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예전과 다르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외국 식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치는 기본이고 비빔밥을 좋아한다거나 좋아하는 한식당이 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고 김치를 퓨전으로 활용해 메뉴에 소개하는 레스토랑과 까페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방송에서도 한국 음식을 만드는 법을 소개하기도 하고.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대사관이나 기관을 중심으로 홍보하는 부스나 이벤트가 소개되는 게 아니라 현지 미디어가 기획을 해서 소개한다는 게 있다. 또 한국 문화가 단지 K팝을 좋아하는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이너하지만 더이상 섭컬쳐가 아닌 주류문화처럼 떠올랐다는 게 있다.
이처럼 변화가 생긴 건 최근 몇년의 일인 것 같다. 덴마크에 왔던 초창기에만 해도 한류는 완전 남의 나라 이야기였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K팝 중심의 한류도 그냥 일부 십대소녀들의 팬덤 정도로 보일만한 찻잔속의 태풍이었는데 더이상은 그렇지 않다. K팝 하나로는 이처럼 한국문화가 주류의 하나로 들어서지 못했을 것 같은데, K팝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끈 한국영화나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 한강 작가의 소설을 포함해 다양한 측면에서 한국의 위상을 올릴만한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변화를 주변 동료들도 인지하고 한국문화가 주류로 편입된 것 같다는 코멘트를 하곤 한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소설이 덴마크어로 출간되었고, 주요 일간지인 Berligske에서 이에 대한 좋은 평론도 실었다. 아마 이번 주말에 시부모님이 오시면 이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싶다. 한국사람이 늘고,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늘면 이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홍보대사가 되기 때문에 이런 기사가 실리면 주변에 더욱 한국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한국이 잘 알려져야 나에게 좋다거나 한국의 발전이 내 발전이고 하는 등의 나의 정체성에 국가를 일치시키는 감정은 없다. 다만 우리나라가 널리 알려지면 내 배경에 대해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정도 내 배경을 타인이 자연스럽게 이해해 아주 오래된 정보를 배경으로 질문을 해오거나 하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하나가 앞으로 한국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할만한 좋은 동기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고.
한국 소설을 덴마크어로 읽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한강작가의 소설도 번역되었지만 이를 읽어보진 않았는데, 이번 소설을 계기로 한국 소설도 한번 읽어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 Pigen fra det store hvide skib이라는 소설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유틀란디아 병원선 내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읽으며 과거의 한국을 다른 나라 사람의 시선에서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은 그런 건 아니지만 한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을 덴마크어로 읽는 것도 즐거운 재미를 선사할 것 같은 기대가 있다.
좋아하던 텔레비전 시리즈들이 시즌을 거듭하며 지루해지고 좋아하던 음악들도 계속 반복해서 듣다보니 질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때마침 눈과 귀에 띄는 것들이 생겼다.
첫째로는 DR에서 새로이 시작한 드라마 시리즈인 Carmen Curlers라고 머리에 고정해두고 기다리면 컬이 생기는 고데기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악셀이라는 사람을 그렸다.
딱히 꼬집어 이야기 어려운데 좀 새로운 방식으로 영상을 담았다. 중간중간 자기 세계에 몰입하는 인물들의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 환타지스러운 영상기법이 DR에서 평소에 볼 수 있던 시대극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호기심이 더 가는 극이라고 할까?
둘째로는 Shu-bi-dua의 음악이다. 1970~80년대에 가장 전성기를 구가했던 팝락그룹인데, 사실 그 중 리드싱어였던 Michael Bundesen의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는 게 보다 정확하겠다. 덴마크 어린이 노래는 어른들이 어른의 목소리로 부른 게 많은데 특히 60~80년대 음반 중에 좋은 게 진짜 많다. 그 중 한 노래가 매우 마음에 들어서 찾아봤더니 말로 엄청 많이 들어봤던 Shu-bi-dua의 리드싱어였던 것. 애들이 들으면 웃긴게 아닌 그냥 노래인데, 어른이 들으면 무슨 저런 걸로 노래를 만드나 싶어 웃음을 터지게 만드는 가사라던가, 아니면 손발가락이 오그라들만큼 찌질함을 너무 편안한 목소리로 불러서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속이 오글거리는 가사라던가 하는게 귀를 즐겁게 한다. 내 귀를 처음 사로잡은 노래는 Røde hunde. 이는 질병인 풍진을 뜻한다. 예비임산부들이 예방접종을 맞는 바로 그 풍진.
