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직장, 첫 출근

계약서 상으로는 5월 1일이었지만 정식 첫 출근은 오늘이었다. 집 페인트칠이다 이사준비다 뭐다 해서 정신없는 와중에 맞이한 첫 출근이라 그런지 막상 아무런 생각 없이 갔다. 그래도 전날 잠이 잘 안와서 설친 거 보면 흥분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늦게 마신 커피의 카페인으로 잠을 못 이루는 것처럼 온 몸에 흥분상태가 유지되는 것 같은 기분. 꿈에 옌스가 무슨 단어의 발음을 교정해주면서 왜 이 발음 자꾸 틀리냐고 하는 것도 나오고, 첫 출근에 상사랑 이야기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잘 안나오고 혀가 꼬여서 자꾸 말이 틀리는 것도 나온 거 보면, 아무런 생각없이 있던 것 같아도 무의식 저편에는 긴장과 걱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까지 재택근무라 회사 건물은 거의 텅텅 비어 있었지만, 오늘 여러 센터에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면접때 쥐 죽은 듯하던 적막은 없고 약간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업무 시작을 도와줄 파트너로 지정된 동료직원이 나를 마중나왔고 전체 건물을 돌며 소개를 해줬다. 전체 인원이 125명이라 하는데, 서로 다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고 할 만큼 잘 알고 지내는 것 같았다. 나도 오늘 짧은 시간동안 우리 부서 뿐 아니라 지원부서의 동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몇 몇은 이름을 외우게 되었으니 시간이 흐르면 속속들이 새로운 동료를 알게되리라 본다. 다들 나를 보면, 우리 인사 안나눈 거 같다며 인사를 청하고 이름을 교환했으니 이게 전체 청의 문화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센터의 장이 새로이 부임해 상당수의 센터장들이 출근을 했는 모양이었다. 청장을 포함해. 우리 센터가 청장과 같은 층에 있는데 도시락의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고 다음 샌드위치를 꺼내려는 타이밍에 내 책상이 있는 사무실에 들어와 새로 온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내더라. 경쟁소비자청의 절반 조금 넘는 크기의 조직이라 그런지 조직 구조도 더 수평적이고, lean한 것 같았다.

경쟁소비자청에 첫출근할 때를 기억해보면 진짜 머리에 엄청난 인풋을 우겨 넣는 기분이었다. 덴마크어로 취직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타이밍에 덴마크어로 일을 시작해야 되는 것 하나, 법령, 시행령 등을 포함해 한 무더기의 보고서를 손에 건내 받고 시작했는데, 생소한 분야의 어휘를 통째로 익혀야 하는 부담이 하나 있었다. 또한 덴마크 직장문화, 회의 문화, 조직 구조, 커뮤니케이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규범을 익히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그래서 첫날 정말 머리가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화 하나하나 집중해서 들어야 간신히 이해되고, 또 뭘 말하거나 쓸때마다 틀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회의에서 자기 소개할 때 뭘 어떻게 말해야 하나, 남들은 어떻게 말하나 관찰하고 내가 튀거나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등도 신경쓰이고 등등… 그래서 첫 한달은 집에 오면 너무너무 피곤했더랬다.

그런데 이번 출근은 우선 산업 분야는 달라도 업무는 연관성이 있는 것들이라 완전 생소하지 않다는 점, 더이상 언어가 큰 장벽이 아닌 점 등이 작용해서 그런지, 매끄러운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동료들도 다 차분하고 좋은 것 같고, 같이 일할 게 기대되는 사람들이다. 그 전 직장도 좋은 동료들이 많았지만, 이번이 더 케미가 잘 맞을 것 같은 느낌… 진짜 느낌적 느낌인 근거 없는 느낌이지만 말이다.

이번엔 너무 달리지도, 너무 나에 대해 부담을 주지도 말고, 천천히 내 페이스 찾아가며 롱런하는 것이 목표다. 이사가 마무리 되면 다시금 내 프로젝트들도 다시 천천히 굴리기 시작하고 말이다. 오늘은 좀 푹 잘 수 있을 거 같다.

