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 fars krig

Jeg synes, at DRs nye tv-serie, Min fars krig, er en fint lavet dokumentarfilm. Filmen omhandler en forfærdeligt sørgelig, men samtidig vældig modig historie, der baserer sig på virkeligheden. Det gjorde ondt på mig at se de omstændigheder, man var lagt under krigen, og hvor umenneskelig og ond eller modig, men traumatiseret, man kan da blive dermed.

Vores bedsteforældres generationer i Korea har også oplevet det samme under besættelsen af Japan, blot værre og meget længere end det – omtrent et halvt århundrede – der oplevedes i Danmark den gang under besættelsen af Tyskland. Så jeg kunne på en måde forholde mig tættere til filmens fortæller, der følger efter sin fars spor i modstandskamp mod tyskerne under den anden verdenskrig ved hjælp af DR, Rigsarkivet, mf.

Men det gik op for mig, at jeg ikke har tænkt på, at modstandsfolk også havde familien og deres kære, som de aldrig ville gøre ondt eller komme til at skade, og at de også var pisse bange. De gjorde alt det med modstandskampen med de risici, at de slet ikke ville kunne se deres kære, dvs. deres kone/mand, børn, forældre, eller at de kunne miste dem på grund af sin kamp. Jeg så dem indtil nu som et historisk objekt, men ikke som det samme menneske, som jeg er. Det gik simpelthen op for mig. Hvor har jeg været ikke-empatisk!

Nu har jeg min datter. Kan jeg mon gøre det samme, som de modstander har gjort, fordi jeg ville give et frit land til min datter ved at risikere at miste hende og livet sammen med hende? Hvor er det hamrende svært. Nej. Måske ville det ikke være så svært for mig. Jeg tror ikke, at jeg vil kunne gøre det.

Jeg skal huske og aldrig glemme de store indsatser, de modstandsfolk mod Japan har gjort for mig og mine kære, også dem mod Tyskland, da ellers ville jeg, Jens og Hannah ikke kunne have været sammen her og nu. De var modige og de var vores helte.

작은 두려움의 연속

연봉협상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 센터 성과는 좋았고, 나도 내 담당 업무의 목표를 달성했다. 공무원은 크게 협상 여지가 많지 않다는데 얼마만큼 해야하는데 아직 감이 잘 서지 않는다. 덴마크어로 일하는 데서 오는 생산성 손실을 다른 경쟁력으로 얼마나 메우고 있는지도 불확실한 터라 더욱 그렇다.

매일 매일 작은 불안함을 갖고 지낸다.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큰 부담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전달하지 못할까봐서. 또 언어의 부족으로 인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의견의 강약 조절에 있어서 의도치 않게 실패를 할까봐서. 그래서 조직에 피해를 끼칠까봐. 그 결과로 타인의 시선과 단정적 평가를 받을까봐. 그래서 성과 협상은 더더욱 불안하다.

일년의 기간이 흘러 이제 나는 나대로의 위치가 정해졌고 업무 영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내 위치와 업무 영역은 크든 작든 변해가고 책임도 늘 것이다. 내가 적응을 한다 싶으면 또 변해가겠지.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는 게 두렵다.

사실 정 안되면 관두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될 것 같기도 하면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쩌면 한국어로 했어도 가졌을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런 두려움은 앞으로도 계속 원치않는 친구같이 데리고 나아가야할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왜 두려울까? 내가 가진 원래의 가치보다 낮게 보이는 게 두려운 걸까? 생각을 좀 해 볼 문제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있는 걸까? 실제보다 못나보일까 걱정하는 걸까? 좀 못나보이면 어떤가? 남이 어떻게 평가하는 게 왜 나에겐 그렇게 중요할까? 어려서 높은 기대 수준 속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게 지금도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는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고 달래가야 하나?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이 힘들다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이 불행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 좋고, 감사한데, 그냥 서서히 그런 두려움을 안고 가는 내가 이해가 안된다. 이해를 하려 하는 이 과정이 두려움을 맞이하는 길이 되겠지. 우선은 덴마크어 공부도 하고 업무도 열심히 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가면서… 올 한해 큰 모델 마무리 짓고 보고서고 발안하고, 입법안 초안도 내고 기타 운영업무도 하면 한 해가 흘러가 있겠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직장 생활 속 내 안에 느껴지는 소소한 변화

지금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새 열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다니.
요즘 들어 내 안의 소소한 변화가 느껴진다. 

