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돌아오는 MUS의 철이 왔구나.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MUS (Medarbejderudviklingssamtalen, 직원계발면담). 쥐에 해당하는 단어인 mus와도 발음이 같아서 처음엔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MUS는 덴마크 직장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MUS와 mini-MUS, 임금협상*은 하나의 사슬처럼 얽혀서 굴러간다. 연초에 MUS를 하고나면, 반년뒤에 mini-mus가 있고 오래지 않아 그 뒤로 연봉 협상이 따른다. (*민간에서도 비슷하게 굴러간다하지만, 나는 덴마크에서 민간 경험은 없으므로 중앙부처에 해당하는 Staten만 보자면 우리 사무관급에 해당하는 Fuldmægtig는 거의 개별 협상을 하지 않는다. 수당 정도만 협상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속한 노조가 협상한 결과를 그냥 받아들인다. 자신이 특별하게 더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라면 개별 협상을 물론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난 딱히 내가 더 특별하게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MUS는 Kompetencehjul이라는 툴을 통해 개인 역량 계발을 돕고자 하도록 하는데, 우리 조직같은 경우 구술커뮤니케이션, 서술방식 소통, 협업, 사회성 (사회성이 포함되어있다!), 직무전문성, 창조성 및 발명능력, 업무수행력, 생산성, 수용력 등 9개 분야로 계발분야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면 mini-MUS를 통해 반년 후 진행상황을 점검한다. 임금협상에서는 이걸 토대로 평균보다 잘하고 있을 경우 역량수당 분야에서 개별 협상을 할 수 있다.

먼저 개인이 매뉴얼 따라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그걸 토대로 상사와 면담을하고, 내가 생각하는 중점 계발 분야가 뭔지, 상사가 생각하는 건 뭔지, 그걸 어떻게 계발할지 (연수, 업무 수행, 기타 구체적인 사항 등), 그걸 계발해서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등 양측에서 합의된 내용을 계발계획양식에 채워넣고 사인하고 나면 MUS가 끝난다.

예전엔 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작년 MUS 이후 이를 내 일과에 적극 반영하고 난 후에 이게 중요한 툴이란 걸 알게 되었다. 작년에는 구술 및 서술방식 커뮤니케이션 분야와 직무전문성 분야의 계발에 중점을 두고 싶다고 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내 계발분야를 내 업무시간에 평소에 녹여넣으면서 커뮤네케이션 부분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 교육도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서 가서 듣고, 평소에도 이를 활용하다보니 조직내에서 내 위치와 내 스스로 평가하는 내 모습이 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조직내 성장보다는 전문가쪽 역량을 키워가는 쪽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커리어 방향도 설정할 수 있었고, 내가 관심있는 직무에 대해서도 이야기함으로서 향후 기대되는 프로젝트의 참여에 대해서 나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좋다.

한국의 인사고과는 정치적인게 컸다면 지금 소속된 조직에서는 MUS를 통해 자기가 능력을 계발, 성장하고 연봉의 형태로 그 보상을 받는 형태로 크게 정치적인 요소가 없다는데서 속이 아주 시원하다. 내가 남보다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내 현재에서 필요한 역량과 그에 맞춰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되는 거니까. 올해 농사를 또 잘 지어봐야지.

프로젝트 중간기록

뭔가를 발표한다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외부 발표 전 내부 발표 리허설이라도 부담스럽다.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 쯤이면, ‘이건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추진한 일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고, 그 피드백을 받아 더 좋은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함이다. ‘라는 주문을 마음속으로 건다. 그러면 긴장감을 덜어낼 수 있다. 오랫동안 파고들은 내용이기에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라 틀만 잘 잡아서 자료에 담아두면 된다. 그리고 다 잘 풀릴 것이다라고 주문을 걸고. 

다행히 내부 리허설을 잘 마쳤다. 이전에 이미 리허설을 한번 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분석의 틀을 완전히 바꾼 거였다. 영 설명이 잘 되지 않던 부분에 대해서 코멘트를 받고 방향 설정을 완전히 다시 했더랬다. 긴장이 되면서도 그 당시 나왔던 질문에 대해 하나씩 곱씹어가면서 충분히 준비했던 발표인데다가 똑똑한 동료들의 예리한 질문이 아주 다방면으로 나왔기에 그것에 답하며 준비한 것만으로도 포괄적으로 준비가 잘 된다 싶었다. 작게 보완할 것들이 있긴 했지만 별로 그런 게 없었고 나머지는 내가 아닌, 업계에 질문을 해야할 요소들이었다. 

