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도 끝나고 여름방학이다!

시험이 다 끝났다. 대학원 시작한 이래로 뭔가를 꼭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첫 방학이다. 덴마크는 학교마다, 학부마다 학기 시스템이 차이를 보인다. KU의 SCIENCE Faculty는 1년을 4개의 블록으로 나누는 블록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데, 각 블록마다 2과목씩 듣고 시험을 본 후 한주의 방학을 갖는다. 혹시 재시험이 필요한 학생은 (최대 2번의 재시험 기회가 있다. Pass를 못했을 경우에 한해) 이 주간에 시험을 볼 수 있고, 다음 블록 수업은 미리 reading list를 제공하기에 학생들은 다음 블록 수업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방학이 방학이 아니다.

내 기우와는 달리 모두 12점을 받아, 이번 학기는 첫 시험을 7로 시작해 나머지는 모두 12로 마무리하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냈다. 평생에 해본 적 없는 과탑을! 옌스 왈 내가 시험을 보는 스킬이 탁월한 것 같다고, 자기는 이런 성적표 못봤다고 한다. (자기가 봤을 때 공부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는 것 같지 않았다는 뜻인 듯. 할만큼 했는데…) 솔직히 KOTRA에서 오랜기간 근무한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written exam이야 이런 경력이 개입할 여지가 부족하지만 oral exam은 그간 무수히 많았던 발표, 고객과의 미팅 등에서 쌓은 경험이 큰 도움을 준다. 특히 해외무역관 근무할 때, 갓 부임한 무역관에서도 엄청 전문가인 것처럼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도록 대화하는 훈련을 해온 것이 oral exam을 볼 때 설득력있게 전달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딱히 성적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잘하는 것만 잘하면 된다는 주의였는데) 여기와서 이러는 이유는 사실은 남의 땅에 살면서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깔려있다. 단지 이민왔다는 이유로, 현지어에 있어서 원어민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2등시민같은 처우를 받고 싶지 않기에 그렇다. 누군가가 나를 무시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네들 마음안에 혹여나 나를 얕보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는 모양이다. 교육을 통해 습득한 간접적 피해의식이겠지.

아무튼 절반을 무사히 마무리했고, 좋은 학우들과 이런 다시 올 일 없는 좋은 1년을 보내서 행복했다. 오늘 저녁엔 그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절반의 여정을 자축하기로 했는데 기대가 된다.

입덧이 다행이 많이 완화되었다. 이러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는데, 2주 혹독하게 하더니 좀 좋아졌다. 우유, 요구르트, 마늘 이런 것 빼고 속을 좀 이래저래 틈틈히 채워주면 심각한 미식거림은 찾아오지 않고 있다. 덕분에 오늘 아침 옌스와 커피(난 녹차) 데이트를 할 수 있었고,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여름방학을 조금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시험과 입덧 후 폭탄 맞은 것 같은 집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고. 학기 시작하고 나면 대청소는 하기가 어려운 관계로 버릴 건 미리미리 버리고 정리해야 나중에 애가 태어나도 관련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방학엔 덴마크어도 다시 공부하고, summer course 시작전에 계량경제학도 다시 좀 보고, 책도 읽고, 집도 정리하고, 덴마크 땅도 좀 더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려한다. 오늘 아침 일어나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이제 한동안 시험도 없고 reading list도 없다!라고 신나서 소리를 지르니, 옌스왈 인생이 시험이야, 라면서 찬물을 끼얹는다. 후후. 당신은 참 엄하지만 공정해 (Du er hård, men retfærdig!, 독재자를 비꼬는 표현)라고 이야기해주니 참 좋아한다. 항상 현실에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해주는 옌스. 우리 둘만의 마지막 자유로운 여름휴가 즐겁게 보내자!!!!

첫해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입덧으로 몸이 안좋다는 것도 분명 사실이지만 사실 지금은 막판 스퍼트를 낼 힘이 딸린다. 마지막 시험 과목은 literature list가 엄청 긴데, 수업에서 literature의 상당수는 몇개의 용어를 차용한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시험이 개인과제 30%, 그룹 프로젝트의 개인 발표 및 질의응답 30%, curriculum literature와 관련된 발표 및 질의응답 40%로 개인과제는 이미 낸 것이니 그렇다치고, 나머지 60%의 절반 이상이 이 literature관련 시험이다. 문제가 주어지고 나면 준비한 내용을 1분동안 훑어보는 형태의 partial open book 시험인데, 과목 평가때도 이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불평을 한 것처럼 나도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

동기가 없으면 정말 몸이 강하게 저항을 한다. 물론 이걸 읽고 배우면 도움은 되겠지만, 뭐랄까, 마음에 평가 방식이 좀 불합리하다라는 생각이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제대로 된 방학 없이 block사이 일주일씩의 휴식만으로 지난 1년을 끌고 왔으니 나도 지칠만큼 지쳤다.

