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월 하나

특별히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좋은 게 아니면 하나는 밖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우리를 평균보다 힘들게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 자리에 각자 애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카페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나에게 와서 말을 걸긴 했어도 크게 힘들게 하지 않았다. 아빠랑 주말마다 가는 카페에서도 비슷하게 코너에 아이들 노는 코너가 있어서 그런지 왔다갔다는 해도 같이 먹기에 너무 힘든 아이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기다린다, 순서를 지킨다는 컨셉을 이해하기 시작해서, “우리 이제 기다리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해주면 “Hannah venter! (하나는 기다려요)”를 조잘거린다. 수퍼마켓에서 자기 먹고 싶은 거 사달라고 해서 집어들고 계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면 그때도 “Vi skal betale først! (우리 계산부터 해야해요)”를 외치며 기다린다. 계산대에서 계산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라고 채근을 하기 시작하지만. 또 호기심 가는 물건을 만져보다가도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고 말하면 “Det er ikke vores! (그거 우리 것 아니예요)”라며 내려놓을 줄 안다.

간식은 중간에 주더라도 식사는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에만 하고, 안먹겠다 하면 안먹어도 된다 하고 중간에 끝났으면 식탁을 떠나도 좋다고 한다. 굳이 먹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간혹 안먹는다 하면 한입정도 먹어보겠냐고 물어보는데 서서 한 입 먹어보고 나면 오래지 않아 우리가 앉은 자리에 와서 같이 먹으니 딱히 식사시간에 자리에 앉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굳이 와서 한 두입만 먹고 일어나는 걸로는 뭐라 하지 않는다. 처음엔 음식 남기는 거라든가 애써 만들었는데 안먹는 거라든가 하는 게 마음에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되었는데,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나중에 배고프다고 따로 차려주고 하는 건 없으니 내가 더 육체적으로 힘들 건 없으니까. 안먹는 건 배가 안고파서 그러는 걸 것이라 생각하고 넘기고 나니 마음도 편해졌다. 애가 딱히 작은 것도 아니고, 보육원에서 애들하고 같이 먹으면 잘 먹는다니까 어느 때엔가는 잘 먹게 되겠지. 나도 만으로 9살까지는 진짜 잘 안먹어 작고 빼빼 마른 아이었으니까.

놀 때 순서지켜 놀라고 옆에서 상기시켜주면 순서 잘 지켜 놀고, 우리 것이 아니다 하면 금방 내려놓고, 우는 친구 있으면 안아줄 줄 알고, 인사하고 자리 뜨자 하면 씩씩하게 인사 잘 하고.

간혹 자기가 혼자 하려는 걸 우리가 도와주는 바람에 뒤로 넘어가 울고 난리법석을 떠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도 대부분 그 포인트를 아니까 그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일도 많이 줄었다. 이제 말로 많은 걸 표현할 줄 알고.

넘어지고 해도 잘 안우는 편이고. 높은 데 기어올라가고 뛰어내리고 스릴 넘치는 일들을 엄청 좋아한다. 조심도 하지만 조심보다는 스릴에 무게가 더 실린 듯 하다. 이처럼 힘이 넘쳐 우리가 옆에서 그런 활동을 지지해주다보면 육체적으로는 힘들다. 하지만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한 것 같다. 예민하지 않은 아이다.

기질 탓이 가장 크겠지만 보육원이나 집에서 많지 않은 대원칙만 지키면 대부분은 자유롭게 놔두는 편이라 자기도 그 규칙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다른 애들 사이에서 같이 놀아야하는 환경에 두었을 때 노는 걸 보면 잘 아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 행동하는게 제법 다르다. 아예 공공장소에서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없이 놀면 그건 다른데 내가 만난 친구의 애들과 같이 논다던가 하면 조금 조용하게 관찰을 많이 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편이다. 곧잘 놀기도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조잘조잘하는 게 없어진다.

이제 만 28개월을 채웠는데 정말 많이 컸구나 싶다. 이제는 작은 인간이 되어서 부모와 여러 형태로 상호작용도 하고 대화도 제법 하고. 말이 많이 느니까 이렇게 수월해질 수가 없다. 이젠 예전에 아주 힘들었던 기억은 힘들었던 사실만 기억나지 별로 생각나지도 않는다. 우리야 둘은 안낳을 거지만 이래서 둘 낳는구나 싶기도 하고. 젊었다면, 내가 다른 나라에 이주해 새 커리어를 시작한 것만 아니었다면 애 하나 더 낳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도 저도 아니니 말이다.

시부모님도 나이가 많이 들어가시고 멀리 사시는데다가 우리 부모님은 이역만리 떨어져 계시니 더욱이 기댈 데도 마땅하지 않고. 출산부터 지금까지 급하게 애가 아픈데 휴가를 내기 어려워 하루 이틀씩 시부모님 손을 벌린 거 아니면 우리끼리 다 해야만 했기에 하나 더는 못하겠다. 애야 우리 애지 시부모님이나 부모님 애들이 아니니 못맡아주신다고 서운할 일도 아니고. 출산 이후 애 맡기고 옌스랑 단 둘이 밖에서 저녁식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도 그립고. 하나 더 생기면 그런 게 더 어려워질텐데… 하나로 부모가 되는 기쁨을 충분히 누리고 있으니 이를 두배로 굳이 늘리며 고난도 두배로 늘릴 생각은 잘 안드는 게 아마 나이 탓일 거라 괜한 나이 핑계를 대본다.

앞으로 하나랑 같이 해나갈 여러가지 일이나 기대해보며 한 명만 잘 키워보련다.

어른에게도 엄청 높은 미끄럼틀을 겁없이 타는 하나
뒤에 자기 키의 두배가 되는 장에 (기어 올라가도록 설계) 기어 올라가 뛰어내리기를 다섯번도 넘게 반복했다. 잡아주고 뛰어내리기 도와주느라 나도 힘이 들더라.
그네도 요상하게 타야하고. 재미있게 노는 법은 역시 애들이 잘 안다니까.

