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의 내 호불호

만나서 즐거운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을 좀 해봤다. 만남이 쌓이다 보면 같이 물려있는 관계때문에 만남을 끊어낼 수 없어 보는 사람도 생기고, 교제는 유지하지만 그 관계를 가꾸어갈 마음이 사라지거나 그러한 노력이 번거롭고 낭비같이 느껴지는 관계가 있다. 각자 자기가 즐겁다고 느끼는 포인트가 다를테니 이건 전적인 나의 나를 위한 견해일 뿐이다.

첫째. 내가 배우고 싶은 흥미로운 포인트가 없는 사람.

모두가 배울만한 점은 다 갖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잘 보일 줄 모르거나 그걸 폄하하고, 부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상대방이 그걸 찾아내기 어렵다. 나에게 질문만 하거나 자신의 일상에서 불만이나 어려움만 하소연하는 경우, 딱히 뭔가 배우고 싶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게 없어져 관계의 동력이 약해진다. 사실 나도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내 인생의 답을 얻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꼭 나쁜 건 아닌데,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부정적인 에너지를 나에게 주는 사람들이 해당된다.

둘째.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각자 자기의 이야기도 풀고 싶을 것인데 그에 대한 고려 없이 화제의 중심이 자기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 나는 호응을 열심해 해주려고 노력을 하는데, 상대가 그러한 노력을 받기만 하면 살짝 지친다.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면 다른 이야기지만…

반대로 내가 어떤 때 즐거움을 느끼는가 보니, 뭔가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때, 무의미한 수사 없이 딱 떨어지게 탁탁 대화가 통할 때. 자기가 말하는 내용이 뭔지 아는 사람이랑 대화할 때 즐겁다. 결국 자기만의 컨텐츠가 있는 사람. 새로운 경험을 나에게 들려줄 수 있는, 내가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기고 화를 내 줄 수 있는 경험을 공유해주는 사람이 재미있는 사람이다. 나애겐.

아주 중요한 관계를 제외하고는 인간관계를 일부러 딱 자를 필요도, 열심히 붙들 필요도 없다는 게 요즘 들어 느껴지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반대로 이런 즐거움을 주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적극적으로 만남을 추진하는데 요즘 한국인이 늘어서 그런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예전, 한국인이라면 일적인 관게를 제외하고 꺼리던 나의 모습과 참 달라졌는데 이제 좀 해외생활에 속 내 정체성을 찾은 것 같다. 일은 덴마크회사애서 하고 애때문에 이래저래 덴마크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으니 친구마저 덴마크인으로 채울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고 그렇기를 원치도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 6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젠 진짜 내 생활이 꽉 짜여졌구나. 인생에서 업다운을 피할 수 없가지만, 지금과 같은 좋은 시기가 게속 되면 좋겠다.

균형골반과 발레

오랫동안 잘못 쓰고 있던 골반. 얼마전 한 다리로 섰을 때 수평이 깨지던 골반의 균형을 수정보며 여러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남아있었다. 턴을 할 때 자꾸 등이 뒤로 넘어가려는 것이나, 알라세꽁으로 다리를 들 때 90도 이상으로 다리를 들려할 때 고관절이 아픈 문제 등. 균형골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앞뒤모양을 기준으로 한 균형골반이 어디인지에 대한 걸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던 중 릴드당스라는 발레 스튜디오 페이지를 알게 되고 그 동영상을 보면서 그간 선생님들에게 들어왔던 여러가지 코멘트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파쎄 를르베로 서는 것도 쉬워지고 알라세꽁으로 데벨로페를 하는 것도 좋아졌다. 물론 그 동영상만은 아니고 발레 클레스를 두군데에서 들으면서 최근에 많은 교정을 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이 균형골반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수평골반 문제 해결과 합쳐지면서 너무 많은 동작이 쉬워졌다. 


등이 뒤로 넘어가는 문제가 골반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니 그간 등 안뒤집어지게 하려고 노력하던 게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게 해결되니 피루엣이 쉬워지고 피케턴이나 스트뉴턴 등도 다 쉬워졌다. 또한 체중의 중심을 발끝에 싣는 것도 잘 안되다가 해결이 되면서 센터에서 몸의 방향을 돌리거나 뛰는 것도 안정적이 되었다. 


코어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게 어떻게 안정되어야 하는 지를 발레 시작한지 순수하게 춤을 춘 만 4년이란 시간 동안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다는 게 놀랍다. 아무튼 이제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이제 토슈즈도 곧 신을 것인데 말이다.


발레는 정말이지 중독성이 심한 취미임이 분명하다. 쉰 기간을 포함해 7년을 한 취미인데 지금도 이렇게나 발레 가는 날이 기다려지고 발레를 한 날이면 러너스 하이와 같은 상태를 경험할 수 있고 밤에는 잠이 들기 어려울 정도이다. 만으로 33살이 되면서 늦게 시작한 발레이지만 그때라도 시작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 인생의 취미로 장식될 발레를 이제나마 접했으니 말이다. 