페인트칠 스킬 +100

오늘 드디어 거실과 게스트룸/사무실 페인트칠을 완료했다. 두번을 칠하기도 하고 큰 면적을 차지하는 1층에서도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두 공간인데다가 거실은 천장까지 칠해야해서 진짜 힘들었다. 실패를 통해서 배운다고, 게스트룸 1차 페인트칠에서 경험을 한번 쌓고, 거실 천장 1차 칠과 벽 한면 1차 칠을 통해서 경험을 또 한번 쌓은 후에 엄청 많이 배웠다. 그 다음부터는 빠르게 속도를 내서 페인트칠을 했다. 중간중간 작은 레슨을 통해 스킬을 계속 쌓아갔다. 남은 곳이 아직 제법 많지만 우선 가구가 들어가야 하는 공간부터 빠르게 칠을 하면 이사하기 전에 대충 중요한 공간은 마무리할 수 있을 거 같다. 여름휴가때 남은 페인트칠을 조금 더 해야할 것도 있고 살면서 조금씩 고치고 가꾸며 살아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깨에 담이 온 옌스는 괜히 페인트칠하다가 또 무리가 갈까봐 페인트칠에서 빼고 이사짐을 싸달라고 했다. 그것도 힘들긴 하지만, 페인트칠은 마르기 전에 쭉 해야 하는 등 일의 특성상 무리가 더 가기 쉬울 것 같아서. 나도 페인트칠에 속도가 붙으니 힘든 것도 덜해지더라. 페인트칠도 코어근육으로 해야하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팔로 하다가 어깨랑 팔 나가는 줄 알았다. 힘들어 많이도 못하겠더니 요령을 체득하면서 덜 힘들게 빠르게 할 수 있는 요령이 붙더라.

다음 주엔 출근인데 할 일은 태산같고. 출근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안든다. 너무 바빠서. 어쩌면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몸이 힘든대신 쓸데없는 걱정할 시간이 없어서 말이다. 페인트도 새로 사야하는데. 얼른 페인트도 사고 얼른 필요한 방 페인트칠 하고 해서 월요일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게되길…

새집의 열쇠를 넘겨받았다.

4월 21일. 우리 가족에게 역사적인 날. 드디어 우리집 열쇠를 넘겨받았다. 청소 깨끗이 하고 벽에 구멍 막고, 페인트칠 하고, 전등 필요한 곳에 사다가 달면 큰 일은 끝난다. 아. 가구 들이는 것과 이사가 남았지.

매도자가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넘겨줘서 크게 힘을 써서 청소해야 할 건 없더라.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한번 해야할 것 같다. 여러모로 신경을 써줘서 그게 여러 과정에서 느껴졌다. 집에 들어오니 환영의 의미로 놓아둔 튤립하며 하나 탈 수 있게 차고에 그네도 걸어두고 여러모로 신경을 써줬더라. 냉동고도 넘겨줘서 편히 음식을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저녁에 청소도구 및 급하게 사용할 일상 물품 등을 가지고 가서 두었는데 부엌에 수납 공간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알고 있었는데 알아보고 더 놀란? 기존 우리 부엌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새삼 느꼈다. ㅠㅠ

이쁘게 인테리어 하고 살던 매도자의 집 모양으로 반했었지만 깔끔하게 써서 별도로 인테리어 공사 할 거 없이 입주할 수 있는 상태여서 빈 집을 보고도 기분이 좋았으며, 그 전엔 남의 집이라 못했던 모든 공간을 구석구석 보고 더 마음에 들어서 좋았다. 여기가 정말 우리집이구나. 애정을 갖고 그들이 가꾼 공간이구나. 우리도 그래야지…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해서 기쁘다. 여기서 꾸려나갈 삶이, 보낼 많은 시간이 너무나 기대된다.

호사다마

호사다마라는 말을 믿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호사다마라는 말을 알기에 좋은 일이 많은 중에는 안좋은 일들을 조금 더 크게 포착하고 인지하게 되어 마치 마가 낀 것 같이 느껴지는 것 뿐이라 생각한다. 요즘 사사로운 사건 사고가 많다. 2021년, 원하던 집도 사고, 하나 유치원 옮기는 일도 수월하게 되고, 직장도 잡는 등 굵직하게 좋은 일들이 있어서 작은 사건 사고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