자녀을 이중언어로 키우는 어려움

애를 이중언어로 키우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아예 옌스와 한국어로도 대화를 하지만 그게 주가 아니고 우리간에 주언어가 덴마크어이다 보니 하나에게 따로 떼어서 한국어로 바꿔 말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 말에는 한 단어로 표현되는 게 덴마크어로는 두 단어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어서 그 차이를 구분해야 할 때 우리말을 쓰기가 어렵다. 그런 덴마크 단어를 한국어 문장에 섞어서 쓰다보면 내 뇌도 혼란스러워서 아예 덴마크어 문장을 말할 때가 있다. 때로는 하나에게 급히 상황을 설명하고 정확히 이해시켜야 하는 때가 있는데 – 예를 들어 위험한 상황 – 하나의 덴마크어 어휘가 한국어의 그것보다 압도적이어서 덴마크어로 설명하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있다. 이러다 저러다 보면 간혹 덴마크어로 아이와 대화하는 순간이 생긴다.

한국어를 꾸준히 가르치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주변의 인풋이 없이 순수히 나에게서 나오는 인풋만으로 덴마크어환경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게 아이의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주변에서 심어주는 맥락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도 다 힘들다.

직장생활을 하고 주말엔 밀린 집안일과 함께 부족했던 가족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른 사람과 만날 시간이 많지 않다. 또 시댁식구와 각자의 친구와 하나의 보육원 친구와 관련된 사람 등과의 일정을 잡으면 한국어 환경에 하나를 노출시킬 시간도 극히 적다. 한국사람이 많은 환경도 아니고, 또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된다는 것도 아니고. 2세가 한국말을 못하는 일이 많은 걸 이제 잘 이해하겠다.

애 한국어 교육을 노력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현실적 제약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을 갖고 죄의식 같은 것도 갖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사는 거지.

나도 여기서 살기 위해 한국어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살려고 하다보니 더욱 그런거 같다…

살면서 하는 원치않는 환경개선 공사… 불만 폭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해서 꽤나 많이 참았는데 결국 오늘은 폭발하고 말았다. 사건의 발달은 아파트 환경개선 공사. 50-60년대경에 지어진 아파트인데, 외벽쪽에 곰팡이가 피는 집들이 있어서 심하게 핀 집들을 중심으로 건물주에게 해당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안건이 있었다. 같은 건물임에도 집집이 다른 건 환기의 정도가 차이나기 때문인 듯 하다. 우리는 옌스가 환기를 엄청 강조하고 나도 집에서 음식 냄새 나는 걸 그닥 안좋아해서 겨울에도 환기를 꾸준히 하고 봄, 여름, 가을에는 창문을 어딘가는 항상 조금이나마 열고 살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겨울에 밤새 자면서 창틀에 서린 습을 제거해야 하는 정도? 아무튼 그 안건이 급격히 진전되어 전 아파트에 환기시설을 새로이 설치해서 그를 통해 한시간에 십분 정도씩 강제로 환기를 시키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막상 곰팡이가 핀 집들도 그런 대규모 공사를 원한 건 아니고 곰팡이 제거만을 원한거였는데, 각각의 가정집마다 4주를 할애하는 대공사로 일이 커졌다.

우리 집은 북쪽 벽만 벽지가 살짝 떴는데, 그 안에 곰팡이가 피었을 수 있다며 한쪽 벽을 긁어내고 약품처리를 한 후 다시 벽지를 바르고 페인트칠을 한다고 한다. 심한 집은 짐을 다 빼고 호텔생활 하면서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벽 긁어내는 공사는 한 방만 영향을 받은 터라 그냥 이 집에서 지내면서 공사를 견뎌내야 한다는 거였다.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공사가 시작되기 석달간 생각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퇴근해서 애 픽업하기 전에 서둘러 인부들이 다닌 곳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고 물걸레질을 하고, 애 픽업해서 저녁 먹이고 재우고 하면 정말 진이 다 빠지는 거였다. 이 원치않는 공사가 끝나면 환경개선을 위한 공사인 바, 공사비용을 프로젝트 내용연수에 맞춰서 기간배분해 월세도 올려내야 해서 시작부터 짜증이 많이 나있는 상태였다. 4주 동안 다른 종류의 인부들이 와서 각자의 종목에 맞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고로 언제 어떤 인부가 다녀갈지 알 수 없는터라 열쇠를 프로젝트 담당사에 넘기는 것도 너무나 마음에 안들었다. 은퇴한 사람이나 실업자는 집에 있으면서 필요한 때 문을 열어주면 된다지만 일을 하는 사람이 그럴 수 없으니. 회사 직원들은 그냥 열쇠 넘겨주면 된다고, 도난 되는 거 있으면 보험으로 보상받으면 된다는 식이었는데, 사실 이렇게 열쇠 넘겨준 건 보험으로 보상 안된다고 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인데다가, 해당 프로젝트 운영사에서 열쇠 관리를 철저히 한다면서 열쇠를 넘기라고 하고, 그게 안되면 집에 있으라는데… 신뢰는 하나도 없지만 어쩔 수 없으니 열쇠를 넘겼다.

