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이들 속에서 오롯이 나로 자유로이 서기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네트워킹을 하고 코스를 듣고 내 의견을 말하고 질문을 하고 내 소개를 하고 하는 과정 속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한 것 말이다. 나에게 향했던 내 내부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타인의 발언을 들을 때 그에 100% 집중해 경청하니 상대방이 더 잘보이기 시작했다. 내 결점에 집중하고 그걸 타인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느라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모습이.

언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내 머리속에 자리한 번잡한 생각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한 것이었다. 테크니컬한 내용의 강의와 토의를 따라가고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내 덴마크어가 부족할까봐 미리 변호하거나 하는 일이 필요없었다. 조금씩 실수하거나 그러면 또 어떠한가. 우리말하면서도 실수 할 수 있는 건데. 저녁 식사하다가 문화간 차이 이야기가 나와서 덴마크 이주시 경험을 이야기하니 언제 왔냐고, 이민온 지 몰랐다고 하는 거보면 작은 실수는 그냥 나만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던 거였던 거 같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틀려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는 거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다른 동료가 있고, 나는 그 자리를 메울 다른 것을 갖고 있으며, 나는 계속 배워가고 계속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저런 사람인데… 이런 생각으로 걱정하거나 나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고 그래서 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나다. 이 말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새롭게 와닿은 순간 이게 정말 나를 자유롭게 하는 말임을 알았다.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수가 없고 나는 그냥 내 생각과 행위, 선호, 가치관 등으로 구성된 사람이고 이는 내가 내리는 일련의 결정과 행위로 끊임없이 변하는 동태적인 유기체이기에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나는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선호, 정보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거다. 정보가 추가되거나 가치관이나 선호가 바뀌면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고. 타인이 나를 좋아하건 안하건 나는 나이고 타인의 평가는 나의 어느 일면만을 갖고 평가하는 것이기에 필요한 오해가 있으면 풀고, 그게 아니면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 하고 넘어가는 거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늘은 스스로에게 정말 칭찬해줄 날이다. 내가 낯선이들 사이에서 나로서 자유롭게 오롯이 선 날이기 때문이다. 잘 했어!

나이들어간다는 것

내 대학교 3,4학년 시절의 큰 비중을 채웠던 경영학회 GMT. 지도교수이셨던 박영렬 교수님이 퇴임을 하신다고 홈커밍데이 겸 퇴임 축하를 한다고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메일을 받았다. 어느새 박교수님이 퇴임을 하실때가 되었구나. 아… 내 흰머리가 늘고 내 남편, 부모님, 시부모님의 나이듦을 보고 느낀 것과 또다른 형태로 세월의 흐름을 체감했다.

