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휴가 최고의 날

올 여름 휴가 중 오늘이 최고인 이유는 오늘은 일을 안하고 정말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시댁인 보언홀름에 와서도 아침 8시반부터 저녁 5시까지 매일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쓰고 집에 와서도 하나 재우고서는 밤에 또 일을 했는데 오늘은 집에서 오전 일찍 세시간만 일하고 하루종일 놀기로 했다.

첫번째는 미리 예약해둔 레스토랑 방문하기. 작년에 한국 다녀와서 거의 1년만에 처음 좋은 레스토랑을 가기로 한 거였는데 보언홀름에 미슐랭스타 레스토랑 Kadeau가 있어서 거길 가보기로 했다. 전형적인 뉴노르딕 식당이었는데 몇군데 가봤던 뉴노르딕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중에서 제일 괜찮았던 거 같다. 꽃과 인근에서 나는 베리, 발효 식자재를 많이 썼는데 프레젠테이션도 그렇고 맛도 좋았다. 분위기는 캐주얼한 스타일이어서 애들을 데려온 부모들도 많았다. 물론 애들을 동반한 부모들은 잘 즐기지는 못했지만…

스낵으로 나왔던 팬케이크는 꽃으로 뒤덮여있었다. 옌스는 약간 셀러리같은 향이 난다고 했지만 나는 정확히는 어떤 향이라고 표현하긴 힘들지만 셀러리 향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부담스러운 향도 아니었고… 싱그러운 느낌을 더해주는 정도였고 시각적인 부분과 식감 부분을 담당한 것 같다. 팬캐이크는 구수하고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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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약이 워낙 일러서 그랬는지 한 팀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평일인데도 곧 꽉차서 놀랬다. 물론 휴가시즌이라 그럴 것 같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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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왔더니 하나는 유모차에서 잠이 들어있었는데 꽤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주변에서 대화소리가 들리는데도 깨지 않고 계속 잤다. 잠든 얼굴을 보는데 어찌나 커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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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깨어난 하나와 놀다가는 옌스에게 피자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며 피자 두판을 만들어 시부모님과 즐겁게 나눠먹었고, 저녁엔 국민 가수인 Kim Larsen의 야외 콘서트가 바로 옆 콘서트장에서 열리길래 발코니에 앉아 무료 공연을 즐기며 이렇게 블로그 포스트를 쓰고 있다. 물론 잠깐 가서 구경도 하고, 워낙 역사적인 가수인데다가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렇게 공연 가볼 일도 거의 없을 거 같아 셀피도 남겨두었다.

덴마크는 이번 여름 엄청 좋고 평년보다 엄청 더워서 25도를 훌쩍 넘기는 날이 많다. 아직 본격적 여름이 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잘 때 너무 더운 경우가 있는데 (물론 한국 기준으로는 시원하고 열대야도 아니지만, 이제 엄청 시원하게 해두고 자는 데 익숙해 있어서 쉬이 덥게 느껴진다.) 다행히 보언홀름은 20도 내외로 시원했어서 피서를 제대로 하다 가게 될 거 같다. 너무 더우면 하나가 잠을 설치는데 그렇지 않은 게 가장 감사했다.

오늘 아침엔 이력서도 한군데 제출했다. 덴마크에는 석사 타이틀이 구체적으로 정해져있어서 직업을 타이틀로 검색할 수가 있는데,  내 이력에 꽤나 관련된 자리가 올라와있는 거 아닌가. 이력서는 지난번 Marsh라는 회사 graduate program에 지원할 때 써둔 게 있어서 수정할 게 없었고, 지원서만 새로 써야했는데 덴마크어로 써야하다보니 하루를 씨름해야했다. 덴마크에서는 지원서를 내기전에 채용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는 게 아주 일반적이고 그래야 회사가 채용하는 목적 등을 정확하게 확인해서 지원서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전화를 꼭 해야한다. 그 전화를 하기 전에 뭘 물어볼 건지 등을 정하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전화를 하고 담당자가 말해준 내용의 배경을 확인하느라 리서치 하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 다음엔 그걸 덴마크어로 쓰느라 시간이 걸렸고.

저녁에 옌스가 교정을 봐주는데, 문장 구조 수정 없이 마이너한 문법만 몇개 고쳐주고 끝내면서, 나중에 덴마크어로 보고서 쓰는 것도 누가 문법만 초기에 조금 봐주면 큰 문제 없을거라고 했다. 지난번보다 덴마크식 지원서 쓰는 것에 대한 감이 더 잡혔는데, 뭐 되기를 기대한다기 보다는 이렇게 하는 작은 경험들이 쌓여서 조금씩 발전이 되고, 그러다보면 취직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오늘은 아무튼 좋은 날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기억할만한 그런 날이다.

