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의 첫페이지 작성 시작, 그리고 덴마크어 선생님

아직 분석은 시작도 못했지만, 이제서나마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읽기는 읽어도 막상 쓰기까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나의 이런 완벽주의를 간파한 교수님이 완벽할 필요가 없으니까 우선 써내려가기 시작하라고 해서 그 첫발을 오늘 내딛었다. 그전에 옌스가 ‘논문은 우선 하루에 한장이라도 정해놓은 분량을 우겨넣든 어쨌든 쓰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총 8~90장 쓴다고 생각하면 매일 한장씩 쓸 때 꼬박 세달 걸리는 분량이다. 물론 모델을 만들고 돌리느라 한장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을 수 있지만, 또 방법론이나 모델을 돌린 결과를 쓰는 건 이미 고민을 많이 해 놓은 것이거나 드러난 결과를 요약하는 것일 뿐이기에 하루에 몇장씩도 쓸 수 있으니 못쓴 날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너무 바쁘다며 덴마크어를 중단할까 징징댔던 것을 후회할만큼 논문 작성에 덴마크어가 많이 필요하다. 덴마크의 현상을 주제로 잡은 이상 작게는 데이터의 변수명부터 크게는 정부 발표자료까지 많은 자료가 덴마크어로 되어있고, 이걸 구글번역기와 사전으로 들입다 번역해야 했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사전의 이용은 피할 수 없지만 꾸준히 신문으로 긴 텍스트를 읽는 습관을 들인 덕분에 여기저기 흩어진 많은 자료를 스킴해서 논문에 녹여넣는 게 크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덴마크어 수업 모듈 5는 이번이 세번째다. 첫번째엔 나쁘지 않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학업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바빠서 아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숙제를 제대로 할 여력이 없었다. 그 덕에 복습도 별로 못하고 사상누각같이 대충 대충 덴마크어를 쌓아올리는 기분이었다. 그 상태로 계속 공부하면 PD3면 모듈 6를 듣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시험을 치지 않기로 했고, 5.2에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두번째에도 나쁘지 않은 선생님이었지만, 나와 맞지 않는 선생님이었다. 시험에 방점을 강하게 찍고 수업하는 스타일이라, 호기심 천국인 나에게는 너무 틀에 꽉 짜여진 수업시스템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번째엔 5.2도 채 끝마치지 않은 상태로 중단을 결정했다. 대학원도 너무 바빴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로 계속 수업을 듣기도 싫었다.

이번 선생님은 너무 마음에 든다. Einar라는 선생님인데, Studieskolen에서 수업을 들으려는 사람에게 정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선생님이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선생님으로 학생별로 강약점을 잘 파악해 그에 맞추어 코칭을 해준다. 수업의 기본적 틀은 유지하되 수업에서 나오는 질문들에 유도리있게 시간을 할당하고 학생들이 뭘 질문하는지를 빠르게 캐치해서 정확하게 답을 해준다. 작문숙제의 경우 한 학생의 작문을 골라서 모든 학생들에게 직접 첨삭을 해보도록 하고, 그 시간 중 직접 해당학생에게 붙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춰서 첨삭을 해준다. 사실 선생님이 학생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다르게 첨삭해줄 수 있는 내용을 다른 의미로 바꿔주는 경우를 여러번 경험했기에 이런 첨삭교수법은 아주 신선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텍스트를 첨삭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많이 배울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수정을 해주니 작문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 수업이 시작된 이래 불과 6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많은 발전을 느끼고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것인가. 삼세번의 시도 끝에 합이 맞는 선생님을 만난 게 너무나 기쁘다. 바빠도 이 수업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 해서 끝장을 봐야겠다. 마침 PD3 시험 신청도 끝났으니까.

진작 이 선생님을 처음부터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사람은 진짜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뭐 다 지나간 일이고, 지금부터 더 박차를 가해봐야지.

덴마크 크리스마스 또는 율(Jul)에 먹는 이야기

덴마크어로 크리스마스는 율(Jul)이라고 한다. Jesus Christ에서 영어로는 뒤의 Christ를 따서 크리스마스지만 덴마크어로는 예수스(Jesus)에서 파생한 단어인 모양이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보냈다. 매해 시누이네 집에서 시누이네 시부모님과 우리 시부모님, 옌스와 나까지 보내다가 이번엔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시누이는 남편이 두바이로 주재근무를 나가면서 가족이 모두 3년간 이사를 나가게 되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함께 보낼 수 있으려나 했는데, 한해의 1/3을 해외로 출장다니는 시누이 남편이 이번 크리스마스 휴일은 좀 쉬고 싶으니 휴양지로 가자고 했단다. 그래서 시누이네 별장에서 일주일 먼저 이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자 했는데, 우리 집 온가족이 다 아픈 바람에 우리만 빠지게 되었다. 너무 아쉽게도. 매번 엄청 뻑적지근하게 보내던 크리스마스가 우리만의 단촐한 파티로 바뀌게 되어서 아쉬웠다. 그 나름의 장점도 있긴 하겠지만.

덴마크의 크리스마스는 24일이 가장 중요하다. 가장 큰 크리스마스 만찬이며 게임, 선물 개봉 등이 다 24일에 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25일, 26일은 첫번째 율, 두번째 율이라 부르며 율리프로고스트(Julefrokost)라고 길디 긴 점심식사를 한다. 우리는 주로 24일 시누네서 율리프로고스트, 율리아픈스맬(Juleaftensmad)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 쉬고 26일 시고모님 두분 중 한분 댁에서 율리프로고스트를 하는 게 루틴이다. 가족마다 각자 챙기는 방식은 다 다르다.