근 1~2년 새 유독 내 신체나이가 들어감을 느끼고 있다. 피부의 탄력이 예전같지 않고 머리카락을 좀 들춰 뒤적거려야 몇 개 찾을 수 있던 흰머리가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미 라인에도 몇가닥 새싹처럼 올라와서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피부에 상채기라도 나면 예전엔 그냥 둬도 낫던 것이 이제는 소독약 없이는 덧나서 낫는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안경 없으면 피곤했지만 그래도 벗고 생활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안경 안쓰면 안그래도 짧은 팔을 길게 뻗어 미간을 찌푸려봐야나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다. 저녁 약속에 좀 이쁘게 한다고 안경 벗고 나가면 메뉴를 보느라 고생을 하니 오래지 않아 안경은 두고 다닐 수 있는 물품에서 제외될 모양이다. 몸의 근력이나 그런 걸로만 보면 내 인생에 유래없이 강한 시기이지만, 조금만 잘못 쓰면 인대나 관절 등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물론 덕분에 관절을 정확한 방향으로 쓰는 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게 되었으니 꼭 나쁜것만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을 보면 각각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영 동떨어진 비영어권 환경에서 살며 대학원 공부를 다시해 새로운 커리어로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일을 시작했으니 정말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나이가 아주 많았다면 상관없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해 젊은 동료들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뭐 아주 젊은 동료들도 아니기도 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를 놀라게 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바다에서 지적 호기심을 갖고 뭔가를 파는 일이 적어졌는데, 일이 나를 새로운 분야로 던지곤 하면 그제서 또 이를 배우느라 헤메기도 하고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되려 젊어짐을 느끼곤 한다. 그런 면에서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거의 이십년이 흘러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파고 있는 지금, 감사함을 느낀다. 다시금 삼각함수를 파고, 전기공학과 관련된 이론을 보고, 이제사 왜 수학과 물리 등이 중요한지 또한번 느끼는데 옛날 이걸 왜 배우는지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배웠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감과 내 익숙한 영역에서의 활동기간이 함께 길어지면 두려움이 늘어나는데, 이를 깨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다보면 그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시선 속 나,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관계를 보느라 끊임없이 나를 중심으로 보던 시선을 밖으로 돌릴 수 있게 되고 나니 새로움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를 내던질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변화는 분명히 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구분할 것 없이 말이다. 하지만 두가지 모두 그 변화 속에서 젊음을 챙길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수평적인 사회에서 살며 더욱 자유롭게 새로움을 탐색할 수 있다는 건 그런 점에서 축복임에 틀림없다.

스트레스

지난 한주는 너무 많은 행사가 있었다. 평소에 누구를 잘 만날 일도 없고 회사, 집, 하나 방과후 활동 따라가니기, 운동, 우리 세식구와의 시간 등 뻔하디 뻔한 루틴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자체로도 바빠 다른 일을 끼워넣을 여유가 별로 없다. 그런 타이트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테마데이, 친구와의 저녁 약속, 런치 약속, 조카 생일, 옌스 출장 공항 드롭에 평소 옌스가 했을 소소한 집안일도 내가 넘겨받아야 했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사무실로 출근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두른 후 아침 커피 한잔을 마시며 산업뉴스를 읽으면 그제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주당 1회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의사를 만나거나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는 한 가급적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유는 집으로부터 물리적으로 공간을 불리해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함이다.

이렇게 평화스러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스트레스로 가득찼던 것이 바로 내 머리속 내 목소리와 생각 때문이었다는 게 참 놀랍다. 내가 겪은 생각과 스트레스는 다수의 현대인이 겪는 일이기에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민 생활에 이정도 힘든 거야 당연하잖아?’하면서 이를 진작에 다루지 않은 게 문제를 키운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이를 적극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도. 물론 문제가 이정도 커졌으니 이게 상담을 요하는 일이란 것도 알게 되었지만.

내가 나에게 엄격했던 것 만큼 남의 아픔에도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힘듦을 토로했을 때 그 힘듦이란 게 누구나 겪기도 하고 다 이겨내야 하는 것이니까, 어느정도는 공감하면서도 이겨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대화를 했다.

해외에서 산다는 게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힘들어 상담이 필요한 순간에 상담의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데 있다. 아마 영어로 상담을 해야 했다면 내게 맞는 상담자를 고를 수 있는 풀이 크게 줄어들었을 거다. 현지어나 영어 모두 상담하기에 불편하다면 한국에서 온라인 상담을 해야할텐데 온라인이라는 환경이 오프라인의 환경을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그 또한 아쉬웠을 거다.

내가 문제에서 헤어나온 이후 주변에 같은 고민으로 고통받거나 받았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문제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고민을 하거나 했던 사람들. 내 주변의 동료들에게서도 여럿 같은 종류의 고민으로 상담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도 참 많이 받았는데, 그런 모든 사람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해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테마데이 고카트!