늦깎이 공부를 하는 만큼 더 좋은 성과를 내야된다는 압박과 함께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뭔가 쳐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오기, 나이가 들어서 늘어난 이해력 등이 결합되서 그런지 다행히 지금까지는 첫 과목 빼고는 모두 12점을 받았다. 내 소논문 지도교수 왈, 내가 그간 몇년 가르쳐 본 중 가장 과정에 engage된 학생이라고, 모르는 거 절대 포기하지 않고 여러번 물어보고 이해해서 독립적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소논문을 통해서 보인 만큼 이대로만 하면 석사논문까지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아마 회사생활을 하면서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얼굴 철판깔고 물어보고 배운 것이 도움이 되는 모양이라.

이제 마지막 시험 하나 남은건데, 잘 볼 자신이 별로 없다. 그룹프로젝트에 너무 진을 뺀 모양이다. 그렇게 열심히 한 그룹프로젝트는 30% 밖에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 좀 억울하기도 하고…  결국 잘 못볼까봐 성적 잘 안나올까봐 두려워서 하는 핑계같기도 하고… 오늘 친구가 공유한 좋은 글귀에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은 두려움의 반대편에 서있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때, 내가 해야만 하는 것 또한 두려움의 반대편에 서있다는 생각이 들며 뜨끔했다. 이런 내 두려움을 들킨 것만 같아서.

모르겠다. 내일 하루 더 준비해서 금요일 아침 시험보고 끝나는건데,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잘하든 못하든 그걸로 내 석사 첫 일년이 끝나고 방학이다. 내 치졸한 두려움을 열어보이고 나면 좀 더 후련하게 집중할 수 있을까 블로그에 글을 쓰는건데, 제발 그리되기를 바라며 마무리한다.

임신하면 괜히 섭섭하다더니 이런건가?

입덧이 시작한지도 어느새 일주일 반 조금 더 지나간 것 같다. 그 사이에 2kg이 빠졌으니 입덧이 꽤나 심하긴 한 모양이다. 시험은 다가오는데 먹은게 별로 없고 그나마 먹고 토하니 앉아있을 기운이 별로 없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침대나 소파에 누워 지내고 있다. 조금 걷고나면 속이 울렁거려서 운동이라고 할 법한 것을 하기에도 어렵고, 혈압도 60:100으로 낮아지니 기력도 떨어지고 아침 활동도 저하된다.

화요일과 금요일에 시험이 하나씩 있는데, 주말 들어 옌스가 보는 주요 모습이 누워있는 것이다보니 걱정이 되었는지, 때로 내가 늘어져있는 모습을 볼 때 나를 좀 푸쉬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때문인지, ‘그래도 시험공부는 조금이라도 해야지. 핸드폰 볼 힘이 있으면 뭐라도 읽을 수 있잖아.’라며 서너번 이야기를 했다. ‘나도 안다고…’라고 답을 하다가 한번 울컥할 일이 있었다. 평소 주말에 함께 하던 커피데이트를 내가 못하게 되니 – 커피는 생각만 해도 속이 쓰려 못마시겠다. – 혼자라도 가겠다고 하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그리고 힘든 거 아는데 공부는 조금이라도 해야한다고 하는 거다. 먹고 싶은게 생각나지도 않고 배는 그렇다고 안고픈 것도 아니고, 뭐라도 먹으라는 말은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데다가 공부 해야되는 거 아는데 알고도 못하는 내 마음은 아는지 하는 섭섭한 마음에 ‘이런 때 도움 청할 엄마도 없고 내가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음식은 이곳에서 쉬이 먹을 수도 없는 음식이라 제대로 먹을 수도 없는데, 내가 이미 공부해야하는 거 알고 있다고 했는데도 자꾸 말하면 너무 섭섭해’라고 쏘아붙였다. 그리고는 눈물이 찔끔 나오는데, 서럽기도 하고, 이런 걸로 눈물 흘리는 내가 좀 부끄럽기도 하고.