갑자기 감기에 걸린 하나 어린이

거의 매일 회사 컴퓨터를 집에 갖고 온다. 일을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애가 아플 경우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서. 그런데 오늘 바삐 나오다가 컴퓨터를 안챙겼다. 집에 다 와서 생각이 났는데, 설마 하나가 아플까 싶었다. 아뿔싸. 정말 아프네. 갑자기 저녁에 열이 오른다.

내일 모레 중요한 발표가 있어서 발표자료 내일 마무리하고 연습해야하는데 타이밍 한번 죽여주는구나. 왜 이런날 컴퓨터를 잊어버렸을까나.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치과예약을 해뒀는데 옌스는 오후 한시에 미룰 수 없는 회의가 있다고 하고 날이 참 공교롭기도 하지. 치과갔다가 아홉시 넘어 사무실 들렀다가 12시 반까지 집에 오는 건 너무 시간 낭비라 오늘 밤에 컴퓨터를 갖고 오기로 했다. 그 덕분에 하나를 재우고 난 뒤 옌스가 저글링 및 달리기를 마치고 들어오자마자 차를 끌고 나가서 컴퓨터와 보고자료를 들고 돌아왔다.

내일은 출근시간에 나가서 진료를 받은 후 근처 카페에서 발표자료 마무리 짓고 연습 좀 하다가 집에 와서 일을 하는 걸로 했다.

하나가 커서 말이 잘 통하니 좋은 점은 내가 열을 재기 위해 엉덩이에 채온계를 쓰겠다고 약을 넣겠다고 설명을 해줄 수 있고 하나도 정확히 이해는 못할지언정 대충은 이해하고 싫어하면서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고열은 아니고 38도 조금 넘는 정도의 열이긴 한데 애가 머리와 목이 아프다면서 양치질 하기 직전부터 잠자리에 들때까지 계속 울어서 해열진통제인 파노딜을 줬다. 그 약을 썼으니 금방 안아파질 거라면서 침대에 누워서 책 읽는 거 들으라고 했더니 울면서도 말은 잘 듣더라. 그리고나서는 맹장염으로 갑자기 배가 아파진 애가 엄마아빠랑 병원에 가서 검사 및 수술하고 퇴원해 친구들과 다시 만나 수술자리를 보여주는 책을 읽어줬는데, 자기에게 감정이 이입이 되는지 울다가도 울음을 그쳐보며 열심히 듣더라.

보육원에 오랫동안 같이 다녀오고 잘 놀던 친구 하나가 있는데 약간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혹 잘 놀다가도 하나를 때리거나 밀고 꼬집고 한 적이 제법 있었다. 하나가 말이 일찍부터 되었는 덕에 그날 있던 일들을 상세히 들어왔고 선생님들을 통해 그 이야기들을 컨펌받아와서 아는 바로도, 내가 직접 본 바로도 그런 일들이 제법 되었다. 애들 놀면서 그렇게 다치고 크는 거지 이렇게 생각은 했었지만 그 빈도가 자꾸 늘어나기도 했고 하나가 그 애가 때린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 슬펐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아이랑 같이 노는 거 재미있냐고 물어보면 또 그렇다고 답을 해서 그러려니 하고 뒀는데 지난주부터 그 아이랑 놀기 싫다고 다른 애들하고만 놀고 싶다 자꾸 그러는 거다. 그런데 오늘 애를 픽업했는데 발에 멍도 들었고 그 아이가 발을 밟고 밀었다는 거다.

그애는 그럴 수 있다. 말이 안통하면 아무래도 자기도 좌절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감정을 폭력적인 형태로 발산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하나는 누가 때려도 자기가 절대 때리는 법이 없는 애라 (보육원 선생님들 이야기도 그렇고 자기는 그냥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외친다고 설명한다. 내가 본 하나가 갑자기 뜬금없이 맞은 상황에서도 그러더라.) 자기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아무런 대응도 없이 친하게 잘 지내라고 하는 것도 의도치 않는 폭력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오늘은 보육원에 둘이 놀 때 그런 폭력적인 상황이 없도록, 또는 그런 상황이 오면 적극적으로 떼어내서 남은 시간 따로 놀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고 요청을 해뒀다.

애가 남을 때리지 않는 건 잘하는 일이다. 원칙에 대한 문제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느 타이밍인가에는 자기 방어에 대한 원칙도 가르치고 격투기 하나 쯤은 가르치려한다. 태권도가 되었든 주짓수가 되었든. 옌스가 주짓수를 했어서 그게 방어기술로는 좋을 거 같다고 하니. 애가 많이 컸고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신경 쓸 일도 많아진다. 수퍼에 갈 때마다 각종 사탕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거 뭐냐고, 사탕이냐고 물어서 그거 사탕은 몸에 안좋아서 안살 거고 그거 우리 거 아니라고 답 하는 일부터 소소한 힘겨루기가 많다. 그래도 참 애가 대화로 설득도 되고 커서 참 좋다.

