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일주일전 근황 – 뒤죽박죽

다음주 금요일이면 생일이다. 시부모님이 하루 전에 오셔서 생일을 같이 보내시고 토요일에 가신다고 하신다. 손녀 보러도 오시는 거겠지만 내 생일 축하해주시려고 보언홀름에서 먼 길 와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 금요일에는 시어머니랑 밖에 나가서 근사한 외식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옌스가 이번에 45번째 생일이라고 친구들 몇명 초대해서 남자들끼리만 외식을 한 것을 보고 시어머니가 그러면 내 생일에는 옌스 집에 있으라그러고 나가서 식사하라고 하시길래 그럼 같이 하시겠냐고 여쭤봤던 거였는데 그러시겠다고 했었다. 농담이려거니 했는데 일부러 오신다는 걸로 보아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 태어나고 나서 애 없는 오붓한 저녁식사는 처음이 되지 않을까?

16개월이 조금 넘어선 하나는 요즘 빠르게 말이 늘고 있다. 단어가 느니 우리와 커뮤니케이션이 쉬워졌다. 단점으로는 말이 느는 것과 함께 독립심이 늘고 자기 의사가 생기기 시작해 원하는 게 안되면 성깔을 엄청 낸다는 거다. 그 자체가 단점은 아닌데, 어디 데리고 가서 그러면 난처함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도 그에 맞춰서 대응 요령이 생기고 있어서 이런 핑퐁게임은 앞으로 끊임없이 생기겠구나 싶다. 아이는 그냥 사랑스럽다. 힘은 들어도 화는 안나는 거 보면 내 아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늦은 나이에 애를 낳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가 싶기도 하고.

덴마크어 시험은 구술만 남았다. 쓰기와 읽기는 모두 12점이 나왔다. 읽기야 이미 정답을 맞춰보고 틀린게 없음을 확인했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쓰기가 어땠을런지 엄청 긴장했다. 수업의 후반으로 가면서 쓰기가 많이 늘기도 했고, 시험 때 정성들여 쓰고 검토도 차분히 한 만큼 12점 나올 것 같긴 했는데, 사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 지야 나와 봐야 아는 거였으니까. 시험 점수 나오던 날엔 꿈에서 4점을 받고 “이건 꿈일거야! 꿈이어야만 해!” 외쳤던 악몽도 꾸었다. 구술은 선생님 왈 읽기와 쓰기보다 훨씬 낫기 때문에 12점 받을 거라 확신한다고 하셨으니 기출문제 받아온 것만 주르륵 훑어보고 가보려 한다. 이 시험을 보고 나면 중상급을 통과한 거고, 이 뒤로 대학교 진학을 위한 과정을 들어보려고 한다. 대학교를 다시 갈 일이야 없지만, 고등교육을 위한 언어교육은 앞으로 직장생활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니까. 아니 그런 걸 떠나서 앞으로 여기서 계속 살꺼니까 언어는 필요하고, 공부 없이 신문보고 영화보고 뉴스보고 하는 정도의 그냥으로는 느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아니까 지금 박차를 가할 때 가하련다.

논문은 슬럼프다. 쓰긴 써야하는데 쓰기가 싫다. 그냥 꾸역꾸역 쓰고있다. 논문의 주요 결과는 나온 상태라 초록을 컨퍼런스에 보내봤는데 (교수가 보내보래서) 아주 포멀한 컨퍼런스가 아니라 그런지 억셉트도 되었고, 발표를 하려면 어찌 되었든 미룰 수 없이 끝내야 한다. 끝낼 수 있을지 하는 두려움이 계속 스물스물 피어오르지만…

박사과정 지원은 데드라인이 다가오는데 제안서 아이디어도 아주 뜬구름 잡고 있다. 최소 이틀은 할애해서 써야한다는데, 애가 있는 나는 사흘은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지원하지도 않고 나중에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방지하기 위해 지원은 하지만, 내가 박사과정을 할만한 지구력이 있는 깜냥인지에 대한 의문때문에 자꾸 망설여지는 부분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아주 훌륭한 박사과정생만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뭐 떨어지더라도 해보지도 않고 신포도 타령하는 건 후회할 일임일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지원은 해봐야한다.

이번 생일이면 만으로 38. 곧 40이 다가온다. 사실 운동 체력으로만 따지면 20대때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운동 없이 사는 한국의 고등학교 시스템과 그 라이프 스타일대로 그냥 살았던 내 대학교와 직장생활 시절 덕에 기저효과가 물론 엄청 큰 탓이다. 한국에서 막판에 시작했던 발레와 (지금은 잠시 육아로 중단했지만) 기타 웨이트 덕에 지금 체력이 더 좋은데, 이제는 운동을 안하면 근손실도 눈에 띄게 느껴진다. 앞으로 애 키우면서 힘 쓸 일도 많고 할 수도 있는데 체력을 좀 더 다져야겠다. 익숙해졌던 웨이트들의 무게도 조금 늘려야지 이제는 같은 무게로는 근육이 다져지지 않는 것 같다.

지금 필요한 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뭐든 꾸역꾸역 하는 거 같다. 다른 나라에 와서 새로이 뭔가를 계속 개척해야 한다는 건 힘들기도 하지만, 사실 어디에 살아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을 계속 해야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지금의 현실은 어찌보면 특별한 것도 아니다.

