큘로데스타이

Cullotesteg(큘로데스타이)는 우둔스테이크 정도가 되는 음식일 거다. 지방질 부위를 정방형 모양으로 살이 드러나기 직전까지의 깊이로 해서 그물처럼 칼집을 내주고 그릴판에 올려 그 그릴판을 물을 부은 깊은 오븐팬 위에 얹어 오븐에서 굽는 요리이다. 지방질에 후추와 소금으로 잘 마사지를 해주고 물이 고기에 닿지 않게 해서 굽는데, 처음엔 230도의 고온에서 15분 굽고, 고기의 중심온도가 56도까지 될때까지 180도에서 (고기 사이즈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충) 20-30분 구워주는 게 전부이다. 처음 고온에서 구울 때 지방이 바삭하게 익고, 남은 시간동안 안이 고르게 익는다. 수분은 놀랍게도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게 굽는데 전반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속 촉촉은 이해가 가는데, 겉이 바삭하게 되는 원리는 찾아보기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고 있다.) 오븐에서 꺼낸 고기는 그릇에 옮겨 담아서 호일로 덮어 휴지를 시켜주는데, 이때 계속 고기가 익기 때문에 오븐에서 레어 온도까지 다 익히고 나면 나중에 휴지 이후에 잘랐을 때 고기가 생각보다 푹 익어 있게 된다.

시댁에 가면 꼭 한 번은 먹게 되는 요리인데, 고기 판매 자체가 아무리 작아도 800그램 단위로 팔아서 세식구 메뉴로는 생각하기 어려워 직접 해볼 일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이틀에 한번만 저녁 요리를 하고, 다음 날에는 전날 음식을 데워먹는 것으로 하면서 과감히 이 부위를 사 요리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너무나 맛있고, 고기도 부드러워서 완전 마음에 들었다. 시부모님은 조금 더 고기를 익히셔서 내 기준엔 조금만 덜 익히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면, 내가 하니까 내 취향에 맞게 레어에 가까운 미디움레어로 구울 수 있어서 좋았다.

오븐에서 조리하니까 기름이 튀는 것이 적고 냄새가 진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가 포인트! 그리고 팬에 하게 되면 주로 굽는 부위들이 – 예를 들어 등심 – 가격에 품질의 영향을 제법 받아서 질기고 아니고가 내가 얼마나 돈을 지불했느냐 아니냐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 부위는 그런 차이가 크지 않아서 좋더라. 또 팬에 브라우닝을 하지 않아도 되니 설거지 부담도 덜고. 비슷하게 조리하는 오븐구이 중에서도 로스트비프처럼 겉을 별도로 팬에서 브라우닝 해주라는게 제법 있는데 말이다.

오늘 다만 뭐가 좀 씌었는지, 희석해서 쓰는 육수(fond)를 희석하지 않고 계량해서 넣는 바람에 엄청 짜져서 와인 넣고 한참 끓인 와인과 발사믹식초 등 와인소스 베이스를 거의 다 버리고, 조금 남은 것에 우유랑 분말 제형으로 된 브라운 소스를 넣어서 소스를 만들었다. 너무 아까운 것. – -; 와인 소스였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 뿐 아니라 온도계를 고기에 잘못 꼽아서 온도가 상식과 어긋나게 빠르게 올라가고 있음을 발견하고 실수를 정정하는데, 230도 오븐안에서 20분 가량 달궈진 온도계를 맨손가락으로 잡아서 당기다가 손을 데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름 뜨거울까봐 엄지와 검지만 이용해서 가볍게 당겨보려했다는 사실이 더욱 우습다. 기름처럼 들러붙어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바로 손을 떼면서 화상의 정도는 심각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손가락이라 화상이 덜했다. 마르고 거칠어진 손가락이라.)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고 볼만한 사고였다. 여기서 사고는 정말 황당하게 발생한다는 교훈을 다시한번 얻고, 아이를 키울 때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전 발목을 살짝 삐는 사고도 그렇고, 소소한 사고가 잇따르는데,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큘로데가 덴마크어 설명으로 읽었을 때는 대충 엉덩이 부분이던데, 우리말로는 무슨 부위인가 해서 찾아봤더니 우둔이었다. 어째 질기지 않다 했더니 원래 부드럽고 연한 부위란다. 장조림은 연하지 않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물에 넣어 푹 익힌 고기가 그 정도면 부드러운 거지.. 하는 생각에 닿았다. 부드러운 부위였구나. 앞으로 육회나 산적 등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거에 쓰는 부위라 한.