심리상담을 받은 후 얻게 된 새로운 장점은 발표 중 청자의 눈빛이나 자세 등에서 불필요하게 신호를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전엔 혹시나 내 발표에 의구심이 생긴걸까? 내가 발음을 잘못했나? 뭔가 틀렸나? 하는 끊임없는 상상을 토대로 발표 중간에 나를 괴롭히고 집중력을 흐트려뜨렸는데, 이젠 그냥 그런 게 있으면 질문을 하겠지 하고 넘긴다. 그 사람이 손을 들때까지는 불필요한 상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운 게 정말 크다. 그게 몸 속에 아드레날린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만드는데, 그게 없으니 차분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업계와 일을 하면 훨씬 더 비판적이거나 원색적인 목소리를 접할 수 있긴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어떤 코멘트를 하던지간에 긍정적인 톤을 유지한다. 그리고 코멘트의 경우 구체적으로 한다. 이런걸 보완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왜 이걸 이런 식으로 만들었냐 이런 비판적이고 불특정적인 피드백은 없다. 

새로운 감시 분야를 개발하는 것이라 시간이 많이 투여가 되고 있긴 하나, 프로그래밍 적으로 배운 것이 정말 많다. R을 훨씬 자유롭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걸로 새로운 연구 분야도 설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결과를 토대로 에너지청도 새로운 연구를 하려고 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관심이 높아진 분야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먼저 움직인 것이라 재미가 있다. 

긴 호흡의 프로젝트라 중간에 그 흐름 속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아마 이런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맡아서 끝까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경쟁소비자청에서도 그런 프로젝트를 하다가 중간에 관두고 나와서 끝까지 하지 못했는데,  그때도 스트레스가 엄청 컸다. 큰 바다속에서 도대체 언제 헤어나올 수 있을지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중간중간 마일스톤 셋업이 힘들었던 것 같다. 여기보다 더 큰 조직에 중간중간 스파링을 할 사람도 너무 높은 사람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여기저기 걸린게 많은 훨씬 큰 프로젝트였던 터라 이해관계자도 너무 많고 비교하기 어렵게 힘들었다. 지금 일보다도 이론적인 프로젝트였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이번 프로젝트는 오로지 데이터를 갖고 씨름하는 것이라 데이터의 바다에서 헤메이다가 스트레스로 무너질 뻔 했는데, 그걸 잘 넘기고 나니 또 어떻게 어떻게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긴 프로젝트의 장점으로 내가 조금 더 플래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험도 쌓았고.

이제 남은 건 다음 주 중간결과를 업계대상으로 발표하고 최신 데이터를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이걸 정리해서 리포트로 만드는 것, 경영진에게 발표해 승인을 받은 후, 온라인 공청회처럼 이를 대외로 보내 피드백을 받고, 이걸 반영한 최종본을 또 한번 경영진에게 승인받고,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보내 그래픽 등을 이쁘게 만들어 최종 발표하는 거다. 그리고나서는 매년 데이터를 받아 모니터링을 하는 감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만 남는다. 

남은 프로세스들도 한번씩 경험하면 프로젝트 운영 경험도 한번 쌓여서 앞으로의 일이 조금씩 더 수월해지겠지. 하지만 그 남은 프로세스들이 손이 많이 가는 일이 될 거다. 디테일이 중요해지는 단계니까. 열심히 달려보자!

사고쳤는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하루

GIS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열다가 빈 파일을 덮어 저장하는 실수를 했다. 그런 실수를 했음을 안 건 세개의 파일을 그렇게 한 후였다. 열기만 하는 거라서 그냥 공용폴더에서 바로 열었는데 그런 실수를 하다니… 세상에나… 얼른 상황을 상사에게 보고하자 하니 상사는 회의중으로 부재중이다. 얼른 상황을 보고하고 누구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조치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답장이 바로 와서 우선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으나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거다.

점심 내려가면서 같은 사무실 동료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얼굴로는 웃고 있는데 속이 까맣게 타고 있다고 했더니 그거 다 버전 백업 될 거라면서 걱정을 말라하는거다. 정말? 아. 그래도 안정이 안되네…라고 하니까 날짜별로 백업이 이뤄지던지 뭔가 있을거다. 확실하다고. 긴장 풀라고 하니 조금 마음이 안정되더라. 마침 컴퓨터 교체가 월요일이라 서버에 저장이 안되는 것들의 백업을 하면서 긴장감을 없애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더니 상사가 IT담당자를 데려왔다. 세상에. 이게 쉽게 구버전을 복구할 수 있었던거구나! 컴맹이었군!! 이러면서 얼른 상황을 수습했다.

