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의 하나 in Dubai

시어머니의 생신을 두바이 시누네에서 하신다 하여 우리도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두바이에 갈 지 몰라 같이 방문했다. 6시간의 비행동안 하나는 한숨도 자지 않았는데 안그래도 오전 45분 낮잠외엔 자지 않았던 터라 긴장이 엄청 되었다. 다행히 덴마크 시각으로 1시 정도에 큰 무리없이 잠이 들었다. 그렇게 맞이한 15개월의 날. 비행기에서 Hvad er det? (이건 뭐예요?)를 상황에 맞게 두번이나 해서 우리를 놀래켰던 날이다.

두바이는 많이 덥지만 대충 40도 이내라 못견딜 정도는 아니다. 조금 더 지나면 라마단인데다가 더 더워지면 정말 다닐 수도 없다해서 그나마 괜찮을 때 온 건데 잘 온 것 같다. 도시도 깔끔하고 좋더라. 물론 더워서 난 여기서 살라면 그닥 살 고 싶지 않겠지만애가 있어서 어차피 여기저기 많이 다니기도 어려워서 하루 한군데 정도 소화하는 게 전부인데 집에 풀장이 있어 오전 오후엔 여기서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하나도 덕분에 수영하는 것에 익숙해질 듯.

시어머니 생일 점심으로 아랍의 탑 (burj al arab) 에 있는 캐주얼한 식당에 갔는데 사람이 아주 많지 않아 하나도 사촌들과 많이 돌아다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사촌 세명이 모두 하나를 이뻐하고 잘 놀아줘서 참 좋았다. 금방 사촌들을 좋아해서 가서 안기기도 하던 하나. 이집에 있는 고양이 엘비스를 통해 고양이를 처음 본 하나는 만져 보고 싶은 마음 반, 무서운 마음 반에 가까이 다가가다가 울곤 했다.

시누이네는 시누이 남편이 주재원으로 나와있어서 여기 최소 3년을 살 계획으로 나온 건데, 기름 1리터에 500원 정도밖에 안하고 차값도 다른 나라에 비해 싼 이곳에서 아니면 이렇게 좋은 차를 못탄다고 해서 시누이 남편은 마세라티를, 시누이는 랜드로버를 샀단다. 일생에 나도 이때 아니면 마세라티를 타볼 일 있겠나 싶어서 타봤는데, 엄청난 출력을 가졌긴 한 모양이다. 안에 소재도 엄청 좋고. 아랍의 탑 호텔에서 나올 때 앞에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유명한 사람이겠거니 했나보다.

집에 오는 길에 시누이 남편의 직원이 우리 바로 뒤에 멈춰섰다며 신호 정차시에 잠시 나갔다왔다.  그가 차로 돌아온 후 그 직원이 인사한다며 정차중 엔진소리를 세게 내었는데, 돌아보니 페라리였다. 두바이엔 진짜 비싼 차들이 널려있더라. 나름 덴마크 회사 다닌다고 조심스러웠는지 차를 사기 전에 시누이 남편에게 자기 아무 차나 사도 되냐고 묻더란다. 아마 사장이 마세라티를 몰고 있으니 덜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만…

이제 이틀 남았다. 4박 5일이지만 밤에 와서 오전 일찍 가는 여정이라 사실상 4박 3일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나가 사촌들과 유대관계도 조금 다지고 즐겁게 놀다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남은 날들도 기대가 된다. 비행은 은근 스트레스였지만, 잘 온 듯.

진짜 오랫만에 한국이 아닌 곳으로 여행 온 것 같다. 3년 조금 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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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일기.

논문이 바빠지니 다른 것에 소홀해진다. 논문은 대충 첫번째 포스트에 도착한 것 같다. 원시적 모델링은 우선 되었으니 이제 이론 연구와 모델링을 병행하고, 그 다음엔 분석하고 논문을 써야한다. 그간 진행이 참 지지부진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1차 모델링을 하고나서 보니 어찌어찌해 절반은 왔구나. 약간이지만 안도가 된다.  물론 아직도 반 이상이 남았는데 시간은 반이 흘렀으니 긴장이 되는 게 더 큰다. 내 논문 생활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하나 있다면 항상 크리티컬한 관점으로 내 논문을 비판해 줄 남편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모델을 보여줬더니 이건 고려해봤느냐, 저건 고려해봤느냐, 이 건 왜 이런 함수형태를 취했느냐, 독립변수 선택의 전략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직 그 단계까지 안갔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무방비로 폭격을 당한 기분이었으나 나혼자 하는 씨름에 타인의 신선한 인풋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역시 연구는 남과 공유해야하는 법이다.

우리 학과가 속한 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 공고가 났다. 자금사정이 트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인스티튜트 아침식사시간에 같이 참여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도교수에게 박사과정에도 관심있다고 했더니 지원서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교수님이 있는데, 그분께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것도 보장되는 건 없지만 추천서만큼은 꼭 써주시겠다면서, 오히려 박사과정에 꼭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논문을 제외하고 학점이 10.9니까… 논문을 잘 쓰면 11점 정도로 학점은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완벽한 점수를 들이밀 걸 생각하면 아주 빼어난 점수는 아니라도 점수가 흠이 될 건 아닌 정도니 논문이 많이 중요하다. 사실 큰 기대는 못한다. 요즘 박사과정은 세계 각지에서 지원을 하니 경쟁률도 높고, 내가 원하는 연구방향과 인스티튜트에 가장 어필하는 방향이 매칭이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든 해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배웠으니까 우선은 지원을 해봐야겠다. 뭐 되든 안되든 간에 내가 박사과정까지 생각하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해봤고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역시 절대 안한다 못한다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