요즘 먹어보기만 하고 직접 해보지 않던 덴마크 요리에 도전해보고 있는데, 그를 통해 우리 음식의 재료에 대해서도 다시 알게 되고, 앞으로 더 열심히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위 명칭이 우리 말로 뭐인지 몰라서 (찾아보면 또 알수 있겠지만, 또 귀찮아서 안찾아보는 성정이라..) 사지를 않다보면 앞으로도 계속 제약이 많겠다 싶어서 이것저것 해봐야겠다 싶다. 이제 큘로데스타이는 한국친구 초대 메뉴중 하나로 등록!

아래 링크는 내가 시도해보고 완전 마음에 들었던 레시피! 강추!

사람 냄새 나는 이곳

 오래간만에 인스타그램을 컴퓨터로 들어가서 내 계정을 훑어내려갔다. 타일처럼 나열된 사진들을 훑어내리며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했다. 덴마크로 넘어와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구나. 이렇게 많은 것을 경험해도 아직도 경험할 게 새로이 많구나. 한국에 있었어도 새로이 경험할 일이 많았겠지만, 외국에서 경험하는 것이다보니 간접경험의 폭도 적어서 더욱 새롭고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이제는 새로이 집을 사면서 매매절차와 더불어 이사가는 것에 수반된 부대절차와 챙길 일들이 있어 이와 관련된 경험을 하고 있다. 오늘은 나에게도 옌스에게도 신선한 일이 있었다. 오후에 이메일 알람 진동이 드르륵 와서 발신자를 보니 우리가 산 집의 현재 주인인거다. 집 주인이 벌써 우리에게 연락할 일이 뭐가 있지? 해서 열어보니 집을 아직 보지 못한 나를 위해 가구 빼기 전에 집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한국에서 옌스에게 부동산 물건을 찾아서 한 번 가서 보라고 하고, 옌스가 마음에 든다고 하자 집을 사자고 제안한 건 나지만, 막상 덴마크에 돌아오기 전에 계약이 다 끝나서 나는 집을 본 적이 없었던 거다. 귀국 이후 동네에 찾아가서 집 주변과 동네를 둘러보긴 해도 안은 볼 수 없어서 참 아쉬웠는데 말이다.

테라스쪽 전경 / 정원은 없는 집이지만, 바로 뒤편에 공터가 크게 펼쳐져 있어서 이를 그냥 정원삼아 누릴 수 있다.
테라스 쪽 공터 전경 / 비가 많이 오면 하수구로 바로 빠지지 않고 지표면에서 물을 지연시킬 수 있는 저장공간으로 활용되는 지역인가 보다. 시에서 여기는 주택용지로 지정하지 않은 지역이다. 탁 트인게 좋다.
공터에는 작은 그네도 있다. 그냥 애들 뛰어다니기에 좋은 곳이다.

매도자인 부부는 옌스보다는 젊고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즉 우리 또래 부부고 아이들은 조금 더 큰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우리 건너편 집에서 다섯집만 더 가면 나오는 집으로 조금 더 넓혀 이사가는 거였다. 즉 동네 이웃으로 남는 거였다. 이메일에는 동네 이웃으로 만나게 된다는 내용과 함께 우리 집 왼쪽 오른쪽편 집 주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고 그 중 한집이 참 오랫동안 레보베이션 하느라 시끄럽게 했으니 이사오면서 조금 시끄럽게 하는 걸로는 신경쓸 필요 없다는 팁도 알려주었다. 더불어 우리가 이사가게 될 즈음에 자연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동네 분위기는 어떤지도 알려주고 말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우리가 먼저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열쇠를 실제 부동산 인수일보다 먼저 넘겨줄 수 있다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옌스가 굳이 그걸 걸어서 계약을 복잡하게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해서 상대가 아무 말이 없는 이상 그냥 내버려두었다. 4월 1일 열쇠를 넘겨받기에 부활절 연휴에 이사를 갈 거 같은데 정확한 일정은 몰라도 다 이사짐을 빼고 나면 열쇠를 넘겨줄 수 있다는 거다. 우리야 그래주면 이사 전에 저녁과 주말 시간을 빼서 집도 청소하고 페인트칠도 미리 완료하고 깔끔하게 이사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은데 말이다.