그래도 대충 비슷한 건 율리프로고스트와 율리아픈스맬.

율리프로고스트는 검은 호밀빵인 Rugbrød, 밝은 색 밀가루 빵인 Franskbrød (밀가루 빵은 재미있게도 대충 프랑스빵이라고 부른다.) 등을 바스켓에 담고, 그 위에 얹어먹을 Pålæg을 이것 저것 준비해둔다. 그러면 빵 위에 버터를 발라 Pålæg을 이것 저것 얹어먹으면 영어로 오픈샌드위치로 엉터리로 번역된 Smørrebrød이 된다. Smør가 버터이고 Brød은 빵이니 사실 버터바른 빵이라는 뜻이다. 아무튼 모양은 빵이 아래에만 깔린 형상이니 오픈 샌드위치로 불리긴 한다. 중요한 건 이건 손으로 들고 먹는 게 아니라 포크와 칼을 들고 먹는다.

Pålæg에는 궁합이 있다. 1차는 어류, 2차는 육류라 이에 맞춰 접시는 2개를 포개어 준비한다. 어류로는 식초에 절인 청어로 시작하는데 다른 것 없이 식초에만 절인 것부터 딜(dild)을 넣은 것, 카레소스에 절인 것 등 다양하다. 청어는 주로 흐르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삶아진 계란과 함께 먹는다. 다음은 대구를 다져 양파, 밀가루, 계란을 넣고 팬에 튀긴 피스커프리카델라(Fiskefrikadelle)로 라물렐(Remoulade) 소스를 얹어먹는다. 그 다음은 훈제 연어. 굳이 다른 건 얹어먹지 않아서 신기했는데, 케이퍼는 생략하고 먹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평소에 채소로 옆에 곁들이는 건 오이와 토마토 정도인데, 그나마도 크리스마스에는 먹을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걸까? 아예 내놓지 않기도 한다. 2차 육류는 주로 간 파테인 리워포스타이(Leverpostej),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고기육수를 굳힌 젤리,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반반 섞어 만든 고기완자인 프리카델라(Frikadelle) 등을 먹는다.

사실 이렇게 먹고 나면 시간이 꽤 되는데, 오후의 커피/티를 하고 조금 쉬고 나면 저녁 준비를 또 하게된다.

율리아픈스맬은 오리구이(Andesteg), 껍질을 아주 바삭하게 구운 돼지삼겹 통구이인 플래스커스타이(flæskesteg), 순대처럼 돌돌 길게 말린 생소세지 구이인 메디스터푈서(Medisterpølser) 등을 사이드와 함께 먹는다. 소스는 주로 브룬소스(Brun sovs)이며 카라멜라이즈드된 브룬카토플러(Brunkatofler)와 독일의 sauerkraut와 같은 따뜻하게 준비한 시큼한 양배추 샐러드인 뢸콜(Rødkål)을 사이드로 곁들인다.

디저트는 프랑스어인 척 하는 리살라망(Ris a la amande)이라는 쌀 푸딩인데 리슨그뢸(Risengrød, 물과 우유로 끓여낸 쌀죽에 계피설탕을 넣은 것)에 거품을 단단하게 올린 휘핑크림과 껍질을 까 다진 아몬드를 넣으면 된다. 그 위에 체리소스 (집에 따라 따뜻하게, 차갑게도 준비한다.)를 얹어 먹는데, 크림 때문에 느끼해서 많이는 못먹겠지만 진짜 맛있다. 차가운 쌀죽에 따뜻한 체리소스의 궁합이란 의외로 너무 잘 맞는다.

아몬드 중 하나는 다지지 않고 통으로 넣는데, 이걸 가져간 사람은 재미있는 선물을 하나 받는다.

우리 집에서 4명이서 먹는데 크게 하기도 그렇고, 하나도 있는데 작은 부엌에서 너무 힘들 것 같아 시어머님과 상의해 간단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어차피 26일에 포트럭 식으로 시고모님 댁에서 율리프로고스트는 뻑적지근하게 할 것이기에 24일은 오히려 간단히 해도 상관없었으니까. 통오리는 손질이 번잡스럽고 요리 과정에서 기름 덜어내는 것도 엄청 큰 일인데다가 오븐이 기름으로 범벅이 된다기에 가슴살로 준비했다. 350g짜리 아주 큰 가슴살 4 덩어리를 사오셨는데, 오리 가슴살과 그에 곁들일 사과 및 Ribsgel 등으로 메인 요리를 완성했다. 해보니 너무 간단해서 앞으로 간간히 오리를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옌스가 뢸콜을 안좋아해서 번외로 자주 해먹는 적양배추 샐러드를 곁들였는데, 시부모님도 너무 맛있다면서 좋아하셔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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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율리아픈스맬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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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표 리살라망

거의 시부모님이 준비를 많이 해오신데다가 주방에 시부모님과 나 세명이 서서 준비하다보니 의외로 너무 빨리 준비가 되서 하나 재우고 느지막히 준비를 시작했는데도 시간이 충분했다. 덕분에 어른들끼리 저녁을 오붓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년에는 다시 시누이네랑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된다고 해도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고, 같이 한다면 이제는 음식 준비에도 좀 더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크리스마스였다.