가장 스트레스인 건 정보가 너무 없었다. 무슨 프로젝트를 어떤 순서로 진행하는지, 물건을 얼마만큼 비닐 등으로 커버해야하는지, 먼지가 얼마나 날리는 것인지, 누가 어디로 드나드는지 등 너무 정보가 없었다. 프로젝트에 대해서 아파트 위원회 임원인 옌스가 나보다는 잘 알겠지, 또 내가 너무 나대면 그렇겠지 싶어서 괜히 옌스 옆구리만 찔러대며 상황을 파악해보라는데, 너무 젠틀한 커뮤니케이션만 하는 것 같았다. 아파트 임대주를 대신해 관리하는 회사 프로젝트 책임자와 옌스가 프로젝트 시작일 전날 아침 이야기를 한 후 어느 날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어느날 어디 벽에 구멍을 낼 거니까 그때까지 어떤 준비를 하라고 들었다며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에 내가 퇴근하고 났더니 문 옆에 위아래 층을 관통하는 큰 관이 지나갈 천장과 바닥에 큰 구멍을 뚫은 것이었다. 아직 우리는 준비도 다 안되서 비닐도 안씌워놨는데. 집에 혼자 돌아와 궁시렁궁시렁 짜증을 바가지로 내며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과 표면 걸레질을 다 하고 옌스에게 볼맨 소리를 했다. 그 날 저녁 옌스가 그 이상의 공사는 이번주에 없을 거라고 했는데, 내 예감이 그렇지 않았다. 옆 라인 집에 잠깐 가서 보고 들은 바로는 그 다음 공정이 부엌과 목욕탕 사이 구멍 뚫는 거라고 했었는데… 예감이 안좋아서 해당 위치에 있는 부엌 찬장 위 물건을 다 치웠다. 역시나 다음날 돌아오니 집은 먼지 구덩이에 예상한 위치에 구멍이 떡하니… 옌스가 비닐도 우선 중요한 걸 중심으로 쳐둬서 전날보다는 양호했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궁시렁대고 옌스에게 짜증 좀 내고 참았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참기 어려웠던 게 전혀 통보된 바 없는 출입금지 팻말이 침실에 붙어있는 거였다. 우리 방에 외벽을 중심으로 1.5미터만 공간을 내달라 해서 침대도 다 분해해 접어두고 최대한 정리를 해뒀지만 우리가 출근준비할 때 필요한 물건은 다 방에 있는데.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하나를 픽업해야 하는 시간은 네시 반. 이미 시간은 십분밖에 안남았는데 폭발하고야 말았다. 그 방에 지난 주부터 시작한 발레에 가기 위한 물품이 다 들어있었는데, 오늘 고대하던 발레에 가는 두번째 날이었는데, 그것때문에 장까지 다 봐서 서둘러 돌아왔는데!!! 내가 여지껏 좋게 좋게 참고 있었는데 도저히 이건 참을 수 없다 싶어 옌스에게 내가 직접 전화하겠다고 하고 연락했다. 첫째로 공사한 업체에 연락해보니 내일까지 들어가면 안된단다. 아니 1.5미터 비우라고 들어서 그거 비워줬더니 이건 뭐냐 하니까 그건 관리업체랑 이야기하란다. 그런 정보 전달은 그 업체에서 맡은 일이란다. 둘째로 관리업체랑 이야기해서는 소리만 안질렀다 뿐이지 다다다다 쏘아붙였다. 우리에게 안내한 거랑 공사기간이 달라지는 거, 약속한 것과 계속 달리 공사를 진행해 원치않는 공사를 하며 월세도 올려내야 하는 우리에게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건 도대체 뭐하자는 거냐며.

상대가 갑자기 쩔쩔매며 자기도 그런 상황인 줄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하길래 나도 목소리 높여 이야기 한 점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다는 알 수 없어도 방에 못들어 가는 상황 처럼 큰 변동이 있는 건 전날 미리 알려줘야 하는 거고, 그정도의 최소한의 정보라도 줘야 한다고 하고 몇가지 물어보고 통화를 끝냈다. 그러다보니 하나를 보육원 문닫기 5분 전에 픽업할 수 있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이 공사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원래 3주 걸린다는 공사가 4주 걸리는 걸로 늘어났는데, 4주면 끝나긴 하는건지, 4주 걸리면 비용이 늘어서 월세 인상폭도 늘어날 텐데 도대체 이건 뭔지. 제발 좀 빨리 끝나서 일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덕에 그간 버릴까 말까 고민하던 물건들은 확 버리는 계기는 되었지만…

운동 다시 시작 – 자전거와 발레

살이 제법 쪘다. 작년 가을 한국에 갔을 때만 해도 조금 찌려나 했는데 그 이후로 조금씩 꾸준히 살이 붙더니 도합 6킬로가 늘었다. 회사다닌다면서 운동에서 멀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대학원 다닐때만해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저녁에 운동도 간간히 했는데 겨울 들어가면서 자전거를 타지 않고 통근거리가 길어져서 날씨가 자전거 타기에 적합해져서도 자전거를 타지 않은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거기다가 떨어진 의욕을 탓하며 운동을 하지 않은 것도 큰 원인이고. 회사 식당에서 주는 밥 싸고 맛있다며 열심히 먹은 것도 뺼 수 없을 것이고 하나 밥 먹인다고 매일 밥을 하면서 남기지 않겠다고 줏어먹은 것도 빼먹을 수 없다.

한국에서 가져 온 접이식 작은 자전거와 중고로 여기에서 산 자전거 두개를 갖고 있다. 인구보다 많은 자전거로 유명한 나라이니 나도 여기서 살면 자전거 두대는 기본이지! 뭐 그런 이유는 아니다. 접이식 자전거는 바퀴가 너무 작아서 같은 거리를 뛸 때 기어를 21단으로 최대로 올려도 페달링을 너무 많이 해야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통근용으로는 무리였다. 장점은 작은 크기만큼 무게도 적게 나간다는 점. 10킬로가 조금 넘었던 것 같다. 다른 자전거는 중고로 800크로나 주고 사서 800크로나 들여 정비해 타고 중간에 또 정비하고 갈 거 간다고 800크로나 정도 들인 자전거다. 킬러모스(kildemoes)라고 여기 자전거 브랜드로 새거 주고 사려면 5000크로나 정도 드는 자전거니 딱히 비싸게 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무겁다. 20킬로에 달한다. 기어가 내장기어라 비오거나 눈이올 때 부식에서는 조금 강한데 그런 날씨에 잘 타지 않는 나에겐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내장기어라서 더 무거울 뿐이다.

무거운 자전거로 투덜거릴 때마다 옌스는 하나 새로 사도 좋은데, 내부에 제대로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만 새로 사라고 했다. 사실 옌스도 밖에 주차해야 하는 경우 자전거를 절대 안타고 나간다. 비싼 자전거 도난당할까봐. 여기는 자전거 도난이 워낙 흔해서 그 점 주의해야한다. 그런데 대학원엔 그렇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어서 포기했었고, 또 그렇게 그냥 통근하는 거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 무거운 자전거로 매일 편도 25분짜리 길을 떄로는 왕복으로 때로는 편도로 타고 다녔다. 그런데 회사까지는 편도로 10분 이상 거리가 더 추가되는데다가 다소 높은 언덕길이 두번 추가가 되서 한번 통근 해보고는 너무 힘들어서 뻗었다. 이건 아니다 싶더라.

