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공부에 있어서 발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내게 가장 오래된 취미는 언어공부다. 스트레스를 간간히 받지만서도 어려서부터 지금껏 꾸준히 즐겨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언어공부. 아빠는 나보고 언어학을 하면 잘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간간히 하셨는데, 내 생각에도 그랬을 거 같다. 다만 밥 벌어 먹고 살기 꽤나 빠듯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쪽으로 갈 생각은 들지 않았고, 이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언젠가 싫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굳이 업으로 삼지 않아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영어에 대한 호기심은 기억이 나지 않는 때부터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기억 나는 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읽지도 못할 영어 원서 아동서적을 샀던 경험이다. 사실 내 나이 또래 애들이 읽을 법한 책을 영어도 모르는 내가 샀으니 읽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또 초등학교 때 해외에 잠시 살다온 친구들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가졌던 게 기억난다. 특히 기억나는 건 상민이라는 아이. 짝궁이었는데 그 애가 미국에서 살다왔다는 것을 알고 이것 저것 말해보라면서 엄청 귀찮게 굴었던 게 기억난다. 그러다가 좋아하게 되서 더 귀찮게 했던 것 같다. 사촌이 미국에 가서 잠시 살았던 것도 이유였을까? 영어를 잘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동네에 생긴 작은 영어학원에 오빠와 함께 보내주셨다. 그때만 해도 회화학원이라는 게 거의 없던 때였는데, 주한 미군 남편을 둔 미국인 여자분을 선생님으로 해서 파일럿 반을 열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나와 오빠, 고위, 도위라는 형제, 그리고 2명 정도 더 있었는데 (세상에. 성은 몰라도 이름은 아직도 기억나는 악몽의 고위, 도위 형제.) 시작은 오붓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에게서 무슨 싹을 본 건지, 어느날 내 어깨를 붙들고 student를 계속 발음하도록 시켰다. 스튜던트, 스튜던트 하고 계속 발음할 때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 들어보라고 하면서 또박또박 말해주셨는데 갑자기 아하! 하는 순간이 왔다. 이 새로운 충격. 이 날을 계기로 내 발음에는 천지개벽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원어민 발음에 가까운 발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했던가. 고위, 도위 형제 뿐 아니라 오빠까지 합세해 발음 문제로 따를 당했다. 그게 싫었어도 영어를 배우는 게 너무 좋아서 열심히 다녔다.

중학교 때 3천명이나 되는 학생으로 버글거리는 명일여중을 다녔는데, 거기에 서울시 전체 중학교를 대상으로 5명의 원어민 교사를 시범사업처럼 파견하는 일이 있었다. 1학년 5개 학급을 대상으로 (총 17개 학급이었는데) 레베카라는 젊은 여선생님이 배정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 반도 이에 해당되었다. 덕분에 영어를 조금이나마 또 써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는 외고를 다녔던지라 영어와 전공언어인 중국어를 배워야 했는데, 언어학습에 대한 호감은 이때부터 커졌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항상 언어는 도구라고 하셨던 탓에 이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도구인 만큼 항상 가까이 해야한다고 하셨기에 참 열심히 했었다. 이때부터 시작한 게 녹음해서 발음 교정하기였다. 어디서 들었던 걸까?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들으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정말 다르다는 것을. 오성식의 팝스잉글리시였을까?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마침 오빠가 더이상 쓰지 않던 워크맨을 내가 빌려다가 녹음 기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집을 풀면서 지문을 읽을 때 그냥 읽는게 아니라 소리내어 읽으며 녹음하고 그걸 들으며 발음을 확인하곤 했다. 귀로는 원어민의 발음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내 발음과 원어민 발음의 차이를 메워보고자 뭔가 이상하게 들리는 단어는 적게는 한두번에서 많게는 수십번까지 다시 연습했다. 가장 어려운 발음은 elderly에서 처럼 rl이 겹치는 거라던지, ee나 ea처럼 입을 옆으로 쫙 찢어서 발음해야 하는 장모음 등이었다.

영어를 그렇게 하다보니 중국어도 그렇게 하게 되었고, 한자를 잘 못외워서 그렇지 말도 곧잘 하게 되었고 발음도 좋아졌다. 고등학교를 끝으로 중국어를 놔서 그렇긴 하지만, 스키캠프에서 만나 친해졌던 중국친구 짱펑과 국제전화 및 편지 교환을 통해 실력을 많이 늘리게 되었고 한때는 중국어 실력이 영어보다 좋았던 때마저 있었다.

취직해서 바쁘다보니 오랫동안 더 많은 언어를 공부하긴 어려웠지만, 그간 마음만 두었던 불어가 계속 눈에 밟혀 KOTRA에 다니던 동안 불어 공부도 1년간 했다. 매일 최소 한시간씩 꾸준히 하며 전화 불어도 하고, 프랑스 친구와 언어교환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더니 나름 대화도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발음은 어찌나 중시했는지, 언어교환하던 친구도 네 언어 실력과 발음간에는 아주 큰 격차가 있다며, 발음만 잠깐 들으면 불어 잘하는 줄 알겠다고 농을 했다.

덴마크 오면서 불어는 다시 내려놓고나니 덴마크어에 눌려서 불어는 이제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쉽다. 불어는 나중에 덴마크어 공부가 끝나면 다시 배우는 것으로 해야지. 아무튼 불어에 이은 언어는 덴마크어였다. 옌스 만나기 전까지 배울 일 없다 싶으면서도 동료에게 이런 저런 발음만 조금씩 배워두고 있었다. Rød grød med fløde 이라는 외국인들이 모두 하기 힘들어한다는 이 tongue twister를 열심히 연습한다던가, 일방통행이라는 뜻의 ensrettet 표지판을 볼때마다 읽어댔다. 이런 발음에 대한 나의 열정을 아는 옌스는 발음 교정에 적극 동참해주었고, å라는 모음을 정확히 읽을 때까지 1년 반동안 수없이 고쳐주었다.

