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

호사다마라는 말을 믿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호사다마라는 말을 알기에 좋은 일이 많은 중에는 안좋은 일들을 조금 더 크게 포착하고 인지하게 되어 마치 마가 낀 것 같이 느껴지는 것 뿐이라 생각한다. 요즘 사사로운 사건 사고가 많다. 2021년, 원하던 집도 사고, 하나 유치원 옮기는 일도 수월하게 되고, 직장도 잡는 등 굵직하게 좋은 일들이 있어서 작은 사건 사고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 같다.

고기를 오븐에 굽다가 온도계를 너무 깊게 꼽아 온도 측정이 잘못되고 있음을 발견했는데, 그걸 뺀다는 게 220도의 달궈진 오븐 안에 오래 있던 금속침을 맨손으로 뽑아서 손 끝을 데었다. 뜨거우니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만으로 빨리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예전에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냉동고가 없는 작은 냉장고에 넣어두시며, 조금 이따가 꺼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었던 걸 갖고 두고두고 웃은 적이 있었는데, 딱 그런 생각을 한 것이었다. 나 스스로 두고두고 웃을 이야기다. 아무튼 기름처럼 손에 들러붙는 종류의 것에 덴 게 아니라 빨리 찬물에 담그고 나니 그런대로 심하진 않은 것 같았다. 물집도 잡히진 않았고. 요리할 것들이 있어서 중간중간 아픈게 심해지면 잠시 손가락을 찬물에 담그면서 요리를 했다. 우습게 본 화상이 요리를 하는 와중에 진행이 조금 더 되어 신경도 화상을 입었는지 하루정도 손가락으로 뭔갈 건드리면 바늘로 깊게 쑤시는 듯한 감각을 맛봤다. 말초신경의 위력을 느꼈달까.

그게 다 나을 때 즈음해 샐러드를 칼과 손가락을 이용해 뚝뚝 끊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손가락을 베었다. 칼과 맞닿는 손가락만 조심하다가 뭔가 딴 생각을 했는지 샐러드를 잡고 있던 반대편 손가락을 쑥 베어버렸다. 화상을 입었던 바로 그 손가락. 큰 살점이 뚝 떨어져 덜렁거리는데 너무 소름끼치게 아파서 소리도 안나오고 “하악…”하는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시고 서둘러 지혈을 했다. 옛날에 아빠가 인도에서 손을 크게 베이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잘 하지 못한 지혈을 남자 간호사가 엄청난 힘으로 1분만에 지혈한 기억이 났다. 얼마나 꾹 눌러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 손이기도 하고,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건지 아니까 온 힘을 다해 지혈을 했다. 다행이 한끝이나마 붙어있는 살점을 뚜껑 삼아 누르는데, 1분이 지나서 한번 보면 꼭 한쪽 어디선가 피가 흘러 새어나오는거다. 무엇보다도 온 몸을 관통하며 떨게 하는 통증이 새로웠다. 우선 지혈이 어느정도 된 후에는 진통제부터 먹었다. 만 하루동안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손이 욱신거리고 시큰거릴 정도로 아팠으니 칼로 이렇게 베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만 이틀이 지난 지금은 닿으면 아픈 정도니까 많이 회복된 것 같다.

좀 강력한 진통제로 코디마오뉠이라는 걸 먹었는데, 10%이상이 경험하는 부작용을 겪어 그날 저녁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고생까지 했으니 정말 여러모로 고생한 날이었다.

요즘 내가 부주의해졌나보다. 그래서 사소한데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 같다. 아마 큰 일에 집중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쓰고 나서 그런 거 같다. 좀 조심해야지. 어쩌면 그래서 호사다마라는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일을 치르고 나면 마음이 탁 풀어져서 부주의해지다보니 이런 저런 사고가 많이 나니 주의하라고. 주의하자.

