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어 학습방법

팔꿈치 신경이 눌려서 새끼와 약지손가락에 살짝 저림이 생겨서 의사를 만나고 왔다. 팔꿈치 터널 증후군때문인데 클라이밍에서 난이도를 올리면서 내 현재 팔 인대가 감당할 이상의 부하를 준 탓인 듯 하다. 팔을 접고 옆으로 누워 자는 자세도 한몫 한 것 같고.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는데, 저리다는데 쓰이는 표현을 søvnig라는 단어로 했는데, 약간 다른 sovende라는 단어로 표현했어야 했던 모양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졸려운”과 “자고 있는”의 차이인데 자고 있는에 해당하는 단어를 썼어야 했다. 의사가 정정을 해줘서 정확한 표현을 하나 알고 넘어가게 되었으니 하나의 수확. 아 대충 잠과 관련된 단어를 쓰는 것 같아서 søvnig로 썼는데, sovende였었냐며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진료가 끝나고 덴마크에서 산 지 얼마나 되었냐고 의사가 묻는다. 2013년 7월 말에 왔으니까 이제 9년이 좀 넘었다고 했더니, 놀랍다며, 진료하면서 보면 오랫동안 살아도 덴마크어 못하는 사람 정말 많은데 søvnig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라고.

연극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혼자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좋다. 그런데 의사가 말한대로 오래 산다고 해서 덴마크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같이할만한 친구가 많지 않다. 발레 친구들은 발레 보는 걸 좋아하지 연극을 좋아하지는 않더라. 사실 난 덴마크어를 잘 못할때도 연극을 종종 봤는데, 배경 지식을 갖고 들어가면 그런대로 따라갈만했고, 또 그런 경험을 통해 덴마크어가 조금씩 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욱 의식적으로 그런 활동을 찾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이해해서 온전히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take away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괜찮다는 어프로치로 감상하면 공부도 되고 문화생활도 되니 좋지 아니한가!

내 주변에 도대체 어떻게 덴마크어를 늘려갈까 고민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아이디어로서 영감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내 문화생활 파트너를 늘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심이 가득한 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스트레스받기도 하는 일이다. 이미 영어로 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비영어권 국가에 살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쉽지 않다. 굳이 그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새로운 언어를 쓰고 배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더듬어가며 바보같아 보여지는 상황에 나를 던져넣고 싶지 않고 싶은 건 대부분이 느끼는 심정일 거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나를 던져 넣지 않고 책으로 영화로 말을 늘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능독적 활용 없이 수동적 인풋만을 활용하는 학습만으로는 능동적 활용능력과 수동적 활용능력의 갭이 갈수록 커져서 능동적 활용을 오히려 꺼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덴마크어처럼 빠르게 말하고 우리 기준에서 매우 미묘한 차이를 가진 다수의 모음 음가를 지닌 언어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능동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어휘와 독해 능력 대비 타인이 내 말을 알아듣게 하거나 내가 타인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떨어지게 되서 시간이 갈 수록 자신감을 잃게 된다. 내가 쓴 시간에 비해 나아지는 게 크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 자신감을 잃게 된다.

성인이 되어 비영어권에 나와 언어를 배워야 되는 상황이라 하면 어떻게 하는 게 빨리 배우는 방법이 될까?