 

(참고로 덴마크인이 크리스마스에 뭘 먹는가 하는 기사도 있다. 덴마크어이긴 하지만…)

 

언어 공부에 있어서 발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내게 가장 오래된 취미는 언어공부다. 스트레스를 간간히 받지만서도 어려서부터 지금껏 꾸준히 즐겨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언어공부. 아빠는 나보고 언어학을 하면 잘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간간히 하셨는데, 내 생각에도 그랬을 거 같다. 다만 밥 벌어 먹고 살기 꽤나 빠듯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쪽으로 갈 생각은 들지 않았고, 이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언젠가 싫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굳이 업으로 삼지 않아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영어에 대한 호기심은 기억이 나지 않는 때부터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기억 나는 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읽지도 못할 영어 원서 아동서적을 샀던 경험이다. 사실 내 나이 또래 애들이 읽을 법한 책을 영어도 모르는 내가 샀으니 읽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또 초등학교 때 해외에 잠시 살다온 친구들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가졌던 게 기억난다. 특히 기억나는 건 상민이라는 아이. 짝궁이었는데 그 애가 미국에서 살다왔다는 것을 알고 이것 저것 말해보라면서 엄청 귀찮게 굴었던 게 기억난다. 그러다가 좋아하게 되서 더 귀찮게 했던 것 같다. 사촌이 미국에 가서 잠시 살았던 것도 이유였을까? 영어를 잘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동네에 생긴 작은 영어학원에 오빠와 함께 보내주셨다. 그때만 해도 회화학원이라는 게 거의 없던 때였는데, 주한 미군 남편을 둔 미국인 여자분을 선생님으로 해서 파일럿 반을 열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나와 오빠, 고위, 도위라는 형제, 그리고 2명 정도 더 있었는데 (세상에. 성은 몰라도 이름은 아직도 기억나는 악몽의 고위, 도위 형제.) 시작은 오붓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에게서 무슨 싹을 본 건지, 어느날 내 어깨를 붙들고 student를 계속 발음하도록 시켰다. 스튜던트, 스튜던트 하고 계속 발음할 때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 들어보라고 하면서 또박또박 말해주셨는데 갑자기 아하! 하는 순간이 왔다. 이 새로운 충격. 이 날을 계기로 내 발음에는 천지개벽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원어민 발음에 가까운 발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했던가. 고위, 도위 형제 뿐 아니라 오빠까지 합세해 발음 문제로 따를 당했다. 그게 싫었어도 영어를 배우는 게 너무 좋아서 열심히 다녔다.

중학교 때 3천명이나 되는 학생으로 버글거리는 명일여중을 다녔는데, 거기에 서울시 전체 중학교를 대상으로 5명의 원어민 교사를 시범사업처럼 파견하는 일이 있었다. 1학년 5개 학급을 대상으로 (총 17개 학급이었는데) 레베카라는 젊은 여선생님이 배정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 반도 이에 해당되었다. 덕분에 영어를 조금이나마 또 써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는 외고를 다녔던지라 영어와 전공언어인 중국어를 배워야 했는데, 언어학습에 대한 호감은 이때부터 커졌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항상 언어는 도구라고 하셨던 탓에 이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도구인 만큼 항상 가까이 해야한다고 하셨기에 참 열심히 했었다. 이때부터 시작한 게 녹음해서 발음 교정하기였다. 어디서 들었던 걸까?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들으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정말 다르다는 것을. 오성식의 팝스잉글리시였을까?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마침 오빠가 더이상 쓰지 않던 워크맨을 내가 빌려다가 녹음 기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집을 풀면서 지문을 읽을 때 그냥 읽는게 아니라 소리내어 읽으며 녹음하고 그걸 들으며 발음을 확인하곤 했다. 귀로는 원어민의 발음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내 발음과 원어민 발음의 차이를 메워보고자 뭔가 이상하게 들리는 단어는 적게는 한두번에서 많게는 수십번까지 다시 연습했다. 가장 어려운 발음은 elderly에서 처럼 rl이 겹치는 거라던지, ee나 ea처럼 입을 옆으로 쫙 찢어서 발음해야 하는 장모음 등이었다.

영어를 그렇게 하다보니 중국어도 그렇게 하게 되었고, 한자를 잘 못외워서 그렇지 말도 곧잘 하게 되었고 발음도 좋아졌다. 고등학교를 끝으로 중국어를 놔서 그렇긴 하지만, 스키캠프에서 만나 친해졌던 중국친구 짱펑과 국제전화 및 편지 교환을 통해 실력을 많이 늘리게 되었고 한때는 중국어 실력이 영어보다 좋았던 때마저 있었다.

취직해서 바쁘다보니 오랫동안 더 많은 언어를 공부하긴 어려웠지만, 그간 마음만 두었던 불어가 계속 눈에 밟혀 KOTRA에 다니던 동안 불어 공부도 1년간 했다. 매일 최소 한시간씩 꾸준히 하며 전화 불어도 하고, 프랑스 친구와 언어교환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더니 나름 대화도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발음은 어찌나 중시했는지, 언어교환하던 친구도 네 언어 실력과 발음간에는 아주 큰 격차가 있다며, 발음만 잠깐 들으면 불어 잘하는 줄 알겠다고 농을 했다.

덴마크 오면서 불어는 다시 내려놓고나니 덴마크어에 눌려서 불어는 이제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쉽다. 불어는 나중에 덴마크어 공부가 끝나면 다시 배우는 것으로 해야지. 아무튼 불어에 이은 언어는 덴마크어였다. 옌스 만나기 전까지 배울 일 없다 싶으면서도 동료에게 이런 저런 발음만 조금씩 배워두고 있었다. Rød grød med fløde 이라는 외국인들이 모두 하기 힘들어한다는 이 tongue twister를 열심히 연습한다던가, 일방통행이라는 뜻의 ensrettet 표지판을 볼때마다 읽어댔다. 이런 발음에 대한 나의 열정을 아는 옌스는 발음 교정에 적극 동참해주었고, å라는 모음을 정확히 읽을 때까지 1년 반동안 수없이 고쳐주었다.