나는 풍진에 걸렸어. 나는 꽤나 아파. 내가 너무 불쌍해 라는 가사로 시작해서 중간에 열이 얼마나 나고 진통제랑 페니실린을 먹고 있다는 내용 등 가사를 들어보면 무슨 이런 걸 노래로 부르나 싶은데, 목소리만 들으면 그런 내용일지 모르겠는 노래라는 데에서 컨트라스트가 두드러져 재미있게 들었다.
옌스가 슈비두아를 듣고 마음에 든다면 정말 덴마크인 다된거라 하더라. 사실 한 삼분절은 덴마크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긴 하다.
코로나 2차 파동이 불고 있음에도 10명 이내의 실내체육활동은 허용이 되는 덕에 발레를 계속 할 수 있었다. 클래스 두개를 듣고 있는데 하나는 학생 수가 9명이라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13명이라 9명씩 조편성을 해 돌려야 해서 조금 영향을 받았다. 그래도 큰 틀에서 봤을 때 거의 영향 없이 발레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발레가 이미 내 삶을 이끄는 하나의 축이 되어버린 터라 이게 빠지면 체력, 정신적으로 모두 영향을 받는다.
요즘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다리를 높이 들 때 턴아웃 정확히 유지하기, 바닥을 최대한 사용하기, 상체와 하체를 유기적으로 사용하기, 아라베스크할 때 상체가 틀어지는 것 방지하기, 피루엣 할 때 잘 통제된 움직임으로 흔들림없이 착지하기 등이 있다.
예전에 옌스가 자기도 나 발레하는 것 보고 싶다고 하면 보여줄만한 게 없었는데, 이제는 센터에서 추는 것들도 나름 길어지고, 내가 춤추는 것도 춤다워져서 보여줄 거리도 생겼다. 2018년부터 찌워온 살 9킬로그램도 500그램 남기고 다 덜어내고 등 근육도 많이 길렀고, 출산과 함께 늘어졌던 뱃가죽도 완전하진 않지만 코어근육의 강화에 힘잆어 많이 원상태로 돌아왔더니 춤의 선도 보기 좋아졌다.
어제 저녁에 선생님이 몇가지 팁을 주신 게 있어서 집에서 쉬는 시간 틈틈이 연습을 해보다가 처음으로 5번 피루엣을 매우 절제된 동작으로 깨끗하게 해냈다. 요즘 느는게 눈으로 보여서 그런지 선생님이 동작을 세심하게 잡아준다. 이런 기회를 제대로 포착하고자 집에서 스트레칭, 발운동, 근력 트레이닝에 조금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면 창틀에 비스듬히 45도로 기대서 팔굽혀펴기도 틈틈히 서른번씩 하고 데미포인트에서 풀포인트로 서는 데 필요한 발 근력도 키우고자 여러 종류의 발 운동도 하고 있다. 덕분에 이제는 팔굽혀펴기를 제대로 해도 열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일할 때도 바른자세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쉰 달리기도 좀 하면서 점프 트레이닝도 좀 해야할 것 같다. 그래야 큰 도약 점프에서도 스테미나 부족으로 헉헉거리지 않고 가볍고 탄력있게 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선생님에게 이메일로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내 소중한 발레를 계속 아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챌린지를 주는 선생님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 벅찬 나머지 꼭 표현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라.
친교는 역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일까? 발레를 통해 일주일에 한두번씩 꾸준히 만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부터 그들과 사소한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중 한명과는 집에 가는 길을 함께 하면서 친분이 쌓이기 시작했다. 친구가 모자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나와 같이 열정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다. 아무래도 내 발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발레를 하지 않는 다른 친구들이 진정으로 공감해주긴 어려울 것이지 않는가. 발레는 건강 뿐 아니라 나에게 정말 여러가지를 주는 것 같다.
