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졸업

내일부로 학생직원이 한 명 새로 들어온다. 점심 먹으러 구내식당 내려가는데 동료 중 한명이, “신입사원 지위를 누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누리세요. 내일부터는 모르는 거 질문하기 없기!”라고 했다. ‘아. 맞다. 내일 아침 환영다과가 있었지.’ 싶었다.

나랑 같이 면접을 봤지만 2018년 계속 사업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어 나보다 1개월 먼저 일을 시작했던 직원 두 명이 있다. 나를 환영하는 다과회에서 그 중 한명이 “나도 얼마전에 신입사원이었는데, 이렇게 너를 환영하는 다과에 와서 자기 소개를 하니 어느 새 마치 오래된 기존 직원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기분을 내가 느낀다.

3일부터 일을 시작했으니까 일 시작한지 거의 만 3주 되었나보다. 내가 맡은 분석사업도 슬슬 발동이 걸리고 있다. 다음주 월요일 부청장 미팅이 있어서 그 보고에 앞선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다. 일 시작한 첫주에 내가 과연 보고서를 덴마크어로 쓰고 관려된 내용을 보고할 수 있을지, 과연 그들이 내 덴마크어 업무수행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잘못 뽑은 건 아닌지 스트레스를 제법 받았었다. 수습기간 3개월에 자르는 경우는 진짜 특별한 경우라며 그런 걸 생각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옌스가 말했지만, 그게 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도대체 나를 왜 뽑았을까? 경력을 2년 인정해 준다고 했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언제 적응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다. 원래 신입사원은 그런거야 라면서 자위하기도 했지만 또 다시금 밤에 침대에 누우면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와 깊은 잠이 들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 모든 게 적응의 일부분이었던 것 같다.

첫주엔 정말 내 뒤에 보는 사람이 없는 구석자리에 앉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자주 사전을 찾았다. 그간 대충 감으로 알고 있었지만, 딱 한단어로 번역해봐라 하면 그렇게 하기 어려웠던 단어들부터 새로운 단어까지 다 찾아내려다보니 읽는 자료마다 단어 뜻이 누덕누덕 적혀있었다. 내용을 정리하면서 읽기보다는 우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중간중간 궁금한 점만 적어내려가며 담당자별 인트로 미팅을 할 때 질문을 해서 내 업무와 그들의 업무가 어떻게 연결될 지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유사 제도에 대한 경험이 있는 다른 센터와의 미팅 두 건을 마친 후 센터장과 선임컨설턴트와 현황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센터장으로부터 보고서를 하나 만들어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참고해야할 섹터의 제도 도입 내용을 정리해보고 우리 섹터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나눠 정책적 고려사항을 도출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어떤 식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할 지 아주 러프하게만 틀을 정해준 거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우선 그냥 한국에서 였으면 어떻게 일했을까를 생각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다만 덴마크어로. 보고서 작성 메뉴얼도 대충 훑어봤었는데다가 관련 보고서를 2-300 페이지를 읽고 났더니 대충 어떤 문체를 쓰는지 알 수 있었고, 무지막지하게 단어를 많이 (그중 같은 단어도 잘 기억 안나는 것을 두세번도 찾아봤었다.) 찾아본 게 다 도움이 되서 생각했던 것이랑 달리 빨리 보고서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 최종은 아니지만 보고서 서론만 남겨두고 작성한 보고서를 갖고 센터장과 선임컨설턴트를 대상으로 한시간 정도 브리핑과 토의를 했는데, 아주 의미가 있었다. 우선 내가 작성한 방향에 대해서 매우 좋게 생각을 했고, 이번 브리핑을 연습삼아 다음주에 있을 부청장 미팅의 브리핑에 대한 부담을 덜을 수 있었다. 또한 2월 초에 내 담당 사업에 대한 모니터링 그룹 미팅이 있어 청장 주재하에 진행 내용을 발표해야 해서 이 작은 스텝 하나하나가 연습이고 경험이 된다.

이 작은 경험을 통해 얻은 건, 우리 청에서 나를 괜히 뽑은 건 아니고 내가 기여할 바가 있었다는 확인이다. 기후변화적응과 관련한 범정부차원 정책 이니셔티브가 수립중에 있는데, 환경식품부와 에너지유틸리티기후부가 부처간 이견을 조율하는 단계에 있다. 이 부처간 이견이 조율되고 나면 수자원관리 기능을 담당하는 우리 센터에 경제적비용편익에 대한 분석업무가 떨어질 거라 이걸 수행하기 위한 사람을 2019년 중에 채용하고자 하고 있었다 한다. 다만 이 업무는 착수 시점이 애매해서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면서 지금 내가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할 사람을 2019년 1월부터 바로 일할 수 있게 채용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비용편익분석은 내 논문을 통해 했던 것과 매우 깊게 연관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내 학부 전공의 경영학과 은행 재무기획팀 근무 경력을 보고 아주 딱 맞다 생각했던 것이다. 학부때 별로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투자 관련 수업도 많이 듣고, 결국 다 중도에 포기하긴 했었어도 은행 다니며 CFA와 FRM도 끄적끄적 공부도 하고, 재무기획팀에서 예산 (및 약간의 관리회계) 기획과 성과평가 업무를 하며 이래저래 머리에 쌓아왔던 먼지쌓인 지식이 도움이 되는 때가 온 것이다. CAPM이며 WACC이며 기업재무에 손을 댈 날이 이렇게 뒤에 올 지는 전혀 몰랐는데. 힘들었던 은행업무시절, 금융은 뒤도 안돌아보겠다 했던 걸 지금 손바닥 뒤집듯 갑자기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차피 전문가의 손이 필요한 경우 외부에 손을 뻗어야 하지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면 제도 도입이 어렵기에 그걸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히지만 우리 센터 안에 할 사람이 없는 걸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오늘 보고하고 느낀 후에 자신감과 안도감이 버무러진 감정을 느꼈다.