사고쳤는 줄 알았던 순간, 사고는 최대한 빨리 보고하라던 IT 지침처럼 바로 보고했는데, 상사 왈, 사고 치고 오랫동안 뭉개다가 나중에 사고를 보고하는 사람들이 제법 되서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사람이 많다며 잘샜단다. 나도 그 마음은 이해하겠는게 순간 당황스러움, 미안함, 수치스러움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더라. 이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였는줄을 몰랐으니 그렇긴 했지만 그런 성격이 아닌 정말 문제였더라면 어땠을런지. 아무튼 마음이 여전히 시끄럽다. 감정의 잔상이라는 건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남아있는 것이 마치 물에 던진 돌이 일으킨 파동 같다. 그 파동이 멈출때까지 파동이 남아있는 것…

인간관계는 복잡해…

상사와 한 동료간에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깊어진 골은 메우기 어려운 법인데… 인간관계는 각각의 화학작용에 따라 결과가 너무 달라지기에 A-B, B-C는 잘 지내더라도 A-C가 잘 지낸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나는 상사와 잘 지내고 그 동료와도 잘 지내고, 그 둘도 잘 지낼 줄 알았지만 상사와 그 동료는 갈등이 깊었던 거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부딪힐 수 있는 난관에 대해 고려를 잘 해야한다 하는 그 동료의 면을 나는 그 동료가 조심스러운 면이 많다고 느낀 것인데 반해 상사는 그 동료가 매사 부정적이다라고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에 대한 피드백의 방식이 그 동료는 적절하지 않다고 느끼고.

간혹 그 동료가 옆자리 다른 동료에게 이런저런 일적인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을 얼핏 듣는 적이 있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끼고 음악을 들으며 일하기에 그런 분위기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점심을 같이 먹는 구내식당에서는 모두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거기서는 그냥 그 직원이 원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분위기를 감지하기 어려웠다.

그 동료가 내 프로젝트에 조인을 한터라 간간히 상사랑 미팅을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이다보니 회의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말을 했기에 별 생각을 못했더랬다. 이제 이 갈등상황을 알게 되고 나니 회의에 들어가서 괜히 눈치가 보인다. 모르는척 하고 나 하던대로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이런 갈등상황이 잘 개선되어 모두가 좀 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떻게 하는게 좋을 지 모르겠다. 사실 그 동료가 상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센터 특성상 개개인의 자율성이 엄청 큰데, 호흡이 일년쯤 되는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이 자율성에 묻혀 방향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나도 이런 부분에서 시작된 스트레스가 자아비판과 합쳐져 심리상담가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그 불만의 핵심을 이해한다. 이에 대해 나는 상사의 지원을 요청했고,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상사와 주기적으로 미팅을 하면서 방향성 설정에 도움을 받았는데, 이 방법을 내가 구체적으로 제안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동료가 원하는 것도 상사의 적극적 지원인데, 동료는 이 상사의 적극적 지원과 관리가 상사의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심리상담도 하고 상사랑 조율도 하고 난 후로 자율성 부분과 지원 부분에서 나는 적당한 균형을 찾았는데, 그 동료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상사의 관리를 요구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잘못된 관리상황이라고 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큰 상사의 적극적 지원과 관리를 원하는 동료로서 내가 받은 수준에 못미치는 지원과 관리를 받았으니 마음속 갈등이 얼마나 커졌겠는가.

이미 그렇게 커진 골은 좁히기 어려운 바, 아마 오래지 않아 동료는 사내 팀 이동을 하든가 이직을 할 것 같다. 마음이 뜬 듯 하기 때문이다. 상사도 인간이니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다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면을 피드백을 받는다면 고칠 의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일 것 같은데, 상사를 향한 피드백이 어려운 건 나라를 불문하고 마찬가지인 것 같다. 덴마크는 위를 향한 쓴소리를 잘하는 나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고 본인이 이야기 하지 않는 갈등 문제를 타인이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나 말고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가 상사에게 한번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한번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내가 혼자 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맡다보니 이런 어려움을 모르고 모든게 좋게 잘 돌아가려니…하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왠지 씁쓸하다. 누군가 힘이 들어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불편하다. 감정까지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니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잘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덴마크와 한국 직장생활의 차이점

은행에서 삼년 일한 초년생 시절을 제외하면 참 오랫동안 공공부문에서 일했다. 두번째 직장인 코트라는 공공부문에 일을 했지만서도 준정부기관에서 일한 탓에 그 애매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공무원은 분명 아닌데, 또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준공무원이라고는 해도 이게 기업의 수출과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업무였다보니까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니 그 일을 통해서 내가 배우게 되는 것들을 빼면 일의 성과에서 내 발자국을 찾기가 힘이 들었다. 지금은 내가 하는 일이 실제 덴마크 에너지 인프라 정책에 아주 작은 점이나마 남길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다르다.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과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 남아서 계속 기여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기에 중요하다 생각한다. 덕분에 감사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코트라를 나와서 일한 곳이라고 해봐야 덴마크 첫직장 취업 전 잠시 지도교수와 함께 단기로 참여한 컨설팅회사 프로젝트 한달반 정도 하나이고, 그 이후에는 중앙정부기관 두군데 뿐이니 덴마크 직장생활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은 물론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낀 덴마크와 한국 직장생활의 차이점을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근무시간이 유연하다.