언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각자 언어 공부에 대한 원칙이 있겠지만 나에겐 발음이 첫번째 중요 요소이다. 발음은 굳어지면 굳어질 수록 교정이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고 또 그렇게 해서 발음이 좋아지면 듣기가 많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발음이 나쁘다고 해서 언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도구이기에 발음이 아주 심각해서 원어민이 못알아들을 정도가 아니라면 발음보다는 컨텐츠가 중요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학습의 관점에서 발음이 좋아지면 귀가 빨리 트인다. 귀가 빨리 트이면 학습의 방법이 다양해질 수 있다. 라디오도 듣고, 영화, 텔레비전도 보고. 그리고 내 말을 상대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니 못알아듣는다고 속상해하는 기간을 최대한 짧게하고 일상생활에서 연습을 많이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꾸 그렇게 연습하다보면 모르는 단어를 봐도 사전을 찾아보기 전에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대충 감이 잡히고, 사전 찾아보면 내 추측이 맞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자주 녹음해서 듣지는 않지만, 몇개월에 한번 씩 발전상황을 점검해보고자 녹음을 해보곤 한다. 오늘 5~6개월만에 신문 아티클 하나는 읽어보고 들어보니 지난번에 있던 실수들은 거의다 없어져서 이제 외국인 액센트가 거의 없어졌더라. 남편이 아주 간혹 몇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 빼면 발음만으로는 원어민 같다고 하더니 드디어 발음은 거의 완성이 된 것 같다. 3년 반에 가까운 시간이니 길다면 길 수 있지만, 영어에 비해서는 훨씬 빠른 시간내에 도달했다. 그리고 주로 뉴스를 많이 듣고 공부한 발음이라 또박또박 듣기에 좋은 발음이라는데 듣기에 좋았다.

솔직히 국제결혼을 할 때만 해도 내가 이 사회에서 이 나라 말 잘 해가면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한 건 아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진 정해진 건 없지만서도 이 나라 말 잘 하고, 사람들 속에 잘 녹아들어 사회에 짐 되지 않는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데 문제가 없겠다는 걸 확인 한 작은 순간이다. 살다보면 중간 중간 vulnerable해질 수 있기에 스스로에게 작은 확신 같은 것을 줄 계기 같은 것이 필요한데, 아직 취업시장에 나서지 않은 나에게 언어는 일종의 최면술 같은 거다.

언어 공부엔 왕도가 없이 무지막지하게 열심히 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지만, 열심히 하는 게 책만 파야된다는 게 아니라 놓지 않고 계속 해야한다는 것이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생각한다. 요즘 덴마크어 어떻게 공부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것 저것 잡다하게 들려주다보니 그 핵심엔 1. 발음 연습과 (발음 연습 하는 게 따로가 아니라 공부하면서 같이 하는 형태의 연습), 2. 모르는 컨텐츠라도 시간을 많이 내서 시청하기 (드라마, 영화, 뉴스, 토론 – TV/라디오 형태), 3.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더이상 해당 언어로 대화하기에 뇌에 부하가 걸릴 때까지 그 언어로만 대화하기, 4. 혼잣말 할 때 (속으로든 겉으로든) 그나라 말로 말하기. 5. 자기 전엔 신문 읽기 등이 있는 것 같다.

아직 내 덴마크어엔 갈 길이 멀지만 이제 중급은 거의 졸업한 것 같다. 사실 오늘 녹음을 해서 들어본 이유가, 요즘 덴마크어로 남과 대화하는 데 거의 문제가 없어진 것 같아서였다. 언어의 발전이 계단식으로 이뤄진다는데 그 한 계단을 더 올라선 것 같다.

옌스가 이제 덴마크어만 하지 말고 자기 한국어 더 열심히 도와주란다. 내가 바쁘다고 자기 한국어 안도와준다면서 투정을 하는데, 정신 차리고 열심히 도와줘야겠다. 물론 내 살 길도 찾아가면서.

습관의 동물화 – 옌스 닮아가기

부부는 닮는다던데.

옌스가 나를 닮아가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옌스를 닮아가는 건 분명히 있다. 습관을 기르고 습관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면에서가 그렇다. 나는 옌스를 “습관의 동물”로 묘사할 만큼 무슨 일을 하든 앞으로 계속 해야할 일이면 쉽사리 습관화를 하고 꾸준히 이를 지켜간다. 덕분에 한국에 가서 산 건 두 달 뿐인데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자습을 통해 나와 한국어로도 제법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다.

나는 즉흥의 삶을 살아왔는데, 한 번 꽂힌 일은 짧은 시간동안 주구장창 파고, 실증이 나거나 한번 어떤 이유로 멀어지면 다시 그 길로 잘 들어서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번 망친 일은 다시 들여다보기 싫어서라고나 할까. 완벽”주의”의 대표자이다. 그러다 보니 삶에 있어서도 부침이 큰 편이었는데, 잘 할 때는 엄청 열심히 하고 열정적으로 살다가 번아웃이 오면 관둬버렸고, 살도 엄청 쪘다가 뺐다가를 자주 반복했다. 집도 일주일에 하루 힘을 내서 치울 때만 엄청 깔끔하게 치우고, 한동안은 어지르고 정리하기 싫어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옌스와 함께 지내면서 많이 바뀌었다. 완벽주의를 천천히 버려가고 있다. ‘조금만 더 해보자.’, ‘좀 쉬었어도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게 더 나으니 다시 해보자.’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만났던 첫 해 겨울, 옌스가 퇴근하고 집에 놀러와서 같이 놀다가 산책을 나가자고 하면 어찌나 나가기가 싫던지. 하루에 한번은 꼭 산책을 해야 한다고 믿는 전형적 덴마크인인 옌스는 그래도 나가자고 나를 찔러서 추운 겨울 밤 나를 집 밖으로 끌어냈는데, 막상 나가면 좋은데도 왜그렇게 나가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싫다고 해도 좀 끌어내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옌스는 시간 낭비하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간혹 파워냅이라고 10~30분 낮잠 자는 거 빼고는 뒹굴거나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엄청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환멸을 느끼게 하는 게 뒹굴거리는 것이었는데 그런 바른 모습을 몸소 보여주는 남편이 옆에 있으니 갈 수록 뒹굴거리지를 못하겠더라.

