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변화.

올해 마흔이 된다. 한국 나이로야 이미 마흔이 되었다지만 그 방식으로 나이를 셈하지 않은 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여러가지로 내 일상에 변화가 느껴진다. 과거에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중요해지고 중요했던 것이 중요하지 않아진다. 더이상 외양을 치장하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화장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는 파티에 갈 때 조차도. 하이힐을 신지 않고 무거운 핸드백을 들지 않는다. 화장은 눈과 피부에, 하이힐은 발에 부담을 주니까. 자주 비가오는 날씨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투는 우천시에도 젖을 걱정이 없는 실용적인 것으로 고른다. 셀룰라이트라던가 다른 곳보다 살이 더 붙은 곳 등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신체부위에 대해서도 크게 불평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생일이라던가 남편과의 기념일이라던가  나에게 특별했던 날이 덜 특별하게 느껴지고 이를 기념하는 행위는 매우 의식적으로 해야만한다. 일상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게 무뎌진다.

이런 일련의 차이는 하나를 관찰하는 속에 더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새로운 목걸이, 팔찌, 치마, 원피스, 신발 등 새로운 물건에 감격을 하고 어른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어한다. 또는 또래 언니들을 보고 경외를 하며 그들이 하는 것들을 자기도 하고싶어한다. 생일은 너무나 행복한 거고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감격스럽거나 절망스럽게 느껴지는 등 사소한 일에도 온 몸을 던져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

나이에 맞게 변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그런게 좋은 때도 있겠지만 간혹 그런 걸 뒤집을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의식적인 노력.

작은 두려움의 연속

연봉협상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 센터 성과는 좋았고, 나도 내 담당 업무의 목표를 달성했다. 공무원은 크게 협상 여지가 많지 않다는데 얼마만큼 해야하는데 아직 감이 잘 서지 않는다. 덴마크어로 일하는 데서 오는 생산성 손실을 다른 경쟁력으로 얼마나 메우고 있는지도 불확실한 터라 더욱 그렇다.

매일 매일 작은 불안함을 갖고 지낸다.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큰 부담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전달하지 못할까봐서. 또 언어의 부족으로 인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의견의 강약 조절에 있어서 의도치 않게 실패를 할까봐서. 그래서 조직에 피해를 끼칠까봐. 그 결과로 타인의 시선과 단정적 평가를 받을까봐. 그래서 성과 협상은 더더욱 불안하다.

일년의 기간이 흘러 이제 나는 나대로의 위치가 정해졌고 업무 영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내 위치와 업무 영역은 크든 작든 변해가고 책임도 늘 것이다. 내가 적응을 한다 싶으면 또 변해가겠지.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는 게 두렵다.

사실 정 안되면 관두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될 것 같기도 하면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쩌면 한국어로 했어도 가졌을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런 두려움은 앞으로도 계속 원치않는 친구같이 데리고 나아가야할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왜 두려울까? 내가 가진 원래의 가치보다 낮게 보이는 게 두려운 걸까? 생각을 좀 해 볼 문제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있는 걸까? 실제보다 못나보일까 걱정하는 걸까? 좀 못나보이면 어떤가? 남이 어떻게 평가하는 게 왜 나에겐 그렇게 중요할까? 어려서 높은 기대 수준 속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게 지금도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는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고 달래가야 하나?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이 힘들다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이 불행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 좋고, 감사한데, 그냥 서서히 그런 두려움을 안고 가는 내가 이해가 안된다. 이해를 하려 하는 이 과정이 두려움을 맞이하는 길이 되겠지. 우선은 덴마크어 공부도 하고 업무도 열심히 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가면서… 올 한해 큰 모델 마무리 짓고 보고서고 발안하고, 입법안 초안도 내고 기타 운영업무도 하면 한 해가 흘러가 있겠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덴마크어 과외 편익 평가

덴마크어 과외를 시작한지도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간다. 이번주만 하면 한달이다. 한달에 85만원… 비싸다… 워낙 비싸기 때문에 길게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대충 여름휴가 전까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비쌈에도 옌스가 흔쾌히 과외를 하라고 한 이유는 기존 학원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반년간 들으면서 실력이 훌쩍 늘은 것을 자기도 목도했고, 지금 수준과 목적에 맞는 수업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이 시기에 내 PD3 분야별 점수가 평균 7점대에서 전분야 12점으로 올랐다.

