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게 별로 없는 덴마크 유치원?

한국을 다녀오면 유치원에서 하나에게 남은 시간은 보름도 채 남지 않는다. 방과후 학교로 넘어가 학교 입학까지 3개월의 시간을 보내는데, 여름 휴가 기간 3주를 제외하고 나면 2개월 정도 시간을 보낸 후 8월 초부터 0학년을 시작하게 된다. 왜 서구는 주로 가을에 학기를 시작할까 생각을 했는데, 아마 여름방학이 길고 연말연시 연휴기간방학, 겨울방학, 부활절 휴가기간, 가을방학 기간 등은 1~2주 정도로 짧게 쉬다 오는 것들이라 한 학년을 끊기에 애매한 기간이라 그런게 아닌가 싶다.

2023년 중에 만 6세가 되는 아이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해에 0학년을 시작한다. 이보다 1년 먼저 일찍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고 늦춰서 만 7세가 되어 시작하는 애들도 있다. 덴마크는 의무교육이 10년으로 정해져있는데, 이를 꼭 학교에서 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가정에서 해도 무방하다. 즉 어디서 하든간에 0학년에 되는 시점부터 의무교육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글을 배우고 기초적인 산수와 과학, 예술, 체육활동 등을 하는데, 기존에 유치원에서 놀이처럼 배우던 것이 책상에 앉아서 좀 더 학습처럼 배우는 형태를 띄게 된다.

아직까지 학교에 애를 보내지 않아서 학교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덴마크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뭘 하는지는 좀 빠삭해졌다. 한국인 부모 중에는 덴마크 어린이집/유치원보다 한국 어린이집/유치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개인의 교육관과 취향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덴마크 기관이 내 교육관과 취향에 맞는다.

덴마크 기관에서는 0학년에 가기까지 앉아서 뭘 가르치지 않는다. 앉아서 뭘 하는 건 레고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오리고 붙이고 만들고, 밥 먹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안과 밖에서 몸을 써 놀고, 운동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특별한 스포츠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이라고 하면 요가정도? 이 또한 아이들에게 체육 활동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시에 따라 조용히 움직이면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 신체에 일어나는 일에 집중을 하면서 조절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시키는 거다. Mindfulness 시간을 가지기도 하는데, 그 시간에 뭐하냐고 물어보면 요가 매트 깔고 눕거나 앉아서 눈을 감고 호흡에 초점을 맞추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거라고 한다. 그러다가 간혹 10-15분씩 파워냅을 하기도 하고.

그밖에 노는 건 정말 뛰어 노는 거다. 지금 유치원에는 실내 암벽이 없는데, 예전 유치원에는 앞에 두툼한 매트리스를 깐 실내 암벽이 있어서 이미 두돌 반 때부터 이 벽을 원숭이처러럼 타고 놀았다. 비가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루에 한번은 꼭 밖에서 놀고, 비가 오는 날도 비가 그치면 나가서 논다. 그러면 옷이나 장화는 정말 진흙과 모래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어서 애를 데리고 올 때가 되면 그게 다 말라 붙어서 옷을 접으면 흙덩이가 부러져서 떨어져내린다. 그나마 말라있으면 다행이고, 그 진창 옷을 집으로 가져갈 때면 들고 가기도 정말이지 번거롭다. 자주 빨 수 있는 옷이 아니니까 집에 가서 말려 털어보내야 한다. 특별히 다칠만한 위험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은 대부분의 활동에 대해서 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다쳐오는 일도 종종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몸을 쓰는 법을 배우고, 건강하게 큰다.

운동이 아닌 활동은 소근육 발달을 위한 그림그리기, perler (한국에서는 펄러비즈라고 하던데, 판에다가 플라스틱 비즈를 끼워서 모양을 만들고 다림질을 해 이것저것 만드는 것으로 덴마크 기업이 만든 것) 판에 끼워 만들기, 부활절,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 시즌에 맞춰 실내 장식할 때 뭔가 오리고 붙이고 만드는 공작 같은 창의력 향상 활동이 한 축을 이룬다. 또 다른 축으로는 아침에 모여서 조회시간에 노래 부르는 시간. 운율과 음율을 맞춘 동요가 많고, 학교에 가서도 운율과 음율에 많은 비중을 둬서 교육이 이뤄지는데, 같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게 조직내 소속감 등을 고양시켜준다고 해서 덴마크인들은 이를 교육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산수를 따로 배우지는 않는데, 뭔가 생활속에서 이런 저런 것을 배우는지, 2+2는 4, 4+4는 8, 8+8은 16, … 이런걸 나에게 와서 말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일상 속에 엮어 산수도 배우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도 물론 빼 놓을 수 없다.

기타 공동체 생활을 위해 유치원에서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 옷입고 벗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에 돕게 한다거나, 식사 당번을 정해서 배식을 돕게 한다. 또 일주일에 한번 씩 왕따 방지 교육을 해, 뭐가 괴롭히는 것인지, 그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해당 당사자와 주변인의 역할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배운다.

유치원에서 뭔가 다양한 수업을 하지는 않지만, 어른들이 만드는 놀이나 학습에 애들이 참가하는 형태가 아니라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놀이를 만들고 노는데 익숙하다.