우선 일상에서 그 언어를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답답해서 영어로 전환하더라도, “내가 덴마크어를 배워야 돼서 덴마크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덴마크어로 하고 싶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거나 표현이 안되면 그때 영어로 일부 이야기하겠다.”라고 표현하면 여태까지 딱 한명 빼고는 다 기꺼이 덴마크어로 응대해줬다. 덴마크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음식을 주문하는데 필요한 표현, 상점에서 물건을 살때 가격을 묻고, 물건의 위치를 묻고, 결제 방법에 대한 대화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대화 표현을 학원에서 배웠으니 그걸 바로 써보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상 생활에서는 예상치못한 추가 질문이 따라오기도 하고 그를 이해하지 못해서 재차 물어보다가 이해 안되서 영어로 바꾸게 되는 일도 있고, 실수를 해서 엉뚱한 결과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 에피소드들은 일련의 대화를 더욱 쉽게 기억하도록 한다. 실수했던 일이야 말로 잘 기억이 나게 되서 다음에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수준보다 조금 어려운 것이라서 처음 한 챕터 정도는 내가 마주하는 단어의 10% 정도를 사전에서 찾아야 하는 책 정도가 좋다. 소설이든 뭐든 대부분 어떤 주제나 장르상의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같은 단어가 여러번 나오게 된다. 단어장을 만들어서 그냥 그 단어를 찾은 결과를 적어내려가면서 읽다보면, 동사와 같이 문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어중에서 자꾸 기억이 안나 여러번 사전을 찾아야 하는 단어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걸 왜 기억 못하지 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그냥 여러번 단어장에 기록을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타이밍에는 기억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엔 사전찾느라 정신없던 챕터 두어개가 지나고, 슬슬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구간이 나온다. 책 한권을 다 끝내지 못해도 좋다. 그렇게 몇 챕터 읽고 다른 책을 또 읽고 하다보면 작가별로 다른 어휘나 문장의 사용형태에 노출이 되면서 어휘와 표현을 늘릴 수 있게 된다.

책이 지겹거나 공부하기 싫을 땐 영화나 티비 트라마, 리얼리티쇼,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별로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보면 된다. 자막 띄워 놓고 다 이해한다는 목표 의식은 옆에 접어 두고 즐기면서 보되, 반복되는 모르는 단어때문에 이해에 방해가 된다 싶은 건 사전을 찾아보면서 본다. 시간이 흐른 후에 실력이 조금 더 늘었다 싶을 때 또 한번 본다. 그러면 그 전보다 더 많이 들리고, 더 많이 이해된다.

영상의 경우 음성보다 영상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더 많은 음성 노출을 위해서는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이용하는 것이 아주 좋다. 전적으로 음성에 의존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압도적인 양의 노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뭔가 읽으면서 해독할 수 있는 보조 매체가 없기 때문에 귀의 민감성이 고조된다. 쉐도윙을 하면서 굳이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따라 말하며 듣기도 하고, 굵직한 내용을 중심으로 따라가면서 관련 어휘들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대부분 주제에 따라 반복되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모르더라도 소리를 따라할 수 있고, 그게 워낙 중요한 단어의 경우 소리 비슷하게 구글 검색해보면 오타가 나더라도 비슷한 추천단어 검색결과를 볼 수 있고, 매체의 프로그램 소개 내용을 통해 관련 내용을 검색해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관련된 글 등을 찾아 읽어보면 음성으로 들었지만 정확히 뭔지 몰랐던 단어를 눈으로 마주했을 때, ‘아, 이건가?’하는 생각과 함께 사전을 찾아볼 수 있고,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을 때 경험이 그 단어를 보다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연극을 보는 것은 영상과 또 다르다. 중간에 멈추고 사전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영상보다 또박또박한 발음을 들을 수 있다. 발성에 있어서 전문가인 배우들이 나와서 공연을 하기 때문이다. 미리 내용을 학습하고 가서 볼 경우 그걸 토대로 상당 부분 따라갈 수 있다.

