능할지 어쩔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던 직장에서의 첫 한두달은 업무시간의 40%를 사전 찾는데 쓴 것 같다. 법전이며, 공문서, 리포트 등 읽을 게 태산이었는데다가 보고서를 쓰면서 정확한 표현을 쓰기위해 사전에 크게 의존해야했기 때문이다. 중간에 스트레스로 10개월 정도 쉬었던 기간에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학원에 다시 나가 조금 더 인텐시브하게 공부한게 한단계 언어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어 다음으로 덴마크어가 편하다. 어휘는 덴마크어가 영어보다 부족할지언정 듣기능력에서는 덴마크어가 더 낫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실생활의 표현에 있어서 덴마크어 표현력과 이해력이 영어의 그것보다 낫다. 아무래도 영어 공부를 예전처럼 안하기도 하고 영어로 된 영화나 티비 시리즈를 안보는 이유가 한 몫 하는 거 같다.

오늘은 영어로 하고 다음에 덴마크어로 해야지, 덜 중요한 것일때 덴마크어로 해야지, 이런 마음은 옆에 고이 접어두고 이 말 빼고는 못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할 때 언어가 는다. 원래 쉬운 길이 있으면 그리로 가게 되어 있다. 그 두 길 다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길은 공사중으로 닫아두고 언젠가는 가야 할 길로 지금 당장 가자. 훨씬 더 빠르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덴마크어 과외 편익 평가

덴마크어 과외를 시작한지도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간다. 이번주만 하면 한달이다. 한달에 85만원… 비싸다… 워낙 비싸기 때문에 길게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대충 여름휴가 전까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비쌈에도 옌스가 흔쾌히 과외를 하라고 한 이유는 기존 학원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반년간 들으면서 실력이 훌쩍 늘은 것을 자기도 목도했고, 지금 수준과 목적에 맞는 수업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이 시기에 내 PD3 분야별 점수가 평균 7점대에서 전분야 12점으로 올랐다.

과외는 일주일에 한시간 반. 내가 쓴 보고서를 봐가면서 첨삭하고 내가 자주 헷갈리는 문법의 예외적 부분 등을 검토하거나 문법적으로 내가 약한 부분을 점검하고 있다. 과외를 하고보니, 이정도 레벨에 다라서는 학생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에 맞도록 수업의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가장 큰 초점을 보고서 작성에 맞추고 있는데, 그 짧은 한달도 안되는 시간 사이에 보고서 작성이 훨씬 수월해졌다. 계속 나를 괴롭히던 소수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니 보고서 작성에 가속이 붙는다. 그리고 덴마크 공식문법사전에 수록된 문법과 예외 관련된 내용을 찾는 법을 배우고 나니 앞으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갈 방법의 실마리도 얻었다.

사실 상사도 내 보고서를 수정해주는데, 그게 실력향상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상사가 수정할 때는 내가 한국어로 보고서를 작성해도 상사가 보면서 고치 것처럼 조금 더 매끄럽거나 상사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맞추도록 문장을 이리저리 매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틀린 문법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 규정에 해당하는 부분들이었어서 ‘왜지?’하는 물음을 지울 수가 없기도 했다.

예전에 내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나는 정말 교육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 같다고. 다소 낭비같은 상황도 많을 정도로. 나를 너무나 잘 이해한 말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느낀 건 다소 낭비같았던 투자도 사실 큰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디 갖다 버리는 게 아니고 다 내 머리에 쌓이는 정보이니까. 비자타입의 문제로 남들 다 공짜로 배우는 덴마크어를 1년 반 동안이나 한달에 70만원씩 내가며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는데, 그 돈이야 말로 정말 훌륭한 투자였다. 그 때 덴마크어 기초를 닦지 않고 나도 공짜로 다니는 시기를 기다렸더라면 대학원 다니면서 취직 전까지의 수준으로 실력을 늘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 취직을 못했을 거다. 우리 전공이 주로 공기관에서 커리어를 찾게되는 것을 고려해보면 지금 다니는 직장 뿐 아니라 한동안 취업이 어려웠겠지.

과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너무 비싸다, 너무 큰 투자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편익을 따지지 않은 비용만 본 평가라 생각한다. 취업이라는 편익만으로도 이 투자는 빠른 시일내 회수가 가능한데다가 덴마크 생활에서 언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스트레스의 저감, 보육원이나 학교에서 아이의 발달상황에 대한 충분한 대화, 덴마크 사회 안으로 빠르게 동화될 수 있고 주변 현지인과의 관계가 여러 방면으로 깊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그 비용은 미미하다. 그렇게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도 감사하지만, 여유를 떠나 그 투자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건 옌스가 이런 부분을 깊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나와 옌스는 생각이 참 비슷하다.

누군가가 덴마크어 과외 하는 것 어떠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열심히 한다는 가정하에 나는 정말 강추하고 싶다.

