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덴마크어는 언제까지 나를 긴장시키려나

덴마크어와 스웨덴어, 노르웨이어는 뿌리가 같은 스칸디나비아언어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노르웨이어는 특히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쓰인 것으로만 보면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고 유럽 제품 안내문에 노르웨이어와 덴마크어는 간혹 함께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또 스웨덴어와 노르웨이어가 발음으로는 꽤나 비슷해서 서로 잘 알아듣는다. 코펜하겐 바로 옆에 붙은 스웨덴의 스코네지방은 덴마크 방송을 많이 봐서 스코네 사람들은 덴마크 말을 잘 알아듣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스코네 억양을 잘 못알아 듣는다. 그런데 스톡홀름 스웨덴어는 덴마크 사람들이 알아듣기 꽤나 쉬운데, 반대로 스톡홀름 사람들은 덴마크어를 상시로 접할 기회가 없어서 덴마크어를 잘 못알아듣는다. 재미있는 것은 서로 형제의 나라이고 말의 뿌리가 같으니 만큼 서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서로의 말을 못알아듣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이 나라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각자 나라의 말을 하고 대화를 하는데 문제는 서로 항상 그렇게 잘 알아듣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옌스와 내가 살림을 합치고 아직 결혼은 하기 전이었던 2015년 상반기, 4개월동안 옌스는 스웨덴 스코네지방에 있는 3대 도시인 말뫼에서 장기 출장형식으로 근무했다. 간혹 같은 단어지만 완전히 다른 뜻을 의미하는 몇가지 단어를 제외하고는 업무 상 쓰이는 말은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한다. 뭘 대화할지도 알고 업무의 흐름도 아니까 더욱 그랬는데 점심시간만 되면 자기한테 뭘 물어보거나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할 정도로 이해도 잘 안되고 대화에도 끼기 힘들었다고 한다. 서로 대화가 이사람 저사람 범위를 바꾸어 이뤄지고 주변도 시끄러워서 잘 안들리는데다가 주제도 예상치 못하게 다양하게 넘나드니 말이다.

그 비슷한 감정을 내가 느낀다. 업무는 대충 이야기할 게 뻔하고 이해 못하면 다시 물어보고 확인하면 되고, 주변이 시끄럽지 않아 잘 들리고, 한명 한명 순서를 지켜가며 이야기를 하니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점심 때는 도대체 무슨 주제를 이야기할 지 알 수 없다. 자기 가족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영화나 스포츠 이야기를 하다가 일 이야기도 했다가 여행도 이야기하고.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럭비공 같다. 그리고 서로 말을 끊기도 하고 큰 구내식당의 울림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고 음식을 씹으면서 우물우물 말하기도 하고 꽤나 어렵다. 중간에 몇 단어만 못알아들으면 그 다음 대화에 포인트를 못잡겠어서 이해가 어려워지기도 하니 바보처럼 간혹 씩 웃고 아무런 말 없이 듣기 평가 하면서 밥만 먹기도 한다.

오늘 모니터링 그룹 회의가 있어서 청장님을 처음 개인적으로 마주하며 보고할 일이 생겼다. 시작부터 조금 웃겼던 것은 부청장님은 지난 월요일에 내 이름을 처음에 어떻게 발음해냐 하면서 물어보시길래 해인이라고 가르쳐 드렸는데, 그 날 이미 하인으로 잘못 부르기 시작하시더라, 이제 그 이름으로 완전히 잘 못 외우셨다. 그냥 하도 하인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러시려거니 했다. Ha-ein으로 읽는 모양이다. 모음이 너무 많아서 문제… Hæin으로 개명하기엔 너무 늦었다. 논문을 Haein으로 내서… 이름을 보고 받아 적을 때는 대부분이 Haien으로 쓰고 말이다.

아무튼 보고회의에서 발표하는 건 센터장님을 제외하고는 나와 내 동료 두명이었는데, 동료가 먼저 발표하고 내가 뒤를 잇는 순서였다. 동료가 수행하는 보고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주제만 알고 있었는데 동료와 청장님이 이런저런 질의응답을 나누는데 간간히 못알아듣는 게 나오는 거다. 과연 내 업무에 대한 내용을 잘 설명하고 질의에 답변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게 심장에서 느껴졌다. 귀에 들릴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하는데, 어찌나 긴장되고 손에 땀이 나던지. 심호흡을 하면서 차분해지자며 회의실 안에서 혼자 속으로 명상을 했다.

결론적으로는 다행히잘 끝났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내용으로 배경지식이 없으니 놓치는 단어도 많고 알아듣기 힘든 거였다. 덴마크어는 앞으로도 간간히 나를 긴장하게 만들 거 같다. 항상 뭐든 간에 첫번째 것들은… 예를 들어 업체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거나 그런 거…

오늘 있던 미팅이 중요한 미팅이었어서 남편도 결과가 궁금했는지 회사에 있는데 전화를 했더라. 나도 너무 잘 끝나서 기뻤는데, 남편이 내일 이상으로 기뻐해줘서 더 행복했다. 앞으로 일이 잘 안되는 때도 있을 거고, 새로운 사람이 보스로 와서 안맞는 보스와 일하거나 저평가가 되는 시점도 있을 수 있지만, 잘한 경험이 있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크게 갖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번 경험이 소중했다.

