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nstorff Slotshave

겐토프트 한 복판에는 베언스토프성과 부속 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택에 살 때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자주 가던 공원인데 거기 사는 동안에는 그 반쪽만 가봤었다. 간혹 자전거를 타고 주변 동네 중 안가봤던 길을 지나가곤 하는데, 삼 주 전인가 살면서 안다니던 길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그냥 이끌리는대로 가봤더니 그 반대쪽 끝편에 이런 잘 정리된 정원이 있는게 아닌가!

공원에는 사과나무, 배나무와 자두나무가 가득하고 거기에서 열리는 과일은 마음대로 따먹어도 된다. 문화부에서 관리하는 과거 왕실소유 성인데 이곳 나무는 코펜하겐 대학교 자연과학부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5월부터 10월 여름에는 주말마다 이 정원 가운데에 있는 루이스 여왕의 찻집 (Dronning Louises Tehus)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 찻집이라 커피는 없는데 간단한 요기거리와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다. 괜찮은 찻집이었다. 같이 먹은 샌드위치도 굳. 막 빼어나게 맛있다 이런건 아닌데, 여기 산책 온 김에 쉬면서 먹는 걸로는 훌륭하다.

여름에 겐토프트에서 산책할 곳을 찾는다면 여기도 강추!

두살 반의 하나

7월 첫주부터 3주간 휴가 후 사무실로 돌아오니 사무실 반 이상이 비어있다. 필요하지만 급한 일에 치여 뒤로 밀려나 있던 일을 처리하기에 좋은 기간이다. 한국에서의 휴가를 생각해보면 휴가 가서도 이메일을 완전히 접어둘 수 없고 다녀오면 자잘한 메일이 엄청 쌓여 있고, 일의 처리 기한이 휴가와 상관없이정해져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이메일을 한번도 열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이메일에 뭐가 들어왔는지를 모를 때의 불안함을 해결하기 위해 간간히 메일을 확인했으니까.

3주라는 기간이 꽤 길어서 그런가? 휴가 전과 후의 하나가 부쩍 다르게 느껴진다. 두돌이 지난 이후로 이미 하루하루 다르다 생각했지만 하나는 세살로 향하는 길의 반에 거의 다다라서 그런지 요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게 느껴진다. 덴마크어로는 복잡한 문형도 구사하고 발음도 또렷하고, 우리 식으로 ”~하잖아”에 해당하는 뉘앙스를 주는 단어도 여기저기 넣어서 테스트해보고 놀랍울 따름이다. Hvad laver du, mor? (엄마, 뭐하세요?)를 자주 물어보고 그 답에 Hvorfor det? (왜요?)를 끊임없이 붙인다.

지난 주말 스웨덴 당일치기 여행을 갔을 때 하나와 잠시 통화를 했는데, 나보고 뭐하냐고 묻길래 커피 마시면서 루바브 케이크를 먹는다고 답을 했다. 그러자 왜 그러냐는 질문의 연속. 맛이 있어서 먹어요. – 왜요? – 여름의 신선한 맛이니까요. – 왜요? – 여름에만 나는 거니까요. – 왜요? – 다른 날씨에는 너무 추워서 못자라요. – 흐음… 다행히 이 질문 놀이는 여기서 끝났다. 아마 자기가 못알아 들으면 멈추는 거 같다.

그에 비해 한국어 발음은 외국인이 한국어하는 발음이다. 주세요를 주시요 라고 발음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이북 발음 같기도 하고. 이거 한국어로는 뭐예요? 하고 물어보면 한국어 단어를 이야기해주긴 하는데 애초 어휘력 차이도 있고 한국어 단어는 헷갈리는 것도 많은 것 같다.

하나는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여기는 한국보다 애들 몸을 덜 사리게 한다. 다치고 흉지고 그런 것도 큰 사고가 아닌 이상 더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기준에는 나이에 비해 조금 위험한 일들을 하게끔 놔둔다. 하나는 몸을 잘 쓰는 편이라 그렇다고 했지만 13개월 때 보육원에 하나를 데릴러 가면 혼자 미끄럼틀을 올라가 타고 내려오곤 했었다. 작은 언덕위에 언덕을 따라 미끄럼틀이 설치되어 있어 옆으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을 구조이긴 했지만 나름 1미터가 넘는 높이의 제대로 된 미끄럼틀이었다. 솔직히 엄청 놀랐고, 혹시 선생님들이 실수로 하나를 방치해둔 건가 싶었지만, 짐짓 놀라지 않은냥, ”하나가 혼자서도 미끄럼틀을 타네요!”라고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저렇게 앉아서도 타고 배로도 타고 엄청 오래 타고 놀고 미끄럼틀 좋아해요. 혼자 타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서 우리 시야 안에서 혼자 놀게 뒀어요.”라고 답을 하는데, 나에겐 사실 엄청 놀라운 일이었다. 두돌 반인 지금, 내 키가 넘는 미끄럼틀에혼자 잘 기어올라가고 (물론 떨어질 리스크라는 건 항상 존재하니 바로 옆에서 잡을 준비하고 대기하긴 하지만) 점프하고 뛰고 페달 없이 발로 미는 두발자전거도 거침없이 밀고 타기 시작했다.

퍼즐도 좋아하는데 벌써 30개짜리 복잡한 퍼즐도 진득하게 앉아서 하기도 한다.

그 밖에 가게놀이도 좋아하는데, 돈을 본 일이 없으니 돈 개념은 모르고 뭐 살거냐 묻고 달라하는 물건을 주는 척 하는 걸 반복한다. 그래서 그런지 물건마다 누가 사준 건지 묻고 기억하곤 한다. 이거 누구누구가 사준거예요? 엄마가 사준거예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시부모님이랑 시누이네가 사준 거, 나나 옌스가 사다준 게 대부분일 수밖에 없는 환경. 한국 가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이것 저것 재미있는 것 좀 사주셔야겠다. 그래야 그거 갖고 놀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자주 떠올릴테니.

