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크리스마스 또는 율

하나가 곧잘 같이 잘 노는 유치원 같은 반 친구가 코로나 확진이 됨에 따라, 우리 반은 당초 예정보다 일주일 당겨 크리스마스/신년 방학을 실시한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아이고… 아찔했다. 이틀 전 1월 초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가 일주일 남았는데… 이 모든 게 무산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코로나 검사결과 음성으로 판정된 그냥 호된 감기가 채 다 낫지도 않았는데, 혹시나 여기에 더해 코로나에 걸리면 내가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통상 기관지 쪽으로 호되게 앓는 경향이 많아서 말이다. 다행히 두차례에 걸친 코로나 검사 결과 하나는 음성으로 나왔고, 유치원에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확진된 아이가 유치원에 나온 시기가 아주 이른 잠복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만 해본다. 정말 다행이다.

덴마크도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인지라 율/jul(12월 25일)을 예수 탄신일(크리스마스)로 보내기는 하지만 율이란 게 사실 해가 가장 짧은 동지를 기념하는 페간 축제에 기독교의 확산을 위해 예수탄신일 색채를 입힌 것인지라 덴마크의 율 전통은 기독교적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선물을 가져다주는 율리맨 (julemand, 싼타클로스), 12월에 여러가지 귀여운 말썽을 피우는 율리니쎄 (julenisse, 작은 난쟁이족) 등이 제일 대표적이다. 천주교를 떠나 무신론자가 된 나와 원래 무신론자인 옌스에게 율은 그냥 명절일 뿐이다. 더이상 크리스마스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율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와 같다. 율은 어찌되었건 연중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특히 올해처럼 가족,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재택근무를 통해 사람간의 접촉을 극히 제한했던 해에 작게나마 가장 가까운 사람과 만나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는 건 더욱 소중한 일이다. 물론 코로나 감염자수를 늘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기에 정부의 권고사항도 다 잘 따르겠지만 말이다.

하나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고, 내 감기도 코로나가 아니었고,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시누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테스트를 받는다.) 3년반에 걸친 두바이 주재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시누네 가족에서 예년과 같은 율리 아픈 (juleaften, 크리스마스 이브)을 보낼 수 있었다. 보른홀름에서 페리를 타고 스웨덴 육로를 경유해 시누네로 오신 시부모님의 경우, 당신들이 셸란섬에 도착하신지 몇시간 이내에 스웨덴이 국경을 약 한달간 닫기로 하면서 – 덴마크에 이미 번진 감염성이 더 심한 영국 변종 코로나 확산을 차단한다며 국경을 갑작스레 차단했다 – 하마터면 못오실 뻔 했었다. 다행히 돌아가는 편은 다른 경로로 예약을 하실 수 있었는데, 코펜하겐행 페리는 신년까지 예약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니… 정말 이번 율은 여러모로 변수가 많았다.

구글포토가 옌스네 가족이랑 처음으로 보냈던 율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2014년 겨울, 즉 6년전 겨울에는 시누네 아이들도 정말 어렸고, 시누네 막내는 하나 나이 뻘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믿기지 않을만큼 다들 훌쩍 커 있다.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구나. 하긴 그 당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하나도 올해 율을 아주 흠뻑 즐길만큼 컸으니 시누네 애들이 그리 큰 게 놀라울 일이 아니구나. 모두가 이렇게 커버렸으니.

올해는 명절 노동을 조금 더 나눈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담당하기로 한 초콜렛을 직접 만들어갔다. 스모케야 (småkager)도 직접 구워 가져가고. 일은 크게 돕지 못했는데, 부엌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자리가 별로 없어서 식사 준비 중에 발생하는 요리 설겆이 잠깐 하는 거랑 점심 식사, 중간 티타임 테이블 정리 조금 돕는 걸로 끝났다. 예전엔 어떻게 도와야 하는 지 잘 몰라서 좌불안석했었는데, 이젠 그냥 좀 알아서 적극적으로 돕고 쉴 땐 편히 쉬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큰 집에 살기도 하고 요리도 잘하고 좋은 와인도 섭렵하고 있는 시누네가 이렇게 항상 명절을 담당하니까 우리는 좋은 음식과 술을 즐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하면 좋고 편한데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우린 하나에게 율리맨이란 건 없고,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이야기라 해뒀는데 시누이 남편이 율리맨 분장을 하고 베란다 문으로 들어와 하나에게 선물을 주고 가서 하나가 아주 깜빡 넘어갔다. 하나라는 애 있냐고 외치는데 하나가 나서서 그거 자기라고 하니까, 율리맨이 이거 오늘 마지막 선물이라면서 하나에게 선물을 주고 갔다. 하나가 율리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더니, “율리맨이 하나라는 애 있냐고 물어봐서, 제가 하나라고 했어요!”하면서 너무 좋아하는 거다. 우리도 깜짝쇼라서 배꼽을 잡고 웃으며 비디오로 녹화했는데, 하나가 자주 보여달라고 해서 벌써 몇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검사 받기 무섭다는 하나에게 이 검사 안받으면 밖에도 못나가고 율도 우리끼리만 보내야 한다고 해서 검사 협조를 유도했는데, 이렇게 기대한 이상 즐거웠던 율을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겠지 싶다.

