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가 조금 더 열린 세상이 되길 바라며

대학원 친구가 생일이라며 바베큐 파티에 초대했다. 오후 세시에 초대했으니 그때부터 준비하고 뭐하면 대충 5시는 되어야 시작할 게 분명했다. 우리 대학원 친구들은 대충 그러니까. 하나와 집안일, 식사준비 등을 생각하면 저녁까지는 있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가까운 친구라 축하도 해주고 싶었고 해서 옌스에게 하나를 보라고 하고 페달 힘차게 밟아 후딱 다녀왔다. 놀라울 것 없이 역시나 두명을 만나고 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한명 더 만나고 싶은 친구는 늦게 온다 해서 다른 기회를 노리기로 하고.

공부를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라 그런가? 뭐랄까… 잘 모르겠는데 편하다. 한참 어린 친구들인데 그런 생각도 안하게 되고. 가정이 있고 한 탓에 저녁에 파티가고 술마시고 안하다보니 수업시간 외엔 비자발적 아웃사이더를 택했지만 그래도 뭔 일 있으면 끼워주는 친구들 덕에 완전히 아웃되지는 않는 게 다행이다.

스페인에서 온 친구 한명은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열심히 하는 열정 많은 친구인데, 직업을 찾기가 힘이 들었단다. 더이상은 덴마크에 질렸다면서 내일 떠난단다. 한동안 소식을 나누지 못했는데, 안타까운 소식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졸업한 친구들 모두가 취직을 한 건 아니지만 그녀가 취직을 못한 건 사실 좀 안타깝고 의아하다. 아직 내가 취업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아니니까 뭘 알 수는 없지만, 글로벌 기업 몇군데나 직종 특성상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덴마크어는 어쨌건 필요한게 분명하다는 것이 다른 친구들 의견이다. 그 친구는 지난 겨울 물어봤을 때 직업을 구하면 덴마크어를 공부하겠다고, 이 불확실성속에 덴마크어에 시간을 투자하기 아깝다고 했었는데, 그게 이유였을까?

우리 프로그램에는 비덴마크 EU 학생이 많은데, 외국인에게 갈수록 적대적인 정책들이 수립되는것에 다들 불편함을 표한다. 사실 살면서는 아시아인으로서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인 정서를 평소에 겪기는 어렵다. 인종차별이 여기에도 없겠냐만은 그게 아시아인이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 특히 무슬림을 향해있기에 평소에는 별다른 것을 느끼기 어렵다. 주변 사람들은 이건 무슬림을 향한 정책이라고, 전반적인 정서를 담은 건 아니라고 하지만, 경제가 좋은 상태에서도 이런데 경기가 안좋아지면 이런 정책 기조가 사람들에게 반 외국인 정서를 키우는 걸 더욱 자극하지 않을까?

덴마크에서의 내 삶에 만족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 시민권 시험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시험 문제를 풀어보니 너끈히 통과할 만큼 사회 제도와 정치, 경제에 관심을 갖고 언어도 공부하며 사회통합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만큼 이민자로서 남의 나라 땅에 살면서 무슨 소리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괜히 옌스와 하나에게 부끄러운 아내,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물론 옌스가 그런 걸 원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나혼자 그런 것일 뿐이지만. 그리고 주변 이웃이나 내가 만나는 길에서 랜덥하게 만나는 덴마크인들조차 다정하고 열린 사람들이지만. 아무튼 요즘과 같은 반외국인 정책기조는 은근히 불편하다.

작은 나라로서의 불안함을 이해한다. 우리도 한국에서 똑같이 느끼는 부분이니까. 그럴 때 이런 쇄국정책으로 불안함을 해결하려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런게 좋지 않은 건 역사를 통해 배울만큼 배우지 않았던가? 뭔가 다른 정책이 필요한 건 아닐까? 아… 최소한 지금의 외국인 통합부 장관만큼은 정말 아닌거 같다.

여기서 살려면 덴마크어를 해야하니까, 그리고 내 애가 한국인이자 덴마크인이고 나도 여기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으니 덴마크어를 계속 열심히 할 것이지만, 여기처럼 영어 잘 하는 나라에서 꼭 덴마크어를 유창하게 잘 해야만 지원자격이 되는 회사들이 대부분인 것은 매우 안타깝다. 스페인에 가서 잘 자리를 잡을 거라고 믿는다. 덴마크에서 그녀가 직업을 굳이 찾으려고 했던 건 다른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였으니까… 굳이 그에 억매이지 않는다면 그녀의 모국에서 원하는 다른 일을 분명히 찾을 거다. 오늘 못봐서 아쉽네…

덴마크에 산지 5년, 한국과 다른 점 1

덴마크에 산 지도 어느새 거의 5년. 한달만 있으면 만으로 5년이 된다.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싶게 길지 않은 시간 같다. 하긴 대학원도 거의 끝나가고 애도 낳아서 17개월이 되어가니 이상할 것도 없네. 이제 이곳에서의 삶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여기가 이래서 더 좋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냥 당연하게 느끼게 되어서. 이제 그냥 여기 사회에 동화된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 한번 쯤 과거를 돌이켜보며 내가 현재 서 있는 곳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한국과 다른 점, 또는 이 곳의 다른 문화와 시스템 여건으로 인해 내가 한국에서와 달라진 점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자전거

유모차를 갖고 나가거나 비가 오는 날, 동결 방지를 위해 길에 소금이 뿌려져있는 시기(11월-3월)를 제외하면 가급적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대학원까지 처음으로 자전거로 가던 날, 집에서 8km인 거리를 40분동안 힘들게 페달밟아 갔다. 구글엔 25분이라고 써있는데, 가는 길은 평균적으로는 약간 내리막이지만 제법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해서 있는 탓에 너무 헉헉대서 그랬다. 요즘은 학교까지는 25분 이내에 크게 힘들지 않게 간다.

대중교통이 비싼 편이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7000원 정도 한다. 오래 살다보니 그냥 여기 가격을 받아들이게 되어 이제는 별 다른 감흥이 없다. 그래도 통근을 자전거로 주로 하는 시기엔 지출 절감에 알게모르게 도움이 된다.

최근 헬스장에서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더니 오늘 시내 가는 길 10km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대학원 처음 다니던 시절이 2015년이니까 한국나이로 36살때였는데… 그때보다는 애를 낳은 지금이 체력적으로 더 좋아졌다. 아마 자전거도 타고다니고 틈틈히 운동도 해서 그렇겠지. 마른 몸보다 근육이 있는 탄탄한 몸을 선호하는 문화 탓에 열심히들 운동하는게 눈에 보여서 나도 조금이라도 더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달리기도 더 하게되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체력을 보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잘 걸어다니지 않을 거리가 여기에선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로 다닐 거리가 되고, 그 덕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더 생기게 되는 거 같다.