나쁜 경험은 빨리 잊어버리는 편리한 뇌를 가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덴마크에 와서 나쁘거나 불쾌한 일을 겪기보다는 즐겁고 유쾌하고 따뜻한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내가 여기가 내 땅이 될 곳이라 결심하고 마음을 열었기에 그렇게 느꼈는지, 아니면 그렇게 느꼈기에 마음을 연건지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경험으로 가득 채우는 이곳이 나에겐 더욱 집과 고향처럼 느껴지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코로나 제한조치 속 한국방문 단상

덴마크와 한국 모두 강도높은 코로나 제한조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양태는 다르다.

덴마크는 사적인 공간에서 모이는 것에 대해서는 5명 초과해서 모이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를 강제하지 않는다. 막힌 공적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쓰게 하지만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수퍼마켓과 약국, 테이크아웃 목적으로 한 카페와 식당을 제외하고는 오프라인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기타 문화 공간도 다 닫았다. 학교는 모두 닫고 온라인 교육으로 돌리고, 근로자의 경우도 물리적 출근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다 재택근무로 돌렸다. 보육원, 유치원은 정상적으로 운영하지만, 아이들을 소그룹으로 나누기 위해 가능한 8:30-15:30 기간동안만 맡기고, 재택 보육이 가능한 경우 보내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의 학교, 보육, 근로 관련은 모르겠지만, 5인 이상 집합금지과 항상 마스크착용 의무화를 제외하면 거의 일상이 그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영업시간은 제약이 있는 것 같은데 애 있는 엄마로 영업시간 제약은 애초에 느낄 일이 없어서 나에게는 여파가 없었다.

애가 있기도 하고 안그래도 코로나로 사람간 간격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밀폐된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는 시설은 피하기도 했는데다가, 사실 머무는 기간 중 1주일을 제외하고는 누구를 만나거나 만날 계획이 없기 때문에 크게 코로나 제한조치를 느낄 일은 없었는데, 사람이 주변에 거의 없는 야외에 있어도 마스크를 상시 쓰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상속 여파를 덴마크에서보다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써서 그런가? 아니면 사람이 많아서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하도 많으니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포기해서 그런가? 아무튼 사람들이 카페나 상점에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과하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거리를 유지해달라고 하면 아차 싶다는 표정으로 거리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구는 내가 요란스럽게 느껴질 정도였고, 계산대에서는 계산을 하러 줄 선 사람과 계산을 끝내고 나가는 사람의 동선을 분리하는 게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엉키니 거리 유지가 어렵기도 하고.

마스크를 어디 가든 써야 하니까 애를 데리고 사람 많은 곳에 잘 안나가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걸어다녀도 읍내에 나가지 않고는 사람 그림자도 보기 어려워 마스크를 안써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홍천에 쳐박혀 동네 산책 하는 것에 만족하게 된다. 그런데 애랑 오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자연이 있으니 이러저러 활동을 통해 놀이터를 대체시켜줄 수도 있고. 아마 이래서 마스크를 야외에서도 쓰게 하는가보다. 나오고 싶은 의욕을 아예 꺾어버리도록. 그래서 그런가. 산책하면서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통통하거나 마르거나가 대부분이고, 덴마크 아이들처럼 탄탄한 근육을 가진 애들은 보이지가 않는다.

코로나는 우리가 알던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구나. 대충 올 가을까진 꼼짝없이 이 코로나 시국이 유지될 것 같은데, 자연이 바로 코앞에 붙은 곳으로 이사가게 되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애를 조금 더 편하게 풀어놓고 숲으로 호수로 다니며 야외활동을 늘릴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말이다.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집을 계약했다.

일요일에 옌스가 집을 보고나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방 두개 크기가 생각보다 작은 거 빼고는 괜찮다고 하는데, 좋은 마음을 애써 절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별로였던 마음을 확 드러낸 것 같기도 하고 문자로는 정확히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전화를 했다.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온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을 보고 느낀 건 평소에 관리가 잘 된 집이라는 거였는데, 정말 그랬던 모양이다. 이미 매물로 올라온지 한 달이 지났던 터라 뭔가 사진에 안드러나는 하자가 있었나 했는데, 그냥 우연히 그랬던 것 같다.