이렇게 간만에 만난 걸 계기로 시누랑 그간의 업데이트를 나눴는데 두바이에 돌아와서 암병동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똑똑한 그녀도 내가 일터에서 느끼던 고충들을 비슷하게 겪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내 마음에도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병가를 내지 않고 그냥 관둔 것을 두고, 자기는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면서 자기도 지금 일이 너무 힘들면 병가 내지 않고 관둘 생각이라면서, 병가 낸다고 돌아올 때 일이 바뀌는 거 아닌 걸 아는 이상 병가 기간 중 스트레스가 더 쌓이면 쌓이지 없어지지 않을 거라 이야기를 해주는 거다. 일의 스트레스에서 도망쳤다는 내 표현에 그렇지 않다면서 이야기해주는 그녀가 참 고마웠다.

올해는 코로나 규제권고로 26일에 항상 모였던 대가족 모임이 취소되었는데,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좀 더 수월하고 편한 명절이 되었다. 각자 음식 한가지씩 해서 26일 점심에 Faxe에 가서 모이는데, 가는 시간이 한시간 반 걸리는 거 생각하면 새벽같이 음식을 한가지 해야해서 좋지만 동시에 부담도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2020년 연말은 여러모로 오붓하게 보내게 되지만 하나와 또 시댁 식구들과 즐거움과 따뜻함이 가득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기에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으로 또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게 돼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옌스라는 좋은 사람을 캤더니 고구마 줄거리처럼 좋은 사람들이 넝쿨째 들어오는구나 싶다.

이제 아홉밤만 자면 한국행이구나. 신년 저녁 우리 세가족 만찬 준비하는 거 하나만 하고 나면 2020년과 작별을 하겠구나. 여러가지 의미로 다사다난했던 2020년, 힘들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고마웠다 2020년! 이제는 2021년 잘 맞이해봐야지.

아이가 진정 스승이구나 싶은 순간

네돌이 불과 한달정도밖에 남지 않은 요즘, 하나가 부쩍 컸음을 새삼 느낀다.

얼마전에 하나가 볼일을 본다고 화장실을 가더니 뭔가 놀라거나 당황했을 때 낼 법한 소리를 질렀다. 나는 부엌에서 저녁식사 재료를 손질하며 손에 물을 뭍히고 있었고 옌스는 거실에서 재택근무의 연장을 하고 있었기에 조금 더 손쉽게 갈 수 있는 옌스가 하나에게 달려갔다. 갑자기 애가 화를 내는 비명 소리를 지르고 발로 바닥을 구르고 아빠에게 성을 내길래 나도 손의 물기를 닦고 화장실로 나섰더랬다.

“무슨 일이 생긴거예요?”

하나는 엄청 서럽게 울면서 아빠가 속옷을 들춰 엉덩이를 봤다며, 유치원에서도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미안하다면서 바지에 혹시 오줌 싼건가 놀래서 본 거라고 양해받을 만한 일인 것처럼 가벼이 넘겼는데, 애 마음은 아닌 거였다. ‘아… 애가 이제 사생활의 영역에 대한 개념이 생겼구나… 엄마나 아빠가 아직도 큰 일 보고나면 엉덩이를 닦아주니까 그런 점은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자기가 허락하지 않은 타이밍에서의 신체에 대한 사생활을 이제 존중해 줘야 하는 거구나… 우리가 미처 생각을 못했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엉덩이를 봐서 하나가 속이 상했어요?”

“오줌 쌌다해도 유치원에서는 속옷을 열어보고 엉덩이를 확인하지 않는단말이예요! 그렇게 하는 거 아니랬어요!

기저귀를 뗀 이후에 유치원에서 바지에 오줌을 싼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마 유치원에서는 욕실에 데리고 가서 씻기기 전까진 오줌을 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바지 뒷춤을 들춰보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 신체 부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교육하는 모양이다.

얼른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에게 아빠가 잘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엄마와 아빠가 세심하지 못했다며 속상한 마음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볼일 다 본 후에 손 씻고 아빠한테 가서 아빠가 잘못한 거고 사과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라고 했다.

이날 저녁, 양치질을 하기 전에 꼭 뻔히 보이는 숨바꼭질을 즐기는 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꼭 자기 침대에 이불 덮고 숨는 하나. 숨바꼭질에서 우리가 못찾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이 루틴을 즐기는 거다. 아빠랑 하나가 만든 루틴에 나도 하나의 요구로 동참하게 되서 나는 나식대로 숨바꼭질 술래 역할을 했다. 이불 아래 숨은 하나를 발부터 찾아서 킁킁 냄새를 맡은 후에 “이 쉰내나는 발가락은 하나 발가락인데!”하면서 “하나 맞구나!” 하고 찾아냈었더랬다.

덴마크에 얼레리 꼴레리에 해당하는 “Øv, bøv, bussemand, sure tæer i saftevand”이란 노래가 있다. “얼레리 꼴레리, 코딱지, 주스에 담근 쉰내나는 발가락” 이런 내용인데, 여름에 간혹 하나 발에서 쉰내가 날 때 이 노래를 부르면서 발을 씻어주면서 가볍게 놀린 일이 있었다. 이후에도 발에 쉰내가 나지 않아도 몇번 그걸로 놀린 적이 있었는데, 사실 하나 발에 쉰내가 계속 나면 그걸로 안놀렸을텐데, 쉰내가 안나니까 놀렸던거다. 그런데 그게 속상했나보다. 애들이 유치원에서 금요일마다 따돌림 방지 교육을 받는데, 거기서 받은 교육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간 쌓여온 게 어제 터진 모양이다.

“발가락에 냄새 나는 것만으로 그게 저인 걸 맞출 수는 없는 거예요. 발가락에 냄새 나는 사람이 저만 있는게 아닌데, 발가락에 냄새 난다고 그게 어떻게 저인지 아는 거예요? 그리고 발가락에 냄새가 나는 걸로 자꾸 놀리면 안돼요! 같은 걸로 자꾸 놀리면 안된다고 했어요!”

