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통해 나도 다시 그 시절을 겪는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것처럼 어린 시절 기억들은 자주 떠올리던 기억이 아니면 잊혀지는 것이 많다.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어리광을 부렸는지,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잊혀진 어린 시절을 하나를 키우면서 다른 방식으로 다시 경험한다. 아이가 아닌 부모로서, 나라가 바뀌어 새로운 맥락에서.

하나는 신체적 접촉을 매우 좋아한다. 부모가 쓰다듬어주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자기 전 책을 다 읽고 나면 꼭 잠이 들때까지 몸을 쓰다듬어줘야 한다. 그런 연유로 만으로 거의 여섯살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한번도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하나를 재워준 적이 없다. 아이의 부드러운 뱃살을 쓰다듬는 그 따뜻한 감촉을 우리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또 길을 가다가 갑자기 “엄마, 안아주세요.”라던가, “엄마, 뽀뽀.”라면서 신체적 접촉을 원하는 때가 있다. 나는 어땠는가? 전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와 옌스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을 좋아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친구들 중 하나에게 작별 포옹을 하겠다고 안아줄때면 소극적으로 안겨줄 뿐이지 적극적으로 안아주는 건 정말 내키는 경우 아니면 애착을 느끼고자 하는 접촉을 좋아하지 않는다. 꽤나 드문일이더라.

책장을 새로이 사주고 디스코 램프랑 인형집, 전축 등을 그 위에 이쁘게 놔줬더니 자기 방이 큰 애 방같이 느껴졌던 거 같다. 그 다음부터는 저녁엔 방 정리를 제법해서 더이상 전쟁통같은 방에서 재워야 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때로는 같이 정리를 해야하기도 하지만, 정리하다가 딴짓하고 노는 것으로 새는 일이 줄어들면서 같이 정리하기도 수월해졌다. 그런데 어느날 그렇게 함께 정리를 하다가 머리카락 뭉텅이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싶어서 이게 뭐냐고 물었는데, 잘 모르겠단다. 음? 모른다고? 가위가 옆에 보이고, 가위로 싹둑 잘린 흔적이 보이는 머리카락인데? “내가 보기엔 네 머리카락 같은데, 아냐?”라고 재차 물으니, 씩 웃으면서 자기 머리를 어쩌다보니 자르게 되었다면서 죄송하단다. “네 머리카락이니까 미안할 일은 아닌데, 잘못해서 귀를 자를 수도 있고, 눈을 찌를 수도 있으니 머리카락은 엄마 없는데서 자르면 안돼. 그리고 다른 것보다 엄마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돼.”라고 말을 하자 “네.”라고 배시시 웃으면서 답을 한다. 왜 엄마한테 바로 이야기 못하고 모른다고 한건, 말하기 어려워서 그런거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단다. 자기 생각에 엄마가 하면 안된다고 하는 일일 것 같았던 거 같다. 나도 생각해보면 언젠가 앞머리를 바짝 당겨 눈썹 위로 잘랐던 일이 있었던 거 같다. 자르고 나서 머리가 짤뚱하게 올라갔던 기억도 나고. 다만 그래서 울었는지 뭘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때 나도 몰래 했던 것 같은 기억만 어렴풋이 날 뿐. 아이가 잘못된 일이라도 나에게 언제고 솔직히 이야기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제 오늘 옌스가 취미활동을 하는 시간동안 이것저것 하나가 좋아할법한 일들을 하면서 여자들끼리 데이트를 많이 했다. “하나랑 같이 이렇게 데이트하니까 너무 hyggelig하고 좋다.”라는 내 말에, “자기도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신나하는 모습에 나도 마음이 간질간질 따뜻했다. 엄마를 말이라면서 이름이 sommer에 성이 bacon이라고 작명도 해주고, 자기 수레를 끌으라고 이랴이랴 채찍질에 당근도 주고 하면서 그 큰 민속촌을 쏘다녔는데, 나이 든 엄마지만 그나마 이런 걸 해줄 수 있는 체력이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나도 덕분에 즐겁게 구경도 하고 놀다 왔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또 이 나라의 학제도 덕분에 배우면서 학창생활이 어땠는지 되감아 가면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 초등학교 학창 시절 생각하면 3학년과 6학년의 담임선생님이 기억나는데, 특히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 떠오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쉬는시간에 선생님이 우리랑 놀아주시던 기억이다. 성함도 기억나지 않는데, 전두환씨처럼 머리가 벗겨지셨지만 또 얼굴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이들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는데, 연배가 어떠셨는지 모르겠다. 그 선생님이 자기는 기마자세로 단단히 자세를 잡고 서서 옆에서 순서대로 달려오는 애들 배를 잡고 일종의 공중제비를 돌릴 수 있게 해서 반대편 옆쪽으로 다시 뛰어가게 세워주시는 놀이였다. 많은 애들이 했는지, 아니면 내가 해달라고 해서 해주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기억이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선생님과 어떤 관계를 쌓고 커갈지 궁금하고, 그걸 옆에서 간접적이나마 겪고 볼 걸 생각하니 설레기도 한다.

