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실업자 생활 첫주를 마무리하며

실업자가 되고나니 어찌 더 바쁘다. 주 2회 덴마크어 학원에 주 1회 덴마크어 과외, 그에 따른 숙제, 주 1회 덴마크어 이력서 작성, 집안일, 애보기, 이게 다일 뿐인데 마치 풀타임 학생에 덴마크어 학원 주 2회 다닐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마 과외에 애보기가 추가돼서일 듯하다.

우선 최초 2달 정도는 내가 꼭 내고 싶은 직장에만 이력서를 내기로 해서 정부부처를 중심으로 나는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에만 지원하려고 한다. 사실 큰 기대는 없다. 포지션 백그라운드 정보 서치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지원서 한장 쓰는데만 3시간여가 걸리는 덴마크어로 일을 한다면 모든 직무능력이 같은 덴마크인과 경쟁한다고 했을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다만 덴마크의 고용시장이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라고 하니 나와 같은 수준의 이력인 사람이라면 더 나은 곳에 지원을 했기를 바라며 지원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문한 것은 딱 하나. 지원을 계기로 삼아 관련 분야의 덴마크어 어휘를 익히고 작문 스킬을 늘리는 것이다. 내 생애에 코펜하겐 대학원 시작 직전 자발적 6개월을 제외하고는 실업기간이 없었기에 졸업 후 처음으로 맞이한 실업기간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초조해 한다고 달라질 게 없으니까 이 시기를 덴마크어 집중훈련의 시기로 삼기로 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직장이든 구해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직 새로운 일상의 리듬이 안잡혔다. 거의 자동적으로 일상을 지켜갈 수 있도록 어떻게 현재의 스케줄을 돌려갈지 최적화를 천천히 하고 습관화 해야겠다.

언젠가 성공적으로 취업이 되어서 그 성공적으로 된 지원서를 공유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올 여름 휴가 최고의 날

올 여름 휴가 중 오늘이 최고인 이유는 오늘은 일을 안하고 정말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시댁인 보언홀름에 와서도 아침 8시반부터 저녁 5시까지 매일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쓰고 집에 와서도 하나 재우고서는 밤에 또 일을 했는데 오늘은 집에서 오전 일찍 세시간만 일하고 하루종일 놀기로 했다.

첫번째는 미리 예약해둔 레스토랑 방문하기. 작년에 한국 다녀와서 거의 1년만에 처음 좋은 레스토랑을 가기로 한 거였는데 보언홀름에 미슐랭스타 레스토랑 Kadeau가 있어서 거길 가보기로 했다. 전형적인 뉴노르딕 식당이었는데 몇군데 가봤던 뉴노르딕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중에서 제일 괜찮았던 거 같다. 꽃과 인근에서 나는 베리, 발효 식자재를 많이 썼는데 프레젠테이션도 그렇고 맛도 좋았다. 분위기는 캐주얼한 스타일이어서 애들을 데려온 부모들도 많았다. 물론 애들을 동반한 부모들은 잘 즐기지는 못했지만…

스낵으로 나왔던 팬케이크는 꽃으로 뒤덮여있었다. 옌스는 약간 셀러리같은 향이 난다고 했지만 나는 정확히는 어떤 향이라고 표현하긴 힘들지만 셀러리 향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부담스러운 향도 아니었고… 싱그러운 느낌을 더해주는 정도였고 시각적인 부분과 식감 부분을 담당한 것 같다. 팬캐이크는 구수하고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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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약이 워낙 일러서 그랬는지 한 팀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평일인데도 곧 꽉차서 놀랬다. 물론 휴가시즌이라 그럴 것 같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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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왔더니 하나는 유모차에서 잠이 들어있었는데 꽤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주변에서 대화소리가 들리는데도 깨지 않고 계속 잤다. 잠든 얼굴을 보는데 어찌나 커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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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깨어난 하나와 놀다가는 옌스에게 피자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며 피자 두판을 만들어 시부모님과 즐겁게 나눠먹었고, 저녁엔 국민 가수인 Kim Larsen의 야외 콘서트가 바로 옆 콘서트장에서 열리길래 발코니에 앉아 무료 공연을 즐기며 이렇게 블로그 포스트를 쓰고 있다. 물론 잠깐 가서 구경도 하고, 워낙 역사적인 가수인데다가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렇게 공연 가볼 일도 거의 없을 거 같아 셀피도 남겨두었다.