덴마크어 필기 시험도 한달이 채 안남았고, 구술은 그 뒤 한달뒤로 다가왔는데, 시험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을 잘 만난 덕에 쓰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느는 게 느껴졌다. 알듯말듯한 몇가지 문법이 자꾸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는데, 내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딱 꼬집어 지적을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이 좋아졌다. 작년 말 시험으로 모의시험을 쳐보니 읽기는 12, 쓰기는 약한 12 또는 강한 10이라한다. 말하기는 한달 시간이 있기도 하고, 읽기와 쓰기의 중간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부문이라 대충 10~12 사이로 모든 부문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보고 있다. 모듈 6를 하게 될지 아닐지는 지금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항상 옵션을 갖고 있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우선은 그대로 해보련다. 덴마크어 교육도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있고 그러다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더 미루지 않고 올해 초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다.

하나는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제법 아가씨 태가 난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면서 겁이 없어져서 그런지 위험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서 조금 걱정이다. 집에서 놀다가 살짝 휘청한 것 같았는데, 금속 바구니 테두리에 부딪혀서 앞니가, 그것도 윗니가 살짝 깨졌다. 다행히 신경은 안건드린 거 같긴 한데, 우선은 지켜봐야한다. 옌스도 같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하니 젖니 깨먹는 건 이 집안 내력인가 한다. 이일로 나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픈 하나를 보기위해 마침 휴가를 내고 있었던 옌스에게 애를 맡기고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로 인해 구역질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역질이 계속 나는데, 그걸 멈추기 위해서 산책을 해야했다. 원래 스트레스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으로 반응이 올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가 아닌 아이 일이라서 그렇다. 누가 있었어도 생겼을 일이었기에 나를 자책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애가 더 크게 잘못되었으면 어쨌나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구역질. 더 큰 사고가 나도 차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말로 단단히 먹어야한다.

하나는 참 씩씩한 아이다. 웬만해서는 넘어진 거나 부딪힌 걸로 울지 않는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보육원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씩씩한 아이인데, 그렇다고 튼튼한 건 아닌 것 같다. 감기나 설사 같은 걸로 자주 아픈편이고, 폐렴 입원도 그렇고 천식성 기관지염을 앓는 일이 꽤 잦은 것 같다. 오늘도 그로 인해 응급실을 다녀왔으니… 물론 이번엔 응급했다기 보다는, 일반 GP, 스페셜리스트로 올라가는 시스템을 이용하기에는 응급했다고 봐야하는 거니까, 그냥 적기의 진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겨울 아기로 겨울 초입부터 보육원을 시작해서 그런 것도 있다지만. 다행인 건 씩씩한 아이라 잘 견뎌준다는 것. 나도 생각해보면 어려서 자주 아팠던 것 같다. 항상 건강체질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자주 배가 아파서 학교를 많이 쉬었던 기억이다. 엄마도 내가 씩씩했었다는데, 지금도 꽤 씩씩한 거 생각하면 하나도 그런 면에서는 강한 아이일 것 같다.

요즘 얼마나 놀이터 생활을 즐기는지. 날이 좋아지면서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놀리게 되니 동네 아이들과도 교류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 때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던 아래층 이웃 아이는 아직도 간혹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게 줄었고, 그 아이의 오빠와 둘다 다정한 애들로 컸더라. 이제 곧 7살이 된다는 베어트람은 하나를 유독 이뻐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아마 여동생을 데리고 지낸 경험에서 우러나는 듯) 4살 여동생인 딕터도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었고, 둘다 하나와 함께 놀아주더라. 하나가 갖고 나온 공을 갖고 잔디밭에 삼각형으로 둘러 앉아 셋이서 공을 미는 놀이를 하는데 (그나마 하나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놀이로 배려해 준 베어트람이 놀랍다.) 곧잘 노는 게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놀라고 나는 빠져있는 건데 내가 중간에 괜히 옆에서 개입했나 싶었다. 말못하는 하나를 대변해준답시고, 아직 애가 이해를 못해서 그래, 하나야 앞으로 밀어봐, 이러면서 옆에서 참견을 했다. 그냥도 잘 했을 거 같고, 아니어도 오빠와 언니가 적당히 반응해가며 놀았을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다른 아이가 충분히 큰 경우 내가 조금은 더 뒤로 빠져서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해봐야겠다.

다음주에는 두바이에 주재중인 시누이네를 시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는데, 출산 후 거의 바로 이주한 시누이가족과는 하나가 처음으로 제대로 교류하게 될 거라 기대가 많이 된다. 조카들이 동생 만나서 놀아줄 기대로 부풀어있어서 더욱 기대된다. 수영복도 사고 이래저래 준비를 했는데 아픈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오늘 해가 엄청 쨍하고 더웠는데, 하나 데리고 오전에 응급실에서 3시간 씨름하고, 가장 해가 쩅한 시간에 나와 낮잠에 든 애를 두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밀고 싸돌아다녔더니 몸에 화기가 든 기분이다. 아마 피부가 많이 탄 모양이다. 밤에 잠이 잘 안올 것 같다. 나는 못자도 애가 좀 잘 자줬으면 좋겠다. 기침을 덜하는 걸 보니 오늘은 잘 자려나? 역시 병원에서 천식약 흡입한 게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다. 딱 쓰고나니 기침하네. 흠… 역시 입초사인가…

임신 때보단 육아가 훨씬 힘들긴 한데, 출산 후 100일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다. 지금은 다른 차원의 힘듦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애가 어릴 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얼마전 출산한 사람, 앞으로 출산할 사람 등 주변에 애 참 많이 낳는데, 신생아 냄새가 생각날 듯 하면서 그립기도 하지만 또 낳을 생각은 안난다. 다 잊혀져서 애를 또 낳는다는데, 힘든 기억은 잊혀졌지만 힘들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 애는 그만 낳고 남들 애기 보면서 신생아 이뻐하는 건 그걸로 끝내야겠다. 아… 신생아 볼 생각에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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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직장 첫지원 완료!