퇴근하고 와서 피곤하다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옌스를 보면서 덴마크어 공부하기를 불평할 수 없었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많이 먹고 빼는 건 건강한 삶의 습관이 아니라는 그 앞에 확 빼고 찌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직장생활을 한 동안 한번도 병가를 낸 적이 없었다는 옌스 앞에서 아프다고 늘어져있을 수가 없다.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 물론 지금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이제는 그냥 그렇게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나도 그렇게 하고싶다. 절대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하고 아주 탁월한 재능은 노력으로 이길 수 없을지 몰라도 어설픈 재능은 노력을 이길 수 없다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예전엔 말이 쉽지, 실천이 어렵다고 하던 것들은 그냥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느슨해진 나를 발견하면 나중에 다시 나사를 조여야지 하는게 아니라 바로 나사를 조이곤 한다.

11월 자기가 하나를 보겠다고 하더니, 나보고 바로 공부하라고 재촉이었다. 일 하는 것과 똑같이, 평일엔 친구 만나고 놀지 말고 이제 공부하란다. 원칙주의자. 흠. 갑자기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았지만, 자기도 갑자기 혼자 애 보기 힘들텐데 나를 뒤에서 밀어준 덕에 어느새 학교에서의 일상이 다시 익숙해지고 탄력이 붙었다.

예전엔 짐 회원권 끊어놓고도 가기 귀찮아서 안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게 어디있는가. 짐에 못가는 날이면 집에서라도 하게된다. 하기 싫은 순간도 하기 싫다는 생각을 길게 할 수록 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생각이 나면 몸을 움직여 스쿼트라도 몇번 한다. 그러면 몸도 다시 상쾌해져서 목표하던 바를 계속 추진하게 된다.

덴마크어도 마찬가지다. 2014년 8월부터 시작했으니 어느새 3년이 넘었다. 준외교비자로 온 탓에 비자를 바꾸기 전까지 1년은 6주에 100만원씩 내가며 공부했었다. 남들은 나라에서 내주는 돈으로 공짜로 배우는 덴마크어를… 그때까지만 해도 옌스와 결혼까지 하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관계가 유래없이 안정적인 사람이었기에 헤어지게 된다면 관둔다 하더라도 우선은 배워두겠다는 마음이었다. 산책을 나가면 몇 단어를 모르던 시기에서부터 무조건 덴마크어로만 말하기를 한다던가 옌스의 방식대로 우리만의 습관을 만들었었다. 책 읽기 연습을 하면서 옆에서 옌스가 발음을  교정해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내가 쓰는 글에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거나 다소 이상한 표현들은 있을지라도 이제는 거의 업무를 할 수 있는 덴마크어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물론 덴마크어사전은 내 베스트프렌드지만.

항상 쉬지 않고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가 있었기에 간혹 덴마크어 배우는 게 힘든 순간이 와도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영어로 하루종일 수업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던 첫학기, 집에와서 오늘 배운 것을 덴마크어로 말해야하는 게 짜증나던 날도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버벅거리는 나를 상대하고 있어야 했던 옌스가 더 짜증났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옌스 한국어 공부 도와주는 것이 엄청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걸 보면… 계속 시도하지 않으면 늘지 못한다는 그, 자기도 말뿐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찌 말이 쉽지 실행이 어렵다고 불평할 수 있겠으랴.

덴마크 엄마그룹에 껴서 덴마크어를 할 때 바짝 긴장했던 10개월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알아듣는 폭도 엄청 늘었고, 덴마크어로 말하고 생각하는게 스트레스가 아니다. 매일매일은 느는 걸 못느끼고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하지만, 어느날 과거 어떤 날의 내 모습이 기억나는 때가 있는데 그런 때, ‘아하. 엄청 늘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국인이니 못하는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며 처음 배운 덴마크어로 무조건 여기저기서 시도해보는 나를 보며 옌스는 간혹 재미있다며 웃기도 했지만 그게 좋은 자세라며 항상 격려해줬다. 그런 그가 있었기에 더욱 더 철판을 깔고 시도했고, 간혹 내가 엉뚱하게 알아듣고 잘못 답하고 상대가 이상한 표정을 짓게 되는 에피소드들도 더해져갔다. ‘아, 내가 외국인이라 잘 못알아 듣고 헛소리를 간혹한다. 미안하다.’로 마무리 되는 에피소드를 집에 와서 전하면 옌스는 배를 잡고 웃곤했는데, 이렇게 틀린 것들은 잘 잊어버리지 않게 되어 오히려 더 좋았다. 외국인인 나를 위해 영어로 바꿔주는 덴마크인들에겐 나 연습 좀 하고싶다고 부탁아닌 부탁까지 해가며 연습을 했는데 간혹은 낯이 뜨겁긴 했어도 다 좋은 경험이었다. 덕분에 하나 보육원을 시작하면서 보육 선생님과 말도 다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참 날씨가 별로인데, 그래도 운동을 가야겠다. 짐 회원권도 끊었으니 자주 가야지. 레노베이션도 해서 많이 커지고 좋아졌더라. 열은 내렸지만 컨디션은 여전히 별로인지 하나가 껌딱지처럼 나에게 붙어있는다. 그래도 요즘 운동을 엄청 열심히 했더니 아기띠를 오래하고 있어도 허리가 하나도 안아프네. 그러니 더 해야지. 요즘 옌스가 하나를 재우는 덕에 7시 이후 내 개인 시간도 생기고 너무 좋다. 일 분담도 정해지고 이런 루틴 또한 분명해지니 삶이 편해지는구나.

