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MUS를 마치고

MUS (Medarbejderudviklingssamtale, 직원계발면담)은 1. 전반적 직장생활 만족도를 평가하고, 2. 연간 실적을 정리하고, 3. 내년 목표는 무엇인지, 4. 현재 역량의 상황을 평가한 후 5.계발해야 할 역량은 뭐가 있는지, 6. 미래 계획은 뭐가 있는지, 7. 직속상사에게 역량계발지원을 위해 요청할 건 뭔지, 8. 직속상사가 리더로서 개선할 점은 뭐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미리 해당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고 적어가야 한다. 그래야 일년에 두 번 (두번째인 mini-MUS는 MUS에 이야기한 항목에 대해 점검하고 연봉협상을 겸한다.) 있는 이 기회에 상사의 나에 대한 기대와 부응수준, 내가 회사에 나의 발전을 위해 요청할 것 등을 효과적으로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해간 내용을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상사의 평가에 대해 듣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약간 긴장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내가 요청하는 사항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실 지난 8개월이란 시간동안 말도 글쓰기도 많이 늘었다고는 해도 내가 한국어나 영어로 일할 때보다 효율적일 수 없다는 한계 속에, 혹시 나에게 말은 하지 않지만 상사가 채용을 후회하거나 하는 건 없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도 살짝 했었다. 오늘의 면담을 통해 그런 걱정은 싹 털어버렸다. 


다만 상사의 마지막 조언 한마디가 내 마음에 확 와닿았다. Be compassionate to yourself. 내가 나 스스로의 발전에 대해서 야심도 있고 자기에게 엄격한 기준을 갖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내면 인내심을 갖지 못하는 성향인 것 같다며, 남에게 대하듯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고 하더라. 이게 발전의 동력이긴 하지만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함을 나도 느껴서 고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렇게 지금껏 살아왔던 터라.


이번을 계기로 직장안정성에 대한 이유없는 불안은 완전히 떨쳐버렸다. 얼마나 안도되는지….

동료들의 편견을 깰 기회

오늘 아침 금요일회의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이주전 다녀온 컨퍼런스에서 보고 들은 것 중 중요하거나 재미있는 걸 추려서 발표해달라고 센터장의 지시를 받은 게 지난 주 목요일. 막상 일이 바빠서 일중에는 도저히 준비를 못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목요일까지도 다 준비가 안되서 할 수 없이 목요일 저녁 집에서 준비를 했다. 애 재우고 준비를 하다보니 열한시가 되서야나 대충 발표할 내용이 정리되었다.

덴마크어로 준비할까도 생각해 봤는데 바빠서 야근을 해야만 준비를 할 판에 이걸 또 덴마크어로 준비한다는 게 시간과 에너지 낭비다 싶어서 그냥 영어로 준비를 했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한 15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서 발표를 했다. 컨퍼런스가 영어로 진행되었고 새로운 인풋 중에는 덴마크어로 모르는 단어가 제법 되는데 영어, 덴마크어 모두가 나에게 외국어라 덴마크어로 모르는 단어만 영어로 바꾸고 하는 게 더 어렵고 헷갈려서 그냥 영어로 하겠다 말했다. 덴마크인 중에 영어 못하는 사람이 별로 안되니까.

전달했던 컨퍼런스의 내용이 실제 흥미롭기도 했고 환경경제가 내 분야이니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정리해서 재미있게 공유한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실 내가 발표한 게 회의도 여러번 있고 이래저래 처음이 아닌데 발표 잘했다면서 동료들이 점심시간이며 커피 내리러 가는 길에 한두마디씩 던지는 거다. 뭐랄까. 영어때문에 그렇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긴 덴마크어로 말하다보면 말이 꼬여서 문장을 리프레이징해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 이렇게 내가 하고싶은 말을 편하게 하는 게 생경하기도 하겠다 싶다.

스웨덴으로 직장을 구해 이사를 간 스위스 친구가 있다. 언어에 재능이 있고 노력도 하는 친구라 네덜란드에 살며 배운 네덜란드어와 덴마크에 살며 배운 덴마크어를 기반으로 3개월 빡세게 스웨덴어 인텐시브코스를 듣고나서 스웨덴어로 일을 하고 있는 특출난 친구다. 막상 동료들하고는 영어로 대화를 할 일이 없으니 동료들이 그녀의 영어를 들을 일이 없었다. 그녀가 스웨덴어 배운지 몇달이 안되는 걸 알고 있는 동료들도 당연히 그녀의 영어가 스웨덴어보다 훨씬 나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겠지만 그 수준에 대해서는 그냥 지레 짐작할 뿐이었을 거다. 어느날 네덜란드 파트너 회사에서 스웨덴 회사를 방문해서 회의가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그녀가 하는 영어를 듣더니, 나중에 너 영어 되게 잘한다면서 뭐랄까 그녀를 보는 눈이 달라진 거 같다고 했다. 그녀의 언어의 부족으로 인한 대화전개상의 매끄럽지 못함을 그녀의 수준으로 간주했음이리라.