보고서 작성이야 코트라에서 끊임없이 하던 것이었으니 그냥 언어만 바뀐 것 뿐이고. 선임 컨설턴트가 경력직을 채용하면 이런 거 설명 안해줘도 되서 너무 편하다고 하던데 나도 나라가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이 있구나 싶은 생각에 다행이다 생각했다.

오늘부로 신입사원은 졸업한 느낌인데 공식적으로도 내일부로 신입사원은 졸업이다. 오늘 보육원에서 하나를 2월 18일부로 다음단계 보육원으로 이동시킨다고 들었는데 나뿐이 아니라 하나도 졸업이구나. 세상으로 나가는 전체 교육과정 중 가장 이른 단계를 졸업하는 거니 세상의 신입사원 졸업이라고나 할까?

내일 얼른 보고서를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 일을 시작하도록 해야겠다. 얼른 공을 선임컨설턴트에게도 넘겨야 문법 검토도 받고 최종 마무리도 될테니까. 우선 오늘은 밀린 드라마 한편 보고 잠을 자야겠다. 아이 피곤해…

조직내에서 느끼는 덴마크인의 사회적 성향

덴마크 사람들은 가까워지기까지는 좀 무뚝뚝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알고 보면 참 진솔하고 담백한 사람들인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첫인상이 무뚝뚝해 보인다는 생각도 다 없어졌다. 그냥 참 솔직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첫인상에 대한 인상이 무뎌진 건 그냥 너무 다 익숙해져서 이렇다, 저렇다 생각이 아예 안드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건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곳에서의 인상이었고 서로를 알고 지내는 조직내에서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관계를 맺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보니 여기 사람들은 상냥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있는 것 같다. 갈등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하고. 채용 단계에서부터 “유쾌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라는 조항이 없는 공고를 못 봤다. “다른 조직원과 협력을 잘 할 수 있어야 하고”와 같은 조항이 꼭 있는 걸로 보아 팀웍에 저해가 되는 사람들 받는 걸 지극히 꺼려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 일하면서도 보니 서로 바쁜 와중에도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도와주려하고 바쁜 티를 간혹 내더라도 미안해하면서 비는 시간을 따로 알려준다거나 하는데 항상 서로 웃는다. 그게 너무나 중요한 요소라는 인상이다. 물론 사람 사는 곳 어디나 같은데 여기라고 이상한 사람이 없겠는가? 그런데 그런 사람을 받는 걸 제일 무서워하는 것 같다. 부정적인 사람은 경쟁력이 없다는 걸로 인식된다고 한다.

올해 있을 하수도사업자 예산규제틀 제정에 앞서 올해 바뀐 규정 등을 안내하고자 설명회가 개최되었는데, 현재 우리와 행정소송이 계류중인 없체에서 날이 날카롭게 솟은 질문(의 탈을 쓴 거센 비판)을 한 모양이다. 그거에 감정이 상한다기 보다는 그 감정을 이해한다면서 그 정도는 예상할만한 것이었다고, 서로 그러면서 배우는 거 아니겠느냐고 하는데 좀 색달랐다. 우리 센터장님은 ‘어우 왜 저래? 약간 정신이 이상한거 아냐?’ 이렇게 생각했다면서 깔깔 웃고 넘어가는데 놀라웠다. 여기 사람들은 참 이성적인 것 같다. 우리 같으면 좀 예민하게 받아들일 것도 ‘뭐 그럴 수 있지.’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흘리는 것 같고. 자기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싶으면 그런 일을 흘려보내는 것에 익숙한 것 같다. 개인주의의 영향일까? 그렇게 커와서? 사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는 순간이 많았거늘… 그런 당황스러운 순간에 주변 시선 의식하지 않는다면 나도 별로 흔들리거나 감정 상하지 않고 웃으며 상황에 대처하고 흘려보낼 수 있을까? 좀 그렇게 해봐야 할 거 같다. 나도 올 해 공청회 실시하면 그런 상황들을 조금 맞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성토의 장이 되더라도 내 덴마크어에 민망해하지 않고 웃으며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월간 현황 미팅과 채용/업무부장 배경

오늘은 센터장님과 첫 월간 현황 미팅을 했다. 현재까지 직장동료들에 대한 느낌이나 내 경험은 어떤지, 일하는 건 어떤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등에 대한 것을 이야기 나눴다. 공개 회의에서는 내가 못알아듣는 부분을 그때그때 물어보기 어려워서 회의가 끝난 후에 따로 이해가 안된 부분을 일대일로 팔로우업 해야하는 게 조금은 어려운 부분이 있고, 아직은 여러 분야별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어서 큰 그림을 그리기까지는 조각퍼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지금은 주어진 자료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고, 아무래도 이 또한 남들보다느릴 수밖에 없다고. 그랬더니 그 큰 그림은 오래 있어도 다 알기에는 한계가 있는 게 제도가 살아움직여서 내가 지금 시점에 다 이해해도 또 시간이 지나면 내가 이해한 거에서 또 바뀌어있다고 하시며 걱정 말라고 해주셨다. 또 외부로 발간되는 자료나 장관 보고 자료를 아직은 혼자 쓸 일이 없으니 덴마크어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말고 내 프로젝트의 경제적 분석에만 집중하라고 해주셨다. 또한 아카데믹 트랙으로 뽑는 사람들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업무에 집중하라고 비서가 있는 거니까 서무업무는 다 비서에게 일을 맡기라고 하시더라. 다들 비서에게 필요한 업무를 주는 것에 약한데, 그 또한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시면서.