2월 1일, 전직원 월 조회에서 1월 중 입사한 직원들과 함께 자기 소개도 해서 데뷔고 하고, 청장과의 미팅에서 내 개인적인 소개도 구체적으로 하면서 업무적으로 경영진 앞에 데뷔도 한 큰 날이다. 음력으로 2018년 마무리를 잘 한 기분이랄까? 이제 음력이고 양력이고 모두 새해가 될 다음주부터 또 새롭게 시작을 잘 해봐야겠다. 으샤으샤!

근무 일주일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매일 7시 반에 출근해서 캔틴에서 갓 구운 롤을 반으로 자르고 버터를 발라 치즈를 한장씩 얹고, 한 쪽에는 캔틴에서 만든 산딸기잼을 얹어 자리에 가져가 먹는다. 그렇게 하면 14크로나. 2400원 쯤 되는 아침 식사. 여기 외식물가가 두 배 정도 되는 걸 생각하면 저렴하다. 물론 제대로 먹는 점심식사가 27크로나 (4500원) 인 걸 생각하면 조금 비싸지만 그래도 저렴하다. 꽤 괜찮은 커피 기계가 캔틴에 24시간 무료로 오픈되어 있어 그걸 곁들이면 훌륭한 아침식사다. 10분이면 자리에 돌아와 앉아 먹으며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잡담은 거의 없다. 업무 이야기를 하며 한두마디 건네는 게 다이고 근무 시간엔 정말 강도높게 일한다. 오리엔테이션 미팅은 지금도 간간히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내 업무에 할당된 자료를 읽고 프로젝트 킥오프를 준비하는 게 가장 크다. 기존 규제방식에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것인데 다른 유틸리티 섹터에 도입된 규제를 참고하고 있다. 상하수도 섹터는 다른 에너지 유틸리티 섹터와 재정운용 방식이 달라서 다른 유틸리티 섹터에 도입된 규제를 그대로 이식할 수 없는데, 상하수도 섹터의 재정운용방식은 바꾸지 않으면서도 정치권에서 해당 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해당 규제 도입은 올바른 결정이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녹여낼지는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최종 보고서가 나와 입법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은 없다.

법 읽는 것은 시간이 생각보다 덜 걸리는데, 우리처럼 꼬아 쓰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여기 법 읽는 것보다 한국 법 이해하는 게 간혹은 더 어려운 것 같으니 놀라운 일이다.

오늘부터는 사전 찾는 시간이 진짜 많이 줄은 것 같다. 덕분에 읽는 속도도 느는데, 지난 일주일간 찾은 단어 숫자가 엄청난 덕이다. 단어장 노트의 반을 거의 다 채운 것 같으니 말이다. 다만 덴마크어를 읽고 이해하는 수동적 어휘와 내가 말을 할 때 꺼내서 쓸 수 있는 능동적 어휘 간에 차이가 많이 나니 간혹은 답답하다.

내 의견을 피력할 때 논리적으로 조리있게 설명하려다 보면 어휘의 한계로 갑갑할 때가 있다. 덴마크어로 머리를 풀가동해 쓰는 거라 생각안나는 단어를 영어로 꺼내기엔 쉽지가 않다. 처음 덴마크어를 배울 땐, 덴마크어->영어, 영어->덴마크어로 번역해 대화를 했기에 말이 안나오면 바로 그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뽑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덴마크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그 기저엔 모국어인 한국어가 무의식중에 깔려 있는 거라 덴마크어로 생각이 안나면 아예 이를 중단하고 영어 문장을 뽑아내야지, 한 두단어 갑자기 영어로 전환해서 말하는 게 힘들어졌다. 그러다보니 덴마크어로 말이 막히면 어버버 할 때가 있다.

오늘 잠깐 나의 보스인 센터장님과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이 남미에서 몇년 지내신 경험이 있으셔서 그 기분 잘 아신다며, 내 언어의 제약이 내가 멍청해서의 표현이 아님을 아주 잘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걸 다 알고 채용한 거니 걱정 말라시며 내 불안을 잠재워주려 하셨다. 본인의 경험으로 (그 전에 한번 점심 때 이야기 해주신 적이 있었다.) 아시는 거니 빈말이 아닌 거 같아 위안이 더 되었다고나 할까?

3일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일주일이 아니라 사실 일주일하고도 이틀 더 일을 했다. 연말에 쪘던 살도 일 시작하고 나니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는지 다 빠지고 살아있는 기분도 들고 좋다. 그러니까 하나와 옌스도 더 보고싶고 집에 와서 둘에게 더 잘 하고 싶고 그렇다.

얼른 나도 내 업무에 적응하고 덴마크어도 늘어서 온전히 1인의 몫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 날은 언제쯤 오려나. 한달은 너무 야심찬 거 같고, 3월 정도면 좀 그렇게 되려나?

덴마크어로 취직을 하기까지

덴마크어를 공부하기 시작한지 4년 4개월. 정말 언제 늘까 하던 덴마크어로 벌써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과 작년 3월인가 4월인가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Graduate program (싼 값에 대학원생을 고용해서 2년정도 국내외로 이동시키며 다양한 업무경험을 시킨 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일반적이다.) 에 덴마크어로 처음 지원서를 썼던 게 시작이었다. 영어로 먼저 지원서를 써서 이를 덴마크어로 바꾸어 번역한 뒤 옌스의 첨삭을 받았더랬다. 어찌나 오래 걸렸는지… 하루 꼬박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논문을 쓰던 와중에 거의 막바지 들어 한두개 정도 지원서를 내봤는데, 이렇게 저렇게 작성양식을 바꿔가며 이력서와 지원서를 써봤다. 그때만 해도 내 문장에 정말 자신이 없었고, 한문장 써내려가는게 너무나 힘들었다.