동료들도 내가 이렇게 편하고 매끄럽게 하고 싶은 말들을 세세한 예시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들어가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놀라웠던 것 같다. 아무리 내 덴마크어가 늘었다 한 들 영어로 표현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아직 다 덴마크어로 전달할 수 없고, 꼭 해야하는 말을 클리어하게 표현하는 데 가장 큰 초점을 두는 덴마크어가 영어와 같을 수는 없다.

거기다가 아마 간혹은 덴마크어로 하다가 생각안나는 단어를 갖고 버벅대면, 영어로 말하라고 하는데, 머리가 덴마크어 모드인 상황에는 아는 영어단어도 안나올 때가 있었다. 그 말을 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영어로 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 말이다. 아마 그래서 그랬을까? 내 영어도 덴마크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글로 써서 일하는 건 해도 말로 유려하게 표현하며 일하는 건 한계가 있다 생각했을 수도 있고 영어도 그와 마찬가지일거라는 짐작을 했을 수도 있다.

사실 덴마크어를 일상생활에서 열심히 쓰는 과정 속에 도저히 의사 전달이 원하는 만큼 안이뤄져서 상대가 나를 바보로 볼까 싶은 상황들에 자주 맞부딪히곤 했다. 그래서 미안한데 그냥 영어로 하겠다고 말을 바꾸고 나면 상대가 짜증섞인 표정을 갑자기 풀면서 놀랍고 좋은 표정으로 바꾸는 경우를 보면 기분도 상하기도 하고, 참 언어 배우기 어렵다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배워야지만 늘지 이런 마음으로 꾸준히 덴마크어를 쓰고 살았는데, 일터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고 나니 좀 웃기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옛날같았으면 기분나빴을 거 같은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자기들도 내가 멍청이가 아니라는 건 알았을 거고, 뭐 사실 그들이 혹여나 나를 멍청하다 생각하더라도 내가 내일만 잘 처리하면 되니까 상관이 없다 싶기도 하고. 그리고 다 마음 좋은 동료들이니까. 그리고 일부러 나를 얕보려고 해서 그렇게 반응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내가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핸디캡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공정하게 평가하려 노력한다 하더래도 자기가 보고 듣는 것에서 편견을 갖게 되는 건 피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옌스왈, 영어를 잘 해도 네 모국어와 같지 않을텐데, 그들이 한국어로 일하는 네 모습은 못보더라도 영어로 일할 때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공감한다. 아주 간혹은 이런 기회처럼 자리가 있을 땐 영어를 쓰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자리를 마킹하려면 말이다.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방법

나는 이방인이다. 훗날 시간이 많이 흘러 이곳의 문화와 생활에 푹 젖어들게되며 이방인이라는 색이 흐려지고, 그래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타인이 눈치채는데 시간이 걸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내가 이방인인 사실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살면서 내가 이방인인 것 같은 경험은 어디에서나 하게 되지 않던가.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쭉 자라온 한국에서조차 내가 이방인인 것 같다는 느낌에 고독함을 가졌던 게 얼마나 잦았던 일인지 생각해보면 굳이 내가 사는 곳이 어디인가를 따지지 않고도 나는 영원히 이방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세상이 다른 사람들로 채워진 곳이라 그렇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참 당연한 사실인데 왜 그걸 이제 알게 되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이다.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달리 태어났다. 그리고 내 삶의 궤적이 그리 평범한 편도 아니다. 설령 내 삶의 궤적이 아주 평범하더라도 그냥 달라도 된다. 내가 어디 살 든 나와 같은 사람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덴마크에 산다 해서 덴마크 사람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 완벽한 통합은 이상도 아니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서 사회에 새롭게 기여할 게 있다. 내가 사회의 부담이 아닌 이상 그 이상 덴마크인처럼 생각하고 같아져야 할 필요가 없다. 그 같아져야 할 대상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다. 사무실에서 점심시간에 왔다갔다 하는 대화가 잘 안들려 이를 완벽하게 따라잡지 못해도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다 좋아질 일이고, 한국에서도 잘 안들려 못알아 듣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그걸 다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리고 뭔가를 잘 못하는 나도 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머리로는 그래야 하는 걸 아는데 마음으로 와닿지 않던 것이었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고 그게 발전의 원동력이기에 이를 버리려는 건 아니다. 다만, 잘하고 싶은 마음과 현실에 격차가 있을 때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못해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걸 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못해도 괜찮다. 그냥 지금을 즐기고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거다. 그러면 어느새 그 차이가 줄어들어서 더욱 즐길 수 있게 될 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움추러드니 성장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하나에게도 그걸 끊임없이 알려줘야할 것 같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건강한 거고, 좋은 거지만, 못해도 괜찮고, 그렇게 배우면서 느는 거라고. 현재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고.