 

Hannah startede i vuggestuen!

 

Hannah er nu lidt over 10 måneder og kan meget mere end før. Det føles som om, hun har været sammen med os for altid, selvom der kun er gået 10 måneder. Tiden er gået meget hurtigt. Det er meget sjovt, at det føles sådan, fordi jeg nogle gange klagede over, at tiden gik rigtigt langsomt efter fødslen. Måske var det fordi, det var ret fysisk hårdt at passe et lille barn, der ikke kunne gøre så meget selv. Jo hun kan stadig ikke så meget – hun er kun 10 måneder – men hun er ikke længere bare en baby. Hun er næsten en tumling!

Hun startede officielt i vuggestuen i går, hvis jeg ikke regner det første uofficielle besøg i mandags som den første gang. Det gik udmærket. Hun havde det sjovt og kravlede hele vejen rundt i vuggestuen. Hun så ud, som om hun godt kunne lide at lege med andre børn eller i hvert fald at være sammen med dem.

Nogle gange kunne jeg mærke, at andre børn udviste lidt aggressiv adfærd, mens pædagogerne ikke kunne mærke det på situationen. Der var, for eksempel, en dreng, der var lidt aggressiv generelt og skubbede Hannah og trådte på hendes fod. Jeg blev nødt til at sige, at han ikke måtte gøre det, og tog hende væk fra ham. Men det kan altid ske, og jeg kan ikke være der altid for at beskytte hende fra den slags situationer. Der er mange af mine venner, der selv har børn, som har fortalt mig, at jeg skal vænne mig til at se hende komme hjem med nogle skader i forskellige grader, store eller små. “Det gør ondt at se hende blive skadet, men det er den måde, man vokser op på.”, sagde de. Ja. Der er også det udtryk, at man bliver klog af skade. Hun vil også blive klog på den måde. (Men det er jo nemmere sagt end gjort!)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할 시기

대학원 동기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파티를 프로그램 책임교수의 예산협조를 받아 동기들끼리 주최했다. 하나를 데리고 가서 두어시간 있다가 왔는데 오랫만에 동기들을 만나서 학업과 취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니 기분이 참 좋더라.

내가 학업이 그립다고 하니 교수가 한말 하나는 커리어는 언제고 꾸릴 수 있지만, 지금의 아기와 보내는 시간은 단 한번밖에 없다는 것. 마음에 담아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다시 돌아갈 학업을 위한 준비는 필수불가결한 것. 어려운 논문을 잘 끝내고 디펜스중인 친구들을 보니 나도 자극을 받아 미루고 미뤄왔던 데이터 서칭 작업을 시작했다. 크게 두가지 데이터가 필요한데 하나는 교수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이고, 하나는 GIS 데이터인데 로스킬레시청에서 자료를 갖고 발행한 보고서를 보니 데이터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출산 전에 논문 작성을 위한 타임라인을 작성해본 적이 있었는데 간만에 그걸 들여다보니 11월에 시작하면 딱 맞는다. 그러나 이보다 미리 시작해서 손해볼 건 없는게, 내 담당교수가 정말 똑똑하고 능력있는 교수인 건 맞는데 시간이 없어서 미리미리 열심히 쫓아다니지 않으면 원하는 지도를 시간내 받을 수 없을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 오늘 필요한 자료에 대한 요청메일들을 보내놨으니 뭐라도 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시작하기까지가 부담스럽고 막상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면 일은 풀리게 되어있다는 것. 조급한 마음은 버리고 한걸음씩 나아가 봐야겠다.

한국 갔다오면 비자 연장, 하나 보육원 보내기, 대학원 및 덴마크어 공부 재시작 등 할 건 많은데 마음만 바쁘다. 한국가면 엄마아빠 도움받아 조금씩 다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한국 갈 날도 3주도 안남았는데, 이것저것 준비해야겠다.

6개월의 하나에게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 너는 6개월이 되었구나. 사실 6개월하고도 며칠 지났지. 너는 키도 크고 힘도 세 벌써 기기 시작한 걸 보면 엄마가 아기였을 때와는 참 다르구나 싶단다. 엄마는 팔다리가 너처럼 길지 않았고 한번 기지 못하고 엉덩이로 앉아 손으로 땅을 밀치며 다녔단다. 너는 벌써 머리가 길어서 거의 눈에 닿을 지경인데 엄마는 돌때가 되도록 솜털같은 머리만 있었더랬지. 엄마 어릴 적 사진 보면 그냥 둥글둥글 토실토실 아기라서 귀여웠던 얼굴인데, 너는 벌써 여자애같은 생김새가 또렷이 나타나기 시작해 예쁘구나. 사진으로 봐왔던, 이야기로 들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을 너에게서 발견하기도 하고, 우리의 차이를 발견하며 너와 나는 꼭 같지는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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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10분 뒤의 네 모습은 이랬단다.

