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9일

선반이 떨어지는 사고

특별한 아침이다. 간밤에 부엌에 있던 선반이 떨어지며 그 위에 올려두었던 냄비며 식자재들이 바닥에 다 내동그라졌다. 요즘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크게 놀라서 깬 뒤라 다시금 영 잠이 들지를 안았다. 와장창창. 댕그렁 쨍그렁. 요란한 소리에 크게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깼다. 요란한 소리와 비명 사이의 찰나에 스치고 지나간 상상에 마음을 여전히 조이고 있었다. 하나가 우리 모르는 사이에 부엌에 들어가서 뭔가를 만지다 도미노처럼 물건들이 떨어졌나? 하나를 덥쳤을까? 벌떡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달려가 불을 키고 나니, 울거나 다친 하나는 없었고, 그냥 물건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있었다. 열어논 창문에 바람이 들이닥쳤나? 이건 어디서 떨어진거지? 잠이 덜 깬 몽롱한 상태라 단박에 상황이 판단이 서지 않았는데, 남편이 ”저 위에 밀가루랑 설탕단지를 안올려놔서 정말 다행이야!”라며 웃는 것이다. 올려다보니 반쯤 떨어진 선반이 대롱대롱 벽에 매달려 있었다. 드릴로 뜷은 구멍에서 선반을 고정하는 나사가 빠지지 않도록 잡아줘야하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어떤 이유였던간에 밖으로 흘러나왔던거다. 아래쪽 나사는 아직 버티고 있고, 위쪽 나사는 다 빠져있어서 벽에서 우선 선반부터 빼냈다.

사실 짜증이 날 법 한 일이었는데, 하나가 안다쳤다는 사실, 남편이 무겁고 위험한 것 올려두지 말라해서 그런 것들은 다 내려돈 덕에 설탕 및 밀가루를 청소하느라 씨름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어이도 없기도 해서 너털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들어가서 다시금 잠을 청했는데, 통 잠을 잘 수 없었다. 간신히 잠이 다시 들 무렵, 하나가 악몽이라도 꾼 듯 다급히 나를 불렀다. 가보니 깨진 않았고, 무서운 꿈을 꾸다가 잠꼬대를 한 것 같았다. 땀에 흠뻑 젖은 아이를 쓰다듬으며, ”그냥 꿈이야, 진짜가 아니야.”란 말을 수 차례 반복한 후 발로 걷어차 침대 한켠에 뭉쳐진 이불을 끌어다가 아이의 몸에 덮어주었다.

이렇게 새벽을 요란하게 보낸 터라 아침이 그닥 상쾌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간신히 일으켰고, 난장판이 되어있는 부엌부터 정리해야했다. 아이의 도시락도 싸야 하는데… 빠듯하긴 해도 안될 일은 아니겠지 했는데, 거실에서 남편과 애가 씨름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뭐 하나 틀어지면 저리 가라고 외치며 짜증을 있는대로 부리는 거다. 애가 훌쩍 큰다는 원더윅스가 예전처럼 심한 형태로 오지는 않지만, 간간히 말을 덜 듣거나, 짜증을 쉽게 또 많이 부리는 시기는 여전히, 종종 찾아오곤 한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이런 때 예전같이 짜증이 안난다는 점이다. 그냥 그러려니 한달까? 그냥 원래 애들은 그런거다 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많이 수월해졌다.

친구의 이혼

오늘은 내 마음 속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친구의 이혼 판결이 내려진 날이기도 하다. 이혼소송이라는 게 이렇게 질질 끄는 일인 지 몰랐는데, 새로운 출발을 하기 전 이렇게 진을 빼다니… 하는 마음이 반, 그래도 원하던 이혼 판결이 잘 나와줘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반이다. 이럴 때는 덴마크의 이혼절차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애가 없을 경우 온라인에 접속해 이혼 신고를 하면 바로 가능하고, 애가 있을 경우, 이혼에 대한 이견이 있을지라도 6개월의 숙려기간동안 혼인 파탄의 상황이 지속되면 그냥 이혼을 하게끔 해주는 절차가 깔끔하다. 그나마 6개월은 새로 생긴 조건이다. 이미 부부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싶으면 6개월도 길다 느껴진다.

아이들도 부모의 관계가 결혼상태가 유지되는 것도, 이혼한 것도 아닌 불확실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보다 훨씬 안정된 틀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게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건강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도 아이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대신 면접교섭을 하는 기간 중에 자신을 더 많이 내어주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흠뻑 적셔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길 바란다. 아이들 뿐 아니라 지금과 미래의 자신을 위해서.