졸업을 하고 1개월 정도 프로젝트 알바로 아주 바쁘던 시기와 한국 방문시기만 빼고 1주일에 한개 정도씩 이력서를 냈는데, 두어개를 내보고나니 지원서 쓰기도 조금씩 손에 익었다. 6월까지 덴마크어 수업도 열심히 듣고 8-9월 중 한달간 바짝 들었던 수업이 그렇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걸까? 첫번째 인터뷰에서 덴마크어로 인터뷰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문제없이 하고 나서 나 스스로도 너무 놀랐는데, 덕분에 경쟁소비자청 면접에는 덴마크어에 대한 불안을 상당부분 잠재우고 갈 수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문제제기 부문을 작성하고 관련 정부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덴마크어 자료를 많이 읽은 게 도움이 은근 되었던 거 같은게 일련의 전문용어는 그런 자료를 읽는데서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쥐가 나는 것 같은 경험은 대학원 1학기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땐 수업시수와 과제만으로도 치였던 계량경제와 생태학에 덴마크어 수업까지 동시에 들으면서 쏟아지는 자료를 읽다가 머리가 쥐가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경력직으로 들어가 (낮은 레벨이긴 하지만) 신규 업무를 익히는데 그걸 덴마크어로 해야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다. 회의에 들어가서 설명을 들으면서 질문도 해가며 이해해야해서 그렇다. 엄청난 자료 더미를 받았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하려다보니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던 단어도 제대로 확인하고 넘어가야해서 시간이 배로 걸린다. 다행인건 페이지를 넘길 수록 이미 찾은 단어가 다시 반복해 나오고 불확실한 단어나 모르는 단어의 빈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읽고 이해한 데에 그친 단어면 내 능동적 활용단어에 포함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이걸 미팅에 들어가서 내용을 설명듣고 질문하는데 쓰다보면 머리에 빠르게 남는다. 나에겐 일을 하는 거이자 무료 덴마크어 수업을 받는 거다. 물론 이메일 쓰고 공문 쓰고 하는 일은 심적으로 큰 부담이긴 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맞닥뜨려야만 한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9월, 덴마크어 수업을 끝으로 수업이고 뭐고 내려놓고 본격적 덴마크어 공부도 손에서 잠시 논 후 잘 다져왔던 문법적인 디테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것 같았는데, 지난 며칠 사이에 이런 모든 게 다 빠르게 돌아오는 기분이다. 결국은 이런 도전의 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때 정체되어 있던 언어습득이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물론 이제 도전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앞으로 내 분야에서 내가 전문가가 되어 덴마크어로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야 한다는 게 두렵기만 하지만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차근히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직장 동료들도 자기들이 외국에 가서 영어가 아닌 그나라 말로 취직하려면 너무 힘들 거 같은데 어떻게 4년여 시간동안 덴마크어로 일자리를 구했느냐고 묻는다. 왕도는 없다. 그냥 무조건 부딪히고,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러다보면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늘 거다.

멍청한 실수

나이가 들면서 주의가 부족해진 걸까? 지난번 부모님 비행기표 예매에서 직항인 줄 알고 끊었던 표가 새로고침에서 온 실수 탓인지 뭔지 핀란드 스탑오버행으로 바뀌어 있어서 난리 한번 친 게 불과 4개월 전인데 이번엔 시험 날짜를 잘 못 알았다. 구술시험을 보기 전 채용이 결정되면서 구술시험은 정말 보기가 싫어졌었다. 시험 통과하고 나면 이걸로 내가 덴마크 대학에 갈 수준은 된다고 할려는 목적이었기에 채용 결정과 함께 급격히 의지가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시험 일자 통보후 그저께까지 열흘 가까이 되는 밤마다 시험을 볼지 말지 고민하다가 드디어 시험을 보겠다고 결심을 했더랬다.

온도는 낮고 바람도 제법 불지만 해가 떠있길래 자전거를 끌고 (시험장 위치가 가까우면서 교통이 애매하다.) 갔는데 고사장 안내가 영 안되어 있었다. 리셉션으로 가서 내 고사실을 못찾겠다 했더니, 오늘은 시험이 없다며 당황한 표정으로 답을 했다. 혹시 내일은 아니냐고 묻는 사람과 그 옆에서 혹시 어제는 아니었냐고 묻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도 당황해서 이메일을 다시 열어보니, 10.12.2018 이라고 되어있었다. 어떻게 12만 읽고 12일이라 생각했을까? 난 이제 덴마크식 날짜 표기에 익숙해있다 생각했는데, 무의식에는 여전히 미국식이 깊게 남아있었던 것일까? 시험 일자 통보가 12월에 되었으니 그래서 앞에 10이 12이려거니 생각하고 보지도 않았던 걸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돌아나왔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시험날짜도 모르고 그저께 시험을 보러 이틀 뒤 나타난 모양새가 어찌나 우스꽝스러웠을런지. 안타까웠을 수도 있고.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시험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거였다. 

