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아침 출근시간의 시내 모습

출근시간에 코펜하겐 시내에 나온 건 정말 오래간만이다. 주차자리를 다행히 찾아서 차를 대고 조금 걸어서 가까운 카페로 이동하는데 아침 도시의 소음과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언더톤의 도시 소음을 들어본 게 얼마만인가.

낯선 도시 소음을 마주하고 나니 마치 내가 여행지로서 낯선 도시에 서있는 것 같았다. 도시를 구경하거나 여유를 즐기는 사람은 없고 다들 분주히 이동하는 모습.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 구분 없이 다 바빠보인다. 주말에는 들리지 않던 공사장의 소음, 지게차의 경고음, 도시의 언더톤에서 시끄러운 소음을 담당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분주히, 무표정한 얼굴로 자전거를 타고 쌩쌩 지나가는 사람을 보니 낯설다. 걸어 다니며 내 얼굴을 볼 일이 없기에 내가 아시아인이란 생각을 잊고 지내는데다가 주로 보는게 백인이다보니 그 얼굴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마저도 낯설게 느껴져서 내가 이방인인 것 같다. 마치 시골쥐가 서울에 와서 정신 못차리는 상황같다.

내가 얼마나 도시 생활에서 멀어져 지냈는지 느끼고 놀랬다. 집이 외곽이고, 회사는 더 외곽이니 자연에 둘러쌓여 소음 없이 살면서 간간히 사람 많고 관광지 느낌 가득한 주말의 도시만 구경하다가 이런 출근길 도시를 마주하고 나니 그 사실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

전기료와 가스요금이 엄청나게 올라서 경제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기료가 하루 시간대별로 등락을 거듭하는 수준은 그냥 몇배, 몇십배가 아니라 몇백배 단위로 등락을 반복한다. 실제 사용시간대에 따라 과금의 단가가 변동하는 요금제를 택한 사람들은 그 시간대별 단가를 보고 언제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돌릴 것인지, 전기자동차를 충전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불필요한 전력망 투자를 막으려면 소비자로 하여금 가격 신호를 통해 피크시간대 전력사용을 줄이고 전력 사용량이 주는 밤 시간이나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생산량이 많은 한낮 시간에 사용을 늘리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선결과제였다. 시간대별 가격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전기 단가가 평소에 비해 이렇게 껑충 뛰고 나서 전력 소비시간이 전기요금의 규모에 큰 영향을 주니까 사람들이 요금제를 변동제로 돌리고 적극적으로 가격 신호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같은 이코노미스트에겐 이처럼 시장에 크게 쇼크를 주는 일은 자연과학계의 실험과 같은 일이라서 앞으로 이를 통해 들여다볼 것이 참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U 전기시장은 우리나라와 달리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뭔가 하나를 건드리려면 여러가지 사항을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 전력 송배전을 빼고는 시장자유경쟁체제가 도입되어있고 송배전과 같이 자연독점분야는 벤치마킹제도 등을 통해 시장의 효율성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하는 독점 규제가 강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가스 가격이 전기 단가에 큰 영향을 주어 가스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도 하늘 높이 행진하는 커플링 현상을 막기 위해 전기 시장의 가격 결정체계에 영향을 주는 이니셔티브를 도입하는 것도 이번 주 결정되었다. 경제이론적 관점에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의 시장 개편이지만, 이처럼 가격이 너무 치솟하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정치적으로는 어떤 조치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정치 논리도 중요하기에 어쩔 수 없는 차악처럼 선택하게 된 방식이다. 내가 일하는 유틸리티청은 산업계에서는 잘 알지만, 일반 대중은 뭐하는데인지 잘 모르는 곳인데, 요즘 유례없이 매스컴에 많이 오르락내리락할만큼 에너지가 요즘 정말 큰 화두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에너지시장의 충격을 피부로 느끼는데, 세탁기를 시간대별 요금을 확인하고 싼 시간에 돌리는 것을 포함된다. 이에 더불어 전기차 충전기 요금이 오르게 된 것도 있다.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 선발주자로 뛰어들어서 탄탄한 입지를 갖고 있는 Clever는 무제한 충전 상품을 갖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번주에 이 상품을 폐지하고 새로운 변동 단가의 조금 복잡한 상품을 출시했다. 충전회사를 바꾸는게 은근히 번잡한 일이라서 고민고민하다가 대안으로 제시된 상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쉽다. 전기차의 장점이 낮은 연료비용이었는데… 뭐 지금은 무슨 차를 갖고 있든간에 다 연료비용이 올랐으니 받아들여야지…