애를 키우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는 다 지나고 나니 애를 키우며 내가 겪는 많은 일들과 배움이 인생을 새롭게 채워주는구나 싶어서 이런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해주는 아이에게, 그 시간을 같이 행복하게 나누고 채워가주는 옌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부모에게서 받는 것과 또 다른 차원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눠주는 아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실내암벽타기

코로나와 관련된 모든 제한조치가 해제된 이른 봄부터 다시 벽을 타기 시작했으니 대충 반년 쯤 벽을 탄 것 같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번, 많으면 서너번도 탔다. 잡생각 따위는 자리잡을 새 없이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이 내 성향에 정말 잘 맞는다. 손의 피부가 거칠어지고 손가락 마디마디와 발가락, 손 발 여기저기에 생기는 굳은 살은 안타깝지만, 사실 크게 상관은 없다. 안느는 거 같은데 천천히 늘고, 어제까지 반밖에 못올라가던 루트를 그보다 몇미터 더 올라가고, 완등하고, 중간에 실패없이 완등을 할 수 있게 되고, 기존에는 생각도 못했던 루트를 올라가게 되고, 기존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오를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강해지게 된다.

클라이밍 자체도 좋지만, 소셜라이징 측면에서도 클라이밍 경험은 긍정적이다. 낯선 사람과 만나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을 크게 즐겨하지 않지만, 벽을 타는 공간에서는 사람들과 대화를 조금 더 쉽게 나눌 수 있다. 어제만 해도 나의 클라이밍 파트너가 일찍 암장을 떠나야 하는 관계로 홀로 남게 되었는데, 딱 봐도 나처럼 혼자서 벽을 타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말을 걸었다. 암장을 새로이 바꾼 체코 대학원생이었는데,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벽을 타고 내려와서 바톤 터치를 하고 장비를 교대하는 타이밍이면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아도 장비를 교대할때마다 대화를 하면 그 또한 제법 시간이 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뭘 공부하는지, 언제부터 등반을 했는지부터 가벼운 사생활까지도. 때로는 잘 모르는 사이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에서는 털어놓기 어려운 일도 가벼운 주제처럼 털어놓을 수 있기도 하고, 생사를 서로의 손에 맡기고 서로의 등반을 응원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유대감과 친밀감이 빠르게 생기게 된다.

엄지발가락 부상으로 암벽타기와 발레 모두를 잠시 중단했다가 암벽등반에 먼저 복귀한지 두주째인데, 발도 천천히 좋아지고 해서 언제 발레에 복귀를 해야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발레를 줄이고 나니 내가 너무 바쁘게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발레를 일주일에 한번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발레를 한동안 확 쉴까 하는 마음도 드는데, 옌스는 취미를 몇개는 가져 두는 것이 지금과 같이 뭔 일이 있어서 하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해서 – 그 말이 맞기도 하고 – 고민이다. 우선 발레는 를르베 상태로 오래 균형을 잡고 서있으면서도 발가락에 통증이 없을 때까지는 쉬기로…

흰 머리, 맨 얼굴, 운동화

겉머리는 까만데, 머리를 뒤적뒤적 들춰보면 들춘 곳마다 서너가닥씩 흰머리가 보인다. 얼굴색도 딱히 찝어 말하긴 어렵지만 조금 칙칙해져 보이는데, 아마 피부의 탱탱함이 줄어듦에 따라 조금씩 얼굴이 쳐지기도 하고 해서 그래 보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꺼워서 불만이던 눈두덩이는 가면 갈수록 얇아져서 눈을 부릅뜨면 쌍꺼풀이 만들어질 것 같은 기세다.

