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나는 하늘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를 잊고 살게 되었다. 탁트인 파란 하늘은 힘겹게 오른 산의 정상에서 땀을 닦고 숨을 고르면서야나 바라보고 좋아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몰랐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매사 시큰둥해진 모양이라며, 되려 예전엔 안그랬는데 하는 씁쓸함만 느끼기도 했다.

덴마크에 온 이후로 하늘에 다시 관심이 늘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변하는 덴마크의 날씨 때문이려니, 자주 오는 비 탓에 해가 뜨기만 해도 기뻐하며 하늘 쳐다볼 일이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어느 날, 덴마크를 그리워하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쉽게 보여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무릎을 탁 쳤다.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시선을 조금만 멀리 두면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자꾸 보이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국의 하늘과 차이가 눈에 띈다.

차이점을 열거해보자면, 덴마크 하늘은 낮은 구름이 많아서 유독 가깝게 느껴진다. 또 바람이 상시 많이 불어 스모그가 없는 덕에 해만 뜨면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위도가 달라 계절에 따른 일조량과 일조시간, 일출, 일몰의 직전과 후의 색깔이 다르다. 특히 일몰시간의 분홍빛깔 하늘은 오묘하기 짝이없다. (이는 어쩌면 덴마크에 산과 높은 건물이 없어 도심에서도 지평선 근처에서 이뤄지는 일출과 일몰을 쉽게 볼 수 있어서 다르게 느낀 것으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것뿐일 수도 있다.) 구름 모양은 또 어찌나 다른지. 어려서 좋아하던 뭉개구름은 지금도 참 좋지만, 깃털구름을 비롯해 이름도 잘 모르겠는 다양한 모양의 구름을 새롭게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것이 좋은 이유는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왜 다를까?” 하고.

구름에 대해 중학교때 배운 기억이 난다. 날씨에 대해 배우면서 배운 것 같다. 지금도 고기압, 저기압, 한랭전선, 온난전선, 층적운, 적란운 이런 용어들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런 용어만 기억난다. 아마 시험의 정답으로 써야 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구름이 왜 어떤 건 흰색이고 어떤건 회색인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구름이 하얀 것은 햇빛을 반사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회색 구름은 왜 그런 색깔인지. 인터넷을 찾아 구름의 색깔이 왜 다른지 알아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아마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덴마크가 참 좋은 나라라고는 해도 내 모국어를 쓰는 내 나라에서 사는 것과는 달라 힘든 순간이 있다. 어린이처럼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은 그간 당연시 했던 것에 질문을 던지게 하고 그런 것을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한다. 또한 새로이 주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한다. 어린이처럼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은, 간혹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부러워하곤 하는 어린이의 신선한 관점을 조금이나마 다시금 갖게 한다.

지난 3일간 스웨덴 말뫼에 아르바이트 하러 기차로 통근을 했는데, 일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국경을 넘으며 방송이 덴마크어로 바뀌니 어찌나 마음에 편안함이 찾아오던지. 변화는 사람을 일깨우고, 기민하게 만든다. 3일이라는 스웨덴에서의 짧은 시간이 이곳에 적응해가는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해주었다. 2년의 기간동안 이곳에 많이도 적응한 모양이다. 적응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각도 계속 유지해가고 싶다면 내 욕심일까. 예전엔 즐기고 경험하려고 여행을 한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삶을 더 잘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일탈이기 떄문에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다니고 많이 보자. 그리고 다른 눈을 키워가자.

청혼 그리고 결혼계획

올 해 연초, 올 해 안에 결혼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대충 했지만, 프로포즈라기보다는 그냥 상의와 결론에 가까웠다. 비자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인생 계획을 세워야 하는 탓이었다. 따라서 듣기에 형식상의 로맨틱함은 별로 없는 첫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국에서는 커플들이 사귀고 나서 오래 지나지 않아도 적령기면 대충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때로는 소개팅이나 선 단계부터 인생 계획상의 결혼 시기를 대충 밝히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서양에선 그런 법은 없다.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얼마나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판단하게 되고, 소소한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여자들이 영화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프로포즈 받으면 그리 우는 모양이다.

