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과 자연선호의 상관관계

오래간만에 한국에 왔다. 부모님이 계신 홍천까지 공항에서부터 방역콜밴(이라 쓰고 운전자석 옆으로 비닐천막 하나 친 콜밴)을 타고 오느라 22만원이 들었지만, 중간중간 졸기도 하면서 왔다. 우리는 아침에 도착했지만 늦은 오후부터 펑펑 내린 눈으로 서울 교통이 마비되었다니 얼마나 운이 좋으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라 자가격리 2주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가격리가 끝나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지금보다 훨씬 야외활동과 신체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던 시간이었다. 눈이 오면 눈도 쓸고 (퍼내고), 건조해서 뭉쳐지지 않는 눈으로 눈사람도 만들어보고, 삼촌집과 우리집을 빙글빙글 돌며 뛰어다니고, 숨바꼭질도 하고. 겹겹이 둘러싼 산자락을 우리 눈으로 가득히 담아보다보면 가슴이 뻥 뚫어지는 기분이다. 막힌 것도 없었지만 그냥 아주 시원한 기분.

난 정말 도시녀였다. 지하철 환풍기에서 올라오는 바람마저 때로는 도시의 숨결이라며 좋아했던 시기 마저 있었다. 광화문 빌딩 사이로 차갑게 부는 겨울 바람을 맞으며 스타킹에 펌프스를 신은 다리로 벌벌 떨고 코트깃을 여미면서도 광화문 지역의 붐빔을 사랑했었다. 모든게 집적되어 있어서 어디고 사람이 미어터짐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어깨를 밀치며 사람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생명력을 느꼈더랬다.

그랬는데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며 갈 수록 그런게 싫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은 나이들어감과 자연에 대한 선호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자연자연할 때, 자연의 풍광은 잠깐이 좋지 도시가 좋다 생각했었는데, 이게 반대가 되었다. 건물숲속을 잠깐은 다닐 수 있어도 그 속에서 살기는 싫어지는 거다. 서울로 들어가는 길 꽉 막히는 길에서 가슴이 꽉 막힌다. 실내에 들어가면 널찍하고 쾌적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오면 답답하다. 그래서 자꾸만 실내생활만 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님이 홍천에 오셨을 때 좋았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땅뙈기는 아담하지만 내 눈과 내 마음이 품을 수 있는 면적은 내 시야가 닿을 수 있는 모든 곳까지이고 그 사이를 가로막아 답답하게 하는 고층건물의 황량함이 없으니 어찌나 좋은지.

나이가 들 수록 자연에 가까워지고 싶어진다. 하나가 마당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마음을 간질인다. 자동차 사고 날 걱정없이 여기에서처럼 그냥 문 열고 나가게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아파트를 뜨고 싶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집이 나서 옌스에게 링크를 보냈다. 웬만해서는 퇴짜를 놓고 회의적인 표현을 하는 옌스가 집 자체만 놓고 보면 사진상으로는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주말에 예약하면 집을 볼 수 있다고 했더니 나 돌아오면 같이 보자길래, 우선 가서 보고 마음에 들면 같이 보자고 했다. 혹여나 마음에 드는 집인데 늦게 가서 혹시 놓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지금 사는 곳보다 살짝 외곽으로 나가는 게 마음에 살짝 걸리는 모양이지만, 그 동네에 사는 이전 상사가 그 동네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던 것 때문에 집이 나온다면 볼 의향은 있을 정도의 거리다.

그저께 저녁엔 혼자 저녁시간에 자동차를 타고 그 동네를 방문해 저녁시간때 동네 분위기를 살펴보고 왔다는 거다. 자기도 많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는지, 부동산 업자에게 관심이 많이 있다며 집을 보고 싶다고 주말에 예약을 했다. 오늘 저녁 통화에는 내일 뭘 보고 와야할 지 포인트를 찝어달라고 하길래 내가 궁금한 사항들을 전달해뒀다. 나는 이미 집이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집과 주변환경 모두. 순수하게 학교의 학업평균수준만 놓고 보면 지금 사는 동네가 더 좋다해도 애가 사는 환경은 지금 보고 있는 곳이 더 좋다. 코로나 시대의 재택근무 환경도 그렇고 앞으로 하나가 크면서 집에서 가족 뿐 아니라 친구를 초대하고 할 일도 많을텐데 외곽으로 조금 나가 더 큰 면적을 확보하고 싶기도 하다.

꼭 이 집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집이었으면, 그래서 그곳으로 이사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부모님댁이나 시댁을 오든, 우리 집에 있든 언제고 자연을 쉽게 눈과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곳에 살면 좋겠다.

덴마크는 다른 나라보다 이민자가 살기 어려운 곳인가?

스포티파이의 덴마크 음악 플레이리스트 중 Det’ hyggeligt.을 듣다보니 Rasmus Seebach의 노래가 나온다. 옌스가 옆에 있었으면 애들 듣는 음악 듣는다고 지나가며 한마디 했을텐데 옌스는 스케이트를 타러 나간 관계로 편안히 즐길 수 있다. 옌스가 무슨 뜻으로 하는 이야기인 줄은 아는데, 이 플레이리스트는 나에겐 나쁘지 않다. 옌스가 좋아하는 음악도 좋지만 그냥 난 두루두루 좋다.