근무시간은 주당 37시간이 평균이다. 근무 쉬프트가 중요한 직종 – 예를 들어 병원 의사, 간호사, 환경미화, 선생님, 경찰, 생산직 근로자 등 – 은 유연하게 일하기 어렵지만 일반 사무직종의 경우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정해진 시간텀을 포함해 그 앞 뒤로 시간을 붙여 일해 37시간을 일하면 되니까 언제 출근도장 찍었는지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 간혹 9시에 근태점검을 하던 시절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 근태점검이 출입증을 태그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하는 건지 사무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하는건지도 갑론을박했었는데. 아무도 퇴근시간은 그렇게 챙기지 않았는데… 그렇게 밥을 먹듯이 넘겨도…

데스크 전화와 데스크탑 컴퓨터가 없다.

랩탑, 핸드폰은 입사시 지급되는 기본 IT기기이다. 도킹 스테이션과 모니터 두개,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어서 앉거나 서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디폴트라 자리를 바꾸는 경우 랩탑과 핸드폰만 들고 이동하면 된다. 데스크 전화는 없다. 민간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는데, 정부기관은 기본이 그렇다. 전화에 전화번호관련 솔루션이 탑재되어 있어서 소속기관 전화번호부가 깔려있다. 카톡 등 개인것을 업무에 섞지 않는다. 물론 회사 전화를 개인전화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하는 기관도 있다. 그럴 경우 복지혜택에 수급으로 판단해 세금을 더 내야한다. 지난번 근무 기관은 이게 허용이 되었는데, 지금 직장은 허용이 되지 않아 다들 전화를 두개씩 들고 다닌다.

헤드폰을 끼고 일해도 된다.

헤드폰을 요청할 수 있다. 소음차단이 되는 헤드폰을 달라고 해서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해도 된다. 대부분 자기 자리에서 전화를 받지는 않지만 업무상 이야기가 아주 길어지지 않는 경우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꽤 되니까 집중에 방해가 되는 걸 피하려고 헤드폰을 끼고 일한다. 전화가 오는 경우 진동으로 되어 있어서 헤드폰 꼈다고 못듣고 그런게 아니니 피해줄 일도 없다.

타인 앞에서 깨지지 않는다.

피드백 할 게 있으면 따로 불러서 하고, 그걸 타 부하직원에게 공유하지 않기에 상사로부터 타인 앞에서 깨지는 일이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리더로서의 자격을 의심받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상사로부터 깨지는 걸 본 일이 없다. 좋은 일은 반대로 타인 앞에서 칭찬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깨진 일도 없지만, 깨지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남들 앞에서 호되게 혼난다든지 하는 걸 걱정할 일이 없다.

복장 규정이 없다.

복장 부분은 많이 자유롭다. 문화가 있어서 각자 알아서 맞추는 분위기이나 간간히 안맞추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갖고 대놓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 물론 간혹 특별한 경우 뒤에서 놀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다. 그런 거 생각했다면 그렇게 튀게 입지 않을 사람들이기에 이러나 저러나 뭐라 하지 않는 거 같다. 언제 한번 배꼽이 보이는 탑을 입고 온 사람이 있었다. 나와 다른 직원 한명이 그녀를 구내식당에서 보고 큰 눈을 뜨고 눈빛을 교환한 뒤 놀랐다며 한마디씩 했다.

휴가 가면 연락이 안된다.

휴가 가는 기간 중 연락이 되어야 하는 경우는 정말 특별한 거 같다. 상사들은 조금 연락이 가능한데,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연락이 될 거라고 기대해서도 안되지만, 대부분은 이 기간에 연락을 극도로 피한다. 일반 사원급에서는 연락이 대부분 되지 않는다. 회사 전화도 컴퓨터도 두고 간다. 회사 전화의 VPN이 없으면 회사 시스템 접속 자체가 안되니까 연락이 될리가 없다. 따라서 휴가 기간에는 그냥 연락을 서로 하지 않는다.

회식이 거의 없다.

일년에 네번정도 회식이 있다. 두번은 팀빌딩 같은 걸로 세미나 같은 거 하고나서 저녁 먹는 거 하고, 두번은 여름 휴가 전에 파티 한번 하고, 겨울에 크리스마스 가까워서 연말 파티 한번 하는거다. 나는 한번 직원들 초대해서 식사 같이 한 적 있는데, 그때 다들 왔던 거 제외하고는 정해진 회식 외에는 따로 소규모 회식을 해본 적이 없다.

상사와 1대1 면담이 대충 한달에 한번정도 있다.