차별과 편견 사이에서

인종, 성별, 종교, 성적지향 등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차별과 편견에 대한 토론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성별이나 인종과 관련한 편견을 넘어서 사실에 대한 표현을 포함해 이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토론이 꾸준히 이뤄진다. 스웨덴은 그와 그녀라는 인칭대명사가 누군가에게는 부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다 해서 성중립적인 인칭대명사를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해당하는 단어인 율(jul)이 붙은 크리스마스빵, 크리스마스소세지, 이런 것도 비기독교인을 소외시키는 표현이 될 수 있다 해서 겨울로 단어를 바꾸는 일도 생기고, 그 또한 부적절하다면서 논쟁이 붙기도 하고 있다. 

덴마크식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에 대한 고민은 때로는 너무 멀리간 것 같다 생각한다. 옛날 노래에 쓰인 당시에 생각없이 쓰이던 인종차별적인 표현이 쓰인 노래를 새로운 개정판에서 아예 빼버린다는 사례가 있었다. 또 학교노래책에 나온 “덴마크 소녀는 금발머리 소녀”라는 표현이 금발머리가 아닌, 이민자나 이민자의 후손인 사람들을 소외시켰다 하여 해당 노래를 부르지 않게 하겠다는 어느 대학교의 발표 사례도 있었고. 또한 공공장소에 가족 구역을 표시하는 표시도안을 두고 남녀로 구성된 부모와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성적인 편견을 고착화시킨다며 문제시되는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대학교에서는 학생이 법적 이름을 쓰는 것을 꺼릴 수 있으니 교수에게 수업 시작 전, 그런 예민한 사안에 대해 학생들과 미리 교감해서 실수하지 않게 하라거나, 여학생이나 남학생 표현을 써서 성별로 구분을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나왔음이 알려지기도 했다. 옛날 노래에 나온 인종차별적인 표현은 잘못된 과거의 표현의 과오를 돌아보는 사례로 쓸 수도 있는데 무조건 덮는 것 같기도 하고, 차이에 대한 인식이 차별로 이어질까 두려워 미리 그런 기회조차 막으려는 게 나에겐 과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나뿐 아니라 이에 대해서는 양론으로 갈리는 듯 하다.  

그러나 이는 사회 전체적 차원의 고민이고 개인적 수준에서는 이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상반된 상황을 간간히 접할 수 있다.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아시아에 대한 무지 등으로 인해 빈정상하는 상황 말이다. 덴마크인의 냉소적인 농담은 자기 비하를 담는 경우도 많고 농담일 경우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평등의식하에 조롱성 농담의 대상에 성역이 없어서 정치인, 종교적 지도자 등 할 것 없이 다 조롱성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농담에 성역이 없다는 의식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농담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예를 들어 백인이 기독교인에 대한 조롱성 농담을 하는 것처럼 특권을 가진 사람이나 평소 편견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자기에 대해서 아니면 비슷한 상황의 사람에 대해 조롱성 농담을 할 경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백인이 무슬림에 대한 조롱성 농담을 하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에 대우상 차별을 받거나 놀림을 당한다거나 하는 두드러지는 차별적 상황이 있다. 이처럼 편견과 차별이 다 얽혀있는 경우 상황이 명료하다. 하지만 애매한 경우도 종종 생긴다. 아시아인이라고 무조건 중국어로 인사를 한다거나,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인사를 한다거나, 아시아인은 이렇지? 라며 어디서 유래한 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거나. 국제커플이 가입한 카페에 근근히 올라오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듣기도 하는 기분 나쁜 상황들. 이게 기분나쁠 일인지, 아닌지, 짜증이 약간 나는데 현지 서양인 지인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싶어 물어봤을 때 그들이 그냥 친밀감의 표현이라 넘기면 팔은 안으로 굽는건가, 아니면 내가 예민한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오랜시간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편견은 편견이고 차별과 구분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차별과 편견을 혼용해서 쓰면 논점이 흐려지고 토론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일이 생길 것이고, 실제 이런 일은 왕왕 벌어진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편견에 부딪히게 되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편견은 좋지 않은 것이고 바꿔갈 노력이 필요하지만 편견 자체가 차별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편견 자체는 사람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를 바꾸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지만 차별은 시정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채널이 존재할 수 있다는 데에서 차이를 갖는다.

내가 아시아인이라 아시안누들과 간장소스, 밥 등을 좋아할 거라 상대가 믿는 건 편견이다. 내가 아시아여자라 순종적일 거라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내가 아시아인이니까 수학을 잘할 거라 믿는 것도, 영어를 못할 거라 믿는 것도 편견이다. 여자는 밥을 잘할 거라 믿는 것도 편견이다. 여자는 히스테리컬하다고 믿는 것도 편견이다. 아시아 여자는 여성스럽고 작고 내 말 잘 듣고 착할 것 같아서 아시아 여자만 좋다는 것 (소위 옐로우 피버)도 편견이다. 

하지만 이건 차별이 아니다. 차별은 일련의 편견으로 인해 남들과 달리 나에게 어떤 권리나 기회가 배제되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내가 아시아인이라 영어를 못할 것이라 믿어 서류 검토도 안하고 이력서를 옆으로 재껴두는 것, 아니면 자기가 만난 아시아 부인에게 상대가 서양인이었으면 요구하지 않았을 부당한 것을 당연히 요구하고 이에 불응시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물론 차별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편견을 가질 때 문제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적으로 편견이 널리 퍼져있을 경우, 그게 차별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편견을 깨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편견을 가진 모든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게 그 사람이 받은 교육의 수준일 수 있고, 주변 상황에서 오는 한계 때문일 수 있다. 시골에서 살면서 딱 한번 외국인을 만나보고 그 외에 보고 들을 일이 없었으며, 일반화의 오류 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한명의 외국인에게서 가진 편견을 다른 외국인에게 적용한다 하면, 그걸 교육받지 못한 당신 탓이고 나쁘다,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는 거다.