아… 생각은 많고 뭔가 하는 건 적다. 제일 열심히 하는 건 드라마 빈지워칭이다. Rejseholdet라고 범죄수사 드라마인데… 재미있다. 느는 건 범죄 수사 어휘…

생각은 많고 행동은 적고 정신상태는 뒤죽박죽… 글도 갈수록 정리되지 않는다. 그냥 기록하려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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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0분의 하늘. 일조시간은 이미 거의 최고로 긴 상태에 다다른 것 같다. 하지를 거치고 나면 이제 다시 짧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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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받고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뭔가가 엄청 재미있으니까 반복하는 거겠지. 중간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되면 짜증을 팍 낸다. 감정 통제가 불가능한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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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역 접종은 쉬웠다. 이때만 해도 접종할 지 모르고 자다 깨서 마냥 좋아하던 하나. 그래도 끝나자마자 건포도 한 팩에 즐거워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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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센터에 있던 아이 놀이터에 작은 집 모형이 있는데, 내가 그 안에 들어갔더니 하나가 좋아하며 들락날락하더라.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하나. 옷은 다 젖고…

Hvor er det svært at stille spørgsmål!

Det at prøve noget nyt er altid svært, selv om den nye ting i sig selv er sjov at prøve. Hvis den er nogen vigtig i ens eget liv, bliver den endnu svær.

Nu skriver jeg mit speciale, og det er ret stressende. Jeg ved ikke om, jeg gør det rigtigt eller ej. Lige nu er det tidspunkt, hvor jeg snakker med min vejleder om, hvad, jeg har skrevet, er ok nok, eller jeg skal gøre det anderledes.

Jeg er altid bange for at stille spørgsmål, måske er det, fordi jeg er fra Sydkorea, hvor det underforstået ikke er acceptabelt at stille dumme spørgsmål. Nu ved jeg godt i mit hoved, at der ikke er noget dumt spørgsmål, men stadigvæk bliver jeg lidt tøvende over for at stille spørgsmål. Inden jeg spørger, tænker jeg over om spørgsmålet på en måde som, ‘Skulle jeg ikke allerede vide det, jeg skal spørge nu, og således skal jeg læse først istedetfor bare at spørge?’ Efter nogen stykke tid opdager jeg næsten altid, at det var dumt ikke at spørge nogen, feks. min vejleder, lige med det samme, da jeg ikke forstod det, jeg var nødt til at forstå.

Det at øve mig at stille spørgsmål er en konstant og måske evig proces for mig. Hvor er det svært!

16개월이 다 되어가는 하나와 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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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 있으면 하나는 16개월이 된다. 키는 대충 재도 80센치니 그보다 큰 것 같고 (어느새 갑자기 훌쩍 컸다.) 몸무게도 10킬로가 거의 다 되는 것 같다. 키에 비해 몸무게가 천천히 느는 거 보니 이제 아기가 아니라 유아기로 들어서는 것이 이에서도 느껴진다. 어금니도 왼쪽 두개는 확실히 나고 오른쪽도 윗니는 터지기 시작해서 하얀 게 보이니 그 아랫니도 금방 열릴 거 같다.

긴 음절의 말은 톤과 소리만이긴 하지만 대충 흉내도 내고, 두음절 단어는 처음 듣는 단어도 곧잘 따라 하곤 한다. 처음 강아지 소리를 듣고는 자기만의 소리로 “앞앞!” 이렇게 표현하더니 모르는 동물은 무조건 앞앞으로 표현한다. 강아지는 멍멍이라고 알려줬더니 멍멍이라고 하고, 고양이는 먀옹이라고 하고, 새는 처음에 집에서 닭 사진을 보면서 가르쳐걸 기억해서인지 무조건 꼬꼬 라고 하더니 각각의 새를 보고 가르쳐 준대로 까마귀를 보면 까까라고 하고 비둘기는 꾸꾸라고 한다. 덴마크어로 아니오의 뜻을 가진 Nej는 아주 여유있고 시크한 톤으로 말해서 나와 옌스를 웃게 하고, 예는 아직 말하지 못하지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서 표현하는 덕에 의사소통이 아주 수월해졌다.

자기 이름을 엄청 좋아하고, 엄마와 아빠는 한국어로만 말하는 하나지만, 그 외에 말은 고맙다는 tak, 만날 때, 헤어질때 하는 인사 모두 Hej, Hej hej, Bye bye 모두 덴마크어와 영어이다. 소방차 소리를 바부바부 내는 걸로 봐서도 역시 덴마크어가 우월한 입지를 차지한게 느껴진다. 보육원을 다니면서 덴마크어 노출이 압도적이 되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하나에겐 항상 한국어만 쓰고, 옌스가 꾸준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식사시간에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 등이 앞으로 하나의 한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논문은 꾸역꾸역 쓰고 있다. 우선 긍정적인 것은 가장 중요한 모델링의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론도 더 쓸 게 있고 몇가지 테스트할 것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델링의 결과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게으름이 뚫고나와서 나를 갑자기 퍼지게 하는 사태를 만들지 않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조심하는 부분이다. 교수가 덴마크 환경경제 컨퍼런스에 내 논문 요약문을 제출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요약문 쓰는 거는 조언을 해줄 수 있으니 한번 제출해보라길래, 우선 알겠다고 했다. 받아들여져서 발표를 하게될지까지야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기회를 갖는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옌스 말로는 논문 주제가 재미있기도 하고, 우선 모델링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으니 내보란 것 아니겠냐면서,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한다. 박사과정 지원도 한달밖에 안남았으니 이 또한 해야하는데… 뭔가 할 일은 많고 정신은 없다. 지난주까지 2주동안 하나가 아파서 모든게 또 정지해있는 상태였는데, 여름 동안 큰 탈 없이 지내서 논문을 잘 진행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 와중에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는 게 하나 있다면 덴마크어다. 우선 덴마크어 시험 중 읽기는 만점이 나왔다. 쓰기 결과는 나와봐야 알지만, 쓰기 점수는 모의고사를 통해서 꾸준히 올려오기도 했고, 배운 걸 잘 소화해서 시험을 본 만큼 큰 변동 없이 10점이나 12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말하기는 그 어느 것보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연습하고 있는 것이고, 이제 일상생활에서 영어 없이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만큼 upper-intermediate에 해당하는 B2 레벨을 인증하는 PD3 시험은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물론 영어만큼 덴마크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젠 덴마크어가 더 자연스럽고, 사고의 언어 1순위가 덴마크어가 된 만큼 갑자기 덴마크어에서 영어로 전환하려면 자꾸 덴마크어가 튀어나오려 하는 정도이니 말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생각하는 것만큼 낭비야 없지만, 그냥 조금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그랬다면 지금의 가족은 내 인생에 없었겠으니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기도 하네.

