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크리스마스 또는 율

하나가 곧잘 같이 잘 노는 유치원 같은 반 친구가 코로나 확진이 됨에 따라, 우리 반은 당초 예정보다 일주일 당겨 크리스마스/신년 방학을 실시한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아이고… 아찔했다. 이틀 전 1월 초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가 일주일 남았는데… 이 모든 게 무산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코로나 검사결과 음성으로 판정된 그냥 호된 감기가 채 다 낫지도 않았는데, 혹시나 여기에 더해 코로나에 걸리면 내가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통상 기관지 쪽으로 호되게 앓는 경향이 많아서 말이다. 다행히 두차례에 걸친 코로나 검사 결과 하나는 음성으로 나왔고, 유치원에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확진된 아이가 유치원에 나온 시기가 아주 이른 잠복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만 해본다. 정말 다행이다.

덴마크도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인지라 율/jul(12월 25일)을 예수 탄신일(크리스마스)로 보내기는 하지만 율이란 게 사실 해가 가장 짧은 동지를 기념하는 페간 축제에 기독교의 확산을 위해 예수탄신일 색채를 입힌 것인지라 덴마크의 율 전통은 기독교적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선물을 가져다주는 율리맨 (julemand, 싼타클로스), 12월에 여러가지 귀여운 말썽을 피우는 율리니쎄 (julenisse, 작은 난쟁이족) 등이 제일 대표적이다. 천주교를 떠나 무신론자가 된 나와 원래 무신론자인 옌스에게 율은 그냥 명절일 뿐이다. 더이상 크리스마스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율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와 같다. 율은 어찌되었건 연중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특히 올해처럼 가족,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재택근무를 통해 사람간의 접촉을 극히 제한했던 해에 작게나마 가장 가까운 사람과 만나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는 건 더욱 소중한 일이다. 물론 코로나 감염자수를 늘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기에 정부의 권고사항도 다 잘 따르겠지만 말이다.

하나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고, 내 감기도 코로나가 아니었고,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시누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테스트를 받는다.) 3년반에 걸친 두바이 주재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시누네 가족에서 예년과 같은 율리 아픈 (juleaften, 크리스마스 이브)을 보낼 수 있었다. 보른홀름에서 페리를 타고 스웨덴 육로를 경유해 시누네로 오신 시부모님의 경우, 당신들이 셸란섬에 도착하신지 몇시간 이내에 스웨덴이 국경을 약 한달간 닫기로 하면서 – 덴마크에 이미 번진 감염성이 더 심한 영국 변종 코로나 확산을 차단한다며 국경을 갑작스레 차단했다 – 하마터면 못오실 뻔 했었다. 다행히 돌아가는 편은 다른 경로로 예약을 하실 수 있었는데, 코펜하겐행 페리는 신년까지 예약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니… 정말 이번 율은 여러모로 변수가 많았다.

구글포토가 옌스네 가족이랑 처음으로 보냈던 율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2014년 겨울, 즉 6년전 겨울에는 시누네 아이들도 정말 어렸고, 시누네 막내는 하나 나이 뻘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믿기지 않을만큼 다들 훌쩍 커 있다.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구나. 하긴 그 당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하나도 올해 율을 아주 흠뻑 즐길만큼 컸으니 시누네 애들이 그리 큰 게 놀라울 일이 아니구나. 모두가 이렇게 커버렸으니.

올해는 명절 노동을 조금 더 나눈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담당하기로 한 초콜렛을 직접 만들어갔다. 스모케야 (småkager)도 직접 구워 가져가고. 일은 크게 돕지 못했는데, 부엌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자리가 별로 없어서 식사 준비 중에 발생하는 요리 설겆이 잠깐 하는 거랑 점심 식사, 중간 티타임 테이블 정리 조금 돕는 걸로 끝났다. 예전엔 어떻게 도와야 하는 지 잘 몰라서 좌불안석했었는데, 이젠 그냥 좀 알아서 적극적으로 돕고 쉴 땐 편히 쉬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큰 집에 살기도 하고 요리도 잘하고 좋은 와인도 섭렵하고 있는 시누네가 이렇게 항상 명절을 담당하니까 우리는 좋은 음식과 술을 즐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하면 좋고 편한데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우린 하나에게 율리맨이란 건 없고,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이야기라 해뒀는데 시누이 남편이 율리맨 분장을 하고 베란다 문으로 들어와 하나에게 선물을 주고 가서 하나가 아주 깜빡 넘어갔다. 하나라는 애 있냐고 외치는데 하나가 나서서 그거 자기라고 하니까, 율리맨이 이거 오늘 마지막 선물이라면서 하나에게 선물을 주고 갔다. 하나가 율리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더니, “율리맨이 하나라는 애 있냐고 물어봐서, 제가 하나라고 했어요!”하면서 너무 좋아하는 거다. 우리도 깜짝쇼라서 배꼽을 잡고 웃으며 비디오로 녹화했는데, 하나가 자주 보여달라고 해서 벌써 몇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검사 받기 무섭다는 하나에게 이 검사 안받으면 밖에도 못나가고 율도 우리끼리만 보내야 한다고 해서 검사 협조를 유도했는데, 이렇게 기대한 이상 즐거웠던 율을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겠지 싶다.