더운 여름날엔 역시 아이스크림!

쉬지 않고 논문을 너무 열심히 썼더니 등이 아프길래 페달을 밟아 동네에 있는 아이스크림집에 다녀왔다. Ismageriet이라고 the icecream maker라는 뜻의 심플한 이름을 가진 가게인데, 코펜하겐 인근 지역에서는 매우 유명한 집이다. 줄이 길어서 퇴근시간 이후에 가면 줄이 너무 길다. 이틀에 한번 꼴로 하나 자는 시간에 짐에 다녀오는데, 바로 그 앞에 있는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밤 10시가 되도록 줄이 엄청 길게 늘어서있다.

집에서 논문을 쓰고 있는 요즘,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엄청 당기는 게 아닌가. 딸기와 초콜렛 소르베를 녹을라 싶어 허겁지겁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옌스 왈 오늘 밤에 겁나게 운동해야겠단다. 물론이지! 근육만든다고 쉬던 웨이트를 다시 시작한지 어느새 거의 3주가 넘은 거 같으니. 오늘 저녁은 조금 덜 먹고 새로운 운동으로 아이스크림 칼로리를 날려줘야겠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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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자마자 녹기 시작해서 한입 핥아먹은 아이스크림. 

Denmark proudly presents: 딸기 eller jordbær!

진공포장이 완벽하지 않던 인스턴트 커피를 교환하려 네토에 8시 조금 넘어 거의 문 열자마자 갔다. 안타깝게도 내가 교환하려던 특가상품으로 나왔던 탓에 매진되어 환불을 대신 받았는데, 아침 일찍 갔더니 갓 들어온 딸기가 엄청 신선하더라. 방금 전 배가 출출하길래 딸기에 설탕을 뿌린 듯 만듯 아주 조금 솔솔 뿌리고 거품내지 않은 생크림을 쪼르륵 부어 먹었다. 음…

덴마크는 제철 상품이 아닌 채소나 과일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고 하우스로 재배하지는 않는다. 아마 하우스의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 드는 에너지 비용이 과해서 인근 EU국가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큰 것 같다. 덴마크 딸기(덴마크어로 jordbær, 땅에서 나는 베리라는 뜻이다.)는 덴마크인이 정말 자랑스럽게 여기는 과일인데 정말 인정할만하다. 안팎으로 새빨간 딸기는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간혹 네덜란드산 겨울 딸기를 먹어봤는데, 안에는 하얗고, 단맛 중심에 새콤한 맛이 부족한 게 실망스러웠었다. 아무튼 여기 살면서 제철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데, 올 해 여름 일조량이 기가막히게 좋은 덕인지 딸기가 예년보다 많은 물량으로 풀리고 있는 것 같다.

덴마크 딸기는 주로 계란팩과 비슷한 재활용 종이 소재의 팩에 뚜껑없이 팔리는데, 시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당일 수확해서 출고하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아침에 장 보는 일이 없는 관계로 이렇게 신선하고 무른 데 없는 딸기는 별로 본 일이 없어서 흥분하며 500그램짜리 2팩을 사서 벌써 300그램은 먹었다. 냠… 맛있어라… 이제 논문 끝나고 실업이 해소될 때까지는 아침에 장을 좀 자주 봐야겠다. 신선한 제품들은 얼리버드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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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당일 출고된 덴마크 딸기 500그램팩

연어구이, 오이/딜/페넬 샐러드, 팬에 구운 감자

우리는 외식을 별로 안하고 산다. 삼시 세끼를 다 잘 챙겨먹는 게 아니라 요리하고 그런 게 어려운 건 아닌데, 뭘 먹어야 하나 하는 고민은 끊이지를 않는 것 같다. 대충 시기별로 해먹고 사는 요리들을 이름이라도 기록해두면 영 아이디어가 없을 때 해먹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Sprødstegt laks (껍질이 바삭하게 구워진 연어) – 껍질이 있는 연어필레, 비늘을 제거하고 소금을 약간 뿌려 냉장고에 20분정도 재워두어 수분을 조금 제거한다. 팬은 뜨겁게 달궈두고 오일과 거친 소금을 뿌린 후 껍질쪽을 팬에 닿도록 생선을 팬에 올린다. 중간불로 조절한 후 4-6분 정도 굽거나 또는 열기가 생선을 통과해서 생선색깔이 대충 흰색을 띌 때까지 굽는다. 생선을 뒤집은 후 팬을 불에서 내린다. 불에서 내린 팬에 생선을 30초-1분정도 두면 생선은 준비가 된다.

agurk, dild og fennikel salat (오이, 딜, 페넬 샐러드) – 오이, 빨간양파, 페넬을 각각 한개씩 준비한다. 딜은 한단을 준비한다. 모두 티스푼 기준으로 꿀 1, 오일 2, 화이트와인식초 1, 디죵겨자 2, 소금과 후추 적당히.