언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각자 언어 공부에 대한 원칙이 있겠지만 나에겐 발음이 첫번째 중요 요소이다. 발음은 굳어지면 굳어질 수록 교정이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고 또 그렇게 해서 발음이 좋아지면 듣기가 많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발음이 나쁘다고 해서 언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도구이기에 발음이 아주 심각해서 원어민이 못알아들을 정도가 아니라면 발음보다는 컨텐츠가 중요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학습의 관점에서 발음이 좋아지면 귀가 빨리 트인다. 귀가 빨리 트이면 학습의 방법이 다양해질 수 있다. 라디오도 듣고, 영화, 텔레비전도 보고. 그리고 내 말을 상대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니 못알아듣는다고 속상해하는 기간을 최대한 짧게하고 일상생활에서 연습을 많이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꾸 그렇게 연습하다보면 모르는 단어를 봐도 사전을 찾아보기 전에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대충 감이 잡히고, 사전 찾아보면 내 추측이 맞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자주 녹음해서 듣지는 않지만, 몇개월에 한번 씩 발전상황을 점검해보고자 녹음을 해보곤 한다. 오늘 5~6개월만에 신문 아티클 하나는 읽어보고 들어보니 지난번에 있던 실수들은 거의다 없어져서 이제 외국인 액센트가 거의 없어졌더라. 남편이 아주 간혹 몇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 빼면 발음만으로는 원어민 같다고 하더니 드디어 발음은 거의 완성이 된 것 같다. 3년 반에 가까운 시간이니 길다면 길 수 있지만, 영어에 비해서는 훨씬 빠른 시간내에 도달했다. 그리고 주로 뉴스를 많이 듣고 공부한 발음이라 또박또박 듣기에 좋은 발음이라는데 듣기에 좋았다.

솔직히 국제결혼을 할 때만 해도 내가 이 사회에서 이 나라 말 잘 해가면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한 건 아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진 정해진 건 없지만서도 이 나라 말 잘 하고, 사람들 속에 잘 녹아들어 사회에 짐 되지 않는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데 문제가 없겠다는 걸 확인 한 작은 순간이다. 살다보면 중간 중간 vulnerable해질 수 있기에 스스로에게 작은 확신 같은 것을 줄 계기 같은 것이 필요한데, 아직 취업시장에 나서지 않은 나에게 언어는 일종의 최면술 같은 거다.

언어 공부엔 왕도가 없이 무지막지하게 열심히 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지만, 열심히 하는 게 책만 파야된다는 게 아니라 놓지 않고 계속 해야한다는 것이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생각한다. 요즘 덴마크어 어떻게 공부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것 저것 잡다하게 들려주다보니 그 핵심엔 1. 발음 연습과 (발음 연습 하는 게 따로가 아니라 공부하면서 같이 하는 형태의 연습), 2. 모르는 컨텐츠라도 시간을 많이 내서 시청하기 (드라마, 영화, 뉴스, 토론 – TV/라디오 형태), 3.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더이상 해당 언어로 대화하기에 뇌에 부하가 걸릴 때까지 그 언어로만 대화하기, 4. 혼잣말 할 때 (속으로든 겉으로든) 그나라 말로 말하기. 5. 자기 전엔 신문 읽기 등이 있는 것 같다.

아직 내 덴마크어엔 갈 길이 멀지만 이제 중급은 거의 졸업한 것 같다. 사실 오늘 녹음을 해서 들어본 이유가, 요즘 덴마크어로 남과 대화하는 데 거의 문제가 없어진 것 같아서였다. 언어의 발전이 계단식으로 이뤄진다는데 그 한 계단을 더 올라선 것 같다.

옌스가 이제 덴마크어만 하지 말고 자기 한국어 더 열심히 도와주란다. 내가 바쁘다고 자기 한국어 안도와준다면서 투정을 하는데, 정신 차리고 열심히 도와줘야겠다. 물론 내 살 길도 찾아가면서.

Hannah startede i vuggestuen!

 

Hannah er nu lidt over 10 måneder og kan meget mere end før. Det føles som om, hun har været sammen med os for altid, selvom der kun er gået 10 måneder. Tiden er gået meget hurtigt. Det er meget sjovt, at det føles sådan, fordi jeg nogle gange klagede over, at tiden gik rigtigt langsomt efter fødslen. Måske var det fordi, det var ret fysisk hårdt at passe et lille barn, der ikke kunne gøre så meget selv. Jo hun kan stadig ikke så meget – hun er kun 10 måneder – men hun er ikke længere bare en baby. Hun er næsten en tumling!

Hun startede officielt i vuggestuen i går, hvis jeg ikke regner det første uofficielle besøg i mandags som den første gang. Det gik udmærket. Hun havde det sjovt og kravlede hele vejen rundt i vuggestuen. Hun så ud, som om hun godt kunne lide at lege med andre børn eller i hvert fald at være sammen med dem.

Nogle gange kunne jeg mærke, at andre børn udviste lidt aggressiv adfærd, mens pædagogerne ikke kunne mærke det på situationen. Der var, for eksempel, en dreng, der var lidt aggressiv generelt og skubbede Hannah og trådte på hendes fod. Jeg blev nødt til at sige, at han ikke måtte gøre det, og tog hende væk fra ham. Men det kan altid ske, og jeg kan ikke være der altid for at beskytte hende fra den slags situationer. Der er mange af mine venner, der selv har børn, som har fortalt mig, at jeg skal vænne mig til at se hende komme hjem med nogle skader i forskellige grader, store eller små. “Det gør ondt at se hende blive skadet, men det er den måde, man vokser op på.”, sagde de. Ja. Der er også det udtryk, at man bliver klog af skade. Hun vil også blive klog på den måde. (Men det er jo nemmere sagt end gjort!)

 

거절, 덴마크어, 이방인

거절에 익숙해지는 건 연습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거절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또한.