결국 한군데는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남편 찬스를 써서 오늘 덴마크어 교정을 최종적으로 받아서 지원서와 이력서, 성적증명서를 보냈다. 마침 취업박람회에서 무료로 찍은 프로필사진도 길면 2주까지 걸릴 수 있다더니 오늘 도착해서 그걸로 바꿔 첨부했다. 프로필 사진으로 찍은 것 중 처음으로 마음에 든 사진이다.

무료 프로필 사진에 포샵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여기는 애초에 포샵을 잘 하지도 않는다. 이 행사에 두번째 가보는 거라 사진을 어떻게 찍힐 지 알고 있었고, 덴마크 이력서 사진 유형도 익힌 덕에 이번엔 화장을 안하고 (플래시 터지면 안보일 정도로 흐린 눈썹만 그리고) 활짝 웃고 자연스럽게 찍었는데 잘 나왔다.

지원서를 우선은 영어로 쓰고 덴마크어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덴마크어로 사고하고 바로 작성하기에는 내 덴마크어가 너무 딸려서 필요한 컨텐츠를 충분히 생산할 수 없어서이다. 회사 다닐때만 해도 영어로 보고서를 쓰는 게 꽤나 스트레스였는데, 이제는 별 어려움이 없어져서 대학원 공부의 힘을 느꼈다. 물론 보고서를 계속 썼긴 해도 그 오랜 세월 잘 안늘던 영어가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늘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보고서 쓰면서 자료 인용할 일이 엄청 많아서 그랬던 거 같다는 생각이다. paraphrasing을 하면서도 군더더기 없게 효율적으로 글쓰기를 해야해서 골머리를 썩었던 것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었을 줄이야. 거기에 덴마크어 수업에서 작문을 엄청 시키는 것이 그래도 도움이 된 덕에 이를 번역해서 초안을 잘 만들 수 있었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으면 안되었지만, 그래도 나의 첫 덴마크어 이력서에 지원서라니. 뿌듯하다.

요건에 덴마크어와 영어 모두 fluent해야 된다고 되어있었으니, 사실 나는 요건이 안된다. 이력서에도 중상급이라고 명기해두었고, 이는 면접에 가게 된다면 확연히 드러날 사실이다. 그러니 떨어지는 것을 기대하고 지원한 것이지만, 그래도 혹여나 1차 면접에 가기라도 한다면 엄청 큰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최선을 다해 썼다. 떨어져도 이 경험 자체가 소중하니 후회는 없을 거다.

 

조금 천천히 가기로 했다.

애가 아픈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가 아플때마다 시부모님께 도움을 부탁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애의 병치레에 따라 나의 논문 스케줄은 심하게 흔들린다. 덴마크도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는 공채 비슷한게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엄청 적은 수고, 1년에 한번 있어서 여름에 졸업하는 학생이 중심 대상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있는게 나으니까. 마침 마음에 드는 회사도 있고 해서 지원하려고 이력서도 준비하고 취업박람회 가서 면담도 하고 했는데, 막상 논문이 너무 흔들려서 제 때 여름에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덴마크어 어학원이 코펜하겐시(단지 코펜하겐시만은 아닐거다. 곧 다른 시 어학원들도 영향을 받을 듯하다.) 덴마크어 교육 예산 절감 계획에 따라 교육 기관 선정이 입찰제로 바뀌었다. 유명한 어학원들은 학생 1인당 교육비용을 11000크로나 정도로 잡았는데 (지금보다 낮은 수준) 8000크로나 정도로 잡아 제출한 악명 높은 교육기관 2개가 낙찰을 받고 나머지는 다 떨어졌단다. 따라서 8월부터 이 학원들은 무료 덴마크어 교육을 다 문닫는다. 원래 8월부터는 무료 교육도 시스템이 바뀌면서 모듈당 2000크로나를 내는 것으로 바뀐다고 해서, 모듈 6은 돈 내고 들어야겠구나 했었다. (모듈 3까지 돈내고 다녀봐서 아는데, 진짜 유료는 모듈당 하부 모듈이 2개가 있어서 10000크로나가 넘는다.  모듈 5는 하부 모듈이 4개라 20000크로나가 넘는다.) 그런데 이 또한 이상한 학원으로 다녀야하는 거라면 굳이 모듈 6을 듣고 싶지 않다. 모듈 5 시험은 이미 모의고사를 토대로 본 결과 지금 쳐도 10점 정도 받는 거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모듈 6을 수강할 자격 획득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이 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덴마크어 수업을 조금은 설렁설렁 들어도 될것이고 숙제도 조금은 느슨하게 해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회사 지원은 졸업 뒤로 미루기로 했다. 논문은 우선은 8월까지 쓰는 걸로 목표를 하되, 미루는 것도 염두에 두고 쓰기로 했다. 교수님과 어떤 consequence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한번 상의해보고, 현실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8월까지 중간에 애 아플 것도 감안해서 다 쓸 수 있을 것 같은지 교수님의 생각도 들어봐야겠다.