아차…

“미안해요. 엄마가 하나 발가락에서 냄새가 안나니까 그렇게 놀려도 놀리는 거라 생각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엄마 착각이었네. 진짜 놀린 거는 아니예요.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안할게요. 미안해요.”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아닌 것으로 놀리는 것이든 맞는 것으로 놀리는 것이든, 상대가 아주 재미있다며 유쾌하게 웃고 있어도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게 남을 수 있다는 건 나도 경험한 바 있는데, 상대가 아이라고 해서 그냥 재미있게 받아들일 거라 착각했었다. 그리고 뭐가 되었든 반복적으로 놀리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오늘, 하나가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면서 엄청 우렁찬 소리로 힘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감자튀김 똥이 나온다면서 (이건 도대체 어떤 똥인지..?) 힘을 또 끙차하고 주는데 나랑 옌스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동시에 키득 거렸다. 그러자 하나가 묻는다.

“왜 웃는 거예요?”

우리가 그냥 웃는 거라고 답을 하자

“제가 낸 소리 때문에 웃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그렇게 비웃으면 안되는 거예요!”

라고 훈계를 한다.

“아.. 비웃은 건 아니고, 너무 재미있어서 웃은 거예요! 미안합니다!! 다음부터는 안웃을게요!”

라고 답을 하자

“그렇게 성의없이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면 안돼요! 미안할 일을 만들지 않게 기억을 하고 미안할 일을 하지 말아야죠!”

라고 쏘아 붙이는데, 할 말이 없더라. 내가 한 말을 고대로 나에게 되돌려주고 있더라. 아… 반성해야지 싶었다. 그래서 옌스랑 우리 좀 주의해야겠다고 나지막히 대화를 나누는데, 하나가 화장실 문을 탁 닫더라. 그래. 너도 화장실 문을 닫는 법도 배워야지…

아무튼 애가 어리다고 애 다루듯 대하면 안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에피소드가 많았던 지난 이틀이었다. 참 많이 컸구나. 대견하고, 뿌듯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발레 기록-2020년 11월 마지막클래스

코로나 2차 파동이 불고 있음에도 10명 이내의 실내체육활동은 허용이 되는 덕에 발레를 계속 할 수 있었다. 클래스 두개를 듣고 있는데 하나는 학생 수가 9명이라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13명이라 9명씩 조편성을 해 돌려야 해서 조금 영향을 받았다. 그래도 큰 틀에서 봤을 때 거의 영향 없이 발레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발레가 이미 내 삶을 이끄는 하나의 축이 되어버린 터라 이게 빠지면 체력, 정신적으로 모두 영향을 받는다.

요즘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다리를 높이 들 때 턴아웃 정확히 유지하기, 바닥을 최대한 사용하기, 상체와 하체를 유기적으로 사용하기, 아라베스크할 때 상체가 틀어지는 것 방지하기, 피루엣 할 때 잘 통제된 움직임으로 흔들림없이 착지하기 등이 있다.

예전에 옌스가 자기도 나 발레하는 것 보고 싶다고 하면 보여줄만한 게 없었는데, 이제는 센터에서 추는 것들도 나름 길어지고, 내가 춤추는 것도 춤다워져서 보여줄 거리도 생겼다. 2018년부터 찌워온 살 9킬로그램도 500그램 남기고 다 덜어내고 등 근육도 많이 길렀고, 출산과 함께 늘어졌던 뱃가죽도 완전하진 않지만 코어근육의 강화에 힘잆어 많이 원상태로 돌아왔더니 춤의 선도 보기 좋아졌다.

어제 저녁에 선생님이 몇가지 팁을 주신 게 있어서 집에서 쉬는 시간 틈틈이 연습을 해보다가 처음으로 5번 피루엣을 매우 절제된 동작으로 깨끗하게 해냈다. 요즘 느는게 눈으로 보여서 그런지 선생님이 동작을 세심하게 잡아준다. 이런 기회를 제대로 포착하고자 집에서 스트레칭, 발운동, 근력 트레이닝에 조금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면 창틀에 비스듬히 45도로 기대서 팔굽혀펴기도 틈틈히 서른번씩 하고 데미포인트에서 풀포인트로 서는 데 필요한 발 근력도 키우고자 여러 종류의 발 운동도 하고 있다. 덕분에 이제는 팔굽혀펴기를 제대로 해도 열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일할 때도 바른자세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쉰 달리기도 좀 하면서 점프 트레이닝도 좀 해야할 것 같다. 그래야 큰 도약 점프에서도 스테미나 부족으로 헉헉거리지 않고 가볍고 탄력있게 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선생님에게 이메일로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내 소중한 발레를 계속 아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챌린지를 주는 선생님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 벅찬 나머지 꼭 표현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라.

2020년 9월 12일

아이들은 참 다르구나.

친구와 잠깐 이야기를 했다. 그 집 아이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라 발달상 차이를 지켜보기에 좋고 신기한 점이 많다. 특히 그 차이에서 그런 점을 많이 느낀다.