올 겨울 많이 추울 것 같다. 집에서 잘 껴입고 살아야지. 회사에서도 19도로 실내를 유지하기로 했다지만 이조차도 더 낮아질 지 알 수 없는 일… 정말 특별한 시기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역사책에 남을 현대사의 한 획에 남을 사건을 바로 피부로 겪으면서 말이다.

햇살에 대한 감사

덴마크에 산다는 것은 길고, 어둡고, 음습한 겨울을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11월부터 4월까지 6개월은 거의 겨울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추분을 지나가면 어두운 시간이 급격히 늘어나고, 해가 떨어지고 나면 급격히 어두워진다. 여름엔 해 자체가 엄청 늦게 떨어지는데다가 떨어지고 나서도 진짜 어두워지기까지 한참 걸렸는데 말이다.

이번주는 유독 흐리고 비가 자주, 꾸준히 왔다. 본격적으로 습도가 올라가는 가을은 원래 10월 세넷째주쯤에 시작되는데, 올핸 그 직전 이렇게 저기압이 찾아온 탓에 뭔가 가을이 일찍 찾아온 느낌이다.

해가 짧게 떴는데, 책상에 내려쬐는 햇살에 순간 너무 기분이 좋고 감사했다. 여름이면 덥고 뜨겁다고 불평하는 햇살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불과 5분도 안되어 사라진 햇살 한줌에 불과했지만 그 조차도 소중하다.

이제부터 들어설 본격적 가을과 겨울에 대한 마음 준비가 필요하다. 덴마크에 산 지 9년이 넘었지만 이 겨울은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즐기는 활동들이 실내 활동들이라 겨울에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지. 옌스의 활동은 주로 야외에서 이뤄지는 거라 날씨와 일조시간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겨울엔 제약이 큰 편이다. 그래도 올 해는 일주일에 한번이나마 실내에서 외줄타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겠지.

잊지 말고 산책을 좀 다녀야겠다. 틈을 내서.

아이를 통해 나도 다시 그 시절을 겪는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것처럼 어린 시절 기억들은 자주 떠올리던 기억이 아니면 잊혀지는 것이 많다.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어리광을 부렸는지,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잊혀진 어린 시절을 하나를 키우면서 다른 방식으로 다시 경험한다. 아이가 아닌 부모로서, 나라가 바뀌어 새로운 맥락에서.

하나는 신체적 접촉을 매우 좋아한다. 부모가 쓰다듬어주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자기 전 책을 다 읽고 나면 꼭 잠이 들때까지 몸을 쓰다듬어줘야 한다. 그런 연유로 만으로 거의 여섯살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한번도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하나를 재워준 적이 없다. 아이의 부드러운 뱃살을 쓰다듬는 그 따뜻한 감촉을 우리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또 길을 가다가 갑자기 “엄마, 안아주세요.”라던가, “엄마, 뽀뽀.”라면서 신체적 접촉을 원하는 때가 있다. 나는 어땠는가? 전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와 옌스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을 좋아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친구들 중 하나에게 작별 포옹을 하겠다고 안아줄때면 소극적으로 안겨줄 뿐이지 적극적으로 안아주는 건 정말 내키는 경우 아니면 애착을 느끼고자 하는 접촉을 좋아하지 않는다. 꽤나 드문일이더라.