내사랑 발레

발레가 너무 좋다. 정말 정말 좋아서 매주 발레 클래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다음주부터는 주 2회로 늘어나니 더 기대된다. 게다가 한번은 로열 발레단에서 개설하는 클래스라서 새롭게 설렌다. 마음에 드는 옷도 새로이 추가장만하고. 아. 이 좋은 걸 이리 늦게 찾게되다니. 그래도 이렇게나마 찾은 것도 감사하지. 러너스하이처럼 발레하고 온 날은 잠에 들기 참 어렵다. 발레가 만나게 해주는 인연들도 소중하고…

발레, 내 몸을 알아가는 여정

올해 늦봄부터 발레를 다시 시작했다. 자동차를 산 덕에 저녁준비를 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도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클래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신 중기 이후 휴식을 하면서 그 사이 너무나 그리웠는데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부터 시작한 발레이니 발레와 연을 맺은지도 만으로 7년이 되었구나. 휴식을 취했어도 운동을 할 때도 플리에와 탕듀 등 기초 동작을 트레이닝해왔으니 그 끈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정도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중간에 오른쪽 고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물리치료도 받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골반이 왼쪽으로 약간 돌아간 탓이었다. 그건 발레와 상관은 없이 오래된 자세의 문제였는데 잘못된 체형에 장기간의 발레와 덴마크 와서 장거리를 뛰곤 한 자전거 페달밟기가 얹어서 문제가 불거진 거였다. 


발레를 시작한 지 오래되면서 내 몸의 목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읽기 시작했다. 급성이 아닌 만성 부상은 뭔가 잘못된 자세에 부담이 오랜시간 얹어지면서 발생하는 바, 만성 부상이 생기면 뭔가 고칠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왼다리로 섰을 때 턴아웃이 잘 안되어 자세가 풀리는 것이 왼다리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드는 자세에서 고관절에 자꾸만 부담이 되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두 문제는 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같이 생기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오른쪽 골반을 잡아주는 근육이 약해서 그게 밀리니 아무리 왼쪽의 턴아웃을 잡으려 해도 자꾸만 풀리는 거였다. 오른쪽 다리로 서는 건 안정적인데 왼쪽 다리로 서는 건 이 이유로 불안정하고 자꾸만 흔들리고 옆으로 무너지고, 간신히 서게 되도 종아리와 발에 부담을 많이 줘야나 가능했는데, 오른쪽 골반을 안정시키는 데 같이 신경을 쓰니 자연히 왼쪽을 축으로 하는 동작이 안정되는 거다.
남이 몸을 보고 교정해주는 것만으로는 맞는 자세를 찾을 수 없다. 각자 해부학적인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보기에 맞아보이는 자세를 찾아주면서도 맞는 동작은 이런 느낌이어야 한다며 움직일 때 느낌을 시각화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즉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들어맞는 동작의 공식이 아니라 원칙적 공식에 각자 자기의 몸에 맞게 오차 보정을 해야하는 거다. 


여러 선생님을 거쳐오며 선생님들이 설명해준 내용을 조합해보고 내 몸의 소리를 들어가다보니 그간 고생해오던 고관절 부상은 없어졌다. 어깨도 그렇고. 의외로 내 몸의 오른쪽 소속 관절들이 왼쪽보다 불안정한 것 같다. 이런 불안정성을 교정하면 할 수록 몸의 근육부피 차이도 줄어든다. 짝짝이 가슴도 거의 같아졌고.


다른 운동과 달리 발레는 이런 몸의 소리를 세세하게 듣게 만들어준다. 각자 좋아하게 되는 운동과 그 이유가 다르듯이 모두에게 같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유로 나는 발레를 사랑하고 아마 지금 클래스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가 많이 들어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30개월의 하나

30개월의 하나가 어떤지 기록이 되어 있어야나 나중에 돌아볼 수 있을 거 같다. 일로 가정생활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지만 짬을 내서 기록해본다. 

하나가 한국말과 덴마크어가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 건 대충 18개월  들어설 때 즈음부터였다. 사물이나 개념에 엄마와 아빠가 다른 표현방식을 쓴다는 것을 알고 그 표현방식에 한국어와 덴마크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덴마크어 어휘와 문장 구성이 한국어에 비해 월등히 낫지만 내가 한국어로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덴마크어로 표현한 단어에 대해서 그건 한국어로 뭐냐고 물었을 때 한국어 어휘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묻든 대부분 덴마크어로 답하고 간혹 한국어로만 아는 단어 (예를 들어 맵다와 같이 보육원에서 쓸 일이 없는 단어)나 덴마크어 문장에 섞어쓰는 게 일상이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듣기를 통해 이해하는 수동적 학습만으로는 부족하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어휘를 선택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능동적 학습이 필요한데, 그걸 강요하자니 한국어를 싫어하게 될 것 같고 쉽지가 않다. 그나마 요즘 한국어로 이게 뭐냐고 묻는 게 늘어나서 한국어 어휘를 넓히는 기회가 생기는게 다행이다. 덴마크어로 의사소통하는 부분만 따지면 미묘한 뉘앙스도 살려가며 대화하고 있어서 이맘때쯤 아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거였구나 놀라곤 한다. 단어 열거로 의사소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말다운 말을 긴 문장으로 하는 건지.