날씨, 적정온도

비오고 바람부는 날씨가 익숙해졌다. 인도에서 살다가 한국가서 여름에 견디기 쉬웠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내 몸은 어느새 적응을 해가고 있다. 실내에서 적정한 온도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고, 같은 온도와 바람에 입는 옷이 바뀌었다. 여기 사람들은 왜 그리 춥고 비오는 날 얇게 입고 다니나 했는데, 그 날씨에 아직 적응이 안되었을 때 그랬다. 요즘 기후 이변으로 더운 날이 생겨서 그렇지 여기 여름 날씨라고 해봐야 20도 언저리가 흔하다. 거기에 비도 오고 흐리고 바람 불면 한국사람들은 엄청 춥다고 한다. 나도 예전엔 그랬으니까. 요즘은 25도면 더워서 힘들다. 같은 날씨면 예전보다 옷을 한겹 또는 두겹 덜 입는다. 겨울에도.

여기 날씨에 대해 처음에 많이 불평했는데, 겨울에 낮이 좀 짧은 거 빼고는 여기 날씨가 마음에 든다. 물론 겨울이 긴 건 좀 아쉽긴 한데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으니… 이제 한국은 여름과 겨울에는 가급적 방문하지 않는 걸로…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더 이어 쓰는 것으로 해야겠다…

Hannah startede i vuggestuen!

 

Hannah er nu lidt over 10 måneder og kan meget mere end før. Det føles som om, hun har været sammen med os for altid, selvom der kun er gået 10 måneder. Tiden er gået meget hurtigt. Det er meget sjovt, at det føles sådan, fordi jeg nogle gange klagede over, at tiden gik rigtigt langsomt efter fødslen. Måske var det fordi, det var ret fysisk hårdt at passe et lille barn, der ikke kunne gøre så meget selv. Jo hun kan stadig ikke så meget – hun er kun 10 måneder – men hun er ikke længere bare en baby. Hun er næsten en tumling!

Hun startede officielt i vuggestuen i går, hvis jeg ikke regner det første uofficielle besøg i mandags som den første gang. Det gik udmærket. Hun havde det sjovt og kravlede hele vejen rundt i vuggestuen. Hun så ud, som om hun godt kunne lide at lege med andre børn eller i hvert fald at være sammen med dem.

Nogle gange kunne jeg mærke, at andre børn udviste lidt aggressiv adfærd, mens pædagogerne ikke kunne mærke det på situationen. Der var, for eksempel, en dreng, der var lidt aggressiv generelt og skubbede Hannah og trådte på hendes fod. Jeg blev nødt til at sige, at han ikke måtte gøre det, og tog hende væk fra ham. Men det kan altid ske, og jeg kan ikke være der altid for at beskytte hende fra den slags situationer. Der er mange af mine venner, der selv har børn, som har fortalt mig, at jeg skal vænne mig til at se hende komme hjem med nogle skader i forskellige grader, store eller små. “Det gør ondt at se hende blive skadet, men det er den måde, man vokser op på.”, sagde de. Ja. Der er også det udtryk, at man bliver klog af skade. Hun vil også blive klog på den måde. (Men det er jo nemmere sagt end gjort!)

 

덴마크 산후조리

영국 왕세자비가 출산 다음날에 퇴원한 것을 두고 한국에서 논란이 많이 있었다. 한국의 산후조리 관점으로 봐서 동양인도 이럴 수 있느냐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우선 한국인의 출생시 머리둘레는 WHO 기준으로 평균이기에 애 머리가 커서 산후조리가 달라야 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또 흔히 이야기 되는 것으로 서양여성의 골반이 크고 근육량이 많아서 산후조리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있다.

같은 체중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서양모계가 동양모계보다 출산이 용이하다는 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논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학원을 다녀서 저널 논문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간혹 임신과정에 대해 일반 책자로 알 수 있는 이상 더 파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이를 읽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인과 동양인의 혼혈아기 출산시 제왕절개율로 보는 서양인과 동양인간 출산 난이도 차이 같은 것 말이다. (Michael J. Nystrom, Aaron B. Caughey, Deirdre J. Lyell, Maurice L. Druzin,Yasser Y. El-Sayed (2008). Perinatal outcomes among Asian–white interracial couples in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 Gynecology 199 (4), (385.e1-385.e5) DOI:10.1016/j.ajog.2008.0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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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중요한 연구결과를 발췌한 표이다. Cesarean delivery (CD, 제왕절개)율을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의 자녀는 33.2%이고 백인 모계와 아시아 부계의 자녀는 23.0%이다. P value가 0.001보다도 낮아 매우 유의미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같은 아시아-백인 혼혈자녀를 출산할 경우 백인 모계 출산시 제왕절개율이 아시아 모계 출산의 경우보다 10.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골반 골격 차이 등을 포함한 생물학적 차이가 이런 차이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논외의 발견이지만, 각각의 하위그룹 중 인종간 커플의 샘플사이즈를 보면 아시아 모계와 백인 부계는 690,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는 178로 아시아 부계와 백인 모계 결합이 훨씬 드문 것을 볼 수 있다.)

단지 이것만 놓고 이야기하면  동양 여성의 골반이 작아 산후조리도 더 길게 해야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백인커플과 동양인커플의 제왕절개율을 살펴보면 평균적으로 더 크게 태어나는 태아로 인해 백인커플의 출산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골반 사이즈 등의 체격 조건은 서양 모계가 출산에 더 용이하지만 아기가 더 커서 서양인의 출산시 충격이 동양인보다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골반 사이즈 차이로 인해 서양여성이 더 쉽게 출산할 수 있고, 따라서 산후조리가 필요 없다는 논리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근육량은 어떨까? 인종간 선천적 근골격계 질량 차이를 보면 설명이 될 것 같다. (Silva AM, Shen W, Heo M, et al. Ethnicity-Related Skeletal Muscle Differences Across the Lifespan. 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 : the official journal of the Human Biology Council. 2010;22(1):76-82. doi:10.1002/ajhb.2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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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그래프의 여성 근골격량을 보면 빨간색이 백인, 보라색이 아시아인이다. 남성의 경우 아시아인은 생략되었다. (아마 적은 샘플사이즈 등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안나와서 생략된 것 같다.) 여성의 인종간 근골격량 차이는 남녀의 근골격량 차이에 비하면 근소한 차이를 보이나 회귀분석으로 나타나는 백인과 아시아인 여성간 근골격량 차이는 전연령대에 걸쳐 개략적으로 3-4킬로그램 정도로 나타난다.  어쩌면 이 근골격량의 차이가 모체에 주는 출산의 충격에 차이를 빚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근골격량 3~4킬로그램 차이는 백인여성과 아시아인 여성의 키차이를 고려하면 골반 인근 근골격량 차이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사실 난 덴마크식 산후조리를 하고 있다. 덴마크식 산후조리는 사실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조언하는 바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의학계의 산후조리에 대한 조언이 덴마크 의학계의 그것보다는 우리나라 전통 산후조리 방식에 근접해 있으나, 임신 기간 중 체중 관리 및 운동에 대한 조언과 출산 후 그것에 대한 조언은 원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산후조리방식은 사실 구전으로 내려온 전통적 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사실 이는 지금과 많이 다른 과거의 주거문화 및 생활방식에 기초해 형성된 것으로 지금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출산 후 산후조리의 차이는 임신 기간 중 산모의 신체관리 방식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에서는 임신 기간 중 꾸준한 운동을 권장한다. 근손실을 최대한 막아야 출산시 용이하고 출산 후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신중에는 무조건 휴식을 권장하고, 임신 초기 몸가짐을 조심하여 신체활동을 극히 줄이도록 주문하는데 그게 근손실에 큰 영향을 준다. 또한 의사가 체중관리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임신 기간 중 먹고 싶은 것 못먹으면 스트레스가 애에게 간다든지, 몸이 요구해서 먹는다든지, 그때 남편이 원하는 것 안사다주면 평생 한이 된다든지의 이유로 원하는 대로 먹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체중 증량은 임신중독증, 임신성 당뇨, 부종, 아이의 체중 증가 – 이는 아이의 장기적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살이 트는 것도 피부가 감당하기에 너무 빠른 체중 증량과 관계가 있다.)