덴마크는 그런 절차들이 갖고 있는 로맨틱함을 이용하는 면이 적은 나라다. 감정의 과잉이 별로 없다고 해야 하려나. 사귀다보면 진지해지고, 진지해지면 같이 살다가, 결혼을 하고 애를 갖거나, 애를 갖고 결혼을 한다. 살아보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타인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확신도 없이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둘이 만나서 관계를 이루는 가장 큰 목표는 평생 함께 사는 것이다. 결혼을 결정할 마음가짐은 물론 매우 큰 일이지만, 결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게 종착지가 아니라 그 이후에 계속 사는 더 중대한 일이 남아있으니. 둘이 같이 산다는 것은 결혼을 중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만 둘이 살아보고 예상하지 못했던 요소로 너무 불행하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둘을 위해 바람직하니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같이 사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논리로는 매우 설득이 되었다. 마음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다른 나라에서 온 두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다름을 어떻게 조율하냐는 것인데, 내가 온 문화에서는 결혼전에 같이 산다는 것은, 존재함에도 숨기곤 하는 일이며, 또는 그리해서는 안되는 일에 가까운 것이라 이 점을 조율해야 했다. 이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막상 생각을 해보니 안될 일은 없었다. 나는 동거라는 관점에 크게 반대해 본 적도 없었고, 실제로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척 하는 많은 일들에 대해 위선적이라고 생각해왔으니, 그냥 남들이 그렇게 느껴한다는 이유로 내가 해서는 안될 일이 아니었다. 난 괜찮고, 내 연인이 꼭 원하는 일인데 못할 일도 아니고.

처음엔 약간 걱정도 했다. 한국에서 하는 방식과 다른데, 이렇게 해도 되나하는 생각. 여태껏 살면서 남들이 가는 길에 얽메인 적 없는 내가 왜 갑자기 그런 시선에 신경을 쓰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하는 길에 대해 나의 확신만 있으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그간 한번도 가진 적 없는 내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 유일한 사람이었고, 처음으로 내 인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갖게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4월초, 둘이 처음으로 한국에 여행을 갔다. 저녁에 호텔방에 앉아 오빠네가 선물한 와인을 마시며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을 만나고 온 터라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우리 둘 모두 조촐한 결혼식을 하기 원하는 것을 확인했다. 둘다 형식에 매우 얽메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프로포즈라는 것 없이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너무한가 싶었는가보다. 호텔방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침대에 다리를 걸친 채로 약간은 쑥스럽게, “올해 안에 결혼해주겠어?”라고 물어보았다.

영화에서 남자가 무릎을 꿇고 “나와 결혼해주겠어?” 라며 갑작스레 청혼하면 여자가 울며 웃으며(엉덩이에 털났으려나?) “물론이고말고!”를 외치는 장면을 보면, 나도 저런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랑 맞지 않는 장면이다.

그의 머쓱하지만, 진심이 담긴 청혼에, “물론이지.”라고 답을 하면서 둘이 손을 꼭 잡았다. 우리 둘의 로맨틱함은 그런 거다.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하는 것, 평소에 그런 느낌을 항상 또는 순간순간 느끼게 해주는 것. 몰론 그러고 나서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주말에는 내가 한두번 정도 요리를 한다. 어제는 아시안 퓨전(내 마음대로 한국풍 음식)을 해먹으면 어떻냐길래, 좋다고 해서 요리를 시작했다. 그는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아무것도 안하는 것에 여전히 매우 어색해한다. 뭘 돕겠다고 해도, 난 그냥 내가 하는게 편해서 내가 한다고 한다. 이제 그런 날이면 의자를 갖고 와서 좁은 부엌에 앉아 내 옆에서 뉴스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결혼 관련 준비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우리 결혼이야기일 것이라고 추정은 했지만, 혹시 몰라서, “다음달에 갈 결혼식 드레스코드에 맞춘 준비?”라고 물어보니, “아니 우리 결혼식.”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속으론 ‘꺄악~!’하고 아직 조금은 남은 나의 소녀감성이 소리를 치지만, 겉으론 침착하게, “응, 이젠 천천히 준비는 해야겠지. 당신 연수 끝나면 준비하자며?” 하고 답을 했다. 올해 계속 바쁠 것 같아서 그냥 지금 조금씩 준비를 시작해야겠다니, 그러기로 했다.

우린 시청 결혼식 이후 직계가족과 극히 소수의 친구만 초대하거나, 아니면 그것보다는 아주 조금 더 큰 결혼을 할 것 같다. 대충은 우울한 날씨의 11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한국 생각하면 정말 코딱지만한 결혼식이 될 듯하다. 이번 여름, 10박 11일의 여행은 우리의 미리하는 허니문이 되겠으니, 이 여행이 더욱 기대된다.

보리가 이 결혼식에 함께 못할 것 같아서 그게 가장 안타깝다. 잠깐이라도 데리고 오시라고 할까? 고민이 된다.

Having a wonderful partner in life. Declaration of my love to my loving partner.

“There is a right one for you out there, somewhere.” say many people and they also say, “Just be patient. Live you life. Then everything will come along.” I was the one skeptical about this. How do they know that there’s a right one for me? Just like the people who have a great partner in life, there still are a fair share of population that couldn’t find the one till the end. How can I be sure if I am one of those finding the right one?

