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일기.

논문이 바빠지니 다른 것에 소홀해진다. 논문은 대충 첫번째 포스트에 도착한 것 같다. 원시적 모델링은 우선 되었으니 이제 이론 연구와 모델링을 병행하고, 그 다음엔 분석하고 논문을 써야한다. 그간 진행이 참 지지부진하다 싶었는데, 그래도 1차 모델링을 하고나서 보니 어찌어찌해 절반은 왔구나. 약간이지만 안도가 된다.  물론 아직도 반 이상이 남았는데 시간은 반이 흘렀으니 긴장이 되는 게 더 큰다. 내 논문 생활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하나 있다면 항상 크리티컬한 관점으로 내 논문을 비판해 줄 남편이 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모델을 보여줬더니 이건 고려해봤느냐, 저건 고려해봤느냐, 이 건 왜 이런 함수형태를 취했느냐, 독립변수 선택의 전략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며 꼬치꼬치 묻는다. 아직 그 단계까지 안갔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무방비로 폭격을 당한 기분이었으나 나혼자 하는 씨름에 타인의 신선한 인풋이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역시 연구는 남과 공유해야하는 법이다.

우리 학과가 속한 인스티튜트에서 박사과정 공고가 났다. 자금사정이 트인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인스티튜트 아침식사시간에 같이 참여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도교수에게 박사과정에도 관심있다고 했더니 지원서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교수님이 있는데, 그분께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것도 보장되는 건 없지만 추천서만큼은 꼭 써주시겠다면서, 오히려 박사과정에 꼭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논문을 제외하고 학점이 10.9니까… 논문을 잘 쓰면 11점 정도로 학점은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라성같은 사람들이 완벽한 점수를 들이밀 걸 생각하면 아주 빼어난 점수는 아니라도 점수가 흠이 될 건 아닌 정도니 논문이 많이 중요하다. 사실 큰 기대는 못한다. 요즘 박사과정은 세계 각지에서 지원을 하니 경쟁률도 높고, 내가 원하는 연구방향과 인스티튜트에 가장 어필하는 방향이 매칭이 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든 해보지 않으면 될지 안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배웠으니까 우선은 지원을 해봐야겠다. 뭐 되든 안되든 간에 내가 박사과정까지 생각하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해봤고 공부는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는데, 역시 절대 안한다 못한다 이런 이야기는 함부로 하면 안된다.

덴마크어 필기 시험도 한달이 채 안남았고, 구술은 그 뒤 한달뒤로 다가왔는데, 시험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을 잘 만난 덕에 쓰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느는 게 느껴졌다. 알듯말듯한 몇가지 문법이 자꾸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는데, 내 고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딱 꼬집어 지적을 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이 좋아졌다. 작년 말 시험으로 모의시험을 쳐보니 읽기는 12, 쓰기는 약한 12 또는 강한 10이라한다. 말하기는 한달 시간이 있기도 하고, 읽기와 쓰기의 중간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 부문이라 대충 10~12 사이로 모든 부문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보고 있다. 모듈 6를 하게 될지 아닐지는 지금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항상 옵션을 갖고 있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우선은 그대로 해보련다. 덴마크어 교육도 갈수록 팍팍해져가고 있고 그러다보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더 미루지 않고 올해 초 다시 시작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 한 결정이란 생각이다.

하나는 쑥쑥 자라고 있다. 이제는 제법 아가씨 태가 난다. 잔디밭을 뛰어다니면서 겁이 없어져서 그런지 위험한 일들을 서슴없이 해서 조금 걱정이다. 집에서 놀다가 살짝 휘청한 것 같았는데, 금속 바구니 테두리에 부딪혀서 앞니가, 그것도 윗니가 살짝 깨졌다. 다행히 신경은 안건드린 거 같긴 한데, 우선은 지켜봐야한다. 옌스도 같은 이가 부러진 적이 있다하니 젖니 깨먹는 건 이 집안 내력인가 한다. 이일로 나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고, 아픈 하나를 보기위해 마침 휴가를 내고 있었던 옌스에게 애를 맡기고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로 인해 구역질이 났다. 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역질이 계속 나는데, 그걸 멈추기 위해서 산책을 해야했다. 원래 스트레스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체적으로 반응이 올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내가 아닌 아이 일이라서 그렇다. 누가 있었어도 생겼을 일이었기에 나를 자책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애가 더 크게 잘못되었으면 어쨌나 하는 두려움에서 오는 구역질. 더 큰 사고가 나도 차분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말로 단단히 먹어야한다.

하나는 참 씩씩한 아이다. 웬만해서는 넘어진 거나 부딪힌 걸로 울지 않는다. 시부모님도 그렇고 보육원 선생님들도 인정하는 씩씩한 아이인데, 그렇다고 튼튼한 건 아닌 것 같다. 감기나 설사 같은 걸로 자주 아픈편이고, 폐렴 입원도 그렇고 천식성 기관지염을 앓는 일이 꽤 잦은 것 같다. 오늘도 그로 인해 응급실을 다녀왔으니… 물론 이번엔 응급했다기 보다는, 일반 GP, 스페셜리스트로 올라가는 시스템을 이용하기에는 응급했다고 봐야하는 거니까, 그냥 적기의 진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겨울 아기로 겨울 초입부터 보육원을 시작해서 그런 것도 있다지만. 다행인 건 씩씩한 아이라 잘 견뎌준다는 것. 나도 생각해보면 어려서 자주 아팠던 것 같다. 항상 건강체질은 아니었고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자주 배가 아파서 학교를 많이 쉬었던 기억이다. 엄마도 내가 씩씩했었다는데, 지금도 꽤 씩씩한 거 생각하면 하나도 그런 면에서는 강한 아이일 것 같다.

요즘 얼마나 놀이터 생활을 즐기는지. 날이 좋아지면서 아파트 앞 잔디밭에서 놀리게 되니 동네 아이들과도 교류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한 때 비명을 고래고래 지르던 아래층 이웃 아이는 아직도 간혹 그렇긴 하지만 그런 게 줄었고, 그 아이의 오빠와 둘다 다정한 애들로 컸더라. 이제 곧 7살이 된다는 베어트람은 하나를 유독 이뻐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아마 여동생을 데리고 지낸 경험에서 우러나는 듯) 4살 여동생인 딕터도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아이었고, 둘다 하나와 함께 놀아주더라. 하나가 갖고 나온 공을 갖고 잔디밭에 삼각형으로 둘러 앉아 셋이서 공을 미는 놀이를 하는데 (그나마 하나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놀이로 배려해 준 베어트람이 놀랍다.) 곧잘 노는 게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놀라고 나는 빠져있는 건데 내가 중간에 괜히 옆에서 개입했나 싶었다. 말못하는 하나를 대변해준답시고, 아직 애가 이해를 못해서 그래, 하나야 앞으로 밀어봐, 이러면서 옆에서 참견을 했다. 그냥도 잘 했을 거 같고, 아니어도 오빠와 언니가 적당히 반응해가며 놀았을텐데 말이다. 앞으로는 다른 아이가 충분히 큰 경우 내가 조금은 더 뒤로 빠져서 지켜보는 역할에 그치는 것으로 해봐야겠다.