다만 애들은 좀 꾀죄죄하다. 옷이 더러워지고 헤지고 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애를 데릴러 갈 때 보면 애들이 죄다 꾀죄죄하다. 머리도 엉망진창, 얼굴과 옷도 여기저기 더러워져있고. 좋은 옷은 살 필요가 없고, 유치뽕짝이든 뭐든 애들 취향에 맞춰 대충 저렴하고 튼튼한 옷을 사주면 된다. 괜히 좋은 옷 입고 가서 더러워지고 찢어지면 아깝기나 하지.

아침이면 15분 정도 침대에서 뒹굴며 잠을 깰 시간을 주고,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머리도 자기가 빗고, 부엌에 내려가서 자기 먹을 아침식사 직접 챙겨다가 아빠랑 아침 식사 하고, 겉옷 챙겨입고, 도시락이랑 물통 가방에 챙겨 넣어 집을 나서고, 혼자 놀 땐 놀고, 도움을 필요할 땐 도움을 요청하고 등등 하나의 인간으로서 역할을 다 한다. 도시락이야 내가 싸주지만, 그나마도 내 옆에서 간혹 거들때도 있고, 빨래랑 밥해주고, 책읽어주고 조금 놀아주고 여기저기 데려다주는 역할 때면 내가 하는 게 진짜 별로 없어졌다. 자기 주도성, 스스로를 돕는 자조능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능력, 자기가 필요한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 못하는 것도 연습하면 늘게 되어 있음을 알고 꾸준히 하는 것 등 물론 가정교육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것들이 유치원에서의 교육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시간이 흐르고 보면 한국에 있는 아이들이 여기에 있는 아이들보다 더 많이 배워 좋은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애들이 즐겁게 놀고 어른의 과도한 통제 없이 적당한 상처도 입어가면서 보다 창의적으로 자신을 배우고 성장하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면서 사회성 기르는 이곳이 나는 마음에 든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규칙을 잘 지키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 더 초점을 두는 것도 마음에 들고. 결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줘야 하는 것인데, 그 근간을 유치원에서 닦을 수 있는 것이 좋다. 내가 선행학습과 안맞았던 사람이라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적당한 시기의 적당한 자극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야 학교 가서 하면 된다 싶다.

주변의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개개인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야 말로 정말 가르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유형의 것으로 보여주기 어렵지만 아이의 매일을 통해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덴마크 공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덴마크어 글쓰기 능력 향상

한국에서 계속 살고 일을 했다면 국어로 글쓰기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했으려나? 아니면 그냥 우리 말이니까 딱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일 하다보면 경험이 쌓이면서 더 좋아질거다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 같다. 보고서 쓰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간간히 하면서도 크게 글쓰기에 별도의 노력을 안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다행히도 그 땐 논문 작성을 위한 글쓰기 클래스에서 글을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 등을 배우기도 했고, 개별적으로 드래프트를 보내 첨삭도 받으면서 아카데믹 글쓰기에 필요한 테크닉을 훈련받았다. 영어는 관련 자료도 많은 편이라 의지만 있으면 글을 좀 더 정갈하게 쓸 수 있었고, 2년동안 무수히 많은 그룹 과제를 내면서 친구들끼리 같이 글을 쓰는 과정에 서로 긍정적인 영향도 받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하나하나의 문장을 잘 쓰는 법, 그 문장이 문단에서 잘 어우러지게 하는 법, 지루함이 없게 문장의 구조를 바꿔가면서 쓰는 법, 그렇지만 읽기에 어렵지 않도록 어려운 개념도 쉽게 전달하는 법 같은 건 딱히 배운 적이 없다.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덴마크어 학원에서 글을 아무리 잘 써봐야, 직장에 가서 글을 잘 쓸 수는 없었다. 첫 직장에서는 정말 많은 첨삭을 받았다. 지금은 그렇게 많은 교정을 받지 않지만, 내 문장들의 구성이 문단내에서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래서 사두고 묵혀놨던 글쓰기 책을 펼쳤는데, 세상에. 이건 좋은 책이었네! 외국인을 위한 글쓰기 책이 아니라 보다 나은 덴마크어를 구사하고 싶은 덴마크인을 위한 책이다. 저널리스트들이나 방송국 아나운서의 글과 스크립트를 실제 사례에서 뽑아서 좋은 예, 나쁜 예로 예시를 들고, 어떻게 문장과 문단 구성을 바꿔볼 수 있는지, 그러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어떻게 쓰면 좋을 지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는데, 마음에 쏙 든다.

덴마크어에서는 도치가 엄청 많이 쓰인다. 영어와 도치의 방식 자체는 비슷하지만 그 사용되는 빈도로 봤을 때 덴마크어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종속절, 주절의 순서로 구성되는 복합절 문장의 경우에 주절의 주어 동사의 순서가 동사 주어의 순서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던지 하는 면에서 영어에서 더이상 잘 사용되지 않는 문장 규칙이 덴마크에서는 살아있다. 그런 덴마크어만의 특징을 활용해 문장을 다채롭게 할 수 있고, 반대로 그걸 잘못 쓰면 또 의사 전달이 더 어렵게 될 수 있기도 하다. 이책은 이런 덴마크어 문법의 특징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아직 내가 읽어보지 않은 다양한 방법으로 “좋은 덴마크어”를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1년에 한번 Medarbejder Udviklings Samtale (MUS)라고 직속상사랑 인사 면담을 한다. 내 강점이 어디에 있고, 지난 1년간 계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전의 계발계획이 달성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분야의 계발을 이루고 싶은지, 그 계발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실천 계획까지 다룬다. 내가 계발하고 싶은 분야의 하나로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을 선택했는데, 그 실천 방식 중 하나로 코스를 듣거나 이런 책을 읽고 이를 업무에 반영하는 것을 골랐다. 지금 이 책을 읽는 것도 따라서 내 업무 중의 하나인 것인데, 얼마나 좋은가.