이렇게 간만에 만난 걸 계기로 시누랑 그간의 업데이트를 나눴는데 두바이에 돌아와서 암병동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똑똑한 그녀도 내가 일터에서 느끼던 고충들을 비슷하게 겪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내 마음에도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병가를 내지 않고 그냥 관둔 것을 두고, 자기는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면서 자기도 지금 일이 너무 힘들면 병가 내지 않고 관둘 생각이라면서, 병가 낸다고 돌아올 때 일이 바뀌는 거 아닌 걸 아는 이상 병가 기간 중 스트레스가 더 쌓이면 쌓이지 없어지지 않을 거라 이야기를 해주는 거다. 일의 스트레스에서 도망쳤다는 내 표현에 그렇지 않다면서 이야기해주는 그녀가 참 고마웠다.

올해는 코로나 규제권고로 26일에 항상 모였던 대가족 모임이 취소되었는데,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좀 더 수월하고 편한 명절이 되었다. 각자 음식 한가지씩 해서 26일 점심에 Faxe에 가서 모이는데, 가는 시간이 한시간 반 걸리는 거 생각하면 새벽같이 음식을 한가지 해야해서 좋지만 동시에 부담도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2020년 연말은 여러모로 오붓하게 보내게 되지만 하나와 또 시댁 식구들과 즐거움과 따뜻함이 가득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기에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으로 또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게 돼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옌스라는 좋은 사람을 캤더니 고구마 줄거리처럼 좋은 사람들이 넝쿨째 들어오는구나 싶다.

이제 아홉밤만 자면 한국행이구나. 신년 저녁 우리 세가족 만찬 준비하는 거 하나만 하고 나면 2020년과 작별을 하겠구나. 여러가지 의미로 다사다난했던 2020년, 힘들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고마웠다 2020년! 이제는 2021년 잘 맞이해봐야지.

아이가 진정 스승이구나 싶은 순간

네돌이 불과 한달정도밖에 남지 않은 요즘, 하나가 부쩍 컸음을 새삼 느낀다.

얼마전에 하나가 볼일을 본다고 화장실을 가더니 뭔가 놀라거나 당황했을 때 낼 법한 소리를 질렀다. 나는 부엌에서 저녁식사 재료를 손질하며 손에 물을 뭍히고 있었고 옌스는 거실에서 재택근무의 연장을 하고 있었기에 조금 더 손쉽게 갈 수 있는 옌스가 하나에게 달려갔다. 갑자기 애가 화를 내는 비명 소리를 지르고 발로 바닥을 구르고 아빠에게 성을 내길래 나도 손의 물기를 닦고 화장실로 나섰더랬다.

“무슨 일이 생긴거예요?”

하나는 엄청 서럽게 울면서 아빠가 속옷을 들춰 엉덩이를 봤다며, 유치원에서도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미안하다면서 바지에 혹시 오줌 싼건가 놀래서 본 거라고 양해받을 만한 일인 것처럼 가벼이 넘겼는데, 애 마음은 아닌 거였다. ‘아… 애가 이제 사생활의 영역에 대한 개념이 생겼구나… 엄마나 아빠가 아직도 큰 일 보고나면 엉덩이를 닦아주니까 그런 점은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자기가 허락하지 않은 타이밍에서의 신체에 대한 사생활을 이제 존중해 줘야 하는 거구나… 우리가 미처 생각을 못했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엉덩이를 봐서 하나가 속이 상했어요?”

“오줌 쌌다해도 유치원에서는 속옷을 열어보고 엉덩이를 확인하지 않는단말이예요! 그렇게 하는 거 아니랬어요!

기저귀를 뗀 이후에 유치원에서 바지에 오줌을 싼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마 유치원에서는 욕실에 데리고 가서 씻기기 전까진 오줌을 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바지 뒷춤을 들춰보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 신체 부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교육하는 모양이다.

얼른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에게 아빠가 잘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엄마와 아빠가 세심하지 못했다며 속상한 마음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볼일 다 본 후에 손 씻고 아빠한테 가서 아빠가 잘못한 거고 사과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라고 했다.

이날 저녁, 양치질을 하기 전에 꼭 뻔히 보이는 숨바꼭질을 즐기는 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꼭 자기 침대에 이불 덮고 숨는 하나. 숨바꼭질에서 우리가 못찾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이 루틴을 즐기는 거다. 아빠랑 하나가 만든 루틴에 나도 하나의 요구로 동참하게 되서 나는 나식대로 숨바꼭질 술래 역할을 했다. 이불 아래 숨은 하나를 발부터 찾아서 킁킁 냄새를 맡은 후에 “이 쉰내나는 발가락은 하나 발가락인데!”하면서 “하나 맞구나!” 하고 찾아냈었더랬다.

덴마크에 얼레리 꼴레리에 해당하는 “Øv, bøv, bussemand, sure tæer i saftevand”이란 노래가 있다. “얼레리 꼴레리, 코딱지, 주스에 담근 쉰내나는 발가락” 이런 내용인데, 여름에 간혹 하나 발에서 쉰내가 날 때 이 노래를 부르면서 발을 씻어주면서 가볍게 놀린 일이 있었다. 이후에도 발에 쉰내가 나지 않아도 몇번 그걸로 놀린 적이 있었는데, 사실 하나 발에 쉰내가 계속 나면 그걸로 안놀렸을텐데, 쉰내가 안나니까 놀렸던거다. 그런데 그게 속상했나보다. 애들이 유치원에서 금요일마다 따돌림 방지 교육을 받는데, 거기서 받은 교육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간 쌓여온 게 어제 터진 모양이다.

“발가락에 냄새 나는 것만으로 그게 저인 걸 맞출 수는 없는 거예요. 발가락에 냄새 나는 사람이 저만 있는게 아닌데, 발가락에 냄새 난다고 그게 어떻게 저인지 아는 거예요? 그리고 발가락에 냄새가 나는 걸로 자꾸 놀리면 안돼요! 같은 걸로 자꾸 놀리면 안된다고 했어요!”