다음주에는 두바이에 주재중인 시누이네를 시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는데, 출산 후 거의 바로 이주한 시누이가족과는 하나가 처음으로 제대로 교류하게 될 거라 기대가 많이 된다. 조카들이 동생 만나서 놀아줄 기대로 부풀어있어서 더욱 기대된다. 수영복도 사고 이래저래 준비를 했는데 아픈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오늘 해가 엄청 쨍하고 더웠는데, 하나 데리고 오전에 응급실에서 3시간 씨름하고, 가장 해가 쩅한 시간에 나와 낮잠에 든 애를 두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밀고 싸돌아다녔더니 몸에 화기가 든 기분이다. 아마 피부가 많이 탄 모양이다. 밤에 잠이 잘 안올 것 같다. 나는 못자도 애가 좀 잘 자줬으면 좋겠다. 기침을 덜하는 걸 보니 오늘은 잘 자려나? 역시 병원에서 천식약 흡입한 게 도움이 많이 된 모양이다. 딱 쓰고나니 기침하네. 흠… 역시 입초사인가…

임신 때보단 육아가 훨씬 힘들긴 한데, 출산 후 100일이 제일 힘들었던 거 같다. 지금은 다른 차원의 힘듦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애가 어릴 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얼마전 출산한 사람, 앞으로 출산할 사람 등 주변에 애 참 많이 낳는데, 신생아 냄새가 생각날 듯 하면서 그립기도 하지만 또 낳을 생각은 안난다. 다 잊혀져서 애를 또 낳는다는데, 힘든 기억은 잊혀졌지만 힘들었다는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 애는 그만 낳고 남들 애기 보면서 신생아 이뻐하는 건 그걸로 끝내야겠다. 아… 신생아 볼 생각에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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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직장 첫지원 완료!

결국 한군데는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남편 찬스를 써서 오늘 덴마크어 교정을 최종적으로 받아서 지원서와 이력서, 성적증명서를 보냈다. 마침 취업박람회에서 무료로 찍은 프로필사진도 길면 2주까지 걸릴 수 있다더니 오늘 도착해서 그걸로 바꿔 첨부했다. 프로필 사진으로 찍은 것 중 처음으로 마음에 든 사진이다.

무료 프로필 사진에 포샵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여기는 애초에 포샵을 잘 하지도 않는다. 이 행사에 두번째 가보는 거라 사진을 어떻게 찍힐 지 알고 있었고, 덴마크 이력서 사진 유형도 익힌 덕에 이번엔 화장을 안하고 (플래시 터지면 안보일 정도로 흐린 눈썹만 그리고) 활짝 웃고 자연스럽게 찍었는데 잘 나왔다.

지원서를 우선은 영어로 쓰고 덴마크어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덴마크어로 사고하고 바로 작성하기에는 내 덴마크어가 너무 딸려서 필요한 컨텐츠를 충분히 생산할 수 없어서이다. 회사 다닐때만 해도 영어로 보고서를 쓰는 게 꽤나 스트레스였는데, 이제는 별 어려움이 없어져서 대학원 공부의 힘을 느꼈다. 물론 보고서를 계속 썼긴 해도 그 오랜 세월 잘 안늘던 영어가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늘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보고서 쓰면서 자료 인용할 일이 엄청 많아서 그랬던 거 같다는 생각이다. paraphrasing을 하면서도 군더더기 없게 효율적으로 글쓰기를 해야해서 골머리를 썩었던 것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었을 줄이야. 거기에 덴마크어 수업에서 작문을 엄청 시키는 것이 그래도 도움이 된 덕에 이를 번역해서 초안을 잘 만들 수 있었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으면 안되었지만, 그래도 나의 첫 덴마크어 이력서에 지원서라니. 뿌듯하다.

요건에 덴마크어와 영어 모두 fluent해야 된다고 되어있었으니, 사실 나는 요건이 안된다. 이력서에도 중상급이라고 명기해두었고, 이는 면접에 가게 된다면 확연히 드러날 사실이다. 그러니 떨어지는 것을 기대하고 지원한 것이지만, 그래도 혹여나 1차 면접에 가기라도 한다면 엄청 큰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최선을 다해 썼다. 떨어져도 이 경험 자체가 소중하니 후회는 없을 거다.

 

논문의 첫페이지 작성 시작, 그리고 덴마크어 선생님

아직 분석은 시작도 못했지만, 이제서나마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읽기는 읽어도 막상 쓰기까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나의 이런 완벽주의를 간파한 교수님이 완벽할 필요가 없으니까 우선 써내려가기 시작하라고 해서 그 첫발을 오늘 내딛었다. 그전에 옌스가 ‘논문은 우선 하루에 한장이라도 정해놓은 분량을 우겨넣든 어쨌든 쓰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총 8~90장 쓴다고 생각하면 매일 한장씩 쓸 때 꼬박 세달 걸리는 분량이다. 물론 모델을 만들고 돌리느라 한장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을 수 있지만, 또 방법론이나 모델을 돌린 결과를 쓰는 건 이미 고민을 많이 해 놓은 것이거나 드러난 결과를 요약하는 것일 뿐이기에 하루에 몇장씩도 쓸 수 있으니 못쓴 날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너무 바쁘다며 덴마크어를 중단할까 징징댔던 것을 후회할만큼 논문 작성에 덴마크어가 많이 필요하다. 덴마크의 현상을 주제로 잡은 이상 작게는 데이터의 변수명부터 크게는 정부 발표자료까지 많은 자료가 덴마크어로 되어있고, 이걸 구글번역기와 사전으로 들입다 번역해야 했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사전의 이용은 피할 수 없지만 꾸준히 신문으로 긴 텍스트를 읽는 습관을 들인 덕분에 여기저기 흩어진 많은 자료를 스킴해서 논문에 녹여넣는 게 크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덴마크어 수업 모듈 5는 이번이 세번째다. 첫번째엔 나쁘지 않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학업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바빠서 아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숙제를 제대로 할 여력이 없었다. 그 덕에 복습도 별로 못하고 사상누각같이 대충 대충 덴마크어를 쌓아올리는 기분이었다. 그 상태로 계속 공부하면 PD3면 모듈 6를 듣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시험을 치지 않기로 했고, 5.2에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두번째에도 나쁘지 않은 선생님이었지만, 나와 맞지 않는 선생님이었다. 시험에 방점을 강하게 찍고 수업하는 스타일이라, 호기심 천국인 나에게는 너무 틀에 꽉 짜여진 수업시스템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번째엔 5.2도 채 끝마치지 않은 상태로 중단을 결정했다. 대학원도 너무 바빴는데,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로 계속 수업을 듣기도 싫었다.

이번 선생님은 너무 마음에 든다. Einar라는 선생님인데, Studieskolen에서 수업을 들으려는 사람에게 정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선생님이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선생님으로 학생별로 강약점을 잘 파악해 그에 맞추어 코칭을 해준다. 수업의 기본적 틀은 유지하되 수업에서 나오는 질문들에 유도리있게 시간을 할당하고 학생들이 뭘 질문하는지를 빠르게 캐치해서 정확하게 답을 해준다. 작문숙제의 경우 한 학생의 작문을 골라서 모든 학생들에게 직접 첨삭을 해보도록 하고, 그 시간 중 직접 해당학생에게 붙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춰서 첨삭을 해준다. 사실 선생님이 학생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다르게 첨삭해줄 수 있는 내용을 다른 의미로 바꿔주는 경우를 여러번 경험했기에 이런 첨삭교수법은 아주 신선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텍스트를 첨삭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많이 배울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수정을 해주니 작문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 수업이 시작된 이래 불과 6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많은 발전을 느끼고 있으니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것인가. 삼세번의 시도 끝에 합이 맞는 선생님을 만난 게 너무나 기쁘다. 바빠도 이 수업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 해서 끝장을 봐야겠다. 마침 PD3 시험 신청도 끝났으니까.

