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인

오늘 잠시 보다만 다큐멘터리에서 롱디를 해 절절한 젊은 커플 이야기가 나왔다. 시작하지 오래 되지 않아 롱디를 시작한 이 커플의 재회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애닲았던 적이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롱디라고 해봐야 연애한지 1년되던 때 쯤에 내 한국 방문 4주, 얼마전 연초에 하나와 한국 방문 3주, 이게 전부였어서 그랬는지, 저렇게 절절한 적은 없었다. 연애 초기에 옌스가 손만 잡아도 떨리고,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녹는 것 같던 시기도 있었지만, 같이 산지 6년에 애가 네살이 넘은 지금은 그런 애닲은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도 옌스가 간간히 다가와 나를 잡아 당기며 그 큰 몸에 푹 덮이게 꼭 안아 내 머리 위에 턱을 얹고 있으면 그 따뜻함에서 사랑을 느낀다.

요즘 그런데 내가 조금 건조했던 것 같다. 이사도 해야하고 준비할 것도 많고 등등 하다보니 옌스에게 많이 신경을 못 쓴 것 같다. 저 포근함을 느낀 횟수가 적었던 것으로 보아 내가 다가갔던 순간들이 적었던 것도 같고. 요즘 옌스가 어깨죽지에 담이 와서 건드리면 아파하니까 안아주거나 쓰다듬어주는 것 조차도 신경쓰이기도 했고. 오래된 연인이 된 건가? 이렇게 관심을 덜 두고 있었다니.

이사하고 정리하면 더 챙겨줘야지… 라는 것 말고 지금도 틈을 내서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히 다뤄야지… 가까이 있다고 당연시 하면 안된다. 가까울 수록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관심 갖고 지켜봐줘야 더 가까워지니까. 오늘 딸기라도 좀 챙겨줘야지. 내 몸 힘들다고 쉬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

내 몸 사용법 이해하기

지난번 한국 방문 때 발레 개인레슨을 받았었다. 춤의 숨이라는 뜻의 릴 드 당스라는 발레스튜디오에서.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lilededanse) 방배동에 있는 이 곳에 가기 위해 홍천에서 2주간의 자가 격리가 끝난 후 바쁜 짬을 내어 두 번의 레슨을 받았다. 세번 받고자 계획을 했으나 내가 지낸 기간 중 몇차례 있던 폭설이 이 중 하루와 겹쳐 한번은 아쉽게도 취소했다. 이 수업 시간 중 크게 춤을 추지는 못했으나 애초에 이 시간은 안무와 동작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몇가지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할애한 것이기에 목적은 완전히 달성했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었던 김유경 선생님. 내 발가락과 발, 허벅지, 엉덩이, 골반 등을 자세히 관찰하고 이래저래 조물조물 만지고 밀고 당기시며 문제를 파악하고 내가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해주셨다. 발레를 하다가 뭔가에서 정체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생길 경우 꼭 상담을 받아보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아무런 금전적 대가 없이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추천한다.)

내 문제는 발가락. 그리고 발의 무게중심, 골반중립이었다. 알고보니 나는 셋째부터 다섯째 발가락은 거의 쓰고 있지 않았다. 발바닥과 엄지, 둘째 발가락만 쓰고 있었던 거다. 발가락 사용과 발의 무게 중심 문제는 연관된 문제였다. 약간의 척추 측만에서 오는 오른쪽 갈비뼈 열림 현상은 이미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던 바이지만, 다시한번 확인했고. 이 것 또한 발가락 사용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발가락 세 개가 문제의 원인이었다니! 골반 중립도 어찌보면 이와 연결되어 있던 게, 발가락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중둔근 사용이 잘 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있는 다리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니 그 중둔근도 워킹다리의 중둔근도 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던 거다. 그걸 골반 앞쪽의 힘으로 뒤로 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걸 교정함으로서 다리를 알라쎄꽁으로 들어올릴 때 잘못된 근육으로 들어올려 야기되던 고질적 골반인근 인대의 통증 문제를 제거할 수 있었다. 또한 다리를 옆으로 90도 이상 들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를르베와 파세도 안정적이 되었다. 또한 무게 중심 이동이 쉬워지면서 춤의 안무간 이동이 안정적이 되었다. 또한 쁘띠 알레그로 센터를 할 때 선생님의 통통 튀는 느낌이 나에게서 안느껴지던 문제도 해결되었다.

수업을 할 때 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의문점을 구체화해낼 수 있다면 그 수업의 핵심 레슨을 수업이 끝나고서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다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개인 레슨이 다소 비싸다 하더라도 나는 가치가 있다 믿는다.