삼십분정도 할애해서 직속 상사랑 1대1 면담을 한다. 업무 관련 팔로우업도 하고, 주제는 없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직원에게 일상의 애로사항이 있는지 등도 들어보고 한다.

사수 부사수 개념이 없다.

대부분 입사 후 1달정도 정착을 도와줄 버디를 정해주는데 회사내 일상 생활과 관련해서 알아야 할 것, 중요 규정들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지, 회사 건물 안내, 건물 안내시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새직원 소개 등을 해준다. 그거 외에 꼭 알아야하는 것은 인사팀에서 입사 전에 이미 읽어볼 규정들을 보내주기도 하고 인트라나 인트로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시스템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되어있다. 사수 부사수 개념이 없고 모두 동료들이기 때문에 물어보면 친절히 다 알려준다. “누구씨. 이런거 꼭 말로 해줘야 알아요? 그정도는 학교에서 배우고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하는 신경질적인 말투를 들을 일이 없다.

자기 발표는 자기가 준비한다.

필요한 자료와 관련 수치는 관련 담당자에게 요청을 한다 하더라도 최종 발표자료는 발표자가 준비한다. 상사의 발표자료는 상사가 만든다. 부하직원이 만들어가면 이렇게저렇게 만들라고 수정요구를 하고 다시 수정해 가져가면 또 수정하고 하는 무한반복을 안해도 된다. 심지어 청장들도 그렇게 한다. 자기가 만들어야 자기도 발표할 때 자신있게 발표할 게 아닌가! 이런데서 오는 생산성 향상이 엄청 크다. 낭비를 제일 싫어하니까.


덴마크 사람들은 딱 계약서에 써 있는 만큼만 일하려 한다. 성장하려는 욕구가 없다. 이기적이다. 개인적이다. 등등 덴마크 사람들의 근로 문화를 두고 이를 비판하는 한국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반대로 놓고보면 우리가 “주인의식”이라는 미명하에 알아서 계약서로 합의된 이상으로 스스로를 갈아넣는 것에 너무 익숙한 거 아닌가 싶다. 실용주의가 뼛속까지 박힌 이들은 형식에 크게 얽메이지 않고 서로를 인간대 인간으로 대하며 각자 할일 하는 것에 집중하는 걸 제일 중시한다. 완벽하다는 게 아니다.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같이 단점이 따라오지 않는가. 그런 단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나면 이 문화가 인간의 정신건강에 크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면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뿐이다.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하면 정말 안될까?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했더니 국제채용 및 통합청 (Styrelsen for International Rekruttering og Integration, SIRI)에서 경고 서한을 받았다며 ‘무슨 이런 천국이 있냐?’ 또는 ‘이렇면 사회가 발전을 할 수 있나?’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그러면 정말 덴마크에서는 주당 37시간 일하면 안되나?

절대 그럴리가 없다. 주변에 주당 37시간 근무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아무도 경고를 받지 않는다.

가까이는 사기업에 다니는 남편부터 그렇다. 밀린 이메일을 처리한다고 주말에도 간간히 일하는 남편은 평일에 평균 9시간정도 근무를 한다. 주당 근로시간이 50시간 좀 안되게 일하고 그런 일상적 야근은 이미 임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며 별도의 추가 수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휴가떄도 이메일이 쌓이면 복귀후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틈틈히 이메일을 체크한다. 연간 6주의 휴가가 제공되지만 항상 조금씩 남겨서 다음해로 이월하는데, 이렇게 이월할 수 있는 한도가 제한되어 있고, 사용하지 못한 휴가는 휴가비로 지급되지도 않는다. 예전엔 휴가비로 지급받을 수도 있었던 모양인데 요즘은 그렇게 안된다고 한다.

나는 공무원이라 조금 다른데 우리나라의 사무관에 해당하는 fuldmægtig로서 주당 37시간의 근로시간을 지킬 수 있다. 근로시간을 매일 시스템에 기록하는데, 하루 기준 7,4시간에서 어떤 날은 더 많이, 어떤 날은 더 적게 근무할 수 있다. 9시부터 2시 반 사이에만 사무실에 있으면 되고 이 시간에 앞뒤로 시간을 추가해 평균 7,4시간을 일하면 된다. 마이너스 한도와 플러스 한도가 있는데, 마이너스 한도는 이틀정도 되고 플러스 한도는 영업일로 10일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던 거 같다. 이 한도를 넘겨 일하면 휴가를 써야 하고, 너무 바빠서 휴가를 쓸 수 없는 경우에는 승인을 받도록 한다. 이걸 flekstimer라고 해서 근로시간 시스템에서 밸런스를 보면서 알아서 자기 근로시간을 관리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중에 직원이 이를 한꺼번에 몰아서 자기가 가고 싶은 기간에 휴가를 왕창 몰아서 써서 근무에 차질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함이 하나 있고, 상사의 권한 남용으로 직원이 과다하게 일만 하고 자기 권리인 휴가를 못쓰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 또 하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승진을 해서 다음 직급으로 올라가면 flekstimer에 제약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쌓아놓고 날리는 flekstimer가 많다. 이 시스템은 직급이 올라가면 갈 수록 어느정도 야근은 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깔고 있는 거다. 부서장급은 flekstimer의 컨셉이 없다. 그냥 휴가 딱 쓰는게 끝이다. 그나마 공무원은 이런게 가능한데 사기업은 그렇지 않다.