2012년 봄에서 여름사이 어딘가였던 것 같다. 발레를 처음 시작한 게. 어느 학원에서 시작해야할 지 감이 안서서 당시 코트라 다니던 감각으로 우선 발레학원협회부터 찾아본게 시작이었다. 협회에 회원학원 리스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내 예상대로 그런 리스트가 있었고, 그 리스트의 무수한 페이지 중 첫 페이지에 국립발레단이 있었던 게 발레와의 첫 인연이었다. 국립발레단 아카데미에 성인취미반이 있었는데, 마침 코트라와 그리 멀지도 않았고, 당시 업무로드가 심각하지 않아 야근에 대한 압박이 크지 않은 부서에 있다는 것도 다 잘 맞아 떨어져서 초보로서 아주 좋은 곳에서 발레를 시작할 수 있었다.
스트레칭은 괴로웠지만 수업을 끝내고 나면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신경 쓸 게 많은 동작들과 함께 온 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는 강한 운동수준이 버무려져서 복잡한 머릿속은 깨끗이 비워지고 몸은 한껏 달아올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로 충전된 상태.
주중 평일 2회 한시간 반씩 참석하던 수업이었는데, 주말 클래스에도 신청을 하며 주 4회가 되고, 중급반 참석도 허락받게 되며 평일에는 세시간씩 클래스를 들을만큼 몰입을 했더니 한달에 1킬로그램씩 빠지면서 한국 귀국 후 베이킹으로 찌운 살을 다 떨어냈더랬다. 덴마크에 와서 딱 나에게 맞는 수업을 찾기가 어려워 중간중간 수업을 다녔다 안다녔다 하기도 했지만 임신 후기 및 출산 후를 포함한 2년반 정도의 휴식기를 제외하면 손에서 발레를 완전히 놓은 적은 없었다. 그렇게 2020년 지금까지 해온 발레. 나에게 이렇게 오랜 기간 열정을 투자해온 일은 없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집에서 이래저래 연습을 해보고 배울 게 너무 많지만, 예전보다 테크닉적으로 훨씬 많이 늘고 이제 조금 춤을 춤답게 출 수 있어서 훨씬 더 즐겁다. 스트레칭도 예전처럼 괴롭지 않고 달아오른 몸을 약간 진정시키며 몸을 가다듬는다는 느낌에 시원하고 좋다. 상체와 하체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느끼면서 몸의 근육이 눌린 스프링마냥 장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꼭 튕겨나갈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는 것도 너무 좋다. 몸과 표정으로 그 긴장감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쾌감으로 다가오고, 춤을 추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내 무대의 우아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에서도 설레인다. 높고 딱딱한 토슈즈를 신고 움직이다보면 물집도 생기고, 물집이 생겼음을 알기도 전에 이미 터져있고 하는 통증도 있지만, 사실 그걸 알기도 어려울 만큼 동작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게 직업이라면 다른 일이겠지만, 취미로서 접근하는 나에게 발레란 정말 아름다운 열정의 대상일 뿐이다. 끊임없이 추구해가는 그런 대상.
다음 시즌부터는 고급반에 등록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콤비네이션도 많이 길지만,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이제 거기 등록할 예정이다. 요일이 내가 원하는 타이밍은 아니지만, 이번주 시즌 마지막 수업을 대타로 뛴 분이 고급반 담당 선생님이 될 분인데, 수업이 너무 즐거웠고 몸 뿐 아니라 두뇌적으로도 챌린징해서 희열이 느껴졌다. 이분이랑 다음주 월, 화, 수요일에 썸머 캠프 수업도 함께 할 예정인데 너무 기다려진다. 이제 주말만 지나면 바로네. 아…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으로 발레클래스에 가지 못하는 건 정말 슬프지만 그나마 여기저기서 무료 온라인 발레 클래스가 범람하는 덕에 생존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발레를 시작하다보니 잘못된 자세를 취하면 금방 몸의 이곳저곳에서 경고의 신호를 보내온다. 덕분에 몸속 근육과 관절의 구석구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몸을 비자연스러운 형태로 사용하는 발레이기에 잘못 사용하면 금방 문제로 돌아오기 때문에 몸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젊어서는 그냥 살았지 굳이 누가 내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움직이겠는가. 발레를 시작한 때만해도 31살이었으니 여기 저기 조금 문제가 미미하게 생겨도 그러려니 넘기고 말고 했는데 이게 누적되기도 하고 나이도 더 들어 정말 이제 몇달 내 마흔이 되는 시점이 되니 미미한 문제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문제가 금방 커질 수 있으니까.
