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교하는 아이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면 아이의 20분 조금 덜 걸린다. 아주 먼 것도 아니지만 가깝지도 않은 거리.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미 작년부터 혼자 집에 걸어가는 아이들이 있긴 했는데, 최근에 들어서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이도 집에 혼자 간다고 아이가 말을 해왔다. 그래서 자기도 곧 그렇게 하고 싶다고.

작년부터 연습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러려면 내가 집에 차를 데고, 걸어가서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지라 겨울들어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날도 밝아지기 시작하고, 주변 친구들의 사례도 보고 하면서 슬슬 연습을 해야겠다 싶었다. 집에 오는 길에 왕복 4차선의 길을 횡단보도로 건너야 하는데, 거기에서 하나가 건너는 방향으로 우회전을 하거나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차량들이 제법 되는 길이라 아이도 확인을 잘 하고 건거야 한다. 또 중간에 보행자 우선 횡단보도가 2개 있는데, 아무래도 신호가 있는 것은 아니니 아이가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휙 지나가는 차들도 있고해서 이도 잘 보고 건너야 한다. 뒤에서 한 300미터 정도 떨어져 아이가 걸어가는데, 사실 애가 어떻게 건너는지 못보는 구간도 제법 있다. 애초에 내가 애가 건너는 걸 잘하는지 보고 감독하기 보다는,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뒤따라가면서 이를 볼 수 있다는 점, 아이도 내가 뒤에 있어서 든든함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좀 더 자기의 보행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점 등 때문에 같이 거리를 두고 걸어가며 연습을 하고 있다.

집에서 보면 어느새 불쑥 큰 모습에 깜짝 놀래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또 이렇게 뒤에서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큰 책가방에 비해 그닥 크지 않은 아이. 사람들 사이로 그렇게 작은 아이가 혼자 책가방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모습 등을 보면 아직도 너무 작은 것 같고. 그러면서도 혼자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앞으로 혼자 걸어나갈 연습을 하는 아이를 통해 나도 아이를 독립시킬 연습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약간 외롭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애를 위해 뭔가 해줘야 하는 기간이 정말 짧게 남은 것 같기도 하고, 보다 열심히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크면 엄마아빠랑 보내는 시간보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더욱더 중요해질텐데 말이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아이

한국어에 대한 자기 평가가 야박한 아이. 아무래도 다른 건 자기가 노력하는 만큼 금방 느는데 반해 한국어는 그렇지 않아 유독 그런 것 같다. 딱히 평소에 자기 평가가 야박한 아이는 아닐지언데, 한국어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것이니, 나에게 말을 안해서 그렇지 나름 자기 마음 속에 한국어와 관련된 힘듦이 있는 것 같다.

한글학교에서 이번학기에 윗반으로 아이를 올려보냈다. 처음 시작한 방울새반은 말도 잘 못하고 한글도 못읽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덴마크어로 강의를 하는 반인데, 거기서 1년 반 정도 수업을 듣다가 이번에는 한글을 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종달새반으로 올라갔다. 한글을 뗐다는 건 능숙하게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한글자 한글자 씨름을 하며 실수도 하면서 읽을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글을 떼면서부터는 한국어 습득이 다른 양상을 띌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 이미 모국어로서의 한국어 습득시기는 놓친 아이이기에 외국어로서 한국어 습득을 해야하는데, 글을 통해서 문장을 뜯어보고 자신의 모국어와 비교해가며 이해를 해볼 수 있게 된다.