잘 이해될 수 있을 때쯤 봐야지, 들어야지, 경험해야지, 말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반대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말해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조언하고 싶다. 순서가 반대다. 공을 어떻게 차야하고 다루는 지에 대해 정말 잘 설명한 책을 자세히 읽는다 해도 축구를 직접 해서 몸에 익히지 않고서는 그 책에 기술된 내용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게 다 기술된 책을 찾을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완벽하지 않게라도 일상생활을 덴마크어로 완전히 전환하는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학업이 영어로 이뤄졌기에 전문적 영역에서의 덴마크어 전환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상황에 던져져서야 이뤄졌으니 정확히는 4년이 걸렸다고 할 수 있겠다. 어렵게 이력서를 써서 제출했기에 가능할지 어쩔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던 직장에서의 첫 한두달은 업무시간의 40%를 사전 찾는데 쓴 것 같다. 법전이며, 공문서, 리포트 등 읽을 게 태산이었는데다가 보고서를 쓰면서 정확한 표현을 쓰기위해 사전에 크게 의존해야했기 때문이다. 중간에 스트레스로 10개월 정도 쉬었던 기간에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학원에 다시 나가 조금 더 인텐시브하게 공부한게 한단계 언어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어 다음으로 덴마크어가 편하다. 어휘는 덴마크어가 영어보다 부족할지언정 듣기능력에서는 덴마크어가 더 낫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실생활의 표현에 있어서 덴마크어 표현력과 이해력이 영어의 그것보다 낫다. 아무래도 영어 공부를 예전처럼 안하기도 하고 영어로 된 영화나 티비 시리즈를 안보는 이유가 한 몫 하는 거 같다.

오늘은 영어로 하고 다음에 덴마크어로 해야지, 덜 중요한 것일때 덴마크어로 해야지, 이런 마음은 옆에 고이 접어두고 이 말 빼고는 못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할 때 언어가 는다. 원래 쉬운 길이 있으면 그리로 가게 되어 있다. 그 두 길 다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길은 공사중으로 닫아두고 언젠가는 가야 할 길로 지금 당장 가자. 훨씬 더 빠르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낯선이들 속에서 오롯이 나로 자유로이 서기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네트워킹을 하고 코스를 듣고 내 의견을 말하고 질문을 하고 내 소개를 하고 하는 과정 속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한 것 말이다. 나에게 향했던 내 내부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타인의 발언을 들을 때 그에 100% 집중해 경청하니 상대방이 더 잘보이기 시작했다. 내 결점에 집중하고 그걸 타인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느라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모습이.

언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내 머리속에 자리한 번잡한 생각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한 것이었다. 테크니컬한 내용의 강의와 토의를 따라가고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내 덴마크어가 부족할까봐 미리 변호하거나 하는 일이 필요없었다. 조금씩 실수하거나 그러면 또 어떠한가. 우리말하면서도 실수 할 수 있는 건데. 저녁 식사하다가 문화간 차이 이야기가 나와서 덴마크 이주시 경험을 이야기하니 언제 왔냐고, 이민온 지 몰랐다고 하는 거보면 작은 실수는 그냥 나만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있던 거였던 거 같다.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틀려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는 거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다른 동료가 있고, 나는 그 자리를 메울 다른 것을 갖고 있으며, 나는 계속 배워가고 계속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저런 사람인데… 이런 생각으로 걱정하거나 나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고 그래서 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나다. 이 말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새롭게 와닿은 순간 이게 정말 나를 자유롭게 하는 말임을 알았다.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수가 없고 나는 그냥 내 생각과 행위, 선호, 가치관 등으로 구성된 사람이고 이는 내가 내리는 일련의 결정과 행위로 끊임없이 변하는 동태적인 유기체이기에 나를 어떤 말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나는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가치관과 선호, 정보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거다. 정보가 추가되거나 가치관이나 선호가 바뀌면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고. 타인이 나를 좋아하건 안하건 나는 나이고 타인의 평가는 나의 어느 일면만을 갖고 평가하는 것이기에 필요한 오해가 있으면 풀고, 그게 아니면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 하고 넘어가는 거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늘은 스스로에게 정말 칭찬해줄 날이다. 내가 낯선이들 사이에서 나로서 자유롭게 오롯이 선 날이기 때문이다. 잘 했어!

나이들어간다는 것

내 대학교 3,4학년 시절의 큰 비중을 채웠던 경영학회 GMT. 지도교수이셨던 박영렬 교수님이 퇴임을 하신다고 홈커밍데이 겸 퇴임 축하를 한다고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메일을 받았다. 어느새 박교수님이 퇴임을 하실때가 되었구나. 아… 내 흰머리가 늘고 내 남편, 부모님, 시부모님의 나이듦을 보고 느낀 것과 또다른 형태로 세월의 흐름을 체감했다.

