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피소드 – 하나와 옌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아침부터 회의준비를 하느라 바쁜데 옌스에게 문자가 왔다. 하나 보육원에서 픽업해서 집에 같이 있다고. 하나가 보육원 모래밭에서 나오면서 모래밭 담장을 넘다가 고꾸라져서 입술이 찢어졌단다. 보육원에서는 우선 상황이 생기자마자 피가 많이 나서 옌스에게 전화를 했고, 옌스가 서둘러 미팅 몇개만 캔슬하고 돌아와서 보육원에 갔다 한다. 컴퓨터는 켜지도 못했으니 하나 드롭하고 자전거 꺼내타고 회사에 가는데 15분에서 20분 걸리니, 그 사이에 생긴 일이였나보다. 대충 일이 벌어지고 20분정도만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피는 대충 멎어있었단다. 입에는 오렌지맛 아이스바를 물고서. 애를 놀래지 않게 지혈하고 통증도 경감시킬 요량으로 아이스바를 물렸다는데, 나쁘지 않은 방법인 거 같다. 우선 집에 데리고 와서 상처를 깨끗이 씻고 의사이자 세아이의 엄마인 시누이에게 페이스타임을 해보려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단다. 그래서 치과의사셨던 시부모님도 입주변 상처에 대해서 대충 답변을 주실 거 같아 페이스타임을 해보니, 입술은 그정도 상처에 봉합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같고 애도 전혀 이에 대한 통증을 호소하지 않으니 혹시 양치질할 때 잇몸에 부푸는 물집이 잡히는지, 치아 색깔이 변하는지 정도만 관찰하라고 하셨다. 소독약으로 소독 해주고 대충 보아하니 입술이 찢어지긴 했지만 입술 선 밖으로는 괜찮았다. 나는 다 씻기고 난 뒤를 봤으니 그런데, 옌스는 피떡이 앉은 얼굴을 봤었을터라 놀랐을 거 같다.

나도 미팅 내 발표순서를 바꿔서 내 발표를 맨 앞으로 돌리고 자리를 일찍 떴다. 옌스가 집에서 일을 할 동안 나는 하나를 데리고 밖에 유모차에 눕혀 낮잠을 재웠다. 애가 집에서는 침대에서 밤에만 자는 관계로 낮잠은 반드시 유모차에서 재우는데, 옌스가 일을 해야해서 두시반이 되도록 낮잠을 안자고 버텼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하나가 평소보다 길게 거의 두시간이 되도록 낮잠을 자고 수퍼마켓에 갔다. 가서 보육원 애들을 만나 부모들와 애들이랑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 반에 있는 루너라는 아이는 하나랑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났더라. 다른 형태로 낙상사고가 있었다는데, 하루 차이로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나다니. 우연도 참. 회사에서 애 얼굴에 상처나서 옌스랑 일 교대해주러 좀 가봐야 한다니 상사나 선임 모두 자기네 애들 경험담을 알려주면서 애들 사고는 너무 자주 일어나니 그 마음 잘 안다고 위로를 해주더라.

그런데 수퍼에서 또 만난 한 여자애를 빤히 보더니 쟤는 사라예요. 하고 이야기하는거 아닌가. 내가 모르는 보육원 친구인가 해서 걔 이름이 사라냐고 그 애 아빠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 보육원 이름을 얘기하며 걔도 거기 보내냐 물어보니 아니라는 거다. 걔는 우리 하나를 모르는 듯 했다. 어떻게 알지? 싶었는데, 이 동네 살아서 여기 놀이터에서 만났나? 라는 거다. 음… 하나가 애들 이름 외우고 물건 주인 외우는 거 좋아해서 유아원으로 올라간 첫날 애들 이름을 다 외웠다며 놀랬다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 랜덤하게도 기억할 수도 있는가 하며 팔불출 엄마처럼 놀라워했다. 마침 그 수퍼에서 하나 보육원 미술선생님도 만났는데, 하나 넘어졌을 때 바로 옆에 있었다며 하루종일 하나 괜찮았을 지 걱정했다고, 여기서 만나서 괜찮다고 듣고 나니 안심이 된다고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오히려 아이스크림도 물려주고 얼른 옌스에게 전화해주고 하루종일 신경도 쓰셨다고 해주시는게 내가 고마웠는데… 사실 내가 애를 봐도 있을 수 있는 사고인지라 보육원 탓을 할 일은 아니니 말이다.

내가 머리 빗어주고 묶어주고 나면 내 머리도 빗어주겠다, 묶어주겠다 나서고, 뭐 내가 하나만 하면 자기도 혼자 하겠다고 “Jeg skal selv prøve!” (내가 직접 해볼거예요.) 하고 말하며 나서는 것도 다 대견하고 예쁘다. 나나 옌스가 침대 옆에서 책 읽어주고 잠을 재우는데, 자기가 자기 인형 재워주겠다고 침대 옆에 앉아서 책을 집어 드는 것이 웃기고 엄마나 아빠가 낮잠을 자면 자기가 아끼는 인형과 이불을 갖고 와서 우리 위에 올려두는 것도 웃기다. 자기가 그들이 필요하듯 우리도 그들이 필요할 거라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다.

덴마크어는 말하기도 잘 하고 한국어는 듣기 중심으로만 잘하지만, 하나가 문장을 만들어 말할 때 부정어와 목적어 위치가 간혹 잘못되는 걸 보고 내가 발견한 건 한국어가 덴마크어에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다는 거다. 간식으로 싸주는 딸기 먹은 이야기를 할 때 Jeg jordbær spiste. 라며 나는 딸기 먹었다를 직역해서 말한다든지 Jeg ikke spiser 라면서 나는 안먹을거다라고 이야기하든지 말이다. 처음엔 그냥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자주 말해서 생각이 필요없는 문장은 실수를 안하고 자기가 생각해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 때 이런 실수를 하더라. 요즘에서야 한국어 단어도 책읽으면서 같이 한국어로 따라하며 열심히 익히지 그 전엔 내가 한국어로 읽어주면 덴마크어로 같은 이야기를 따라하곤 했다. 주언어 위에 다른 이중언어를 쌓으면 된다고 하니 그냥 별 부담없이 언어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하나는 잘 할 거 같다. 요즘 과거형도 슬슬 익히기 시작하는 거 같아서 애들의 언어 발달의 신묘함에 놀래고 있다.

오늘은 이 밖에 옌스가 연출한 아주 웃기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나랑 방에서 놀고 있는데 옌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보고 화장실로 와보라는 거다. 되게 민망하면서도 웃긴 표정을 지어서 변기가 막힌 건 아닌거 같고 뭐지? 싶어서 봤더니 변기 위 플라스틱 변좌가 깨진거다. 헐. 어쩌면 그런 일이!! 자기 엉덩이가 큰 건 알았지만 이렇게 무거웠냐면서 웃어대는데. 옌스가 예전에 날렵한 경주용 카약에 자기 엉덩이가 꽉 껴서 힘들었다고 하며 자기 엉덩이 안큰데…라길래 나보다 당신 엉덩이가 크다고 해준 적이 있었다. 키가 커서 상대적으로 작은 거 뿐이지 우리가 옆으로 누워있으면 내 골반 높이보다 당신 골반 높이가 더 높다고, 그리고 엉덩이도 그렇게 살이 없는 건 아니다 라고 해줬었는데. 흠흠. 내가 자주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거라고 말도 안되게 장난으로 우기길래, 나는 변비가 잦은 사람이라 오래는 앉아있어도 자주는 안앉아있는다, 자주 앉는 건 당신이라고 해줬다. 남의 집에서 그렇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지… 그런데 변좌는 어떻게 바꾸지? 나사를 어떻게 푸는걸까? 유튜브를 연구해봐야겠네…

하나의 화해

아직도 간혹 밤에 이유 모르게 하나가 거세게 울며 엄마를 찾는 날이 있다. 흔하진 않지만 간혹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다. 18개월 이후 그런 게 심했던 시기가 있긴 했지만 빈도는 줄어들었다. 주로 엄마를 거세게 찾아서 옌스가 달래기 어렵고, 내가 달랜다 해도 우선은 울어내서 자기가 감정을 한템포 추스를 때까진 건드리면 안된다. 초반엔 달래본다고 안아도 봤는데 오히려 더 애의 감정폭발만 자극하고 말았다.