내사랑 발레

발레가 너무 좋다. 정말 정말 좋아서 매주 발레 클래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다음주부터는 주 2회로 늘어나니 더 기대된다. 게다가 한번은 로열 발레단에서 개설하는 클래스라서 새롭게 설렌다. 마음에 드는 옷도 새로이 추가장만하고. 아. 이 좋은 걸 이리 늦게 찾게되다니. 그래도 이렇게나마 찾은 것도 감사하지. 러너스하이처럼 발레하고 온 날은 잠에 들기 참 어렵다. 발레가 만나게 해주는 인연들도 소중하고…

너 덴마크인이 아니었어?

작년에 논문을 발표했던 컨퍼런스에 이번엔 그냥 참가자 자격으로 왔다. 나중에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정책 패키지가 통과되면 수자원관리 분야 경제분석을 내가 담당하게 될 관계로 관련분야 전문가와도 네트워킹도 해야하니까. 환경경제학 하는 사람 풀이 크지 않아서 여기 일년이 한번만 와도 아는 사람들과 근황 업데이트 하기는 좋겠더라. 지난번보다 이번에 또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애를 낳고 직장을 구하니 새로운 사람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 네트워킹 하는게 부담스럽지 않다.

올해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애 낳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뀐 계기를 이야기하며 내 생물학적 시계가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이 서른 중반 들면서 들었던 게 하나의 요소인 것 같다고 했더니 내 앞에 있던 사람이 화듦짝 놀랐다. 자기랑 같은 개월수의 애를 키우는 엄마이니 또래일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기함을 하던 모습에 나도 엄청 웃었다.

같은 사람이 오늘 자기는 호텔에서 자야 한다 했다. 오후스에서 와서 출산이후 처음 외박하는 건데 긴장된다고. 나도 외박은 한 적 없는데 돌 전에 덴마크어 학원 다시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애가 제법 울어서 집에 돌아오기 전 한시간을 내리 울었던 때가 종종 있었다 했다. 그러자 그녀가 또 한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덴마크어 학원을 왜 다녀오고 묻는거다. 외국인이니 다녔던 거라 답하자, 너 덴마크인이 아니야? 라고 묻는게 아닌가!!!! 덴마크어 배운 지 오년만에 네이티브로 와인을 받다니 살짝 감동했다. 물론 길게 이야기하면 다 알게되는 순간이 오겠지만 직장 다니면서 덴마크어가 진짜 많이 늘었다. 역시 실전이 최고의 연습은 모양이다. ㅠㅠ 감동의 기억을 기록해야지…

발레, 내 몸을 알아가는 여정

올해 늦봄부터 발레를 다시 시작했다. 자동차를 산 덕에 저녁준비를 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도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클래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신 중기 이후 휴식을 하면서 그 사이 너무나 그리웠는데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부터 시작한 발레이니 발레와 연을 맺은지도 만으로 7년이 되었구나. 휴식을 취했어도 운동을 할 때도 플리에와 탕듀 등 기초 동작을 트레이닝해왔으니 그 끈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정도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중간에 오른쪽 고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물리치료도 받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골반이 왼쪽으로 약간 돌아간 탓이었다. 그건 발레와 상관은 없이 오래된 자세의 문제였는데 잘못된 체형에 장기간의 발레와 덴마크 와서 장거리를 뛰곤 한 자전거 페달밟기가 얹어서 문제가 불거진 거였다. 