조심하고 살아야지… 앞으로 일할 때 특히… 참 멍청한 실수였다. 쩝.

Studieprøven 읽기 및 쓰기 시험 결과

읽기는 10, 쓰기는 4. 아. 쓰리다. 사실 내 실력은 PD3 때에서 크게 늘지 않았는데 일한답시고 수업도 한달만 듣고 작문 연습도 안한 쓰디 쓴 결과다. 이렇게 결과를 받고 나니 구술시험은 더 보기 싫어진다. 이번엔 주제가 세 개 나왔는데, 여기서 하나 무작위로 뽑아서 시험을 봐야한다.

쓰기 주제는 어제 이메일로 통보를 받았는데, 1. Sprog i en globaliseret verden, 2. Ungdomskriminalitet i Danmark, 3. Kunst, kulturliv og kulturpolitik i Danmark, 이렇게 세 개이다. 5분 프레젠테이션하고 질의응답하는 걸로 해서 30분 시험보는데, 5분 프레젠테이션 3개 준비하는 게 왜이렇게 하기 싫은지. 사실 하고 싶으냐 싫으냐를 생각하기 전에 그냥 닥치고 해야 하는 건데…  이번 주말에 시댁 가서 저녁에 조용히 앉아 준비 좀 해야겠다. 시부모님과 브레인스토밍이라도 해봐야지.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 하고 여쭤봐서.

두 군데 1차 면접 후기

지원서를 낸 5 곳 중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집에 돌아가면 쓸 한 곳이 더 있는데, 아직 그 곳은 쓰지 않았으니. 한 군데는 덴마크 에너지협회, 다른 한 군데는 코펜하겐이코노믹스라는 이코노믹스펌(컨설팅펌이 아니라 자기네는 경제학만 컨설팅하니 이코노믹스펌이란다.). 둘다 정확히 내가 제일 가고 싶은 직무는 아니다. 각자 조직내에 내가 하고 싶은 직무의 일이 없는 건 아닌데, 오프닝이 난 포지션은 내가 100% 하고 싶은 일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떨어져있다.

에너지협회 포지션에 관련해서는 수업을 하나 듣긴 했는데, 내가 논문으로 판 분야가 아니다. 그렇지만 모델링과 프로그래밍이 많은 경제학 컨설팅 직무라는데에서는 마음에 든다. 코펜하겐이코노믹스에서는 얼마나 모델링과 프로그래밍을 쓸지 잘 모르겠다. 그들의 환경경제학 직무에서는 많이 쓸테지만 이 통상 직무에서는 말이다. 수업 하나 들은 게 그나마 연관이 있지만, 내가 좋아했던 수업은 아니었다. 기존 코트라에서 쌓아온 경력을 매우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높이살만하나 환경경제학과는 아예 트랙이 다르다는 점에서 매력이 많이 떨어진다.

에너지협회 면접은 1시간 5분동안 진행되었다. 협회 꼭대기 뷰가 아주 좋은 회의실에서 시니어 컨설턴트와 팀장과 만나서 면접을 했는데 순수히 덴마크어로 진행되었다. 전날 옌스에게 뭐 아무거나 물어보라고 해봤다. 바쁜 프로젝트 탓에 아무런 준비를 못했던 탓에 영 신경이 쓰여서 잠깐 연습이나 해볼까 하는 거였는데, “네 강점과 약점에 대해 말해봐라”라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못하겠더라. 결국 강점에 30초 쓰고 단점에 2분을 써서 어찌어찌 대답을 했더니 옌스가 별로 성공적인 세일즈 방식은 아닌거 같다고 했다. 덴마크어라서 할말이 없거나 그런건 아니었는데, 덴마크어라 더 어려운 거 같기도 했다. 그래서 혹시 아이스브레이킹만 덴마크어로 하고 면접은 영어로 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는 건 어떨 것 같은지 옌스와 상의를 했는데, 그것도 괜찮을 거 같다고 옌스도 생각하길래 그러려고 했다.

다음날 교수와 만나서 프로젝트 회의를 좀 하고 막바지 프로그래밍에 박차를 가하다가 면접을 보러 걸어갔다. 학교 도서관에서 15분 거리에 떨어진 곳이라 마음도 정리할 겸 걸어갔다. 내 강점과 약점이 뭔지 좀 생각해보면서. 너무나 오래간만에 신은 힐에 (제일 편한 낮은 힐이었는데도…) 발바닥이 영 불편했다. 준비한 게 없으니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또 생각해보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뿐인 자리이고 덴마크에서 첫 인터뷰이니 경험삼아 하는 것 뿐이지, 기대하지 말자면서 편한 마음으로 가려고 노력했다. 출산때 써본 날숨을 길게 내쉬는 복식호흡법도 써가며… 결국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정시에 나를 데리고 올라갔다.

정말 내 생애에 가장 편하게 본 면접인 거 같다. 이렇게 준비를 안한 면접도 없었는데 어쩌면 그랬기에 미리 준비해 둔 모범답안도 없었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아둥바둥 준비해야하는 면접은 나에게 안맞는 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내가 야심없는 타입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애써 그냥 팔게 아니라 자리가 나에게 맞는 자리인 지도 알아보고 서로 자연스러운 상태로 교감하고 탐색해야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안맞는 자리 가서 고생해봐야 나도 상대도 좋을 게 없지 않는가.