오래된 연인

오늘 잠시 보다만 다큐멘터리에서 롱디를 해 절절한 젊은 커플 이야기가 나왔다. 시작하지 오래 되지 않아 롱디를 시작한 이 커플의 재회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애닲았던 적이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롱디라고 해봐야 연애한지 1년되던 때 쯤에 내 한국 방문 4주, 얼마전 연초에 하나와 한국 방문 3주, 이게 전부였어서 그랬는지, 저렇게 절절한 적은 없었다. 연애 초기에 옌스가 손만 잡아도 떨리고,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녹는 것 같던 시기도 있었지만, 같이 산지 6년에 애가 네살이 넘은 지금은 그런 애닲은 감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도 옌스가 간간히 다가와 나를 잡아 당기며 그 큰 몸에 푹 덮이게 꼭 안아 내 머리 위에 턱을 얹고 있으면 그 따뜻함에서 사랑을 느낀다.

요즘 그런데 내가 조금 건조했던 것 같다. 이사도 해야하고 준비할 것도 많고 등등 하다보니 옌스에게 많이 신경을 못 쓴 것 같다. 저 포근함을 느낀 횟수가 적었던 것으로 보아 내가 다가갔던 순간들이 적었던 것도 같고. 요즘 옌스가 어깨죽지에 담이 와서 건드리면 아파하니까 안아주거나 쓰다듬어주는 것 조차도 신경쓰이기도 했고. 오래된 연인이 된 건가? 이렇게 관심을 덜 두고 있었다니.

이사하고 정리하면 더 챙겨줘야지… 라는 것 말고 지금도 틈을 내서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히 다뤄야지… 가까이 있다고 당연시 하면 안된다. 가까울 수록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관심 갖고 지켜봐줘야 더 가까워지니까. 오늘 딸기라도 좀 챙겨줘야지. 내 몸 힘들다고 쉬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

내 몸 사용법 이해하기

지난번 한국 방문 때 발레 개인레슨을 받았었다. 춤의 숨이라는 뜻의 릴 드 당스라는 발레스튜디오에서.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lilededanse) 방배동에 있는 이 곳에 가기 위해 홍천에서 2주간의 자가 격리가 끝난 후 바쁜 짬을 내어 두 번의 레슨을 받았다. 세번 받고자 계획을 했으나 내가 지낸 기간 중 몇차례 있던 폭설이 이 중 하루와 겹쳐 한번은 아쉽게도 취소했다. 이 수업 시간 중 크게 춤을 추지는 못했으나 애초에 이 시간은 안무와 동작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몇가지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할애한 것이기에 목적은 완전히 달성했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었던 김유경 선생님. 내 발가락과 발, 허벅지, 엉덩이, 골반 등을 자세히 관찰하고 이래저래 조물조물 만지고 밀고 당기시며 문제를 파악하고 내가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해주셨다. 발레를 하다가 뭔가에서 정체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생길 경우 꼭 상담을 받아보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아무런 금전적 대가 없이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추천한다.)

내 문제는 발가락. 그리고 발의 무게중심, 골반중립이었다. 알고보니 나는 셋째부터 다섯째 발가락은 거의 쓰고 있지 않았다. 발바닥과 엄지, 둘째 발가락만 쓰고 있었던 거다. 발가락 사용과 발의 무게 중심 문제는 연관된 문제였다. 약간의 척추 측만에서 오는 오른쪽 갈비뼈 열림 현상은 이미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던 바이지만, 다시한번 확인했고. 이 것 또한 발가락 사용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발가락 세 개가 문제의 원인이었다니! 골반 중립도 어찌보면 이와 연결되어 있던 게, 발가락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중둔근 사용이 잘 안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있는 다리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니 그 중둔근도 워킹다리의 중둔근도 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던 거다. 그걸 골반 앞쪽의 힘으로 뒤로 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걸 교정함으로서 다리를 알라쎄꽁으로 들어올릴 때 잘못된 근육으로 들어올려 야기되던 고질적 골반인근 인대의 통증 문제를 제거할 수 있었다. 또한 다리를 옆으로 90도 이상 들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를르베와 파세도 안정적이 되었다. 또한 무게 중심 이동이 쉬워지면서 춤의 안무간 이동이 안정적이 되었다. 또한 쁘띠 알레그로 센터를 할 때 선생님의 통통 튀는 느낌이 나에게서 안느껴지던 문제도 해결되었다.