마흔이 된 지금, 나는 그 어떤 시절의 나보다도 균형잡힌 몸을 갖게 되었다. 출산으로 배의 피부가 탄력을 다소 잃은 것은 어쩔 수 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앉으면 배의 피부는 출산 전에는 본 적 없던 미세한 주름을 보인다. 그래도 내 몸에 붙은 근육들이 과거의 어떤 때보다 균형잡힌 형태로 고루 쓰이고 발달했으며, 이는 전신에 해당한다. 이번엔 발가락까지. 목은 길어지고 턱 아래 둥글게 붙어가던 턱살도 없어지고, 어깨는 내려갔으며, 배와 등판 모두에 근육이 고루 붙었다. 두껍다 생각했던 팔뚝 상부는 어깨가 말려 생겼던 현상인데, 이를 잘 펴 앞뒤로 평평하게 만들고 나니 나의 짧은 팔뚝도 두꺼워보이지 않고 그 전보다 덜 짧게 보인다. 이와 함께 항상 달고 살 던 뒷목의 뻣뻣함은 다 사라졌다. 짧아보였던 다리는 길이가 달라지지 않았지만, 골반의 후방경사를 교정하고 중립골반을 찾으면서 다리도 길어보이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 길이를 찾은 거라고 해야하나. 그와 함께 임신 후기와 출산 이후 심각하진 않아도 잘 해결되지 않던 치질문제, 요실금 문제도 해결되었다. 하체 비만으로서 위아래 옷이 항상 두사이즈 차이가 나서 아무리 체중이 적게 나가도 하의는 상의보다 한두치수 크게 입어야 하고, 다리의 체형이 두드러지는 바지를 피해 주로 치마만 입었던 일도 다 졸업했다. 이제 위아래 옷의 사이즈가 일치하고 말이다.

발레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이 아니다. 발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다리를 들어올릴 때 몸 뒷편의 근육을 잘 쓰지 못해 골반 앞쪽 인대에 부담을 줘 왔던 것처럼 무슨 운동을 해도 잘못된 몸의 사용은 부상으로 연결된다.어떤 운동을 하든 그게 내 몸의 균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주 젊을 때만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예전에 몸짱아줌마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을 때 그녀가 사십대였던 것처럼 나도 지금 마흔이고, 나는 앞으로도 내 몸을 끊임없이 튜닝할 수 있다 믿는다. 완벽한 몸의 모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몸을 건강하게 사용하기 위한 형태로 단련하고 잘못된 사용법을 교정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변화는 지난 십년의 시간동안 천천히 일어난 변화이니 말이다. 하나를 고치면 새로운 문제나 부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이를 또 고치고 다른 것을 고치다보면 내 몸의 구석구석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그러다보면 전반적인 균형이 좋아지게 되고 내 몸 사용법을 새로이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구부정한 자세나 여러 문제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장기적 관점에서 이를 관리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애티튜드 드 방

큘로데스타이

Cullotesteg(큘로데스타이)는 우둔스테이크 정도가 되는 음식일 거다. 지방질 부위를 정방형 모양으로 살이 드러나기 직전까지의 깊이로 해서 그물처럼 칼집을 내주고 그릴판에 올려 그 그릴판을 물을 부은 깊은 오븐팬 위에 얹어 오븐에서 굽는 요리이다. 지방질에 후추와 소금으로 잘 마사지를 해주고 물이 고기에 닿지 않게 해서 굽는데, 처음엔 230도의 고온에서 15분 굽고, 고기의 중심온도가 56도까지 될때까지 180도에서 (고기 사이즈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충) 20-30분 구워주는 게 전부이다. 처음 고온에서 구울 때 지방이 바삭하게 익고, 남은 시간동안 안이 고르게 익는다. 수분은 놀랍게도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게 굽는데 전반적인 역할을 한다고 한다. (속 촉촉은 이해가 가는데, 겉이 바삭하게 되는 원리는 찾아보기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고 있다.) 오븐에서 꺼낸 고기는 그릇에 옮겨 담아서 호일로 덮어 휴지를 시켜주는데, 이때 계속 고기가 익기 때문에 오븐에서 레어 온도까지 다 익히고 나면 나중에 휴지 이후에 잘랐을 때 고기가 생각보다 푹 익어 있게 된다.

시댁에 가면 꼭 한 번은 먹게 되는 요리인데, 고기 판매 자체가 아무리 작아도 800그램 단위로 팔아서 세식구 메뉴로는 생각하기 어려워 직접 해볼 일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이틀에 한번만 저녁 요리를 하고, 다음 날에는 전날 음식을 데워먹는 것으로 하면서 과감히 이 부위를 사 요리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너무나 맛있고, 고기도 부드러워서 완전 마음에 들었다. 시부모님은 조금 더 고기를 익히셔서 내 기준엔 조금만 덜 익히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면, 내가 하니까 내 취향에 맞게 레어에 가까운 미디움레어로 구울 수 있어서 좋았다.

