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의 50살 생일파티

시누이 마흔살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이번엔 쉰살 생일파티에 다녀왔다. 호텔에서 뻑적지근한 파티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듬뿍 받고 사랑을 받는 모습을 받는게 정말 좋아보였다. 사람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스피치, 시누이에 맞춰 개사한 노래를 준비한 친구들, 친구들이 준비한 공연 등은 그들이 갖고 온 선물보다도 훨씬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시누네는 파티여는 것을 좋아하고, 멋진 파티를 기획할 줄 알고, 진정 파티를 즐긴다.

시누네와 우리는 성향이 여러모로 다른데, 옌스나 나는 큰 파티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가서 적당히 즐겁게 시간을 잘 보낼 수는 있지만, 가기 전 약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자고 마음을 다잡고 가야하고, 마음 편하게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필요하다. 다행히 파트너를 찢어놓는 자리배치를 하지 않은 덕에 처음부터 끝까지 옌스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내가 아이를 맡기기 어렵다는 것을 핑계로 집에 남으면 어떻겠냐 했더니, 옌스도 나같은 성향인지라 가급적이면 나랑 가고 싶다고 하더라. 누가 말을 걸면 대화를 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직접 가서 먼저 말을 걸고 싶진 않다. 늦게 가면 내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하니, 가급적 일찍 가서 남들이 인사를 오게 하려고 하고 피곤한 면들이 없잖아 있다. 그러니 우리 생일에 우리가 파티를 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냥 친구 몇이랑 밥먹고 이야기하면 그게 제일 좋다.

남들 댄스파티 시작할 때 우리는 집에 간다고 인사하고 돌아왔다. 집에 오니 열두시가 약간 넘은 시간. 와인 두잔. 취기가 느껴지지 않는 적절한 수준. 옆에 앉은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히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으며, 덕분에 기가 확 빨려 진이 다 빠진 일도 없었다. 다음달에 시누네 막네의 견진성사 때 파티 한번 하면 오랫동안 이런 파티는 없을텐데, 나도 파티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이미 다 써버린 것 같다.

어른들만 초대받은 파티라 하나는 친구네 집에 가서 처음으로 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이제 애가 많이 커서 밤에 깨지도 않거니와, 깨도 다시 혼자서 조용히 잠에 들 수 있는 나이라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중간에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이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자기도 파티에 갔었으면 좋았겠다고 한다. 워낙 늦은 시간이라 하나를 데리고 갈 수 없기도 했거니와 아이에게 지루했을 시간이라고 했지만, 자기는 지루해도 좋으니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고 한다. 아이고… 이렇게 귀한 녀석.

덴마크 사람들 / 수다쟁이 츤데레

그린랜드 사람들이 덴마크로 넘어와 살게되면 받게되는 오해가 말수가 적다는 거란다. 그린랜드 래퍼가 그린란드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노래를 발표했다며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한 말이다. (스톡홀름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처럼 그린랜드사람들은 덴마크 문화가 우월하다고 느끼며 그린랜드의 뿌리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싫어하거나 하는 복잡한 심경을 갖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린랜드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노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화에 참여하는 대상이 말을 완전히 끝낸게 아닌데, 마침표와 다음 문장 사이에 빠르게 치고들어와서 말을 하는데, 상대의 말이 다 끝낼때까지 기다리는게 미덕인 그린랜드 사람들은 자신 이야기를 할 차례를 기다리다 주제가 바뀌어서 대화에서 조용하게 있는 경우가 많아 생긴 오해란다.

그러고 보면 그게 정말 맞다. 길에서 만나는 덴마크인들 참 시크한 것 같고 별로 말 많이 안할 것 같은데, 가까워지면 어찌나 수다스럽고 말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지. 정말 별의별 주제로 대화를 다 한다. 그리고 대화에 낄려면 중간에 잘 치고 들어가야한다. 덴마크사람들 전반적으로 말이 빨라서 직장생활 초반 그게 참 힘들었다. 주제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중간에 잘 치고 빠르게 비집어 들어가려면 내가 할말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걸 포기하고 듣는데에 집중하거나 아예 그냥 혼자만의 버블속에서 공상을 하기도 했더랬다. 물론 중간에 나를 참여시키기 위한 질문이라도 던져지면, 나는 맥락을 다 잘라먹고 있었기에 “뭐라고? 나 앞에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못들었는데?”라고 대답을 해야했다.