난생처음 고카트를 타봤다. 센터장이 이번 테마데이의 활동은 업무와 무관한 것으로 선택했다고만 들었는데 그게 고카트일 줄이야! 처음 타보는 거라 얼마만큼 가속을 해도 좋을지, 언제 브레이크를 얼마만큼 밟아야할지 등 잘 모르겠어서 조금씩 테스트를 해보면서 속도를 늘려봤다. 나중엔 요령이 조금 생겨서 속도를 꽤 올릴 수 있었고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았다. 다른 카트를 추월하거나, 추월하다가 실패하고 접촉사고를 내거나, 추월하려는 동료를 성공적으로 막거나 커브를 너무 격하게 돌아서 자동차가 반바퀴쯤 돌거나, 또 어제 하루 고카트를 운전한 사람들 중에 네번째로 빠른 랩기록을 낸다거나 말이다.

시속 65킬로미터로 속도 제한을 걸어놨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전구간에서 목과 온 몸에 느껴지는 원심력이란… 언젠가 포뮬러원 선수들이 목 근육을 그렇게 트레이닝한다는 것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왜 그렇게 훈련해야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으니 시속 65킬로미터가 안되는 상황에서 내 목이 받은 원심력이 그렇게 컸는데, 코너에서 최저 시속 80킬로미터를 낸다는 포뮬러원 선수들이 목에 받는 힘이 얼마나 대단할런지.. 아무리 차량의 접지력이 크고 회전 반경이 고카트보다 크다 하더라도 무게가 더 나가는 차량에 속도가 두배 이상이면 그게 원심력에 미치는 영향이 네배가 넘을텐데… 하여간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고작 10분씩 16랩 경기를 3번 했을 뿐인데 지금 몸에 근육통이 가볍게 느껴진다. 온 몸에 들었던 긴장감이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 우리랑 같이 돌던 팀은 2번 돌고나서 두명이 속이 안좋다해서 관두고 나갔다.

파워핸들이 아닌지라 회전 구간에서 핸들링을 하면서 온 몸애 힘을 썼는데, 그 덕에 다 끝나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내 차의 핸들이 얼마나 가볍고 부드럽게 느껴지던지. 안그래도 전기자동차라 주행이 가벼운 편인데 고카트 하고 운전하니까 몸이 날아갈 거 같더라. 자동차를 시 외곽에 둔다고 해서 내 차에 중간부터 태워 동행하고 갔던 동료도 자기가 운전하지 않는 차지만 고카트 운전 이후엔 모든 승차감이 다 좋게 느껴지는 거 같다며 공감해마지 않았다.

이런 테마 데이가 아니었으면 굳이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고카트. 처음엔 30분에 불과하다 생각했는데, 끝나고 몸이 땀에 흠뻑 젖고 나니, 30분을 넘겼으면 너무 힘들었겠다 싶었다. 주변에 딱히 이런 격한 것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누군가가 한다고 하면 다시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은 이래서 어떤 활동을 할지에 대한 결정이 전적으로 남에게 달린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음엔 방탈출도 해보고 싶네!

소셜스포츠 클라이밍

상체 근력이 약한 관계로 오버행 벽에서는 수직벽에 비해 난이도를 한단계 내려 타도 고생을 한다. 클린하게 한번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지난번엔 아무리 시도해도 못해 포기했던 벽을 오늘은 두번의 휴식을 포함해 완등했다. 다음의 목표는 휴식을 한번으로 줄이는 거다. 아예 쉬지 않는 목표는 너무 거창한 거 같고.

벽을 타다보면 여러가지 이유로 파트너가 바뀌게 되는데 – 파트너가 멀리 이사를 간다거나,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등반 시간대를 옮긴가거나 – 그런 때를 대비해 새로운 인물과 기분을 열심히 쌓아두어야 한다. 왠지 혼자인 듯 한데 실력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 같은 사람에 있다? 혼자 왔냐 묻고 파트너가 있는지 물은다음 없다, 상대도 누군가를 찾는다 이러면 바로 작업들어간다. 같이 타보겠냐고.