오븐에서 조리하니까 기름이 튀는 것이 적고 냄새가 진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가 포인트! 그리고 팬에 하게 되면 주로 굽는 부위들이 – 예를 들어 등심 – 가격에 품질의 영향을 제법 받아서 질기고 아니고가 내가 얼마나 돈을 지불했느냐 아니냐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 부위는 그런 차이가 크지 않아서 좋더라. 또 팬에 브라우닝을 하지 않아도 되니 설거지 부담도 덜고. 비슷하게 조리하는 오븐구이 중에서도 로스트비프처럼 겉을 별도로 팬에서 브라우닝 해주라는게 제법 있는데 말이다.

오늘 다만 뭐가 좀 씌었는지, 희석해서 쓰는 육수(fond)를 희석하지 않고 계량해서 넣는 바람에 엄청 짜져서 와인 넣고 한참 끓인 와인과 발사믹식초 등 와인소스 베이스를 거의 다 버리고, 조금 남은 것에 우유랑 분말 제형으로 된 브라운 소스를 넣어서 소스를 만들었다. 너무 아까운 것. – -; 와인 소스였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 뿐 아니라 온도계를 고기에 잘못 꼽아서 온도가 상식과 어긋나게 빠르게 올라가고 있음을 발견하고 실수를 정정하는데, 230도 오븐안에서 20분 가량 달궈진 온도계를 맨손가락으로 잡아서 당기다가 손을 데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름 뜨거울까봐 엄지와 검지만 이용해서 가볍게 당겨보려했다는 사실이 더욱 우습다. 기름처럼 들러붙어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바로 손을 떼면서 화상의 정도는 심각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손가락이라 화상이 덜했다. 마르고 거칠어진 손가락이라.)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고 볼만한 사고였다. 여기서 사고는 정말 황당하게 발생한다는 교훈을 다시한번 얻고, 아이를 키울 때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전 발목을 살짝 삐는 사고도 그렇고, 소소한 사고가 잇따르는데,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큘로데가 덴마크어 설명으로 읽었을 때는 대충 엉덩이 부분이던데, 우리말로는 무슨 부위인가 해서 찾아봤더니 우둔이었다. 어째 질기지 않다 했더니 원래 부드럽고 연한 부위란다. 장조림은 연하지 않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물에 넣어 푹 익힌 고기가 그 정도면 부드러운 거지.. 하는 생각에 닿았다. 부드러운 부위였구나. 앞으로 육회나 산적 등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거에 쓰는 부위라 한.

요즘 먹어보기만 하고 직접 해보지 않던 덴마크 요리에 도전해보고 있는데, 그를 통해 우리 음식의 재료에 대해서도 다시 알게 되고, 앞으로 더 열심히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위 명칭이 우리 말로 뭐인지 몰라서 (찾아보면 또 알수 있겠지만, 또 귀찮아서 안찾아보는 성정이라..) 사지를 않다보면 앞으로도 계속 제약이 많겠다 싶어서 이것저것 해봐야겠다 싶다. 이제 큘로데스타이는 한국친구 초대 메뉴중 하나로 등록!

아래 링크는 내가 시도해보고 완전 마음에 들었던 레시피! 강추!

올해 봄은 좀 늦는구나

온도가 많이 낮았던 겨울. 습하지 않고 바람도 최근 2-3년보다 덜 부는 덕에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추운듯이 느껴진 겨울이었다. 하지만 봄이 오는 시기도 덕분에 많이 밀린 것 같다. 온도의 관점에서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긴 한데 식물들이 개화하는 시기가 한달 가까이 뒤로 밀린 것 같다. 일조량과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 대화가 겨우 내내 많이 추웠어서 그런 것 같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던 5시 45분 경, 아직도 해가 떨어니려면 한참 남은 것 같길래 곰감히 생각해보니 이제 하지까지 두달 반 남은 게 기억났다. 그런데 오늘은 우박에 눈이 세찬 바람과 함께 떨어져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다니… 참 변화무쌍하다. 금새 또 해가 나서 저녁엔 다 말랐으니 더욱 변화무쌍하다. 덴마크 사람들 화제에 그래서 날씨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덴마크의 봄은 공식적으론 3월부터이지만 옌스는 항상 봄은 4월부터라 한다. 그리고 눈이 4월에 오는 건 아주 놀랄 일이 아니라고. 나도 지난 거진 8년간 4월에 눈 오는 걸 수차례 봤으니 이젠 정말 놀랍지도 않다.