물론 개인차는 있다. 그중 유독 대화를 지배하며 너무 말이 많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조용한 사람도 있다. 조용한 경우는 순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중간에 치고들어오는게 부담스러운 사람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주중에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다. 일 끝나고 회식같은 거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친구와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고. 한국회사생활처럼 끝나고 한잔, 이런건 안하고, 팀빌딩 일년에 몇번 할 때 식사하며 술 한두잔 곁들이는 것이나, 프라이데이바 (금요일에 회사 끝나는 시간 쯤 회사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 에서 잠깐 시간 보내는게 대부분이다. 그래도 회사내 사회생활이 부족하지 않은 것은 짧은 점심시간, 탕비실에서의 커피챗 등으로 정말 많은 대화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일상, 가족, 취미, 집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 관심사, 정치 등 정말 다양하다. (덴마크 사회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우리나라처럼 양극단의 폭이 넓지 않기도 하고, 아무래도 academic한 사람들을 채용하는 중앙정부기관 사람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그중에서도 그닥 넓게 퍼져있지 않아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게 그닥 위험하지 않다.) 서로 배우자, 아이들, 반려동물 이름도 다 알고, 집에서 뭐하는지 등등 서로 잘 알고 지낸다. 정말이지 숟가락, 젓가락 개수마저 다 안다고 할 것 같다.

한국에서 살 때는 덴마크인들의 이런 직장사회생활 문화를 상상할 수 없었는데. 아니, 덴마크 직장생활을 하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는데, 정말 다르다. 직장 동료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가 이야기했던가? 정말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되고, 업무 시간 이외에도 보고 연락하게 되면 그게 친구지. 시간이 걸리는 것 뿐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오히려 더 인정이 느껴지는 덴마크 생활 덕에 이방인으로서의 삶도 그닥 팍팍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 안의 목소리, 두려움과 싸우기

리드클라이밍을 하다보면 두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내가 어떤 내면의 목소리와 마주하게 되는지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며 그 상황을 복기하기만 해도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오는 그 순간의 두려움은 사실 본질적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다. 위험 자체보다는 위험이 있을 수도 있는 확률, 즉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다. 바닥으로부터 3미터 정도의 높이를 벗어나면 우리가 다리와 로프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유지하고, 무리하게 높은 곳에 줄을 걸려고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이후에는 자잘한 부상 가능성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등반을 하는 것이다.

벌써 20회 가까이 시도했지만 계속 마지막 구간을 실패하는 루트가 있다. 물론 실패의 종류는 달랐다. 초반의 등반에서는 여러번의 휴식을 취해야 했고, 첫번째 난관의 구간에서 계속 실패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갔고, 한번의 휴식만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더 클린하고 안정적인 테크닉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최근 도달한 마지막점에서부터는 그 위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등반 각도가 45도 이상으로 눕는 가파른 구간이기도 하고, 이미 거기까지 올라가며 소진한 에너지 탓에 낭비할 시간과 에너지 따위는 없다. 따라서 빠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 내린 결정은 의심하지 않고 믿고 행동으로 바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러번 실패한 이 구간에서 나를 제한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미 너무 힘들어, 여기서 더 뛰어오를 힘도 없어, 뛰어봐야 아래로 떨어질 거야,와 같은 목소리다. 이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에 싸우지 못하고 그 짧은 머뭇거림의 순간 체력도 고갈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면 그냥 포기해버리게된다. 포기하지 않고 시도라도 해보면 잃을 것도 없는데. 워낙 힘든 루트라 한번 가서 도전해볼 수 있는 여력 자체가 많이 없다. 그러면 다음 기회로 또 미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좀 더 노력해보고 더 노력해보아 지금의 높이까지 다다를 수 있었지만 마지막 홀드들이 너무 힘들어서 그 목소리가 더 크고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이미 떨어지고 나면 너무 가파른 각도 탓에 줄을 잡고 원래 높이 가까이까지 가야 하는데, 나는 그런 힘은 없어서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서 애초에 떨어지기 전에 시도를 해봐야한다. 2~3초의 짧은 시간. 벽과 나밖에 없는 그 순간, 그 목소리가 나를 얼마나 좌절하게 하는지. 지난번 클라이밍에서 이 루트로 그날의 트레이닝을 마무리하며 나에게 너무 화가났다. 다음에는 꼭 다음 홀드를 시도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정도 마음이 아니라, 다음 홀드를 꼭 잡겠다는 마음으로 해야만 실질직인 진전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리드클라이밍을 하면서 나안의 목소리와 두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위기의 순간에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배우고, 이를 어떻게 개선해야할지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호흡이 얕고 가파라지는 순간 이를 의식하고 깊고 힘있는 호흡을 하며 한손, 한발에 집중을 하며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 이걸 자연에서도 느끼고 싶다. 올해 5월에 클럽에서 나갈 투어에 함께하며 이를 조금 더 잘 느껴보고 싶다.