동료들은 다들 적극적으로 업무를 도와준다. 문의사항이 있으면 상세히 설명해준다. 바쁜 걸 아니까 나도 물어보는 게 조금 조심스럽지만서도…

매주 월요일마다 현황판 앞에 모여서 단기 데드라인이 있는 프로젝트와 롱텀 프로젝트로 나눠서 진행 상황에 대해 공유한다. 각자 자기의 업무가 나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자원 기업의 운영에 있어서 소비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예산의 틀을 정하는 게 근본적인 우리 핵심업무로서 그에 각기 다른 기여를 하며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를 알아두어야 그게 자기 업무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진행할 수 있고 또 중간중간 내 업무의 인풋을 위해 팔로우업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자기가 도와줘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이번 주 처음 이게 뭐하는 미팅인지 소개가 없이 그냥 듣다보니 어벙벙하게 앉아서 듣기만 했는데, 해당 미팅을 총괄하는 선임컨설턴트 (직급체계가 간단하다. 나와 같은 섹션헤드 (음… 밑에 아무도 없는데 섹션헤드다. Fuldmægtig라고 직급이 되어있는데 나같이 석사를 졸업하고 아카데믹트랙으로 들어오는 모든 일반 직원은 이 직급으로 시작한다. 오늘 받은 명함을 뒤집이보니 Head of section이라고 써있다.) , 선임컨설턴트, 센터장, 부청장, 청장으로 되어있다.) 가 오늘 오리엔테이션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오늘 오전 회의에 이야기나왔던 새로운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엔 몇명이 지원했냐고 물었더니 지난번 나 지원했을 때보다 한자리 더 늘려서 두자리에 채용하는데 그때랑 달리 지원자 규모가 확 줄어서 아홉 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아마 연말에 이코노미스트 채용이 많았어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근거없는 추측…) 두 명 채용을 계획하는데 아홉 명이 지원했다고 하니 많지는 않다. 물론 좋은 지원자들이 있어서 괜찮을 것 같단다. 나 지원했을 때는 몇명이 지원했냐 물으니 40여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두 명을 채용했단다. 어라? 같이 지원했는데 어째서 그 둘은 나보다 한달이나 먼저 일을 시작했냐 물었더니, 업무가 다른데다가 내 업무는 올해 시작되는 업무라 그랬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는 담당 수자원기업이 따로 없을 거 같다고, 내가 이러저러한 좋은 경력이 많아서 중요 연구 프로젝트 두 개를 맡을 예정이라 그런 걸로 알고 있다고 하더라. 두둥… 은행에서 전행예산 담당했던 이력이 크게 작용하고 기타 코트라 이력도 반영이 되었던 걸로 아는데, 아무튼 덕분에 다소 루틴한 부분이 있는 업무에서 배제된 건 감사한 일이지만 덜컥 부담도 되었다.

이제 서서히 이메일이 오고가고 하면서 조금씩 일이 돌아가고 있는 거 같다. 경영진에게 프로젝트를 킥오프를 보고하는 미팅도 준비하기 시작하고 내외부 미팅도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한다. 하루하루가 내가 이걸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이렇게 부딪히며 해나가다보면 다 할 수 있는 거야 하는 생각 사이에서 넘어가고 있다. 이렇게 고민하면서 하루하루 생존하다보면 어느새 2020년이 와서 프로젝트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는 날이 갑자기 눈앞에 와 있겠지?

근무 일주일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매일 7시 반에 출근해서 캔틴에서 갓 구운 롤을 반으로 자르고 버터를 발라 치즈를 한장씩 얹고, 한 쪽에는 캔틴에서 만든 산딸기잼을 얹어 자리에 가져가 먹는다. 그렇게 하면 14크로나. 2400원 쯤 되는 아침 식사. 여기 외식물가가 두 배 정도 되는 걸 생각하면 저렴하다. 물론 제대로 먹는 점심식사가 27크로나 (4500원) 인 걸 생각하면 조금 비싸지만 그래도 저렴하다. 꽤 괜찮은 커피 기계가 캔틴에 24시간 무료로 오픈되어 있어 그걸 곁들이면 훌륭한 아침식사다. 10분이면 자리에 돌아와 앉아 먹으며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잡담은 거의 없다. 업무 이야기를 하며 한두마디 건네는 게 다이고 근무 시간엔 정말 강도높게 일한다. 오리엔테이션 미팅은 지금도 간간히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내 업무에 할당된 자료를 읽고 프로젝트 킥오프를 준비하는 게 가장 크다. 기존 규제방식에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것인데 다른 유틸리티 섹터에 도입된 규제를 참고하고 있다. 상하수도 섹터는 다른 에너지 유틸리티 섹터와 재정운용 방식이 달라서 다른 유틸리티 섹터에 도입된 규제를 그대로 이식할 수 없는데, 상하수도 섹터의 재정운용방식은 바꾸지 않으면서도 정치권에서 해당 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해당 규제 도입은 올바른 결정이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녹여낼지는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최종 보고서가 나와 입법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은 없다.

법 읽는 것은 시간이 생각보다 덜 걸리는데, 우리처럼 꼬아 쓰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여기 법 읽는 것보다 한국 법 이해하는 게 간혹은 더 어려운 것 같으니 놀라운 일이다.

오늘부터는 사전 찾는 시간이 진짜 많이 줄은 것 같다. 덕분에 읽는 속도도 느는데, 지난 일주일간 찾은 단어 숫자가 엄청난 덕이다. 단어장 노트의 반을 거의 다 채운 것 같으니 말이다. 다만 덴마크어를 읽고 이해하는 수동적 어휘와 내가 말을 할 때 꺼내서 쓸 수 있는 능동적 어휘 간에 차이가 많이 나니 간혹은 답답하다.

내 의견을 피력할 때 논리적으로 조리있게 설명하려다 보면 어휘의 한계로 갑갑할 때가 있다. 덴마크어로 머리를 풀가동해 쓰는 거라 생각안나는 단어를 영어로 꺼내기엔 쉽지가 않다. 처음 덴마크어를 배울 땐, 덴마크어->영어, 영어->덴마크어로 번역해 대화를 했기에 말이 안나오면 바로 그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뽑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덴마크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그 기저엔 모국어인 한국어가 무의식중에 깔려 있는 거라 덴마크어로 생각이 안나면 아예 이를 중단하고 영어 문장을 뽑아내야지, 한 두단어 갑자기 영어로 전환해서 말하는 게 힘들어졌다. 그러다보니 덴마크어로 말이 막히면 어버버 할 때가 있다.