외국살이하면 편견을 겪을 일도 종종 있고 굳이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편견이 넘치는 사회라 이를 경험할 일이 많은데 이 편견 모두를 차별이다 라고 외치는 것도 잘못이라 생각한다. 편견에서 상처를 받는 건 사실 어찌보면 내 선택이다. 편견을 편견으로 치부하고 남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왈가왈부하지 않겠다고 하고 갈 수 있는 일을 자기가 상처받겠다고 선택한 거란 이야기다. 편견을 해소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물론 더 좋지만, 그 편견에 차별이라 외치며 혼자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

상처받거나 싸우는 건 차별에 초점을 맞추자. 나와 남의 권리가 편견으로 인해 제한되었을 때 말이다. 

인간관계에서의 내 호불호

만나서 즐거운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을 좀 해봤다. 만남이 쌓이다 보면 같이 물려있는 관계때문에 만남을 끊어낼 수 없어 보는 사람도 생기고, 교제는 유지하지만 그 관계를 가꾸어갈 마음이 사라지거나 그러한 노력이 번거롭고 낭비같이 느껴지는 관계가 있다. 각자 자기가 즐겁다고 느끼는 포인트가 다를테니 이건 전적인 나의 나를 위한 견해일 뿐이다.

첫째. 내가 배우고 싶은 흥미로운 포인트가 없는 사람.

모두가 배울만한 점은 다 갖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잘 보일 줄 모르거나 그걸 폄하하고, 부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상대방이 그걸 찾아내기 어렵다. 나에게 질문만 하거나 자신의 일상에서 불만이나 어려움만 하소연하는 경우, 딱히 뭔가 배우고 싶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게 없어져 관계의 동력이 약해진다. 사실 나도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내 인생의 답을 얻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꼭 나쁜 건 아닌데,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부정적인 에너지를 나에게 주는 사람들이 해당된다.

둘째.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각자 자기의 이야기도 풀고 싶을 것인데 그에 대한 고려 없이 화제의 중심이 자기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 나는 호응을 열심해 해주려고 노력을 하는데, 상대가 그러한 노력을 받기만 하면 살짝 지친다.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면 다른 이야기지만…

반대로 내가 어떤 때 즐거움을 느끼는가 보니, 뭔가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때, 무의미한 수사 없이 딱 떨어지게 탁탁 대화가 통할 때. 자기가 말하는 내용이 뭔지 아는 사람이랑 대화할 때 즐겁다. 결국 자기만의 컨텐츠가 있는 사람. 새로운 경험을 나에게 들려줄 수 있는, 내가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기고 화를 내 줄 수 있는 경험을 공유해주는 사람이 재미있는 사람이다. 나애겐.

아주 중요한 관계를 제외하고는 인간관계를 일부러 딱 자를 필요도, 열심히 붙들 필요도 없다는 게 요즘 들어 느껴지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반대로 이런 즐거움을 주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적극적으로 만남을 추진하는데 요즘 한국인이 늘어서 그런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예전, 한국인이라면 일적인 관게를 제외하고 꺼리던 나의 모습과 참 달라졌는데 이제 좀 해외생활에 속 내 정체성을 찾은 것 같다. 일은 덴마크회사애서 하고 애때문에 이래저래 덴마크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으니 친구마저 덴마크인으로 채울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고 그렇기를 원치도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 6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젠 진짜 내 생활이 꽉 짜여졌구나. 인생에서 업다운을 피할 수 없가지만, 지금과 같은 좋은 시기가 게속 되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양면

덴마크 남자 만나서 결혼해서 덴마크에서 사니 좋겠다는 이야기를 간혹 듣는다. 시월드 없어서 얼마나 좋겠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다른 나라에 사는 일은 내 나라를 반납하고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최악의 상황은 내가 내 나라의 문화와 환경과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내가 살아야 하는 나라의 그것들을 너무 안좋아하는 경우일 거다. 최고의 상황은 내가 내 나라의 것을 안좋아하고 상대의 것을 좋아하는 경우일 거다. 그렇지만 이런 극단의 상황은 잘 없다. 대부분 자기 나라 것의 일부는 좋아하고 일부는 싫어하고 다른 나라 것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렇지만 이민이라는 건 그런 내 일부에 대한 선호를 반영해 취사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나라에 사는 이상 받아들여야 하는 규범이나 제도, 생활 여건 등이 존재한다. 내가 싫다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바뀌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사는 일이라는 건 그런 거다. 그 나라의 것들을 좋든 싫든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는 것. 그 나라의 싫은 것을 보며 내 나라의 대체제를 그리워하며 한탄을 한 들 바뀌는 건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자기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있을 거고, 피해갈 방법이 있는 것도 있겠지만 전체를 바꿀 수도 없고, 그건 너무 큰 힘이 든다.