16개월인 친구네 애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은 되나 아직 발화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하나는 언제 말을 시작했나 봤더니 만 15개월 되었을 때에는 아니오에 해당하는 엄마, 아빠, Hvad er det? (이게 뭐예요?), 하나 (자기 이름), 거북, nej (아니오), hej (안녕), bye 정도 말하고 기타 동물 소리흉내 (멍멍, 미야오, 구구, 꼬꼬 등)을 낼 수 있었다. 만 17개월이 되었을 때는 ja (예)를 사용하면서부터 조금 더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수월해졌다. 두달 사이 어휘가 빠르게 늘어서 할 수 있는 단어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보육원 애들 이름을 다 기억하고 부정확한 발음이나마 애들 이름을 이야기해서 내가 다른 애들 이름 기억하는 것도 쉬워졌다.  보육원에서 또래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애 중 하나였는데, 이중언어 하는 애들 중에 발화가 늦은 애도 있지만 하나처럼 오히려 더 잘 하는 애들도 있다고 들었더랬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아이가 맞는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살려줄 지 고민을해봐야겠다.

하나가 만 두살이 되자마자 발레를 시켰다. 어른과 함께 가서 하는 발레인데 하나의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도움이 될 활동 중 하나로 나도 즐길만할 걸 찾다보니 발레가 되었다. 처음엔 그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발레 수업 내내 노래에 맞춰 뛰려는 애를 잡아 함께하는 활동에 포함시키는 게벅찼다. 단 30분에 불과한 시간인데 말이다. 같이 움직여야 하는 규율에 애를 너무 맞추려다보면 애가 기분이 상해서 발레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 애를 마음대로 풀어놓으면 방해가 되니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애를 통제하고 활동에 동참시키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진땀을흘린 날이 많았다. 거기다가 발레 수업이 끝나는 시간 때 즈음이 하나가 피곤해하는 타이밍이어서 안아달라는 하나를 안고 나 혼자 춤을 추느라 힘든 경우도 흔했다.

애가 발레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바는 없지만, 발레가는 시간을 고대하고, 보육원에서 다리를 들고 까치발로 다니고 빙글빙글 돌고, 선생님들이 뭐하냐고 물어보면 발레한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하나를 Balletpige (발레소녀)라고 부를 정도기에 좋아하는구나 하고 추정할 뿐이다. 한달 반 정도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이번 주말부터 클래스가 시작되었는데, 가는 길에부터 그전에 배운 걸 기억하고 이야기하길래 신기했다. 이제 꽤나 장기 기억력이 생기는 모양이다.  지금은 2-3세 사이 유아반에서 배우고 있는데, 두살 반이되서 그런지, 이번엔 시키는 것도 제법 따라하고 애 쫓아다니느라 고생하는 거없이 30분을 잘 보내고 왔다. 내년에 3세 반에 올라갈 때면 혼자 들여보내도 걱정이 없겠다 확신이 들었다.

페달 없는 자전거는 발을 땅에 대는 시간이 얼마 안되게끔 쌩쌩 뒤로 밀기 시작해서 우리가 뛰어다녀야만 쫓아다닐 수 있게 능숙해졌다. 정글짐에 기어 올라가서 높은 곳의 미끄럼틀을 타고 씽씽 내려오는 것도 능숙해졌고 아빠가 잡아주는 손에 크게 기대지 않은채로 외줄타기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반동을 활용해 몸을 위아래로 흔드는 것까지도. 

어디 가서 크게 맞을 걱정은 하지 않는 게, 간간히 맞기는 하는 것 같지만 손바닥을 보이며 힘있게 팔을 뻗으면서 안된다고, 멈추라고 (Stop! Det må man ikke! Man må ikke slå!) 크게 외칠 줄 알아서 주변 어른의 시선을 쉽게 끌어낸다. 장난감이나 놀이터 시설 등에 대해서도 보육원에서 가르친 순서지키기, 적당히 놀고 양보하기 등을 이해하고 있어서 간혹 어른이 중재해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어졌다. 그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가르쳐서 그런지 빨리 배우더라. 하나가 다른 애를 때리는 경우는 상대가 먼저 때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다. 우리가 본 적도 더 어렸을 때나 있었고, 보육원에 물어봐도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한다. 상대가 때린 경우에도 안된다 하고 크게 항의하는 거지 맞서 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어려서는 애가 워낙 활동적이고 힘이 좋아서 남들 때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이제는 그건 크게 걱정을 안하고 지낸다. 