지난번에 부동산 매매 트렌드를 잘 몰라서 여유있게 움직이며 집 한번 더 봐도 되냐고 물었다가 팔렸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신속하게 움직였다. 괜히 내가 한국에 있다고 기다릴 게 아닌 거 같았다. 이미 옌스가 보러갔던 날 거기에 있던 다른 사람도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옌스랑 역할을 나눠 나는 변호사를 알아보고 부동산에 오퍼를 던지고, 옌스는 은행대출 사전승인을 맡았다.

일요일에 변호사를 찾아두고 월요일 오전에 은행과 변호사에 연락했다. 부동산에 일요일에 이미 연락을 해두었더니 은행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매도인과 상의할 수 있다고 하더라. 빨리 접근해야 괜히 입찰 형식의 가격경쟁으로 흐르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 집 보러가기 전부터 가격 전쟁에는 관심이 없다하며 이미 협상대상 있으면 안보겠다고 부동산에 이야기해두었기에 그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고, 부동산에서는 사실 누가 사든 수수료수입이 엄청 크게 차이나는게 아니니 빨리 확정을 하고 싶을 터였다. 관심있는 사람이 또 있으니 빨리 추진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언질을 주었다는데, 그 내막이야 모를 일이라도 우리는 마음에 들었고 시장에 나온 가격에서 조금 더 깎고 하느라 집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오후에 이미 은행 사전승인을 받아 부동산에게 오퍼를 던졌고, 다음날 부동산은 우리의 신원 조회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기 시작했다. 5년 이상 거주해야 외국인이 부동산을 살 수 있는데, 그거야 문제될 것 없었다. 변호사는 우리가 계약서에 변호사 검토 조건부 계약을 명시하면 혹시 문제되는 요소가 있으면 그때가서 조율하면 되니 계약서상 이견이 없으면 서명을 하라고 했다. 화요일에 집과 관련한 일련의 문서를 다 받고 수요일, 오늘 오전에 계약서를 받아 낮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바로 오후에 상대도 서명을 했다.

변호사가 관련 문서를 다 검토하고 난 후 다음주 월요일에 변호사와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거기에서 문제가 없으면 계약금 치르고, 집 상태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집소유주 변경 보험 가입하고, 나중에 잔금 치르고 5월 1일부로 열쇠를 넘겨받게된다. 우선 그 사이에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 지 몰라 둘다 후딱 다운페이할 금액에 해당하는 주식을 후딱 팔았다. 장이 좋아서 주식도 눈깜짝할 새에 팔리고…

딱히 집을 수리할 건 아니라서 페인트칠 하고 바닥 좀 갈고 청소 싹 하고 들어가면 될 것 같다. 물론 우리 나올 집도 페인트칠 하고 청소 싹 하고 나와야겠지만… 5월이면 4개월인데, 귀국해서 자가격리도 좀 하고, 하나 유치원 대기도 걸고 집 가구 배치도 고민하고 하다보면 후딱 시간은 갈 것 같다.

첫 집을 이렇게 보지도 않고 계약해서 얼떨떨하고 현실감 없지만, 둘 다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을, 너무나 매끄러운 과정을 통해, 아무런 갈등 없이 계약했다는 점에서 기쁘구나. 이제 집 계약이 아무런 문제없이 매매로 이어지기만을 바라고, 그게 되면 하나에게 말하는 일만이 남았다. 다 마무리 잘되길…

2020년 크리스마스 또는 율

하나가 곧잘 같이 잘 노는 유치원 같은 반 친구가 코로나 확진이 됨에 따라, 우리 반은 당초 예정보다 일주일 당겨 크리스마스/신년 방학을 실시한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아이고… 아찔했다. 이틀 전 1월 초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가 일주일 남았는데… 이 모든 게 무산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코로나 검사결과 음성으로 판정된 그냥 호된 감기가 채 다 낫지도 않았는데, 혹시나 여기에 더해 코로나에 걸리면 내가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통상 기관지 쪽으로 호되게 앓는 경향이 많아서 말이다. 다행히 두차례에 걸친 코로나 검사 결과 하나는 음성으로 나왔고, 유치원에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확진된 아이가 유치원에 나온 시기가 아주 이른 잠복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만 해본다. 정말 다행이다.