우리 집 이야기 말고도 많다. 컨설턴트나 법조계 사람들은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경고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왜 외국인에게는 이렇게 경고 서한이 날라오는 걸까? 이건 모든 외국인에게 오는 경고서한은 아니고 근로비자로 와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외국인청(Udlændingestyrelsen)에서 비자를 받아 와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고, 국제채용 및 통합청에서 비자를 받아 와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근로비자로 오는 사람에게는 근로시간과 급여 등 여러가지 세부정보가 국제채용통합청에 다 통보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덴마크 국내 고용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고를 하는 것이다. 정해진 급여만 주고 과도하게 외국인 노동력을 착취하면 덴마크 노동력을 채용하지 않을테니까. 그러면 같은 급여만 준다 쳤을때 외국인을 고용하려는 인센티브가 커질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을 다수 채용하는 기업을 대상으로는 국제채용통합청에서 관리감독을 한다. 근로 여건이 근로 계약에 부합하는지를 대상으로 말이다. 영주권을 따면 더이상 그런 경고는 받지 않는다.

덴마크 사회도 끊임없이 발전을 한다. 그래갖고 어떻게 회사가 굴러가나 싶은 제도들이 많지만 많은 기업들과 조직들이 우리나라보더 훨씬 적은 인력으로 같은 일을 수행한다. 생산성이 높은 거다. 한국처럼 일이 빨리 돌아가지 않는데! 라고 불평한다면 같은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고용인원이 훨씬 적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1인당 생산성은 높다. 그러려면 불필요한 절차를 최소화하고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런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예를 들어 공무원 조직은 민원인과 접촉하는 전화시간, 방문 시간 등이 우리보다 짧게 잡혀있어서 일하는 중간중간 오는 전화에 업무 리듬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는다. 이걸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공무원은 일을 안하나? 일찍 퇴근한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민원상담시간을 따로 정해둔 것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다. 근로비자 받고 일하는 외노자 아니면…

옷으로 보는 덴마크 내 근로문화가 차이

나라마다 근로문화가 다르듯이 분야마다도 근로문화가 다르다. 나는 중앙부처 중에서도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된 감독기구에서 일하기 때문에 정권에 따라 장관이 새로 바뀐다한들 우리의 일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장관이 우리에게 일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지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우리에게 요청할 수 있지만, 그 결과물은 전적으로 우리가 전문적으로 판단한 결과에 따라 제출할 뿐, 정치적 색깔에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장관이 결과를 틀 수 없게 되어있다. 이러한 정치적 독립성은 업무 추진에 있어서 짧은 의사결정 채널, 명확한 업무추진방향 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큰 장점이 있다. 물론 덕분에 중앙정부기관 지방이전을 할때 다른 많은 정치적 중립 기관들처럼 외곽으로 밀려났다는 단점이 있긴하지만… (우리 부 산하에서 유일하게 우리만 이전되었다.)

옷 입는 것만 봐도 중앙부처간에 차이가 보인다. 장관이 있는 부를 보면 다들 정장을 입는다. 20-40대 속하는 남자들을 보면 마치 맞춤정장인냥 몸에 딱 붙는 정장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매우 전형적이게도 하얀 셔츠에 검색 수트를 입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장관 보고를 들어가야할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권력에 가까운 곳에 일하다 보니 보수적이어서 복장도 보수적이라고 한다.

부(Ministeriet) 아래에는 세부 정책을 담당하는 국?정도로 번역할까 싶은 Styrelse 들이 있고, 우리처럼 법령에 따라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보유한 감독기구와 국가가 지분을 보유하는 국유 기업이나 기관 등이 있다. Styrelse들을 보면 복장이 조금 더 자유롭다. 중요한 회의가 있으면 복장을 조금 더 갖춰입고오기도 하고 하는데 부와는 뚜렷하게 차이를 보인다. 예전에 근무했던 경쟁소비자청은 Styrelsen 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독립성을 인정받는 부서가 일부 있어서 좀 더 자유로운 것 같았지만 그래도 스마트캐주얼 정도 되는 드레스코드가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처럼 정치적으로 독립된 기구는 또 좀 다른게, 드레스코드가 없고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린 느낌이다. 추리닝을 입고 일하는 사람이야 없지만 대학교에서 연구만 하는 너드같은 복장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꽤 된다. 정말 평상복 느낌. 외부 회의가 있어도 같은 복장이다. 부서장은 다른게 부서장들은 항상 정장이나 스마트캐주얼을 입는다. 옷은 조직간 문화의 차이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일의 수행방식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부처의 종류에 따라 드러난다.