요즘처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연습 동영상, 발레 클래스 등과 넘치디 넘치는 블로그 등이 아니었으면 일련의 자세교정이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상하, 좌우, 앞뒤로 틀어진 골반을 교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치마나 바지도 안돌아가고 바 없이 파세 발란스를 잡고 몇초 서있는 게 양발 모두로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제 선생님들이 여러번 말씀하셨던 그 느낌이 뭔지도 감을 잡았다. 코로날 수업에 못가는 건 참 안타깝지만 또 그게 계기가 되어 미묘한 교정들도 하고, 턴아웃 근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기간이 된 건 또 나쁘지 않다.
이 코로나 락다운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빨리 끝나서 다시 발레를 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오랫동안 잘못 쓰고 있던 골반. 얼마전 한 다리로 섰을 때 수평이 깨지던 골반의 균형을 수정보며 여러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남아있었다. 턴을 할 때 자꾸 등이 뒤로 넘어가려는 것이나, 알라세꽁으로 다리를 들 때 90도 이상으로 다리를 들려할 때 고관절이 아픈 문제 등. 균형골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앞뒤모양을 기준으로 한 균형골반이 어디인지에 대한 걸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던 중 릴드당스라는 발레 스튜디오 페이지를 알게 되고 그 동영상을 보면서 그간 선생님들에게 들어왔던 여러가지 코멘트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파쎄 를르베로 서는 것도 쉬워지고 알라세꽁으로 데벨로페를 하는 것도 좋아졌다. 물론 그 동영상만은 아니고 발레 클레스를 두군데에서 들으면서 최근에 많은 교정을 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이 균형골반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수평골반 문제 해결과 합쳐지면서 너무 많은 동작이 쉬워졌다.
등이 뒤로 넘어가는 문제가 골반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니 그간 등 안뒤집어지게 하려고 노력하던 게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게 해결되니 피루엣이 쉬워지고 피케턴이나 스트뉴턴 등도 다 쉬워졌다. 또한 체중의 중심을 발끝에 싣는 것도 잘 안되다가 해결이 되면서 센터에서 몸의 방향을 돌리거나 뛰는 것도 안정적이 되었다.
코어 안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게 어떻게 안정되어야 하는 지를 발레 시작한지 순수하게 춤을 춘 만 4년이란 시간 동안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다는 게 놀랍다. 아무튼 이제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이제 토슈즈도 곧 신을 것인데 말이다.
발레는 정말이지 중독성이 심한 취미임이 분명하다. 쉰 기간을 포함해 7년을 한 취미인데 지금도 이렇게나 발레 가는 날이 기다려지고 발레를 한 날이면 러너스 하이와 같은 상태를 경험할 수 있고 밤에는 잠이 들기 어려울 정도이다. 만으로 33살이 되면서 늦게 시작한 발레이지만 그때라도 시작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 인생의 취미로 장식될 발레를 이제나마 접했으니 말이다.