근손실과 과도한 체중증가의 결합은 출산 후 신체가 받는 충격을 가중시킨다. 출산에 대비해 관절을 유연하게 만드는 릴렉신 호르몬의 본비는 출산후 6개월여까지 지속되는데, 이로 인해 출산 후 가볍게 걷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고, 애를 안거나 돌보는 일도 힘들어진다. 그 와중에 급격히 체중이 느는 아기를 돌보면서 집안일을 하다보면 신체에 무리가 오고 소위 말하는 산후풍이라는 것을 겪게 되는 것 같다.

진짜 모체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임신과 출산후 산후조리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신 전부터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늘려 임신기간 중 일부 근손실에 대비하고 임신 기간 전체기간 중 기간별로 알맞는 운동을 통해 근육량의 손실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출산 후에도 초반부터 기간 별로 권장되는 운동을 함으로써 골반저 회복부터 시작해 신체 회복을 돕고, 가벼운 걷기를 포함해 서서히 정상 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산 다음날 나는 퇴원을 해 복귀했는데, 경산의 경우 출산 후 6시간 내 퇴원하는 (산모가 난산 등으로 별도의 이유가 있지 않는한) 것이 이해가 간다. 나의 경우 초산이라 출산 후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잘 예상하기 어려워 산파와 건강상담사 (Sundhedsplejerske, 간호사 중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자격을 획득한 전문상담사) 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하루 머물렀지만, 지나고 보니 바로 퇴원해도 상관없었다.

물론 앞으로도 산후조리는 시간에 걸쳐 해야하는 일이기에 추가적으로 관찰해보고 판단할 사항들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시아인이라 해서 꽁꽁 싸매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루하게 산후조리원에 앉아서 산후조리를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입장이다. 초기 한달 정도는 모유 수유 및 기타 육아의 리듬과 패턴을 수립해 가는데 적응기간이 필요하기에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막대한 돈을 들여 산후조리원에 가서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사도우미를 쓰는게 더 낫지 않나 싶다. 그리고 모자 동실 쓰는게 엄청 힘들다고 하는 글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읽었는데, 사실 애가 가장 가볍고 요구사항이 가장 간단한 신생아 시절에 미리부터 아이에 대해 알아가고 밤중 수유의 패턴 등에 익숙해지는 것이 산후조리원 생활 이후 불쑥 커진 아기와 갑자기 둘이 앉아 그제서야 아이에 대해 배워가는 것보다 수월한 것 같다. 이제 13일차 된 하나를 보면 대충 뭘 원하는 지 우는 형태로 알겠고, 아이도 부모에 대해 빠르게 익혀가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게 여러모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다. 내 지인들은 내가 특별한 경우라고 하지만, 사실 내가 특별히 다른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유별나게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험을 공유함으로서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니 내가 쓰는 글이 절대적이거나 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덴마크 육아기] 아기 선천성 심장기형 코호트연구 참가기

출산후 열흘째 되는 날인 월요일, 출산 병원인 헤얼레우 병원에 다녀왔다. 2016년부터 2018년 기간 중 태어나는 아이를 대상으로 선천성 심장기형에 대한 전향적 추적연구 (Copenhagen Baby Heart, http://baby-heart.dk/)가 이뤄진다고 해서 참가를 신청하였다. 첫 초음파 검사를 하던 날 해당 연구에 대한 안내자료를 받았는데, 출생 직후 탯줄에서 제대혈을 체취해 연구용으로 보관하는 것과 출산 후 약 일주일 되는 시점에 병원에서 정밀 심장초음파 검사를 받는 것이었다.

덴마크에서는 매년 450명의 신생아가 선천성 심장기형을 안고 태어난다고 한다. 이중 70%가 성장과정 중 적절한 시점에 기형의 종류와 형태에 따라 맞는 치료를 받아야 하며 선천적 심장기형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현재 22,000명 정도라 한다.

Copenhagen Baby Heart에 따르면, 이 연구는 얼마나 많은 신생아가 심장 기형을 안고 태어나는지, 연구에서 시행하는 것과 같은 조기의 일상적인 심층적 초음파 검사가 신생아에게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이 연구에서 조기에 심장기형을 발견한 아이의 경우 장기적으로 추적검사를 하며 필요한 후속 진료를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선천적 심장기형이 어떻게 생애주기를 거쳐 발전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체취한 제대혈에서는 해당 심장질환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동의서를 읽어보니 보호자로서 우려할 수 있는 것은, 선천성 심장기형이 있다고 발견되었을 때 부모가 갖게 되는 심리적 우려였다. 우선 30%는 진료가 필요없는 경우인데, 이 또한 나중에 진행과정을 보면서 진료 필요 여부가 결정되고, 70%에 해당되도 즉각적인 치료를 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에 치료를 해야 하기에 그 시점까지 부모가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옌스가 보건경제학자라 병원에서 진행하는 코호트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했고, 미리 심장질환을 알 수 있다면 그게 더 낫다라고 생각을 했기에 우리는 연구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물론 출산한지 얼마 안돼서 병원을 가야한다는 것이 부담이긴 했으나 말이다.

열차로 두정거장 가서 버스를 타고 한 20분이면 가는 곳에 병원이 있는데 2시 반에 가기로 약속이 잡혔다. 1시 반에 집을 나서서 병원에 도착해 미리 수유를 하고 (검사 전 요건이었다.) 검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 간단히 본 것 뿐인데 4시 반이 넘었다. 애가 있으니 뭘 해도 행동이 느려지게 돼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하나는 울지 않고 검사를 잘 마쳤고, 검사하는 중 기저귀에 큰 실례를 하는 소리를 내며 소노그래퍼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소노그래퍼가 초음파 장비를 다루는 솜씨는 흡사 프로게이머가 마우스를 다루는 듯 하여 놀랐는데, 마침 옆에 있는 의사가 “당신처럼 장비를 빠르게 다루는 사람 처음 봤다.”고 말해서 내 놀라움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간에 하나가 약간 칭얼거리자 소노그래퍼가 새끼손가락을 입에 물려보라고 했다. 며칠전 집에 방문했던 건강방문사 (Sundhedsplejerske) 도 그렇게 하던데 싶어서 손가락을 물려보니 애가 젖을 물릴 때처럼 빨더라. 얼마나 강하게 빨던지 깜짝 놀랐다. 4주 정도까지는 공갈젖꼭지를 물리지 말라면서 애가 공갈젖꼭지로 살살 무는 것에 적응하면 힘들게 엄마 젖 안빨려 한다한 간호사의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손가락을 물리는 트릭으로 하나를 진정시켜 무사히 검사를 잘 마쳤는데, 다행히 하나는 문제가 없이 건강하다고 했다.