그렇게 만난 체코인 파트너와 클라이밍을 하고 탈의실에서 짐 챙기는 중 홍콩인을 만났다. 왠지 나를 흘끗흘끗 보는데, 말 거려나? 생각하며 손을 씻는데 입술에 묻은 초크가 너무 무서워서 실소가 터진다. 입술에 하얗게 자주 초크 바르고 다니게 되서 거울 보다가 깜짝 놀래곤 한다고 말의 물꼬를 텄다. 그러자 자기도 종종 그런다면서 나 리드 벽타는 거 구경했다는거다. 쉬다가 리드 타는 거 봤는데 잘 하더라, 하면서.

덴마크 온 지 두달 된 학생인데 파트너가 없어 혼자 클라이밍을 한다고 하길래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친구랑은 또 다르지만 클라이밍이 은근히 소셜한 스포츠라서 이렇게 사람 만나는 재미가 또 있다. 벽 위에서는 혼자의 싸움같지만, 또 그 안전을 도모해주고 내려와서 담소를 나누고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서 꽤나 소셜한 취미이다.

오늘 힘든 루트 두개 했더니 팔이 후들후들… 힘드네…

낯선 아침 출근시간의 시내 모습

출근시간에 코펜하겐 시내에 나온 건 정말 오래간만이다. 주차자리를 다행히 찾아서 차를 대고 조금 걸어서 가까운 카페로 이동하는데 아침 도시의 소음과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언더톤의 도시 소음을 들어본 게 얼마만인가.

낯선 도시 소음을 마주하고 나니 마치 내가 여행지로서 낯선 도시에 서있는 것 같았다. 도시를 구경하거나 여유를 즐기는 사람은 없고 다들 분주히 이동하는 모습.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 구분 없이 다 바빠보인다. 주말에는 들리지 않던 공사장의 소음, 지게차의 경고음, 도시의 언더톤에서 시끄러운 소음을 담당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분주히, 무표정한 얼굴로 자전거를 타고 쌩쌩 지나가는 사람을 보니 낯설다. 걸어 다니며 내 얼굴을 볼 일이 없기에 내가 아시아인이란 생각을 잊고 지내는데다가 주로 보는게 백인이다보니 그 얼굴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마저도 낯설게 느껴져서 내가 이방인인 것 같다. 마치 시골쥐가 서울에 와서 정신 못차리는 상황같다.

내가 얼마나 도시 생활에서 멀어져 지냈는지 느끼고 놀랬다. 집이 외곽이고, 회사는 더 외곽이니 자연에 둘러쌓여 소음 없이 살면서 간간히 사람 많고 관광지 느낌 가득한 주말의 도시만 구경하다가 이런 출근길 도시를 마주하고 나니 그 사실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

