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 신경이 눌려서 새끼와 약지손가락에 살짝 저림이 생겨서 의사를 만나고 왔다. 팔꿈치 터널 증후군때문인데 클라이밍에서 난이도를 올리면서 내 현재 팔 인대가 감당할 이상의 부하를 준 탓인 듯 하다. 팔을 접고 옆으로 누워 자는 자세도 한몫 한 것 같고.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는데, 저리다는데 쓰이는 표현을 søvnig라는 단어로 했는데, 약간 다른 sovende라는 단어로 표현했어야 했던 모양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졸려운”과 “자고 있는”의 차이인데 자고 있는에 해당하는 단어를 썼어야 했다. 의사가 정정을 해줘서 정확한 표현을 하나 알고 넘어가게 되었으니 하나의 수확. 아 대충 잠과 관련된 단어를 쓰는 것 같아서 søvnig로 썼는데, sovende였었냐며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진료가 끝나고 덴마크에서 산 지 얼마나 되었냐고 의사가 묻는다. 2013년 7월 말에 왔으니까 이제 9년이 좀 넘었다고 했더니, 놀랍다며, 진료하면서 보면 오랫동안 살아도 덴마크어 못하는 사람 정말 많은데 søvnig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라고.
연극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혼자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좋다. 그런데 의사가 말한대로 오래 산다고 해서 덴마크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같이할만한 친구가 많지 않다. 발레 친구들은 발레 보는 걸 좋아하지 연극을 좋아하지는 않더라. 사실 난 덴마크어를 잘 못할때도 연극을 종종 봤는데, 배경 지식을 갖고 들어가면 그런대로 따라갈만했고, 또 그런 경험을 통해 덴마크어가 조금씩 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욱 의식적으로 그런 활동을 찾았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이해해서 온전히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take away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괜찮다는 어프로치로 감상하면 공부도 되고 문화생활도 되니 좋지 아니한가!
내 주변에 도대체 어떻게 덴마크어를 늘려갈까 고민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아이디어로서 영감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내 문화생활 파트너를 늘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심이 가득한 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스트레스받기도 하는 일이다. 이미 영어로 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비영어권 국가에 살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쉽지 않다. 굳이 그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새로운 언어를 쓰고 배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더듬어가며 바보같아 보여지는 상황에 나를 던져넣고 싶지 않고 싶은 건 대부분이 느끼는 심정일 거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나를 던져 넣지 않고 책으로 영화로 말을 늘린다는 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능독적 활용 없이 수동적 인풋만을 활용하는 학습만으로는 능동적 활용능력과 수동적 활용능력의 갭이 갈수록 커져서 능동적 활용을 오히려 꺼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덴마크어처럼 빠르게 말하고 우리 기준에서 매우 미묘한 차이를 가진 다수의 모음 음가를 지닌 언어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능동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어휘와 독해 능력 대비 타인이 내 말을 알아듣게 하거나 내가 타인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게 떨어지게 되서 시간이 갈 수록 자신감을 잃게 된다. 내가 쓴 시간에 비해 나아지는 게 크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 자신감을 잃게 된다.
성인이 되어 비영어권에 나와 언어를 배워야 되는 상황이라 하면 어떻게 하는 게 빨리 배우는 방법이 될까?
우선 일상에서 그 언어를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답답해서 영어로 전환하더라도, “내가 덴마크어를 배워야 돼서 덴마크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덴마크어로 하고 싶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거나 표현이 안되면 그때 영어로 일부 이야기하겠다.”라고 표현하면 여태까지 딱 한명 빼고는 다 기꺼이 덴마크어로 응대해줬다. 덴마크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음식을 주문하는데 필요한 표현, 상점에서 물건을 살때 가격을 묻고, 물건의 위치를 묻고, 결제 방법에 대한 대화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대화 표현을 학원에서 배웠으니 그걸 바로 써보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상 생활에서는 예상치못한 추가 질문이 따라오기도 하고 그를 이해하지 못해서 재차 물어보다가 이해 안되서 영어로 바꾸게 되는 일도 있고, 실수를 해서 엉뚱한 결과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 에피소드들은 일련의 대화를 더욱 쉽게 기억하도록 한다. 실수했던 일이야 말로 잘 기억이 나게 되서 다음에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수준보다 조금 어려운 것이라서 처음 한 챕터 정도는 내가 마주하는 단어의 10% 정도를 사전에서 찾아야 하는 책 정도가 좋다. 소설이든 뭐든 대부분 어떤 주제나 장르상의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같은 단어가 여러번 나오게 된다. 단어장을 만들어서 그냥 그 단어를 찾은 결과를 적어내려가면서 읽다보면, 동사와 같이 문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어중에서 자꾸 기억이 안나 여러번 사전을 찾아야 하는 단어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걸 왜 기억 못하지 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그냥 여러번 단어장에 기록을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타이밍에는 기억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엔 사전찾느라 정신없던 챕터 두어개가 지나고, 슬슬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구간이 나온다. 책 한권을 다 끝내지 못해도 좋다. 그렇게 몇 챕터 읽고 다른 책을 또 읽고 하다보면 작가별로 다른 어휘나 문장의 사용형태에 노출이 되면서 어휘와 표현을 늘릴 수 있게 된다.