언어 공부 책이 영어처럼 다채롭지 않아도 찾아보면 보물찾기하듯 뭔가 걸려나오는 것들이 제법 있다. 지금 이 책 이름은 “Godt dansk” (https://www.universitypress.dk/shop/godt-dansk-1235p.html) Syddansk Universitet에서 발간한 대학교에서 사용되는 글쓰기 교재로 보이는 책으로, 글쓰기 능력 향상을 원하는 덴마크어 고급학습자에게 강추한다.

덴마크어 과외 편익 평가

덴마크어 과외를 시작한지도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간다. 이번주만 하면 한달이다. 한달에 85만원… 비싸다… 워낙 비싸기 때문에 길게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대충 여름휴가 전까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비쌈에도 옌스가 흔쾌히 과외를 하라고 한 이유는 기존 학원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반년간 들으면서 실력이 훌쩍 늘은 것을 자기도 목도했고, 지금 수준과 목적에 맞는 수업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이 시기에 내 PD3 분야별 점수가 평균 7점대에서 전분야 12점으로 올랐다.

과외는 일주일에 한시간 반. 내가 쓴 보고서를 봐가면서 첨삭하고 내가 자주 헷갈리는 문법의 예외적 부분 등을 검토하거나 문법적으로 내가 약한 부분을 점검하고 있다. 과외를 하고보니, 이정도 레벨에 다라서는 학생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에 맞도록 수업의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가장 큰 초점을 보고서 작성에 맞추고 있는데, 그 짧은 한달도 안되는 시간 사이에 보고서 작성이 훨씬 수월해졌다. 계속 나를 괴롭히던 소수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니 보고서 작성에 가속이 붙는다. 그리고 덴마크 공식문법사전에 수록된 문법과 예외 관련된 내용을 찾는 법을 배우고 나니 앞으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갈 방법의 실마리도 얻었다.

사실 상사도 내 보고서를 수정해주는데, 그게 실력향상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상사가 수정할 때는 내가 한국어로 보고서를 작성해도 상사가 보면서 고치 것처럼 조금 더 매끄럽거나 상사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맞추도록 문장을 이리저리 매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틀린 문법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 규정에 해당하는 부분들이었어서 ‘왜지?’하는 물음을 지울 수가 없기도 했다.

예전에 내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나는 정말 교육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 같다고. 다소 낭비같은 상황도 많을 정도로. 나를 너무나 잘 이해한 말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느낀 건 다소 낭비같았던 투자도 사실 큰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디 갖다 버리는 게 아니고 다 내 머리에 쌓이는 정보이니까. 비자타입의 문제로 남들 다 공짜로 배우는 덴마크어를 1년 반 동안이나 한달에 70만원씩 내가며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는데, 그 돈이야 말로 정말 훌륭한 투자였다. 그 때 덴마크어 기초를 닦지 않고 나도 공짜로 다니는 시기를 기다렸더라면 대학원 다니면서 취직 전까지의 수준으로 실력을 늘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 취직을 못했을 거다. 우리 전공이 주로 공기관에서 커리어를 찾게되는 것을 고려해보면 지금 다니는 직장 뿐 아니라 한동안 취업이 어려웠겠지.

과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너무 비싸다, 너무 큰 투자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편익을 따지지 않은 비용만 본 평가라 생각한다. 취업이라는 편익만으로도 이 투자는 빠른 시일내 회수가 가능한데다가 덴마크 생활에서 언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스트레스의 저감, 보육원이나 학교에서 아이의 발달상황에 대한 충분한 대화, 덴마크 사회 안으로 빠르게 동화될 수 있고 주변 현지인과의 관계가 여러 방면으로 깊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그 비용은 미미하다. 그렇게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도 감사하지만, 여유를 떠나 그 투자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건 옌스가 이런 부분을 깊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나와 옌스는 생각이 참 비슷하다.

누군가가 덴마크어 과외 하는 것 어떠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열심히 한다는 가정하에 나는 정말 강추하고 싶다.

두살 반의 하나

7월 첫주부터 3주간 휴가 후 사무실로 돌아오니 사무실 반 이상이 비어있다. 필요하지만 급한 일에 치여 뒤로 밀려나 있던 일을 처리하기에 좋은 기간이다. 한국에서의 휴가를 생각해보면 휴가 가서도 이메일을 완전히 접어둘 수 없고 다녀오면 자잘한 메일이 엄청 쌓여 있고, 일의 처리 기한이 휴가와 상관없이정해져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이메일을 한번도 열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이메일에 뭐가 들어왔는지를 모를 때의 불안함을 해결하기 위해 간간히 메일을 확인했으니까.