고기를 오븐에 굽다가 온도계를 너무 깊게 꼽아 온도 측정이 잘못되고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걸 뺀다는 게 220도의 달궈진 오븐 안에 오래 있던 금속침을 맨손으로 뽑아서 손 끝을 데었다. 뜨거우니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만으로 빨리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예전에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냉동고가 없는 작은 냉장고에 넣어두시며, 조금 이따가 꺼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었던 걸 갖고 두고두고 웃은 적이 있었는데, 딱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나 스스로 두고두고 웃을 이야기다. 아무튼 기름처럼 손에 들러붙는 종류의 것에 덴 게 아니라 빨리 찬물에 담그고 나니 그런대로 심하진 않은 것 같았다. 물집도 잡히진 않았고. 요리할 것들이 있어서 중간중간 아픈게 심해지면 잠시 손가락을 찬물에 담그면서 요리를 했다. 우습게 본 화상이 요리를 하는 와중에 진행이 조금 더 되어 신경도 화상을 입었는지 하루정도 손가락으로 뭔갈 건드리면 바늘로 깊게 쑤시는 듯한 감각을 맛봤다. 말초신경의 위력을 느꼈달까.

그게 다 나을 때 즈음해 샐러드를 칼과 손가락을 이용해 뚝뚝 끊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가락을 베었다. 칼과 맞닿는 손가락만 조심하다가 뭔가 딴 생각을 했는지 샐러드를 잡고 있던 반대편 손가락을 쑥 베어버렸다. 화상을 입었던 바로 그 손가락. 큰 살점이 뚝 떨어져 덜렁거리는데 너무 소름끼치게 아파서 소리도 안나오고 “하악…”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시고 서둘러 지혈을 했다. 옛날에 아빠가 인도에서 손을 크게 베이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잘 하지 못한 지혈을 남자 간호사가 엄청난 힘으로 1분만에 지혈한 기억이 났다. 얼마나 꾹 눌러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 손이기도 하고,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건지 아니까 온 힘을 다해 지혈을 했다. 다행이 한끝이나마 붙어있는 살점을 뚜껑 삼아 누르는데, 1분이 지나서 한번 보면 꼭 한쪽 어디선가 피가 흘러 새어나오는거다. 무엇보다도 온 몸을 관통하며 떨게 하는 통증이 새로웠다. 우선 지혈이 어느정도 된 후에는 진통제부터 먹었다. 만 하루동안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손이 욱신거리고 시큰거릴 정도로 아팠으니 칼로 이렇게 베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만 이틀이 지난 지금은 닿으면 아픈 정도니까 많이 회복된 것 같다.

좀 강력한 진통제로 코디마오뉠이라는 걸 먹었는데, 10%이상이 경험하는 부작용을 겪어 그날 저녁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고생까지 했으니 정말 여러모로 고생한 날이었다.

요즘 내가 부주의해졌나보다. 그래서 사소한데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 같다. 아마 큰 일에 집중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쓰고 나서 그런 거 같다. 좀 조심해야지. 어쩌면 그래서 호사다마라는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일을 치르고 나면 마음이 탁 풀어져서 부주의해지다보니 이런 저런 사고가 많이 나니 주의하라고. 주의하자.

오래된 연인

오늘 잠시 보다만 다큐멘터리에서 롱디를 해 절절한 젊은 커플 이야기가 나왔다. 시작하지 오래 되지 않아 롱디를 시작한 이 커플의 재회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애닲았던 적이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롱디라고 해봐야 연애한지 1년되던 때 쯤에 내 한국 방문 4주, 얼마전 연초에 하나와 한국 방문 3주, 이게 전부였어서 그랬는지, 저렇게 절절한 적은 없었다. 연애 초기에 옌스가 손만 잡아도 떨리고,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녹는 것 같던 시기도 있었지만, 같이 산지 6년에 애가 네살이 넘은 지금은 그런 애닲은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도 옌스가 간간히 다가와 나를 잡아 당기며 그 큰 몸에 푹 덮이게 꼭 안아 내 머리 위에 턱을 얹고 있으면 그 따뜻함에서 사랑을 느낀다.

요즘 그런데 내가 조금 건조했던 것 같다. 이사도 해야하고 준비할 것도 많고 등등 하다보니 옌스에게 많이 신경을 못 쓴 것 같다. 저 포근함을 느낀 횟수가 적었던 것으로 보아 내가 다가갔던 순간들이 적었던 것도 같고. 요즘 옌스가 어깨죽지에 담이 와서 건드리면 아파하니까 안아주거나 쓰다듬어주는 것 조차도 신경쓰이기도 했고. 오래된 연인이 된 건가? 이렇게 관심을 덜 두고 있었다니.