아차…

“미안해요. 엄마가 하나 발가락에서 냄새가 안나니까 그렇게 놀려도 놀리는 거라 생각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엄마 착각이었네. 진짜 놀린 거는 아니예요.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안할게요. 미안해요.”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아닌 것으로 놀리는 것이든 맞는 것으로 놀리는 것이든, 상대가 아주 재미있다며 유쾌하게 웃고 있어도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게 남을 수 있다는 건 나도 경험한 바 있는데, 상대가 아이라고 해서 그냥 재미있게 받아들일 거라 착각했었다. 그리고 뭐가 되었든 반복적으로 놀리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오늘, 하나가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면서 엄청 우렁찬 소리로 힘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감자튀김 똥이 나온다면서 (이건 도대체 어떤 똥인지..?) 힘을 또 끙차하고 주는데 나랑 옌스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동시에 키득 거렸다. 그러자 하나가 묻는다.

“왜 웃는 거예요?”

우리가 그냥 웃는 거라고 답을 하자

“제가 낸 소리 때문에 웃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그렇게 비웃으면 안되는 거예요!”

라고 훈계를 한다.

“아.. 비웃은 건 아니고, 너무 재미있어서 웃은 거예요! 미안합니다!! 다음부터는 안웃을게요!”

라고 답을 하자

“그렇게 성의없이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면 안돼요! 미안할 일을 만들지 않게 기억을 하고 미안할 일을 하지 말아야죠!”

라고 쏘아 붙이는데, 할 말이 없더라. 내가 한 말을 고대로 나에게 되돌려주고 있더라. 아… 반성해야지 싶었다. 그래서 옌스랑 우리 좀 주의해야겠다고 나지막히 대화를 나누는데, 하나가 화장실 문을 탁 닫더라. 그래. 너도 화장실 문을 닫는 법도 배워야지…

아무튼 애가 어리다고 애 다루듯 대하면 안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에피소드가 많았던 지난 이틀이었다. 참 많이 컸구나. 대견하고, 뿌듯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나를 사랑하는 아이, 내가 사랑하는 아이

원래도 애정표현이 많은 아이었지만 요즘 부쩍이나 사랑한다거나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세살 반만 지나면 정말 사람이 되서 육아가 쉬워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요즘 들어서 그 말이 부쩍 와 닿는다. 애하고 크게 씨름할 일도 없고 애가 짜증을 내는 타이밍에도 쉽게 진정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밤에 악몽을 꾸더라도 그걸 현실과 구분을 해서 말로 차분하게 애를 진정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오랫만에 신생아때부터 사진을 찬찬히 둘러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건 거의 다 잊혀지고 좋은 기억만 남아있다. 옌스가 마흔 일곱에 나도 마흔인지라 이제와서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지만, 왜 사람들이 그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째를 낳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맞은편 집 윗집에서 딸아이를 낳았는데,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얼마나 설레고 이쁘던지. 그 당시의 기쁨과 체력적 피로에서 오는 애환이 동시에 기억나서 부모들의 다채로울 감정을 미루어 짐작해보기만 한다. 하나는 지금도 냄새를 맡아보면 어른과 달리 좋은 냄새가 나는데 애가 나를 사랑한다면서 나에게 몸을 던져 파고들을 때면 이럴 시기도 얼마 안남았을 것 같아서 얼른 나도 살을 부벼가며 냄새를 흠뻑 맞곤 한다. 이렇게 나에게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아이를 돌보는 게 힘들어 했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하나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더욱 더 힘껏 안아준다.

하나는 내게 가장 완벽한 아이이다.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그런 완벽한 아이. 요즘은 그래서 네가 나에게 심통이 나있을 때도, 나쁜 일을 했을 때도, 그래서 내가 혼을 내거나 화를 내게 되더라도 나는 너를 그대로 사랑한단다… 라고 자주 말해준다. 또 잘하는 걸 너무 당연시 생각하고 잘못하는 것만 훈육을 위해 지적하면 자기가 잘 하는게 없다고 내가 생각한다 오해할까 싶어 잘한 건 잘했다고 담백하게라도 칭찬해주려고 노력한다.

밤에 잠든 얼굴을 보면 많이 없어진 것 같은 아기때 얼굴이 아직도 보인다. 이 아이는 아마 내가 여든살이 되어도 나에겐 아기이겠지? 애 키우다보면 마음 철렁할 것 같은 아찔한 순간들이 간간히 생기는데, 그럴때마다 큰 사고 없이 나와 함께 인생을 나눌 수만 있으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건강하게 자라줘 하나야…

발레 기록-2020년 11월 마지막클래스

코로나 2차 파동이 불고 있음에도 10명 이내의 실내체육활동은 허용이 되는 덕에 발레를 계속 할 수 있었다. 클래스 두개를 듣고 있는데 하나는 학생 수가 9명이라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13명이라 9명씩 조편성을 해 돌려야 해서 조금 영향을 받았다. 그래도 큰 틀에서 봤을 때 거의 영향 없이 발레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발레가 이미 내 삶을 이끄는 하나의 축이 되어버린 터라 이게 빠지면 체력, 정신적으로 모두 영향을 받는다.

요즘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다리를 높이 들 때 턴아웃 정확히 유지하기, 바닥을 최대한 사용하기, 상체와 하체를 유기적으로 사용하기, 아라베스크할 때 상체가 틀어지는 것 방지하기, 피루엣 할 때 잘 통제된 움직임으로 흔들림없이 착지하기 등이 있다.

