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사무관급에서는 연봉 협상이랄게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정부와 내가 소속된 노조랑 임단협을 하면 내 임금단계에 맞춰 인상이 되기 때문이다. 임단협에 맞추지 않고 내가 직접 협상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문 케이스이고. 나는 원래 주는대로 받자는 주의라 임단협에 묻어간다. 내가 아주 특별하게 뛰어났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단협을 받아들이든 자기가 직접 협상을 하든 그건 이미 본 협상 단계에 들어서서 할 일이고 그 전에 또 임금기대수준에 대한 대화를 하는 회의를 갖게 된다. 여기서 상사도 오퍼할 내용을 준비해 공유하고, 직원도 자기 나름대로의 기대수준을 이야기한다.

오늘 이 임금기대수준에 대한 회의를 했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임금정책에 대해서도 읽어봤지만 매우 원론적인 정책이라 그게 나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고, 아직 이 임금협상이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마음 먹고 썰을 풀자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겠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원한 이상의 결과가 나왔는데 무엇보다 기뻤던 건 상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담을 받고 그 상담의 내용을 일상에 적용하고 하는 걸 벌써 두달 조금 넘게 했는데 그 사이에 정말 큰 변화를 본 거다. 상사의 좋은 평가나 이런 걸 덴마크에서 직장을 잦은 이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냥 좋게 말해주는 것 뿐이지, 나랑 일하는게 답답할 거다 이런 식으로 혼자 생각하고 덴마크어에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나에게 참 가혹하게 굴었으니…

심리상담 받느라 주당 근무 시간도 한두시간 줄이고 해서 평균을 넘는 임금인상은 기대도 안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또는 그냥 당연하다 생각했던 내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꼬집어 내어 좋게 상사가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며, 타인의 여러 모습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그걸 꼬집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상사에겐 참 필요한 덕목이구나 싶었다. 세금 내고 나면 대세로 보아 큰 의미없는 임금 인상이지만 상징적 의미로 기쁜게 크지 않나 싶다.

풍속 관련 용어

덴마크에는 바람이 거세게 부는 편이라 그와 관련 용어가 많이 있다. 일기예보에서 fra frisk vind til kuling, hård vind 등과 같은 표현을 쓰는데, 그게 그래서 얼마나 분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야 그냥 초속 얼마의 바람이라고 표현할 것인데.

Beaufort-skala라고 풍속을 구간으로 나눠 그를 표현하는 어휘와 그에 따른 육지와 해상에서의 영향을 묘사하는 등급표가 있다. 어학원 다닐때 간단히 배운 적이 있는데 언젠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찾아본 적이 있다. 덴마크에 살면서 알아두면 편한 용어들.

총선이 발표되었다.

최소한 4년에 한번 총선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덴마크 총리는 총선의 시기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 그 권한에 따라 이번 회기의 국회가 시작되고 이틀째인 어제 총선의 시기가 발표되었다. 대체로 총선이 발표되는 시기로부터 3주 정도안에서 총선을 치르게 되는데 가을방학 시기가 그 안에 들어가는 점 등을 고려해서 11월 1일로 선거일자가 정해졌다.

총선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이건 총리만의 아주 특별한 권한인데, 이번 총선에서 메데 프레데릭센 총리는 그 특별한 권한이 퇴색되는 불편한 상황을 겪었다. 오늘까지 총선이 발표되지 않으면 불신임투표를 통해서 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라디캐일 벤스트러의 최후통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최후통첩이라는 게 그걸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더욱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최후통첩을 실행으로 옮기느냐는 것을 두고 여러가지 추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정권의 스캔들사안에 대한 조사위원회와 총리 사이에 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의 발표시기에 대한 사전 조율을 시사하는 문자메세지가 1주일 전에 공개됨으로서, 최후통첩이 빈껍데기 위협이 아닐 것임이 전망되었다.