이사하고 정리하면 더 챙겨줘야지… 라는 것 말고 지금도 틈을 내서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히 다뤄야지… 가까이 있다고 당연시 하면 안된다. 가까울 수록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관심 갖고 지켜봐줘야 더 가까워지니까. 오늘 딸기라도 좀 챙겨줘야지. 내 몸 힘들다고 쉬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

내 몸 사용법 이해하기

지난번 한국 방문 때 발레 개인레슨을 받았었다. 춤의 숨이라는 뜻의 릴 드 당스라는 발레스튜디오에서.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lilededanse) 방배동에 있는 이 곳에 가기 위해 홍천에서 2주간의 자가 격리가 끝난 후 바쁜 짬을 내어 두 번의 레슨을 받았다. 세번 받고자 계획을 했으나 내가 지낸 기간 중 몇차례 있던 폭설이 이 중 하루와 겹쳐 한번은 아쉽게도 취소했다. 이 수업 시간 중 크게 춤을 추지는 못했으나 애초에 이 시간은 안무와 동작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몇가지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할애한 것이기에 목적은 완전히 달성했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었던 김유경 선생님. 내 발가락과 발, 허벅지, 엉덩이, 골반 등을 자세히 관찰하고 이래저래 조물조물 만지고 밀고 당기시며 문제를 파악하고 내가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해주셨다. 발레를 하다가 뭔가에서 정체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생길 경우 꼭 상담을 받아보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아무런 금전적 대가 없이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추천한다.)

내 문제는 발가락. 그리고 발의 무게중심, 골반중립이었다. 알고보니 나는 셋째부터 다섯째 발가락은 거의 쓰고 있지 않았다. 발바닥과 엄지, 둘째 발가락만 쓰고 있었던 거다. 발가락 사용과 발의 무게 중심 문제는 연관된 문제였다. 약간의 척추 측만에서 오는 오른쪽 갈비뼈 열림 현상은 이미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던 바이지만, 다시한번 확인했고. 이 것 또한 발가락 사용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발가락 세 개가 문제의 원인이었다니! 골반 중립도 어찌보면 이와 연결되어 있던 게, 발가락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중둔근 사용이 잘 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있는 다리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니 그 중둔근도 워킹다리의 중둔근도 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던 거다. 그걸 골반 앞쪽의 힘으로 뒤로 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걸 교정함으로서 다리를 알라쎄꽁으로 들어올릴 때 잘못된 근육으로 들어올려 야기되던 고질적 골반인근 인대의 통증 문제를 제거할 수 있었다. 또한 다리를 옆으로 90도 이상 들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를르베와 파세도 안정적이 되었다. 또한 무게 중심 이동이 쉬워지면서 춤의 안무간 이동이 안정적이 되었다. 또한 쁘띠 알레그로 센터를 할 때 선생님의 통통 튀는 느낌이 나에게서 안느껴지던 문제도 해결되었다.

수업을 할 때 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의문점을 구체화해낼 수 있다면 그 수업의 핵심 레슨을 수업이 끝나고서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다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개인 레슨이 다소 비싸다 하더라도 나는 가치가 있다 믿는다.

마흔이 된 지금, 나는 그 어떤 시절의 나보다도 균형잡힌 몸을 갖게 되었다. 출산으로 배의 피부가 탄력을 다소 잃은 것은 어쩔 수 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앉으면 배의 피부는 출산 전에는 본 적 없던 미세한 주름을 보인다. 그래도 내 몸에 붙은 근육들이 과거의 어떤 때보다 균형잡힌 형태로 고루 쓰이고 발달했으며, 이는 전신에 해당한다. 이번엔 발가락까지. 목은 길어지고 턱 아래 둥글게 붙어가던 턱살도 없어지고, 어깨는 내려갔으며, 배와 등판 모두에 근육이 고루 붙었다. 두껍다 생각했던 팔뚝 상부는 어깨가 말려 생겼던 현상인데, 이를 잘 펴 앞뒤로 평평하게 만들고 나니 나의 짧은 팔뚝도 두꺼워보이지 않고 그 전보다 덜 짧게 보인다. 이와 함께 항상 달고 살 던 뒷목의 뻣뻣함은 다 사라졌다. 짧아보였던 다리는 길이가 달라지지 않았지만, 골반의 후방경사를 교정하고 중립골반을 찾으면서 다리도 길어보이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 길이를 찾은 거라고 해야하나. 그와 함께 임신 후기와 출산 이후 심각하진 않아도 잘 해결되지 않던 치질문제, 요실금 문제도 해결되었다. 하체 비만으로서 위아래 옷이 항상 두사이즈 차이가 나서 아무리 체중이 적게 나가도 하의는 상의보다 한두치수 크게 입어야 하고, 다리의 체형이 두드러지는 바지를 피해 주로 치마만 입었던 일도 다 졸업했다. 이제 위아래 옷의 사이즈가 일치하고 말이다.