내 장점, 단점, 여러가지 생각에 대해서 솔직히 이야기했다. 나쁘지 않았던 거 같다. 어쩌다보니 그냥 면접을 덴마크어로 진행하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큰 무리없이 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뇌가 긴장의 끈을 붙들고 자기를 풀가동해 준 덕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에 물어볼 거 없냐는 질문에 몇가지 물어보면서 덴마크어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지금 정도 하는 거면 나중에 일하면서 느는 정도로 충분히 괜찮을 거 같다고 했다.

면접에 대한 느낌은 나는 나쁘진 않았는데, 상대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2차 면접에 대해서는 가을 휴가 이후에 답을 주겠다고 했다. 부협회장이 보는 면접이 되는 거라 일정 잡는 일이 자기네도 그렇게 빠르게 되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2차 면접을 이미 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하는 건지, 아직 그건 정해지지 않았지만 보게 된다면 일정이 그 뒤에 잡힌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물어보진 않았다. 나중에 어차피 알게되겠지 하면서.

인상깊었던 점은 자기네와 같이 일할 문화 면에서 부딪힐 면이 많이 없는 사람인지 보는 게 가장 중요해보였다. 물론 업무역량은 최소한의 것은 맞춘 후에지만. 예를 들면 만점에 거의 가까운 내 학점에 대해서, 완벽주의가 있는 건 아닌지를 물어보았고, 그게 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는 거라며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답을 했더니 후속 질문으로 다수 프로젝트의 데드라인과 완벽주의가 상충할 때 어떻게 할 지 등을 물어보았다. 심리분석을 자기네 기준에 맞춰 열심히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대답을 통해 나도 나에 대해 별 생각없었던 부분에서 조금 더 잘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좋은 경험이었다.

코펜하겐이코노믹스 면접은 1차 스크리닝면접을 외부 컨설턴트를 통해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그들과 6년간 같이 일해왔다는 컨설턴트는 알고보니 옌스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스카이프를 통해 면접을 했는데, 전화를 끊기 직전에 “내 남편이 네 이름 이야기를 듣더니 흔치 않은 이름이라며, 자기 고등학교 동창인거 같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 이름을 말해보라기에 알려줬는데, 자기가 그 동창 맞다면서 세상 참 좁다는 거다. 진짜 세상 참 좁다.

여기는 영어가 공용어라 영어로 면접을 봤다. 1시간 15분에 걸친 면접이었는데, 면접을 하면 할 수록 이 일이 내 일이 아니란 생각이었다. 세일즈에 대한 강조가 엄청난 포지션이었다. 일을 10이라 하면 이중 4가 세일즈라니… 시니어 포지션이라 그렇다는데, 기존에 유럽에서 쌓아온 네트워크가 없는 나에게 바로 세일즈가 중점인 포지션은 아닌 거 같았다. 세일즈나 네트워킹과 관련된 인성 쪽을 파보는 질문이 너무 많았다. 면접 마지막 무렵에 “너와 면접을 할 수록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 일인 거 같다.”라고 하니 자기가 너무 겁을 줬나보다면서 휴가기간 중이라니 그 기간중에 잘 생각해보고 다음 면접 때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이 일은 아닌 거 같다. 내가 이 직종에 엄청 꽂혀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손을 뗀지 3년반이나 흘렀고, 네트워크를 갖고 들어오는 시니어를 뽑는 자리에 유럽내 네트워크라고는 제로인 내가 세일즈를? 내 역량에 맞지 않는 자리다. 이건 그냥 내려놓는 게 맞다.

나에 대한 탐색 및 사고와 두 회사에서 일련의 면접을 통해 느낀 건 내가 야심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것, 코트라 직무처럼 여러방면에 걸친 일보다는 전문적인 일을 잘 해내고 싶어하고 잘한다는 것 정도인 것 같다.

옌스가 면접 볼 때 입으라고 사줬던 가을 신상 정장이 있었는데, 과연 이 정장을 입을 일 없이 겨울을 맞이할까 (물론 겨울에 입을 수 있는 정장이긴 하다.) 싶었더니 다행히 한번은 입을 일이 있었다. 좀 살이 쪄서 무리가 있으려나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흠흠…

지금 프로젝트 하고 있는 회사에 포지션이 하나 나서 거기를 지원할까 하는데, 사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진짜 싼값에 좀 부려먹는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면이 있어서 다소 망설여지는 면이 있다. 이 프로젝트만 아니면 엄청 열정적으로 지원했을 거 같은데… 옌스는 어디나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있고, 내가 정식직원이 아니라서 과하게 부려먹으려는 면이 또 있는 거 같다며 그 경험을 토대로 회사에 대한 인상을 결정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가 일해본 (10년전 이야기지만) 바에 의하면 조직 분위기는 참 좋다며. 우선 이번 프로젝트는 가을 휴가가 끝난 후 다시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 그거를 잘 하면서 지원서를 써봐야겠다. 이 프로젝트 경험이 회사 지원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벌써 10월 중순이다 실업 기간이 벌써 한달 반이네.  얼른 취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만약 취업이 될 거라면, 조금만 쉬고 취업이 되었으면 하는 게 간사한 사람의 욕심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본격 실업자 생활 첫주를 마무리하며

실업자가 되고나니 어찌 더 바쁘다. 주 2회 덴마크어 학원에 주 1회 덴마크어 과외, 그에 따른 숙제, 주 1회 덴마크어 이력서 작성, 집안일, 애보기, 이게 다일 뿐인데 마치 풀타임 학생에 덴마크어 학원 주 2회 다닐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마 과외에 애보기가 추가돼서일 듯하다.