3주라는 기간이 꽤 길어서 그런가? 휴가 전과 후의 하나가 부쩍 다르게 느껴진다. 두돌이 지난 이후로 이미 하루하루 다르다 생각했지만 하나는 세살로 향하는 길의 반에 거의 다다라서 그런지 요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게 느껴진다. 덴마크어로는 복잡한 문형도 구사하고 발음도 또렷하고, 우리 식으로 ”~하잖아”에 해당하는 뉘앙스를 주는 단어도 여기저기 넣어서 테스트해보고 놀랍울 따름이다. Hvad laver du, mor? (엄마, 뭐하세요?)를 자주 물어보고 그 답에 Hvorfor det? (왜요?)를 끊임없이 붙인다.

지난 주말 스웨덴 당일치기 여행을 갔을 때 하나와 잠시 통화를 했는데, 나보고 뭐하냐고 묻길래 커피 마시면서 루바브 케이크를 먹는다고 답을 했다. 그러자 왜 그러냐는 질문의 연속. 맛이 있어서 먹어요. – 왜요? – 여름의 신선한 맛이니까요. – 왜요? – 여름에만 나는 거니까요. – 왜요? – 다른 날씨에는 너무 추워서 못자라요. – 흐음… 다행히 이 질문 놀이는 여기서 끝났다. 아마 자기가 못알아 들으면 멈추는 거 같다.

그에 비해 한국어 발음은 외국인이 한국어하는 발음이다. 주세요를 주시요 라고 발음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이북 발음 같기도 하고. 이거 한국어로는 뭐예요? 하고 물어보면 한국어 단어를 이야기해주긴 하는데 애초 어휘력 차이도 있고 한국어 단어는 헷갈리는 것도 많은 것 같다.

하나는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여기는 한국보다 애들 몸을 덜 사리게 한다. 다치고 흉지고 그런 것도 큰 사고가 아닌 이상 더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기준에는 나이에 비해 조금 위험한 일들을 하게끔 놔둔다. 하나는 몸을 잘 쓰는 편이라 그렇다고 했지만 13개월 때 보육원에 하나를 데릴러 가면 혼자 미끄럼틀을 올라가 타고 내려오곤 했었다. 작은 언덕위에 언덕을 따라 미끄럼틀이 설치되어 있어 옆으로 떨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을 구조이긴 했지만 나름 1미터가 넘는 높이의 제대로 된 미끄럼틀이었다. 솔직히 엄청 놀랐고, 혹시 선생님들이 실수로 하나를 방치해둔 건가 싶었지만, 짐짓 놀라지 않은냥, ”하나가 혼자서도 미끄럼틀을 타네요!”라고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저렇게 앉아서도 타고 배로도 타고 엄청 오래 타고 놀고 미끄럼틀 좋아해요. 혼자 타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서 우리 시야 안에서 혼자 놀게 뒀어요.”라고 답을 하는데, 나에겐 사실 엄청 놀라운 일이었다. 두돌 반인 지금, 내 키가 넘는 미끄럼틀에혼자 잘 기어올라가고 (물론 떨어질 리스크라는 건 항상 존재하니 바로 옆에서 잡을 준비하고 대기하긴 하지만) 점프하고 뛰고 페달 없이 발로 미는 두발자전거도 거침없이 밀고 타기 시작했다.

퍼즐도 좋아하는데 벌써 30개짜리 복잡한 퍼즐도 진득하게 앉아서 하기도 한다.

그 밖에 가게놀이도 좋아하는데, 돈을 본 일이 없으니 돈 개념은 모르고 뭐 살거냐 묻고 달라하는 물건을 주는 척 하는 걸 반복한다. 그래서 그런지 물건마다 누가 사준 건지 묻고 기억하곤 한다. 이거 누구누구가 사준거예요? 엄마가 사준거예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시부모님이랑 시누이네가 사준 거, 나나 옌스가 사다준 게 대부분일 수밖에 없는 환경. 한국 가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이것 저것 재미있는 것 좀 사주셔야겠다. 그래야 그거 갖고 놀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자주 떠올릴테니.

요즘 하루에 한 두번 씩 애랑 씨름하는 일이 생긴다. 그런 일이 있고나면 동료와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하다보니 애 없는 부모들은 애 키우면 힘든 일만 있나 하는 생각을 할 만도 하다 싶다. 확실히 애 발달이 계단 오르듯 비선형적으로 점프한다 느껴지는 시기에 부쩍 더 씨름할 일이생기는것 같다. 보육원에 데려다주기 전 옷 갈아 입고, 양치질 하는 타이밍에서 그런 경우가 많고 (오전은 주로 옌스 담당) 보육원에서 데리고 집에 오는 길에 그런 경우가 또 많다 (이건 주로 내 담당). 한번 떼를 쓰면 정말 악을 쓰고 울고 땅에 드러눕는다. 얼굴에 실핏줄이 터져서 주근깨처럼 보이는 피멍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그 힘은 어디서 나온데?

다행히 이렇게 격하게 떼 쓰는 시기가 길지는 않은데 며칠 그러다 말고 또 며칠 그러다 말고 그런다. 세살을 정점으로 조금씩 좋아진다고 하다 다섯살 정도 대면 대부분의 아이가 이런 시기에 안녕을 고한다 하니 기다려봐야지. 매일 그렇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것 같다. 예전 하나 신생아 시절에 우리 아래층 앞집에서 애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울면서 현관 앞에서 버티면 그냥 엄마 혼자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는 일이 거의 매일 같이 있었는데, 지금 하나가 대충 그 시기인 것 같다. 그 아이는 좀 심한 편이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은 조금 그 엄마가 이해된다. 아마 싱글맘에 애가 둘이라 더 정신적으로 지쳐있었을 듯 하다.