요즘 졸업한 동기들을 보면 스웨덴인과 덴마크인을 제외하고는 직업을 찾지 못했다. 신문에서는 전문직의 구인난이 계속되고 있다는데, 그건 결국 이나라 말을 할 수 있을 때나 해당하는 것인 모양이다. 졸업한지 3개월동안 구직을 하면서 인터뷰 조차 하지 못한 동기들은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다. 학업을 하는 동안 덴마크어를 하지 않은 것을 엄청 아쉬워하고 있는데, 덴마크어 수업 등록하는 것도 실업급여 받는 동안 처음으로 강좌신청할 경우 원하는 학원에서 못듣고 잡센터에서 운영하는 학원으로 가서 들으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나마도 듣고 싶다고 신청을 했는데 아직 답도 못듣고 있다면서 분통을 터뜨리는데 마음이 안스러웠다.

덴마크어를 못하면 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덴마크어에서 손을 놓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래봐야 중상급. 일터에서 덴마크어를 쓰기엔 부족하다. 그나마 대학원으로 바빠 힘들다면서도 덴마크학원을 꾸준히 다녀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힘들 때 밀어부쳐야 오히려 더 하게 되는 거 같아서 2월부터 다시 다녀보려 생각중이다. 1년에 2번 보는 PD3라는 시험이 있는데 이걸 좋은 성적으로 통과해야 마지막 모듈을 들을 수 있다. 그 뒤에 있을 대학입학 요건 같은 Studieprøven이라고 최종 어학시험을 대비하는 모듈인데, 읽기와 쓰기를 인텐시브하게 가르친다고 한다. 여름 후 취직이 바로 안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 그 때 이 모듈을 들어놓으려면 5월엔 PD3를 봐야할 것 같다.  옌스한테도 주 2회 저녁 7시 수업은 감당할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할 수 있단다.

수업과 시험은 수업과 시험이고. 실생활에서 쓰지 않으면 언어는 늘지 않는다는 것이 경험에서 나온 신조인지라 이제 새로운 레벨로 시도해보기로 했다. 논문 데이터 수집부터 덴마크어로 연락을 하기로 했다. 대충 시나리오를 짜 놓고 전화하긴 했지만, 전화란 게 나 혼자 떠드는 게 아니라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수업자체가 영어로 진행되기에 이에 해당하는 용어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나중에 나에게 피가되고 살이 될 경험이라 생각한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콜드콜을 걸어 나는 어떤 공부하는 학생인데 데이터 필요하다고 도와달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거절하는 사람이 많은데다가 꼭 친절하게 답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전화거는 방법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니 우리말로 해도 긴장될 상황이다. 이 와중에 덴마크어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너무 혹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아니면 오히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려다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머리속이 복잡하다. 누군가는 엄청 차갑게 우리는 그런 데이터가 없고 여기랑 여기 같은데서나 받을 수 있을텐데 네가 그것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답하기도 하고 누구는 도와주겠다고 하기도 한다. 당신이 말한 곳이 어디랑 어딘지 다시 말해주겠느냐, 내가 외국인이라 잘 못알아들었다 라고 재차 물어도 빠르게 말해주면 머쓱해지기도 하지만 아쉬운 건 나니까 철판 깔고 다시 들이밀었다.

차가운 반응이나 거절의 통화를 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기분이 조금 그렇다. 그럴 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며, 거절은 원래 당하는 거라며,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중얼거린다. 점심때 만난 대학원 동기들에게 이야기했더니 거절에 곧 익숙해질 거라며 친절한 투로만 말했지, 닥치고 꺼지라는 내용을 들은 일도 많다고 이야기해준다. 엄청 위로가 된다. 거절에 익숙해질 거라니. 강해진다는 내용이잖아.

코트라 다닐 때만 해도 거절을 당하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뭐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살면서 거절을 별로 당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이제는 여기 이민자로 거절 당할 일이 수두룩 빽빽할텐데 하는 마음가짐이라 그런가? 거절에 조금 무뎌지는 거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럴 일을 줄이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다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는가. 직업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이 공부해봐서 아는 우수한 친구들도 말이 안되니 인터뷰조차 못보는데.  논문 쓰면서도 그런 트레이닝은 많이 받겠지. 예전엔 거절당할 것 같은 일, 안될 것 같은 일은 하기 정말 싫어하면서 하거나, 피할 수 있으면 피했다. 지금도 그런 성향은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안될 거 같아도 해보면 되는 일들이 있으니 우선 부딪혀보자고 들어가는 것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예전엔 하다가 중단하면 이미 완벽함에서 망쳐졌으니 다시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게 낫다는 주의가 되서 끈기가 조금 늘어난 것 같다.

다시 덴마크어로 돌아와서… 중상급에서 언제까지 안주하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라디오 청취를 다시 시작했다. 어디고 이동할 때는 핸드폰을 보지 않고 라디오를 듣는 것이다. 국영방송 제1라디오를 들으면 주로 뉴스와 시사, 교양프로그램, 토론방송 등을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동기부여가 되긴 하지만, 자막과 그림이 있으니 듣기에 온전히 집중을 하지 않게된다. 그리고 라디오는 끊임없이 떠드니까. 국영방송이라 광고도 하나도 없어서 정말 공부하기엔 최적이다.

신문읽기도 하루에 최소 신문 한면 정도는 보도록 하고있다. 예전보다 읽는 속도가 늘어나서 신문읽기가 수월해졌다. 어휘를 따로 외우려는 노력은 안하고 끊임없이 찾다보면 외우게 되는 식으로 단어를 공부한다.