선천적 심장기형은 왜 발생하는지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 규명이 되지 않았는데, 임신 기간 중 정밀초음파로 확인할 수 없는 기형이 많기 때문에 출생 후 확인이 된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은 소아과 및 흉부외과의 진료 및 외과적 수술 등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 관리형 질병이라고 한다. 의료 비용에 있어 자기 부담 비중이 상시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덴마크는 나라에서 의료비용을 전액 부담하기에 (약제비용은 자가부담 비중이 있으나 연간 부담 상한이 있어 이를 초과하는 비용은 나라에서 부담하며 처방이 빈번한 만성질환용 약품의 경우 처방 빈도에 따라 자가 부담비중이 경감되는 구조로 설계) 이런 관리형 질병이 상대적으로 덜 부담된다. 그 점은 공공의료가 참 좋다. (일부 질병의 경우 철저히 가정의-전문의-종합병원 순으로 철저히 이뤄지는 공영의료 시스템이 병을 키우게 된다고 해 공공의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하나, 100% 공공재원으로 이뤄지는 공영의료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비용효과 (Cost effectiveness) 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갑자기 옆에서 자고 있는 하나가 꿈결에 까르르 웃더니 엄청 크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눈을 떠서 한번 더 씨익 미소를 짓더니 다시 꿈나라로 돌아갔다. 언제 이렇게 웃는 법을 배웠는고? 아이가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익힐 때마다 감격을 하는 우리는, “예전에 이런 것에 감동하며 웃는 사람들 보고 나중에 나는 그렇지 말아야지…”했던 기억을 하면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게 우습다.

첫 감기에 걸려 (심하진 않지만) 고생을 한 하나가 앞으로 크고 작게 아플 일은 많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라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다. 애가 조금이라도 아파 울면 마음이 영 좋지 않고 해결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는게 마음이 힘들어서 말이다.

덴마크스러움이란?

11월 말이 되니 Spotify에 캐롤 믹스가 넘쳐난다. Julesange du kender (Christmas songs you know)라는 믹스가 추천으로 떠서 틀어보니, 덴마크 크리스마스 노래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Jul-Det’Cool이라는 노래가 첫곡으로 나온다. 이젠 나이가 꽤나 든 덴마크 래퍼인 Mc Einar의 노래인데, 소비지향적인 크리스마스를 덴마크인 특유의 아이러니한 유머로 비꼰 노래다.

Jul-Det’Cool by Mc Ei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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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MC Einar. (Source: BT)

Det skete i de dage i november engang
at de første kataloger satte hyggen i gang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ebal i Nisseland, familiernes fest
med fornøjet glimt i øjet, trækker folk i vintertøjet
til den årlige folkevandring op og ned ad Strøget
der bli’r handlet, pakket ind, og der bli’r købt og solgt
tøsne, snot i næsen, det’ pisse koldt
det er vinter, man forventer vel lidt kulde og sne
men det’ da klart at en såd’n sag må komme heuj bag på DSB
intet vrøvl har de forsvoret, det de helt sikre på,
men ved den første rim på sporet, går møllen i stå
folk de tripper, skælder ud, og ser på deres ure
og sparker efter invalide, ynkelige duer
der er intet, man kan gøre, de sure buschauffører
gør det svært at praktisere lidt julehumør
“Gå så tilbage for helvede” råber stodderen hæst
men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r er mænd, der sælger juletræer på alle åbne pladser
12 bevægelige nisser og en sort mekanisk kat
i et vindue ud mod Strøget trækker flere tusind watt
kulørte gavepakker i kulørte juleposer
selv i Bilka og i Irma og i alle landets brugser
er der ægte julestemning og gratis brune kager
der er hylder fyldt med hygge, der er hygge på lager
og hos damerne i Illum kan man få det som man vil
“Kontant eller på konto, hr.? Ska’ prisen dækkes til?”
de smiler og er flinke, mest for fruerne i minke
og gi’r gode råd om alt fra sexet undertøj til sminke
og vi andre fattigrøve, vi ka’ gå i Dalle-Valle
der er damerne så flinke, at de smiler pænt til alle
der er masser tøj i kasser, der helt sikkert passer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15.000 mennesker i Magasin
de har våde lædersko, de har halstørklæder på
de har overfrakker, gavepakker, masser de ska’ nå
men de hygger sig, sel’fø’lig gør de det
plasikstjerner, plasikgran og plastiksne
sætter stemning i systemer, det’ så nemt og nul problemer
køb blot julestuens julesæt med fire fine cremer
eller sukkerkrukker, pyntedukker, pænt, mondænt og ganske smukt
søde sæt med proptrækker, glas og øloplukker
fra en skjult højtalerinstallation,
“Et barn er født i Bethlehem” i Hammondorgelversion
vi’ traditionsbundne folk, i traditionernes land,
så vi hygger os, li’så fint vi kan
og særlig uundværlig, det er Magasin,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Højt fra træets grønne top”
“Mød julemanden klokken 13, 15, og 17 på julestuen på 3. sal”
“Vores velassorterede vinafdeling kan tilbyde et komplet gløgg-sæt for kun 39.95”
“Lille Øjvind på fem år er blevet væk fra sin mor, han kan afhentes i kundeservice”

“Jamen du godeste er det allerede…”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der er intet lavet om siden sidste år
det’ de samme ting vi spiser, det’ de samme ting vi laver
de samme ting i TV, de samme julegaver
samme pengeproblemer, det’ dyrt og hårdt
udelukkende overtrukne kontokort
overflod og fråds med familie og med venner
samvittigheden klares med en ulandskalender
det’ julefrokosttid, traditionspilleri, spritkørsel, utroskab, og madsvineri
vi har prøvet det før, vi ved præcis hvad der sker
slankekur i januar og alt det der
det’ et slid, men der er lang tid til næste år
det’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Jeg drømmer om en hvid sandstrand,
med palmetræer og sommervejr
der vil jeg fejre julen
i swimmingpoolen
langt væk fra sne og juletræer”

옌스는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걸 매우 웃기게 생각한다. 가사도 모르던 이 노래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출근 길에 화장하면서,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항상 들었는데, 거기서 이 노래를 정말 자주 틀어줬다.

옌스가 간혹 나보고 자기보다 더 덴마크인스럽다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다. 덴마크 캐롤을 좋아하는 것,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Ris a la mande (프랑스 메뉴인 척 하는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나 Æbleskiver를 먹고 싶어하는 것, 덴마크식의 self-irony 유머를 즐기는 것 등 말이다. 사실 self-irony 유머는 그냥 여기에 와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덴마크 문화와 맞아떨어진 개인적 특성일 뿐이지만…

그런데 막상 옌스는 덴마크인스럽지만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사람이기도 해서 진짜 덴마크인스러운 게 뭔지는 집 안팎을 두루 관찰하고 이야기를 골고루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실제 옌스는 전형적 덴마크인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한다. 남들끼리는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는 공감하기 어렵고, 반대로 내 경험을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을 꼽아보자면… Rugbrød(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에서 주로 먹는 호밀빵으로 점심때 먹는다.)은 가족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행사같은 날 빼고는 안먹는 것 (자기는 어려서 평생 먹을 Rugbrød을 다 먹었다며…), 있으면 먹지만 Lakrids (감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각종 종교적 전통을 좋아하지 않는 점 (크리스마스때 선물 교환은 딱 조카들과 나에게만 하고, 가족들에겐 선물 안주고 안받는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새로운 음식이나 새로운 문화, 언어를 배우는 것 등을 좋아하는 점, 덴마크를 좋아하지만 굳이 덴마크를 자랑스러워하거나 덴마크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거나 그런 게 없다는 점, 그래서 내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점, 덴마크 국기인 Dannebrog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맥주를 안좋아하는 점 등이다.