수업을 할 때 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의문점을 구체화해낼 수 있다면 그 수업의 핵심 레슨을 수업이 끝나고서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다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개인 레슨이 다소 비싸다 하더라도 나는 가치가 있다 믿는다.

마흔이 된 지금, 나는 그 어떤 시절의 나보다도 균형잡힌 몸을 갖게 되었다. 출산으로 배의 피부가 탄력을 다소 잃은 것은 어쩔 수 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앉으면 배의 피부는 출산 전에는 본 적 없던 미세한 주름을 보인다. 그래도 내 몸에 붙은 근육들이 과거의 어떤 때보다 균형잡힌 형태로 고루 쓰이고 발달했으며, 이는 전신에 해당한다. 이번엔 발가락까지. 목은 길어지고 턱 아래 둥글게 붙어가던 턱살도 없어지고, 어깨는 내려갔으며, 배와 등판 모두에 근육이 고루 붙었다. 두껍다 생각했던 팔뚝 상부는 어깨가 말려 생겼던 현상인데, 이를 잘 펴 앞뒤로 평평하게 만들고 나니 나의 짧은 팔뚝도 두꺼워보이지 않고 그 전보다 덜 짧게 보인다. 이와 함께 항상 달고 살 던 뒷목의 뻣뻣함은 다 사라졌다. 짧아보였던 다리는 길이가 달라지지 않았지만, 골반의 후방경사를 교정하고 중립골반을 찾으면서 다리도 길어보이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 길이를 찾은 거라고 해야하나. 그와 함께 임신 후기와 출산 이후 심각하진 않아도 잘 해결되지 않던 치질문제, 요실금 문제도 해결되었다. 하체 비만으로서 위아래 옷이 항상 두사이즈 차이가 나서 아무리 체중이 적게 나가도 하의는 상의보다 한두치수 크게 입어야 하고, 다리의 체형이 두드러지는 바지를 피해 주로 치마만 입었던 일도 다 졸업했다. 이제 위아래 옷의 사이즈가 일치하고 말이다.

발레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이 아니다. 발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다리를 들어올릴 때 몸 뒷편의 근육을 잘 쓰지 못해 골반 앞쪽 인대에 부담을 줘 왔던 것처럼 무슨 운동을 해도 잘못된 몸의 사용은 부상으로 연결된다.어떤 운동을 하든 그게 내 몸의 균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주 젊을 때만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예전에 몸짱아줌마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을 때 그녀가 사십대였던 것처럼 나도 지금 마흔이고, 나는 앞으로도 내 몸을 끊임없이 튜닝할 수 있다 믿는다. 완벽한 몸의 모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몸을 건강하게 사용하기 위한 형태로 단련하고 잘못된 사용법을 교정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변화는 지난 십년의 시간동안 천천히 일어난 변화이니 말이다. 하나를 고치면 새로운 문제나 부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이를 또 고치고 다른 것을 고치다보면 내 몸의 구석구석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그러다보면 전반적인 균형이 좋아지게 되고 내 몸 사용법을 새로이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구부정한 자세나 여러 문제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장기적 관점에서 이를 관리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애티튜드 드 방