시댁이 좋아도 친정이 멀어지고 원하는 시기에 볼 수 없으며, 친구와 가족 모두 마찬가지이다. 세금을 많이 내면서 한국에서 받지 못하는 서비스를 받는 분야도 있겠지만 납부세금대비 한국에서보다 낮은 질의 서비스를 받는 분야도 있을 테다. 또는 한국에서는 무상인 것들, 예를 들어 무상보육, 무상급식 같은 것들이 여기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장바구니 물가는 싸서 집에서 해먹기는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외식물가는 너무 비싸서 외식 자주하며 살기 어려울 수 있다. 공공부문의 재정건전성이 탄탄한 편이지만 공공요금이 한국에 비하지 못하게 비싸다. 내가 제대로 세금 내고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어디고 서비스 물가가 매우 비싸다. 나도 칼퇴근을 할 수 있지만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아 퇴근하고 필요한 물건 사는 일이 힘들 수 있다. 나도 갑질이 별로 안당하는 세상에서 살 수 있지만 한국 배송서비스같이 우리 구미에 싹 맞는 서비스들이 잘 없을 수 있고, 불친절하다고 매장에서 컴플레인하는 등의 소소한 갑질은 할 수 없다. 공기는 좋겠지만 겨울이 아주 길고 우울하고 비가 많이 올 수 있다. 서로 평등한 문화를 즐길 수 있겠지만, 이미 한국에서 좋은 지위를 누리던 사람에겐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것일 수 있다.

그냥 다 가질 수 없다.

내 생각엔 그렇다. 한국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고, 한국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행복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고.

내가 여기가 좋고 잘 사는 건 다행히 내가 잘 적응했기 때문이고, 이곳의 것들이 한국의 것들보다 잘 맞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곳의 좋은 점 이면엔 안좋은 것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내게 중요한 것이 잘 맞는 곳이 어디냐 하면 운이 좋게 덴마크이고, 이곳에서 만난 인연과 환경이 또 운이 좋게 좋았기 때문에 잘 지내는 것이지 그냥 여기가 좋은 건 아니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내가 보는 덴마크는 얼마나 평균의 덴마크일까? 사실 별로 평균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좋은 직장에서 고소득을 올리고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이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만 보고 살게 된다.

예전에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중학생때나 고등학생 때는 세상에 그렇게 내 또래만 보였는데, 직장인이 되었더니 학생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직장인만 보인다고. 물론 다른 사람도 보이지만, 직장인에겐 직장인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고, 대학생에겐 대학생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다. 그냥 자기 눈에 자기와 비슷한 사람만 정보를 주로 처리해 저장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내서 그런 것 같다.

내 주변에 인종차별 하는 사람 없고, 성차별 하는 사람이 없으니 여기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려니 하지만, 또 여기 살면서 이런 저런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도 듣게 된다. 내 남편네 가족이 다 화목하고 막상 주변 가까운 곳에 이혼한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통계를 보면 이혼률이 낮지 않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런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을 하지만 막상 내 옆에서 부대낄 일 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렇게 화면에서만 보고 지낼 사람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지도 모르겠다.

그냥 각자가 보는 그 세상이 그 곳을 전부라고 느끼겠고 그게 정답이라고 타인에게도 설파할 지 모르겠지만, 그냥 우리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살고 있을 뿐이다 싶다. 물론 코끼리가 각 나라마다 다르니 어느 나라나 같은 모습이다라는 건 아니다. 여기에 살면 살 수록 “유럽”, “덴마크”라는 단어로 이곳을 설명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뭐라 말하기 어려워진다.

다르긴 하지만 여기도 이상향의 천국은 아니다.

내일은 임원진 회의에 처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실제 데이터를 갖고 모델을 테스트해 본 결과를 보고하는 거라 내용면에서는 긴장할 것이 없긴 하지만 인사해본 적 없는 비담당 임원들도 동석하는 자리에서 발표를 하는 건 어떨런지 모르겠다.

아직도 상사와 임원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다. 상사나 선임과 이야기하다가 부청장과 청장 (둘다 공교롭게 야콥이다.) 을 칭할 때 야콥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야콥이 이렇게 지시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참 불편하다. 뭐랄까… 미스터 할, 미스터 샴부엌 이런식으로 이야기하면 편할 것 같은데 말이다.