간혹 한 음악에 꽂히면 귀에 인이 박일 때까지 반복해 듣곤 한다. 어두워지는 겨울날, 취직을 서둘러 하고 싶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우울감을 느낄 때였다. 어차피 할 크리스마스 장식은 일찍 할 수록 우울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는 연구결과를 읽고 크리스마스 장식도 서둘러 하고 캐롤도 일찌감치 찾아 들었다. 캐롤은 정말이지 내 기분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후에 취직하게 된 경쟁소비자청에서 마침 1차 면접도 합격한 상태였는데 프로젝트를 마친 COWI에 피드백 미팅을 하러 가는 길에 스포티파이의 캐롤을 들으며 흥겨워하다가 마음에 쏙 드는 노래를 들었다. Ariana Grande의 Snow in California. 이유는 모르겠는데 기운을 내게 해주더라. 가사가 피식 웃음을 흘리게 할 그런 귀여운 것이라 그랬는지 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꾸 웃음이 흘러나오는 따뜻한 노래라 그런지 내 기분도 좋아지길래 2차 면접보러 가는 날도 이 노래를 계속 들으며 갔다. 웃음이 나오다 보면 행복한 기분이 들고 그러면 자신감도 생기고 편안함도 느껴지니 2차 면접도 잘 볼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실제 그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노래를 듣는데, 아마 올해가 다 갈 때까진 주구장창 이 노래를 들을 것 같다.
모듈 2였나. Svantes Lykkelige Dag라는 시를 수업 중에 접한 것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율에 대해 배우며 어떤 상황을 묘사한 것인지 해석하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만 기억난다. 많은 덴마크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 시에 대해 그 때 가졌던 인상은, 인생의 소소한 기쁨에 즐거워하는 덴마크인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Nørreport역에서 환승을 하다가 바로 아래의 사진과 함께 적힌 이 시의 제목과 마주쳤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Anders W. Berthelsen이 주연을 맡는 것을 봐서 더 눈에 띄었다. (이 배우는 덴마크에서 시작된 dogma 95 – 교리에 가까운 원칙과 순결선언문을 기반으로 한 특별한 영화제작방식 – 영화 (Festen, Mifunes Sidste Sang, Itanliensk for Begyndere 등) 에 많이 출연했고, Krønikken을 포함해 다수의 TV 시리즈에도 출연했다.) 연극!
덴마크에서 본 첫번째 연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 덴마크어로 된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읽지않고 발레 공연을 예매한 줄 알았던 것이 하필이면 연극이었다니. 덴마크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고, 덴마크어라고는 인사 외에는 아는 게 없던 시기였다. 발레를 먼저 고르고 2013-2014 시즌을 선택한 줄 알았더니, 그 시즌이 발레의 하위카테고리가 아니었다. 그냥 별개의 카테고리였는데, 내 멋대로 한국 웹사이트 방식에 익숙한 사고방식을 여기서 그대로 적용해 그렇게 이해한 것 뿐이었다. ‘악령을 발레로 해석하다니! 정말 흥미진진하겠는걸?’ 이라는 생각으로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예매한 것이 실수였다.
그걸 뒤늦게 알고나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갔는데, 그건 내 말도 안되는 착각이었음이 극 시작 후 10분만에 드러났다. 우선 원작을 그대로 상영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적 배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70년대를 풍미하던 히피즘을 배경으로 다 바뀌었는데, 음악도 파격적이고, 덴마크 극 문화를 전혀 모르던 내게는 무대 장치부터 너무 생경했다. 스토리를 모르는 것도 그렇지만, 극의 진행으로 미루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는 것 조차 힘들만큼 어려웠다. 등장인물은 또 어찌나 많은지. 러시아문학의 특성을 고려해봐도 그렇긴 하지만, 난 그 난해함에 압도되어버렸다.
결국 1시간 30분동안 앉아있다가 인터미션 때 도망을 치고 말았다. 더이상 남은 한시간 반을 그런 멍한 정신상태로 앉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랬던 나의 덴마크 첫 연극 감상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더랬는데, 또 연극이라니! 그런데 자막이 나온단다. 영어, 덴마크어 그리고 아랍어로. 남편은 연극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혹시 가겠냐고 물어보니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가주겠다고 했다. 기대한 바 그대로여서, 우선은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한번 가보자고 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승낙을 했다.