덴마크어를 가까이할 수록 한국과는 멀어진다. 한동안 엄마아빠가 뭘 이야기해도 대충 한국사정은 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 지진난 이야기도 남이 해줘서 알게되고. 하나가 있고 학업도 있으니 정말 딴 짓 하기 힘들다. 운동도 어디 가서 하긴 어려워서 애 잠들고 나면 화장실가서 스쿼트를 포함해 15분정도 간단한 맨몸을 활용한 트레이닝을 하는 게 전부다.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건 팍팍한 일이다. 그렇지만 모든 거절이 내가 외국인이라서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거절은 내 나라에서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 거절에 대해 생각해보던 어제 친구에게 언제쯤 이곳에서의 삶이 이방인의 삶으로 느껴지지 않을 거 같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정확히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이방인의 삶을 사는 건 틀림없으니까. 그렇지만 처음보다는 지금이 더 여기를 집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덜 이방인처럼 느끼게 되는 것도 분명한지라 앞으로 계속 살다보면 여기가 진짜 내 고향 같아지지 않을런지.

 

4 år i Danmark.

Der er gået 4 år, siden jeg kom til Danmark. Allerede. Hvis jeg ikke havde været blivet gift eller havde mødt Jens, skulle jeg rejse tilbage til Korea på nuværende tidspunkt. Livet har ændret sig utroligt meget, efter jeg mødte Jens. Jeg kan ikke forestille mig, hvordan livet kunne være, hvis jeg ikke havde mødt ham.

Jens spurte mig, om jeg troede, at jeg kunne tale dansk så godt, som jeg kan nu. Det vil tage mere tid, at mit dansk bliver bedre end engelsk, men i hvert faldt tror jeg ikke mere, at det er umuligt.

Da jeg boede i Indien, var jeg ikke så glad. Jeg vidste ikke, at jeg elskede naturen, inden jeg flyttede til Indien. Hvor jeg boede, Gurgaon, en del af New Delhi omegn, var der ikke så mange træer. Det var for varmt både for mig og træer. Oven i det, blade var for små eller slanke, og de var dækkede af tør jord og støv. Jeg kunne ikke se grøn farve nok på træerne. Der var også for mange mennesker i alle steder. Det var meget stressende.

Nu bor jeg i Danmark, hvor der er masser af træer og grønne områder. Der er havet tæt på hvor jeg bor. Det tager kun 15 minutter på cykel til østersøen. Faktisk er der ingen sted i Danmark som er mere end 50km væk fra kystlinje. Jeg elsker køligt vejr, og det er næsten altid køligt her. Jeg kan godt lide dansk vejr. Folk er venlig og rar. De har lidt tør humor, som passer meget godt for mig. Der mangler kun bjerge. Men man kan ikke have alt. Jeg er meget tilfreds med, hvad jeg har her og nu, specielt fordi jeg har min mand og datter. De er to vigtigste personer i mit liv, som jeg ikke kunne møde, hvis det ikke var Danmark, jeg flyttede til.

Jeg læser nu på universitet for min kandidatsuddanelse. Det er ikke et rigtigt job. Den er en ting jeg mangler. Jeg skal tale bedre dansk for at få et job nemmere. Men jeg tror, det kommer. Forhåbentlig kommer et job med sproget.

Knap seks måneder efter fødslen

Min datter, Hannah, er knap seks måneder. Det er utroligt. Det har været allerede seks måneder, siden jeg har født hende. Tiden går så hurtigt som lyn, dog der var nogle tidspunkter, at der føltes, som det gik så langsomt. Min veninde, der har to børn selv, fortalte mig, at det ville være en lang tid, der flyver. Det var bare rigtigt.

Nu kravler hun, og det udvider hendes verden helt vildt meget. Hun opdager noget nyt hver eneste gang og lærer noget ud af det. Man kan godt se, hvor meget hun er stolt af sig selv, når hun står op. Jeg syntes, at det var ikke forstående, da jeg så andre forældre, som var så glade med deres børn, fordi børnene gør noget nyt eller smiler: ‘Hvordan kan de være så glade med deres børn? Er det rigtigt, at børn gør dem så glade, at de opdater alle mulige små ting om deres børn på Facebook eller Instagram?’ Ja. Det kan jeg så godt forstå nu. Ja, jeg ved det godt, at jeg er en pinlig mor, som er stolt af min datter for ingenting. Der er nogle ting, man ikke kan forstå, inden man oplever den selv. Børn er én af de ting, jeg tror.

Jeg er taknemmelig, at jeg kunne have disse værdifulde oplevelser i mit liv på grund af Hannah. Jeg lærer at kende min mand, Jens, og mig selv endnu bedre fra oplevelserne, og det gør mig at være eller prøve at være en bedre person. Jeg glæder mig meget til vores fremtid som en familie, os tre.

4년만에 덴마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덴마크에 살기 시작한 지 거의 4년이 되었다. 만약 계속 코트라에 계속 다녔더라면 돌아가야 할 시점이었겠지.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지면서도 그것밖에 안되었나 싶은 모순된 감정이 가로지른다. 인생에 전혀 계획하지 못했던 일들이 무수하게 벌어졌으니 역시 살아봐야 아는 게 인생이구나.

 

앞으로 어떤 생각이 들런지는 또 지내봐야만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난 덴마크의 삶이 참 잘 맞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인도로 첫 발령받기 전까지 한번도 해외 거주 경험이 없었으니 참으로 토종 한국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이방인 같은 느낌으로 살았었다. 여기와서 옌스를 만나고 결혼을 해 하나를 낳고 친구들도 생기고 하니, 나답게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그냥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덴마크 사람들과 케미가 잘 맞는다고 해야할런지. 덕분에 뿌리를 내리기에 참 좋은 토양이다 싶다. 물론 옌스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덴마크 사회로 진입하기에 이런 가족과 같은 연결고리는 정말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경험해보니 정말 그렇다.)

 
출산하고 애를 키우며 지난 오개월 사이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학교 다니면 영어 쓰는 시간이 지배적이고 저녁에도 공부하느라 덴마크어가 소홀해진다. 그런데 애 보면서 토막나는 시간에 공부하기가 잘 안되니(조금 핑계같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방송 간간히 보고, 신문 읽고, 엄마그룹 모임 하고 했더니 몰입환경이 조성된 걸까? 듣기가 확 트이고, 어휘도 늘고 하다보니, 말문이 눈에 띄게 트였다. 물론 듣고, 읽고 이해하는 폭이 말하거나 쓰는 폭보다 넒기에 덴마크어로 보고서를 유창하게 써야 하는 일을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덴마크어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방송시청과 신문 읽기가 어렵지 않아왔으니 말이다. 출산 시점을 돌이켜보면 그땐 영어로 하겠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밖에서 영어를 쓰는 일이 없다.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든, 엄마그룹을 만나든, 뭔가 상담을 받든 말이다. 옌스와의 대화도 95% 정도는 덴마크어를 쓰니.