아이가 파괴된 형태의 문장을 구성해서라도 나에게 한국말을 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잘하고 싶다고 이야기도 하고. 나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아이에게 한국말을 잘 가르치지 못한 것은 내가 덴마크어를 잘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어서기도 해서, 아이가 나에게 덴마크어로 대답을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서서히 나도 한국어를 놓아버린 탓이다. 나를 앞에 두어서 그랬는데,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기에 아이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겹치는 이 순간을 놓쳐버리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아이의 양육에 내 품이 들어가는게 줄어들면서 나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는데, 아이에게 시간을 더 할애해야할 시기가 온 것 같다. 학습이나 놀이 등 에 있어서 짧은 시간이나마 에너지를 할애해 아이가 원하는 것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간 말이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 어쩌면 이런 아이가 내 세상으로 들어왔누…

덴마크 사람들 / 수다쟁이 츤데레

그린랜드 사람들이 덴마크로 넘어와 살게되면 받게되는 오해가 말수가 적다는 거란다. 그린랜드 래퍼가 그린란드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노래를 발표했다며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한 말이다. (스톡홀름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처럼 그린랜드사람들은 덴마크 문화가 우월하다고 느끼며 그린랜드의 뿌리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싫어하거나 하는 복잡한 심경을 갖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린랜드의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는 노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화에 참여하는 대상이 말을 완전히 끝낸게 아닌데, 마침표와 다음 문장 사이에 빠르게 치고들어와서 말을 하는데, 상대의 말이 다 끝낼때까지 기다리는게 미덕인 그린랜드 사람들은 자신 이야기를 할 차례를 기다리다 주제가 바뀌어서 대화에서 조용하게 있는 경우가 많아 생긴 오해란다.

그러고 보면 그게 정말 맞다. 길에서 만나는 덴마크인들 참 시크한 것 같고 별로 말 많이 안할 것 같은데, 가까워지면 어찌나 수다스럽고 말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지. 정말 별의별 주제로 대화를 다 한다. 그리고 대화에 낄려면 중간에 잘 치고 들어가야한다. 덴마크사람들 전반적으로 말이 빨라서 직장생활 초반 그게 참 힘들었다. 주제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중간에 잘 치고 빠르게 비집어 들어가려면 내가 할말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걸 포기하고 듣는데에 집중하거나 아예 그냥 혼자만의 버블속에서 공상을 하기도 했더랬다. 물론 중간에 나를 참여시키기 위한 질문이라도 던져지면, 나는 맥락을 다 잘라먹고 있었기에 “뭐라고? 나 앞에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못들었는데?”라고 대답을 해야했다.

물론 개인차는 있다. 그중 유독 대화를 지배하며 너무 말이 많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조용한 사람도 있다. 조용한 경우는 순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중간에 치고들어오는게 부담스러운 사람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주중에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다. 일 끝나고 회식같은 거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친구와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고. 한국회사생활처럼 끝나고 한잔, 이런건 안하고, 팀빌딩 일년에 몇번 할 때 식사하며 술 한두잔 곁들이는 것이나, 프라이데이바 (금요일에 회사 끝나는 시간 쯤 회사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 에서 잠깐 시간 보내는게 대부분이다. 그래도 회사내 사회생활이 부족하지 않은 것은 짧은 점심시간, 탕비실에서의 커피챗 등으로 정말 많은 대화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일상, 가족, 취미, 집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 관심사, 정치 등 정말 다양하다. (덴마크 사회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우리나라처럼 양극단의 폭이 넓지 않기도 하고, 아무래도 academic한 사람들을 채용하는 중앙정부기관 사람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그중에서도 그닥 넓게 퍼져있지 않아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게 그닥 위험하지 않다.) 서로 배우자, 아이들, 반려동물 이름도 다 알고, 집에서 뭐하는지 등등 서로 잘 알고 지낸다. 정말이지 숟가락, 젓가락 개수마저 다 안다고 할 것 같다.

한국에서 살 때는 덴마크인들의 이런 직장사회생활 문화를 상상할 수 없었는데. 아니, 덴마크 직장생활을 하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는데, 정말 다르다. 직장 동료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가 이야기했던가? 정말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되고, 업무 시간 이외에도 보고 연락하게 되면 그게 친구지. 시간이 걸리는 것 뿐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오히려 더 인정이 느껴지는 덴마크 생활 덕에 이방인으로서의 삶도 그닥 팍팍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침 루틴

아침 6시 40분이면 문을 나선다.