이제 딴 짓 그만하고 다시 논문을 써야겠다.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이런 길로 걸어왔을까? 참 인생은 살고 볼 일이다. 끊임 없는 놀라움의 연속…

15개월의 하나 in Dubai

시어머니의 생신을 두바이 시누네에서 하신다 하여 우리도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두바이에 갈 지 몰라 같이 방문했다. 6시간의 비행동안 하나는 한숨도 자지 않았는데 안그래도 오전 45분 낮잠외엔 자지 않았던 터라 긴장이 엄청 되었다. 다행히 덴마크 시각으로 1시 정도에 큰 무리없이 잠이 들었다. 그렇게 맞이한 15개월의 날. 비행기에서 Hvad er det? (이건 뭐예요?)를 상황에 맞게 두번이나 해서 우리를 놀래켰던 날이다.

두바이는 많이 덥지만 대충 40도 이내라 못견딜 정도는 아니다. 조금 더 지나면 라마단인데다가 더 더워지면 정말 다닐 수도 없다해서 그나마 괜찮을 때 온 건데 잘 온 것 같다. 도시도 깔끔하고 좋더라. 물론 더워서 난 여기서 살라면 그닥 살 고 싶지 않겠지만애가 있어서 어차피 여기저기 많이 다니기도 어려워서 하루 한군데 정도 소화하는 게 전부인데 집에 풀장이 있어 오전 오후엔 여기서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하나도 덕분에 수영하는 것에 익숙해질 듯.

시어머니 생일 점심으로 아랍의 탑 (burj al arab) 에 있는 캐주얼한 식당에 갔는데 사람이 아주 많지 않아 하나도 사촌들과 많이 돌아다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사촌 세명이 모두 하나를 이뻐하고 잘 놀아줘서 참 좋았다. 금방 사촌들을 좋아해서 가서 안기기도 하던 하나. 이집에 있는 고양이 엘비스를 통해 고양이를 처음 본 하나는 만져 보고 싶은 마음 반, 무서운 마음 반에 가까이 다가가다가 울곤 했다.

시누이네는 시누이 남편이 주재원으로 나와있어서 여기 최소 3년을 살 계획으로 나온 건데, 기름 1리터에 500원 정도밖에 안하고 차값도 다른 나라에 비해 싼 이곳에서 아니면 이렇게 좋은 차를 못탄다고 해서 시누이 남편은 마세라티를, 시누이는 랜드로버를 샀단다. 일생에 나도 이때 아니면 마세라티를 타볼 일 있겠나 싶어서 타봤는데, 엄청난 출력을 가졌긴 한 모양이다. 안에 소재도 엄청 좋고. 아랍의 탑 호텔에서 나올 때 앞에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유명한 사람이겠거니 했나보다.

집에 오는 길에 시누이 남편의 직원이 우리 바로 뒤에 멈춰섰다며 신호 정차시에 잠시 나갔다왔다.  그가 차로 돌아온 후 그 직원이 인사한다며 정차중 엔진소리를 세게 내었는데, 돌아보니 페라리였다. 두바이엔 진짜 비싼 차들이 널려있더라. 나름 덴마크 회사 다닌다고 조심스러웠는지 차를 사기 전에 시누이 남편에게 자기 아무 차나 사도 되냐고 묻더란다. 아마 사장이 마세라티를 몰고 있으니 덜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만…

이제 이틀 남았다. 4박 5일이지만 밤에 와서 오전 일찍 가는 여정이라 사실상 4박 3일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나가 사촌들과 유대관계도 조금 다지고 즐겁게 놀다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남은 날들도 기대가 된다. 비행은 은근 스트레스였지만, 잘 온 듯.

진짜 오랫만에 한국이 아닌 곳으로 여행 온 것 같다. 3년 조금 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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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일기.

논문이 바빠지니 다른 것에 소홀해진다. 논문은 대충 첫번째 포스트에 도착한 것 같다. 원시적 모델링은 우선 되었으니 이제 이론 연구와 모델링을 병행하고, 그 다음엔 분석하고 논문을 써야한다. 그간 진행이 참 지지부진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1차 모델링을 하고나서 보니 어찌어찌해 절반은 왔구나. 약간이지만 안도가 된다.  물론 아직도 반 이상이 남았는데 시간은 반이 흘렀으니 긴장이 되는 게 더 큰다. 내 논문 생활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하나 있다면 항상 크리티컬한 관점으로 내 논문을 비판해 줄 남편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모델을 보여줬더니 이건 고려해봤느냐, 저건 고려해봤느냐, 이 건 왜 이런 함수형태를 취했느냐, 독립변수 선택의 전략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직 그 단계까지 안갔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무방비로 폭격을 당한 기분이었으나 나혼자 하는 씨름에 타인의 신선한 인풋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역시 연구는 남과 공유해야하는 법이다.