덴마크어도 조금 루스하게 하고, 취업은 손에서 놓고, 논문에 최우선을 다해 하되, 졸업을 미룰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둔다면 지금의 높아진 스트레스 레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뭐든 낭비는 없는거니까, 지금까지 다른 것에 투자한 시간자원은 어떤 형태로든 나중에 도움을 줄 거다. 나중에 다시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고.

남편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남편이 8월에 내가 빨리 졸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고 믿었고, 남편은 그걸 미루면 나에게 부담이 되는 consequence가 학제상으로 있을까봐 그랬던거지, 빨리 졸업해서 빨리 취업하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그걸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한다. 내가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하니, 나보고 더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남편이 말하더라. 당신 잘못이 아니라 내가 주어진 데드라인 안에 이를 달성을 못할 것 같은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당신은 내가 8월에 끝내기를 기대하니까 힘든 거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전혀 그런 기대는 안하고 있다면서, 서로 오해하고 있었단다.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애가 아플 때 애 아픈 거 걱정보다도 내 일이 밀리는 걸 걱정하게 되는 게 참 엄마로서 죄책감이 들곤 했는데, 이런 걱정은 내려두고 조금 더 흐름에 몸을 내맡겨보려한다. 왜 갑자기 조급해졌었는지…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조급증이 나도 모르는 새 싹을 다시 틔우고 있었는가보다. 좀 내려놓고 천천히 차근차근 밟아가야지. 이 프로세스를 즐기면서…

Nick Eubank 블로그 – GIS in R

Spatial data analysis는 내 논문 분석의 주축을 이루는 방법론이기에 하다가 뭔가 잘 풀리지 않으면 방대한 인터넷의 자료에 의존하게 된다. R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는 오픈소스 프로그램이기에 더욱 그렇다. R을 통해 GIS를 이용하고 있어 R과 관련된 GIS 자료를 찾던 중 정리가 아주 깔끔하게 되어있는 Post-Doc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도움이 많이 될 자료라 기억해둘 겸 블로그에 기록해둔다.

http://www.nickeubank.com/gis-in-r/

http://www.nickeubank.com/

겁은 겁을 먹고 자란다.

겁은 겁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겁을 내면 낼 수록 겁은 더 커진다. 따라서 겁이 날 땐 이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혀야한다. 그러면 겁으로 부풀려 포장된 것이 아닌 현실의 파편들을 마주하게된다. 파편들을 하나하나 집어들고 맞춰보면 그것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차근히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기싫은데 하면서 끌려가다보면 시간도 오래걸리고 그 일자체도 엄청 큰 일처럼 느껴진다. 기왕 해야하는 일이면 내가 해야되서 하는 일이라고 마음 먹고 하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아침에 너무 일어나기 힘든 순간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빨리 옆으로 치우고 벌떡 일어나 일상을 마주한다면 의외로 그렇게 힘들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럴 땐 빨리 일어나서 세수부터 하자.


이상이 오늘의 경험에서 배운 레슨이다. 보언홀름에서 돌아갈 때까지 지도교수님을 만날 수 없는데, 그 전까지 geocalculation을 우선 해보라는 큰 틀의 가이드라인 아래에서 도대체 뭘 해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차분히 앉아 노트를 펴고 생각의 지도를 작성해보고 이를 통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는 이론과 스크립트를 들여다보고 나니 조금씩 윤곽이 보이고 있다. 두려움으로 포장된 괴물은 매우 커보이지만, 이를 마주하고 토막을 내보면 나의 겁이란 허상이 만들어낸 것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가 밤새 코막힘으로 잠을 설치며 나를 힘들게 하더니 다른 날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서 흥겹게 놀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갈아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기저귀를 가는데, 짜증내려는 하나를 달래느라 흥겹게 노래를 불러주다 보니 나도 정신이 맑아졌다. 세수를 하면서 상쾌한 마음이 되었는데 앞으로도 밤잠 설칠날은 여전히 많은지라 이 느낌을 기억해야겠다 싶었다. 잠부족한 워킹맘들 모두 화이팅!