하나도 요즘 부모의 이혼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부쩍 가지기 시작했다. 유치원 친구들 중 이혼한 부모의 집을 돌며 사는 삶의 형태에 인지를 하면서 생긴 일이다. 얼마전 유치원에서, 아이들 하나하나가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혼자 찾아서 유치원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다 대동하고 집으로 간 뒤, 집 대문 앞에서 독사진을 찍어 오는 투어를 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인쇄해 유치원 벽에 붙인 큰 동네 지도에 콜라주처럼 붙이는 미술 프로젝트를 했는데, 몇 명은 집이 둘이라는 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다. 그걸 여러 번 물어봤으니까. 게다가 마침 그 이혼한 가정 중 하나에 하나의 가까운 친구도 해당되었는데, 친구가 엄마와 아빠의 아파트를 돌아가며 살고, 다같이 만나서 식사도 하고, 여름 휴가 중 짧은 기간이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이혼이 뭔가 즐겁고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그냥 부모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혼을 하고 아이도 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걸 오히려 즐겁고 신나게 느낄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 혹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 부모의 이혼은 힘든 일일 수 있기에 그걸 마냥 즐겁고 신나는 일이라 인식하게 둘 수도 없어서 그걸 어떻게 중립적으로 설명하나 고민이 많이 된다. 이혼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것도 잘못된 일이고.

며칠 전에는 집에 와서 나에게 엄마랑 아빠는 이혼했다고 역할놀이를 하자는 거다. 그래서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면 같이 못사는 데 좋아?”라고 물어보니, ”엄마랑 엄마 집에서 며칠 같이 살고 또 아빠랑 아빠 집에서 며칠 같이 살면 되지.”라는 거다. 아. 이런 관점에서 신나는 일인 거구나 싶었다. ”이혼은 엄마나 아빠 중 한명이 상대방을, 또는 두명 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는 거야. 엄마랑 아빠는 계속 사랑해서 이혼 안할 거고.”라고 말해주긴 했는데 앞으로 한동안 이혼은 아이에게 중요한 토픽이 될 것 같다. 이혼이 나쁜 게 아니고, 필요할 땐 꼭 해야하는 것이지만, 이혼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일이기에 그걸 쉽게, 재미삼아 주제로 삼을 건 아니라는 걸 아이에게 잘 설명하는 게 나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43개월의 하나

아이가 요즘 부쩍 컸다. 이제 세돌 반을 지난지도 거의 두 달이 다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큰다는 말을 하기엔 이제 조금 큰 게 아닌가 생각을 하던 요즘, 또 갑작스럽게 크는 바뀌는 일들에 다시금 깜짝 놀라게 된다.

오늘은 혼자서 잔다고 하는 거다. 그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책 읽는 시간을 가진 후, 우리를 방 밖으로 밀어내는 일들. 그러다가 잠에 들지 못해 우리를 다시금 불러들이던 일들이 그 전에도 수 차례 있었기에 크게 놀랍진 않았다. 다만 놀라웠던 건, 자기가 혼자 책을 읽고 자겠다고 하며 아예 처음부터 나를 밀어낸 것이었다.

에이, 뭐 그래봐야 곧 나를 부르겠지… 라는 내 어림짐작이 무색하게도 하나는 결국 혼자 잠이 들었다. 한번 나를 불러서 잠깐 들어갔는데, 잠깐 꿈을 꿔서 무서웠다는거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잠깐 배를 만져주고 났더니 이제 괜찮다면서 나를 다시 밀어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다시 나왔다. 혹시 잠이 들긴 했나, 뒤척거리고 잠이 들지 못했을 거 같아 들어갔더니, 잠은 아직 자고 있지 않았지만 혼자 자고 싶단다. 그러다가 정말 혼자 잠이 들었다.

최근에 몇번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자기 혼자서 잘 잔다고. 다 커서 밤에 깨서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도 그냥 다시 혼자 잘 잔다고. 대견하다고 말하면서도 언제고 무서우면 엄마, 아빠한테 와달라고 해도 된다고 했는데 오늘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구나.

하나가 이렇게 부쩍 크는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 아빠는 매일 매일, 아이가 커서 독립하기까지의 시간동안 우리도 아이를 품안에서 놓아주는 연습을 매일 하는거구나. 저녁에 해야할 일이 많을 때, 애를 재우는 시간에 조급한 마음을 품었던 기억이, 뭘 그렇게 조급해 했나 하는 생각으로 바뀐다. 이렇게 금방, 혼자 잔다고 할 것인 줄 알았다면 더 많이 품어주고, 더 길게 그 시간을 쓸 걸.

우리가 불안해서 놓지 못하던 밤기저귀도 그냥 하지 말자 하니 그냥 떼버린 것도 그렇고, 변화는 그냥 순식간에 오는 것 같다.

아직 엄마를 많이 찾고 안아달라고 조르는 이 순간을 정말 흠뻑 느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안아주겠다고 자주 먼저 이야기하기도 하고.

