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요즘 날씨

요즘 날씨같은 날만 이어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물론 그러면 가뭄으로 이 모든 풍경이 유지될 수 없겠지만. 동네 산책길에서 아름다운 길을 새로이 또 걸어보았다. 갠토프트 호수에서 항상 한쪽편만 걸었었는데 이번에 반대편을 걷다보니 작은 습지내 산책길이 있는 게 아닌가. 날씨가 좋으니 풍경도 아주 아름다웠다. 저녁 아홉시 열시 사이의 풍경. 이처럼 좋은 시기가 연중에 또 없다. 누리고 또 누려야지. 지금. 할 수 있을 때.

40개월의 하나

키는 95센티미터 정도, 몸무게 15킬로그램. 나이 대비 매우 평균적인 아이이다. 머리크기는 잊었지만 이또한 평균. 먹는 것은 덴마크에서 한국 식생활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식탐이 없고 그렇다고 적게 먹는 것도 아니다. 신체적 성장의 면에 있어서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평균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성이 탁웚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상대에 대해 질문한다. 이름을 외우는 것을 좋아하고 이름을 포함해 대화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대화에 적극 활용한다.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아 상대가 무시하고 갈 경우 다소 상심도 하고 주변 어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왜 상대가 자기를 무시했을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다행히도 그런 일을 훌훌 터는 걸 잘 한다. 주변의 친구와 어른에게 포옹 등 신체적 접촉을 통해 친밀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와 같이 노는 걸 좋아하지만 아쉬움이 없이 잘 놀기 때문인지 헤어짐은 우는 것 없이 흔쾌히 받아들인다.

놀이를 잘 만든다. 상상력이 풍부해서 이러저러한 놀이를 잘 만들고 친구들을 놀이에 끌어들이는 것을 잘 한다. 장난감이나 사물을 본연의 모습이나 기능과 달리 사용하는데서 창의적임을 느낄 수 있다. 잠에서 혼자놀 때는 인형에 역할을 부여해 혼자 대화를 주고받는 역할 놀이를 많이 한다. 상황에 따라 부여하는 이름이 세트로 나뉘어있고 그 세트가 매우 다양하다. 사자 가족일 땐 엄마사자, 아마사지, 아기사자 이름이 뭐뭐고 고양이 가족일 땐 그게 또 다르고 그냥 아기일 땐 뭐고. 너무 많아서 이제는 내가 다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다.

노래는 좋아하지만 음정은 좋은 것 같지 않고 미술을 좋아하나 그건 내가 잘 모르겠다. 그냥 특별할 것 없이 그 나이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정도인 것 같다.

숫자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냥 일부터 이십까지 세는 것 정도가 일상적으로 쓰게 되는 전부이고 시간에 대한 관념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매일 아빠가 읽어주던 라임책 덕에 두돌때 알파벳은 이미 읽을 수 있었지만 글자를 일고 싶어하는 욕구를 드러낸다거나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책은 좋아하는 것 같은 게 간혹 문닫고 조용히 있을 때면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고 집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덴마크어는 또래 애들중에서 뛰어나다. 발달 정기검진에서도 언어나 신체조절능력이 많은 부분에서 평균보다 1년정도 빠른 것 같다고 나왔는데 실제 보육원에서 다른 아이들을 만날 때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어려서부터 발음도 좋았어서 타인과 의사소통이 어려서부터 쉬웠다. 아무래도 공갈젖꼭지를 물리지 않은 것도 발음이 일찌기 좋았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오래 문 애들의 경우 이가 완전히 물리지 않아 발음이 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덴마크어가 뛰어난 것에 비해 내 노력의 부족탓인지 한국어는 부진하다. 요즘 좀 한국어 사용을 내가 늘리면서부터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자기도 자기 한국어가 뛰어나지 않은 건 잘 알고 있고 내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따금 다른 아이들 이름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하고 문법을 교정해주는 것도 있다. 덴마크어애는 부정의문문에 긍정으로 답할 때는 Yes에 해당하는 ja를 jo로 바꿔 답해야 한다. 간혹 내가 그냥 이에 ja라고 하거나 실수로 ja라고 해야할 경우에 jo라고 답하면 정정해준다. 그리고 엄마 덴마크어는 나쁘지 않아 라고 이야기해주는 걸 보면 내 덴마크어가 모국어가 아님을 자기가 느낀다는 거다. 요즘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갖고 와서 한국어로 읽어달라고 한다. 이해를 다는 못할 텐데 열심히 듣고 질문하는 거 보면 기특도 하다. 주도적 한국어발화는 많이 제한적이고 주로 내 요구에 의해 한국어를 말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생활속 레퍼런스가 떨어지는 게 한국어 실력 향상에 걸림돌이 된다.

