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개월 하나

자기는 대놓고 한국어 잘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하나. 덴마크어만 아주 잘 하고 발음도 이 또래 애 같지 않게 또박또박 잘한다. 한국어와 덴마크어 간에 격차가 엄청 크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주어진 범위 안에서 노력하는 수밖에.

요즘은 역할놀이에 꽂혔다. 역할에 따라 이름이 바뀌고 나도 그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부여가 된다. 나는 잘 기억하는데, 옌스는 너무 역할이 다양해서 자긴 기억 못하겠다고 한다. 사람과 하는 역할놀이도 있지만 인형들에게 역할을 나눠준 뒤 혼자 다인역할을 하며 놀기도 한다.

프로즌과 라이온킹을 본 후 부모의 죽음이나 자녀의 독립 등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나가 태어나기 전에 옌스와 같이 간 곳에 하나와 처음으로 같이가다가 내가 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더니 자기는 어디에 있었냐 묻는거다. 아직 너는 세상에 없었다 하니 자기를 혼자 어디에 두고 둘만 다녀왔는가 싶었는지 자기 두고 떠나면 안된다고 서럽게 울더라. 그러고 나서 덧붙이길 자기는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네로 비행기 타고 갈거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기를 잘 보살펴 주셔서 다시 행복해 질 거라고. 여기서 빵 터졌다.

사회성이 엄청 좋다. 동네에서 덕분에 아는 사람이 늘었다. 어찌나 인사성이 좋은지. 코로나 때문에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해야하는지라 목청 높여 대화를 시도한다. 간혹 그냥 무시하고 가는 어른들도 있는데, 그럴 땐 자기랑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서운해하기도 하고.

우리 집에 반절이 옷걸이로 사용되는 발레바가 있는데 나머지 반절은 하나의 철봉으로 사용된다 나는 옷걸이가 걸린 쪽을 발레바로 쓰고. 어찌나 힘이 좋은지. 매일 엄청 자주, 또 오래 매달린다. 복근이 덕분에 장난이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표정이 엄청 풍부하다. 또렷하고. 이녀석 나중에 뭘 할런지.

떼를 쓸 때는 또 엄청나다. 음… 시부모님도 하나 보시더니 보통이 아니라며 첫째 조카랑 비슷한 것 같다 하시는데… 평소에는 참 수월한 아이지만 한번 성깔을 부릴 땐 정말 대단하다. 흠…

모두가 자기 새끼 다 이뻐하듯이 우리 눈에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사랑스러운 하나. 계속 이렇게만 자라주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가족과 함께하는 코로나 자가격리 및 재택근무 일상

확인할 길은 없지만, 지난 한 주 코로나로 의심되는 증상을 경험하고 거의 회복이 끝나가고 있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꼬박 집에 있었으니 벌써 만으로 열흘을 집에 콕 박혀있었다. 지금 덴마크는 거의 나라를 닫은 상태다. 공공은 필수 (치안/의료 등)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택근무로 전환되었고 민간에서도 강제로 닫은 부문도 있고 상당수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사재기는 처음 이 조치가 있었던 날 이후 48시간 정도에만 있었고 대부분은 정상화되었다. 식량안보를 정부에서 잘 조율하고 있는 상황.

전원 재택근무 결정이 난 날인 수요일 저녁부터 약간 몸이 으슬으슬한가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목요일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몸살에 마른 심한 기침만 있었는데 월요일 낮부터 수요일 오후까지는 기존 증상에 추가해서 열도 나고 -다행히 38도 정도의 미열이었지만 – 무엇보다 몸이 참 부서지는 거 같이 아프더라. 손발가락 끝까지 아픈 몸살은 또 처음 경험해봤다. 목요일부터는 진통제 먹고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 신종플루보다는 덜하지만 심하게 아프다보니 월요일 낮부터 수요일 낮까지 꼬박 48시간은 회사일/집안일/육아를 모두 손에서 놓았다. 덕분에 옌스가 혼줄이 났다. 그 모든 일을 다 떠맡은 옌스가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정말 고맙더라. 그 와중 옌스와 하나는 가볍게 기침하고 약간 으슬으슬해하는 정도로 끝났다. 어찌나 다행인지.