이 밖에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순간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애가 제때 움직여주지 않아 스트레스 받는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하루에 한두번 정도 받는 걸 제외하면 애랑 보내는 순간은 참 좋다. 역시 지금도 생각은 첫 1년이, 그다음은 그 다음 1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육체적으로힘 쓸 일이 줄어들고 애가 놀이의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애랑 있는 시간이 참 좋다.  그래서 이번 휴가가 조금 더 특별했었다.

세살이 되면 어떨까? 그리고 네살이 되면? 생각만 해도 설레고 기대가 된다.

석사 논문

내 논문을 토대로 해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한다. 그래서 나 프로젝트할 때 나에게 기초 핵심 데이터인 홍수 데이터를 준 우리 청 사람한테 듣기로 내 지도교수가 데이터 처리 협약을 맺어서 보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받아갔다고 한다. 석사 논문이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의 연구를 위해 쓰인다는 건 기쁜 일이다. 혹여나 그밖에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까 싶어 여기에 공개한다.

제목: Economic Assessment of Flooding in Denmark – Inference of the non-material cost of flooding due to storm surge on housing prices using the hedonic pricing method based on a spatial difference-in-differences framework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stimate the willingness to pay to avoid flooding after a storm surge in the coastal area. I conducted a first stage hedonic house prices study using a difference-in-differences approach. The analysis covers single-family houses located within the 3-kilometre buffer strip zone along the coastlines in 6 municipalities in Zealand, Denmark. More than 12,000 house sales transactions are included for the study during the period between 2007 and 2016. I used a historic storm, Bodil, which harshly hit Denmark in 2013, as a treatment for the setting of the difference-in-differences approach. Structural variables and environmental variables entered the estimation as control variables, and spatial and temporal autocorrelations were accounted for by spatial fixed effects and year dummies.

I found that the value of the houses flooded in 2013 is 19.4% lower than the unflooded houses, which is equivalent to DKK 115,219,540 for the flooded houses transacted during the study period. Moreover, the applied results of all houses in the study area based on the predicted sales prices show that the total economic value is DKK 528,705,356. This difference was observed even though the material damage costs were reimbursed from the Danish Storm Council when a storm surge floods the houses. Flooded houses and unflooded houses did not show any systematic differences in their price development before the treatment. These results could be evidence that there is non-material cost of flooding reflected in the house values.

덴마크 석사유학 후 정착이민?

덴마크에서 살려면, 덴마크 유학, 덴마크 이민… 요즘 눈에 띄는 유입검색어다. 덴마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나 했는데 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덴마크에 사는 건 어떤가? 난 덴마크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다. 다만 지금 좋아하는 덴마크의 모습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여기식의 삶의 모습은 현지 여건에 맞춰 살기 적합한 형태이다. 여기의 장점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도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살면서 좋다고 느꼈던 걸 여기로 다 갖고 오면서 덴마크의 좋은 점을 같이 취해서 살 수 있고 그런 건 없는 거다. 그게 가능하려면 엄청 부자이면서 여기 비자를 획득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아니 그래도 한국에서 좋았던 모든 것을 여기서 그대로 누릴 수는 없다. 돈으로 대접을 사는 게 힘드니까. 한국식 고객의 까다로움을 갖고 오면 스스로도 피곤하고 경멸의 눈길도 받을 수 있다.

유학으로 이민을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건 아닌데 꽤나 챌린징한 것 같다. 그전엔 좀 상대적으로 쉬웠는데 시간이 갈 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덴마크어가 안되면 직업을 구하기 어려워서 더 그렇다. 영어만으로 취직을 하려면 글로벌 기업에 취업을 해야하는데, 대부분 아주 유창한 영어실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대기업이 채용하듯 대규모로 채용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영어를 모국어수준으로 사용하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그런 자리를 지원하니까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따라서 취업 가능성을 올리려면 덴마크어를 활용해서 일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게 유학기간 내에 학업과 병행해서 이 수준으로 올리기엔 대학원 학업 강도가 상당히 세다.

여기 사람에겐 취업에 있어 학점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닌 거 같은데 유학 온 외국인에게는 학점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덴마크에서의 학업 후 유관분야로 신입 자리를 노리는 경우에는 더 그런 듯 하다. 내 한국에서의 이력이나 학력의 수준을 이들이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덴마크 학교내에서 보여주는 경쟁력으로 기존의 성과도 같이 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그러니 덴마크어 공부하면서 학업을 잘 관리한다는 게 쉽지 않다. 나도 학교 다니는 와중에는 덴마크어를 손에서 거의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냥 등하교길 신문 읽고, 라디오 듣고, 주말이나 저녁에 아주 간혹 티비 보고, 집에서 남편이랑 이야기하고 그런 거 외에는 말이다. 학원도 잠깐 다녀봐도 학교공부에 치여서 숙제를 몇번 못하고 자꾸 수업도 빠지다 보면 그만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원래 go against all odds, 불도저 같은 사람이다, 실패도 상관없이 도전하다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라고 말할 유형의 사람이라면 사실 어떻게든 여기서 자리잡고 잘 살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나 그런 타입이 아니라면, 녹록하진 않다. 나처럼 처음 일자리를 잡고 여기에 와서 덴마크어를 공부할 시간도 갖고, 현지인인 남편과 결혼해서 학비 없이 대학원 다니고 (그냥 유학생은 돈 내야한다.) 몇개월 실업기간동안 버틸 돈도 있고 직장다니고 있는 남편이 있어서 비빌 언덕이 있으면 좀 모를까.