논문의 첫페이지 작성 시작, 그리고 덴마크어 선생님

아직 분석은 시작도 못했지만, 이제서나마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읽기는 읽어도 막상 쓰기까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나의 이런 완벽주의를 간파한 교수님이 완벽할 필요가 없으니까 우선 써내려가기 시작하라고 해서 그 첫발을 오늘 내딛었다. 그전에 옌스가 ‘논문은 우선 하루에 한장이라도 정해놓은 분량을 우겨넣든 어쨌든 쓰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총 8~90장 쓴다고 생각하면 매일 한장씩 쓸 때 꼬박 세달 걸리는 분량이다. 물론 모델을 만들고 돌리느라 한장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을 수 있지만, 또 방법론이나 모델을 돌린 결과를 쓰는 건 이미 고민을 많이 해 놓은 것이거나 드러난 결과를 요약하는 것일 뿐이기에 하루에 몇장씩도 쓸 수 있으니 못쓴 날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너무 바쁘다며 덴마크어를 중단할까 징징댔던 것을 후회할만큼 논문 작성에 덴마크어가 많이 필요하다. 덴마크의 현상을 주제로 잡은 이상 작게는 데이터의 변수명부터 크게는 정부 발표자료까지 많은 자료가 덴마크어로 되어있고, 이걸 구글번역기와 사전으로 들입다 번역해야 했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사전의 이용은 피할 수 없지만 꾸준히 신문으로 긴 텍스트를 읽는 습관을 들인 덕분에 여기저기 흩어진 많은 자료를 스킴해서 논문에 녹여넣는 게 크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덴마크어 수업 모듈 5는 이번이 세번째다. 첫번째엔 나쁘지 않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학업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바빠서 아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숙제를 제대로 할 여력이 없었다. 그 덕에 복습도 별로 못하고 사상누각같이 대충 대충 덴마크어를 쌓아올리는 기분이었다. 그 상태로 계속 공부하면 PD3면 모듈 6를 듣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시험을 치지 않기로 했고, 5.2에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두번째에도 나쁘지 않은 선생님이었지만, 나와 맞지 않는 선생님이었다. 시험에 방점을 강하게 찍고 수업하는 스타일이라, 호기심 천국인 나에게는 너무 틀에 꽉 짜여진 수업시스템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번째엔 5.2도 채 끝마치지 않은 상태로 중단을 결정했다. 대학원도 너무 바빴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로 계속 수업을 듣기도 싫었다.

이번 선생님은 너무 마음에 든다. Einar라는 선생님인데, Studieskolen에서 수업을 들으려는 사람에게 정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선생님이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선생님으로 학생별로 강약점을 잘 파악해 그에 맞추어 코칭을 해준다. 수업의 기본적 틀은 유지하되 수업에서 나오는 질문들에 유도리있게 시간을 할당하고 학생들이 뭘 질문하는지를 빠르게 캐치해서 정확하게 답을 해준다. 작문숙제의 경우 한 학생의 작문을 골라서 모든 학생들에게 직접 첨삭을 해보도록 하고, 그 시간 중 직접 해당학생에게 붙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춰서 첨삭을 해준다. 사실 선생님이 학생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다르게 첨삭해줄 수 있는 내용을 다른 의미로 바꿔주는 경우를 여러번 경험했기에 이런 첨삭교수법은 아주 신선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텍스트를 첨삭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많이 배울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수정을 해주니 작문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 수업이 시작된 이래 불과 6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많은 발전을 느끼고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것인가. 삼세번의 시도 끝에 합이 맞는 선생님을 만난 게 너무나 기쁘다. 바빠도 이 수업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 해서 끝장을 봐야겠다. 마침 PD3 시험 신청도 끝났으니까.

진작 이 선생님을 처음부터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사람은 진짜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뭐 다 지나간 일이고, 지금부터 더 박차를 가해봐야지.

인생사는 다 선택이다.

요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아이의 첫겨울과 보육원 생활이 겹칠 때 애가 얼마나 자주 아플 지를 고려하지 않고 너무 많은 플래닝을 한 것일까? 남편에게 자주 짜증을 내게 된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짜증은 결국 나에게 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조금만 더 플랜을 잘 했더라면, 조금만 더 플랜을 잘 지켰더라면, 변수가 생겼을 때 기존의 플랜을 조금 더 잘 끼워넣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그때 옌스가 이렇게 해주었더라면 조금 더 좋아졌을텐데, 그렇게 해주지 않아서 그래… 라는 말도 안되는 형태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잠깐 심통을 내곤 한다. 잠깐 다른 일을 하다보면 말도 안되게 심통을 부렸구나, 유도리있게 이렇게 했으면 되었을텐데 하고 돌아와서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옌스가 받아주고 풀곤 한다. 자꾸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오늘은 제대로 이러저러했던 상황에 대해 나의 생각의 전개 및 감정을 설명하고 제대로 사과했다.

논문도 다 끝나지 않았지만 취직 준비를 서서히 해야하는 탓에 더 조급해지는 것 같다. 다음주 금요일엔 취업박람회가 있어 거기에 갖고갈 요량으로 덴마크어 이력서를 준비하고 있다. 졸업은 8월이지만 대충 6월이면 상반기 채용이 끝나는 탓이다. 오늘 대충 드래프트를 끝냈고 옌스가 잠깐 훑어봐준 결과를 토대로 추가 작성해서 내일 봐달라고 해야한다. 오래된 이력서를 들쳐보고 이를 덴마크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번역이라는 작업 자체도 그렇지만 여기 채용시장의 이력서 유형에 맞춰 쓰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원래 뭐든 처음이 힘든 거니까…

 

대학원 동기 한명이 자살했다. 가까운 동기는 아니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친구도 자살을 예상할 수는 없었던 걸 보면 그 속사정을 깊게 털어놓을 수 없어 더 힘들어하던 게 아닌가 싶다. 살면서 자살을 생각해보는 게 아주 드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걸 실행으로 옮기는 데에는 그만큼 큰 용기(?)와 좌절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막상 그를 실행해 옮긴 그의 힘듦을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내 주변에서 자살한 건 그가 처음인데, 자살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그를 추모하러 그가 자살한 기차역에 갔을 땐 그렇게 많이 보았던 열차의 주행이 새삼 섬뜩하고 무섭게 보였고, 또한 무심하게 보였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러 모였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농담도 나눌 수 있는 우리에게서 어쩔 수 없는 무심함을 보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그렇게 스치는 생각이었다. 덴마크에서 직장을 관두기 전에 나도 과도한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생각들을 조금 구체적으로 했던 탓에 이번 일이 완전히 남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하나가 있어 더욱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되겠지만, 사람이 참 힘들다보면 이성적이지 않은 극단적 결정도 할 수 있기에… 남겨질 사람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그 친구는 이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죽음의 길을 선택했기에 이제 최소한 자유로워졌을테지. 그런 자유를 희망했을 것이리라. 그의 죽음에 찬동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가 원했던 것을 얻었을 것이기라 믿으며 위로의 마음을 띄워보낸다.