1. 업무적으로 팀 안에서 내 위치가 확고해졌다. 원칙적 승인을 받은 모델을 모니터링그룹에 발표했는데 큰 호평을 받았다. 센터 안에서도 크게 칭찬을 받고, 발표를 들은 타부처 동료들에게도 내가 큰 전문성을 갖고 해당 모델을 잘 만들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는 평을 직접 또는 센터장을 통해 들었다. 2021년 입법을 위해 내년까지 모델을 만들고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모델이 구체적 형태를 띄기 시작하니 다른 업무와 연계되는 부분에 대한 협의도 늘어나고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자연히 내 위치도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2. 직장 동료들과 친해지고 내안의 내가 만들어낸 소외감이 사라졌다. 사실 업무하느라 바빠서 점심시간이나 회의시간 이외에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다. 간간히 잘 맞는 동료끼리 커피를 내리러 같이 캔틴에 가곤 하는데, 나는 그냥 혼자 내려가는 편이라 기회가 더 적은 편이다. 딱히 누가 날 소외시킨 것이 아닌데, 내가 스스로를 조금 소외시켰다. 별거 아니지만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두려움(사실 실수 해도 될텐데)이 마음속 깊은 곳에 스몰토크에 대한 불편함을 심어준 것 같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인지, 업무적으로 내 영역이 확고해지면서 내 소속감이 강해진 게 기저의 이유가 된 것인지, 뭐가 계기가 된 지는 모르겠지만, 직장동료들과의 관계가 편해지고 다 가깝게 느껴진다.

3. 언어문제가 많이 흐려졌다. 보고서 작성, 내외부 프레젠테이션, 내외부 회의 및 토론, 유무선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점심시간이나 다과회에서 일어나는 다대다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되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엄청 흐려졌다. 말로 인해 긴장하는 게 많이 흐려지다보니 어디 가서도 크게 위축될 일이 없다. 어쩌면 좁은 네트워크 속에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서로 잘 아는 사람이 한둘씩 끼는 상황들이라 위축이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황별 프로토콜에 대한 문화적, 직업적 이해가 늘어나고 언어 문제가 거의 흐려졌다. 특히 어제 회식에서 시끄러운 와중이 이런저런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하는 와중 나도 ‘이게 무슨 이야기지? 나는 어디에 있는거지?’ 하는 백지같은 상태에 빠지지 않고 다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뭐랄까… 언어면에서 궁극의 테스트를 통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어의 발전은 역시 선형적이지 않고 계단식으로 이뤄지는 게 맞다. 한동안 발전이 안느껴졌는데, 지난 일이주 사이에 비약적 변화가 느껴지는 거 보니 말이다.

어제 회식간 레스토랑에서 옌스와 하나와 잠깐 통화한 후 한장

거의 올해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의 총평은 여기서 일하게 되서 너무 다행이라는 점, 이건 나에게 큰 네트워크를 선물해주고 성장하게끔 해준 아주 긍정적인 일년이라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에 지원서를 써내고 서류전형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사실 채용되면 일은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성장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런 연유로, 공무원이 급여가 높은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만 보람도 있고, 훌륭한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그냥 오래 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옌스에게 이야기를 했다. 옌스도 자기 일이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더 크고 바쁘고, 우리는 애도 있고 하니, 아무래도 업무강도가 컨설팅 같은 사기업보다 낮은 공무원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 물론 여기도 승진하면 바쁘긴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 같으니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고. 내년이 지나고 나면 더이상 내가 외국인이라 느껴지는 나만의 핸디캡 같은 건 완전히 떨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How wonderful!

너 덴마크인이 아니었어?

작년에 논문을 발표했던 컨퍼런스에 이번엔 그냥 참가자 자격으로 왔다. 나중에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정책 패키지가 통과되면 수자원관리 분야 경제분석을 내가 담당하게 될 관계로 관련분야 전문가와도 네트워킹도 해야하니까. 환경경제학 하는 사람 풀이 크지 않아서 여기 일년이 한번만 와도 아는 사람들과 근황 업데이트 하기는 좋겠더라. 지난번보다 이번에 또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애를 낳고 직장을 구하니 새로운 사람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 네트워킹 하는게 부담스럽지 않다.

