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직장 첫지원 완료!

결국 한군데는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남편 찬스를 써서 오늘 덴마크어 교정을 최종적으로 받아서 지원서와 이력서, 성적증명서를 보냈다. 마침 취업박람회에서 무료로 찍은 프로필사진도 길면 2주까지 걸릴 수 있다더니 오늘 도착해서 그걸로 바꿔 첨부했다. 프로필 사진으로 찍은 것 중 처음으로 마음에 든 사진이다.

무료 프로필 사진에 포샵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여기는 애초에 포샵을 잘 하지도 않는다. 이 행사에 두번째 가보는 거라 사진을 어떻게 찍힐 지 알고 있었고, 덴마크 이력서 사진 유형도 익힌 덕에 이번엔 화장을 안하고 (플래시 터지면 안보일 정도로 흐린 눈썹만 그리고) 활짝 웃고 자연스럽게 찍었는데 잘 나왔다.

지원서를 우선은 영어로 쓰고 덴마크어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덴마크어로 사고하고 바로 작성하기에는 내 덴마크어가 너무 딸려서 필요한 컨텐츠를 충분히 생산할 수 없어서이다. 회사 다닐때만 해도 영어로 보고서를 쓰는 게 꽤나 스트레스였는데, 이제는 별 어려움이 없어져서 대학원 공부의 힘을 느꼈다. 물론 보고서를 계속 썼긴 해도 그 오랜 세월 잘 안늘던 영어가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늘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보고서 쓰면서 자료 인용할 일이 엄청 많아서 그랬던 거 같다는 생각이다. paraphrasing을 하면서도 군더더기 없게 효율적으로 글쓰기를 해야해서 골머리를 썩었던 것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었을 줄이야. 거기에 덴마크어 수업에서 작문을 엄청 시키는 것이 그래도 도움이 된 덕에 이를 번역해서 초안을 잘 만들 수 있었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으면 안되었지만, 그래도 나의 첫 덴마크어 이력서에 지원서라니. 뿌듯하다.

요건에 덴마크어와 영어 모두 fluent해야 된다고 되어있었으니, 사실 나는 요건이 안된다. 이력서에도 중상급이라고 명기해두었고, 이는 면접에 가게 된다면 확연히 드러날 사실이다. 그러니 떨어지는 것을 기대하고 지원한 것이지만, 그래도 혹여나 1차 면접에 가기라도 한다면 엄청 큰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최선을 다해 썼다. 떨어져도 이 경험 자체가 소중하니 후회는 없을 거다.

 

조금 천천히 가기로 했다.

애가 아픈 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가 아플때마다 시부모님께 도움을 부탁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애의 병치레에 따라 나의 논문 스케줄은 심하게 흔들린다. 덴마크도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는 공채 비슷한게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엄청 적은 수고, 1년에 한번 있어서 여름에 졸업하는 학생이 중심 대상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단 있는게 나으니까. 마침 마음에 드는 회사도 있고 해서 지원하려고 이력서도 준비하고 취업박람회 가서 면담도 하고 했는데, 막상 논문이 너무 흔들려서 제 때 여름에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덴마크어 어학원이 코펜하겐시(단지 코펜하겐시만은 아닐거다. 곧 다른 시 어학원들도 영향을 받을 듯하다.) 덴마크어 교육 예산 절감 계획에 따라 교육 기관 선정이 입찰제로 바뀌었다. 유명한 어학원들은 학생 1인당 교육비용을 11000크로나 정도로 잡았는데 (지금보다 낮은 수준) 8000크로나 정도로 잡아 제출한 악명 높은 교육기관 2개가 낙찰을 받고 나머지는 다 떨어졌단다. 따라서 8월부터 이 학원들은 무료 덴마크어 교육을 다 문닫는다. 원래 8월부터는 무료 교육도 시스템이 바뀌면서 모듈당 2000크로나를 내는 것으로 바뀐다고 해서, 모듈 6은 돈 내고 들어야겠구나 했었다. (모듈 3까지 돈내고 다녀봐서 아는데, 진짜 유료는 모듈당 하부 모듈이 2개가 있어서 10000크로나가 넘는다.  모듈 5는 하부 모듈이 4개라 20000크로나가 넘는다.) 그런데 이 또한 이상한 학원으로 다녀야하는 거라면 굳이 모듈 6을 듣고 싶지 않다. 모듈 5 시험은 이미 모의고사를 토대로 본 결과 지금 쳐도 10점 정도 받는 거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모듈 6을 수강할 자격 획득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이 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덴마크어 수업을 조금은 설렁설렁 들어도 될것이고 숙제도 조금은 느슨하게 해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회사 지원은 졸업 뒤로 미루기로 했다. 논문은 우선은 8월까지 쓰는 걸로 목표를 하되, 미루는 것도 염두에 두고 쓰기로 했다. 교수님과 어떤 consequence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한번 상의해보고, 현실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8월까지 중간에 애 아플 것도 감안해서 다 쓸 수 있을 것 같은지 교수님의 생각도 들어봐야겠다.