진작 이 선생님을 처음부터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사람은 진짜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뭐 다 지나간 일이고, 지금부터 더 박차를 가해봐야지.

언어 공부에 있어서 발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내게 가장 오래된 취미는 언어공부다. 스트레스를 간간히 받지만서도 어려서부터 지금껏 꾸준히 즐겨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언어공부. 아빠는 나보고 언어학을 하면 잘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간간히 하셨는데, 내 생각에도 그랬을 거 같다. 다만 밥 벌어 먹고 살기 꽤나 빠듯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쪽으로 갈 생각은 들지 않았고, 이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언젠가 싫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굳이 업으로 삼지 않아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영어에 대한 호기심은 기억이 나지 않는 때부터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기억 나는 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읽지도 못할 영어 원서 아동서적을 샀던 경험이다. 사실 내 나이 또래 애들이 읽을 법한 책을 영어도 모르는 내가 샀으니 읽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또 초등학교 때 해외에 잠시 살다온 친구들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가졌던 게 기억난다. 특히 기억나는 건 상민이라는 아이. 짝궁이었는데 그 애가 미국에서 살다왔다는 것을 알고 이것 저것 말해보라면서 엄청 귀찮게 굴었던 게 기억난다. 그러다가 좋아하게 되서 더 귀찮게 했던 것 같다. 사촌이 미국에 가서 잠시 살았던 것도 이유였을까? 영어를 잘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동네에 생긴 작은 영어학원에 오빠와 함께 보내주셨다. 그때만 해도 회화학원이라는 게 거의 없던 때였는데, 주한 미군 남편을 둔 미국인 여자분을 선생님으로 해서 파일럿 반을 열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나와 오빠, 고위, 도위라는 형제, 그리고 2명 정도 더 있었는데 (세상에. 성은 몰라도 이름은 아직도 기억나는 악몽의 고위, 도위 형제.) 시작은 오붓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에게서 무슨 싹을 본 건지, 어느날 내 어깨를 붙들고 student를 계속 발음하도록 시켰다. 스튜던트, 스튜던트 하고 계속 발음할 때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 들어보라고 하면서 또박또박 말해주셨는데 갑자기 아하! 하는 순간이 왔다. 이 새로운 충격. 이 날을 계기로 내 발음에는 천지개벽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원어민 발음에 가까운 발음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했던가. 고위, 도위 형제 뿐 아니라 오빠까지 합세해 발음 문제로 따를 당했다. 그게 싫었어도 영어를 배우는 게 너무 좋아서 열심히 다녔다.

중학교 때 3천명이나 되는 학생으로 버글거리는 명일여중을 다녔는데, 거기에 서울시 전체 중학교를 대상으로 5명의 원어민 교사를 시범사업처럼 파견하는 일이 있었다. 1학년 5개 학급을 대상으로 (총 17개 학급이었는데) 레베카라는 젊은 여선생님이 배정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 반도 이에 해당되었다. 덕분에 영어를 조금이나마 또 써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는 외고를 다녔던지라 영어와 전공언어인 중국어를 배워야 했는데, 언어학습에 대한 호감은 이때부터 커졌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항상 언어는 도구라고 하셨던 탓에 이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도구인 만큼 항상 가까이 해야한다고 하셨기에 참 열심히 했었다. 이때부터 시작한 게 녹음해서 발음 교정하기였다. 어디서 들었던 걸까?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 들으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정말 다르다는 것을. 오성식의 팝스잉글리시였을까?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마침 오빠가 더이상 쓰지 않던 워크맨을 내가 빌려다가 녹음 기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제집을 풀면서 지문을 읽을 때 그냥 읽는게 아니라 소리내어 읽으며 녹음하고 그걸 들으며 발음을 확인하곤 했다. 귀로는 원어민의 발음을 기억하고 있었으니, 내 발음과 원어민 발음의 차이를 메워보고자 뭔가 이상하게 들리는 단어는 적게는 한두번에서 많게는 수십번까지 다시 연습했다. 가장 어려운 발음은 elderly에서 처럼 rl이 겹치는 거라던지, ee나 ea처럼 입을 옆으로 쫙 찢어서 발음해야 하는 장모음 등이었다.

영어를 그렇게 하다보니 중국어도 그렇게 하게 되었고, 한자를 잘 못외워서 그렇지 말도 곧잘 하게 되었고 발음도 좋아졌다. 고등학교를 끝으로 중국어를 놔서 그렇긴 하지만, 스키캠프에서 만나 친해졌던 중국친구 짱펑과 국제전화 및 편지 교환을 통해 실력을 많이 늘리게 되었고 한때는 중국어 실력이 영어보다 좋았던 때마저 있었다.

취직해서 바쁘다보니 오랫동안 더 많은 언어를 공부하긴 어려웠지만, 그간 마음만 두었던 불어가 계속 눈에 밟혀 KOTRA에 다니던 동안 불어 공부도 1년간 했다. 매일 최소 한시간씩 꾸준히 하며 전화 불어도 하고, 프랑스 친구와 언어교환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더니 나름 대화도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발음은 어찌나 중시했는지, 언어교환하던 친구도 네 언어 실력과 발음간에는 아주 큰 격차가 있다며, 발음만 잠깐 들으면 불어 잘하는 줄 알겠다고 농을 했다.

덴마크 오면서 불어는 다시 내려놓고나니 덴마크어에 눌려서 불어는 이제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쉽다. 불어는 나중에 덴마크어 공부가 끝나면 다시 배우는 것으로 해야지. 아무튼 불어에 이은 언어는 덴마크어였다. 옌스 만나기 전까지 배울 일 없다 싶으면서도 동료에게 이런 저런 발음만 조금씩 배워두고 있었다. Rød grød med fløde 이라는 외국인들이 모두 하기 힘들어한다는 이 tongue twister를 열심히 연습한다던가, 일방통행이라는 뜻의 ensrettet 표지판을 볼때마다 읽어댔다. 이런 발음에 대한 나의 열정을 아는 옌스는 발음 교정에 적극 동참해주었고, å라는 모음을 정확히 읽을 때까지 1년 반동안 수없이 고쳐주었다.