그 아이는 수와 어떤 구조를 파악하고 구성하는 데 비상하고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 쪽으로 영재와 같은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에 대해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특별하다 생각하는 모습을 내비치니, 거기에 더해 창의성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치더라. 꽤나 큰 애들이 할 레고 조립을 거의 혼자서 다하는 수준인데, 레고에 동봉된 조립도면을 거의 외워내서 그걸 혼자 해내는건데, 뭔가 창의적으로 만드는 쪽으로 특별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상자 밖에서 문제를 풀어내는 참신함 같은 것이 자기에게 부족해서 그런 걸 아이가 갖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게 잘 안느껴진다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하나와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어떤 정해진 것 그대로 해야하는 것을 별로 안좋아하고, 장난감 대부분을 그 본연의 목적대로 갖고 노는 것보다 자기 마음대로 바꿔서 노는 걸 좋아한다. 놀이를 만드는 걸 잘해서 자기가 만든 놀이에 친구들을 참여시키는 것을 잘한다. 바꿔 말하면 남들이 참여하고 싶을만한 놀이도 잘 만든다는 거다. 손목 시계를 시계로만 쓰는 게 아니라, 도장이라 치고 여기저기 도장을 찍는 시늉을 한다던가, 도장을 갖고 도장이고만 쓰는게 아니라, 반창고라고 하고 놀이로 상처났다고 하는 곳에 꾹 눌러 반창고를 붙여주는 시늉을 한다. 펜은 막대아이스크림이고, 아이스크림 콘은 약통이다. 한 사물의 형태에서 다른 사물의 대상에서 뽑아낼 수 있는 특성을 발견하면 그걸 그 다른 사물이라 칭하고 노는 대에 능하다. 추상화 능력과 창의력이 탁월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정해진 도면을 따라 뭔가를 정교하게 만드는 건 하나가 잘 하는 일이 아닌거다. 좋아하지 않으니 잘할 수가 없지.

이렇게 어린 아이들에게서 뚜렷한 특성들이 발견될 때,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갖고 태어나는 유전적 요소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어 놀랄 떄가 많다. 그리고 잘 하는 것과 부족한 것을 어떻게 키워줄 지,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아니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정말 부모가 생각하고 스스로를 교육해서 아이가 커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게 참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2020년 9월 9일

쉬웠다가 어려웠다가 하루하루를 종잡을 수가 없다.

요즘은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다르다. 하루는 너무나 쉬웠다가 다른 하루는 너무나 어려웠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머릿속에 새로이 들어가고 경험하는게 많아서 그런 걸까? 아직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 능숙하지 않아서 뭔가 심사가 뒤틀리면 그날 하루가 어려워지는 걸까? 그렇기엔 또 기분이 좋은 날은 웬만한 일에도 쉽게쉽게 넘어간다.

추상적 개념에 대한 관심

죽음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겨울왕국을 본 이후부터다. 하나보다 나이가 많은 유치원 친구들이 하나에게 엘사를 소개시켜줬는지 세돌이 지난 때부터 겨울왕국 타령을 하더라. 그래서 보여준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와 애나의 부모님이 배의 난파사고로 사망한 것을 만화에서는 초상화에 검은 베일을 드리우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이걸 하나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들의 부모님이 바다에 빠져 돌아가셨고, 더이상 엘사와 애나는 부모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는데,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어 땅에 묻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 사람은 우리 마음속에만 살아 숨쉰다고 설명해줬는데, 나와 옌스가 세상을 떠나 언젠가는 자기와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제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개략적으로 이해했다. 이것이 하나가 이해한 첫 추상적 개념은 아닐 거다. 사랑이라는 개념도 피상적이나마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 차이라하면 사랑은 우리와 자신과의 교감을 통해 연결시킬만한 경험고리가 있다면, 죽음은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거라는 데 있다. 물론 겨울왕국이나 다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고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자기 상황에서 느낄 일은 없었으니까.

요즘은 진실과 과제에 대한 개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자기의 미니 욕조 안에서 얼굴이 그려진 낚시채를 엘사로 정의하고 엘사가 엄마, 아빠를 찾아 헤메는 거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엘사, 너희 부모님은 돌아가셨어. 더이상 부모님을 만날 수 없어.”라고 이야기를 해줬더니, 하나가 냉큼 나를 저지한다. ”엘사는 진실을 알면 안돼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알면 안돼요!”라는 거다. 진실? 어디서 배운 표현이지? 집에서 쓴 적은 없으니 당연히 유치원에서 배운 표현이겠지만, 어떤 맥락에서 배운 걸까?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니까, 알면 안되는 일이라는 거다. 아… 숨겨진 진실은 파고드는 게 좋지 않다는 맥락에서 배운 거구나. 도대체 유치원에서 어떤 상황에 그런 표현을 들었을까? 남편은 진실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준 적이 없다는데. 특히 그런 맥락에서는.

아이의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는 머리를 열어서 확인할 수도 없고, 다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궁금하고 또 궁금하구나. 말속에 은연중 드러나는 흔적으로 그 머리속을 곁가지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2020년 8월 30일

두발자전거를 온전히 타기 시작하다

내 생일 즈음에 하나에게 페달이 달린 두발자전거를 선물했다. 그게 두달 조금 지난 일이다. 하나는 두돌때부터 페달이 달리지 않은 두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걸 타고는 내가 빠르게 뛰지 않으면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급회전도 하면서 능숙하게 탄지 벌써 몇달이 된 시점이었다.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자전거 중 가장 작은 것을 샀는데, 아이들 자전거는 아주 특별하게 비싼 게 아니면 아이 체중 대비 정말 무거운 것들 밖에 없었다. 애가 금방 자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 비싼 걸 사기는 어려워서 그냥 살만한 범위 내 자전거에서 가볍고 조금 비싼 걸 골랐다. 그래도 9킬로그램이 조금 넘더라. 내 자전거가 스포츠 자전거로 개중 가벼운 것임을 감안하더라도50킬로그램대의 내 체중에 자전거10킬로그램인 걸 생각하면, 아이 15킬로의 몸무게에 9킬로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냥 복잡한 계산 없이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런 자전거를 아이가 처음에 타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미 자유로이 빨리 탈 수 있는 발자전거가 있는데, 어떻게 타야할 지도 잘 모르겠고 힘든 페달자전거는 인기가 별로 없었다. 본인이 그렇게 원하던 분홍색 자전거였음에도.