난 덴마크에서 특별히 나쁘거나 여기라 더 힘든 경험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살기 참 좋은 나라라 생각하지만, 그건 역시나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극히 개인적인 판단인 것 같다. 덴마크에서의 삶은 그간의 내 삶이 대충 그러했듯이 약간의 난관과 한두번의 큰 부침은 있어도 극복하지 못할 정도가 아닌 정도의 어려움만 있었고, 운도 따라줘서 꽤나 순탄했던 것 같다. 어쩌면 힘든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이 돼서 아주 강도높은 난관에 부딪히지 않으면 그걸 큰 난관이라 못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덴마크에서의 첫 1년 반은 진짜 힘들었는데, 일 때문이었다. 같이 일하다 잘렸던 부하직원과의 끊임없는 갈등, 본사에서 무수히 떨어지는 일을 처리하기엔 나와 같이 일하는 비중이 가장 컸던 그 직원과의 갈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너무 컸다. 그렇다고 자르기에는 인사상의 갈등을 피하고 싶었던 상사의 바램과 얽혀 참 힘들었다. 직장생활 첫 3년을 은행에서 업무양으로도 인간관계면에서도 너무 힘들게 시작했던 덕에 KOTRA 생활이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작은 무역관에서의 업무부하와 관리 중심의 업무 내용에 대한 권태, 인사상 부하직원과의 갈등, 이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사의 마음에 대한 인간적 이해와 동시에 내 결단을 내려주지 않음에 대한 원망, 본사파견직원과 현지직원 및 상사와의 복잡한 포지셔닝 등이 버무려져서 너무 힘들었다. 그 1년 반은 사실 사생활이 많이 없고 업무로 많이 채워졌던 시기였던 탓에 덴마크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적응은 그때 이미 많이 이뤄졌고. 하여간 새로 발령받아 일하게 되었던 무역관 생활이 나에겐 덴마크 생활 중 가장 큰 고비였고, 이건 관두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일이라 생각해 관두면서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물론 그 와중에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그건 덴마크 사람들도 사는 도시를 옮기면 비슷하게 겪는 일이라 외국인이라 생기는 일이라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고 나머지는 인도 근무시 겪던 생활 여건을 생각하면 다 너무 감사하고 소중했기 때문에 불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처음 1년을 생각해보면 도시가 너무 작다는 점, 한식 재료가 부족한 점, 발레 학원이나 이런 걸 근무시간 이후에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상점들이 너무 일찍 닫는다는 것, 병원 예약이 한국보다 힘든 점, 외식이 비싼 점 등에서 불평할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게 단점이 뒤집어보면 동전의 양면처럼 장점이 되는 경우가 있듯이 그때 불평했던 점들이 지금엔 그게 크게 느껴지지 않거나 오히려 장점처럼 느끼게 된 경우도 있고 왜 우리와 다른 시스템이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서 불평거리가 사라진 것 같다.

비자 받는 과정이 그 다음 최대의 난관이었던 거 같다. 준외교관 비자를 그린카드 비자로 바꾸려다가 그게 너무 특이 케이스라 꼬였는데 8개월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대학원 입학허가가 나고 비자 신청을 하라는 안내를 학교로부터 받았는데, 비자 당국이 그럼 그건 그거대로 신청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가 양쪽 비자가 다른 비자가 진행되기를 기다리면서 아무 것도 진행이 안되서 비자 변경 신청한지 11개월이 되도록 무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린카드 비자 신청을 취소하고 학생비자 신청만 남겼는데, 이미 석사 학위가 있어서 비자를 못내줄 거 같은데 소명하라는 우편을 받고 뒤집어졌던 적이 있다. 그 덕에 우리가 11월에 예정되어 있던 결혼식을 8월말로 옮겨 가족 없이 우리끼리만 치르고 11월엔 피로연만 하게 되었고. 결혼식을 옮긴 건 또 그 나름의 재미와 에피소드들이 있었기에 다 상관없고 좋았지만, 학생비자가 안나와서 결혼 전에 출국명령을 받으면 어쩌나 초조하고 긴장을 했던 게 엄청 스트레스였다. 물론 그 과정중에 비자당국과 메일과 전화로 얼마나 씨름을 했던지… 그건 그거대로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다 지나고 보면 에피소드로 남는 기억일 뿐이다.

이런 저런 과거의 기억을 들춰보면 나도 꽤나 어려운 일들이 많았던 거 같지만 또 결국 보면 나도 남들만큼, 남들도 나만큼 어려운 일들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겪었던 거 같다. 다만 난 그 모든 일들이 인도에서 겪었던 꿈같은 일상들에 비하면 다 너무 평탄하고 완만했다 느껴지니 지나고 생각하면 그냥 그렇구나 싶게 넘기는 거 같다. 물론 그걸 붙들고 계속 원망하고 미워하면 나만 힘드니까 그런 것도 있고.