최후통첩이 있었던 8월부터 지금까지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언제 총선이 개최될 것인지를 두고 추측만 무성했고, 총선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선거운동 비슷한 것이 시작되었으며, 인플레이션 가중과 에너지 위기, 안보 위기 등 국내외 불안정한 정국에 총선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 총선을 실시하는 것이 맞느냐는 근본적인 질문도 나왔고, 야당 두군데에서 총리후보 출마 선언이 나오고 새로운 정권 창출을 위한 정책 목표가 발표되는 가운데, 현재 정권이 발의하는 정책들이 다음 정권을 위한 당 차원 정책이냐, 현재 정권 차원의 정책이냐, 현재 정권 차원의 정책인척 공무원조직을 활용하면서 다음 정권을 위한 당차원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냐 등을 두고 말이 많았다. 사실 총선이 발표되지도 않은 채로 이미 총리후보 3명의 토론이 개최되고 선거운동이 실시되고 있는데, 빨리 총선을 발표하고 공무원 조직으로 하려금 새로운 정책 개발과 관련된 활동을 중단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지적이었다. 사실 맞는 지적이다.

덴마크도 3권 분립이 되어있는 나라가 맞다. 입법, 사법, 행정이 분리가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입법과 행정이 분리되는 형태가 우리와는 다른 것이, 공무원 조직은 조직대로 유지되는 채 장관은 정권에서 정하는 소속 정당 국회의원이 자리를 맡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부처별로 있는 행정부 수장인 departementschef를 정권에서 교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departementschef를 싹 갈아엎고 그렇지는 않고, 그 아래는 정말 공무원이라 정권이 공식적인 채널로서 영향을 끼칠 수는 없게 되어있다. 덴마크는 상당히 투명한 나라지만,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정권이 공무원 조직에 영향을 끼치거나, 이로 인해 스캔들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도 발생한다. 여느 나라 같이. 빈도와 정도가 상당히 덜하다라는 것이 있긴 하다.

다시 돌아가자면, 입법과 행정이 분리되어 있지만 내각을 구성한 정권이 책임을 지고 행정부를 운영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공무원 조직은 시민이 선택한 정권의 정책을 위해 일하게 된다. 그러나 총선이 발표되는 순간부터 행정조직은 입법조직과 분리되기 때문에 현상유지 차원의 일을 제외하고 모든 입법 관련 활동, 새로운 정책 기획 활동 등은 다 중단된다. 내가 소속된 조직은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보장받은 조직이기 때문에 그냥 팀 회의 정도 차원에서 총선하 행동강령에 대해 공지받은 정도였지만, 직전에 일했던 조직은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업무가 섞여있던 터라 총선이 발표된 다음날 임시 직원회의가 열려 행동 강령에 대해 주지를 받았다. 4년에 한번정도 있는 일이라 잊어버릴 수도 있고, 새로운 직원은 모르는 일일 수 있기 때문에 총선이 있을 때마다 행동강령과 예시 등을 듣는다. 그리고 총선관련 타임라인이나 경영진의 조직 운영에의 영향 등에 대해서도.

선거가 치러지고 그 결과에 따라 정권이 언제 구성되느냐에 따라 한동안 중요 정책사안에 대해 대처하기 어려운 림보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지금처럼 여러가지 위기가 첩첩이 쌓인 상황에서 총선이 치러지는게 맞느냐 싶은 생각도 들지만, 코로나부터 지금까지 여러가지 위기가 계속 쌓여있던 최근의 3년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어떤 위기가 더 있을 지 모르니까 그냥 지금 선거를 치르는 게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불투명한 이번 선거,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진진하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