요즘 하루에 한 두번 씩 애랑 씨름하는 일이 생긴다. 그런 일이 있고나면 동료와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하다보니 애 없는 부모들은 애 키우면 힘든 일만 있나 하는 생각을 할 만도 하다 싶다. 확실히 애 발달이 계단 오르듯 비선형적으로 점프한다 느껴지는 시기에 부쩍 더 씨름할 일이생기는것 같다. 보육원에 데려다주기 전 옷 갈아 입고, 양치질 하는 타이밍에서 그런 경우가 많고 (오전은 주로 옌스 담당) 보육원에서 데리고 집에 오는 길에 그런 경우가 또 많다 (이건 주로 내 담당). 한번 떼를 쓰면 정말 악을 쓰고 울고 땅에 드러눕는다. 얼굴에 실핏줄이 터져서 주근깨처럼 보이는 피멍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그 힘은 어디서 나온데?

다행히 이렇게 격하게 떼 쓰는 시기가 길지는 않은데 며칠 그러다 말고 또 며칠 그러다 말고 그런다. 세살을 정점으로 조금씩 좋아진다고 하다 다섯살 정도 대면 대부분의 아이가 이런 시기에 안녕을 고한다 하니 기다려봐야지. 매일 그렇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것 같다. 예전 하나 신생아 시절에 우리 아래층 앞집에서 애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울면서 현관 앞에서 버티면 그냥 엄마 혼자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는 일이 거의 매일 같이 있었는데, 지금 하나가 대충 그 시기인 것 같다. 그 아이는 좀 심한 편이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조금 그 엄마가 이해된다. 아마 싱글맘에 애가 둘이라 더 정신적으로 지쳐있었을 듯 하다.

이 밖에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순간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애가 제때 움직여주지 않아 스트레스 받는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하루에 한두번 정도 받는 걸 제외하면 애랑 보내는 순간은 참 좋다. 역시 지금도 생각은 첫 1년이, 그다음은 그 다음 1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힘 쓸 일이 줄어들고 애가 놀이의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애랑 있는 시간이 참 좋다.  그래서 이번 휴가가 조금 더 특별했었다.

세살이 되면 어떨까? 그리고 네살이 되면? 생각만 해도 설레고 기대가 된다.

3주의 휴가

휴가 3주차에 접어들었다. 첫주의 시작은 집안 페인트칠로 땀을 빼는 육체노동이었지만 둘째주에는 시댁에서 먹고, 쉬고, 자고, 하나와 화끈하게 놀아주는 가족의 시간이었다. 마지막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나와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으면서도 우리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인이 된 후 이렇게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보다 일찍으로 시간을 돌려 중학생이 된 이후 이렇게 3주의 시간을 연속으로 여유롭게 보내본 적이 있던가.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나는 모양이다. 다소 긴 시간 쉰 탓에 돌아갈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3주간의 여름휴가라는 게 아주 적당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하나는 무섭게 크고 있고 한마디로 경이롭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다. 애를 일반적으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다른 애들도 좋아하게 되고, 다른 부모들이 애들 자랑하는 걸 이해하지 못해하던 내가 그게 너무나 이해가 되고 애들의 성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놀랍게 느껴진다. 기적같은 것이라 할까. 애들이 뛰어노는 혼돈의 상황이 평화로 느껴지게 바뀌는 기적. 관계의 축이 바뀌고 관심의 초점이 바뀐다.

이번 휴가는 그런 하나와 살갑게 부대끼는 그런 기간이다. 육아 초기, 사회생활이 없어지는 변화 속에 나의 시간을 간절히 그리워했다면, 그리고 육아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가장 힘든 시기가 지난 지금, 아이가 너무 이쁘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제 다시 가을 한국 방문휴가를 가질 때까지, 연말 연시 연휴를 맞이할 때까지 하나와의 집중적인 시간은 미뤄둘 수 밖에 없지만, 그 때를 기다리며 일상을 열심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사랑 하나

독립.

기본 원칙은, 하나가 열여덟살이 되면 독립을 시킨다는 것이다. 돈도 모아서 자기가 살 집 보증금을 마련하고 다달이 월세를 내고 살림을 챙겨가며 혼자 살아가는 진짜 독립. 그러니 그 전부터 아르바이트도 하고 집안 수리하고 페인트칠하는 법도 배우고, 살림도 배워야 할 게다. 여기선 혼자 살아남기 위해 배워야 할 일이 많으니까.

나는 독립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대학교 등록금을 대주신 이후부터 학비는 학자금 융자로, 용돈은 과외로 충당은 했다지만, 부모님이 마련하신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내 방정리도 잘 안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미루다보면 보다 못참은 엄마가 정리와 청소를 해주실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게다. 그 당시 핑계는 내가 할 건데 엄마가 너무 미리 해버리셨다는 거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청소야 주말에 간혹 청소기를 돌리거나 걸레질을 조금은 했어도 상시 엄마가 해두신 것에 주말에 간혹 한번 돕는 정도였으니 그냥 시늉이라고 해둬야겠다.

조금씩 독립의 연습을 하게된 것은 대학교 다닐 때 사촌인 민정이와 잠깐 같이 살았던 때와 직장생활 시작하면서 나 혼자 이모네 집 근처에서 원룸을 구해 살면서였다. 그렇지만 집 구하는 것도 엄마가 도와주셨고, 자주 엄마의 방문으로 반찬도 얻고 청소의 도움도 받았으며 그냥 사는 장소만 옮겼다 뿐이었지 정신적으로는 진짜 독립의 경험은 아니었다.