오늘 잠깐 나의 보스인 센터장님과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이 남미에서 몇년 지내신 경험이 있으셔서 그 기분 잘 아신다며, 내 언어의 제약이 내가 멍청해서의 표현이 아님을 아주 잘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걸 다 알고 채용한 거니 걱정 말라시며 내 불안을 잠재워주려 하셨다. 본인의 경험으로 (그 전에 한번 점심 때 이야기 해주신 적이 있었다.) 아시는 거니 빈말이 아닌 거 같아 위안이 더 되었다고나 할까?

3일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일주일이 아니라 사실 일주일하고도 이틀 더 일을 했다. 연말에 쪘던 살도 일 시작하고 나니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는지 다 빠지고 살아있는 기분도 들고 좋다. 그러니까 하나와 옌스도 더 보고싶고 집에 와서 둘에게 더 잘 하고 싶고 그렇다.

얼른 나도 내 업무에 적응하고 덴마크어도 늘어서 온전히 1인의 몫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 날은 언제쯤 오려나. 한달은 너무 야심찬 거 같고, 3월 정도면 좀 그렇게 되려나?

덴마크어로 취직을 하기까지

덴마크어를 공부하기 시작한지 4년 4개월. 정말 언제 늘까 하던 덴마크어로 벌써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과 작년 3월인가 4월인가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Graduate program (싼 값에 대학원생을 고용해서 2년정도 국내외로 이동시키며 다양한 업무경험을 시킨 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일반적이다.) 에 덴마크어로 처음 지원서를 썼던 게 시작이었다. 영어로 먼저 지원서를 써서 이를 덴마크어로 바꾸어 번역한 뒤 옌스의 첨삭을 받았더랬다. 어찌나 오래 걸렸는지… 하루 꼬박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논문을 쓰던 와중에 거의 막바지 들어 한두개 정도 지원서를 내봤는데, 이렇게 저렇게 작성양식을 바꿔가며 이력서와 지원서를 써봤다. 그때만 해도 내 문장에 정말 자신이 없었고, 한문장 써내려가는게 너무나 힘들었다.

졸업을 하고 1개월 정도 프로젝트 알바로 아주 바쁘던 시기와 한국 방문시기만 빼고 1주일에 한개 정도씩 이력서를 냈는데, 두어개를 내보고나니 지원서 쓰기도 조금씩 손에 익었다. 6월까지 덴마크어 수업도 열심히 듣고 8-9월 중 한달간 바짝 들었던 수업이 그렇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걸까? 첫번째 인터뷰에서 덴마크어로 인터뷰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문제없이 하고 나서 나 스스로도 너무 놀랐는데, 덕분에 경쟁소비자청 면접에는 덴마크어에 대한 불안을 상당부분 잠재우고 갈 수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문제제기 부문을 작성하고 관련 정부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덴마크어 자료를 많이 읽은 게 도움이 은근 되었던 거 같은게 일련의 전문용어는 그런 자료를 읽는데서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쥐가 나는 것 같은 경험은 대학원 1학기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땐 수업시수와 과제만으로도 치였던 계량경제와 생태학에 덴마크어 수업까지 동시에 들으면서 쏟아지는 자료를 읽다가 머리가 쥐가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경력직으로 들어가 (낮은 레벨이긴 하지만) 신규 업무를 익히는데 그걸 덴마크어로 해야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다. 회의에 들어가서 설명을 들으면서 질문도 해가며 이해해야해서 그렇다. 엄청난 자료 더미를 받았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하려다보니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던 단어도 제대로 확인하고 넘어가야해서 시간이 배로 걸린다. 다행인건 페이지를 넘길 수록 이미 찾은 단어가 다시 반복해 나오고 불확실한 단어나 모르는 단어의 빈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읽고 이해한 데에 그친 단어면 내 능동적 활용단어에 포함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이걸 미팅에 들어가서 내용을 설명듣고 질문하는데 쓰다보면 머리에 빠르게 남는다. 나에겐 일을 하는 거이자 무료 덴마크어 수업을 받는 거다. 물론 이메일 쓰고 공문 쓰고 하는 일은 심적으로 큰 부담이긴 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맞닥뜨려야만 한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9월, 덴마크어 수업을 끝으로 수업이고 뭐고 내려놓고 본격적 덴마크어 공부도 손에서 잠시 논 후 잘 다져왔던 문법적인 디테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것 같았는데, 지난 며칠 사이에 이런 모든 게 다 빠르게 돌아오는 기분이다. 결국은 이런 도전의 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때 정체되어 있던 언어습득이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물론 이제 도전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앞으로 내 분야에서 내가 전문가가 되어 덴마크어로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야 한다는 게 두렵기만 하지만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차근히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직장 동료들도 자기들이 외국에 가서 영어가 아닌 그나라 말로 취직하려면 너무 힘들 거 같은데 어떻게 4년여 시간동안 덴마크어로 일자리를 구했느냐고 묻는다. 왕도는 없다. 그냥 무조건 부딪히고,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러다보면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늘 거다.

[덴마크 Vs. 한국] 업무 이틀째, 덴마크와 한국 공공부문 업무스타일의 차이점

정책결정과정

덴마크 정책결정과정은 우리와 조금 다른 것이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제의 차이에서도 기인한다. 연정이든 하나의 다수당이든 집권여당이 장관직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이 미리 관련부처간에 조율된 정책을 입안하면 나중에 이에 대해 국회에서 찬반투표가 이뤄지게 된다. 오늘 이에 대해 일부지만 정책을 국회에서 찬반 표결에 부치기 전에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는 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주요 정책의 경우 관련 부처 장관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있어서 월에 한번 주요 정책을 모아 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하고 부처별 찬반여부를 표기한 의결안을 작성한다. 정책안에 대한 찬반 내용 및 이와 관련된 이견 등이 담겨있기 때문에 정책 입안이 결정될 경우 야당에서 보면 안될 내용 등을 고려해 해당 자료는 기밀자료로 분류된다. 물론 해당 정책이 완전히 통과되서 입안되면 더이상 기밀자료는 아니다. 이렇게 입안이 결정된 정책은 국회 본회에 상정하기 전에 미리 관련 관련 정당 정책담당자가 모여 해당 정책에 대한 찬반 여부를 논의한다. 정당 입장에서는 정책에 대한 찬성을 결정하나 의원 각자에게 투표의 자유를 맡기는 경우, 해당 정당의 정책에 대해 의원 모두가 따라 투표를 하기로 강제하는 경우와 같이 두가지 형태로 정책에 대한 합의를 미리 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정책에 대해 의원들이 투표를 한다.