성별 구분에 일찌기 관심을 가졌다. 여자, 남자 이렇게. 누가 가르친 게 아닌데 소방관처럼 그 끝이 영어로 하면 man으로 끝나는 단어일 경우 성별에 따라 자기가 단어를 변형해 woman에 해당하는 단어로 대체해 쓴다. 어느날 플레이데이트에서 애가 그렇게 단어를 쓰니 상대방 아이가 하나가 말한 게 맞는건가 싶어하며 다소 혼란스러워했는데 그 엄마 왈, 그런 거 내가 가르친 거냐 한다. 그런거 아니고 자기가 그냥 그런다고 했는데, 그 아이를 보면 남자냐 여자냐를 그렇게 따지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누가 시킨 게 아닌데 원피스, 공주, 악세사리 이런 거 엄청 좋아한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니고, 애한테 일찌기 중성적인 옷을 많이 입혀온 나인데.

운동기능이 뛰어나다. 체력 단련이 일상화된 게 우리집 발레바를 무슨 철봉처럼 메달리는데 쓴다. 매일. 팔다리, 코어가 모두 아주 단단하다. 봉을 타고 약간이나마 올라갈 정도니. 뛰어다니는 자세에 있어서도 어린 아이같은 어색함은 완전히 없어졌다.기어 올라가고 내려오고 높이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다. 자기가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아기용 그네 같은 경우는 하늘높이 밀어도 두려움이 없으니 말이다. 그건 아주 어려서부터 그네를 태운 탓인 것 같긴 하다. 옌스가 애를 이래저래 많이 훈련을 시키는 것도 있어서 발달이 빠른 것 같다. 요즘은 두발자전거와 외줄타기도 연습중이다.

기저귀는 코로나 재택근무를 계기로 떼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편할수가. 여기는 대충 세돌 근처에 자연스럽게 떼는데 서너번 실수하고 더이상은 실수하지 않고있다. 밤엔 그냥 기저귀를 채우는데 거의 마른 기저귀가 대부분이다. 마르지 않은 경우 아침에 깬 이후에 눟는 경우가 주인 것 같다

예전에 지도교수가 세돌 반 지나면 거의 다 키운 거라더니 진짜 거의 그런 것 같다. 밥도 예전보다 덜 흘리고 먹고, 원하는 건 다 의사표현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해 해결하니까.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지만 이쯤 수월해지니 내가 한 5년정도 젊었으면 힘들었던 기억 이쯤에선 다 잊고 하나 더 낳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나이에는 우리 둘 다 하나로 족하다. 조카가 남자 사촌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옌스가 꿈 깨라고 말해줬다. 하나면 족하지 아무렴.