하나는 재택근무기간 얼마나 잘 지내는지 대견하기 이를데 없다. 아침 6시반-7시 사이에 일어나던 평소에는 졸렵다고 잠투정도 하고 짜증도 많이 냈다. 재택근무 기간 에는 깨우지 않고 알아서 일어나게 두었는데, 평소보다 일어나는 타이밍이 30분 정도 늦어진 대신에 투정부리지 않고 혼자 방에서 걸어나온다. 잠이 살짝 덜 깬 눈으로 휘적휘적 걸어나와 우리를 안아주며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데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물론 양치질을 안한다고 하거나, 수가 틀려서 떼를 쓰고 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간간히 난리를 치기도 하지만, 그거야 뭐 애들이 원래 그런 거고.

우리와 함께 집안에 꼬박 같혀 지내는 이 기간동안 우리의 설명을 잘 받아들여 버텨주고 있다. 회의가 있는 타이밍에는 간간히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집안을 매일매일 폐허로 만들고 (밤에 재우기 전에 싹 치워도 다음날이면 여지없는 폐허…), 자기 혼자하는 가상의 통화놀이에는 “나 지금 회의중이라 바뻐.”, “지금 아파서 남들에게 병을 옮길 수 있어서 밖에 나갈 수 없어.” 이런 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애 식사도 챙겨줘야하고 번갈아가며 애랑도 간간히 놀아줘야 하는 시간을 메우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야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 이틀간 육아와 병행하는 재택근무의 일상에 조금 더 익숙해졌다. 자가 격리가 끝나고 나면 애랑 밖에서도 놀아줄 수 있을테니 집 안에서 혼자 놀아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이나마 해소가 될 수 있겠지.

일하는 중간 애랑 나는 온라인 발레클래스를 따라하기도 하고 옌스는 하나의 장난감을 섞어서 HIIT같은 트레이닝을 놀이처럼 만들어 하나와 함께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사람이 중요한 회의가 있는 경우 다른 사람이 애랑 다른 방에 가서 놀기도 하고, 이제는 중요한 회의 플래닝은 서로의 스케줄을 봐가면서 짠다. 대신 하나도 평소에 30분 이내로 보던 동영상을 1시간 정도로 늘여보게 되었다.

이렇게 하루가 가면 정말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휙 가버린다. 하나가 좀 안쓰럽긴 하지만 지금은 이게 우리가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이고 흔들리지 않고 월급을 줄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기에 하나가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그래도 이렇게 가족끼리 부대껴가며 잘 지내고 있지만, 혼자서 해외생활하다가 이런 상황에 놓였다면 적막과 외로움, 두려움 등으로 정말이지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 상황에 코로나에 걸렸다면… 생각만 해도 두렵다. 예전에 옌스 만난지 얼마 안되서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 정말 너무 아파서 반쯤 몽롱한 상태로 병원 응급실 여는 시간에 (당시 우리 동네 제일 가까운 종합병원은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에 문을 닫았다. 지금도…) 차를 끌고 운전해가 입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전날 오후에 아프기 시작해 바로 그날 밤에 기관지염으로 넘어갈만큼 심했었는데, 그 때 혼자 산다는 게 참 힘들었던 게 기억난다. 그제 막 사귀기 시작했던 옌스가 장도 좀 봐다주고 해서 힘겹게 버틸 수 있었는데, 그나마도 없는 사람이 혼자 아프면 어떨런지 상상도 가고…

굳이 이 상황에서 긍정적인 상황을 찾자면, 모두 바깥 활동을 못하고 집에서 있어야 하다보니, 주말이 너무 바쁘지 않게 가족간의 활동으로만 즐겁게 채워질 수 있어서 좋다는 거다. 발레를 못하는 건 아쉽지만, 온라인 클래스로 바랑 약간의 플로어 연습은 할 수 있고.

또 자가격리 상태에서 배송 폭주 문제로 나흘에서 닷새에 한번 꼴로 배송이 가능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을 보다보니, 간혹 고기나 빵, 등 주문에 있어서 필요한 물량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거나 유통기간의 걱정으로 다소 부족하게 주문할 때가 생긴다. 그러면 창의적으로 요리를 해야하는데, 덕분에 오늘은 도우를 직접 반죽해서 피자도 해먹었다. 이렇게 피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든 건 거의 7년만의 일인 것 같다. 덴마크 오기 전엔 몇번 손반죽으로 해 먹었는데… 이번엔 그나마 다행인 게 반죽기가 있기 때문이다. 물자의 부족 속에서 이렇게 알뜰살뜰 해먹고 사는 재미도 있으니 이게 또 장점이라면 장점일런지?