발레를 시작한 지 오래되면서 내 몸의 목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읽기 시작했다. 급성이 아닌 만성 부상은 뭔가 잘못된 자세에 부담이 오랜시간 얹어지면서 발생하는 바, 만성 부상이 생기면 뭔가 고칠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왼다리로 섰을 때 턴아웃이 잘 안되어 자세가 풀리는 것이 왼다리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드는 자세에서 고관절에 자꾸만 부담이 되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두 문제는 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같이 생기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오른쪽 골반을 잡아주는 근육이 약해서 그게 밀리니 아무리 왼쪽의 턴아웃을 잡으려 해도 자꾸만 풀리는 거였다. 오른쪽 다리로 서는 건 안정적인데 왼쪽 다리로 서는 건 이 이유로 불안정하고 자꾸만 흔들리고 옆으로 무너지고, 간신히 서게 되도 종아리와 발에 부담을 많이 줘야나 가능했는데, 오른쪽 골반을 안정시키는 데 같이 신경을 쓰니 자연히 왼쪽을 축으로 하는 동작이 안정되는 거다.
남이 몸을 보고 교정해주는 것만으로는 맞는 자세를 찾을 수 없다. 각자 해부학적인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보기에 맞아보이는 자세를 찾아주면서도 맞는 동작은 이런 느낌이어야 한다며 움직일 때 느낌을 시각화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즉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들어맞는 동작의 공식이 아니라 원칙적 공식에 각자 자기의 몸에 맞게 오차 보정을 해야하는 거다. 


여러 선생님을 거쳐오며 선생님들이 설명해준 내용을 조합해보고 내 몸의 소리를 들어가다보니 그간 고생해오던 고관절 부상은 없어졌다. 어깨도 그렇고. 의외로 내 몸의 오른쪽 소속 관절들이 왼쪽보다 불안정한 것 같다. 이런 불안정성을 교정하면 할 수록 몸의 근육부피 차이도 줄어든다. 짝짝이 가슴도 거의 같아졌고.


다른 운동과 달리 발레는 이런 몸의 소리를 세세하게 듣게 만들어준다. 각자 좋아하게 되는 운동과 그 이유가 다르듯이 모두에게 같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유로 나는 발레를 사랑하고 아마 지금 클래스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가 많이 들어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Bernstorff Slotshave

겐토프트 한 복판에는 베언스토프성과 부속 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택에 살 때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자주 가던 공원인데 거기 사는 동안에는 그 반쪽만 가봤었다. 간혹 자전거를 타고 주변 동네 중 안가봤던 길을 지나가곤 하는데, 삼 주 전인가 살면서 안다니던 길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그냥 이끌리는대로 가봤더니 그 반대쪽 끝편에 이런 잘 정리된 정원이 있는게 아닌가!

공원에는 사과나무, 배나무와 자두나무가 가득하고 거기에서 열리는 과일은 마음대로 따먹어도 된다. 문화부에서 관리하는 과거 왕실소유 성인데 이곳 나무는 코펜하겐 대학교 자연과학부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5월부터 10월 여름에는 주말마다 이 정원 가운데에 있는 루이스 여왕의 찻집 (Dronning Louises Tehus)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 찻집이라 커피는 없는데 간단한 요기거리와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다. 괜찮은 찻집이었다. 같이 먹은 샌드위치도 굳. 막 빼어나게 맛있다 이런건 아닌데, 여기 산책 온 김에 쉬면서 먹는 걸로는 훌륭하다.

여름에 겐토프트에서 산책할 곳을 찾는다면 여기도 강추!

30개월의 하나

30개월의 하나가 어떤지 기록이 되어 있어야나 나중에 돌아볼 수 있을 거 같다. 일로 가정생활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지만 짬을 내서 기록해본다. 

하나가 한국말과 덴마크어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건 대충 18개월  들어설 때 즈음부터였다. 사물이나 개념에 엄마와 아빠가 다른 표현방식을 쓴다는 것을 알고 그 표현방식에 한국어와 덴마크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덴마크어 어휘와 문장 구성이 한국어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내가 한국어로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덴마크어로 표현한 단어에 대해서 그건 한국어로 뭐냐고 물었을 때 한국어 어휘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묻든 대부분 덴마크어로 답하고 간혹 한국어로만 아는 단어 (예를 들어 맵다와 같이 보육원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나 덴마크어 문장에 섞어쓰는 게 일상이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듣기를 통해 이해하는 수동적 학습만으로는 부족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어휘를 선택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능동적 학습이 필요한데, 그걸 강요하자니 한국어를 싫어하게 될 것 같고 쉽지가 않다. 그나마 요즘 한국어로 이게 뭐냐고 묻는 게 늘어나서 한국어 어휘를 넓히는 기회가 생기는게 다행이다. 덴마크어로 의사소통하는 부분만 따지면 미묘한 뉘앙스도 살려가며 대화하고 있어서 이맘때쯤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거였구나 놀라곤 한다. 단어 열거로 의사소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말다운 말을 긴 문장으로 하는 건지.