생각해보니 회사에는 자전거 주차 공간이 직원 주차공간 안에 별도로 구비되어 있다. 직원 신분증을 찍고 들어와야 하는 공간이니 안전하다. 요즘 살이 쪄서 운동 겸 자전거를 타려고 하니 자전거를 사야겠다 하니 옌스가 반색을 하며 훈수를 둔다. 1-2킬로가 크게 차이를 주고 자전거 프레임 구조도 큰 의미를 갖는다며 추천 브렌드를 내민다. 그래서 사기로 한 건 trek 자전거. 가까운 곳에 매장이 있어서 가서 한번 타봤는데 자전거 처음 페달질할 때 느낌이 완전 다르더라. 10.5킬로라는데 내 작은 자전거랑 비슷한 무게에 큰 사이즈인 거니까 색다르더라. 12킬로짜리는 내 키에 맞는 미디움 프레임이 있었는데, 내가 사고싶은 모델은 큰 프레임만 있어서 대충 느낌만 봤고, 다음주에 자전거가 매장에 들어오면 테스트 해보고 사는 것으로 했다. 8500크로나니까 조금 비싸긴 한데 한달에 통근 기차권이 600크로나가 넘는 걸 생각하면 1년여에 원가를 뽑는거고 운동도 겸하는 거니까 크게 비싼 건 아니다. 여름엔 조금 더워서 땀도 나겠지만 출근해서 살짝 샤워를 하고 일을 하면 되니까 땀나는 거에 대한 부담도 없고.

거기에 발레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옌스네 카약클럽 근처에 성인 초중급반 발레반이 있는데 7시 45분부터 시작한다. 버스를 타면 30분 걸리는데다가 30분에 한번 오는 버스라 타이밍 맞추기도 어렵고 옷 갈아입고 뭐 하고 하려면 너무 일찍부터 집을 떠야 하는데, 차가 생겼으니 가는게 너무 힘들 지 않다. 그래서 옌스에게 발레 수업 나가도 괜찮은지 양해를 구했는데 역시나 흔쾌히 지지해줬다. 자기도 저글링한다고 화요일마다 나갔었으니 말이다. 요즘은 팔꿈치 부상으로 조금 쉬긴 해도 다 나으면 다시 나갈 것이기도 하고.

내 몸이 싫어진 순간이 와서 이젠 다시 움직여야 한다. 내 몸이 싫어지면 다시 좋아지도록 해야지. 건강도 다시 찾고. 발목도 많이 좋아졌으니 재활도 해야하고.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은 거 같다. 다시 강인한 몸으로 돌아가야지.

오늘의 에피소드 – 하나와 옌스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아침부터 회의준비를 하느라 바쁜데 옌스에게 문자가 왔다. 하나 보육원에서 픽업해서 집에 같이 있다고. 하나가 보육원 모래밭에서 나오면서 모래밭 담장을 넘다가 고꾸라져서 입술이 찢어졌단다. 보육원에서는 우선 상황이 생기자마자 피가 많이 나서 옌스에게 전화를 했고, 옌스가 서둘러 미팅 몇개만 캔슬하고 돌아와서 보육원에 갔다 한다. 컴퓨터는 켜지도 못했으니 하나 드롭하고 자전거 꺼내타고 회사에 가는데 15분에서 20분 걸리니, 그 사이에 생긴 일이였나보다. 대충 일이 벌어지고 20분정도만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피는 대충 멎어있었단다. 입에는 오렌지맛 아이스바를 물고서. 애를 놀래지 않게 지혈하고 통증도 경감시킬 요량으로 아이스바를 물렸다는데, 나쁘지 않은 방법인 거 같다. 우선 집에 데리고 와서 상처를 깨끗이 씻고 의사이자 세아이의 엄마인 시누이에게 페이스타임을 해보려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단다. 그래서 치과의사셨던 시부모님도 입주변 상처에 대해서 대충 답변을 주실 거 같아 페이스타임을 해보니, 입술은 그정도 상처에 봉합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같고 애도 전혀 이에 대한 통증을 호소하지 않으니 혹시 양치질할 때 잇몸에 부푸는 물집이 잡히는지, 치아 색깔이 변하는지 정도만 관찰하라고 하셨다. 소독약으로 소독 해주고 대충 보아하니 입술이 찢어지긴 했지만 입술 선 밖으로는 괜찮았다. 나는 다 씻기고 난 뒤를 봤으니 그런데, 옌스는 피떡이 앉은 얼굴을 봤었을터라 놀랐을 거 같다.

나도 미팅 내 발표순서를 바꿔서 내 발표를 맨 앞으로 돌리고 자리를 일찍 떴다. 옌스가 집에서 일을 할 동안 나는 하나를 데리고 밖에 유모차에 눕혀 낮잠을 재웠다. 애가 집에서는 침대에서 밤에만 자는 관계로 낮잠은 반드시 유모차에서 재우는데, 옌스가 일을 해야해서 두시반이 되도록 낮잠을 안자고 버텼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하나가 평소보다 길게 거의 두시간이 되도록 낮잠을 자고 수퍼마켓에 갔다. 가서 보육원 애들을 만나 부모들와 애들이랑 잠깐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 반에 있는 루너라는 아이는 하나랑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났더라. 다른 형태로 낙상사고가 있었다는데, 하루 차이로 비슷한 곳에 상처가 나다니. 우연도 참. 회사에서 애 얼굴에 상처나서 옌스랑 일 교대해주러 좀 가봐야 한다니 상사나 선임 모두 자기네 애들 경험담을 알려주면서 애들 사고는 너무 자주 일어나니 그 마음 잘 안다고 위로를 해주더라.

그런데 수퍼에서 또 만난 한 여자애를 빤히 보더니 쟤는 사라예요. 하고 이야기하는거 아닌가. 내가 모르는 보육원 친구인가 해서 걔 이름이 사라냐고 그 애 아빠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 보육원 이름을 얘기하며 걔도 거기 보내냐 물어보니 아니라는 거다. 걔는 우리 하나를 모르는 듯 했다. 어떻게 알지? 싶었는데, 이 동네 살아서 여기 놀이터에서 만났나? 라는 거다. 음… 하나가 애들 이름 외우고 물건 주인 외우는 거 좋아해서 유아원으로 올라간 첫날 애들 이름을 다 외웠다며 놀랬다고 하긴 했는데 이렇게 랜덤하게도 기억할 수도 있는가 하며 팔불출 엄마처럼 놀라워했다. 마침 그 수퍼에서 하나 보육원 미술선생님도 만났는데, 하나 넘어졌을 때 바로 옆에 있었다며 하루종일 하나 괜찮았을 지 걱정했다고, 여기서 만나서 괜찮다고 듣고 나니 안심이 된다고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오히려 아이스크림도 물려주고 얼른 옌스에게 전화해주고 하루종일 신경도 쓰셨다고 해주시는게 내가 고마웠는데… 사실 내가 애를 봐도 있을 수 있는 사고인지라 보육원 탓을 할 일은 아니니 말이다.