전기료와 가스요금이 엄청나게 올라서 경제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기료가 하루 시간대별로 등락을 거듭하는 수준은 그냥 몇배, 몇십배가 아니라 몇백배 단위로 등락을 반복한다. 실제 사용시간대에 따라 과금의 단가가 변동하는 요금제를 택한 사람들은 그 시간대별 단가를 보고 언제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돌릴 것인지, 전기자동차를 충전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불필요한 전력망 투자를 막으려면 소비자로 하여금 가격 신호를 통해 피크시간대 전력사용을 줄이고 전력 사용량이 주는 밤 시간이나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량이 많은 한낮 시간에 사용을 늘리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선결과제였다. 시간대별 가격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전기 단가가 평소에 비해 이렇게 껑충 뛰고 나서 전력 소비시간이 전기요금의 규모에 큰 영향을 주니까 사람들이 요금제를 변동제로 돌리고 적극적으로 가격 신호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같은 이코노미스트에겐 이처럼 시장에 크게 쇼크를 주는 일은 자연과학계의 실험과 같은 일이라서 앞으로 이를 통해 들여다볼 것이 참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U 전기시장은 우리나라와 달리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뭔가 하나를 건드리려면 여러가지 사항을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 전력 송배전을 빼고는 시장자유경쟁체제가 도입되어있고 송배전과 같이 자연독점분야는 벤치마킹제도 등을 통해 시장의 효율성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하는 독점 규제가 강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가스 가격이 전기 단가에 큰 영향을 주어 가스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도 하늘 높이 행진하는 커플링 현상을 막기 위해 전기 시장의 가격 결정체계에 영향을 주는 이니셔티브를 도입하는 것도 이번 주 결정되었다. 경제이론적 관점에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의 시장 개편이지만, 이처럼 가격이 너무 치솟하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정치적으로는 어떤 조치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정치 논리도 중요하기에 어쩔 수 없는 차악처럼 선택하게 된 방식이다. 내가 일하는 유틸리티청은 산업계에서는 잘 알지만, 일반 대중은 뭐하는데인지 잘 모르는 곳인데, 요즘 유례없이 매스컴에 많이 오르락내리락할만큼 에너지가 요즘 정말 큰 화두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에너지시장의 충격을 피부로 느끼는데, 세탁기를 시간대별 요금을 확인하고 싼 시간에 돌리는 것을 포함된다. 이에 더불어 전기차 충전기 요금이 오르게 된 것도 있다.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 선발주자로 뛰어들어서 탄탄한 입지를 갖고 있는 Clever는 무제한 충전 상품을 갖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번주에 이 상품을 폐지하고 새로운 변동 단가의 조금 복잡한 상품을 출시했다. 충전회사를 바꾸는게 은근히 번잡한 일이라서 고민고민하다가 대안으로 제시된 상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쉽다. 전기차의 장점이 낮은 연료비용이었는데… 뭐 지금은 무슨 차를 갖고 있든간에 다 연료비용이 올랐으니 받아들여야지…

올 겨울 많이 추울 것 같다. 집에서 잘 껴입고 살아야지. 회사에서도 19도로 실내를 유지하기로 했다지만 이조차도 더 낮아질 지 알 수 없는 일… 정말 특별한 시기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역사책에 남을 현대사의 한 획에 남을 사건을 바로 피부로 겪으면서 말이다.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집을 계약했다.

일요일에 옌스가 집을 보고나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방 두개 크기가 생각보다 작은 거 빼고는 괜찮다고 하는데, 좋은 마음을 애써 절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별로였던 마음을 확 드러낸 것 같기도 하고 문자로는 정확히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전화를 했다.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온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을 보고 느낀 건 평소에 관리가 잘 된 집이라는 거였는데, 정말 그랬던 모양이다. 이미 매물로 올라온지 한 달이 지났던 터라 뭔가 사진에 안드러나는 하자가 있었나 했는데, 그냥 우연히 그랬던 것 같다.

지난번에 부동산 매매 트렌드를 잘 몰라서 여유있게 움직이며 집 한번 더 봐도 되냐고 물었다가 팔렸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신속하게 움직였다. 괜히 내가 한국에 있다고 기다릴 게 아닌 거 같았다. 이미 옌스가 보러갔던 날 거기에 있던 다른 사람도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옌스랑 역할을 나눠 나는 변호사를 알아보고 부동산에 오퍼를 던지고, 옌스는 은행대출 사전승인을 맡았다.