발레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이 아니다. 발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다리를 들어올릴 때 몸 뒷편의 근육을 잘 쓰지 못해 골반 앞쪽 인대에 부담을 줘 왔던 것처럼 무슨 운동을 해도 잘못된 몸의 사용은 부상으로 연결된다.어떤 운동을 하든 그게 내 몸의 균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주 젊을 때만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예전에 몸짱아줌마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을 때 그녀가 사십대였던 것처럼 나도 지금 마흔이고, 나는 앞으로도 내 몸을 끊임없이 튜닝할 수 있다 믿는다. 완벽한 몸의 모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몸을 건강하게 사용하기 위한 형태로 단련하고 잘못된 사용법을 교정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변화는 지난 십년의 시간동안 천천히 일어난 변화이니 말이다. 하나를 고치면 새로운 문제나 부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이를 또 고치고 다른 것을 고치다보면 내 몸의 구석구석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그러다보면 전반적인 균형이 좋아지게 되고 내 몸 사용법을 새로이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구부정한 자세나 여러 문제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장기적 관점에서 이를 관리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애티튜드 드 방

올해 봄은 좀 늦는구나

온도가 많이 낮았던 겨울. 습하지 않고 바람도 최근 2-3년보다 덜 부는 덕에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추운듯이 느껴진 겨울이었다. 하지만 봄이 오는 시기도 덕분에 많이 밀린 것 같다. 온도의 관점에서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긴 한데 식물들이 개화하는 시기가 한달 가까이 뒤로 밀린 것 같다. 일조량과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 대화가 겨우 내내 많이 추웠어서 그런 것 같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던 5시 45분 경, 아직도 해가 떨어니려면 한참 남은 것 같길래 곰감히 생각해보니 이제 하지까지 두달 반 남은 게 기억났다. 그런데 오늘은 우박에 눈이 세찬 바람과 함께 떨어져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다니… 참 변화무쌍하다. 금새 또 해가 나서 저녁엔 다 말랐으니 더욱 변화무쌍하다. 덴마크 사람들 화제에 그래서 날씨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덴마크의 봄은 공식적으론 3월부터이지만 옌스는 항상 봄은 4월부터라 한다. 그리고 눈이 4월에 오는 건 아주 놀랄 일이 아니라고. 나도 지난 거진 8년간 4월에 눈 오는 걸 수차례 봤으니 이젠 정말 놀랍지도 않다.

부활절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아주 이상하고 변화무쌍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이번 부활절 휴가도 역시나 좋은 휴가였다. 하나 업고 걷다가 넘어지면서 하나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가 발목 살짝 빼고 무릎 타박상을 입었는데, 그것도 크게 심하지 않았고.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산책로 경계길은 잔디와 아스팔트 간 높이차를 잘 감안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로이 환기시키는 경험도 했으니 앞으로 큰 사고 안나게 조심해야지. 발목도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심하지 않은 덕에 회복도 빠른 모양이다.

새로 이사하면 하나에게 약속한대로 꽃도 좀 심고 작물도 조그마하게나마 키워야지. 여름은 언제 오려나. 겨울과 달리 여름은 적당하게 덥고 비와 해가 적당하게 섞인 그런 여름이었으면 좋겠다.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눈 오는 4월 6일
온도는 10도가 안되었지만 해가 쨍해서 크게 춥지않았던 4월 4일

내 전용 전기차 구입. 또 다른 현대차

차를 샀다. 우리의 첫 차는 옌스차로, 이 차는 내 차로 하기로 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전 정권에서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의 대대적 지방이전을 했는데, 내가 일자리를 구한 곳도 그 중 하나이다. 별장지역 중 하나인 Frederiksværk이라는 셸란 섬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도시인데, 옌스네 카약클럽 별장이 그 바로 옆 Hundested이라는 곳에 있어서 몇번 차로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었다. 지금 사는 곳에서는 편도 45분 거리. 제법 먼 거다. 고속도로로 대부분을 달리는데 45분 걸리는 거니까. 다행히 앞으로 이사갈 곳에서는 편도 30분. 전직장이랑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차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단점. 코로나 이전에는 주1회 재택근무가 보장되었고, 집에 뭔가 수리하거나 해야 해서 집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경우는 재택근무가 가능했는데 (필요시 재택근무는 일반적 문화) 코로나 이후 주당 재택근무일수가 혹여 늘어난다 하더라도 차는 꼭 필요한거다.