원래도 화장이라 함은 어디 갈때나 하는 것이었기에 이곳에서도 똑같이 하고 살지만, 요즘은 어디 갈때도 정말 큰 행사가 아니고서는 (그나마도 회사에서 하는 행사 등은 제외하고) 화장을 하지를 않으니 일년에 화장을 한번 할까 말까한다. 그나마 화장을 하다 안했을 땐 안한 얼굴이 칙칙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요즘 화장을 정말 드물게 하다보니 맨얼굴이 나쁘지 않게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쫙 붙여 묶어 틀어올린 머리가 나에게 잘 어울리고, 상체는 적당히 타이트하게 붙는 옷, 하체는 루스하게 여유가 있는 옷이 잘 맡는다는 것 등을 알면서 옷을 사는 것이 쉬워졌다. 중앙부처가 아닌 이상 옷을 상당히 캐주얼하게 입어도 되는 공공부문에서 일을 하다보니 옷을 특별히 많이 갖고 있을 필요도 없다. 신발은 변호사나, 컨설팅 이런데 일하는 거 아니면 운동화를 신는 게 전혀 흠이 되지 않는 문화인 이상 더이상 구두를 신지 않는다. 입고 나를 치장하는 부분에서 시간이나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해졌는지…

체력도 예전같지는 않고, 조금만 다쳐도 낫는게 오래걸리는 걸 보면 나이가 드는 걸 느끼는데, 생각의 면에서 갖게 되는 많은 여유를 따져보면 나이가 드는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높아진 물가, 달라진 식생활

물가가 많이 올랐다. 전기료가 오르니 남들 유류대만큼은 아니더라도 통근과 관련된 비용도 오르고, 특히 식생활과 관련되서는 물가가 오르는 것을 크게 느낀다. 많이 오른 품목은 20-30%씩 오르기도 했으니 같은 메뉴를 유지한다면 장바구니 지출이 엄청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나 에너지 비용이 오를 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살던대로 살 수는 없는 법. 생활비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비를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맛있지만 다소 고가 카테고리에 속하는 브랜드를 많이 판매하는 동네 수퍼에서 장을 보다가 적당한 퀄리티와 좀 더 표준적인 카테고리에 속하는 브랜드를 많이 판매하는 다른 동네 수퍼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크게 가격을 신경쓰지 않고 매달 정해진 예산에만 맞춰 장을 보다가 단가에 조금 더 신경을 기울여가며 장을 보다 보니 가격 차이가 10% 가까이 차이나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래도 덴마크 통화가 원화 대비 약 180-190배의 가치를 지니다보니 표시되는 단가 차이가 1~2 크로나 밖에 차이가 안난다해도 개당 단가 자체가 10크로나다라 하면 큰 차이가 나게 되는데, 아무래도 1~2 크로나 차이는 기억에 크게 남지 않는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존에는 맛있는 브랜드, 고품질 제품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장을 봤다면, 이제는 그보다 하위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장을 본다. 대충 비슷한 제품을 산다고 해도 크게 지출을 낮출 수 있으니 물가가 올라도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하는 품목도 있으니 모든 품목에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할 수 있으면 그리한다.

예전에는 육류 소비 비중이 높았는데, 하나가 고기류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육류를 아주 가끔 구입하고, 구입하더라도 가공육 중심으로 소량만 구입해서 메뉴 자체를 채식 중심으로 돌리기 시작하니 지출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채식의 비중을 크게 늘리게 되었는데, 기후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이라서 괜찮다. 나의 창의력을 조금 더 올려야 한다는 부분은 있지만, 그렇게 식생활도 바꿀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진짜 이 전쟁은 어디로 흘러갈 것이며, 앞으로의 추운 겨울은 어떨 것인가? 공공건물은 모두 실내기온 상한을 19도로 설정했고, 옌스네 회사도 “연대의식”에 따라 공공건물은 아니지만 19도 상한을 따라간다고 한다. (실제 비용 측면에서라도 그리 하고 싶을텐데 공공이 한다니까 얼씨구나 따라한 것일 거라 생각한다.) 공공건물은 이에 더불어 벌써 온수를 잠궜다. 벌써 물이 차던데… 한겨울 찬 물로 손 씻으면 참 손이 시려울 것 같다. 커피랑 차를 많이 마시겠네. 한국에서 한 때 14도의 추운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큰 도움은 되겠지만, 사람이 고통은 금방 잊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이야 19도라 해도 나중에 18도로 내려갈 수도 있는거고. 집도 마찬가지고.. 빨리 전쟁은 끝나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성도 빨리 없애고 재생에너지로 얼른 전환을 했으면 좋겠다. 비행기도 비싸지니 여행은 최소화하고…