책장을 새로이 사주고 디스코 램프랑 인형집, 전축 등을 그 위에 이쁘게 놔줬더니 자기 방이 큰 애 방같이 느껴졌던 거 같다. 그 다음부터는 저녁엔 방 정리를 제법해서 더이상 전쟁통같은 방에서 재워야 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때로는 같이 정리를 해야하기도 하지만, 정리하다가 딴짓하고 노는 것으로 새는 일이 줄어들면서 같이 정리하기도 수월해졌다. 그런데 어느날 그렇게 함께 정리를 하다가 머리카락 뭉텅이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싶어서 이게 뭐냐고 물었는데, 잘 모르겠단다. 음? 모른다고? 가위가 옆에 보이고, 가위로 싹둑 잘린 흔적이 보이는 머리카락인데? “내가 보기엔 네 머리카락 같은데, 아냐?”라고 재차 물으니, 씩 웃으면서 자기 머리를 어쩌다보니 자르게 되었다면서 죄송하단다. “네 머리카락이니까 미안할 일은 아닌데, 잘못해서 귀를 자를 수도 있고, 눈을 찌를 수도 있으니 머리카락은 엄마 없는데서 자르면 안돼. 그리고 다른 것보다 엄마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돼.”라고 말을 하자 “네.”라고 배시시 웃으면서 답을 한다. 왜 엄마한테 바로 이야기 못하고 모른다고 한건, 말하기 어려워서 그런거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단다. 자기 생각에 엄마가 하면 안된다고 하는 일일 것 같았던 거 같다. 나도 생각해보면 언젠가 앞머리를 바짝 당겨 눈썹 위로 잘랐던 일이 있었던 거 같다. 자르고 나서 머리가 짤뚱하게 올라갔던 기억도 나고. 다만 그래서 울었는지 뭘 어쨌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때 나도 몰래 했던 것 같은 기억만 어렴풋이 날 뿐. 아이가 잘못된 일이라도 나에게 언제고 솔직히 이야기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제 오늘 옌스가 취미활동을 하는 시간동안 이것저것 하나가 좋아할법한 일들을 하면서 여자들끼리 데이트를 많이 했다. “하나랑 같이 이렇게 데이트하니까 너무 hyggelig하고 좋다.”라는 내 말에, “자기도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신나하는 모습에 나도 마음이 간질간질 따뜻했다. 엄마를 말이라면서 이름이 sommer에 성이 bacon이라고 작명도 해주고, 자기 수레를 끌으라고 이랴이랴 채찍질에 당근도 주고 하면서 그 큰 민속촌을 쏘다녔는데, 나이 든 엄마지만 그나마 이런 걸 해줄 수 있는 체력이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나도 덕분에 즐겁게 구경도 하고 놀다 왔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또 이 나라의 학제도 덕분에 배우면서 학창생활이 어땠는지 되감아 가면서 생각해볼 수 있겠지. 초등학교 학창 시절 생각하면 3학년과 6학년의 담임선생님이 기억나는데, 특히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 떠오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쉬는시간에 선생님이 우리랑 놀아주시던 기억이다. 성함도 기억나지 않는데, 전두환씨처럼 머리가 벗겨지셨지만 또 얼굴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이들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는데, 연배가 어떠셨는지 모르겠다. 그 선생님이 자기는 기마자세로 단단히 자세를 잡고 서서 옆에서 순서대로 달려오는 애들 배를 잡고 일종의 공중제비를 돌릴 수 있게 해서 반대편 옆쪽으로 다시 뛰어가게 세워주시는 놀이였다. 많은 애들이 했는지, 아니면 내가 해달라고 해서 해주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기억이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선생님과 어떤 관계를 쌓고 커갈지 궁금하고, 그걸 옆에서 간접적이나마 겪고 볼 걸 생각하니 설레기도 한다.

애를 키우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는 다 지나고 나니 애를 키우며 내가 겪는 많은 일들과 배움이 인생을 새롭게 채워주는구나 싶어서 이런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해주는 아이에게, 그 시간을 같이 행복하게 나누고 채워가주는 옌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부모에게서 받는 것과 또 다른 차원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눠주는 아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실내암벽타기

코로나와 관련된 모든 제한조치가 해제된 이른 봄부터 다시 벽을 타기 시작했으니 대충 반년 쯤 벽을 탄 것 같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번, 많으면 서너번도 탔다. 잡생각 따위는 자리잡을 새 없이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이 내 성향에 정말 잘 맞는다. 손의 피부가 거칠어지고 손가락 마디마디와 발가락, 손 발 여기저기에 생기는 굳은 살은 안타깝지만, 사실 크게 상관은 없다. 안느는 거 같은데 천천히 늘고, 어제까지 반밖에 못올라가던 루트를 그보다 몇미터 더 올라가고, 완등하고, 중간에 실패없이 완등을 할 수 있게 되고, 기존에는 생각도 못했던 루트를 올라가게 되고, 기존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오를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강해지게 된다.

