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테크

주말에 한글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 가족들도 참석할 수 있어서 함께 참석하기로 했다. 아이도 옌스도 미적미적거리며 참석을 원치 않았고, 나도 참석하지 않으면 주말에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지만 그래도 가는게 좋겠다고 강하게 밀어붙여서 다녀왔다. 결론적으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어달리기와 2인 3각, 제기차기를 비롯해 다양한 운동을 했는데, 어렸을 때의 운동회처럼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는 실내 체육관에서 아주 얇은 맨발운동화를 신고 있으니 춤이 절로 나온다. 여기서 춤이라 함은 발레. 돌고 뛰고 온몸에 쌓인 에너지를 한껏 발산할 수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친구와 지인이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클라이밍을 하는 모습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클라이밍 이야기 하는거야? 하면서 다가갔더니, 맞다면서 나의 팔 근육은 클라이밍으로 생긴거냐고 지인이 묻는다. 아주 힘들게 키운, 그리고 더는 두꺼워지기도 힘든 나의 팔 근육을 보면서 맞다고 대답해줬더니 그럼 자신은 클라이밍을 하면 안되겠다고, 팔 너무 두꺼워지겠다고 하는거다. 그냥 그렇게말이다 하고 답하고 말았는데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알고 말했든 모르고 말했든 간접적으로 외형에 대한 평가를 하는구나 하는 것 하나와 근육의 중요성과 근육이 얼마나 키우기 힘든 것인지, 근육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또 40대부터 근손실시 꾸준히 생기는데 그에 대한 타격을 입겠구나 하는 다른 하나의 생각.

지금까지 근육 없이도 잘 살았는데 굳이 힘든 운동을 해 근육을 키울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왜 필요할까? 특히 우리 같이 40대에 들어가는 여성에게눈 근육이 특히 중요하다. 첫째로 40대부터는 호르몬의 부족으로 근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일상생활을 하면 근육이 없어진다. 근육은 글리코겐의 저장창고이다. 포도당을 이용해서 근육에서 연료로 이용할 글리코겐을 만들어 저장한다. 따라서 근육이 많으면 대사 안정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심혈관계 건강에 아주 중요하다. 근육이 많으면 체력이 좋아져서 평소에 피로도가 낮아지는데, 평소에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사는 사람들은 근육이 부족한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근육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같은 양을 먹었을 소비 칼로리가 높아진다. 튼튼한 근육은 주변 관절의 부하를 줄여준다. 그런 근육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뼈 조직은 적당한 부하를 받아 뼈 조직도 단단해진다. 그리고 근육이 있어야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 다른 것보다 근육이 없으면 늙어서 자립성이 떨어지게 되고 따라서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원치 않아도 거의 백세까지 살 시대에 소위 말하는 근테크는 정말 중요하다.

너무나 많이 말하도 충분하지 않은 근육의 중요성. 그녀의 말을 나는 그래서 칭찬으로 들었다. 클라이밍을 몇년이나 해서 간신히 키운 팔인데 그걸 알아봐주다니 싶어서. 오히려 내 강인한 허벅지와 둔근, 복근을 알아주지 않아서 좀 아쉽다.

체육대회의 이어달리기를 통해 느낀 건 스프린팅 실력이 오히려 좋아졌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근육을 키우자! 건강한 노후를 위하여!