덴마크어도 조금 루스하게 하고, 취업은 손에서 놓고, 논문에 최우선을 다해 하되, 졸업을 미룰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둔다면 지금의 높아진 스트레스 레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뭐든 낭비는 없는거니까, 지금까지 다른 것에 투자한 시간자원은 어떤 형태로든 나중에 도움을 줄 거다. 나중에 다시 해야하는 일이기도 하고.

남편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남편이 8월에 내가 빨리 졸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고 믿었고, 남편은 그걸 미루면 나에게 부담이 되는 consequence가 학제상으로 있을까봐 그랬던거지, 빨리 졸업해서 빨리 취업하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그걸로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한다. 내가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하니, 나보고 더이상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남편이 말하더라. 당신 잘못이 아니라 내가 주어진 데드라인 안에 이를 달성을 못할 것 같은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당신은 내가 8월에 끝내기를 기대하니까 힘든 거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전혀 그런 기대는 안하고 있다면서, 서로 오해하고 있었단다.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애가 아플 때 애 아픈 거 걱정보다도 내 일이 밀리는 걸 걱정하게 되는 게 참 엄마로서 죄책감이 들곤 했는데, 이런 걱정은 내려두고 조금 더 흐름에 몸을 내맡겨보려한다. 왜 갑자기 조급해졌었는지…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조급증이 나도 모르는 새 싹을 다시 틔우고 있었는가보다. 좀 내려놓고 천천히 차근차근 밟아가야지. 이 프로세스를 즐기면서…

논문의 첫페이지 작성 시작, 그리고 덴마크어 선생님

아직 분석은 시작도 못했지만, 이제서나마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읽기는 읽어도 막상 쓰기까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나의 이런 완벽주의를 간파한 교수님이 완벽할 필요가 없으니까 우선 써내려가기 시작하라고 해서 그 첫발을 오늘 내딛었다. 그전에 옌스가 ‘논문은 우선 하루에 한장이라도 정해놓은 분량을 우겨넣든 어쨌든 쓰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총 8~90장 쓴다고 생각하면 매일 한장씩 쓸 때 꼬박 세달 걸리는 분량이다. 물론 모델을 만들고 돌리느라 한장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을 수 있지만, 또 방법론이나 모델을 돌린 결과를 쓰는 건 이미 고민을 많이 해 놓은 것이거나 드러난 결과를 요약하는 것일 뿐이기에 하루에 몇장씩도 쓸 수 있으니 못쓴 날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너무 바쁘다며 덴마크어를 중단할까 징징댔던 것을 후회할만큼 논문 작성에 덴마크어가 많이 필요하다. 덴마크의 현상을 주제로 잡은 이상 작게는 데이터의 변수명부터 크게는 정부 발표자료까지 많은 자료가 덴마크어로 되어있고, 이걸 구글번역기와 사전으로 들입다 번역해야 했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사전의 이용은 피할 수 없지만 꾸준히 신문으로 긴 텍스트를 읽는 습관을 들인 덕분에 여기저기 흩어진 많은 자료를 스킴해서 논문에 녹여넣는 게 크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덴마크어 수업 모듈 5는 이번이 세번째다. 첫번째엔 나쁘지 않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학업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바빠서 아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숙제를 제대로 할 여력이 없었다. 그 덕에 복습도 별로 못하고 사상누각같이 대충 대충 덴마크어를 쌓아올리는 기분이었다. 그 상태로 계속 공부하면 PD3면 모듈 6를 듣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시험을 치지 않기로 했고, 5.2에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두번째에도 나쁘지 않은 선생님이었지만, 나와 맞지 않는 선생님이었다. 시험에 방점을 강하게 찍고 수업하는 스타일이라, 호기심 천국인 나에게는 너무 틀에 꽉 짜여진 수업시스템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번째엔 5.2도 채 끝마치지 않은 상태로 중단을 결정했다. 대학원도 너무 바빴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로 계속 수업을 듣기도 싫었다.

이번 선생님은 너무 마음에 든다. Einar라는 선생님인데, Studieskolen에서 수업을 들으려는 사람에게 정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선생님이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선생님으로 학생별로 강약점을 잘 파악해 그에 맞추어 코칭을 해준다. 수업의 기본적 틀은 유지하되 수업에서 나오는 질문들에 유도리있게 시간을 할당하고 학생들이 뭘 질문하는지를 빠르게 캐치해서 정확하게 답을 해준다. 작문숙제의 경우 한 학생의 작문을 골라서 모든 학생들에게 직접 첨삭을 해보도록 하고, 그 시간 중 직접 해당학생에게 붙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춰서 첨삭을 해준다. 사실 선생님이 학생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다르게 첨삭해줄 수 있는 내용을 다른 의미로 바꿔주는 경우를 여러번 경험했기에 이런 첨삭교수법은 아주 신선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텍스트를 첨삭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많이 배울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수정을 해주니 작문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 수업이 시작된 이래 불과 6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많은 발전을 느끼고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것인가. 삼세번의 시도 끝에 합이 맞는 선생님을 만난 게 너무나 기쁘다. 바빠도 이 수업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 해서 끝장을 봐야겠다. 마침 PD3 시험 신청도 끝났으니까.