 
작은 나라라서 그런가? 말이 되면 엄청 좋아하고 환대해 주며 사회의 성원으로 빠르게 받아들여주는 점은 한국과 덴마크가 같다. 요즘 덴마크 사회에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부쩍 받는다.

 
논문이 끝나면 직장을 구해야 할텐데 이제 걱정은 한켠으로 접어두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환경경제쪽으로 직장을 꼭 잡고 싶은데 안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접었다. 내가 공부를 다시 한 목적은 직장을 잡는 자체에 있었고, 내가 덴마크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물론 좋은 성과를 내고 졸업한다는 전제하에 그 기간동안 덴마크어도 가다듬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에 든 힘도 좀 빠졌나? 내가 앞으로 뭘 하든 밥값만 하면 되지, 꼭 좋은 직장 잡아서 잘 다녀야 하는 거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드니, 설마 직장 하나 못잡겠나 싶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밸류 프로포지션만 명확하면 직장은 잡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마음에 드는 직장을, 아니면 그냥 밥벌이라도 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아마 이 모든 느낌은 더이상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드는 것 같다. 옌스 가족과 친구, 내 생활 반경 속 사람들에게 그냥 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나니 그냥 이대로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랄까? 한국에서 갖고 있었던 뿌리깊은 자기증명 강박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내 부모와 가족, 친구가 멀리 있는 건 아쉽지만, 난 내가 뿌리내릴 토양을 지구 반비퀴를 돌아 찾아온 느낌이다. 나에겐 이제 고향이 두 곳이다. 둘이 같을 수는 없지만 다른 의미로 아주 중요한…

24 Jan 2017, Berlingske

»Der er ingen, der har lyst til at være den, der henter børnene sidst i børnehaven«


Danske forældre henter og bringer deres børn imellem klokken otte og 16. Men deres arbejdsliv foregår på alle tider af døgnet. Er det på tide at gøre daginstitutionernes åbningstider endnu mere fleksible?
MANDAG D. 23. JANUAR 2017 KL. 17:00

Det har altid været sådan. Mellem otte og ni er der gang i morgentrafikken hos landets daginstitutioner, og mellem 15 og 16 dukker forældrene op igen for at hente de små.
Ude i de danske familier fortsætter arbejdet dog alligevel: Man går til møder om aftenen, ringer til en kollega efter spisetid og svarer på vigtige mails efter børnene er blevet puttet.
Bruger de danske forældre så muligheden for at få passet børnene tidligere og senere?

En ny undersøgelse fra KORA bestilt af Børne- og socialministeriet her forud for regeringens dagtilbudsudspil til foråret, viser, at landets kommuner oplever en begrænset efterspørgsel efter pasning udenfor almindelig åbningstid.

Aften-, natte- og weekendtimer bliver sjældent benyttet. Det gør pasning i de tidlige morgentimer til gengæld hos de kommuner, der tilbyder det.
Børne- og socialminister Mai Mercado ser det bånd, som forældre lægger på hinanden, som en af forklaringerne.
»Forældre måler sig op imod hinanden. Der er ingen, der har lyst til at være den, der henter børnene sidst i børnehaven. Derfor ligger der det her pres. De fleste har en fuldtidsplads og derfor har forældre også en opfattelse af, at man skal aflevere tidligt om morgenen. Forældre er meget præget af en 8-16 kultur. Den må man godt give lidt slip på. Vi skal også tænke i løsninger, som passer bedre til forældrenes behov,« siger hun.

‘foregår take place, happen, go on, be in progress
foregår på be conducted in
gang walk, gait, step, course, progress, march, passage, aisle, corridor, hallway
være gang i take place, be busy
dukker op turn up, come up, show up
bliver puttet be tucked in, be laid on the bed
forud ahead, beforehand, in advance
udspil

(-let, -, -lene)

proposal, move, gambit, initiative, lead
en efterspørgsel efter – a demand for –
bånd band, ribbon, string, twine, hoop, tape, tie, restriction
opfattelse

(-n, -r, -rne)

perception, idea, conception, opinion, view, interpretation, comprehension
præger characterise, mark, permeate, pervade, impact on,
være præget af – be marked by -, be accompanies by -,
slip break, slip, slippage
give slip på – relinquish –
løsning solution, resolution, answer, settlement

http://www.b.dk/nationalt/der-er-ingen-der-har-lyst-til-at-vaere-den-der-henter-boernene-sidst-i

연극 Svantes Lykkelige Dag (스반테의 행복한 날)

모듈 2였나. Svantes Lykkelige Dag라는 시를 수업 중에 접한 것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운율에 대해 배우며 어떤 상황을 묘사한 것인지 해석하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만 기억난다. 많은 덴마크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 시에 대해 그 때 가졌던 인상은, 인생의 소소한 기쁨에 즐거워하는 덴마크인을 상징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Nørreport역에서 환승을 하다가 바로 아래의 사진과 함께 적힌 이 시의 제목과 마주쳤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Anders W. Berthelsen이 주연을 맡는 것을 봐서 더 눈에 띄었다. (이 배우는 덴마크에서 시작된 dogma 95 – 교리에 가까운 원칙과 순결선언문을 기반으로 한 특별한 영화제작방식 – 영화 (Festen, Mifunes Sidste Sang, Itanliensk for Begyndere 등) 에 많이 출연했고, Krønikken을 포함해 다수의 TV 시리즈에도 출연했다.)  연극!