힘든거 모르는 거 아니라며, ‘예전에 네가 그런 상황엔 꼭 좀 푸쉬를 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시험인 거 뻔히 아는데 계속 누워있으니까 걱정되서 그랬어. 나도 네가 원하는대로 푹 쉬면 좋겠지. 시험만 끝나면 그렇게 할 수 있잖아. 조금이라도 앉아서 하고 다시 쉬더라도 그렇게 하라는 거였어. 서운하게 해서 미안해.’라고 말한다.

마늘을 먹을 수가 없어서 뭐든 한식은 참 만들어먹기 어려운데 사실 해물수제비가 먹고 싶었다. 칼칼하며 시원한. 거기에서 마늘만 뺀. 당연히 해물수제비를 제대로 해먹을 수는 없지만, 집에 멸치라도 있으니 그냥 멸치 감자 수제비라도 해먹어봐야겠다 싶어서 – 면이 손칼국수 면이 아니라 그런가, 칼국수는 이상하게 안 땡긴다. – 커피 마시러 가기전에 고추와 애호박이나 사달라고 해서 애써 끓였다. 마늘을 아주 안넣으니 도저히 맛이 하나도 안나서 아주 아주 조금 넣었는데, 그게 맛을 확 바꿔주더라. 반죽이 질어져서 별로 반죽도 안넣고 감자랑 애호박, 고추를 듬뿍 넣어 만들었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 해서 좀 먹었다. 먹고나서 그 조금의 마늘때문에 입에 남은 그 특유의 입맛때문에 남은 반나절을 고생했지만, 뭐라도 먹고나니 힘이 나서 앉을 수 있었다.

조금 울어서 그런가, 돌아오는 길에 크래커 등 내가 사다달라는 것을 정확히 찾아주기 위해 페이스타임까지 해가며 수박이니 뭐니 꼼꼼히 챙겨왔다. 아이고 착한 우리 남편. 그리고 애 낳으면 자기도 요리하고 이런 거 좀 더 배워야겠다고, 그래야 내가 요리할 수 없을 때거나 그런 타이밍에 애가 거르는 일 없이 요리할 수 있을거라면서. 이래저래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오히려 나보다 많이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서 훌륭하다 싶었다.

이렇게 또 한번의 다툼 아닌 다툼을 했다. 아마 임신하면 그렇게 다들 서럽다고 하던데, 이런 거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엄청 서러운 건 아니고, 평생 가져갈 기억도 아니지만 그래도 뭔지 약간 알 것 같다. 같이 원해서 생긴 아기인데 남편이 대리로 경험해줄 수 없는 힘든 일을 혼자 겪어야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 아닐런지.

궁금한게 하나 있다면 대부분은 입덧이 아침에 심하다던데, 난 점심 조금 전부터 저녁까지 입덧이 있는 거 같다. 아침엔 꽤나 쌩쌩한데. 지금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팀원들과 나누기로 했던 논문 요약본도 마무리하고 이렇게 블로그 글까지! 뭐지? 수박 사분의 일쪽과 크래커를 먹었음에도 배가 고프다. 속도 살짝씩 동하기 시작하고.

내 사랑 커피는 땡기지도 않으니 아쉬울 건 없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던 주말 커피 데이트는 그립다. ㅠㅠ

임신, 입덧, 덴마크 생활

요며칠 입덧이 심해서 하루에 1~200 그램씩 빠지는 것 같다. 최소한의 먹거리만을 먹고 버티고 있는데, 먹고 토하는 일이 잦아지니까 먹기도 살짝 겁나고 안먹자니 애한테도 좋지는 않을 거 같아서 최소한 먹는 것으로 버티고 있다. 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와있는데, 공부도 요며칠 하나도 안하고 놀고 있다. 다행인건 스트레스도 별로 받는게, ‘아, 임신해서 몸이 안좋아서 시험 못치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근거없는 생각 때문이랄까. 그나마 그간 성적을 잘 받아두어서 한두개 좀 못친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도 없거니와 하나는 내가 쓴 페이퍼를 근거로 시험보는 것이라 이미 고생해서 낸 것에 대한 평가가 시험의 큰 몫을 좌우하기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다.