코로나 그리고 발레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으로 발레클래스에 가지 못하는 건 정말 슬프지만 그나마 여기저기서 무료 온라인 발레 클래스가 범람하는 덕에 생존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발레를 시작하다보니 잘못된 자세를 취하면 금방 몸의 이곳저곳에서 경고의 신호를 보내온다. 덕분에 몸속 근육과 관절의 구석구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몸을 비자연스러운 형태로 사용하는 발레이기에 잘못 사용하면 금방 문제로 돌아오기 때문에 몸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젊어서는 그냥 살았지 굳이 누가 내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움직이겠는가. 발레를 시작한 때만해도 31살이었으니 여기 저기 조금 문제가 미미하게 생겨도 그러려니 넘기고 말고 했는데 이게 누적되기도 하고 나이도 더 들어 정말 이제 몇달 내 마흔이 되는 시점이 되니 미미한 문제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문제가 금방 커질 수 있으니까.

요즘처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연습 동영상, 발레 클래스 등과 넘치디 넘치는 블로그 등이 아니었으면 일련의 자세교정이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상하, 좌우, 앞뒤로 틀어진 골반을 교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치마나 바지도 안돌아가고 바 없이 파세 발란스를 잡고 몇초 서있는 게 양발 모두로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제 선생님들이 여러번 말씀하셨던 그 느낌이 뭔지도 감을 잡았다. 코로날 수업에 못가는 건 참 안타깝지만 또 그게 계기가 되어 미묘한 교정들도 하고, 턴아웃 근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기간이 된 건 또 나쁘지 않다.

이 코로나 락다운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빨리 끝나서 다시 발레를 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덴마크 협업문화] 경제분과 국무위원회 상정 안건 생산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근로문화. 업무 시간의 경계가 흐려진다. 방금 업무가 끝났다. 열시 반. 오늘도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했는데… 다들 애가 있으니까 긴급한 사안이 있는 경우, 애 없는 시간에 협업이 이뤄지게 된다. 상반기에는 부활절 휴가기간이 있어서 이 전후로 많이 바쁜데 거기에 특별히 급한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하수도기업의 기후변화대응 파이낸싱 방안에 대한 법안이 내년 1월부로 발효되어야 한다는 결정이 이번주에 결정되면서 그간 부처간의 의견 차이로 다소 미적거리던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부처간 이해관계 및 오너십 문제 등에서 미묘한 갈등이 있어왔는데 이제는 그걸 아주 적극적으로 부딪혀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안그래도 여러모로 바쁘고 내가 발표하거나 리드를 해야하는 회의가 있어서 긴장레벨이 높았는데, 법안 상정을 위한 모델 페이퍼를 금요일 센터장급 부처간 회의 전에 급히 만들어야 한다는 상황에 멘탈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번주에 옌스가 지난주처럼 바빴으면 정말 끔찍했을 것 같다. 애와 놀아주느라 회의들 사이사이 밖으로 나가 주기도 하고 일과 육아를 열심히 병행해준 옌스 덕에 이번주의 일들이 가능했다.

현재 법안과 제도 부분을 토대로 안건의 제도적인 모델 부분은 나와의 회의를 통해 합의된 내용을 토대로 선임이 쓰고, 나는 경제분석방법에서 테크니컬한 부분을 써서 초안을 마련했다. 그걸 토대로 우리 센터장이 코멘트를 해 초안을 1차로 보강한 후, 센터장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따라 수정 초안을 대대적으로 재배치하고 전략적으로 표현을 수정해 2차 수정 초안을 마련했다. 거기에 우리가 수정하거나 보충할 것을 더한 후 상사가 컨펌을 함으로서 최종안이 나왔는데, 진짜 센터장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탁월하다는 걸 다시한번 느꼈다.