덴마크에서 본 첫번째 연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었다. 덴마크어로 된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읽지않고 발레 공연을 예매한 줄 알았던 것이 하필이면 연극이었다니. 덴마크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고, 덴마크어라고는 인사 외에는 아는 게 없던 시기였다. 발레를 먼저 고르고 2013-2014 시즌을 선택한 줄 알았더니, 그 시즌이 발레의 하위카테고리가 아니었다. 그냥 별개의 카테고리였는데, 내 멋대로 한국 웹사이트 방식에 익숙한 사고방식을 여기서 그대로 적용해 그렇게 이해한 것 뿐이었다. ‘악령을 발레로 해석하다니! 정말 흥미진진하겠는걸?’ 이라는 생각으로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예매한 것이 실수였다.

그걸 뒤늦게 알고나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갔는데, 그건 내 말도 안되는 착각이었음이 극 시작 후 10분만에 드러났다. 우선 원작을 그대로 상영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적 배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70년대를 풍미하던 히피즘을 배경으로 다 바뀌었는데, 음악도 파격적이고, 덴마크 극 문화를 전혀 모르던 내게는 무대 장치부터 너무 생경했다. 스토리를 모르는 것도 그렇지만, 극의 진행으로 미루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는 것 조차 힘들만큼 어려웠다. 등장인물은 또 어찌나 많은지. 러시아문학의 특성을 고려해봐도 그렇긴 하지만, 난 그 난해함에 압도되어버렸다.

결국 1시간 30분동안 앉아있다가 인터미션 때 도망을 치고 말았다. 더이상 남은 한시간 반을 그런 멍한 정신상태로 앉아 낭비할 수 없었다.

그랬던 나의 덴마크 첫 연극 감상은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더랬는데, 또 연극이라니! 그런데 자막이 나온단다. 영어, 덴마크어 그리고 아랍어로. 남편은 연극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혹시 가겠냐고 물어보니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가주겠다고 했다. 기대한 바 그대로여서, 우선은 다른 사람을 먼저 찾아봐야겠다 싶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 한번 가보자고 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승낙을 했다.

La Petanque에 들러 간단히 걀레뜨로 식사를 하고 호수를 건너 Nørrebro로 향했다. Nørrebro의 메인 거리인  Nørrebrogade만 보고 이 지역을 힙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약간 지저분한 지역으로 알고 있던 그녀는 이 메인거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퍼진 작은 길들에 Hyggelig한 가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어 좋다고 했다.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나와 옌스의 생활반경에서 약간 벗어나있어 친구들 만나는 거 아니면 안가게 되는 이 곳. 오래간만에 목요일 (작은 금요일이라고도 불리는…) 에 나가보니 그 릴렉스한 분위기에 나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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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외관

8시에 시작하는 연극에 맞춰 극장에 들어서니 안이 정말 아늑했다. 연령대가 높은 관객이 주를 이루고 있는 듯했으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아마 이 시를 발간되고, 사랑을 받았던 시기가 70년대라 주 관객층도 이 시를 즐겼던 당시의 젊은 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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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내부 휴게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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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연극이 시작되었다. 어라? 그런데 자막은? 자막이 나올만한 구석도 없는데다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자막을 볼 수 있는 앱이 따로 있단다. 그냥 자막이 나온다는 한 줄을 보고 그 아래 부연 설명을 잘 안읽은게 함정이었다.)

아뿔사. 나는 그렇다쳐도 내 친구는 어떻게 하나. 살면서 연극을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이게 3번째 정도 되는 거라고 했는데, 나의 덴마크 첫 연극과 같은 경험을 안겨주게 되나? 그녀도 덴마크어를 배우고 있으니 이해할 수 있을까? 연극이 시작되며 내가 이해되는 양을 보아하니 그녀에겐 조금 더 어려울 텐데 과연 괜찮을까? 등등…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이 빠르게 교차했다.

그나마 그녀는 연극에 대해 읽어보고 왔고, 나는 아무런 배경지식을 쌓고 오지 않아서 비슷하게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연극은 Benny Andersen이 이 시집을 쓰며 마주한 자기 자신과는 다른, 자기가 닮고 싶고, 지향하고 싶은 인격, 마음 속의 갈등, 이런 것들을 가상의 친구인 Svante로 만들어냈던 것, 그리고 이 Svante와 자기의 진정한 모습이 만나 화해를 하며 온전한 자신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그린 것이었다. 결국 Svantes Lykkelige Dag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그렸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1막이 끝날 때까지 Svante가 본인이 아니야? 그럼 누구지? 하면서 많은 혼란속에 보다가 인터미션에서 프로그램을 조금 읽어보고나니 대충 그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고, 머리속의 많은 혼란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았다. 2막이 시작되며 주인공이 Svante가 자기 속의 다른, 자기가 되고 싶어하는 지향속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 그리고 그 모든게 융해되어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는게 보다 명확해졌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한 Svantes Lykkelige Dag 노래가 얼마나 좋던지. 여주인공인 Lise Baastrup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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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장면

우리 말이었으면 보다 쉬웠겠지만, 한 사람의 내면 속 분화된 인격을 여러 인물로 상징적으로 분화시켜 극화한 것이기에 그 자체로도 조금 난해했었을 지도 모른다. 연극의 묘미란 극으로 풀어낸 상징을 찾아내는 데 있으니, 그 소기의 목적을 잘 달성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2막부터 뇌에 과부하가 걸려 집중력을 상실했다는 그녀에게 힘든 경험을 안겨준 것 뿐이려나 하고 마음이 다소 무거웠으나, 집에 돌아와 즐거웠다는 메세지를 보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좋은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다가, 앞으로 여러가지 문화 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를 찾은 것도 기뻤다.

Svantes Lykkelige Dag의 작가와 가수가 텔레비전 방송에서 라이브로 공연했던 영상, 그리고 그 시를 아래에 공유한다.