어느덧 임신 7주. 시어머니와 함께 임신 후 처음으로 병원을 다녀왔다. 멀리 Bornholm에 살고 계시지만 내일 새벽같이 시누이와 첫손녀와 함께 셋이서 떠날 2박 3일의 짧은 런던여행을 위해 Holte에 잠깐 와계셨다. 그 전에 병원 갈 때 혼자 가기 그러면 언제고 이야기해달라고 하셨는데, 비행기로 오셔야 하는 시어머니 일부러 오시라 하기 뭣해서 그냥 혼자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혹시 말씀은 드려보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씀드렸는데 잘 한 일이었다. 마침 와계시기도 했고 기뻐하시며 같이 가주신다 하셨다.

시어머니와 함께 간 것은 잘한 일이다. 남편 CPR번호도 기억이 안났는데, 시어머니가 기억하고 계셨고 (그런게 필요할 줄이야), 남편 가족 병력 등에 대해서도 문진을 했는데 그 또한 시어머니가 답변해주실 수 있었다. 쌍둥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우리 가족에는 그런 이력이 전혀 없다 했더니, 시어머니가 자기네에는 이력이 있다 하신다.

앞으로의 병원 일정은 12~13주 중 다운증후군 검사 1차, 25, 32주에 있을 초음파 검사 및 기타 아이에 대한 상세 검진이 거의 다 인것 같다. 나머지는 나의 출산을 담당할 산파와 만나서 할 일들이 있고, 출산 교육 등이 있는 모양인데, 그건 산파가 나에게 연락을 준다고 하니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이다. 아, 의사가 덴마크의 모든 병원 기록이 다 전산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임신과 관련된 것만큼은 문자 그대로 Paperwork이 아직도 살아있다면서 노란 봉투에 관련 내 임신 정보를 기록해서 넣어주었다. 앞으로 모든 진료시 항상 지참하라며. 이 아날로그식이라니. 모든 정보가 다 전산으로 날아오다가 갑자기 이런 노란봉투를 받아드니 월급봉투라도 받은 듯한 느낌이다.

다음 병원 일정에도 시어머니가 가주신다고 하니 이번엔 그냥 마음의 부담 없이 부탁하련다. 같이 가주시면 기쁘겠다고 말씀드리니 Bornholm에서 날아오신다고. 아. 이 감사함. 이 먼 덴마크에 내 부모와 떨어져살며 한켠으로나마 기댈 시댁이라는 구석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누이가 시어머니께 엽산 꼭 챙겨먹으라고 알려주라 했다는데, 시누이도 뭔가 참견하는 듯하게 보일까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나보다. 🙂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데 사실 뭘 물어봐야할지 잘 모르겠고, 책이나 각국 정부 보건당국에서 제공하는 홈페이지도 워낙 자세하게 정보를 담고 있으니 아무래도 먼저 연락하게는 잘 안된다. 참 좋은 시누이인데도 괜히 폐끼칠까봐 어려운 건 한국인이라 그런걸까?

병원을 나와 같이 커피한잔 (나는 초코우유 한잔)을 함께 하고 장을 본 뒤 각자 방향으로 향했다. 옌스랑 대화해도 쓰는 어휘가 한정되어 있는데, 병원에서 의사를 보거나 시어머니와 대화를 한다거나 할 땐 평소엔 잘 안쓰던 어휘도 쓰게 되서 좋다. 요즘 학원도 쉬다보니 듣기는 되도 뭔가 말은 퇴화하는 느낌이 조금씩 들고 있었는데, 역시 집중력의 문제인 것 같다. 꼭 써야된다는 생각이 없으니 요즘 다시 덴마크어 비중이 줄어 반반 정도 쓰는 거 같다. 복잡한 건 대충 영어로 이야기하고 일상 대화만 덴마크어로 하는? 집에서도 다시금 덴마크어 비중을 늘려봐야할 것 같다. 곧 방학도 하니 더욱…

뭔가 약간 퇴보하나 하는 불안이 드는 와중 하나 위안이 되는 건, 대학원 덴마크 친구가 자기는 지방 방언도 좀 심하면 못알아 듣는데 내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듣겠다면서 나에게 억양이 별로 없다고 해준 것이다. 옌스가 너 발음 좋다 이렇게 이야기해줘도 뭔가 그냥 자기 아내니까 격려해주려 하는 이야기로 들리고 덜 객관적으로 들렸는데,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나의 덴마크어 미래가 전도유망하다는 착각을 더 하게 해줬다고나 할까? 흠흠.