I still don’t believe that everybody can find the right one in life. As a person, studying economics, I should say, it’s due to market failures, due to inequality in information of possible relationship matches. And I think that it’s impossible to fix this problem. One of main problem, makes it impossible, is that one doesn’t know perfectly about one’s own preferences or even oneself. We, human beings, are so complex and from every day learning we change all the time. So even if we can understand ourselves perfectly at any given moment, we will change soon and we cannot keep on track of that all the time. Therefore we will never know what is best for us in terms of relationships until it happens to us. When it happens, I think it is a miracle and such a nourishing experience.

I finally found the one in my life, letting me say with confidence that I found the one, my Mr. Right.  I have met many people, most of them were not in any serious relationships though. Still I struggled so much that I became skeptical about relationships and having a good family in modern days, where people are being so calculating and materialistic. I wasn’t the most beautiful or feminine or rich girl and many failures in budding relationships were good enough to let me down in the dating markets. But I kept on trying to put myself out there to meet someone, because I still had a little hope that it’s only due to market failures why I couldn’t find the right one.

Now that I am soon turning to 35 in a month, it has been 15 years of searching for someone. There were years that I stopped actively looking, but there were also many countless moments that I felt very lonely for not having a boyfriend.

I didn’t know what I was looking for from a partner, and even worse was that I completely misunderstood what I liked. I thought I was looking for the so called manly quality that one can easily detect even from a glance. But I have been looking for someone who understands me, even the complicated side of me, and who loves me the way I am, which I don’t love sometimes myself. The one should understand the tomboy side of me and elegant side of me, not being confused by extreme spectrum of my characteristics. I have been looking for someone who lets me learn from him not by pushing but by showing his way of life. It is someone that I can intellectually challenge myself, by having many discussions about different topics in-depth. The one has to have those qualities that I could admire but not to brag about those. And the person should be my mental safety net, that I could be sure that the person would love me still, even if I fail for everything, so that I could start over again on a fresh ground. And the one has to be fun to be around and that I can giggle without being conscious about how weirdly I giggle. The one will be someone can laugh for a small thing, and can share small moments to smile upon. The one remembers small remarks and drop a note reminding those, which incredibly makes me happy. And many more. How demanding and picky I am!

I didn’t know that I could find someone like that, because I haven’t experienced that before. It’s a miracle. He makes me happy and makes complicated things so simple.

I have never loved anyone before, because even when I said I loved someone, I was never sure what love was about. But now I know. I am so happy and I love him so much. This is a pure declaration of love to Jens.

How lucky I am to have you in my life. You are the source of the power to let me keep this journey to a new life, away from my home town, my family and friends. Thank you for being a wonderful partner in my life. I love you, Jens.

현지에서 배우는 언어의 학습곡선

언어는 그 말을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 살면서 배우는 게 빠르다는게 맞다는 걸 거의 매일 실감하고 있다. 아직 그린카드비자로 변경이 완료되지 않아 수업료 내면서 비싼 수업을 듣고 있긴 하지만, 학원을 최근 바꾸고 모듈도 3으로 올라가면서 빠르게 늘고 있음을 느낀다. (사족. 요즘 그린카드 발급에 6개월 이상이 걸린단다.)

언어 배우는 것을 취미로 여겨온 터라 언어의 학습곡선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간 몸소 느껴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해당 국가에 직접 살면서 배워본 것은 처음인지라, 이를 보다 명확하고 빠르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초반에는 주변 모든 것에 흥미를 느껴 금방 이것 저것 조금씩 말하는 것이 가능해, 그 전에 하나도 말을 못하던 것에 비하면 빠르게 느는 것 같아서 흥분된다. 길에 보이는 싸인 하나하나도 새롭게 보이고, 그것을 이해하는 나를 보면서 흥분하게 된다. 그 신기함에도 익숙해지고 나서 그런 느낌이 사그라들고 나면 내 실력의 현주소를 다시금 무겁게 확인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모국어로 표현해내는 풍성한 내용인데, 나는 아주 어린 아이와 같은 수준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별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크게 느끼고, 누군가에게 이 언어로 대화를 시도를 하기에 스스로도 답답하다보니 할 수 있는 언어로 전환하고 싶어진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크게 안느는 것 같은 시기가 온다.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현지생활에서 단순하게 쓰는 말들이 익숙해진다.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하거나 등 자주 반복되는 말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도 말 할 수 있게 된다. 내 말을 알아듣기만 해도, 그리고 그 대답을 대충 짐작하고 답변하는 것으로 감동받던 시기는 어느새 과거가 된다. 막상 이런 단순한 대화는 늘었는데, 조금만 주제가 복잡해져도 대화가 삐그덕거릴 때 다시금 이 말은 언제 느는 것인가 하면서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내 말의 속도와 발음이 개선되면서 상대도 평상시처럼 대화를 하면, 다시금 대화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리고 방송과 전화 등 비대면 언어는 알아듣기 매우 힘들다. 분절되지 않은 소리의 덩어리가 뭉게져 스쳐지나간다. 웅얼거리는 것만 같은 소리. 또는 뭔가 들리는 것 같지만 그 소리를 머리에서 처리하기에 실제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와 내 머리에서 언어로 재구성하는 속도사이에 격차가 너무 크다. 새로운 소리가 계속 흘러들어오는 탓에 새로운 말을 듣지 못하거나, 내용의 해독을 할 수가 없다. 매일 듣는 지하철 방송도 무슨 이야기인지 남에게 물어봐서 다 알고는 있지만, 그 소리가 나에겐 완벽하게 들리지 않는다. 매일 듣는 방송도 아직도 안들리다니, 하면서 도대체 언제 느는지 싶고 지친다.