진작 이 선생님을 처음부터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사람은 진짜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뭐 다 지나간 일이고, 지금부터 더 박차를 가해봐야지.

언어 공부에 있어서 발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내게 가장 오래된 취미는 언어공부다. 스트레스를 간간히 받지만서도 어려서부터 지금껏 꾸준히 즐겨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언어공부. 아빠는 나보고 언어학을 하면 잘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간간히 하셨는데, 내 생각에도 그랬을 거 같다. 다만 밥 벌어 먹고 살기 꽤나 빠듯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쪽으로 갈 생각은 들지 않았고, 이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언젠가 싫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굳이 업으로 삼지 않아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영어에 대한 호기심은 기억이 나지 않는 때부터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기억 나는 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읽지도 못할 영어 원서 아동서적을 샀던 경험이다. 사실 내 나이 또래 애들이 읽을 법한 책을 영어도 모르는 내가 샀으니 읽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또 초등학교 때 해외에 잠시 살다온 친구들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가졌던 게 기억난다. 특히 기억나는 건 상민이라는 아이. 짝궁이었는데 그 애가 미국에서 살다왔다는 것을 알고 이것 저것 말해보라면서 엄청 귀찮게 굴었던 게 기억난다. 그러다가 좋아하게 되서 더 귀찮게 했던 것 같다. 사촌이 미국에 가서 잠시 살았던 것도 이유였을까? 영어를 잘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동네에 생긴 작은 영어학원에 오빠와 함께 보내주셨다. 그때만 해도 회화학원이라는 게 거의 없던 때였는데, 주한 미군 남편을 둔 미국인 여자분을 선생님으로 해서 파일럿 반을 열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나와 오빠, 고위, 도위라는 형제, 그리고 2명 정도 더 있었는데 (세상에. 성은 몰라도 이름은 아직도 기억나는 악몽의 고위, 도위 형제.) 시작은 오붓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에게서 무슨 싹을 본 건지, 어느날 내 어깨를 붙들고 student를 계속 발음하도록 시켰다. 스튜던트, 스튜던트 하고 계속 발음할 때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 들어보라고 하면서 또박또박 말해주셨는데 갑자기 아하! 하는 순간이 왔다. 이 새로운 충격. 이 날을 계기로 내 발음에는 천지개벽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원어민 발음에 가까운 발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했던가. 고위, 도위 형제 뿐 아니라 오빠까지 합세해 발음 문제로 따를 당했다. 그게 싫었어도 영어를 배우는 게 너무 좋아서 열심히 다녔다.

중학교 때 3천명이나 되는 학생으로 버글거리는 명일여중을 다녔는데, 거기에 서울시 전체 중학교를 대상으로 5명의 원어민 교사를 시범사업처럼 파견하는 일이 있었다. 1학년 5개 학급을 대상으로 (총 17개 학급이었는데) 레베카라는 젊은 여선생님이 배정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 반도 이에 해당되었다. 덕분에 영어를 조금이나마 또 써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는 외고를 다녔던지라 영어와 전공언어인 중국어를 배워야 했는데, 언어학습에 대한 호감은 이때부터 커졌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항상 언어는 도구라고 하셨던 탓에 이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도구인 만큼 항상 가까이 해야한다고 하셨기에 참 열심히 했었다. 이때부터 시작한 게 녹음해서 발음 교정하기였다. 어디서 들었던 걸까?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들으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정말 다르다는 것을. 오성식의 팝스잉글리시였을까?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마침 오빠가 더이상 쓰지 않던 워크맨을 내가 빌려다가 녹음 기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집을 풀면서 지문을 읽을 때 그냥 읽는게 아니라 소리내어 읽으며 녹음하고 그걸 들으며 발음을 확인하곤 했다. 귀로는 원어민의 발음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내 발음과 원어민 발음의 차이를 메워보고자 뭔가 이상하게 들리는 단어는 적게는 한두번에서 많게는 수십번까지 다시 연습했다. 가장 어려운 발음은 elderly에서 처럼 rl이 겹치는 거라던지, ee나 ea처럼 입을 옆으로 쫙 찢어서 발음해야 하는 장모음 등이었다.

영어를 그렇게 하다보니 중국어도 그렇게 하게 되었고, 한자를 잘 못외워서 그렇지 말도 곧잘 하게 되었고 발음도 좋아졌다. 고등학교를 끝으로 중국어를 놔서 그렇긴 하지만, 스키캠프에서 만나 친해졌던 중국친구 짱펑과 국제전화 및 편지 교환을 통해 실력을 많이 늘리게 되었고 한때는 중국어 실력이 영어보다 좋았던 때마저 있었다.