내가 머리 빗어주고 묶어주고 나면 내 머리도 빗어주겠다, 묶어주겠다 나서고, 뭐 내가 하나만 하면 자기도 혼자 하겠다고 “Jeg skal selv prøve!” (내가 직접 해볼거예요.) 하고 말하며 나서는 것도 다 대견하고 예쁘다. 나나 옌스가 침대 옆에서 책 읽어주고 잠을 재우는데, 자기가 자기 인형 재워주겠다고 침대 옆에 앉아서 책을 집어 드는 것이 웃기고 엄마나 아빠가 낮잠을 자면 자기가 아끼는 인형과 이불을 갖고 와서 우리 위에 올려두는 것도 웃기다. 자기가 그들이 필요하듯 우리도 그들이 필요할 거라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다.

덴마크어는 말하기도 잘 하고 한국어는 듣기 중심으로만 잘하지만, 하나가 문장을 만들어 말할 때 부정어와 목적어 위치가 간혹 잘못되는 걸 보고 내가 발견한 건 한국어가 덴마크어에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다는 거다. 간식으로 싸주는 딸기 먹은 이야기를 할 때 Jeg jordbær spiste. 라며 나는 딸기 먹었다를 직역해서 말한다든지 Jeg ikke spiser 라면서 나는 안먹을거다라고 이야기하든지 말이다. 처음엔 그냥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자주 말해서 생각이 필요없는 문장은 실수를 안하고 자기가 생각해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 때 이런 실수를 하더라. 요즘에서야 한국어 단어도 책읽으면서 같이 한국어로 따라하며 열심히 익히지 그 전엔 내가 한국어로 읽어주면 덴마크어로 같은 이야기를 따라하곤 했다. 주언어 위에 다른 이중언어를 쌓으면 된다고 하니 그냥 별 부담없이 언어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하나는 잘 할 거 같다. 요즘 과거형도 슬슬 익히기 시작하는 거 같아서 애들의 언어 발달의 신묘함에 놀래고 있다.

오늘은 이 밖에 옌스가 연출한 아주 웃기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나랑 방에서 놀고 있는데 옌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보고 화장실로 와보라는 거다. 되게 민망하면서도 웃긴 표정을 지어서 변기가 막힌 건 아닌거 같고 뭐지? 싶어서 봤더니 변기 위 플라스틱 변좌가 깨진거다. 헐. 어쩌면 그런 일이!! 자기 엉덩이가 큰 건 알았지만 이렇게 무거웠냐면서 웃어대는데. 옌스가 예전에 날렵한 경주용 카약에 자기 엉덩이가 꽉 껴서 힘들었다고 하며 자기 엉덩이 안큰데…라길래 나보다 당신 엉덩이가 크다고 해준 적이 있었다. 키가 커서 상대적으로 작은 거 뿐이지 우리가 옆으로 누워있으면 내 골반 높이보다 당신 골반 높이가 더 높다고, 그리고 엉덩이도 그렇게 살이 없는 건 아니다 라고 해줬었는데. 흠흠. 내가 자주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거라고 말도 안되게 장난으로 우기길래, 나는 변비가 잦은 사람이라 오래는 앉아있어도 자주는 안앉아있는다, 자주 앉는 건 당신이라고 해줬다. 남의 집에서 그렇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지… 그런데 변좌는 어떻게 바꾸지? 나사를 어떻게 푸는걸까? 유튜브를 연구해봐야겠네…

하나의 화해

아직도 간혹 밤에 이유 모르게 하나가 거세게 울며 엄마를 찾는 날이 있다. 흔하진 않지만 간혹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다. 18개월 이후 그런 게 심했던 시기가 있긴 했지만 빈도는 줄어들었다. 주로 엄마를 거세게 찾아서 옌스가 달래기 어렵고, 내가 달랜다 해도 우선은 울어내서 자기가 감정을 한템포 추스를 때까진 건드리면 안된다. 초반엔 달래본다고 안아도 봤는데 오히려 더 애의 감정폭발만 자극하고 말았다.

우선 건드리지 말고 옆에서 조금 달래주다가 하나가 저리 가라고 Gå væk! Lad være!를 외치면 (진짜 속된 말로 지랄한다는 말이 딱 맞을 상태로) 매트리스 깔고 누워서 자라고 달래는 말만 반복해준다. 그러고 자기가 감정을 추스르고 꾹꾹 소리내며 자는 가 싶으면 반드시 한번 또 일어나 서럽게 소리높여 운다. 아마 엄마랑 화해를 꼭 해야하는 거 같다. 이때는 안아달라고 하는 거 보면 말이다. 좀 안아주고 엄마는 하나 사랑한다 그런 말 나누고 다시 토닥여주면 쌓인 울움으로 여전히 끅끅하며 잠든다. 그리고 두어번 깨어나 짧게 소리높여 울고 달래주는 걸 반복하며 잔다. 이런 날은 나는 제대로 자긴 어려운 게 잠이 토막나기 때문이다.

다른 것보다 재미있는 건 그 화해의 프로세스이다. 이 나이의 아이도, 아니 이미 18개월부터 엄마와의 화해가 (나야 감정 상한게 없으니 하나 혼자만의 화해이긴 하지만) 필요하다는 것이 놀랍다. 내가 너무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과소평가를 해온 것 같다. 이렇게 놀라운 존재인데 말이다.