일요일에 변호사를 찾아두고 월요일 오전에 은행과 변호사에 연락했다. 부동산에 일요일에 이미 연락을 해두었더니 은행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매도인과 상의할 수 있다고 하더라. 빨리 접근해야 괜히 입찰 형식의 가격경쟁으로 흐르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 집 보러가기 전부터 가격 전쟁에는 관심이 없다하며 이미 협상대상 있으면 안보겠다고 부동산에 이야기해두었기에 그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고, 부동산에서는 사실 누가 사든 수수료수입이 엄청 크게 차이나는게 아니니 빨리 확정을 하고 싶을 터였다. 관심있는 사람이 또 있으니 빨리 추진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언질을 주었다는데, 그 내막이야 모를 일이라도 우리는 마음에 들었고 시장에 나온 가격에서 조금 더 깎고 하느라 집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오후에 이미 은행 사전승인을 받아 부동산에게 오퍼를 던졌고, 다음날 부동산은 우리의 신원 조회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기 시작했다. 5년 이상 거주해야 외국인이 부동산을 살 수 있는데, 그거야 문제될 것 없었다. 변호사는 우리가 계약서에 변호사 검토 조건부 계약을 명시하면 혹시 문제되는 요소가 있으면 그때가서 조율하면 되니 계약서상 이견이 없으면 서명을 하라고 했다. 화요일에 집과 관련한 일련의 문서를 다 받고 수요일, 오늘 오전에 계약서를 받아 낮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바로 오후에 상대도 서명을 했다.

변호사가 관련 문서를 다 검토하고 난 후 다음주 월요일에 변호사와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거기에서 문제가 없으면 계약금 치르고, 집 상태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집소유주 변경 보험 가입하고, 나중에 잔금 치르고 5월 1일부로 열쇠를 넘겨받게된다. 우선 그 사이에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 지 몰라 둘다 후딱 다운페이할 금액에 해당하는 주식을 후딱 팔았다. 장이 좋아서 주식도 눈깜짝할 새에 팔리고…

딱히 집을 수리할 건 아니라서 페인트칠 하고 바닥 좀 갈고 청소 싹 하고 들어가면 될 것 같다. 물론 우리 나올 집도 페인트칠 하고 청소 싹 하고 나와야겠지만… 5월이면 4개월인데, 귀국해서 자가격리도 좀 하고, 하나 유치원 대기도 걸고 집 가구 배치도 고민하고 하다보면 후딱 시간은 갈 것 같다.

첫 집을 이렇게 보지도 않고 계약해서 얼떨떨하고 현실감 없지만, 둘 다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을, 너무나 매끄러운 과정을 통해, 아무런 갈등 없이 계약했다는 점에서 기쁘구나. 이제 집 계약이 아무런 문제없이 매매로 이어지기만을 바라고, 그게 되면 하나에게 말하는 일만이 남았다. 다 마무리 잘되길…

보육/초등교육 우선정상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의 골자는 그대로 유지하되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보육원과 유치원, 초등학교 5학년까지의 아동 보육/교육 정상화가 시행된다. 부활휴가 이후 하루의 준비기간을 거쳐 당장 다음주 수요일부터 시작이다.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 심하지 않게 넘어간다 하니 옌스와 나는 사실 하나에 대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총리의 발표를 듣자마자 만세를 불렀다. 회사가 닫지 않는 이상 일은 일대로 해야하고 애는 봐야 하니 24시간 중 애보고 밥해먹이고 자는 시간 제외하면 계속 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하니 지난 삼주간 다들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이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선 숨통이 터진 거였다.