만 스물여덟이 되던 해였나? 2008년 해외 발령을 시작으로 해 인도에 나가 살면서 조금 더 독립에 가까워졌던 것 같다. 회사의 주택임차보조로 얻은 집이지만, 그 집은 내가 얻었다는 생각이 있었고 부모님이 이사를 오시기 전에 미리 내가 정착을 준비해두었고, 비자와 생활의 기반을 내가 마련한다는 점에서 독립에 많이 가까워졌던 것 같다.

아마 2010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인도에서 사귀던 호주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남자친구와 만나 데이트하고 집에 열두시 다되어 왔는데 늦게 왔다는 걸로 엄마에게 혼이 났다. 만 서른의 나이에 외박도 아니고 늦게 오는 문제로 엄마에게 혼을 나야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엄마가 걱정하시는 남자와 자는 문제는 굳이 밤이 아니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늦는 것을 막는다고 막아지는 일은 전혀 아니며, 내 주변 친구들 중 이 나이가 되도록 처녀인 애들은 손가락으로 꼽기도 어려우니 시대와 맞지 않는 걱정을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앞으로 외박문제는 터치하시지 말고, 앞으로는 외박을 하고 오는 일도 있을 수 있다 말씀드렸다.

엄마와 큰 갈등과 같은 부딪힘이었지만, 그런 큰 갈등을 서른이 되도록 빚어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아마 부모님도 그러려니 받아들여주셨던 것 같다.

막상 외박을 한 일은 손에 꼽고, 그 다음날 미묘하게 차갑고 다운된 기류를 느낀 것 이외에는 엄마도 나의 입장을 받아들여주셨고, 아빠는 엄마보다 항상 좀 더 느긋하게 받아들여주셨던 것 같다. 아빠 속이야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어쩌면 엄마보다 아빠가 더 걱정하셨고, 그걸 엄마에게 표현하셔서 엄마가 더 나서서 걱정을 표현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냥 표면 그대로 아빠가 더 잘 받아들여주신 것일 수도 있고. 누가 알테냐.

내가 옌스와의 미래를 그릴 때 가장 걱정이 된 건 부모님이었다. 과연 부모님과 떨어져 먼 이역땅에서 사는 게 괜찮은 일일까? 남겨진 엄마,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죄를 짓는 걸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도움이 필요한 일들이 생기실 수 있는데 나는 그 도움을 드리는 역할을 할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용돈이라고 드리던 작은 돈도 내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동안은 드리지 못할텐데 그건 괜찮을까? 많은 것들이 걱정되었다.

엄마, 아빠에게 그런 이유로 옌스와 미래를 그리는 게 걱정이 된다고 했을 때, 엄마 아빠는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다 해쳐나가게 되어있다고. 너의 희생으로 우리가 살려는 거 아니라고.

이기적인 마음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감사했고 안도했다. 아마 나는 엄마, 아빠에게서 반쯤 독립만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새로운 가정의 한축이 되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하는 데에는 기존 가족이라는 둥지를 완전히 떠나는 게 필요했는데 그걸 못하고 있었던 거였다. 이 말씀으로 나는 둥지를 완전히 떠났다. 훨훨 날아서.

나는 하나를 열여덟에 독립시킬 것이다. 하나에게 언제고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어는 주겠지만 때가 되면 둥지에서 밀어내서 날아가게끔 하련다. 그게 가혹한 게 아니라 문화인 이곳에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아마 나에겐 큰 훈련이 필요한 일일 거다. 앞으로 십육년도 채 남지 않은 일이다. 그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모르겠지만 그때도 뭔가 열심히 배우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그 때 생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29개월 하나의 성공적 플레이데이트

하나가 오늘 처음으로 다른 친구와 제대로 같이 놀았다. 왜 부모들이 친구니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플레이데이트를 하려는지 제대로 이해했다. 잘 맞는 아이들을 같이 놀리면 부모들이 애 보는 게 얼마나 쉬워지던지.

옌스의 동료인 피에르의 가족 세명을 만난 건 작년 겨울 옌스 상사네 집 파티에서였는데, 하나보다 불과 2-3주 빨리 태어난 리암이를 둔 부모였는데다가 덴마크-스웨덴 이중언어 가정이라는 데에서 우리와 맞는 부분이 많았다. 옌스와 같이 맡은 프로젝트가 새로 생겨 부쩍 그에 대해 듣게 되는 일이 많았는데, 서로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제법 나누다보니 언제 한번 만나서 놀자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직장동료와 친구가 되는 건 덴마크에서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도 듣지만, 또 옌스를 보자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게 옌스 직장 동료랑 가족끼리 밖에서 따로 보는 일이 제법 된다.)

서로간의 주말 일정으로 조율하다보니 6월초에 6월말 약속을 잡았고, 하도 오래되서 캘린더의 리마인더만이 기억을 나게 해줄 정도로 잊을때 즈음 되서 만나게 되었다. 큰 기대도 없었던 게 여지껏 내가 다른 가족들과 만나 한 플레이데이트가 나쁘진 않긴 했어도 신나서 다음을 고대하게 할 만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른들 모임에 애들이 낀 격이거나 애들 만남에 어른이 낀 격인 적만 있었고, 양쪽이 딱 맞아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아다리가 딱딱 맞는다라는 말처럼 모든 게 쏙쏙 들어맞았다.

20분정도 운전해서 가야하는 외곽에 있는 곳이었는데 근처에 덴마크에서 가장 큰 실내놀이공원 있다고 들었다. 세상에. 올해 여름 중 가장 더운 날 중 하루였던 이 날, 사람들은 다 해변으로 갔든가, 휴가 시즌 시작이라고 해외로 나갔든가 간에 우리가 이 놀이공원을 전세낸 것 같았다. 어른들도 애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었던 넓은 공간이었는데, 리암이에게는 자주 가봤던 곳이었고, 하나는 워낙에 겁이 없는 애라 둘이서 함께 놀기에 놀 수 있는 수준이 비슷했던 것 같다.