16개월인 친구네 애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은 되나 아직 발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하나는 언제 말을 시작했나 봤더니 만 15개월 되었을 때에는 아니오에 해당하는 엄마, 아빠, Hvad er det? (이게 뭐예요?), 하나 (자기 이름), 거북, nej (아니오), hej (안녕), bye 정도 말하고 기타 동물 소리흉내 (멍멍, 미야오, 구구, 꼬꼬 등)을 낼 수 있었다. 만 17개월이 되었을 때는 ja (예)를 사용하면서부터 조금 더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수월해졌다. 두달 사이 어휘가 빠르게 늘어서 할 수 있는 단어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보육원 애들 이름을 다 기억하고 부정확한 발음이나마 애들 이름을 이야기해서 내가 다른 애들 이름 기억하는 것도 쉬워졌다.  보육원에서 또래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였는데, 이중언어 하는 애들 중에 발화가 늦은 애도 있지만 하나처럼 오히려 더 잘 하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더랬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맞는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살려줄 지 고민을해봐야겠다.

하나가 만 두살이 되자마자 발레를 시켰다. 어른과 함께 가서 하는 발레인데 하나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도움이 될 활동 중 하나로 나도 즐길만할 걸 찾다보니 발레가 되었다. 처음엔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발레 수업 내내 노래에 맞춰 뛰려는 애를 잡아 함께하는 활동에 포함시키는 게벅찼다. 단 30분에 불과한 시간인데 말이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 규율에 애를 너무 맞추려다보면 애가 기분이 상해서 발레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애를 마음대로 풀어놓으면 방해가 되니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애를 통제하고 활동에 동참시키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진땀을흘린 날이 많았다. 거기다가 발레 수업이 끝나는 시간 때 즈음이 하나가 피곤해하는 타이밍이어서 안아달라는 하나를 안고 나 혼자 춤을 추느라 힘든 경우도 흔했다.

애가 발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바는 없지만, 발레가는 시간을 고대하고, 보육원에서 다리를 들고 까치발로 다니고 빙글빙글 돌고, 선생님들이 뭐하냐고 물어보면 발레한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하나를 Balletpige (발레소녀)라고 부를 정도기에 좋아하는구나 하고 추정할 뿐이다. 한달 반 정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이번 주말부터 클래스가 시작되었는데, 가는 길에부터 그전에 배운 걸 기억하고 이야기하길래 신기했다. 이제 꽤나 장기 기억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지금은 2-3세 사이 유아반에서 배우고 있는데, 두살 반이되서 그런지, 이번엔 시키는 것도 제법 따라하고 애 쫓아다니느라 고생하는 거없이 30분을 잘 보내고 왔다. 내년에 3세 반에 올라갈 때면 혼자 들여보내도 걱정이 없겠다 확신이 들었다.

페달 없는 자전거는 발을 땅에 대는 시간이 얼마 안되게끔 쌩쌩 뒤로 밀기 시작해서 우리가 뛰어다녀야만 쫓아다닐 수 있게 능숙해졌다. 정글짐에 기어 올라가서 높은 곳의 미끄럼틀을 타고 씽씽 내려오는 것도 능숙해졌고 아빠가 잡아주는 손에 크게 기대지 않은채로 외줄타기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반동을 활용해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까지도. 

어디 가서 크게 맞을 걱정은 하지 않는 게, 간간히 맞기는 하는 것 같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힘있게 팔을 뻗으면서 안된다고, 멈추라고 (Stop! Det må man ikke! Man må ikke slå!) 크게 외칠 줄 알아서 주변 어른의 시선을 쉽게 끌어낸다. 장난감이나 놀이터 시설 등에 대해서도 보육원에서 가르친 순서지키기, 적당히 놀고 양보하기 등을 이해하고 있어서 간혹 어른이 중재해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어졌다. 그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가르쳐서 그런지 빨리 배우더라. 하나가 다른 애를 때리는 경우는 상대가 먼저 때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본 적도 더 어렸을 때나 있었고, 보육원에 물어봐도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상대가 때린 경우에도 안된다 하고 크게 항의하는 거지 맞서 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어려서는 애가 워낙 활동적이고 힘이 좋아서 남들 때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이제는 그건 크게 걱정을 안하고 지낸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있던 일들을 이것저것 신나게 말해주는 편인데 궁금한 일 나중에 보육원가서 물어보면 되서 현황 파악이 쉽다. 친구 Feifei의 세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었는데, 자기는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었다며 시무룩하게 말하길래, 유당제한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그게 맞다고 이야기해주더라. 그리고 다른 애들이 자기들도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겠다고 해서 애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제 생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기 생일이 언젠지 자꾸 묻는다 최근 두어달사이에 애들 생일 잔치가 여럿 있었는데, 자기도 생일 주인공이 되고 싶었나보다. 하나 생일 땐 나도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텐데 쩝. 그날은 대충 휴가 내고 새벽부터 준비를 하던가 해야할 것 같다. 