클라이밍 자체도 좋지만, 소셜라이징 측면에서도 클라이밍 경험은 긍정적이다. 낯선 사람과 만나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을 크게 즐겨하지 않지만, 벽을 타는 공간에서는 사람들과 대화를 조금 더 쉽게 나눌 수 있다. 어제만 해도 나의 클라이밍 파트너가 일찍 암장을 떠나야 하는 관계로 홀로 남게 되었는데, 딱 봐도 나처럼 혼자서 벽을 타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말을 걸었다. 암장을 새로이 바꾼 체코 대학원생이었는데, 수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벽을 타고 내려와서 바톤 터치를 하고 장비를 교대하는 타이밍이면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아도 장비를 교대할때마다 대화를 하면 그 또한 제법 시간이 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뭘 공부하는지, 언제부터 등반을 했는지부터 가벼운 사생활까지도. 때로는 잘 모르는 사이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에서는 털어놓기 어려운 일도 가벼운 주제처럼 털어놓을 수 있기도 하고, 생사를 서로의 손에 맡기고 서로의 등반을 응원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유대감과 친밀감이 빠르게 생기게 된다.

엄지발가락 부상으로 암벽타기와 발레 모두를 잠시 중단했다가 암벽등반에 먼저 복귀한지 두주째인데, 발도 천천히 좋아지고 해서 언제 발레에 복귀를 해야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발레를 줄이고 나니 내가 너무 바쁘게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발레를 일주일에 한번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발레를 한동안 확 쉴까 하는 마음도 드는데, 옌스는 취미를 몇개는 가져 두는 것이 지금과 같이 뭔 일이 있어서 하나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해서 – 그 말이 맞기도 하고 – 고민이다. 우선 발레는 를르베 상태로 오래 균형을 잡고 서있으면서도 발가락에 통증이 없을 때까지는 쉬기로…

심리상담을 통한 내적변화를 느낀다

매주 받던 심리상담을 격주에 한번으로 줄였다. 한달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상황이 많이 좋아진 덕이다. 요즘은 굳이 업무가 아니더라도 일과 관련된 생활에 있어서 나를 두렵거나 불편하게 해 피하고자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그 때 내 마음 속 소리가 어떤 건지, 그 소리가 왜 내 마음속의 소리에 불과한지 설명도 듣고, 실제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봐야할지, 그래서 이 마음 속 근거없는 두려움의 소리가 근거 없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이런 두려움들이 하등에 두려울 것이 없는지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모든 상담의 기본 원리는 간단한데 내 뇌가 오랫동안 움직여왔던 자동화된 방식을 다른 방식으로 돌리는 거라 일정 기간 반복적인 상담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정말 짧은 시간동안 내가 오랜 시간 갖고 있던 두려움들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아서 오히려 이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사실 같은 이유로 지난 직장을 관둔건데 그때 이런 도움을 받았으면 달랐을까? 모르겠다. 우선 상담 자체를 받음에 있어서 언어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부족함을 나도 많이 느끼고 있던터라 그게 내 머리속 두려움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때 상담을 받았으면 더 좋아졌을지도 모르지만. 뭐 그걸 지금 생각해서 달라질 건 없으니 그냥 지금이라도 상담을 받고 내 안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일이다.

어제 직원전체 워크샵이 있었는데, 조직내 피드백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떻게 피드백하는 것이 좋은지, 피드백을 어떻게 조직내 일상화할 수 있는지 다뤘다. 나의 경험과 그게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가 희망하는 변화의 방향은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상대의 의견을 물음으로서 비판이 아니라 대화의 시작으로 풀어가라는 것 하나. 피드백의 대상이 자신이 호감의 대상이 되고, 충분한 능력이 있으며, 같은 그룹의 소속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상대가 방어태세로 전환하지 않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하나. 이 둘이 어제 워크샵의 큰 레슨이었다.