올해 봄은 좀 늦는구나

온도가 많이 낮았던 겨울. 습하지 않고 바람도 최근 2-3년보다 덜 부는 덕에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추운듯이 느껴진 겨울이었다. 하지만 봄이 오는 시기도 덕분에 많이 밀린 것 같다. 온도의 관점에서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긴 한데 식물들이 개화하는 시기가 한달 가까이 뒤로 밀린 것 같다. 일조량과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 대화가 겨우 내내 많이 추웠어서 그런 것 같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던 5시 45분 경, 아직도 해가 떨어니려면 한참 남은 것 같길래 곰감히 생각해보니 이제 하지까지 두달 반 남은 게 기억났다. 그런데 오늘은 우박에 눈이 세찬 바람과 함께 떨어져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다니… 참 변화무쌍하다. 금새 또 해가 나서 저녁엔 다 말랐으니 더욱 변화무쌍하다. 덴마크 사람들 화제에 그래서 날씨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덴마크의 봄은 공식적으론 3월부터이지만 옌스는 항상 봄은 4월부터라 한다. 그리고 눈이 4월에 오는 건 아주 놀랄 일이 아니라고. 나도 지난 거진 8년간 4월에 눈 오는 걸 수차례 봤으니 이젠 정말 놀랍지도 않다.

부활절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아주 이상하고 변화무쌍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이번 부활절 휴가도 역시나 좋은 휴가였다. 하나 업고 걷다가 넘어지면서 하나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가 발목 살짝 빼고 무릎 타박상을 입었는데, 그것도 크게 심하지 않았고. 운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산책로 경계길은 잔디와 아스팔트 간 높이차를 잘 감안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로이 환기시키는 경험도 했으니 앞으로 큰 사고 안나게 조심해야지. 발목도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심하지 않은 덕에 회복도 빠른 모양이다.

새로 이사하면 하나에게 약속한대로 꽃도 좀 심고 작물도 조그마하게나마 키워야지. 여름은 언제 오려나. 겨울과 달리 여름은 적당하게 덥고 비와 해가 적당하게 섞인 그런 여름이었으면 좋겠다.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눈 오는 4월 6일
온도는 10도가 안되었지만 해가 쨍해서 크게 춥지않았던 4월 4일

내 전용 전기차 구입. 또 다른 현대차

차를 샀다. 우리의 첫 차는 옌스차로, 이 차는 내 차로 하기로 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전 정권에서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의 대대적 지방이전을 했는데, 내가 일자리를 구한 곳도 그 중 하나이다. 별장지역 중 하나인 Frederiksværk이라는 셸란 섬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도시인데, 옌스네 카약클럽 별장이 그 바로 옆 Hundested이라는 곳에 있어서 몇번 차로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었다. 지금 사는 곳에서는 편도 45분 거리. 제법 먼 거다. 고속도로로 대부분을 달리는데 45분 걸리는 거니까. 다행히 앞으로 이사갈 곳에서는 편도 30분. 전직장이랑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차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단점. 코로나 이전에는 주1회 재택근무가 보장되었고, 집에 뭔가 수리하거나 해야 해서 집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경우는 재택근무가 가능했는데 (필요시 재택근무는 일반적 문화) 코로나 이후 주당 재택근무일수가 혹여 늘어난다 하더라도 차는 꼭 필요한거다.

결국 차를 한 대 더 사기로 했다. 역시나 전기차를 사기로 했는데, 전기차는 좀 비싸다는 것이 흠. 따라서 중고차를 사기로 했다. 시작은 르노의 조이를 사려고 했는데, 몰아보니 예상보다 별로라서 현대 Ioniq을 사기로 했다.

처음 들렀던 중고차 매장은 정말이지 야매같은 느낌? 내가 차를 시승해보는데 서류도 없이 몰아보게 하고, 전기차와 관련된 질문을 해도 영 딴소리하고 잘 모르더라. 같은 모델이지만 주행거리가 다른 옆 차도 한번 몰아봐도 되냐 해서 그 사람이 차를 밖으로 빼준다고 했다. 그러고나서 내가 분명히 봤는데, 전원은 켜지는데 시동이 안걸리는 상태였다. 몇번 꼼지락 거리더니 나와서 배터리가 바닥이라고 하는거다. 시동 켜지는 거 봤는데, 무슨 소리냐, 70킬로미터 이상 남았던데, 라고 물어봤더니 그제사 실토한다. 시동이 제대로 안걸린다고. 아… 신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원래 내일 보러가기로 했던 중고차 매장에 들러보라고 옌스가 제안을 해서 그리했다. 딱 봐도 오래된 자동차업체. 중고자동차 업력 25년에 해당 주소에서 20년 매장을 운영했고, 사업자 등록번호 바뀐 바 없이 계속 운영했다는 건, 부도 경험이 없는 안정적인 기업이라는 것. 원했던 차가 좀 상태가 안좋아서 예산과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더니 현대 아이오닉을 보여줬다. 몰고 보니 마음에 드는 것. 지금 우리차인 코나보다는 주행거리가 조금 더 짧지만, 주행내부인터페이스도 같고, 상태도 너무 깨끗하니 마음에 들더라.