어느날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낀다. 뭉게져 들리던 소리뭉치가 깨끗한 음절로 분화되어 들리고, 라디오 방송도 들리기 시작한다. 집에 오던 광고 전화에 덴마크어 못한다고 초장부터 이야기하던 내가, 덴마크어로 대화를 끝마친다. 주로 왜 걸었는지 설명 듣고, 옌스가 집에 없고, 언제 올 것인지, 또는 내가 답해줘도 되는 전화이면 그 답을 해주는 정도에 그치지만, 장족의 발전이다.

귀가 뚤린다는 것은 어휘의 증가와 현지인이 말하는 말투에 익숙해지는 것, 내가 기존에 하던 말을 번역하지 않고 그나라 말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 다 결합되어 생기는 일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귀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방송에 나오는 말들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더라도 소리가 정확히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덴마크어 배운지 9개월 거의 가 되어가고 있으니, 대충 만 8개월차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나니 ARS 음성 안내가 더이상 스트레스가 되지 않고, 집에 간혹 전화가 오면 대화를 할 수 있다. 1년 정도면 귀가 뚤린다고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겠다.

영어 공부의 경험을 토대로, 모르는 단어를 맥락으로 파악하고 넘기는 노하우와, 꼭 이해해야 하는 동사를 파악해서 사전을 찾는 노하우가 쌓인 덕에 신문도 이제는 대충 내가 아는 주제의 기사라면 집중해서 읽어낼 수 있다.

옌스와 덴마크어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고, 한시간 대화는 큰 스트레스도 없다. 매일 무슨 일을 했는지, 수업에 무슨 공부를 했는지 설명을 하다보니 반복 학습도 되서 좋다. 덴마크어는 발음만이 아니라 영어와 조금 다른 문장상의 강세 표현이 중요한데, 옌스와 최근 들어 시작한 읽기 연습이 강세표현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게 말을 알아듣는데도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대학원 졸업하기까지 약 3년의 시간 동안 덴마크어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만 늘어준다면, 앞으로 이곳에서의 삶이 참 좋을 것 같다. 주변에서 남친이나 남편이 자기의 덴마크어를 인내해주지 않아서 언어가 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많은데, 연습만이 숙달의 지름길이라면서 채찍질을 해주는 옌스에게 감사의 말을 (본인은 이 글 이해 못하지만…) 하고 싶다. 그리고 빨리 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나에게, 그러다가 또 잘 안되는 날이 오기도 하고, 그게 또 당연하다고 이야기해주는 게 참 고맙다.

물론 덴마크어가 영어와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속도의 발전이 가능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곳에서 살지 않았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학습곡선이다. 이곳에서, 한국에서 산 이상의 시간을 살게 되면 언젠가 영어보다 덴마크어가 편해지는 날도 있겠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제논의 역설이 성립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것은 농담.)

Mennesker, Folk og Personer

Mennesker

1. Især efter et eller flere andre ord, som det er “sammen med”.

Eksempler

– Jeg tror, der er over tusind mennesker med det her tog.

– Der er altid så mange mennesker med toget om morgenen.

– Jeg gider ikke høre andre menneskers private telefonsamtaler i toget.

2. Man dropper tit mennesker og siger bare fx de fleste, mange, nogle, unge

Eksempler

De fleste sidder og kigger ud ad vinduet. Der er også mange, der sidder og sover i toget.

Nogle læser, og mange unge hører musik.

3. Man siger aldrig mennesker sammen med et nationaltetsadjektiv. Man siger danskere/danskerne.

4. Mennesker “alene” betyder mennesker som biologisk art (altså ikke Gud, ikke dyr, ikke maskiner).

Eksempler

– Mennesker kan tale. Det kan dyr ikke.

Folk

Som regel “alene”

Eksempler

Folk bliver så aggressive, når der er meget trafik.

– Jeg kan ikke lide, når folk har lange private telefonsamtaler i toget.

Personer

1. Mest sammen med tal og med et praktisk formål.

(formål: purpose)

Eksempler

– En taxa til 6 personer, en 3-personers sofa.

2. Også ofte i forbindelse med statistik og officiel information.

(forbindelse: connection, i forbindelse med: in connection with)

Eksempler

– Gennemsnitligt antal personer pr. bil: 1,7.