아침 루틴

아침 6시 40분이면 문을 나선다.

5시 50분. 아침에 아이와 일어나 명상음악을 틀고 짧은 스트레칭과 온몸을 구석구석 마사지해 깨우고 오늘 하루에 기대되는 일을 돌아가며 두 개씩 이야기하고 나면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이가 1학년 시작하면서부터 한 루틴인데, 둘이 침대 위에 마주 앉아 각자 몸을 구석구석 주먹으로 두들기고, 손바닥과 손가락 끝까지 하나씩 꾹꾹 눌러주고 나면 잠이 확 깨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처음엔 비몽사몽한시 50분. 아침에 아이와 일어나 명상음악을 틀고 짧은 스트레칭과 온몸을 구석구석 마사지해 깨우고 오늘 하루에 기대되는 일을 돌아가며 두 개씩 이야기하고 나면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이가 1학년 시작하면서부터 한 루틴인데, 둘이 침대 위에 마주 앉아 각자 몸을 구석구석 주먹으로 두들기고, 손바닥과 손가락 끝까지 하나씩 꾹꾹 눌러주고 나면 잠이 확 깨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음악을 틀면 처음엔 마치 몽유병에라도 걸린 모냥으로 비몽사몽한 눈으로 스트레칭하고 목을 휘적휘적 돌리던 아이도 몸을 두들기기 시작하면 서서히 잠이 깨는게 눈에 보인다. 덕분에 아침에 애 깨우느라 고생한 적이 없었다.

방을 치우고, 환기하고, 각자 옷 갈아입고 양치질하고 머리빗고 하면 6시 20분. 나는 아이의 도시락을 싼다. 샌드위치 식빵 세 조각에 버터를 바르고 하나엔 살라미, 또 다른 하나엔 브리치즈, 마지막 하나엔 초콜렛판을 얹고, 스낵 치즈를 넣으면 빵종류를 담은 통 하나가 완성된다. 다른 통에는 당근스틱, 오이 슬라이스, 사과 또는 다른 과일을 넣어 마무리 하고, 마지막 작은 통엔 후무스를 넣는다. 물통에 물을 채우고, 보온통에 같이 넣을 냉매를 꺼내 준비한 후 아이에게 도시락 챙기라 하면 집에서의 내 아침 일과는 끝이난다.

그 와중에 아이는 빵과 얹어먹을 것을 그날 취향에 맞게 꺼내어 아침 식사를 홀로 한다. 옌스는 내가 도시락을 싸고 있는 중간에 일어나 씻고 출근 준비를 시작하는데, 내려와서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나는 작별인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그러면 아이는 학교가기 전까지 여유시간에 자기 혼자만의 놀이를 즐긴다. 사부작사부작.

그렇게 아침에 나와 회사에 7시 20분정도면 도착하는데, 오랫동안 출근길 전부가 어두웠다. 그러다가 최근에 하늘 끝자락이 푸르스름한 것이 보였다면 이제 7시면 환해진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해뜨기 직전에 완전 동튼 느낌. 이제 출근길이 훨씬 안전한 느낌이다. 이 겨울의 끝자락 아침 동트기 전 하늘이 참 이쁜 것이 파스텔 핑크, 하늘이 묘하게 어우러진 느낌? 그리고 들판에는 안개가 마치 낮은 구름처럼 층을 이뤄 끼어서 신비스러운 느낌을 조성한다.

겨울이 가고 있다. 올 겨울 가장 추위를 보이는 요즘이지만 이 끝에 봄이 오고 있는게 느껴진다.