언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각자 언어 공부에 대한 원칙이 있겠지만 나에겐 발음이 첫번째 중요 요소이다. 발음은 굳어지면 굳어질 수록 교정이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고 또 그렇게 해서 발음이 좋아지면 듣기가 많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발음이 나쁘다고 해서 언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도구이기에 발음이 아주 심각해서 원어민이 못알아들을 정도가 아니라면 발음보다는 컨텐츠가 중요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학습의 관점에서 발음이 좋아지면 귀가 빨리 트인다. 귀가 빨리 트이면 학습의 방법이 다양해질 수 있다. 라디오도 듣고, 영화, 텔레비전도 보고. 그리고 내 말을 상대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니 못알아듣는다고 속상해하는 기간을 최대한 짧게하고 일상생활에서 연습을 많이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꾸 그렇게 연습하다보면 모르는 단어를 봐도 사전을 찾아보기 전에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대충 감이 잡히고, 사전 찾아보면 내 추측이 맞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자주 녹음해서 듣지는 않지만, 몇개월에 한번 씩 발전상황을 점검해보고자 녹음을 해보곤 한다. 오늘 5~6개월만에 신문 아티클 하나는 읽어보고 들어보니 지난번에 있던 실수들은 거의다 없어져서 이제 외국인 액센트가 거의 없어졌더라. 남편이 아주 간혹 몇 단어에서 느껴지는 거 빼면 발음만으로는 원어민 같다고 하더니 드디어 발음은 거의 완성이 된 것 같다. 3년 반에 가까운 시간이니 길다면 길 수 있지만, 영어에 비해서는 훨씬 빠른 시간내에 도달했다. 그리고 주로 뉴스를 많이 듣고 공부한 발음이라 또박또박 듣기에 좋은 발음이라는데 듣기에 좋았다.

솔직히 국제결혼을 할 때만 해도 내가 이 사회에서 이 나라 말 잘 해가면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한 건 아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진 정해진 건 없지만서도 이 나라 말 잘 하고, 사람들 속에 잘 녹아들어 사회에 짐 되지 않는 인간으로 살 수 있는 데 문제가 없겠다는 걸 확인 한 작은 순간이다. 살다보면 중간 중간 vulnerable해질 수 있기에 스스로에게 작은 확신 같은 것을 줄 계기 같은 것이 필요한데, 아직 취업시장에 나서지 않은 나에게 언어는 일종의 최면술 같은 거다.

언어 공부엔 왕도가 없이 무지막지하게 열심히 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지만, 열심히 하는 게 책만 파야된다는 게 아니라 놓지 않고 계속 해야한다는 것이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생각한다. 요즘 덴마크어 어떻게 공부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것 저것 잡다하게 들려주다보니 그 핵심엔 1. 발음 연습과 (발음 연습 하는 게 따로가 아니라 공부하면서 같이 하는 형태의 연습), 2. 모르는 컨텐츠라도 시간을 많이 내서 시청하기 (드라마, 영화, 뉴스, 토론 – TV/라디오 형태), 3.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더이상 해당 언어로 대화하기에 뇌에 부하가 걸릴 때까지 그 언어로만 대화하기, 4. 혼잣말 할 때 (속으로든 겉으로든) 그나라 말로 말하기. 5. 자기 전엔 신문 읽기 등이 있는 것 같다.

아직 내 덴마크어엔 갈 길이 멀지만 이제 중급은 거의 졸업한 것 같다. 사실 오늘 녹음을 해서 들어본 이유가, 요즘 덴마크어로 남과 대화하는 데 거의 문제가 없어진 것 같아서였다. 언어의 발전이 계단식으로 이뤄진다는데 그 한 계단을 더 올라선 것 같다.

옌스가 이제 덴마크어만 하지 말고 자기 한국어 더 열심히 도와주란다. 내가 바쁘다고 자기 한국어 안도와준다면서 투정을 하는데, 정신 차리고 열심히 도와줘야겠다. 물론 내 살 길도 찾아가면서.

습관의 동물화 – 옌스 닮아가기

부부는 닮는다던데.

옌스가 나를 닮아가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옌스를 닮아가는 건 분명히 있다. 습관을 기르고 습관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면에서가 그렇다. 나는 옌스를 “습관의 동물”로 묘사할 만큼 무슨 일을 하든 앞으로 계속 해야할 일이면 쉽사리 습관화를 하고 꾸준히 이를 지켜간다. 덕분에 한국에 가서 산 건 두 달 뿐인데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자습을 통해 나와 한국어로도 제법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다.

나는 즉흥의 삶을 살아왔는데, 한 번 꽂힌 일은 짧은 시간동안 주구장창 파고, 실증이 나거나 한번 어떤 이유로 멀어지면 다시 그 길로 잘 들어서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번 망친 일은 다시 들여다보기 싫어서라고나 할까. 완벽”주의”의 대표자이다. 그러다 보니 삶에 있어서도 부침이 큰 편이었는데, 잘 할 때는 엄청 열심히 하고 열정적으로 살다가 번아웃이 오면 관둬버렸고, 살도 엄청 쪘다가 뺐다가를 자주 반복했다. 집도 일주일에 하루 힘을 내서 치울 때만 엄청 깔끔하게 치우고, 한동안은 어지르고 정리하기 싫어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옌스와 함께 지내면서 많이 바뀌었다. 완벽주의를 천천히 버려가고 있다. ‘조금만 더 해보자.’, ‘좀 쉬었어도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게 더 나으니 다시 해보자.’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만났던 첫 해 겨울, 옌스가 퇴근하고 집에 놀러와서 같이 놀다가 산책을 나가자고 하면 어찌나 나가기가 싫던지. 하루에 한번은 꼭 산책을 해야 한다고 믿는 전형적 덴마크인인 옌스는 그래도 나가자고 나를 찔러서 추운 겨울 밤 나를 집 밖으로 끌어냈는데, 막상 나가면 좋은데도 왜그렇게 나가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싫다고 해도 좀 끌어내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옌스는 시간 낭비하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간혹 파워냅이라고 10~30분 낮잠 자는 거 빼고는 뒹굴거나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엄청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환멸을 느끼게 하는 게 뒹굴거리는 것이었는데 그런 바른 모습을 몸소 보여주는 남편이 옆에 있으니 갈 수록 뒹굴거리지를 못하겠더라.

퇴근하고 와서 피곤하다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옌스를 보면서 덴마크어 공부하기를 불평할 수 없었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많이 먹고 빼는 건 건강한 삶의 습관이 아니라는 그 앞에 확 빼고 찌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직장생활을 한 동안 한번도 병가를 낸 적이 없었다는 옌스 앞에서 아프다고 늘어져있을 수가 없다.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 물론 지금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이제는 그냥 그렇게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나도 그렇게 하고싶다. 절대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하고 아주 탁월한 재능은 노력으로 이길 수 없을지 몰라도 어설픈 재능은 노력을 이길 수 없다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예전엔 말이 쉽지, 실천이 어렵다고 하던 것들은 그냥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느슨해진 나를 발견하면 나중에 다시 나사를 조여야지 하는게 아니라 바로 나사를 조이곤 한다.

11월 자기가 하나를 보겠다고 하더니, 나보고 바로 공부하라고 재촉이었다. 일 하는 것과 똑같이, 평일엔 친구 만나고 놀지 말고 이제 공부하란다. 원칙주의자. 흠. 갑자기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았지만, 자기도 갑자기 혼자 애 보기 힘들텐데 나를 뒤에서 밀어준 덕에 어느새 학교에서의 일상이 다시 익숙해지고 탄력이 붙었다.