근 1~2년 새 유독 내 신체나이가 들어감을 느끼고 있다. 피부의 탄력이 예전같지 않고 머리카락을 좀 들춰 뒤적거려야 몇 개 찾을 수 있던 흰머리가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미 라인에도 몇가닥 새싹처럼 올라와서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피부에 상채기라도 나면 예전엔 그냥 둬도 낫던 것이 이제는 소독약 없이는 덧나서 낫는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안경 없으면 피곤했지만 그래도 벗고 생활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안경 안쓰면 안그래도 짧은 팔을 길게 뻗어 미간을 찌푸려봐야나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다. 저녁 약속에 좀 이쁘게 한다고 안경 벗고 나가면 메뉴를 보느라 고생을 하니 오래지 않아 안경은 두고 다닐 수 있는 물품에서 제외될 모양이다. 몸의 근력이나 그런 걸로만 보면 내 인생에 유래없이 강한 시기이지만, 조금만 잘못 쓰면 인대나 관절 등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물론 덕분에 관절을 정확한 방향으로 쓰는 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게 되었으니 꼭 나쁜것만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을 보면 각각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영 동떨어진 비영어권 환경에서 살며 대학원 공부를 다시해 새로운 커리어로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일을 시작했으니 정말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나이가 아주 많았다면 상관없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해 젊은 동료들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뭐 아주 젊은 동료들도 아니기도 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를 놀라게 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바다에서 지적 호기심을 갖고 뭔가를 파는 일이 적어졌는데, 일이 나를 새로운 분야로 던지곤 하면 그제서 또 이를 배우느라 헤메기도 하고 가슴이 뛰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되려 젊어짐을 느끼곤 한다. 그런 면에서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거의 이십년이 흘러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파고 있는 지금, 감사함을 느낀다. 다시금 삼각함수를 파고, 전기공학과 관련된 이론을 보고, 이제사 왜 수학과 물리 등이 중요한지 또한번 느끼는데 옛날 이걸 왜 배우는지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배웠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감과 내 익숙한 영역에서의 활동기간이 함께 길어지면 두려움이 늘어나는데, 이를 깨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다보면 그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시선 속 나,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관계를 보느라 끊임없이 나를 중심으로 보던 시선을 밖으로 돌릴 수 있게 되고 나니 새로움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를 내던질 수 있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변화는 분명히 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구분할 것 없이 말이다. 하지만 두가지 모두 그 변화 속에서 젊음을 챙길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수평적인 사회에서 살며 더욱 자유롭게 새로움을 탐색할 수 있다는 건 그런 점에서 축복임에 틀림없다.

테마데이 고카트!

난생처음 고카트를 타봤다. 센터장이 이번 테마데이의 활동은 업무와 무관한 것으로 선택했다고만 들었는데 그게 고카트일 줄이야! 처음 타보는 거라 얼마만큼 가속을 해도 좋을지, 언제 브레이크를 얼마만큼 밟아야할지 등 잘 모르겠어서 조금씩 테스트를 해보면서 속도를 늘려봤다. 나중엔 요령이 조금 생겨서 속도를 꽤 올릴 수 있었고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았다. 다른 카트를 추월하거나, 추월하다가 실패하고 접촉사고를 내거나, 추월하려는 동료를 성공적으로 막거나 커브를 너무 격하게 돌아서 자동차가 반바퀴쯤 돌거나, 또 어제 하루 고카트를 운전한 사람들 중에 네번째로 빠른 랩기록을 낸다거나 말이다.