옌스가 차값의 80%를 무이자로 빌려주겠다 했다. 월급으로 할부로 사려고 했더니, 금융비용 내지 말고, 자기에게 내라면서. 아니! 무조건 땡큐지요. 차 한대로 버텨보려는 옌스에게 차를 사자고 계속 꼬셨더니, 세컨카에 새차를 너무 낭비라며 중고 사면 자기가 무이자로 대준다는 거다. 열심히 직장생활 해서 차값 갚아야겠다.

나도 큰 의사결정 빨리하고 불도저같이 미는 사람이지만, 옌스도 의사결정 참 빨리하는 사람이다. 현대차를 아껴주는 옌스 덕에 해외서도 한국차 열심히 타는 우리. 옌스의 이러한 한국사랑에 도움을 주고자, 나도 한국어를 더 열심히 써야겠다.

시원 섭섭 달콤 씁쓸 후련 : 이상한 날.

2개월 단기로 일하려던 곳에서 계약 기간의 반의 반절도 채우지 못하고 오늘부로 관뒀다. 3개월 미만의 계약은 노티스 없이 관둘 수 있어서 결정을 내리자마자 관둘 수 있었다. 내 사정에 의해서 계약기간의 두달에서 2주를 못채우고 빨리 관두게 되는 것이라 가급적 회사측 입장에 맞춰서 관두려고 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커서 최대한 빨리 관두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며 지나간 다리를 태우는 것 같은 기분이라 피하고 싶었던 결정이었지만, 괜히 오래 있다가 괜히 감정만 더 상하고 나올 것 같아서 차라리 빨리 관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들었다. 이렇게 정리하게 된 건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리하는 게 나에겐 더 나을 거였다.

친구네 조부모님이 픽업해서 같이 놀고 저녁까지 먹고 오기로 한 하나를 하나 친구네 집에 가서 픽업하고 돌아오는 길에 메일이 와서 보니 계약서가 도착해있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잡 오퍼에 사인을 해서 연봉 합의를 했었는데, 그걸 토대로 계약서가 도착해있었다. 그에 서명을 해서 송부를 하는데, 앞으로의 프로세스를 메일로 간략히 오리엔테이션해주고, 업무 시작 얼마 전에 각종 참고할 자료를 보내준다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해본 덴마크 직장은 중앙정부기관이고 이번에도 그렇다보니 다른 곳은 모르겠어도 중앙정부기관은 이런 스탠다드 프로세스가 있다. 그런데 직원 고용규모로 보면 이런 두 기관에 비해 훨씬 큰 내 전 직장은 아직도 사람보다 숫자, 성과가 중요해서 그 숫자와 성과를 뒷받침하는 게 사람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사람은 내가 신뢰를 받고 내가 하는 일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조직과 일에 대한 열정이나 신뢰가 없어지고, 결국 조직 이탈이 이뤄지는 것일텐데.

오늘은 어찌되었든 간에 문을 하나 닫고 다음 문을 하나 여는 작업을 한 날이 되어버렸다.