그렇지만 어쨌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은 맞는 것 같다. 파울로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마침 묘사된 것처럼 어떤 순간 계기가 있을 때 신속하게 큰 결정들을 내렸고 그 결정이 큰 틀에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가까워지도록 나를 이끌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해외생활을 하고 싶었던 나는 MBA를 보내준다던 KB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불투명한 유학을 관두고 해외 직장생활이 보장된 KOTRA 이직을 시작으로 해서 인도와 덴마크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뿌리없이 떠도는 생활을 그만하고 싶다고 느끼던 시점엔 덴마크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회사가 아닌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도 덴마크에서 이룰 수 있게 되었고, 내가 하는 일이 어떤 회사에 돈을 벌어다주는 게 아니라 사회에 작든 크든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나를 그런 방향에 가깝게 보내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덴마크는 나하고 궁합이 맞는 곳인가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서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얕고 깊게 맺는 인연이 늘어가면서 그런 인연들이 소중하기 때문에 감사하다. 가깝게는 남편과 남편의 가족, 내 딸부터 해서 가까운 한국 친구들, 따뜻하고 친절한 보육원 선생님들, 살가운 이웃들, 직장 동료들이 소중하다. 멀게는 물건을 사며 작은 담소를 나누는 수퍼마켓이나 카페의 점원과 나와 나의 건강을 일차로 책임지는 주치의, 직장내에서나 출퇴근길 열차에서 자주 마주치며 인사를 주고 받는 사실은 낯모르는 사람들까지 다 내 하루하루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라 기쁘고 감사하다. 심지어 막대한 세금을 낼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여기 월급 수준도 그에 사실 맞춰져 있으니 세금을 많이 내는 자체가 크게 부담이 되는게 아니고, 그게 내 배우자와 내 배우자의 가족에게 다 돌아왔고, 내게도, 내 딸에게도 올 거니까.

비교는 우리를 참 힘들게 하는 거 같다. 물론 비교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냥 한국보다 좋은 점, 나쁜 점, 다른 나라보다 좋은 점, 나쁜 점을 알게 모르게 비교하다보면 힘든 순간이 온다. 그게 내가 인도에서 힘들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그냥 인도를 좋아하고 그 나라의 장점에 초점을 맞춘 사람들은 또 행복하게 인도생활도 하고 지내던데 나에겐 너무 힘들었던 건 그 끊임없는 비교 때문이었다. 차이가 느껴지는 거야 자연스러운 거긴 하지만 그걸 의식적으로 놓고 비교하다보면 그 차이가 항상 느껴질 거니까 그냥 내가 이곳에 녹아들기까지 좋은 점을 배우고 나쁜 점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면 받아들이면 삶이 조금 편해지는 거 같다. 물론 바꿀 수 있는 건 바꾸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 내가 떠나는 게 정답이다. 더이상은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과 어려움의 수준은 개인만이 알겠지만.

그리고 부모님과 옌스가 항상 이야기하듯 작은 것을 당연시 여기지 말고 감사하게 살고 좋은 일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또 이곳도 꼭 그리 살기 어려운 곳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보육기관 부모회의 참석후기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 보육원이 있는 관계로 하나는 큰 고민없이 이 보육원에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6개월 영아부터 학교 입학 직전 유아까지 받는 큰 보육원이라 더 좋다고 생각했다. 어디고 좋은 점만 있는 보육시설이 있겠냐마는 이정도면 만족하고 다닐만한 보육원이라 생각하고 보내고 있다.

보육원에 애를 보낸지 거진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대충 이맘때쯤 연간 부모회의 총회가 열리는 것 같았다. 이때쯤 해서 총회를 열고 부모회의 이사진을 선출해야 그 이듬해 이사회에서 매월 모여가며 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전달하고 보육기관의 입장도 듣고 조율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보육기관장이 무슨 이유인지 해고되고 그 이유는 공유가 되지 않았다. 신규 기관장을 채용, 선임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보육원과 학부형 간의 공식적 의사소통이 좀 원활하지 않았다. 개별 선생님과 부모 사이의 의사소통이야 항상 문제 없긴 했지만. 알고보니 선생님들이 마음 고생도 심하셨고 했던 모양이다. 기관장의 빈자리를 보육교사들이 채워가면서 보육업무도 봐야하다보니. 해당 기간 중 육아휴직, 병가 등 선생님들의 빈자리도 중간중간 생겨서 더욱 그랬던 거 같다. 그 와중에 자리를 잘 지켜주고 애들 잘 돌봐주신 선생님들이 참 고맙더라.

신임보육기관장의 인사 및 비전 등을 듣는 자리가 있었는데, 참 연륜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보임 후 보육원이 조금씩 다시 제자리를 찾는 거 같다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한시간동안 아이들의 놀이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보육교사 및 학교 선생님 자격이 다 있고, 교육쪽 박사학위에, 오랜 기간 교육 프로그램 컨설팅에 종사한 이력이 화려한 분이었다. 이력이 화려해도 강의가 꼭 재미있다는 보장은 없을텐데, 어찌나 이분 강의가 재미있던지 간간히 눈물이 날만큼 웃어가면서 강의를 들었다. 나도 하나 궁금했던 것에 대해 질문도 해보고 알찬 시간을 보냈다.

끝나고는 각자 앉았던 의자를 정리하고 돌아가는 거였는데, 한 엄마랑 엄마그룹 모임에서부터 알고 있어서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도 하고 헤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다다음 주말에 가족 플레이데이트도 드디어 해보기로 했다.

옌스말로는 덴마크의 전형적인 부모모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그런데 그래서 그런가, 외국인 부모들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덴마크인을 한쪽 부모로 둔 가정 말고도 완전 외국인 부모들도 소수 있는데, 아무도 오질 않았다. 나야 거울이 있는게 아니면 내가 보이질 않으니 다 비슷한 덴마크인들 속에서 딱히 느낄 이질감도 없지만 간혹 그런 걸 인지하는 순간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만 보면 상당수의 외국인 부모들도 덴마크어로 다 이야기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하던데. 애들 보육기관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어라기 보다는 가서 다 알아듣지는 못할런지 어색하지는 않을지 등등 여러 이유로 안오는 것 같았다. 막상 와서 보면 정히 다른 부모와 어울리지 않아도 그냥 앉아서 듣다가만 가도 이상할 것도 없고 괜찮다는 걸 알 수 있을텐데. 반대로 이런 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부모들을 두고 사회통합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옌스가 바빠서 내가 갔던 거지만 재미있었고, 조금 애가 더 크고 나면 이사회에도 참석해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한달에 한번 만나고 조금 일 더 하는 거라면 봉사활동으로도 나쁘지 않을 거 같고.