시속 65킬로미터로 속도 제한을 걸어놨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전구간에서 목과 온 몸에 느껴지는 원심력이란… 언젠가 포뮬러원 선수들이 목 근육을 그렇게 트레이닝한다는 것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왜 그렇게 훈련해야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으니 시속 65킬로미터가 안되는 상황에서 내 목이 받은 원심력이 그렇게 컸는데, 코너에서 최저 시속 80킬로미터를 낸다는 포뮬러원 선수들이 목에 받는 힘이 얼마나 대단할런지.. 아무리 차량의 접지력이 크고 회전 반경이 고카트보다 크다 하더라도 무게가 더 나가는 차량에 속도가 두배 이상이면 그게 원심력에 미치는 영향이 네배가 넘을텐데… 하여간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고작 10분씩 16랩 경기를 3번 했을 뿐인데 지금 몸에 근육통이 가볍게 느껴진다. 온 몸에 들었던 긴장감이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 우리랑 같이 돌던 팀은 2번 돌고나서 두명이 속이 안좋다해서 관두고 나갔다.

파워핸들이 아닌지라 회전 구간에서 핸들링을 하면서 온 몸애 힘을 썼는데, 그 덕에 다 끝나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내 차의 핸들이 얼마나 가볍고 부드럽게 느껴지던지. 안그래도 전기자동차라 주행이 가벼운 편인데 고카트 하고 운전하니까 몸이 날아갈 거 같더라. 자동차를 시 외곽에 둔다고 해서 내 차에 중간부터 태워 동행하고 갔던 동료도 자기가 운전하지 않는 차지만 고카트 운전 이후엔 모든 승차감이 다 좋게 느껴지는 거 같다며 공감해마지 않았다.

이런 테마 데이가 아니었으면 굳이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고카트. 처음엔 30분에 불과하다 생각했는데, 끝나고 몸이 땀에 흠뻑 젖고 나니, 30분을 넘겼으면 너무 힘들었겠다 싶었다. 주변에 딱히 이런 격한 것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누군가가 한다고 하면 다시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은 이래서 어떤 활동을 할지에 대한 결정이 전적으로 남에게 달린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음엔 방탈출도 해보고 싶네!

소셜스포츠 클라이밍

상체 근력이 약한 관계로 오버행 벽에서는 수직벽에 비해 난이도를 한단계 내려 타도 고생을 한다. 클린하게 한번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지난번엔 아무리 시도해도 못해 포기했던 벽을 오늘은 두번의 휴식을 포함해 완등했다. 다음의 목표는 휴식을 한번으로 줄이는 거다. 아예 쉬지 않는 목표는 너무 거창한 거 같고.

벽을 타다보면 여러가지 이유로 파트너가 바뀌게 되는데 – 파트너가 멀리 이사를 간다거나,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등반 시간대를 옮긴가거나 – 그런 때를 대비해 새로운 인물과 기분을 열심히 쌓아두어야 한다. 왠지 혼자인 듯 한데 실력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 같은 사람에 있다? 혼자 왔냐 묻고 파트너가 있는지 물은다음 없다, 상대도 누군가를 찾는다 이러면 바로 작업들어간다. 같이 타보겠냐고.

그렇게 만난 체코인 파트너와 클라이밍을 하고 탈의실에서 짐 챙기는 중 홍콩인을 만났다. 왠지 나를 흘끗흘끗 보는데, 말 거려나? 생각하며 손을 씻는데 입술에 묻은 초크가 너무 무서워서 실소가 터진다. 입술에 하얗게 자주 초크 바르고 다니게 되서 거울 보다가 깜짝 놀래곤 한다고 말의 물꼬를 텄다. 그러자 자기도 종종 그런다면서 나 리드 벽타는 거 구경했다는거다. 쉬다가 리드 타는 거 봤는데 잘 하더라, 하면서.

덴마크 온 지 두달 된 학생인데 파트너가 없어 혼자 클라이밍을 한다고 하길래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친구랑은 또 다르지만 클라이밍이 은근히 소셜한 스포츠라서 이렇게 사람 만나는 재미가 또 있다. 벽 위에서는 혼자의 싸움같지만, 또 그 안전을 도모해주고 내려와서 담소를 나누고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서 꽤나 소셜한 취미이다.