이 겁나는 부녀. 저기까지 올라가서 미끄럼틀로 내려왔다. ㅠㅠ
이제 셀카 찍으면 장난도 치고 여러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아가씨

처음 리암이네 집에서 만나서 아이스바 하나씩 빨아먹을 때 까지만해도 리암이가 너무 낯을 가렸는데, 내가 자기 장난감을 보고 너무 신기해하고 좋아하고, 하나도 옆에서 같이 붙어서 호감을 표하자 어색한 듯 조금 어울렸다. 그런데 놀이공원에서 조금 놀더니 둘이 엄청 가까워졌다. 집에 와서는 둘이 정원에서 얼마나 같이 놀던지… 오후 두시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같이 있었으니 무려 일곱시간이나 같이 보냈다. 그 중 어른들이 놀이공원에서 열심히 놀아준 (상처가 날 정도로 열심히 놀아줬다.) 다섯시 반까지 세시간 반을 제외하면 정말 잘 놀아줬다.

장난감을 잘 빌려주던 어른스러운 리암이

둘이 말을 할 수 있는 수준도 비슷했고 (이중언어 아이들 말이 늦다는 통설이 꼭 맞지 않는다는 걸 주변에서 놀랍게도 많이 보고 있다.) 둘이 성격이 잘 맞았는지 수다도 많이 떨고, 한번 어른들이 놀이 순서를 중재해준 거 외에는 다툼 한번도 없었다. 끝까지 둘이 너무 사이좋게 놀고 헤어질 때도 여러번 포옹을 나누었다. 잘가라고, 잘 있으라고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까지도 얼마나 이쁘던지.

역시 장난감으로 어색함을 풀어야지.

피에르나 그의 아내인 스티네 모두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다. 음식도 입에 꼭 맞았고,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 맛있고 섬세하게 배려된 시간을 마련해줘서 황송할 정도의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동안 마음도 참 편했고. 다음에 우리가 초대할 땐 이처럼 좋은 시간을 만들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린 어디를 데리고 가야하나?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하나? 생각을 좀 많이 해봐야겠다.

덴마크 직장생활의 중요한 일부 – 금요일 아침식사

매주 금요일이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30분 아침식사를 함께 하고 나머지 30분엔 회의할 게 있으면 하고, 아니면 해산한다. 직원들 수가 늘어나면서 20명에 다다르니 준비할 것의 무게도 너무 늘어나서 두명이 같이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식사로 먹을 빵으로는 큰 덩어리의 빵이나 일인용 분량의 작은 덩어리빵을 섞어서든 큰 덩어리 빵만이나 작은 덩어리 빵만으로 양을 맞춰서 준비한다. 또 그 후에 후식으로 먹을만한 wienerbrød (영어로는 Danish pastry이나 사실 오스트리아에서 이민온 제빵사가 만든데에서 기인한 탓에 비너브횔이라고 한다)을 준비한다.

이와 함께 빵 위에 발라먹을 버터와 얹어먹을 치즈, 잼, 햄, 폴랙(pålæg) 초콜렛(빵에 얹어먹도록 나온 얇은 판형의 초콜렛. 스프레드 대신 빵에 바로 얹어먹는다.)를 준비한다. 우리 센터 직원들의 취향을 반영해 버터는 락토스 없는 것도 하나 준비해가고 잼은 최소 두가지 종류로, 햄은 파마햄 종류, 치즈는 아주 전형적인 mellemlagret danbo와 함께 크리미한 브리타입의 치즈를 준비한다. 폴랙 초콜렛은 다크가 중요하다. 과일을 함께 준비하기도 하는데 요즘은 딸기 철이라 딸기를 가져가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음료수로는 주스 세병을 준비하는데 오렌지, 사과에 다른 주스 한종류 섞어가는 게 보통이다.

두명으로 분량을 나눈 이후 한 명은 빵, 한명은 기타 같은 식으로 나누기로 했는데 나는 집 근처에서 회사가는 방향에 빵집을 찾기가 애매해서 항상 그 나머지를 사는 것으로 한다. 원래 다음달 생일 전날 아침식사 담당이었는데 동료가 이번주 아침식사 담당일에 휴가를 쓰려고 한다며 바꿔줄 수 없냐고 물었다. 마침 생일날 케이크도 사야하는데 아침식사도 준비해오려면 참 뭐가 많겠다 싶었기에 흔쾌히 승락했다.

저녁에 잦은 회식이 없고 점심시간도 자리 떴다 돌아오기까지 30분에 불과한 탓에 생일자가 가져오는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30분, 이렇게 회의를 겸한 금요일 아침식사 30분이 직원간 네트워킹에 중요하다. 각자 뭐하는지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디어도 주고받고, 또 사생활에 대해서도 담소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말이다.

내일 저녁엔 빨래를 하고 (공동빨래 공간 금요일 오후 예약이 내가 예약하기 전에 차버려서 할 수 없이 내일 예약했다.) 하나도 재워야 해서 (옌스와 매일 번갈아가며 애를 재운다.) 장을 보러 가기 어려울 것 같아 오늘 미리 금요일 아침식사 장을 봤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덴마크 직장생활 만 4개월 평가

요즘 언론에 초점을 받는 업체들이 조금 있는데, 그와 관련해서 우리도 영향이 있을 거 같아서 주시하다가 사안을 조금 깊게 파고 들어봤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경영진의 관심이 쏠린 사안이라 급히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 오후까지 급히 작업을 해서 보고서를 만든 후에 경영진에 자료를 송부했다. 자료를 미리 보내둬야 주말에 경영진들도 자료를 읽고 월요일에 회의를 할 수 있으니까. 금요일은 그덕에 점심도 스킵하며 일하고 서둘러 퇴근했는데, 오늘 회의도 열두시 반에 잡힌 탓에 한시 반이 넘어 간신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일이 커져서 그 일을 내가 본격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

지난 4개월 조금 넘은 기간 동안 느낀 걸 몇 개 뽑아보니 참 신선하면서도 은근히 금방 익숙해지는 것 같다.