올해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애 낳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뀐 계기를 이야기하며 내 생물학적 시계가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이 서른 중반 들면서 들었던 게 하나의 요소인 것 같다고 했더니 내 앞에 있던 사람이 화듦짝 놀랐다. 자기랑 같은 개월수의 애를 키우는 엄마이니 또래일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기함을 하던 모습에 나도 엄청 웃었다.

같은 사람이 오늘 자기는 호텔에서 자야 한다 했다. 오후스에서 와서 출산이후 처음 외박하는 건데 긴장된다고. 나도 외박은 한 적 없는데 돌 전에 덴마크어 학원 다시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애가 제법 울어서 집에 돌아오기 전 한시간을 내리 울었던 때가 종종 있었다 했다. 그러자 그녀가 또 한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덴마크어 학원을 왜 다녀오고 묻는거다. 외국인이니 다녔던 거라 답하자, 너 덴마크인이 아니야? 라고 묻는게 아닌가!!!! 덴마크어 배운 지 오년만에 네이티브로 와인을 받다니 살짝 감동했다. 물론 길게 이야기하면 다 알게되는 순간이 오겠지만 직장 다니면서 덴마크어가 진짜 많이 늘었다. 역시 실전이 최고의 연습은 모양이다. ㅠㅠ 감동의 기억을 기록해야지…

직장생활 반년 후 덴마크어 능력 자가평가

반년이 흘렀다. 아니 며칠 남긴 했으니 반년이 흘렀다고 하긴 그런가?

누구를 만나 건 막상 대화를 하는 데 큰 막힘은 없고 강의를 들으러 가서 상대가 빠르게 말해도 90% 이상 문제없이 이해하니 적응을 거의 다 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나서 내 소개를 하는 때마다 혹여나 내가 문법에 틀리는 말로 시작하게 될까 그로 인해 상대가 나를 어리숙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마음 속에 자리하는 건 바뀌지 않는 거 같다. 무엇보다 처음을 내가 열어야 하는 상황은 긴장된다고나 할까? 튀는 게 싫은 것 같다.

3개월에 한번 새로 기업부 및 기업부 산하 기관에 임용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소개강좌가 열리는데 지난 번엔 회의와 겹쳐서 임용된 지 6개월만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다른 기관 사람들도 만나서 인사도 하고, 장관실을 비롯해 기업부 시설을 둘러보았으며, 조직, 전략, 인사 및 총선이후 유의사항 등 다양한 사항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각자 자기 소개를 구체적으로 할 일들이 생기는데, 그럴 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곤 한다. 속으로, “틀려도 된다. 틀려도 된다. 상대는 나를 평가하려는 사람이 아니야.” 이런 말을 되뇌이다보면 긴장이 좀 풀리고 막상 대화를 시작하고 나면 큰 어려움은 없다. 이런 긴장감은 도대체 언제 없어지려는지. 없어지긴 하려는지.

그래도 달라진 건 점심시간에 대화에 느끼던 어려움이 많이 없어졌다는 거다. 조용한 회의시간에 한명씩 돌아가며 조용하게 이야기할 때랑 달리 구내식당에서 여러명이 대화를 동시에 나누는 점심시간은 참 어려웠다.

지난 주 금요일, 1년에 한번 하는 직원축제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와 파티를 하기 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직원들과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 때, 구내식당에 소리가 많이 울리고 사람들이 크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보니 점심시간에 간혹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랬더니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네명 넘는 인원이 말을 하면 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아. 역시… 아무튼 이제는 많이 알아들어서 점심 때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저녁 엄청 시끄러운 속에서도 한껏 멕시코풍으로 장식한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목소리 높여가며 술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춤도 췄다.