같은 조직 내에서도 부서마다 업무의 성격 또는 상사에 따라 근로문화가 꽤나 다르다. 우리 부서는 연구부서라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이다. 학계로부터 새로운 연구방식을 꾸준히 수혈받아 그게 규제 감독에 도입될 수 있게 하는 하는 역할도 있는지라 대학교에서 일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있다. 업무 자율성이 높고, 프로젝트 호흡이 짧은 것도 있지만 일년을 넘는 단위의 프로젝트도 많아서 업무 강도가 유동적으로 변하면서 좀 바쁜 시기가 오더라도 직원이 과한 일정으로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기 좋다. 이와 함께 주제에 대한 토의/토론이 매우 장려돠는 분위기이다. 이는 옷차림에서도 드러나는데 진짜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나도 맨날 입는 옷만 입고 다녀서 더이상 옷을 살 필요가 없어졌다. 여성 정장용 백팩도 그냥 유니섹스 백팩으로 대체되었고, 항상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깔끔하게는 입지만 포멀하지는 않게. 구두 안신은지는 백만년된듯한 기분이고 핸드백은 그냥 아켓에서 산 나일론 카메라백 하나로 얼마를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아주 닳아서 떨어질 때까지 들고 다닐 듯.

한국 전 동료들의 정장 사진을 보면 그게 익숙해서 이상하지 않은데 지금 동료들이 정장을 입고 출근하면 무슨 일 있냐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어볼 거다. 이런 상황인지라 사무실에 빼입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포멀한 옷은 옷장에서 썩을 정도.

공영방송 인터뷰를 한다해도 따로 옷을 더 차려 입지 않고 그냥 나서서 인터뷰를 하는 덴마크인들을 티비에서 보면서 덴마크 이주 초기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니 나도 얼마나 변했는지 새삼 놀랍다.

낯선이들 속에서 오롯이 나로 자유로이 서기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네트워킹을 하고 코스를 듣고 내 의견을 말하고 질문을 하고 내 소개를 하고 하는 과정 속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한 것 말이다. 나에게 향했던 내 내부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타인의 발언을 들을 때 그에 100% 집중해 경청하니 상대방이 더 잘보이기 시작했다. 내 결점에 집중하고 그걸 타인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느라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모습이.

언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내 머리속에 자리한 번잡한 생각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한 것이었다. 테크니컬한 내용의 강의와 토의를 따라가고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내 덴마크어가 부족할까봐 미리 변호하거나 하는 일이 필요없었다. 조금씩 실수하거나 그러면 또 어떠한가. 우리말하면서도 실수 할 수 있는 건데. 저녁 식사하다가 문화간 차이 이야기가 나와서 덴마크 이주시 경험을 이야기하니 언제 왔냐고, 이민온 지 몰랐다고 하는 거보면 작은 실수는 그냥 나만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던 거였던 거 같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틀려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는 거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다른 동료가 있고, 나는 그 자리를 메울 다른 것을 갖고 있으며, 나는 계속 배워가고 계속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저런 사람인데… 이런 생각으로 걱정하거나 나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고 그래서 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나다. 이 말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새롭게 와닿은 순간 이게 정말 나를 자유롭게 하는 말임을 알았다.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수가 없고 나는 그냥 내 생각과 행위, 선호, 가치관 등으로 구성된 사람이고 이는 내가 내리는 일련의 결정과 행위로 끊임없이 변하는 동태적인 유기체이기에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나는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선호, 정보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거다. 정보가 추가되거나 가치관이나 선호가 바뀌면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고. 타인이 나를 좋아하건 안하건 나는 나이고 타인의 평가는 나의 어느 일면만을 갖고 평가하는 것이기에 필요한 오해가 있으면 풀고, 그게 아니면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 하고 넘어가는 거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늘은 스스로에게 정말 칭찬해줄 날이다. 내가 낯선이들 사이에서 나로서 자유롭게 오롯이 선 날이기 때문이다. 잘 했어!

테마데이 고카트!