썸머타임이 끝나서 일찍 피곤해진다. 이제 가서 자야지. 하나도 얼른 시차적응이 끝났으면 좋겠다. 좀 적응되나 싶었더니 썸머타임 끝으로 추가 한시간 적응이 더 필요해졌다….

15개월의 하나 in Dubai

시어머니의 생신을 두바이 시누네에서 하신다 하여 우리도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두바이에 갈 지 몰라 같이 방문했다. 6시간의 비행동안 하나는 한숨도 자지 않았는데 안그래도 오전 45분 낮잠외엔 자지 않았던 터라 긴장이 엄청 되었다. 다행히 덴마크 시각으로 1시 정도에 큰 무리없이 잠이 들었다. 그렇게 맞이한 15개월의 날. 비행기에서 Hvad er det? (이건 뭐예요?)를 상황에 맞게 두번이나 해서 우리를 놀래켰던 날이다.

두바이는 많이 덥지만 대충 40도 이내라 못견딜 정도는 아니다. 조금 더 지나면 라마단인데다가 더 더워지면 정말 다닐 수도 없다해서 그나마 괜찮을 때 온 건데 잘 온 것 같다. 도시도 깔끔하고 좋더라. 물론 더워서 난 여기서 살라면 그닥 살 고 싶지 않겠지만애가 있어서 어차피 여기저기 많이 다니기도 어려워서 하루 한군데 정도 소화하는 게 전부인데 집에 풀장이 있어 오전 오후엔 여기서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하나도 덕분에 수영하는 것에 익숙해질 듯.

시어머니 생일 점심으로 아랍의 탑 (burj al arab) 에 있는 캐주얼한 식당에 갔는데 사람이 아주 많지 않아 하나도 사촌들과 많이 돌아다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사촌 세명이 모두 하나를 이뻐하고 잘 놀아줘서 참 좋았다. 금방 사촌들을 좋아해서 가서 안기기도 하던 하나. 이집에 있는 고양이 엘비스를 통해 고양이를 처음 본 하나는 만져 보고 싶은 마음 반, 무서운 마음 반에 가까이 다가가다가 울곤 했다.

시누이네는 시누이 남편이 주재원으로 나와있어서 여기 최소 3년을 살 계획으로 나온 건데, 기름 1리터에 500원 정도밖에 안하고 차값도 다른 나라에 비해 싼 이곳에서 아니면 이렇게 좋은 차를 못탄다고 해서 시누이 남편은 마세라티를, 시누이는 랜드로버를 샀단다. 일생에 나도 이때 아니면 마세라티를 타볼 일 있겠나 싶어서 타봤는데, 엄청난 출력을 가졌긴 한 모양이다. 안에 소재도 엄청 좋고. 아랍의 탑 호텔에서 나올 때 앞에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유명한 사람이겠거니 했나보다.

집에 오는 길에 시누이 남편의 직원이 우리 바로 뒤에 멈춰섰다며 신호 정차시에 잠시 나갔다왔다.  그가 차로 돌아온 후 그 직원이 인사한다며 정차중 엔진소리를 세게 내었는데, 돌아보니 페라리였다. 두바이엔 진짜 비싼 차들이 널려있더라. 나름 덴마크 회사 다닌다고 조심스러웠는지 차를 사기 전에 시누이 남편에게 자기 아무 차나 사도 되냐고 묻더란다. 아마 사장이 마세라티를 몰고 있으니 덜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만…

이제 이틀 남았다. 4박 5일이지만 밤에 와서 오전 일찍 가는 여정이라 사실상 4박 3일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나가 사촌들과 유대관계도 조금 다지고 즐겁게 놀다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남은 날들도 기대가 된다. 비행은 은근 스트레스였지만, 잘 온 듯.

진짜 오랫만에 한국이 아닌 곳으로 여행 온 것 같다. 3년 조금 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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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hort conversation in Korea 2

가. 저기에 커피샵이 하나 있어요. 저기로 갈까요?

나. 음… 아니오. 저기 커피는 맛없어요. 조금만 더 가면 다른 곳이 있어요. 거기로 가요. ‘테라로사’라고 하는 집이에요.

(In this case of referring the coffee shop as 집, 집 does not literally mean a house or home but means a place. It is interchangeable with 가게, where they sell things, e.g. clothes, food, coffee, etc.)

가. 아! 테라로사요! 저 거기 알아요. 우리 전에 아마 갔었지요?

나. 네. 맞아요. 당신이 커피가 맛있다고 했어요.

(두 문장을 한 문장으로 조합 – 짧은 대화 1의 문법 팁을 참고하세요.)

가. 네, 맞아요. 물론이지요. 거기로 가요.

다. 안녕하세요! 어떤 것으로 주문하시겠어요?

가. 저는 까페라테 큰 것으로 종이컵에 한 잔 주세요. 저지방 우유로 아주 뜨겁게 해주세요. 정말로 뜨겁게 해주세요. 혀가 데일 정도로요.

다. 저희는 저지방 우유가 없어요. 그리고 너무 뜨겁게 하면 맛이 없어져요.

가. 저지방 우유가 없어요? 알겠습니다. 괜찮아요. 그리고 그냥 아주 뜨겁게 해주세요. 저는 안뜨거운 커피를 싫어해요.