(gennemsnitligt: average, antal: number)

Source : Det Kommer! Dansk som andetsprog på mellemtrin. Bodil Jeppesen og Grethe Maribo, 2008 Alfabeta, København

Starting a 30 day squat challenge

After having a small injury in my right hip joint from extreme stretch, it has been difficult to go for ballet training on a regular basis. What a shame. I took a break for a while due to busy schedules and a trip to Korea, and felt a little hasty to get back to the normal fitness. So, there I made a mistake, stretching too much while not warming up the body enough. Urghhh. I got this pain in my right hip joint and I remember that it takes several months to get back to normal.

Turning out, an essential part of ballet, can be dangerous for hip joints, if practiced wrongly like I did.

I am gaining weights again because of my gaining appetites. I am losing my muscles and definitions in muscles. NO GOOD. Something really has to be done.

30 day squat challenge. It can be hard on the knees, but it can also be prevented. So, today is the first day. 50 squats. After dancing ballet, 50 squats are not difficult any more. However 250 squats could be a real challenge. I would like to see the result at the end this challenge.

덴마크 여왕 생일과 군대

덴마크 여왕의 75번째 생일

어제는 한국에서는 세월호 1주년 추모일이었지만, 덴마크에서는 덴마크 여왕의 75번째 생일이었다. 어느 하루가 누구에게는 애도할 날이되고 누구에게는 경축할 날이 된다는게 인생의 아이러니인 것 같다.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애도할 것은 애도하되,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이니… 이러한 가슴아픈 날이 다시금 없었으면 좋겠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같은 대형 사건 이후 이런 일은 설마 또 없겠지 했는데…

덴마크에서 생일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컨셉은 없는 것 같다. 그냥 탄생 경축! 이런 의미인 듯 하다. 우리도 요즘은 거의 그렇게 바뀌었지만, 최소한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우기에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라는 내용이 꼭 들어있었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라 믿는다. 일반적으로는 Rounded Birthday라고 10년 단위의 순 개념을 크게 기념하고, 그 외에는 가볍게 가족끼리 식사하고 선물 주는 식으로 챙긴다. (역시나 애들은 제외… 항상 뻑적지근하게 하며, 우리와 달리 친구들만 초대하는 생일파티와 부모의 친구와 가족, 소수의 애들 친구를 초대한 생일파티 두번 정도 한다.) 그러나 여왕은 또 예외이다. 특히나 5년 단위로 조금 더 뻑적지근하게 하는 것 같다.

여왕 퍼레이드의 시작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의 시작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의 선봉, 왕실근위대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의 선봉, 왕실근위대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와 여왕(에메랄드색)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와 여왕(에메랄드색)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이 잔재(말똥) 청소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이 잔재(말똥) 청소차량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어제 덴마크어 수업 말미에 덴마크어 선생님 Jørgen(요언)이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D. 9. april 1940 blev Danmark besat af tyskerne. D. 16. april 1940 blev princesse Margrette født. Hun bliver i dag 75 år og vi holder meget af hende!” (1940년 4월 9일, 덴마크는 독일에게 점령당했다. 1940년 4월 16일, 마르그레테 공주가 태어났다. 오늘 그녀는 75세가 되고, 우리는 그녀를 매우 좋아하고 아낀다!)

덴마크인의 인식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평등주의를 생각하면, 왕실을 유지하는 자체와 여왕의 생일이라고 사람들이 국기(Dannebrog)를 걸고, 들고 흔들며 여왕에게 환호하는 모습 등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덴마크에 사는 외국인들이 참 아이러니 하다고 하는 부분인데, Jørgen은 바로 이것을 설명한 것이다. 1940년 덴마크가 독일에게 점령당했을 때, 바로 몇일 이후 있었던 공주탄생은 우울한 덴마크인에게 기쁨을 가져다준 존재였으며, 지금과 왕실이 보다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었을 때 이러한 공주탄생은 행운의 상징같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장수하는 것에 대해 덴마크인은 기뻐하고, 75세가 된 것을 경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Jørgen은 자기가 여왕을 지키던 사람이기 때문에,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날이라고 덧붙였다. 자기는 군대에 자원입대했다고. 그래서 네가 물었다. 뽑기에서 낮은 숫자를 뽑았냐고. 그랬더니 맞단다. 그래도 자기는 왕실근위대에 지원했다고 덧붙이면서.

덴마크 군대

덴마크 군대는 징집이 원칙이다. 만 18세가 된 덴마크의 모든 남성은 우선 징집 대상이다. 2014년 10월에 발간된 덴마크 징집위원회의 통계집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에는 대상자 18,216명 중 48.05%가 적합대상자이며, 2015년 1월 발표된 덴마크 국방부 인사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총 4,159명이 징집되었다. 이중 자원입대율이 2014년에 97%에 달한다는 충격적 사실! 또한 전체 복무자 중 여자가 매년 다르지만 10~2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 눈을 끈다.