덴마크도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인지라 율/jul(12월 25일)을 예수 탄신일(크리스마스)로 보내기는 하지만 율이란 게 사실 해가 가장 짧은 동지를 기념하는 페간 축제에 기독교의 확산을 위해 예수탄신일 색채를 입힌 것인지라 덴마크의 율 전통은 기독교적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선물을 가져다주는 율리맨 (julemand, 싼타클로스), 12월에 여러가지 귀여운 말썽을 피우는 율리니쎄 (julenisse, 작은 난쟁이족) 등이 제일 대표적이다. 천주교를 떠나 무신론자가 된 나와 원래 무신론자인 옌스에게 율은 그냥 명절일 뿐이다. 더이상 크리스마스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율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와 같다. 율은 어찌되었건 연중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특히 올해처럼 가족,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재택근무를 통해 사람간의 접촉을 극히 제한했던 해에 작게나마 가장 가까운 사람과 만나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는 건 더욱 소중한 일이다. 물론 코로나 감염자수를 늘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기에 정부의 권고사항도 다 잘 따르겠지만 말이다.

하나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고, 내 감기도 코로나가 아니었고,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시누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테스트를 받는다.) 3년반에 걸친 두바이 주재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시누네 가족에서 예년과 같은 율리 아픈 (juleaften, 크리스마스 이브)을 보낼 수 있었다. 보른홀름에서 페리를 타고 스웨덴 육로를 경유해 시누네로 오신 시부모님의 경우, 당신들이 셸란섬에 도착하신지 몇시간 이내에 스웨덴이 국경을 약 한달간 닫기로 하면서 – 덴마크에 이미 번진 감염성이 더 심한 영국 변종 코로나 확산을 차단한다며 국경을 갑작스레 차단했다 – 하마터면 못오실 뻔 했었다. 다행히 돌아가는 편은 다른 경로로 예약을 하실 수 있었는데, 코펜하겐행 페리는 신년까지 예약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니… 정말 이번 율은 여러모로 변수가 많았다.

구글포토가 옌스네 가족이랑 처음으로 보냈던 율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2014년 겨울, 즉 6년전 겨울에는 시누네 아이들도 정말 어렸고, 시누네 막내는 하나 나이 뻘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믿기지 않을만큼 다들 훌쩍 커 있다.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구나. 하긴 그 당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하나도 올해 율을 아주 흠뻑 즐길만큼 컸으니 시누네 애들이 그리 큰 게 놀라울 일이 아니구나. 모두가 이렇게 커버렸으니.

올해는 명절 노동을 조금 더 나눈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담당하기로 한 초콜렛을 직접 만들어갔다. 스모케야 (småkager)도 직접 구워 가져가고. 일은 크게 돕지 못했는데, 부엌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자리가 별로 없어서 식사 준비 중에 발생하는 요리 설겆이 잠깐 하는 거랑 점심 식사, 중간 티타임 테이블 정리 조금 돕는 걸로 끝났다. 예전엔 어떻게 도와야 하는 지 잘 몰라서 좌불안석했었는데, 이젠 그냥 좀 알아서 적극적으로 돕고 쉴 땐 편히 쉬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큰 집에 살기도 하고 요리도 잘하고 좋은 와인도 섭렵하고 있는 시누네가 이렇게 항상 명절을 담당하니까 우리는 좋은 음식과 술을 즐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하면 좋고 편한데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우린 하나에게 율리맨이란 건 없고,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이야기라 해뒀는데 시누이 남편이 율리맨 분장을 하고 베란다 문으로 들어와 하나에게 선물을 주고 가서 하나가 아주 깜빡 넘어갔다. 하나라는 애 있냐고 외치는데 하나가 나서서 그거 자기라고 하니까, 율리맨이 이거 오늘 마지막 선물이라면서 하나에게 선물을 주고 갔다. 하나가 율리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더니, “율리맨이 하나라는 애 있냐고 물어봐서, 제가 하나라고 했어요!”하면서 너무 좋아하는 거다. 우리도 깜짝쇼라서 배꼽을 잡고 웃으며 비디오로 녹화했는데, 하나가 자주 보여달라고 해서 벌써 몇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검사 받기 무섭다는 하나에게 이 검사 안받으면 밖에도 못나가고 율도 우리끼리만 보내야 한다고 해서 검사 협조를 유도했는데, 이렇게 기대한 이상 즐거웠던 율을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겠지 싶다.