요즘은 수줍음을 조금 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낯선 남자에게 수줍음을 탄다. 인도에서 낯선 남자가 마주지나가면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뒤에 숨는다던가, 유모차에서 얼굴을 돌린다던가 한다. 그리고 나에게 Jeg er lidt genert. (저 조금 수줍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자는 매우 좋아해서 낯선 할머니나 아줌마 할 것 없이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냥 Hej?!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외치며 인사한다. 이 시기에 흔히 있는 거라고 하더니 수줍음의 수자도 모를 것 같던 하나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지난달에 친구가 와서 자고 가면서 자기도 남에 집에 가서 자고 싶기도 하고 그런가보다. 나는 걔네 집에서 언제 자냐고 간간히 묻는다. 우리 집에서 그 친구가 자던 날, 내가 책을 다 읽고 자라고 한 뒤 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옆에서 자는 척 했다. 그러자 지들끼리 나를 사이에 둔 두 침대에서 서서 대화를 나눈다. 

하나: 네 엄마는 어디에 가셨니?” 

친구: “우리 엄마는 일하러 가셨어.” (집들이 파티 가느라 우리집에 애를 맡긴 거지만 애들은 일하러 간 걸로 오해했다.) 

하나: “너희 엄마는 휴가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그러면 Lagkagehuset (체인점 빵집)”에 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히히. 그거 나야. 내가 오늘 lagkagehuset에 다녀왔어” 

이날 하나는 우리와 그 빵집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그걸로 농담까지 할 줄이야. 애들의 대화를 이렇게 들어볼 날이 없었는데 애들이 벌써 말장난도 치면서 노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미 가까이 잘 노는 친구가 생긴 것도 놀랐고. 

내가 선생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특정 친구와 놀기보다는 재미있는 걸 하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서서히 친한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툭하면 듣는 이름이 대충 열명 안으로 좁혀진 것만 봐도 그렇고. 

밤에는 옌스와 번갈아가며 책 읽어주고 재우는데, 간혹 주인공이 우는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티비에서 주인공이 울어도 같이 운다. 공감능력이 좋은 아이라고 보육원에서 들었는데 실제 우리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내가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인지라 그런 걸 볼 때 좋다 싶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살까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걸 보답하기 위해 부모가 그 나머지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은 적이 있다. 그 삼 년의 시간이 벌써 거의 다 흘렀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쁘고 사랑스러운 딸이겠지만 이 첫 삼 년의 시간은 참으로 기적같은 시간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 작은 핏덩이에서 이렇게 아이같은 아이로 성장한 기적.

해외생활 속 인간관계 맺기

나에게 인터넷에서 우연한 기회로 인사를 나누고 얼굴을 만나는 건 아주 드문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만나고 나서 또 만나고 싶은 연이 되는 건 그보다 더 드물다. 한국에 살았더라면 그런 기회를 만드는 일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해외에 살다보면 그 전에는 안 할 일도 하게 되고, 안 할 일도 하게 되서 그런지 그렇게 만든 연들이 지금의 내 주변을 촘촘히 채우고 있다. 하긴. 내 남편조차 인터넷에서 만났으니 제일 중요한 인연부터 인터넷이 이어주었구나.

해외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주변 관계의 지도가 달라졌다. 한국에서 오래되었고 아주 가까웠지만 자주 연락하지는 못하며 마음에 곱게 담아 종종 생각하며, 매우 드물지만 만남이나 깊은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 적당한 거리의 관계로 온라인에서 즉흥적으로 가끔씩 댓글로 말을 주고 받지만 막상 더이상 만나는 일은 거의 없을 친구나 지인,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 사는 사람들로 새롭게 사귄 친구. 모든 인적관계를 이 분류로 나눌 수는 없지만 큰 틀로 보면 대충 이렇게 나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시차가 있고 생활의 의무가 있다보니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는 내 마음의 크기가 어떻든 제대로 된 연락의 빈도는 아주 크게 낮아졌다. 결국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의 사람을 새롭게 사귀어야 한다.

해외생활을 시작한 초기에는 이런 관계 지형의 변화가 씁쓸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게 친밀함인가에 대해 내가 정의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관계의 변화가 내 거주지의 변동 때문이고, 그 와중에 각자가 많이 다른 길을 걷게 되서 낯설어진 이유도 있을 거다.