 

 

Svantes Lykkelige Dag

Se, hvilken morgenstund!
Solen er rød og rund.
Nina er gået i bad.
Jeg’ spiser ostemad.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lomsterne blomstrer op.
Der går en edderkop.
Fuglene flyver i flok
når de er mange nok.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Græsset er grønt og vådt,
Bierne har det godt.
Lungerne frådser i luft.
Åh, hvilken snerleduft!
Glæd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Sang under brusebad.
Hun må vist være glad.
Himlen er temmelig blå.
Det ka jeg godt forstå.
Lykken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Nu kommer Nina ud,
nøgen, med fugtig hud,
kysser mig kærligt og går
ind for at re’ sit hår.
Livet er ikke det værste man har
og om lidt er kaffen klar.

Benny Andersen 이 쓴 시는 1972년에 출간된 ‘스반테의 노래’ 시집에 실렸으며, 가수 Povl Dissing이 노래를 부르고 Benny Andersen이 반주자가 되어 1973년 LP판으로 발매되었다.

Source: http://www.festabc.dk/1/svantes-lykkelige-dag

 

사족. Povl Dissing이라는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른다기 보다는 그만의 매력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보는게 더 맞을 것 같은데, 사형수의 형집행 전 25분을 그린 아래의 노래를 보면 그가 얼마나 독특한 가수인 지 알 수 있다. 상황 묘사 후 아직 25분이 남았다, 아직 24분이 남았다, …, 아직 1분이 남았다, 하고 25번을 반복하다가, 마지막 상황 묘사를 마치고 음악이 멈추며 형이 집행되었음을 암시한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며 갈 수록 절박해져가는 그의 목소리에서 정말 형 집행을 앞두고 노래부르는 사형수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Modalverber – kunne, måtte, skulle og ville

at kunne bruges

  • om at have mulighed for noget
  • om noget, man har evner for eller har lært

 

at måtte bruges

  • om at have lov til noget
  • om en nødvendighed eller den eneste mulighed

Obs! I denne betydning kan måtte hverken bruges negativt eller i spørgsmål.

  • Der hedder det behøver ikke/behøver:
    • Klokken er ikke så mange, så vi behøver ikke skynde os.
    • Han behøvede ikke at arbejde hårdt for at blive færdig til tiden.
    • Behøver jeg svare på det?

 

at skulle bruges

  • om noget, som er planlagt eller styret af ydre forhold
  • når man stiller forslag
  • om noget, man har læst eller hørt
  • om en handling, der bliver vurderet, efter den er sket

 

at ville bruges

  • når man vil udtrykke et ønske eller en vilje
  • om noget, man ikke er sikker på eller om en forudsigelse om fremtiden
  • om en ikke-virkelig situation (irrealis)

 

Source: Birte Langgaard, 2015. Danske stemmer, pp. 146-147, Gyldendale

시누이의 박사 디펜스 방문기

덴마크의 박사과정은 3년이다. 연구가 늦어지거나 개인적 사정으로 쉬는 경우 이보다 길어질 수 있지만, 우선은 3년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이 설계되어 있고 펀딩 또한 이를 토대로 한다. 시누이는 5~6년 걸렸다고 들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게 어느새 2년 반 정도가 된 것 같은데, 남편의 인도와 러시아 주재에 동반하느라 나를 만나기 얼마 전에 덴마크로 돌아왔다고 했었다. 그러니 중간에 최소 4년 이상 쉰 것이다. 아이 셋의 엄마로 박사 과정을 마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잘 안간다. 물론 오페어를 하나 두고 있었다지만, 애들 픽업하고 생일 있으면 애와 어른 파티 따로 다 준비하고 명절때면 가족과의 모임을 자기네 집에서 하고 등등 정말 수퍼우먼같은 모습으로 산 것 같다.

시누이는 시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고 한다. 실제 시댁에 가 있으면 며칠동안 하루에 최소 한번은 전화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은 통화가 주를 이뤘지만, 간혹 조금 긴 통화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긴 통화 후 시어머니가 시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보는 시누이는 정말 멋진 여성이다. 항상 여름 햇살처럼 빛나는 환한 웃음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따뜻한지.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것도 보면 참 대단하다 싶고. 그렇지만 엄마가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는게 시누이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아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터라 시누이가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박사과정 중간에 해외로 나간 것도 그렇고, 애들을 학교에서 픽업하고 과외활동 하는 걸 지원하느라 같은 연구소에 있는 남자 동료들이나 양육의 문제가 없는 동료들처럼 연구와 커리어에 더 몰입할 수 없는 것 등 말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연구원으로서 모든 일을 잘 해내려고 하는 그녀가 여러모로 힘든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박사과정의 디펜스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퍼바이저와 오포넌트 말고도 연구소 동료, 친구, 가족이 온단다. 그간 고생한 것을 치하하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좋은 선물도 준비하고. 옌스는 이번 주 또 출장을 가 못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몰랐을 땐 그냥 안타까워하는 옌스를 대신해 내가 가야겠다 싶었는데, 안갔으면 영 그랬겠다 싶다. 미리 내가 가겠다고 한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갑을 하나 샀다.

디펜스는 바로 오늘 오후 2시 반. 시내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있단다.덴마크의 가장 큰 병원인 Rigshospital 예방의학과에서 고환암을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곳에서 디펜스를 한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경주용 자전거를 타다가 경추에 금이 가 본홀름에서 이곳으로 헬리콥터 후송되셨던 일이 있다. 이 곳에서 처음 시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번엔 시누이 일로 와보게 되었다. 여긴 시댁 일 아니면 올 일이 없는 병원인 모양이다.