예전엔 짐 회원권 끊어놓고도 가기 귀찮아서 안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게 어디있는가. 짐에 못가는 날이면 집에서라도 하게된다. 하기 싫은 순간도 하기 싫다는 생각을 길게 할 수록 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생각이 나면 몸을 움직여 스쿼트라도 몇번 한다. 그러면 몸도 다시 상쾌해져서 목표하던 바를 계속 추진하게 된다.

덴마크어도 마찬가지다. 2014년 8월부터 시작했으니 어느새 3년이 넘었다. 준외교비자로 온 탓에 비자를 바꾸기 전까지 1년은 6주에 100만원씩 내가며 공부했었다. 남들은 나라에서 내주는 돈으로 공짜로 배우는 덴마크어를… 그때까지만 해도 옌스와 결혼까지 하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관계가 유래없이 안정적인 사람이었기에 헤어지게 된다면 관둔다 하더라도 우선은 배워두겠다는 마음이었다. 산책을 나가면 몇 단어를 모르던 시기에서부터 무조건 덴마크어로만 말하기를 한다던가 옌스의 방식대로 우리만의 습관을 만들었었다. 책 읽기 연습을 하면서 옆에서 옌스가 발음을  교정해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내가 쓰는 글에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거나 다소 이상한 표현들은 있을지라도 이제는 거의 업무를 할 수 있는 덴마크어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물론 덴마크어사전은 내 베스트프렌드지만.

항상 쉬지 않고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가 있었기에 간혹 덴마크어 배우는 게 힘든 순간이 와도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영어로 하루종일 수업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던 첫학기, 집에와서 오늘 배운 것을 덴마크어로 말해야하는 게 짜증나던 날도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버벅거리는 나를 상대하고 있어야 했던 옌스가 더 짜증났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옌스 한국어 공부 도와주는 것이 엄청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걸 보면… 계속 시도하지 않으면 늘지 못한다는 그, 자기도 말뿐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찌 말이 쉽지 실행이 어렵다고 불평할 수 있겠으랴.

덴마크 엄마그룹에 껴서 덴마크어를 할 때 바짝 긴장했던 10개월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알아듣는 폭도 엄청 늘었고, 덴마크어로 말하고 생각하는게 스트레스가 아니다. 매일매일은 느는 걸 못느끼고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하지만, 어느날 과거 어떤 날의 내 모습이 기억나는 때가 있는데 그런 때, ‘아하. 엄청 늘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국인이니 못하는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며 처음 배운 덴마크어로 무조건 여기저기서 시도해보는 나를 보며 옌스는 간혹 재미있다며 웃기도 했지만 그게 좋은 자세라며 항상 격려해줬다. 그런 그가 있었기에 더욱 더 철판을 깔고 시도했고, 간혹 내가 엉뚱하게 알아듣고 잘못 답하고 상대가 이상한 표정을 짓게 되는 에피소드들도 더해져갔다. ‘아, 내가 외국인이라 잘 못알아 듣고 헛소리를 간혹한다. 미안하다.’로 마무리 되는 에피소드를 집에 와서 전하면 옌스는 배를 잡고 웃곤했는데, 이렇게 틀린 것들은 잘 잊어버리지 않게 되어 오히려 더 좋았다. 외국인인 나를 위해 영어로 바꿔주는 덴마크인들에겐 나 연습 좀 하고싶다고 부탁아닌 부탁까지 해가며 연습을 했는데 간혹은 낯이 뜨겁긴 했어도 다 좋은 경험이었다. 덕분에 하나 보육원을 시작하면서 보육 선생님과 말도 다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참 날씨가 별로인데, 그래도 운동을 가야겠다. 짐 회원권도 끊었으니 자주 가야지. 레노베이션도 해서 많이 커지고 좋아졌더라. 열은 내렸지만 컨디션은 여전히 별로인지 하나가 껌딱지처럼 나에게 붙어있는다. 그래도 요즘 운동을 엄청 열심히 했더니 아기띠를 오래하고 있어도 허리가 하나도 안아프네. 그러니 더 해야지. 요즘 옌스가 하나를 재우는 덕에 7시 이후 내 개인 시간도 생기고 너무 좋다. 일 분담도 정해지고 이런 루틴 또한 분명해지니 삶이 편해지는구나.

 

거절, 덴마크어, 이방인

거절에 익숙해지는 건 연습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 거절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또한.

요즘 졸업한 동기들을 보면 스웨덴인과 덴마크인을 제외하고는 직업을 찾지 못했다. 신문에서는 전문직의 구인난이 계속되고 있다는데, 그건 결국 이나라 말을 할 수 있을 때나 해당하는 것인 모양이다. 졸업한지 3개월동안 구직을 하면서 인터뷰 조차 하지 못한 동기들은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다. 학업을 하는 동안 덴마크어를 하지 않은 것을 엄청 아쉬워하고 있는데, 덴마크어 수업 등록하는 것도 실업급여 받는 동안 처음으로 강좌신청할 경우 원하는 학원에서 못듣고 잡센터에서 운영하는 학원으로 가서 들으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나마도 듣고 싶다고 신청을 했는데 아직 답도 못듣고 있다면서 분통을 터뜨리는데 마음이 안스러웠다.

덴마크어를 못하면 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덴마크어에서 손을 놓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래봐야 중상급. 일터에서 덴마크어를 쓰기엔 부족하다. 그나마 대학원으로 바빠 힘들다면서도 덴마크학원을 꾸준히 다녀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힘들 때 밀어부쳐야 오히려 더 하게 되는 거 같아서 2월부터 다시 다녀보려 생각중이다. 1년에 2번 보는 PD3라는 시험이 있는데 이걸 좋은 성적으로 통과해야 마지막 모듈을 들을 수 있다. 그 뒤에 있을 대학입학 요건 같은 Studieprøven이라고 최종 어학시험을 대비하는 모듈인데, 읽기와 쓰기를 인텐시브하게 가르친다고 한다. 여름 후 취직이 바로 안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 그 때 이 모듈을 들어놓으려면 5월엔 PD3를 봐야할 것 같다.  옌스한테도 주 2회 저녁 7시 수업은 감당할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할 수 있단다.

수업과 시험은 수업과 시험이고. 실생활에서 쓰지 않으면 언어는 늘지 않는다는 것이 경험에서 나온 신조인지라 이제 새로운 레벨로 시도해보기로 했다. 논문 데이터 수집부터 덴마크어로 연락을 하기로 했다. 대충 시나리오를 짜 놓고 전화하긴 했지만, 전화란 게 나 혼자 떠드는 게 아니라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수업자체가 영어로 진행되기에 이에 해당하는 용어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나중에 나에게 피가되고 살이 될 경험이라 생각한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콜드콜을 걸어 나는 어떤 공부하는 학생인데 데이터 필요하다고 도와달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거절하는 사람이 많은데다가 꼭 친절하게 답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전화거는 방법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니 우리말로 해도 긴장될 상황이다. 이 와중에 덴마크어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너무 혹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아니면 오히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려다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머리속이 복잡하다. 누군가는 엄청 차갑게 우리는 그런 데이터가 없고 여기랑 여기 같은데서나 받을 수 있을텐데 네가 그것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답하기도 하고 누구는 도와주겠다고 하기도 한다. 당신이 말한 곳이 어디랑 어딘지 다시 말해주겠느냐, 내가 외국인이라 잘 못알아들었다 라고 재차 물어도 빠르게 말해주면 머쓱해지기도 하지만 아쉬운 건 나니까 철판 깔고 다시 들이밀었다.