간혹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분이 들어서 내가 잘해야지 하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내가 뭐라고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나. 나는 하나의 개인일 뿐인데. 그런 쓸데 없는 생각으로 나를 부담지울 필요 없이 내가 부족한 점은 부족한 점대로 드러내고 배울 건 배우고 기여할 수 있는 건 기여하며 일하고 이 안에 녹아들다 보면 한국에서 온 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직원으로 나를 스스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동안 더 빨리 늘지 않는 내 덴마크어를 두고 스스로 조급해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는데, 6개월 사이에 많은 발전이 있었으니 앞으로 일년 후엔 크게 바뀌어 있지는 않으려나 하는 희망을 혼자 품어본다.

본격 실업자 생활 첫주를 마무리하며

실업자가 되고나니 어찌 더 바쁘다. 주 2회 덴마크어 학원에 주 1회 덴마크어 과외, 그에 따른 숙제, 주 1회 덴마크어 이력서 작성, 집안일, 애보기, 이게 다일 뿐인데 마치 풀타임 학생에 덴마크어 학원 주 2회 다닐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마 과외에 애보기가 추가돼서일 듯하다.

우선 최초 2달 정도는 내가 꼭 내고 싶은 직장에만 이력서를 내기로 해서 정부부처를 중심으로 나는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에만 지원하려고 한다. 사실 큰 기대는 없다. 포지션 백그라운드 정보 서치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지원서 한장 쓰는데만 3시간여가 걸리는 덴마크어로 일을 한다면 모든 직무능력이 같은 덴마크인과 경쟁한다고 했을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다만 덴마크의 고용시장이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라고 하니 나와 같은 수준의 이력인 사람이라면 더 나은 곳에 지원을 했기를 바라며 지원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문한 것은 딱 하나. 지원을 계기로 삼아 관련 분야의 덴마크어 어휘를 익히고 작문 스킬을 늘리는 것이다. 내 생애에 코펜하겐 대학원 시작 직전 자발적 6개월을 제외하고는 실업기간이 없었기에 졸업 후 처음으로 맞이한 실업기간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초조해 한다고 달라질 게 없으니까 이 시기를 덴마크어 집중훈련의 시기로 삼기로 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직장이든 구해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직 새로운 일상의 리듬이 안잡혔다. 거의 자동적으로 일상을 지켜갈 수 있도록 어떻게 현재의 스케줄을 돌려갈지 최적화를 천천히 하고 습관화 해야겠다.

언젠가 성공적으로 취업이 되어서 그 성공적으로 된 지원서를 공유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덴마크어 모듈 6 시작

덴마크어 학원을 시작했다. 모듈 6. 스투디스콜른이 코펜하겐 꼬문 지정 학원 입찰에서 탈락한 후 (이제 지정 방식이 낮은 단가에 비중을 크게 둔 형태로 바뀌어서 이상한 학원 두개가 선정되고 전통적으로 덴마크어 교습을 해온 학원들이 다 탈락했다.) 사설 학원으로 전환한 후 첫 수업이라 사실 약간 불안했다. 수업시수도 조금 짧아졌고, 학원의 덴마크어 부문은 적자형태로, 다른 언어 수업에서 돈을 끌어다 쓰면서 다음 입찰까지 버텨본다는 계획이라길래 말이다. 오늘 첫 수업 후 우려는 말끔히 씻겼다. 우선 내가 수업을 듣는 기간 중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20명 정원을 다 채운 건 처음보는데, 학생들의 수준이 다 비슷하게 평준화되어있었다. 이제 사설학원이라 딱히 정해진 입학기준은 없는 거 같은데 모듈 6의 마지막 시험인 Studieprøven이 어렵다는 것을 학생들이 이미 알아서 등록하지 않은 탓인지 다들 유창한 덴마크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기가 쓴 덴마크어 글을 타인의 확인을 받지 않고도 보고서로 제출하거나 중요한 이메일로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자기 확신을 갖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고. 물론 학교에 입학을 해야해서 시험 점수가 중요한 사람들도 5명 정도 있었지만, 나머지 15명은 모두 스스로  실력을 향상하고자 온 사람들이었다. 시험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선생님도 지난 모듈 선생님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쏘옥 마음에 드는 선생님이다. 학원 수업 주2회에 과외 주 1회 하면 덴마크어를 짧은 기간 내 바짝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스투디스콜른이 사설학원으로 되었다는 건 커리큘럼을 시에 통제받지 않고 자유로이 꾸릴 수 있다는 거다. 현재 덴마크의 공인 언어시험이 C1에 해당하는 Studieprøven밖에 없다보니 수업도 그 수준까지 밖에 없다. 선생님이 오늘 수업을 하면서 그 다음 레벨에 관심있는 학생 있는지를 물어보며 하는 이야기가 내년에 그 차후 레벨 반을 개설하고 그 수업을 수료하고 시험을 쳐서 통과하는 대상으로 사설 수료증 같은 걸 만들어 보는 걸 계획중이란다. 나는 너무나 관심있고, 반에도 관심있는 사람들이 꽤 되는 것 같았다. 제발 좀 그런게 생겼으면 하는 바람인게, 중급을 넘어서면 셀프스터디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게 참 힘든 것 같다. 끊임없이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주제와 표현 이상으로 챌린지를 해주는 교육적 도구가 필요하다. 물론 스스로 그리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게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일이라 말이다.