나. 저는 그냥 카페라테 주세요. 종이컵 말고 그냥 컵에 주세요.

다. 알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가. 저는 옌스입니다.

다. 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이 진동벨이 울리면 저쪽 카운터로 와서 받아 가세요.

가/나. 네. 고맙습니다.

 

단어 및 숙어! (Words and Expressions!)

-을 참고하세요 (참고하다.): Please refer -.

-져요 (-지다): a verbal conjugation. This implies the gradual change. In the conversation, 없어요 is conjugated to 없어져요. 맛이 없어요 (literally means that there is no taste) means that it does not taste good. When you say 맛이 없어져요, it means that the taste changes from existence to nonexistence. So it means that it will lose its taste.

진동벨: a buzzer. Most of coffee shops in Korea use buzzers to call in customers to pick-up their orders.

(저)쪽 : side. 저쪽 means that side. 이쪽 means this side.

카운터: a counter

받아 가세요 (받다 + 가다): Please receive(pick up) and go. When you need to move (come or go, in this case, go.) in order to do something, an action verb should be combined with 오다 or 가다 verb. 받아 오세요 means receive and come. Whether to use 오다 or 가다 depends on who says to whom and whether the action of moving ends or starts from the speaker’s point of view.

 

덴마크스러움이란?

11월 말이 되니 Spotify에 캐롤 믹스가 넘쳐난다. Julesange du kender (Christmas songs you know)라는 믹스가 추천으로 떠서 틀어보니, 덴마크 크리스마스 노래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Jul-Det’Cool이라는 노래가 첫곡으로 나온다. 이젠 나이가 꽤나 든 덴마크 래퍼인 Mc Einar의 노래인데, 소비지향적인 크리스마스를 덴마크인 특유의 아이러니한 유머로 비꼰 노래다.

Jul-Det’Cool by Mc Ei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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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MC Einar. (Source: BT)

Det skete i de dage i november engang
at de første kataloger satte hyggen i gang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ebal i Nisseland, familiernes fest
med fornøjet glimt i øjet, trækker folk i vintertøjet
til den årlige folkevandring op og ned ad Strøget
der bli’r handlet, pakket ind, og der bli’r købt og solgt
tøsne, snot i næsen, det’ pisse koldt
det er vinter, man forventer vel lidt kulde og sne
men det’ da klart at en såd’n sag må komme heuj bag på DSB
intet vrøvl har de forsvoret, det de helt sikre på,
men ved den første rim på sporet, går møllen i stå
folk de tripper, skælder ud, og ser på deres ure
og sparker efter invalide, ynkelige duer
der er intet, man kan gøre, de sure buschauffører
gør det svært at praktisere lidt julehumør
“Gå så tilbage for helvede” råber stodderen hæst
men det’ jul, det’ cool, det nu man hygger sig bedst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r er mænd, der sælger juletræer på alle åbne pladser
12 bevægelige nisser og en sort mekanisk kat
i et vindue ud mod Strøget trækker flere tusind watt
kulørte gavepakker i kulørte juleposer
selv i Bilka og i Irma og i alle landets brugser
er der ægte julestemning og gratis brune kager
der er hylder fyldt med hygge, der er hygge på lager
og hos damerne i Illum kan man få det som man vil
“Kontant eller på konto, hr.? Ska’ prisen dækkes til?”
de smiler og er flinke, mest for fruerne i minke
og gi’r gode råd om alt fra sexet undertøj til sminke
og vi andre fattigrøve, vi ka’ gå i Dalle-Valle
der er damerne så flinke, at de smiler pænt til alle
der er masser tøj i kasser, der helt sikkert passer
det’ jul, det’ cool, gran og lirekasser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15.000 mennesker i Magasin
de har våde lædersko, de har halstørklæder på
de har overfrakker, gavepakker, masser de ska’ nå
men de hygger sig, sel’fø’lig gør de det
plasikstjerner, plasikgran og plastiksne
sætter stemning i systemer, det’ så nemt og nul problemer
køb blot julestuens julesæt med fire fine cremer
eller sukkerkrukker, pyntedukker, pænt, mondænt og ganske smukt
søde sæt med proptrækker, glas og øloplukker
fra en skjult højtalerinstallation,
“Et barn er født i Bethlehem” i Hammondorgelversion
vi’ traditionsbundne folk, i traditionernes land,
så vi hygger os, li’så fint vi kan
og særlig uundværlig, det er Magasin,
det’ jul, det’ cool, kig dig lidt omkring

“Højt fra træets grønne top”
“Mød julemanden klokken 13, 15, og 17 på julestuen på 3. sal”
“Vores velassorterede vinafdeling kan tilbyde et komplet gløgg-sæt for kun 39.95”
“Lille Øjvind på fem år er blevet væk fra sin mor, han kan afhentes i kundeservice”

“Jamen du godeste er det allerede…”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der er intet lavet om siden sidste år
det’ de samme ting vi spiser, det’ de samme ting vi laver
de samme ting i TV, de samme julegaver
samme pengeproblemer, det’ dyrt og hårdt
udelukkende overtrukne kontokort
overflod og fråds med familie og med venner
samvittigheden klares med en ulandskalender
det’ julefrokosttid, traditionspilleri, spritkørsel, utroskab, og madsvineri
vi har prøvet det før, vi ved præcis hvad der sker
slankekur i januar og alt det der
det’ et slid, men der er lang tid til næste år
det’ jul, det’ cool. sikke tiden den går

“Jeg drømmer om en hvid sandstrand,
med palmetræer og sommervejr
der vil jeg fejre julen
i swimmingpoolen
langt væk fra sne og juletræer”

옌스는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걸 매우 웃기게 생각한다. 가사도 모르던 이 노래를 처음 좋아하게 된 계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출근 길에 화장하면서,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항상 들었는데, 거기서 이 노래를 정말 자주 틀어줬다.