부활절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아주 이상하고 변화무쌍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이번 부활절 휴가도 역시나 좋은 휴가였다. 하나 업고 걷다가 넘어지면서 하나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가 발목 살짝 빼고 무릎 타박상을 입었는데, 그것도 크게 심하지 않았고.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산책로 경계길은 잔디와 아스팔트 간 높이차를 잘 감안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로이 환기시키는 경험도 했으니 앞으로 큰 사고 안나게 조심해야지. 발목도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심하지 않은 덕에 회복도 빠른 모양이다.

새로 이사하면 하나에게 약속한대로 꽃도 좀 심고 작물도 조그마하게나마 키워야지. 여름은 언제 오려나. 겨울과 달리 여름은 적당하게 덥고 비와 해가 적당하게 섞인 그런 여름이었으면 좋겠다.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눈 오는 4월 6일
온도는 10도가 안되었지만 해가 쨍해서 크게 춥지않았던 4월 4일

내 전용 전기차 구입. 또 다른 현대차

차를 샀다. 우리의 첫 차는 옌스차로, 이 차는 내 차로 하기로 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전 정권에서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의 대대적 지방이전을 했는데, 내가 일자리를 구한 곳도 그 중 하나이다. 별장지역 중 하나인 Frederiksværk이라는 셸란 섬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도시인데, 옌스네 카약클럽 별장이 그 바로 옆 Hundested이라는 곳에 있어서 몇번 차로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었다. 지금 사는 곳에서는 편도 45분 거리. 제법 먼 거다. 고속도로로 대부분을 달리는데 45분 걸리는 거니까. 다행히 앞으로 이사갈 곳에서는 편도 30분. 전직장이랑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차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단점. 코로나 이전에는 주1회 재택근무가 보장되었고, 집에 뭔가 수리하거나 해야 해서 집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경우는 재택근무가 가능했는데 (필요시 재택근무는 일반적 문화) 코로나 이후 주당 재택근무일수가 혹여 늘어난다 하더라도 차는 꼭 필요한거다.

결국 차를 한 대 더 사기로 했다. 역시나 전기차를 사기로 했는데, 전기차는 좀 비싸다는 것이 흠. 따라서 중고차를 사기로 했다. 시작은 르노의 조이를 사려고 했는데, 몰아보니 예상보다 별로라서 현대 Ioniq을 사기로 했다.

처음 들렀던 중고차 매장은 정말이지 야매같은 느낌? 내가 차를 시승해보는데 서류도 없이 몰아보게 하고, 전기차와 관련된 질문을 해도 영 딴소리하고 잘 모르더라. 같은 모델이지만 주행거리가 다른 옆 차도 한번 몰아봐도 되냐 해서 그 사람이 차를 밖으로 빼준다고 했다. 그러고나서 내가 분명히 봤는데, 전원은 켜지는데 시동이 안걸리는 상태였다. 몇번 꼼지락 거리더니 나와서 배터리가 바닥이라고 하는거다. 시동 켜지는 거 봤는데, 무슨 소리냐, 70킬로미터 이상 남았던데, 라고 물어봤더니 그제사 실토한다. 시동이 제대로 안걸린다고. 아… 신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원래 내일 보러가기로 했던 중고차 매장에 들러보라고 옌스가 제안을 해서 그리했다. 딱 봐도 오래된 자동차업체. 중고자동차 업력 25년에 해당 주소에서 20년 매장을 운영했고, 사업자 등록번호 바뀐 바 없이 계속 운영했다는 건, 부도 경험이 없는 안정적인 기업이라는 것. 원했던 차가 좀 상태가 안좋아서 예산과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더니 현대 아이오닉을 보여줬다. 몰고 보니 마음에 드는 것. 지금 우리차인 코나보다는 주행거리가 조금 더 짧지만, 주행내부인터페이스도 같고, 상태도 너무 깨끗하니 마음에 들더라.

옌스가 차값의 80%를 무이자로 빌려주겠다 했다. 월급으로 할부로 사려고 했더니, 금융비용 내지 말고, 자기에게 내라면서. 아니! 무조건 땡큐지요. 차 한대로 버텨보려는 옌스에게 차를 사자고 계속 꼬셨더니, 세컨카에 새차를 너무 낭비라며 중고 사면 자기가 무이자로 대준다는 거다. 열심히 직장생활 해서 차값 갚아야겠다.

나도 큰 의사결정 빨리하고 불도저같이 미는 사람이지만, 옌스도 의사결정 참 빨리하는 사람이다. 현대차를 아껴주는 옌스 덕에 해외서도 한국차 열심히 타는 우리. 옌스의 이러한 한국사랑에 도움을 주고자, 나도 한국어를 더 열심히 써야겠다.

시원 섭섭 달콤 씁쓸 후련 : 이상한 날.