책이 지겹거나 공부하기 싫을 땐 영화나 티비 트라마, 리얼리티쇼,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별로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보면 된다. 자막 띄워 놓고 다 이해한다는 목표 의식은 옆에 접어 두고 즐기면서 보되, 반복되는 모르는 단어때문에 이해에 방해가 된다 싶은 건 사전을 찾아보면서 본다. 시간이 흐른 후에 실력이 조금 더 늘었다 싶을 때 또 한번 본다. 그러면 그 전보다 더 많이 들리고, 더 많이 이해된다.
영상의 경우 음성보다 영상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더 많은 음성 노출을 위해서는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이용하는 것이 아주 좋다. 전적으로 음성에 의존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압도적인 양의 노출이 가능하다. 그리고 뭔가 읽으면서 해독할 수 있는 보조 매체가 없기 때문에 귀의 민감성이 고조된다. 쉐도윙을 하면서 굳이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따라 말하며 듣기도 하고, 굵직한 내용을 중심으로 따라가면서 관련 어휘들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대부분 주제에 따라 반복되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모르더라도 소리를 따라할 수 있고, 그게 워낙 중요한 단어의 경우 소리 비슷하게 구글 검색해보면 오타가 나더라도 비슷한 추천단어 검색결과를 볼 수 있고, 매체의 프로그램 소개 내용을 통해 관련 내용을 검색해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관련된 글 등을 찾아 읽어보면 음성으로 들었지만 정확히 뭔지 몰랐던 단어를 눈으로 마주했을 때, ‘아, 이건가?’하는 생각과 함께 사전을 찾아볼 수 있고,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을 때 경험이 그 단어를 보다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연극을 보는 것은 영상과 또 다르다. 중간에 멈추고 사전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영상보다 또박또박한 발음을 들을 수 있다. 발성에 있어서 전문가인 배우들이 나와서 공연을 하기 때문이다. 미리 내용을 학습하고 가서 볼 경우 그걸 토대로 상당 부분 따라갈 수 있다.
잘 이해될 수 있을 때쯤 봐야지, 들어야지, 경험해야지, 말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반대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말해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조언하고 싶다. 순서가 반대다. 공을 어떻게 차야하고 다루는 지에 대해 정말 잘 설명한 책을 자세히 읽는다 해도 축구를 직접 해서 몸에 익히지 않고서는 그 책에 기술된 내용을 다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게 다 기술된 책을 찾을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완벽하지 않게라도 일상생활을 덴마크어로 완전히 전환하는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학업이 영어로 이뤄졌기에 전문적 영역에서의 덴마크어 전환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상황에 던져져서야 이뤄졌으니 정확히는 4년이 걸렸다고 할 수 있겠다. 어렵게 이력서를 써서 제출했기에 가능할지 어쩔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던 직장에서의 첫 한두달은 업무시간의 40%를 사전 찾는데 쓴 것 같다. 법전이며, 공문서, 리포트 등 읽을 게 태산이었는데다가 보고서를 쓰면서 정확한 표현을 쓰기위해 사전에 크게 의존해야했기 때문이다. 중간에 스트레스로 10개월 정도 쉬었던 기간에 다양한 텍스트를 읽고, 학원에 다시 나가 조금 더 인텐시브하게 공부한게 한단계 언어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어 다음으로 덴마크어가 편하다. 어휘는 덴마크어가 영어보다 부족할지언정 듣기능력에서는 덴마크어가 더 낫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실생활의 표현에 있어서 덴마크어 표현력과 이해력이 영어의 그것보다 낫다. 아무래도 영어 공부를 예전처럼 안하기도 하고 영어로 된 영화나 티비 시리즈를 안보는 이유가 한 몫 하는 거 같다.
오늘은 영어로 하고 다음에 덴마크어로 해야지, 덜 중요한 것일때 덴마크어로 해야지, 이런 마음은 옆에 고이 접어두고 이 말 빼고는 못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할 때 언어가 는다. 원래 쉬운 길이 있으면 그리로 가게 되어 있다. 그 두 길 다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길은 공사중으로 닫아두고 언젠가는 가야 할 길로 지금 당장 가자. 훨씬 더 빠르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