하나는 보육원에서 있던 일들을 이것저것 신나게 말해주는 편인데 궁금한 일 나중에 보육원가서 물어보면 되서 현황 파악이 쉽다. 친구 Feifei의 세살 생일에 케이크를 먹었는데, 자기는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었다며 시무룩하게 말하길래, 유당제한때문에 그런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그게 맞다고 이야기해주더라. 그리고 다른 애들이 자기들도 케이크 안먹고 아이스바 먹겠다고 해서 애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이제 생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기 생일이 언젠지 자꾸 묻는다 최근 두어달사이에 애들 생일 잔치가 여럿 있었는데, 자기도 생일 주인공이 되고 싶었나보다. 하나 생일 땐 나도 케이크를 준비해야 할텐데 쩝. 그날은 대충 휴가 내고 새벽부터 준비를 하던가 해야할 것 같다. 

요즘은 수줍음을 조금 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낯선 남자에게 수줍음을 탄다. 인도에서 낯선 남자가 마주지나가면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뒤에 숨는다던가, 유모차에서 얼굴을 돌린다던가 한다. 그리고 나에게 Jeg er lidt genert. (저 조금 수줍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자는 매우 좋아해서 낯선 할머니나 아줌마 할 것 없이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냥 Hej?! (안녕하세요)하고 크게 외치며 인사한다. 이 시기에 흔히 있는 거라고 하더니 수줍음의 수자도 모를 것 같던 하나도 그러는구나 싶었다.

지난달에 친구가 와서 자고 가면서 자기도 남에 집에 가서 자고 싶기도 하고 그런가보다. 나는 걔네 집에서 언제 자냐고 간간히 묻는다. 우리 집에서 그 친구가 자던 날, 내가 책을 다 읽고 자라고 한 뒤 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옆에서 자는 척 했다. 그러자 지들끼리 나를 사이에 둔 두 침대에서 서서 대화를 나눈다. 

하나: 네 엄마는 어디에 가셨니?” 

친구: “우리 엄마는 일하러 가셨어.” (집들이 파티 가느라 우리집에 애를 맡긴 거지만 애들은 일하러 간 걸로 오해했다.) 

하나: “너희 엄마는 휴가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그러면 Lagkagehuset (체인점 빵집)”에 가셨니?” 

친구: “아니” 

하나: “히히. 그거 나야. 내가 오늘 lagkagehuset에 다녀왔어” 

이날 하나는 우리와 그 빵집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그걸로 농담까지 할 줄이야. 애들의 대화를 이렇게 들어볼 날이 없었는데 애들이 벌써 말장난도 치면서 노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이미 가까이 잘 노는 친구가 생긴 것도 놀랐고. 

내가 선생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특정 친구와 놀기보다는 재미있는 걸 하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 서서히 친한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툭하면 듣는 이름이 대충 열명 안으로 좁혀진 것만 봐도 그렇고. 

밤에는 옌스와 번갈아가며 책 읽어주고 재우는데, 간혹 주인공이 우는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티비에서 주인공이 울어도 같이 운다. 공감능력이 좋은 아이라고 보육원에서 들었는데 실제 우리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내가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편인지라 그런 걸 볼 때 좋다 싶다.

아이가 태어나서 세살까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걸 보답하기 위해 부모가 그 나머지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은 적이 있다. 그 삼 년의 시간이 벌써 거의 다 흘렀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쁘고 사랑스러운 딸이겠지만 이 첫 삼 년의 시간은 참으로 기적같은 시간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 작은 핏덩이에서 이렇게 아이같은 아이로 성장한 기적.

해외생활 속 인간관계 맺기

나에게 인터넷에서 우연한 기회로 인사를 나누고 얼굴을 만나는 건 아주 드문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만나고 나서 또 만나고 싶은 연이 되는 건 그보다 더 드물다. 한국에 살았더라면 그런 기회를 만드는 일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해외에 살다보면 그 전에는 안 할 일도 하게 되고, 안 할 일도 하게 되서 그런지 그렇게 만든 연들이 지금의 내 주변을 촘촘히 채우고 있다. 하긴. 내 남편조차 인터넷에서 만났으니 제일 중요한 인연부터 인터넷이 이어주었구나.

해외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주변 관계의 지도가 달라졌다. 한국에서 오래되었고 아주 가까웠지만 자주 연락하지는 못하며 마음에 곱게 담아 종종 생각하며, 매우 드물지만 만남이나 깊은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 적당한 거리의 관계로 온라인에서 즉흥적으로 가끔씩 댓글로 말을 주고 받지만 막상 더이상 만나는 일은 거의 없을 친구나 지인,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 사는 사람들로 새롭게 사귄 친구. 모든 인적관계를 이 분류로 나눌 수는 없지만 큰 틀로 보면 대충 이렇게 나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시차가 있고 생활의 의무가 있다보니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는 내 마음의 크기가 어떻든 제대로 된 연락의 빈도는 아주 크게 낮아졌다. 결국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의 사람을 새롭게 사귀어야 한다.

해외생활을 시작한 초기에는 이런 관계 지형의 변화가 씁쓸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게 친밀함인가에 대해 내가 정의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관계의 변화가 내 거주지의 변동 때문이고, 그 와중에 각자가 많이 다른 길을 걷게 되서 낯설어진 이유도 있을 거다.