아이들을 향한 인종차별

옌스의 누이 생일파티에 나는 아파서 참석을 못했는데, 거기에 다녀온 그가 거기서 듣고 온 인종차별이야기를 꺼냈다. 여동생 베프의 남편이 한국에서 입양된 덴마크인인데, 딸이 셋이다. 동양적인 느낌이 조금 더 강한 얼굴이지만 양쪽 인종의 특색이 다 드러나게 섞인 아이들로, 학교 생활 잘하고 공부며 운동, 노는 거 할 거 없이 다 참 뛰어나서 애들 건강하고 똑부러지게 잘 키웠다는 생각을 했었다.

파티하면 친구와 가족할거 없이 다 섞어 하는 덴마크인들인지라, 이 커플과 그 아이들을 알게된지도 어느새 십년이 넘었으니 따로 연락하고 가깝게 지낼일은 없다 해도 꾸준히 만나게되고 애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어왔었다. 그런데 인종차별 경험담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원래도 괜찮게 사는 집이었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살던이들이었는데, 돈을 좀 더 많이 벌면서 아주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 아이들도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남자애들 몇몇이 아주 노골적이고 수위높은 인종차별적 언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는 학교생활하면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지를 물었다.

아이들에 대한 인종차별 이야기는 십대 쯤 해서 경험하는 이야기를 가깝게는 아니고 “카거라”식으로 건너건너 들은적만 있다. 나도 인종차별을 경험한 것은 노르웨이 십대들한테 한번정도이고 그 이상은 없다. 편견의 존재를 경험하는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게 때로는 유리한 편견일 때도 있었고, 아니면 그냥 그게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가벼운 종류의 편견에 그쳤었다. 두드러지지 않으니 얼마나 광범위하게 경험하게 되는 일일지 모르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 사회는 일종의 정글과도 같은 거친 시기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대한 책임의 결과가 어른이 되어서 한 같은 행동에 대한 책임의 결과보다 가볍기 때문에 학교라는 제도안에서,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보다 거친 일들이 왕왕 발생하곤 하니까.

하나도 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시간에 잘 놀다가 괜히 시비를 거는 2학년생에게 배를 걷어차인 적도 있고, 수업시간중에 화장실 간다더니 교실문을 못여는 친구를 도와주려다가 다쳐가지고 온 적도 있었다. 사실은 그 친구가 괜히 주변의 관심끌려고 자기가 문을 잠그고 쇼를 하는 거였는데 그걸 하나가 방해했다며 얼굴을 팍 밀어서 칠판에 머리를 박고 큰 혹이 나버렸던 거다. 주변에 있는 교사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이미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이런 아이들이 있는데, 아직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확고히 내면화되지는 않고 머리와 몸만 큰 청소년 아이들은 더욱 잔인하고 무서운 형태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힐 수 있는 거다. 한국에 비해 학교 폭력, 따돌림 문제가 덜 심각한 덴마크이지만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이면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인종차별이 더 큰 문제일지, 이런 학교에서 가해지는 폭력의 수위가 세졌을 때 그게 더 문제일지 사실 잘 모르겠다.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다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고, 그 다음 부모가 학교와 함께 어떻게 대응할지 잘 논의해가는 과정이 두번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러 유형의 폭력을 당했을 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회복탄력성을 보일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 된다.

어른이 되면 제도의 보호로 인해 오히려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들이 학생일 땐 제도가 문제아동들도 보호해야 해서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냥 잘라버린다고 없어지는게 아니라 위치와 형태만 바뀌는 것이니 이를 제도 안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비난할 수 없고, 아무튼 어렵다.

Børnenes sociale liv

Børnene har deres eget sociale liv. Det, at de er små, gør ikke deres problemer i relationer med venner mindre. I dag sagde min datter, Hannah, at hun ville opføre sig irriterende over for sin veninde, som ofte selv virker irriterende. Jeg var ved at sige, at det ikke er en god måde at reagere på, når andre opfører sig sådan, men jeg lod det ligge. Måske får jeg en anden chance for at snakke med hende om det senere – efter hun selv har prøvet det. Om det var sjovt, om det føltes godt, eller om hun alligevel lod være. På det tidspunkt kan jeg tage udgangspunkt i mit lille råd om hendes relationer.