5시 50분. 아침에 아이와 일어나 명상음악을 틀고 짧은 스트레칭과 온몸을 구석구석 마사지해 깨우고 오늘 하루에 기대되는 일을 돌아가며 두 개씩 이야기하고 나면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이가 1학년 시작하면서부터 한 루틴인데, 둘이 침대 위에 마주 앉아 각자 몸을 구석구석 주먹으로 두들기고, 손바닥과 손가락 끝까지 하나씩 꾹꾹 눌러주고 나면 잠이 확 깨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처음엔 비몽사몽한시 50분. 아침에 아이와 일어나 명상음악을 틀고 짧은 스트레칭과 온몸을 구석구석 마사지해 깨우고 오늘 하루에 기대되는 일을 돌아가며 두 개씩 이야기하고 나면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이가 1학년 시작하면서부터 한 루틴인데, 둘이 침대 위에 마주 앉아 각자 몸을 구석구석 주먹으로 두들기고, 손바닥과 손가락 끝까지 하나씩 꾹꾹 눌러주고 나면 잠이 확 깨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음악을 틀면 처음엔 마치 몽유병에라도 걸린 모냥으로 비몽사몽한 눈으로 스트레칭하고 목을 휘적휘적 돌리던 아이도 몸을 두들기기 시작하면 서서히 잠이 깨는게 눈에 보인다. 덕분에 아침에 애 깨우느라 고생한 적이 없었다.

방을 치우고, 환기하고, 각자 옷 갈아입고 양치질하고 머리빗고 하면 6시 20분. 나는 아이의 도시락을 싼다. 샌드위치 식빵 세 조각에 버터를 바르고 하나엔 살라미, 또 다른 하나엔 브리치즈, 마지막 하나엔 초콜렛판을 얹고, 스낵 치즈를 넣으면 빵종류를 담은 통 하나가 완성된다. 다른 통에는 당근스틱, 오이 슬라이스, 사과 또는 다른 과일을 넣어 마무리 하고, 마지막 작은 통엔 후무스를 넣는다. 물통에 물을 채우고, 보온통에 같이 넣을 냉매를 꺼내 준비한 후 아이에게 도시락 챙기라 하면 집에서의 내 아침 일과는 끝이난다.

그 와중에 아이는 빵과 얹어먹을 것을 그날 취향에 맞게 꺼내어 아침 식사를 홀로 한다. 옌스는 내가 도시락을 싸고 있는 중간에 일어나 씻고 출근 준비를 시작하는데, 내려와서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나는 작별인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그러면 아이는 학교가기 전까지 여유시간에 자기 혼자만의 놀이를 즐긴다. 사부작사부작.

그렇게 아침에 나와 회사에 7시 20분정도면 도착하는데, 오랫동안 출근길 전부가 어두웠다. 그러다가 최근에 하늘 끝자락이 푸르스름한 것이 보였다면 이제 7시면 환해진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해뜨기 직전에 완전 동튼 느낌. 이제 출근길이 훨씬 안전한 느낌이다. 이 겨울의 끝자락 아침 동트기 전 하늘이 참 이쁜 것이 파스텔 핑크, 하늘이 묘하게 어우러진 느낌? 그리고 들판에는 안개가 마치 낮은 구름처럼 층을 이뤄 끼어서 신비스러운 느낌을 조성한다.

겨울이 가고 있다. 올 겨울 가장 추위를 보이는 요즘이지만 이 끝에 봄이 오고 있는게 느껴진다.

아이들을 향한 인종차별

옌스의 누이 생일파티에 나는 아파서 참석을 못했는데, 거기에 다녀온 그가 거기서 듣고 온 인종차별이야기를 꺼냈다. 여동생 베프의 남편이 한국에서 입양된 덴마크인인데, 딸이 셋이다. 동양적인 느낌이 조금 더 강한 얼굴이지만 양쪽 인종의 특색이 다 드러나게 섞인 아이들로, 학교 생활 잘하고 공부며 운동, 노는 거 할 거 없이 다 참 뛰어나서 애들 건강하고 똑부러지게 잘 키웠다는 생각을 했었다.