배움의 과정 속 오류의 필요성

무언가를 배우는데 있어서 오류를 피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효율성과 효과를 끊임없이 따지는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피할 수 없는 오류를 논하는 것은 다소 착오적이라는 시선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사람은 오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수는 잘못된 것인지 알지만 너무 빠르게 움직이거나 판단하거나 여타 다른 이유로 틀리게 하는 것이라면 오류는 그게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하거나 옳은게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찌되었든 이를 행하다가 틀리게 하는 것이다. 배움의 효율성은 이런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겠지만 때로는 이런 효율성을 따지면서 플래닝에 시간을 투여하기 보다 앎과 배움을 꾸준히 추구하는 과정 속에 오류를 범하고 이를 통해 배워가는 자체는 낭비가 없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우리가 배우는 수많은 것들은 이 수행의 정교함을 높일 수 있는 수준이 다양하다.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아주 긴 세월동안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하물며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 한 들 우리가 깊이를 더하고자하면 그 정교함의 수준을 올림에 있어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하는데 있어서 누군가는 아주 기초부터 정말 차근차근 초석을 다져가며 정교함을 쌓아갈 수 있고, 누군가는 어느정도 초석이 쌓이면 그 위에 놓일 것들을 슬슬 맛을 봐가며 초석 다지기를 병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인으로서 취미발레를 배우며 느낀 것이자, 클라이밍을 통해 느끼는 것은 배움은 정말 비선형적이라는 것이다. 발레에서 턴아웃이라는 아주 중요한 기초를 다짐에 있어서 이제서야 오류가 아닌 실수의 단계로 들어섬을 느끼고 있다. 그 전에는 턴아웃, 중립 골반에 대한 것이 도대체 뭔지 미지의 것을 탐색해가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뭔지는 조금씩 감을 잡고 움직임 속에서 턴아웃을 끊임없이 수행하도록 노력하고 실수하며 배워가는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완벽하게 다진 후에야 다음 것을 배우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애초에 오류를 경험할 수 없었기에 그를 통해 배우게 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없었으리라 본다. 클라이밍에서도 내가 하기 어려운 단계의 것들도 프로젝팅해 도전을 해보고 그보다 쉬운 난이도의 것들도 꾸준히 하고, 나에게 적당히 어려운 것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조금씩 그 전에 들었던 조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내가 잘못해오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런 생각없이 오류를 반복하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동작을 수행하면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매 순간 자신을 점검할 수는 없지만 기초를 다지는 순간 중요한 것들을 꾸준히 점검하며 오류를 교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을 해야한다. 주변의 조언과 함께 현재의 상황을 자기객관화를 통해 점검하다가 그것이 맞는 것에 올라섰을 때, 그걸을 평가해줄 좋은 코치를 두고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러면 실력 향상의 속도는 모르지만 끊임없는 업다운을 반복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우상향의 방향을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발레에서 균형찾기

한동안 클라이밍에 집중하느라 발레에 소홀했었다. 주 2회에서 주 1회로 줄이고 나니까 확실히 느는 속도가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여름휴가 이후 클라이밍을 조금 줄이고 발레를 다시 주2회 이상 하니까 다시금 느는게 느껴진다.

발레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어찌보면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변화하는 동작속에서 발바닥 또는 발가락에서 균형을 찾고 흐름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발레에서 규정하는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내몸의 사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여러번 표현했는데 아직도 새로운 근육을 발견해나가고 있으며 그의 사용법을 배우게된다. 해부학적으로 그 존재를 알고 있던 근육인데 이를 분절해서 사용하는 법을 새롭게 익히게 될때면 그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 1년전 즈음인 것 같다. Kizzy 선생님이 서있는 축다리 위에 위치한 근육이 있는데 그게 치골방향으로 감싸 누르는 듯한 감각으로 잘눌러줘야 한다고 했는데 알듯 하면서도 잘 모르겠었다. 그 설명을 잊지않고 머리 한켠에 항상 저장해 두었는데 막상 그 근육을 어떻게 실제 동작에서 유기적으로 사용해야 할지는 감이 오질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그 감각이 찾아왔다.

물론 그런 감각이 하늘에서 뚝떨어지듯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근육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은 그근육과 근육을 연결하는 신경 모두 잘 발달되지 않았다는 뜻이기에 그를 사용할 만큼 키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고, 나에게는 제법 긴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이번 외복사근의 발견을 통해 균형잡는 것이 수월해졌고 다리가 골만에서부터 시작되는게 아니라 사실은 외복사근이 있는 곳부터 시작된다고 인지하고 나니까 그간 말로 듣고 이해가 될듯 말듯했던 지적사항들이 확 이해가 되면서 passé 할때 골반이 들리지 않게 할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피루엣 이후 착지도 깔끔하게 할 수 있게되었다.

앞으로도 여전히 배울 것은 많지만 이번 깨달음을 통해 실력이 한계단 올라선 느낌이라 매우 유쾌하다. 핸즈온해주는 선생님이 많으니 실력도 비례해서 느는 느낌이다. 감사하네.