정부 민원서비스에서 소개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만 18세가 된 덴마크 남성은 국방의 날 행사에 소집을 명하는 편지를 받게된다. 이 날은 국방부와 국가재난재해 관리위원회와 교육 및 직무 기회에 대해 소개하고, 징집대상자의 복무적합도를 측정하는 날이다. 이는 덴마크 거주중인 모든 덴마크남성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여성의 경우에도 만 18세가 되면 국방의 날 행사에 참석할 수 있으며, 자원 입대 희망시 복무적합도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내하는 편지를 받게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징집 방식! 복무 적합이 판정된 징집대상자는 번호표를 뽑아야 한다. 번호는 1번부터 숫자가 나열이 되어 있고, 조커와 비슷한 자유숫자도 있다. 연간 징집인원수가 크게 변동하지 않기 떄문에, 4천~6천명 정도가 간다고 보면 된다. 낮은 숫자를 뽑을수록 징집확률이 높아진다. 1번은 무조건 가는 것이고, 8천번은 안가는 것이다. 그런데 4천~6천번에 해당하는 번호를 뽑은 사람은 내가 징집이 될지 아닐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운이 좋으면 안가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가는 것이다. (역시나, 대부분의 덴마크인도 군대는 안가고 싶어한다. 하하하.)

여기서 자원입대가 생긴다. 물론 그냥 자원입대를 신청하는 사람들도 꽤나 된다. 여성 복무자 모두는 자원입대자이니. 그러나 여기에선 정말 군대가고 싶어해서 가는 사람 말고, 의도치 않게 자원입대하는 사람을 이야기 해보자. 내가 갈지 안갈지 모르는 상황이든, 갈 것을 아는 상황이든 자원을 하면 배치에 있어서 자대배치에 있어서 입대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준다고 한다. (물론 꼭 존중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니, 입대가 거의 확실하다 싶으면 그 해의 배치인원이 발표되어 자기의 입대여부가 결정되기 전에 그냥 자원을 하는 것이다. 최대한 안가고 싶으면, 애매한 숫자를 뽑아도 버티다가 징집되면 가고 아니면 안가려는 사람이 있어서 비자원 입대자 비율이 10%를 밑도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말 군대 가고 싶어서 가려는 자원입대자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전에는 평균 복무기간이 1년정도로 지금보다 길었는데, 요즘 일반 복무가 4개월에 불과하고, 경기병 연대만 12개월, 왕실요트 대네브로(Dannebrog, 덴마크 국기 이름)에 승선하는 부대와 국가재난재해 관리위원회는 9개월, 왕실 근위대는 8개월 복무한다. 우리보다 복무기간이 훨씬 짧기때문에 비자원입대자의 비율이 5% 미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리고 대학교 진학이나 취업을 하기 전에 뭔가 다른 것을 하면서 진로를 고민하는 덴마크 학생들에게 군대가 꼭 불행한 옵션은 아니라고 한다.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기 때문에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덴마크 왕실 근위대 도열장면 (Photo credit: Angelangelv2, wikipedia)
덴마크 왕실 근위대 도열장면
(Photo credit: Angelangelv2, wikipedia)

자원입대가 어쩌구 저쩌구 해고, 결국 덴마크 군대는 뽑기부터 하고 간다는 결론이다. 국방수요가 낮으니 이런 일도 일어난다는 놀라운 사실. 그러나 최근 러시아 비행기가 스웨덴과 덴마크 영공을 돌다가고, 러시아 잠수함이 스웨덴과 덴마크 인근 해역을 오고가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고, 크림반도의 불안정한 정정상태 등을 계기로 국방 규모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그래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뽑기는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한다.

오늘은 덴마크 여왕의 75번째 생일. 여왕은 DU? DE?