번역일 하던 것도 초벌을 마무리지어서 내일 검토해서 보내는 일만 남았으니 그것도 좋았고. 시행령을 번역해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의외로 상업번역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해보고 나니 에세이나 소설 같은 걸 번역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번 느껴졌다. 상업 번역은 감정선을 살리는 미묘한 형용사와 부사가 난무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빠르게 번역할 수 있었다. 뒤로 갈 수록 문장의 형식과 내용에 익숙해지니 속도도 붙고.

어느새 3월도 거의 다 가버렸다.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까지 한달여가 남았고, 이사까지도 한달 반정도 남았다. 남은 기간 열심히 여기저기 페인트질하고 청소하고 살 것 사고 옮기고 하면 또 다음 한 달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흘러있을 거 같다.

시원섭섭하고 달콤하고 씁쓸함과 후련함이 동시에 교차하는 이상한 날이었다. 날씨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대비가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잠을 자고 나면 내일은 그냥 상쾌한 새로운 하루가 되겠지. 인간에게 잠이라는 게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Værløse, 새로운 터전

여러가지가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다. 5월 7일부 이사를 가게 되면 새 지자체에서 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제일 이른 날짜가 6월 1일인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치원 자리가 나서 바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보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할 지 몰라서 그냥 보내기로 했다. 안에 들어가서 본 건 아닌데 유치원 밖에서 봤을 땐 규모도 적당하고 괜찮아보였다. 지금 유치원에 익숙해져 있어서 너무나 아쉽긴 하지만, 또 하나에게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말이다. 마침 한국에 다녀온 한달 사이에 친구들의 다이나믹이 달라졌는지, 자기가 놀이를 만들어내는 인기있는 주축이었던 것에서 조금 밀린 탓에 간간히 재미없다고 불평도 하고 집에 있고 싶다고도 하는데, 새로운 유치원에 가기 전에 그런 경험을 작게나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집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넓어보이거나 좁아보이는 곳 등 방이나 구획마다 느낌이 달랐다. 전체적으로 마음에 쏙 들고, 여기가 내 집이 될 곳이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일부러 짐 싸기 전에 불러서 집의 느낌을 보여주는 매도자의 마음 씀씀이도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집을 어떻게 쓸 수 있을 지에 대한 느낌이나 그런 것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실용적인 것들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도 듣고 알찬 한시간을 보내고 왔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대신에 지하 창고도 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공동 공간도 있고, 차고도 널찍하고 해서 이런 곳들에 있는 짐들을 잘 보관할 장소들이 있을까 했더니 왠걸… 다 곳곳에 수납공간이 숨어있었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니 자연이 큰 틀을 차지하고 있는 동네였다. 집집 사이사이마다 작은 공원이나 오솔길이 숨겨져있고, 약간 외곽으로 벗어난 곳 답게 높은 건물이 없어서 시야가 탁 트여있고 말이다. 그 동네 사는 사람들 중에 동네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못봤다. 우리 집을 팔고 나가는 매도인은 바로 같은 길 끝의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가고, 하나 친구네 조부모님도 같은 길에 사신다는데 이번 7월에 같은 동네 다른 집으로 이사가신단다. 나쁘지 않은 사인… 벌써 기대가 너무나 된다. 이사를 가서 우리 터전을 다질 그 시간이…

사람 냄새 나는 이곳

 오래간만에 인스타그램을 컴퓨터로 들어가서 내 계정을 훑어내려갔다. 타일처럼 나열된 사진들을 훑어내리며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했다. 덴마크로 넘어와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구나. 이렇게 많은 것을 경험해도 아직도 경험할 게 새로이 많구나. 한국에 있었어도 새로이 경험할 일이 많았겠지만, 외국에서 경험하는 것이다보니 간접경험의 폭도 적어서 더욱 새롭고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이제는 새로이 집을 사면서 매매절차와 더불어 이사가는 것에 수반된 부대절차와 챙길 일들이 있어 이와 관련된 경험을 하고 있다. 오늘은 나에게도 옌스에게도 신선한 일이 있었다. 오후에 이메일 알람 진동이 드르륵 와서 발신자를 보니 우리가 산 집의 현재 주인인거다. 집 주인이 벌써 우리에게 연락할 일이 뭐가 있지? 해서 열어보니 집을 아직 보지 못한 나를 위해 가구 빼기 전에 집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한국에서 옌스에게 부동산 물건을 찾아서 한 번 가서 보라고 하고, 옌스가 마음에 든다고 하자 집을 사자고 제안한 건 나지만, 막상 덴마크에 돌아오기 전에 계약이 다 끝나서 나는 집을 본 적이 없었던 거다. 귀국 이후 동네에 찾아가서 집 주변과 동네를 둘러보긴 해도 안은 볼 수 없어서 참 아쉬웠는데 말이다.