다들 힘들겠지만, 서로를 위해 조금씩 더 조심하며 생활해 이 위기를 빨리 극복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나이. 변화.

올해 마흔이 된다. 한국 나이로야 이미 마흔이 되었다지만 그 방식으로 나이를 셈하지 않은 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여러가지로 내 일상에 변화가 느껴진다. 과거에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중요해지고 중요했던 것이 중요하지 않아진다. 더이상 외양을 치장하는 일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화장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는 파티에 갈 때 조차도. 하이힐을 신지 않고 무거운 핸드백을 들지 않는다. 화장은 눈과 피부에, 하이힐은 발에 부담을 주니까. 자주 비가오는 날씨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투는 우천시에도 젖을 걱정이 없는 실용적인 것으로 고른다. 셀룰라이트라던가 다른 곳보다 살이 더 붙은 곳 등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신체부위에 대해서도 크게 불평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생일이라던가 남편과의 기념일이라던가  나에게 특별했던 날이 덜 특별하게 느껴지고 이를 기념하는 행위는 매우 의식적으로 해야만한다. 일상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게 무뎌진다.

이런 일련의 차이는 하나를 관찰하는 속에 더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새로운 목걸이, 팔찌, 치마, 원피스, 신발 등 새로운 물건에 감격을 하고 어른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어한다. 또는 또래 언니들을 보고 경외를 하며 그들이 하는 것들을 자기도 하고싶어한다. 생일은 너무나 행복한 거고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감격스럽거나 절망스럽게 느껴지는 등 사소한 일에도 온 몸을 던져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

나이에 맞게 변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그런게 좋은 때도 있겠지만 간혹 그런 걸 뒤집을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의식적인 노력.

작은 두려움의 연속

연봉협상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 센터 성과는 좋았고, 나도 내 담당 업무의 목표를 달성했다. 공무원은 크게 협상 여지가 많지 않다는데 얼마만큼 해야하는데 아직 감이 잘 서지 않는다. 덴마크어로 일하는 데서 오는 생산성 손실을 다른 경쟁력으로 얼마나 메우고 있는지도 불확실한 터라 더욱 그렇다.

매일 매일 작은 불안함을 갖고 지낸다.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큰 부담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전달하지 못할까봐서. 또 언어의 부족으로 인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의견의 강약 조절에 있어서 의도치 않게 실패를 할까봐서. 그래서 조직에 피해를 끼칠까봐. 그 결과로 타인의 시선과 단정적 평가를 받을까봐. 그래서 성과 협상은 더더욱 불안하다.

일년의 기간이 흘러 이제 나는 나대로의 위치가 정해졌고 업무 영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내 위치와 업무 영역은 크든 작든 변해가고 책임도 늘 것이다. 내가 적응을 한다 싶으면 또 변해가겠지.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는 게 두렵다.

사실 정 안되면 관두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될 것 같기도 하면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쩌면 한국어로 했어도 가졌을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런 두려움은 앞으로도 계속 원치않는 친구같이 데리고 나아가야할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왜 두려울까? 내가 가진 원래의 가치보다 낮게 보이는 게 두려운 걸까? 생각을 좀 해 볼 문제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있는 걸까? 실제보다 못나보일까 걱정하는 걸까? 좀 못나보이면 어떤가? 남이 어떻게 평가하는 게 왜 나에겐 그렇게 중요할까? 어려서 높은 기대 수준 속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게 지금도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는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고 달래가야 하나?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이 힘들다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이 불행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 좋고, 감사한데, 그냥 서서히 그런 두려움을 안고 가는 내가 이해가 안된다. 이해를 하려 하는 이 과정이 두려움을 맞이하는 길이 되겠지. 우선은 덴마크어 공부도 하고 업무도 열심히 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가면서… 올 한해 큰 모델 마무리 짓고 보고서고 발안하고, 입법안 초안도 내고 기타 운영업무도 하면 한 해가 흘러가 있겠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2020년 소망사항

길디 길었던 크리스마스 신년 휴가가 끝나가고 있다. 내일 일요일만 지나면 직장에서의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게 된다.