그래도 옌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 타보겠냐고 물어보고, 옆으로 허리를 구부정하게 기울여 하나 자전거를 뒤에서 밀며 뛰어다니는 수고를 여러번 거듭한 탓에 8월 중반에 들어 거의 매일 하나가 자전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주변을 관찰해보더니, 큰 애들은 페달자전거를 타고 작은 애들이나 발자전거를 탄다, 이런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자기도 큰 애가 되어가고 있으니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자전거가 무거운데다가 발이 땅에 적당히 닿을 정도로 안장을 낮게 설치했더니 페달질이 힘들어서 그런지, 옌스가 밀어주면 자기는 균형만 잡으며 크루징을 하고, 페달은 발판 정도로만 썼었다. 옌스가 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걸 여러번 도와주고 나니 서서히 페달을 밟기 시작했고, 가장 어려워하던 스타트는 약간의 내리막 비탈길에서 모멘텀을 활용한 연습을 반복하더니 어느새 요령을 터득해 평지출발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온 가족이 해안도로로 나가 하나의 자전거 투어를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함께하기로 했다. 결론은 대성공이었다. 우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인라인스케이트 도로에서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가 리드를 함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고, 하나도 넘어짐 없이 우리의 신호에 따라 정지와 출발을 반복하며 완주해줬기 때문이다. 어느새 배가 고파진 하나가 찡찡거리긴 했지만, 주차장에 위치한 아이스크림집을 미끼로 써서 완주에 성공했다. 제법 긴 거리긴 했지만, 유치원에서 긴 소풍을 가면 길게는 8-9킬로미터도 너끈히 걸어내는 아이인지라 큰 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와 온가족이 함께 체육활동을 한 건 처음이라서 의미가 큰 하루였다. 통상, 우리가 하는 체육활동은 하나가 제대로 참여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옌스가 줄을 타거나 외발자전거 연습을 하면, 내가 그동안 하나와 그 인근에서 다른 걸 하다가 교대를 해왔는데, 이번엔 모두가 동시에 같은 경험을 나누었으니까. 새로운 시대가 열린 기분이다. 아이와 취미를 나누는 시대. 뭔가 꿈꾸는 이야기 같구나.

2020년 8월 28일

사회적 욕구가 강한 아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상당히 힘들게 시작했다.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드러눕고 왁왁 거리며 울고 성질을 내는데 마음의 평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똑바로 행동하지 않고 그렇게 성질을 부리면 엄마는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했다. 엄마가 화가 날 대로 난 것을 눈치챈 아이는 그제서야 자기는 엄마와 이야기 하고 싶다며 울고 백기를 들었다. 사과할 준비가 되었냐니까 죄송하다며 옷도 갈아입고 머리 빗겨달라고 거울 앞에 가서 앉았다. 애써 화난 감정은 추스르고 이야기를 하는데, 애가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 감정의 앙금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건 아닌지라 딱딱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막상 집 문만 나서면 유치원을 가는 길은 매우 쉽다. 데려다 주는 건 주로 남편이 하는 일인데, 남편도 문을 나서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문을 나서면 그다음엔 쉽다고 했다. 유치원에 들어가서도 나를 한 번 포옹해주고 뽀뽀 한 번 하고 나면 손쉽게 헤어짐을 받아들인다. 어떤 날은 창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쏜살같이 자기 반으로 들어가 친구들과 놀기도 한다. 친구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유치원에 가는 걸 싫어한 적이 한 번 없고, 삼주간의 여름휴가 기간 중에는 친구들을 너무나 그리워해서 중간에 플레이데이트를 꼭 해야할 만큼 친구와 노는 걸 너무나 좋아한다.

친구 사귀는 것도 좋아하는데, 말의 호흡이 잘 맞아 대화가 통하고, 보육원/유치원에서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사회적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라면 누구와도 잘 노는 편이다. 뛰고 넘어다니고, 기어오르고, 매달리는 식으로 노는 것도 좋아하고, 상상력을 활용해서 놀거나, 역할 놀이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친구와 케미가 맞지 않을 경우 혼자 떨어져서 일인 다역으로 대화를 하며 놀기도 하지만, 역시 친구와 함께하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오늘은 남편이 차고 앞 공터에서 외발자전거를 타며 클럽저글링을 연습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자기도 한번 타볼 수 있냐며 말을 걸어왔다. 개중 쉬운 외발자전거 한개를 그에게 내어주어 타보게끔 해줬는데, 그 전에 타본 적 있다는 그니는 두어번의 시도 끝에 다칠까봐 몸을 사리며 그만 타겠다고 하더라. 그 와중에 하나는 두발 자전거를 혼자서 온전히 탈 수 있게 되었고, 그 행인의 주변으로 자전거를 요리조리 타는 거다. 예전같으면 이름부터 다짜고짜 물어봤을 것 같은데, 요즘 크면서 예전보다는 (아주 조금이지만) 수줍음을 타는 탓인지, 이름은 물어보지 않고 대화만 하고 자전거를 타며 자랑을 하더라.