대화 중간중간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지난 주 전화로 다른 청 사람과 오랜 시간 통화했을 때 그 사람은 중간중간 내 이름을 불러가며 대화를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좋은 생각이다, 해인.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해인. 나도 네 생각해 동의한다, 해인. 그래서 그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해인. 이처럼 중간중간 이름을 부르니까 나도 애써 마티아스라는 이름을 애써 껴 봤다. 그렇게 하다보면 좀 더 친밀해지는 거 같긴 한데 (앞으로 협업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라 그래서 나쁠 건 없다.) 그러기까지는 입에 붙이려고 노력 많이 해야할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여기도 직장에 이상한 사람 있고, 그래서 갈등도 다 있게 마련이다. 커리어 컬럼에 “상사가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일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직장에 가기 힘들 때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것들이 실리는 게 흔한 일이니 말이다. 물론 그럴 경우 직장에서 문제시 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에서보다 그런 사람을 마주할 확률은 낮지만, 없지는 않다. 옌스는 우리 회사 분위기가 특별하다고 한다. 공공부문인데다가 정치적으로 독립성이 커서 장관이 좌지우지하기 어려운 기관에 전문성이 큰 기관이라 그런 거 같다고 한다. 그 점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사람 사는 곳 다를 것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났는데, 덴마크의 평등에 대해 과하게 왜곡된 정보가 한국에 떠돌고 있는 것 같다. 급여 부분에서 청소부를 하든 의사를 하든 급여가 별 차이가 없다든가 하는 정보 말이다. 그럴리가. 여기가 사회주의라는 건 공산주의라는 게 아니다. 나라에서 많은 부분의 복지를 민간에 맡기지 않고 공공에서 책임지고 떠맡는다는 것이고 그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걷는다는 것 뿐이지,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방식은 자본주의다. 신체노동을 수반하는 직업이나 사무직이나 기본적으로 최저 세전 임금수준이 높고, 직업이 없는 사람을 받쳐주는 사회안전망 덕에 빈곤선에 있는 사람이 적다는 거지 그 사람들이 어떤 조직의 위에 앉아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장기간의 교육이 필요한 전문직만큼 월소득이 높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의 경우 직업전선에 일찍 뛰어들어서 생애 소득 기간이 길어지니까 생애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고연봉자와 소득 차이가 더 줄어들 것이다.

시청청소부가 의사와 결혼을 한다던데 청소부 세후 소득이 월 기준 35000크로나(원화 600만원) 쯤 되고 의사는 별로 안번다 이런 글이 돈다고 이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글이 한인회에 올라왔다. 나도 블로그 여기저기에서 본 글이었다. 개인의 세율은 개개인별로 차이가 많이 나서 별로 안내는 사람도 있지만, 세후 소득이 35000크로나쯤 되려면 노동시장분담금, 개인소득세 해서 거의 50%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한다. 주변에 물어보니 가족들을 포함에 직원들도 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한다. 우리 청도 예산 절감에 대한 압박을 상시 받고 있고 그건 시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예산 문제로 여러가지 서비스를 외주로 돌리는 건 덴마크 공공부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거라 우리 청의 경우 외주로 돌아가 있다. 그리고 청소부문은 난민이나 비서구국가에서 이주온 이민자가 거의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교, 스포츠센터, 호텔, 기차역, 백화점 등 할 것 없이 청소하는 사람은 다 피부색이 어두운 이민자들이다. 간혹 한국의 단점을 강조하려 복지가 강하다고 이야기되는 덴마크를 예로 들어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한국을 못살 나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곳이라고 완전한 천국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직업에 상관없이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굴에 불쾌함을 드러내는 일 없이 (네 따위가 감히? 이런 류의 불쾌함) 말을 섞는다는 점에서 직업에 대한 차별이나 귀천 의식이 드러나지 않는 건 분명하다. 어쩌면 아주 부자가 아닌 한 18세 독립을 하면서 수퍼마켓에서 일하거나 신문을 돌리고, 청소를 하는 등의 아르바이트를 다 해본 경험이 있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아껴야 상대가 나를 아껴준다는 의식이 발로한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도 성공하고 싶어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어하고 내 배우자가 비슷한 백그라운드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보다 그런 사람이 적고, 그걸 표현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니까 그게 표면에 드러나는 일이 없을 지는 몰라도 그런게 아예 없는 게 아니다. (그런 걸 표현하는 경우 교양이 없는 사람이 경우나 교육을 잘 못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가 클 이나라가 앞으로도 살기 좋은 나라였으면 좋겠지만, 여기도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고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잘 사는 부모들이 자식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부모 세대의 불평등아 자식세대로 고착되는 경향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런 사회의 역동성이 사람들의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 주고 사회의 안전성과 시민간의 신뢰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큰 틀이 바뀌지는 않지만 곧 있을 선거가 (나는 투표권이 없지만) 조금이나마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덴마크, 월세가 비싼데 요즘 집 사야 하나?

한국에서만 살다가 해외, 그 중에서도 덴마크로 처음 나와 사는 사람들은 막대한 월세에 놀란다. 이 돈이 다달이 사그라지는 돈이라니!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전세제도라는 특유의 제도와 제대로만 사두면 가격이 올라 수익을 보장해주는 경험을 (직접경험 뿐 아니라 타인을 통한 간접 경험 포함) 한 한국인으로서는 다달이 남한테 가져다 바치는 이 돈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에서 가족에게 돈을 빌리거나 여기에서 다소 무리해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겠다는 경우를 종종 봤다. 빚을 내도 남에게 갖다 바치는 이자비용이라는 건 생기지만 그래도 내가 납입한 것만큼 원금은 남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월세는 내고 남는 내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사실 그건 꼭 맞는 말이 아니다. 월세를 내는 기간 나는 그 집에 살 권리를 갖는다. 그리고 부동산의 가격변동에 대한 리스크를 지지 않는다. 물론 가격 하락에 대한 리스크가 없는 만큼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혜를 입는 것도 없다. 다만 내가 납입한 것만큼 원금이 남는 건 집을 사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이 돈을 어디 다른데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만약 월세와 집을 사는데 드는 이자비용이 비슷하게 든다면 날아가는 돈은 똑같은 거이고, 집을 사는 사람이 원금을 집에 묻어두는 것처럼 월세를 사는 사람이 원금에 해당하는 돈을 다른 자산에 묻어둔다면 달라질 게 없다.