우리 엄마는 다 커서 아이를 낳은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아빠는 또 어떤 생각을? 옌스는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려나.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내 인생을 부모의 입장으로 다시 살아보는 것과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때 부모님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그런 생각. 하나도 나중에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는 행복을 경험해봤으면 좋겠다는 너무나 먼 상상을 한번 해본다.

발레 사랑

친교는 역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있어야 하는 것일까? 발레를 통해 일주일에 한두번씩 꾸준히 만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부터 그들과 사소한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중 한명과는 집에 가는 길을 함께 하면서 친분이 쌓이기 시작했다. 친구가 모자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나와 같이 열정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다. 아무래도 내 발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발레를 하지 않는 다른 친구들이 진정으로 공감해주긴 어려울 것이지 않는가. 발레는 건강 뿐 아니라 나에게 정말 여러가지를 주는 것 같다.

2012년 봄에서 여름사이 어딘가였던 것 같다. 발레를 처음 시작한 게. 어느 학원에서 시작해야할 지 감이 안서서 당시 코트라 다니던 감각으로 우선 발레학원협회부터 찾아본게 시작이었다. 협회에 회원학원 리스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내 예상대로 그런 리스트가 있었고, 그 리스트의 무수한 페이지 중 첫 페이지에 국립발레단이 있었던 게 발레와의 첫 인연이었다. 국립발레단 아카데미에 성인취미반이 있었는데, 마침 코트라와 그리 멀지도 않았고, 당시 업무로드가 심각하지 않아 야근에 대한 압박이 크지 않은 부서에 있다는 것도 다 잘 맞아 떨어져서 초보로서 아주 좋은 곳에서 발레를 시작할 수 있었다.

스트레칭은 괴로웠지만 수업을 끝내고 나면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신경 쓸 게 많은 동작들과 함께 온 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는 강한 운동수준이 버무려져서 복잡한 머릿속은 깨끗이 비워지고 몸은 한껏 달아올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로 충전된 상태.

주중 평일 2회 한시간 반씩 참석하던 수업이었는데, 주말 클래스에도 신청을 하며 주 4회가 되고, 중급반 참석도 허락받게 되며 평일에는 세시간씩 클래스를 들을만큼 몰입을 했더니 한달에 1킬로그램씩 빠지면서 한국 귀국 후 베이킹으로 찌운 살을 다 떨어냈더랬다. 덴마크에 와서 딱 나에게 맞는 수업을 찾기가 어려워 중간중간 수업을 다녔다 안다녔다 하기도 했지만 임신 후기 및 출산 후를 포함한 2년반 정도의 휴식기를 제외하면 손에서 발레를 완전히 놓은 적은 없었다. 그렇게 2020년 지금까지 해온 발레. 나에게 이렇게 오랜 기간 열정을 투자해온 일은 없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집에서 이래저래 연습을 해보고 배울 게 너무 많지만, 예전보다 테크닉적으로 훨씬 많이 늘고 이제 조금 춤을 춤답게 출 수 있어서 훨씬 더 즐겁다. 스트레칭도 예전처럼 괴롭지 않고 달아오른 몸을 약간 진정시키며 몸을 가다듬는다는 느낌에 시원하고 좋다. 상체와 하체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느끼면서 몸의 근육이 눌린 스프링마냥 장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꼭 튕겨나갈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는 것도 너무 좋다. 몸과 표정으로 그 긴장감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도 쾌감으로 다가오고, 춤을 추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내 무대의 우아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에서도 설레인다. 높고 딱딱한 토슈즈를 신고 움직이다보면 물집도 생기고, 물집이 생겼음을 알기도 전에 이미 터져있고 하는 통증도 있지만, 사실 그걸 알기도 어려울 만큼 동작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게 직업이라면 다른 일이겠지만, 취미로서 접근하는 나에게 발레란 정말 아름다운 열정의 대상일 뿐이다. 끊임없이 추구해가는 그런 대상.

다음 시즌부터는 고급반에 등록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콤비네이션도 많이 길지만,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이제 거기 등록할 예정이다. 요일이 내가 원하는 타이밍은 아니지만, 이번주 시즌 마지막 수업을 대타로 뛴 분이 고급반 담당 선생님이 될 분인데, 수업이 너무 즐거웠고 몸 뿐 아니라 두뇌적으로도 챌린징해서 희열이 느껴졌다. 이분이랑 다음주 월, 화, 수요일에 썸머 캠프 수업도 함께 할 예정인데 너무 기다려진다. 이제 주말만 지나면 바로네. 아…

이사 추진 포기, 집안 환경개선 사업 추진

졸업시즌이다. 트럭을 하고 다니면서 아무 걱정 없는 표정으로 소리 지르며 흥에 가득차 춤을 추고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졸업을 자축하는 그들을 보면 미래의 하나를 보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나도 손을 마주 흔들며 축하의 인사를 날린다.