덴마크인스러운 점도 물론 많다. 운동을 정말 좋아해서 하루라도 운동을 빼놓는 날이 없다는 점, 매사 성실한 점, 개인생활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시하고 가사분담 참여비율이 높다는 점, 직업 윤리가 투철하다는 점,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점, 집에서 밤에 불 밝게 켜는 것 싫어한다는 점 (현광등은 정말 질색팔색한다. 한국가서 한두달 지내려면 적응하느라 고생 좀 할 듯), 겨울에도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자야하는 점, TPO에 맞는 옷을 잘 차려입는 것 좋아하고 패션에 대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점 (자기 것 쇼핑은 반드시 자기가 한다. 의견은 수렴하지만, 결정은 자기의 몫. ) 등

물론 이러저러한 특성을 굳이 덴마크인스러운 점과 그렇지 않은 점으로 나눴지만, 사실 외국인 남편과 그의 모국에서 살다보니 국민적 특성이란 것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개별특성의 스펙트럼이 평균으로부터 워낙 넓게 펼쳐져 있어 저 구분이 틀리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이 또한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 자기가 교제하는 사람과 준거집단을 중심으로만 살펴보게 되서 덴마크인스럽다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겐 전혀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도 많고, 내가 덴마크인스럽지 않다고 하는 것도 덴마크인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친구를 초대해서 음식을 넉넉히 하다보니, 다음날 저녁에 데워서 먹을 만큼 넉넉히 남았었는데, 난 그에 곁들일 탄수화물로 빵을 굽고 있는데, 옌스는 밥을 달라고 했다. 서양음식인데 밥을? 이라는 나의 반응과 달리 옌스는 내가 해준 쌀밥이 덴마크 어느 식당에서 먹는 쌀밥보다도 맛있다면서 그걸 달라하고, 간장에 참기름을 달라해서 그 쌀밥위에 끼얹어 먹는걸 보면서 기함했다. Rugbrød위에 남들과 다른 컴비네이션을 얹어먹는 걸 봐도 크게 놀라지 않는 옌스인 걸 생각해보면 그만의 기이한 조합도 딱히 놀랄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방송에서 “진정한 덴마크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걸로 이것 저것 다양하게 다룬다. 토론, 뉴스, 다큐멘터리 등등… 옌스는 그런 토론 자체가 정말 피곤하고 언론에서 덴마크인이라는게 뭐 대단한 거고 그게 얼마나 통일성이 있는 것이고 독창성이 있는 거라고 그걸 그렇게 따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공동체 의식, 개인주의 등 가장 핵심적인 가치만이 지켜진다면 사회는 항상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고, 개인마다 덴마크인다움에 대한 정의가 다 다른데 그걸 dansk함과 udansk함을 나누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 나에게도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인 다움이 있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이곳의 가치에 영향을 받으며 한국에서 갖고 있던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너도 덴마크인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내가 한국인인 것만큼 덴마크인도 되어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 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함께 덴마크인의 행복함의 원천에 대해서 휘게와 기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찾고 이를 홍보하고 수출하는 것도 피곤하다고 한다. 그냥 타인과 비교 별로 안하고, 현실감있는 목표를 정하고,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서열의식이 적고 자연환경이 좋은 편이어서 다른 나라사람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덜 받고, 그래서 행복한 거 아니냐고. 그게 우리에게 특별한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란다.

이럴 때 난 덴마크인이지만 덴마크인이기만 하지 않은 옌스와 결혼을 한게 참 안도가 된다고 할까? 안그래도 타국에서 살면서 적응할 게 많은데 그걸 강요당한다거나 기대를 받는다면 어땠을라나? 여기의 룰에 맞춰가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다름을 같음으로 맞춰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과, 내가 다른 건 옌스가 다른 덴마크인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다르다고 전제를 깔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리 없이 편입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고 적응을 도와주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이번에 새로 주문한 한국어 책에서 (한권을 드디어 끝냈다. ㅠㅠ) “하다”동사를 활용한 한국어 동사변형의 여러가지 유형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걸 패턴드릴로 연습한다고, 몇가지 동사를 주면서 이걸 같은 형식의 테이블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어줬더니, 다음날 회사에서 출력을 해갖고 온 것을 보여주며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사실 옌스랑 나는 주중엔 퇴근 후 30분정도 그날 있었던 이야기 좀 하고, 같이 뉴스 보고, 각자 할 일 하다가 소파에서 30분 정도 같이 앉아 쉬고, 또 각자 할 일 하다가 잠자리 들어서 조금 이야기 나누는 것 정도가 일상이다. 각자 할 일 하다가 시덥잖은 말 한 두마디 던지면서 낄낄대는 것 외엔 자기 할 일 할 때는 자기 것만 따로 하기에 각자의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 평일엔 저녁도 둘다 뉴스 보면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 간단히 먹으니까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게 둘이 필요로하는 공통사항이라 서로 이를 존중해주는 것이 참 좋고 고마운 거다. 우리는 서로 뭐 배우고 하는 거 좋아해서, 같이 있지만 또 각자 저녁에 배움의 시간을 가진다는 점에서 닮아서 정말 좋다고 하니까, 인생의 목적은 배우는 데 있는게 아니냐고 한다. 항상 옌스가 강조하는게 general education의 중요성인데, 이걸 덴마크인스러운 것이라고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옌스스러운 것이지.

이런 옌스와 살아서 딱히 문화충격을 받을 일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인도에서 겪은 문화충격이 워낙 커서 웬만한 다름에 충격을 크게 받지 않는 것도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어떻게 적응하고 사느냐의 문제로 인식하면 되는가 싶기도 하고. 또 곰곰히 뒤를 돌아봐 생각해보면 나름 여기서도 큰 문화충격을 받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 힘든 시간들이 대부분 잊혀지고 그냥 그 틀에 내가 녹아들어가 바뀌어 더이상 놀라울 게 크게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다시 들춰보며 과거의 추억에도 잠겨보고, 스스로의 과오나 성과에서 배워도 보려고 별거 아닌 이런 생각의 조각들을 그래서 그때그때 남겨두는 거니까… 몇 년이 지나서 지금을 반추해보면 그땐 또 무슨 생각이 들런지…

산파 면담기

아침부터 부지런히 페달을 밟고 나섰다. 산파와의 첫 만남이 예정되었기 때문에. 자전거로 7분거리에 있는 겐토프트병원에서 면담이 예정되었는데, 응급실 말고 제대로 가본 적이 없는 병원이었던 터라 내부도 궁금했다.