오리지널 레시피 : 베얼링스커의 쉬운 주중요리 레시피 – https://www.b.dk/mad/nem-hverdagsopskrift-sproedstegt-laks

팬에 구운 감자 – 감자를 삶아서 깍둑썰어 준비한 후 팬에 로즈마리나 타임, 마늘 등을 같이 넣고 오일을 조금 넣어 볶듯이 구워준다. 전날 삶은 감자가 남았을 때 좋은 사이드메뉴

맛도 있고 하나도 좋아하는데, 단점은 집에 생선냄새가 하루는 가는 것 같다. 창문을 활짝 열어둘 수 있는 여름에만 해먹는 걸로…

덴마크 크리스마스 또는 율(Jul)에 먹는 이야기

덴마크어로 크리스마스는 율(Jul)이라고 한다. Jesus Christ에서 영어로는 뒤의 Christ를 따서 크리스마스지만 덴마크어로는 예수스(Jesus)에서 파생한 단어인 모양이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보냈다. 매해 시누이네 집에서 시누이네 시부모님과 우리 시부모님, 옌스와 나까지 보내다가 이번엔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시누이는 남편이 두바이로 주재근무를 나가면서 가족이 모두 3년간 이사를 나가게 되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함께 보낼 수 있으려나 했는데, 한해의 1/3을 해외로 출장다니는 시누이 남편이 이번 크리스마스 휴일은 좀 쉬고 싶으니 휴양지로 가자고 했단다. 그래서 시누이네 별장에서 일주일 먼저 이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자 했는데, 우리 집 온가족이 다 아픈 바람에 우리만 빠지게 되었다. 너무 아쉽게도. 매번 엄청 뻑적지근하게 보내던 크리스마스가 우리만의 단촐한 파티로 바뀌게 되어서 아쉬웠다. 그 나름의 장점도 있긴 하겠지만.

덴마크의 크리스마스는 24일이 가장 중요하다. 가장 큰 크리스마스 만찬이며 게임, 선물 개봉 등이 다 24일에 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25일, 26일은 첫번째 율, 두번째 율이라 부르며 율리프로고스트(Julefrokost)라고 길디 긴 점심식사를 한다. 우리는 주로 24일 시누네서 율리프로고스트, 율리아픈스맬(Juleaftensmad)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 쉬고 26일 시고모님 두분 중 한분 댁에서 율리프로고스트를 하는 게 루틴이다. 가족마다 각자 챙기는 방식은 다 다르다.

그래도 대충 비슷한 건 율리프로고스트와 율리아픈스맬.

율리프로고스트는 검은 호밀빵인 Rugbrød, 밝은 색 밀가루 빵인 Franskbrød (밀가루 빵은 재미있게도 대충 프랑스빵이라고 부른다.) 등을 바스켓에 담고, 그 위에 얹어먹을 Pålæg을 이것 저것 준비해둔다. 그러면 빵 위에 버터를 발라 Pålæg을 이것 저것 얹어먹으면 영어로 오픈샌드위치로 엉터리로 번역된 Smørrebrød이 된다. Smør가 버터이고 Brød은 빵이니 사실 버터바른 빵이라는 뜻이다. 아무튼 모양은 빵이 아래에만 깔린 형상이니 오픈 샌드위치로 불리긴 한다. 중요한 건 이건 손으로 들고 먹는 게 아니라 포크와 칼을 들고 먹는다.