Hannah har en anden veninde, som hun er så glad for. Hun bor tæt på os, og de kan rende ud af døren og lege sammen, når som helst de har lyst. Det gør mig glad, at hun har fundet en så god veninde så tæt på. Men ifølge Hannah vil veninden bestemme, især i skolen, hvornår Hannah må være med i legen, hvem der ellers må deltage, og hvad de skal lege – eller ikke skal lege. Hun kan hurtigt blive jaloux og sige ting, der gør Hannah ked af det. Der er altid to sider af en historie, men jeg tror på Hannah og det, hun fortæller. Hun er en pige, der prøver at opføre sig så pænt som muligt og er meget lydhør over for voksne, regler og autoritet. Hun har integritet – et alt for tungt ord for et barn på otte år, men ikke desto mindre passer det på hende.

Jeg kan godt mærke, at Hannahs veninde er god til at bruge sin sociale magt over for sine venner, for hun ved jo godt, at hun er populær. Hun har en manipulerende tilgang og kan sige noget nedgørende om de ting, hun bliver jaloux på. Hun vil straffe sine venner, hvis de ikke gør, som hun ønsker, og belønne dem ved at være sød, hvis de til gengæld adlyder hende.

Jeg kan sagtens forestille mig, at Hannah på et tidspunkt vil blive ked af det, hvis deres relation begynder at føles toksisk. Jeg kan også forestille mig, at hun alligevel vil forblive veninde med hende. Jeg skal ikke blande mig i, hvem hun bliver venner med, eller hvordan hun danner relationer. Men jeg kan i det mindste give hende råd om, hvordan hun beskytter sit hjerte i sådan en relation – hvis det ender med at blive nødvendigt. Jeg kan også minde hende om, at relationen fra mit perspektiv virker toksisk, så hun selv kan vurdere, hvor tæt et venskab hun ønsker at have.

주 3회는 해야…

월, 화, 목, 토 저녁은 내 활동의 시간이고, 수, 금, 일은 옌스 활동의 시간이다. 각자의 취미 활동 또는 친구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인데, 딱히 친구를 자주 만나지 않는 관계로 우리 모두 취미활동에 이 시간을 할애하곤 한다. 나는 주 4회, 옌스는 주 3회라니까 조금 불공평한 것 같지만, 집안대소사, 일상과 관련해 나의 멘탈로드와 육체적 로드가 모두 더 큰 관계로 옌스의 불만 없이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발레 2회, 클라이밍 2회 하던 것을 발레 1회, 클라이밍 3회로 바꿨다. 요즘은 발레보다 클라이밍에 좀 더 많은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클라이밍 실력향상에 다소 정체기가 온 것 같아 이를 극복해보고자 바꿨는데, 역시나 실력에 변화가 조금씩 느껴진다. 그간 발레와 클라이밍 모두로 느껴온 것은, 주 1회하면 크게 늘지 않고 현상유지가 되고, 주 2회하면 실력이 천천히 늘고, 주 3회하면 실력이 는다는 것이다.

클라이밍은 자기의 체중이라는 무게가 정해져 있는 것이나 가볍게 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운동이다. 따라서 상체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 그나마 발레를 통해 미약하게 존재해온 등과 코어 빼고는 상체근육이 없던 나에게 적응 시간이 꽤 오래 걸린 운동이다. 처음부터 강도를 세게 가져갈 수 없었던 이유도 조금만 자주하면 손목이나 팔꿈치 등이 아파오곤 했기 때문인데, 이제 어떤 자세로 운동을 할 때 아픈지도 알게 되었고, 체력도 꽤나 다져졌기 때문에 주3회까지는 몸이 견딜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속 하려면 꾸준한 훈련을 통해 부상 없이, 강인함을 유지해야지. 생각만 해도 너무 좋고 두근거리네. 이번 겨울은 정말이지 언제 지나갔다 싶게 거의 지나가버렸다. 클라이밍 덕분에.

낯선사람들과의 교류

클라이밍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클라이밍이랑 상관없이 다른 스포츠도 그럴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까? 어느 것도 답은 없지만 클라이밍을 하면서 특히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어났다. 내가 잘 안풀리는 문제를 타인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저런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접근하나 싶었던 문제를 누군가가 용을 써가면서 하고 있으면 괜히 응원도 해주게 되고, 그러다가 보면 간혹 작은 대화도 하게 되는 듯 낯선 사람과의 교류가 늘어났다.