내가 할 일은 이제 정당 합의만 완료된 일이고 상수도 및 하수도 업체의 이해관계에 연관된 일이라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쓸 수 없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해당 섹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업무에 바로 투여되서 공부도 하고 모델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놀랍다. 부담된다고 하기보다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옆에 있고 또 내외부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같이 찾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니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긴장감이 든다. 다음주 우리 센터를 관장하는 부청장님과 회의가 잡혀있는데, 이 분야에 인사이트가 있으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다.

이에 맞춰 읽을 거리를 산더미처럼 받았는데, 사전 찾아가면서 열심히 찾아봐야한다. 그래도 확실히 처음 몇페이지 읽는 동안은 부처 특수의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 사전을 많이 찾아봐야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더 물 흐르듯이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또 이를 활용해 회의에 들어가서 설명도 듣고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해야하다보니 읽은 표현을 활용하는 연습도 되서 표현 습득도 된다. 다만 하루종일 덴마크어로 읽고, 생각하고, 말하다보니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기 전까지는 마냥 졸렵다. 뇌가 아주 피곤해하는 모양이다.

출퇴근 및 업무관리

여기서는 하루에 뭘했는지 카테고리별로 시간을 입력하게 되어있다. 이걸 기준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확인하고 야근 수당도 이걸 기준으로 산정된다. 오늘 7시 반에 출근해서 3시 반에 퇴근했는데 조용할 때 업무를 시작하니까 집중도 잘되고 정말 좋았다. 나와 옌스의 하나 보육원 등하원시키는 스케줄과도 잘 맞아서 앞으로 큰 이변이 없는 한은 옌스가 드롭하고 내가 픽업하는 대로 유지하게 될 것 같다.

KPI

여기도 KPI가 있지만 한국보다는 덩어리가 크고 지표 설정에 있어 부처 재량도 크고 부처 특성에 맞춰 각자 차별화가 되어있다. 내 업무는 아직 2019년 KPI가 안나와 있어서 모르지만 나름 정성, 정량 평가가 잘 조화되서 KPI가 설정되는 것 같아서 어떤 형태가 될 지 궁금하다. 하나 좋은 건 워낙 덩어리가 크게 지표들이 설정되어 있어서 뭔가 빠뜨릴까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어도 된다는 거다.

문서관리

우리랑 문서시스템이 크게 차이가 있는데, 어떤 사안별로 “사안”명을 넣은 문서그룹을 설정하고 그 안에 관련된 문서와 저장이 필요한 이메일 수발신 내용을 전부 기록한다. 우리처럼 어떤 형식이 정해져있지는 않다. 물론 문서에 따라서 형식이 있기는 하지만 이메일의 경우는 그런 것이 없으니 말이다. 아웃룩에 연동된 문서저장시스템을 통해 쉽게 이메일을 문서로 저장할 수 있고, 관련 문서번호는 자동으로 채번된다. 쏟아지는 문서에 매몰되는 일이 없어서 좋다.

금요일 아침식사

금요일엔 대부분의 회사가 아침식사로 업무를 시작한다. 우리는 9시 15분부터 아침식사를 함께 하는데, 각자 당번을 맡아서 한번씩 돌아가며 아침식사를 사오는데, 빵, 치즈, 버터 등 대충 정해져있다. 이 식사에 붙여 주간 회의를 하는데, 업무보고는 아니고 전달사항 같은 게 있으면 하는 식이다. 먹으면서 체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근무 이튿날도 무사히 흘러갔다. 사람들도 너무 나이스하고 각자 하는 일이 서로에게 긴밀하게 영향을 주게 되어 있어서 협업이 많아야 하는 점도 재미있을 거 같고 (물론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좋다. 그래도 주말이 좋은 건 엉망진창이 된 집을 정리하고 싶어서라 해야하나. 그간 그렇게 취직하고 싶어하더니 주말이 바로 좋은 건 너무 간사한 거 같다. 흠흠. 하나와 같이 보낼 내일, 모레 이틀이 기대된다.

새직장 출근 첫날 기록

새로운 회사를 다니는 건 정말 오랫만이지만 새로운 업무를 맡아보는 건 처음이 아닌지라 쏟아지는 정보 속에 압도되는 기분 자체는 아주 낯설진 않았다. 물론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압도되는 기분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엄청나게 두꺼운 파일에는 환영파일이라는 라벨이 컴퓨터에 내 이름이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천장이 눈에 띄게 높은 사무실 공간에는 여유롭게 큰 책상들이 파티션 없이 두 개, 네 개씩 붙어있다. 오픈된 공간이지만 각자 엄청 큰 모니터 두개를 앞에 두고 있어서 앞에 앉은 직원과는 혹여나 나나 상대방이 책상을 높여두고 있으면 얼굴 보고 말하기 어렵다. 사무실 공간은 조용해서 서로 이야기는 낮은 목소리로 나누고 대화할 거리는 회의공간을 항상 따로 예약해서 별도로 이야기한다. 개인 전화 통화를 하는 경우 따로 들어가서 서서 전화할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다. 옌스네 사무실에도 그런 공간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그런 걸 보니 그게 특별한 게 아닌가보다 싶다.