옌스가 간혹 나보고 자기보다 더 덴마크인스럽다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다. 덴마크 캐롤을 좋아하는 것,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Ris a la mande (프랑스 메뉴인 척 하는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디저트)나 Æbleskiver를 먹고 싶어하는 것, 덴마크식의 self-irony 유머를 즐기는 것 등 말이다. 사실 self-irony 유머는 그냥 여기에 와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덴마크 문화와 맞아떨어진 개인적 특성일 뿐이지만…

그런데 막상 옌스는 덴마크인스럽지만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사람이기도 해서 진짜 덴마크인스러운 게 뭔지는 집 안팎을 두루 관찰하고 이야기를 골고루 듣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실제 옌스는 전형적 덴마크인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한다. 남들끼리는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는 공감하기 어렵고, 반대로 내 경험을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을 꼽아보자면… Rugbrød(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에서 주로 먹는 호밀빵으로 점심때 먹는다.)은 가족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행사같은 날 빼고는 안먹는 것 (자기는 어려서 평생 먹을 Rugbrød을 다 먹었다며…), 있으면 먹지만 Lakrids (감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각종 종교적 전통을 좋아하지 않는 점 (크리스마스때 선물 교환은 딱 조카들과 나에게만 하고, 가족들에겐 선물 안주고 안받는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새로운 음식이나 새로운 문화, 언어를 배우는 것 등을 좋아하는 점, 덴마크를 좋아하지만 굳이 덴마크를 자랑스러워하거나 덴마크가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거나 그런 게 없다는 점, 그래서 내 문화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점, 덴마크 국기인 Dannebrog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맥주를 안좋아하는 점 등이다.

덴마크인스러운 점도 물론 많다. 운동을 정말 좋아해서 하루라도 운동을 빼놓는 날이 없다는 점, 매사 성실한 점, 개인생활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시하고 가사분담 참여비율이 높다는 점, 직업 윤리가 투철하다는 점,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점, 집에서 밤에 불 밝게 켜는 것 싫어한다는 점 (현광등은 정말 질색팔색한다. 한국가서 한두달 지내려면 적응하느라 고생 좀 할 듯), 겨울에도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자야하는 점, TPO에 맞는 옷을 잘 차려입는 것 좋아하고 패션에 대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점 (자기 것 쇼핑은 반드시 자기가 한다. 의견은 수렴하지만, 결정은 자기의 몫. ) 등

물론 이러저러한 특성을 굳이 덴마크인스러운 점과 그렇지 않은 점으로 나눴지만, 사실 외국인 남편과 그의 모국에서 살다보니 국민적 특성이란 것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개별특성의 스펙트럼이 평균으로부터 워낙 넓게 펼쳐져 있어 저 구분이 틀리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이 또한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각자 자기가 교제하는 사람과 준거집단을 중심으로만 살펴보게 되서 덴마크인스럽다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겐 전혀 덴마크인스럽지 않은 것들도 많고, 내가 덴마크인스럽지 않다고 하는 것도 덴마크인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친구를 초대해서 음식을 넉넉히 하다보니, 다음날 저녁에 데워서 먹을 만큼 넉넉히 남았었는데, 난 그에 곁들일 탄수화물로 빵을 굽고 있는데, 옌스는 밥을 달라고 했다. 서양음식인데 밥을? 이라는 나의 반응과 달리 옌스는 내가 해준 쌀밥이 덴마크 어느 식당에서 먹는 쌀밥보다도 맛있다면서 그걸 달라하고, 간장에 참기름을 달라해서 그 쌀밥위에 끼얹어 먹는걸 보면서 기함했다. Rugbrød위에 남들과 다른 컴비네이션을 얹어먹는 걸 봐도 크게 놀라지 않는 옌스인 걸 생각해보면 그만의 기이한 조합도 딱히 놀랄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방송에서 “진정한 덴마크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걸로 이것 저것 다양하게 다룬다. 토론, 뉴스, 다큐멘터리 등등… 옌스는 그런 토론 자체가 정말 피곤하고 언론에서 덴마크인이라는게 뭐 대단한 거고 그게 얼마나 통일성이 있는 것이고 독창성이 있는 거라고 그걸 그렇게 따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공동체 의식, 개인주의 등 가장 핵심적인 가치만이 지켜진다면 사회는 항상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고, 개인마다 덴마크인다움에 대한 정의가 다 다른데 그걸 dansk함과 udansk함을 나누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 나에게도 “너는 한국인이고, 한국인 다움이 있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이곳의 가치에 영향을 받으며 한국에서 갖고 있던 가치관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너도 덴마크인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내가 한국인인 것만큼 덴마크인도 되어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 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함께 덴마크인의 행복함의 원천에 대해서 휘게와 기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찾고 이를 홍보하고 수출하는 것도 피곤하다고 한다. 그냥 타인과 비교 별로 안하고, 현실감있는 목표를 정하고, 형식주의를 배격하고, 서열의식이 적고 자연환경이 좋은 편이어서 다른 나라사람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덜 받고, 그래서 행복한 거 아니냐고. 그게 우리에게 특별한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란다.