과외는 일주일에 한시간 반. 내가 쓴 보고서를 봐가면서 첨삭하고 내가 자주 헷갈리는 문법의 예외적 부분 등을 검토하거나 문법적으로 내가 약한 부분을 점검하고 있다. 과외를 하고보니, 이정도 레벨에 다라서는 학생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에 맞도록 수업의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가장 큰 초점을 보고서 작성에 맞추고 있는데, 그 짧은 한달도 안되는 시간 사이에 보고서 작성이 훨씬 수월해졌다. 계속 나를 괴롭히던 소수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니 보고서 작성에 가속이 붙는다. 그리고 덴마크 공식문법사전에 수록된 문법과 예외 관련된 내용을 찾는 법을 배우고 나니 앞으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갈 방법의 실마리도 얻었다.

사실 상사도 내 보고서를 수정해주는데, 그게 실력향상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상사가 수정할 때는 내가 한국어로 보고서를 작성해도 상사가 보면서 고치 것처럼 조금 더 매끄럽거나 상사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맞추도록 문장을 이리저리 매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틀린 문법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 규정에 해당하는 부분들이었어서 ‘왜지?’하는 물음을 지울 수가 없기도 했다.

예전에 내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나는 정말 교육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 같다고. 다소 낭비같은 상황도 많을 정도로. 나를 너무나 잘 이해한 말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느낀 건 다소 낭비같았던 투자도 사실 큰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디 갖다 버리는 게 아니고 다 내 머리에 쌓이는 정보이니까. 비자타입의 문제로 남들 다 공짜로 배우는 덴마크어를 1년 반 동안이나 한달에 70만원씩 내가며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는데, 그 돈이야 말로 정말 훌륭한 투자였다. 그 때 덴마크어 기초를 닦지 않고 나도 공짜로 다니는 시기를 기다렸더라면 대학원 다니면서 취직 전까지의 수준으로 실력을 늘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 취직을 못했을 거다. 우리 전공이 주로 공기관에서 커리어를 찾게되는 것을 고려해보면 지금 다니는 직장 뿐 아니라 한동안 취업이 어려웠겠지.

과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너무 비싸다, 너무 큰 투자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편익을 따지지 않은 비용만 본 평가라 생각한다. 취업이라는 편익만으로도 이 투자는 빠른 시일내 회수가 가능한데다가 덴마크 생활에서 언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스트레스의 저감, 보육원이나 학교에서 아이의 발달상황에 대한 충분한 대화, 덴마크 사회 안으로 빠르게 동화될 수 있고 주변 현지인과의 관계가 여러 방면으로 깊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그 비용은 미미하다. 그렇게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도 감사하지만, 여유를 떠나 그 투자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건 옌스가 이런 부분을 깊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나와 옌스는 생각이 참 비슷하다.

누군가가 덴마크어 과외 하는 것 어떠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열심히 한다는 가정하에 나는 정말 강추하고 싶다.

2020년 소망사항

길디 길었던 크리스마스 신년 휴가가 끝나가고 있다. 내일 일요일만 지나면 직장에서의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게 된다.

2020년 한해를 맞아 내가 소망하는 일이 몇가지 있다. 목표나 계획이라기 보다는 그냥 소망하고 원하는 것이라고 해두고 싶다.

살을 조금 빼고 싶다. 외양적인 문제보다는 발레를 위해서. 약간의 무게 차이에도 발목과 골반 인근의 근육에 가해지는 하중이 꽤나 달라져서이다. 특히 다리를 들어 올리고 높이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조금 늘어난 1-2 킬로그램의 하중이 부담스럽다.

스크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책을 보는 시간을 늘이고 싶다. 올 하반기 들어서 웹툰을 보는 시간이 늘어서 스크린 사용시간이 많이 늘었다. 조금 더 선별적으로 볼 것만 보고 내려놓고 싶다.