Pålæg에는 궁합이 있다. 1차는 어류, 2차는 육류라 이에 맞춰 접시는 2개를 포개어 준비한다. 어류로는 식초에 절인 청어로 시작하는데 다른 것 없이 식초에만 절인 것부터 딜(dild)을 넣은 것, 카레소스에 절인 것 등 다양하다. 청어는 주로 흐르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삶아진 계란과 함께 먹는다. 다음은 대구를 다져 양파, 밀가루, 계란을 넣고 팬에 튀긴 피스커프리카델라(Fiskefrikadelle)로 라물렐(Remoulade) 소스를 얹어먹는다. 그 다음은 훈제 연어. 굳이 다른 건 얹어먹지 않아서 신기했는데, 케이퍼는 생략하고 먹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평소에 채소로 옆에 곁들이는 건 오이와 토마토 정도인데, 그나마도 크리스마스에는 먹을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걸까? 아예 내놓지 않기도 한다. 2차 육류는 주로 간 파테인 리워포스타이(Leverpostej),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고기육수를 굳힌 젤리,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반반 섞어 만든 고기완자인 프리카델라(Frikadelle) 등을 먹는다.

사실 이렇게 먹고 나면 시간이 꽤 되는데, 오후의 커피/티를 하고 조금 쉬고 나면 저녁 준비를 또 하게된다.

율리아픈스맬은 오리구이(Andesteg), 껍질을 아주 바삭하게 구운 돼지삼겹 통구이인 플래스커스타이(flæskesteg), 순대처럼 돌돌 길게 말린 생소세지 구이인 메디스터푈서(Medisterpølser) 등을 사이드와 함께 먹는다. 소스는 주로 브룬소스(Brun sovs)이며 카라멜라이즈드된 브룬카토플러(Brunkatofler)와 독일의 sauerkraut와 같은 따뜻하게 준비한 시큼한 양배추 샐러드인 뢸콜(Rødkål)을 사이드로 곁들인다.

디저트는 프랑스어인 척 하는 리살라망(Ris a la amande)이라는 쌀 푸딩인데 리슨그뢸(Risengrød, 물과 우유로 끓여낸 쌀죽에 계피설탕을 넣은 것)에 거품을 단단하게 올린 휘핑크림과 껍질을 까 다진 아몬드를 넣으면 된다. 그 위에 체리소스 (집에 따라 따뜻하게, 차갑게도 준비한다.)를 얹어 먹는데, 크림 때문에 느끼해서 많이는 못먹겠지만 진짜 맛있다. 차가운 쌀죽에 따뜻한 체리소스의 궁합이란 의외로 너무 잘 맞는다.

아몬드 중 하나는 다지지 않고 통으로 넣는데, 이걸 가져간 사람은 재미있는 선물을 하나 받는다.

우리 집에서 4명이서 먹는데 크게 하기도 그렇고, 하나도 있는데 작은 부엌에서 너무 힘들 것 같아 시어머님과 상의해 간단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어차피 26일에 포트럭 식으로 시고모님 댁에서 율리프로고스트는 뻑적지근하게 할 것이기에 24일은 오히려 간단히 해도 상관없었으니까. 통오리는 손질이 번잡스럽고 요리 과정에서 기름 덜어내는 것도 엄청 큰 일인데다가 오븐이 기름으로 범벅이 된다기에 가슴살로 준비했다. 350g짜리 아주 큰 가슴살 4 덩어리를 사오셨는데, 오리 가슴살과 그에 곁들일 사과 및 Ribsgel 등으로 메인 요리를 완성했다. 해보니 너무 간단해서 앞으로 간간히 오리를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옌스가 뢸콜을 안좋아해서 번외로 자주 해먹는 적양배추 샐러드를 곁들였는데, 시부모님도 너무 맛있다면서 좋아하셔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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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율리아픈스맬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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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표 리살라망

거의 시부모님이 준비를 많이 해오신데다가 주방에 시부모님과 나 세명이 서서 준비하다보니 의외로 너무 빨리 준비가 되서 하나 재우고 느지막히 준비를 시작했는데도 시간이 충분했다. 덕분에 어른들끼리 저녁을 오붓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년에는 다시 시누이네랑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된다고 해도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고, 같이 한다면 이제는 음식 준비에도 좀 더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크리스마스였다.

 

(참고로 덴마크인이 크리스마스에 뭘 먹는가 하는 기사도 있다. 덴마크어이긴 하지만…)

 

2016년 크리스마스 가족모임 후기

일년에 한 번, 두 분의 시고모님 중 한 분의 댁에서 돌아가면서 두번째 크리스마스 오찬이 열린다. 덴마크에서는 25일과 26일을 각각 첫번째 크리스마스와 두번째 크리스마스라고 부르고, 첫번째 크리스마스 오찬과 만찬은 24일 이브에 하고, 두번째 크리스마스 오찬은 26일에 한다. 올 해는 Faxe Ladeplads의 첫째 고모님 댁에서 하는 거였는데, 막판에 고모님 손목이 부러지면서 작년과 마찬가지로 Roskilde에서 하게 되었다.