2020년 한해를 맞아 내가 소망하는 일이 몇가지 있다. 목표나 계획이라기 보다는 그냥 소망하고 원하는 것이라고 해두고 싶다.

살을 조금 빼고 싶다. 외양적인 문제보다는 발레를 위해서. 약간의 무게 차이에도 발목과 골반 인근의 근육에 가해지는 하중이 꽤나 달라져서이다. 특히 다리를 들어 올리고 높이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조금 늘어난 1-2 킬로그램의 하중이 부담스럽다.

스크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책을 보는 시간을 늘이고 싶다. 올 하반기 들어서 웹툰을 보는 시간이 늘어서 스크린 사용시간이 많이 늘었다. 조금 더 선별적으로 볼 것만 보고 내려놓고 싶다.

덴마크어 실력을 한단계 올리고 싶다. 연말 마지막날 과거 학원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개인 교습을 받고 싶다고. 학원 강사일을 관두고 사이드로 운영하던 자신의 개인 교습 학원에 전업으로 뛰어든 선생님인데, 이 선생님과 함께하던 5개월 간 실력이 한층 뛰었던 기억으로 개인 교습을 잠시 받아본 적이 있다.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아 프로젝트 일을 하게 되며 시간상의 문제로 관두었는데, 그 이후 바로 취직이 되면서 개인 교습은 더이상 받지 못했었다. 이제 일을 일년 하고 보니 실력 향상에 정체기가 온 듯한 기분이다. 나도 동료들처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정체기. 더이상 내 단계에 맞는 학원이 없어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다지고 싶을 때 쉽지가 않다. 불어처럼 C2 레벨 강의나 시험이 없다. C1 레벨 수업도 매우 제한적이고. 그래서 개인교습을 다시 받아볼 예정이다. 한번 수업에 무조건 최소 한시간 반 (2 lektioner)를 해야 하고 1 lektion에 625kr.니 꽤나 비싸다. 그래도 지난번 수업 들을 때는 895kr.였는데 가격을 많이 내리셨다하니 큰 차이이다. 예전에 돈 내고 학원에서 15명 이상되는 클래스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 6주에 5500kr. 냈던 거 생각하면 개인 클래스에 저렴하다. 아무튼 주당 1회 수업을 들을 예정이다. 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에 하루만 2시부터 한시간 반 수업을 들으려는데 아마 99% 허락해주실 거라 생각한다. 주당 37시간 근무만 채우면 되고 내 일만 마무리하면 되니까. 그리고 업무 역량 향상에 내돈 들이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싶다.

발레를 조금 더 잘하게 되고 싶다. 이건 덴마크어와 마찬가지로 매년 소망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조금 더 새롭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작년 하반기동안 골반 중립과 코어근육 사용방법, 턴아웃 방법, 갈비뼈를 닫는다는 것의 의미, 풀업 등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임신과 출산으로 2-3년 정도 쉬기는 했지만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해오면서 이건가 저건가 끊임없이 고민해오던 이 문제가 올 하반기를 거치며 동시에 풀리기 시작했다. 운동해부학과 발레 관련 동영상과 글을 파고들며 실제 이를 적용한 연습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레티레 상태로 균형을 잡고 서있을 수 있는 요령이 몸에 익었다. 데벨로페 알라세꽁을 90도 이상으로 들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골반에서 소리가 나지 않고 아프지 않게 되었다. 한가지 문제가 아니었었기에 그간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없었던 거다. 이와 함께 턴도 한바퀴 이상을 돌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스포팅이 안좋아서 모멘텀을 금방 상실하긴 하지만. 발레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졌으니 이제 여러 동작들을 조금 더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고 새로운 동작들을 더 배우기에 기반이 다져졌다. 이젠 좀 더 예술적인 표현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싶다. 그리고 포인트슈즈 클래스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된다.

관계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에게 조금 더 따뜻한 엄마가, 옌스에게 더 상냥한 아내가 되고 싶다. 나의 예민함을 조금 더 잘 다스리고 싶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내려놓고 효율성 개선을 통해 중요한 일에 더 집중함으로서 중요하지 않은 일에서 발생하는 갈등요소를 줄이고 싶다. 크게 싸우는 일도 없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말투에 짜증이 섞이는 일은 종종 생기니 그게 싫다.