아침은 컴퓨터 비밀번호 세팅과 자리에 놓인 서류에 대한 멘토 (나보나 1년정도 먼저 일을 시작한 동료로 대학원에서 같은 수업을 많이 들었었다. 이미 한 컨퍼런스에서 만나 인사를 나눠서 같이 일할 걸 알고 있었다.) 의 설명으로 시작해서 전체 팀원의 환영 커피타임, 내 아이디카드 사진 촬영과 수령 (Danish government official 이라 쓰인 신분증을 받아드니 다소 생경했다), 핸드폰 수령 (뭔가 세팅이 다 안되서 다시 반납하긴 했지만…), 환영 파일에 포함된 문서 읽기로 오전을 시작했다. 업무 파악엔 KPI 읽는 게 제일인지라 그것부터 시작했는데 업무에 쓰이는 어휘 익히기에 좋더라. 중요한 건 앞으로 사전을 사무실에 비치해야겠다는 점. 내가 쓰는 온라인 사전이 이상하게 로그인이 안되더라.

점심은 30분동안 후다닥 동료들과 캔틴에서 함께 하는데 전 부서원이 함께 점심을 하더라. 이는 점심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서 그러는데 그 조건으로 30분 이내에 먹어야함이 있다. 업무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확실히 점심시간엔 나에게 직접 내 얼굴보고 이야기하는 거 아니고 크게 이야기하지 않고 빨리 이야기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다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덕분에 중간중간 뭔 이야기인지 다시 물어봐야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와 새해 시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1월 1일이면 시무식으로 다 같이 모여 조회를 하던 문화와 참 다르다는 걸 느꼈다. 사실 너무 오래되서 기억도 안났는데 옛날 국민은행 입행동기들이 카톡으로 시무식에서 상을 탄 동료의 사진을 공유하는 데서 역문화충격을 느꼈다고나 할까. 덴마크식 캐주얼한 문화에 너무 젖어있었나보다. 우린 시무식이 다음주에 잡혀있던 것 같던데… 그것도 오후 시간에. 흠…

오후엔 내 보스와 함께 면담을 통해 조직 전략과 목표, 중요시 하는 가치관과 조직특성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내가 할 일 중 가장 먼저 시작할 일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나도 궁금한 점에 대해 물어보고. 달에 한번 꼴로 상황미팅이 있어서 업무 및 개인 조직적응 등에 대해서 평가와 피드백, 건의사항 등을 주고 받을 수 있다 한다. 물론 상시 상사와 업무 협의야 할 수 있지만, 이건 조금 더 내 개인에 맞춰진 구체적 미팅. 업무 결과가 중요한 것이므로 출퇴근 시간은 상당부분 내 재량에 맞춰진다는 것도 참 신선하다 못해 상큼했다. 바로 내일부터 출근은 7시 반에 하는 걸로 했다. 그러면 3시 반에 퇴근해서 하나를 픽업할 수 있으니까.

내가 할 일들을 읽어보면서 참 앞으로 1년 동안 상당히 챌린징한 시간을 겪겠구나 싶으면서도 기대도 되고 아주 즐거운 한 해가 될 거란 기대가 된다. 무엇보다 강제로 덴마크어 몰입환경에 내몰리니 덴마크어도 빠르게 늘 것이고.

어제 밤에 잠이 어찌나 안오는지… 낮에 친구를 만나 두잔이나 마신 커피 탓인지 아니면 다음날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 때문인지 밤에 잠을 엄청 설쳤다. 거의 안잔 듯 얄팍하게 자면서 아주 여러번 깼으니 말이다. 대신 태어나 두번째로 (첫번째도 덴마크였지만) 유성도 보고 (소원은 못빌을 만큼 순식간이었지만) 기분은 참 좋았다. 덕분에 지금 너무 피곤하다. 신문만 보고 자야지… 잊기 전에 오늘을 기록해둔다.

길디 긴 명절이 끝났다.

24, 25, 26, 28일. 4일간에 걸친 뻑적지근한 가족행사가 모두 끝났다. 다행히 마지막 날이었던 오늘은 요리하는 거 없이 외식하는 거라서 크게 힘들 거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원래 가까운 가족 율리아픈(Juleaften)은 24일 한번에 하는데, 올해만큼은 시누네 가족이 곧 돌아가실 시누이 시아버지와 함께 하기 위해 24일을 율란 시댁에서 보내고 우리와는 25일에 따로 보내고 싶다 해서 이틀에 걸쳐 하기로 했다. 24일 율리아픈에 먹을 네가지 음식을 위해 23일 디저트 만들기부터 요리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디저트로 먹을 리살라망(risalamande)을 만들기 위해 23일 밤 우유로 만드는 쌀죽인 리슨그뢸(risengrød)을 한시간동안 불옆을 지키고 서서 저어가며 만들어서 베란다에 밤새 내어놔 차갑게 만들어 두었다. 24일엔 오후 1시 반부터 저녁 6시 반까지 부엌에서 종종거리며 적양배추 무화과 샐러드와 생오렌지잼으로 글레이징한 오리가슴살구이, 삶아 손으로 살짝 으깨 꿀과 버터를 발라 오븐에 구운 감자요리, 미리 껍질을 벗겨둔 아몬드를 으깨고 생크림을 잘 휘핑해 바닐라씨앗과 함께 리슨그뢸을 잘 접듯이 섞어 리살라망도 만들었다. 그렇게해서 먹는 건 또 순식간…

그리고 25일은 일주일간 쌓인 빨래를 아침부터 바삐 돌려대고 구워가기로 한 루브뢸(rugbrød) 2개를 구워 하나와 함께 시부모님과 시누이네 별장에 갔다. 중간에 반죽하다가 옷에 쏟고 난리를 치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여러가지 부엌내 소소한 사건사고가 많았던 날. 안그래도 바쁜데 말이다. 엎친데 덮쳐 옌스는 눈에 생긴 다래끼가 오래되어도 낫지를 않아 갑작스레 간신히 병원에 약속을 잡느라 아쉽게도 나 혼자 가게 되었다. 사실 나혼자면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하실 빨래 건조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나에게 시어머니가 따로 전화를 하셔서 시누네 애들이 하나 보고 싶다고 너무 아쉬워한다며 하나랑 나만이라도 가지 않겠냐 하시길래 못간다 하기 좀 그래서 다소 지친 몸을 이끌고 갔다. 즐겁긴 했지만 점심도 요기처럼 아주 간단히 하고 가서 저녁까지 기다려 밥을 먹은 거라 기력도 좀 딸리고 지쳤다. 하나가 시누네 애들과 너무 잘 놀고 저녁도 잘 먹어줘서 기쁘긴 했다.