네가 몸이나 마음 모두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컸으면 하는게 엄마 마음이지만, 그게 진정 너를 위한 것도 아니니 대범한 마음으로 키우고자 노력하고 있단다. 기다보면 여기저기 부딪히게 마련이고 멍도 들고 혹도 생기기 마련인데, 얼마만큼을 경험하게 해줘야 하는 건지 고민이 벌써 된단다. 미리 부딪히는 경험을 충분히 해서 조심하게끔 만들어줘야 하는 건지, 얼마만큼이 다쳐도 되는 만큼인지 등 확신이 안선단다. 더러운 것에 노출되는 것도 마찬가지고. 집안 곳곳의 것들을 핧아보고 빨아보고 싶은 너의 구강기 욕구를 만족시키면서도 통제할 건 통제해야하는데 그게 어느 수준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인지도 애매하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닦기도 하고, 닦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은 못빨게도 하지만 너를 100% 쫓아다닐 수도 없으니. 덴마크 아기들은 길바닥도 기어다니고 하던데 나는 그걸 얼만큼 허용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단다. 아빠와 상의해서 적당한 범위를 정하려고 하긴 하는데 너를 만나고 나니 그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되는구나.

오늘은 우리가 먹는 저녁과 거의 같은 것을 네가 처음으로 먹게 되서 기뻤단다. 시판 이유식은 맛도 제약이 크고 해서 결국은 엄마가 해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너를 위해 모든 음식을 따로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엄마도 사실 살림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하기가 벅찰 때가 있단다. 한국처럼 싸게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매 끼 다 직접 해 먹어야 하는데 네 음식 따로 준비하기가 마음에 버거운게 현실이란다. 미안해. 그래도 엄마가 너무 힘들면 너에게 마음을 다할 수 없어서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려면 적정 수준을 찾아야 하거든. 오늘은 가자미, 새우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네 거 따로 뺀 다음에 고추기름과 소금간만 하는 식으로 너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음식을 준비했단다. 네 걸 스르륵 갈고 맛을 봤더니 참 맛있더구나. 잘 먹어주길 바랬는데 정말 잘 먹어줘서 고마웠어. 앞으로는 좀 더 우리 식사와 같은 것으로 준비해보려고 한단다. 경험이 쌓이면 엄마도 음식 준비가 더 쉬워지겠지.

엄마에겐 집안을 엄청 깔끔하게 정리하고 먼지 한톨 없이 청소하시던 네 할머니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청소년 시기가 있었단다. 나는 그렇게 안치워도 되는데 할머니는 그렇게 치워야 하시니 덕분에 피곤해진다는 생각을 했었지. 사실 내 방 정리하나 하는 건데도 그렇게 피곤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엄마가 얼마나 게을렀는지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런 깨끗한 삶이 몸에 배어서 주변이 지저분하면 참을 수가 없어졌어. 물론 지저분함을 정리해야하는 피곤함과 지저분함에서 오는 스트레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터라 할머니를 따라잡을 수야 없지만 나이가 늘어갈 수록 할머니와 비슷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있어. 다행인 건 네 친할머니도 비슷하셔서 네 아빠가 나와 비슷하다는 점이란다. 내가 조금 더 깔끔을 떨긴 하지만 둘이 중점을 두는 부분이 조금 달라서 오히려 서로 보완이 되는구나. 아무튼 애가 있는 집에서 청결을 유지하려면 바쁘단다. 엄마가 너를 업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하고 바삐 움직이는 게 다 그래서란다. 사실 그런 이유로 네 음식을 처음엔 주로 사다먹이려 했는데, 몇번 사먹이다 보니 한계가 느껴져서 가족 식단을 준비하게 된 것이지.

널 키우면서 엄마도 너 임신하고 찐 살이 다 빠졌단다. 6개월 전에 살을 빼야 몸이 새로운 몸무게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길래 그때까지 빠질까 살짝 걱정했는데 걱정할 일은 아니었어. 오히려 임신전에 쪄서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벼르기만 하고 빼지 못하던 살을 덜어내고 있는 판이니 말이야. 엄마가 임신 전에 4kg가 쪘는데 그게 참 빼기가 힘든 살이었단다. 그 당시 주체못할 식욕 덕분에 살이 쪘었는데 임신 전에 그렇게 빼려고 해도 잘 안되더구나. 아무튼 너를 낳고 모유 수유하고 바삐 움직여서 그런지 다행히도 다 빠졌으니 너에게 고마워 할 일이다.

나는 그 전에 애들을 보며 열정적으로 웃는 엄마와 아빠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단다. 상상만으로도 진이 다 빠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 사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웃을까 싶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웃는 것도 한계가 있지, 한참을 까르륵 웃으며 애와 놀아줄 수 있을까 싶었단다. 그런데 너와 놀다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구나. 네 웃음으로 여러 힘든 순간이 다 지워질만큼 너의 웃음은 특별하단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른 아이들도 같이 귀해졌단다. 다른 아이들의 웃음도 이쁘고, 너를 지켜주고 싶은 것처럼 그 아이들도 곱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란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네가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 느껴져서 고맙고 기쁘단다. 네가 어른이 되기까지 훈육도 해야 해서 항상 친구같은 엄마가 되어줄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항상 기댈 수 있고,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는 엄마라는 사실을 네가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구나. 엄마도 그에 걸맞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사랑한다, 하나야.

 

4 år i Danmark.

Der er gået 4 år, siden jeg kom til Danmark. Allerede. Hvis jeg ikke havde været blivet gift eller havde mødt Jens, skulle jeg rejse tilbage til Korea på nuværende tidspunkt. Livet har ændret sig utroligt meget, efter jeg mødte Jens. Jeg kan ikke forestille mig, hvordan livet kunne være, hvis jeg ikke havde mødt ham.