전기료와 가스요금이 엄청나게 올라서 경제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기료가 하루 시간대별로 등락을 거듭하는 수준은 그냥 몇배, 몇십배가 아니라 몇백배 단위로 등락을 반복한다. 실제 사용시간대에 따라 과금의 단가가 변동하는 요금제를 택한 사람들은 그 시간대별 단가를 보고 언제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돌릴 것인지, 전기자동차를 충전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불필요한 전력망 투자를 막으려면 소비자로 하여금 가격 신호를 통해 피크시간대 전력사용을 줄이고 전력 사용량이 주는 밤 시간이나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량이 많은 한낮 시간에 사용을 늘리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선결과제였다. 시간대별 가격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전기 단가가 평소에 비해 이렇게 껑충 뛰고 나서 전력 소비시간이 전기요금의 규모에 큰 영향을 주니까 사람들이 요금제를 변동제로 돌리고 적극적으로 가격 신호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같은 이코노미스트에겐 이처럼 시장에 크게 쇼크를 주는 일은 자연과학계의 실험과 같은 일이라서 앞으로 이를 통해 들여다볼 것이 참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U 전기시장은 우리나라와 달리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뭔가 하나를 건드리려면 여러가지 사항을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 전력 송배전을 빼고는 시장자유경쟁체제가 도입되어있고 송배전과 같이 자연독점분야는 벤치마킹제도 등을 통해 시장의 효율성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하는 독점 규제가 강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가스 가격이 전기 단가에 큰 영향을 주어 가스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도 하늘 높이 행진하는 커플링 현상을 막기 위해 전기 시장의 가격 결정체계에 영향을 주는 이니셔티브를 도입하는 것도 이번 주 결정되었다. 경제이론적 관점에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의 시장 개편이지만, 이처럼 가격이 너무 치솟하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정치적으로는 어떤 조치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정치 논리도 중요하기에 어쩔 수 없는 차악처럼 선택하게 된 방식이다. 내가 일하는 유틸리티청은 산업계에서는 잘 알지만, 일반 대중은 뭐하는데인지 잘 모르는 곳인데, 요즘 유례없이 매스컴에 많이 오르락내리락할만큼 에너지가 요즘 정말 큰 화두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에너지시장의 충격을 피부로 느끼는데, 세탁기를 시간대별 요금을 확인하고 싼 시간에 돌리는 것을 포함된다. 이에 더불어 전기차 충전기 요금이 오르게 된 것도 있다.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 선발주자로 뛰어들어서 탄탄한 입지를 갖고 있는 Clever는 무제한 충전 상품을 갖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번주에 이 상품을 폐지하고 새로운 변동 단가의 조금 복잡한 상품을 출시했다. 충전회사를 바꾸는게 은근히 번잡한 일이라서 고민고민하다가 대안으로 제시된 상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쉽다. 전기차의 장점이 낮은 연료비용이었는데… 뭐 지금은 무슨 차를 갖고 있든간에 다 연료비용이 올랐으니 받아들여야지…

올 겨울 많이 추울 것 같다. 집에서 잘 껴입고 살아야지. 회사에서도 19도로 실내를 유지하기로 했다지만 이조차도 더 낮아질 지 알 수 없는 일… 정말 특별한 시기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역사책에 남을 현대사의 한 획에 남을 사건을 바로 피부로 겪으면서 말이다.

햇살에 대한 감사

덴마크에 산다는 것은 길고, 어둡고, 음습한 겨울을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11월부터 4월까지 6개월은 거의 겨울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추분을 지나가면 어두운 시간이 급격히 늘어나고, 해가 떨어지고 나면 급격히 어두워진다. 여름엔 해 자체가 엄청 늦게 떨어지는데다가 떨어지고 나서도 진짜 어두워지기까지 한참 걸렸는데 말이다.

이번주는 유독 흐리고 비가 자주, 꾸준히 왔다. 본격적으로 습도가 올라가는 가을은 원래 10월 세넷째주쯤에 시작되는데, 올핸 그 직전 이렇게 저기압이 찾아온 탓에 뭔가 가을이 일찍 찾아온 느낌이다.

해가 짧게 떴는데, 책상에 내려쬐는 햇살에 순간 너무 기분이 좋고 감사했다. 여름이면 덥고 뜨겁다고 불평하는 햇살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불과 5분도 안되어 사라진 햇살 한줌에 불과했지만 그 조차도 소중하다.

이제부터 들어설 본격적 가을과 겨울에 대한 마음 준비가 필요하다. 덴마크에 산 지 9년이 넘었지만 이 겨울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즐기는 활동들이 실내 활동들이라 겨울에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지. 옌스의 활동은 주로 야외에서 이뤄지는 거라 날씨와 일조시간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겨울엔 제약이 큰 편이다. 그래도 올 해는 일주일에 한번이나마 실내에서 외줄타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겠지.

잊지 말고 산책을 좀 다녀야겠다. 틈을 내서.

아이를 통해 나도 다시 그 시절을 겪는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것처럼 어린 시절 기억들은 자주 떠올리던 기억이 아니면 잊혀지는 것이 많다.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어리광을 부렸는지,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잊혀진 어린 시절을 하나를 키우면서 다른 방식으로 다시 경험한다. 아이가 아닌 부모로서, 나라가 바뀌어 새로운 맥락에서.