시간이 지나면서 덴마크에 친구도 서서히 늘고, 이제 내 피를 나누는 가족도 곧 생기고 할테니 뭔가 정말 조금씩 뿌리를 내리는 기분이다. 아직도 나에게 내 나라는 한국이지만 이곳도 이제 내 나라가 될 것이니까.

입덧에 제대로 식사 못하는 아내를 위해 생일 아침상으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차려주는 남편도 있고, 병원간다고 멀리서 와주시는 시어머니도 있고, 다 감사하다. 인생의 많은 일들은 그간 걸어온 일과 우연이 만나 얽히면서 생기는 놀라운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을 떠나 일을 해보고 싶다 했던 아주 초등학교 3학년짜리의 꿈은 내 직장 선택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그를 통해 이곳에 와있었고, 그간 잡다하게 해왔던 취미와 한국에선 드세다고 들어왔던 나의 적극적 성격은 옌스가 나에게 관심을 갖게한 동력이 되었다. 많은 연애 실패담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를 깨닫게 해주었고, 결혼생활은 어때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난 그는 나와 결혼과 인생관이 놀랍도록 흡사하게 닮아있었으며, 또한 다른 부분이 있어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있다. 우린 스스로의 자유를 갈망하면서 같이 함께 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갖고 있기에 서로 잘 이해해줄 수 있고 지지해줄 수 있다. 애가 생겨서 인생의 많은 변화가 생기고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잘 헤쳐갈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 일부러 상처를 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문제를 차분히 잘 해결해나갈 수 있으니까.

정말 애를 가져도 좋겠다고 확신이 선 순간 이렇게 아이가 찾아와준 점 정말 고맙다. 앞으로 남은 기간 별 문제없이 건강하게 커주고 태어나주기만을 바랄뿐이다.

소논문 제출 완료

지난 6주간 나를 힘들게했던 소논문을 드디어 제출했다. 담당교수의 최종승인을 받고 제출했으니 이제 오럴 디펜스만 잘 하면 된다. 이 소논문은 7.5 ECTS에 불과한 작은 수업의 결과물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30ECTS의 논문이 어떤식으로 흘러갈 지에 대한 감을 잡아주는 좋은 경험의 산물이다.

한국에서 했던 석사가 약간 가라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정식 논문을 쓰는 대신에 경제학 에세이를 쓰고 졸업시험을 쳐서 졸업을 했기 때문이다. 경제학 에세이는 내용이나 형식면에서는 차이가 없는데, 내 담당교수가 주심이 되어 그 주심의 승인만 받으면 되고, 논문으로 DB에 등록되지 않는다는데서 차이가 난다. 대신 이 차이를 졸업시험이라는 것으로 대체하는데, 시험을 선호하는 나에겐 이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물론 나와 같은 길을 택하지 않고 정식으로 논문을 쓰고 디펜스를 한 사람도 있지만… 나는 주제를 늦게 잡아서 풀타임 직업이 있는 상태로 논문을 쓰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이곳에선 그런 옵션도 없거니와 이제는 풀타임 학생이니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한국에서 논문을 쓸 때 담당교수와의 관계는 지금과 매우 많이 달랐는데, 훨씬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때도 수업을 들어서 알고 있는 교수님이긴 했지만, 이곳에서처럼 상시적인 토론과 질문 등을 통해 교수가 학생들 면면을 잘 알고 있는 일이 드물었다. 이번 내 소논문 담당교수는 나를 잘 알고 있는 교수였고, 좋게 평가해주고 있는 교수였기에 더욱 많은 지원을 받은 것 같다.

이해가 안되면 혼자 주구장창 붙들고 있는 나였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초반에 중요 이론에 대해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어서 교수의 조언과 내가 생각한 방향의 차이를 어떻게 메워야하는지 엄청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미팅일정을 잡지 않은채로 시간이 흘러가니, 어떻게 되고 있냐고 메일로 확인을 하시는 거였다. 혼자 끙끙 앓다가, “그때 설명해주셨는데 여전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아 진척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정말 중요한 파트인데 내가 알고있는 바와 교수님이 말씀해주시는 게 달라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있다.”고 말씀드렸다.