새로운 근육을 발견하기

발레를 시작한 것이 2012년이었으니까 어느새 13년이 흘렀다. 물론 그 간에 임신, 출산으로 2년 이상을 쉬긴 했지만 부상 등으로 인한 이슈로 쉬는게 아니면 주 1~2회 정도는 꼭 트레이닝을 이어왔다.

발레를 하면서 놀라는 것은 지금조차도 내가 쓰고 있지 않았던 근육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안되지? 하고 고민을 하며 몇년의 시행착오를 겪다가 우연히 그간 못쓰고 있던 근육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는 팁들을 다 이용해보다가 어딘가에서 들어맞는 것. 누군가의 조언이 틀려서가 아니라, 워낙 오랜 기간 고착화된 근육 사용 패턴과 몸의 불균형 등으로 인해 사용하지 않던 근육은 다른 근육이 그 기능을 대체하게 되어 이를 잘 사용하지 못하게 될 뿐이다. 뇌도 계속 기억을 하려다보면 시냅스들이 계속 길을 찾아가며 새로운 시냅스를 만든다는 것처럼 근육도 안쓰던 근육에 전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발레를 오래한 사람들의 정형화된 엉덩이 모양이 있다. 발레가 요구하는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엉덩이 인근의 근육을 특정한 형태로 사용하고 나면 그런 모양이 나오는 거다. 반대로 말하면 그 엉덩이 모양이 안나오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내 엉덩이는 아직도 그 모양이 되지 않았다. 많이 가까워졌지만 아직 사용하지 못하는 근육이 있는 것이다. 정면에서 보면 불과 1년전보다 골반 인근의 모양이 발레를 오래한 사람의 모양에 가까워졌다. 그렇지만 아직 다리를 옆으로 들 어 홀딩할 때 사용해야 하는 근육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나마 좋아진 점이라면 우선 이제 무슨 근육인지 알게 되기라도 한 것이긴 한데 부족하다. 바닥에 옆으로나 등으로 누워서 해보면 어떤 근육인지 얼마전 알게 되었는데, 그걸 서서 중력을 이기며 할 때는 바닥에서 싸워야 하는 방향과 다른 힘이 추가되다보니 다른 근육이 보상을 해버린다.

선생님들이 하는 말씀들 중 몇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매일 매일 내 몸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날 내 균형이 어디에 느껴지는지 찾으라, 골반을 중립으로 해라, 꼬리뼈를 내리지만 tuck-in하지는 말으라, 겨드랑이 아래로 등 근육이 아래를 감싸 내리듯이 쓰라, 옆구리 근육이 앞으로 감싸 내리듯이 쓰라, 등판을 옆으로 길게 해라, 골반을 열지만 뒤집지는 말으라는 등등의 말들. 수도 없이 많은 말들을 내 몸에서 느끼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게 틀려서 또 다르게 해야 하는 것. 발레를 해본사람은 알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오래 했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아직도 못할까라는 생각.

그런데 그래서 발레를 지금도 하는 것 같다. 동료가 물어봤다. 지금도 발레를 더 잘하고 싶고, 발전을 느끼냐고. 크지는 않지만 조금씩 지금도 발전을 느끼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며 어떤 의도의 질문이냐고 물어봤더니 답을 한다. 그냥 그 수준에서 재미로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새로운 질문이었다.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선한 충격을 준 질문이었달까? 물론 지금도 즐기고 있다. 이제 집에서 혼자 발레 바로도 가볍게 몸을 풀기도 하고, 그 끝엔 나만의 춤도 추며 춤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발레를 하는 이상은 끊임없이 더 잘하게 되고 싶을 것 같다. 그게 몸의 노화와 함께 불가능해져 현상유지만으로 기뻐해야 할 타이밍이 오기전까지는… 아니, 마음은 항상 그렇지 않을까?

내 안의 목소리, 두려움과 싸우기

리드클라이밍을 하다보면 두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내가 어떤 내면의 목소리와 마주하게 되는지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며 그 상황을 복기하기만 해도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오는 그 순간의 두려움은 사실 본질적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다. 위험 자체보다는 위험이 있을 수도 있는 확률, 즉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다. 바닥으로부터 3미터 정도의 높이를 벗어나면 우리가 다리와 로프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유지하고, 무리하게 높은 곳에 줄을 걸려고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이후에는 자잘한 부상 가능성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등반을 하는 것이다.