이름을 까먹었는데, 내 담당 산파는 젊은 여성이었다. 경력은 어느 정도 있는 듯 안정된 모습이었고 침착한 성격으로 보여 앞으로 함께 할 출산의 여정을 맡겨도 괜찮을 사람으로 느껴졌다.

약 30분간 인터뷰와 촉진을 했는데, 주로 임신 경험 (임신까지 걸린 시간, 입덧, 체중 변화추이, 기타 힘들었던 사항) , 유전관련 참고사항 (가족병력 – 당뇨 등을 포함해), 생활 습관 (흡연, 음주, 운동, 식이요법, 영양제 복용), 출산에 대한 희망사항 등에 대한 상담이 주를 이뤘다. 촉진으로는 자궁의 위치를 확인하고,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또한 의료 정보에 대한 제공동의, 내 응급상황의 보호자 정보 수집, 응급상황시 연락할 곳 안내 등이 이뤄졌다.

임신 경험

6주~14주 사이의 입덧으로 4킬로 빠진 걸 제외하면 내 임신경험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입덧 기간 중 먹은게 없어 움직이지 못하니 근손실이 많았는데, 그래도 그 전에 축적해둔 근육이 있었고, 입덧이 끝나자마자 다시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시작하며 체력을 조금씩 다졌다. 발레도 시작해서 잃어버린 근육들의 흔적을 찾아헤매고 있다. (물론 아직은 집 나간 근육들이 다 돌아오진 않았다.) 몸에 근육이 있어야 나오는 배를 안정적으로 잡아주고, 릴렉신이란 호르몬으로 인해 관절 가동범위가 늘어나 발생할 수 있는 부상 등에서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살이 한번에 과도하게 찌지 않아야 해서 운동하라는 것도 있지만, 근육 운동도 하라는 것은 그런 이유가 있단다. 살면서 항상 배에 긴장감을 주고 지내왔는데, 그 긴장감을 한번 풀어보니 배가 불룩하고 튀어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여하튼 운동이 체력을 키워준다는 말은 임신과 상관없이 맞는 말인 모양이다. 물론 운동의 선택에 있어 제약은 따르지만.

우리는 임신을 계획하자마자 했기에 인고의 기다림의 시간이 없었고, 한국에서 미리 하고 온 산전 검사에서도 내 난소의 기능이 20대 중반의 기능이라 했던 것처럼 1차 초음파 검사 결과 기형아 발생 확률도 1/4000을 훨씬 밑돌았기에 큰 걱정 없이 임신기간을 보내왔다. 체중도 이제야 입덧기간 중 빠졌던 체중을 회복했는데, 22주에 4킬로면 정상적이라고 듣고 왔다. 기타 사항은 약간의 치골통이 있는 것? 서서히 좀 아프긴 하지만, 남들 다 겪는 일이니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유전관련 참고사항

당뇨를 포함해 각종 유전병에 대한 질문을 했다. 아버지 형제분들이 당뇨병이 있고, 아빠는 엄청 체중을 관리하시는데도 위험군에 들었다 나왔다를 반복하시기에, 아마 나에게도 당뇨병 유전인자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점 이야기 했는데, 1형 당뇨병이 아니면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엔 유전관련 위험인자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생활습관

옌스나 나는 생활습관은 좋은 편이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으려고 하고, 흡연과 음주 등 안좋은 것 피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다. 사실 임신 이후 샴페인을 총량 기준으로 2잔 정도 마셨다. 친구 결혼식과 우리 결혼기념일 저녁식사때 반 잔씩, 얼마전 친구들과 만나서 야외에서 한 잔을 마셨으니. 산파 왈, 한달에 1~4잔 이내를 마시는 것은 괜찮지만, 권장사항은 안마시는 것이니 그 점 알아두라했다. 그리고 내가 여태까지 2잔 정도 마셨음을 다 컴퓨터에 기록해두었다. 흠흠.

운동양은 적당하다고 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 같은 극한의 운동 및 몸에 충격을 꾸준히 주는 승마와 같은 운동만 제외하면 다 좋다고 한다. 자전거든 발레든 향후 체형의 변화에 따라 힘든 정도가 달라질 텐데 그 정도를 감안해 강도나 양을 조절해주라는 것만 잊지말라고 했다.

영양제 복용 문제로 갔을 땐 내가 좀 부끄러워 했는데, 사실 비타민을 열심히 먹는 편이 아니라 이실직고하는데 왠지 꼼지락거리게 되었다. 특히 철분은 변비가 너무 심해서 복용을 시도하는 자체가 무섭다고 하자, 철분제제마다 변비 유발 정도가 다르니 영 안맞으면 다른 것을 먹어보도록 하고 물을 많이 마시는 것으로 해서 우선은 복용해보도록 하라고 했다. 그리고 우유는 어쩌냐 해서 많이 마시고 있다 하니, 잘 하고 있다며, 애는 알아서 다 필요한 만큼 칼슘을 다 빼가니까 애와 상관없이 나를 위해 마시라고 했다. 또한 내 피부가 태닝되었기에 광량이 부족하기 시작한 요즘시기부터 충분히 태양광을 흡수하지 못해 비타민 D 소요량만큼 충분히 생성이 안될 것이라며, 이 또한 복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관련 희망사항

혹시 출산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본 바 있냐고 해서, 우선은 에피듀럴 없이 자연출산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회음부가 찢어지는 확률을 조금이나마 낮춰보려고. 그리고 고통은 심하더라도 출산을 좀 빨리, 자궁의 수축 리듬에 따라 힘을 줘가며 수월하게 해보고자 함이었다. 자연주의를 추종하고 뭐 그런거랑은 상관없이, 내 몸이 가장 빨리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자 함이다.

촉진

누워보라며 배를 이래저래 만져보더니 자궁의 위치와 크기가 적당하단다. 그래서 그 위치가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냐하니, 너무 아래로 내려와 있거나 등의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단다. 그리고 이틀 전 헤얼레우 병원에서 들었던 아기 심장소리를 한번 더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 들은 소리는 내 심장소리였고, 조금 옆으로 이동해 들어보니 아기 심장소리가 들렸다.

응급상황시 

응급상황시 연락할 수 있는 번호를 받았다. 어떤 상황이 응급상황인지에 대해서도 안내를 받았고. 지금부터는 매일매일 태동을 느끼는 게 맞고, 하루라도 태동을 못느끼는 날이 있으면 그 또한 응급상황이라고.

임시 또는 최종 이름

옌스가 저글링클럽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어 공부 복습을 하다가 ‘유레카’하는 순간이 있었나보다. ‘하나’라는 이름 어떠냐고. 첫째기도 하고, 두음절 이름에다가, 덴마크에서도 쓰는 이름 (그러나 아주 흔하지는 않은) 이며, 약간은 이국적이기도 한 이름이라고 한다. Hanne면 완전히 덴마크 이름인데 Hannah면 약간 이국적인 스펠링이라, 검은 머리 아기일 우리애에게 적당한 이름이라며. 또한 ‘한’이라는 글자가 한글, 한국을 뜻하기도 하니 아주 적합하지 않냐한다. 나도 매우 공감하며, 우선 이 이름으로 아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간 부른 ‘아기’라는 태명이, 실제 덴마크 이름 (Aggi) 으로 존재한다. 이 사람은 평생 아기.)