이럴 때 난 덴마크인이지만 덴마크인이기만 하지 않은 옌스와 결혼을 한게 참 안도가 된다고 할까? 안그래도 타국에서 살면서 적응할 게 많은데 그걸 강요당한다거나 기대를 받는다면 어땠을라나? 여기의 룰에 맞춰가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다름을 같음으로 맞춰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과, 내가 다른 건 옌스가 다른 덴마크인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다르다고 전제를 깔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리 없이 편입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고 적응을 도와주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이번에 새로 주문한 한국어 책에서 (한권을 드디어 끝냈다. ㅠㅠ) “하다”동사를 활용한 한국어 동사변형의 여러가지 유형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걸 패턴드릴로 연습한다고, 몇가지 동사를 주면서 이걸 같은 형식의 테이블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어줬더니, 다음날 회사에서 출력을 해갖고 온 것을 보여주며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사실 옌스랑 나는 주중엔 퇴근 후 30분정도 그날 있었던 이야기 좀 하고, 같이 뉴스 보고, 각자 할 일 하다가 소파에서 30분 정도 같이 앉아 쉬고, 또 각자 할 일 하다가 잠자리 들어서 조금 이야기 나누는 것 정도가 일상이다. 각자 할 일 하다가 시덥잖은 말 한 두마디 던지면서 낄낄대는 것 외엔 자기 할 일 할 때는 자기 것만 따로 하기에 각자의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 평일엔 저녁도 둘다 뉴스 보면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 간단히 먹으니까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게 둘이 필요로하는 공통사항이라 서로 이를 존중해주는 것이 참 좋고 고마운 거다. 우리는 서로 뭐 배우고 하는 거 좋아해서, 같이 있지만 또 각자 저녁에 배움의 시간을 가진다는 점에서 닮아서 정말 좋다고 하니까, 인생의 목적은 배우는 데 있는게 아니냐고 한다. 항상 옌스가 강조하는게 general education의 중요성인데, 이걸 덴마크인스러운 것이라고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옌스스러운 것이지.

이런 옌스와 살아서 딱히 문화충격을 받을 일이 없는 것도 있겠지만, 인도에서 겪은 문화충격이 워낙 커서 웬만한 다름에 충격을 크게 받지 않는 것도 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어떻게 적응하고 사느냐의 문제로 인식하면 되는가 싶기도 하고. 또 곰곰히 뒤를 돌아봐 생각해보면 나름 여기서도 큰 문화충격을 받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 힘든 시간들이 대부분 잊혀지고 그냥 그 틀에 내가 녹아들어가 바뀌어 더이상 놀라울 게 크게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다시 들춰보며 과거의 추억에도 잠겨보고, 스스로의 과오나 성과에서 배워도 보려고 별거 아닌 이런 생각의 조각들을 그래서 그때그때 남겨두는 거니까… 몇 년이 지나서 지금을 반추해보면 그땐 또 무슨 생각이 들런지…

새 블록의 시작 – 이 산뜻한 기분

항상 이렇게 시험이든 뭐든 한 템포 끊어주고 새로 시작하는 이벤트가 있는 것이 정신건강에 참 유익하다. 시험이 다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기분은 어찌나 산뜻한지. 아침에 일어나는 마음도 가볍고, 학교 가는 발걸음도 날아가는 듯 하다. 땅에 구르는 낙엽조차도 이쁘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절로 웃음으로 인사를 하게 된다. 내가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엄청 뚱한 표정을 멈추고 밝은 웃음으로 답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그 기분은 더욱이 좋다. 힘찬 발걸음으로 이번 학기 첫 수업을 들어갔는데, 수업 전 리딩을 마치고 가는 여유에 더욱 힘이 났었다. 과목이 하나 뿐이라 마음에 부담도 적고, 농업경제학의 Head of studies인 교수가 가르치는 Economic Efficiency and Benchmarking 과목은 교수의 오랜 경력과 민간과의 많은 공동프로젝트 경험 덕분인지 설명이 아주 명쾌, 명료했다. 생산 단위의 성과 측정은 과거 근무했던 은행에서나 KOTRA에서나 모두 KPI로 대변되는 단순한 성과측정방식에 기대고 있었기에 이보다 더 advanced한 성과평가 방식인 Data Envelopment Analysis와 Stochastic Frontier Analysis가 어떤 식으로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할지 궁금하고, 따라서 수업도 매우 기대가 된다.

행정적인 업무들도 미루지 않고 제때 처리하고자 국가에서 지급되는 학업지원금 SU를 육아휴직 기간에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학교 SU 담당 사무실과 우리 SCIENCE faculty 학생서비스 사무실 모두에 질의해두었다. 정부에 육아휴직 기간 중 추가 SU를 수급받는 건 온라인으로 쉽게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답변을 받았는데,  이 기간 중 학적 처리 방식에 대해 학교 규정이 매우 애매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자세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달라고 보내두었다.

논문 주제도 결정하고 수퍼바이저도 대충 정해둬야 출산 및 육아휴직 기간에 천천히 시작할 수 있어서 희망 교수에게 여름에 미리 운을 띄워두었는데, 이 또한 구체화를 시켜야겠다 싶었다. 지난 주 세미나가 있어서 겁먹지 말고 빨리 착수를 해야겠다고 생각은 해두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만 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나같이 쉬는 기간이 없으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 나도 자극이 되어 오늘 도서관에 앉아 이것저것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싶은지만 정해져 있었는데, 바로 Environmental amenity/characteristics에 대한 economic valuation을 Revealed preference method를 통해 하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환경의 어떤 요소를 평가하고 싶은건지가 모호했고, 뭘 하고 싶은지가 애매했다.