이렇게 간만에 만난 걸 계기로 시누랑 그간의 업데이트를 나눴는데 두바이에 돌아와서 암병동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똑똑한 그녀도 내가 일터에서 느끼던 고충들을 비슷하게 겪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내 마음에도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병가를 내지 않고 그냥 관둔 것을 두고, 자기는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면서 자기도 지금 일이 너무 힘들면 병가 내지 않고 관둘 생각이라면서, 병가 낸다고 돌아올 때 일이 바뀌는 거 아닌 걸 아는 이상 병가 기간 중 스트레스가 더 쌓이면 쌓이지 없어지지 않을 거라 이야기를 해주는 거다. 일의 스트레스에서 도망쳤다는 내 표현에 그렇지 않다면서 이야기해주는 그녀가 참 고마웠다.

올해는 코로나 규제권고로 26일에 항상 모였던 대가족 모임이 취소되었는데,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좀 더 수월하고 편한 명절이 되었다. 각자 음식 한가지씩 해서 26일 점심에 Faxe에 가서 모이는데, 가는 시간이 한시간 반 걸리는 거 생각하면 새벽같이 음식을 한가지 해야해서 좋지만 동시에 부담도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2020년 연말은 여러모로 오붓하게 보내게 되지만 하나와 또 시댁 식구들과 즐거움과 따뜻함이 가득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기에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으로 또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게 돼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옌스라는 좋은 사람을 캤더니 고구마 줄거리처럼 좋은 사람들이 넝쿨째 들어오는구나 싶다.

이제 아홉밤만 자면 한국행이구나. 신년 저녁 우리 세가족 만찬 준비하는 거 하나만 하고 나면 2020년과 작별을 하겠구나. 여러가지 의미로 다사다난했던 2020년, 힘들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고마웠다 2020년! 이제는 2021년 잘 맞이해봐야지.

Min fars krig

Jeg synes, at DRs nye tv-serie, Min fars krig, er en fint lavet dokumentarfilm. Filmen omhandler en forfærdeligt sørgelig, men samtidig vældig modig historie, der baserer sig på virkeligheden. Det gjorde ondt på mig at se de omstændigheder, man var lagt under krigen, og hvor umenneskelig og ond eller modig, men traumatiseret, man kan da blive dermed.

Vores bedsteforældres generationer i Korea har også oplevet det samme under besættelsen af Japan, blot værre og meget længere end det – omtrent et halvt århundrede – der oplevedes i Danmark den gang under besættelsen af Tyskland. Så jeg kunne på en måde forholde mig tættere til filmens fortæller, der følger efter sin fars spor i modstandskamp mod tyskerne under den anden verdenskrig ved hjælp af DR, Rigsarkivet, mf.

Men det gik op for mig, at jeg ikke har tænkt på, at modstandsfolk også havde familien og deres kære, som de aldrig ville gøre ondt eller komme til at skade, og at de også var pisse bange. De gjorde alt det med modstandskampen med de risici, at de slet ikke ville kunne se deres kære, dvs. deres kone/mand, børn, forældre, eller at de kunne miste dem på grund af sin kamp. Jeg så dem indtil nu som et historisk objekt, men ikke som det samme menneske, som jeg er. Det gik simpelthen op for mig. Hvor har jeg været ikke-empatisk!

Nu har jeg min datter. Kan jeg mon gøre det samme, som de modstander har gjort, fordi jeg ville give et frit land til min datter ved at risikere at miste hende og livet sammen med hende? Hvor er det hamrende svært. Nej. Måske ville det ikke være så svært for mig. Jeg tror ikke, at jeg vil kunne gøre det.

Jeg skal huske og aldrig glemme de store indsatser, de modstandsfolk mod Japan har gjort for mig og mine kære, også dem mod Tyskland, da ellers ville jeg, Jens og Hannah ikke kunne have været sammen her og nu. De var modige og de var vores helte.

[덴마크 협업문화] 경제분과 국무위원회 상정 안건 생산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근로문화. 업무 시간의 경계가 흐려진다. 방금 업무가 끝났다. 열시 반. 오늘도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했는데… 다들 애가 있으니까 긴급한 사안이 있는 경우, 애 없는 시간에 협업이 이뤄지게 된다. 상반기에는 부활절 휴가기간이 있어서 이 전후로 많이 바쁜데 거기에 특별히 급한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하수도기업의 기후변화대응 파이낸싱 방안에 대한 법안이 내년 1월부로 발효되어야 한다는 결정이 이번주에 결정되면서 그간 부처간의 의견 차이로 다소 미적거리던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부처간 이해관계 및 오너십 문제 등에서 미묘한 갈등이 있어왔는데 이제는 그걸 아주 적극적으로 부딪혀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안그래도 여러모로 바쁘고 내가 발표하거나 리드를 해야하는 회의가 있어서 긴장레벨이 높았는데, 법안 상정을 위한 모델 페이퍼를 금요일 센터장급 부처간 회의 전에 급히 만들어야 한다는 상황에 멘탈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번주에 옌스가 지난주처럼 바빴으면 정말 끔찍했을 것 같다. 애와 놀아주느라 회의들 사이사이 밖으로 나가 주기도 하고 일과 육아를 열심히 병행해준 옌스 덕에 이번주의 일들이 가능했다.