세상 일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될 때, 어디에도 “그래야만 했다”는 당위는 없음을 기억해야한다. 항상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나도 지금처럼 힘들다고 끙끙대며 주변인을 상처입힐 땐,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다시 프레이밍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연말연시 일상 기록

학교에 다시 나가기 시작한 건 11월이지만 데이터 수집에도 시간이 걸렸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것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12월엔 하나가 보육원 시작하면서 자주 아픈 탓에 집에 머무느라, 나도 같이 아프느라, 또 연말연시 연휴로 가족행사가 있느라 거의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연초까지 수집할 수 있어서 좀 본격적으로 일하나 했는데, 하나의 중이염과 낡은 컴퓨터와 빅데이터의 안좋은 궁합으로 인해 시간만 까먹었다. 그나마 위안을 하자면 낡은 컴퓨터를 갖고 씨름하느라 컴퓨터 메모리 칩에 대해, 큰 데이터를 로딩하느라 다양한 데이터 포맷과 그에 따르는 R의 데이터 로딩 함수를 이것 저것 익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간에 컴퓨터를 새로 사면서 맥에서 Windows로 갈아타는 동안 같은 코딩도 달리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를 해결하느라 하루동안 씨름했다. 수업을 듣는 동안 꾸준히 써왔던 R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R과 많이 가까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Spatial data 쪽 분석에서 말이다. 많이 배우는 건 역시 노가다를 통해서인가보다. 오랜 시간을 투여하고 힘들게 익힌 만큼 각인도 더 되는 거랄까? 엄청 삽질한 뒤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같은 결과도 더 짧고 효율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거나 아니면 더 좋은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을 볼 때, 그게 탁 머리에 꽂힌다.

대학원 친구들이 서서히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덴마크 친구들만 구하더니 이제 슬슬 비덴마크 친구들도 직업을 구한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친구도 있지만, 그래도 많이들 여기에서 정착하는 것 같아서 좋다. 최근에는 임신한 친구도 생겨서 우리의 두번째 ENRE baby를 맞이할 생각에 나도 들뜬다. 나도 직업을 잘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간간히 엄습해오긴 하지만, 불안함을 갖는다고 직업이 잘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에 충실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저녁에는 덴마크어 학원을 가는데, 선생님이 아주 좋으신 분이다. 가르치기도 정말 잘 가르치시고 학생 개인별 수준과 강점, 약점에 맞춰 조언을 따로 해주시는 것도 많다. 숙제는 너무 많지 않아서 바쁜 와중에 수업을 끼워넣기 좋은 편이다. 요즘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바쁜데 그중엔 덴마크어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래도 덴마크어는 미뤄둘 수 없을 만큼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다른 것 바쁘다고 미뤄두기엔 항상 가까이 둬야하는 존재… 최대한 일상생활 속에 덴마크어를 녹여야 해서 오늘은 드디어 교수님 면담을 덴마크어로 했다. 그 전엔 슬쩍 인사말을 덴마크어로 해도 지도교수님이 영어로 바꾸시길래, ‘아… 아무래도 역시 영어가 학교 공식 언어라 그렇신가?’ 했었다. 지난번 남편이 덴마크인이라 대화는 다 덴마크어로 한다고 흘려뒀던 탓일까? 오늘은 인사 뒤에 따르는 말도 덴마크어로 하시는 거다. 조금 더 집중을 요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내 논문에 대해 옌스와 평소에 많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고, 시댁 가족과 친척에게 논문을 설명하느라 덴마크어로 이래저래 이야기한 적도 많아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컨텍스트를 정확히 아는 내 논문이고, 테크니컬한 이야기를 나누는 바라 복잡한 뉘앙스를 다룰 필요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는 덴마크어로 지도를 받기로 했다.

주재원 생활을 빼면 내 덴마크 생활이 학교를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학교에서의 만족도가 정말 중요한데 그 점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교수님들도 정말 좋고, 수평적인 분위기라 질문하고 연락하고 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특히 내 지도교수님은 막상 가까이 지내보니 더 허물없고 열심히 도와주신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찌나 좋은지. 모든 수업에 대해 100%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내 프로그램에 대해서 추천하겠냐고 물어본다면 100% 망설임 없이 강력히 추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거기에 나라에서 주는 용돈을 받고 등록금도 안내고 학교를 다니니 더욱 감사한 일이다.