조금 더 계획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새해가 된다고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중간중간 계기가 있을 때 현황점검을 하고 소망사항을 들여다보는 것이 작년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내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이렇게 또 한번 소망사항을 적어내려가본다.

만으로도 마흔이 될 새해를 앞두고

해외에서 살면서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피할 수 없다. 한국에 있었어도 피할 수 없었겠지만 고민의 차원이 추가된다고 할까. 이 고민이란 게 덩어리가 큰 고민은 아니지만 언뜻언뜻 스치듯이 마음에 자잘한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아마 이 자잘한 고민 자체가 사실은 내가 덜 여물어서인 것 같다. 이제 좀 인간관계 뿐 아니라 인생을 한차례 정리해야 하는 모양이다.

12월 마무리를 보름도 남기지 않은 이 시점. 내년이면 만으로도 마흔이 된다. 나이에 얽메이는 것도 우습지만 옛 성현인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이제 나는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의 나이에 달한 것이니 한번쯤 지금의 내 모습을 뒤돌아보는 것도 중요할 듯 하다. 안그래도 얼마전 거울을 보면서 이제 내 얼굴에 나이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재미가 없는 인간관계는 이제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싶다. 어쩌면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다. 만나서 즐거운 사람들만 곁에 둬도 아까울 시간이다. 특정 그룹에 가까운 사람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경우 그룹으로 만나는 건 정리하고, 관계의 즐거움이 사그라들었지만 습관처럼 남아있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정리해야겠다. 가까움의 정의라는 것도 상대적이긴 하지만 과거 가까웠던 사람을 정리하는 것은 왠지 마음 속 부채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사실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기에 나 혼자 잡고 있던 마음속 끈을 놓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부채감, 죄책감 이 또한 나 스스로 혼자 갖고 있는 허상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라는 걸 그래서 느낀다. 그리고 그런 가정을 꾸릴 때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란 게 한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같이 가꿔나가고 키우도록 노력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느낀다.

옌스와 하나, 내 가족, 결혼으로 연결된 가족, 그리고 가까운 내 친구. 그 외엔 천천히 정리를 해야겠다. 내 마음속의 정리. 그리고 중요한 건 더 가꿔가야지. 그리고 나만의 시간을 다시 찾아야될 것 같다. 나를 성장시킬 시간.

배움의 즐거움

부모님이 나에게 어려서부터 익히 말씀하신 건, 부모님으로서 주고 싶은 건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연배가 드심에 따라 이것 저것 주고 싶은 마음과, 주고 싶은 만큼 주지 못하심으로 인해 생각이 다소 변하신 바도 있겠지만, 나의 성장기동안에는 항상 그를 주지시키셨다. 그리고 나에게 여러 종류의 배움의 기회를 주셔서 그 과정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배움에 대한 다소의 강박이 생겼긴 했지만, 그건 내 성격 탓이고. 

내가 하나에게 주고 싶은 것을 꼽자면 바로 그 배움의 즐거움이다. 배움에는 시기가 없고 배움의 종류에도 제한이 없다는 것도 함께. 

테니스와 배드민턴, 탁구 등 부모님과 함께 했던, 또는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던 (전혀 진지하지 않게 취미/가족 스포츠로서) 운동에서 운동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던 피아노에서 (한때는 속으로 몰래 싫어하면서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참 긴 시간)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사실 발레를 좋아하게 된 건 이런 것들이 다 결합된 취향일 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정교한 몸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발레라는 예술이자 운동이 나에게 얼마나 큰 배움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끊임없는 노력, 미미하지만 끊임없는 발견과 발전, 나의 한계에 대한 인지,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넓히려는 또 다른 노력, 내 몸의 구조와 근육에 대한 이해. 내가 몸담고 있지 않은 예술 직종에 대한 간접적 노출과 이해 등… 

이에 더불어 부모님의 도움으로 일찍부터 시작한 영어나 중국어 학습을 통해 내가 언어에 평균보다 좋은 감각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언어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되었다. 그로 인해 찔끔찔끔 공부한 여러 유럽언어들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지금 덴마크어를 공부함에도 도움을 주고 있기도 하고. 앞으로 덴마크어가 영어보다 더 유창한 언어가 되는 시점에는 또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고자 하지 않을까 싶다. 배움이 주는 즐거움을 아니까. (물론 이게 인스턴트한 즐거움이 아니다보니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게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 배움은 평생을 이어가도 닿을 수 없는, 영원이 풀어가야할 숙제임도 알고 있다. 이 또한 즐겁다는 것도.