예전에 옌스가 자기도 나 발레하는 것 보고 싶다고 하면 보여줄만한 게 없었는데, 이제는 센터에서 추는 것들도 나름 길어지고, 내가 춤추는 것도 춤다워져서 보여줄 거리도 생겼다. 2018년부터 찌워온 살 9킬로그램도 500그램 남기고 다 덜어내고 등 근육도 많이 길렀고, 출산과 함께 늘어졌던 뱃가죽도 완전하진 않지만 코어근육의 강화에 힘잆어 많이 원상태로 돌아왔더니 춤의 선도 보기 좋아졌다.

어제 저녁에 선생님이 몇가지 팁을 주신 게 있어서 집에서 쉬는 시간 틈틈이 연습을 해보다가 처음으로 5번 피루엣을 매우 절제된 동작으로 깨끗하게 해냈다. 요즘 느는게 눈으로 보여서 그런지 선생님이 동작을 세심하게 잡아준다. 이런 기회를 제대로 포착하고자 집에서 스트레칭, 발운동, 근력 트레이닝에 조금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면 창틀에 비스듬히 45도로 기대서 팔굽혀펴기도 틈틈히 서른번씩 하고 데미포인트에서 풀포인트로 서는 데 필요한 발 근력도 키우고자 여러 종류의 발 운동도 하고 있다. 덕분에 이제는 팔굽혀펴기를 제대로 해도 열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일할 때도 바른자세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쉰 달리기도 좀 하면서 점프 트레이닝도 좀 해야할 것 같다. 그래야 큰 도약 점프에서도 스테미나 부족으로 헉헉거리지 않고 가볍고 탄력있게 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선생님에게 이메일로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내 소중한 발레를 계속 아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챌린지를 주는 선생님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 벅찬 나머지 꼭 표현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라.

내 무의식적 불안과 그의 고백

칭찬을 많이 듣고 자라서 그럴까? 크게 혼날 때면 밖에 나가라고 혼내시는 엄마가 정말 나가라고 한 거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하면서 문 밖에서 앉아있던 때문일까?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잘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간간히 하곤 했다.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던 부모님이지만 뭔가 내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하면 그걸 숨기고 싶어하고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건 부모님의 엄격한 순간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순간으로 오해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화해의 순간이나 다른 전혀 상관없는 순간에도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도 이야기해주셨고, 나에게 참 다 잘 해주셨던 부모님이었는데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1등을 했더라도 뭔가 실수를 해서 하나라도 틀리면 시험을 보지 않은 척, 금방 드러날 뻔한 거짓말을 해서 혼난 적도 있다. 엄마가 시험 본 거 왜 안봤다고 거짓말했냐고 물어보시는데, 내가 실수했다고 혼날까봐 그랬다고 한 기억이 난다. 엄마의 답은 기억이 안나는데, 그냥 그때 들킨 게 너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나중에 엄마를 통해 들은 엄마의 반응은 역시 당황스러움이었다. 얘가 왜 실수로 틀린 거를 감추는데 급급해서 성적만 놓고보면 잘 한 것조차도 숨겨야했을까,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는 당황과 황당. 그런 마음.

내가 보기에도 객관적으로도 크게 나쁜 것 같지 않은 성과가 엄마 앞에서는 항상 앞을 더 보고 나아가야 하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결과였기에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 느꼈다. 그리고 엄마가 다른 친구의 부모님이나 이웃이 나를 칭찬하는 이야기에 겸양의 형태로, 아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정도로 이야기하시는 내용을 자주 듣다보니,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엇나가려면 엇나갈 수 있는 성향의 나였지만, 시댁과의 갈등 속에서 결혼의 의미를 우리 가족의 화목함, 우리가 잘 자라는 것에서 찾으시련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나는 아주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사춘기의 갈등을 겪으며 컸다. 문제를 일으켜도 되는 범주를 알고 적당히 사고를 치며 자랐다고 할까?

지금도 나는 간혹 두려움을 갖고 산다. 뭔가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시기가 올 때면 다시금 찾아오는 그런 두려움. 내가 부족한 사실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알면 그들이 지금과 같이 나를 바라봐줄까 하는 두려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는 일은 크게 두렵지 않다. 이러나 저러나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니까. 그들이 나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든 무슨 상관이랴. 다만 아끼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달리 바라볼까 하는 걱정과 불안.

회사를 관뒀을 땐 도망친 거였다. 나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던 기후변화관련 모델링과 법제 작업에서 빼준다고, 나와 같이 초기에 프로젝트에 들어가있던 선임이 빠지고 다른 선임이 프로젝트 리더로 들어왔던 이유도 유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상사가 이야기했을 때도 나는 두려웠다. 6개월 안에 도래할 다른 내 프로젝트의 법제 작업이 무서웠다. 2-3년의 기한을 가진 장기프로젝트를 끌어가는 게 너무 부담이 컸다.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이 걸려있고 큰 돈이 걸려있는 프로젝트라는 것도 갈 수록 부담이 되었다. 옌스에게 스트레스를 적당히 이야기했지만, 조금 더 버텨보면서 다른 할 거리를 생각해보며 좀 준비가 되면 관두라고 했는데, 관두는 것에 대한 옵션 자체가 화제로 오르자마자 관둘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옌스야 내 미묘한 변화를 다 아는 사람이라 굳이 숨긴다고 오래 숨길 수 있는게 아니라 내 밑바닥부터 다 알고 있는 사람이고, 내가 부모님 만큼이나 밑바닥부터 신뢰하는 사람인지라 그런 좌절을 다 공유한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알고 있었고 그게 어마나 지배적으로 커지고 있는지도 지켜보았다. 그래도 좋은 직장을 선뜻 관두는 게 큰 리스크로 느껴했고 나도 그의 입장을 알고 있는지라 섣불리 관둘 수 없었다. 어느날 무슨 사업 같은 거 할 거리가 있으면 자본은 내가 델 수 있으니 그런 거 해보면 되지 않느냐고 묻길래, 그러면 번역이랑 덴마크어 강의 같이 내가 해보고 싶던 거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봤다. 깊이 알아본 일도 아니었고 그냥 막연했다.