2개월 단기로 일하려던 곳에서 계약 기간의 반의 반절도 채우지 못하고 오늘부로 관뒀다. 3개월 미만의 계약은 노티스 없이 관둘 수 있어서 결정을 내리자마자 관둘 수 있었다. 내 사정에 의해서 계약기간의 두달에서 2주를 못채우고 빨리 관두게 되는 것이라 가급적 회사측 입장에 맞춰서 관두려고 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커서 최대한 빨리 관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며 지나간 다리를 태우는 것 같은 기분이라 피하고 싶었던 결정이었지만, 괜히 오래 있다가 괜히 감정만 더 상하고 나올 것 같아서 차라리 빨리 관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들었다. 이렇게 정리하게 된 건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리하는 게 나에겐 더 나을 거였다.

친구네 조부모님이 픽업해서 같이 놀고 저녁까지 먹고 오기로 한 하나를 하나 친구네 집에 가서 픽업하고 돌아오는 길에 메일이 와서 보니 계약서가 도착해있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잡 오퍼에 사인을 해서 연봉 합의를 했었는데, 그걸 토대로 계약서가 도착해있었다. 그에 서명을 해서 송부를 하는데, 앞으로의 프로세스를 메일로 간략히 오리엔테이션해주고, 업무 시작 얼마 전에 각종 참고할 자료를 보내준다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해본 덴마크 직장은 중앙정부기관이고 이번에도 그렇다보니 다른 곳은 모르겠어도 중앙정부기관은 이런 스탠다드 프로세스가 있다. 그런데 직원 고용규모로 보면 이런 두 기관에 비해 훨씬 큰 내 전 직장은 아직도 사람보다 숫자, 성과가 중요해서 그 숫자와 성과를 뒷받침하는 게 사람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사람은 내가 신뢰를 받고 내가 하는 일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조직과 일에 대한 열정이나 신뢰가 없어지고, 결국 조직 이탈이 이뤄지는 것일텐데.

오늘은 어찌되었든 간에 문을 하나 닫고 다음 문을 하나 여는 작업을 한 날이 되어버렸다.

번역일 하던 것도 초벌을 마무리지어서 내일 검토해서 보내는 일만 남았으니 그것도 좋았고. 시행령을 번역해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의외로 상업번역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해보고 나니 에세이나 소설 같은 걸 번역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번 느껴졌다. 상업 번역은 감정선을 살리는 미묘한 형용사와 부사가 난무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빠르게 번역할 수 있었다. 뒤로 갈 수록 문장의 형식과 내용에 익숙해지니 속도도 붙고.

어느새 3월도 거의 다 가버렸다.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까지 한달여가 남았고, 이사까지도 한달 반정도 남았다. 남은 기간 열심히 여기저기 페인트질하고 청소하고 살 것 사고 옮기고 하면 또 다음 한 달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흘러있을 거 같다.

시원섭섭하고 달콤하고 씁쓸함과 후련함이 동시에 교차하는 이상한 날이었다. 날씨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대비가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잠을 자고 나면 내일은 그냥 상쾌한 새로운 하루가 되겠지. 인간에게 잠이라는 게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고민 끝 재취업.

재취업.

작년 말부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재취업…

환경경제학으로 1~2년 일한 주니어가 취직할만한 자리는 정부부처 중심으로 나오고, 컨설팅은 프로젝트를 이끌만한 정도의 경력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정부부처는 대부분 탁월한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고 있었고, 분석 보고서를 쓰는 자리에 있어도 대부분 그 보고서가 활용되어 제도를 도입하는 데 역할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법과 가깝게 지낼 수 있어야 했다. 그건 그 직전 직장에서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던 요소 중 한가지였다. 즉, 내가 원하는 자리가 잘 나오질 않았다.

그러니 내가 공부한 것을 활용해서 직장을 다시 잡는다는게 요원해보였고 시작부터 패배주의에 젖어있었다. 안될 거 같다는 내 프로필에 딱 들어맞지 않는 직종 몇군데로 통계청이나 조금 더 제너럴리스트 포지션에 지원해보고 서너번 미끄러지고 나니까 정말 다 안될 거 같아서 더 위축이 되었다.

더군다나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 쪽 길을 다시 걷고 싶어진다면 공백기간이 너무 길어져도 안되니까 뭔가 시도해보려면 지금쯤에는 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애매한 취업활동이었다. 덴마크의 물가를 생각하면 내 개인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은 취미 용돈 벌이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이걸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본격적으로 돈이 벌리는 아이템을 만들던가 다른 걸 하던가 해야했다.