덴마크어 실력을 한단계 올리고 싶다. 연말 마지막날 과거 학원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개인 교습을 받고 싶다고. 학원 강사일을 관두고 사이드로 운영하던 자신의 개인 교습 학원에 전업으로 뛰어든 선생님인데, 이 선생님과 함께하던 5개월 간 실력이 한층 뛰었던 기억으로 개인 교습을 잠시 받아본 적이 있다.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아 프로젝트 일을 하게 되며 시간상의 문제로 관두었는데, 그 이후 바로 취직이 되면서 개인 교습은 더이상 받지 못했었다. 이제 일을 일년 하고 보니 실력 향상에 정체기가 온 듯한 기분이다. 나도 동료들처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정체기. 더이상 내 단계에 맞는 학원이 없어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다지고 싶을 때 쉽지가 않다. 불어처럼 C2 레벨 강의나 시험이 없다. C1 레벨 수업도 매우 제한적이고. 그래서 개인교습을 다시 받아볼 예정이다. 한번 수업에 무조건 최소 한시간 반 (2 lektioner)를 해야 하고 1 lektion에 625kr.니 꽤나 비싸다. 그래도 지난번 수업 들을 때는 895kr.였는데 가격을 많이 내리셨다하니 큰 차이이다. 예전에 돈 내고 학원에서 15명 이상되는 클래스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 6주에 5500kr. 냈던 거 생각하면 개인 클래스에 저렴하다. 아무튼 주당 1회 수업을 들을 예정이다. 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에 하루만 2시부터 한시간 반 수업을 들으려는데 아마 99% 허락해주실 거라 생각한다. 주당 37시간 근무만 채우면 되고 내 일만 마무리하면 되니까. 그리고 업무 역량 향상에 내돈 들이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싶다.

발레를 조금 더 잘하게 되고 싶다. 이건 덴마크어와 마찬가지로 매년 소망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조금 더 새롭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작년 하반기동안 골반 중립과 코어근육 사용방법, 턴아웃 방법, 갈비뼈를 닫는다는 것의 의미, 풀업 등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임신과 출산으로 2-3년 정도 쉬기는 했지만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해오면서 이건가 저건가 끊임없이 고민해오던 이 문제가 올 하반기를 거치며 동시에 풀리기 시작했다. 운동해부학과 발레 관련 동영상과 글을 파고들며 실제 이를 적용한 연습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레티레 상태로 균형을 잡고 서있을 수 있는 요령이 몸에 익었다. 데벨로페 알라세꽁을 90도 이상으로 들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골반에서 소리가 나지 않고 아프지 않게 되었다. 한가지 문제가 아니었었기에 그간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없었던 거다. 이와 함께 턴도 한바퀴 이상을 돌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스포팅이 안좋아서 모멘텀을 금방 상실하긴 하지만. 발레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졌으니 이제 여러 동작들을 조금 더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고 새로운 동작들을 더 배우기에 기반이 다져졌다. 이젠 좀 더 예술적인 표현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싶다. 그리고 포인트슈즈 클래스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된다.

관계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에게 조금 더 따뜻한 엄마가, 옌스에게 더 상냥한 아내가 되고 싶다. 나의 예민함을 조금 더 잘 다스리고 싶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내려놓고 효율성 개선을 통해 중요한 일에 더 집중함으로서 중요하지 않은 일에서 발생하는 갈등요소를 줄이고 싶다. 크게 싸우는 일도 없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말투에 짜증이 섞이는 일은 종종 생기니 그게 싫다.

조금 더 계획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새해가 된다고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중간중간 계기가 있을 때 현황점검을 하고 소망사항을 들여다보는 것이 작년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내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이렇게 또 한번 소망사항을 적어내려가본다.

35개월 하나

얼마나 이쁘게 자랐는지 모르겠다. 이제 정말 대화같은 대화도 나누게 되고 하나의 참 살갑고 따뜻한 성격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덴마크어로는 세세한 뉘앙스를 담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늘어가고 요즘은 한국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나에게 뭔가 달라고 하는 건 한국어로 말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

뭔가를 가르쳐주면 금방 기억하는데, 어떤 규칙에 대한 것 중 사회성과 관련된 규칙을 특히 잘 기억한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된다, 우리집에 놀러온 사람은 내 것을 빌려 놀아도 된다, 남이 갖고 놀고 있던 것을 뺐으면 안된다, 누가 때리면 맞때리는 게 아니라 멈추라고 이야기하고 어른을 불러서 중재를 시켜라, 자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해야하고, 조용히 해야하는 상황임을 어른이 알려주면 조용히 해야한다 같은 것 말이다.