황당해하실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하겠다면서 잘 설명을 해주셨고, 그게 해결되고 나니 나머지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그 문제를 의논할 당시 프로젝트 관리가 잘 안된다고 상의하니, 그 스트레스 주는 역할 자기가 해주겠다면서 토픽마다 데드라인을 정해주시는 거였다. 아… 이런거 정말 좋아하는데. 누가 데드라인 정해주는 것…

정말 그 덕에 마지막까지 소논문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내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다음 논문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감을 잡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룹 보고서 말고 개인 프로젝트로 해서 교수의 수퍼비전을 받아가며 20페이지짜리 영문 보고서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래저래 성취감이 큰 수업이었다. 시험만 잘 보면 될텐데… 아 긴장된다.

SU 받기

올 1월부로 소급해서 월 1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덴마크 정부로부터 받게되었다. 고등교육을 받는 덴마크인 또는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EU시민권자, 덴마크인과 결혼을 통해 덴마크시민권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은 SU를 받을 수 있다.

교육보조금(uddannelsesstøtte)라고 불리는 이 월급같은 돈은 인적자원이 중요한 개방형 소형경제 국가로서 고등교육을 받는 인력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돈이다. 이것 때문에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뭐라도 다른 일을 하면 이 이상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 뿐이고, 실제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파트타임 직장을 갖는게 일반적이다.

나야 옌스 살던 곳에 숟가락 얹고 사는 상황이고 모아둔 돈이 있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어쩌면 그래서 이 추가적인 백만원의 돈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래저래 좀 꼬인 문제로 행정절차를 제 때 밟지 못해 초반 4개월은 돈을 날리나 했는데, 그런 것 없이 다 챙겨주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이야기하자마자 옌스는 그나마 내가 이돈을 받으니 조금 덜 속이 쓰리긴 하지만,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지 아느냐면서 나중에 세금 내봐야 그 마음 이해할거라 한다.

그 마음 이해도 가고, 앞으로는 더 이해할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사회가 이렇게 전반적인 행복수준이 유지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안정된 치안이 이런 시스템과 신뢰 아래서 생긴 것이라는 걸 생각할 땐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말 별것 없는 한국 계좌에서 발생하는 이자소득(정말 달에 몇백원 할 것 같은…)을 세무신고때 해야하는 번거로움은 불평하고 싶지만 말이다. 아마 여기서 추가로 월에 몇 크로나 내야 할 것 같다. 이거 불평하니까, 옌스가 여기서 받는 정부지원을 생각하면 그거 불평하면 안된다고 한다. 께겡…

내 나라에서도 못받던 국가보조금을 여기서 받다니. 참 오래살고 볼 일이다.

인생의 여러가지 변화

아침 해가 6시면 중천에 뜬 것 마냥 쨍한 요즘 6시 이전에 이미 눈이 떠지곤 한다. 그래서 이번주 화요일, 자명종이 울려서야 눈이 떠지고, 침대에서 비비적거리며 잘 못일어나겠던 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야에 가까워지면서 잠을 설치지 않고 7시간을 내리 잔게 오랫만이었기 때문이다.

뭘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공공메일 온 것을 확인하려고 로그인을 하니 시스템에 내 이름이 바뀌어있었다. 처음에 외교단 비자로 와서 다른 비자로 바꾸니, 비자 바꾸는 문제부터, 결혼식, 이름 바꾸는 것까지 여러모로 예외적인 케이스에 해당되어 속을 많이 썩었는데 그래도 이름 바꾸는 문제는 크게 오래걸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큰 일이다. 아무리 한국에 등록된 내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나의 정체성에 큰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면서의 편의(구직 활동 중의 편의 등)를 위해 성을 추가하고 내 본래성을 미들네임으로 돌렸다. 그래도 미들네임으로 내 성을 유지했으니까 큰 변화는 아니야 라고 스스로에게 항변을 했지만, 간혹 미들네임을 기재할 공간이 없는 서류 제출시나 신청서 작성시 내 본래 성이 자리를 잃어버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니 당혹스러운 느낌도 갖게 되었다.

이런 느낌은 남편 성을 따라가지 않는 우리네 문화 때문일 것이다. 여기선 성을 바꾸는 거나 한 가족의 형제 자매가 아버지나 어머니, 조부모 등의 성을 따로 갖는 경우가 흔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에게 성은 한번 정해지면 그대로 평생동안 간직하는 것이기에 그 무게와 의미가 남다른 모양이다. 그래서 왠지 부모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죄송함도 버무려져서 내가 왜 이 성을 택하는지를 애써 변명하게된다. 묻는 사람이 없어도.