디펜스 준비는 거의 끝났고, 이제 컨퍼런스 발표 준비만 끝내면 8월의 큰 행사는 끝난다. 그리고 나는 취업시장으로 풍덩… 아니면 실업세계로 풍덩… 🙂 새로운 세계가 열리겠지. 기대가 된다.

Jeg har søgt to stillinger i sidste uge.

Jeg søgte to stillinger i sidste uge, da jeg og min familie var på ferie på Bornholm. Teknisk kan jeg sige, at jeg ikke var på ferie, for jeg blev nødt til at arbejde på et lokalt bibliotek. Det var et tilfælde, at jeg fandt et meget relavant job på nettet en aften på Bornholm, mens jeg lå på sengen, hvor jeg ikke kunne sove så godt på grund af mange værdiløse tænker.

Jeg havde afleveret den vigteste del af mit speciale: teorierne, metodologierne, resultaterne og diskussionerne, så jeg havde lidt tid til at koncentrere mig om at skrive en enkel ansøgning. Det tog en hel dag at skrive den ansøgning. Jeg synes, at det var meget givende, uanset hvad for noget resultat det at skrive ansøgningen medfører.

Det var anden gang, jeg har skrivet en ansøgning, og derfor vidste jeg godt, hvad jeg skulle gøre. Jeg ringede til kontaktpersonen og spurgte om jobbet (Det at ringe kontaktpersonen lyder mærkeligt for nogle, som ikke kommer fra Danmark, men det er meget normalt og anbefalet her.), og bagefter skrev jeg en målrettet ansøgning. (Det har hjulpet rigtig meget at have deltaget en karrierdagbegivenhed i marts, for det var der, som har givet mig lidt insigt om det danske jobmarked, og ellers kunne det være svært ved at finde ud af, hvordan man skriver CV’er og ansøgninger i Danmark.) Jeg tog hjem og viste Jens og min svigermor og bad dem om at tjekke nogle gramatisk fejl. Jens sagde, at der var kun meget små fejl, og der ikke var så meget, han skulle rette. Han mente, at jeg kan arbejde på en arbejdsplads, hvor der som udgangspunkt kræver dansk for ansøgerne.

Jeg tror ikke, at jeg nemt kan få et job, for jeg er udlændinge, som ikke kan tale og skrive flydende dansk. Men jeg tror eventuelt, at jeg kan få et job, som jeg ønsker, fordi jeg vil prøve og prøve. Jeg elsker at lære nyt, og tør prøve nye tilgange og tage risici, og derfor tror jeg, at manglende sprog hurtigt vil læres.

Jeg har læst dansk i næsten fire år nu, dog ikke altid så aktivt på grund af min uddannelse på universitetet. Nogle kan sige, at jeg skulle da tale og skrive dansk meget bedre end det, jeg kan nu. Men jeg synes stadig, at det er imponerende for mig selv, at jeg kan tale og skrive dansk så meget, som jeg kan nu, fordi i forhold til hvor meget tid, jeg har brugt til mit engelsk, kan jeg meget bedre på dansk.