우선 건드리지 말고 옆에서 조금 달래주다가 하나가 저리 가라고 Gå væk! Lad være!를 외치면 (진짜 속된 말로 지랄한다는 말이 딱 맞을 상태로) 매트리스 깔고 누워서 자라고 달래는 말만 반복해준다. 그러고 자기가 감정을 추스르고 꾹꾹 소리내며 자는 가 싶으면 반드시 한번 또 일어나 서럽게 소리높여 운다. 아마 엄마랑 화해를 꼭 해야하는 거 같다. 이때는 안아달라고 하는 거 보면 말이다. 좀 안아주고 엄마는 하나 사랑한다 그런 말 나누고 다시 토닥여주면 쌓인 울움으로 여전히 끅끅하며 잠든다. 그리고 두어번 깨어나 짧게 소리높여 울고 달래주는 걸 반복하며 잔다. 이런 날은 나는 제대로 자긴 어려운 게 잠이 토막나기 때문이다.

다른 것보다 재미있는 건 그 화해의 프로세스이다. 이 나이의 아이도, 아니 이미 18개월부터 엄마와의 화해가 (나야 감정 상한게 없으니 하나 혼자만의 화해이긴 하지만) 필요하다는 것이 놀랍다. 내가 너무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과소평가를 해온 것 같다. 이렇게 놀라운 존재인데 말이다.

요즘은 why not에 해당하는 말에 꽂혔다. 안된다는 말에 대한 답이 아니라 하나의 웃긴 행동에 우리가 웃겨서 그걸 왜 그렇게 했냐고 묻는 질문에 하는 답으로 말이다. 내 긴 치마를 입는 모숨이 너무 웃겨서 물어보니 Hvorfor ikke? 이런다. 얼마나 웃겼는지.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우리를 더욱 웃게 만들련지 이 장난꾸러기. 🙂

다르긴 하지만 여기도 이상향의 천국은 아니다.

내일은 임원진 회의에 처음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실제 데이터를 갖고 모델을 테스트해 본 결과를 보고하는 거라 내용면에서는 긴장할 것이 없긴 하지만 인사해본 적 없는 비담당 임원들도 동석하는 자리에서 발표를 하는 건 어떨런지 모르겠다.

아직도 상사와 임원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다. 상사나 선임과 이야기하다가 부청장과 청장 (둘다 공교롭게 야콥이다.) 을 칭할 때 야콥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야콥이 이렇게 지시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참 불편하다. 뭐랄까… 미스터 할, 미스터 샴부엌 이런식으로 이야기하면 편할 것 같은데 말이다.

대화 중간중간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 지난 주 전화로 다른 청 사람과 오랜 시간 통화했을 때 그 사람은 중간중간 내 이름을 불러가며 대화를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좋은 생각이다, 해인.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해인. 나도 네 생각해 동의한다, 해인. 그래서 그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해인. 이처럼 중간중간 이름을 부르니까 나도 애써 마티아스라는 이름을 애써 껴 봤다. 그렇게 하다보면 좀 더 친밀해지는 거 같긴 한데 (앞으로 협업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라 그래서 나쁠 건 없다.) 그러기까지는 입에 붙이려고 노력 많이 해야할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여기도 직장에 이상한 사람 있고, 그래서 갈등도 다 있게 마련이다. 커리어 컬럼에 “상사가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일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직장에 가기 힘들 때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것들이 실리는 게 흔한 일이니 말이다. 물론 그럴 경우 직장에서 문제시 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에서보다 그런 사람을 마주할 확률은 낮지만, 없지는 않다. 옌스는 우리 회사 분위기가 특별하다고 한다. 공공부문인데다가 정치적으로 독립성이 커서 장관이 좌지우지하기 어려운 기관에 전문성이 큰 기관이라 그런 거 같다고 한다. 그 점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사람 사는 곳 다를 것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생각났는데, 덴마크의 평등에 대해 과하게 왜곡된 정보가 한국에 떠돌고 있는 것 같다. 급여 부분에서 청소부를 하든 의사를 하든 급여가 별 차이가 없다든가 하는 정보 말이다. 그럴리가. 여기가 사회주의라는 건 공산주의라는 게 아니다. 나라에서 많은 부분의 복지를 민간에 맡기지 않고 공공에서 책임지고 떠맡는다는 것이고 그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걷는다는 것 뿐이지, 경제가 돌아가는 기본 방식은 자본주의다. 신체노동을 수반하는 직업이나 사무직이나 기본적으로 최저 세전 임금수준이 높고, 직업이 없는 사람을 받쳐주는 사회안전망 덕에 빈곤선에 있는 사람이 적다는 거지 그 사람들이 어떤 조직의 위에 앉아 많은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장기간의 교육이 필요한 전문직만큼 월소득이 높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의 경우 직업전선에 일찍 뛰어들어서 생애 소득 기간이 길어지니까 생애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고연봉자와 소득 차이가 더 줄어들 것이다.

시청청소부가 의사와 결혼을 한다던데 청소부 세후 소득이 월 기준 35000크로나(원화 600만원) 쯤 되고 의사는 별로 안번다 이런 글이 돈다고 이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글이 한인회에 올라왔다. 나도 블로그 여기저기에서 본 글이었다. 개인의 세율은 개개인별로 차이가 많이 나서 별로 안내는 사람도 있지만, 세후 소득이 35000크로나쯤 되려면 노동시장분담금, 개인소득세 해서 거의 50%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한다. 주변에 물어보니 가족들을 포함에 직원들도 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한다. 우리 청도 예산 절감에 대한 압박을 상시 받고 있고 그건 시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예산 문제로 여러가지 서비스를 외주로 돌리는 건 덴마크 공공부문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거라 우리 청의 경우 외주로 돌아가 있다. 그리고 청소부문은 난민이나 비서구국가에서 이주온 이민자가 거의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교, 스포츠센터, 호텔, 기차역, 백화점 등 할 것 없이 청소하는 사람은 다 피부색이 어두운 이민자들이다. 간혹 한국의 단점을 강조하려 복지가 강하다고 이야기되는 덴마크를 예로 들어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한국을 못살 나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곳이라고 완전한 천국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직업에 상관없이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굴에 불쾌함을 드러내는 일 없이 (네 따위가 감히? 이런 류의 불쾌함) 말을 섞는다는 점에서 직업에 대한 차별이나 귀천 의식이 드러나지 않는 건 분명하다. 어쩌면 아주 부자가 아닌 한 18세 독립을 하면서 수퍼마켓에서 일하거나 신문을 돌리고, 청소를 하는 등의 아르바이트를 다 해본 경험이 있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아껴야 상대가 나를 아껴준다는 의식이 발로한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도 성공하고 싶어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어하고 내 배우자가 비슷한 백그라운드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보다 그런 사람이 적고, 그걸 표현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니까 그게 표면에 드러나는 일이 없을 지는 몰라도 그런게 아예 없는 게 아니다. (그런 걸 표현하는 경우 교양이 없는 사람이 경우나 교육을 잘 못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가 클 이나라가 앞으로도 살기 좋은 나라였으면 좋겠지만, 여기도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고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잘 사는 부모들이 자식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부모 세대의 불평등아 자식세대로 고착되는 경향은 서서히 증가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런 사회의 역동성이 사람들의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 주고 사회의 안전성과 시민간의 신뢰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큰 틀이 바뀌지는 않지만 곧 있을 선거가 (나는 투표권이 없지만) 조금이나마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3월 말 회사일상