이제는 여기서 가까운 사람들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데 나이 들어 새롭게 마음에 맞는 친구 사귀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느리지만 차곡차곡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고 있다.

온라인에 올라온 질문에 간단한 답을 하고 전화로 대화를 간단히 나눈 뒤 전격으로 바로 만나게 된 사람이 있다. 아직 한번밖에 보지 않은 친구지만 네시간의 시간이 너무나 훌쩍 흘러갈 만큼 반갑고 유쾌한 만남이었다. 살아온 경로가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해보고 비슷한 사고의 변화를 경험해본 그녀와의 만남에 신선한 자극도 되고 앞으로 쌓아갈 인연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며 설레이기도 했다.

코트라 다니는 동안은 해외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는 걸 꽤나 꺼려했더랬다. 한국에서도 아무나 친구가 되는 게 아닌데 단지 해외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알게 되고 지나치다보면 괜한 말이 도는 일도 생기고 그닥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재원이라는 입장과 교민이나 유학생의 입장이 다르다 보니 서로 생활의 준거집단이 다르고 생활방식도 달라서 오해나 감정이 쌓이는 일이 생기기도 한 것 같다.

주재원의 틀을 벗고 나니 내 생각도 행동도 조금 더 자유로워졌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하다보니 관심사도 생각도 많이 바뀌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좋은 경험이 켜켜히 쌓이며, 한국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한국사람 모두와 교제할 생각도 없지만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멀리하는 것도 없어졌다.

덴마크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도 줄어들고 내 모국어가 아닌 말로 생활하는 게 더이상 불편하지 않고 덴마크 사람이나 다른 외국 친구와 한국인과는 또 다른 주제로 다양한 대화를 하는 게 매우 즐겁고 좋다. 그런데 나와 맞는 사람이라면 한국사람과 만나는 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사람과만 교제하며 사는 건 이제 답답할 것 같은데 그게 완전히 배제되는 것도 싫은 거다. 그래서 한국사람들과의 교제를 보다 능동적으로 찾게 되었나보다. 새로 만나 인사하고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때로는 피곤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처음에 만나 클릭하는 것 같은 느낌의 인연도 이런 시도 없이는 맺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이런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 주변에 생긴 관계의 틀이 만족스럽고 삶을 풍요롭고 내가 일상을 끌어나갈 힘을 내게 해 준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두살 반의 하나

7월 첫주부터 3주간 휴가 후 사무실로 돌아오니 사무실 반 이상이 비어있다. 필요하지만 급한 일에 치여 뒤로 밀려나 있던 일을 처리하기에 좋은 기간이다. 한국에서의 휴가를 생각해보면 휴가 가서도 이메일을 완전히 접어둘 수 없고 다녀오면 자잘한 메일이 엄청 쌓여 있고, 일의 처리 기한이 휴가와 상관없이정해져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이메일을 한번도 열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이메일에 뭐가 들어왔는지를 모를 때의 불안함을 해결하기 위해 간간히 메일을 확인했으니까.

3주라는 기간이 꽤 길어서 그런가? 휴가 전과 후의 하나가 부쩍 다르게 느껴진다. 두돌이 지난 이후로 이미 하루하루 다르다 생각했지만 하나는 세살로 향하는 길의 반에 거의 다다라서 그런지 요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게 느껴진다. 덴마크어로는 복잡한 문형도 구사하고 발음도 또렷하고, 우리 식으로 ”~하잖아”에 해당하는 뉘앙스를 주는 단어도 여기저기 넣어서 테스트해보고 놀랍울 따름이다. Hvad laver du, mor? (엄마, 뭐하세요?)를 자주 물어보고 그 답에 Hvorfor det? (왜요?)를 끊임없이 붙인다.

지난 주말 스웨덴 당일치기 여행을 갔을 때 하나와 잠시 통화를 했는데, 나보고 뭐하냐고 묻길래 커피 마시면서 루바브 케이크를 먹는다고 답을 했다. 그러자 왜 그러냐는 질문의 연속. 맛이 있어서 먹어요. – 왜요? – 여름의 신선한 맛이니까요. – 왜요? – 여름에만 나는 거니까요. – 왜요? – 다른 날씨에는 너무 추워서 못자라요. – 흐음… 다행히 이 질문 놀이는 여기서 끝났다. 아마 자기가 못알아 들으면 멈추는 거 같다.

그에 비해 한국어 발음은 외국인이 한국어하는 발음이다. 주세요를 주시요 라고 발음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이북 발음 같기도 하고. 이거 한국어로는 뭐예요? 하고 물어보면 한국어 단어를 이야기해주긴 하는데 애초 어휘력 차이도 있고 한국어 단어는 헷갈리는 것도 많은 것 같다.