한국보다 덴마크는 낯선사람과의 인사나눔이 상대적으로 흔한 편이다. 여기도 예전보다 그런 교류가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길에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가벼운 미소를 띄어주는 것이 여전히 흔하고, 이제 나도 그에 맞춰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미소를 활짝 띄어줄 수 있는 순발력을 확보했다. 예전엔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그렇게 빠르게 미소를 짓기에 얼굴 근육도 마음처럼 따라주질 않았고, 애초에 그 순간을 잘 예측하지도 못했다면 이제는 그게 익숙하달까? 모든 건 연습이다.

이제 클라이밍짐에 가면 그런 식으로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과 간간히 마주치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대화도 하고 같이 문제도 풀고 하게 된다. 원체 클라이밍이 재미있어서 혼자 가는 것도 상관없긴 했는데, 그런 식으로 낯선사람과의 사회적 교류가 있다보니 곁가지로 새로운 재미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깊은 교류가 없이 그냥 취미만 공유하는 낯선사람과의 가벼운 관계는 즐겁다. 가까워지기 위한 대화나 탐색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그냥 나눌 수 있는 주제가 이미 딱 정해진 대화라 마음의 부담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물론 그런 관계가 지속되다보면 또 새로운 친구가 생기게 되기도 하고. 주제 탐색에서 진빠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사람과의 교류가 그리 좋기만 하지는 않은 나라 외향적인 듯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사회적 요소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내가 참 외향적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다양한 깊이의 인간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럴 때 보면 참 다행스럽다.

Mit hjørne

Jeg har et hjørne i soveværelse med et lille skrivebord, et musikanlæg og et ret stort billedramme med mig at danse ballet i. Her arbejder jeg, når jeg arbejder hjemmefra. Med en Starbucks jazzplayliste spillet i baggrund bliver mit lille hjørne til en rigtig hyggelig café. Det fremkalder den følelse, jeg fik, da jeg læste og arbejdede i Starbucks, som den gang opfattedes meget lækkert og hvis kaffe var ret dyr. Ej, hvor er det dejligt at sidde og arbejde her og springe over en 40 minutters pendling til kontoret. Det er dejligt at se kollegaer og arbejder fysisk sammen med dem på kontoret, men det er også dejligt at få den mulighed at fordybe mig alene herhjemme i mit lille hyggelige hjørne.

아이와 한국어

2월이면 아이의 한글학교가 개강한다.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를 대상으로 덴마크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방울새반에 다닌지도 어느새 2년이 흘렀고 이제는 한글을 어느정도 읽을 수 있게 되어 다음반인 종달새 반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아이는 꽤나 당황하고 두려워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아이들과 총 다섯명이 함께 넘어간다고 했음에도 자기는 그렇고 싶지 않다는데, 우선 너무 어려우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한 한달만 해보자고 하고 설득을 했다. 다행히도 그런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고려해 교장선생님께서 다른 선생님들과 상의 후 종달새반에 덴마크어 가능 보조교사를 배치하였다고 공지를 해주셨다.

원체 내가 한국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기는 했지만, 쓸려고 해도 저항하는 시기가 제법 있었기에 아이 한국어 교육은 집안에서 꽤나 부침을 겪는 항목이었다. 내가 덴마크에 살기 위해 덴마크어에 유창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만한 대가는 아이의 이중언어교육 분야에서 톡톡히 치른 셈이다.

요즘은 중간중간 뜬금없이 한국말로 이야기해도 못알아듣는다고 덴마크어로 바꾸려는게 아니라 모를겠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고, 이를 최대한 한국어로 설명해주려고 할 때 짜증을 내지 않는다. 예전보다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 작용한 것도 있는 것 같고, 여러가지 한국문화컨텐츠가 덴마크에도 퍼지면서 한국어 사용으로 인해 자신의 다름이 두드러지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줄어든 것도 있는 것 같다. 데릴러 가면 아이들 앞에서 자신이 주도해서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에서 그게 가장 두드러진다. 로제와 브루노마르스의 아파트 노래가 히트를 치며 아이들의 틀린 “아파트”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하면서 자신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봐도 그렇고.

나도 한국인이지만 덴마크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지며 덴마크 거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해지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이를 드러내는 문화적 향유나 표현을 크게 하지않는 것을 생각해볼 때 아이가 한국인이라고 강하게 느끼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안다. 한국에 휴가로나야 다녀온 곳이라 자세히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이가 지금보다 한국어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나중에 자신의 뿌리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