그 행인도 자기 갈 길을 가고 나도 하나와 장을 보러 동네 수퍼에 갔는데, 가는 길에 그 행인에 대해 하나가 나에게 이것 저것 물어봤다. 왜 그 사람은 아빠의 외발자전거를 타 본 건지, 아빠만큼 잘 못타는지, 어디 사는지, 이름은 뭔지 등등. 직접 물어보지 그랬냐고 했더니 잊어버렸단다. 이말을 믿지는 않는다. 그렇게 궁금한 것을 쌓아뒀다가 나에게 물어보는 자체가, 잊어버렸다는 말과 앞뒤가 안맞지 않은가? 이유는 불문하고, 나도 모르겠고,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나면 꼭 물어보자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수퍼에 그 사람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얼른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라 했더니, 아이는 쌓아뒀던 질문을 던지고, 자기가 엄마랑 쇼핑하러 왔음도 이야기하고, 그사람은 거기에 왜 왔는지, 뭘 사러 왔는지 이것저것 묻고 대화를 나누더라.

사실 하나가 길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과 시시콜콜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까 나도 동네 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예상치 못하게 대화도 많이 하고 이름도 기억하게 되는 등 과거에 안했을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가 어른, 아이, 동물 가리지 않고 사회적 교류를 하는 것을 유독 좋아해서 말이다. 굳이 사회성을 두고 보자면 옌스보다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사회적이었는데, 나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다. 어른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많이 나눠서 그런가? 표정도 그렇고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상대의 이름을 자주 부르기도 하는 등 내가 일부러 배우려 해온 테크닉들을 이 아이는 타고난 거 같아서 탄복을 하게 된다. 사람마다 재능이 다 다른 곳에 있지만 이 아이에게 있는 재능에는 사회성이 있구나 싶다. 아이를 보며 배운다는 말이 나는 아이의 실수를 통해 어른도 배운다는 뜻인 줄 알았더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정말 애를 통해 내가 배울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ByHæin 유튜브채널

너무 어설프게 시작하긴 했지만, 동영상을 하나하나 찍으면서 조금씩 자연스러워 지는 모습도 보이고, 편집 프로그램도 조금씩 수월하게 느껴지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덴마크어 공부를 위한 컨텐츠를 중심으로 올리고 있는데, 또 앞으로 어떻게 컨텐츠를 확장해나갈지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앞으로 잘 지켜봐주시길…

2020년 8월 27일

하기 싫다고 거부하는 일을 강제로 시키기

간혹 심하게 떼를 쓰는 날이 있다. 평균적으로 보자면 떼를 크게 쓰는 애는 아니지만, 떼를 쓴다고 하면 정말이지 너무 힘이 좋아서 다루기 힘들지경이다. 오늘 플레이데이트가 있어서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아이의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놀다 왔다. 볼로네즈 파스타를 한껏 먹었다고 하는 걸로 보아 평소보다도 많이 먹고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집 부모들과 잠시 담소를 나눈 후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이미 피곤해서 그런지 신발을 신는 타이밍부터 뭐하나 작은 거라도 자기가 원하는 바에서 틀어지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오늘 유치원에서 야외활동을 하느라 걷기도 많이 했을 거고, 새로운 집에 가서 노느라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자극도 많았을 거다. 지금 나는 애의 훈육에 감정을 보다 배제하고자 의식적으로 더 노력하고 있는 터라, 그냥 그렇게 행동하면 안된다고 조용히 설명하고, 내가 해야할 일에만 초점을 맞춰 애를 안아 들고 차에 태워 집에 왔다.

뭘 하더라도 삐딱선을 타는게, 차에서 내려야 되는 데 카시트에서 내리지 않고 자겠다고 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는 둥 이미 집 안에서 전쟁을 한바탕 할 것 같은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전조가 보였다고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집에 들어가서 손 씻는 일이 전쟁이었다. 손을 안씻겠다고 베란다에 쳐둔 자기 텐트로 쏙 들어가버렸다. 남편이 손부터 씻으라고 여러번 이야기했는데도 따르지 않자, 애를 들쳐없고 화장실로 데리고 가고 있었다. 목욕은 안시키더라도 세수 시키고, 엉덩이, 손은 씻겨야 해서 옷을 벗겨야 하는데,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며 목욕탕 바닥에 드러눕는거다. 나는 올바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면서.

이제 우리도 한두번 한 일이 아니니 이력이 나지 않았겠는가? 내가 몸통을 딱 잡고 남편이 손과 얼굴을 씻기고, 남편이 양다리 부여잡고 내가 몸통을 잡고 엉덩이를 씻기고 몸에 물을 타올로 말렸다. 귀를 뚫고 갈 것 같은 날짐승의 포효같은 목소리로 자기가 씻겠다고 하는데 – 진작에 씻지, 다 씻기고 난 후에 또 이렇게 청개구리 짓을 한다. – 그걸 받아주면 또 난리칠 게 불 보듯 훤해서 방으로 들쳐없고 갔다.