그렇게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였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시간이 지나보니 시장조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더라. 번역인세가 덴마크의 소득세를 떼고 나면 너무 박한 소득이고, 그렇다고 번역을 할만한 책을 발견해 계약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강의는 재미있고 보람도 있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드는 일이라 다른 일을 할애할 시간을 제법 줄여야 했다. 책을 쓰는 일은 대충 주제는 잡았지만 덴마크어를 학습하는 것에도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었다. 유튜브는 재택근무로 집에서 엄청나게 많은 회의를 하는 옌스와 함께하다보니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가 되었다. 어느 방향으로도 제대로 가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순간, 나는 내 민낮을 마주해야했다. 이 프로젝트는 전혀 깊이 고려되지 않은, 찰나의 호기어린, 전 직장에서로부터의 도주를 감추는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말이다.

퇴사한지 만 4개월. 아직 다시 직장을 찾기에 휴식이 길지만은 않았던 기간. 다시금 취업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오늘 하나의 진정한 이력서를 내고 본격적으로 취업을 다시금 알아보려한다. 이러저러한 하부프로젝트의 경험 속에서 취업을 하더라도 사이드로 이끌어갈 일들을 확인했으니 다 접는 것은 아니다.

이런 내 민낯을 나 스스로도 제대로 들여다본 게 바로 요며칠이다. 이런 고민의 형태가 드러나고 나서 차마 이런 고민을 옌스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잠을 잘 못자는 것 같고 낮에 그 여파로 피곤에 찌든 것 같아 보이는 나에게 괜찮느냐고 물어보는데, 그에 구체적으로 답을 할 수 없어서 요리조리 답을 피하다가 이야기를 해야했다. 부모님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아도, 내가 실수하면 실망하시지 않을까, 걱정하시지 않을까 반사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처럼, 옌스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반사적으로 나에게 실망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련의 고민을 나눌 수 없었다.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데 내가 아닌 타인은 오죽할까 하는 불안은 뿌리깊은 비이성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다.

내가 이런 나를 알기에, 그리고 과거에 이런 상황에서 옌스에게 고민을 나누며 그가 어떤 반응을 했는지 알기에 이번엔 보다 빨리 내 고민을 나눴는데, 역시나 옌스는 내가 항상 예상한 바 또는 그 이상으로 나를 보듬어 주었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냥, 시부모님께도, 부모님께도 같은 내용을 전했는데, 모두 참 한결같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와 내용으로 나를 보듬어주셨고 나에게 너무 혹독하게 굴지 않기를 원한다며 말씀해주셨다.

엄마와 가까운 친구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가 너무 일맥상통했는데, 사람은 흔들리는 속에서 살아내고 그 역경을 이겨내는 데에 인생의 의미가 있는 거지, 잘 사는 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그들이 나를 아끼는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잘 하지 못할 때 태도 때문이라는 것에서 내가 참 잘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이야기였다. 내 부족함때문에 떠나갈까 걱정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그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모습 때문에 아낀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충격이던지. 사실 엄마의 이야기는 내가 엄마가 되면서부터 엄마가 자식에게 어떤 마음을 가질 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떤면에서 예상할 수 있는 바도 있지만 친구는 또 달랐다. 그녀의 이해와 포용, 나에 대한 다독거림이 정말 내 마음의 불안함을 싹 녹여내더라. 그래서 내가 얼마나 생각이 얕고 부족했는지, 그런 지혜로운 친구를 곁에 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말에 대한 고마움에 흐르는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이렇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을 계속 아끼고 가꿔가야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2020년 9월 12일

아이들은 참 다르구나.

친구와 잠깐 이야기를 했다. 그 집 아이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라 발달상 차이를 지켜보기에 좋고 신기한 점이 많다. 특히 그 차이에서 그런 점을 많이 느낀다.

그 아이는 수와 어떤 구조를 파악하고 구성하는 데 비상하고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 쪽으로 영재와 같은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에 대해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특별하다 생각하는 모습을 내비치니, 거기에 더해 창의성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치더라. 꽤나 큰 애들이 할 레고 조립을 거의 혼자서 다하는 수준인데, 레고에 동봉된 조립도면을 거의 외워내서 그걸 혼자 해내는건데, 뭔가 창의적으로 만드는 쪽으로 특별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상자 밖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참신함 같은 것이 자기에게 부족해서 그런 걸 아이가 갖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게 잘 안느껴진다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나와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어떤 정해진 것 그대로 해야하는 것을 별로 안좋아하고, 장난감 대부분을 그 본연의 목적대로 갖고 노는 것보다 자기 마음대로 바꿔서 노는 걸 좋아한다. 놀이를 만드는 걸 잘해서 자기가 만든 놀이에 친구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잘한다. 바꿔 말하면 남들이 참여하고 싶을만한 놀이도 잘 만든다는 거다. 손목 시계를 시계로만 쓰는 게 아니라, 도장이라 치고 여기저기 도장을 찍는 시늉을 한다던가, 도장을 갖고 도장이고만 쓰는게 아니라, 반창고라고 하고 놀이로 상처났다고 하는 곳에 꾹 눌러 반창고를 붙여주는 시늉을 한다. 펜은 막대아이스크림이고, 아이스크림 콘은 약통이다. 한 사물의 형태에서 다른 사물의 대상에서 뽑아낼 수 있는 특성을 발견하면 그걸 그 다른 사물이라 칭하고 노는 대에 능하다. 추상화 능력과 창의력이 탁월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정해진 도면을 따라 뭔가를 정교하게 만드는 건 하나가 잘 하는 일이 아닌거다. 좋아하지 않으니 잘할 수가 없지.