취직해서 바쁘다보니 오랫동안 더 많은 언어를 공부하긴 어려웠지만, 그간 마음만 두었던 불어가 계속 눈에 밟혀 KOTRA에 다니던 동안 불어 공부도 1년간 했다. 매일 최소 한시간씩 꾸준히 하며 전화 불어도 하고, 프랑스 친구와 언어교환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더니 나름 대화도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발음은 어찌나 중시했는지, 언어교환하던 친구도 네 언어 실력과 발음간에는 아주 큰 격차가 있다며, 발음만 잠깐 들으면 불어 잘하는 줄 알겠다고 농을 했다.

덴마크 오면서 불어는 다시 내려놓고나니 덴마크어에 눌려서 불어는 이제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쉽다. 불어는 나중에 덴마크어 공부가 끝나면 다시 배우는 것으로 해야지. 아무튼 불어에 이은 언어는 덴마크어였다. 옌스 만나기 전까지 배울 일 없다 싶으면서도 동료에게 이런 저런 발음만 조금씩 배워두고 있었다. Rød grød med fløde 이라는 외국인들이 모두 하기 힘들어한다는 이 tongue twister를 열심히 연습한다던가, 일방통행이라는 뜻의 ensrettet 표지판을 볼때마다 읽어댔다. 이런 발음에 대한 나의 열정을 아는 옌스는 발음 교정에 적극 동참해주었고, å라는 모음을 정확히 읽을 때까지 1년 반동안 수없이 고쳐주었다.

언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각자 언어 공부에 대한 원칙이 있겠지만 나에겐 발음이 첫번째 중요 요소이다. 발음은 굳어지면 굳어질 수록 교정이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고 또 그렇게 해서 발음이 좋아지면 듣기가 많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발음이 나쁘다고 해서 언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도구이기에 발음이 아주 심각해서 원어민이 못알아들을 정도가 아니라면 발음보다는 컨텐츠가 중요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학습의 관점에서 발음이 좋아지면 귀가 빨리 트인다. 귀가 빨리 트이면 학습의 방법이 다양해질 수 있다. 라디오도 듣고, 영화, 텔레비전도 보고. 그리고 내 말을 상대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니 못알아듣는다고 속상해하는 기간을 최대한 짧게하고 일상생활에서 연습을 많이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꾸 그렇게 연습하다보면 모르는 단어를 봐도 사전을 찾아보기 전에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대충 감이 잡히고, 사전 찾아보면 내 추측이 맞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자주 녹음해서 듣지는 않지만, 몇개월에 한번 씩 발전상황을 점검해보고자 녹음을 해보곤 한다. 오늘 5~6개월만에 신문 아티클 하나는 읽어보고 들어보니 지난번에 있던 실수들은 거의다 없어져서 이제 외국인 액센트가 거의 없어졌더라. 남편이 아주 간혹 몇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 빼면 발음만으로는 원어민 같다고 하더니 드디어 발음은 거의 완성이 된 것 같다. 3년 반에 가까운 시간이니 길다면 길 수 있지만, 영어에 비해서는 훨씬 빠른 시간내에 도달했다. 그리고 주로 뉴스를 많이 듣고 공부한 발음이라 또박또박 듣기에 좋은 발음이라는데 듣기에 좋았다.

솔직히 국제결혼을 할 때만 해도 내가 이 사회에서 이 나라 말 잘 해가면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한 건 아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진 정해진 건 없지만서도 이 나라 말 잘 하고, 사람들 속에 잘 녹아들어 사회에 짐 되지 않는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데 문제가 없겠다는 걸 확인 한 작은 순간이다. 살다보면 중간 중간 vulnerable해질 수 있기에 스스로에게 작은 확신 같은 것을 줄 계기 같은 것이 필요한데, 아직 취업시장에 나서지 않은 나에게 언어는 일종의 최면술 같은 거다.

언어 공부엔 왕도가 없이 무지막지하게 열심히 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지만, 열심히 하는 게 책만 파야된다는 게 아니라 놓지 않고 계속 해야한다는 것이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생각한다. 요즘 덴마크어 어떻게 공부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것 저것 잡다하게 들려주다보니 그 핵심엔 1. 발음 연습과 (발음 연습 하는 게 따로가 아니라 공부하면서 같이 하는 형태의 연습), 2. 모르는 컨텐츠라도 시간을 많이 내서 시청하기 (드라마, 영화, 뉴스, 토론 – TV/라디오 형태), 3.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더이상 해당 언어로 대화하기에 뇌에 부하가 걸릴 때까지 그 언어로만 대화하기, 4. 혼잣말 할 때 (속으로든 겉으로든) 그나라 말로 말하기. 5. 자기 전엔 신문 읽기 등이 있는 것 같다.