현재 법안과 제도 부분을 토대로 안건의 제도적인 모델 부분은 나와의 회의를 통해 합의된 내용을 토대로 선임이 쓰고, 나는 경제분석방법에서 테크니컬한 부분을 써서 초안을 마련했다. 그걸 토대로 우리 센터장이 코멘트를 해 초안을 1차로 보강한 후, 센터장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따라 수정 초안을 대대적으로 재배치하고 전략적으로 표현을 수정해 2차 수정 초안을 마련했다. 거기에 우리가 수정하거나 보충할 것을 더한 후 상사가 컨펌을 함으로서 최종안이 나왔는데, 진짜 센터장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탁월하다는 걸 다시한번 느꼈다.

이번처럼 엄청 타이트한 데드라인 압박속에서 중요 문건을 여러명의 협업을 거쳐 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며 정말 많이 배웠다. 덴마크어 공부는 덤. 타이트한 데드라인 압박속에서 일하는 거야 익숙하지만, 그 과정에서 협업을 효율적으로 하는 법은 익숙하지 않는데 말이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이 입법으로 연결되야 하는 게 두개나 걸려있어서, 법안 초안 작업 전 작성하는 고려사항문서에 어떻게 내가 하는 일이 반영되는지, 그래서 그게 어떻게 법안과 시행령에 들어가게 되는지, 직접 참여하고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될 것 같다. 한국과 달리 내각책임제 시스템인데다가 대부분의 법안은 국회에 상정되기 전에 정당간 협상을 통해 법안이 통과될지 여부가 결정되기에 부처에서 먼저 만들지 않은 안건이 야당의 입법제안을 통해 상정되는 케이스는 없는 것 같다. 한국의 프로세스를 잘 모르는데다가 덴마크의 프로세스도 사실 나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이를 비교하는 건 가능하지 않지만, 오랜 시간 공기업에 근무하면서도 사실상 멀게만 느껴지던 일련의 프로세스를 덴마크에 와서 배우게 되는 것도 신기하다.

요즘 정신적으로 사실 피로하기도 하고 육체적으로도 피로하긴 하지만 배우는 건 많고 힘든 와중 즐겁기도 하고 그렇다. 내일 하루 버티면 또 주말이 오고 곧 또 부활절 휴가가 오겠지. 조금만 버티자.

[덴마크 vs. 한국] 공공부문 근로문화 비교 – 타부처와 협업

내부적으로 꼭 공문서의 형식으로 남겨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데에 있어서는 이메일이 사용된다. 여러부처가 협업을 해서 통합된 문서를 생산해야 하는 경우, 예를 들어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책문서를 생산할 경우 엄청 많은 메일이 오고 간다. 주무부처가 초안을 만들기는 하지만 그 문서가 오고가면서 관련부서 담당자들이 트랙체인지 기능을 통해 수정제안을 하고 코멘트를 주고 받는다. 물론 해당 코멘트를 담당자 이름으로 보내기까지 상사와 조율을 한다. 그리고 해당 사안이 아주 중요하거나 마무리 단계로 넘어갈 경우 사안에 상응하는 책임자와 조율을 한다. 이 과정이 우리보다 형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이뤄진다. 메일로 상사에게 코멘트를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권한 이양도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협업패턴은 여러 부처가 연관된 법안을 만들때도 마찬가지다.