하나 성격이 이렇다보니 자기 것을 잘 안나누려는 아이와도 크게 다투는 법 없이 잘 노는 편이고, 상대가 때려도 상대가 사과를 하면 기꺼이 먼저 가서 안아주려거나, 아니면 상대가 사과 하기 전에도 사과를 기다리며 다가가서 화해를 준비한다. 옆에서 보고 있다보면 나랑 달리 참 따뜻하고 살가운 아이구나 싶다.

힘이 넘쳐서 여기저기 많이 뛰어다니고 하지만 어디 데리고 다니기에 부산하지 않고, 외출해서 앉아서 밥을 먹거나 기차를 타고 다님에 있어서도 큰 어려움이 없다.

사교적인 성격이고 타인에 대한 신뢰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어서 낯선 사람과도 눈을 마주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상대 이름도 묻고, 이런 저런 자기 이야기도 늘어놓는다. 때로는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한다. 참 매력적인 아이라는 생각이다.

기질이라는 게 참 큰 것 같다. 주변 환경과 부모의 육아, 보육원에서의 보육환경 등 여러가지 환경적 요소의 영향도 있겠지만, 제일 큰 건 하나가 타고 난 기질인 것 같다. 그 기질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몫이겠지.

얼마전 영화관 가서 한시간 반동안 조용히 잘 앉아서 관람도 하고 오늘도 한시간 반에 달하는 왕립극장 관람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귓속말로 속닥속닥 하며 잘 버텨줬다. 미로같은 왕립극장의 긴 거리를 잘 걸어주었고 여기저기 환경이 따라주는 연습실에서는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매달리고 춤추고 힘을 발산하면서도 부산하거나 시끄럽지 않게 잘 따라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에 시댁 친척까지 모인 모임에 가서도 행동이 얼마나 유쾌하던지, 가족들이 말도 너무 잘하고 성격이 밝고, 식탁 예절도 바르고, 귀엽다고 칭찬이 어찌나 많던지.

올해 크리스마스며 새해 맞이까지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다. 이제 한달 후면 하나의 세돌 생일이 되는데 그때가 되면 또 달라지겠지. 한달 한달이 다르니까.

내 사랑 하나. 널 세상에 낳아 엄마는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하구나. 내 세상이 180도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하나. 사랑해.

내 모자를 가져다 쓴 하나. 패션 센스하며 참 훌륭하네. 🙂

Rundvisning på Gamle Scene

왕립극장 중 발레공연을 주로 하는 Gamle Scene의 투어를 돌고 왔다. 연말을 마무리하는 이벤트로 계획을 해봤는데 한시간 반에 달하는 오래된 건물 투어에 하나가 매우 순조롭게 협조해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10대 소년 한명 외에는 이렇게 어린 애가 없었는데, 다행히 떠들지 않고 뛰어다니며 시간을 잘 보내주었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내가 왕립극장에서 취미발레수업을 들어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강추. 남편도 즐겁게 보고 왔고, 하나도 무대와 연습홀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춤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덴마크에 사는 사람이라면 강추. 연말 마지막날이라 극장에 공연도 없고 우리밖에 없어서 평소에는 잘 안해준다는 무대 방화벽 올리기도 해주도 좋았다. 그리고 여왕의 대기실과 여왕이 앉는 좌석도 보고 역사속 그 장소의 이야기도 듣고. 의상이 만들어지는 장소를 보는 것도 즐거웠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춤을 추는 B 연습실과 공연무대가 어떻게 연결되는 지도 알게 되었고 그걸 옌스에게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고.

연말 좋은 이벤트였다.