옌스에게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른 공부를 하기엔 대학원 졸업한지 얼마 안되서 입학이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뭔가 기존의 학업과 관련없이 구할 수 있는 일도 생각해봐야했다. 가장 쉽게 떠오른 건 보조보육교사. 유치원과 보조보육교사는 경력이 없이도 취업을 할 수가 있었다. 경력을 요구하는 데도 많지만, 경력 없이도 취업할 수 있는 곳도 많았으니까. 애를 보육원과 유치원에 보내면서 만나게 된 선생님들을 보면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하루하루 손에 쥘 수 있는 그 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정말 hands-on한 일을 하는 것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옌스는 거의 재취업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나를 과소평가하며 다른 길로 방향을 틀려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내가 정말 다른 길을 원한다면 원하는 걸 해보라고, 그냥 회피하기 위해 선택하지 말고 곰곰히 생각해보라 했다. 그리고 그럴거면 이사 간 뒤에 취직을 하라고 했다. 마침 집도 사서 이사와 관련해서 할 일이 많으니까.

당장 일할 건 아니지만 미리 살펴나 보지 하는 마음으로 보조보육교사 채용공고를 살피며 뒤적거리다가, 기대를 내려놔서 마음이 편해져서 그랬는지, 부담 없이 환경경제학 관련 공고도 좀 살펴보게되었다. 마침 눈에 띄는 곳 두군데가 눈에 있었다. 이미 여러번 미끄러져서 기대도 크게 없었는데, 한군데에서 면접을 보자고 했다. 분위기도 좋았고 커뮤니케이션도 화상임에도 아주 매끄러워서, 이제 취업해도 일하는 데 커뮤니케이션이 장벽이 되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탁 들었다. 그새 확실히 늘긴 늘었구나…하는 생각. 사실 두군데 쓰면서 하나를 두개 문서로 나눠 저장한 후 필요한 것만 바꿔 쓰다가 두군데 모두 같은 팀명을 써내는 실수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에 불러준 거라 나의 자신감을 살려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자신감을 얻어 마침 재미있어 보이는 곳, 두군데에 이력서를 또 냈는데 다 면접에 불러주더라. 면접에 들어오는 사람 중 실무자가 기존 일하던 청에서 협업 파트너로 간간히 만나 회의하고 피드백 주고받고 하던 사람이어서 예감이 좋았다. 1차 면접인데, 인성검사에 케이스 테스트까지 있다고 하며 코로나 시대에 물리적인 면접으로 불러내던 이 곳에서 결국 이른 아침 면접을 보고 그날 점심 먹고 다른 곳 1차 면접 보러가는 길에 잡 오퍼를 받았다. 여기는 1, 2차를 구분하지 않고 한번에 다 보는 곳이었던거다. 보스가 될 사람에게 전화로만 통보를 받은 거라 서면으로 오퍼를 받기 전까진 확실하지 않으니까 (법률적으론..) 다른 곳에도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니 오퍼가 서면으로 와있었다. 덴마크에서는 잡오퍼에 고용에 대한 확약의 표현이 있으면 이걸 토대로 기존 직장에 퇴사통보를 해도 안전한 고용 문서가 되기에 집에 와서 옌스와 상의를 조금 한 후 월요일에 있을 다른 곳 2차 면접(나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줬던 그 곳)에 면접 초대 거절 메일을 보냈다.

덴마크어 티칭과 번역, 기타 책 쓰는 일, 유튜브 등은 일부는 꾸준히 하고 있고 일부는 잠시 중단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제 불확실성이 모두 제거가 되었으니 편한 마음으로 오히려 더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잘 하고 못하는 게 뭔지 알고, 그 모든 걸 편하게 인터뷰에서 털어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못하는 걸 할 수 있는 척 해봐야 너무 힘들고 포기할 걸 아니까. 사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일할 수 있는 덴마크어 실력도 전 직장의 혹독한 현장 체험에서 다져진 거긴 한데, 결국 관둔 걸 경험해봤으니… 그걸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고 내 기대와 각오를 다 풀어놓고 나니 채용이 되어도 마음이 조금 더 편하다. 글을 남들처럼 화려하고 멋들어지게는 못쓰겠지만 보고서의 목적에 맞는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에는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도 해두었고, 외국인과 근무한 경험이 있는 상사라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력서나 대화, 케이스 프레젠테이션 등을 보면 언어는 걱정이 없다고 했으니까. (뭐 경쟁소비자청에서도 그랬는데, 이번엔 내 느낌이 다르다.)