이번처럼 엄청 타이트한 데드라인 압박속에서 중요 문건을 여러명의 협업을 거쳐 생성하는 과정을 거치며 정말 많이 배웠다. 덴마크어 공부는 덤. 타이트한 데드라인 압박속에서 일하는 거야 익숙하지만, 그 과정에서 협업을 효율적으로 하는 법은 익숙하지 않는데 말이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이 입법으로 연결되야 하는 게 두개나 걸려있어서, 법안 초안 작업 전 작성하는 고려사항문서에 어떻게 내가 하는 일이 반영되는지, 그래서 그게 어떻게 법안과 시행령에 들어가게 되는지, 직접 참여하고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될 것 같다. 한국과 달리 내각책임제 시스템인데다가 대부분의 법안은 국회에 상정되기 전에 정당간 협상을 통해 법안이 통과될지 여부가 결정되기에 부처에서 먼저 만들지 않은 안건이 야당의 입법제안을 통해 상정되는 케이스는 없는 것 같다. 한국의 프로세스를 잘 모르는데다가 덴마크의 프로세스도 사실 나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이를 비교하는 건 가능하지 않지만, 오랜 시간 공기업에 근무하면서도 사실상 멀게만 느껴지던 일련의 프로세스를 덴마크에 와서 배우게 되는 것도 신기하다.

요즘 정신적으로 사실 피로하기도 하고 육체적으로도 피로하긴 하지만 배우는 건 많고 힘든 와중 즐겁기도 하고 그렇다. 내일 하루 버티면 또 주말이 오고 곧 또 부활절 휴가가 오겠지. 조금만 버티자.

성과에 대한 인정, 앞으로의 노력

우리는 인건비 총액에서 일부를 떼어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다른 중앙부처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기업부 소속 청이나 공기업의 경우는 성과급 도입이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 청의 성과급은 일인당 받을 수 있는 사안이 100%로 정해지고 근로 기간과 성과에 따라 0%부터 100%까지 차등 지급된다. 또한 인트라에 누가 몇%의 성과비율을 적용받아 얼마를 받았는지까지 게시된다.

어제 점심을 먹고 일하려하는데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성과급 통보를 위해서 연락했더며 최고등급인 100%를 줬다고 하는거다. 잘했다기 보다는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하련다. 지금 걸린 프로젝트도 많고 해야할 일이 자꾸 늘어나니 말이다.

오늘 중요한 발표를 했는데 스카이프 발표를 하며 발표 전에 긴장을 많이 했다. 청중과 교감이 어렵다는 건 긴장되는 상태에선 부담이 덜 되기도 하지만 나도 청자의 반응을 읽을 수가 없으니 불확실성 속 긴장이 더 되는 상황도 있으니.

다른 동료의 지원사격 없이 내 보고서 발표에 대해 방어도 성공적으로 하고 질의에 매끄럽게 응답을 하고 나서 회의를 잘 끝냈는데 옆에서 옌스가 자랑스럽다고 하는 말에 얼마나 뿌듯하던지.

아마 상사도 지난 1년간 내 업무에 있어서 내 오너십과 전문성이 강해지는 것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면에 있어서도 발전이 크게 된 부분을 높이 평가해준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열심히 전문가인 척 하며 열심히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을 엄청하면, 언젠가는 전문가가 되어있겠지. 모르는 건 모른다 하고 열심히 배우다보면 전보다 많이 알고 늘어있겠지.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려워하지 말고 한걸음씩만 조금씩 조금씩…

[덴마크 vs. 한국] 공공부문 근로문화 비교 – 타부처와 협업

내부적으로 꼭 공문서의 형식으로 남겨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데에 있어서는 이메일이 사용된다. 여러부처가 협업을 해서 통합된 문서를 생산해야 하는 경우, 예를 들어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책문서를 생산할 경우 엄청 많은 메일이 오고 간다. 주무부처가 초안을 만들기는 하지만 그 문서가 오고가면서 관련부서 담당자들이 트랙체인지 기능을 통해 수정제안을 하고 코멘트를 주고 받는다. 물론 해당 코멘트를 담당자 이름으로 보내기까지 상사와 조율을 한다. 그리고 해당 사안이 아주 중요하거나 마무리 단계로 넘어갈 경우 사안에 상응하는 책임자와 조율을 한다. 이 과정이 우리보다 형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이뤄진다. 메일로 상사에게 코멘트를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권한 이양도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협업패턴은 여러 부처가 연관된 법안을 만들때도 마찬가지다.