첫째로 보고서에 대해서 절대 막 수정하지 않는다. 보고서를 검토, 수정해서 나에게 보고서가 돌아올 때도, 그 분량이 많지 않고, 내용이 내가 의도하던 내용에 부합하는지 등을 확인하고 수정이 괜찮은지 봐달라고 표현하는 게 참 신선했다. 내가 외국인이니 나는 문법 틀린 거는 매우 환영하며 고쳐달라고 하는데, 그게 혹시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는지를 확인하는 것부터 좋은 의미로 얼마나 이상하던지.

그리고 잘 한 부분은 정말 열심히 칭찬해준다. 덴마크도 겸양을 중시하는 터라 칭찬에 반응하는 방법이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 칭찬은 적극적으로 하는 편인 것 같다. 우리 센터장이 특별히 그런 타입인 것 같긴 한데.

직군별 이동이 없다. 행정직은 행정업무만 한다. 행정직이 오래 근무를 했다 해서 전문직군 업무를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 (økonom) 포지션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해당 학위가 있어야만 한다. 이를 대체할만한 이력이 있으면 모를까 짧은 행정 관련 직무교육을 받고 비서로 계속 일한 사람은 같은 직장에 계속 있었다고 해서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에 앉을 수 없다.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파는 것 뿐. 부서를 바꿀 수는 있어도 크게 자기가 속한 커리어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공공부문이 이런 건 더욱 강한 것 같다. 민간이야 사실 그런 업무를 할 수 있기만 하면 교육 백그라운드가 중요한 건 아니고, 경력이 길 수록 교육의 의미야 흐려지기도 하니까.

회식은 진짜 없다. 다 각자 바쁘니까. 나도 바빠서 참여하기도 어려우니. 대신 1년에 한번 센터데이를 한단다. 업무시간 중 프로그램은 철저히 업무와 관련해서 짜더라. 우리 같은 경우 우리가 관리하는 하수처리 업체 중 하나를 방문해서 하수처리 프로세스도 보고 설명도 듣고, 예산 관련 애로사항도 청취하는 걸로 짰는데, 대신 저녁에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는 걸로 했다. 음… 기대기대. 놀라운 건 이 모든 어레인지를 센터장이 했다는 것. 이게 가장 센터데이에서 가장 놀라운 파트였다. 일정은 두달 전에 이미 전체 직원에게 일정을 물어봐서 조율한 거였다.

행정 업무가 일에서 빠져 있으니까 일에 대한 집중도가 얼마나 올라가는 지 모른다. 자기가 어떤 일을 맡을 줄 알고 지원해서 채용된 포지션에서 다른 이상한 잡무 안하고 관련된 일을 중심으로 담당하면 당연히 집중도가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가지수가 늘어나면 날 수록 데드라인 점검하는 것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니.

직장생활에서 친구 사귀는 건 힘든 일인 건 맞는 거 같다. 내가 내 생활에 여유를 내줄 수 없는 것처럼 타인도 자기 생활의 여유를 내주기 힘들고 그나마 그걸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은 또 아침에 회사 헬스장에서 만나서 같이 운동하거나 같이 러닝클럽에서 뛰는 식으로 내가 맞추기 어려운 활동을 하더라.

금요일마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대충 사가는 품목은 큰 틀에서 정해져있지만 자세한 건 자기가 정하면 된다. 인원이 늘어나서 올 3월부터 2인이 분담해 해당 주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주스, 잼, 치즈, 버터, 햄, 과일, 빵, 패스츄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은근 무겁다. 그래도 이렇게 금요일 아침에 30분 식사를 함께하며 담소를 나누고 센터회의를 뒤이어 하면 서로 공유할 정보도 나누고 친교도 나누고 좋다. 회식이 어려운 덴마크인에겐 회식같은 요소이다. 물론 점심도 있지만 점심보다는 회의실에 앉아서 하는 식사라 좀 더 친목요소가 더 있는 느낌?

4개월이니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지난 기간에 대한 평가는 대만족이다. 오히려 너무 대만족이라 두려운 듯. 상사가 갑자기 바뀐다면 어떨까 등등 이런 생각 말이다. 우리 팀장은 여자인데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유형의 여자 상사로 카리스마, 부드러움, 유머, 강단을 잘 버무린 사람 같다. 쓸데 없는 생각말고 일이나 해야지.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나 떨어졌는데 사안을 과거사부터 깊게 파봐야 하는 일이라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분석리포트도 재미있지만 두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것도 하나가 안풀릴 때 다른 걸 하는 식으로 돌릴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다.

살면서 하는 원치않는 환경개선 공사… 불만 폭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해서 꽤나 많이 참았는데 결국 오늘은 폭발하고 말았다. 사건의 발달은 아파트 환경개선 공사. 50-60년대경에 지어진 아파트인데, 외벽쪽에 곰팡이가 피는 집들이 있어서 심하게 핀 집들을 중심으로 건물주에게 해당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안건이 있었다. 같은 건물임에도 집집이 다른 건 환기의 정도가 차이나기 때문인 듯 하다. 우리는 옌스가 환기를 엄청 강조하고 나도 집에서 음식 냄새 나는 걸 그닥 안좋아해서 겨울에도 환기를 꾸준히 하고 봄, 여름, 가을에는 창문을 어딘가는 항상 조금이나마 열고 살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겨울에 밤새 자면서 창틀에 서린 습을 제거해야 하는 정도? 아무튼 그 안건이 급격히 진전되어 전 아파트에 환기시설을 새로이 설치해서 그를 통해 한시간에 십분 정도씩 강제로 환기를 시키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막상 곰팡이가 핀 집들도 그런 대규모 공사를 원한 건 아니고 곰팡이 제거만을 원한거였는데, 각각의 가정집마다 4주를 할애하는 대공사로 일이 커졌다.