이런 복잡한 기분은 둘째로 치고, 계획하던 행정적 절차가 처리되어 홀가분해진 마음에 옌스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나니 어찌나 기뻐하던지. 이 곳에서도 역시 성이 갖는 의미가 있음을, 그리고 자기의 성을 따르기로 결정한 그 무게가 느껴짐을 알고 묘한 안도감도 들었다. 배우자가 내 결정의 무게를 알아준다는 사실은 나에겐 중요한 문제니까.

무척이나 덥던 날이었다. 친구와 헤어지고나서 안되겠다 싶어 반바지를 두개 사들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많은 사이트에서 말하던 소위 “착상혈”이라는 것을 보고 나서 아침에 느꼈던 그 이상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인생에 있어 나중에 “그게 그래서였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작은 순간들이 있지만 그 당시에 모르는 것처럼, 그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테스터기를 두세트 사들고 와서 바로 확인해보았다. 희미한 줄이 보였다. 역시…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설마 한번에 이렇게 아기가 찾아와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놀라움이 컸다. 물론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막 엄청 기쁘다기 보다는 얼떨떨하고 정말 이게 확실한가 싶은 마음에 놀라움이 가장 지배적인 기분이었다. 예정일이 논문 학기 전 마지막 시험의 바로 다음주라 한달 미룰까 했었는데 그냥 뭐 설마 한번에 되겠느냐 싶어 시작한 임신계획이 예상을 뒤엎고 임신으로 결론이 나서 깜짝 놀랐다. 대부분 6개월 정도 계획하고 애를 갖는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학기 중에 애를 나면 골치가 아파진다는 생각에 그 전엔 임신을 일찍 하나 싶어 걱정을 했는데, 바로 이달부터는 고령임신이라 안생기면 어쩌나 하고 바로 한달을 간격으로 고민의 주제가 180도 뒤바뀐 것이 우습다. 아무튼 그 많은 걱정과 달리 계획대로 움직여준 아기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오늘부로 두달째에 들어선 거라 아직은 불안정한 시기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를 잃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면 그건 우리가 감당할 일이니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불운을 대비해 기쁨을 기념하고 즐기지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게도 알리고…

옌스가 꽃을 한다발 사들고 집에 왔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내가 임신한 걸 알았나? 이 꽃은 뭐지? 그냥 사온건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빨간 장미. 매번 이러저러한 꽃다발을 사오다가 한번 친구가 거의 빨간색에 가까운 진한 분홍의 장미를 내게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가 빨간 장미 꽃다발을 먼저 선물할 기회를 빼앗겼다며 서운해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건 아주 진한 분홍장미야~ 빨갛지는 않네.”라고 귀띔해줬더니 그 기회가 남았을 때 빨간 장미를 사온 것이었다.

“왠 꽃이야?” 하며 기뻐하는 나에게 “여러모로 군거가족의 일원이 된 것을 다시한번 축하해!”라며 꽃을 내밀었다. 임신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지. 나도 몰랐는데.

“또 소식이 하나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니 “뭔데?”하며 평이하게 물어본다. 불쑥 테스터기를 내밀었더니 이게 무슨 뜻이냔다. “글쎄?”라는 답에 “임신????!!!”하면서 어찌나 놀래던지. 애가 떨어지겠다는 표현은 바로 이 순간에 쓸 것이다.

이 날 저녁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이미 우리는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지만, 이 아이가 생김으로써 우리는 다른 의미로 평생에 끊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는거야.”라는 말을 불쑥 했다. 항상 장난스럽고 로맨틱하지 않은 나에게 그가 있기에 로맨틱한 감성이 사라질 수가 없는 모양이다.

바로 몸조리 잘하고 몸조심하라는 우리 가족과 하던 운동들 그대로 계속 하고 지내던 대로 계속 지내고 술담배만 안하면 된다(술도 간혹 작은 글라스 한잔은 되는 것으로 덴마크 보건당국이 권고사항을 바꿨다며..)는 시댁 가족들. (하루 한잔 커피는 당연히 오케이!) 의사인 시누이는 애들이나 짐을 싣고 다닐 수 있는 아주 무거운 크리스챠니아 자전거에 애들 둘을 태우고 셋째 임신기간 중 내내 데리고 다니고, 출산 때 조차도 자전거 타고 갔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활동이 건강한 임신과 출산에 도움이 된다면서. 승마 등 몇가지 운동만 안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만 아니면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중에 생기는 유산은 그냥 배아의 유전적 결함에 따른 것이지 그 생활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면서 전혀 생활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강조를 한다.