각자 입장마다 생각이 다를 거다. 이번 조치가 너무 이르다는 사람, 사회 개방이 너무 느리다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고 뭐가 정답인지 알 수도 없는 탓에 어찌보면 그냥 따를 수 밖에 없다. 전세계가 동시에 휩쓸려 그 누구도 계획했던 일들을 원하는 대로 제대로 행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참 어렵고 힘들다. 뭐가 더 중요하다 급하다 이런 판단을 하기 힘들다.

오늘 하나에게 다음주에 보육원에 갈 수 있다 하니 너무 좋아한다. 거의 한달 가까이 못 본 친구들을 보려니 얼마나 좋을까. 일말의 걱정은 있으면서도 우선은 보낸다. 정부 방침은 나에겐 고용주의 방침이기 때문에, 애가 아플까봐 걱정된다고 애를 집에 두고 나에게만 업무적 비효율성이나 비유연성을 배려해달라고는 할 수가 없다. 그냥 잘 건강히 다녀주길 바라는 수 밖에.

이 모든 게 끝나고도 사람들간에 거리를 두는 새로운 습관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네 생활 방식에 흔적을 남길 것 같다. 정말 이상하고 적응 안되는 의식적 거리두기… 이 순간 같이 나와 살을 부빌 수 있는 딸과 남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안도가 되는 지 모르겠다. 올해 한국은 가볼 수 없겠지? 이미 이 또한 마음을 거의 접었다. 마음 아프지만… 언제 우리는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덴마크 협업문화] 경제분과 국무위원회 상정 안건 생산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근로문화. 업무 시간의 경계가 흐려진다. 방금 업무가 끝났다. 열시 반. 오늘도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했는데… 다들 애가 있으니까 긴급한 사안이 있는 경우, 애 없는 시간에 협업이 이뤄지게 된다. 상반기에는 부활절 휴가기간이 있어서 이 전후로 많이 바쁜데 거기에 특별히 급한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하수도기업의 기후변화대응 파이낸싱 방안에 대한 법안이 내년 1월부로 발효되어야 한다는 결정이 이번주에 결정되면서 그간 부처간의 의견 차이로 다소 미적거리던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부처간 이해관계 및 오너십 문제 등에서 미묘한 갈등이 있어왔는데 이제는 그걸 아주 적극적으로 부딪혀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안그래도 여러모로 바쁘고 내가 발표하거나 리드를 해야하는 회의가 있어서 긴장레벨이 높았는데, 법안 상정을 위한 모델 페이퍼를 금요일 센터장급 부처간 회의 전에 급히 만들어야 한다는 상황에 멘탈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번주에 옌스가 지난주처럼 바빴으면 정말 끔찍했을 것 같다. 애와 놀아주느라 회의들 사이사이 밖으로 나가 주기도 하고 일과 육아를 열심히 병행해준 옌스 덕에 이번주의 일들이 가능했다.

현재 법안과 제도 부분을 토대로 안건의 제도적인 모델 부분은 나와의 회의를 통해 합의된 내용을 토대로 선임이 쓰고, 나는 경제분석방법에서 테크니컬한 부분을 써서 초안을 마련했다. 그걸 토대로 우리 센터장이 코멘트를 해 초안을 1차로 보강한 후, 센터장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따라 수정 초안을 대대적으로 재배치하고 전략적으로 표현을 수정해 2차 수정 초안을 마련했다. 거기에 우리가 수정하거나 보충할 것을 더한 후 상사가 컨펌을 함으로서 최종안이 나왔는데, 진짜 센터장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탁월하다는 걸 다시한번 느꼈다.