간만에 집에서 두시간 야근을 했다. 집에 와서 애 픽업해 집 조금 치우고 저녁 요리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오면 8시가 넘으니 두시간 야근이면 자기 조금 전까지 하는 야근이다.

하루 7시간 반에서 8시간 반 사이로 칼같이 일하는 편인데 내일 아침 상사가 출근하기 전까지 보내야 하는 자료가 있어 (정확히는 오늘까지 보내는 건데) 별 수 없이 야근을 했다. 에너지청에서 업무문의로 온 전화가 있어 그걸로 한시간 반을 쓰지 않았다면 거의 회사에서 다 쓸 수 있었겠지만, 또 그 전화협의가 결론적으로는 나에게도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되서 불만은 없다. 하필 또 전화가 점심시간 30분을 끼고 와서 혼자 샌드위치를 들고와 자리에서 일하면서 먹었는데 그 덕에 오늘은 아무와도 말을 섞지 못하고 주구장창 일만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있는데, 일의 양이 적은 건 아니고 연말 성과평가에 내 보고서 진행상황이 별도 평가 항목으로 잡혀있고 그 비중이 커서 직장에선 정말 바쁘다. 이 와중에 일어난 발목부상이며 교통사고가 일신상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업무에 지장을 주는 형태가 아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진짜 이쯤이면 내 운이 진짜 좋은 거 같다.

임원진 보고 자료 송부 시한이 시스템으로 칼같이 정해져 있어서 그 전에 못보내면 보고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한다. 그건 최대한 지양해야 할 일이라 내일은 상사가 봐야 한다. 마음에 드는 보고서가 나왔으니 상사와 임원진 반응이 궁금하다.

요즘 직장에 스크린도어를 두 개나 설치하고 CCTV를 병행해 두 개 설치한단다. 정문 입구와 외부 출입구로 연결된 타워에만 두 개 있는 CCTV이니 총 세 개였는데 총 다섯개로 늘린다는 거다. 공공부문에 개인정보 보호 부문에서 물리적인 보호 강화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아져서 취하는 조치라고 한다. 손님 오고가는 부분에서 생기는 문제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것 같다. 필요하니까 설치하긴 하는데 CCTV를 설치하는 건 반갑진 않다. 덴마크 사람들은 사생활 보호에서 오는 자유에 대한 가치를 감시로 인한 사건 예방 효과에서 오는 안전에 대한 가치보다 더 높게 쳐서 CCTV를 찾아보기가 힘든 편이다. 사실 뭐 감시당한다 해서 상관없을 삶을 살고 있지만, 이렇게 축적되는 시각정보가 앞으로 어떻게 사용될 지 모르니까 (중국처럼 수퍼스코어 산출한다든지) 이런 감시시설의 설치는 반갑지 않다.

반갑지 않은 공사로 인해 드릴로 바닥과 계단 철근에 구멍을 뚫는 소리가 어제, 오늘 귀를 울렸다. 보고서 쓸 땐 음악을 안듣는 걸 선호하는데, 거리가 꽤 되는데도 은근히 신경을 긁는 소리가 지속되서 이어폰을 귀에 꼽고 엉덩이 꼭 붙이고 앉아있었다. 안그래도 바빠 사람들과 교감할 새가 없긴 하지만 주변 소식에 더욱더 둔해질 수 밖에 없는 하루였다.

옌스는 월요일엔 갈비찜이 오늘은 비빔밥이 점심메뉴 중 하나로 나왔다는데, 우린 아시아 음식으로 가봐야 커리나 조금 더 이국적이어서 굴소스 볶음밥 정도로 끝난다. 음식이야 맛도 좋고 가격도 싸서 만족은 하는데, 그래도 아시아 음식도 조금 더 나오면 더욱 감사하겠다.

이제 회사생활의 적응은 끝난 거 같다. 이번 3월을 끝으로 수습기간이 완전히 끝난다. 덴마크 회사는 해고 기간만 지키면 해고는 매우 자유롭기 때문에 수습이 끝났다고 공무원이 철밥통인 그런 직장은 아니다. 그래도 수습기간은 해고 기간이 진짜 짧아서 수습기간이 끝났다는 건 나에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제 이 회사 들어와서 해볼 건 다 해본 거 같다. 보고서도 쓰고, 보고도 하고,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고, 전화 상담도 하고, 전화 업무협의도 하고, 남의 전화 받아서 메모도 남겨서 넘겨도 주고. 새로운 게 없으니 긴장은 많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전화받으면서 ‘Forsyningssekretariatet, Det er Haein Lee Gundgaard.’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뭔가 긴 것 같이 느껴지지만 옛날에 ‘안녕하십니까. KOTRA 코펜하겐 무역관 이해인입니다.’라고 말했던 것 생각하면 음절 개수로는 지금이 더 적다.

이제 씻고 자야겠다. 내일 또 여섯시에 일어나야하니까. 그러고보니 이번주말이면 썸머타임이 시작되는구나. 한시간의 시차에 적응기간을 또 가져야 하는구나. 하나는 그 시차에 얼마나 잘 적응해줄까? 흠… Det er et godt spørgsmål…

3월 셋째주 기록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옌스와 소파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서 쉬고 있다. 요즘 일하면서 출퇴근 하면서 한국 노래를 많이 듣고 있다. 노래의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라든가 가사를 외우는 노래라든가 하는 게 별로 없는 탓에 그냥 그때 그때 떠오르는 장르의 노래를 듣는게 일상인데, 요즘은 어쩌다 god 노래를 듣게 된 이후로 한국 노래를 듣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20대엔 별로 좋은 지 몰랐는데 30대가 되면서 그 맛이 참 느껴지고 좋아졌다. 어찌나 이렇게 감미롭고 구슬픈지. K-pop 말고 다른 한국 노래는 없냐던 옌스도 김광석 노래는 마음에 든다고 한다. 밥딜런과 닐영 등의 가수를 좋아하는 옌스에게 김광석 노래는 나쁘지 않은 초이스일 거라 생각을 했는데 역시…

오늘 차를 인도받았다. 직불카드로 이렇게 큰 금액을 결제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결제를 할 수 있었다. 딜러도 괜찮다고 했고 은행 홈페이지에도 잔고내 결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또 사람 마음이 불안하려면 여러가지로 불안하니까. 매연은 싫다는 옌스와 전기자동차의 승차감을 좋아하는 내가 의기투합하여 고른 건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코나 전기자동차였다. 한번 충전에 500킬로미터를 뛸 수 있는 차는 인기가 너무 좋아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300킬로미터 차량에서 고르면 재고로 이미 있는 건 14일 안에 받을 수 있고 아니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했다. 우리는 재고에서 고르겠다 했더니 흰색, 빨간색, 애시드옐로우 색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애시드옐로우 색으로 골랐다. 흰색은 지루하고, 빨간색은 우리 취향이 아니고, 애시드옐로우색은 옌스가 좋아하는 밝은 연두색과도 맡닿아 있어서 쉽게 골랐다. 6개월 기다리는 건 우리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었으니까.