집이 다른 자산에 비해 유동 상승세를 장기간 보일 게 예상이 된다면 물론 집을 사는게 이득일 수 있다. 그렇지만 꼭 그런게 아니라면 집을 사는 게 현명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코펜하겐과 인근지역, 덴마크 주요 대도시 아파트는 가격 상승세가 꺾여서 올해는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 2018년 초나 지금이나 가격이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땐 아파트를 사는 게 현명하지 않다. 자기 현찰이 100%로 사는 거이든 아니든 현명하지 않은데 부채를 끼고 집을 사는 경우 매우 현명하지 않은 결정이다. 부동산 가치의 하락은 내 자본만 잠식할 뿐 부채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큰 집이 필요해지든 어떤 이유로든 이런 상태에서 이사를 해야할 경우 집을 팔고 빚더미에 앉게되면 힘들어진다. 코펜하겐 인근 지역 주택은 앞으로도 연간 1-2%는 상승할 예정이라 한다. 그러니 굳이 사려면 주택을 사도록 하자. 상승장에서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건 내 자본이 커지는 데 있어 레버리지 효과를 주니 말이다. 집이라는 게 워낙 비싼 재화다보니 약간의 상승과 큰 레버리지 효과가 결합되면 내 자산의 빠른 증식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다른 자산의 수익률이 더 좋다면 어떤 게 좋을까? 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상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퍼지고 있는 타이밍이라면 굳이 집을 사야 한다는 압박에서 빠져나와도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내가 집을 사지 않았다 해도 내 돈이 놀지 않고 어딘가에 투자되어 불어나는 거니 월세 끝에 남는 게 없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월세를 내고 살다가 진짜 마음에 드는, 운명같은 집이나 아파트를 만나면 그때 살 수 있고 말이다. 굳이 집을 사야 한다는 압박에, 사람들이 우리만큼 이사를 자주 다니지 않아 좋은 집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닌 덴마크 주거용 부동산 시장에서 섣불리 안좋은 부동산을 사는 악수를 두는 것도 피할 수 있고 말이다.

덴마크에는 스웨덴 기업인 Nordnet을 통해 저렴하게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한국 주식은 거래가 안되지만 유럽 및 미국 시장 주식은 거래가 가능하다. 어쩌면 일본이나 싱가폴, 홍콩 상장 주식은 거래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빚내서 주식을 하는 게 아니라면 주식의 일중, 주중, 월중 등락에 민감해 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등락폭이 적고 꾸준히 상승하는 종목에 투자할 수 있다. 채권보다는 리스크가 아무래도 크니까 안정적 종목도 수익률이 제법 되는 편이고.

한국에서 주식은 거의 해보지 않았지만 별로 번 것도 잃은 것도 없이 정리하고 끝났었는데, 덴마크 나와서 지난 3년간 꾸준히 주식투자를 해온 결과 가중평균 수익률이 30%가 넘게 나왔다. 부부가 반씩 나눠서 저축하듯 은퇴 자금 확보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꽤나 쏠쏠하다. 물론 지금의 주식시장 활황은 저금리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어 금리 인상이 되면 주식시장은 조정을 받을 게 거의 분명하다. 그런데 주택시장도 금리가 오르면 크게 영향을 받을 거다. 다만 레버리지의 유무와 투자 시기, 투자시점의 가격 수준 등에 따라 가계가 받는 영향이 달라질 건데 거래 비용과 거래 기간, 여러가지 거래에 따른 부수 비용 등을 감안하면 지금같은 불확실성의 시기에 꼭 주택투자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주식투자가 주택투자보다 나은 투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서 “내집 장만”이라는 문화적 고정관념을 그대로 갖고 와서 이 나라의 월세 제도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덴마크 석사유학 후 정착이민?

덴마크에서 살려면, 덴마크 유학, 덴마크 이민… 요즘 눈에 띄는 유입검색어다. 덴마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나 했는데 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덴마크에 사는 건 어떤가? 난 덴마크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다. 다만 지금 좋아하는 덴마크의 모습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여기식의 삶의 모습은 현지 여건에 맞춰 살기 적합한 형태이다. 여기의 장점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도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살면서 좋다고 느꼈던 걸 여기로 다 갖고 오면서 덴마크의 좋은 점을 같이 취해서 살 수 있고 그런 건 없는 거다. 그게 가능하려면 엄청 부자이면서 여기 비자를 획득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아니 그래도 한국에서 좋았던 모든 것을 여기서 그대로 누릴 수는 없다. 돈으로 대접을 사는 게 힘드니까. 한국식 고객의 까다로움을 갖고 오면 스스로도 피곤하고 경멸의 눈길도 받을 수 있다.