차가운 반응이나 거절의 통화를 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기분이 조금 그렇다. 그럴 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며, 거절은 원래 당하는 거라며,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중얼거린다. 점심때 만난 대학원 동기들에게 이야기했더니 거절에 곧 익숙해질 거라며 친절한 투로만 말했지, 닥치고 꺼지라는 내용을 들은 일도 많다고 이야기해준다. 엄청 위로가 된다. 거절에 익숙해질 거라니. 강해진다는 내용이잖아.

코트라 다닐 때만 해도 거절을 당하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뭐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살면서 거절을 별로 당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이제는 여기 이민자로 거절 당할 일이 수두룩 빽빽할텐데 하는 마음가짐이라 그런가? 거절에 조금 무뎌지는 거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럴 일을 줄이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다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는가. 직업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이 공부해봐서 아는 우수한 친구들도 말이 안되니 인터뷰조차 못보는데.  논문 쓰면서도 그런 트레이닝은 많이 받겠지. 예전엔 거절당할 것 같은 일, 안될 것 같은 일은 하기 정말 싫어하면서 하거나, 피할 수 있으면 피했다. 지금도 그런 성향은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안될 거 같아도 해보면 되는 일들이 있으니 우선 부딪혀보자고 들어가는 것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예전엔 하다가 중단하면 이미 완벽함에서 망쳐졌으니 다시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게 낫다는 주의가 되서 끈기가 조금 늘어난 것 같다.

다시 덴마크어로 돌아와서… 중상급에서 언제까지 안주하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라디오 청취를 다시 시작했다. 어디고 이동할 때는 핸드폰을 보지 않고 라디오를 듣는 것이다. 국영방송 제1라디오를 들으면 주로 뉴스와 시사, 교양프로그램, 토론방송 등을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동기부여가 되긴 하지만, 자막과 그림이 있으니 듣기에 온전히 집중을 하지 않게된다. 그리고 라디오는 끊임없이 떠드니까. 국영방송이라 광고도 하나도 없어서 정말 공부하기엔 최적이다.

신문읽기도 하루에 최소 신문 한면 정도는 보도록 하고있다. 예전보다 읽는 속도가 늘어나서 신문읽기가 수월해졌다. 어휘를 따로 외우려는 노력은 안하고 끊임없이 찾다보면 외우게 되는 식으로 단어를 공부한다.

덴마크어를 가까이할 수록 한국과는 멀어진다. 한동안 엄마아빠가 뭘 이야기해도 대충 한국사정은 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 지진난 이야기도 남이 해줘서 알게되고. 하나가 있고 학업도 있으니 정말 딴 짓 하기 힘들다. 운동도 어디 가서 하긴 어려워서 애 잠들고 나면 화장실가서 스쿼트를 포함해 15분정도 간단한 맨몸을 활용한 트레이닝을 하는 게 전부다.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건 팍팍한 일이다. 그렇지만 모든 거절이 내가 외국인이라서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거절은 내 나라에서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 거절에 대해 생각해보던 어제 친구에게 언제쯤 이곳에서의 삶이 이방인의 삶으로 느껴지지 않을 거 같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정확히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이방인의 삶을 사는 건 틀림없으니까. 그렇지만 처음보다는 지금이 더 여기를 집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덜 이방인처럼 느끼게 되는 것도 분명한지라 앞으로 계속 살다보면 여기가 진짜 내 고향 같아지지 않을런지.

 

4년만에 덴마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덴마크에 살기 시작한 지 거의 4년이 되었다. 만약 계속 코트라에 계속 다녔더라면 돌아가야 할 시점이었겠지.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지면서도 그것밖에 안되었나 싶은 모순된 감정이 가로지른다. 인생에 전혀 계획하지 못했던 일들이 무수하게 벌어졌으니 역시 살아봐야 아는 게 인생이구나.

 

앞으로 어떤 생각이 들런지는 또 지내봐야만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난 덴마크의 삶이 참 잘 맞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인도로 첫 발령받기 전까지 한번도 해외 거주 경험이 없었으니 참으로 토종 한국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이방인 같은 느낌으로 살았었다. 여기와서 옌스를 만나고 결혼을 해 하나를 낳고 친구들도 생기고 하니, 나답게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그냥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덴마크 사람들과 케미가 잘 맞는다고 해야할런지. 덕분에 뿌리를 내리기에 참 좋은 토양이다 싶다. 물론 옌스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덴마크 사회로 진입하기에 이런 가족과 같은 연결고리는 정말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경험해보니 정말 그렇다.)

 
출산하고 애를 키우며 지난 오개월 사이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학교 다니면 영어 쓰는 시간이 지배적이고 저녁에도 공부하느라 덴마크어가 소홀해진다. 그런데 애 보면서 토막나는 시간에 공부하기가 잘 안되니(조금 핑계같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방송 간간히 보고, 신문 읽고, 엄마그룹 모임 하고 했더니 몰입환경이 조성된 걸까? 듣기가 확 트이고, 어휘도 늘고 하다보니, 말문이 눈에 띄게 트였다. 물론 듣고, 읽고 이해하는 폭이 말하거나 쓰는 폭보다 넒기에 덴마크어로 보고서를 유창하게 써야 하는 일을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덴마크어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방송시청과 신문 읽기가 어렵지 않아왔으니 말이다. 출산 시점을 돌이켜보면 그땐 영어로 하겠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밖에서 영어를 쓰는 일이 없다.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든, 엄마그룹을 만나든, 뭔가 상담을 받든 말이다. 옌스와의 대화도 95% 정도는 덴마크어를 쓰니.

 
작은 나라라서 그런가? 말이 되면 엄청 좋아하고 환대해 주며 사회의 성원으로 빠르게 받아들여주는 점은 한국과 덴마크가 같다. 요즘 덴마크 사회에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부쩍 받는다.

 
논문이 끝나면 직장을 구해야 할텐데 이제 걱정은 한켠으로 접어두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환경경제쪽으로 직장을 꼭 잡고 싶은데 안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접었다. 내가 공부를 다시 한 목적은 직장을 잡는 자체에 있었고, 내가 덴마크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물론 좋은 성과를 내고 졸업한다는 전제하에 그 기간동안 덴마크어도 가다듬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에 든 힘도 좀 빠졌나? 내가 앞으로 뭘 하든 밥값만 하면 되지, 꼭 좋은 직장 잡아서 잘 다녀야 하는 거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드니, 설마 직장 하나 못잡겠나 싶다.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밸류 프로포지션만 명확하면 직장은 잡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마음에 드는 직장을, 아니면 그냥 밥벌이라도 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아마 이 모든 느낌은 더이상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드는 것 같다. 옌스 가족과 친구, 내 생활 반경 속 사람들에게 그냥 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나니 그냥 이대로 살면 되겠다는 생각이랄까? 한국에서 갖고 있었던 뿌리깊은 자기증명 강박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내 부모와 가족, 친구가 멀리 있는 건 아쉽지만, 난 내가 뿌리내릴 토양을 지구 반비퀴를 돌아 찾아온 느낌이다. 나에겐 이제 고향이 두 곳이다. 둘이 같을 수는 없지만 다른 의미로 아주 중요한…