심리상담을 통한 내적변화를 느낀다

매주 받던 심리상담을 격주에 한번으로 줄였다. 한달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상황이 많이 좋아진 덕이다. 요즘은 굳이 업무가 아니더라도 일과 관련된 생활에 있어서 나를 두렵거나 불편하게 해 피하고자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그 때 내 마음 속 소리가 어떤 건지, 그 소리가 왜 내 마음속의 소리에 불과한지 설명도 듣고, 실제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봐야할지, 그래서 이 마음 속 근거없는 두려움의 소리가 근거 없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이런 두려움들이 하등에 두려울 것이 없는지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모든 상담의 기본 원리는 간단한데 내 뇌가 오랫동안 움직여왔던 자동화된 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돌리는 거라 일정 기간 반복적인 상담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정말 짧은 시간동안 내가 오랜 시간 갖고 있던 두려움들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아서 오히려 이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사실 같은 이유로 지난 직장을 관둔건데 그때 이런 도움을 받았으면 달랐을까? 모르겠다. 우선 상담 자체를 받음에 있어서 언어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부족함을 나도 많이 느끼고 있던터라 그게 내 머리속 두려움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때 상담을 받았으면 더 좋아졌을지도 모르지만. 뭐 그걸 지금 생각해서 달라질 건 없으니 그냥 지금이라도 상담을 받고 내 안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일이다.

어제 직원전체 워크샵이 있었는데, 조직내 피드백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떻게 피드백하는 것이 좋은지, 피드백을 어떻게 조직내 일상화할 수 있는지 다뤘다. 나의 경험과 그게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가 희망하는 변화의 방향은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상대의 의견을 물음으로서 비판이 아니라 대화의 시작으로 풀어가라는 것 하나. 피드백의 대상이 자신이 호감의 대상이 되고, 충분한 능력이 있으며, 같은 그룹의 소속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상대가 방어태세로 전환하지 않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하나. 이 둘이 어제 워크샵의 큰 레슨이었다.

아침식사, 스낵, 점심식사, 야외 활동, 저녁식사까지 타 부서에서 일하며 적당히 알고 지내는 직원들, 그보다 잘 알고 지내는 직원들 등과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할 시간이 있었는데, 심리상담가가 나에게 주었던 태스크들을 시행해보고난 후 상담가가 했던 이야기들처럼 내 마음 편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침 바로 전날 있었던 상담에서 네트워킹하는 걸 참 불편해하는 나에게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덕이다. 내 두려움에 나를 보느라 타인을 보는 것을 잘 못하고 있었음도 느꼈고, 앞으로 좀 더 편하게 여러 상황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상황에 잘 맞는 상담가를 만난 것이 참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인생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었고 앞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여러 상황에 노출될 것이 기대도 되고… 여러모로 새롭다.

나는 행동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살아왔다. 그게 마음의 병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런 사람이고 싶은데,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은데, 남들이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할텐데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면 나에게 척을 지지 않을까, 내가 이런 모습이 되어서 진가를 보여줘야지, 내가 무시할만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해 줄 거야, 등과 같은 형태로 내 마음에 짐을 지워주고 독이 되게끔 하는 생각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참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었구나.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어디까지 물어봐도 될까? 상대의 말을 깊게 듣고 그 뒤에 할 말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는 답을 어떻게 해야할까를 더 고민하느라 듣는 것을 소홀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했다.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고였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대한 생각은 떨치고, 지금 내가 뭘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든 나라는 사람은 그냥 나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뭔가 궤변같으면서도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거나, 모순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간간히 하곤 했는데, 나를 정의하려 하지 말고 나는 내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최선의 결정을 내려 행동하고, 그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면 또 그걸 수정해서 행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기로 하니 뭔가 이상적인 잣대나 엄격한 잣대로 나 뿐 아니라 타인을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일도 떨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다시금 스물스물 돌아오려하면 그걸 알아차리고 다시금 그런 생각을 내려놓는 방법도 배웠다.