결국 차를 한 대 더 사기로 했다. 역시나 전기차를 사기로 했는데, 전기차는 좀 비싸다는 것이 흠. 따라서 중고차를 사기로 했다. 시작은 르노의 조이를 사려고 했는데, 몰아보니 예상보다 별로라서 현대 Ioniq을 사기로 했다.

처음 들렀던 중고차 매장은 정말이지 야매같은 느낌? 내가 차를 시승해보는데 서류도 없이 몰아보게 하고, 전기차와 관련된 질문을 해도 영 딴소리하고 잘 모르더라. 같은 모델이지만 주행거리가 다른 옆 차도 한번 몰아봐도 되냐 해서 그 사람이 차를 밖으로 빼준다고 했다. 그러고나서 내가 분명히 봤는데, 전원은 켜지는데 시동이 안걸리는 상태였다. 몇번 꼼지락 거리더니 나와서 배터리가 바닥이라고 하는거다. 시동 켜지는 거 봤는데, 무슨 소리냐, 70킬로미터 이상 남았던데, 라고 물어봤더니 그제사 실토한다. 시동이 제대로 안걸린다고. 아… 신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원래 내일 보러가기로 했던 중고차 매장에 들러보라고 옌스가 제안을 해서 그리했다. 딱 봐도 오래된 자동차업체. 중고자동차 업력 25년에 해당 주소에서 20년 매장을 운영했고, 사업자 등록번호 바뀐 바 없이 계속 운영했다는 건, 부도 경험이 없는 안정적인 기업이라는 것. 원했던 차가 좀 상태가 안좋아서 예산과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더니 현대 아이오닉을 보여줬다. 몰고 보니 마음에 드는 것. 지금 우리차인 코나보다는 주행거리가 조금 더 짧지만, 주행내부인터페이스도 같고, 상태도 너무 깨끗하니 마음에 들더라.

옌스가 차값의 80%를 무이자로 빌려주겠다 했다. 월급으로 할부로 사려고 했더니, 금융비용 내지 말고, 자기에게 내라면서. 아니! 무조건 땡큐지요. 차 한대로 버텨보려는 옌스에게 차를 사자고 계속 꼬셨더니, 세컨카에 새차를 너무 낭비라며 중고 사면 자기가 무이자로 대준다는 거다. 열심히 직장생활 해서 차값 갚아야겠다.

나도 큰 의사결정 빨리하고 불도저같이 미는 사람이지만, 옌스도 의사결정 참 빨리하는 사람이다. 현대차를 아껴주는 옌스 덕에 해외서도 한국차 열심히 타는 우리. 옌스의 이러한 한국사랑에 도움을 주고자, 나도 한국어를 더 열심히 써야겠다.

시원 섭섭 달콤 씁쓸 후련 : 이상한 날.

2개월 단기로 일하려던 곳에서 계약 기간의 반의 반절도 채우지 못하고 오늘부로 관뒀다. 3개월 미만의 계약은 노티스 없이 관둘 수 있어서 결정을 내리자마자 관둘 수 있었다. 내 사정에 의해서 계약기간의 두달에서 2주를 못채우고 빨리 관두게 되는 것이라 가급적 회사측 입장에 맞춰서 관두려고 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커서 최대한 빨리 관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며 지나간 다리를 태우는 것 같은 기분이라 피하고 싶었던 결정이었지만, 괜히 오래 있다가 괜히 감정만 더 상하고 나올 것 같아서 차라리 빨리 관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들었다. 이렇게 정리하게 된 건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리하는 게 나에겐 더 나을 거였다.