오늘 생일인 직원이 있어서 그 직원이 구워온 초콜렛 케이크를 먹으며 20분정도 담소를 나눴는데, (생일인 사람이 케이크나 초콜렛이나 간식을 갖고 와서 나눠 먹으며 축하를 받는 기묘한 문화가 있다.) 나 채용할 때 같이 채용되어 들어온 다른 덴마크 직원 두명은 인성 검사만 받았고, 나만 적성검사(라 하고 아이큐 검사 비스무레한…)와 인성검사를 다 받았더라. 누군가는 적성검사만 보고, 누군가는 인성검사만 보고, 또는 다 보는 사람도 있는데, 채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조금 확인해보고 싶은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개별로 필요한 시험 타입을 정해서 알려준다고 한다. 오늘 보아하니 전체 센터에서 우리 청에 들어오기 위해 적성검사를 한 건 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인적성 검사는 우리 청에서 우리 센터가 가장 많이 활용한다고 한다. 농담으로 “내 지능에 의문을 가졌군! 다행히 내가 살아남았네!”라고 말했는데, 돌아서서 생각해보는데 외국인에게는 진입장벽이 알게모르게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덴마크 직장에 첫 발을 들이고 나면 그걸 기반으로 해서 다른 덴마크 직장으로 이직하는 건 수월해지지만 이런 진입장벽으로 인해 첫 발 딛는게 아무래도 더 어려울 수 있겠다. 집에 와서 옌스랑도 이야기해보는데, 아무래도 외국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일하는지 서로 잘 알지 못하니 불안함이 더 크고, 확인해보고 싶은 게 많지 않겠느냐 한다.

결론은 아무런 비빌 언덕 없이 2년동안 석사해서 바로 취직하는 걸 머리에 그리고 오는 유학이라면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다. 박사자리 오퍼받고 오는 건 다른 이야기다. 그건 한국과 달리 취직해서 오는 거니까. 물론 박사자리가 끝나서 무조건 스테이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석사보다는 훨씬 높은 확률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월급도 아주 풍족하진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없을 정도로는 나오니까. 그리고 학계는 덴마크어가 모자라도 장기적으로 덴마크어를 배우면서 정착하기에 괜찮은 국제적인 환경이니까.

이 나라 사람들 영어 참 잘하는데, 그래도 모국어가 더 편하고, 영어가 그닥 안편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일을 하는데 굳이 영어로 일할 이유가 없다. 거기에 고객 업무가 있을 경우 고객을 불편하게 하기 싫을 거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 한국말 못하는 사람 안뽑듯이 여기도 덴마크어 안되는 외국인은 잘 안뽑는다. 영어를 잘하면 덴마크어 배우기 많이 수월해지지만, 그래도 분명 다른 언어도 배우는 데 시간이 또 걸린다. ‘덴마크 사람들이 영어 잘 하니까, 대학원 대부분의 과정이 영어로 되어 있으니까, 거기서 석사 유학하고 나면 취직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한국에서 다른 나라 외국인이 한국어 없이 우리나라에서 취업하려는 것과 진배 없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만든다.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라기에 유학 이민을 꿈꾸는 사람일 경우라면 이런 이유로 매우 비추라고 말해주고 싶다. 올 경우 이런 상황에 대한 인지 후 엄청 노력해서 살아남을 각오를 하고 올 것을 추천한다.

덴마크어로 취직을 하기까지

덴마크어를 공부하기 시작한지 4년 4개월. 정말 언제 늘까 하던 덴마크어로 벌써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과 작년 3월인가 4월인가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Graduate program (싼 값에 대학원생을 고용해서 2년정도 국내외로 이동시키며 다양한 업무경험을 시킨 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일반적이다.) 에 덴마크어로 처음 지원서를 썼던 게 시작이었다. 영어로 먼저 지원서를 써서 이를 덴마크어로 바꾸어 번역한 뒤 옌스의 첨삭을 받았더랬다. 어찌나 오래 걸렸는지… 하루 꼬박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논문을 쓰던 와중에 거의 막바지 들어 한두개 정도 지원서를 내봤는데, 이렇게 저렇게 작성양식을 바꿔가며 이력서와 지원서를 써봤다. 그때만 해도 내 문장에 정말 자신이 없었고, 한문장 써내려가는게 너무나 힘들었다.