발레 포인트슈즈로 만든 거대 크리스마스 트리
발콘좌석 앞 리셉션 장소에서
공연 무대 위에서 무대를 향한 방화벽을 열고
공연에 쓰일 옷의 색상을 무대 조명 아래서 직접 테스트하는 용도란다. 무대위에 서있었다.
무대에서 뛰어다니는 하나
무대에 쓰일 배경장막을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이렇게 긴 건 처음본다.
연습실로 가는 길목
연습실에서 엄청 뛰어다니는 하나
발레바를 보면 당연히 매달려야지.
여성무대의상 의살실
무대의상 제작 스케치
하나랑 의상실에서 한 컷
의상 컨셉 스케치 콜라주
과거 무대의상

만으로도 마흔이 될 새해를 앞두고

해외에서 살면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피할 수 없다. 한국에 있었어도 피할 수 없었겠지만 고민의 차원이 추가된다고 할까. 이 고민이란 게 덩어리가 큰 고민은 아니지만 언뜻언뜻 스치듯이 마음에 자잘한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아마 이 자잘한 고민 자체가 사실은 내가 덜 여물어서인 것 같다. 이제 좀 인간관계 뿐 아니라 인생을 한차례 정리해야 하는 모양이다.

12월 마무리를 보름도 남기지 않은 이 시점. 내년이면 만으로도 마흔이 된다. 나이에 얽메이는 것도 우습지만 옛 성현인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이제 나는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의 나이에 달한 것이니 한번쯤 지금의 내 모습을 뒤돌아보는 것도 중요할 듯 하다. 안그래도 얼마전 거울을 보면서 이제 내 얼굴에 나이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재미가 없는 인간관계는 이제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싶다. 어쩌면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다. 만나서 즐거운 사람들만 곁에 둬도 아까울 시간이다. 특정 그룹에 가까운 사람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경우 그룹으로 만나는 건 정리하고, 관계의 즐거움이 사그라들었지만 습관처럼 남아있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정리해야겠다. 가까움의 정의라는 것도 상대적이긴 하지만 과거 가까웠던 사람을 정리하는 것은 왠지 마음 속 부채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사실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기에 나 혼자 잡고 있던 마음속 끈을 놓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부채감, 죄책감 이 또한 나 스스로 혼자 갖고 있는 허상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라는 걸 그래서 느낀다. 그리고 그런 가정을 꾸릴 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란 게 한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같이 가꿔나가고 키우도록 노력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느낀다.

옌스와 하나, 내 가족, 결혼으로 연결된 가족, 그리고 가까운 내 친구. 그 외엔 천천히 정리를 해야겠다. 내 마음속의 정리. 그리고 중요한 건 더 가꿔가야지. 그리고 나만의 시간을 다시 찾아야될 것 같다. 나를 성장시킬 시간.

배움의 즐거움

부모님이 나에게 어려서부터 익히 말씀하신 건, 부모님으로서 주고 싶은 건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연배가 드심에 따라 이것 저것 주고 싶은 마음과, 주고 싶은 만큼 주지 못하심으로 인해 생각이 다소 변하신 바도 있겠지만, 나의 성장기동안에는 항상 그를 주지시키셨다. 그리고 나에게 여러 종류의 배움의 기회를 주셔서 그 과정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배움에 대한 다소의 강박이 생겼긴 했지만, 그건 내 성격 탓이고. 

내가 하나에게 주고 싶은 것을 꼽자면 바로 그 배움의 즐거움이다. 배움에는 시기가 없고 배움의 종류에도 제한이 없다는 것도 함께. 

테니스와 배드민턴, 탁구 등 부모님과 함께 했던, 또는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던 (전혀 진지하지 않게 취미/가족 스포츠로서) 운동에서 운동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던 피아노에서 (한때는 속으로 몰래 싫어하면서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참 긴 시간)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사실 발레를 좋아하게 된 건 이런 것들이 다 결합된 취향일 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정교한 몸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발레라는 예술이자 운동이 나에게 얼마나 큰 배움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끊임없는 노력, 미미하지만 끊임없는 발견과 발전, 나의 한계에 대한 인지,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넓히려는 또 다른 노력, 내 몸의 구조와 근육에 대한 이해. 내가 몸담고 있지 않은 예술 직종에 대한 간접적 노출과 이해 등… 

이에 더불어 부모님의 도움으로 일찍부터 시작한 영어나 중국어 학습을 통해 내가 언어에 평균보다 좋은 감각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언어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었다. 그로 인해 찔끔찔끔 공부한 여러 유럽언어들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지금 덴마크어를 공부함에도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고. 앞으로 덴마크어가 영어보다 더 유창한 언어가 되는 시점에는 또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자 하지 않을까 싶다. 배움이 주는 즐거움을 아니까. (물론 이게 인스턴트한 즐거움이 아니다보니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게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 배움은 평생을 이어가도 닿을 수 없는, 영원이 풀어가야할 숙제임도 알고 있다. 이 또한 즐겁다는 것도.