26일 저녁에 태풍이 예보되어, 페리를 타고 돌아가셔야 하는 시부모님은 참석을 못하시게 되었고, 따라서 우리도 열차를 타고 움직여야 되었다. 이번 오찬을 호스트였던 도리스 고모님과 크눌 고모부님은 칠십년대 히피의 삶을 사셨다는데 사실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냥 봐서는 점잖은 보통의 어른들인데 히피셨다니. 옌스 왈 고모님네 서가에 히피의 삶에 대한 책도 꽂혀있다고 했다. 언젠가 두분의 소시적 사진을 보고싶다.

두분은 초반에 나와 별로 말을 섞지 않으셨다. 내가 마음에 안드시거나 영어가 편치 않으시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란 생각을 했으나, 그게 후자의 이유였음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내가 덴마크어를 더듬거리며 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하셨고, 어느 타이밍부터는 내가 영어로 말하더라도 덴마크어로 답을 하셨다. 그리고 크눌고모부님은 특히나 내 덴마크어의 변천사에 유독 관심을 많이 보이고 표현하셨다.

이 날도 나를 보자마자 몇마디 섞으시더니, 이제 정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거의 없다하시며 놀라움을 표하셨다. 더이상 다른 가족들도 나를 위해 말을 천천히하거나 영어로 말하는 수고로움을 피해도 되게되니, 나 또한 부담스러움이 사라졌다. 다른 것보다도 이제 대그룹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포함될 수 있고, 대부분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다루고 이해하게 되어서, 소외감이나 지루함이 없어졌다. 꼬맹이들의 말도 알아듣고 그들과의 친밀도도 높아져서 그들이 나와도 놀기시작하고, 내가 준비한 명절 음식들도 항상 완판되니 소속감이 더 커진다고 할까?

올해는 새우를 다져 약간의 당근과 양파를 넣어 뭉쳐만든 새우전을 준비해갔는데, 여기 음식 중 피스크프리카델라라는 생전요리와 유사한점이 많아서 그런지 생소함 없이 사람들이 smørrebrød의 토핑으로 얹어먹더라. 한국에서도 애들이 새우전 좋아하는 것처럼 여기 애들도 좋아하더라.

각자 음식 한가지씩 또는 디저트나 음료 등을 분담해서 준비하고 나눠먹는 명절은 꽤나 유쾌하다. 집에 오면 하루가 다 가 피곤하기도 하지만, 자주 돌아오는 명절도 아니고 일년에 한 번 뿐이니 즐겁게 준비할 수 있다. 내년엔 하나가 나오니 또 느낌이 완전히 다르겠지. 돌 가까이 되는 타이밍이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정신없게 하겠지.

덴마크스러움이란?

11월 말이 되니 Spotify에 캐롤 믹스가 넘쳐난다. Julesange du kender (Christmas songs you know)라는 믹스가 추천으로 떠서 틀어보니, 덴마크 크리스마스 노래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Jul-Det’Cool이라는 노래가 첫곡으로 나온다. 이젠 나이가 꽤나 든 덴마크 래퍼인 Mc Einar의 노래인데, 소비지향적인 크리스마스를 덴마크인 특유의 아이러니한 유머로 비꼰 노래다.

Jul-Det’Cool by Mc Ei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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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MC Einar. (Source: BT)