이렇게 어린 아이들에게서 뚜렷한 특성들이 발견될 때,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갖고 태어나는 유전적 요소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어 놀랄 떄가 많다. 그리고 잘 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어떻게 키워줄 지,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아니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정말 부모가 생각하고 스스로를 교육해서 아이가 커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게 참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2020년 9월 9일

쉬웠다가 어려웠다가 하루하루를 종잡을 수가 없다.

요즘은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다르다. 하루는 너무나 쉬웠다가 다른 하루는 너무나 어려웠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머릿속에 새로이 들어가고 경험하는게 많아서 그런 걸까? 아직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 능숙하지 않아서 뭔가 심사가 뒤틀리면 그날 하루가 어려워지는 걸까? 그렇기엔 또 기분이 좋은 날은 웬만한 일에도 쉽게쉽게 넘어간다.

추상적 개념에 대한 관심

죽음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겨울왕국을 본 이후부터다. 하나보다 나이가 많은 유치원 친구들이 하나에게 엘사를 소개시켜줬는지 세돌이 지난 때부터 겨울왕국 타령을 하더라. 그래서 보여준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와 애나의 부모님이 배의 난파사고로 사망한 것을 만화에서는 초상화에 검은 베일을 드리우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이걸 하나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들의 부모님이 바다에 빠져 돌아가셨고, 더이상 엘사와 애나는 부모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는데,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어 땅에 묻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 사람은 우리 마음속에만 살아 숨쉰다고 설명해줬는데, 나와 옌스가 세상을 떠나 언젠가는 자기와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제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개략적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하나가 이해한 첫 추상적 개념은 아닐 거다. 사랑이라는 개념도 피상적이나마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차이라하면 사랑은 우리와 자신과의 교감을 통해 연결시킬만한 경험고리가 있다면, 죽음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거라는 데 있다. 물론 겨울왕국이나 다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고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자기 상황에서 느낄 일은 없었으니까.

요즘은 진실과 과제에 대한 개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자기의 미니 욕조 안에서 얼굴이 그려진 낚시채를 엘사로 정의하고 엘사가 엄마, 아빠를 찾아 헤메는 거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엘사, 너희 부모님은 돌아가셨어. 더이상 부모님을 만날 수 없어.”라고 이야기를 해줬더니, 하나가 냉큼 나를 저지한다. ”엘사는 진실을 알면 안돼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알면 안돼요!”라는 거다. 진실? 어디서 배운 표현이지? 집에서 쓴 적은 없으니 당연히 유치원에서 배운 표현이겠지만, 어떤 맥락에서 배운 걸까?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까, 알면 안되는 일이라는 거다. 아… 숨겨진 진실은 파고드는 게 좋지 않다는 맥락에서 배운 거구나. 도대체 유치원에서 어떤 상황에 그런 표현을 들었을까? 남편은 진실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는데. 특히 그런 맥락에서는.

아이의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는 머리를 열어서 확인할 수도 없고, 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궁금하고 또 궁금하구나. 말속에 은연중 드러나는 흔적으로 그 머리속을 곁가지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2020년 8월 30일

두발자전거를 온전히 타기 시작하다

내 생일 즈음에 하나에게 페달이 달린 두발자전거를 선물했다. 그게 두달 조금 지난 일이다. 하나는 두돌때부터 페달이 달리지 않은 두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걸 타고는 내가 빠르게 뛰지 않으면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급회전도 하면서 능숙하게 탄지 벌써 몇달이 된 시점이었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자전거 중 가장 작은 것을 샀는데, 아이들 자전거는 아주 특별하게 비싼 게 아니면 아이 체중 대비 정말 무거운 것들 밖에 없었다. 애가 금방 자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 비싼 걸 사기는 어려워서 그냥 살만한 범위 내 자전거에서 가볍고 조금 비싼 걸 골랐다. 그래도 9킬로그램이 조금 넘더라. 내 자전거가 스포츠 자전거로 개중 가벼운 것임을 감안하더라도50킬로그램대의 내 체중에 자전거10킬로그램인 걸 생각하면, 아이 15킬로의 몸무게에 9킬로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냥 복잡한 계산 없이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런 자전거를 아이가 처음에 타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미 자유로이 빨리 탈 수 있는 발자전거가 있는데, 어떻게 타야할 지도 잘 모르겠고 힘든 페달자전거는 인기가 별로 없었다. 본인이 그렇게 원하던 분홍색 자전거였음에도.