아침식사, 스낵, 점심식사, 야외 활동, 저녁식사까지 타 부서에서 일하며 적당히 알고 지내는 직원들, 그보다 잘 알고 지내는 직원들 등과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할 시간이 있었는데, 심리상담가가 나에게 주었던 태스크들을 시행해보고난 후 상담가가 했던 이야기들처럼 내 마음 편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침 바로 전날 있었던 상담에서 네트워킹하는 걸 참 불편해하는 나에게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덕이다. 내 두려움에 나를 보느라 타인을 보는 것을 잘 못하고 있었음도 느꼈고, 앞으로 좀 더 편하게 여러 상황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상황에 잘 맞는 상담가를 만난 것이 참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인생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었고 앞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여러 상황에 노출될 것이 기대도 되고… 여러모로 새롭다.

나는 행동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살아왔다. 그게 마음의 병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런 사람이고 싶은데,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은데, 남들이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할텐데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면 나에게 척을 지지 않을까, 내가 이런 모습이 되어서 진가를 보여줘야지, 내가 무시할만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해 줄 거야, 등과 같은 형태로 내 마음에 짐을 지워주고 독이 되게끔 하는 생각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참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었구나.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어디까지 물어봐도 될까? 상대의 말을 깊게 듣고 그 뒤에 할 말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는 답을 어떻게 해야할까를 더 고민하느라 듣는 것을 소홀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했다.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고였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대한 생각은 떨치고, 지금 내가 뭘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든 나라는 사람은 그냥 나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뭔가 궤변같으면서도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거나, 모순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간간히 하곤 했는데, 나를 정의하려 하지 말고 나는 내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최선의 결정을 내려 행동하고, 그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면 또 그걸 수정해서 행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기로 하니 뭔가 이상적인 잣대나 엄격한 잣대로 나 뿐 아니라 타인을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일도 떨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다시금 스물스물 돌아오려하면 그걸 알아차리고 다시금 그런 생각을 내려놓는 방법도 배웠다.

타인의 평가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 평가를 내 존재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행동에 대해 평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되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법도 배웠다.

여러가지로 나에게 자유를 선사한 심리상담에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이를 권유한 옌스에게도 고맙고…

가면증후군, nervous breakdown, 심리상담

나의 능력은 타인의 기대만큼 미치지 못한다, 내 동료들은 나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이상으로 평가한다, 사실 다른 이들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동료들이 알아채면 나는 배척당할 것 같다, 타인이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줘도 그것은 그냥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함인 것 같고, 그 말을 하는 속내에는 크게 실망을 했을 것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을 하고자 할 수록 그 내 머릿 속 타인의 기대와 내 능력의 괴리에 생각이 미쳐 불안감이 커져 집중을 하기 어려워지고, 또 그러다보니 그 불안이 더 커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여름휴가와 각자 다른 재택근무의 날로 내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던 어느날 도저히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고 breakdown이 찾아왔다. 회사를 관두고 뭔가 지적인 능력을 덜 써도 되고 사람과의 교류가 더 많은 일을 찾아야할 것 같다고 느낀 바로 그날이었다. 옌스는 지난 번 직장을 관둔것과 같은 패턴이라고 느끼고, 회사를 관두는 일을 하기 전에 심리상담을 해보라고 권했다. 

주 1회 하고 있는 상담은 이번주면 네번째 상담인데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내 무의식적 사고의 흐름을 읽어내고 어떤 점을 시도해 이를 바꿀 것인지 보는 인지행동요법인데 이에 따라 행동한 지난 3주간 마음이 크게 편해졌다. 상사와 동료와도 내 상황을 공유하고, 상사가 상담가와 통화를 통해 진행상황을 공유하며 진행되고 있어 일관성있게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내 이야기를 공유하며  나뿐 아니라 비슷한 이유로 상담이나 진료를 받고 있거나 받았던 경험을 가진 동료들도 있다는 점, 내가 갖고 있던 두려움은 나만이 갖고 있는게 아니라는 점 등을 느꼈다. 