타인의 평가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 평가를 내 존재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행동에 대해 평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되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법도 배웠다.

여러가지로 나에게 자유를 선사한 심리상담에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이를 권유한 옌스에게도 고맙고…

가면증후군, nervous breakdown, 심리상담

나의 능력은 타인의 기대만큼 미치지 못한다, 내 동료들은 나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이상으로 평가한다, 사실 다른 이들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동료들이 알아채면 나는 배척당할 것 같다, 타인이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줘도 그것은 그냥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함인 것 같고, 그 말을 하는 속내에는 크게 실망을 했을 것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을 하고자 할 수록 그 내 머릿 속 타인의 기대와 내 능력의 괴리에 생각이 미쳐 불안감이 커져 집중을 하기 어려워지고, 또 그러다보니 그 불안이 더 커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여름휴가와 각자 다른 재택근무의 날로 내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던 어느날 도저히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고 breakdown이 찾아왔다. 회사를 관두고 뭔가 지적인 능력을 덜 써도 되고 사람과의 교류가 더 많은 일을 찾아야할 것 같다고 느낀 바로 그날이었다. 옌스는 지난 번 직장을 관둔것과 같은 패턴이라고 느끼고, 회사를 관두는 일을 하기 전에 심리상담을 해보라고 권했다. 

주 1회 하고 있는 상담은 이번주면 네번째 상담인데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내 무의식적 사고의 흐름을 읽어내고 어떤 점을 시도해 이를 바꿀 것인지 보는 인지행동요법인데 이에 따라 행동한 지난 3주간 마음이 크게 편해졌다. 상사와 동료와도 내 상황을 공유하고, 상사가 상담가와 통화를 통해 진행상황을 공유하며 진행되고 있어 일관성있게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내 이야기를 공유하며  나뿐 아니라 비슷한 이유로 상담이나 진료를 받고 있거나 받았던 경험을 가진 동료들도 있다는 점, 내가 갖고 있던 두려움은 나만이 갖고 있는게 아니라는 점 등을 느꼈다. 

사실 그냥 원칙적인 이야기로만 두고 보면 크게 마음이 와닿지 않았을 이야기인데, 내 상황을 기술하고 그에 맞춰 내 마음의 소리를 인지하고 이에 반응하는 방법에 대해 듣다보니 마음에 쏙 와닿는다. 비용이 비싸 처음엔 망설였지만, 회사를 관두는 것도 고민했던 마당에, 관뒀으면 받지 못했을 급여를 생각해보니 못할 것도 없었다.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 

이렇게 지나고 보니 직전 직장에서 관뒀을 때 심리상담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 그 사이에 얻은 일도 많고 는 것도 많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면증후군에 시달리다가 공황/우울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이면 관두는 패턴을 이제라도 알아차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마흔두살 단상

어제가 생일이었다. 만으로 마흔두살이 되었으니 불혹의 나이렸다. 엄마가 좋은 나이라고 하시면서 본인이 그 나이였을 땐 자신의 결정에 있어서 확신이 있고 흔들리지 않았던 거 같다고 하셨는데, 딱 불혹의 나이와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그게 맞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별로 없던 흰머리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으니 신체의 나이로만 보면 분명 내리막기를 걷고 있는데, 마음의 상태로만 보면 그 어느때보다 평온하다. 내 결정에 대해 확신이 있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에는 그마만한 확신을 실어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통털어보면 지금이 가장 강단있는 결정을 내리고, 내린 결정에 대해 뒤돌아보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았다. 실패해도 잃을게 별로 없던 이십대의 시절보다 오히려 가진 게 많아 잃을 게 많은 지금 왜 더 안정적인지. 마음에 괴로움이 없이 평안한지.