이제는 여기서 가까운 사람들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데 나이 들어 새롭게 마음에 맞는 친구 사귀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느리지만 차곡차곡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고 있다.

온라인에 올라온 질문에 간단한 답을 하고 전화로 대화를 간단히 나눈 뒤 전격으로 바로 만나게 된 사람이 있다. 아직 한번밖에 보지 않은 친구지만 네시간의 시간이 너무나 훌쩍 흘러갈 만큼 반갑고 유쾌한 만남이었다. 살아온 경로가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해보고 비슷한 사고의 변화를 경험해본 그녀와의 만남에 신선한 자극도 되고 앞으로 쌓아갈 인연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며 설레이기도 했다.

코트라 다니는 동안은 해외에서 한국사람을 만나는 걸 꽤나 꺼려했더랬다. 한국에서도 아무나 친구가 되는 게 아닌데 단지 해외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알게 되고 지나치다보면 괜한 말이 도는 일도 생기고 그닥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재원이라는 입장과 교민이나 유학생의 입장이 다르다 보니 서로 생활의 준거집단이 다르고 생활방식도 달라서 오해나 감정이 쌓이는 일이 생기기도 한 것 같다.

주재원의 틀을 벗고 나니 내 생각도 행동도 조금 더 자유로워졌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하다보니 관심사도 생각도 많이 바뀌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좋은 경험이 켜켜히 쌓이며, 한국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한국사람 모두와 교제할 생각도 없지만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멀리하는 것도 없어졌다.

덴마크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도 줄어들고 내 모국어가 아닌 말로 생활하는 게 더이상 불편하지 않고 덴마크 사람이나 다른 외국 친구와 한국인과는 또 다른 주제로 다양한 대화를 하는 게 매우 즐겁고 좋다. 그런데 나와 맞는 사람이라면 한국사람과 만나는 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사람과만 교제하며 사는 건 이제 답답할 것 같은데 그게 완전히 배제되는 것도 싫은 거다. 그래서 한국사람들과의 교제를 보다 능동적으로 찾게 되었나보다. 새로 만나 인사하고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이 때로는 피곤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처음에 만나 클릭하는 것 같은 느낌의 인연도 이런 시도 없이는 맺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이런 생각이 어떻게 변할지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 주변에 생긴 관계의 틀이 만족스럽고 삶을 풍요롭고 내가 일상을 끌어나갈 힘을 내게 해 준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독립.

기본 원칙은, 하나가 열여덟살이 되면 독립을 시킨다는 것이다. 돈도 모아서 자기가 살 집 보증금을 마련하고 다달이 월세를 내고 살림을 챙겨가며 혼자 살아가는 진짜 독립. 그러니 그 전부터 아르바이트도 하고 집안 수리하고 페인트칠하는 법도 배우고, 살림도 배워야 할 게다. 여기선 혼자 살아남기 위해 배워야 할 일이 많으니까.

나는 독립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대학교 등록금을 대주신 이후부터 학비는 학자금 융자로, 용돈은 과외로 충당은 했다지만, 부모님이 마련하신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내 방정리도 잘 안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미루다보면 보다 못참은 엄마가 정리와 청소를 해주실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게다. 그 당시 핑계는 내가 할 건데 엄마가 너무 미리 해버리셨다는 거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청소야 주말에 간혹 청소기를 돌리거나 걸레질을 조금은 했어도 상시 엄마가 해두신 것에 주말에 간혹 한번 돕는 정도였으니 그냥 시늉이라고 해둬야겠다.

조금씩 독립의 연습을 하게된 것은 대학교 다닐 때 사촌인 민정이와 잠깐 같이 살았던 때와 직장생활 시작하면서 나 혼자 이모네 집 근처에서 원룸을 구해 살면서였다. 그렇지만 집 구하는 것도 엄마가 도와주셨고, 자주 엄마의 방문으로 반찬도 얻고 청소의 도움도 받았으며 그냥 사는 장소만 옮겼다 뿐이었지 정신적으로는 진짜 독립의 경험은 아니었다.

만 스물여덟이 되던 해였나? 2008년 해외 발령을 시작으로 해 인도에 나가 살면서 조금 더 독립에 가까워졌던 것 같다. 회사의 주택임차보조로 얻은 집이지만, 그 집은 내가 얻었다는 생각이 있었고 부모님이 이사를 오시기 전에 미리 내가 정착을 준비해두었고, 비자와 생활의 기반을 내가 마련한다는 점에서 독립에 많이 가까워졌던 것 같다.

아마 2010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인도에서 사귀던 호주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남자친구와 만나 데이트하고 집에 열두시 다되어 왔는데 늦게 왔다는 걸로 엄마에게 혼이 났다. 만 서른의 나이에 외박도 아니고 늦게 오는 문제로 엄마에게 혼을 나야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엄마가 걱정하시는 남자와 자는 문제는 굳이 밤이 아니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늦는 것을 막는다고 막아지는 일은 전혀 아니며, 내 주변 친구들 중 이 나이가 되도록 처녀인 애들은 손가락으로 꼽기도 어려우니 시대와 맞지 않는 걱정을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앞으로 외박문제는 터치하시지 말고, 앞으로는 외박을 하고 오는 일도 있을 수 있다 말씀드렸다.