졸업을 하고 1개월 정도 프로젝트 알바로 아주 바쁘던 시기와 한국 방문시기만 빼고 1주일에 한개 정도씩 이력서를 냈는데, 두어개를 내보고나니 지원서 쓰기도 조금씩 손에 익었다. 6월까지 덴마크어 수업도 열심히 듣고 8-9월 중 한달간 바짝 들었던 수업이 그렇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걸까? 첫번째 인터뷰에서 덴마크어로 인터뷰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문제없이 하고 나서 나 스스로도 너무 놀랐는데, 덕분에 경쟁소비자청 면접에는 덴마크어에 대한 불안을 상당부분 잠재우고 갈 수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문제제기 부문을 작성하고 관련 정부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덴마크어 자료를 많이 읽은 게 도움이 은근 되었던 거 같은게 일련의 전문용어는 그런 자료를 읽는데서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쥐가 나는 것 같은 경험은 대학원 1학기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땐 수업시수와 과제만으로도 치였던 계량경제와 생태학에 덴마크어 수업까지 동시에 들으면서 쏟아지는 자료를 읽다가 머리가 쥐가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경력직으로 들어가 (낮은 레벨이긴 하지만) 신규 업무를 익히는데 그걸 덴마크어로 해야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다. 회의에 들어가서 설명을 들으면서 질문도 해가며 이해해야해서 그렇다. 엄청난 자료 더미를 받았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하려다보니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던 단어도 제대로 확인하고 넘어가야해서 시간이 배로 걸린다. 다행인건 페이지를 넘길 수록 이미 찾은 단어가 다시 반복해 나오고 불확실한 단어나 모르는 단어의 빈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읽고 이해한 데에 그친 단어면 내 능동적 활용단어에 포함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이걸 미팅에 들어가서 내용을 설명듣고 질문하는데 쓰다보면 머리에 빠르게 남는다. 나에겐 일을 하는 거이자 무료 덴마크어 수업을 받는 거다. 물론 이메일 쓰고 공문 쓰고 하는 일은 심적으로 큰 부담이긴 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맞닥뜨려야만 한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9월, 덴마크어 수업을 끝으로 수업이고 뭐고 내려놓고 본격적 덴마크어 공부도 손에서 잠시 논 후 잘 다져왔던 문법적인 디테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것 같았는데, 지난 며칠 사이에 이런 모든 게 다 빠르게 돌아오는 기분이다. 결국은 이런 도전의 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때 정체되어 있던 언어습득이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물론 이제 도전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앞으로 내 분야에서 내가 전문가가 되어 덴마크어로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야 한다는 게 두렵기만 하지만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차근히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직장 동료들도 자기들이 외국에 가서 영어가 아닌 그나라 말로 취직하려면 너무 힘들 거 같은데 어떻게 4년여 시간동안 덴마크어로 일자리를 구했느냐고 묻는다. 왕도는 없다. 그냥 무조건 부딪히고,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러다보면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늘 거다.

Studieprøven 읽기 및 쓰기 시험 결과

읽기는 10, 쓰기는 4. 아. 쓰리다. 사실 내 실력은 PD3 때에서 크게 늘지 않았는데 일한답시고 수업도 한달만 듣고 작문 연습도 안한 쓰디 쓴 결과다. 이렇게 결과를 받고 나니 구술시험은 더 보기 싫어진다. 이번엔 주제가 세 개 나왔는데, 여기서 하나 무작위로 뽑아서 시험을 봐야한다.

쓰기 주제는 어제 이메일로 통보를 받았는데, 1. Sprog i en globaliseret verden, 2. Ungdomskriminalitet i Danmark, 3. Kunst, kulturliv og kulturpolitik i Danmark, 이렇게 세 개이다. 5분 프레젠테이션하고 질의응답하는 걸로 해서 30분 시험보는데, 5분 프레젠테이션 3개 준비하는 게 왜이렇게 하기 싫은지. 사실 하고 싶으냐 싫으냐를 생각하기 전에 그냥 닥치고 해야 하는 건데…  이번 주말에 시댁 가서 저녁에 조용히 앉아 준비 좀 해야겠다. 시부모님과 브레인스토밍이라도 해봐야지.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 하고 여쭤봐서.

보육원 학부모 면담

학부모 면담을 다녀왔다. 옌스가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새벽같이 집을 나선 탓에 하나를 보육원에 내가 보내고 바로 이어 면담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하나의 발달에 대한 두페이지짜리 리포트를 준비해두고 있었고, 우리와 선생님의 설문조사에 의거해 외부 컨설팅기관에서 분석한 내용을 도표로 만들어 선생님과 우리의 아이의 발달에 대한 인지상황을 비교해보았다. 우리보다 하나의 발달에 선생님이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몇가지를 제외하면 아이의 발달에 대해서 양측의 견해가 일치했다. 애들이 집과 보육기관에서 큰 편차를 보이지 않는 건 좋은 일이라고 했다. 

하나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잘 자라고 있었다. 사회성, 신체적 발달 (대근육, 소근육), 정서적 발달, 사회규범에 대한 적응 등 다방면에서 기대 이상의 발달을 보이고 있었다. 독특한 걸로는 신체적 접촉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손 잡는 건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제일 탁월한 능력은 언어능력이라고 했는데, 이건 그닥 놀랍지 않았다. 보육원에서도 다른 큰 애들보다 언어능력이 뛰어나다고 대단하다는 말을 거의 매일 듣고 있었는데다가 집에서 매일매일 놀라고 있었으니까. 꽤나 독립적인 아이이지만 간간히 도움을 청하는 걸 보고 좀 더 독립적이 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하나 했는데, 집에서보다 보육원에서는 훨씬 독립적인데다가 오히려 도움을 청하는 상황을 판단해서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발달단계상에서 후에 나타나는 일이라고 했다. 집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적극적으로 도와주라고 했다. 이미 보육원에서 충분히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자기가 의지하고 편히 기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며. 그런 부분도 있구나 싶었다.  