Jens spurte mig, om jeg troede, at jeg kunne tale dansk så godt, som jeg kan nu. Det vil tage mere tid, at mit dansk bliver bedre end engelsk, men i hvert faldt tror jeg ikke mere, at det er umuligt.

Da jeg boede i Indien, var jeg ikke så glad. Jeg vidste ikke, at jeg elskede naturen, inden jeg flyttede til Indien. Hvor jeg boede, Gurgaon, en del af New Delhi omegn, var der ikke så mange træer. Det var for varmt både for mig og træer. Oven i det, blade var for små eller slanke, og de var dækkede af tør jord og støv. Jeg kunne ikke se grøn farve nok på træerne. Der var også for mange mennesker i alle steder. Det var meget stressende.

Nu bor jeg i Danmark, hvor der er masser af træer og grønne områder. Der er havet tæt på hvor jeg bor. Det tager kun 15 minutter på cykel til østersøen. Faktisk er der ingen sted i Danmark som er mere end 50km væk fra kystlinje. Jeg elsker køligt vejr, og det er næsten altid køligt her. Jeg kan godt lide dansk vejr. Folk er venlig og rar. De har lidt tør humor, som passer meget godt for mig. Der mangler kun bjerge. Men man kan ikke have alt. Jeg er meget tilfreds med, hvad jeg har her og nu, specielt fordi jeg har min mand og datter. De er to vigtigste personer i mit liv, som jeg ikke kunne møde, hvis det ikke var Danmark, jeg flyttede til.

Jeg læser nu på universitet for min kandidatsuddanelse. Det er ikke et rigtigt job. Den er en ting jeg mangler. Jeg skal tale bedre dansk for at få et job nemmere. Men jeg tror, det kommer. Forhåbentlig kommer et job med sproget.

Knap seks måneder efter fødslen

Min datter, Hannah, er knap seks måneder. Det er utroligt. Det har været allerede seks måneder, siden jeg har født hende. Tiden går så hurtigt som lyn, dog der var nogle tidspunkter, at der føltes, som det gik så langsomt. Min veninde, der har to børn selv, fortalte mig, at det ville være en lang tid, der flyver. Det var bare rigtigt.

Nu kravler hun, og det udvider hendes verden helt vildt meget. Hun opdager noget nyt hver eneste gang og lærer noget ud af det. Man kan godt se, hvor meget hun er stolt af sig selv, når hun står op. Jeg syntes, at det var ikke forstående, da jeg så andre forældre, som var så glade med deres børn, fordi børnene gør noget nyt eller smiler: ‘Hvordan kan de være så glade med deres børn? Er det rigtigt, at børn gør dem så glade, at de opdater alle mulige små ting om deres børn på Facebook eller Instagram?’ Ja. Det kan jeg så godt forstå nu. Ja, jeg ved det godt, at jeg er en pinlig mor, som er stolt af min datter for ingenting. Der er nogle ting, man ikke kan forstå, inden man oplever den selv. Børn er én af de ting, jeg tror.

Jeg er taknemmelig, at jeg kunne have disse værdifulde oplevelser i mit liv på grund af Hannah. Jeg lærer at kende min mand, Jens, og mig selv endnu bedre fra oplevelserne, og det gør mig at være eller prøve at være en bedre person. Jeg glæder mig meget til vores fremtid som en familie, os tre.

[육아기] 170일 기록

하나가 태어난지 어느새 170일. 시간이 안가는 듯 휙 간다. 키는 69센티미터에 몸무게는 거의 8킬로에 다다른다. 팔다리로 기는 법을 많이 익혀서 안보고 있으면 여기저기로 많이 움직여있다. 손만 잡아 누워있는 그녀를 일으켜 앉히면 다리를 뻗대서 서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자. 2개월부터 몸통을 잡아주면 서는 걸 좋아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다리 힘이 아주 좋다.

 
어제부로 하나의 침대를 하나 방으로 옮겨 재우기 시적했다. 대충 이때부터는 방을 독립시켜줘야 서로간에 더 잘 잘 수 있다고 해서. 본격 이유식을 앞두고 있는 시기라 그런지 밤에 자주 배고파해서 밤잠 문제로 나는 피곤하지만 하나가 더 잘 자기엔 이게 더 좋은 것 같다.

 
이유식을 이틀 쉬었다. 시댁에서 지낸 휴가 기간 중 별장을 다녀온 날엔 이래저래 이유식 만들기가 번거로워 하루 건너뛰었고, 돌아오는 여행을 한 어제도 비행하고 짐 풀고 하느라 건너뛰었다. 오늘 사흘만에 저녁만 과일 퓨레 이유식을 했는데 잠시 쉰 사이에 먹는 기술이 늘어서 잘 먹더라. 그 전엔 먹는 양의 반 이상이 입 밖으로 다시 나왔는데 혀를 쓰는 법이 늘어있었다. 12일 후면 6개월이 되니 정말 본격 이유식에 들어설텐데 어떨지 기대된다. 한국보다 이유식 하는게 덜 힘든 것 같기도 하고… 뭐랄까. 덴마크는 아기를 위한 별도 이유식을 오래 시키지 않은다 한다. 그래서 식사 준비가 덜 번거롭다고 할 수 있다. 8개월 정도면 염분과 재료 사이즈 빼고는 거의 가족식사 준비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하니 말이다.

 
9월에 한국에 갈 무렵이면 하나가 얼마나 커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가족과 친지, 친구와 함께할 그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