하나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바로 이러한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그리 해주셨듯이. 남들보다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어제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연습밖에 없다는 것. 배워봐야 좋고 싫음도 알 수 있다는 것을. 작은 실패와 성공이 자기에게 어떻게 힘이 되는 지를. 얼마나 내가 이걸 잘 알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뭘 알려주고 싶은지 아는 것만으로도 좋은 출발이라 생각해본다.

음악에서 찾는 일상의 행복

일하면서 스포티파이에서 만들어준 내가 자주 듣는 클래식음악 리스트를 듣는데 어찌나 내 취향에 쏙 맞는지. 물론 자주 들은 것에서 뽑은 거니까 잘 맞는 것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잘 맞는 것들을 추린 것이 놀랍다.

내가 좋아하는 드뷔시 곡과 푸치니 곡이 최근에 내가 본 발레, 동백아가씨와 브릭슨에서 연주되었는데, 그 곡들을 듣는 순간 (특히 드뷔시 곡들!) 발레에서 본 장면과 안무가 떠올랐다. 작지만 행복한 추억의 순간!

나의 모습을 그려가기

옛날에 교과서에서 큰바위얼굴을 읽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큰바위얼굴을 닮은 사람을 찾아오던 소년이 나중에 그 바위와 닮은 얼굴을 갖게 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예전의 나는 참으로 내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에게 없으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있던 사람을 볼 때마다 내가 작게 느껴지고, 왜 나는 그런 면모를 갖지 못하는가, 왜 나는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나를 많이도 괴롭혔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모습에 가깝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여전히 많이 멀다. 아니 이제는 이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라는 게 딱히 없어진 것 같다. 그렇지만 예전에 내가 나를 싫어하던 모습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내 못난 점이 훗날 드러날까 싶어 그런 못난 부분을 미리 한껏 꺼내보이는 것이 하나의 예다. 아마도 일련의 드러낸 단점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왜곡된 마음의 결과였던 것 같다. 내 단점을 굳이 감추자는 것도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상대가 관찰하고 발견할 수 있도록 놔두지 않고 그런 점을 불필요하게 다 미리 볼 수 있게 다 끄집어내서 설명하거나 보여줬다. 이런 내 모습이 참 싫으면서도 그렇게 하곤 했다. 그리고 장점은 항상 겸양의 탈을 쓰고 과하게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말이다. 아마 내가 노력을 해서 장점을 보여줬는데도 거절당하는 상황을 방지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30대 초반까지의 나는 컴플렉스 덩어리였다. 외모도 별로고, 왈가닥에 할 줄 아는 건 일밖에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언어에 감각이 있다곤 해도 해외에서 살다온 사람에 비할 바도 아니고. 뭔가 눈에 띄게 뛰어난 게 없던 것 같았다. 오히려 못난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어려서 들었던 코가 조금만 높았다면 더 예뻤을텐데, 이빨만 교정이 잘 되었어도 (내가 인내심을 갖지 못하고 고등학교 때 관뒀다.) 더 이뻤을텐데. (결국 30대에 들어 턱관절 문제의 악화로 내돈 들여 다시 교정했다.) 주변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만 안들었어도 아마 내 이나 코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성격적으로는 내 왈가닥같은 성격으로 좋아하는 애의 관심을 받지 못하자, 그 고민의 결과로 엄마가 성격을 한번 좀 얌전하게 바꿔보자 하고 이야기해주셨는데, 그 성격이 그런다고 바뀔리도 없고, 그냥 내 성격이 단점으로 느껴지게 되는 계기만 된 것 같다. 

그 많은 게 바뀐 건 30대 들어서 심리서에 대해 열심히 읽어가며 나의 감정에 대해 이성적, 분석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옌스를 만나기 시작하면서였다. 외모와 성격을 포함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기뻐해주고, 단점에 대해 조차 장점으로 봐주는 옌스와 함께하며 나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내 모습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다보니, 나에 대한 나의 불만족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변화라는 건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도 머리속에서 만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그냥 나는 나의 장점이 있음을 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다 내 것으로 할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음도 알고. 또 그래서 이제 나를 과도하게 깎아내리거나 칭찬을 과하게 거부한다거나 남을 좋게 평가해주기 위해 나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우아함을 항상 갖고 싶었는데, 그건 나와 너무나 멀리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나를 희화화하고 익살스러운 행동을 하면서 그렇게 하는 나를 혐오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에게도 그러한 면이 있음을 발견했고 그걸 평소 생활에서도 체화하고자 노력했더니 나를 익살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예전엔 이런 체화의 노력을 가식이라 평했을텐데, 그렇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지 말고 노력을 해야 함을 깨달았다. 꾸준함만이 답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게 출발선이니까. 그렇게 나는 나를 그려가고 있다. 