우리 집은 북쪽 벽만 벽지가 살짝 떴는데, 그 안에 곰팡이가 피었을 수 있다며 한쪽 벽을 긁어내고 약품처리를 한 후 다시 벽지를 바르고 페인트칠을 한다고 한다. 심한 집은 짐을 다 빼고 호텔생활 하면서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벽 긁어내는 공사는 한 방만 영향을 받은 터라 그냥 이 집에서 지내면서 공사를 견뎌내야 한다는 거였다.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공사가 시작되기 석달간 생각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퇴근해서 애 픽업하기 전에 서둘러 인부들이 다닌 곳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고 물걸레질을 하고, 애 픽업해서 저녁 먹이고 재우고 하면 정말 진이 다 빠지는 거였다. 이 원치않는 공사가 끝나면 환경개선을 위한 공사인 바, 공사비용을 프로젝트 내용연수에 맞춰서 기간배분해 월세도 올려내야 해서 시작부터 짜증이 많이 나있는 상태였다. 4주 동안 다른 종류의 인부들이 와서 각자의 종목에 맞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고로 언제 어떤 인부가 다녀갈지 알 수 없는터라 열쇠를 프로젝트 담당사에 넘기는 것도 너무나 마음에 안들었다. 은퇴한 사람이나 실업자는 집에 있으면서 필요한 때 문을 열어주면 된다지만 일을 하는 사람이 그럴 수 없으니. 회사 직원들은 그냥 열쇠 넘겨주면 된다고, 도난 되는 거 있으면 보험으로 보상받으면 된다는 식이었는데, 사실 이렇게 열쇠 넘겨준 건 보험으로 보상 안된다고 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인데다가, 해당 프로젝트 운영사에서 열쇠 관리를 철저히 한다면서 열쇠를 넘기라고 하고, 그게 안되면 집에 있으라는데… 신뢰는 하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으니 열쇠를 넘겼다.

가장 스트레스인 건 정보가 너무 없었다. 무슨 프로젝트를 어떤 순서로 진행하는지, 물건을 얼마만큼 비닐 등으로 커버해야하는지, 먼지가 얼마나 날리는 것인지, 누가 어디로 드나드는지 등 너무 정보가 없었다. 프로젝트에 대해서 아파트 위원회 임원인 옌스가 나보다는 잘 알겠지, 또 내가 너무 나대면 그렇겠지 싶어서 괜히 옌스 옆구리만 찔러대며 상황을 파악해보라는데, 너무 젠틀한 커뮤니케이션만 하는 것 같았다. 아파트 임대주를 대신해 관리하는 회사 프로젝트 책임자와 옌스가 프로젝트 시작일 전날 아침 이야기를 한 후 어느 날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어느날 어디 벽에 구멍을 낼 거니까 그때까지 어떤 준비를 하라고 들었다며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에 내가 퇴근하고 났더니 문 옆에 위아래 층을 관통하는 큰 관이 지나갈 천장과 바닥에 큰 구멍을 뚫은 것이었다. 아직 우리는 준비도 다 안되서 비닐도 안씌워놨는데. 집에 혼자 돌아와 궁시렁궁시렁 짜증을 바가지로 내며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과 표면 걸레질을 다 하고 옌스에게 볼맨 소리를 했다. 그 날 저녁 옌스가 그 이상의 공사는 이번주에 없을 거라고 했는데, 내 예감이 그렇지 않았다. 옆 라인 집에 잠깐 가서 보고 들은 바로는 그 다음 공정이 부엌과 목욕탕 사이 구멍 뚫는 거라고 했었는데… 예감이 안좋아서 해당 위치에 있는 부엌 찬장 위 물건을 다 치웠다. 역시나 다음날 돌아오니 집은 먼지 구덩이에 예상한 위치에 구멍이 떡하니… 옌스가 비닐도 우선 중요한 걸 중심으로 쳐둬서 전날보다는 양호했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궁시렁대고 옌스에게 짜증 좀 내고 참았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참기 어려웠던 게 전혀 통보된 바 없는 출입금지 팻말이 침실에 붙어있는 거였다. 우리 방에 외벽을 중심으로 1.5미터만 공간을 내달라 해서 침대도 다 분해해 접어두고 최대한 정리를 해뒀지만 우리가 출근준비할 때 필요한 물건은 다 방에 있는데.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하나를 픽업해야 하는 시간은 네시 반. 이미 시간은 십분밖에 안남았는데 폭발하고야 말았다. 그 방에 지난 주부터 시작한 발레에 가기 위한 물품이 다 들어있었는데, 오늘 고대하던 발레에 가는 두번째 날이었는데, 그것때문에 장까지 다 봐서 서둘러 돌아왔는데!!! 내가 여지껏 좋게 좋게 참고 있었는데 도저히 이건 참을 수 없다 싶어 옌스에게 내가 직접 전화하겠다고 하고 연락했다. 첫째로 공사한 업체에 연락해보니 내일까지 들어가면 안된단다. 아니 1.5미터 비우라고 들어서 그거 비워줬더니 이건 뭐냐 하니까 그건 관리업체랑 이야기하란다. 그런 정보 전달은 그 업체에서 맡은 일이란다. 둘째로 관리업체랑 이야기해서는 소리만 안질렀다 뿐이지 다다다다 쏘아붙였다. 우리에게 안내한 거랑 공사기간이 달라지는 거, 약속한 것과 계속 달리 공사를 진행해 원치않는 공사를 하며 월세도 올려내야 하는 우리에게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건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며.