요즘은 why not에 해당하는 말에 꽂혔다. 안된다는 말에 대한 답이 아니라 하나의 웃긴 행동에 우리가 웃겨서 그걸 왜 그렇게 했냐고 묻는 질문에 하는 답으로 말이다. 내 긴 치마를 입는 모숨이 너무 웃겨서 물어보니 Hvorfor ikke? 이런다. 얼마나 웃겼는지.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우리를 더욱 웃게 만들련지 이 장난꾸러기. 🙂

3월 셋째주 기록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옌스와 소파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서 쉬고 있다. 요즘 일하면서 출퇴근 하면서 한국 노래를 많이 듣고 있다. 노래의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라든가 가사를 외우는 노래라든가 하는 게 별로 없는 탓에 그냥 그때 그때 떠오르는 장르의 노래를 듣는게 일상인데, 요즘은 어쩌다 god 노래를 듣게 된 이후로 한국 노래를 듣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20대엔 별로 좋은 지 몰랐는데 30대가 되면서 그 맛이 참 느껴지고 좋아졌다. 어찌나 이렇게 감미롭고 구슬픈지. K-pop 말고 다른 한국 노래는 없냐던 옌스도 김광석 노래는 마음에 든다고 한다. 밥딜런과 닐영 등의 가수를 좋아하는 옌스에게 김광석 노래는 나쁘지 않은 초이스일 거라 생각을 했는데 역시…

오늘 차를 인도받았다. 직불카드로 이렇게 큰 금액을 결제해본 적이 없어서 살짝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결제를 할 수 있었다. 딜러도 괜찮다고 했고 은행 홈페이지에도 잔고내 결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지만, 또 사람 마음이 불안하려면 여러가지로 불안하니까. 매연은 싫다는 옌스와 전기자동차의 승차감을 좋아하는 내가 의기투합하여 고른 건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코나 전기자동차였다. 한번 충전에 500킬로미터를 뛸 수 있는 차는 인기가 너무 좋아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300킬로미터 차량에서 고르면 재고로 이미 있는 건 14일 안에 받을 수 있고 아니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했다. 우리는 재고에서 고르겠다 했더니 흰색, 빨간색, 애시드옐로우 색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애시드옐로우 색으로 골랐다. 흰색은 지루하고, 빨간색은 우리 취향이 아니고, 애시드옐로우색은 옌스가 좋아하는 밝은 연두색과도 맡닿아 있어서 쉽게 골랐다. 6개월 기다리는 건 우리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었으니까.

Acid yellow KONA electric

차값은 옌스가 냈으니 보험료는 내가 내라 해서 보험료는 내가 내기로 했다. 보험도 현대가 노르웨이 보험사랑 제휴해서 하는 것으로 골랐다. 옌스가 내 한국사랑을 적극 지원해주는 것이 참 좋다. 핸드폰 바꿀 때도 중국폰이 조금 더 싸서 그걸로 바꿀까 하면, 한국거 사라고 밀어주거나, 이번 자동차 살 때도 가급적이면 한국차 사라고 하는 것 말이다. 일본차는 사지 말라고 말하는 센스(?)까지 겸비하다니. 😉

하나는 엄청 잘 크고 있다. 모토릭 부분에서도 언어발달에서도 자기 나이보다 훨씬 빠른 발달을 보이고 있고 주변을 잘 챙기는 성격이란다. 덴마크어가 빠르게 늘기 시작하던 시기부터 한국어 사용은 매우 자제하더니 요즘 갑자기 한국어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애를 낳기 전과 애가 돌이 되기 전엔 꼭 한국어로만 말할 거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주변 사람들과 내가 뻔히 덴마크어로 소통하는 게 보이는데 덴마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내 한국어 질문에 하나가 덴마크어로 답을 하면 맞다고 하면서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 반복해 주고, 하나가 질문을 덴마크어로 하면 내가 그걸 또 한국어로 확인해준 후 한국어로 답을 해준다. 한국어로는 하나가 뜻을 모르는 단어의 경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한번 해주고 한국어로 세번 쯤 반복해 답을 해주는데 내가 하는 게 맞는 지 알 방법은 없지만 그냥 밀고 나갈 뿐이다.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 꾸준히 해봐야지.

고집도 성깔도 있지만 엄마가 단호하게 굴 때는 받아들일 줄도 알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고래고래 울만큼 울고 나면 툭툭 털고 일어날 줄도 아는 쿨한 아가씨다. 발레춤 추는 걸 좋아해서 주말에 밖에 나갈 준비하면 발레춤추러 가냐고 하고 머리 빗으면 엉킨 머리 푸느라 땡기는 것 싫어하면서도 자기 전에는 꼭 머리 빗어달라고 하며 등을 내어주는 귀여운 아가씨다. 보육원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몸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 정말 잘 아는 작은 장난꾸러기지만 친구가 울면 가서 안아줄 줄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찍어가며 티비 프로그램을 골라 보지만 막상 조금만 무서운 게 나오면 엄마아빠를 불러 끌어안고 보는 겁도 있는 아가씨.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모두 섞어 갖고 태어난 하나. 우리에겐 너무나 축복같고 감사한 세상에서 가장 이쁜 아이이다. 다른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 사진을 열어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 귀엽고 이쁘고 총명하냐며 탄복하는 팔불출이다. 다들 지금이 제일 이쁠 때라 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가보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단계는 돌을 시점으로 지난 거 같고 아직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시기는 안온 것 같고 말이다. 즐겨야지. 머리와 가슴에 이 시기를 아로새기듯 기억해야겠다.

TV에 푹 빠진 하나

나는 이제 수습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얼마전 상사와 평가 미팅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첫 1-2주동안 덴마크어로 일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건지 걱정하면서 혹시 잘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말하니, 절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라면서 지금 해당 경제분석 프로젝트 너무나 순항하고 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냐면서 놀라더라. 나도 지금은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나도 이걸 할 수 있음도 알고, 덴마크어로 보고서 쓰고 발표하고 이런 일련의 것이 다 가능함을 알기에 그런 걱정은 안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시간이 약이라고, 아직 점심시간 대화는 챌린징하지만 일 면에서는 다행히 잘 굴러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미래 상하수도 요금에 꽤나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기업, 이익단체 뿐 아니라 우리 경영진도 관심을 지대하게 갖고 있다. 경영진과의 미팅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보고의 비중이 늘어나고 하면서 내 이름도 더이상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고 기억해주게 되었으니 이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최소한 잘릴 일이 없을 거란 생각과 함께 조직도 나의 경험을 염가에 쓰고 있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조직이나 나나 윈윈하고 있는 게 아닐까.

발도 이제는 많이 나아져서 어제부로 목발은 졸업했다. 아직 절뚝거리며 걷고 통증과 함께 운동반경이 꽤 제한되어 있지만 천천히 집중해서 조심스레 걸을 땐 절뚝거리는 걸 거의 없앨 수 있을 정도이니 완전 감동이다. 삐면 전치 2주라는 게 이런 건가 보다. 2주정도면 그래도 심한 건 없어지니 말이다.