의외로 얌전히 속옷은 입었지만, 잠옷은 안입겠다고 또 반기를 들기에, 그 옷 입기 싫으면 그냥 누구 주겠다고 경고했다. 진짜 안 입으면 누구 줄 생각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옷인데, 그렇게 남 주고 나면 자기 손해지. 역시나 얼른 잠옷을 입었는데, 아직 분이 하늘 끝까지 뻗쳐서 식지가 않는 거다. 들짐승이 내는 으르릉 소리로 같은 소리를 음절 사이사이 끼워 넣으며 ”엄 으르렁 마 으르렁. 제 으르렁 손 으르렁 제 으르렁 가 으르렁… (엄마. 제 손 제가 다시 닦을 거예요!)” 이렇게 말을 하는데 남편이나 나는 너무 어이도 없고 뭐가 그렇게 분할까 싶어서 너털웃음이 나왔다. 나도 안다. 아직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작은 일에도 이런 말도 안되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냥 그 머리속과 가슴속에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가 돌고 있는 건지 이해하고 싶어도 상상할 수가 없어서 우스운 것 뿐이었다.

마지막 관문인 양치질은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다. 자기도 알기 때문이다. 강제로 양치질을 하는 게 그닥 유쾌한 일이 아님을. 힘은 힘대로 썼는데 피할 수도 없고, 우리도 우악스럽게 힘을 써서 아이의 턱을 붙들어야 하니 턱도 아플 게 틀림없다. 대부분 10초 안에 굴복하고 입을 열었지만, 그 저항을 참 많이도 했었으니 우리나 애나 이골이 난 전쟁이다. 그래서 더이상 양치질은 큰 관문이 아니게 된 것 같다.

세살 반.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아직 훨씬 많은 나이. 해야하는 것은 해야하고, 해서 안되는 것은 하면 안되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 안될 게 많고… 그런 아이를 대상으로 우리는 감정을 싣지 않고 최대한 우리의 역할을 다하는 건데, 지금 여기에 오기까지 크고 작은 전투를 많이 치르면서 마음 속 갈등도 정말 많이 겪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이렇게 해도 되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지? 그런 갈등. 때로는 유치원 선생님의 조언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육아서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일련의 문제들을 해결하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 인센티브를 결부시킨 훈육 – 예를 들어, 이렇게 행동하면 네가 원하는 일들을 해 줄 수 없다든가, 재우러 들어갔는데 애가 자지 않을 때 지금 잠자리에 누워서 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엄마가 그냥 나가겠다는 것과 같은 부정적 인센티브 설계 – 를 어떻게 배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 있다.

나와 씨름을 해서 그런지, 오늘은 아빠가 재워주는 날이었는데도 꼭 엄마를 옆에 두겠다고 주장하여 우리 가족 셋 다 하나 방에 누워서 남편이 읽어주는 책을 들었다. 어른 둘이 누워 자리도 없는 매트리스에 엄마랑 같이 있겠다고 내 몸 위에 자기 몸을 겹쳐누웠는데, 솔직히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씨름을 한 뒤에 애와 살을 부비고 누우니 너무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재워도 되는데, 자기가 덴마크어로 책을 읽어줘야하는 날이라며 우기는 남편을 보며, 남편도 참 많이 바뀌었다 싶었다. 애가 어릴 때는 지금과 같은 수준의 감정교류가 어려웠던 탓에 내가 대신 애를 재우겠다 하면 냉큼 좋다고 바꾸고 나갔을 남편이었는데, 지금은 아이 재우는 게 너무 좋고, 중요해서 바꿔주지 않겠다니. 아무튼 그렇게 애는 잠이 들었다. 너무 피곤한 탓인지 7시 반에 재우러 들어가 9시 반이 되서야 잠이 들었다. 내일 고생하겠네. 오늘은 우리도 일찍 자야할 것 같다. 내일의 전투에 준비태세를 갖추려면…

2020년 8월 26일

부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당당히 요구하자

남편과 나, 둘 다 가벼운 감기기운이 있어서 코로나 테스트 예약을 해두었다. 토요일에야나 테스트가 가능하다고 해서 남편이 사무실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야 집에서 일하니까. 학생들에게 연락해서 수업을 취소한다고 해두었다. 코로나라고 생각되기 너무 어려운 증상이지만 예방 차원에서. 애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유치원에 보냈다.

친구가 유치원에 아이 언어 발달과 관련된 걱정을 진지하게 나눴더니 미팅을 잡아줬다고 했다. 어제 미팅을 했었을 것 같아 잘 했는지 연락을 했더니, 언어 발달 프로그램을 별도로 잡아준다고 했단다. 유치원 내부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또 외부 전문가를 통해 밖에서 개별적으로.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한국 뿐 아니라 덴마크에서도 적용이 되는 모양이다. 예전에 하나 병원에 입원했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부모가 매사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이에게 추가적인 자극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설 경우 적당한 시기에 부모가 개입을 해서 도움을 청하고 대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선의를 믿고 움직이지 않으면 바쁜 일상 속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곤 하는 게 여기서도 일어난다.