우리 학과가 속한 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 공고가 났다. 자금사정이 트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인스티튜트 아침식사시간에 같이 참여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도교수에게 박사과정에도 관심있다고 했더니 지원서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교수님이 있는데, 그분께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것도 보장되는 건 없지만 추천서만큼은 꼭 써주시겠다면서, 오히려 박사과정에 꼭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논문을 제외하고 학점이 10.9니까… 논문을 잘 쓰면 11점 정도로 학점은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완벽한 점수를 들이밀 걸 생각하면 아주 빼어난 점수는 아니라도 점수가 흠이 될 건 아닌 정도니 논문이 많이 중요하다. 사실 큰 기대는 못한다. 요즘 박사과정은 세계 각지에서 지원을 하니 경쟁률도 높고, 내가 원하는 연구방향과 인스티튜트에 가장 어필하는 방향이 매칭이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든 해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배웠으니까 우선은 지원을 해봐야겠다. 뭐 되든 안되든 간에 내가 박사과정까지 생각하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해봤고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역시 절대 안한다 못한다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

덴마크어 필기 시험도 한달이 채 안남았고, 구술은 그 뒤 한달뒤로 다가왔는데, 시험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을 잘 만난 덕에 쓰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느는 게 느껴졌다. 알듯말듯한 몇가지 문법이 자꾸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는데, 내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딱 꼬집어 지적을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이 좋아졌다. 작년 말 시험으로 모의시험을 쳐보니 읽기는 12, 쓰기는 약한 12 또는 강한 10이라한다. 말하기는 한달 시간이 있기도 하고, 읽기와 쓰기의 중간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부문이라 대충 10~12 사이로 모든 부문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보고 있다. 모듈 6를 하게 될지 아닐지는 지금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항상 옵션을 갖고 있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우선은 그대로 해보련다. 덴마크어 교육도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있고 그러다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더 미루지 않고 올해 초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다.

하나는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제법 아가씨 태가 난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면서 겁이 없어져서 그런지 위험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서 조금 걱정이다. 집에서 놀다가 살짝 휘청한 것 같았는데, 금속 바구니 테두리에 부딪혀서 앞니가, 그것도 윗니가 살짝 깨졌다. 다행히 신경은 안건드린 거 같긴 한데, 우선은 지켜봐야한다. 옌스도 같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하니 젖니 깨먹는 건 이 집안 내력인가 한다. 이일로 나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픈 하나를 보기위해 마침 휴가를 내고 있었던 옌스에게 애를 맡기고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로 인해 구역질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역질이 계속 나는데, 그걸 멈추기 위해서 산책을 해야했다. 원래 스트레스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으로 반응이 올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가 아닌 아이 일이라서 그렇다. 누가 있었어도 생겼을 일이었기에 나를 자책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애가 더 크게 잘못되었으면 어쨌나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구역질. 더 큰 사고가 나도 차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말로 단단히 먹어야한다.

하나는 참 씩씩한 아이다. 웬만해서는 넘어진 거나 부딪힌 걸로 울지 않는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보육원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씩씩한 아이인데, 그렇다고 튼튼한 건 아닌 것 같다. 감기나 설사 같은 걸로 자주 아픈편이고, 폐렴 입원도 그렇고 천식성 기관지염을 앓는 일이 꽤 잦은 것 같다. 오늘도 그로 인해 응급실을 다녀왔으니… 물론 이번엔 응급했다기 보다는, 일반 GP, 스페셜리스트로 올라가는 시스템을 이용하기에는 응급했다고 봐야하는 거니까, 그냥 적기의 진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겨울 아기로 겨울 초입부터 보육원을 시작해서 그런 것도 있다지만. 다행인 건 씩씩한 아이라 잘 견뎌준다는 것. 나도 생각해보면 어려서 자주 아팠던 것 같다. 항상 건강체질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자주 배가 아파서 학교를 많이 쉬었던 기억이다. 엄마도 내가 씩씩했었다는데, 지금도 꽤 씩씩한 거 생각하면 하나도 그런 면에서는 강한 아이일 것 같다.

요즘 얼마나 놀이터 생활을 즐기는지. 날이 좋아지면서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놀리게 되니 동네 아이들과도 교류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 때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던 아래층 이웃 아이는 아직도 간혹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게 줄었고, 그 아이의 오빠와 둘다 다정한 애들로 컸더라. 이제 곧 7살이 된다는 베어트람은 하나를 유독 이뻐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아마 여동생을 데리고 지낸 경험에서 우러나는 듯) 4살 여동생인 딕터도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었고, 둘다 하나와 함께 놀아주더라. 하나가 갖고 나온 공을 갖고 잔디밭에 삼각형으로 둘러 앉아 셋이서 공을 미는 놀이를 하는데 (그나마 하나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놀이로 배려해 준 베어트람이 놀랍다.) 곧잘 노는 게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놀라고 나는 빠져있는 건데 내가 중간에 괜히 옆에서 개입했나 싶었다. 말못하는 하나를 대변해준답시고, 아직 애가 이해를 못해서 그래, 하나야 앞으로 밀어봐, 이러면서 옆에서 참견을 했다. 그냥도 잘 했을 거 같고, 아니어도 오빠와 언니가 적당히 반응해가며 놀았을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다른 아이가 충분히 큰 경우 내가 조금은 더 뒤로 빠져서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해봐야겠다.