파티하면 친구와 가족할거 없이 다 섞어 하는 덴마크인들인지라, 이 커플과 그 아이들을 알게된지도 어느새 십년이 넘었으니 따로 연락하고 가깝게 지낼일은 없다 해도 꾸준히 만나게되고 애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어왔었다. 그런데 인종차별 경험담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원래도 괜찮게 사는 집이었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살던이들이었는데, 돈을 좀 더 많이 벌면서 아주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 아이들도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남자애들 몇몇이 아주 노골적이고 수위높은 인종차별적 언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는 학교생활하면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지를 물었다.

아이들에 대한 인종차별 이야기는 십대 쯤 해서 경험하는 이야기를 가깝게는 아니고 “카거라”식으로 건너건너 들은적만 있다. 나도 인종차별을 경험한 것은 노르웨이 십대들한테 한번정도이고 그 이상은 없다. 편견의 존재를 경험하는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게 때로는 유리한 편견일 때도 있었고, 아니면 그냥 그게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가벼운 종류의 편견에 그쳤었다. 두드러지지 않으니 얼마나 광범위하게 경험하게 되는 일일지 모르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 사회는 일종의 정글과도 같은 거친 시기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대한 책임의 결과가 어른이 되어서 한 같은 행동에 대한 책임의 결과보다 가볍기 때문에 학교라는 제도안에서, 사회에서 발생하는 일보다 거친 일들이 왕왕 발생하곤 하니까.

하나도 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시간에 잘 놀다가 괜히 시비를 거는 2학년생에게 배를 걷어차인 적도 있고, 수업시간중에 화장실 간다더니 교실문을 못여는 친구를 도와주려다가 다쳐가지고 온 적도 있었다. 사실은 그 친구가 괜히 주변의 관심끌려고 자기가 문을 잠그고 쇼를 하는 거였는데 그걸 하나가 방해했다며 얼굴을 팍 밀어서 칠판에 머리를 박고 큰 혹이 나버렸던 거다. 주변에 있는 교사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이미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이런 아이들이 있는데, 아직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확고히 내면화되지는 않고 머리와 몸만 큰 청소년 아이들은 더욱 잔인하고 무서운 형태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힐 수 있는 거다. 한국에 비해 학교 폭력, 따돌림 문제가 덜 심각한 덴마크이지만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이면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인종차별이 더 큰 문제일지, 이런 학교에서 가해지는 폭력의 수위가 세졌을 때 그게 더 문제일지 사실 잘 모르겠다.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다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고, 그 다음 부모가 학교와 함께 어떻게 대응할지 잘 논의해가는 과정이 두번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여러 유형의 폭력을 당했을 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회복탄력성을 보일 수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 된다.

어른이 되면 제도의 보호로 인해 오히려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들이 학생일 땐 제도가 문제아동들도 보호해야 해서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냥 잘라버린다고 없어지는게 아니라 위치와 형태만 바뀌는 것이니 이를 제도 안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비난할 수 없고, 아무튼 어렵다.

단어 공부는 역시 플래시카드

엄청나게 영어단어를 외워대던 시기, 나의 친구는 플래시카드였다. 고등학교때, 사회 나와서 영어공부할때 등등 영단어 실력이 엄청 늘었다 했을 때 함께했던 것은 항상 플래시카드였다. 만들기 귀찮지만 만들어서 쓰면 도움이 엄청 되는. 덴마크어 학원에서도 패턴 드릴을 할 떄면 이것 저것 문형이 써져있는 플래시카드를 갖고 파트너를 바꿔가며 그 문형을 연습했었는데, 그게 참 많은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다. 플래시 카드가 좋은 건 내가 원하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사용해야할 단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뇌의 능동적 시냅스를 만들수 있기 떄문이다. 그냥 사전 찾아서 기억하고 넘어가면 타켓 언어로 듣거나 읽은 내용을 이해하게 되는 수동적 시냅스만 만들게 되는데 되는데 말이다. 독일 아마존에서 플래시카드를 주문하니, 수요일까지 도착한다고 하더라.