벌써 20회 가까이 시도했지만 계속 마지막 구간을 실패하는 루트가 있다. 물론 실패의 종류는 달랐다. 초반의 등반에서는 여러번의 휴식을 취해야 했고, 첫번째 난관의 구간에서 계속 실패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갔고, 한번의 휴식만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더 클린하고 안정적인 테크닉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최근 도달한 마지막점에서부터는 그 위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등반 각도가 45도 이상으로 눕는 가파른 구간이기도 하고, 이미 거기까지 올라가며 소진한 에너지 탓에 낭비할 시간과 에너지 따위는 없다. 따라서 빠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 내린 결정은 의심하지 않고 믿고 행동으로 바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러번 실패한 이 구간에서 나를 제한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미 너무 힘들어, 여기서 더 뛰어오를 힘도 없어, 뛰어봐야 아래로 떨어질 거야,와 같은 목소리다. 이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에 싸우지 못하고 그 짧은 머뭇거림의 순간 체력도 고갈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면 그냥 포기해버리게된다. 포기하지 않고 시도라도 해보면 잃을 것도 없는데. 워낙 힘든 루트라 한번 가서 도전해볼 수 있는 여력 자체가 많이 없다. 그러면 다음 기회로 또 미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좀 더 노력해보고 더 노력해보아 지금의 높이까지 다다를 수 있었지만 마지막 홀드들이 너무 힘들어서 그 목소리가 더 크고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이미 떨어지고 나면 너무 가파른 각도 탓에 줄을 잡고 원래 높이 가까이까지 가야 하는데, 나는 그런 힘은 없어서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서 애초에 떨어지기 전에 시도를 해봐야한다. 2~3초의 짧은 시간. 벽과 나밖에 없는 그 순간, 그 목소리가 나를 얼마나 좌절하게 하는지. 지난번 클라이밍에서 이 루트로 그날의 트레이닝을 마무리하며 나에게 너무 화가났다. 다음에는 꼭 다음 홀드를 시도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정도 마음이 아니라, 다음 홀드를 꼭 잡겠다는 마음으로 해야만 실질직인 진전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리드클라이밍을 하면서 나안의 목소리와 두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위기의 순간에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배우고, 이를 어떻게 개선해야할지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호흡이 얕고 가파라지는 순간 이를 의식하고 깊고 힘있는 호흡을 하며 한손, 한발에 집중을 하며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 이걸 자연에서도 느끼고 싶다. 올해 5월에 클럽에서 나갈 투어에 함께하며 이를 조금 더 잘 느껴보고 싶다.

주 3회는 해야…

월, 화, 목, 토 저녁은 내 활동의 시간이고, 수, 금, 일은 옌스 활동의 시간이다. 각자의 취미 활동 또는 친구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인데, 딱히 친구를 자주 만나지 않는 관계로 우리 모두 취미활동에 이 시간을 할애하곤 한다. 나는 주 4회, 옌스는 주 3회라니까 조금 불공평한 것 같지만, 집안대소사, 일상과 관련해 나의 멘탈로드와 육체적 로드가 모두 더 큰 관계로 옌스의 불만 없이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발레 2회, 클라이밍 2회 하던 것을 발레 1회, 클라이밍 3회로 바꿨다. 요즘은 발레보다 클라이밍에 좀 더 많은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클라이밍 실력향상에 다소 정체기가 온 것 같아 이를 극복해보고자 바꿨는데, 역시나 실력에 변화가 조금씩 느껴진다. 그간 발레와 클라이밍 모두로 느껴온 것은, 주 1회하면 크게 늘지 않고 현상유지가 되고, 주 2회하면 실력이 천천히 늘고, 주 3회하면 실력이 는다는 것이다.