내 생각에 아마 태명이 아니라 정말 이름이 될 것 같다. 🙂

앞으로 11월에 또 산파를 만나서 그때는 임신중독증 및 임신성 당뇨 등을 검사하게 될텐데, 그 때는 내 배가 얼마나 커질지 궁금해진다. 이렇게 목요일이 또 거의 다 지나가며 주말이 되는구나.

두번째 초음파 검사 – It’s a girl!

두번째 초음파 검사가 예정되었던 오늘. 수업이 12시에 끝나는데 초음파는 1시 15분에 잡혀있었다. 수업이 5분 늦게 끝나서 열차 타고 버스 갈아타면 오히려 빙 돌아가 늦을 거 같은 위기감에 자전거로 가기로 했다. 끊임없이 미세한 오르막길을 꾸준히 올라가다보니 40분 걸리는 길이 엄청 힘들더라.

만 21주를 딱 채운 그저께부터 좀 늦게나마 태동도 느끼기 시작했기에 태아가 잘 크고 있을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2차 발달검사를 통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여러가지 신체적 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다니 긴장이 조금 되었다. 그리고 성별도 확인할 수 있을거라는 마음에.

옌스와 1시 5분에 진단실 앞에서 만나 기다렸는데, 의외로 오래 걸려서 1시 35분이 되어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반차를 냈지만, 2시와 3시에 회의가 있어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던 옌스는, 3시 회의는 놓치면 안된다고 초조해하면서 왜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냐며 조바심을 냈다. 이번에도 우리 이름 안부르면 물어보자고 했는데, 우습게도 바로 우리 차례였다.

소노그래퍼와 악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무엇을 검사할 지 등을 듣고 의자위에 앉았다. 바르게 앉아있는 아기. 태반이 자궁 앞쪽벽에 붙어있어 이게 쿠션역할을 하는 탓에 태동을 남보다 늦게 느낄 거고 약하게 느낄거라 알려줬다. 그러나 자궁경부로부터는 충분히 떨어져있어 안전한 곳에 착상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늦게 느꼈구나 싶었다.

40분에 걸친 초음파 검사를 통해 여기저기 샅샅이 검사하고 보여주었다. 중간에 아기가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잘 안바꿔줘서 좀 걸어다니고 배를 흔들어보라더라. 초음파 젤이 바지에 뭍지말라고 배에 수건을 하나 껴둔 상태로 걷고, 한발로 뛰기도 하고, 허리를 숙였다 폈다가, 배를 양옆으로 흔드는 등의 생 쇼를 한 뒤에 다시 자리에 가 앉았더니 애가 자세를 바꿨다. 애가 아직까지는 말을 잘 듣는다는 소노그래퍼 말이 웃겼다. 앞으로 내 말 안들을 날이 얼마나 많을지를 예고하는 징표같다고나 할까.

눈, 코, 입 위치, 척추뼈 개수, 심장 움직임과 생김새, 뇌 발달, 혈류, 내장장기, 뼈 발달상황, 등등 다양한 것을 보더니 모든 것이 정상이고, 체중은 398그램이니 임신 주차에 맞게 찰 크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무게를 아냐니까, 두개골과 허벅지 뼈, 기타 신체 둘레 등을 입력하면 체중이 계산되어 나온단다. 회귀분석으로 모델링을 하는 듯) 임신 초기에 빠졌던 4킬로가 이제야 거의 다 회복이 되었는데, 필요한 영양분 다 엄마 몸에서 빼다가 잘 크고 있으니 앞으로 잘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임신 6~14주차의 8주간만 아니면 임신으로 크게 고생한 것도 없고 아주 잘 지내고 있기에 엄마 고생시키지 않고 쑥쑥 잘 커주는 아이가 고맙게 느껴졌다.

머리 생긴거 보는데, 옌스를 닮아서 그러는지 머리가 앞뒤로 확연히 긴 짱구머리다. 난 전형적 한국인 얼굴이라 앞뒤가 짧은데. 코도 오똑한 것 같고. 이 점은 성공한 듯.

성별을 보려는데 다리로 얼마나 가리는지. 잘 못느끼던 태동을 팍팍 느끼게 해주며 초음파 검사에 항의하던 아기가 결국 자신의 private한 곳을 보여주었는데, 보여준 결과는 딸. 소노그래퍼가 딸이 shy한 것 같다길래, 아무래도 좀 privacy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고 답을 해주었다. 하하하. 난 사실 뭐래도 상관없어했기에 딱히 더 기쁘거나 실망할 일 자체가 없어서 덤덤했는데, 옌스는 아들을 조금 더 원한다고 했기에 어땠을런지. “딸이라도 축구는 같이 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주니 소노그래퍼가 웃는다. 그래도 옌스가 미니 해인이 나올 거라며 기뻐해주었다.

정상적이라 3차 초음파는 안봐도 된다고 해서 출산 전까지 아기를 만날 일은 더이상은 없다. 좀 아쉽기까지 하네. 고령출산이라 3차도 보나 하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흠흠.

옌스는 시부모님께 안부인사를 전하고, 나는 집에 와서 페이스타임으로 집에 연락을 했는데, 모두 기뻐해주셨다. 이제 이름 정하기 작업이 한결 수월해지겠다. 남자 이름은 리스트에서 지우고 여자 이름을 정해봐야지.

얼굴은 앞으로 19주 뒤에 보자, 아기야! 그 전엔 이름도 지어줄게. 😉

임신, 입덧, 덴마크 생활

요며칠 입덧이 심해서 하루에 1~200 그램씩 빠지는 것 같다. 최소한의 먹거리만을 먹고 버티고 있는데, 먹고 토하는 일이 잦아지니까 먹기도 살짝 겁나고 안먹자니 애한테도 좋지는 않을 거 같아서 최소한 먹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와있는데, 공부도 요며칠 하나도 안하고 놀고 있다. 다행인건 스트레스도 별로 받는게, ‘아, 임신해서 몸이 안좋아서 시험 못치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근거없는 생각 때문이랄까. 그나마 그간 성적을 잘 받아두어서 한두개 좀 못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도 없거니와 하나는 내가 쓴 페이퍼를 근거로 시험보는 것이라 이미 고생해서 낸 것에 대한 평가가 시험의 큰 몫을 좌우하기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다.

어느덧 임신 7주. 시어머니와 함께 임신 후 처음으로 병원을 다녀왔다. 멀리 Bornholm에 살고 계시지만 내일 새벽같이 시누이와 첫손녀와 함께 셋이서 떠날 2박 3일의 짧은 런던여행을 위해 Holte에 잠깐 와계셨다. 그 전에 병원 갈 때 혼자 가기 그러면 언제고 이야기해달라고 하셨는데, 비행기로 오셔야 하는 시어머니 일부러 오시라 하기 뭣해서 그냥 혼자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혹시 말씀은 드려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렸는데 잘 한 일이었다. 마침 와계시기도 했고 기뻐하시며 같이 가주신다 하셨다.