La Petanque에 들러 간단히 걀레뜨로 식사를 하고 호수를 건너 Nørrebro로 향했다. Nørrebro의 메인 거리인 Nørrebrogade만 보고 이 지역을 힙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약간 지저분한 지역으로 알고 있던 그녀는 이 메인거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퍼진 작은 길들에 Hyggelig한 가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나와 옌스의 생활반경에서 약간 벗어나있어 친구들 만나는 거 아니면 안가게 되는 이 곳. 오래간만에 목요일 (작은 금요일이라고도 불리는…) 에 나가보니 그 릴렉스한 분위기에 나도 취했다.
극장 외관
8시에 시작하는 연극에 맞춰 극장에 들어서니 안이 정말 아늑했다. 연령대가 높은 관객이 주를 이루고 있는 듯했으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아마 이 시를 발간되고, 사랑을 받았던 시기가 70년대라 주 관객층도 이 시를 즐겼던 당시의 젊은 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극장 내부 휴게공간
객석
연극이 시작되었다. 어라? 그런데 자막은? 자막이 나올만한 구석도 없는데다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자막을 볼 수 있는 앱이 따로 있단다. 그냥 자막이 나온다는 한 줄을 보고 그 아래 부연 설명을 잘 안읽은게 함정이었다.)
아뿔사. 나는 그렇다쳐도 내 친구는 어떻게 하나. 살면서 연극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이게 3번째 정도 되는 거라고 했는데, 나의 덴마크 첫 연극과 같은 경험을 안겨주게 되나? 그녀도 덴마크어를 배우고 있으니 이해할 수 있을까? 연극이 시작되며 내가 이해되는 양을 보아하니 그녀에겐 조금 더 어려울 텐데 과연 괜찮을까? 등등…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이 빠르게 교차했다.
그나마 그녀는 연극에 대해 읽어보고 왔고, 나는 아무런 배경지식을 쌓고 오지 않아서 비슷하게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연극은 Benny Andersen이 이 시집을 쓰며 마주한 자기 자신과는 다른, 자기가 닮고 싶고, 지향하고 싶은 인격, 마음 속의 갈등, 이런 것들을 가상의 친구인 Svante로 만들어냈던 것, 그리고 이 Svante와 자기의 진정한 모습이 만나 화해를 하며 온전한 자신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그린 것이었다. 결국 Svantes Lykkelige Dag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그렸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1막이 끝날 때까지 Svante가 본인이 아니야? 그럼 누구지? 하면서 많은 혼란속에 보다가 인터미션에서 프로그램을 조금 읽어보고나니 대충 그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고, 머리속의 많은 혼란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았다. 2막이 시작되며 주인공이 Svante가 자기 속의 다른, 자기가 되고 싶어하는 지향속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게 융해되어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게 보다 명확해졌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한 Svantes Lykkelige Dag 노래가 얼마나 좋던지. 여주인공인 Lise Baastrup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커튼콜 장면
우리 말이었으면 보다 쉬웠겠지만, 한 사람의 내면 속 분화된 인격을 여러 인물로 상징적으로 분화시켜 극화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도 조금 난해했었을 지도 모른다. 연극의 묘미란 극으로 풀어낸 상징을 찾아내는 데 있으니, 그 소기의 목적을 잘 달성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2막부터 뇌에 과부하가 걸려 집중력을 상실했다는 그녀에게 힘든 경험을 안겨준 것 뿐이려나 하고 마음이 다소 무거웠으나, 집에 돌아와 즐거웠다는 메세지를 보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좋은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다가, 앞으로 여러가지 문화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를 찾은 것도 기뻤다.
Svantes Lykkelige Dag의 작가와 가수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라이브로 공연했던 영상, 그리고 그 시를 아래에 공유한다.
Svantes Lykkelige Dag
Se, hvilken morgenstund! Solen er rød og rund. Nina er gået i bad. Jeg’ spiser ostemad.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lomsterne blomstrer op. Der går en edderkop. Fuglene flyver i flok når de er mange nok.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Græsset er grønt og vådt, Bierne har det godt. Lungerne frådser i luft. Åh, hvilken snerleduft! Glæd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Sang under brusebad. Hun må vist være glad. Himlen er temmelig blå. Det ka jeg godt forstå.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Nu kommer Nina ud, nøgen, med fugtig hud, kysser mig kærligt og går ind for at re’ sit hår.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enny Andersen 이 쓴 시는 1972년에 출간된 ‘스반테의 노래’ 시집에 실렸으며, 가수 Povl Dissing이 노래를 부르고 Benny Andersen이 반주자가 되어 1973년 LP판으로 발매되었다.