처음 공무원생활 시작하면서 관련 법령을 숙지하고, 우리가 작성해야 하는 결정문을 비롯해 다양한 보고서를 읽고 쓰고 하느라 새로운 어휘가 쏟아졌는데, 어학원 끝나고서는 그때 바짝 단어공부를 하고 말았더랬다. 더이상 사전을 찾아서 단어장을 만들고 하는 수고는 하지 않았는데, 이제 정말 실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직장에서 더이상 말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어지고, 글 쓰는 것도 부담없어졌는데, 이제 좀 더 세밀하고 적확한 단어를 사용해 커뮤니케이션의 질을 높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ChatGPT덕에 신문을 읽을떄 튀어나오는 모르는 관용적 표현, 숙어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일년전만 하더라도 해당 표현의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만약 그 해당 표현이 있으면 그걸로 이해하고, 아니면 구글검색 등을 통해 내용을 확인해야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건 ChatGPT가 상세히 예문과 함께 설명해주고, 표현의 유래 등에 대해서도 물어보면 자세히 알려줘서 공부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러니 이렇게 도구가 따라줄 때 –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 공부를 좀 바짝 해야겠다.

주 3회는 해야…

월, 화, 목, 토 저녁은 내 활동의 시간이고, 수, 금, 일은 옌스 활동의 시간이다. 각자의 취미 활동 또는 친구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인데, 딱히 친구를 자주 만나지 않는 관계로 우리 모두 취미활동에 이 시간을 할애하곤 한다. 나는 주 4회, 옌스는 주 3회라니까 조금 불공평한 것 같지만, 집안대소사, 일상과 관련해 나의 멘탈로드와 육체적 로드가 모두 더 큰 관계로 옌스의 불만 없이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발레 2회, 클라이밍 2회 하던 것을 발레 1회, 클라이밍 3회로 바꿨다. 요즘은 발레보다 클라이밍에 좀 더 많은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클라이밍 실력향상에 다소 정체기가 온 것 같아 이를 극복해보고자 바꿨는데, 역시나 실력에 변화가 조금씩 느껴진다. 그간 발레와 클라이밍 모두로 느껴온 것은, 주 1회하면 크게 늘지 않고 현상유지가 되고, 주 2회하면 실력이 천천히 늘고, 주 3회하면 실력이 는다는 것이다.

클라이밍은 자기의 체중이라는 무게가 정해져 있는 것이나 가볍게 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운동이다. 따라서 상체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 그나마 발레를 통해 미약하게 존재해온 등과 코어 빼고는 상체근육이 없던 나에게 적응 시간이 꽤 오래 걸린 운동이다. 처음부터 강도를 세게 가져갈 수 없었던 이유도 조금만 자주하면 손목이나 팔꿈치 등이 아파오곤 했기 때문인데, 이제 어떤 자세로 운동을 할 때 아픈지도 알게 되었고, 체력도 꽤나 다져졌기 때문에 주3회까지는 몸이 견딜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속 하려면 꾸준한 훈련을 통해 부상 없이, 강인함을 유지해야지. 생각만 해도 너무 좋고 두근거리네. 이번 겨울은 정말이지 언제 지나갔다 싶게 거의 지나가버렸다. 클라이밍 덕분에.

낯선사람들과의 교류

클라이밍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클라이밍이랑 상관없이 다른 스포츠도 그럴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까? 어느 것도 답은 없지만 클라이밍을 하면서 특히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어났다. 내가 잘 안풀리는 문제를 타인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저런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접근하나 싶었던 문제를 누군가가 용을 써가면서 하고 있으면 괜히 응원도 해주게 되고, 그러다가 보면 간혹 작은 대화도 하게 되는 듯 낯선 사람과의 교류가 늘어났다.