아직 내 덴마크어엔 갈 길이 멀지만 이제 중급은 거의 졸업한 것 같다. 사실 오늘 녹음을 해서 들어본 이유가, 요즘 덴마크어로 남과 대화하는 데 거의 문제가 없어진 것 같아서였다. 언어의 발전이 계단식으로 이뤄진다는데 그 한 계단을 더 올라선 것 같다.

옌스가 이제 덴마크어만 하지 말고 자기 한국어 더 열심히 도와주란다. 내가 바쁘다고 자기 한국어 안도와준다면서 투정을 하는데, 정신 차리고 열심히 도와줘야겠다. 물론 내 살 길도 찾아가면서.

Hannah startede i vuggestuen!

 

Hannah er nu lidt over 10 måneder og kan meget mere end før. Det føles som om, hun har været sammen med os for altid, selvom der kun er gået 10 måneder. Tiden er gået meget hurtigt. Det er meget sjovt, at det føles sådan, fordi jeg nogle gange klagede over, at tiden gik rigtigt langsomt efter fødslen. Måske var det fordi, det var ret fysisk hårdt at passe et lille barn, der ikke kunne gøre så meget selv. Jo hun kan stadig ikke så meget – hun er kun 10 måneder – men hun er ikke længere bare en baby. Hun er næsten en tumling!

Hun startede officielt i vuggestuen i går, hvis jeg ikke regner det første uofficielle besøg i mandags som den første gang. Det gik udmærket. Hun havde det sjovt og kravlede hele vejen rundt i vuggestuen. Hun så ud, som om hun godt kunne lide at lege med andre børn eller i hvert fald at være sammen med dem.

Nogle gange kunne jeg mærke, at andre børn udviste lidt aggressiv adfærd, mens pædagogerne ikke kunne mærke det på situationen. Der var, for eksempel, en dreng, der var lidt aggressiv generelt og skubbede Hannah og trådte på hendes fod. Jeg blev nødt til at sige, at han ikke måtte gøre det, og tog hende væk fra ham. Men det kan altid ske, og jeg kan ikke være der altid for at beskytte hende fra den slags situationer. Der er mange af mine venner, der selv har børn, som har fortalt mig, at jeg skal vænne mig til at se hende komme hjem med nogle skader i forskellige grader, store eller små. “Det gør ondt at se hende blive skadet, men det er den måde, man vokser op på.”, sagde de. Ja. Der er også det udtryk, at man bliver klog af skade. Hun vil også blive klog på den måde. (Men det er jo nemmere sagt end gjort!)

 

거절, 덴마크어, 이방인

거절에 익숙해지는 건 연습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거절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또한.

요즘 졸업한 동기들을 보면 스웨덴인과 덴마크인을 제외하고는 직업을 찾지 못했다. 신문에서는 전문직의 구인난이 계속되고 있다는데, 그건 결국 이나라 말을 할 수 있을 때나 해당하는 것인 모양이다. 졸업한지 3개월동안 구직을 하면서 인터뷰 조차 하지 못한 동기들은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다. 학업을 하는 동안 덴마크어를 하지 않은 것을 엄청 아쉬워하고 있는데, 덴마크어 수업 등록하는 것도 실업급여 받는 동안 처음으로 강좌신청할 경우 원하는 학원에서 못듣고 잡센터에서 운영하는 학원으로 가서 들으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나마도 듣고 싶다고 신청을 했는데 아직 답도 못듣고 있다면서 분통을 터뜨리는데 마음이 안스러웠다.

덴마크어를 못하면 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덴마크어에서 손을 놓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래봐야 중상급. 일터에서 덴마크어를 쓰기엔 부족하다. 그나마 대학원으로 바빠 힘들다면서도 덴마크학원을 꾸준히 다녀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힘들 때 밀어부쳐야 오히려 더 하게 되는 거 같아서 2월부터 다시 다녀보려 생각중이다. 1년에 2번 보는 PD3라는 시험이 있는데 이걸 좋은 성적으로 통과해야 마지막 모듈을 들을 수 있다. 그 뒤에 있을 대학입학 요건 같은 Studieprøven이라고 최종 어학시험을 대비하는 모듈인데, 읽기와 쓰기를 인텐시브하게 가르친다고 한다. 여름 후 취직이 바로 안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 그 때 이 모듈을 들어놓으려면 5월엔 PD3를 봐야할 것 같다.  옌스한테도 주 2회 저녁 7시 수업은 감당할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할 수 있단다.