하나는 신체적 접촉을 매우 좋아한다. 부모가 쓰다듬어주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자기 전 책을 다 읽고 나면 꼭 잠이 들때까지 몸을 쓰다듬어줘야 한다. 그런 연유로 만으로 거의 여섯살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한번도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하나를 재워준 적이 없다. 아이의 부드러운 뱃살을 쓰다듬는 그 따뜻한 감촉을 우리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또 길을 가다가 갑자기 “엄마, 안아주세요.”라던가, “엄마, 뽀뽀.”라면서 신체적 접촉을 원하는 때가 있다. 나는 어땠는가? 전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와 옌스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을 좋아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친구들 중 하나에게 작별 포옹을 하겠다고 안아줄때면 소극적으로 안겨줄 뿐이지 적극적으로 안아주는 건 정말 내키는 경우 아니면 애착을 느끼고자 하는 접촉을 좋아하지 않는다. 꽤나 드문일이더라.

책장을 새로이 사주고 디스코 램프랑 인형집, 전축 등을 그 위에 이쁘게 놔줬더니 자기 방이 큰 애 방같이 느껴졌던 거 같다. 그 다음부터는 저녁엔 방 정리를 제법해서 더이상 전쟁통같은 방에서 재워야 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때로는 같이 정리를 해야하기도 하지만, 정리하다가 딴짓하고 노는 것으로 새는 일이 줄어들면서 같이 정리하기도 수월해졌다. 그런데 어느날 그렇게 함께 정리를 하다가 머리카락 뭉텅이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싶어서 이게 뭐냐고 물었는데, 잘 모르겠단다. 음? 모른다고? 가위가 옆에 보이고, 가위로 싹둑 잘린 흔적이 보이는 머리카락인데? “내가 보기엔 네 머리카락 같은데, 아냐?”라고 재차 물으니, 씩 웃으면서 자기 머리를 어쩌다보니 자르게 되었다면서 죄송하단다. “네 머리카락이니까 미안할 일은 아닌데, 잘못해서 귀를 자를 수도 있고, 눈을 찌를 수도 있으니 머리카락은 엄마 없는데서 자르면 안돼. 그리고 다른 것보다 엄마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돼.”라고 말을 하자 “네.”라고 배시시 웃으면서 답을 한다. 왜 엄마한테 바로 이야기 못하고 모른다고 한건, 말하기 어려워서 그런거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단다. 자기 생각에 엄마가 하면 안된다고 하는 일일 것 같았던 거 같다. 나도 생각해보면 언젠가 앞머리를 바짝 당겨 눈썹 위로 잘랐던 일이 있었던 거 같다. 자르고 나서 머리가 짤뚱하게 올라갔던 기억도 나고. 다만 그래서 울었는지 뭘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때 나도 몰래 했던 것 같은 기억만 어렴풋이 날 뿐. 아이가 잘못된 일이라도 나에게 언제고 솔직히 이야기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제 오늘 옌스가 취미활동을 하는 시간동안 이것저것 하나가 좋아할법한 일들을 하면서 여자들끼리 데이트를 많이 했다. “하나랑 같이 이렇게 데이트하니까 너무 hyggelig하고 좋다.”라는 내 말에, “자기도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신나하는 모습에 나도 마음이 간질간질 따뜻했다. 엄마를 말이라면서 이름이 sommer에 성이 bacon이라고 작명도 해주고, 자기 수레를 끌으라고 이랴이랴 채찍질에 당근도 주고 하면서 그 큰 민속촌을 쏘다녔는데, 나이 든 엄마지만 그나마 이런 걸 해줄 수 있는 체력이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나도 덕분에 즐겁게 구경도 하고 놀다 왔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또 이 나라의 학제도 덕분에 배우면서 학창생활이 어땠는지 되감아 가면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 초등학교 학창 시절 생각하면 3학년과 6학년의 담임선생님이 기억나는데, 특히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 떠오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쉬는시간에 선생님이 우리랑 놀아주시던 기억이다. 성함도 기억나지 않는데, 전두환씨처럼 머리가 벗겨지셨지만 또 얼굴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이들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는데, 연배가 어떠셨는지 모르겠다. 그 선생님이 자기는 기마자세로 단단히 자세를 잡고 서서 옆에서 순서대로 달려오는 애들 배를 잡고 일종의 공중제비를 돌릴 수 있게 해서 반대편 옆쪽으로 다시 뛰어가게 세워주시는 놀이였다. 많은 애들이 했는지, 아니면 내가 해달라고 해서 해주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기억이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선생님과 어떤 관계를 쌓고 커갈지 궁금하고, 그걸 옆에서 간접적이나마 겪고 볼 걸 생각하니 설레기도 한다.