유학으로 이민을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건 아닌데 꽤나 챌린징한 것 같다. 그전엔 좀 상대적으로 쉬웠는데 시간이 갈 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덴마크어가 안되면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서 더 그렇다. 영어만으로 취직을 하려면 글로벌 기업에 취업을 해야하는데, 대부분 아주 유창한 영어실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대기업이 채용하듯 대규모로 채용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영어를 모국어수준으로 사용하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그런 자리를 지원하니까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따라서 취업 가능성을 올리려면 덴마크어를 활용해서 일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게 유학기간 내에 학업과 병행해서 이 수준으로 올리기엔 대학원 학업 강도가 상당히 세다.

여기 사람에겐 취업에 있어 학점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닌 거 같은데 유학 온 외국인에게는 학점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덴마크에서의 학업 후 유관분야로 신입 자리를 노리는 경우에는 더 그런 듯 하다. 내 한국에서의 이력이나 학력의 수준을 이들이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덴마크 학교내에서 보여주는 경쟁력으로 기존의 성과도 같이 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그러니 덴마크어 공부하면서 학업을 잘 관리한다는 게 쉽지 않다. 나도 학교 다니는 와중에는 덴마크어를 손에서 거의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냥 등하교길 신문 읽고, 라디오 듣고, 주말이나 저녁에 아주 간혹 티비 보고, 집에서 남편이랑 이야기하고 그런 거 외에는 말이다. 학원도 잠깐 다녀봐도 학교공부에 치여서 숙제를 몇번 못하고 자꾸 수업도 빠지다 보면 그만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원래 go against all odds, 불도저 같은 사람이다, 실패도 상관없이 도전하다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라고 말할 유형의 사람이라면 사실 어떻게든 여기서 자리잡고 잘 살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그런 타입이 아니라면, 녹록하진 않다. 나처럼 처음 일자리를 잡고 여기에 와서 덴마크어를 공부할 시간도 갖고, 현지인인 남편과 결혼해서 학비 없이 대학원 다니고 (그냥 유학생은 돈 내야한다.) 몇개월 실업기간동안 버틸 돈도 있고 직장다니고 있는 남편이 있어서 비빌 언덕이 있으면 좀 모를까.

오늘 생일인 직원이 있어서 그 직원이 구워온 초콜렛 케이크를 먹으며 20분정도 담소를 나눴는데, (생일인 사람이 케이크나 초콜렛이나 간식을 갖고 와서 나눠 먹으며 축하를 받는 기묘한 문화가 있다.) 나 채용할 때 같이 채용되어 들어온 다른 덴마크 직원 두명은 인성 검사만 받았고, 나만 적성검사(라 하고 아이큐 검사 비스무레한…)와 인성검사를 다 받았더라. 누군가는 적성검사만 보고, 누군가는 인성검사만 보고, 또는 다 보는 사람도 있는데, 채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조금 확인해보고 싶은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개별로 필요한 시험 타입을 정해서 알려준다고 한다. 오늘 보아하니 전체 센터에서 우리 청에 들어오기 위해 적성검사를 한 건 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인적성 검사는 우리 청에서 우리 센터가 가장 많이 활용한다고 한다. 농담으로 “내 지능에 의문을 가졌군! 다행히 내가 살아남았네!”라고 말했는데, 돌아서서 생각해보는데 외국인에게는 진입장벽이 알게모르게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덴마크 직장에 첫 발을 들이고 나면 그걸 기반으로 해서 다른 덴마크 직장으로 이직하는 건 수월해지지만 이런 진입장벽으로 인해 첫 발 딛는게 아무래도 더 어려울 수 있겠다. 집에 와서 옌스랑도 이야기해보는데, 아무래도 외국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일하는지 서로 잘 알지 못하니 불안함이 더 크고, 확인해보고 싶은 게 많지 않겠느냐 한다.

결론은 아무런 비빌 언덕 없이 2년동안 석사해서 바로 취직하는 걸 머리에 그리고 오는 유학이라면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다. 박사자리 오퍼받고 오는 건 다른 이야기다. 그건 한국과 달리 취직해서 오는 거니까. 물론 박사자리가 끝나서 무조건 스테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석사보다는 훨씬 높은 확률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월급도 아주 풍족하진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없을 정도로는 나오니까. 그리고 학계는 덴마크어가 모자라도 장기적으로 덴마크어를 배우면서 정착하기에 괜찮은 국제적인 환경이니까.

이 나라 사람들 영어 참 잘하는데, 그래도 모국어가 더 편하고, 영어가 그닥 안편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일을 하는데 굳이 영어로 일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 고객 업무가 있을 경우 고객을 불편하게 하기 싫을 거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 한국말 못하는 사람 안뽑듯이 여기도 덴마크어 안되는 외국인은 잘 안뽑는다. 영어를 잘하면 덴마크어 배우기 많이 수월해지지만, 그래도 분명 다른 언어도 배우는 데 시간이 또 걸린다. ‘덴마크 사람들이 영어 잘 하니까, 대학원 대부분의 과정이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거기서 석사 유학하고 나면 취직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한국에서 다른 나라 외국인이 한국어 없이 우리나라에서 취업하려는 것과 진배 없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만든다.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라기에 유학 이민을 꿈꾸는 사람일 경우라면 이런 이유로 매우 비추라고 말해주고 싶다. 올 경우 이런 상황에 대한 인지 후 엄청 노력해서 살아남을 각오를 하고 올 것을 추천한다.