친구네 조부모님이 픽업해서 같이 놀고 저녁까지 먹고 오기로 한 하나를 하나 친구네 집에 가서 픽업하고 돌아오는 길에 메일이 와서 보니 계약서가 도착해있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잡 오퍼에 사인을 해서 연봉 합의를 했었는데, 그걸 토대로 계약서가 도착해있었다. 그에 서명을 해서 송부를 하는데, 앞으로의 프로세스를 메일로 간략히 오리엔테이션해주고, 업무 시작 얼마 전에 각종 참고할 자료를 보내준다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해본 덴마크 직장은 중앙정부기관이고 이번에도 그렇다보니 다른 곳은 모르겠어도 중앙정부기관은 이런 스탠다드 프로세스가 있다. 그런데 직원 고용규모로 보면 이런 두 기관에 비해 훨씬 큰 내 전 직장은 아직도 사람보다 숫자, 성과가 중요해서 그 숫자와 성과를 뒷받침하는 게 사람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사람은 내가 신뢰를 받고 내가 하는 일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조직과 일에 대한 열정이나 신뢰가 없어지고, 결국 조직 이탈이 이뤄지는 것일텐데.

오늘은 어찌되었든 간에 문을 하나 닫고 다음 문을 하나 여는 작업을 한 날이 되어버렸다.

번역일 하던 것도 초벌을 마무리지어서 내일 검토해서 보내는 일만 남았으니 그것도 좋았고. 시행령을 번역해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의외로 상업번역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해보고 나니 에세이나 소설 같은 걸 번역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번 느껴졌다. 상업 번역은 감정선을 살리는 미묘한 형용사와 부사가 난무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빠르게 번역할 수 있었다. 뒤로 갈 수록 문장의 형식과 내용에 익숙해지니 속도도 붙고.

어느새 3월도 거의 다 가버렸다.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까지 한달여가 남았고, 이사까지도 한달 반정도 남았다. 남은 기간 열심히 여기저기 페인트질하고 청소하고 살 것 사고 옮기고 하면 또 다음 한 달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흘러있을 거 같다.

시원섭섭하고 달콤하고 씁쓸함과 후련함이 동시에 교차하는 이상한 날이었다. 날씨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대비가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잠을 자고 나면 내일은 그냥 상쾌한 새로운 하루가 되겠지. 인간에게 잠이라는 게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Værløse, 새로운 터전

여러가지가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다. 5월 7일부 이사를 가게 되면 새 지자체에서 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제일 이른 날짜가 6월 1일인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치원 자리가 나서 바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보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할 지 몰라서 그냥 보내기로 했다. 안에 들어가서 본 건 아닌데 유치원 밖에서 봤을 땐 규모도 적당하고 괜찮아보였다. 지금 유치원에 익숙해져 있어서 너무나 아쉽긴 하지만, 또 하나에게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말이다. 마침 한국에 다녀온 한달 사이에 친구들의 다이나믹이 달라졌는지, 자기가 놀이를 만들어내는 인기있는 주축이었던 것에서 조금 밀린 탓에 간간히 재미없다고 불평도 하고 집에 있고 싶다고도 하는데, 새로운 유치원에 가기 전에 그런 경험을 작게나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집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넓어보이거나 좁아보이는 곳 등 방이나 구획마다 느낌이 달랐다. 전체적으로 마음에 쏙 들고, 여기가 내 집이 될 곳이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일부러 짐 싸기 전에 불러서 집의 느낌을 보여주는 매도자의 마음 씀씀이도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집을 어떻게 쓸 수 있을 지에 대한 느낌이나 그런 것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실용적인 것들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도 듣고 알찬 한시간을 보내고 왔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대신에 지하 창고도 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공동 공간도 있고, 차고도 널찍하고 해서 이런 곳들에 있는 짐들을 잘 보관할 장소들이 있을까 했더니 왠걸… 다 곳곳에 수납공간이 숨어있었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니 자연이 큰 틀을 차지하고 있는 동네였다. 집집 사이사이마다 작은 공원이나 오솔길이 숨겨져있고, 약간 외곽으로 벗어난 곳 답게 높은 건물이 없어서 시야가 탁 트여있고 말이다. 그 동네 사는 사람들 중에 동네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못봤다. 우리 집을 팔고 나가는 매도인은 바로 같은 길 끝의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가고, 하나 친구네 조부모님도 같은 길에 사신다는데 이번 7월에 같은 동네 다른 집으로 이사가신단다. 나쁘지 않은 사인… 벌써 기대가 너무나 된다. 이사를 가서 우리 터전을 다질 그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