앞으로 또 다른 힘듦이 있을 수 있겠지만 처음 1년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육아휴직도 있는 거겠지만. 요즘은 힘든 것보다는 매일매일이 놀라움인 것 같다.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새로운 능력을 마주하는 놀라움. 

오늘 친구네 집에 가서 7개월 근처의 아이들을 보며 놀다 왔는데 그때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큼 지금과 그때는 너무 다르다. 지금의 생각으로 돌아보면 이렇게 빨리 자랄 줄 알았으면 덜 힘들었을 것 같다. 이미 익히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걸 내 시간 감각으로 예상하기엔 경험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그게 끝나면 곧 두돌이 될텐데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지. 내가 자는 애를 유모차에 끌고 미팅에 가려 나타났던 날,  지도교수는 세살 반만 되면 정말 다 키운 거라면서 그 다음엔 어휘의 차이일 뿐이지 거의 어른과 대화하듯 대화가 된다고 했는데 진짜 그럴 것 같다. 너무 빨리 자라지 마라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이 순간을 하나하나 내 마음에 아로새기듯이 기억을 하며 키우고 싶다. 그래서 나중에 그 시간이 새록새록 내 기억속에서 살아나기를…

보육기관 부모회의 참석후기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 보육원이 있는 관계로 하나는 큰 고민없이 이 보육원에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6개월 영아부터 학교 입학 직전 유아까지 받는 큰 보육원이라 더 좋다고 생각했다. 어디고 좋은 점만 있는 보육시설이 있겠냐마는 이정도면 만족하고 다닐만한 보육원이라 생각하고 보내고 있다.

보육원에 애를 보낸지 거진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대충 이맘때쯤 연간 부모회의 총회가 열리는 것 같았다. 이때쯤 해서 총회를 열고 부모회의 이사진을 선출해야 그 이듬해 이사회에서 매월 모여가며 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전달하고 보육기관의 입장도 듣고 조율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보육기관장이 무슨 이유인지 해고되고 그 이유는 공유가 되지 않았다. 신규 기관장을 채용, 선임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보육원과 학부형 간의 공식적 의사소통이 좀 원활하지 않았다. 개별 선생님과 부모 사이의 의사소통이야 항상 문제 없긴 했지만. 알고보니 선생님들이 마음 고생도 심하셨고 했던 모양이다. 기관장의 빈자리를 보육교사들이 채워가면서 보육업무도 봐야하다보니. 해당 기간 중 육아휴직, 병가 등 선생님들의 빈자리도 중간중간 생겨서 더욱 그랬던 거 같다. 그 와중에 자리를 잘 지켜주고 애들 잘 돌봐주신 선생님들이 참 고맙더라.

신임보육기관장의 인사 및 비전 등을 듣는 자리가 있었는데, 참 연륜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보임 후 보육원이 조금씩 다시 제자리를 찾는 거 같다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한시간동안 아이들의 놀이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보육교사 및 학교 선생님 자격이 다 있고, 교육쪽 박사학위에, 오랜 기간 교육 프로그램 컨설팅에 종사한 이력이 화려한 분이었다. 이력이 화려해도 강의가 꼭 재미있다는 보장은 없을텐데, 어찌나 이분 강의가 재미있던지 간간히 눈물이 날만큼 웃어가면서 강의를 들었다. 나도 하나 궁금했던 것에 대해 질문도 해보고 알찬 시간을 보냈다.

끝나고는 각자 앉았던 의자를 정리하고 돌아가는 거였는데, 한 엄마랑 엄마그룹 모임에서부터 알고 있어서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도 하고 헤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다다음 주말에 가족 플레이데이트도 드디어 해보기로 했다.

옌스말로는 덴마크의 전형적인 부모모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그런데 그래서 그런가, 외국인 부모들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덴마크인을 한쪽 부모로 둔 가정 말고도 완전 외국인 부모들도 소수 있는데, 아무도 오질 않았다. 나야 거울이 있는게 아니면 내가 보이질 않으니 다 비슷한 덴마크인들 속에서 딱히 느낄 이질감도 없지만 간혹 그런 걸 인지하는 순간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만 보면 상당수의 외국인 부모들도 덴마크어로 다 이야기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하던데. 애들 보육기관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어라기 보다는 가서 다 알아듣지는 못할런지 어색하지는 않을지 등등 여러 이유로 안오는 것 같았다. 막상 와서 보면 정히 다른 부모와 어울리지 않아도 그냥 앉아서 듣다가만 가도 이상할 것도 없고 괜찮다는 걸 알 수 있을텐데. 반대로 이런 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부모들을 두고 사회통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옌스가 바빠서 내가 갔던 거지만 재미있었고, 조금 애가 더 크고 나면 이사회에도 참석해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한달에 한번 만나고 조금 일 더 하는 거라면 봉사활동으로도 나쁘지 않을 거 같고.

썸머타임이 끝나서 일찍 피곤해진다. 이제 가서 자야지. 하나도 얼른 시차적응이 끝났으면 좋겠다. 좀 적응되나 싶었더니 썸머타임 끝으로 추가 한시간 적응이 더 필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