사족. Povl Dissing이라는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른다기 보다는 그만의 매력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은데, 사형수의 형집행 전 25분을 그린 아래의 노래를 보면 그가 얼마나 독특한 가수인 지 알 수 있다. 상황 묘사 후 아직 25분이 남았다, 아직 24분이 남았다, …, 아직 1분이 남았다, 하고 25번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상황 묘사를 마치고 음악이 멈추며 형이 집행되었음을 암시한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며 갈 수록 절박해져가는 그의 목소리에서 정말 형 집행을 앞두고 노래부르는 사형수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제 저녁, 간만에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다녀왔다. Daniel Richter라는 독일 작가의 회화전이 열리는데, 전시 안내 우편에 실린 작품의 색에 매료되어 날 좋을 때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평일엔 저녁 10시까지 열기에 마침 외곽으로 이사를 갈 친구와 시간이 맞아 수업 끝나고 다녀왔다.
형광색과 비형광색을 절묘하게 섞은 강렬한 이미지의 그림이 많았다. 아노미적인 상황을 포착한 그림이 많았는데, 끔찍할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색과 사람들의 기묘한 표정 등으로 인해 보고 피식 웃게되는 경우가 있었다. 난민 보트가 밤바다위에서 표류하는 장면이나 폭동이 난 도시가 불타고 있는 장면 등을 담은 작품이 바로 그랬다.
덴마크는 미술관 뿐 아니라 많은 문화시설이 연간회원제를 운영하는데, 루이지애나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1+1 멤버십을 가입할 경우 혼자 세번 가는 것에 못미치는 가격에 나 이외에 한 명을 동반해 연간 언제든지 갈 수 있고, 추가 2명까지는 50% 할인된 가격으로 동반할 수 있어서 손님 모시고 갈 때 참 좋다. 또한 안에서 먹고, 마시고, 쓰는 모든 것을 10% 할인된 회원가격에 살 수 있다. 뮤지엄 샵에서 살 수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백화점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이기에, 같은 것을 산다면 미술관에서 사는 게 이득이다. 일년에 대여섯번은 가는 나에게는 이 멤버십이 최고이다.
어제는 덕분에 겨울에 쓸 베레모와 화려한 반지도 샀다. (사실 마음에 들어도 비쌌으면 안샀는데, 정말 놀랍게도 다 싸서 사버렸다.) 같이 간 친구 왈,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하얀 베레모를 쓰고 나타나서 놀랐다고 하는데, 난 다른 모자모다 베레보가 제일 잘 어울려서 이것만 쓰고 다닌다 하니 잘 어울린단다.
스웨덴이 바로 바다 건너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보인다. 해질녘 은빛으로 변한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명확히 나눠주는 건 스웨덴 땅이다. 산이 없어 얇은 띠처럼 보이는 땅이 하늘과 바다를 둘로 나눠주는데 그 풍경이 참 아름답다. 임신만 안했어도 와인 한 잔 사들고 그 바다를 보며 마시는 건데, 아쉽게도 임신을 한 탓에 그럴 수가 없다. 그런 여유는 내년 이후로 기약하며…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나에겐 휴식과 같은 공간이다. 혼자 가도, 여럿이 가도 좋고, 가면 마음이 차분하고 풍요로워진다. 특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둑어둑한 플랫폼에서 기차를 잡아 타고 돌아오는 길은 어쩐지 여행을 다니는 기분마저 자아낸다.
배가 눈에 띄게 커지고 있고, 그 무게도 이제 조금씩 느껴지지만, 임신 기간 중 몸이 제일 가벼울 기간이라고 하니 이 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며 혼자의 여유를 즐기련다. 내년 1월만 지나면 이런 자유와도 작별이니까.