Acid yellow KONA electric

차값은 옌스가 냈으니 보험료는 내가 내라 해서 보험료는 내가 내기로 했다. 보험도 현대가 노르웨이 보험사랑 제휴해서 하는 것으로 골랐다. 옌스가 내 한국사랑을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 참 좋다. 핸드폰 바꿀 때도 중국폰이 조금 더 싸서 그걸로 바꿀까 하면, 한국거 사라고 밀어주거나, 이번 자동차 살 때도 가급적이면 한국차 사라고 하는 것 말이다. 일본차는 사지 말라고 말하는 센스(?)까지 겸비하다니. 😉

하나는 엄청 잘 크고 있다. 모토릭 부분에서도 언어발달에서도 자기 나이보다 훨씬 빠른 발달을 보이고 있고 주변을 잘 챙기는 성격이란다. 덴마크어가 빠르게 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한국어 사용은 매우 자제하더니 요즘 갑자기 한국어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애를 낳기 전과 애가 돌이 되기 전엔 꼭 한국어로만 말할 거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과 내가 뻔히 덴마크어로 소통하는 게 보이는데 덴마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내 한국어 질문에 하나가 덴마크어로 답을 하면 맞다고 하면서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 반복해 주고, 하나가 질문을 덴마크어로 하면 내가 그걸 또 한국어로 확인해준 후 한국어로 답을 해준다. 한국어로는 하나가 뜻을 모르는 단어의 경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한번 해주고 한국어로 세번 쯤 반복해 답을 해주는데 내가 하는 게 맞는 지 알 방법은 없지만 그냥 밀고 나갈 뿐이다.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 꾸준히 해봐야지.

고집도 성깔도 있지만 엄마가 단호하게 굴 때는 받아들일 줄도 알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울만큼 울고 나면 툭툭 털고 일어날 줄도 아는 쿨한 아가씨다. 발레춤 추는 걸 좋아해서 주말에 밖에 나갈 준비하면 발레춤추러 가냐고 하고 머리 빗으면 엉킨 머리 푸느라 땡기는 것 싫어하면서도 자기 전에는 꼭 머리 빗어달라고 하며 등을 내어주는 귀여운 아가씨다. 보육원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몸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 정말 잘 아는 작은 장난꾸러기지만 친구가 울면 가서 안아줄 줄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찍어가며 티비 프로그램을 골라 보지만 막상 조금만 무서운 게 나오면 엄마아빠를 불러 끌어안고 보는 겁도 있는 아가씨.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모두 섞어 갖고 태어난 하나. 우리에겐 너무나 축복같고 감사한 세상에서 가장 이쁜 아이이다. 다른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 사진을 열어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이쁘고 총명하냐며 탄복하는 팔불출이다. 다들 지금이 제일 이쁠 때라 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가보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단계는 돌을 시점으로 지난 거 같고 아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시기는 안온 것 같고 말이다. 즐겨야지. 머리와 가슴에 이 시기를 아로새기듯 기억해야겠다.

TV에 푹 빠진 하나

나는 이제 수습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얼마전 상사와 평가 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 1-2주동안 덴마크어로 일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건지 걱정하면서 혹시 잘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말하니, 절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라면서 지금 해당 경제분석 프로젝트 너무나 순항하고 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냐면서 놀라더라. 나도 지금은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나도 이걸 할 수 있음도 알고, 덴마크어로 보고서 쓰고 발표하고 이런 일련의 것이 다 가능함을 알기에 그런 걱정은 안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시간이 약이라고, 아직 점심시간 대화는 챌린징하지만 일 면에서는 다행히 잘 굴러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미래 상하수도 요금에 꽤나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기업, 이익단체 뿐 아니라 우리 경영진도 관심을 지대하게 갖고 있다. 경영진과의 미팅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보고의 비중이 늘어나고 하면서 내 이름도 더이상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고 기억해주게 되었으니 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최소한 잘릴 일이 없을 거란 생각과 함께 조직도 나의 경험을 염가에 쓰고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조직이나 나나 윈윈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발도 이제는 많이 나아져서 어제부로 목발은 졸업했다. 아직 절뚝거리며 걷고 통증과 함께 운동반경이 꽤 제한되어 있지만 천천히 집중해서 조심스레 걸을 땐 절뚝거리는 걸 거의 없앨 수 있을 정도이니 완전 감동이다. 삐면 전치 2주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2주정도면 그래도 심한 건 없어지니 말이다.

내일은 시부모님을 뵈러 보언홀름에 갈 거라 대충 가방을 쌌는데 하룻밤만 자고 올 거라 짐이 많지 않아 마무리는 내일 지으면 될 것 같다. 10시 비행기니 서둘러 나가야 하긴 하지만서도 하나 짐은 하나 자는 동안 쌀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나가 얼마나 좋아할런지.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방문은 가을로 미뤄두고 지금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방문으로 족해야지. 덕분에 우리도 코펜하겐을 잠시나마 벗어나보고. 저녁식사 준비도 손에서 놓고 시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 잘 먹고 잘 쉬다 와야지. 다행히 날씨도 나쁘지 않을 거 같으니 말이다. 이제 가서 자야지.

사무실 낙상 사고

상사와 미팅을 하러 가던 중 사무실 계단에서 굴렀다. 우리 사무실이 1층과 2층 사이의 메자닌같은 층이라 계단이 한 6개, 8개가 기역자 모양으로 해서 총 14개 정도 있는 거 같다. 상사와 잠깐 이야기하고 몸을 돌려 힐끗 계단을 보고 노트에 잠시 눈을 둔 찰나, 난 바닥에 다 내려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느꼈다. 허공에 발을 딛으면서 휘청하다가 발가락 끝이 발레에서 포인트를 하든 다음 계단을 딛으며 빠각 소리를 내며 반대로 약간 꺾어지듯 힘을 받았다. 아마 진짜 꺾어진 건 아니었겠지만 방향은 그랬다. 옆으로 꺾어진 게 아니라 앞으로 떨어지며 사지가 땅에 같이 떨어진 것 같다.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넘어진 후 바로 취한 자세가 기어가는 자세였으니 말이다. 마루에 카페트까지 깔려있어서 다른 데는 아픈 곳이 하나도 없었는데 발목이 너무 아팠다. 넘어지면 민망해서 아파도 보통 괜찮다고 뱉고 보는데, 얼마나 아프던지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고통을 참아보려 했는데 그게 안되고 상사 앞이라 욕은 안하고 싶었는데 For fanden (이런 지옥같은) 이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며칠 전 읽었던 신문기사에 나온 덴마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욕을 하는 게 당근 (Gulerød) 처럼 의미없는 단어를 내뱉는 것보다 고통을 덜 느껴지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그래. 그 와중에 욕 안해보려고 당근! 이런 말을 외친다고 생각해보면 짜증만 났을 것 같다.