이번 주 토요일은 하나 생일이다.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휙 지나가버렸다. 생일 케이크는 집에서 만드는 게 대부분인지라 나도 집에서 만들건데, 스폰지 케이크를 빵집에서 주문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건 3장 주문해뒀다. 내가 할 건 레이어 사이에 바를 바닐라 크림을 만들어서 레이어 위에 잼과 함께 얹고 마지판을 사서 밀대로 밀어서 얇고 길게 만들어 케이크 사이드를 두르는 것, 케이크 표면에 초콜렛 글레이징 하는 것이다. 바닐라 크림은 어제 하루 하나를 봐주러 보언홀름에서 먼길 와주신 시어머니께서 시간을 내어 가르쳐주셨다. 하루 전날 만들어서 차갑게 식혀야 하는 크림이라 오신 김에 직접 보여주시며 가르쳐주시겠다는데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만들고 보니 카스타드 크림 같은 것이었다. 어째 생크림과 다르다 했는데, 생크림은 맛이 나지 않아서 바닐라 크림을 만들어야 한다셨다. 시어머니의 어머니 레시피라는데, 집집마다 크게 차이나는 것 같지는 않다. 옥수수 전분이 들어간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의외로 설탕은 별로 안들어가고 단맛은 우유와 계란에서 오는 부분도 많았다.

보육원에 하나 생일이라고 뭘 가져가야 하는데, 생일이 토요일이라 월요일에 하겠다고 했다. 도저히 금요일에 뭘 하기는 힘들 것 같고… 아마 빵을 구워가야할 것 같다. 보육원엔 단 건 갖고 가면 안된다고 하니 덴마크 생일에 보편적으로 먹는 우리 모닝빵 같은 걸 구워가야겠다. 흠흠… 믹스 사갖고 이스트랑 버터나 섞어 만들어가야지… 학부모는 역시 바쁘구나. 으흑. 하나 생일 장식도 사야하는데… 한국 부모의 돌잔치에 비하면 별로 하는 일도 없지만, 다 직접 하다보니 손이 가는 일이 좀 있다. 시부모님과 시이모, 이모부님이 와서 축하해주시기로 하셨다. 시누이는 먼 두바이에서 축전만 보내주는 것으로… 아쉬워라… 하나를 엄청 이뻐해주는 고모와 사촌 오누이가 와주면 진짜 좋을텐데… 우리가 4월에 가서 보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하나가 자주 아픈데 옌스는 직장을 다니니 내가 좀 더 유연하다는 이유로 계속 내 일이 뒤로 밀리니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겠다고 이야기했더니 내가 진짜 직업을 구하기 전까진 내가 하나 아픈 날 집에서 애를 보는 게 낫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헉.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이렇게 아둥바둥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있는거냐, 내 학업은 진짜가 아니라는 건데, 대충 해도 되는 거였냐 하니까, 그건 아니란다. 내가 유연해서 하나가 아플 때 내가 다 돌봐야 하면 이건 유연함이 아니라 절대적인 거니 뭔가 좀 아닌 것 같다고 하니 자기도 아차 싶었던가보다. 그날부로 적극성을 발휘해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해 일요일 밤에 날아오신 것이다. 평소 하나가 보육원에 갔을 시간 내내 어머니가 애를 돌봐주셨는데, 그 덕분에 일도 진척시킬 수 있었다. 오늘 혹시 하나가 보육원에서 많이 칭얼거려 중간에 픽업해야 할 일이 있을가 싶어 저녁까지 같이 계셔주시고 밤 비행기로 돌아가셨는데,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할 땐 청하기로 했다.

요즘은 천천히 앉아서 뭔가를 할 시간도 별로 없고, 그냥 하루하루 바삐 사는지라 상념에 잠길 시간이 없어 블로그에 생각을 정리하기도 어렵다. 하나가 크는 모습을 좀 더 차분히 앉아서 기록하고 정리하고 싶은데… 그냥 사진과 비디오를 찍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으니 아쉽기 짝이 없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급히 써두지 않으면 내가 이 시점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아 어수선히 정리도 되지 않지만 휘리릭 써내려간다. 학원을 간 날이라 11시 가까이 되서 집에 돌아오고 나니 눈도 풀리고 머리도 몽롱하다. 그만 덮고 가서 자야겠다. 내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덴마크 크리스마스 또는 율(Jul)에 먹는 이야기

덴마크어로 크리스마스는 율(Jul)이라고 한다. Jesus Christ에서 영어로는 뒤의 Christ를 따서 크리스마스지만 덴마크어로는 예수스(Jesus)에서 파생한 단어인 모양이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보냈다. 매해 시누이네 집에서 시누이네 시부모님과 우리 시부모님, 옌스와 나까지 보내다가 이번엔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시누이는 남편이 두바이로 주재근무를 나가면서 가족이 모두 3년간 이사를 나가게 되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함께 보낼 수 있으려나 했는데, 한해의 1/3을 해외로 출장다니는 시누이 남편이 이번 크리스마스 휴일은 좀 쉬고 싶으니 휴양지로 가자고 했단다. 그래서 시누이네 별장에서 일주일 먼저 이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자 했는데, 우리 집 온가족이 다 아픈 바람에 우리만 빠지게 되었다. 너무 아쉽게도. 매번 엄청 뻑적지근하게 보내던 크리스마스가 우리만의 단촐한 파티로 바뀌게 되어서 아쉬웠다. 그 나름의 장점도 있긴 하겠지만.

덴마크의 크리스마스는 24일이 가장 중요하다. 가장 큰 크리스마스 만찬이며 게임, 선물 개봉 등이 다 24일에 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25일, 26일은 첫번째 율, 두번째 율이라 부르며 율리프로고스트(Julefrokost)라고 길디 긴 점심식사를 한다. 우리는 주로 24일 시누네서 율리프로고스트, 율리아픈스맬(Juleaftensmad)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 쉬고 26일 시고모님 두분 중 한분 댁에서 율리프로고스트를 하는 게 루틴이다. 가족마다 각자 챙기는 방식은 다 다르다.