잘 따르는 선생님과의 작별

유치원 선생님 한 분이 이달 말을 기점으로 관두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으신 분으로 하나가 엄청 따르는 분이고, 우리 유치원에서 14년이나 일하신 분이라 왜 관두시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선생님을 마주쳐 관두시는 이유 여쭤봐도 되겠느냐 했더니, 작년에 새로 부임한 유치원장님과 맞지 않아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야 선생님들하고만 접촉하니까 원장님이 어떤지는 느낄 일이 없어서 어떤 면에서 맞지 않았는지 여쭤보니, 선생님들끼리 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상의를 하면, 선생님들끼리 잘 결정하라고 한다는 거다. 본인은 어려움이 있을 때 책임을 지고 의사결정을 해줄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며, 그게 안되는 채로 시간이 흐르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는 거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나도 과거 경험을 통해 알기에 이해한다는 말이 그냥 나왔다. 양쪽의 말을 다 들어본 건 아니지만, 선생님의 느낌은 또 본인의 느낌인 거니까, 둘 사이의 리더쉽 관점에서의 케미스트리가 매우 안맞았다는 건 분명하다. 누군가에겐 좋은 리더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안좋은 리더일 것이고. 아쉽다는 마음과 함께 보고 싶을 거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목이 잠기고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내 아이를 봐주는 선생님으로 믿도 맡기도 따라온 좋은 선생님이 리더와의 케미 문제로, 오래 일하신 직장을 떠나 다른 곳을 알아보신다니 마음이 엄청 상했고, 진짜 보고싶을 거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도 선생님이 매우 보고 싶을 거다. 어느 타이밍인가에는 하나도 유치원을 졸업해서 선생님을 거의 보지 못하는 시기가 오긴 하겠지만, 그건 자기의 새로운 앞길에 대한 설렘과 겹치며 그 여파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넘어가겠지. 특히 미리 진학할 학교를 방문시키며 적응기간을 거치는 덴마크의 시스템 속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자기의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선생님이 관두는 건, 그것도 자기가 정말 많이 따르는 선생님이 관두는 건 조금 충격적인 일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고 길게 아이를 돌봐주던 선생님들이 관두시거나 일하시는 건물을 바꾼 일이 몇차례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힘들어할 지도 모르겠다. 아직 세상을 삼년 반 정도밖에 살지 않은 아이지만, 정을 쌓고 작별을 하는 일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에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나오시는 다음주 월요일에 하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별거 아니야, 라고 털 수 있는 능력

Pyt med det! Skidt, pyt! 라는 말이 있다. 안좋은 일인데, 별 거 아니라고 하고 넘어가자고 할 때 하는 말이다. 작은 일에 집착하는 것,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일이다. 작은 실패도 넘어가지 않고 개선을 하든, 정정을 하든 해서 상황을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그냥 넘어가도 될만한 일 하나하나에 집착해서 짜증을 자주 느끼거나, 실패하는 일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시간이 갈 수록 덴마크인들도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여전히 느껴지는 건 어떤 일상의 불편함이나 실수, 실패 등에 있어서 ”Pyt med det!” 하고 말하며 툭툭 털고 가는 걸 잘한다는 거다.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태도를 가르쳐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포함해서.

우리도 하나에게 어떤 실수나 실패를 할 경우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잘 못하는 일로서, 나 또한 이런 마음을 가지려고 실천하고 있는 바라 더욱 이를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제 하나는 두발 자전거를 평지에서 스스로 출발해서 페달을 밟아 주행하고 코너를 돌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브레이크를 잡아 정지하는 것까지 모두 익혔다. 아직 잘 못하는 것들이 있지만, 우선 해낼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그러기까지는 물론 무수히 많이 넘어지고 연습을 했다. 넘어질 때마다 아파하는 건 호호 불어주고, 피나면 반창고도 붙여주지만, 원래 그렇게 배우는 거라며 시도하게끔 도와준다. 하기 싫다면 강요하지는 않고. 동시에 아이 아빠나 나 모두 각자의 취미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또한 연습만이 실력이 좋아지는 유일하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Øvelse gør mester. (Practice makes perfect.)”, 이건 하나가 세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흔히 하게 된 말이다. 그래서 그냥 실패에 크게 속상해하지 않고 배우는 법을 이미 익힌 것 같다. 혼자서도 잘 일이 안풀리면, ”Pyt med det!”하고 이야기 하니 말이다.

물건과 관련되어서도 뭔가 잘못되었을 때, 그걸 해결하거나 크게 속상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미 꺠진 거 속상해봐야 달라지는 거 없으니까, 얼른 그 감정을 털어버리는 게 중요하다 싶다. 어제는 하나가 많이 기대하던 새 신발 두 켤레가 도착했다. 발이 커져서 새로이 신발을 장만해야 했는데 신발이 젖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여벌까지 해서 두 켤레를 주문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색깔 취향 정도만 반영해 내 마음대로 나이키 등에서 활동성이 좋은 신발 중심으로 구입을 해왔는데, 이번엔 본인의 취향을 적극 반영해서 불이 들어오는 캐릭터 신발 – 내 취향이나 기준에는 별로 맞지 않지만 – 을 샀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한켤레의 불이 잘 안들어오는 거였다. 한짝은 아예 불이 들어오지 않고, 다른짝은 반절만 들어오는 거다. 막상 주문한 나도 속상한데, 반품하고 또 주문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잡했다. 내 거였으면 그냥 넘어갈만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할까…하는 갈등으로 찰나의 순간 마음 속이 동하고 있었는데, 하나가 “Pyt med det!”라며 괜찮다는 거다. 그래서 얼른, “신발 색깔이 이뻐서 불이 조금 안들어와도 마음에 들지?”라고 물어봤더니, 그렇다는 거다. 귀찮았던 마음을 한번에 해결해 준 하나의 태도에 고맙기도 하고, 귀찮음을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고 다소 미묘한 마음속 갈등이 생겼지만, 그냥 그런 속상한 상황을 그렇게 넘길 수 있는 태도를 가진 하나가 대견해서 그거려니 넘겼다.

자식을 키우는 일에 농사라는 표현이 이런 때 와닿는다. 하루하루의 작은 일들이 쌓여서 아이의 태도에 영향을 주니까. 물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서 농사라는 표현을 쓰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직접 어떻게 발현할지 선택할 수 없는 유전자라는 씨앗이 가장 큰 일을 결정한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콩심은 데 콩나지, 팥이 나지는 않을 게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