졸업시즌은 한해 중 해가 가장 긴 하지를 지나면서 바로 시작되는데 이 때의 저녁 아홉시가 어찌나 좋은지. 테라스에 앉아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와 뺨을 간질이는 바람을 즐기며 앉아서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지금처럼 블로그를 쓸 수 있는데 그 순간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사실 내 삶이 특별히 큰 이벤트로 가득차있지 않은데 감사할 일이 많은 것을 느낄 때면 나이가 예전보다 조금 더 들었기 떄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듬성듬성한 화분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가꾸기로 마음을 먹고 꽃들 사이 큰 빈공간에 제라늄을 심었다. 왜 우리 집에는 보라색 꽃만 있고 옆집 할머니가 갖고 있는 분홍색 꽃은 없냐고 묻는 하나의 말에, 그럼 우리도 분홍색 꽃을 심을까 하고 물었더니 너무나 기뻐하더라. 수국을 심었다가 바람에 꺾였던 기억에 제라늄이 잘 버틸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몇년 째 같은 제라늄을 잘 키우시고 계신 옆집 할머니를 보며 화분 네개를 들여 옮겨 심었다.

여러가지 우리가 내거는 조건에 딱 맞는 집을 찾기가 어려운 것도 있고 우리가 살고 싶은 곳에 집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도 있어서 고민을 하다가 집 찾기를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대신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옌스가 살던 집에 내가 들어오고, 하나가 태어나며 니즈가 꾸준히 변했는데 크게 물건을 정리하고나 수납 방식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지 않았던 게 쌓이고 쌓여 불편함이 커진 게 이사를 꿈꾸게 만든 이유였다. 그래서 그 이유를 없애지 않고는 이 집 생활이 더이상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아 변화가 필요했다.

우리 옆집에 할머니가 여기서 애를 낳아 길러 독립을 시키시고 그 장성한 아들이 옌스랑 비슷한 나이일만큼 오래 사셨으니 애 하나에 못살 집은 아니렸다. 애가 십대때 충분한 사생활을 보장해줄 수 없음에 불편함을 다소 느끼신 거 외엔 큰 불편함이 없으셨다는데, 삼십평 집에 세식구 못산다 하면 사실 배부른 소리가 맞다. 그러니 이 집을 잘 아끼고 가꿔서 써야하겠다 싶었다.

지난 주말과 평일 저녁을 할애해서 많은 물건을 정리했다. 그간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들을 크게 개선했고 휴가때 할 일들을 리스트업해서 그때 사용할 자재들을 주문해서 일부는 도착하고 일부는 기다리고 있다. 가장 큰 프로젝트는 베란다 마루를 물청소하고 사포질해서 오일처리하는 일이다. 사흘에 걸쳐 할 일인데 이게 끝나면 수납을 위해 사용하던 플라스틱 상자들을 처분하고 벤치처럼 앉을 수 있난 야외 가구형 수납가구를 들일 계획이다. 그리고 셔츠와 같은 빨래를 널기 위해 쓰던 옷걸이를 정리하고자 한 벽에 설치하고 필요할 때마다 댕겨서 반대편 벽에 걸어 쓸 수 있는 옷걸이를 샀다. 이제 드릴질 해서 설치할 일만 남았네.

부엌은 높은 벽에 선반을 설치해서 수납 공간을 추가로 확보하려 하는데, 큰 요리용기들을 사서 자주 쓰는 재료는 그 안에 모아서 사용하기 쉽게 정리할 예정이다. 그러면 지금 그런 재료가 차지하는 공간을 다른 것에 할당하고 부엌 선반에 뭐가 너저분하게 늘어있는 상황을 없애려고 한다. 그리고 계속 마음에 안들던 싱크대 보울을 바꾸려고 한다. 그간 적립해온 환경개선비용을 활용할 수 있다면 임대주에게 요청해서 그걸 활용하도록 하고, 그게 안된다 하면 자비를 내서 하려한다. 여기서 사는 시간을 잘 사는 게 중요하니까.

우리 침실에서는 옷걸이로 전락한 발레바를 베란다로 내오고 옷장이든 오픈식 시스템 옷걸이를 설치하든 수납을 좀 달리하기로 했다. 그와 함께 나중에 내 피아노를 돌려올 공간을 만들기 위해 침실에 있던 낡은 오디오시스템과 CD, DVD가 가득한 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여기서 빼오는 CD와 DVD는 거실에 한쪽 벽을 가득 메울 책장을 새로 사 설치하면 거실 오디오장에 꼽혀있는 책과 하나 물건을 다 옮겨내고 그 빈 공간으로 옮기기로 하고.