내일은 시부모님을 뵈러 보언홀름에 갈 거라 대충 가방을 쌌는데 하룻밤만 자고 올 거라 짐이 많지 않아 마무리는 내일 지으면 될 것 같다. 10시 비행기니 서둘러 나가야 하긴 하지만서도 하나 짐은 하나 자는 동안 쌀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나가 얼마나 좋아할런지. 한국에 계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방문은 가을로 미뤄두고 지금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방문으로 족해야지. 덕분에 우리도 코펜하겐을 잠시나마 벗어나보고. 저녁식사 준비도 손에서 놓고 시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 잘 먹고 잘 쉬다 와야지. 다행히 날씨도 나쁘지 않을 거 같으니 말이다. 이제 가서 자야지.

3월 첫 주,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일기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10월 가을방학 일주일을 포함해 그 전주 약간으로 해서 한국 순수체류일정을 10박 10일로 할 수 있도록. 부모님이 이번주에 홍천으로 이사하시면서 나의 주민등록도 홍천으로 같이 옮겨지게 되었고 이번 한국방문 일정의 대부분은 홍천을 중심으로 해 강원도 방문이 주를 이루게 될 것 같다. 공항에서부터 차를 렌트해 바로 홍천으로 갈 예정이다. 그때면 하나도 엄청 많이 커있을 거고, 비행도 조금 더 수월해질 것 같다. 비행기에서 한번도 걷도록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비행기에선 자리를 뜨지 않고 잘 앉아있어서 한국 방문 두번 모두가 쉬웠는데 앞으로는 더 쉬울테니 다행이다. 서울 일정은 출국 전 삼일로 잡았는데, 조금 더 길면 좋겠지만서도 아직은 하나가 어려서 같이 할 수 있는 것도 조금 제한되어 있고 돌아다니기 힘드니까 서울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건 하나가 더 큰 뒤로 미뤄두려한다. 한국가면 블루보틀 커피가 성수동에 문을 열었을테니 거기 한번 가보는 게 계획에 들어있고, 그 외엔 호텔 잡은 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번엔 한국의 자연을 하나에게 많이 보여줄 생각이다.

상사에게 부활절 휴가와 가을 휴가를 메일로 승인 받았다. 이 기간 중 휴가를 쓰고 싶은데 괜찮은가? 라고 메일을 보내니, 물론이지! 캘린더에만 마킹해둬! 라고 답이 왔다. 음…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쌈빡하게 승인을 받다니. 참 구질구질하게 설명해가며 휴가를 쓰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며 왜 꼭 그렇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엔 행사가 많다. 토요일엔 발레 첫수업이 기다리고 있고 일요일엔 자동차를 사고 회사에서 열리는 fastelavnfest에 갈 예정이다. 오늘 드디어 차고 열쇠를 받았는데, 월 400크로나 내고 빌리는 차고라 그런지 안에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전기자동차이니 매연 걱정도 없고, 앞으로도 안에는 깔끔하게 잘 관리해야겠다. 현대 자동차에서 나온 KONA 전기 자동차가 대형배터리 버전으로 2019년 3대 전기자동차로 선정되었다고 하는데, 그 버전은 너무 인기가 좋고 배터리 수급에 문제가 있어서 1년은 기다려야 한다 해서 패스. 옌스나 나나 내연기관차는 더이상 구입하지 않고 싶기도 하고 해서 전기자동차를 구입하고 싶었는데, 가급적이면 한국차를 구입해야하지 않겠냐는 옌스 의견에 따라 현대로 당첨. 사실 KONA 자동차 디자인이 마음에 든게 큰 몫을 한 것 같다. 다만 우리는 빨리 자동차를 사고 싶은 관계로 소형배터리 버전으로 구입하기로 했다. 그건 색상 및 옵션에 따른 재고 현황에 따라 짧게는 14일, 길게는 한달이면 구할 수 있을 거란다. 자동차 보험은 보험회사마다 가격 차이가 꽤나 큰 것 같다. 우리는 현대차와 손을 잡고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르웨이 자동차보험사를 선택할 거 같은데, 덴마크 보험회사의 반값이다. 자동차회사와 서비스센터를 같이 끼고 보험을 제공함으로서 본인-대리인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한 걸까? 차 사고 났을 때 차량 렌트를 제공하는 비용 등에서 자동차회사를 끼고 있으면 싸진 걸까? 자세한 보장내역을 봐야 알겠지만 큰 차이가 없을 걸로 예상되는데… 음…