나의 덴마크어 학습방법

모듈 6를 꼭 듣겠다는 마음으로 Prøve i Dansk 3 시험을 계속 미뤄왔다. 모의 시험으로만 보면 우수한 성적은 아니더라도 이미 통과할 수 있었던게 벌써 7~8개월 전이니까. 읽기, 듣기, 구술, 작문 시험 모두 10점 또는 12점을 받아야 모듈 6를 들을 수 있기에 완전히 준비될때까지…라는 마음으로 오기를 부려왔다. 6개월을 쉬고 다시 등록했다가 4번 나가고 수업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대학원 공부만으로 정신적으로 벅차졌고, 새로운 선생님은 시험준비에만 몰입해 수업을 진행하는 탓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배우면 시험은 따라오게 되어있다는게 내 시험 공부의 지론이다. 그래야 시험성적과 언어의 수준이 따로 놀지 않게 되어 있으니까. 이런 건 어떻게 표현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런건 시험에 중요하지 않다고, 시험에 복잡한 문장 쓰지 말고 간단히,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게 적당한 문형을 활용해서 쓰라고 하더라. 같은 모듈 5 선생님인데도 그 전 선생님과는 너무 달랐다. 빠르게 의욕을 잃고나서는 안그래도 큰 마음 먹고 가야하는 덴마크어 수업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덴마크어 공부를 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나 하고 싶은대로 공부하다가 나중에 시험 치고 싶을 타이밍 직전에나 학원에 다시 가야겠다.

그래서 하는게 닥치는 대로 방송을 보는 것이다. 드라마, 뉴스, 다큐멘터리 등. 집에 TV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국영방송인 DR (Danmarks Radio)만 시청할 수 있다. 처음엔 자막을 주로 깔고 보다가 요즘은 자막 없이 보기도 한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는 방법이라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본다.

신문 기사를 하나 정해서 필사를 하며 모르는 단어를 찾는다. 예전엔 대충 이해하면서 읽었다 하면 이제는 완전히 이해하려고 읽는다. 짧은 기사야 금방 읽지만, 신문 양면을 꽉 채운 특집기사는 다 읽는데 두시간 이상 걸린다. 긴 기사를 읽는 건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반복되는 어휘가 몇 개씩 꼭 있어서 그런 단어들을 외우기 좋다. 그리고 이런 기사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경우가 많아서 덴마크 사회와 정치, 문화 등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영어를 배울 때부터 느낀 건데, 내 발음이 정확해야 상대 말이 들린다. 우리말 식으로 발음을 해석하지 않고, 원어민을 귀찮게 해서 내 발음과 상대의 발음의 차이를 찾아내서 같게 만들면, 상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귀가 트이는 속도의 차이는 내가 얼마나 그 발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물론 그걸 인지해도 발음으로 복제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걸 해내면 귀가 금방 트인다. 그런데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걸 문장으로 엮었을 때 어디에 강세를 두어야 하는지, 어떤 발음은 흘리게 되는지 등도 알아야 그게 대화로 옮겨졌을 때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듯이 어느 나라 말이든 한 음절 음절 똑똑히 발음하며 대화하는 언어는 설령 있다 하더라도 많지 않을테니까.

예전엔 옌스로부터 인터네이션 교정을 많이 받았다. 신문 기사나 책 등을 한 문장씩 읽어가며 강세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걸 잘 못하면 상대가 내 말을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게 엄청 도움이 되서 이제는 새로운 문장을 읽거나 말할 때 큰 오류 없이 문장 속 중요 어휘와 문법적 요소를 찾아 강세를 바르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발음이나 강세로만 놓고 보면 외국인이란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고 할 정도니 이 부분에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알 수 있다.

2014년 8월 중순부터 덴마크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이제 2년 3개월이 되었다. 조금 독학으로 찾아 읽은게 5월부터니까 그것까지 치면 2년 6개월. 대충 2년 정도 지나서부터 유럽 언어공통기준으로 중급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그런데, 언어가 중급 이상으로 늘기 시작하면 더이상 타인 주도의 학습으로는 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기가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초급이나 중급에서는 조금만 해도 느는 자기의 말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쉽게 할 수 있는데, 고급부터는 미묘한 문장 구성과 내용의 발전, 어휘의 배가 및 활용도 증진, 언어 구사의 능숙함 등에서 늘어나는 거라 하루가 다르게 느는 것을 느끼기엔 어렵다. 따라서 스스로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고 당근을 주지 않으면 꾸준히 하기 참 어렵다.

덴마크어 수업을 쉬는 동안 드라마 보고 띄엄띄엄 신문 좀 읽는 것 외에는 열심히 안했는데, 대학원 슬럼프 3주간의 기간 동안 지난 시즌 재상영이나 새시즌이 시작된 드라마 3개와 저녁 뉴스를 열심히 봤다. 완전 딴짓은 아니라는 자위를 하며. 그런데 그게 듣기에 도움이 되는게 새삼 또 느껴지니까 또 다시 동기부여가 되더라.

마지막 블록은 어려운 과목 하나만 들으면 된다. (옌스가 듣더니, 그거 어려운 수업인데… 란다. 왠지 더욱 오기가…) 그러면 남은 시간엔 덴마크어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공부하려한다. 그리고 옌스가 책 한권을 다 떼서 그 책에 있는 표현을 갖고 이야기 몇 편을 써달라 한다. 대화체 이야기, 서술형 이야기 등 섞어서. 이미 대화체 한편은 썼는데, 옌스도 참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열심히 한다. 이제 간혹 전화통화 하면 한국어로만 대화하거나, 산책 나가있는 동안엔 한국어만 쓰기 등의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예전 내가 덴마크어를 배우던 초기에 쓰던 방식인데, 그게 참 도움이 되었다. 옌스가 나 말고 한국어라곤 쓸 데도 없는 환경에서 완전 독학으로 이만큼 온 게 놀랍다.

서로 주고 받거니 하면서 양쪽의 언어를 배우는 건 즐겁다. 고맙기도 하고. 서로의 언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하나가 보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언제 내 덴마크어가 원어민 수준으로 올라갈 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3년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거라는 낙관을 해본다. 2년 뒤엔 취업시장으로 나서야 하는데, 일할 수준으로는 충분히 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이 들어 영어 말고 제2외국어를, 특히 덴마크어를 배워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게 꼭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시누이의 박사 디펜스 방문기

덴마크의 박사과정은 3년이다. 연구가 늦어지거나 개인적 사정으로 쉬는 경우 이보다 길어질 수 있지만, 우선은 3년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이 설계되어 있고 펀딩 또한 이를 토대로 한다. 시누이는 5~6년 걸렸다고 들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게 어느새 2년 반 정도가 된 것 같은데, 남편의 인도와 러시아 주재에 동반하느라 나를 만나기 얼마 전에 덴마크로 돌아왔다고 했었다. 그러니 중간에 최소 4년 이상 쉰 것이다. 아이 셋의 엄마로 박사 과정을 마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잘 안간다. 물론 오페어를 하나 두고 있었다지만, 애들 픽업하고 생일 있으면 애와 어른 파티 따로 다 준비하고 명절때면 가족과의 모임을 자기네 집에서 하고 등등 정말 수퍼우먼같은 모습으로 산 것 같다.