26일은 시아버지네 가족들과 그 직계가족까지 24명이 모이는 날이었는데, 각자 한가지 요리를 해가기로 해서 나는 잡채를 해갔다. 시어머니도 음식 준비를 우리 집에서 하셔야 해서 그 전까지 요리해서 부엌을 비워드리려니 새벽같이 일어났어야 했는데 늦잠을 자서 9시까지 자버렸다. 으아… 그나마 잡채에 들어갈 고기는 미리 재어두었으니 망정이지. 간신히 11시 15분까지 자리를 비워드리고 나도 나갈 채비를 했다. 도저히 화장은 할 시간도 없고 힘도 없어서 패스. 애들이 많으니까 하나도 잘 놀아서 우리는 그냥 눈으로 감독하다가 하나가 계단 오르내리고 싶어할 때만 손잡고 이동하는 식으로 보면 되어서 옌스와 교대해가며 먹고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었다. 5시 즈음 되어서 시부모님이 이제 가겠냐고 해주셔서 적당한 시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머리고 아프고 몸살기운도 있어서 움직이기 참 힘들었다. 나는 배가 안고팠지만 저녁은 준비해야지 하면서 반조리된 빵을 굽고 그위에 얹어먹을 것들만 좀 팬에 데워 내고 나니 정말 몸 컨디션이 안좋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서 다음날까지 잤다. 중간에야 깨서 옌스와 잠깐 이야기도 하고 하긴 했지만 침대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27일이 찾아와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나니 28일. 11시 반엔 다 준비하고 나서야 했는데 아침 늦잠으로 8시 반까지 자고 나니 은근히 바빴다. 별로 한 것도 없지만… 그래도 호텔에서 하는 시부모님 금혼식 식사인데 화장이라도 잘 하고 가야할 것 같아서 말이다. 하나의 낮잠이 좀 꼬여서 한명이 밖에서 애 자는 동안 대기하고 한명만 식당에 들어가있는 식으로 첫 한시간은 이상하게 되었지만 1시부터 5시 반까지 이어진 점-저 같은 식사라 상관없었다. 시누 애들이 하나를 잘 봐주기도 하고 식사 도중엔 자기 식사 끝날 때까지 크게 어렵지 않게 잘 먹어주는 애이기도 해서 이제 이렇게 밖에 데리고 가도 어렵지 않고 괜찮다. 중간에 봐줄 사람이 많아진 셈이니까. 오늘은 요리하는 것도 없고 먹고 이야기만 하면 되다보니 크게 힘들건 없었는데, 그래도 끝나고 집에 오니 운동할 힘 따윈 남아있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차. 불고기 좀 재워둔다고 양지를 사왔었구나. 며칠 전에 사왔는데 자꾸 미루게되네. 아차. 내일 송년회가 하나 또 있구나. 사이드디쉬 하나 해가기로 했는데… 결국 다시 나가서 장을 봐와서 감자와 계란을 삶아두고 미뤄뒀던 불고기도 재워뒀다. 이제 정말 있는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쓴 기분.

이렇게 길디 긴 명절이 끝났다. 아마 이렇게 에너지가 고갈된 건 아마 명절 전주 수요일에 만두피까지 밀어 만두를 빚고 (역시 만두피는 힘들다) 목요일에 치즈케이크를 만들고 금요일에 파티를 다녀온 탓일게다. 그 사이 빈 일정에 율 선물 쇼핑을 틈틈히 껴서 쉴틈없이 돌아다닌 것도 있을게지. 내일 파티 하나 다녀오고 31일 우리 세식구 송년만찬만 하고나면 이 한해도 끝난다. 그러면 3일부터 출근 시작이구나. 갑자기 뱃속이 간질간질한게 긴장이 되는가보다. 남은 며칠동안 신년계획 좀 세워봐야겠다. 아주 간결하게 한 세가지 정도만 말이다.

몸이 엄청 힘들었던 것과는 달리 마음은 그냥 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인 마냥 즐겁고 편했다. 나도 그들을 잘 알고, 그들도 나를 잘 아니 뭘 이야기해야할 지 생각하느라 뻘쭘한 것도 없어지고. 조카들도 나를 아주 편하게 여기고 장난도 치고. 내년에는 또 더 가까워지겠지. 가랑비에 옷 젖듯…

크리스마스 준비

드디어 이번 주말만 지나면 크리스마스다. 부활절도 명절이긴 하지만 덴마크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이라 하면 역시 크리스마스를 꼽는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동지를 기념하는 Germanic 계열 인종들의 축제를 기독교에서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택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쓰지 않고 율 (Jul) 이라고 한다. 하지는 Sankt Hans Aften으로 기념하듯 동지는 Jul로 기념한다.

아무튼 가장 큰 명절이니만큼 안그래도 서로 집으로 초대하기 바쁜 덴마크인의 일상은 11월부터 엄청 바빠진다. 회사, 친구, 친지, 가족 등 서로 초대해서 커피를 즐기든, 밥을 먹든, 파티를 하든 할 일이 많다. 나처럼 옌스의 네트워크와 나의 대학원 네트워크처럼 좁은 인간관계만 유지하는 경우에도 옌스의 보스의 보스로부터 가족단위 초대를 받아 꽤나 시끌벅적한 캐주얼한 저녁에 다녀왔고 (우린 8시 전에 애를 재워야 하는 관계로 간단하게 식사 전에 먹은 æbleskiver만 먹고 왔다. 우리네 호두과자에서 호두속을 뺀 빵같은 거라고 할까? 아니면 팬케이크를 그런 모양으로 구웠다고 해야하려나? 옛날엔 사과를 속에 넣었어서 æbleskiver라고 했다는데 요즘은 아무것도 안넣고, 베리류 젬과 파우더설탕을 뿌려 먹는다.) 대학원 친구들 파티를 포함해 이것저것 다녀왔으니 네트워크 넓은 사람은 정말 정신없이 바쁘다. 한국사람들 연말 연시 바쁜 것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인데 서로 오고가는 집 초대가 주를 이룬다 생각하면 다들 그 요리와 집 정리 및 청소까지 얼마나 바쁠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OMG…