상대가 갑자기 쩔쩔매며 자기도 그런 상황인 줄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하길래 나도 목소리 높여 이야기 한 점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다는 알 수 없어도 방에 못들어 가는 상황 처럼 큰 변동이 있는 건 전날 미리 알려줘야 하는 거고, 그정도의 최소한의 정보라도 줘야 한다고 하고 몇가지 물어보고 통화를 끝냈다. 그러다보니 하나를 보육원 문닫기 5분 전에 픽업할 수 있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이 공사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원래 3주 걸린다는 공사가 4주 걸리는 걸로 늘어났는데, 4주면 끝나긴 하는건지, 4주 걸리면 비용이 늘어서 월세 인상폭도 늘어날 텐데 도대체 이건 뭔지. 제발 좀 빨리 끝나서 일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덕에 그간 버릴까 말까 고민하던 물건들은 확 버리는 계기는 되었지만…

다르긴 하지만 여기도 이상향의 천국은 아니다.

내일은 임원진 회의에 처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실제 데이터를 갖고 모델을 테스트해 본 결과를 보고하는 거라 내용면에서는 긴장할 것이 없긴 하지만 인사해본 적 없는 비담당 임원들도 동석하는 자리에서 발표를 하는 건 어떨런지 모르겠다.

아직도 상사와 임원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다. 상사나 선임과 이야기하다가 부청장과 청장 (둘다 공교롭게 야콥이다.) 을 칭할 때 야콥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야콥이 이렇게 지시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참 불편하다. 뭐랄까… 미스터 할, 미스터 샴부엌 이런식으로 이야기하면 편할 것 같은데 말이다.

대화 중간중간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지난 주 전화로 다른 청 사람과 오랜 시간 통화했을 때 그 사람은 중간중간 내 이름을 불러가며 대화를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좋은 생각이다, 해인.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해인. 나도 네 생각해 동의한다, 해인. 그래서 그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해인. 이처럼 중간중간 이름을 부르니까 나도 애써 마티아스라는 이름을 애써 껴 봤다. 그렇게 하다보면 좀 더 친밀해지는 거 같긴 한데 (앞으로 협업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라 그래서 나쁠 건 없다.) 그러기까지는 입에 붙이려고 노력 많이 해야할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여기도 직장에 이상한 사람 있고, 그래서 갈등도 다 있게 마련이다. 커리어 컬럼에 “상사가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일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직장에 가기 힘들 때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것들이 실리는 게 흔한 일이니 말이다. 물론 그럴 경우 직장에서 문제시 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에서보다 그런 사람을 마주할 확률은 낮지만, 없지는 않다. 옌스는 우리 회사 분위기가 특별하다고 한다. 공공부문인데다가 정치적으로 독립성이 커서 장관이 좌지우지하기 어려운 기관에 전문성이 큰 기관이라 그런 거 같다고 한다. 그 점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사람 사는 곳 다를 것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났는데, 덴마크의 평등에 대해 과하게 왜곡된 정보가 한국에 떠돌고 있는 것 같다. 급여 부분에서 청소부를 하든 의사를 하든 급여가 별 차이가 없다든가 하는 정보 말이다. 그럴리가. 여기가 사회주의라는 건 공산주의라는 게 아니다. 나라에서 많은 부분의 복지를 민간에 맡기지 않고 공공에서 책임지고 떠맡는다는 것이고 그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걷는다는 것 뿐이지,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방식은 자본주의다. 신체노동을 수반하는 직업이나 사무직이나 기본적으로 최저 세전 임금수준이 높고, 직업이 없는 사람을 받쳐주는 사회안전망 덕에 빈곤선에 있는 사람이 적다는 거지 그 사람들이 어떤 조직의 위에 앉아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장기간의 교육이 필요한 전문직만큼 월소득이 높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의 경우 직업전선에 일찍 뛰어들어서 생애 소득 기간이 길어지니까 생애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고연봉자와 소득 차이가 더 줄어들 것이다.

시청청소부가 의사와 결혼을 한다던데 청소부 세후 소득이 월 기준 35000크로나(원화 600만원) 쯤 되고 의사는 별로 안번다 이런 글이 돈다고 이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글이 한인회에 올라왔다. 나도 블로그 여기저기에서 본 글이었다. 개인의 세율은 개개인별로 차이가 많이 나서 별로 안내는 사람도 있지만, 세후 소득이 35000크로나쯤 되려면 노동시장분담금, 개인소득세 해서 거의 50%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한다. 주변에 물어보니 가족들을 포함에 직원들도 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한다. 우리 청도 예산 절감에 대한 압박을 상시 받고 있고 그건 시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예산 문제로 여러가지 서비스를 외주로 돌리는 건 덴마크 공공부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거라 우리 청의 경우 외주로 돌아가 있다. 그리고 청소부문은 난민이나 비서구국가에서 이주온 이민자가 거의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교, 스포츠센터, 호텔, 기차역, 백화점 등 할 것 없이 청소하는 사람은 다 피부색이 어두운 이민자들이다. 간혹 한국의 단점을 강조하려 복지가 강하다고 이야기되는 덴마크를 예로 들어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한국을 못살 나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곳이라고 완전한 천국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직업에 상관없이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굴에 불쾌함을 드러내는 일 없이 (네 따위가 감히? 이런 류의 불쾌함) 말을 섞는다는 점에서 직업에 대한 차별이나 귀천 의식이 드러나지 않는 건 분명하다. 어쩌면 아주 부자가 아닌 한 18세 독립을 하면서 수퍼마켓에서 일하거나 신문을 돌리고, 청소를 하는 등의 아르바이트를 다 해본 경험이 있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아껴야 상대가 나를 아껴준다는 의식이 발로한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도 성공하고 싶어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어하고 내 배우자가 비슷한 백그라운드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보다 그런 사람이 적고, 그걸 표현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니까 그게 표면에 드러나는 일이 없을 지는 몰라도 그런게 아예 없는 게 아니다. (그런 걸 표현하는 경우 교양이 없는 사람이 경우나 교육을 잘 못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가 클 이나라가 앞으로도 살기 좋은 나라였으면 좋겠지만, 여기도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고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잘 사는 부모들이 자식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부모 세대의 불평등아 자식세대로 고착되는 경향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런 사회의 역동성이 사람들의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 주고 사회의 안전성과 시민간의 신뢰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큰 틀이 바뀌지는 않지만 곧 있을 선거가 (나는 투표권이 없지만) 조금이나마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3월 말 회사일상