엄마와 큰 갈등과 같은 부딪힘이었지만, 그런 큰 갈등을 서른이 되도록 빚어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아마 부모님도 그러려니 받아들여주셨던 것 같다.

막상 외박을 한 일은 손에 꼽고, 그 다음날 미묘하게 차갑고 다운된 기류를 느낀 것 이외에는 엄마도 나의 입장을 받아들여주셨고, 아빠는 엄마보다 항상 좀 더 느긋하게 받아들여주셨던 것 같다. 아빠 속이야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어쩌면 엄마보다 아빠가 더 걱정하셨고, 그걸 엄마에게 표현하셔서 엄마가 더 나서서 걱정을 표현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냥 표면 그대로 아빠가 더 잘 받아들여주신 것일 수도 있고. 누가 알테냐.

내가 옌스와의 미래를 그릴 때 가장 걱정이 된 건 부모님이었다. 과연 부모님과 떨어져 먼 이역땅에서 사는 게 괜찮은 일일까? 남겨진 엄마,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죄를 짓는 걸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도움이 필요한 일들이 생기실 수 있는데 나는 그 도움을 드리는 역할을 할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용돈이라고 드리던 작은 돈도 내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동안은 드리지 못할텐데 그건 괜찮을까? 많은 것들이 걱정되었다.

엄마, 아빠에게 그런 이유로 옌스와 미래를 그리는 게 걱정이 된다고 했을 때, 엄마 아빠는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다 해쳐나가게 되어있다고. 너의 희생으로 우리가 살려는 거 아니라고.

이기적인 마음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감사했고 안도했다. 아마 나는 엄마, 아빠에게서 반쯤 독립만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새로운 가정의 한축이 되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하는 데에는 기존 가족이라는 둥지를 완전히 떠나는 게 필요했는데 그걸 못하고 있었던 거였다. 이 말씀으로 나는 둥지를 완전히 떠났다. 훨훨 날아서.

나는 하나를 열여덟에 독립시킬 것이다. 하나에게 언제고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어는 주겠지만 때가 되면 둥지에서 밀어내서 날아가게끔 하련다. 그게 가혹한 게 아니라 문화인 이곳에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아마 나에겐 큰 훈련이 필요한 일일 거다. 앞으로 십육년도 채 남지 않은 일이다. 그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모르겠지만 그때도 뭔가 열심히 배우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그 때 생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길고 긴 피난생활의 끝

길고 긴 환경개선 공사가 끝났다. 삼 주 라더니 두 달을 꽉 채웠다. 거실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자는 건 그닥 불편하진 않은데 거실을 부엌, 욕실과 침실의 짐으로 채워두고 사는 게 힘들었다. 공사가 끝나자마자 이틀동안 현관복도, 침실 및 부엌 일부를 페인트칠했다. 현관복도와 침실은 구역에 속한 문틀, 걸레받이와 벽, 천장 모두, 부엌은 문틀과 붙박이장 틀, 걸레받이, 배관파이프만 페인트 칠했는데 꽤나 힘들었다. 점심시간 제외하고 하루 8시간씩 쉬는 시간 따위는 없이 노역을 해서 끝냈으니 말이다.

페인트칠에 들어간 자재비용은 삼천 크로나, 공임은 무료. 아니. 무급휴가를 쓰고 일을 했으니 내 일당이 들어간 셈. 옌스는 유급휴가니 그냥 공임없다 치면 이번 페인트칠 공사에 들어간 비용은 약 칠천 크로나. 아마 집 전체를 칠했다하면 이만 크로나는 들었을 거다. 우리 관리인에게 이사나갈 때 페인트칠을 안하고 그냥 나가면 페인트칠 비용에 얼마 드냐고 물어보니 대충 이만에서 삼만 크로나 정도 된다 했는데, 결국 그렇게 드는 게 맞을 것 같다. 순수 인건비는 내 급여보다 낮다 쳐도 이윤이나 부가세 등을 생각하면… 나갈 땐 그냥 나가는 게 맞을 거 같다고 옌스랑 의견이 합치되었다.

힘들긴 했는데, 그렇게 힘들진 않았고, 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새로운 걸 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좋다. 삶을 살아가는 데 실용적인 힘이 되니까. 시작하기 전에는 두려움이 있고 엄두가 살짝 안났는데, 막상 일을 진행하고 보니 하나하나 진행되면서 결과가 보여서 뿌듯했다.