클라이밍은 자기의 체중이라는 무게가 정해져 있는 것이나 가볍게 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운동이다. 따라서 상체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 그나마 발레를 통해 미약하게 존재해온 등과 코어 빼고는 상체근육이 없던 나에게 적응 시간이 꽤 오래 걸린 운동이다. 처음부터 강도를 세게 가져갈 수 없었던 이유도 조금만 자주하면 손목이나 팔꿈치 등이 아파오곤 했기 때문인데, 이제 어떤 자세로 운동을 할 때 아픈지도 알게 되었고, 체력도 꽤나 다져졌기 때문에 주3회까지는 몸이 견딜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속 하려면 꾸준한 훈련을 통해 부상 없이, 강인함을 유지해야지. 생각만 해도 너무 좋고 두근거리네. 이번 겨울은 정말이지 언제 지나갔다 싶게 거의 지나가버렸다. 클라이밍 덕분에.

En rigtig fed klatresession

I dag klatrede jeg med Hannah, min gode makker. Vi klatrede to ruter på slab-væggen, to på overhang-væggen og flere på bouldervæggen. Det van en rigtig stærk session med nogle fede oplevelser. Flere forsøg med lidt tvist hver gang førte mig til at sende et par projekter. Hvor er det sejt. Jeg er også meget glad for, at Hannah også klatrede stærk, samt at hendes sikring er blevet meget sikker, hvilket er rigt vigtigt ved lead-klatring. Det er bare mega dejligt, at vi deler en fælles passion.

Kamp mod frygt

Når man klatrer op ad en høj klatrevæg, mens man skal sikre sig undervejs ved at klippe sit reb ind i karabinhager, kommer man en gang i mellem til at tænke på det værst mulige scenarie om fald. Hvad nu hvis jeg bliver flippet rundt og rammer hovedet eller kroppen i væggen eller grebet? Hvad hvis faldet er så voldsomt og hårdt med en pendulbevægelse, at jeg får min ankel eller fod forstuvet?

Præstation ved leadklatring bliver utrolig meget påvirket af mentalitet, hvordan man håndterer frygten, som løbende trænger igennem huden. Frygten opstår typisk lige der, hvor jeg står over for det sidste klip, eller jeg skal lige klippe. Mine håndoverflader bliver våde. De sveder. Åh, nej. Nej. Nej……

Efter de kommentarer, jeg har fået fra mange andre gode klatrere, har jeg prøvet at trække vejret dybere og sige til mig selv, “Det er okay. Min makker har mig. Jeg har øvet mig med at falde. Jeg har det! Jeg kan klare det!”

Der er ikke sket noget særligt hårdt på nær små skader i ankelen i starten af min leadklatreerfaring. Den gang var min makker markant tungere end mig, og han tog mig vist nok hårdt en del gange. Men jeg klatrer nu med andre makkere, som enten er gode til sikring eller ligger i samme vægtklasse, hvilket har løst problemet. Så reelt set behøver jeg ikke at være så bange og skal bare kaste mig ud i klatring, som mine trænere gentagne gange sagde, “I skal klatre til, I falder!”

Bangebuks er jeg stadig. Av, av, av. Efterhånden er jeg alligevel blevet bedre til at håndtere frygten. Det er blot en konstant kamp mod frygten. Frygten er der nok for at beskytte mig. Men den skal ikke tage over. Jeg har det. Det skal jeg bare huske på væggen.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기

벽에서 다음 홀드까지 도대체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머리로 그릴 수 없을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날 것 그대로 강렬하게 다가온다. 일상의 작은 순간 여기저기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두려움은 너무나 미묘하게 다가와서 다른 감정과 섞여 그게 두려움인지 알아차리지조차 못하고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벽에서 느끼는 날 것의 강렬한 두려움을 통해 내가 어떻게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벽에서 떨어지는 감각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우선 떨어진다는 것은 등반완료를 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떨어질 때의 내 위치와 가장 마지막으로 클립한 볼트의 위치의 상대적 관계에 따라 낙하 후 내가 어떻게 진자운동을 하게 될지가 결정되며, 그게 벽으로 향하는 방향일 경우 발과 다리를 이용해 충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한다. 불확실성. 그게 참 싫다.