Det skete i de dage i november engang
at de første kataloger satte hyggen i gang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ebal i Nisseland, familiernes fest
med fornøjet glimt i øjet, trækker folk i vintertøjet
til den årlige folkevandring op og ned ad Strøget
der bli’r handlet, pakket ind, og der bli’r købt og solgt
tøsne, snot i næsen, det’ pisse koldt
det er vinter, man forventer vel lidt kulde og sne
men det’ da klart at en såd’n sag må komme heuj bag på DSB
intet vrøvl har de forsvoret, det de helt sikre på,
men ved den første rim på sporet, går møllen i stå
folk de tripper, skælder ud, og ser på deres ure
og sparker efter invalide, ynkelige duer
der er intet, man kan gøre, de sure buschauffører
gør det svært at praktisere lidt julehumør
“Gå så tilbage for helvede” råber stodderen hæst
men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r er mænd, der sælger juletræer på alle åbne pladser
12 bevægelige nisser og en sort mekanisk kat
i et vindue ud mod Strøget trækker flere tusind watt
kulørte gavepakker i kulørte juleposer
selv i Bilka og i Irma og i alle landets brugser
er der ægte julestemning og gratis brune kager
der er hylder fyldt med hygge, der er hygge på lager
og hos damerne i Illum kan man få det som man vil
“Kontant eller på konto, hr.? Ska’ prisen dækkes til?”
de smiler og er flinke, mest for fruerne i minke
og gi’r gode råd om alt fra sexet undertøj til sminke
og vi andre fattigrøve, vi ka’ gå i Dalle-Valle
der er damerne så flinke, at de smiler pænt til alle
der er masser tøj i kasser, der helt sikkert passer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15.000 mennesker i Magasin
de har våde lædersko, de har halstørklæder på
de har overfrakker, gavepakker, masser de ska’ nå
men de hygger sig, sel’fø’lig gør de det
plasikstjerner, plasikgran og plastiksne
sætter stemning i systemer, det’ så nemt og nul problemer
køb blot julestuens julesæt med fire fine cremer
eller sukkerkrukker, pyntedukker, pænt, mondænt og ganske smukt
søde sæt med proptrækker, glas og øloplukker
fra en skjult højtalerinstallation,
“Et barn er født i Bethlehem” i Hammondorgelversion
vi’ traditionsbundne folk, i traditionernes land,
så vi hygger os, li’så fint vi kan
og særlig uundværlig, det er Magasin,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Højt fra træets grønne top”
“Mød julemanden klokken 13, 15, og 17 på julestuen på 3. sal”
“Vores velassorterede vinafdeling kan tilbyde et komplet gløgg-sæt for kun 39.95”
“Lille Øjvind på fem år er blevet væk fra sin mor, han kan afhentes i kundeservice”

“Jamen du godeste er det allerede…”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der er intet lavet om siden sidste år
det’ de samme ting vi spiser, det’ de samme ting vi laver
de samme ting i TV, de samme julegaver
samme pengeproblemer, det’ dyrt og hårdt
udelukkende overtrukne kontokort
overflod og fråds med familie og med venner
samvittigheden klares med en ulandskalender
det’ julefrokosttid, traditionspilleri, spritkørsel, utroskab, og madsvineri
vi har prøvet det før, vi ved præcis hvad der sker
slankekur i januar og alt det der
det’ et slid, men der er lang tid til næste år
det’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Jeg drømmer om en hvid sandstrand,
med palmetræer og sommervejr
der vil jeg fejre julen
i swimmingpoolen
langt væk fra sne og juletræer”

옌스는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걸 매우 웃기게 생각한다. 가사도 모르던 이 노래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출근 길에 화장하면서,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항상 들었는데, 거기서 이 노래를 정말 자주 틀어줬다.

옌스가 간혹 나보고 자기보다 더 덴마크인스럽다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다. 덴마크 캐롤을 좋아하는 것,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Ris a la mande (프랑스 메뉴인 척 하는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나 Æbleskiver를 먹고 싶어하는 것, 덴마크식의 self-irony 유머를 즐기는 것 등 말이다. 사실 self-irony 유머는 그냥 여기에 와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덴마크 문화와 맞아떨어진 개인적 특성일 뿐이지만…

그런데 막상 옌스는 덴마크인스럽지만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사람이기도 해서 진짜 덴마크인스러운 게 뭔지는 집 안팎을 두루 관찰하고 이야기를 골고루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실제 옌스는 전형적 덴마크인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한다. 남들끼리는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는 공감하기 어렵고, 반대로 내 경험을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을 꼽아보자면… Rugbrød(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에서 주로 먹는 호밀빵으로 점심때 먹는다.)은 가족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행사같은 날 빼고는 안먹는 것 (자기는 어려서 평생 먹을 Rugbrød을 다 먹었다며…), 있으면 먹지만 Lakrids (감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각종 종교적 전통을 좋아하지 않는 점 (크리스마스때 선물 교환은 딱 조카들과 나에게만 하고, 가족들에겐 선물 안주고 안받는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새로운 음식이나 새로운 문화, 언어를 배우는 것 등을 좋아하는 점, 덴마크를 좋아하지만 굳이 덴마크를 자랑스러워하거나 덴마크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거나 그런 게 없다는 점, 그래서 내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점, 덴마크 국기인 Dannebrog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맥주를 안좋아하는 점 등이다.