하나는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여기는 한국보다 애들 몸을 덜 사리게 한다. 다치고 흉지고 그런 것도 큰 사고가 아닌 이상 더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기준에는 나이에 비해 조금 위험한 일들을 하게끔 놔둔다. 하나는 몸을 잘 쓰는 편이라 그렇다고 했지만 13개월 때 보육원에 하나를 데릴러 가면 혼자 미끄럼틀을 올라가 타고 내려오곤 했었다. 작은 언덕위에 언덕을 따라 미끄럼틀이 설치되어 있어 옆으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을 구조이긴 했지만 나름 1미터가 넘는 높이의 제대로 된 미끄럼틀이었다. 솔직히 엄청 놀랐고, 혹시 선생님들이 실수로 하나를 방치해둔 건가 싶었지만, 짐짓 놀라지 않은냥, ”하나가 혼자서도 미끄럼틀을 타네요!”라고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저렇게 앉아서도 타고 배로도 타고 엄청 오래 타고 놀고 미끄럼틀 좋아해요. 혼자 타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서 우리 시야 안에서 혼자 놀게 뒀어요.”라고 답을 하는데, 나에겐 사실 엄청 놀라운 일이었다. 두돌 반인 지금, 내 키가 넘는 미끄럼틀에혼자 잘 기어올라가고 (물론 떨어질 리스크라는 건 항상 존재하니 바로 옆에서 잡을 준비하고 대기하긴 하지만) 점프하고 뛰고 페달 없이 발로 미는 두발자전거도 거침없이 밀고 타기 시작했다.

퍼즐도 좋아하는데 벌써 30개짜리 복잡한 퍼즐도 진득하게 앉아서 하기도 한다.

그 밖에 가게놀이도 좋아하는데, 돈을 본 일이 없으니 돈 개념은 모르고 뭐 살거냐 묻고 달라하는 물건을 주는 척 하는 걸 반복한다. 그래서 그런지 물건마다 누가 사준 건지 묻고 기억하곤 한다. 이거 누구누구가 사준거예요? 엄마가 사준거예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시부모님이랑 시누이네가 사준 거, 나나 옌스가 사다준 게 대부분일 수밖에 없는 환경. 한국 가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이것 저것 재미있는 것 좀 사주셔야겠다. 그래야 그거 갖고 놀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자주 떠올릴테니.

요즘 하루에 한 두번 씩 애랑 씨름하는 일이 생긴다. 그런 일이 있고나면 동료와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하다보니 애 없는 부모들은 애 키우면 힘든 일만 있나 하는 생각을 할 만도 하다 싶다. 확실히 애 발달이 계단 오르듯 비선형적으로 점프한다 느껴지는 시기에 부쩍 더 씨름할 일이생기는것 같다. 보육원에 데려다주기 전 옷 갈아 입고, 양치질 하는 타이밍에서 그런 경우가 많고 (오전은 주로 옌스 담당) 보육원에서 데리고 집에 오는 길에 그런 경우가 또 많다 (이건 주로 내 담당). 한번 떼를 쓰면 정말 악을 쓰고 울고 땅에 드러눕는다. 얼굴에 실핏줄이 터져서 주근깨처럼 보이는 피멍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그 힘은 어디서 나온데?

다행히 이렇게 격하게 떼 쓰는 시기가 길지는 않은데 며칠 그러다 말고 또 며칠 그러다 말고 그런다. 세살을 정점으로 조금씩 좋아진다고 하다 다섯살 정도 대면 대부분의 아이가 이런 시기에 안녕을 고한다 하니 기다려봐야지. 매일 그렇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것 같다. 예전 하나 신생아 시절에 우리 아래층 앞집에서 애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울면서 현관 앞에서 버티면 그냥 엄마 혼자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는 일이 거의 매일 같이 있었는데, 지금 하나가 대충 그 시기인 것 같다. 그 아이는 좀 심한 편이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조금 그 엄마가 이해된다. 아마 싱글맘에 애가 둘이라 더 정신적으로 지쳐있었을 듯 하다.

이 밖에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순간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애가 제때 움직여주지 않아 스트레스 받는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하루에 한두번 정도 받는 걸 제외하면 애랑 보내는 순간은 참 좋다. 역시 지금도 생각은 첫 1년이, 그다음은 그 다음 1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힘 쓸 일이 줄어들고 애가 놀이의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애랑 있는 시간이 참 좋다.  그래서 이번 휴가가 조금 더 특별했었다.

세살이 되면 어떨까? 그리고 네살이 되면? 생각만 해도 설레고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