부처간에 이견이 갈릴 때는 코멘트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주무부서가 총대를 매고 정리를 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적극적인 코멘트를 요청하는데, 언어적인 문제도 있고 어떤 포인트를 봐야하는지도 미숙하기도 했다. 덕분에 초반엔 너무 무른사람처럼 보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한국 공공부문에서 일을 중단한지 5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그 새 한국의 공공부문 근로문화도 바뀌었을까 싶지만, 사실 이런 수준의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형식주의 탈피에서 느껴지는 생산성 향상이 엄청 크기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캐주얼한 근로문화가 도입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덴마크 주말근무/야근. 외노자의 두려움

뜨거운 감자인 정책을 위한 모델을 만드는 부서에 있다보면 덴마크라고 다를게 없구나. 금요일 늦은 밤에 메일을 보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뭐고, 주말동안 자신이 할 건 뭐고 자기 담당 파트는 월/화까지 준비되는 데 내 파트는 언제까지 될 수 있냐는 메일. 주말에 일을 해서 최대한 빨리 보내야겠다. 안그래도 이미 바쁜 다음 주인데… 겁나게 바쁘겠다. 좀 더 차분히 더 꼼꼼하게 준비하고 싶은데 또 장관님 생각은 다르신거지… 재택근무에 보육원도 닫아서 풀타임 근무하려면 아침 7시부터 6시까지 일하면서 중간에 애도 보고 밥도 해야하는데.

그래도 한국과 다른 건 진짜 응급한 상황이 아니면 야근이나 주말근무에 대한 직접적 요구는 없다는 것. 딜리버리만 맞추면 된다 이거지. 물론 중간중간 유연적 태도에 감사하다며 (미리) 떡밥이 깔리는 경우도 있다.

뭐 근로 문화에 불만은 없다. 그냥 여기에도 바쁠 때는 어쩔 수 없는 걸 아니까. 업무가 늘고 커버리지가 넒어질 수록 로드가 올라간다.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짧은 시간 일하지만 더 갈려들어가고 이 분야에는 내가 전문가가 되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주변의 뛰어난 동료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과거 논문 쓸 때는 그냥 분석만 하는 거였다면 이젠 이 내용을 매뉴얼로 만들어 남들이 다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실제 경제에 큰 영향이 가니까 두렵다. 큰 신뢰만큼 두로움도 커진다. 거기에 덴마크어로 일을 하는 것도 미묘하지만 끊임없이 두렵다. 매일 매일 직면하는 두려움이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아드레날린같기도 하다. 중앙부처에서 일한다는 건 그렁 그런 것 같다. 박봉이지만 영향력이 있는 곳에서 일함으로써 내가 한 일이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잘 헤쳐가야지…

작은 두려움의 연속

연봉협상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 센터 성과는 좋았고, 나도 내 담당 업무의 목표를 달성했다. 공무원은 크게 협상 여지가 많지 않다는데 얼마만큼 해야하는데 아직 감이 잘 서지 않는다. 덴마크어로 일하는 데서 오는 생산성 손실을 다른 경쟁력으로 얼마나 메우고 있는지도 불확실한 터라 더욱 그렇다.

매일 매일 작은 불안함을 갖고 지낸다.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큰 부담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전달하지 못할까봐서. 또 언어의 부족으로 인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의견의 강약 조절에 있어서 의도치 않게 실패를 할까봐서. 그래서 조직에 피해를 끼칠까봐. 그 결과로 타인의 시선과 단정적 평가를 받을까봐. 그래서 성과 협상은 더더욱 불안하다.

일년의 기간이 흘러 이제 나는 나대로의 위치가 정해졌고 업무 영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내 위치와 업무 영역은 크든 작든 변해가고 책임도 늘 것이다. 내가 적응을 한다 싶으면 또 변해가겠지.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는 게 두렵다.

사실 정 안되면 관두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될 것 같기도 하면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쩌면 한국어로 했어도 가졌을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런 두려움은 앞으로도 계속 원치않는 친구같이 데리고 나아가야할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왜 두려울까? 내가 가진 원래의 가치보다 낮게 보이는 게 두려운 걸까? 생각을 좀 해 볼 문제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있는 걸까? 실제보다 못나보일까 걱정하는 걸까? 좀 못나보이면 어떤가? 남이 어떻게 평가하는 게 왜 나에겐 그렇게 중요할까? 어려서 높은 기대 수준 속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게 지금도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는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고 달래가야 하나?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이 힘들다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이 불행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 좋고, 감사한데, 그냥 서서히 그런 두려움을 안고 가는 내가 이해가 안된다. 이해를 하려 하는 이 과정이 두려움을 맞이하는 길이 되겠지. 우선은 덴마크어 공부도 하고 업무도 열심히 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가면서… 올 한해 큰 모델 마무리 짓고 보고서고 발안하고, 입법안 초안도 내고 기타 운영업무도 하면 한 해가 흘러가 있겠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