거실에 책장벽을 설치하고 나면 잡스럽게 굴러다니는 소품을 다 안보이게 정리할 수 있어서 청소도 쉬워질 것 같고 눈을 거슬리게 하는 게 줄어들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 것 같다.

그와 함께 지하실도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기 위해서 버릴 건 정리해 버리고 그곳에도 선반을 설치해 더이상 물건을 테트리스처럼 쌓는 일이 없도록 하기로 했다. 물건을 테트치스처럼 쌓아 정리하면 그 아래 들어간 물건은 거의 쓸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죽은 물건을 들고 있는 셈이 되고, 쓸 수 있는 것도 안쓰게 되니 정말 큰 공간낭비, 공간을 빌리는 돈 낭비다.

그간 옌스의 저항으로 대대적 정리와 변화를 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이사 추진 및 중단을 계기로 내가 우리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문제를 조금 더 잘 생각해서 말할 수 있기도 했고, 옌스도 그 필요를 이해하기도 해서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휴가의 첫주는 이런 대대적인 가사일의 한 주로 계획되었다. 힘도 들겠지만 내가 원하던 변화를 드디어 실행에 옮기는 시기라 두근거리고 흥분된다.

Min fars krig

Jeg synes, at DRs nye tv-serie, Min fars krig, er en fint lavet dokumentarfilm. Filmen omhandler en forfærdeligt sørgelig, men samtidig vældig modig historie, der baserer sig på virkeligheden. Det gjorde ondt på mig at se de omstændigheder, man var lagt under krigen, og hvor umenneskelig og ond eller modig, men traumatiseret, man kan da blive dermed.

Vores bedsteforældres generationer i Korea har også oplevet det samme under besættelsen af Japan, blot værre og meget længere end det – omtrent et halvt århundrede – der oplevedes i Danmark den gang under besættelsen af Tyskland. Så jeg kunne på en måde forholde mig tættere til filmens fortæller, der følger efter sin fars spor i modstandskamp mod tyskerne under den anden verdenskrig ved hjælp af DR, Rigsarkivet, mf.

Men det gik op for mig, at jeg ikke har tænkt på, at modstandsfolk også havde familien og deres kære, som de aldrig ville gøre ondt eller komme til at skade, og at de også var pisse bange. De gjorde alt det med modstandskampen med de risici, at de slet ikke ville kunne se deres kære, dvs. deres kone/mand, børn, forældre, eller at de kunne miste dem på grund af sin kamp. Jeg så dem indtil nu som et historisk objekt, men ikke som det samme menneske, som jeg er. Det gik simpelthen op for mig. Hvor har jeg været ikke-empatisk!

Nu har jeg min datter. Kan jeg mon gøre det samme, som de modstander har gjort, fordi jeg ville give et frit land til min datter ved at risikere at miste hende og livet sammen med hende? Hvor er det hamrende svært. Nej. Måske ville det ikke være så svært for mig. Jeg tror ikke, at jeg vil kunne gøre det.

Jeg skal huske og aldrig glemme de store indsatser, de modstandsfolk mod Japan har gjort for mig og mine kære, også dem mod Tyskland, da ellers ville jeg, Jens og Hannah ikke kunne have været sammen her og nu. De var modige og de var vores helte.

이사할 집 찾기 시작

지금 사는 집이 사실 여러모로 괜찮긴하다. 거리도 도심과 매우 가깝고 아파트지만 동간 거리가 충분하고 고속도로, 기차역 모두 가깝지만 소음은 없다. 주변에 좋은 공원과 자연이 많고 놀이터도 자그맣게 여럿이라 애가 놀기도 좋다. 보육원은 바로 내려다보면 애가 노는 것도 보이는 바로 코앞이고 애도 아주 만족하고 아주 가까운 친구들도 여럿이다. 학교는 학군이 좋아서 전국 학교에 50위권에 드는 학교도 지근거리다. 아파트에 있는 잔디밭은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애들이나 조금 이용해서 우리 것 마냥 즐기기도 좋다. 거기에 아파트 부족으로 딸린 문달린 큼직한 차고를 월 400크로나 정도에 함께 텐트치고 있으니 이런 조건에 이런 가격의 아파트는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할 집을 찾기 시작한 것은 집이 한국 기준으로 30평에 조금 못미치는 크기이다보니 아이가 크면서 불편해질게 뻔히 보이고 있다. 물론 못할 일은 없고 달라면 오래 살 수도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데이트를 하거나 아이가 시대에 들어설 때 좀더 사생활이 보장되는 독립 공간을 주는 문제 등에 있어서 이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특히 부엌에서 수납이나 조리공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학군이 평균보다 조금이라도 나으면, 대중교통이 편했으면, 시끄럽지 않으면, 통근이 너무 멀지 않으면서 예산은 450만 크로나 아니면 좋겠다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맞추기 어렵다. 옌스에게 오늘 대중교통 근접성 요건을 조금 완화해 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더니 가능성은 열어두자고 한발 물러섰다.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이 있었는데 소음이 생각보다 심한 지역이라 관두고 나니 더이상 찾기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러니 뭔가 타협해야하는데 교통에서 타협을 보는게 제일 나을 것 같았다. 이미 차도 한 대 샀겠다, 한 대 더 살때 심리적 저항은 첫 한 대보다 낮다. 지금 보고있는 타운하우스들 중에서 참고가 있거나 설치가 가능한 곳들에서는 충전기도 설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올해 제일 싼 전기차로 15만 크로나로 가성비가 아주 괜찮은 차가 새로 출시된 모양이다. 좀 멀리가도 가격이 낮아지니 차한대 더 사면 어떤가하는 제안에 옌스도 딱 잘라 안된다고 하지 않았으니 그만큼도 장족의 발전이다.