오늘 힘든 루트 두개 했더니 팔이 후들후들… 힘드네…

평가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사무관급에서는 연봉 협상이랄게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정부와 내가 소속된 노조랑 임단협을 하면 내 임금단계에 맞춰 인상이 되기 때문이다. 임단협에 맞추지 않고 내가 직접 협상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문 케이스이고. 나는 원래 주는대로 받자는 주의라 임단협에 묻어간다. 내가 아주 특별하게 뛰어났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단협을 받아들이든 자기가 직접 협상을 하든 그건 이미 본 협상 단계에 들어서서 할 일이고 그 전에 또 임금기대수준에 대한 대화를 하는 회의를 갖게 된다. 여기서 상사도 오퍼할 내용을 준비해 공유하고, 직원도 자기 나름대로의 기대수준을 이야기한다.

오늘 이 임금기대수준에 대한 회의를 했는데 사실 나는 잘 모르겠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임금정책에 대해서도 읽어봤지만 매우 원론적인 정책이라 그게 나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고, 아직 이 임금협상이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마음 먹고 썰을 풀자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겠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원한 이상의 결과가 나왔는데 무엇보다 기뻤던 건 상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상담을 받고 그 상담의 내용을 일상에 적용하고 하는 걸 벌써 두달 조금 넘게 했는데 그 사이에 정말 큰 변화를 본 거다. 상사의 좋은 평가나 이런 걸 덴마크에서 직장을 잦은 이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냥 좋게 말해주는 것 뿐이지, 나랑 일하는게 답답할 거다 이런 식으로 혼자 생각하고 덴마크어에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나에게 참 가혹하게 굴었으니…

심리상담 받느라 주당 근무 시간도 한두시간 줄이고 해서 평균을 넘는 임금인상은 기대도 안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또는 그냥 당연하다 생각했던 내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꼬집어 내어 좋게 상사가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며, 타인의 여러 모습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그걸 꼬집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상사에겐 참 필요한 덕목이구나 싶었다. 세금 내고 나면 대세로 보아 큰 의미없는 임금 인상이지만 상징적 의미로 기쁜게 크지 않나 싶다.

풍속 관련 용어

덴마크에는 바람이 거세게 부는 편이라 그와 관련 용어가 많이 있다. 일기예보에서 fra frisk vind til kuling, hård vind 등과 같은 표현을 쓰는데, 그게 그래서 얼마나 분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야 그냥 초속 얼마의 바람이라고 표현할 것인데.

Beaufort-skala라고 풍속을 구간으로 나눠 그를 표현하는 어휘와 그에 따른 육지와 해상에서의 영향을 묘사하는 등급표가 있다. 어학원 다닐때 간단히 배운 적이 있는데 언젠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찾아본 적이 있다. 덴마크에 살면서 알아두면 편한 용어들.

총선이 발표되었다.

최소한 4년에 한번 총선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덴마크 총리는 총선의 시기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 그 권한에 따라 이번 회기의 국회가 시작되고 이틀째인 어제 총선의 시기가 발표되었다. 대체로 총선이 발표되는 시기로부터 3주 정도안에서 총선을 치르게 되는데 가을방학 시기가 그 안에 들어가는 점 등을 고려해서 11월 1일로 선거일자가 정해졌다.

총선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이건 총리만의 아주 특별한 권한인데, 이번 총선에서 메데 프레데릭센 총리는 그 특별한 권한이 퇴색되는 불편한 상황을 겪었다. 오늘까지 총선이 발표되지 않으면 불신임투표를 통해서 정권을 무너뜨리겠다는 라디캐일 벤스트러의 최후통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최후통첩이라는 게 그걸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더욱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최후통첩을 실행으로 옮기느냐는 것을 두고 여러가지 추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정권의 스캔들사안에 대한 조사위원회와 총리 사이에 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의 발표시기에 대한 사전 조율을 시사하는 문자메세지가 1주일 전에 공개됨으로서, 최후통첩이 빈껍데기 위협이 아닐 것임이 전망되었다.