내가 굴러넘어지는 소리를 들은 위층 사람 한명이 자기 팀에 있는 남자 동료 둘을 데리고 오고, 상사는 응급실에 접수를 해주고 택시를 불러줬다. 건장한 남자 동료 둘이 나를 일으켜 세워서 조금 걸어가다가 바퀴 달린 의자를 옆 팀에 있는 사람이 건내줘서 그걸로 나를 운반해 엘리베이터에 태워줬다. 그리고 택시 타는 데까지는 조금 걸을 수 밖에 없어서 거진 6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나를 양쪽에서 부축해 옮겨줬다. 나도 내가 무거운 걸 한발 띌 때마다 느꼈는데, 그들은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감사해라. 초콜렛이라도 사다가 선물을 해야겠다.

회사에서 자동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에 예약을 넣어뒀던터라 바로 촉진해보고 엑스레이 오더를 받아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정형외과 의사의 진단을 받아보니 뼈는 부러지지 않았고, 삔 거라했다. 내가 들은 빠각 소리에 대한 설명으로는 어쩌면 발목을 이루는 작은 뼈들 중 실금이 간 게 있을 수 있지만 있더라도 사진에 나오지 않는 경미한 수준이니 사용을 자제하면서 자연치유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 했다. 진통제로 파노딜과 이부프로펜을 주고 압박붕대만 감아준 뒤 집에 가라고 했다. 통증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었지만 삔 것에 불과하다니 너무 감사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병원에서 나를 응급실에서 촬영실로 운반해주는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차분하면서도 에너지가 충만하고 상냥한 사람이길래 잠깐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기분이 좋아졌다. 병원 예산 절감으로 병원 근무 여건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드는데, 어떤지, 일은 마음에 드는지 등을 물어봤는데, 자기에겐 참 잘 맞는다고 했다. 사람들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자기는 긴 시간 앉아서 공부하는 게 적성에도 안맞았고, 그런 포지션에 일하는 건 안맞는다며. 중간중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면 지나가면서 빠르게 도와주는데 참 자기 일에 충실하고 열심히다 싶었다. 하긴. 내가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상냥하고 친철했다. 임신 출산기간에 만난 사람들, 하나 입원했을 때, 시아버지 입원하셨을 때 등등 꽤 여러번 가본 병원들인데 그때마다 마음으로 대한다는 느낌?

사실 더 크게 다쳤을 수 있는데, 삔 것으로 끝나서 너무 다행이다. 거기에다가 동네에 시니어샵이 있어서 옌스가 퇴근길에 바로 사다줘서 발목을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보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부러진 거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수술해야 하면 어쩌나, 하나는? 일은? 엄청 머리가 복잡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물론 주말에 하나 발레 수업도 못갔고, 회사에서 하는 아이들을 위한 fastelavnsfest도 못했지만… 그거야 또 다시 하면 되는 것들이니까. 진짜 참 운도 좋다니까…

점심식사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식판에 음식도 받고, 접시도 치우고, 커피도 마실 수 있었다. 타인에게 이런 도움을 받는 게 익숙하지 않지만 감사히 받고, 나도 나중에 또 기회가 있을 때 타인을 돕는 것으로 갚아야겠다. 친절한 동료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화장실을 가는 길에 그 옆을 지나가던, HR 팀원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보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스키여행이라도 다녀왔냐고 묻길래, 사무실 계단에서 지난주 금요일에 굴렀다고 답을 했다. 그랬더니, 그건 산재라며, 리포팅을 했냐고 묻는거다. 아, 이건 내가 그냥 구른거라 산재는 아닌거 같다고 하니, 사무실에서 일어난 모든 사고는 다 산재의 일환이라며 조직은 이런 모든 사고를 산재청에 보고할 의무가 있으니 바로 보고하라고 담당자를 친절히 알려줬다. 혹여나 이 부상이 오래 가면 어쩌냐고 하면서 말이다. 아니 이런 철저한 직업의식이라니! 나야 고맙지.

그리고 일요일에 드디어 차를 주문했는데, 다음주 금요일에 차를 인수하면 한동안 출퇴근을 차로 하면서 발에 휴식을 줄 수 있길 기대해봐야겠다. 이미 그때 다 나아있음 어쩔 수 없이 계속 기차로 출근하고. 🙂 차를 샀으니 사무실에 케이크를 또 한번 사갖고 가야겠구나. 좋은 일이 있을 땐 케이크로 기쁨을 나누는 재미있는 덴마크 문화.

3월 첫 주,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일기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10월 가을방학 일주일을 포함해 그 전주 약간으로 해서 한국 순수체류일정을 10박 10일로 할 수 있도록. 부모님이 이번주에 홍천으로 이사하시면서 나의 주민등록도 홍천으로 같이 옮겨지게 되었고 이번 한국방문 일정의 대부분은 홍천을 중심으로 해 강원도 방문이 주를 이루게 될 것 같다. 공항에서부터 차를 렌트해 바로 홍천으로 갈 예정이다. 그때면 하나도 엄청 많이 커있을 거고, 비행도 조금 더 수월해질 것 같다. 비행기에서 한번도 걷도록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비행기에선 자리를 뜨지 않고 잘 앉아있어서 한국 방문 두번 모두가 쉬웠는데 앞으로는 더 쉬울테니 다행이다. 서울 일정은 출국 전 삼일로 잡았는데, 조금 더 길면 좋겠지만서도 아직은 하나가 어려서 같이 할 수 있는 것도 조금 제한되어 있고 돌아다니기 힘드니까 서울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건 하나가 더 큰 뒤로 미뤄두려한다. 한국가면 블루보틀 커피가 성수동에 문을 열었을테니 거기 한번 가보는 게 계획에 들어있고, 그 외엔 호텔 잡은 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번엔 한국의 자연을 하나에게 많이 보여줄 생각이다.

상사에게 부활절 휴가와 가을 휴가를 메일로 승인 받았다. 이 기간 중 휴가를 쓰고 싶은데 괜찮은가? 라고 메일을 보내니, 물론이지! 캘린더에만 마킹해둬! 라고 답이 왔다. 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쌈빡하게 승인을 받다니. 참 구질구질하게 설명해가며 휴가를 쓰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왜 꼭 그렇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엔 행사가 많다. 토요일엔 발레 첫수업이 기다리고 있고 일요일엔 자동차를 사고 회사에서 열리는 fastelavnfest에 갈 예정이다. 오늘 드디어 차고 열쇠를 받았는데, 월 400크로나 내고 빌리는 차고라 그런지 안에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전기자동차이니 매연 걱정도 없고, 앞으로도 안에는 깔끔하게 잘 관리해야겠다. 현대 자동차에서 나온 KONA 전기 자동차가 대형배터리 버전으로 2019년 3대 전기자동차로 선정되었다고 하는데, 그 버전은 너무 인기가 좋고 배터리 수급에 문제가 있어서 1년은 기다려야 한다 해서 패스. 옌스나 나나 내연기관차는 더이상 구입하지 않고 싶기도 하고 해서 전기자동차를 구입하고 싶었는데, 가급적이면 한국차를 구입해야하지 않겠냐는 옌스 의견에 따라 현대로 당첨. 사실 KONA 자동차 디자인이 마음에 든게 큰 몫을 한 것 같다. 다만 우리는 빨리 자동차를 사고 싶은 관계로 소형배터리 버전으로 구입하기로 했다. 그건 색상 및 옵션에 따른 재고 현황에 따라 짧게는 14일, 길게는 한달이면 구할 수 있을 거란다. 자동차 보험은 보험회사마다 가격 차이가 꽤나 큰 것 같다. 우리는 현대차와 손을 잡고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르웨이 자동차보험사를 선택할 거 같은데, 덴마크 보험회사의 반값이다. 자동차회사와 서비스센터를 같이 끼고 보험을 제공함으로서 본인-대리인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한 걸까? 차 사고 났을 때 차량 렌트를 제공하는 비용 등에서 자동차회사를 끼고 있으면 싸진 걸까? 자세한 보장내역을 봐야 알겠지만 큰 차이가 없을 걸로 예상되는데… 음…