Jeg har bestemt mig for at skrive noget på dansk lidt oftere, så jeg kan øve min skriftlig fremstilling lidt mere, for ellers har jeg ikke så mange chancer for at skrive på dansk. Jeg håber på et tidspunkt, at jeg bliver ansat hos en firma, som jeg højt ønsker at arbejde for, og kan dele gode idéer og anbefalinger til dem, der er i den samme situation, jeg er i nu. Jeg krydser mine fingre. 🙂

힘들었던 체류 초기시절. 지금은 덴마크가 좋은 이유

5일의 시간이 어느새 흘러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휴가로는 딱 좋은 기간. 집에 돌아가고 싶은 이유 중 가장 큰 건 하나가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밤에 잠에 들기까지 우는 것도 그렇고 우리와 같은 방에서 자니까 아침 너무 일찍 일어나서 놀고 싶어해서 더이상은 휴가가 힘들다. 애가 좀 클 때까진 긴 여행은 힘들 듯 하다.

어제 저녁엔 시어머니가 여기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셨다. 시누가 남편 주재기간동안 두바이에 사는 건 돌아올 기약이 있는 건데 내가 여기에 사는 건 뿌리를 내릴 생각으로 사는 거니 그 무게가 다르니 간혹 내가 어떤 느낌을 갖는지 궁금하시단다. 그래서 생각을 과거로 더듬어가봤다.

지금이야 하나도 태어나고, 시댁 가족과 관계도 훨씬 돈독해져가서 옌스네 외가 가족이고 친가가족이고 가깝게 지내는데다가 내 친구도, 내 일(직장은 아니더라도)도 있고, 말이 통하니 더이상 내가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고 지낸다. 그래서 그런가 외국에서의 삶이라 힘들다거나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지가 꽤 되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힘이 들긴 했는데…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 (그래서 이렇게 글도 써서 가록으로 남기는 거지만) 다행인 건, 힘든 기억을 잊는다는 거다. 말이 잘 안통해서 가족 모임이나 친구 모임에서 애매하게 웃는 것도 웃지 않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나 혼자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면서 너무 딴짓하지 않는 척 보이게 앉아있었던 게 참 힘들었던 거 같다. 나를 위해 영어로 바꿔주는 것도 큰 모임에선 한계가 있었으니까. 물건 하나 사는 것 조차 구글 번역기를 돌려야 했을 때,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점원을 발견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때, 뭘 물어볼 때 누구한테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줄을 서야 하는 건지 아닌지… 진짜 사소한 것을 알 수 없어서 허둥지둥댈 때 힘들었다. 내 친구가 별로 없었을 때, 밤에 시차로 인해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을 때도 힘들었다. 이웃들끼리 가까이 지내는 거 같은데,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말도 잘 안통해서 듣는 거 하나하나가 긴장되는 순간이었을 때 힘들었다. 머리로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편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그리웠을 때 힘에 부쳤다.

그런데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다. 5년은 그런 시간인가보다.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내 가치관도 바뀐다. 예를 들면 결혼에 대한 생각. 애를 낳고 보니 결혼은 그냥 서류일 뿐이다 라고 했던 옌스의 말을 이해하겠다. 우리야 비자 문제로도 결혼이 필요했지만 동거를 하다가 애를 낳고서야 결혼을 하는 (애가 생기면 혹여나 있을 지 모르는 일들로 인해 결혼을 하는 게 여러모로 수월한 경우가 많다.) 경우가 엄청 많은데, 이제는 그게 이해가 간다. 이런 걸로 예를 들며 서양사람들은 성에 개방적이다거나 문란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이야기같다. 어차피 연애를 하면서 성관계를 갖는 면에 있어서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매한가지인데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없는 척 한다는 점… 그래서 모텔 대실제도 생기고 성을 숨기다보니 왜곡된 성관념을 갖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건 오히려 동양이 훨씬 성에 몰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무튼 결혼이 제도적인 장치에 불과하고 가장 남녀사이를 강력하게 묶어주는 건 둘간의 사랑과 우정, 자녀라는 생각이다. 자녀는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고, 자녀가 있고도 헤어지는 사람도 있으니 자녀가 관계를 묶어주는 존재라는 건 아닌데, 한번 누군가와 자녀를 갖게 된다면 아무리 헤어져도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묶어준다는 이야기다.