또 공무원이냐고, 공공부문이 체질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공공부문에 있는 이코노미스트일 뿐이다. 내가 받은 교육이 그런 자리에 가게끔 짜여진 거고 (정말 딱 그렇게 짜여져있더라. 난 이 자리에 있기 위한 수업들을 들어왔다.) 그런 일을 주는 자리에 간것 뿐이다. Forsyningstilsynet, 영어로하면 Danish Utility Regulator로 Center for Analyse (분석센터)에서 fuldmægtig økonom, 경제 사무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논문쓴 것에 더해, 논문 지도교수와 협업을 하게 되어 계약직으로 COWI에서 프로젝트 일을 했던 것, 경쟁소비자청에서 하던 일 이게 정말 다 엮이고 잘 엮여서 지금 자리를 얻게 되었기에 얼마나 이 일련의 우연이란 게 우리 인생을 엄청 크게 좌지우지하는구나 하는 것도 느끼고.. 여러모로 느끼는게 많다.

긴장도 되고 설레고… 5월 1일은 진짜 여러면에서 중요한 날이 되었다. 우리 새집 넘겨받는 날, 내 첫 출근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새집 사고, 하나 유치원도 원하는 시기에 시작할 수 있어서 내 올해 운 다 썼나 했더니 이렇게 취직까지. 2021년이 참 좋은 한해가 되는구나.

이제 죽이되든 밥이되든, 일을 잘 하든 못하든 오래 잘 버티고, 장수해보자. 코트라에서 장수한 마음가짐이면 여기서도 장수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겸손하되 패배주의나 냉소주의로 돌아서지 않도록 나에 대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참을성을 가져주자. 차로 30분 가야 하는 곳이라 절반 이상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이니 이 유연함을 통해 애도 잘 키워보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일지어다. 이 마음가짐 잊지 말자. 먼 곳이라 차를 또 사야 할 수 있는 곳인데도 흔쾌하게 내 온전한 의사결정을 지지해 준 옌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해외 나와서 취업을 하려는 모든 취준생에게도 이 좋은 기운이 흘러가기를…

Værløse, 새로운 터전

여러가지가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다. 5월 7일부 이사를 가게 되면 새 지자체에서 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제일 이른 날짜가 6월 1일인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치원 자리가 나서 바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보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할 지 몰라서 그냥 보내기로 했다. 안에 들어가서 본 건 아닌데 유치원 밖에서 봤을 땐 규모도 적당하고 괜찮아보였다. 지금 유치원에 익숙해져 있어서 너무나 아쉽긴 하지만, 또 하나에게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말이다. 마침 한국에 다녀온 한달 사이에 친구들의 다이나믹이 달라졌는지, 자기가 놀이를 만들어내는 인기있는 주축이었던 것에서 조금 밀린 탓에 간간히 재미없다고 불평도 하고 집에 있고 싶다고도 하는데, 새로운 유치원에 가기 전에 그런 경험을 작게나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집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넓어보이거나 좁아보이는 곳 등 방이나 구획마다 느낌이 달랐다. 전체적으로 마음에 쏙 들고, 여기가 내 집이 될 곳이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일부러 짐 싸기 전에 불러서 집의 느낌을 보여주는 매도자의 마음 씀씀이도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집을 어떻게 쓸 수 있을 지에 대한 느낌이나 그런 것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실용적인 것들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도 듣고 알찬 한시간을 보내고 왔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대신에 지하 창고도 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공동 공간도 있고, 차고도 널찍하고 해서 이런 곳들에 있는 짐들을 잘 보관할 장소들이 있을까 했더니 왠걸… 다 곳곳에 수납공간이 숨어있었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니 자연이 큰 틀을 차지하고 있는 동네였다. 집집 사이사이마다 작은 공원이나 오솔길이 숨겨져있고, 약간 외곽으로 벗어난 곳 답게 높은 건물이 없어서 시야가 탁 트여있고 말이다. 그 동네 사는 사람들 중에 동네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못봤다. 우리 집을 팔고 나가는 매도인은 바로 같은 길 끝의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가고, 하나 친구네 조부모님도 같은 길에 사신다는데 이번 7월에 같은 동네 다른 집으로 이사가신단다. 나쁘지 않은 사인… 벌써 기대가 너무나 된다. 이사를 가서 우리 터전을 다질 그 시간이…

사람 냄새 나는 이곳

 오래간만에 인스타그램을 컴퓨터로 들어가서 내 계정을 훑어내려갔다. 타일처럼 나열된 사진들을 훑어내리며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했다. 덴마크로 넘어와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구나. 이렇게 많은 것을 경험해도 아직도 경험할 게 새로이 많구나. 한국에 있었어도 새로이 경험할 일이 많았겠지만, 외국에서 경험하는 것이다보니 간접경험의 폭도 적어서 더욱 새롭고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이제는 새로이 집을 사면서 매매절차와 더불어 이사가는 것에 수반된 부대절차와 챙길 일들이 있어 이와 관련된 경험을 하고 있다. 오늘은 나에게도 옌스에게도 신선한 일이 있었다. 오후에 이메일 알람 진동이 드르륵 와서 발신자를 보니 우리가 산 집의 현재 주인인거다. 집 주인이 벌써 우리에게 연락할 일이 뭐가 있지? 해서 열어보니 집을 아직 보지 못한 나를 위해 가구 빼기 전에 집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한국에서 옌스에게 부동산 물건을 찾아서 한 번 가서 보라고 하고, 옌스가 마음에 든다고 하자 집을 사자고 제안한 건 나지만, 막상 덴마크에 돌아오기 전에 계약이 다 끝나서 나는 집을 본 적이 없었던 거다. 귀국 이후 동네에 찾아가서 집 주변과 동네를 둘러보긴 해도 안은 볼 수 없어서 참 아쉬웠는데 말이다.