우선 최초 2달 정도는 내가 꼭 내고 싶은 직장에만 이력서를 내기로 해서 정부부처를 중심으로 나는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에만 지원하려고 한다. 사실 큰 기대는 없다. 포지션 백그라운드 정보 서치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지원서 한장 쓰는데만 3시간여가 걸리는 덴마크어로 일을 한다면 모든 직무능력이 같은 덴마크인과 경쟁한다고 했을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다만 덴마크의 고용시장이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라고 하니 나와 같은 수준의 이력인 사람이라면 더 나은 곳에 지원을 했기를 바라며 지원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문한 것은 딱 하나. 지원을 계기로 삼아 관련 분야의 덴마크어 어휘를 익히고 작문 스킬을 늘리는 것이다. 내 생애에 코펜하겐 대학원 시작 직전 자발적 6개월을 제외하고는 실업기간이 없었기에 졸업 후 처음으로 맞이한 실업기간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초조해 한다고 달라질 게 없으니까 이 시기를 덴마크어 집중훈련의 시기로 삼기로 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직장이든 구해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직 새로운 일상의 리듬이 안잡혔다. 거의 자동적으로 일상을 지켜갈 수 있도록 어떻게 현재의 스케줄을 돌려갈지 최적화를 천천히 하고 습관화 해야겠다.

언젠가 성공적으로 취업이 되어서 그 성공적으로 된 지원서를 공유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덴마크어 모듈 6 시작

덴마크어 학원을 시작했다. 모듈 6. 스투디스콜른이 코펜하겐 꼬문 지정 학원 입찰에서 탈락한 후 (이제 지정 방식이 낮은 단가에 비중을 크게 둔 형태로 바뀌어서 이상한 학원 두개가 선정되고 전통적으로 덴마크어 교습을 해온 학원들이 다 탈락했다.) 사설 학원으로 전환한 후 첫 수업이라 사실 약간 불안했다. 수업시수도 조금 짧아졌고, 학원의 덴마크어 부문은 적자형태로, 다른 언어 수업에서 돈을 끌어다 쓰면서 다음 입찰까지 버텨본다는 계획이라길래 말이다. 오늘 첫 수업 후 우려는 말끔히 씻겼다. 우선 내가 수업을 듣는 기간 중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20명 정원을 다 채운 건 처음보는데, 학생들의 수준이 다 비슷하게 평준화되어있었다. 이제 사설학원이라 딱히 정해진 입학기준은 없는 거 같은데 모듈 6의 마지막 시험인 Studieprøven이 어렵다는 것을 학생들이 이미 알아서 등록하지 않은 탓인지 다들 유창한 덴마크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기가 쓴 덴마크어 글을 타인의 확인을 받지 않고도 보고서로 제출하거나 중요한 이메일로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자기 확신을 갖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고. 물론 학교에 입학을 해야해서 시험 점수가 중요한 사람들도 5명 정도 있었지만, 나머지 15명은 모두 스스로  실력을 향상하고자 온 사람들이었다. 시험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선생님도 지난 모듈 선생님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쏘옥 마음에 드는 선생님이다. 학원 수업 주2회에 과외 주 1회 하면 덴마크어를 짧은 기간 내 바짝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스투디스콜른이 사설학원으로 되었다는 건 커리큘럼을 시에 통제받지 않고 자유로이 꾸릴 수 있다는 거다. 현재 덴마크의 공인 언어시험이 C1에 해당하는 Studieprøven밖에 없다보니 수업도 그 수준까지 밖에 없다. 선생님이 오늘 수업을 하면서 그 다음 레벨에 관심있는 학생 있는지를 물어보며 하는 이야기가 내년에 그 차후 레벨 반을 개설하고 그 수업을 수료하고 시험을 쳐서 통과하는 대상으로 사설 수료증 같은 걸 만들어 보는 걸 계획중이란다. 나는 너무나 관심있고, 반에도 관심있는 사람들이 꽤 되는 것 같았다. 제발 좀 그런게 생겼으면 하는 바람인게, 중급을 넘어서면 셀프스터디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게 참 힘든 것 같다. 끊임없이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주제와 표현 이상으로 챌린지를 해주는 교육적 도구가 필요하다. 물론 스스로 그리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게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일이라 말이다.

디펜스 준비는 거의 끝났고, 이제 컨퍼런스 발표 준비만 끝내면 8월의 큰 행사는 끝난다. 그리고 나는 취업시장으로 풍덩… 아니면 실업세계로 풍덩… 🙂 새로운 세계가 열리겠지. 기대가 된다.

논문 제출 완료와 이후의 생활 계획

드디어 논문을 제출했다. 공식적으로는 2월부터지만 비공식적으로 11월부터 천천히 시작했던 논문의 8개월 대장정이 우선 일단락 되었다. 물론 이제 발표자료를 준비하고 22일에 있을 디펜스를 준비해야하지만, 그간 해온 일들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거니까 새로운 걸 써내는 것보다는 수월하겠지. 항상 그렇지만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나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실수가 눈에 띈다. 논문 또한 역시나.