그러다가 지난 학기에 코펜하겐 시와 컨설팅 코스에서 협업을 했던 프로젝트가 기억이 났다. 기후변화 적응과 관련해서 했던 프로젝트로, 해수면 상승과 발틱해 상류에 폭우가 쏟아져 북해로의 유량 공급이 증가할 경우 발생할 Storm surge에 코펜하겐 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한 것이었다. 홍수 피해에 대한 Economic valuation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Revealed preference method과 GIS를 결합해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내 희망지도교수의 이메일을 찾으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기후변화적응 스페셜리스트라는 타이틀도 있는게 아닌가. 뭔가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예감이 좋았다. 내 관심 방법론과 분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뭔가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느냐고, 주제 분야 토론을 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더니, 아주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논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다고.

뭔가 움직이기 전엔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크고 뭐부터 해야할 지 잘 모르겠는데, 막상 손과 발을 움직여 구체화하려면 의외로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의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6개월동안 하나만을 파야 하는 논문은 자기가 관심있는 주제가 아니면 중간에 막혀서 허우적 거리고 지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어왔다. 또한 교육을 마치고 처음으로 구하는 직장은 논문과 연계되서 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정도 전략적인 요소를 고려해 어떤 방법론을 택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또한 들어왔다. 그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에 부담감만 백배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시작은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석사 논문들 보면 정말 큰 연구를 수행한 것들을 보았기에 그 과정 자체는 절대 쉬울리가 없다는 건 안다. 그러나 긴 시간 꾸준히 시간과 과정을 관리해가며 차근차근 나아가야 하는 길을 생각하면 좋은 시작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번 여름학기 수업을 들으며 여름방학이 짧아진 것과, 여름학기/가을학기 간 한주간의 방학도 없다는 것에 힘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내 희망 지도교수와 연결의 끈을 갖게 된 것과, 그 때 고생한 덕에 지금 한과목만 들으며 논문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시간 여유가 조금 더 있기에 신문과 방송도 봐가며 덴마크어 학습도 병행할 수 있기도 하고, 출산 준비도 조금씩이나마 할 수 있을 테니 그 또한 좋은 일이고.

대학원 수업으로는 마지막이 될 블록을 맞아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 나머지 기간동안도 잘 해서 논문 전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 논문 시작의 초석을 잘 닦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고 행복하겠다. 오늘 아침, 3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만 볼 수 있다는 불타는 아침 일출 하늘을 보았는데, 이 또한 좋은 시작을 알리는 그런 징조인 것만 같아 (뭐 그런거 안믿지만…) 더 기분이 좋다.

Master thesis seminar at IFRO, KU SCIENCE

There was a master thesis seminar for IFRO students at KU SCIENCE today. Heads of studies, who organized the seminar, said it was the first time they tried this type of introductory seminar for master’s programme students.

It was a very productive seminar to understand what we should expect and know in the process of thesis writing in the following semester. I will take my maternity leave for most likely a year starting from next semester, therefore, the process will start a year after. But no matter when I start writing my thesis, it was very good to know answers for following questions: how I should approach potential supervisors; how I should formulate idea and research questions when not knowing too well what to write about; how I should deal with problems such as poor research results turning out to be crappy due to low quality data or insufficient data; whether I can have a head start during the maternity leave without signing on a formal contract with my future supervisor.

The most relieving fact was that it is okay to come up with bad research results. Bad research results can produce a good master thesis depending on how to communicate the results in the paper, e.g. why the expected outcome based on theory is not observed in our empirical model; what it would have looked like if we had different datasets; what are the limitations of models that we used. If that is the case, we would not be able to publish our thesis in a journal, but what can we do if we encounter this situation? There are always risks of ending up in this situation. But this is not a professional researcher’s article that has to be published, but an outcome of a learning process to present what we have studied and found, and what we have learned from this.

Students who just finished their theses and defenses came to share their experience throughout the whole process of writing: how they started from the scratch; how they found their supervisors and group members in case of writing in groups;  how they dealt with situations like being stuck in the middle of different types of problems; importance of time management. It was good to know that not knowing where to start was not rare and a lot of other fellow students shared the same fears that I had.

It will be a challenging journey to conduct an independent project for six months. It is a long enough period of time to feel loneliness while tackling this big vague monster that we have to deliver at the end somehow. Hence, it is good to know what to expect, how to do, and so forth.

After the seminar, a small discussion and networking session with researchers at IFRO, who can provide us some guidance and offer potential project ideas. As I only had a vague idea about what kind of scientific methodology that I wanted to master with this thesis project, I stayed with our head of study, Søren, asking him some extra questions together with my fellow students. Discussion shed more lights on what I should do later on, e.g. where to browse relevant studies to inspire my own project, how to contact researchers before writing a formal contract with them.

The discussion was continued by some chats about the university reforms, PhD positions and fundings for PhD, and job prospects as an environmental economist. Well, the university reforms and budget cuts affecting PhD funding from research foundations are not favoring us at the moment. What Søren said is that PhD funding is very cyclical and now it is in its downward cycle. Arghh… Anyway, I could ask him many questions that I was curious about but did not ask before, as I did not pursue to find the time to have a meeting with him.

The seminar and following discussions lasted about two hours and a half and, in the end, it was very satisfying. I hope more could have come and joined us today, as some could not mak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