간만에 집에서 두시간 야근을 했다. 집에 와서 애 픽업해 집 조금 치우고 저녁 요리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오면 8시가 넘으니 두시간 야근이면 자기 조금 전까지 하는 야근이다.

하루 7시간 반에서 8시간 반 사이로 칼같이 일하는 편인데 내일 아침 상사가 출근하기 전까지 보내야 하는 자료가 있어 (정확히는 오늘까지 보내는 건데) 별 수 없이 야근을 했다. 에너지청에서 업무문의로 온 전화가 있어 그걸로 한시간 반을 쓰지 않았다면 거의 회사에서 다 쓸 수 있었겠지만, 또 그 전화협의가 결론적으로는 나에게도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되서 불만은 없다. 하필 또 전화가 점심시간 30분을 끼고 와서 혼자 샌드위치를 들고와 자리에서 일하면서 먹었는데 그 덕에 오늘은 아무와도 말을 섞지 못하고 주구장창 일만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있는데, 일의 양이 적은 건 아니고 연말 성과평가에 내 보고서 진행상황이 별도 평가 항목으로 잡혀있고 그 비중이 커서 직장에선 정말 바쁘다. 이 와중에 일어난 발목부상이며 교통사고가 일신상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업무에 지장을 주는 형태가 아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진짜 이쯤이면 내 운이 진짜 좋은 거 같다.

임원진 보고 자료 송부 시한이 시스템으로 칼같이 정해져 있어서 그 전에 못보내면 보고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한다. 그건 최대한 지양해야 할 일이라 내일은 상사가 봐야 한다. 마음에 드는 보고서가 나왔으니 상사와 임원진 반응이 궁금하다.

요즘 직장에 스크린도어를 두 개나 설치하고 CCTV를 병행해 두 개 설치한단다. 정문 입구와 외부 출입구로 연결된 타워에만 두 개 있는 CCTV이니 총 세 개였는데 총 다섯개로 늘린다는 거다. 공공부문에 개인정보 보호 부문에서 물리적인 보호 강화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아져서 취하는 조치라고 한다. 손님 오고가는 부분에서 생기는 문제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것 같다. 필요하니까 설치하긴 하는데 CCTV를 설치하는 건 반갑진 않다. 덴마크 사람들은 사생활 보호에서 오는 자유에 대한 가치를 감시로 인한 사건 예방 효과에서 오는 안전에 대한 가치보다 더 높게 쳐서 CCTV를 찾아보기가 힘든 편이다. 사실 뭐 감시당한다 해서 상관없을 삶을 살고 있지만, 이렇게 축적되는 시각정보가 앞으로 어떻게 사용될 지 모르니까 (중국처럼 수퍼스코어 산출한다든지) 이런 감시시설의 설치는 반갑지 않다.

반갑지 않은 공사로 인해 드릴로 바닥과 계단 철근에 구멍을 뚫는 소리가 어제, 오늘 귀를 울렸다. 보고서 쓸 땐 음악을 안듣는 걸 선호하는데, 거리가 꽤 되는데도 은근히 신경을 긁는 소리가 지속되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엉덩이 꼭 붙이고 앉아있었다. 안그래도 바빠 사람들과 교감할 새가 없긴 하지만 주변 소식에 더욱더 둔해질 수 밖에 없는 하루였다.

옌스는 월요일엔 갈비찜이 오늘은 비빔밥이 점심메뉴 중 하나로 나왔다는데, 우린 아시아 음식으로 가봐야 커리나 조금 더 이국적이어서 굴소스 볶음밥 정도로 끝난다. 음식이야 맛도 좋고 가격도 싸서 만족은 하는데, 그래도 아시아 음식도 조금 더 나오면 더욱 감사하겠다.

이제 회사생활의 적응은 끝난 거 같다. 이번 3월을 끝으로 수습기간이 완전히 끝난다. 덴마크 회사는 해고 기간만 지키면 해고는 매우 자유롭기 때문에 수습이 끝났다고 공무원이 철밥통인 그런 직장은 아니다. 그래도 수습기간은 해고 기간이 진짜 짧아서 수습기간이 끝났다는 건 나에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제 이 회사 들어와서 해볼 건 다 해본 거 같다. 보고서도 쓰고, 보고도 하고,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고, 전화 상담도 하고, 전화 업무협의도 하고, 남의 전화 받아서 메모도 남겨서 넘겨도 주고. 새로운 게 없으니 긴장은 많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전화받으면서 ‘Forsyningssekretariatet, Det er Haein Lee Gundgaard.’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뭔가 긴 것 같이 느껴지지만 옛날에 ‘안녕하십니까. KOTRA 코펜하겐 무역관 이해인입니다.’라고 말했던 것 생각하면 음절 개수로는 지금이 더 적다.

이제 씻고 자야겠다. 내일 또 여섯시에 일어나야하니까. 그러고보니 이번주말이면 썸머타임이 시작되는구나. 한시간의 시차에 적응기간을 또 가져야 하는구나. 하나는 그 시차에 얼마나 잘 적응해줄까? 흠… Det er et godt spørgsmå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