제목은 “Economic Assessment of Flooding in Denmark – Inference of the non-material cost of flooding due to storm surge on housing prices using the hedonic pricing method based on a spatial difference-in-differences framework”. 엄청 길다. 시험 점수야 받아봐야 알겠지만 논문 자체만으로는 way above average라고 했으니 열심히 발표준비만 하면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해당 발표자료를 살짝 수정해서 이틀 후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면 논문과 관련된 건 정말 일단락된다.

다만 교수가, 박사과정 지원할 경우, 관련 홍수 프로젝트로 펀딩이 예정되어 있어서 자리가  생길 거 같다고 했었는데, 그 펀딩이 확정되었다고 하면서 내 논문을 수정해 갖고 저널에 등재하게끔 쓰는 것도 생각해보자고 하니, 추가적인 일이 있을 수는 있겠다. 그리고 내가 만든 데이터를 보내주면 그것 갖고 추가적인 연구에 활용해보고자 한다고 하니 뿌듯하더라.

앞으로 할 일들을 차분히 정리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일을 벌여놔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는 스타일이므로 몇가지 좀 벌이고 있는데, 하나는 덴마크어 과외다. 우리 학원을 비롯해 코펜하겐의 3대 어학원이 무료 덴마크어 과정을 중단하면서 많은 선생님들이 직장을 잃게 되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학원과는 별개로 자기 일을 또 갖고 있더라. 모듈 5에서 만났던 선생님은 사이드로 자기 학원을 하면서 대기업의 외국인 직원 외부강의를 나가고 있었는데 그 사업을 확장해서 집중하기로 한 모양이다. 이 선생님을 만나서 덴마크어가 눈에 띄게 늘었기에 비쌀 게 예상되었음에도 과외를 해볼까 연락을 했다. 45분 1 lektion에 900크로나, 1회당 최소 2 lektioner이니 한회당 최소 1800크로나이다. 우리돈으로 30만원 정도. 주1회 한달이면 120만원이다. 한국돈으로 생각하니 더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과거 주2회 20명의 학생과 앉아서 6주 수업하고 5500크로나, 약 100만원 정도 냈던 거와 이건 선생님이 집에 와서 하는 수업이란 걸 생각하면 또 아주 비싼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비싸지만, 과거 무료수업을 위해 공으로 1년 반을 기다리는 대신 다 투자라며 그냥 내돈 내고 수업을 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앞으로 내 덴마크 삶을 위한 큰 투자라는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8월 중순부터 시작될 덴마크어 모듈 6. 과외에는 긴 보고서 형태의 전문 보고서 작문, 정부 및 민간 보고서 독해 및 어휘, 프레젠테이션 등을 중심으로 하고, 모듈 6 학원은 말그대로 연말에 있을 Studieprøven 시험 준비하며 어휘도 쌓고, 다양한 작문도 하고, 리스닝도 늘릴 거다. 아무래도 일상생활의 덴마크어를 늘릴 수 있는 좋은 과정이 될 거 같다.

직업 찾기. 이건 얼마나 오래 걸릴 지 모르겠다. 지난 번 지원한 것들은 아직 마감일도 안되서 서류 검토도 시작 안된 거 같은데, 뭐 그건 별개로 다른 데 지원도 꾸준히 해야할 거 같다. 꼭 내 분야에 맞는 걸 찾기보다는 대충 걸리는 건 열심히 다 지원해보는 걸로 하려한다.

기타 통계 패키지 프로그래밍 감각이 떨어지지 않도록 관련 온라인 과정도 듣고 실습도 해보는 것. 그게 또 남아있다.

운동. 5월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3개월 해왔는데, 이제 습관이 들어서 격일로 가는 운동이 부담스럽지 않고 가서 간혹은 토할것 같은 느낌으로 하는 운동도 보람차게 느껴진다. 다 끝나고 지친 몸을 샤워실로 끌고 들어가 샤워를 하는 순간 느껴지는 상쾌함…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 자전거를 타고 느껴지는 시원함. 다 너무 좋다. 그 전엔 스포츠 아니면 별로 하기 싫었는데, 지금처럼 발레나 테니스 등 뭔가 어디 물리적으로 가서 해야하는 것을 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할 수 있는 걸 찾다보니 헬스 밖에는 옵션이 없었다. 홈트레이닝 하던 것을 좀 제대로 해보자고 헬스장을 다시 끊은 거였는데, 이번은 참 낭비 없는 투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앞으로 어떻게 되었든 꾸준히 하고 싶다. 몸도 그에 맞춰서 바뀌는 게 보이니까 좋고, 갈수록 무거워질 하나를 들고 업고 하려면 나도 체력이 늘어야 하니까.

한동안 도와주지 못했던 옌스의 한국어 도와주기. 리스트 업데이트도 너무 밀렸다며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 미안해라…

논문을 제출하고 나면 뭔가 덜 바빠질 것 같았는데, 미뤄놨던 일들이 많다보니 한가해질 새는 없는 거 같다. 그래도 한동안 완전 접었던 사회생활은 좀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계속 워커홀릭처럼 살 수는 없으니까. 조금은 한템포 느리게 가는 시기를 가져봐야겠다. 그러려면 플래닝을 잘 해야 하겠지. 잘 해보자! 화이팅!