부처간에 이견이 갈릴 때는 코멘트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주무부서가 총대를 매고 정리를 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적극적인 코멘트를 요청하는데, 언어적인 문제도 있고 어떤 포인트를 봐야하는지도 미숙하기도 했다. 덕분에 초반엔 너무 무른사람처럼 보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한국 공공부문에서 일을 중단한지 5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그 새 한국의 공공부문 근로문화도 바뀌었을까 싶지만, 사실 이런 수준의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형식주의 탈피에서 느껴지는 생산성 향상이 엄청 크기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캐주얼한 근로문화가 도입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덴마크 주말근무/야근. 외노자의 두려움

뜨거운 감자인 정책을 위한 모델을 만드는 부서에 있다보면 덴마크라고 다를게 없구나. 금요일 늦은 밤에 메일을 보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뭐고, 주말동안 자신이 할 건 뭐고 자기 담당 파트는 월/화까지 준비되는 데 내 파트는 언제까지 될 수 있냐는 메일. 주말에 일을 해서 최대한 빨리 보내야겠다. 안그래도 이미 바쁜 다음 주인데… 겁나게 바쁘겠다. 좀 더 차분히 더 꼼꼼하게 준비하고 싶은데 또 장관님 생각은 다르신거지… 재택근무에 보육원도 닫아서 풀타임 근무하려면 아침 7시부터 6시까지 일하면서 중간에 애도 보고 밥도 해야하는데.

그래도 한국과 다른 건 진짜 응급한 상황이 아니면 야근이나 주말근무에 대한 직접적 요구는 없다는 것. 딜리버리만 맞추면 된다 이거지. 물론 중간중간 유연적 태도에 감사하다며 (미리) 떡밥이 깔리는 경우도 있다.

뭐 근로 문화에 불만은 없다. 그냥 여기에도 바쁠 때는 어쩔 수 없는 걸 아니까. 업무가 늘고 커버리지가 넒어질 수록 로드가 올라간다.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짧은 시간 일하지만 더 갈려들어가고 이 분야에는 내가 전문가가 되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주변의 뛰어난 동료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과거 논문 쓸 때는 그냥 분석만 하는 거였다면 이젠 이 내용을 매뉴얼로 만들어 남들이 다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실제 경제에 큰 영향이 가니까 두렵다. 큰 신뢰만큼 두로움도 커진다. 거기에 덴마크어로 일을 하는 것도 미묘하지만 끊임없이 두렵다. 매일 매일 직면하는 두려움이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아드레날린같기도 하다. 중앙부처에서 일한다는 건 그렁 그런 것 같다. 박봉이지만 영향력이 있는 곳에서 일함으로써 내가 한 일이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잘 헤쳐가야지…

작은 두려움의 연속

연봉협상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 센터 성과는 좋았고, 나도 내 담당 업무의 목표를 달성했다. 공무원은 크게 협상 여지가 많지 않다는데 얼마만큼 해야하는데 아직 감이 잘 서지 않는다. 덴마크어로 일하는 데서 오는 생산성 손실을 다른 경쟁력으로 얼마나 메우고 있는지도 불확실한 터라 더욱 그렇다.

매일 매일 작은 불안함을 갖고 지낸다.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큰 부담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전달하지 못할까봐서. 또 언어의 부족으로 인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의견의 강약 조절에 있어서 의도치 않게 실패를 할까봐서. 그래서 조직에 피해를 끼칠까봐. 그 결과로 타인의 시선과 단정적 평가를 받을까봐. 그래서 성과 협상은 더더욱 불안하다.

일년의 기간이 흘러 이제 나는 나대로의 위치가 정해졌고 업무 영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내 위치와 업무 영역은 크든 작든 변해가고 책임도 늘 것이다. 내가 적응을 한다 싶으면 또 변해가겠지.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는 게 두렵다.