최후통첩이 있었던 8월부터 지금까지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언제 총선이 개최될 것인지를 두고 추측만 무성했고, 총선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선거운동 비슷한 것이 시작되었으며, 인플레이션 가중과 에너지 위기, 안보 위기 등 국내외 불안정한 정국에 총선에 대한 불확실성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 총선을 실시하는 것이 맞느냐는 근본적인 질문도 나왔고, 야당 두군데에서 총리후보 출마 선언이 나오고 새로운 정권 창출을 위한 정책 목표가 발표되는 가운데, 현재 정권이 발의하는 정책들이 다음 정권을 위한 당 차원 정책이냐, 현재 정권 차원의 정책이냐, 현재 정권 차원의 정책인척 공무원조직을 활용하면서 다음 정권을 위한 당차원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냐 등을 두고 말이 많았다. 사실 총선이 발표되지도 않은 채로 이미 총리후보 3명의 토론이 개최되고 선거운동이 실시되고 있는데, 빨리 총선을 발표하고 공무원 조직으로 하려금 새로운 정책 개발과 관련된 활동을 중단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지적이었다. 사실 맞는 지적이다.

덴마크도 3권 분립이 되어있는 나라가 맞다. 입법, 사법, 행정이 분리가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입법과 행정이 분리되는 형태가 우리와는 다른 것이, 공무원 조직은 조직대로 유지되는 채 장관은 정권에서 정하는 소속 정당 국회의원이 자리를 맡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부처별로 있는 행정부 수장인 departementschef를 정권에서 교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departementschef를 싹 갈아엎고 그렇지는 않고, 그 아래는 정말 공무원이라 정권이 공식적인 채널로서 영향을 끼칠 수는 없게 되어있다. 덴마크는 상당히 투명한 나라지만,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정권이 공무원 조직에 영향을 끼치거나, 이로 인해 스캔들이 일어나거나 하는 일도 발생한다. 여느 나라 같이. 빈도와 정도가 상당히 덜하다라는 것이 있긴 하다.

다시 돌아가자면, 입법과 행정이 분리되어 있지만 내각을 구성한 정권이 책임을 지고 행정부를 운영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공무원 조직은 시민이 선택한 정권의 정책을 위해 일하게 된다. 그러나 총선이 발표되는 순간부터 행정조직은 입법조직과 분리되기 때문에 현상유지 차원의 일을 제외하고 모든 입법 관련 활동, 새로운 정책 기획 활동 등은 다 중단된다. 내가 소속된 조직은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보장받은 조직이기 때문에 그냥 팀 회의 정도 차원에서 총선하 행동강령에 대해 공지받은 정도였지만, 직전에 일했던 조직은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업무가 섞여있던 터라 총선이 발표된 다음날 임시 직원회의가 열려 행동 강령에 대해 주지를 받았다. 4년에 한번정도 있는 일이라 잊어버릴 수도 있고, 새로운 직원은 모르는 일일 수 있기 때문에 총선이 있을 때마다 행동강령과 예시 등을 듣는다. 그리고 총선관련 타임라인이나 경영진의 조직 운영에의 영향 등에 대해서도.

선거가 치러지고 그 결과에 따라 정권이 언제 구성되느냐에 따라 한동안 중요 정책사안에 대해 대처하기 어려운 림보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지금처럼 여러가지 위기가 첩첩이 쌓인 상황에서 총선이 치러지는게 맞느냐 싶은 생각도 들지만, 코로나부터 지금까지 여러가지 위기가 계속 쌓여있던 최근의 3년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어떤 위기가 더 있을 지 모르니까 그냥 지금 선거를 치르는 게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불투명한 이번 선거,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진진하다.

요즘 즐기는 것들

좋아하던 텔레비전 시리즈들이 시즌을 거듭하며 지루해지고 좋아하던 음악들도 계속 반복해서 듣다보니 질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때마침 눈과 귀에 띄는 것들이 생겼다.