덴마크인스러운 점도 물론 많다. 운동을 정말 좋아해서 하루라도 운동을 빼놓는 날이 없다는 점, 매사 성실한 점, 개인생활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시하고 가사분담 참여비율이 높다는 점, 직업 윤리가 투철하다는 점,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점, 집에서 밤에 불 밝게 켜는 것 싫어한다는 점 (현광등은 정말 질색팔색한다. 한국가서 한두달 지내려면 적응하느라 고생 좀 할 듯), 겨울에도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자야하는 점, TPO에 맞는 옷을 잘 차려입는 것 좋아하고 패션에 대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점 (자기 것 쇼핑은 반드시 자기가 한다. 의견은 수렴하지만, 결정은 자기의 몫. ) 등

물론 이러저러한 특성을 굳이 덴마크인스러운 점과 그렇지 않은 점으로 나눴지만, 사실 외국인 남편과 그의 모국에서 살다보니 국민적 특성이란 것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개별특성의 스펙트럼이 평균으로부터 워낙 넓게 펼쳐져 있어 저 구분이 틀리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이 또한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 자기가 교제하는 사람과 준거집단을 중심으로만 살펴보게 되서 덴마크인스럽다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겐 전혀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도 많고, 내가 덴마크인스럽지 않다고 하는 것도 덴마크인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친구를 초대해서 음식을 넉넉히 하다보니, 다음날 저녁에 데워서 먹을 만큼 넉넉히 남았었는데, 난 그에 곁들일 탄수화물로 빵을 굽고 있는데, 옌스는 밥을 달라고 했다. 서양음식인데 밥을? 이라는 나의 반응과 달리 옌스는 내가 해준 쌀밥이 덴마크 어느 식당에서 먹는 쌀밥보다도 맛있다면서 그걸 달라하고, 간장에 참기름을 달라해서 그 쌀밥위에 끼얹어 먹는걸 보면서 기함했다. Rugbrød위에 남들과 다른 컴비네이션을 얹어먹는 걸 봐도 크게 놀라지 않는 옌스인 걸 생각해보면 그만의 기이한 조합도 딱히 놀랄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방송에서 “진정한 덴마크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걸로 이것 저것 다양하게 다룬다. 토론, 뉴스, 다큐멘터리 등등… 옌스는 그런 토론 자체가 정말 피곤하고 언론에서 덴마크인이라는게 뭐 대단한 거고 그게 얼마나 통일성이 있는 것이고 독창성이 있는 거라고 그걸 그렇게 따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공동체 의식, 개인주의 등 가장 핵심적인 가치만이 지켜진다면 사회는 항상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고, 개인마다 덴마크인다움에 대한 정의가 다 다른데 그걸 dansk함과 udansk함을 나누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 나에게도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인 다움이 있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이곳의 가치에 영향을 받으며 한국에서 갖고 있던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너도 덴마크인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내가 한국인인 것만큼 덴마크인도 되어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 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함께 덴마크인의 행복함의 원천에 대해서 휘게와 기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찾고 이를 홍보하고 수출하는 것도 피곤하다고 한다. 그냥 타인과 비교 별로 안하고, 현실감있는 목표를 정하고,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서열의식이 적고 자연환경이 좋은 편이어서 다른 나라사람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덜 받고, 그래서 행복한 거 아니냐고. 그게 우리에게 특별한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란다.

이럴 때 난 덴마크인이지만 덴마크인이기만 하지 않은 옌스와 결혼을 한게 참 안도가 된다고 할까? 안그래도 타국에서 살면서 적응할 게 많은데 그걸 강요당한다거나 기대를 받는다면 어땠을라나? 여기의 룰에 맞춰가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다름을 같음으로 맞춰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과, 내가 다른 건 옌스가 다른 덴마크인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다르다고 전제를 깔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리 없이 편입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고 적응을 도와주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이번에 새로 주문한 한국어 책에서 (한권을 드디어 끝냈다. ㅠㅠ) “하다”동사를 활용한 한국어 동사변형의 여러가지 유형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걸 패턴드릴로 연습한다고, 몇가지 동사를 주면서 이걸 같은 형식의 테이블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어줬더니, 다음날 회사에서 출력을 해갖고 온 것을 보여주며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사실 옌스랑 나는 주중엔 퇴근 후 30분정도 그날 있었던 이야기 좀 하고, 같이 뉴스 보고, 각자 할 일 하다가 소파에서 30분 정도 같이 앉아 쉬고, 또 각자 할 일 하다가 잠자리 들어서 조금 이야기 나누는 것 정도가 일상이다. 각자 할 일 하다가 시덥잖은 말 한 두마디 던지면서 낄낄대는 것 외엔 자기 할 일 할 때는 자기 것만 따로 하기에 각자의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 평일엔 저녁도 둘다 뉴스 보면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 간단히 먹으니까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게 둘이 필요로하는 공통사항이라 서로 이를 존중해주는 것이 참 좋고 고마운 거다. 우리는 서로 뭐 배우고 하는 거 좋아해서, 같이 있지만 또 각자 저녁에 배움의 시간을 가진다는 점에서 닮아서 정말 좋다고 하니까, 인생의 목적은 배우는 데 있는게 아니냐고 한다. 항상 옌스가 강조하는게 general education의 중요성인데, 이걸 덴마크인스러운 것이라고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옌스스러운 것이지.