그래도 옌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 타보겠냐고 물어보고, 옆으로 허리를 구부정하게 기울여 하나 자전거를 뒤에서 밀며 뛰어다니는 수고를 여러번 거듭한 탓에 8월 중반에 들어 거의 매일 하나가 자전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주변을 관찰해보더니, 큰 애들은 페달자전거를 타고 작은 애들이나 발자전거를 탄다, 이런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자기도 큰 애가 되어가고 있으니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자전거가 무거운데다가 발이 땅에 적당히 닿을 정도로 안장을 낮게 설치했더니 페달질이 힘들어서 그런지, 옌스가 밀어주면 자기는 균형만 잡으며 크루징을 하고, 페달은 발판 정도로만 썼었다. 옌스가 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걸 여러번 도와주고 나니 서서히 페달을 밟기 시작했고, 가장 어려워하던 스타트는 약간의 내리막 비탈길에서 모멘텀을 활용한 연습을 반복하더니 어느새 요령을 터득해 평지출발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온 가족이 해안도로로 나가 하나의 자전거 투어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함께하기로 했다. 결론은 대성공이었다. 우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인라인스케이트 도로에서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가 리드를 함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고, 하나도 넘어짐 없이 우리의 신호에 따라 정지와 출발을 반복하며 완주해줬기 때문이다. 어느새 배가 고파진 하나가 찡찡거리긴 했지만, 주차장에 위치한 아이스크림집을 미끼로 써서 완주에 성공했다. 제법 긴 거리긴 했지만, 유치원에서 긴 소풍을 가면 길게는 8-9킬로미터도 너끈히 걸어내는 아이인지라 큰 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와 온가족이 함께 체육활동을 한 건 처음이라서 의미가 큰 하루였다. 통상, 우리가 하는 체육활동은 하나가 제대로 참여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옌스가 줄을 타거나 외발자전거 연습을 하면, 내가 그동안 하나와 그 인근에서 다른 걸 하다가 교대를 해왔는데, 이번엔 모두가 동시에 같은 경험을 나누었으니까. 새로운 시대가 열린 기분이다. 아이와 취미를 나누는 시대. 뭔가 꿈꾸는 이야기 같구나.

2020년 8월 28일

사회적 욕구가 강한 아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상당히 힘들게 시작했다.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드러눕고 왁왁 거리며 울고 성질을 내는데 마음의 평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똑바로 행동하지 않고 그렇게 성질을 부리면 엄마는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했다. 엄마가 화가 날 대로 난 것을 눈치챈 아이는 그제서야 자기는 엄마와 이야기 하고 싶다며 울고 백기를 들었다. 사과할 준비가 되었냐니까 죄송하다며 옷도 갈아입고 머리 빗겨달라고 거울 앞에 가서 앉았다. 애써 화난 감정은 추스르고 이야기를 하는데, 애가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 감정의 앙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건 아닌지라 딱딱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막상 집 문만 나서면 유치원을 가는 길은 매우 쉽다. 데려다 주는 건 주로 남편이 하는 일인데, 남편도 문을 나서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문을 나서면 그다음엔 쉽다고 했다. 유치원에 들어가서도 나를 한 번 포옹해주고 뽀뽀 한 번 하고 나면 손쉽게 헤어짐을 받아들인다. 어떤 날은 창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쏜살같이 자기 반으로 들어가 친구들과 놀기도 한다. 친구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유치원에 가는 걸 싫어한 적이 한 번 없고, 삼주간의 여름휴가 기간 중에는 친구들을 너무나 그리워해서 중간에 플레이데이트를 꼭 해야할 만큼 친구와 노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

친구 사귀는 것도 좋아하는데, 말의 호흡이 잘 맞아 대화가 통하고, 보육원/유치원에서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사회적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라면 누구와도 잘 노는 편이다. 뛰고 넘어다니고, 기어오르고, 매달리는 식으로 노는 것도 좋아하고, 상상력을 활용해서 놀거나, 역할 놀이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친구와 케미가 맞지 않을 경우 혼자 떨어져서 일인 다역으로 대화를 하며 놀기도 하지만, 역시 친구와 함께하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오늘은 남편이 차고 앞 공터에서 외발자전거를 타며 클럽저글링을 연습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자기도 한번 타볼 수 있냐며 말을 걸어왔다. 개중 쉬운 외발자전거 한개를 그에게 내어주어 타보게끔 해줬는데, 그 전에 타본 적 있다는 그니는 두어번의 시도 끝에 다칠까봐 몸을 사리며 그만 타겠다고 하더라. 그 와중에 하나는 두발 자전거를 혼자서 온전히 탈 수 있게 되었고, 그 행인의 주변으로 자전거를 요리조리 타는 거다. 예전같으면 이름부터 다짜고짜 물어봤을 것 같은데, 요즘 크면서 예전보다는 (아주 조금이지만) 수줍음을 타는 탓인지, 이름은 물어보지 않고 대화만 하고 자전거를 타며 자랑을 하더라.

그 행인도 자기 갈 길을 가고 나도 하나와 장을 보러 동네 수퍼에 갔는데, 가는 길에 그 행인에 대해 하나가 나에게 이것 저것 물어봤다. 왜 그 사람은 아빠의 외발자전거를 타 본 건지, 아빠만큼 잘 못타는지, 어디 사는지, 이름은 뭔지 등등. 직접 물어보지 그랬냐고 했더니 잊어버렸단다. 이말을 믿지는 않는다. 그렇게 궁금한 것을 쌓아뒀다가 나에게 물어보는 자체가, 잊어버렸다는 말과 앞뒤가 안맞지 않은가? 이유는 불문하고, 나도 모르겠고,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나면 꼭 물어보자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수퍼에 그 사람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얼른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라 했더니, 아이는 쌓아뒀던 질문을 던지고, 자기가 엄마랑 쇼핑하러 왔음도 이야기하고, 그사람은 거기에 왜 왔는지, 뭘 사러 왔는지 이것저것 묻고 대화를 나누더라.