덴마크어에 유일한 존칭이라면 De(2인칭 존칭대명사, 일반 대명사는 Du이다.)가 있다. 사실 이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우리처럼 복잡한 존댓말이 없다는 것은, ‘다 반말하는게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이나 여러가지에 상관없이 똑같이 대우해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말도 엄청 깍듯한 존댓말이 실생활에서는 거의 사장(진지 잡수셨어요? 춘추가 어떻게 되세요? 이런 말은 왠지 문어체처럼 들릴 지경이다.)되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덴마크에서도 1848년 사회혁명 이후 평등사회로 전환하면서, 신분과 상관없이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며 De를 안쓰는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었다. (이 당시 유럽을 휩쓴 사회 개혁 혁명이 덴마크에서도 일어나, 왕정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이 되었으며, 따라서 그전 있었던 신분사회가 평등사회로 전환되었다. 세계 2차대전을 거치면서 실질적인 사회 변화가 많이 일어나, Hellerup, Klampenborg 등지에 뼈대있는 집안의 일부 몰지각한 Snobbish를 제외하면, 차별이 드문 평등사회로 큰 변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아예 사용이 되지 않는 것은 또 아니라 배우긴 배워야 한다. 그래봐야 인칭 변형이 3인칭 복수와 같아서 어렵진 않다. 지난 화요일 수업에서 Du와 De의 사용에 대해 토의를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고령의 보수적인 사람중 소수는 Du 사용에 기분 상할 수도 있으므로, 뭐라 부를 지 물어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마침 월요일에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75번째 생일(남편인 헨릭은 뭐라 불리냐면, Prince Henrik이다.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이상해진다. 왕자. 왕의 아들… 음… 여왕의 아들이 아니라 남편이니… 흠흠…)을 맞이하여 기자회견이 있었다. 한 기자가 Du라고 여왕을 칭하며 질문을 던지자, “우리는 같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는데?”라며 여왕이 대답했고, 주변 기자들이 웃었다.. 자신에게 Du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상징적인 의미의 여왕이지만, 여왕에겐 De를 쓰는 것이 일반이다. 이 에피소드를 뉴스에서 다뤘던 게 마침 전날인데, 수업에 Du와 De 용처에 대해 논하니 웃음이 피식 나와서, “여왕에겐 Du를 쓰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같이 학교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죠!”라고 답을 했더니 선생이 자기도 봤다면서 피식 웃더라. 그렇지만 우리와 같은 일반 시민간에는, 막상 누군가를 De로 호칭하면, 나이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부담스러워하면서 다 나를 Du로 부른다고, 너도 나를 Du로 부르라고 이야기해준다. (헷갈리면, Hey, dude.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음…)

생일이면 나와서 왕실 가족이 발코니에 나와 손을 흔든다. 제일 오른쪽 둘째 왕자 요아킴과는 대사관 행사 때 만나서 인사도 한번 해봤다. 인기는 별로 없는 왕자
생일이면 나와서 왕실 가족이 발코니에 나와 손을 흔든다. 제일 오른쪽 둘째 왕자 요아킴과는 대사관 행사 때 만나서 인사도 한번 해봤다. 인기는 별로 없는 왕자

여왕의 생일이면, 여왕이 왕궁 발코니에 나와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막대한 세금으로 유지되는 왕실은 언젠가 없어질 것이고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옌스가 출근 전, “오늘 여왕 생일이다.”라고 이야기하길래, “나도 나가서 여왕 손흔드는거 보면서 환호해야해?”라고 물어보니, “아니. 라면서 창밖을 가리키며, 저기서 내일 그렇게 해.”라는 거다. 음? 여왕이 이곳 Dyssegård까지 촘촘히 순방을?하는 생각에 갸우뚱 하니, 자기 생일이니 그렇게 하라는거다. 하하하. 내일 동네방네 부끄러워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정말 내려가서 해줄까 생각중이다. 우리는 황당한 커플이니까. 옌스도 은근 좋아할 듯?

여왕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왕실이 남아있지 않은 우리에게는 생소하고 신기한 것들이 있다. 여왕 신년사와 같은 것들인데, 이는 나중에 또 다뤄보고자 한다.

덴마크에서 친구 사귀기

덴마크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 중에 하나다. 특히 덴마크인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특히나 어렵다. 이는 덴마크로 이주해 온 외국인이 흔히 하는 불평중 하나다. 외국인을 위한 덴마크인 이해하기 강좌 등에 가보면, 덴마크인을 코코넛에 비유하곤 한다. 처음에 껍질을 깨고 그 내면으로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스페인 등 남유럽쪽 사람들은 타인을 쉽게 친구로 맞이하곤 하는데, 사실 그 내면 깊숙한 곳에는 단단한 씨앗이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이유로 복숭아 같다고하며 이 둘을 비교해 설명하는데, 다들 참 적절한 비유라고 이야기한다. (어학원에서 만난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에서 온 남유럽 사람들 또한 매우 공감하던 이야기다.) 이는 꼭 덴마크에 온 외국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다가 새로이 코펜하겐으로 이사온 덴마크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덴마크인과 가족이 되지 않고는 덴마크인의 주류 사회로 편입되기까지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친구를 사귀는 길이라고. 그러나 사실 남자친구/남편의 가족은 가족이지만 또 친구와는 다르다. 가족이 있다고 해서 친구가 필요없는 건 아닌 것처럼. 또한 그의 친구는 그의 친구이지, 내 친구는 아니다. 물론 가깝게 지내고 소식 들으면 반갑고 언젠가는 정말 가까운 사람이 되겠지만, 그건 남자친구 또는 남편을 매개로 한 관계이기 때문에 따로 만나고 할 관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덴마크인은 다른 나라에서는 친구로 분류할 사람들을 아는 사람으로 분류할만큼 친구에 대한 정의가 참 까다롭다. 덴마크식 정의로 하자면, 내 친구중의 대부분을 아는 사람으로 쳐내야 할 정도다.