직장 생활 속 내 안에 느껴지는 소소한 변화

지금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새 열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다니.
요즘 들어 내 안의 소소한 변화가 느껴진다. 

1. 업무적으로 팀 안에서 내 위치가 확고해졌다. 원칙적 승인을 받은 모델을 모니터링그룹에 발표했는데 큰 호평을 받았다. 센터 안에서도 크게 칭찬을 받고, 발표를 들은 타부처 동료들에게도 내가 큰 전문성을 갖고 해당 모델을 잘 만들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는 평을 직접 또는 센터장을 통해 들었다. 2021년 입법을 위해 내년까지 모델을 만들고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모델이 구체적 형태를 띄기 시작하니 다른 업무와 연계되는 부분에 대한 협의도 늘어나고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자연히 내 위치도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2. 직장 동료들과 친해지고 내안의 내가 만들어낸 소외감이 사라졌다. 사실 업무하느라 바빠서 점심시간이나 회의시간 이외에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다. 간간히 잘 맞는 동료끼리 커피를 내리러 같이 캔틴에 가곤 하는데, 나는 그냥 혼자 내려가는 편이라 기회가 더 적은 편이다. 딱히 누가 날 소외시킨 것이 아닌데, 내가 스스로를 조금 소외시켰다. 별거 아니지만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두려움(사실 실수 해도 될텐데)이 마음속 깊은 곳에 스몰토크에 대한 불편함을 심어준 것 같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인지, 업무적으로 내 영역이 확고해지면서 내 소속감이 강해진 게 기저의 이유가 된 것인지, 뭐가 계기가 된 지는 모르겠지만, 직장동료들과의 관계가 편해지고 다 가깝게 느껴진다.

3. 언어문제가 많이 흐려졌다. 보고서 작성, 내외부 프레젠테이션, 내외부 회의 및 토론, 유무선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점심시간이나 다과회에서 일어나는 다대다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되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엄청 흐려졌다. 말로 인해 긴장하는 게 많이 흐려지다보니 어디 가서도 크게 위축될 일이 없다. 어쩌면 좁은 네트워크 속에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서로 잘 아는 사람이 한둘씩 끼는 상황들이라 위축이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황별 프로토콜에 대한 문화적, 직업적 이해가 늘어나고 언어 문제가 거의 흐려졌다. 특히 어제 회식에서 시끄러운 와중이 이런저런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하는 와중 나도 ‘이게 무슨 이야기지? 나는 어디에 있는거지?’ 하는 백지같은 상태에 빠지지 않고 다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뭐랄까… 언어면에서 궁극의 테스트를 통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어의 발전은 역시 선형적이지 않고 계단식으로 이뤄지는 게 맞다. 한동안 발전이 안느껴졌는데, 지난 일이주 사이에 비약적 변화가 느껴지는 거 보니 말이다.

어제 회식간 레스토랑에서 옌스와 하나와 잠깐 통화한 후 한장

거의 올해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의 총평은 여기서 일하게 되서 너무 다행이라는 점, 이건 나에게 큰 네트워크를 선물해주고 성장하게끔 해준 아주 긍정적인 일년이라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에 지원서를 써내고 서류전형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사실 채용되면 일은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성장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런 연유로, 공무원이 급여가 높은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만 보람도 있고, 훌륭한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그냥 오래 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옌스에게 이야기를 했다. 옌스도 자기 일이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더 크고 바쁘고, 우리는 애도 있고 하니, 아무래도 업무강도가 컨설팅 같은 사기업보다 낮은 공무원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 물론 여기도 승진하면 바쁘긴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 같으니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고. 내년이 지나고 나면 더이상 내가 외국인이라 느껴지는 나만의 핸디캡 같은 건 완전히 떨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How wonder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