사실 하나가 길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과 시시콜콜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까 나도 동네 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예상치 못하게 대화도 많이 하고 이름도 기억하게 되는 등 과거에 안했을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가 어른, 아이, 동물 가리지 않고 사회적 교류를 하는 것을 유독 좋아해서 말이다. 굳이 사회성을 두고 보자면 옌스보다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사회적이었는데, 나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다. 어른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많이 나눠서 그런가? 표정도 그렇고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상대의 이름을 자주 부르기도 하는 등 내가 일부러 배우려 해온 테크닉들을 이 아이는 타고난 거 같아서 탄복을 하게 된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 다른 곳에 있지만 이 아이에게 있는 재능에는 사회성이 있구나 싶다. 아이를 보며 배운다는 말이 나는 아이의 실수를 통해 어른도 배운다는 뜻인 줄 알았더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정말 애를 통해 내가 배울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내 열정이 향하는 곳에 발레가 있다.

아마 직업이었으면 달랐을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발레는 취미였으니까.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을지언정 압박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에서 지금 나에게 내가 가장 열정과 애정을 품은 대상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체할 바 없이 발레라고 답할 거다. 나에게 한 주, 한 주를 이끌어가는 그 열정의 원천은 발레니까.

탕듀부터 시작해 쥬테, 롱드잠, 프라페, 아다지오, 그랑바뜨망 등 서서히 템포를 올려가는 바부터 시작해서 가벼운 점프부터 왈츠와 같은 말랑말랑한 춤을 통해 큰 점프로 이어져가는 센터까지 구성 자체가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킨다.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나간다 할까? 뭐랄까 쫄깃한 긴장감이 사람을 흥분시킨다. 그래서 힘들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아드레날린이 온몸에 퍼져나가는 흥분감이 막판까지 힘을 짜내어 뛰고 돌게 만든다.

165센치미터의 키에 56 킬로그램의 몸무게. 가볍지 않다. 체지방도 있기에 몸이 조각된듯한 근육질도 아니다. 그래도 오랜 기간을 투자해온 탓에 몸에 잔 근육들이 세세히 잡혀있다. 발레를 하지 않던 시기에 없던 그런 근육들말이다. 승모근과 삼각근, 갈비뼈를 둘러싼 코어근육과 그 위를 덮은 복근, 등판의 어깨뼈를 둘러싼 근육, 척추 옆 근육, 그밖에 다리 안쪽 근육, 다리를 들어올리는 근육, 엉덩이 근육 등 정말 많은 근육들이 달라졌다. 상체 44, 하체 66과 같은 불균형이 많이 사라져서 상하의 사이즈도 중간에서 만나게 되었다.

몸이 좋아지니 동작도 좋아진다. 상하체가 연결되어 손부터 발끝까지 긴장감으로 팽팽히 연결시키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빠른 템포로 움직이는 동작에서는 이를 다 세세히 신경쓰지 못하고 놓치는 것들이 생기지만, 느린 템포로 움직이는 동작에서는 최대한 온 몸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느끼며 동작을 한다. 그런 유기적인 움직임이 느껴질 때면 거울에 비친 내 움직임도 썩 마음에 든다. 나아질 부분이야 좀 많겠냐마는, 또 그 와중에 좋은 것을 찾아낼 수 있어야 더 나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코로나 락다운을 계기로 집에서 파쎄 균형 잡기에 시간과 공을 많이 들였다. 춤이란 게 넓은 공간을 필요하고, 같이 상호작용을 할 사람이 있는 사회적인 운동이라서 그런지 혼자서 좁은 공간에서 하기엔 동기부여가 잘 안되더라. 그래서 좁은 공간에서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균형잡기와 턴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아하!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고나 할까. 아직도 끊임없이 교정하고 수정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조금 알게 되면서 파세에 그전보다 큰 안정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턴도 좋아지기 시작하고.

출산 이후 2년 정도의 공백이후 다시 시작했던 게 이제 대충 1년 반이 조금 넘는데, 그때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해 헤매던 나였는데, 이제 틴 학생을 제외하고는 제일 잘하는 학생이 되었으니 그 성장이 크다 하겠다. 작년 10월 하순부터 시작된 포인트슈즈클래스에서 처음 포인트슈즈를 신었던 내가 피케 턴부터 시작해 지금은 5 번 포지션에서의 앙디올 피루엣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발레 선생님도 코로나 락다운이 풀린 6월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내 실력에 큰 변화가 있음을 느끼는 걸 내가 알 수 있었다. 그 전보다 세세한 부분에서 조언을 해주고 내가 바를 하고 있는 곳에 와서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해주는 데에서.

오늘은 더블 피루엣을 연습하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럴 탈렌트가 느껴져서 하는 이야기라며, 일부러 너무 컨트롤하며 박자에 맞춰 한번만 돌 필요 없다고. 덕분에 한바퀴 반이긴 하지만 더블을 시작했다. 아직 시선 처리가 안좋아서 모멘텀을 상실하는 탓에 두바퀴를 다 돌지 못하는 거다. 이제 그걸 좀 신경써서 연습해야 하겠다.

오늘 수업 이후 이 끓어오르는 아드레날린을 주체하지 못해서 이렇게 블로그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밤이 늦었으니 이제는 이 흥분을 내려가라앉히며 잠에 들도록 노력을 해봐야겠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