이번처럼 엄청 타이트한 데드라인 압박속에서 중요 문건을 여러명의 협업을 거쳐 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며 정말 많이 배웠다. 덴마크어 공부는 덤. 타이트한 데드라인 압박속에서 일하는 거야 익숙하지만, 그 과정에서 협업을 효율적으로 하는 법은 익숙하지 않는데 말이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이 입법으로 연결되야 하는 게 두개나 걸려있어서, 법안 초안 작업 전 작성하는 고려사항문서에 어떻게 내가 하는 일이 반영되는지, 그래서 그게 어떻게 법안과 시행령에 들어가게 되는지, 직접 참여하고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될 것 같다. 한국과 달리 내각책임제 시스템인데다가 대부분의 법안은 국회에 상정되기 전에 정당간 협상을 통해 법안이 통과될지 여부가 결정되기에 부처에서 먼저 만들지 않은 안건이 야당의 입법제안을 통해 상정되는 케이스는 없는 것 같다. 한국의 프로세스를 잘 모르는데다가 덴마크의 프로세스도 사실 나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이를 비교하는 건 가능하지 않지만, 오랜 시간 공기업에 근무하면서도 사실상 멀게만 느껴지던 일련의 프로세스를 덴마크에 와서 배우게 되는 것도 신기하다.

요즘 정신적으로 사실 피로하기도 하고 육체적으로도 피로하긴 하지만 배우는 건 많고 힘든 와중 즐겁기도 하고 그렇다. 내일 하루 버티면 또 주말이 오고 곧 또 부활절 휴가가 오겠지. 조금만 버티자.

첫 MUS를 마치고

MUS (Medarbejderudviklingssamtale, 직원계발면담)은 1. 전반적 직장생활 만족도를 평가하고, 2. 연간 실적을 정리하고, 3. 내년 목표는 무엇인지, 4. 현재 역량의 상황을 평가한 후 5.계발해야 할 역량은 뭐가 있는지, 6. 미래 계획은 뭐가 있는지, 7. 직속상사에게 역량계발지원을 위해 요청할 건 뭔지, 8. 직속상사가 리더로서 개선할 점은 뭐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미리 해당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고 적어가야 한다. 그래야 일년에 두 번 (두번째인 mini-MUS는 MUS에 이야기한 항목에 대해 점검하고 연봉협상을 겸한다.) 있는 이 기회에 상사의 나에 대한 기대와 부응수준, 내가 회사에 나의 발전을 위해 요청할 것 등을 효과적으로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해간 내용을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상사의 평가에 대해 듣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약간 긴장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내가 요청하는 사항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실 지난 8개월이란 시간동안 말도 글쓰기도 많이 늘었다고는 해도 내가 한국어나 영어로 일할 때보다 효율적일 수 없다는 한계 속에, 혹시 나에게 말은 하지 않지만 상사가 채용을 후회하거나 하는 건 없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도 살짝 했었다. 오늘의 면담을 통해 그런 걱정은 싹 털어버렸다. 


다만 상사의 마지막 조언 한마디가 내 마음에 확 와닿았다. Be compassionate to yourself. 내가 나 스스로의 발전에 대해서 야심도 있고 자기에게 엄격한 기준을 갖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내면 인내심을 갖지 못하는 성향인 것 같다며, 남에게 대하듯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고 하더라. 이게 발전의 동력이긴 하지만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함을 나도 느껴서 고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렇게 지금껏 살아왔던 터라.


이번을 계기로 직장안정성에 대한 이유없는 불안은 완전히 떨쳐버렸다. 얼마나 안도되는지….

3주의 휴가

휴가 3주차에 접어들었다. 첫주의 시작은 집안 페인트칠로 땀을 빼는 육체노동이었지만 둘째주에는 시댁에서 먹고, 쉬고, 자고, 하나와 화끈하게 놀아주는 가족의 시간이었다. 마지막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나와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으면서도 우리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인이 된 후 이렇게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보다 일찍으로 시간을 돌려 중학생이 된 이후 이렇게 3주의 시간을 연속으로 여유롭게 보내본 적이 있던가.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갈 힘이 나는 모양이다. 다소 긴 시간 쉰 탓에 돌아갈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3주간의 여름휴가라는 게 아주 적당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하나는 무섭게 크고 있고 한마디로 경이롭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다. 애를 일반적으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다른 애들도 좋아하게 되고, 다른 부모들이 애들 자랑하는 걸 이해하지 못해하던 내가 그게 너무나 이해가 되고 애들의 성장 하나하나가 너무나 놀랍게 느껴진다. 기적같은 것이라 할까. 애들이 뛰어노는 혼돈의 상황이 평화로 느껴지게 바뀌는 기적. 관계의 축이 바뀌고 관심의 초점이 바뀐다.