그래도 대충 비슷한 건 율리프로고스트와 율리아픈스맬.

율리프로고스트는 검은 호밀빵인 Rugbrød, 밝은 색 밀가루 빵인 Franskbrød (밀가루 빵은 재미있게도 대충 프랑스빵이라고 부른다.) 등을 바스켓에 담고, 그 위에 얹어먹을 Pålæg을 이것 저것 준비해둔다. 그러면 빵 위에 버터를 발라 Pålæg을 이것 저것 얹어먹으면 영어로 오픈샌드위치로 엉터리로 번역된 Smørrebrød이 된다. Smør가 버터이고 Brød은 빵이니 사실 버터바른 빵이라는 뜻이다. 아무튼 모양은 빵이 아래에만 깔린 형상이니 오픈 샌드위치로 불리긴 한다. 중요한 건 이건 손으로 들고 먹는 게 아니라 포크와 칼을 들고 먹는다.

Pålæg에는 궁합이 있다. 1차는 어류, 2차는 육류라 이에 맞춰 접시는 2개를 포개어 준비한다. 어류로는 식초에 절인 청어로 시작하는데 다른 것 없이 식초에만 절인 것부터 딜(dild)을 넣은 것, 카레소스에 절인 것 등 다양하다. 청어는 주로 흐르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삶아진 계란과 함께 먹는다. 다음은 대구를 다져 양파, 밀가루, 계란을 넣고 팬에 튀긴 피스커프리카델라(Fiskefrikadelle)로 라물렐(Remoulade) 소스를 얹어먹는다. 그 다음은 훈제 연어. 굳이 다른 건 얹어먹지 않아서 신기했는데, 케이퍼는 생략하고 먹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평소에 채소로 옆에 곁들이는 건 오이와 토마토 정도인데, 그나마도 크리스마스에는 먹을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걸까? 아예 내놓지 않기도 한다. 2차 육류는 주로 간 파테인 리워포스타이(Leverpostej),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고기육수를 굳힌 젤리,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반반 섞어 만든 고기완자인 프리카델라(Frikadelle) 등을 먹는다.

사실 이렇게 먹고 나면 시간이 꽤 되는데, 오후의 커피/티를 하고 조금 쉬고 나면 저녁 준비를 또 하게된다.

율리아픈스맬은 오리구이(Andesteg), 껍질을 아주 바삭하게 구운 돼지삼겹 통구이인 플래스커스타이(flæskesteg), 순대처럼 돌돌 길게 말린 생소세지 구이인 메디스터푈서(Medisterpølser) 등을 사이드와 함께 먹는다. 소스는 주로 브룬소스(Brun sovs)이며 카라멜라이즈드된 브룬카토플러(Brunkatofler)와 독일의 sauerkraut와 같은 따뜻하게 준비한 시큼한 양배추 샐러드인 뢸콜(Rødkål)을 사이드로 곁들인다.

디저트는 프랑스어인 척 하는 리살라망(Ris a la amande)이라는 쌀 푸딩인데 리슨그뢸(Risengrød, 물과 우유로 끓여낸 쌀죽에 계피설탕을 넣은 것)에 거품을 단단하게 올린 휘핑크림과 껍질을 까 다진 아몬드를 넣으면 된다. 그 위에 체리소스 (집에 따라 따뜻하게, 차갑게도 준비한다.)를 얹어 먹는데, 크림 때문에 느끼해서 많이는 못먹겠지만 진짜 맛있다. 차가운 쌀죽에 따뜻한 체리소스의 궁합이란 의외로 너무 잘 맞는다.

아몬드 중 하나는 다지지 않고 통으로 넣는데, 이걸 가져간 사람은 재미있는 선물을 하나 받는다.

우리 집에서 4명이서 먹는데 크게 하기도 그렇고, 하나도 있는데 작은 부엌에서 너무 힘들 것 같아 시어머님과 상의해 간단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어차피 26일에 포트럭 식으로 시고모님 댁에서 율리프로고스트는 뻑적지근하게 할 것이기에 24일은 오히려 간단히 해도 상관없었으니까. 통오리는 손질이 번잡스럽고 요리 과정에서 기름 덜어내는 것도 엄청 큰 일인데다가 오븐이 기름으로 범벅이 된다기에 가슴살로 준비했다. 350g짜리 아주 큰 가슴살 4 덩어리를 사오셨는데, 오리 가슴살과 그에 곁들일 사과 및 Ribsgel 등으로 메인 요리를 완성했다. 해보니 너무 간단해서 앞으로 간간히 오리를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옌스가 뢸콜을 안좋아해서 번외로 자주 해먹는 적양배추 샐러드를 곁들였는데, 시부모님도 너무 맛있다면서 좋아하셔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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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율리아픈스맬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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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표 리살라망

거의 시부모님이 준비를 많이 해오신데다가 주방에 시부모님과 나 세명이 서서 준비하다보니 의외로 너무 빨리 준비가 되서 하나 재우고 느지막히 준비를 시작했는데도 시간이 충분했다. 덕분에 어른들끼리 저녁을 오붓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년에는 다시 시누이네랑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된다고 해도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고, 같이 한다면 이제는 음식 준비에도 좀 더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크리스마스였다.

 

(참고로 덴마크인이 크리스마스에 뭘 먹는가 하는 기사도 있다. 덴마크어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