애를 키우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는 다 지나고 나니 애를 키우며 내가 겪는 많은 일들과 배움이 인생을 새롭게 채워주는구나 싶어서 이런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해주는 아이에게, 그 시간을 같이 행복하게 나누고 채워가주는 옌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부모에게서 받는 것과 또 다른 차원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눠주는 아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실내암벽타기

코로나와 관련된 모든 제한조치가 해제된 이른 봄부터 다시 벽을 타기 시작했으니 대충 반년 쯤 벽을 탄 것 같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번, 많으면 서너번도 탔다. 잡생각 따위는 자리잡을 새 없이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이 내 성향에 정말 잘 맞는다. 손의 피부가 거칠어지고 손가락 마디마디와 발가락, 손 발 여기저기에 생기는 굳은 살은 안타깝지만, 사실 크게 상관은 없다. 안느는 거 같은데 천천히 늘고, 어제까지 반밖에 못올라가던 루트를 그보다 몇미터 더 올라가고, 완등하고, 중간에 실패없이 완등을 할 수 있게 되고, 기존에는 생각도 못했던 루트를 올라가게 되고, 기존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오를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강해지게 된다.

클라이밍 자체도 좋지만, 소셜라이징 측면에서도 클라이밍 경험은 긍정적이다. 낯선 사람과 만나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을 크게 즐겨하지 않지만, 벽을 타는 공간에서는 사람들과 대화를 조금 더 쉽게 나눌 수 있다. 어제만 해도 나의 클라이밍 파트너가 일찍 암장을 떠나야 하는 관계로 홀로 남게 되었는데, 딱 봐도 나처럼 혼자서 벽을 타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말을 걸었다. 암장을 새로이 바꾼 체코 대학원생이었는데,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벽을 타고 내려와서 바톤 터치를 하고 장비를 교대하는 타이밍이면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아도 장비를 교대할때마다 대화를 하면 그 또한 제법 시간이 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뭘 공부하는지, 언제부터 등반을 했는지부터 가벼운 사생활까지도. 때로는 잘 모르는 사이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에서는 털어놓기 어려운 일도 가벼운 주제처럼 털어놓을 수 있기도 하고, 생사를 서로의 손에 맡기고 서로의 등반을 응원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유대감과 친밀감이 빠르게 생기게 된다.

엄지발가락 부상으로 암벽타기와 발레 모두를 잠시 중단했다가 암벽등반에 먼저 복귀한지 두주째인데, 발도 천천히 좋아지고 해서 언제 발레에 복귀를 해야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발레를 줄이고 나니 내가 너무 바쁘게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발레를 일주일에 한번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발레를 한동안 확 쉴까 하는 마음도 드는데, 옌스는 취미를 몇개는 가져 두는 것이 지금과 같이 뭔 일이 있어서 하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해서 – 그 말이 맞기도 하고 – 고민이다. 우선 발레는 를르베 상태로 오래 균형을 잡고 서있으면서도 발가락에 통증이 없을 때까지는 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