하나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바로 이러한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그리 해주셨듯이. 남들보다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어제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연습밖에 없다는 것. 배워봐야 좋고 싫음도 알 수 있다는 것을. 작은 실패와 성공이 자기에게 어떻게 힘이 되는 지를. 얼마나 내가 이걸 잘 알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뭘 알려주고 싶은지 아는 것만으로도 좋은 출발이라 생각해본다.

음악에서 찾는 일상의 행복

일하면서 스포티파이에서 만들어준 내가 자주 듣는 클래식음악 리스트를 듣는데 어찌나 내 취향에 쏙 맞는지. 물론 자주 들은 것에서 뽑은 거니까 잘 맞는 것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잘 맞는 것들을 추린 것이 놀랍다.

내가 좋아하는 드뷔시 곡과 푸치니 곡이 최근에 내가 본 발레, 동백아가씨와 브릭슨에서 연주되었는데, 그 곡들을 듣는 순간 (특히 드뷔시 곡들!) 발레에서 본 장면과 안무가 떠올랐다. 작지만 행복한 추억의 순간!

차별과 편견 사이에서

인종, 성별, 종교, 성적지향 등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차별과 편견에 대한 토론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성별이나 인종과 관련한 편견을 넘어서 사실에 대한 표현을 포함해 이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토론이 꾸준히 이뤄진다. 스웨덴은 그와 그녀라는 인칭대명사가 누군가에게는 부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다 해서 성중립적인 인칭대명사를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에 해당하는 단어인 율(jul)이 붙은 크리스마스빵, 크리스마스소세지, 이런 것도 비기독교인을 소외시키는 표현이 될 수 있다 해서 겨울로 단어를 바꾸는 일도 생기고, 그 또한 부적절하다면서 논쟁이 붙기도 하고 있다. 

덴마크식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에 대한 고민은 때로는 너무 멀리간 것 같다 생각한다. 옛날 노래에 쓰인 당시에 생각없이 쓰이던 인종차별적인 표현이 쓰인 노래를 새로운 개정판에서 아예 빼버린다는 사례가 있었다. 또 학교노래책에 나온 “덴마크 소녀는 금발머리 소녀”라는 표현이 금발머리가 아닌, 이민자나 이민자의 후손인 사람들을 소외시켰다 하여 해당 노래를 부르지 않게 하겠다는 어느 대학교의 발표 사례도 있었고. 또한 공공장소에 가족 구역을 표시하는 표시도안을 두고 남녀로 구성된 부모와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아이가 성적인 편견을 고착화시킨다며 문제시되는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대학교에서는 학생이 법적 이름을 쓰는 것을 꺼릴 수 있으니 교수에게 수업 시작 전, 그런 예민한 사안에 대해 학생들과 미리 교감해서 실수하지 않게 하라거나, 여학생이나 남학생 표현을 써서 성별로 구분을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나왔음이 알려지기도 했다. 옛날 노래에 나온 인종차별적인 표현은 잘못된 과거의 표현의 과오를 돌아보는 사례로 쓸 수도 있는데 무조건 덮는 것 같기도 하고, 차이에 대한 인식이 차별로 이어질까 두려워 미리 그런 기회조차 막으려는 게 나에겐 과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나뿐 아니라 이에 대해서는 양론으로 갈리는 듯 하다.  