다음주에는 두바이에 주재중인 시누이네를 시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는데, 출산 후 거의 바로 이주한 시누이가족과는 하나가 처음으로 제대로 교류하게 될 거라 기대가 많이 된다. 조카들이 동생 만나서 놀아줄 기대로 부풀어있어서 더욱 기대된다. 수영복도 사고 이래저래 준비를 했는데 아픈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오늘 해가 엄청 쨍하고 더웠는데, 하나 데리고 오전에 응급실에서 3시간 씨름하고, 가장 해가 쩅한 시간에 나와 낮잠에 든 애를 두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밀고 싸돌아다녔더니 몸에 화기가 든 기분이다. 아마 피부가 많이 탄 모양이다. 밤에 잠이 잘 안올 것 같다. 나는 못자도 애가 좀 잘 자줬으면 좋겠다. 기침을 덜하는 걸 보니 오늘은 잘 자려나? 역시 병원에서 천식약 흡입한 게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다. 딱 쓰고나니 기침하네. 흠… 역시 입초사인가…

임신 때보단 육아가 훨씬 힘들긴 한데, 출산 후 100일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다. 지금은 다른 차원의 힘듦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애가 어릴 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얼마전 출산한 사람, 앞으로 출산할 사람 등 주변에 애 참 많이 낳는데, 신생아 냄새가 생각날 듯 하면서 그립기도 하지만 또 낳을 생각은 안난다. 다 잊혀져서 애를 또 낳는다는데, 힘든 기억은 잊혀졌지만 힘들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 애는 그만 낳고 남들 애기 보면서 신생아 이뻐하는 건 그걸로 끝내야겠다. 아… 신생아 볼 생각에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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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천천히 가기로 했다.

애가 아픈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가 아플때마다 시부모님께 도움을 부탁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애의 병치레에 따라 나의 논문 스케줄은 심하게 흔들린다. 덴마크도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는 공채 비슷한게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엄청 적은 수고, 1년에 한번 있어서 여름에 졸업하는 학생이 중심 대상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있는게 나으니까. 마침 마음에 드는 회사도 있고 해서 지원하려고 이력서도 준비하고 취업박람회 가서 면담도 하고 했는데, 막상 논문이 너무 흔들려서 제 때 여름에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덴마크어 어학원이 코펜하겐시(단지 코펜하겐시만은 아닐거다. 곧 다른 시 어학원들도 영향을 받을 듯하다.) 덴마크어 교육 예산 절감 계획에 따라 교육 기관 선정이 입찰제로 바뀌었다. 유명한 어학원들은 학생 1인당 교육비용을 11000크로나 정도로 잡았는데 (지금보다 낮은 수준) 8000크로나 정도로 잡아 제출한 악명 높은 교육기관 2개가 낙찰을 받고 나머지는 다 떨어졌단다. 따라서 8월부터 이 학원들은 무료 덴마크어 교육을 다 문닫는다. 원래 8월부터는 무료 교육도 시스템이 바뀌면서 모듈당 2000크로나를 내는 것으로 바뀐다고 해서, 모듈 6은 돈 내고 들어야겠구나 했었다. (모듈 3까지 돈내고 다녀봐서 아는데, 진짜 유료는 모듈당 하부 모듈이 2개가 있어서 10000크로나가 넘는다.  모듈 5는 하부 모듈이 4개라 20000크로나가 넘는다.) 그런데 이 또한 이상한 학원으로 다녀야하는 거라면 굳이 모듈 6을 듣고 싶지 않다. 모듈 5 시험은 이미 모의고사를 토대로 본 결과 지금 쳐도 10점 정도 받는 거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모듈 6을 수강할 자격 획득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이 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덴마크어 수업을 조금은 설렁설렁 들어도 될것이고 숙제도 조금은 느슨하게 해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회사 지원은 졸업 뒤로 미루기로 했다. 논문은 우선은 8월까지 쓰는 걸로 목표를 하되, 미루는 것도 염두에 두고 쓰기로 했다. 교수님과 어떤 consequence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한번 상의해보고, 현실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8월까지 중간에 애 아플 것도 감안해서 다 쓸 수 있을 것 같은지 교수님의 생각도 들어봐야겠다.

덴마크어도 조금 루스하게 하고, 취업은 손에서 놓고, 논문에 최우선을 다해 하되, 졸업을 미룰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둔다면 지금의 높아진 스트레스 레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뭐든 낭비는 없는거니까, 지금까지 다른 것에 투자한 시간자원은 어떤 형태로든 나중에 도움을 줄 거다. 나중에 다시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고.

남편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남편이 8월에 내가 빨리 졸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고 믿었고, 남편은 그걸 미루면 나에게 부담이 되는 consequence가 학제상으로 있을까봐 그랬던거지, 빨리 졸업해서 빨리 취업하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그걸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한다. 내가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하니, 나보고 더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남편이 말하더라. 당신 잘못이 아니라 내가 주어진 데드라인 안에 이를 달성을 못할 것 같은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당신은 내가 8월에 끝내기를 기대하니까 힘든 거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전혀 그런 기대는 안하고 있다면서, 서로 오해하고 있었단다.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애가 아플 때 애 아픈 거 걱정보다도 내 일이 밀리는 걸 걱정하게 되는 게 참 엄마로서 죄책감이 들곤 했는데, 이런 걱정은 내려두고 조금 더 흐름에 몸을 내맡겨보려한다. 왜 갑자기 조급해졌었는지…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조급증이 나도 모르는 새 싹을 다시 틔우고 있었는가보다. 좀 내려놓고 천천히 차근차근 밟아가야지. 이 프로세스를 즐기면서…

겁은 겁을 먹고 자란다.

겁은 겁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겁을 내면 낼 수록 겁은 더 커진다. 따라서 겁이 날 땐 이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혀야한다. 그러면 겁으로 부풀려 포장된 것이 아닌 현실의 파편들을 마주하게된다. 파편들을 하나하나 집어들고 맞춰보면 그것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차근히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기싫은데 하면서 끌려가다보면 시간도 오래걸리고 그 일자체도 엄청 큰 일처럼 느껴진다. 기왕 해야하는 일이면 내가 해야되서 하는 일이라고 마음 먹고 하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아침에 너무 일어나기 힘든 순간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빨리 옆으로 치우고 벌떡 일어나 일상을 마주한다면 의외로 그렇게 힘들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럴 땐 빨리 일어나서 세수부터 하자.