사실 그냥 원칙적인 이야기로만 두고 보면 크게 마음이 와닿지 않았을 이야기인데, 내 상황을 기술하고 그에 맞춰 내 마음의 소리를 인지하고 이에 반응하는 방법에 대해 듣다보니 마음에 쏙 와닿는다. 비용이 비싸 처음엔 망설였지만, 회사를 관두는 것도 고민했던 마당에, 관뒀으면 받지 못했을 급여를 생각해보니 못할 것도 없었다.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 

이렇게 지나고 보니 직전 직장에서 관뒀을 때 심리상담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 그 사이에 얻은 일도 많고 는 것도 많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면증후군에 시달리다가 공황/우울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이면 관두는 패턴을 이제라도 알아차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마흔두살 단상

어제가 생일이었다. 만으로 마흔두살이 되었으니 불혹의 나이렸다. 엄마가 좋은 나이라고 하시면서 본인이 그 나이였을 땐 자신의 결정에 있어서 확신이 있고 흔들리지 않았던 거 같다고 하셨는데, 딱 불혹의 나이와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그게 맞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별로 없던 흰머리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으니 신체의 나이로만 보면 분명 내리막기를 걷고 있는데, 마음의 상태로만 보면 그 어느때보다 평온하다. 내 결정에 대해 확신이 있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에는 그마만한 확신을 실어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통털어보면 지금이 가장 강단있는 결정을 내리고, 내린 결정에 대해 뒤돌아보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았다. 실패해도 잃을게 별로 없던 이십대의 시절보다 오히려 가진 게 많아 잃을 게 많은 지금 왜 더 안정적인지. 마음에 괴로움이 없이 평안한지.

첫번째로 가진게 적당히 있고, 앞으로도 일궈낼 수 있는 기반이 어느정도 닦여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초조함이 크지 않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알고 앞으로의 길에 대한 대충의 방향성이 있다. 둘째로 나의 앞날에 대한 기대가 현실적이 되어서 내 앞날에 대한 기대와 현실사이에 큰 괴리가 없다. 또 나같은 경우 커리어를 바꿔서 전문성을 필요로하는 필드로 들어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보니 자리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등 따숩게 몸을 누일 곳이 있고, 배 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고, 춥지 않게 옷을 입을 수 있고, 나를 포함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에서 너무 힘겨워 하지 않고 같이 나아갈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라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이 자체도 사실 꽤나 야심찬 목표일 수 있는데, 이삼십대에는 정확히 뭔지 정의되지 않는 성공이라는 데 목말라있던 것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정말 모르게해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나마 그 중에서 확고했던 게 있다면 해외 생활이었는데, 한국에서의 나라는 사람은 토박이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같이 느껴지는 구석이 있던지라 채 열살이 되기 전부터 남녀평등에 있어서 앞서간 서양에 살고 싶었다. 코트라에서의 삶은 한시적인 주재원인데다가 일적으로 한국문화에 묶여있어서 덴마크에서 살아도 별로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삼십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옌스를 만나고 서서히 이곳 문화에 젖어들고, 덴마크 직장을 구하고 이 안에서 내 네트워크가 얇은 것부터 깊은 것까지 촘촘히 연결되고 난 지금에 들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위로 올라가야한다는 초조함이 없어졌다. 그 어느때보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없고 평온하다.

평온해서 그런지 생각도 단순해지고, 특별히 업다운이 될 일도 없고, 블로그도 조용해지는 것 같다. 그것도 나쁘진 않네.

나와 함께 케이크를 굽겠다고 함께하는 너가 있어서 행복해.

5월의 출근길

바쁜 아침 출근길. 고속도로보다 국도가 빠른 날이면 국도를 선택한다. 요며칠 봄이 정말 완연하게 왔음을 실감한다. 연초록의 잎이 앙상했던 나뭇가지를 촘촘히 메우기 시작해 보송보송함이 사방에 느껴지기 시작할때면 출근길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인간이 하나의 동물임을 느끼는 것은 이처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내 몸과 감정이 함께 일렁이는 것을 느낄 때이다. 봄바람이 분다.

차를 내리는데 회사를 둘러싼 숲에서 청량한 바람이 불어내린다. 살짝 차갑지만 몸이 움추러들지 않을 정도의 차가움. 그래서 폐부의 깊숙한 곳까지 상쾌함을 느끼고 싶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큰 숨을 들이키고 있음을 발견하고 주변을 둘러보게된다.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바쁜 일상에 눈길조차 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고 관찰한다. 못봤던 의자, 표지판, 화분이 보인다.

오월이다. 일년의 삼분지일이 지났다. 어느새. 8개월이 남았다 생각하면 많이 남은 것 같은데, 삼분지 일이 지나갔다 생각했더니 일년의 큰 뭉터기가 잘려나간 기분이다. 시간은 정말 잘 지난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 아끼는 것으로 촘촘히 잘 채워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