사실 정 안되면 관두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될 것 같기도 하면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쩌면 한국어로 했어도 가졌을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런 두려움은 앞으로도 계속 원치않는 친구같이 데리고 나아가야할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왜 두려울까? 내가 가진 원래의 가치보다 낮게 보이는 게 두려운 걸까? 생각을 좀 해 볼 문제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있는 걸까? 실제보다 못나보일까 걱정하는 걸까? 좀 못나보이면 어떤가? 남이 어떻게 평가하는 게 왜 나에겐 그렇게 중요할까? 어려서 높은 기대 수준 속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게 지금도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는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고 달래가야 하나?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이 힘들다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이 불행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 좋고, 감사한데, 그냥 서서히 그런 두려움을 안고 가는 내가 이해가 안된다. 이해를 하려 하는 이 과정이 두려움을 맞이하는 길이 되겠지. 우선은 덴마크어 공부도 하고 업무도 열심히 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가면서… 올 한해 큰 모델 마무리 짓고 보고서고 발안하고, 입법안 초안도 내고 기타 운영업무도 하면 한 해가 흘러가 있겠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덴마크어 과외 편익 평가

덴마크어 과외를 시작한지도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간다. 이번주만 하면 한달이다. 한달에 85만원… 비싸다… 워낙 비싸기 때문에 길게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대충 여름휴가 전까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비쌈에도 옌스가 흔쾌히 과외를 하라고 한 이유는 기존 학원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반년간 들으면서 실력이 훌쩍 늘은 것을 자기도 목도했고, 지금 수준과 목적에 맞는 수업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이 시기에 내 PD3 분야별 점수가 평균 7점대에서 전분야 12점으로 올랐다.

과외는 일주일에 한시간 반. 내가 쓴 보고서를 봐가면서 첨삭하고 내가 자주 헷갈리는 문법의 예외적 부분 등을 검토하거나 문법적으로 내가 약한 부분을 점검하고 있다. 과외를 하고보니, 이정도 레벨에 다라서는 학생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에 맞도록 수업의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가장 큰 초점을 보고서 작성에 맞추고 있는데, 그 짧은 한달도 안되는 시간 사이에 보고서 작성이 훨씬 수월해졌다. 계속 나를 괴롭히던 소수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니 보고서 작성에 가속이 붙는다. 그리고 덴마크 공식문법사전에 수록된 문법과 예외 관련된 내용을 찾는 법을 배우고 나니 앞으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갈 방법의 실마리도 얻었다.

사실 상사도 내 보고서를 수정해주는데, 그게 실력향상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상사가 수정할 때는 내가 한국어로 보고서를 작성해도 상사가 보면서 고치 것처럼 조금 더 매끄럽거나 상사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맞추도록 문장을 이리저리 매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틀린 문법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 규정에 해당하는 부분들이었어서 ‘왜지?’하는 물음을 지울 수가 없기도 했다.

예전에 내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나는 정말 교육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 같다고. 다소 낭비같은 상황도 많을 정도로. 나를 너무나 잘 이해한 말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느낀 건 다소 낭비같았던 투자도 사실 큰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디 갖다 버리는 게 아니고 다 내 머리에 쌓이는 정보이니까. 비자타입의 문제로 남들 다 공짜로 배우는 덴마크어를 1년 반 동안이나 한달에 70만원씩 내가며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는데, 그 돈이야 말로 정말 훌륭한 투자였다. 그 때 덴마크어 기초를 닦지 않고 나도 공짜로 다니는 시기를 기다렸더라면 대학원 다니면서 취직 전까지의 수준으로 실력을 늘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 취직을 못했을 거다. 우리 전공이 주로 공기관에서 커리어를 찾게되는 것을 고려해보면 지금 다니는 직장 뿐 아니라 한동안 취업이 어려웠겠지.