하나는 유아원으로 옮긴 이후 엄청 조잘조잘 하루 있었던 일과를 설명해준다. 한국어는 매우 제한되어있다. 대부분 덴마크어다. 이걸 못알아듣는다고 해야하는 건지 그냥 듣고 한국말로 번역해 내용을 반복해주면서 그냥 듣고 넘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우선 후자의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한글학교 다닐 나이가 되어 또래 한국친구들을 조금 더 만나게 되면 달라지려나? 유아원은 마음에 든다. 기존에 보육원에 보육지원을 와서 알던 선생님들도 있고, 반대로 보육원에서 유아원으로 자리를 옮긴 선생님도 있어서 하나에게도 연속성이 느껴져서 좋다. 한 지붕아래 보육원, 유아원, 유치원 등으로 삼단계 구분되어 있는 시스템이라 애들이 서로 잘 알며 클 수 있어서 부모도 안심이 된다. 어느새 옮긴지 2주가 넘었다. 친한 친구들도 생겨서 누구누구랑 뭐하고 놀았다고 이야기도 해주고 참… 세월 참 빠르다. 여긴 이렇게 애들이 어려서부터 같이 쭉 크는 경우가 많아서 깊게 사귀는 오랜 친구들이 많은데 이게 외국인 입장이나 타지에서 이주해온 덴마크인 입장에서 친구를 새로 사귀기 어렵게 만드는 진입장벽 역할도 한다. 다 장단점이 있겠지… 발레학원 시작하면 거기서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될테니 그것도 좋다. 지금은 이미 발레복에 빠져서 이번 토요일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벌써 수요일이 다 지나갔다. 또 일하고 퇴근해서 애 픽업하고 조금 놀다가 밥 해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치우면 저녁이 다 가겠지. 그러면 또 하루가 가고 하루가 가고… 벌써 3월의 첫주가 다 가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차곡차곡 일이 진척이 되고 있으니 문제야 없지만 너무 시간이 정신없이 간다는 생각이다. 워킹맘이 된 이래로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즈인가 어디에 hygge가 가고 pyt이 뜬다는 기사가 나온 모양이다. 애들이 뭔가 잘 해보려했는데 안되서 속상해 하거나 원하는데로 안풀려서, 아니면 남이 기분 상하게 해서 마음 상해 있으면 어른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가 Pyt med det! 다. 작년인가 언제 한번 요즘 애들에게 특히 이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굳이 한국식으로 번역하자면, 다 털어버려. 신경쓰지마. 정도될 거 같다. 교수가 애들 키우다 보면 애들이 자기가 꼭 하고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엄청 좌절하고 분노하는 시기가 온다고 하면서 그때마다 자기가 해주는 이야기가 Pyt med det라고 했는데, 그 때 읽었던 기사를 떠올렸었다. 그런데 그게 또 새로운 단어로 뜨고 있다니 참 덴마크의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갖는구나 싶었다. 실패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툭 털어버리라는 건데, 어찌보면 크게 야심차지 않고 그래서 작은데서 행복을 찾는 평균적인 덴마크인의 특성을 보여주는 말인 것 같다. 얼마전에 유아원에서 하나를 픽업하는데, 간식을 먹고 있던 아이들 중 하나가 자기 빵 안먹겠다니까 선생님이 그래도 괜찮아. 라고 하고, 그러다가 빵 다시 먹겠다니까 그래도 괜찮아 라고 하는 걸 봤다. 그러다가 과일을 먹겠다고 하다가 또 안먹겠다고 변덕을 부리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참 느긋하게 말을 해주는데,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문제 없다는 그 느긋함에서 Pyt med det의 저변에 흐르는 덴마크인의 여유있는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회사에서 잘 안풀리는 일 있을 때 초조해하지 말고 Pyt med det!를 외치며 감정을 리셋하고 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첫 데이트 5주년

오늘은 우리가 첫 데이트를 한지 5년이 되는 날이다. 사실 27일에 우리가 무슨 관계냐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기에 그날을 기념일로 하는데, 그래도 또 첫 데이트는 첫데이트 대로 좋은 기억이라 떠올리면 항상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서로 메세지만 주고 받다가 백화점 1층에서 만나 어색하게 포옹을 나누며 인사를 했었는데… 옌스가 좋아하던 단골 카페에 나를 데리고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중간에 공짜로 나눠주는 초콜렛들도 받아가며 걸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발렌타인데이 전날이라 초콜렛의 상업성이 정점을 찍는 타이밍이었던 거 같다.

한참을 이야기하며 옌스는 커피를, 나는 차를 마셨었는데 공통점이 있는 부분도 많고 유머코드도 잘 맞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더랬다. 사실 두번째 데이트는 그날 핸드폰도 잃어버려 다시 사고 좀 기분이 안좋았던 날이라 서로 상대가 자기가 마음에 안들었나 긴가민가했었지만.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남자를 만났나 싶을만큼 훌륭한 남자지만 내가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옌스도 나와 만난 걸 항상 기쁘게 생각할 수 있게 하려한다.

난 별로 로맨틱한 사람은 아니라 옌스에게 간간히 핀잔도 듣는데 로맨스가 많이 사라진 애를 둔 부모라도 역시나 이런 기념일에 꽃을 챙기는 옌스덕에 로맨스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런데 선물을 준비한 건 반칙. 우리 기념일은 27일인데다가 기념일엔 아주 작은 선물만 하기로 해놓고. 시부모님 오셨을 때 시어머님의 도움을 받아서 목걸이를 샀단다. 그리고 오늘 준 건 그래야 나를 놀래켜줄 수 있어서였단다. 콩알만하지만 다이아몬드도 박힌. 선물의 가액이나 그런건 전혀 중요하진 않지만 나를 생각하며 선물을 샀다는 것과, 지난 5년이 자기 삶에서 가장 행복한 5년이었다며 앞으로의 50년도 이렇게 보내자고 적은 작은 쪽지가 너무 좋았다.

지난 5년이 어찌 보면 너무 후딱 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것 같은데 5년 밖에 안갔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인생에 이렇게 누군가가 깊게 파고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다. 앞으로 50년이라. 그 긴 시간도 어느샌지 모르게 훅 지나가 있을 거 같다. 그 사이 경험할 많은 일들과 함께 나눌 희로애락, 모든 것이 다 기대된다.

오랫만에 g.o.d

블로그 이웃님이 g.o.d에 대해 쓰신 걸 보고 대학교때 약간 뒷북치면서 남들보다 늦게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나서 (그분 블로그 댓글엔 고등학교 때라고 썼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데뷔 자체를 내가 대학생이 되던 때에 했던 그룹이었다. 흠… ) 스포티파이를 찾아보니 g.o.d 플레이리스트가 있었다. 길이란 노래를 얼마나 많이 돌려들었던지… 그땐 가사가 참 와닿았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그때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싶어서 씨익 웃음을 지었다.

난 사실 멜로디 중심으로 노래를 듣고 가사엔 크게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닌데, 그때 그들의 노래는 멜로디가 좋아서 듣기 시작했는데 마침 그때의 나에게 그들의 노래가사가 정말 와 닿았다. 아마 멤버들이 내 또래이다보니 그때 그들이 했던 고민이 비슷한 시기의 나에게도 적용되서 그랬던 것 같다. 요즘은 그냥 일할 때 음악을 백그라운드로 깔아놓는 편이라 더욱 가사를 듣기 어려워서 그런걸까? 아니면 그냥 스포티파이에서 내가 원하는 장르로 그냥 가수 구분없이 틀어서 그런거일지 모르겠지만 최근 수년내 새로이 좋아하고 간간히 노래를 찾아듣게 되는 건 Adele외엔 없었던 것 같다.

음악이 재미있는 건 그 때의 감성에 대한 기억을 살려준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기억은 안나도 그때 공감하면서 들었던 고민의 흔적같은 것 말이다. 마치 어떤 특정 향을 맡으면 그 향기의 주인공이 생각나는 것처럼.

간만에 그런 추억을 곱씹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좋은 그룹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