수업과 시험은 수업과 시험이고. 실생활에서 쓰지 않으면 언어는 늘지 않는다는 것이 경험에서 나온 신조인지라 이제 새로운 레벨로 시도해보기로 했다. 논문 데이터 수집부터 덴마크어로 연락을 하기로 했다. 대충 시나리오를 짜 놓고 전화하긴 했지만, 전화란 게 나 혼자 떠드는 게 아니라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수업자체가 영어로 진행되기에 이에 해당하는 용어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나중에 나에게 피가되고 살이 될 경험이라 생각한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콜드콜을 걸어 나는 어떤 공부하는 학생인데 데이터 필요하다고 도와달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거절하는 사람이 많은데다가 꼭 친절하게 답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전화거는 방법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니 우리말로 해도 긴장될 상황이다. 이 와중에 덴마크어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너무 혹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아니면 오히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려다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머리속이 복잡하다. 누군가는 엄청 차갑게 우리는 그런 데이터가 없고 여기랑 여기 같은데서나 받을 수 있을텐데 네가 그것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답하기도 하고 누구는 도와주겠다고 하기도 한다. 당신이 말한 곳이 어디랑 어딘지 다시 말해주겠느냐, 내가 외국인이라 잘 못알아들었다 라고 재차 물어도 빠르게 말해주면 머쓱해지기도 하지만 아쉬운 건 나니까 철판 깔고 다시 들이밀었다.

차가운 반응이나 거절의 통화를 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기분이 조금 그렇다. 그럴 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며, 거절은 원래 당하는 거라며,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중얼거린다. 점심때 만난 대학원 동기들에게 이야기했더니 거절에 곧 익숙해질 거라며 친절한 투로만 말했지, 닥치고 꺼지라는 내용을 들은 일도 많다고 이야기해준다. 엄청 위로가 된다. 거절에 익숙해질 거라니. 강해진다는 내용이잖아.

코트라 다닐 때만 해도 거절을 당하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뭐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살면서 거절을 별로 당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이제는 여기 이민자로 거절 당할 일이 수두룩 빽빽할텐데 하는 마음가짐이라 그런가? 거절에 조금 무뎌지는 거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럴 일을 줄이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다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는가. 직업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이 공부해봐서 아는 우수한 친구들도 말이 안되니 인터뷰조차 못보는데.  논문 쓰면서도 그런 트레이닝은 많이 받겠지. 예전엔 거절당할 것 같은 일, 안될 것 같은 일은 하기 정말 싫어하면서 하거나, 피할 수 있으면 피했다. 지금도 그런 성향은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안될 거 같아도 해보면 되는 일들이 있으니 우선 부딪혀보자고 들어가는 것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예전엔 하다가 중단하면 이미 완벽함에서 망쳐졌으니 다시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게 낫다는 주의가 되서 끈기가 조금 늘어난 것 같다.

다시 덴마크어로 돌아와서… 중상급에서 언제까지 안주하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라디오 청취를 다시 시작했다. 어디고 이동할 때는 핸드폰을 보지 않고 라디오를 듣는 것이다. 국영방송 제1라디오를 들으면 주로 뉴스와 시사, 교양프로그램, 토론방송 등을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동기부여가 되긴 하지만, 자막과 그림이 있으니 듣기에 온전히 집중을 하지 않게된다. 그리고 라디오는 끊임없이 떠드니까. 국영방송이라 광고도 하나도 없어서 정말 공부하기엔 최적이다.

신문읽기도 하루에 최소 신문 한면 정도는 보도록 하고있다. 예전보다 읽는 속도가 늘어나서 신문읽기가 수월해졌다. 어휘를 따로 외우려는 노력은 안하고 끊임없이 찾다보면 외우게 되는 식으로 단어를 공부한다.

덴마크어를 가까이할 수록 한국과는 멀어진다. 한동안 엄마아빠가 뭘 이야기해도 대충 한국사정은 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 지진난 이야기도 남이 해줘서 알게되고. 하나가 있고 학업도 있으니 정말 딴 짓 하기 힘들다. 운동도 어디 가서 하긴 어려워서 애 잠들고 나면 화장실가서 스쿼트를 포함해 15분정도 간단한 맨몸을 활용한 트레이닝을 하는 게 전부다.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건 팍팍한 일이다. 그렇지만 모든 거절이 내가 외국인이라서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거절은 내 나라에서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 거절에 대해 생각해보던 어제 친구에게 언제쯤 이곳에서의 삶이 이방인의 삶으로 느껴지지 않을 거 같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정확히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이방인의 삶을 사는 건 틀림없으니까. 그렇지만 처음보다는 지금이 더 여기를 집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덜 이방인처럼 느끼게 되는 것도 분명한지라 앞으로 계속 살다보면 여기가 진짜 내 고향 같아지지 않을런지.

 

4 år i Danmark.

Der er gået 4 år, siden jeg kom til Danmark. Allerede. Hvis jeg ikke havde været blivet gift eller havde mødt Jens, skulle jeg rejse tilbage til Korea på nuværende tidspunkt. Livet har ændret sig utroligt meget, efter jeg mødte Jens. Jeg kan ikke forestille mig, hvordan livet kunne være, hvis jeg ikke havde mødt ham.