테라스쪽 전경 / 정원은 없는 집이지만, 바로 뒤편에 공터가 크게 펼쳐져 있어서 이를 그냥 정원삼아 누릴 수 있다.
테라스 쪽 공터 전경 / 비가 많이 오면 하수구로 바로 빠지지 않고 지표면에서 물을 지연시킬 수 있는 저장공간으로 활용되는 지역인가 보다. 시에서 여기는 주택용지로 지정하지 않은 지역이다. 탁 트인게 좋다.
공터에는 작은 그네도 있다. 그냥 애들 뛰어다니기에 좋은 곳이다.

매도자인 부부는 옌스보다는 젊고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즉 우리 또래 부부고 아이들은 조금 더 큰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우리 건너편 집에서 다섯집만 더 가면 나오는 집으로 조금 더 넓혀 이사가는 거였다. 즉 동네 이웃으로 남는 거였다. 이메일에는 동네 이웃으로 만나게 된다는 내용과 함께 우리 집 왼쪽 오른쪽편 집 주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고 그 중 한집이 참 오랫동안 레보베이션 하느라 시끄럽게 했으니 이사오면서 조금 시끄럽게 하는 걸로는 신경쓸 필요 없다는 팁도 알려주었다. 더불어 우리가 이사가게 될 즈음에 자연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동네 분위기는 어떤지도 알려주고 말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우리가 먼저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열쇠를 실제 부동산 인수일보다 먼저 넘겨줄 수 있다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옌스가 굳이 그걸 걸어서 계약을 복잡하게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해서 상대가 아무 말이 없는 이상 그냥 내버려두었다. 4월 1일 열쇠를 넘겨받기에 부활절 연휴에 이사를 갈 거 같은데 정확한 일정은 몰라도 다 이사짐을 빼고 나면 열쇠를 넘겨줄 수 있다는 거다. 우리야 그래주면 이사 전에 저녁과 주말 시간을 빼서 집도 청소하고 페인트칠도 미리 완료하고 깔끔하게 이사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은데 말이다.

나쁜 경험은 빨리 잊어버리는 편리한 뇌를 가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덴마크에 와서 나쁘거나 불쾌한 일을 겪기보다는 즐겁고 유쾌하고 따뜻한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내가 여기가 내 땅이 될 곳이라 결심하고 마음을 열었기에 그렇게 느꼈는지, 아니면 그렇게 느꼈기에 마음을 연건지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경험으로 가득 채우는 이곳이 나에겐 더욱 집과 고향처럼 느껴지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벌써 7년

옌스와 연애를 시작한 게 바로 7년전. 뭔가 오래되지 않은 과거 같기도 하면서 7년밖에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이상하다. 덴마크 나와서 딱 반년 지낸 후에 옌스를 만났으니 덴마크 살이도 7년 반이 되었다는 이야기구나.

내 인생에 작고 큰 챕터가 여럿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챕터의 시작은 옌스와의 만남이다. 옌스를 만나고 사랑을 알았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고, 배려가 어떤 건지 배우게 되었다. 나의 장단점을 보다 잘 알게 되었고, 내 단점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인생의 닻과 같이 거친 풍랑이 와도 나를 단단히 붙들어줄 옌스를 만나 나는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와 나는 서로 보완이 많이 되는 존재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사랑을 일상 속에서 느끼게 해주고 나의 존재를 기쁘게 받아들여주는 그가 있어서 힘든 순간에도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서로를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존재. 옌스를 만나기 전엔 실패한 많은 연애를 거치고 나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고 단언을 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와의 만남으로 그런 생각이 다 뒤집어졌다.

7년의 시간이 지난만큼 우리도 나이가 들었다. 거울을 보면 우리 얼굴에도 주름이 늘었고 머리카락에도 세월의 흔적이 발견된다. 나는 머리 속 새치가 늘어서 간간히 뽑아주느라 바쁘고, 옌스 머리는 갈색에서 회색으로 바뀌었다. 우리 사랑의 결실인 하나가 네돌이 지났으니 놀라울 것도 없지.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오순도순 잘 살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