테라스쪽 전경 / 정원은 없는 집이지만, 바로 뒤편에 공터가 크게 펼쳐져 있어서 이를 그냥 정원삼아 누릴 수 있다.
테라스 쪽 공터 전경 / 비가 많이 오면 하수구로 바로 빠지지 않고 지표면에서 물을 지연시킬 수 있는 저장공간으로 활용되는 지역인가 보다. 시에서 여기는 주택용지로 지정하지 않은 지역이다. 탁 트인게 좋다.
공터에는 작은 그네도 있다. 그냥 애들 뛰어다니기에 좋은 곳이다.

매도자인 부부는 옌스보다는 젊고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즉 우리 또래 부부고 아이들은 조금 더 큰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우리 건너편 집에서 다섯집만 더 가면 나오는 집으로 조금 더 넓혀 이사가는 거였다. 즉 동네 이웃으로 남는 거였다. 이메일에는 동네 이웃으로 만나게 된다는 내용과 함께 우리 집 왼쪽 오른쪽편 집 주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고 그 중 한집이 참 오랫동안 레보베이션 하느라 시끄럽게 했으니 이사오면서 조금 시끄럽게 하는 걸로는 신경쓸 필요 없다는 팁도 알려주었다. 더불어 우리가 이사가게 될 즈음에 자연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동네 분위기는 어떤지도 알려주고 말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우리가 먼저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열쇠를 실제 부동산 인수일보다 먼저 넘겨줄 수 있다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옌스가 굳이 그걸 걸어서 계약을 복잡하게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해서 상대가 아무 말이 없는 이상 그냥 내버려두었다. 4월 1일 열쇠를 넘겨받기에 부활절 연휴에 이사를 갈 거 같은데 정확한 일정은 몰라도 다 이사짐을 빼고 나면 열쇠를 넘겨줄 수 있다는 거다. 우리야 그래주면 이사 전에 저녁과 주말 시간을 빼서 집도 청소하고 페인트칠도 미리 완료하고 깔끔하게 이사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은데 말이다.

나쁜 경험은 빨리 잊어버리는 편리한 뇌를 가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덴마크에 와서 나쁘거나 불쾌한 일을 겪기보다는 즐겁고 유쾌하고 따뜻한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내가 여기가 내 땅이 될 곳이라 결심하고 마음을 열었기에 그렇게 느꼈는지, 아니면 그렇게 느꼈기에 마음을 연건지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경험으로 가득 채우는 이곳이 나에겐 더욱 집과 고향처럼 느껴지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벌써 7년

옌스와 연애를 시작한 게 바로 7년전. 뭔가 오래되지 않은 과거 같기도 하면서 7년밖에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이상하다. 덴마크 나와서 딱 반년 지낸 후에 옌스를 만났으니 덴마크 살이도 7년 반이 되었다는 이야기구나.

내 인생에 작고 큰 챕터가 여럿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챕터의 시작은 옌스와의 만남이다. 옌스를 만나고 사랑을 알았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고, 배려가 어떤 건지 배우게 되었다. 나의 장단점을 보다 잘 알게 되었고, 내 단점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인생의 닻과 같이 거친 풍랑이 와도 나를 단단히 붙들어줄 옌스를 만나 나는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와 나는 서로 보완이 많이 되는 존재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사랑을 일상 속에서 느끼게 해주고 나의 존재를 기쁘게 받아들여주는 그가 있어서 힘든 순간에도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서로를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존재. 옌스를 만나기 전엔 실패한 많은 연애를 거치고 나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고 단언을 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와의 만남으로 그런 생각이 다 뒤집어졌다.