사실 이렇다가도 언제 집을 사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사하려면 최소 삼개월은 걸리니까. 은행은 서류 준비는 끝났으니 컨택만 하면 된다. 거래만 성사되면 주식을 좀 팔고 다운페이를 하고 나머지는 대출로 삼십년 상환하는 거다. 장기간의 투자이니 신중히 잘 결정해야한다. 여긴 애들이 전학을 잘 안하고 어릴적 친구가 오래 가는 탓이 학교 입학 전 이사하고 거기서 오래 사는 게 거의 보편에 가까워서 더욱 그렇다.

과연 우리는 언제 집을 살 수 있을까?

끝내주는 요즘 날씨

요즘 날씨같은 날만 이어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물론 그러면 가뭄으로 이 모든 풍경이 유지될 수 없겠지만. 동네 산책길에서 아름다운 길을 새로이 또 걸어보았다. 갠토프트 호수에서 항상 한쪽편만 걸었었는데 이번에 반대편을 걷다보니 작은 습지내 산책길이 있는 게 아닌가. 날씨가 좋으니 풍경도 아주 아름다웠다. 저녁 아홉시 열시 사이의 풍경. 이처럼 좋은 시기가 연중에 또 없다. 누리고 또 누려야지. 지금. 할 수 있을 때.

40개월의 하나

키는 95센티미터 정도, 몸무게 15킬로그램. 나이 대비 매우 평균적인 아이이다. 머리크기는 잊었지만 이또한 평균. 먹는 것은 덴마크에서 한국 식생활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식탐이 없고 그렇다고 적게 먹는 것도 아니다. 신체적 성장의 면에 있어서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평균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성이 탁웚하다.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고 자기를 소개하고 상대에 대해 질문한다. 이름을 외우는 것을 좋아하고 이름을 포함해 대화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대화에 적극 활용한다.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아 상대가 무시하고 갈 경우 다소 상심도 하고 주변 어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왜 상대가 자기를 무시했을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다행히도 그런 일을 훌훌 터는 걸 잘 한다. 주변의 친구와 어른에게 포옹 등 신체적 접촉을 통해 친밀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와 같이 노는 걸 좋아하지만 아쉬움이 없이 잘 놀기 때문인지 헤어짐은 우는 것 없이 흔쾌히 받아들인다.

놀이를 잘 만든다. 상상력이 풍부해서 이러저러한 놀이를 잘 만들고 친구들을 놀이에 끌어들이는 것을 잘 한다. 장난감이나 사물을 본연의 모습이나 기능과 달리 사용하는데서 창의적임을 느낄 수 있다. 잠에서 혼자놀 때는 인형에 역할을 부여해 혼자 대화를 주고받는 역할 놀이를 많이 한다. 상황에 따라 부여하는 이름이 세트로 나뉘어있고 그 세트가 매우 다양하다. 사자 가족일 땐 엄마사자, 아마사지, 아기사자 이름이 뭐뭐고 고양이 가족일 땐 그게 또 다르고 그냥 아기일 땐 뭐고. 너무 많아서 이제는 내가 다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다.

노래는 좋아하지만 음정은 좋은 것 같지 않고 미술을 좋아하나 그건 내가 잘 모르겠다. 그냥 특별할 것 없이 그 나이 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정도인 것 같다.