힘들었던 체류 초기시절. 지금은 덴마크가 좋은 이유

5일의 시간이 어느새 흘러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휴가로는 딱 좋은 기간. 집에 돌아가고 싶은 이유 중 가장 큰 건 하나가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밤에 잠에 들기까지 우는 것도 그렇고 우리와 같은 방에서 자니까 아침 너무 일찍 일어나서 놀고 싶어해서 더이상은 휴가가 힘들다. 애가 좀 클 때까진 긴 여행은 힘들 듯 하다.

어제 저녁엔 시어머니가 여기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셨다. 시누가 남편 주재기간동안 두바이에 사는 건 돌아올 기약이 있는 건데 내가 여기에 사는 건 뿌리를 내릴 생각으로 사는 거니 그 무게가 다르니 간혹 내가 어떤 느낌을 갖는지 궁금하시단다. 그래서 생각을 과거로 더듬어가봤다.

지금이야 하나도 태어나고, 시댁 가족과 관계도 훨씬 돈독해져가서 옌스네 외가 가족이고 친가가족이고 가깝게 지내는데다가 내 친구도, 내 일(직장은 아니더라도)도 있고, 말이 통하니 더이상 내가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고 지낸다. 그래서 그런가 외국에서의 삶이라 힘들다거나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지가 꽤 되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힘이 들긴 했는데…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 (그래서 이렇게 글도 써서 가록으로 남기는 거지만) 다행인 건, 힘든 기억을 잊는다는 거다. 말이 잘 안통해서 가족 모임이나 친구 모임에서 애매하게 웃는 것도 웃지 않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나 혼자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면서 너무 딴짓하지 않는 척 보이게 앉아있었던 게 참 힘들었던 거 같다. 나를 위해 영어로 바꿔주는 것도 큰 모임에선 한계가 있었으니까. 물건 하나 사는 것 조차 구글 번역기를 돌려야 했을 때,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점원을 발견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때, 뭘 물어볼 때 누구한테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줄을 서야 하는 건지 아닌지… 진짜 사소한 것을 알 수 없어서 허둥지둥댈 때 힘들었다. 내 친구가 별로 없었을 때, 밤에 시차로 인해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을 때도 힘들었다. 이웃들끼리 가까이 지내는 거 같은데,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말도 잘 안통해서 듣는 거 하나하나가 긴장되는 순간이었을 때 힘들었다. 머리로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편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그리웠을 때 힘에 부쳤다.

그런데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다. 5년은 그런 시간인가보다.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내 가치관도 바뀐다. 예를 들면 결혼에 대한 생각. 애를 낳고 보니 결혼은 그냥 서류일 뿐이다 라고 했던 옌스의 말을 이해하겠다. 우리야 비자 문제로도 결혼이 필요했지만 동거를 하다가 애를 낳고서야 결혼을 하는 (애가 생기면 혹여나 있을 지 모르는 일들로 인해 결혼을 하는 게 여러모로 수월한 경우가 많다.) 경우가 엄청 많은데, 이제는 그게 이해가 간다. 이런 걸로 예를 들며 서양사람들은 성에 개방적이다거나 문란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이야기같다. 어차피 연애를 하면서 성관계를 갖는 면에 있어서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매한가지인데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없는 척 한다는 점… 그래서 모텔 대실제도 생기고 성을 숨기다보니 왜곡된 성관념을 갖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건 오히려 동양이 훨씬 성에 몰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무튼 결혼이 제도적인 장치에 불과하고 가장 남녀사이를 강력하게 묶어주는 건 둘간의 사랑과 우정, 자녀라는 생각이다. 자녀는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고, 자녀가 있고도 헤어지는 사람도 있으니 자녀가 관계를 묶어주는 존재라는 건 아닌데, 한번 누군가와 자녀를 갖게 된다면 아무리 헤어져도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묶어준다는 이야기다.

덴마크에서의 삶이 좋은 건 아주 시내 한복판에 사는 거 아니면 내가 어렸을 적 느꼈던 이웃과의 정을 아직도 느낄 수 있고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과도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바쁨과 짜증이 스며나는 가식적 친절이 아닌 좀 수더분하고 거칠더라도 마음이 느껴지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점원들이 있는 상점이 좋다. 동네에 아이들이 어른 없이도 자기들끼리 놀이터에 나와서 모여 놀 수 있는 안전함과 유모차를 몰고 거의 모든 곳에 비난의 눈길 없이 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좋다. 차보다 자전거가 대우받고 자전거로 왠만한 곳에 갈 수 있도록 도시가 아담한 사이즈인게 좋다.

결국 느낀 건 언어가 중요하다는 거다. 영어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만큼 덴마크어 없이도 살 수 있는 이곳이지만, 언어가 열리면서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어지고 나면 그 전에 차가운 것 같던 사람들이 더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여주고 생활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준다. 못알아듣는 대화가 줄어들 수록 내가 나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고, 꾸밈이 없어지다보니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더 드는가보다.

직장까지 구하고 나면 정말 사회의 일원이 된 느낌을 강하게 받겠지. 한번에 하나씩 하자.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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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해안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들고 산책을 나섰다. 같은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간 커플이 마침 같은 해안가에 앉아서 아이스림을 먹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