이상이 오늘의 경험에서 배운 레슨이다. 보언홀름에서 돌아갈 때까지 지도교수님을 만날 수 없는데, 그 전까지 geocalculation을 우선 해보라는 큰 틀의 가이드라인 아래에서 도대체 뭘 해야하나 고민이 되었다. 차분히 앉아 노트를 펴고 생각의 지도를 작성해보고 이를 통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되는 이론과 스크립트를 들여다보고 나니 조금씩 윤곽이 보이고 있다. 두려움으로 포장된 괴물은 매우 커보이지만, 이를 마주하고 토막을 내보면 나의 겁이란 허상이 만들어낸 것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가 밤새 코막힘으로 잠을 설치며 나를 힘들게 하더니 다른 날보다도 더 일찍 일어나서 흥겹게 놀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갈아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기저귀를 가는데, 짜증내려는 하나를 달래느라 흥겹게 노래를 불러주다 보니 나도 정신이 맑아졌다. 세수를 하면서 상쾌한 마음이 되었는데 앞으로도 밤잠 설칠날은 여전히 많은지라 이 느낌을 기억해야겠다 싶었다. 잠부족한 워킹맘들 모두 화이팅!

인생사는 다 선택이다.

요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아이의 첫겨울과 보육원 생활이 겹칠 때 애가 얼마나 자주 아플 지를 고려하지 않고 너무 많은 플래닝을 한 것일까? 남편에게 자주 짜증을 내게 된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짜증은 결국 나에게 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 조금만 더 플랜을 잘 했더라면, 조금만 더 플랜을 잘 지켰더라면, 변수가 생겼을 때 기존의 플랜을 조금 더 잘 끼워넣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그때 옌스가 이렇게 해주었더라면 조금 더 좋아졌을텐데, 그렇게 해주지 않아서 그래… 라는 말도 안되는 형태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잠깐 심통을 내곤 한다. 잠깐 다른 일을 하다보면 말도 안되게 심통을 부렸구나, 유도리있게 이렇게 했으면 되었을텐데 하고 돌아와서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옌스가 받아주고 풀곤 한다. 자꾸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오늘은 제대로 이러저러했던 상황에 대해 나의 생각의 전개 및 감정을 설명하고 제대로 사과했다.

논문도 다 끝나지 않았지만 취직 준비를 서서히 해야하는 탓에 더 조급해지는 것 같다. 다음주 금요일엔 취업박람회가 있어 거기에 갖고갈 요량으로 덴마크어 이력서를 준비하고 있다. 졸업은 8월이지만 대충 6월이면 상반기 채용이 끝나는 탓이다. 오늘 대충 드래프트를 끝냈고 옌스가 잠깐 훑어봐준 결과를 토대로 추가 작성해서 내일 봐달라고 해야한다. 오래된 이력서를 들쳐보고 이를 덴마크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번역이라는 작업 자체도 그렇지만 여기 채용시장의 이력서 유형에 맞춰 쓰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원래 뭐든 처음이 힘든 거니까…

 

대학원 동기 한명이 자살했다. 가까운 동기는 아니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친구도 자살을 예상할 수는 없었던 걸 보면 그 속사정을 깊게 털어놓을 수 없어 더 힘들어하던 게 아닌가 싶다. 살면서 자살을 생각해보는 게 아주 드물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걸 실행으로 옮기는 데에는 그만큼 큰 용기(?)와 좌절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막상 그를 실행해 옮긴 그의 힘듦을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내 주변에서 자살한 건 그가 처음인데, 자살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그를 추모하러 그가 자살한 기차역에 갔을 땐 그렇게 많이 보았던 열차의 주행이 새삼 섬뜩하고 무섭게 보였고, 또한 무심하게 보였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러 모였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농담도 나눌 수 있는 우리에게서 어쩔 수 없는 무심함을 보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그렇게 스치는 생각이었다. 덴마크에서 직장을 관두기 전에 나도 과도한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생각들을 조금 구체적으로 했던 탓에 이번 일이 완전히 남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는 하나가 있어 더욱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되겠지만, 사람이 참 힘들다보면 이성적이지 않은 극단적 결정도 할 수 있기에… 남겨질 사람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그 친구는 이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죽음의 길을 선택했기에 이제 최소한 자유로워졌을테지. 그런 자유를 희망했을 것이리라. 그의 죽음에 찬동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가 원했던 것을 얻었을 것이기라 믿으며 위로의 마음을 띄워보낸다.

세상 일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될 때, 어디에도 “그래야만 했다”는 당위는 없음을 기억해야한다. 항상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나도 지금처럼 힘들다고 끙끙대며 주변인을 상처입힐 땐,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다시 프레이밍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연말연시 일상 기록

학교에 다시 나가기 시작한 건 11월이지만 데이터 수집에도 시간이 걸렸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것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12월엔 하나가 보육원 시작하면서 자주 아픈 탓에 집에 머무느라, 나도 같이 아프느라, 또 연말연시 연휴로 가족행사가 있느라 거의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연초까지 수집할 수 있어서 좀 본격적으로 일하나 했는데, 하나의 중이염과 낡은 컴퓨터와 빅데이터의 안좋은 궁합으로 인해 시간만 까먹었다. 그나마 위안을 하자면 낡은 컴퓨터를 갖고 씨름하느라 컴퓨터 메모리 칩에 대해, 큰 데이터를 로딩하느라 다양한 데이터 포맷과 그에 따르는 R의 데이터 로딩 함수를 이것 저것 익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간에 컴퓨터를 새로 사면서 맥에서 Windows로 갈아타는 동안 같은 코딩도 달리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를 해결하느라 하루동안 씨름했다. 수업을 듣는 동안 꾸준히 써왔던 R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R과 많이 가까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Spatial data 쪽 분석에서 말이다. 많이 배우는 건 역시 노가다를 통해서인가보다. 오랜 시간을 투여하고 힘들게 익힌 만큼 각인도 더 되는 거랄까? 엄청 삽질한 뒤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같은 결과도 더 짧고 효율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거나 아니면 더 좋은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을 볼 때, 그게 탁 머리에 꽂힌다.