오늘은 아침 잠시 시내에 다녀오는 길에 Østerbro 길을 자전거로 달렸다. 깔끔하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라 좋아하는 곳. 해는 여전히 쨍하지만 간만에 바람이 많이 부는 오늘, 옷을 노랗게 갈아입기 시작한 나무들이 솨아…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게 어찌나 상쾌하던지. Hyggeligt한 그 길의 정취와 가을 나무가 어우러져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덴마크의 가을은 좀 우울하고 축축하지만, 오늘은 손에 꼽는 아름다운 가을날씨를 보인 것 같다.
마침 금요일이라 마음도 가벼운데 기분이 참 좋구나. 추석은 멀리 있지만, 그래도 외롭지 않은 그런 좋은 날씨다.
2013년 7월 21일 덴마크에 도착했다. 늦여름부터 시작한 덴마크 생활을 시작부터 재미있게 열어주었던 것이 바로 이 야외 오페라 극장에서 본 나비부인이었다. 매년 8월에 한편을 세번에 걸쳐 상연하는 이 오페라 극장은 Hedehusene라는 곳에 위치한 Opera Hedeland이다. (홈페이지: http://www.operahedeland.dk/)
2013년 나비부인, 2014년 일 트로바토레, 2015년 코시 판 투티, 2016년 라 소남불라까지. 총 네편의 오페라를 봐왔는데, 이제 이는 옌스와 나의 연례가족행사가 되었다. 시작은 Expat 모임의 문화행사였는데, 야외오페라라고 해서 찾아보니 무대의 스케일이나 그 지형이 참 마음에 들어서 냉큼 참석하겠다고 했다. 피크닉을 준비해오라고 해서 이런 저런 먹을 것을 싸갖고 갔는데 맑은 여름 날 저녁 와인과 함께 많은 사람과 간단한 요기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게 어찌나 좋던지. 바로 그 다음 해부터 옌스를 만나 세번의 오페라를 함께 했다.
시부모님이 오페라를 좋아하셔서 따로 오페라 투어도 다니고 하시는 터라, 작년에는 시부모님을 초대해서 함께 관람했다. 역시나 좋아하시며 그 다음해엔 두분이 우리를 초대하시겠다 하여 서로 초대를 돌아가며 하는 시부모님과 함께 하는 연례행사로 확대가 되었다. 거긴 차 없이 가기 어려운 곳인데,회사를 관두고 작년에 차를 팔아 안그래도 차를 렌트해야하나 어째야 하나 했었다. 시부모님이 함께 가시게 되면서 그런 문제도 해결되고, 이런 건 사람이 많을 수록 더 좋으니 말이다.
예전엔 자막이 덴마크어로 나오니 미리 오페라 스크립트를 읽어가는 준비를 좀 꼼꼼히 해가야 했는데, 이제는 대충의 줄거리만 훑어보고 가서 자막을 보면 되니 외국어 오페라라 해서 부담느낄 것도 없다. 또한 해가 갈 수록 피크닉 준비 요령과 함께 해가 지고 난 시간의 추위를 해결하는 방법도 요령이 늘어 관람의 편의성도 크게 늘었다.
호수 및 인근 초원, 무대 이외의 원형극장 시설 (관람석)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야외라는 것을 이용해 헬리콥터나 말, 자동차 등 실내 무대에서는 동원할 수 없는 것들을 신선한 형태로 이용하는게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올해는 과거의 농촌 환경을 진흙과 물웅덩이를 활용해 조성하고, 오페라 오케스트라 룸 지붕 또한 무대로 활용해서 이렇게도 무대를 확장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또 자아냈다. 여름이라도 꽤 쌀쌀한 날이었는데 배우들이 춥지 않나 했는데, 나중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니 그 안에 wet-suit을 입어 추위에 대비를 했었다.
내년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중의 하나인 라보헴을 상연한다는데, 그땐 애가 너무 어릴 타이밍이라 한 해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쉬워라. 혹시 가능하다면 시부모님께는 애를 맡기고 나와 옌스만이라도 다녀오든가 하는 방법도 생각해봐야겠다.
상연 기간에 덴마크에 있고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