이번 휴가는 그런 하나와 살갑게 부대끼는 그런 기간이다. 육아 초기, 사회생활이 없어지는 변화 속에 나의 시간을 간절히 그리워했다면, 그리고 육아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가장 힘든 시기가 지난 지금, 아이가 너무 이쁘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이제 다시 가을 한국 방문휴가를 가질 때까지, 연말 연시 연휴를 맞이할 때까지 하나와의 집중적인 시간은 미뤄둘 수 밖에 없지만, 그 때를 기다리며 일상을 열심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사랑 하나

덴마크 직장생활의 중요한 일부 – 금요일 아침식사

매주 금요일이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30분 아침식사를 함께 하고 나머지 30분엔 회의할 게 있으면 하고, 아니면 해산한다. 직원들 수가 늘어나면서 20명에 다다르니 준비할 것의 무게도 너무 늘어나서 두명이 같이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식사로 먹을 빵으로는 큰 덩어리의 빵이나 일인용 분량의 작은 덩어리빵을 섞어서든 큰 덩어리 빵만이나 작은 덩어리 빵만으로 양을 맞춰서 준비한다. 또 그 후에 후식으로 먹을만한 wienerbrød (영어로는 Danish pastry이나 사실 오스트리아에서 이민온 제빵사가 만든데에서 기인한 탓에 비너브횔이라고 한다)을 준비한다.

이와 함께 빵 위에 발라먹을 버터와 얹어먹을 치즈, 잼, 햄, 폴랙(pålæg) 초콜렛(빵에 얹어먹도록 나온 얇은 판형의 초콜렛. 스프레드 대신 빵에 바로 얹어먹는다.)를 준비한다. 우리 센터 직원들의 취향을 반영해 버터는 락토스 없는 것도 하나 준비해가고 잼은 최소 두가지 종류로, 햄은 파마햄 종류, 치즈는 아주 전형적인 mellemlagret danbo와 함께 크리미한 브리타입의 치즈를 준비한다. 폴랙 초콜렛은 다크가 중요하다. 과일을 함께 준비하기도 하는데 요즘은 딸기 철이라 딸기를 가져가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음료수로는 주스 세병을 준비하는데 오렌지, 사과에 다른 주스 한종류 섞어가는 게 보통이다.

두명으로 분량을 나눈 이후 한 명은 빵, 한명은 기타 같은 식으로 나누기로 했는데 나는 집 근처에서 회사가는 방향에 빵집을 찾기가 애매해서 항상 그 나머지를 사는 것으로 한다. 원래 다음달 생일 전날 아침식사 담당이었는데 동료가 이번주 아침식사 담당일에 휴가를 쓰려고 한다며 바꿔줄 수 없냐고 물었다. 마침 생일날 케이크도 사야하는데 아침식사도 준비해오려면 참 뭐가 많겠다 싶었기에 흔쾌히 승락했다.

저녁에 잦은 회식이 없고 점심시간도 자리 떴다 돌아오기까지 30분에 불과한 탓에 생일자가 가져오는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30분, 이렇게 회의를 겸한 금요일 아침식사 30분이 직원간 네트워킹에 중요하다. 각자 뭐하는지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디어도 주고받고, 또 사생활에 대해서도 담소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말이다.

내일 저녁엔 빨래를 하고 (공동빨래 공간 금요일 오후 예약이 내가 예약하기 전에 차버려서 할 수 없이 내일 예약했다.) 하나도 재워야 해서 (옌스와 매일 번갈아가며 애를 재운다.) 장을 보러 가기 어려울 것 같아 오늘 미리 금요일 아침식사 장을 봤는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