첫번째로 가진게 적당히 있고, 앞으로도 일궈낼 수 있는 기반이 어느정도 닦여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초조함이 크지 않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알고 앞으로의 길에 대한 대충의 방향성이 있다. 둘째로 나의 앞날에 대한 기대가 현실적이 되어서 내 앞날에 대한 기대와 현실사이에 큰 괴리가 없다. 또 나같은 경우 커리어를 바꿔서 전문성을 필요로하는 필드로 들어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보니 자리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등 따숩게 몸을 누일 곳이 있고, 배 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고, 춥지 않게 옷을 입을 수 있고, 나를 포함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에서 너무 힘겨워 하지 않고 같이 나아갈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라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이 자체도 사실 꽤나 야심찬 목표일 수 있는데, 이삼십대에는 정확히 뭔지 정의되지 않는 성공이라는 데 목말라있던 것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정말 모르게해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나마 그 중에서 확고했던 게 있다면 해외 생활이었는데, 한국에서의 나라는 사람은 토박이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같이 느껴지는 구석이 있던지라 채 열살이 되기 전부터 남녀평등에 있어서 앞서간 서양에 살고 싶었다. 코트라에서의 삶은 한시적인 주재원인데다가 일적으로 한국문화에 묶여있어서 덴마크에서 살아도 별로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삼십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옌스를 만나고 서서히 이곳 문화에 젖어들고, 덴마크 직장을 구하고 이 안에서 내 네트워크가 얇은 것부터 깊은 것까지 촘촘히 연결되고 난 지금에 들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위로 올라가야한다는 초조함이 없어졌다. 그 어느때보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없고 평온하다.

평온해서 그런지 생각도 단순해지고, 특별히 업다운이 될 일도 없고, 블로그도 조용해지는 것 같다. 그것도 나쁘진 않네.

나와 함께 케이크를 굽겠다고 함께하는 너가 있어서 행복해.

5월의 출근길

바쁜 아침 출근길. 고속도로보다 국도가 빠른 날이면 국도를 선택한다. 요며칠 봄이 정말 완연하게 왔음을 실감한다. 연초록의 잎이 앙상했던 나뭇가지를 촘촘히 메우기 시작해 보송보송함이 사방에 느껴지기 시작할때면 출근길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인간이 하나의 동물임을 느끼는 것은 이처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내 몸과 감정이 함께 일렁이는 것을 느낄 때이다. 봄바람이 분다.

차를 내리는데 회사를 둘러싼 숲에서 청량한 바람이 불어내린다. 살짝 차갑지만 몸이 움추러들지 않을 정도의 차가움. 그래서 폐부의 깊숙한 곳까지 상쾌함을 느끼고 싶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큰 숨을 들이키고 있음을 발견하고 주변을 둘러보게된다.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바쁜 일상에 눈길조차 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고 관찰한다. 못봤던 의자, 표지판, 화분이 보인다.

오월이다. 일년의 삼분지일이 지났다. 어느새. 8개월이 남았다 생각하면 많이 남은 것 같은데, 삼분지 일이 지나갔다 생각했더니 일년의 큰 뭉터기가 잘려나간 기분이다. 시간은 정말 잘 지난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 아끼는 것으로 촘촘히 잘 채워가야지.

Peter Brixtofte 다큐멘터리를 보고…

오래간만에 다큐멘터리를 봤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시장이었던 사람을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눠 세 편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정치인으로서 성공적이던 매력적인 사람으로서의 한 면, 그 성공적이던 정치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던 시기의 모습 한 면, 아버지로서의 모습 한 면. 그는 분명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정치의 방향으로 올곧게 걷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 방향이 남들이 생각하는 바른 방향과 많이 차이가 있었고 그로 인해 4년의 징역살이를 했지만 말이다. 알콜중독에 오래간 찌들어 있었지만, 자신은 그냥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가졌을 뿐이고 문제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 마지막에 그를 고쳐보려 노력했지만 너무 늦어서 충분한 의지가 생길 수 없는 상태에 빠졌던 사람. 결국 그 말로는 홀로 있던 아파트에서 맞이한 쓸쓸한 죽음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세 명의 딸과 연인과의 관계.

단편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참 복잡미묘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이 정치적으로 큰 실패를 했고, 그 경제적인 여파는 이 시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인간적으로 연민도 많이 느껴지고, 가족과의 관계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라. 항상 강하고 문제를 돌파하는 모습을 보이며, 정치라는 것을 통해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인데, 자신의 문제에서는 객관적이 되지 못하는 점,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점 등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크기의 문제야 달라도 다들 그런 점들이 있지 않는가 하며 인간적으로 아픔을 느꼈다. 그의 인생의 말로에 대해서. 전두환씨나 노태우씨처럼 누군가를 학살한 사람도 아니니 더 그런 인간적인 연민을 더 느낀 게 아닌가 싶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가장 크게 느낀 건 나를 단단히 하고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아끼는 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거다. 그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고 나도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나의 문제를 직시하고 회피하지 말자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