본홀름과 스웨덴을 오고가는 페리 스케줄이 가을부터는 오전, 오후 두편만 있기에 아침 열시에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했다. 지난 두주간 정신없이 바쁘고, 옌스가 출장을 두번이나 가 나 혼자 있었기에 집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다. 사실 정리정돈 잘하고 설겆이 밀린 것 없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기에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는데, 시부모님 오신다니 싹 다 청소를 해둬야겠다. 어제 저녁에 못해서 아침 여섯시부터 일어나 식사하고, 엄마와 페이스타임 삼십분한 뒤, 청소하고 화장 끝내니 딱 도착하셨다. 항상 그렇시듯이 초콜렛이며 잼 등 작은 선물들을 갖고 오셨는데, 이번엔 특별히 아이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길 바라며 시어머니의 할아버지가 어딘가에서 발견하셨던 1700년대의 금화 한닢을 옌스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셨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것을 보다니 덴마크에 살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한다 싶었다.

임신상태의 경과를 포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병원으로 향했다. 점심은 병원의 카페테리아에서 가볍게 하고 컨퍼런스룸으로 갔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와있었는데, 시누이의 45분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 오포넌트 2명의 오포지션까지 총 2시간 30분을 모두 꼼짝없이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임신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은 자리, 딱딱한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던 적이 없던지라 허리도 좀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오랜 기간 연구한 성과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실제 박사과정 디펜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는 것, 오포넌트가 어떻게 디펜스에서 논문에 챌린지를 하는지 보고 듣는 것, 다 흥미로웠다. 나중에 내 석사논문 디펜스에 대해서 감을 잡아볼 수도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애 셋을 돌보며 세개의 manuscript를 성공적으로 저널에 등재하고 (그 중 하나는 세계적인 저널에 등재되었단다.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이었나? 아무튼 옌스가 이 저널을 모르냐길래, 당신은 보건경제학자니 아는거고, 나는 환경경제학자라 모른다고 해줬다. – 환경경제학에서 유명한 저널이 뭔지도 난 사실 모른다. 흠흠.) 1년전에는 Young European Sceintist 상인가 뭐도 타서 유명 컨퍼런스에서 발표도 하고 그랬단다. 뭐랄까, 약간 허허실실한 타입이라 잘 몰랐는데, 그 상 탔을 때 이야기 들어보니 항상 열심히 하고 꼼꼼하고, 성과욕도 많아서 뭐든 잘한다고 한다. 사실 그러니 애들과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게 얼마나 스트레스도 될까 이해도 된다.

발표도 여유있게 잘하고 디펜스도 정말 잘해서 누가 봐도 성공적으로 디펜스를 마무리짓는 것을 보았을 땐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내가 박사학위 받는 것도 아닌데 내가 다 뿌듯해졌다. 이번에 고환암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계량경제학 때 배운 내용들이 회귀분석에 사용된 가정이나 방법론 등을 논할 때 다뤄지는 것을 보며, 이런 내용을 몰랐다면 강의를 들어도 크게 이해가 안되었을텐데, 하면서 배우는 만큼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기도 한 고마운 순간이었다. 옌스에게 잘 끝났다고 문자를 하니, 큰 오빠가 자랑스러워 한다며 축하해주라고 하며 정말 기뻐하더라.

디펜스 결과가 박사학위 수여 커미티에게 모두 만족스러웠다는 발표가 이뤄지며 디펜스가 마무리 되었으며, 대학교 측에서 준비한 리셉션을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프리카델라, 샌드위치, 과일과 케이크 등 먹을 거리 뿐 아니라 여러명의 축사와 시누이의 감사인사말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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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중 시누이네 가족

맛있게 먹으며 시누이네 이웃, 시누이 생일 때 만났던 시누이 어릴 적 친구와도 만났는데, 시누이 친구가 Dong energy에서 풍력발전으로 일을 한다길래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독일인이라는데, 뭔가 정말 반 독일인스럽게 더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했다. 여기서는 뭐하는 지 물어보고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생활 침해가 아닌데, 상대도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듯이 나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는게 익숙해져서 더이상 취조당하는 느낌이 안든다. 처음엔 뭔가 동양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인가 하는 오해에 부담감마저 느꼈는데, 그냥 이들의 관습임을 알게되니 나도 남의 직업 탐방의 시간이 재미있기조차 하다.

내가 덴마크어를 잘 못할 땐 남들이 하는 말 중에 못알아듣는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서 자꾸 질문을 해야하다보니 은근히 위축되고, 시간이 오래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제 뇌가 언어를 처리하느라 물리적인 스트레스도 받는데 덴마크어 학원을 쉰 지난 6개월간 오히려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방학기간 중 덴마크어 드라마를 엄청 보고, 옌스와 덴마크어 사용 비중을 크게 늘려 90% 정도를 거의 덴마크어로 사용한 게 큰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이상 덴마크어로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게 정신적인 부담이 안된다. 그 전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런 자리에 나서야 빨리 말에 익숙해지고 적응할 수 있어!’ 라며 스스로를 밀어붙였다면, 이젠 그런 것 없이 설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편안해지던지.

아무튼 그렇고 나니까 주변인들이 나를 챙기려고 부담감 느낄까봐 불편하던 마음도 없어지고 그냥 편해졌다. 그런 편안함과 함께 이방인의 느낌도 많이 없어지고. (그 방안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지만, 내 눈엔 내가 안보이니… 더욱 이질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흠.)

어느새 시간은 흘러흘러 6시. 시누이네 집에서 개인적으로 준비한 리셉션이 또 있단다. 핫도그 캐이터링을 불렀다고 하는데, 난 학교 친구 생일파티가 있다고 해서 못간다고 했다.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추가로 잡은 약속인데. 아쉽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8시 파티에 가기전 조금 쉰다고 소파에 눌러앉은게 화근이었다. 피로가 몰려와서 한시간만 쉬고 나가려던게 그냥 마냥 소파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그리하여 이렇게 손가락만 놀려도 되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긴 시간을 포멀한 옷차림을 하고 소셜모드로 있었더니 영 피곤했던 모양이다. 혼자서 쉴 시간이 필요했다. 내일 옌스가 출장에서 돌아오는데다가 주말에 공부할 것도 많은데 이정도의 저녁 휴식시간은 필요하다. 이제 다 덮고 조금 일찍 자야겠다. 하나도 많이 피곤했을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