우린 24일 우리집, 25일 시누이네 별장 (두바이 주재중이라 집은 세를 줘 덴마크에 잠시 돌아올 때면 별장에 머문다), 26일 둘째 시고모님네 집에서 명절을 치르고 28일 시부모님의 금혼식 파티가 있다. 헉. 24일은 풀코스 요리 준비가 있고, 25일과 26일엔 각자 나눠 맡은 음식만 하면 된다. 25일은 아직 메뉴 결정이 안되었고 (아직도!) 26일엔 잡채를 하기로 했다. 오늘 고기를 양념에 미리 재워뒀으니 26일엔 나머지 일만 하면 된다. 좁디 좁은 우리집 부엌에서는 손님 두 명이면 딱이다. 이번에 큰 팬을 사서 네 명까지 커버 가능은 한데, 이상적인 건 두 명 손님.

재료는 오리가슴살만 빼면 다 샀다. 오늘 간 수퍼마켓 두 군데엔 가슴살이 다 팔린 걸로 봐, 통오리의 오븐요리가 (나중에 있을 오븐 청소로 인해… 기름이 엄청 많은 오리고기) 부담스러운 사람이 꽤나 되는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내일 가보고 없으면 냉동고기를 사는 걸로 해야겠다. 지난번 해보니 냉동도 나쁘진 않았으니.

요리는 미리 할 수가 없으니 뭘 할 수 있나 하다가 아몬드 껍질을 까야겠다 싶어서 유튜브를 찾아봤다. 껍질을 미리 깐 아몬드도 파는데, 원래도 비싼 아몬드 가격이 확 뛰길래 그냥 직접 해보기로 했다. 시어머니께서 그게 어렵지 않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어서. 진짜 간단했다. 1분정도 끓는 물에 넣고 끓인 뒤 껍질이 살짝 들뜬 것 같으면 이를 꺼내서 둥근 부분을 잡고 조금 힘을 줘 누르면 아몬드 속살이 뾱 하고 빠져나온다. 이걸 그렇게 비싸게 받다니!

아무튼 오늘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내일 저녁엔 우유쌀죽을 끓이고 그 다음날엔 요리 세가지. 사실 그렇게 보면 크게 차리는 건 아닌데 그래도 뭔가 나도 즐기면서 요리도 하고 하려다보면 미리 준비할 것도 많고 타임플랜도 잘 해야하니까 은근 마음 한자락에 부담이 된다.

그래도 이 부담이라는 게 내가 잘 하고 싶어서 그런 거고 아무도 시키는 사람도 없으며 (시부모님은 와서 같이 하자고 하시기도 하고 실제 오셔서 같이 도와주실 거다.) 나도 즐겁게 즐긴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며느리들이 느낀다는 명절스트레스와는 많이 다른 스트레스다. 다들 손님차림 멋드러지게 해내니까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생기는 부담이라고나 할까? 그나마 다행인 건 손님초대도 하면 할 수록 는다는 것.

내일 하루만 더 보내면 창문에 쌓인 선물을 트리 아래로 내리고 (지금 내리면 하나가 다 뜯어볼 것이기에) 선물을 개봉하며 기뻐하는 하나를 볼 수 있겠구나. 나도 옌스가 올 해 내 선물은 몇달이나 미리 샀다는 데 뭔지 도대체 알 수 없어 궁금하다.

껍질을 벗긴 아몬드와 껍질의 잔해
Julestemning i vores lille lejlighed

멍청한 실수

나이가 들면서 주의가 부족해진 걸까? 지난번 부모님 비행기표 예매에서 직항인 줄 알고 끊었던 표가 새로고침에서 온 실수 탓인지 뭔지 핀란드 스탑오버행으로 바뀌어 있어서 난리 한번 친 게 불과 4개월 전인데 이번엔 시험 날짜를 잘 못 알았다. 구술시험을 보기 전 채용이 결정되면서 구술시험은 정말 보기가 싫어졌었다. 시험 통과하고 나면 이걸로 내가 덴마크 대학에 갈 수준은 된다고 할려는 목적이었기에 채용 결정과 함께 급격히 의지가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시험 일자 통보후 그저께까지 열흘 가까이 되는 밤마다 시험을 볼지 말지 고민하다가 드디어 시험을 보겠다고 결심을 했더랬다.

온도는 낮고 바람도 제법 불지만 해가 떠있길래 자전거를 끌고 (시험장 위치가 가까우면서 교통이 애매하다.) 갔는데 고사장 안내가 영 안되어 있었다. 리셉션으로 가서 내 고사실을 못찾겠다 했더니, 오늘은 시험이 없다며 당황한 표정으로 답을 했다. 혹시 내일은 아니냐고 묻는 사람과 그 옆에서 혹시 어제는 아니었냐고 묻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도 당황해서 이메일을 다시 열어보니, 10.12.2018 이라고 되어있었다. 어떻게 12만 읽고 12일이라 생각했을까? 난 이제 덴마크식 날짜 표기에 익숙해있다 생각했는데, 무의식에는 여전히 미국식이 깊게 남아있었던 것일까? 시험 일자 통보가 12월에 되었으니 그래서 앞에 10이 12이려거니 생각하고 보지도 않았던 걸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돌아나왔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시험날짜도 모르고 그저께 시험을 보러 이틀 뒤 나타난 모양새가 어찌나 우스꽝스러웠을런지. 안타까웠을 수도 있고.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시험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거였다. 

조심하고 살아야지… 앞으로 일할 때 특히… 참 멍청한 실수였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