이런 옌스와 살아서 딱히 문화충격을 받을 일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인도에서 겪은 문화충격이 워낙 커서 웬만한 다름에 충격을 크게 받지 않는 것도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어떻게 적응하고 사느냐의 문제로 인식하면 되는가 싶기도 하고. 또 곰곰히 뒤를 돌아봐 생각해보면 나름 여기서도 큰 문화충격을 받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 힘든 시간들이 대부분 잊혀지고 그냥 그 틀에 내가 녹아들어가 바뀌어 더이상 놀라울 게 크게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다시 들춰보며 과거의 추억에도 잠겨보고, 스스로의 과오나 성과에서 배워도 보려고 별거 아닌 이런 생각의 조각들을 그래서 그때그때 남겨두는 거니까… 몇 년이 지나서 지금을 반추해보면 그땐 또 무슨 생각이 들런지…

덴마크에서 먹고 사는게 힘든 이유

덴마크에선 한국인으로서 간혹 먹고 사는게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1.

해산물이 귀하다. 흔히 구할 수 있는 생선은 대구와 가자미과의 납작한 흰살 생선의 필레. 새우 쭈꾸미같은 작은 오징어류와 관자 등의 냉동 해산물을 팔긴 하지만 조개류라고는 주로 냉동 홍합이 다다. 해산물 전문점은 좀 사는 동네에 가거나 토우어헬러너(Torvehallerne)라고 gourmet 식재료 파는 광장시장에 가야나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식자재는 얼마나 비싼지. 한국에선 그냥 아무 마트나 가도 사는 건데. ㅠㅠ

너무나 봉골레 스파게티가 먹고싶었다. 여기저기 파스타집 메뉴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샅샅이 뒤져 봉골레 스파게티를 찾아봐도 좀처럼 찾기가 어려워서 결국 만들어 먹기로 했다. 조개의 옵션은 큰 모시조개나 작은 바지락. 큰 모시조개를 선택하기로 했다. 1킬로그램에 180크로나! 한 35000원 하는 금액이다. 와인 작은병 하나로 50크로나, 플랫 파슬리가 집에 다 떨어져서 화분하나 25크로나 파스타면 20크로나 토마토 20크로나 대충 300크로나가 나왔다. 흐미. 5만원이 넘네. 물론 한번에 이 조개를 다 소화하고 싶진 않았지만 내일부터 4박 5일의 여정으로 휴가를 가기에 냉장고에 이를 둘 수는 없었다. 옌스는 조개 등 해산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봉골레 스파게티는 재료가 좋고 비율만 잘 맞춰주면 실패하기가 어려운 스파게티라 맛은 있었지만, 집에서 해먹는 것 조차도 이렇게 비싸지면 자주 해먹기 힘들다. 여태껏 조개를 한번도 안사봐서 몰랐는데, 이렇게 비싸니 식당에서 안 팔수밖에. 파스타에 이렇게 비싸면 누가 파스타를 사먹나. – -;;

덴마크는 잡히는 해산물의 대부분을 해외로 수출한단다. 자국내에서 먹히는 해산물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2.

콩나물이 아주 귀하다. 한번 콩나물을 본 적이 있었다. 딱 한번. 그나마 얼마나 콩나물대가 약하던지. 친한 후배가 사다준 콩나물 기계로 키워보았으나, 이상하게 잘 안크더라. 아마 기후가 안맞아서 그러는 모양이다. 숙주랑 콩나물은 아주 달라서 대체가 되지 않는다. 한국에선 그렇게 싼 콩나물인데, 이 어찌나 귀하신 몸이더냐.

3.

낙지가 없다. 문어는 있고 오징어는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낙지는 없다. 왜 낙지는 없을까. 미더덕도 없다. 내 사랑 미더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