물론 대학생활을 같이 하는 경우는 다소 예외로 봐야 한다. 모든 나라를 가본 것은 아니지만, 감히 섣불리 예단하자면, 많은 나라에서 학생은 쉽게 친구가 되니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고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인 것 같다. 직장은 내 입맛과 상관없이 조직이 원하는 대로 물리적으로 필요한 인간관계가 구성이 되고, 좋든 싫든 만나야 하는 사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친구가 생기긴 하지만, 한국처럼 회식문화가 없는 덴마크에선 그렇게 되기 어렵다. 결혼식 때 직장 동료를 초대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그 때문이다. 가족 중심적인 덴마크 사회에선 근무시간이 딱 끝나면 여러가지 가정 내 의무와 책임을 위해 빨리 퇴근해 집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일 끝나고 한잔?’ 이런 것이 힘들다. 뭘 하려면 최소 1~2주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친구를 사귀려는 관계 초반에 어찌 그렇게 플랜 잡고 하게 되나? 잘 안된다.

결국 외국인들은 주로 외국인을 많이 사귀게 된다. 외국인과 사귀는 게 나쁜 건 절대 아닌데, 정착을 하려는 사람이 아닌 경우, 다 친해지고 나면 떠나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에 친구의 씨앗을 뿌리는 셈인데, 내 친구들도 이미 여기저기 전세계에 많이 흩어져 있는 탓에 이미 익숙은 하지만, 내 일상을 시차 없이, 얼굴 보고 만나서 부담 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 하나쯤은 자기 사는 도시에 갖고 싶은 것이 인간 마음일 것이다. 미리 몇일전에 약속 잡고 봐야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순간 생각나서 문자 한 통 보내거나, 전화 한 통 해서 얼굴 볼 수 있는 그런 사람.

덴마크어 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된 한 명의 친구, Amanda. 그녀는 나의 이러한 갈증을 채워준 친구이다. 미국인 어머니와 덴마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두가지 문화를 갖고 있으며,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덴마크에서 살 생각으로 완전히 건너왔다. 지금은 수업을 같이 듣지는 않지만, 그 밖에 따로 만나서 저녁도 먹고,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며, 나중에 같이 아프리카 여행도 같이 하자고 이야기한 친구이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거의 10살 가까이 나지만, 나이라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고, 참 성숙한 친구다. 공통점도 많고, 할 이야기도 많고,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친구이다. 과장이 없고, 담백한, 그리고 인생의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 자신에 대한 사랑도 충분하고, 타인에 대해 사랑할 수 있고, 혼자 설 수 있는 친구이다. 어렸을 적 사귀는 친구는 처음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아도 어린 날 다른 서로에게 고무찰흙처럼 서로 맞추어가면서 친해지고, 장단점 서로 끌어안고 가까워지기 좋지만, 나이가 어느정도 들어서 사귀는 친구는 초반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으면 가까워지기 어려운데, 그녀는 친구로서의 케미스트리도 맞고, 서로에게 수업을 같이 들은 다섯 달이라는 시간동안 서서히 맞춰가면서 성향도 잘 파악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아있고, 항상 서로에 대해 궁금하고, 걱정해주고, 오랫만에 만나도 바로 엊그제 만난 것처럼 멀어지지 않는 절친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는 다르지만, 그들 중 하나가 될 것 같은 그녀. 참 좋다. 지난 2년간 고생해서 친구 두 명을 얻고, 한명은 스위스로 떠나보냈지만, 그래도 한명은 앞으로 이 곳에 계속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하다.

터키 여행을 다녀온 그녀가 샐러드에 넣어 먹을 수 있는 향신료를 사왔다. 터키의 달달한 스위트도 먹어가면서 커피 한 잔 하는 일이 참 편안하고 즐거웠다. 집중력 저하에 대한 극복 방법 등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헤어지고 나니, 그간 뭔지 약간 부족한 듯 했던 마음 한켠이 탁 채워졌다. 내가 한국으로 1주 다녀오고, 그녀가 터키로 1주 다녀올 2주 동안 옌스와 가족 외엔 별로 이야기를 길게 나눌 일이 없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옌스가 아무리 좋고 그래도, 인간은 개인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덴마크에서 친구 사귀기는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만, 좋은 친구 한 명 얻은 것이 어찌나 기쁜지… 오늘 하루 마음이 푸근하다.

For or Til?

Prepositions have many meanings and therefore translate poorly between languages. For in English is not always for in Danish – it may be til or i etc. The Danish prepositions for and til each have about fifty different meanings. If you think in English while speaking Danish, you will overuse for. This exercise is therefore focused on the meaning of the English for expressed by til.

Source: http://basby.dk/modul1/for0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