물론 이 나라에도 다양한 가족들이 있기에 순수 유기농 제품만 쓰고 입고 먹는다든지 하며 여러모로 조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운동에 대해선 다 비슷하게 강조하는 것 같다.

굳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겠다고 생각해도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나는 그냥 학교 공부하던대로, 운동 하던대로 하면서 살기로 했다.

이제 이번 여름이 애가 없는 마지막 여름이라며, 이 여름을 불사르겠다는 남편과 벌써 이름을 지어보겠다고 이름 책을 사들고 우리 둘은 이 변화의 시기를 벌써부터 즐기고 있다. 입덧만 너무 심하지 않기를 빌며 이 변화의 순간을 아주 잘 즐겨야겠다.

어버이의 날 단상

옌스와 함께 산 날도 어느새 일년이 넘게 지났다. 우리도 곧 아이를 가질 계획인데, 이제는 정말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아이를 갖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재미를 빙자하여 이름을 논하기도 한다. 원칙은 많지만 간단하다. 덴마크에만 있는 알파벳인 ø, å, æ를 배제하고, 덴마크어 발음과 영어발음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r과 y를 배제한 다음, 한국어나 영어로 발음했을 때 이상하지 않은 이름이어야 한다. 또 Kristian처럼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름은 배제하는 것으로. 그 다음엔 가급적 이름의 유래가 좋은 것, 들어서 이쁜 것, 현재 과하게 유행하고 있지 않을 것, 너무 구식의 이름은 배제할 것. 그런데 간단하지만 이 많은 원칙들을 다 조합하고 나면 이름 찾는게 만만치 않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생활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정하고, 삶의 패턴을 많이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만큼은 세상 대부분의 부모에게 해당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문화마다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너도 겪어보면 다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런데 짧다면 짧을 36년의 삶을 통해 보니, “다 그렇다”고 들은 게 꼭 옳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요소들이 삶을 휘몰아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소용돌이 안에서 개개인마다 다른 선택을 하고 방향을 잡는 것은 결국 개인의 원칙이 어떤 방향을 향하느냐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옌스와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전에도 지나가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들이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2세 계획을 실행하기 전 다시한번 명확히 하고 싶은 것들 말이다. 난 최대한 이 사회가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활용해서 애를 키울 것이고, 애를 위해 내가 “희생”했다고 느끼는 수준으로 나를 헌신하지는 않을 것이며, 둘간에 육아에 있어서 안맞는 방식은 대화를 하겠지만 최대한 상대의 방식을 존중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사회가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활용해서 애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보육원에서 받아주는 생후 6개월부터 애를 보육시설에 보내고 난 내 학업과 향후 이어질 커리어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 많은 엄마들이 지향하는 애착육아는 내 육아방식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옌스는 애와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은 안된다는 것과 애가 가족에서 중요한 일원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둘이 모두 중요한 당사자인 점, 아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또한 그에 동의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키워보라거나, 애를 생각해보면 그런 방식은 이기적이라는 반응을 얻게된다. 그리고 실제 나도 애를 갖게 되고 키우다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고 내가 선택한 방법이 맞는 것인지 무수한 고민을 하고 방식에 수정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정말 많은 방식의 양육이 있는 것처럼 그 무엇에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 나라를 떠나 이민을 오고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남편과 결혼하며 생긴 가정의 문화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어느게 옳고 그른 게 없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이 정답이라 믿고 가는 것, 그게 정답이 아니면 중간중간 수정해 가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게 앞으로 우리가 해나갈 일이다.

내년 이맘때면 나도 과연 어버이의 대열에 속해있을 지가 궁금하다. 카네이션은 못받겠지만…

 

En gåtur ind i byen

Når vejret er godt, nej, fantastisk som i dag, skal man ud og gå en tur! Det gjorde vi også. Solen skinner og temperaturen er høj nok til rigtigt at nyde det. Gaderne var fulde med mennesker, der også ville nyde det og hygge sig.

Det er næsten sommer nu, for temperaturen er omkring 20 grader og vil blive lidt varmer midt på dagen. Nu er jeg lidt “danskificieret”, og tænker jeg, at det er lidt for varmt. Men man skal ikke klage over vejret, når det er varmt og dejli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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