7년의 시간이 지난만큼 우리도 나이가 들었다. 거울을 보면 우리 얼굴에도 주름이 늘었고 머리카락에도 세월의 흔적이 발견된다. 나는 머리 속 새치가 늘어서 간간히 뽑아주느라 바쁘고, 옌스 머리는 갈색에서 회색으로 바뀌었다. 우리 사랑의 결실인 하나가 네돌이 지났으니 놀라울 것도 없지.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오순도순 잘 살아가길…

시간은 흐르는데 머리는 복잡하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 2월이 다 가고 있다. 어쩌면 시간은 이리도 잘 흘러가는지. 올 한해의 1/6이 거진 다 지나간 거 아닌가? 시간이 나이에 비례해 빠르게 흘러간다고 하더니, 내 나이 마흔에 맞춰 시간도 빠르게 흐른다. 인생의 전반전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이구나.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 것도 거의 1년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와 포옹을 나누지 않은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언제 그렇게 포옹을 나누며 살았다고 친구와 만나고 헤어지는 데 가까운 품을 내어주고받지 않는 지금이 매우 어색하고 아쉽다. 제대로 인사나누지 못하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포옹을 나누기에는 혹여나 있을 지 모르는 감염위험이 두렵다. 거리를 확 두는 것도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건 부담스럽다. 내가 옮을까봐서라기 보기는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상황이고 각자가 어느정도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걸릴 수 있는 지 모르는 상태라 내가 옮기든 상대에게 옮든하는 상황이 혹여나 생길까봐서이다.

내 인생은 표류하고 있다. 정확히 뭘 원하는 지 모르겠다. 우선 지금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등 따숩게 잘 수 있는 집이, 단란한 가족이 있고, 먹고 입는 것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아이는 쑥쑥 잘 자라고 있으며, 좋아하는 친구들과 선생님과 즐거운 유치원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을 다녀와 한국어에 관심과 자신감이 조금 늘었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경제적 자립이 요원하다는 게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한다. 누가 번 돈이면 어떠랴하고 쿨하게 생각하면 좋은데, 그래도 그렇지가 않다. 너무 힘들다고 관둔게 너무 배부른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들면서도, 엄청 스트레스 받으면서 생활했을텐데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마음도 한켠에 든다. 내가 새로이 벌인 일들에도 좋은 것과 아닌 것들이 섞여 있는데, 경제적인 요소에서 좋지 않은 부분이 있다. 혹여나 내가 전공했던 일들로 돌아가고 싶어진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서 기웃기웃 채용공고를 들여다보고 지원도 하게되는데, 지원 가능한 것들은 대부분 내가 관둔 일과 비슷한 프로필의 일들이라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에 망설이게 된다. 솔직히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닌 것인데… 내가 원하는 것일거라 생각해서 뛰어들고 보니 그렇지 않은 시행착오를 자꾸 겪으니까 앞으로 나아가기 망설여진다. 다음 걸음이 또 잘못된 걸음이면 어쩌지? 그게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을 너무 어렵게 하면 어떻게 하지? 등등 생각이 많이 든다. 벌여놓은 일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고 인생의 판이 확 바뀌고 나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등이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절대, 완전히 등과 같은 말은 섣불리 쓰지 말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 전에도 몸을 쓰고 내 눈 앞에서 결과가 보이는 일들이 재미있었는데, 배운 게 아까워서, 돈을 잘 벌기 어려워서 또는 힘들어서 시도해보지 않은 일들이 많았는데, 그걸 지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발걸음을 내딛지는 못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천천히 표류하듯이 시간을 보내며 생각을 조금 더 해봐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