덴마크에서의 삶이 좋은 건 아주 시내 한복판에 사는 거 아니면 내가 어렸을 적 느꼈던 이웃과의 정을 아직도 느낄 수 있고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과도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바쁨과 짜증이 스며나는 가식적 친절이 아닌 좀 수더분하고 거칠더라도 마음이 느껴지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점원들이 있는 상점이 좋다. 동네에 아이들이 어른 없이도 자기들끼리 놀이터에 나와서 모여 놀 수 있는 안전함과 유모차를 몰고 거의 모든 곳에 비난의 눈길 없이 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좋다. 차보다 자전거가 대우받고 자전거로 왠만한 곳에 갈 수 있도록 도시가 아담한 사이즈인게 좋다.

결국 느낀 건 언어가 중요하다는 거다. 영어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만큼 덴마크어 없이도 살 수 있는 이곳이지만, 언어가 열리면서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어지고 나면 그 전에 차가운 것 같던 사람들이 더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여주고 생활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준다. 못알아듣는 대화가 줄어들 수록 내가 나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고, 꾸밈이 없어지다보니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더 드는가보다.

직장까지 구하고 나면 정말 사회의 일원이 된 느낌을 강하게 받겠지. 한번에 하나씩 하자.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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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해안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들고 산책을 나섰다. 같은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간 커플이 마침 같은 해안가에 앉아서 아이스림을 먹고 있네. 

덴마크어 모듈 6 등록

모듈 6에 등록을 했다. 스투디스콜른은 더이상 코펜하겐시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관계로 시수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해도 대충 1000크로나 내외의 돈을 내야하는 것 같다. 모듈 6.1은 1245 크로나. 비자 문제로 나는 모듈 3까지 돈을 내고 다녔었는데, 6주에 5500크로나 정도 냈던 거 생각하면 이건 정말 돈 내는 것도 아니다.

모듈 6를 듣고 나면 Studieprøven이라는 시험을 치게 되는데, 이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학부과정을 덴마크어로 수학할 수 있다는 증명이 된다. 시험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런 레벨이 될 수 있는 트레이닝을 받는 다는 게 중요하다.

모듈 6.1에서 다루는 내용이 메일로 왔다.


Tal, læs, forstå og skriv dansk på avanceret niveau! Vi træner dine færdigheder i læsning, skrivning og mundtlige præsentationer på et niveau, der svarer til akademisk dansk. Vi læser tekster om videnskabelige emner, bl.a.:

  • grøn teknologi
  • nyhedsformidling
  • arbejdsmarked i forandring
  • aktivisme
  • demokrati

Du får øvelse i forskellige sproghandlinger:

  • at argumentere
  • at perspektivere
  • at ræsonnere
  • at eksemplificere

주제를 보아하니 재미있는 것도 재미없는 것도 있는데, 내 재미로 수업을 듣는다니 보다는 언어 계발을 위해 가는 거니까 꾸역꾸역 가본다.

이번에 반이 두반밖에 안열려서인지 이미 한반은 대기자명단이 생겼다. 내가 등록한 반은 저녁 7시에 시작하는 반이라 그런지 조금 더 늦게 채워지려나 보다. 하나를 픽업하고 밥 먹이고 재울 준비하고 학원에 가려면 7시 반이 이른 시간의 반보다 낫기도 하고 일을 시작하더라도 그게 더 낫다. 겐토프트에 있는 다른 어학원(헬러럽)은 겐토프트시 지원금으로 무료로 다닐 수 있긴 한데, 저녁반은 오후 5시 반에 시작해서 영 부담스럽고 오전반은 하나가 아프기라도 하면 쉽게 빠지게 될 것 같아서 별로다. 그리고 모듈 1, 2를 들어본 경험으로는 좀 루스한 분위기다. 과거에 스투디스콜른으로 옮겼을 때 타이트한 커리큘럼에 대한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기억나서 가급적이면 스투디스콜른에 머무르고 싶다.

8월 14일 시작이니까 부모님 방문하시기 직전부터 시작이다.

논문 디펜스를 앞두고 있을 시기인데, 생각만 해도 타이트하군. 컨퍼런스 발표도 있는데… 그래도 이때 시작 안하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하니까 그냥 무턱대고 등록했다. 저지르고 보면 또 해결이 되는게 사람 일이니 그냥 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