첫째로는 DR에서 새로이 시작한 드라마 시리즈인 Carmen Curlers라고 머리에 고정해두고 기다리면 컬이 생기는 고데기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악셀이라는 사람을 그렸다.

딱히 꼬집어 이야기 어려운데 좀 새로운 방식으로 영상을 담았다. 중간중간 자기 세계에 몰입하는 인물들의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 환타지스러운 영상기법이 DR에서 평소에 볼 수 있던 시대극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호기심이 더 가는 극이라고 할까?

둘째로는 Shu-bi-dua의 음악이다. 1970~80년대에 가장 전성기를 구가했던 팝락그룹인데, 사실 그 중 리드싱어였던 Michael Bundesen의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는 게 보다 정확하겠다. 덴마크 어린이 노래는 어른들이 어른의 목소리로 부른 게 많은데 특히 60~80년대 음반 중에 좋은 게 진짜 많다. 그 중 한 노래가 매우 마음에 들어서 찾아봤더니 말로 엄청 많이 들어봤던 Shu-bi-dua의 리드싱어였던 것. 애들이 들으면 웃긴게 아닌 그냥 노래인데, 어른이 들으면 무슨 저런 걸로 노래를 만드나 싶어 웃음을 터지게 만드는 가사라던가, 아니면 손발가락이 오그라들만큼 찌질함을 너무 편안한 목소리로 불러서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속이 오글거리는 가사라던가 하는게 귀를 즐겁게 한다. 내 귀를 처음 사로잡은 노래는 Røde hunde. 이는 질병인 풍진을 뜻한다. 예비임산부들이 예방접종을 맞는 바로 그 풍진.

나는 풍진에 걸렸어. 나는 꽤나 아파. 내가 너무 불쌍해 라는 가사로 시작해서 중간에 열이 얼마나 나고 진통제랑 페니실린을 먹고 있다는 내용 등 가사를 들어보면 무슨 이런 걸 노래로 부르나 싶은데, 목소리만 들으면 그런 내용일지 모르겠는 노래라는 데에서 컨트라스트가 두드러져 재미있게 들었다.

옌스가 슈비두아를 듣고 마음에 든다면 정말 덴마크인 다된거라 하더라. 사실 한 삼분절은 덴마크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긴 하다.

또 이렇게 덴마크를 알아가게 되는구나.

낯선 아침 출근시간의 시내 모습

출근시간에 코펜하겐 시내에 나온 건 정말 오래간만이다. 주차자리를 다행히 찾아서 차를 대고 조금 걸어서 가까운 카페로 이동하는데 아침 도시의 소음과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언더톤의 도시 소음을 들어본 게 얼마만인가.

낯선 도시 소음을 마주하고 나니 마치 내가 여행지로서 낯선 도시에 서있는 것 같았다. 도시를 구경하거나 여유를 즐기는 사람은 없고 다들 분주히 이동하는 모습. 자동차, 자전거, 보행자 구분 없이 다 바빠보인다. 주말에는 들리지 않던 공사장의 소음, 지게차의 경고음, 도시의 언더톤에서 시끄러운 소음을 담당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분주히, 무표정한 얼굴로 자전거를 타고 쌩쌩 지나가는 사람을 보니 낯설다. 걸어 다니며 내 얼굴을 볼 일이 없기에 내가 아시아인이란 생각을 잊고 지내는데다가 주로 보는게 백인이다보니 그 얼굴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마저도 낯설게 느껴져서 내가 이방인인 것 같다. 마치 시골쥐가 서울에 와서 정신 못차리는 상황같다.

내가 얼마나 도시 생활에서 멀어져 지냈는지 느끼고 놀랬다. 집이 외곽이고, 회사는 더 외곽이니 자연에 둘러쌓여 소음 없이 살면서 간간히 사람 많고 관광지 느낌 가득한 주말의 도시만 구경하다가 이런 출근길 도시를 마주하고 나니 그 사실이 새삼 크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