숫자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냥 일부터 이십까지 세는 것 정도가 일상적으로 쓰게 되는 전부이고 시간에 대한 관념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매일 아빠가 읽어주던 라임책 덕에 두돌때 알파벳은 이미 읽을 수 있었지만 글자를 일고 싶어하는 욕구를 드러낸다거나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책은 좋아하는 것 같은 게 간혹 문닫고 조용히 있을 때면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고 집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덴마크어는 또래 애들중에서 뛰어나다. 발달 정기검진에서도 언어나 신체조절능력이 많은 부분에서 평균보다 1년정도 빠른 것 같다고 나왔는데 실제 보육원에서 다른 아이들을 만날 때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어려서부터 발음도 좋았어서 타인과 의사소통이 어려서부터 쉬웠다. 아무래도 공갈젖꼭지를 물리지 않은 것도 발음이 일찌기 좋았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오래 문 애들의 경우 이가 완전히 물리지 않아 발음이 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덴마크어가 뛰어난 것에 비해 내 노력의 부족탓인지 한국어는 부진하다. 요즘 좀 한국어 사용을 내가 늘리면서부터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자기도 자기 한국어가 뛰어나지 않은 건 잘 알고 있고 내 덴마크어가 완벽하지 않은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따금 다른 아이들 이름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하고 문법을 교정해주는 것도 있다. 덴마크어애는 부정의문문에 긍정으로 답할 때는 Yes에 해당하는 ja를 jo로 바꿔 답해야 한다. 간혹 내가 그냥 이에 ja라고 하거나 실수로 ja라고 해야할 경우에 jo라고 답하면 정정해준다. 그리고 엄마 덴마크어는 나쁘지 않아 라고 이야기해주는 걸 보면 내 덴마크어가 모국어가 아님을 자기가 느낀다는 거다. 요즘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갖고 와서 한국어로 읽어달라고 한다. 이해를 다는 못할 텐데 열심히 듣고 질문하는 거 보면 기특도 하다. 주도적 한국어발화는 많이 제한적이고 주로 내 요구에 의해 한국어를 말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생활속 레퍼런스가 떨어지는 게 한국어 실력 향상에 걸림돌이 된다.

성별 구분에 일찌기 관심을 가졌다. 여자, 남자 이렇게. 누가 가르친 게 아닌데 소방관처럼 그 끝이 영어로 하면 man으로 끝나는 단어일 경우 성별에 따라 자기가 단어를 변형해 woman에 해당하는 단어로 대체해 쓴다. 어느날 플레이데이트에서 애가 그렇게 단어를 쓰니 상대방 아이가 하나가 말한 게 맞는건가 싶어하며 다소 혼란스러워했는데 그 엄마 왈, 그런 거 내가 가르친 거냐 한다. 그런거 아니고 자기가 그냥 그런다고 했는데, 그 아이를 보면 남자냐 여자냐를 그렇게 따지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누가 시킨 게 아닌데 원피스, 공주, 악세사리 이런 거 엄청 좋아한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니고, 애한테 일찌기 중성적인 옷을 많이 입혀온 나인데.

운동기능이 뛰어나다. 체력 단련이 일상화된 게 우리집 발레바를 무슨 철봉처럼 메달리는데 쓴다. 매일. 팔다리, 코어가 모두 아주 단단하다. 봉을 타고 약간이나마 올라갈 정도니. 뛰어다니는 자세에 있어서도 어린 아이같은 어색함은 완전히 없어졌다.기어 올라가고 내려오고 높이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다. 자기가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아기용 그네 같은 경우는 하늘높이 밀어도 두려움이 없으니 말이다. 그건 아주 어려서부터 그네를 태운 탓인 것 같긴 하다. 옌스가 애를 이래저래 많이 훈련을 시키는 것도 있어서 발달이 빠른 것 같다. 요즘은 두발자전거와 외줄타기도 연습중이다.

기저귀는 코로나 재택근무를 계기로 떼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편할수가. 여기는 대충 세돌 근처에 자연스럽게 떼는데 서너번 실수하고 더이상은 실수하지 않고있다. 밤엔 그냥 기저귀를 채우는데 거의 마른 기저귀가 대부분이다. 마르지 않은 경우 아침에 깬 이후에 눟는 경우가 주인 것 같다

예전에 지도교수가 세돌 반 지나면 거의 다 키운 거라더니 진짜 거의 그런 것 같다. 밥도 예전보다 덜 흘리고 먹고, 원하는 건 다 의사표현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해 해결하니까. 둘째를 낳을 생각은 없지만 이쯤 수월해지니 내가 한 5년정도 젊었으면 힘들었던 기억 이쯤에선 다 잊고 하나 더 낳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나이에는 우리 둘 다 하나로 족하다. 조카가 남자 사촌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옌스가 꿈 깨라고 말해줬다. 하나면 족하지 아무렴.