조금 더러워진 곳들이 보였어도 새로 칠한다고 많이 달라질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살짝 있었다. 그런데 옌스가 지금처럼 짐을 다 뺀 상황을 이용해서 페인트칠 하는 게 좋지 않냐고 해서 어려운 마음을 먹었다. 막상 하고나니 너무 달라보이는 거다. 눈에 살짝 살짝 거슬리던 부분들을 싹 칠하고 나니 완전 집이 새집같아지는 거 아닌가. 물론 거실과 하나방, 부엌 벽은 칠하지 못했지만 그건 살아가면서 차차 해결하기로 하고.

문틀이 완전히 마를 내일까지만 기다려서 나머지 정리 싹 다 마치고 나면 내일저녁부터는 다시 정상적 침실생활이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피난생활도 이번 주면 다 끝이라니.

29개월 하나의 성공적 플레이데이트

하나가 오늘 처음으로 다른 친구와 제대로 같이 놀았다. 왜 부모들이 친구니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플레이데이트를 하려는지 제대로 이해했다. 잘 맞는 아이들을 같이 놀리면 부모들이 애 보는 게 얼마나 쉬워지던지.

옌스의 동료인 피에르의 가족 세명을 만난 건 작년 겨울 옌스 상사네 집 파티에서였는데, 하나보다 불과 2-3주 빨리 태어난 리암이를 둔 부모였는데다가 덴마크-스웨덴 이중언어 가정이라는 데에서 우리와 맞는 부분이 많았다. 옌스와 같이 맡은 프로젝트가 새로 생겨 부쩍 그에 대해 듣게 되는 일이 많았는데, 서로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제법 나누다보니 언제 한번 만나서 놀자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직장동료와 친구가 되는 건 덴마크에서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도 듣지만, 또 옌스를 보자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게 옌스 직장 동료랑 가족끼리 밖에서 따로 보는 일이 제법 된다.)

서로간의 주말 일정으로 조율하다보니 6월초에 6월말 약속을 잡았고, 하도 오래되서 캘린더의 리마인더만이 기억을 나게 해줄 정도로 잊을때 즈음 되서 만나게 되었다. 큰 기대도 없었던 게 여지껏 내가 다른 가족들과 만나 한 플레이데이트가 나쁘진 않긴 했어도 신나서 다음을 고대하게 할 만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른들 모임에 애들이 낀 격이거나 애들 만남에 어른이 낀 격인 적만 있었고, 양쪽이 딱 맞아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아다리가 딱딱 맞는다라는 말처럼 모든 게 쏙쏙 들어맞았다.

20분정도 운전해서 가야하는 외곽에 있는 곳이었는데 근처에 덴마크에서 가장 큰 실내놀이공원 있다고 들었다. 세상에. 올해 여름 중 가장 더운 날 중 하루였던 이 날, 사람들은 다 해변으로 갔든가, 휴가 시즌 시작이라고 해외로 나갔든가 간에 우리가 이 놀이공원을 전세낸 것 같았다. 어른들도 애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었던 넓은 공간이었는데, 리암이에게는 자주 가봤던 곳이었고, 하나는 워낙에 겁이 없는 애라 둘이서 함께 놀기에 놀 수 있는 수준이 비슷했던 것 같다.

이 겁나는 부녀. 저기까지 올라가서 미끄럼틀로 내려왔다. ㅠㅠ
이제 셀카 찍으면 장난도 치고 여러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아가씨

처음 리암이네 집에서 만나서 아이스바 하나씩 빨아먹을 때 까지만해도 리암이가 너무 낯을 가렸는데, 내가 자기 장난감을 보고 너무 신기해하고 좋아하고, 하나도 옆에서 같이 붙어서 호감을 표하자 어색한 듯 조금 어울렸다. 그런데 놀이공원에서 조금 놀더니 둘이 엄청 가까워졌다. 집에 와서는 둘이 정원에서 얼마나 같이 놀던지… 오후 두시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같이 있었으니 무려 일곱시간이나 같이 보냈다. 그 중 어른들이 놀이공원에서 열심히 놀아준 (상처가 날 정도로 열심히 놀아줬다.) 다섯시 반까지 세시간 반을 제외하면 정말 잘 놀아줬다.

장난감을 잘 빌려주던 어른스러운 리암이

둘이 말을 할 수 있는 수준도 비슷했고 (이중언어 아이들 말이 늦다는 통설이 꼭 맞지 않는다는 걸 주변에서 놀랍게도 많이 보고 있다.) 둘이 성격이 잘 맞았는지 수다도 많이 떨고, 한번 어른들이 놀이 순서를 중재해준 거 외에는 다툼 한번도 없었다. 끝까지 둘이 너무 사이좋게 놀고 헤어질 때도 여러번 포옹을 나누었다. 잘가라고, 잘 있으라고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까지도 얼마나 이쁘던지.

역시 장난감으로 어색함을 풀어야지.

피에르나 그의 아내인 스티네 모두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다. 음식도 입에 꼭 맞았고,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 맛있고 섬세하게 배려된 시간을 마련해줘서 황송할 정도의 고마움을 느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동안 마음도 참 편했고. 다음에 우리가 초대할 땐 이처럼 좋은 시간을 만들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린 어디를 데리고 가야하나?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하나? 생각을 좀 많이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