그러나 이는 사회 전체적 차원의 고민이고 개인적 수준에서는 이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상반된 상황을 간간히 접할 수 있다.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아시아에 대한 무지 등으로 인해 빈정상하는 상황 말이다. 덴마크인의 냉소적인 농담은 자기 비하를 담는 경우도 많고 농담일 경우 우리 모두는 동등하게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평등의식하에 조롱성 농담의 대상에 성역이 없어서 정치인, 종교적 지도자 등 할 것 없이 다 조롱성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농담에 성역이 없다는 의식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농담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예를 들어 백인이 기독교인에 대한 조롱성 농담을 하는 것처럼 특권을 가진 사람이나 평소 편견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자기에 대해서 아니면 비슷한 상황의 사람에 대해 조롱성 농담을 할 경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백인이 무슬림에 대한 조롱성 농담을 하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에 대우상 차별을 받거나 놀림을 당한다거나 하는 두드러지는 차별적 상황이 있다. 이처럼 편견과 차별이 다 얽혀있는 경우 상황이 명료하다. 하지만 애매한 경우도 종종 생긴다. 아시아인이라고 무조건 중국어로 인사를 한다거나,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인사를 한다거나, 아시아인은 이렇지? 라며 어디서 유래한 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거나. 국제커플이 가입한 카페에 근근히 올라오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듣기도 하는 기분 나쁜 상황들. 이게 기분나쁠 일인지, 아닌지, 짜증이 약간 나는데 현지 서양인 지인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싶어 물어봤을 때 그들이 그냥 친밀감의 표현이라 넘기면 팔은 안으로 굽는건가, 아니면 내가 예민한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오랜시간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편견은 편견이고 차별과 구분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차별과 편견을 혼용해서 쓰면 논점이 흐려지고 토론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일이 생길 것이고, 실제 이런 일은 왕왕 벌어진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편견에 부딪히게 되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편견은 좋지 않은 것이고 바꿔갈 노력이 필요하지만 편견 자체가 차별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편견 자체는 사람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를 바꾸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지만 차별은 시정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채널이 존재할 수 있다는 데에서 차이를 갖는다.

내가 아시아인이라 아시안누들과 간장소스, 밥 등을 좋아할 거라 상대가 믿는 건 편견이다. 내가 아시아여자라 순종적일 거라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내가 아시아인이니까 수학을 잘할 거라 믿는 것도, 영어를 못할 거라 믿는 것도 편견이다. 여자는 밥을 잘할 거라 믿는 것도 편견이다. 여자는 히스테리컬하다고 믿는 것도 편견이다. 아시아 여자는 여성스럽고 작고 내 말 잘 듣고 착할 것 같아서 아시아 여자만 좋다는 것 (소위 옐로우 피버)도 편견이다. 

하지만 이건 차별이 아니다. 차별은 일련의 편견으로 인해 남들과 달리 나에게 어떤 권리나 기회가 배제되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내가 아시아인이라 영어를 못할 것이라 믿어 서류 검토도 안하고 이력서를 옆으로 재껴두는 것, 아니면 자기가 만난 아시아 부인에게 상대가 서양인이었으면 요구하지 않았을 부당한 것을 당연히 요구하고 이에 불응시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물론 차별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편견을 가질 때 문제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적으로 편견이 널리 퍼져있을 경우, 그게 차별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편견을 깨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편견을 가진 모든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게 그 사람이 받은 교육의 수준일 수 있고, 주변 상황에서 오는 한계 때문일 수 있다. 시골에서 살면서 딱 한번 외국인을 만나보고 그 외에 보고 들을 일이 없었으며, 일반화의 오류 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한명의 외국인에게서 가진 편견을 다른 외국인에게 적용한다 하면, 그걸 교육받지 못한 당신 탓이고 나쁘다,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는 거다.

외국살이하면 편견을 겪을 일도 종종 있고 굳이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편견이 넘치는 사회라 이를 경험할 일이 많은데 이 편견 모두를 차별이다 라고 외치는 것도 잘못이라 생각한다. 편견에서 상처를 받는 건 사실 어찌보면 내 선택이다. 편견을 편견으로 치부하고 남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왈가왈부하지 않겠다고 하고 갈 수 있는 일을 자기가 상처받겠다고 선택한 거란 이야기다. 편견을 해소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물론 더 좋지만, 그 편견에 차별이라 외치며 혼자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

상처받거나 싸우는 건 차별에 초점을 맞추자. 나와 남의 권리가 편견으로 인해 제한되었을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