대학원 친구들이 서서히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덴마크 친구들만 구하더니 이제 슬슬 비덴마크 친구들도 직업을 구한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친구도 있지만, 그래도 많이들 여기에서 정착하는 것 같아서 좋다. 최근에는 임신한 친구도 생겨서 우리의 두번째 ENRE baby를 맞이할 생각에 나도 들뜬다. 나도 직업을 잘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간간히 엄습해오긴 하지만, 불안함을 갖는다고 직업이 잘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에 충실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저녁에는 덴마크어 학원을 가는데, 선생님이 아주 좋으신 분이다. 가르치기도 정말 잘 가르치시고 학생 개인별 수준과 강점, 약점에 맞춰 조언을 따로 해주시는 것도 많다. 숙제는 너무 많지 않아서 바쁜 와중에 수업을 끼워넣기 좋은 편이다. 요즘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바쁜데 그중엔 덴마크어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래도 덴마크어는 미뤄둘 수 없을 만큼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다른 것 바쁘다고 미뤄두기엔 항상 가까이 둬야하는 존재… 최대한 일상생활 속에 덴마크어를 녹여야 해서 오늘은 드디어 교수님 면담을 덴마크어로 했다. 그 전엔 슬쩍 인사말을 덴마크어로 해도 지도교수님이 영어로 바꾸시길래, ‘아… 아무래도 역시 영어가 학교 공식 언어라 그렇신가?’ 했었다. 지난번 남편이 덴마크인이라 대화는 다 덴마크어로 한다고 흘려뒀던 탓일까? 오늘은 인사 뒤에 따르는 말도 덴마크어로 하시는 거다. 조금 더 집중을 요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내 논문에 대해 옌스와 평소에 많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고, 시댁 가족과 친척에게 논문을 설명하느라 덴마크어로 이래저래 이야기한 적도 많아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컨텍스트를 정확히 아는 내 논문이고, 테크니컬한 이야기를 나누는 바라 복잡한 뉘앙스를 다룰 필요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앞으로는 덴마크어로 지도를 받기로 했다.

주재원 생활을 빼면 내 덴마크 생활이 학교를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학교에서의 만족도가 정말 중요한데 그 점에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교수님들도 정말 좋고, 수평적인 분위기라 질문하고 연락하고 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특히 내 지도교수님은 막상 가까이 지내보니 더 허물없고 열심히 도와주신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찌나 좋은지. 모든 수업에 대해 100%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내 프로그램에 대해서 추천하겠냐고 물어본다면 100% 망설임 없이 강력히 추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거기에 나라에서 주는 용돈을 받고 등록금도 안내고 학교를 다니니 더욱 감사한 일이다.

이번 주 토요일은 하나 생일이다.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휙 지나가버렸다. 생일 케이크는 집에서 만드는 게 대부분인지라 나도 집에서 만들건데, 스폰지 케이크를 빵집에서 주문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건 3장 주문해뒀다. 내가 할 건 레이어 사이에 바를 바닐라 크림을 만들어서 레이어 위에 잼과 함께 얹고 마지판을 사서 밀대로 밀어서 얇고 길게 만들어 케이크 사이드를 두르는 것, 케이크 표면에 초콜렛 글레이징 하는 것이다. 바닐라 크림은 어제 하루 하나를 봐주러 보언홀름에서 먼길 와주신 시어머니께서 시간을 내어 가르쳐주셨다. 하루 전날 만들어서 차갑게 식혀야 하는 크림이라 오신 김에 직접 보여주시며 가르쳐주시겠다는데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만들고 보니 카스타드 크림 같은 것이었다. 어째 생크림과 다르다 했는데, 생크림은 맛이 나지 않아서 바닐라 크림을 만들어야 한다셨다. 시어머니의 어머니 레시피라는데, 집집마다 크게 차이나는 것 같지는 않다. 옥수수 전분이 들어간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의외로 설탕은 별로 안들어가고 단맛은 우유와 계란에서 오는 부분도 많았다.

보육원에 하나 생일이라고 뭘 가져가야 하는데, 생일이 토요일이라 월요일에 하겠다고 했다. 도저히 금요일에 뭘 하기는 힘들 것 같고… 아마 빵을 구워가야할 것 같다. 보육원엔 단 건 갖고 가면 안된다고 하니 덴마크 생일에 보편적으로 먹는 우리 모닝빵 같은 걸 구워가야겠다. 흠흠… 믹스 사갖고 이스트랑 버터나 섞어 만들어가야지… 학부모는 역시 바쁘구나. 으흑. 하나 생일 장식도 사야하는데… 한국 부모의 돌잔치에 비하면 별로 하는 일도 없지만, 다 직접 하다보니 손이 가는 일이 좀 있다. 시부모님과 시이모, 이모부님이 와서 축하해주시기로 하셨다. 시누이는 먼 두바이에서 축전만 보내주는 것으로… 아쉬워라… 하나를 엄청 이뻐해주는 고모와 사촌 오누이가 와주면 진짜 좋을텐데… 우리가 4월에 가서 보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하나가 자주 아픈데 옌스는 직장을 다니니 내가 좀 더 유연하다는 이유로 계속 내 일이 뒤로 밀리니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겠다고 이야기했더니 내가 진짜 직업을 구하기 전까진 내가 하나 아픈 날 집에서 애를 보는 게 낫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헉.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이렇게 아둥바둥 열심히 공부할 이유가 있는거냐, 내 학업은 진짜가 아니라는 건데, 대충 해도 되는 거였냐 하니까, 그건 아니란다. 내가 유연해서 하나가 아플 때 내가 다 돌봐야 하면 이건 유연함이 아니라 절대적인 거니 뭔가 좀 아닌 것 같다고 하니 자기도 아차 싶었던가보다. 그날부로 적극성을 발휘해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해 일요일 밤에 날아오신 것이다. 평소 하나가 보육원에 갔을 시간 내내 어머니가 애를 돌봐주셨는데, 그 덕분에 일도 진척시킬 수 있었다. 오늘 혹시 하나가 보육원에서 많이 칭얼거려 중간에 픽업해야 할 일이 있을가 싶어 저녁까지 같이 계셔주시고 밤 비행기로 돌아가셨는데,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할 땐 청하기로 했다.