난생처음 고카트를 타봤다. 센터장이 이번 테마데이의 활동은 업무와 무관한 것으로 선택했다고만 들었는데 그게 고카트일 줄이야! 처음 타보는 거라 얼마만큼 가속을 해도 좋을지, 언제 브레이크를 얼마만큼 밟아야할지 등 잘 모르겠어서 조금씩 테스트를 해보면서 속도를 늘려봤다. 나중엔 요령이 조금 생겨서 속도를 꽤 올릴 수 있었고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았다. 다른 카트를 추월하거나, 추월하다가 실패하고 접촉사고를 내거나, 추월하려는 동료를 성공적으로 막거나 커브를 너무 격하게 돌아서 자동차가 반바퀴쯤 돌거나, 또 어제 하루 고카트를 운전한 사람들 중에 네번째로 빠른 랩기록을 낸다거나 말이다.

시속 65킬로미터로 속도 제한을 걸어놨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전구간에서 목과 온 몸에 느껴지는 원심력이란… 언젠가 포뮬러원 선수들이 목 근육을 그렇게 트레이닝한다는 것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왜 그렇게 훈련해야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으니 시속 65킬로미터가 안되는 상황에서 내 목이 받은 원심력이 그렇게 컸는데, 코너에서 최저 시속 80킬로미터를 낸다는 포뮬러원 선수들이 목에 받는 힘이 얼마나 대단할런지.. 아무리 차량의 접지력이 크고 회전 반경이 고카트보다 크다 하더라도 무게가 더 나가는 차량에 속도가 두배 이상이면 그게 원심력에 미치는 영향이 네배가 넘을텐데… 하여간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고작 10분씩 16랩 경기를 3번 했을 뿐인데 지금 몸에 근육통이 가볍게 느껴진다. 온 몸에 들었던 긴장감이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 우리랑 같이 돌던 팀은 2번 돌고나서 두명이 속이 안좋다해서 관두고 나갔다.

파워핸들이 아닌지라 회전 구간에서 핸들링을 하면서 온 몸애 힘을 썼는데, 그 덕에 다 끝나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내 차의 핸들이 얼마나 가볍고 부드럽게 느껴지던지. 안그래도 전기자동차라 주행이 가벼운 편인데 고카트 하고 운전하니까 몸이 날아갈 거 같더라. 자동차를 시 외곽에 둔다고 해서 내 차에 중간부터 태워 동행하고 갔던 동료도 자기가 운전하지 않는 차지만 고카트 운전 이후엔 모든 승차감이 다 좋게 느껴지는 거 같다며 공감해마지 않았다.

이런 테마 데이가 아니었으면 굳이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고카트. 처음엔 30분에 불과하다 생각했는데, 끝나고 몸이 땀에 흠뻑 젖고 나니, 30분을 넘겼으면 너무 힘들었겠다 싶었다. 주변에 딱히 이런 격한 것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누군가가 한다고 하면 다시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은 이래서 어떤 활동을 할지에 대한 결정이 전적으로 남에게 달린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음엔 방탈출도 해보고 싶네!

평가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사무관급에서는 연봉 협상이랄게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정부와 내가 소속된 노조랑 임단협을 하면 내 임금단계에 맞춰 인상이 되기 때문이다. 임단협에 맞추지 않고 내가 직접 협상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문 케이스이고. 나는 원래 주는대로 받자는 주의라 임단협에 묻어간다. 내가 아주 특별하게 뛰어났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단협을 받아들이든 자기가 직접 협상을 하든 그건 이미 본 협상 단계에 들어서서 할 일이고 그 전에 또 임금기대수준에 대한 대화를 하는 회의를 갖게 된다. 여기서 상사도 오퍼할 내용을 준비해 공유하고, 직원도 자기 나름대로의 기대수준을 이야기한다.

오늘 이 임금기대수준에 대한 회의를 했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임금정책에 대해서도 읽어봤지만 매우 원론적인 정책이라 그게 나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고, 아직 이 임금협상이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마음 먹고 썰을 풀자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겠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원한 이상의 결과가 나왔는데 무엇보다 기뻤던 건 상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담을 받고 그 상담의 내용을 일상에 적용하고 하는 걸 벌써 두달 조금 넘게 했는데 그 사이에 정말 큰 변화를 본 거다. 상사의 좋은 평가나 이런 걸 덴마크에서 직장을 잦은 이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냥 좋게 말해주는 것 뿐이지, 나랑 일하는게 답답할 거다 이런 식으로 혼자 생각하고 덴마크어에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나에게 참 가혹하게 굴었으니…

심리상담 받느라 주당 근무 시간도 한두시간 줄이고 해서 평균을 넘는 임금인상은 기대도 안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또는 그냥 당연하다 생각했던 내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꼬집어 내어 좋게 상사가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며, 타인의 여러 모습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그걸 꼬집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상사에겐 참 필요한 덕목이구나 싶었다. 세금 내고 나면 대세로 보아 큰 의미없는 임금 인상이지만 상징적 의미로 기쁜게 크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