한국보다 덴마크는 낯선사람과의 인사나눔이 상대적으로 흔한 편이다. 여기도 예전보다 그런 교류가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길에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가벼운 미소를 띄어주는 것이 여전히 흔하고, 이제 나도 그에 맞춰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미소를 활짝 띄어줄 수 있는 순발력을 확보했다. 예전엔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그렇게 빠르게 미소를 짓기에 얼굴 근육도 마음처럼 따라주질 않았고, 애초에 그 순간을 잘 예측하지도 못했다면 이제는 그게 익숙하달까? 모든 건 연습이다.

이제 클라이밍짐에 가면 그런 식으로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과 간간히 마주치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대화도 하고 같이 문제도 풀고 하게 된다. 원체 클라이밍이 재미있어서 혼자 가는 것도 상관없긴 했는데, 그런 식으로 낯선사람과의 사회적 교류가 있다보니 곁가지로 새로운 재미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깊은 교류가 없이 그냥 취미만 공유하는 낯선사람과의 가벼운 관계는 즐겁다. 가까워지기 위한 대화나 탐색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그냥 나눌 수 있는 주제가 이미 딱 정해진 대화라 마음의 부담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물론 그런 관계가 지속되다보면 또 새로운 친구가 생기게 되기도 하고. 주제 탐색에서 진빠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사람과의 교류가 그리 좋기만 하지는 않은 나라 외향적인 듯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사회적 요소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내가 참 외향적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다양한 깊이의 인간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럴 때 보면 참 다행스럽다.

아이와 한국어

2월이면 아이의 한글학교가 개강한다.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를 대상으로 덴마크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방울새반에 다닌지도 어느새 2년이 흘렀고 이제는 한글을 어느정도 읽을 수 있게 되어 다음반인 종달새 반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아이는 꽤나 당황하고 두려워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아이들과 총 다섯명이 함께 넘어간다고 했음에도 자기는 그렇고 싶지 않다는데, 우선 너무 어려우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한 한달만 해보자고 하고 설득을 했다. 다행히도 그런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고려해 교장선생님께서 다른 선생님들과 상의 후 종달새반에 덴마크어 가능 보조교사를 배치하였다고 공지를 해주셨다.

원체 내가 한국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기는 했지만, 쓸려고 해도 저항하는 시기가 제법 있었기에 아이 한국어 교육은 집안에서 꽤나 부침을 겪는 항목이었다. 내가 덴마크에 살기 위해 덴마크어에 유창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만한 대가는 아이의 이중언어교육 분야에서 톡톡히 치른 셈이다.

요즘은 중간중간 뜬금없이 한국말로 이야기해도 못알아듣는다고 덴마크어로 바꾸려는게 아니라 모를겠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고, 이를 최대한 한국어로 설명해주려고 할 때 짜증을 내지 않는다. 예전보다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 작용한 것도 있는 것 같고, 여러가지 한국문화컨텐츠가 덴마크에도 퍼지면서 한국어 사용으로 인해 자신의 다름이 두드러지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줄어든 것도 있는 것 같다. 데릴러 가면 아이들 앞에서 자신이 주도해서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에서 그게 가장 두드러진다. 로제와 브루노마르스의 아파트 노래가 히트를 치며 아이들의 틀린 “아파트”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하면서 자신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봐도 그렇고.

나도 한국인이지만 덴마크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지며 덴마크 거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해지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이를 드러내는 문화적 향유나 표현을 크게 하지않는 것을 생각해볼 때 아이가 한국인이라고 강하게 느끼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안다. 한국에 휴가로나야 다녀온 곳이라 자세히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이가 지금보다 한국어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나중에 자신의 뿌리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랄뿐이다.

En rigtig fed klatresession

I dag klatrede jeg med Hannah, min gode makker. Vi klatrede to ruter på slab-væggen, to på overhang-væggen og flere på bouldervæggen. Det van en rigtig stærk session med nogle fede oplevelser. Flere forsøg med lidt tvist hver gang førte mig til at sende et par projekter. Hvor er det sejt. Jeg er også meget glad for, at Hannah også klatrede stærk, samt at hendes sikring er blevet meget sikker, hvilket er rigt vigtigt ved lead-klatring. Det er bare mega dejligt, at vi deler en fælles pa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