시어머니와 함께 간 것은 잘한 일이다. 남편 CPR번호도 기억이 안났는데, 시어머니가 기억하고 계셨고 (그런게 필요할 줄이야), 남편 가족 병력 등에 대해서도 문진을 했는데 그 또한 시어머니가 답변해주실 수 있었다. 쌍둥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우리 가족에는 그런 이력이 전혀 없다 했더니, 시어머니가 자기네에는 이력이 있다 하신다.

앞으로의 병원 일정은 12~13주 중 다운증후군 검사 1차, 25, 32주에 있을 초음파 검사 및 기타 아이에 대한 상세 검진이 거의 다 인것 같다. 나머지는 나의 출산을 담당할 산파와 만나서 할 일들이 있고, 출산 교육 등이 있는 모양인데, 그건 산파가 나에게 연락을 준다고 하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다. 아, 의사가 덴마크의 모든 병원 기록이 다 전산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임신과 관련된 것만큼은 문자 그대로 Paperwork이 아직도 살아있다면서 노란 봉투에 관련 내 임신 정보를 기록해서 넣어주었다. 앞으로 모든 진료시 항상 지참하라며. 이 아날로그식이라니. 모든 정보가 다 전산으로 날아오다가 갑자기 이런 노란봉투를 받아드니 월급봉투라도 받은 듯한 느낌이다.

다음 병원 일정에도 시어머니가 가주신다고 하니 이번엔 그냥 마음의 부담 없이 부탁하련다. 같이 가주시면 기쁘겠다고 말씀드리니 Bornholm에서 날아오신다고. 아. 이 감사함. 이 먼 덴마크에 내 부모와 떨어져살며 한켠으로나마 기댈 시댁이라는 구석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누이가 시어머니께 엽산 꼭 챙겨먹으라고 알려주라 했다는데, 시누이도 뭔가 참견하는 듯하게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나보다. 🙂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데 사실 뭘 물어봐야할지 잘 모르겠고, 책이나 각국 정부 보건당국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도 워낙 자세하게 정보를 담고 있으니 아무래도 먼저 연락하게는 잘 안된다. 참 좋은 시누이인데도 괜히 폐끼칠까봐 어려운 건 한국인이라 그런걸까?

병원을 나와 같이 커피한잔 (나는 초코우유 한잔)을 함께 하고 장을 본 뒤 각자 방향으로 향했다. 옌스랑 대화해도 쓰는 어휘가 한정되어 있는데, 병원에서 의사를 보거나 시어머니와 대화를 한다거나 할 땐 평소엔 잘 안쓰던 어휘도 쓰게 되서 좋다. 요즘 학원도 쉬다보니 듣기는 되도 뭔가 말은 퇴화하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역시 집중력의 문제인 것 같다. 꼭 써야된다는 생각이 없으니 요즘 다시 덴마크어 비중이 줄어 반반 정도 쓰는 거 같다. 복잡한 건 대충 영어로 이야기하고 일상 대화만 덴마크어로 하는? 집에서도 다시금 덴마크어 비중을 늘려봐야할 것 같다. 곧 방학도 하니 더욱…

뭔가 약간 퇴보하나 하는 불안이 드는 와중 하나 위안이 되는 건, 대학원 덴마크 친구가 자기는 지방 방언도 좀 심하면 못알아 듣는데 내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겠다면서 나에게 억양이 별로 없다고 해준 것이다. 옌스가 너 발음 좋다 이렇게 이야기해줘도 뭔가 그냥 자기 아내니까 격려해주려 하는 이야기로 들리고 덜 객관적으로 들렸는데,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나의 덴마크어 미래가 전도유망하다는 착각을 더 하게 해줬다고나 할까? 흠흠.

시간이 지나면서 덴마크에 친구도 서서히 늘고, 이제 내 피를 나누는 가족도 곧 생기고 할테니 뭔가 정말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기분이다. 아직도 나에게 내 나라는 한국이지만 이곳도 이제 내 나라가 될 것이니까.

입덧에 제대로 식사 못하는 아내를 위해 생일 아침상으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차려주는 남편도 있고, 병원간다고 멀리서 와주시는 시어머니도 있고, 다 감사하다. 인생의 많은 일들은 그간 걸어온 일과 우연이 만나 얽히면서 생기는 놀라운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을 떠나 일을 해보고 싶다 했던 아주 초등학교 3학년짜리의 꿈은 내 직장 선택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를 통해 이곳에 와있었고, 그간 잡다하게 해왔던 취미와 한국에선 드세다고 들어왔던 나의 적극적 성격은 옌스가 나에게 관심을 갖게한 동력이 되었다. 많은 연애 실패담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깨닫게 해주었고, 결혼생활은 어때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난 그는 나와 결혼과 인생관이 놀랍도록 흡사하게 닮아있었으며, 또한 다른 부분이 있어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린 스스로의 자유를 갈망하면서 같이 함께 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갖고 있기에 서로 잘 이해해줄 수 있고 지지해줄 수 있다. 애가 생겨서 인생의 많은 변화가 생기고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잘 헤쳐갈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 일부러 상처를 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문제를 차분히 잘 해결해나갈 수 있으니까.

정말 애를 가져도 좋겠다고 확신이 선 순간 이렇게 아이가 찾아와준 점 정말 고맙다. 앞으로 남은 기간 별 문제없이 건강하게 커주고 태어나주기만을 바랄뿐이다.

SU 받기

올 1월부로 소급해서 월 1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덴마크 정부로부터 받게되었다. 고등교육을 받는 덴마크인 또는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EU시민권자, 덴마크인과 결혼을 통해 덴마크시민권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은 SU를 받을 수 있다.

교육보조금(uddannelsesstøtte)라고 불리는 이 월급같은 돈은 인적자원이 중요한 개방형 소형경제 국가로서 고등교육을 받는 인력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돈이다. 이것 때문에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뭐라도 다른 일을 하면 이 이상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 뿐이고, 실제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파트타임 직장을 갖는게 일반적이다.

나야 옌스 살던 곳에 숟가락 얹고 사는 상황이고 모아둔 돈이 있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쩌면 그래서 이 추가적인 백만원의 돈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래저래 좀 꼬인 문제로 행정절차를 제 때 밟지 못해 초반 4개월은 돈을 날리나 했는데, 그런 것 없이 다 챙겨주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이야기하자마자 옌스는 그나마 내가 이돈을 받으니 조금 덜 속이 쓰리긴 하지만,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지 아느냐면서 나중에 세금 내봐야 그 마음 이해할거라 한다.

그 마음 이해도 가고, 앞으로는 더 이해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사회가 이렇게 전반적인 행복수준이 유지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안정된 치안이 이런 시스템과 신뢰 아래서 생긴 것이라는 걸 생각할 땐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말 별것 없는 한국 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소득(정말 달에 몇백원 할 것 같은…)을 세무신고때 해야하는 번거로움은 불평하고 싶지만 말이다. 아마 여기서 추가로 월에 몇 크로나 내야 할 것 같다. 이거 불평하니까, 옌스가 여기서 받는 정부지원을 생각하면 그거 불평하면 안된다고 한다. 께겡…

내 나라에서도 못받던 국가보조금을 여기서 받다니. 참 오래살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