하나는 유아원으로 옮긴 이후 엄청 조잘조잘 하루 있었던 일과를 설명해준다. 한국어는 매우 제한되어있다. 대부분 덴마크어다. 이걸 못알아듣는다고 해야하는 건지 그냥 듣고 한국말로 번역해 내용을 반복해주면서 그냥 듣고 넘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우선 후자의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한글학교 다닐 나이가 되어 또래 한국친구들을 조금 더 만나게 되면 달라지려나? 유아원은 마음에 든다. 기존에 보육원에 보육지원을 와서 알던 선생님들도 있고, 반대로 보육원에서 유아원으로 자리를 옮긴 선생님도 있어서 하나에게도 연속성이 느껴져서 좋다. 한 지붕아래 보육원, 유아원, 유치원 등으로 삼단계 구분되어 있는 시스템이라 애들이 서로 잘 알며 클 수 있어서 부모도 안심이 된다. 어느새 옮긴지 2주가 넘었다. 친한 친구들도 생겨서 누구누구랑 뭐하고 놀았다고 이야기도 해주고 참… 세월 참 빠르다. 여긴 이렇게 애들이 어려서부터 같이 쭉 크는 경우가 많아서 깊게 사귀는 오랜 친구들이 많은데 이게 외국인 입장이나 타지에서 이주해온 덴마크인 입장에서 친구를 새로 사귀기 어렵게 만드는 진입장벽 역할도 한다. 다 장단점이 있겠지… 발레학원 시작하면 거기서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될테니 그것도 좋다. 지금은 이미 발레복에 빠져서 이번 토요일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벌써 수요일이 다 지나갔다. 또 일하고 퇴근해서 애 픽업하고 조금 놀다가 밥 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치우면 저녁이 다 가겠지. 그러면 또 하루가 가고 하루가 가고… 벌써 3월의 첫주가 다 가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차곡차곡 일이 진척이 되고 있으니 문제야 없지만 너무 시간이 정신없이 간다는 생각이다. 워킹맘이 된 이래로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즈인가 어디에 hygge가 가고 pyt이 뜬다는 기사가 나온 모양이다. 애들이 뭔가 잘 해보려했는데 안되서 속상해 하거나 원하는데로 안풀려서, 아니면 남이 기분 상하게 해서 마음 상해 있으면 어른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가 Pyt med det! 다. 작년인가 언제 한번 요즘 애들에게 특히 이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굳이 한국식으로 번역하자면, 다 털어버려. 신경쓰지마. 정도될 거 같다. 교수가 애들 키우다 보면 애들이 자기가 꼭 하고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엄청 좌절하고 분노하는 시기가 온다고 하면서 그때마다 자기가 해주는 이야기가 Pyt med det라고 했는데, 그 때 읽었던 기사를 떠올렸었다. 그런데 그게 또 새로운 단어로 뜨고 있다니 참 덴마크의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갖는구나 싶었다. 실패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툭 털어버리라는 건데, 어찌보면 크게 야심차지 않고 그래서 작은데서 행복을 찾는 평균적인 덴마크인의 특성을 보여주는 말인 것 같다. 얼마전에 유아원에서 하나를 픽업하는데, 간식을 먹고 있던 아이들 중 하나가 자기 빵 안먹겠다니까 선생님이 그래도 괜찮아. 라고 하고, 그러다가 빵 다시 먹겠다니까 그래도 괜찮아 라고 하는 걸 봤다. 그러다가 과일을 먹겠다고 하다가 또 안먹겠다고 변덕을 부리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참 느긋하게 말을 해주는데,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문제 없다는 그 느긋함에서 Pyt med det의 저변에 흐르는 덴마크인의 여유있는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회사에서 잘 안풀리는 일 있을 때 초조해하지 말고 Pyt med det!를 외치며 감정을 리셋하고 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덴마크, 월세가 비싼데 요즘 집 사야 하나?

한국에서만 살다가 해외, 그 중에서도 덴마크로 처음 나와 사는 사람들은 막대한 월세에 놀란다. 이 돈이 다달이 사그라지는 돈이라니!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전세제도라는 특유의 제도와 제대로만 사두면 가격이 올라 수익을 보장해주는 경험을 (직접경험 뿐 아니라 타인을 통한 간접 경험 포함) 한 한국인으로서는 다달이 남한테 가져다 바치는 이 돈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에서 가족에게 돈을 빌리거나 여기에서 다소 무리해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겠다는 경우를 종종 봤다. 빚을 내도 남에게 갖다 바치는 이자비용이라는 건 생기지만 그래도 내가 납입한 것만큼 원금은 남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월세는 내고 남는 내것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사실 그건 꼭 맞는 말이 아니다. 월세를 내는 기간 나는 그 집에 살 권리를 갖는다. 그리고 부동산의 가격변동에 대한 리스크를 지지 않는다. 물론 가격 하락에 대한 리스크가 없는 만큼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혜를 입는 것도 없다. 다만 내가 납입한 것만큼 원금이 남는 건 집을 사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이 돈을 어디 다른데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만약 월세와 집을 사는데 드는 이자비용이 비슷하게 든다면 날아가는 돈은 똑같은 거이고, 집을 사는 사람이 원금을 집에 묻어두는 것처럼 월세를 사는 사람이 원금에 해당하는 돈을 다른 자산에 묻어둔다면 달라질 게 없다.

집이 다른 자산에 비해 유동 상승세를 장기간 보일 게 예상이 된다면 물론 집을 사는게 이득일 수 있다. 그렇지만 꼭 그런게 아니라면 집을 사는 게 현명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코펜하겐과 인근지역, 덴마크 주요 대도시 아파트는 가격 상승세가 꺾여서 올해는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 2018년 초나 지금이나 가격이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땐 아파트를 사는 게 현명하지 않다. 자기 현찰이 100%로 사는 거이든 아니든 현명하지 않은데 부채를 끼고 집을 사는 경우 매우 현명하지 않은 결정이다. 부동산 가치의 하락은 내 자본만 잠식할 뿐 부채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큰 집이 필요해지든 어떤 이유로든 이런 상태에서 이사를 해야할 경우 집을 팔고 빚더미에 앉게되면 힘들어진다. 코펜하겐 인근 지역 주택은 앞으로도 연간 1-2%는 상승할 예정이라 한다. 그러니 굳이 사려면 주택을 사도록 하자. 상승장에서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건 내 자본이 커지는 데 있어 레버리지 효과를 주니 말이다. 집이라는 게 워낙 비싼 재화다보니 약간의 상승과 큰 레버리지 효과가 결합되면 내 자산의 빠른 증식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다른 자산의 수익률이 더 좋다면 어떤 게 좋을까? 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상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퍼지고 있는 타이밍이라면 굳이 집을 사야 한다는 압박에서 빠져나와도 좋지 않을까? 예를 들어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내가 집을 사지 않았다 해도 내 돈이 놀지 않고 어딘가에 투자되어 불어나는 거니 월세 끝에 남는 게 없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월세를 내고 살다가 진짜 마음에 드는, 운명같은 집이나 아파트를 만나면 그때 살 수 있고 말이다. 굳이 집을 사야 한다는 압박에, 사람들이 우리만큼 이사를 자주 다니지 않아 좋은 집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닌 덴마크 주거용 부동산 시장에서 섣불리 안좋은 부동산을 사는 악수를 두는 것도 피할 수 있고 말이다.