Jens spurte mig, om jeg troede, at jeg kunne tale dansk så godt, som jeg kan nu. Det vil tage mere tid, at mit dansk bliver bedre end engelsk, men i hvert faldt tror jeg ikke mere, at det er umuligt.

Da jeg boede i Indien, var jeg ikke så glad. Jeg vidste ikke, at jeg elskede naturen, inden jeg flyttede til Indien. Hvor jeg boede, Gurgaon, en del af New Delhi omegn, var der ikke så mange træer. Det var for varmt både for mig og træer. Oven i det, blade var for små eller slanke, og de var dækkede af tør jord og støv. Jeg kunne ikke se grøn farve nok på træerne. Der var også for mange mennesker i alle steder. Det var meget stressende.

Nu bor jeg i Danmark, hvor der er masser af træer og grønne områder. Der er havet tæt på hvor jeg bor. Det tager kun 15 minutter på cykel til østersøen. Faktisk er der ingen sted i Danmark som er mere end 50km væk fra kystlinje. Jeg elsker køligt vejr, og det er næsten altid køligt her. Jeg kan godt lide dansk vejr. Folk er venlig og rar. De har lidt tør humor, som passer meget godt for mig. Der mangler kun bjerge. Men man kan ikke have alt. Jeg er meget tilfreds med, hvad jeg har her og nu, specielt fordi jeg har min mand og datter. De er to vigtigste personer i mit liv, som jeg ikke kunne møde, hvis det ikke var Danmark, jeg flyttede til.

Jeg læser nu på universitet for min kandidatsuddanelse. Det er ikke et rigtigt job. Den er en ting jeg mangler. Jeg skal tale bedre dansk for at få et job nemmere. Men jeg tror, det kommer. Forhåbentlig kommer et job med sproget.

Knap seks måneder efter fødslen

Min datter, Hannah, er knap seks måneder. Det er utroligt. Det har været allerede seks måneder, siden jeg har født hende. Tiden går så hurtigt som lyn, dog der var nogle tidspunkter, at der føltes, som det gik så langsomt. Min veninde, der har to børn selv, fortalte mig, at det ville være en lang tid, der flyver. Det var bare rigtigt.

Nu kravler hun, og det udvider hendes verden helt vildt meget. Hun opdager noget nyt hver eneste gang og lærer noget ud af det. Man kan godt se, hvor meget hun er stolt af sig selv, når hun står op. Jeg syntes, at det var ikke forstående, da jeg så andre forældre, som var så glade med deres børn, fordi børnene gør noget nyt eller smiler: ‘Hvordan kan de være så glade med deres børn? Er det rigtigt, at børn gør dem så glade, at de opdater alle mulige små ting om deres børn på Facebook eller Instagram?’ Ja. Det kan jeg så godt forstå nu. Ja, jeg ved det godt, at jeg er en pinlig mor, som er stolt af min datter for ingenting. Der er nogle ting, man ikke kan forstå, inden man oplever den selv. Børn er én af de ting, jeg tror.

Jeg er taknemmelig, at jeg kunne have disse værdifulde oplevelser i mit liv på grund af Hannah. Jeg lærer at kende min mand, Jens, og mig selv endnu bedre fra oplevelserne, og det gør mig at være eller prøve at være en bedre person. Jeg glæder mig meget til vores fremtid som en familie, os tre.

4년만에 덴마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덴마크에 살기 시작한 지 거의 4년이 되었다. 만약 계속 코트라에 계속 다녔더라면 돌아가야 할 시점이었겠지.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지면서도 그것밖에 안되었나 싶은 모순된 감정이 가로지른다. 인생에 전혀 계획하지 못했던 일들이 무수하게 벌어졌으니 역시 살아봐야 아는 게 인생이구나.

 

앞으로 어떤 생각이 들런지는 또 지내봐야만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난 덴마크의 삶이 참 잘 맞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인도로 첫 발령받기 전까지 한번도 해외 거주 경험이 없었으니 참으로 토종 한국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이방인 같은 느낌으로 살았었다. 여기와서 옌스를 만나고 결혼을 해 하나를 낳고 친구들도 생기고 하니, 나답게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그냥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덴마크 사람들과 케미가 잘 맞는다고 해야할런지. 덕분에 뿌리를 내리기에 참 좋은 토양이다 싶다. 물론 옌스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덴마크 사회로 진입하기에 이런 가족과 같은 연결고리는 정말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경험해보니 정말 그렇다.)

 
출산하고 애를 키우며 지난 오개월 사이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학교 다니면 영어 쓰는 시간이 지배적이고 저녁에도 공부하느라 덴마크어가 소홀해진다. 그런데 애 보면서 토막나는 시간에 공부하기가 잘 안되니(조금 핑계같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방송 간간히 보고, 신문 읽고, 엄마그룹 모임 하고 했더니 몰입환경이 조성된 걸까? 듣기가 확 트이고, 어휘도 늘고 하다보니, 말문이 눈에 띄게 트였다. 물론 듣고, 읽고 이해하는 폭이 말하거나 쓰는 폭보다 넒기에 덴마크어로 보고서를 유창하게 써야 하는 일을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덴마크어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방송시청과 신문 읽기가 어렵지 않아왔으니 말이다. 출산 시점을 돌이켜보면 그땐 영어로 하겠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밖에서 영어를 쓰는 일이 없다.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든, 엄마그룹을 만나든, 뭔가 상담을 받든 말이다. 옌스와의 대화도 95% 정도는 덴마크어를 쓰니.