그 당시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넣고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특정 포인트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다음 홀드로 넘어가는 것, 그것이 떨어지기 위해 클라이밍 하는 것이다. 떨어지지 않고 다음 홀드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런게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빌레이어에게 나를 거기서 쉬게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다음 홀드로 넘어가기 위해 시도하기. 거기서 떨어지고 나면 다시금 그보다 아래에서 올라가야 하니 에너지가 쓰이기도 하고 정말 떨어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백업 플랜을 생각하지 않고 시도하는 것, 그게 실력을 늘린다고 한다. 즉 내 한계선을 밖으로 밀어내는 행위가 실력향상의 지름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 이게 내 클라이밍을 보여주는 단어였다. 사실 나는 오래 클라이밍을 하고 싶기 때문에 부상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그런 두려움과 회피를 키운 것 같다. 부상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낙하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훈련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자체를 피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회피가 두려움을 키우고 있었다.

이게 내 일상에서는 어떻게 작용할까로 생각이 미쳤다. 한계를 밀어내는 것. 그게 내 요즘 직장생활에서 부족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냥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계를 밀어내는 자체를 하지 않다보면 더 그게 두려워져서 자기 계발에 둔해지는 것 같다. 아마 그게 요즘의 나였던 것 같다.

두려움에 직면하고 이를 경험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것, 그것이 클라이밍에서 요즘 새로이 배운 인생의 레슨이다.

아이와 단둘이 데이트

아이와 단둘이서 하는 데이트들이 즐겁다. 아무래도 아빠도 같이 있으면 어른의 대화에 아이가 중간중간 엉뚱한 주제로 뛰어드는 것이 흔한 패턴인데, 둘만이 있으면 우리 둘만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어서 아이의 만족도가 높아져서 그렇다. 그래서 아이는 간간히 엄마랑 단둘이, 또는 아빠랑 단둘이 하는 데이트가 제일이라고 말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2킬로미터짜리 달리기를 하고 왔다. 아이들은 완주시 메달을 준다고 하니 아이는 기뻐서 참여한다고 했다. 평소 달리기를 따로 하지는 않지만 놀이와 운동으로 체력이 다져진 아이라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참여했는데, 너무나 즐겁게 달리고 왔다.

Nordhavn은 새롭게 개발된 지역인데, 이제 상당부분 완료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지역에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사생활 관점에서는 좋지는 않겠지만 그것 빼고는 살기 좋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다가 너무 가깝다는 점은 여름의 소음문제와 해수면 상승과 태풍시 침수 피해 등을 고려하면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니겠지만.

줄이 길까 싶어 아침 일찍 들러 참가자 등번호를 받아서 산책을 했는데, 도착할때까지만 해도 추적추적 제법 많이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정말 아름다운 아침 산책길을 즐길 수 있었다. 항구의 자락에서 볼 수 있던 풍력발전단지의 평화로운 모습, 정갈하게 정돈된 길 구석구석들, 바다에 설치된 수영시설, 간간히 들리는 이들의 첨벙하는 입수소리,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작은 웅성임, 혹시나 콩고물이 떨어질게 없나 해서 가까이서 걸어다니는 참새들, 해수면에 반사되어 흩어지는 금모래 같은 물결의 반짝임, 선선한 바람이 머리를 날리는 감각, 그전에 본 적 없었던 각도의 코펜하겐과 하이라인. 그 모든게 너무나 아름다웠고, 온 몸으로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뒤이어 달리기 전 행사장에 설치된 놀이시설을 조금 즐기고 나서 사람들과 같이 몸을 푸는데 그 흥겨움. 거기서 오른 텐션으로 2킬로미터를 가볍게 뛰었다. 처음부터 로케트처럼 튀어나가고 싶은 아이를 진정시키며 페이스 조절을 했는데, 중간중간 그렇게 튀어나가버린 아이들이 힘들어서 못뛰고 속상해서 울고 그런게 보였다. 즐겁게 마무리하고 돌아와 조앤더 주스 한잔으로 마무리.

전날 클라이밍 힘들게 하고 나서인지라 몸이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는 늘어져 한시간 낮잠을 잤지만, 아이에게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남은 달리기였다. 매년 계속 가자고 하는 거 봐서 이제 여러 달리기에 같이 참여해야겠다 싶었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