덴마크에는 스웨덴 기업인 Nordnet을 통해 저렴하게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한국 주식은 거래가 안되지만 유럽 및 미국 시장 주식은 거래가 가능하다. 어쩌면 일본이나 싱가폴, 홍콩 상장 주식은 거래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빚내서 주식을 하는 게 아니라면 주식의 일중, 주중, 월중 등락에 민감해 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등락폭이 적고 꾸준히 상승하는 종목에 투자할 수 있다. 채권보다는 리스크가 아무래도 크니까 안정적 종목도 수익률이 제법 되는 편이고.

한국에서 주식은 거의 해보지 않았지만 별로 번 것도 잃은 것도 없이 정리하고 끝났었는데, 덴마크 나와서 지난 3년간 꾸준히 주식투자를 해온 결과 가중평균 수익률이 30%가 넘게 나왔다. 부부가 반씩 나눠서 저축하듯 은퇴 자금 확보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꽤나 쏠쏠하다. 물론 지금의 주식시장 활황은 저금리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어 금리 인상이 되면 주식시장은 조정을 받을 게 거의 분명하다. 그런데 주택시장도 금리가 오르면 크게 영향을 받을 거다. 다만 레버리지의 유무와 투자 시기, 투자시점의 가격 수준 등에 따라 가계가 받는 영향이 달라질 건데 거래 비용과 거래 기간, 여러가지 거래에 따른 부수 비용 등을 감안하면 지금같은 불확실성의 시기에 꼭 주택투자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주식투자가 주택투자보다 나은 투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서 “내집 장만”이라는 문화적 고정관념을 그대로 갖고 와서 이 나라의 월세 제도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덴마크는 다른 나라보다 이민자가 살기 어려운 곳인가?

스포티파이의 덴마크 음악 플레이리스트 중 Det’ hyggeligt.을 듣다보니 Rasmus Seebach의 노래가 나온다. 옌스가 옆에 있었으면 애들 듣는 음악 듣는다고 지나가며 한마디 했을텐데 옌스는 스케이트를 타러 나간 관계로 편안히 즐길 수 있다. 옌스가 무슨 뜻으로 하는 이야기인 줄은 아는데, 이 플레이리스트는 나에겐 나쁘지 않다. 옌스가 좋아하는 음악도 좋지만 그냥 난 두루두루 좋다.

난 덴마크에서 특별히 나쁘거나 여기라 더 힘든 경험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살기 참 좋은 나라라 생각하지만, 그건 역시나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극히 개인적인 판단인 것 같다. 덴마크에서의 삶은 그간의 내 삶이 대충 그러했듯이 약간의 난관과 한두번의 큰 부침은 있어도 극복하지 못할 정도가 아닌 정도의 어려움만 있었고, 운도 따라줘서 꽤나 순탄했던 것 같다. 어쩌면 힘든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이 돼서 아주 강도높은 난관에 부딪히지 않으면 그걸 큰 난관이라 못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덴마크에서의 첫 1년 반은 진짜 힘들었는데, 일 때문이었다. 같이 일하다 잘렸던 부하직원과의 끊임없는 갈등, 본사에서 무수히 떨어지는 일을 처리하기엔 나와 같이 일하는 비중이 가장 컸던 그 직원과의 갈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자르기에는 인사상의 갈등을 피하고 싶었던 상사의 바램과 얽혀 참 힘들었다. 직장생활 첫 3년을 은행에서 업무양으로도 인간관계면에서도 너무 힘들게 시작했던 덕에 KOTRA 생활이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작은 무역관에서의 업무부하와 관리 중심의 업무 내용에 대한 권태, 인사상 부하직원과의 갈등, 이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사의 마음에 대한 인간적 이해와 동시에 내 결단을 내려주지 않음에 대한 원망, 본사파견직원과 현지직원 및 상사와의 복잡한 포지셔닝 등이 버무려져서 너무 힘들었다. 그 1년 반은 사실 사생활이 많이 없고 업무로 많이 채워졌던 시기였던 탓에 덴마크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적응은 그때 이미 많이 이뤄졌고. 하여간 새로 발령받아 일하게 되었던 무역관 생활이 나에겐 덴마크 생활 중 가장 큰 고비였고, 이건 관두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일이라 생각해 관두면서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물론 그 와중에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그건 덴마크 사람들도 사는 도시를 옮기면 비슷하게 겪는 일이라 외국인이라 생기는 일이라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고 나머지는 인도 근무시 겪던 생활 여건을 생각하면 다 너무 감사하고 소중했기 때문에 불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처음 1년을 생각해보면 도시가 너무 작다는 점, 한식 재료가 부족한 점, 발레 학원이나 이런 걸 근무시간 이후에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상점들이 너무 일찍 닫는다는 것, 병원 예약이 한국보다 힘든 점, 외식이 비싼 점 등에서 불평할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게 단점이 뒤집어보면 동전의 양면처럼 장점이 되는 경우가 있듯이 그때 불평했던 점들이 지금엔 그게 크게 느껴지지 않거나 오히려 장점처럼 느끼게 된 경우도 있고 왜 우리와 다른 시스템이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불평거리가 사라진 것 같다.

비자 받는 과정이 그 다음 최대의 난관이었던 거 같다. 준외교관 비자를 그린카드 비자로 바꾸려다가 그게 너무 특이 케이스라 꼬였는데 8개월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대학원 입학허가가 나고 비자 신청을 하라는 안내를 학교로부터 받았는데, 비자 당국이 그럼 그건 그거대로 신청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가 양쪽 비자가 다른 비자가 진행되기를 기다리면서 아무 것도 진행이 안되서 비자 변경 신청한지 11개월이 되도록 무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린카드 비자 신청을 취소하고 학생비자 신청만 남겼는데, 이미 석사 학위가 있어서 비자를 못내줄 거 같은데 소명하라는 우편을 받고 뒤집어졌던 적이 있다. 그 덕에 우리가 11월에 예정되어 있던 결혼식을 8월말로 옮겨 가족 없이 우리끼리만 치르고 11월엔 피로연만 하게 되었고. 결혼식을 옮긴 건 또 그 나름의 재미와 에피소드들이 있었기에 다 상관없고 좋았지만, 학생비자가 안나와서 결혼 전에 출국명령을 받으면 어쩌나 초조하고 긴장을 했던 게 엄청 스트레스였다. 물론 그 과정중에 비자당국과 메일과 전화로 얼마나 씨름을 했던지… 그건 그거대로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다 지나고 보면 에피소드로 남는 기억일 뿐이다.