세살 아이의 죽음에 대한 관심

겨울왕국에서 주인공의 부모가 죽는 장면을 본 이래로 하나는 죽음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혔다. 안그래도 좋아하던 아동용 드라마 주인공의 아빠가 주인공이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는 설정이어서, 땅속에서 자는 거다 정도로 이해해오던 거였다. 하지만 사고로 부모를 순식간에 잃게 되는 설정에서 죽음이 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뒤이어 본 라이언킹에서도 아빠가 아이를 지키다가 사망하는 장면애서도 충격을 받았는데 후에 아들 심바가 돌아가신 아빠 사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마음 속 아빠와의 대화) 장면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에 다소 혼선이 생긴 듯 싶다.

그래서 그런지 죽음을 끊임없이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때로는 그게 너무 슬프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스러운 일인냥 받아들이기도 하고. 이런 경우에 이런거냐 저런경우에 저런거냐 하며 자기딴에 설정한 상황을 나에게 제시하며 죽음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나와 옌스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설명에 어찌나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던지. 지금 죽는 건 아니라니 안도를 하면서도 여전히 슬퍼하며 말이다.

이름 외우는데 귀신인 하나는 동네 주민들 이름을 다 꿰고있고, 만나서 대화할 때마다 이름을 문장 사이에 적절히 넣어가며 친밀함을 쌓아가는 스킬을 벌써부터 구현하고 있다. 엄마, 아빠도 잘 못하는 걸. 그런데 여기에 죽음의 토픽도 들어간다. 나이든 주민은 부모님과 살지 않으니 그들의 부모 존재 여부에 관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오늘은 우래 윗집에 사는 이웃에게, 부모님이 돌아가셨냐고 물어보더라. 엄마가 치매에 아버지도 몸이 안좋으시다고 알고 있던 그녀의 부모님이 작년에 돌아가셨더는 것을 덕분에 오늘 알게 되었다. 늦었지만 조의를 표한다고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앞으로 좀 더 가까이 지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의 당황스러운 질문 덕분에 그녀와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친분을 쌓을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아직 죽음이 뭔지 정확히는 이해하진 못하지만, 더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고 영원히 잠드는 거라고 이해한 그녀, 나도 많이 경험하지 못한 그 일이 그녀애겐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궁금함에 나도 어떻게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남편과 싸우는 이유

남편과 크게 싸우는 일은 없어도 간간히 짧게 투닥거릴 일은 생긴다. 주로 내가 팩 하고 성질을 내는 경우이다.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왜 성질을 내나. 이는 자격지심과 동서양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차이의 버무림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내가 부족하다 스스로 느끼는 부분에 대한 주제를 (내가 느끼기에) 내포하고 있을 때, 그리고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뭔가 시사점이나 의도를 (역시 내가 느끼기에) 내포하고 있을 때 나의 방어기제가 작동하며 팩 성질을 부리게 되는 것 같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 옌스라고 이기적인 생각이 없겠느냐만 이는 대체로 이타와 중립을 선택함에 있어서 중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음에서 이기적인 거고, 나는 중립과 이기의 선택에서 이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음에서 이기적인 것이기에 둘 간에는 차이가 있다. 이 이기적인 마음을 나라고 좋아하는 건 아닌데, 상황에 따라 자기합리화도 해가며 이기적인 선택을 하곤 하니 이는 내 숨기고 싶은 성격이다.

오늘 좋은 날씨, 시주모님과 함께 아파트 정원의 테이블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테이블이 딱 두개가 있는데 혹여나 이 좋은 날씨에 자리가 채일까봐 약간 부족한 찬거리를 장보러 가기전에 자리를 맡고자 했다. 삼십분 후면 상을 차릴 거라 크게 무리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고. 옌스가 하나랑 잠시 화장실에 들르러 집에 돌아온 김에 테이블보와 살라미를 썰어먹을 도마릉 미리 갖고 내려가라고 했더니 그렇게 미리 갖고 가기 그렇다는 거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미리 테이블을 맡으연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짜증이 확 치밀어올랐다. 어쩌면 그런 마음이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걸 갖고 한 몇분 투닥거려도 결국 매번 그렇듯 옌스의 화해의 제스쳐로 별 일 아닌 듯 일은 마무리 되었다. 옌스는 바람도 많이불고 그 남은 삼십분동안 자기와 하나, 시부모님은 놀이터가러 자리를 비울텐데 그것만 거기에 덩그러니 두기 그래서 그랬다 말하는데, 그것까지 듣고 났더라면 그렇게 팩 하지 않았을 것을 나혼자의 자격지심에 갈등을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좋진 않았다.

이래저래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관계에서 내가 갈등을 초래하는 일이 생기는 것 같아서 조금 더 조심하고 적극적으로 소통을 해야겠다 느낀다. 넘고짚고 오해하고 불필요하게 상처받고 주는 일은 줄여야겠다. 가까운 사람일 수록 부대끼는 시간도 많고 서로 잘 안다하는 생각에 더 넘겨짚고 오해하게 되는 것 같다. 더 조심하고 아껴야지.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