힘들었던 체류 초기시절. 지금은 덴마크가 좋은 이유

5일의 시간이 어느새 흘러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휴가로는 딱 좋은 기간. 집에 돌아가고 싶은 이유 중 가장 큰 건 하나가 일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밤에 잠에 들기까지 우는 것도 그렇고 우리와 같은 방에서 자니까 아침 너무 일찍 일어나서 놀고 싶어해서 더이상은 휴가가 힘들다. 애가 좀 클 때까진 긴 여행은 힘들 듯 하다.

어제 저녁엔 시어머니가 여기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셨다. 시누가 남편 주재기간동안 두바이에 사는 건 돌아올 기약이 있는 건데 내가 여기에 사는 건 뿌리를 내릴 생각으로 사는 거니 그 무게가 다르니 간혹 내가 어떤 느낌을 갖는지 궁금하시단다. 그래서 생각을 과거로 더듬어가봤다.

지금이야 하나도 태어나고, 시댁 가족과 관계도 훨씬 돈독해져가서 옌스네 외가 가족이고 친가가족이고 가깝게 지내는데다가 내 친구도, 내 일(직장은 아니더라도)도 있고, 말이 통하니 더이상 내가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고 지낸다. 그래서 그런가 외국에서의 삶이라 힘들다거나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지가 꽤 되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힘이 들긴 했는데…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 (그래서 이렇게 글도 써서 가록으로 남기는 거지만) 다행인 건, 힘든 기억을 잊는다는 거다. 말이 잘 안통해서 가족 모임이나 친구 모임에서 애매하게 웃는 것도 웃지 않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나 혼자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면서 너무 딴짓하지 않는 척 보이게 앉아있었던 게 참 힘들었던 거 같다. 나를 위해 영어로 바꿔주는 것도 큰 모임에선 한계가 있었으니까. 물건 하나 사는 것 조차 구글 번역기를 돌려야 했을 때, 내가 원하는 물건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점원을 발견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때, 뭘 물어볼 때 누구한테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줄을 서야 하는 건지 아닌지… 진짜 사소한 것을 알 수 없어서 허둥지둥댈 때 힘들었다. 내 친구가 별로 없었을 때, 밤에 시차로 인해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을 때도 힘들었다. 이웃들끼리 가까이 지내는 거 같은데, 무슨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말도 잘 안통해서 듣는 거 하나하나가 긴장되는 순간이었을 때 힘들었다. 머리로 힘들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편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그리웠을 때 힘에 부쳤다.

그런데 지금은 다 지나간 일이다. 5년은 그런 시간인가보다.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내 가치관도 바뀐다. 예를 들면 결혼에 대한 생각. 애를 낳고 보니 결혼은 그냥 서류일 뿐이다 라고 했던 옌스의 말을 이해하겠다. 우리야 비자 문제로도 결혼이 필요했지만 동거를 하다가 애를 낳고서야 결혼을 하는 (애가 생기면 혹여나 있을 지 모르는 일들로 인해 결혼을 하는 게 여러모로 수월한 경우가 많다.) 경우가 엄청 많은데, 이제는 그게 이해가 간다. 이런 걸로 예를 들며 서양사람들은 성에 개방적이다거나 문란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이야기같다. 어차피 연애를 하면서 성관계를 갖는 면에 있어서는 한국이나 외국이나 매한가지인데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없는 척 한다는 점… 그래서 모텔 대실제도 생기고 성을 숨기다보니 왜곡된 성관념을 갖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건 오히려 동양이 훨씬 성에 몰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무튼 결혼이 제도적인 장치에 불과하고 가장 남녀사이를 강력하게 묶어주는 건 둘간의 사랑과 우정, 자녀라는 생각이다. 자녀는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고, 자녀가 있고도 헤어지는 사람도 있으니 자녀가 관계를 묶어주는 존재라는 건 아닌데, 한번 누군가와 자녀를 갖게 된다면 아무리 헤어져도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묶어준다는 이야기다.

덴마크에서의 삶이 좋은 건 아주 시내 한복판에 사는 거 아니면 내가 어렸을 적 느꼈던 이웃과의 정을 아직도 느낄 수 있고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과도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거다. 바쁨과 짜증이 스며나는 가식적 친절이 아닌 좀 수더분하고 거칠더라도 마음이 느껴지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점원들이 있는 상점이 좋다. 동네에 아이들이 어른 없이도 자기들끼리 놀이터에 나와서 모여 놀 수 있는 안전함과 유모차를 몰고 거의 모든 곳에 비난의 눈길 없이 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좋다. 차보다 자전거가 대우받고 자전거로 왠만한 곳에 갈 수 있도록 도시가 아담한 사이즈인게 좋다.

결국 느낀 건 언어가 중요하다는 거다. 영어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만큼 덴마크어 없이도 살 수 있는 이곳이지만, 언어가 열리면서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어지고 나면 그 전에 차가운 것 같던 사람들이 더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여주고 생활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준다. 못알아듣는 대화가 줄어들 수록 내가 나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고, 꾸밈이 없어지다보니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더 드는가보다.

직장까지 구하고 나면 정말 사회의 일원이 된 느낌을 강하게 받겠지. 한번에 하나씩 하자.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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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해안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들고 산책을 나섰다. 같은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간 커플이 마침 같은 해안가에 앉아서 아이스림을 먹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