이런 저런 과거의 기억을 들춰보면 나도 꽤나 어려운 일들이 많았던 거 같지만 또 결국 보면 나도 남들만큼, 남들도 나만큼 어려운 일들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겪었던 거 같다. 다만 난 그 모든 일들이 인도에서 겪었던 꿈같은 일상들에 비하면 다 너무 평탄하고 완만했다 느껴지니 지나고 생각하면 그냥 그렇구나 싶게 넘기는 거 같다. 물론 그걸 붙들고 계속 원망하고 미워하면 나만 힘드니까 그런 것도 있고.

그렇지만 어쨌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은 맞는 것 같다. 파울로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마침 묘사된 것처럼 어떤 순간 계기가 있을 때 신속하게 큰 결정들을 내렸고 그 결정이 큰 틀에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가까워지도록 나를 이끌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해외생활을 하고 싶었던 나는 MBA를 보내준다던 KB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불투명한 유학을 관두고 해외 직장생활이 보장된 KOTRA 이직을 시작으로 해서 인도와 덴마크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뿌리없이 떠도는 생활을 그만하고 싶다고 느끼던 시점엔 덴마크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도 덴마크에서 이룰 수 있게 되었고, 내가 하는 일이 어떤 회사에 돈을 벌어다주는 게 아니라 사회에 작든 크든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나를 그런 방향에 가깝게 보내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덴마크는 나하고 궁합이 맞는 곳인가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서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얕고 깊게 맺는 인연이 늘어가면서 그런 인연들이 소중하기 때문에 감사하다. 가깝게는 남편과 남편의 가족, 내 딸부터 해서 가까운 한국 친구들, 따뜻하고 친절한 보육원 선생님들, 살가운 이웃들, 직장 동료들이 소중하다. 멀게는 물건을 사며 작은 담소를 나누는 수퍼마켓이나 카페의 점원과 나와 나의 건강을 일차로 책임지는 주치의, 직장내에서나 출퇴근길 열차에서 자주 마주치며 인사를 주고 받는 사실은 낯모르는 사람들까지 다 내 하루하루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라 기쁘고 감사하다. 심지어 막대한 세금을 낼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여기 월급 수준도 그에 사실 맞춰져 있으니 세금을 많이 내는 자체가 크게 부담이 되는게 아니고, 그게 내 배우자와 내 배우자의 가족에게 다 돌아왔고, 내게도, 내 딸에게도 올 거니까.

비교는 우리를 참 힘들게 하는 거 같다. 물론 비교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냥 한국보다 좋은 점, 나쁜 점, 다른 나라보다 좋은 점, 나쁜 점을 알게 모르게 비교하다보면 힘든 순간이 온다. 그게 내가 인도에서 힘들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그냥 인도를 좋아하고 그 나라의 장점에 초점을 맞춘 사람들은 또 행복하게 인도생활도 하고 지내던데 나에겐 너무 힘들었던 건 그 끊임없는 비교 때문이었다. 차이가 느껴지는 거야 자연스러운 거긴 하지만 그걸 의식적으로 놓고 비교하다보면 그 차이가 항상 느껴질 거니까 그냥 내가 이곳에 녹아들기까지 좋은 점을 배우고 나쁜 점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면 받아들이면 삶이 조금 편해지는 거 같다. 물론 바꿀 수 있는 건 바꾸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 내가 떠나는 게 정답이다. 더이상은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과 어려움의 수준은 개인만이 알겠지만.

그리고 부모님과 옌스가 항상 이야기하듯 작은 것을 당연시 여기지 말고 감사하게 살고 좋은 일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또 이곳도 꼭 그리 살기 어려운 곳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친구네 가족과 우리집 플레이데이트… 그리고 자동차

간만에 손님을 초대했다. 옌스네 직장동료 가족으로 우리 결혼식에도 오고 우리도 그 집 애 세례식에도 가고 왕래도 잦은 집이다. 이미 옌스와 알고지낸 지 10년도 넘은 친구인데 둘째 애가 하나보다 5개월정도 큰 딸이다. 지금이야 또래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하나가 5개월 때 놀러왔을 때나 그 이후에 한번 우리가 놀러갔을 때와는 그 5개월차가 너무 컸다. 하나가 아기이기도 했고. 대학원 논문 쓰고 뭐하느라 바쁜데다가 초대하고 초대받은 게 여러번 애가 아픈 걸로 취소되면서 왕래가 줄어들었었다. 하나 못본지 너무 오래되었다며 놀러왔는데, 세상에 애들이 또래라 그런지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하나가 애들과 노는 것을 이해하기 시점 이후에 누군가가 우리집에 놀러온 적이 없다보니, 자기 장난감을 갖고 나눠 노는 것을 힘들어했다. 항상 우리가 놀러갔었다보니 그런 거 같다. 우리가 애가 하나고 상대가 애가 둘인 경우나, 상대방의 애가 하나보다 어린 경우 우리가 움직이는게 더 쉬워서 그랬던 거 같다. 처음에는 나눠 노는 걸 힘들어하더니 시간이 지날 수록 같이 잘 놀았다. 자기 좋아하는 장난감을 줬다가 또 막상 주고나니 힘들어 울기도 하고. 앞으로 조금 더 우리 집에서 모이는 것을 계획해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엔 카롤리나 안아주겠냐고, 카롤리나도 하나 안아주겠냐고 하니까 둘이 서로 다가가서 꼭 안아주는데 얼마나 귀엽던지. 잘 가라고 인사도 하고, 간 다음 카롤리나 와서 좋았냐고 하니까 좋았다고 하더라. 다음엔 우리가 놀러가겠노라 했다.

오늘 정말 오랫만에 내가 하나를 데리고 나가고 옌스가 청소를 했는데, 매번 내가 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계산하에 다 떠맡는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조금씩 불만이 쌓이는 것도 있었나보다. 아직 준비하지 못했던 5주년 기념 선물도 사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맛있는 아몬드크로아상도 먹고. 거의 지난 한달간 주말은 주로 동네에서 보내다보니 시내의 카페 투어를 못하고 있었는데 그또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나가 짧게 자고 일어난데다가 빨래 예약도 해둔 게 있어서 시내 투어는 한시간여만에 끝났지만 여러가지 처리할 일들을 빠르게 해내서 다행이었다.

내일은 전 직장 동료를 초대해서 오후 커피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청소며 빨래며 다 오늘 끝내놓았으니 내일은 좀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거다.

옌스와 차를 사는 문제로 상의를 계속 하고 있었는데 우선 차를 사기 전에 주차공간부터 신청해야 하지 않냐 하고 있었던 차, 빈 차고 하나와 외부 주차공간 하나 해서 두 공간에 대한 임대 신청을 받는다는 공고를 봤다. 자주 생기는 일이 아니라 얼른 신청부터 해봤는데, 덜컥 차고 할당을 받았다. 다음달부터 임대하는 거라, 이제 차를 사는 일만 남았다. 우선 전기차를 사는 걸로 했는데 어떤 차를 살 것인지 고민을 하고 있다. 우선 현대차의 코나라는 자동차의 전기차 모델이 유럽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같아 그걸 제일 우선순위로 두고 알아보려 한다. 당장 다음 주말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풀타임 직장을 가진 부모에게 주말은 정말 바쁜 것 같다. 친구랑도 플레이데이트도 해야하는데. 주말은 정말 순식간이구나. 뭐 하긴 주중도 순식간이고. 그냥 한마디로 시간이 갈수록 빨리 흐르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