과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너무 비싸다, 너무 큰 투자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편익을 따지지 않은 비용만 본 평가라 생각한다. 취업이라는 편익만으로도 이 투자는 빠른 시일내 회수가 가능한데다가 덴마크 생활에서 언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스트레스의 저감, 보육원이나 학교에서 아이의 발달상황에 대한 충분한 대화, 덴마크 사회 안으로 빠르게 동화될 수 있고 주변 현지인과의 관계가 여러 방면으로 깊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그 비용은 미미하다. 그렇게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도 감사하지만, 여유를 떠나 그 투자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건 옌스가 이런 부분을 깊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나와 옌스는 생각이 참 비슷하다.

누군가가 덴마크어 과외 하는 것 어떠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열심히 한다는 가정하에 나는 정말 강추하고 싶다.

35개월 하나

얼마나 이쁘게 자랐는지 모르겠다. 이제 정말 대화같은 대화도 나누게 되고 하나의 참 살갑고 따뜻한 성격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덴마크어로는 세세한 뉘앙스를 담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늘어가고 요즘은 한국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나에게 뭔가 달라고 하는 건 한국어로 말하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

뭔가를 가르쳐주면 금방 기억하는데, 어떤 규칙에 대한 것 중 사회성과 관련된 규칙을 특히 잘 기억한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된다, 우리집에 놀러온 사람은 내 것을 빌려 놀아도 된다, 남이 갖고 놀고 있던 것을 뺐으면 안된다, 누가 때리면 맞때리는 게 아니라 멈추라고 이야기하고 어른을 불러서 중재를 시켜라, 자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해야하고, 조용히 해야하는 상황임을 어른이 알려주면 조용히 해야한다 같은 것 말이다.

하나 성격이 이렇다보니 자기 것을 잘 안나누려는 아이와도 크게 다투는 법 없이 잘 노는 편이고, 상대가 때려도 상대가 사과를 하면 기꺼이 먼저 가서 안아주려거나, 아니면 상대가 사과 하기 전에도 사과를 기다리며 다가가서 화해를 준비한다. 옆에서 보고 있다보면 나랑 달리 참 따뜻하고 살가운 아이구나 싶다.

힘이 넘쳐서 여기저기 많이 뛰어다니고 하지만 어디 데리고 다니기에 부산하지 않고, 외출해서 앉아서 밥을 먹거나 기차를 타고 다님에 있어서도 큰 어려움이 없다.

사교적인 성격이고 타인에 대한 신뢰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어서 낯선 사람과도 눈을 마주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상대 이름도 묻고, 이런 저런 자기 이야기도 늘어놓는다. 때로는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한다. 참 매력적인 아이라는 생각이다.

기질이라는 게 참 큰 것 같다. 주변 환경과 부모의 육아, 보육원에서의 보육환경 등 여러가지 환경적 요소의 영향도 있겠지만, 제일 큰 건 하나가 타고 난 기질인 것 같다. 그 기질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몫이겠지.

얼마전 영화관 가서 한시간 반동안 조용히 잘 앉아서 관람도 하고 오늘도 한시간 반에 달하는 왕립극장 관람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귓속말로 속닥속닥 하며 잘 버텨줬다. 미로같은 왕립극장의 긴 거리를 잘 걸어주었고 여기저기 환경이 따라주는 연습실에서는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매달리고 춤추고 힘을 발산하면서도 부산하거나 시끄럽지 않게 잘 따라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에 시댁 친척까지 모인 모임에 가서도 행동이 얼마나 유쾌하던지, 가족들이 말도 너무 잘하고 성격이 밝고, 식탁 예절도 바르고, 귀엽다고 칭찬이 어찌나 많던지.

올해 크리스마스며 새해 맞이까지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다. 이제 한달 후면 하나의 세돌 생일이 되는데 그때가 되면 또 달라지겠지. 한달 한달이 다르니까.

내 사랑 하나. 널 세상에 낳아 엄마는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하구나. 내 세상이 180도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하나. 사랑해.

내 모자를 가져다 쓴 하나. 패션 센스하며 참 훌륭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