요즘은 천천히 앉아서 뭔가를 할 시간도 별로 없고, 그냥 하루하루 바삐 사는지라 상념에 잠길 시간이 없어 블로그에 생각을 정리하기도 어렵다. 하나가 크는 모습을 좀 더 차분히 앉아서 기록하고 정리하고 싶은데… 그냥 사진과 비디오를 찍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으니 아쉽기 짝이 없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급히 써두지 않으면 내가 이 시점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아 어수선히 정리도 되지 않지만 휘리릭 써내려간다. 학원을 간 날이라 11시 가까이 되서 집에 돌아오고 나니 눈도 풀리고 머리도 몽롱하다. 그만 덮고 가서 자야겠다. 내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타지에서 아플 때 – 친구가 너무나 고마운 순간

나는 전형적인 서울 깍쟁이다. 물론 살면서 도움 주고 받을 일 없겠냐만은 거의 도움을 요청해본 적이 없다. 스스로 어떻게든 버티거나 부모님에게 손 뻗는 거 외엔 도움 요청하는 일이 거의 없다. 4년전 옌스가 중국에서 옮겨다준 플루에 1차로 아프고 나서 2주 뒤 거의다 나았다가 신종 플루에 2차로 연속 감염되어 40도로 고열이 나고 합병증으로 급성기도염에 걸렸을 때도 응급실 여는 아침 7시에 맞춰 (내가 사는 동네 응급실이 24시간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기다렸다.) 간신히 운전을 해 병원에 갔더랬다.

이번의 독감은 다소 독했던 2주간의 목감기 끝에 찾아왔다. 진짜 힘들었지만 다행히 하나가 보육원을 시작했기에 어떻게 버텼는데, 바이러스성으로 추정되는 소화기관계열 감염이 찾아왔다. 토요일은 옌스와 하나가 고열로 시달리고, 나도 독감으로 힘든 와중에 간신히 애 돌보며 하루를 보냈더니 일요일은 나에게마저 증상이 찾아온 것이다. 그나마 옌스가 하루 꼬박 침상에 드러누워 앓고나서는 일요일엔 나와 바톤터치하고 하나를 봐줘서 다행이었다. 문제는 옌스가 요리를 못한다. 그간 독감으로 간신히 한끼 요리해서 가족들과 저녁식사 한 것 외에는 빵 등으로 간단히 끼니만 떼우며 살도 빠지고 기력도 떨어져있었는데 내가 완전 누워버리니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토요일, 마침 셸란 섬에 와계신 시어머니께서 시판 이유식과 오븐에 넣어 구워먹을 수 있는 음식 등을 사다주고 가셔서 그걸로 버티나 했는데, 막상 빈속에 구토를 해서 쓸개즙까지 보고 난 상황에 그런 씹어먹는 서양식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옌스에게 죽을 끓여달라고 할 수도 없고. 괜히 쓸데 없이 감정이입해가며 서러워하지 말자는 나였지만, 갑자기 진짜 서러워지는 거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그 서러운 마음을 전하고 나니 – 사실 걱정하실까봐 전화 안하고 싶었는데, 극한의 상황이 되니 엄마가 필요하더라. – 마음이 우선 진정이 되었다. 주변에 도움 청할 사람 없냐고, 이럴 때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줄도 알아야 된다며, 나중에 도움도 주고 그러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안그래도 친구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주말 안그래도 바쁜 거 아는 친군데 연락하기 그래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연락을 했는데,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정성으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도움들을 주고 갔다.

흰죽과 그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짱아찌, 누룽지 끓여먹으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둥글레 향이 나는 누룽지, 생강차와 꿀과 이에 바로 넣어먹을 수 있게 손질한 레몬, 하나 먹으라고 호박고구마죽까지… 정말 양손 무겁게 양도 듬뿍 준비해왔다. 바로 갖고와서 죽은 아직도 뜨뜻하기까지… 미역 불려놨다며 다음날 보자더니 이튿날에는 미역국과 고추장아찌, 밥까지 갖고 왔다.

흰죽을 받아든 날 부엌에서 내용물과 쪽지를 읽어보고서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아. 이 따뜻한 마음이라니. 참 어떻게 이렇게 정이 넘치나 싶어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너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녀석인데 이렇게 정이 넘치냐… 싶어서 그냥 고마웠다.

남편은 아플 때 다른 집안일로는 도움을 줄 지언정 요리로는 큰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뭔가 사다주는 것으로 대체는 해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특히 자기도 아픈 때가 되니 하나도 있는데 나도 부탁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뭔가 사방이 다 막힌 것만 같았다. 엄마 말마따나 어려울 때 서로 품앗이를 할 수 있어야지 아니면 힘들 때 너무 힘들다. 그리고 이번을 계기로 남을 도울 때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일적인 도움 되에 이런 일상생활의 도움은 주는 것도 너무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내 소중한 사람들의 어려움에 있어서 이렇게 선뜻 나서야겠다는 배움을 얻어간다.

이건 정말 평생에 갖고갈 고마운 일이다. 고마워, 윤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