덴마크는 이번 여름 엄청 좋고 평년보다 엄청 더워서 25도를 훌쩍 넘기는 날이 많다. 아직 본격적 여름이 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잘 때 너무 더운 경우가 있는데 (물론 한국 기준으로는 시원하고 열대야도 아니지만, 이제 엄청 시원하게 해두고 자는 데 익숙해 있어서 쉬이 덥게 느껴진다.) 다행히 보언홀름은 20도 내외로 시원했어서 피서를 제대로 하다 가게 될 거 같다. 너무 더우면 하나가 잠을 설치는데 그렇지 않은 게 가장 감사했다.

오늘 아침엔 이력서도 한군데 제출했다. 덴마크에는 석사 타이틀이 구체적으로 정해져있어서 직업을 타이틀로 검색할 수가 있는데,  내 이력에 꽤나 관련된 자리가 올라와있는 거 아닌가. 이력서는 지난번 Marsh라는 회사 graduate program에 지원할 때 써둔 게 있어서 수정할 게 없었고, 지원서만 새로 써야했는데 덴마크어로 써야하다보니 하루를 씨름해야했다. 덴마크에서는 지원서를 내기전에 채용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는 게 아주 일반적이고 그래야 회사가 채용하는 목적 등을 정확하게 확인해서 지원서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전화를 꼭 해야한다. 그 전화를 하기 전에 뭘 물어볼 건지 등을 정하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전화를 하고 담당자가 말해준 내용의 배경을 확인하느라 리서치 하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 다음엔 그걸 덴마크어로 쓰느라 시간이 걸렸고.

저녁에 옌스가 교정을 봐주는데, 문장 구조 수정 없이 마이너한 문법만 몇개 고쳐주고 끝내면서, 나중에 덴마크어로 보고서 쓰는 것도 누가 문법만 초기에 조금 봐주면 큰 문제 없을거라고 했다. 지난번보다 덴마크식 지원서 쓰는 것에 대한 감이 더 잡혔는데, 뭐 되기를 기대한다기 보다는 이렇게 하는 작은 경험들이 쌓여서 조금씩 발전이 되고, 그러다보면 취직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오늘은 아무튼 좋은 날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기억할만한 그런 날이다.

덴마크 직장 첫지원 완료!

결국 한군데는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남편 찬스를 써서 오늘 덴마크어 교정을 최종적으로 받아서 지원서와 이력서, 성적증명서를 보냈다. 마침 취업박람회에서 무료로 찍은 프로필사진도 길면 2주까지 걸릴 수 있다더니 오늘 도착해서 그걸로 바꿔 첨부했다. 프로필 사진으로 찍은 것 중 처음으로 마음에 든 사진이다.

무료 프로필 사진에 포샵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여기는 애초에 포샵을 잘 하지도 않는다. 이 행사에 두번째 가보는 거라 사진을 어떻게 찍힐 지 알고 있었고, 덴마크 이력서 사진 유형도 익힌 덕에 이번엔 화장을 안하고 (플래시 터지면 안보일 정도로 흐린 눈썹만 그리고) 활짝 웃고 자연스럽게 찍었는데 잘 나왔다.

지원서를 우선은 영어로 쓰고 덴마크어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덴마크어로 사고하고 바로 작성하기에는 내 덴마크어가 너무 딸려서 필요한 컨텐츠를 충분히 생산할 수 없어서이다. 회사 다닐때만 해도 영어로 보고서를 쓰는 게 꽤나 스트레스였는데, 이제는 별 어려움이 없어져서 대학원 공부의 힘을 느꼈다. 물론 보고서를 계속 썼긴 해도 그 오랜 세월 잘 안늘던 영어가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늘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보고서 쓰면서 자료 인용할 일이 엄청 많아서 그랬던 거 같다는 생각이다. paraphrasing을 하면서도 군더더기 없게 효율적으로 글쓰기를 해야해서 골머리를 썩었던 것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었을 줄이야. 거기에 덴마크어 수업에서 작문을 엄청 시키는 것이 그래도 도움이 된 덕에 이를 번역해서 초안을 잘 만들 수 있었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으면 안되었지만, 그래도 나의 첫 덴마크어 이력서에 지원서라니. 뿌듯하다.

요건에 덴마크어와 영어 모두 fluent해야 된다고 되어있었으니, 사실 나는 요건이 안된다. 이력서에도 중상급이라고 명기해두었고, 이는 면접에 가게 된다면 확연히 드러날 사실이다. 그러니 떨어지는 것을 기대하고 지원한 것이지만, 그래도 혹여나 1차 면접에 가기라도 한다면 엄청 큰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최선을 다해 썼다. 떨어져도 이 경험 자체가 소중하니 후회는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