 
작은 나라라서 그런가? 말이 되면 엄청 좋아하고 환대해 주며 사회의 성원으로 빠르게 받아들여주는 점은 한국과 덴마크가 같다. 요즘 덴마크 사회에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부쩍 받는다.

 
논문이 끝나면 직장을 구해야 할텐데 이제 걱정은 한켠으로 접어두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환경경제쪽으로 직장을 꼭 잡고 싶은데 안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접었다. 내가 공부를 다시 한 목적은 직장을 잡는 자체에 있었고, 내가 덴마크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물론 좋은 성과를 내고 졸업한다는 전제하에 그 기간동안 덴마크어도 가다듬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에 든 힘도 좀 빠졌나? 내가 앞으로 뭘 하든 밥값만 하면 되지, 꼭 좋은 직장 잡아서 잘 다녀야 하는 거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드니, 설마 직장 하나 못잡겠나 싶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밸류 프로포지션만 명확하면 직장은 잡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마음에 드는 직장을, 아니면 그냥 밥벌이라도 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아마 이 모든 느낌은 더이상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드는 것 같다. 옌스 가족과 친구, 내 생활 반경 속 사람들에게 그냥 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나니 그냥 이대로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랄까? 한국에서 갖고 있었던 뿌리깊은 자기증명 강박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내 부모와 가족, 친구가 멀리 있는 건 아쉽지만, 난 내가 뿌리내릴 토양을 지구 반비퀴를 돌아 찾아온 느낌이다. 나에겐 이제 고향이 두 곳이다. 둘이 같을 수는 없지만 다른 의미로 아주 중요한…

24 Jan 2017, Berlingske

»Der er ingen, der har lyst til at være den, der henter børnene sidst i børnehaven«


Danske forældre henter og bringer deres børn imellem klokken otte og 16. Men deres arbejdsliv foregår på alle tider af døgnet. Er det på tide at gøre daginstitutionernes åbningstider endnu mere fleksible?
MANDAG D. 23. JANUAR 2017 KL. 17:00

Det har altid været sådan. Mellem otte og ni er der gang i morgentrafikken hos landets daginstitutioner, og mellem 15 og 16 dukker forældrene op igen for at hente de små.
Ude i de danske familier fortsætter arbejdet dog alligevel: Man går til møder om aftenen, ringer til en kollega efter spisetid og svarer på vigtige mails efter børnene er blevet puttet.
Bruger de danske forældre så muligheden for at få passet børnene tidligere og senere?

En ny undersøgelse fra KORA bestilt af Børne- og socialministeriet her forud for regeringens dagtilbudsudspil til foråret, viser, at landets kommuner oplever en begrænset efterspørgsel efter pasning udenfor almindelig åbningstid.

Aften-, natte- og weekendtimer bliver sjældent benyttet. Det gør pasning i de tidlige morgentimer til gengæld hos de kommuner, der tilbyder det.
Børne- og socialminister Mai Mercado ser det bånd, som forældre lægger på hinanden, som en af forklaringerne.
»Forældre måler sig op imod hinanden. Der er ingen, der har lyst til at være den, der henter børnene sidst i børnehaven. Derfor ligger der det her pres. De fleste har en fuldtidsplads og derfor har forældre også en opfattelse af, at man skal aflevere tidligt om morgenen. Forældre er meget præget af en 8-16 kultur. Den må man godt give lidt slip på. Vi skal også tænke i løsninger, som passer bedre til forældrenes behov,« siger hun.

‘foregår take place, happen, go on, be in progress
foregår på be conducted in
gang walk, gait, step, course, progress, march, passage, aisle, corridor, hallway
være gang i take place, be busy
dukker op turn up, come up, show up
bliver puttet be tucked in, be laid on the bed
forud ahead, beforehand, in advance
udspil

(-let, -, -lene)

proposal, move, gambit, initiative, lead
en efterspørgsel efter – a demand for –
bånd band, ribbon, string, twine, hoop, tape, tie, restriction
opfattelse

(-n, -r, -rne)

perception, idea, conception, opinion, view, interpretation, comprehension
præger characterise, mark, permeate, pervade, impact on,
være præget af – be marked by -, be accompanies by -,
slip break, slip, slippage
give slip på – relinquish –
løsning solution, resolution, answer, settlement

http://www.b.dk/nationalt/der-er-ingen-der-har-lyst-til-at-vaere-den-der-henter-boernene-sids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