시누이는 시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고 한다. 실제 시댁에 가 있으면 며칠동안 하루에 최소 한번은 전화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은 통화가 주를 이뤘지만, 간혹 조금 긴 통화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긴 통화 후 시어머니가 시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보는 시누이는 정말 멋진 여성이다. 항상 여름 햇살처럼 빛나는 환한 웃음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따뜻한지.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것도 보면 참 대단하다 싶고. 그렇지만 엄마가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는게 시누이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아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터라 시누이가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박사과정 중간에 해외로 나간 것도 그렇고, 애들을 학교에서 픽업하고 과외활동 하는 걸 지원하느라 같은 연구소에 있는 남자 동료들이나 양육의 문제가 없는 동료들처럼 연구와 커리어에 더 몰입할 수 없는 것 등 말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연구원으로서 모든 일을 잘 해내려고 하는 그녀가 여러모로 힘든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박사과정의 디펜스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퍼바이저와 오포넌트 말고도 연구소 동료, 친구, 가족이 온단다. 그간 고생한 것을 치하하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좋은 선물도 준비하고. 옌스는 이번 주 또 출장을 가 못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몰랐을 땐 그냥 안타까워하는 옌스를 대신해 내가 가야겠다 싶었는데, 안갔으면 영 그랬겠다 싶다. 미리 내가 가겠다고 한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갑을 하나 샀다.

디펜스는 바로 오늘 오후 2시 반. 시내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있단다.덴마크의 가장 큰 병원인 Rigshospital 예방의학과에서 고환암을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곳에서 디펜스를 한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경주용 자전거를 타다가 경추에 금이 가 본홀름에서 이곳으로 헬리콥터 후송되셨던 일이 있다. 이 곳에서 처음 시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번엔 시누이 일로 와보게 되었다. 여긴 시댁 일 아니면 올 일이 없는 병원인 모양이다.

본홀름과 스웨덴을 오고가는 페리 스케줄이 가을부터는 오전, 오후 두편만 있기에 아침 열시에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했다. 지난 두주간 정신없이 바쁘고, 옌스가 출장을 두번이나 가 나 혼자 있었기에 집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다. 사실 정리정돈 잘하고 설겆이 밀린 것 없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기에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는데, 시부모님 오신다니 싹 다 청소를 해둬야겠다. 어제 저녁에 못해서 아침 여섯시부터 일어나 식사하고, 엄마와 페이스타임 삼십분한 뒤, 청소하고 화장 끝내니 딱 도착하셨다. 항상 그렇시듯이 초콜렛이며 잼 등 작은 선물들을 갖고 오셨는데, 이번엔 특별히 아이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길 바라며 시어머니의 할아버지가 어딘가에서 발견하셨던 1700년대의 금화 한닢을 옌스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셨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것을 보다니 덴마크에 살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한다 싶었다.

임신상태의 경과를 포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병원으로 향했다. 점심은 병원의 카페테리아에서 가볍게 하고 컨퍼런스룸으로 갔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와있었는데, 시누이의 45분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 오포넌트 2명의 오포지션까지 총 2시간 30분을 모두 꼼짝없이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임신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은 자리, 딱딱한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던 적이 없던지라 허리도 좀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오랜 기간 연구한 성과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실제 박사과정 디펜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는 것, 오포넌트가 어떻게 디펜스에서 논문에 챌린지를 하는지 보고 듣는 것, 다 흥미로웠다. 나중에 내 석사논문 디펜스에 대해서 감을 잡아볼 수도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애 셋을 돌보며 세개의 manuscript를 성공적으로 저널에 등재하고 (그 중 하나는 세계적인 저널에 등재되었단다.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이었나? 아무튼 옌스가 이 저널을 모르냐길래, 당신은 보건경제학자니 아는거고, 나는 환경경제학자라 모른다고 해줬다. – 환경경제학에서 유명한 저널이 뭔지도 난 사실 모른다. 흠흠.) 1년전에는 Young European Sceintist 상인가 뭐도 타서 유명 컨퍼런스에서 발표도 하고 그랬단다. 뭐랄까, 약간 허허실실한 타입이라 잘 몰랐는데, 그 상 탔을 때 이야기 들어보니 항상 열심히 하고 꼼꼼하고, 성과욕도 많아서 뭐든 잘한다고 한다. 사실 그러니 애들과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게 얼마나 스트레스도 될까 이해도 된다.

발표도 여유있게 잘하고 디펜스도 정말 잘해서 누가 봐도 성공적으로 디펜스를 마무리짓는 것을 보았을 땐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내가 박사학위 받는 것도 아닌데 내가 다 뿌듯해졌다. 이번에 고환암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계량경제학 때 배운 내용들이 회귀분석에 사용된 가정이나 방법론 등을 논할 때 다뤄지는 것을 보며, 이런 내용을 몰랐다면 강의를 들어도 크게 이해가 안되었을텐데, 하면서 배우는 만큼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기도 한 고마운 순간이었다. 옌스에게 잘 끝났다고 문자를 하니, 큰 오빠가 자랑스러워 한다며 축하해주라고 하며 정말 기뻐하더라.

디펜스 결과가 박사학위 수여 커미티에게 모두 만족스러웠다는 발표가 이뤄지며 디펜스가 마무리 되었으며, 대학교 측에서 준비한 리셉션을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프리카델라, 샌드위치, 과일과 케이크 등 먹을 거리 뿐 아니라 여러명의 축사와 시누이의 감사인사말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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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중 시누이네 가족

맛있게 먹으며 시누이네 이웃, 시누이 생일 때 만났던 시누이 어릴 적 친구와도 만났는데, 시누이 친구가 Dong energy에서 풍력발전으로 일을 한다길래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독일인이라는데, 뭔가 정말 반 독일인스럽게 더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했다. 여기서는 뭐하는 지 물어보고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생활 침해가 아닌데, 상대도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듯이 나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는게 익숙해져서 더이상 취조당하는 느낌이 안든다. 처음엔 뭔가 동양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인가 하는 오해에 부담감마저 느꼈는데, 그냥 이들의 관습임을 알게되니 나도 남의 직업 탐방의 시간이 재미있기조차 하다.

내가 덴마크어를 잘 못할 땐 남들이 하는 말 중에 못알아듣는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서 자꾸 질문을 해야하다보니 은근히 위축되고, 시간이 오래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제 뇌가 언어를 처리하느라 물리적인 스트레스도 받는데 덴마크어 학원을 쉰 지난 6개월간 오히려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방학기간 중 덴마크어 드라마를 엄청 보고, 옌스와 덴마크어 사용 비중을 크게 늘려 90% 정도를 거의 덴마크어로 사용한 게 큰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이상 덴마크어로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게 정신적인 부담이 안된다. 그 전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런 자리에 나서야 빨리 말에 익숙해지고 적응할 수 있어!’ 라며 스스로를 밀어붙였다면, 이젠 그런 것 없이 설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편안해지던지.

아무튼 그렇고 나니까 주변인들이 나를 챙기려고 부담감 느낄까봐 불편하던 마음도 없어지고 그냥 편해졌다. 그런 편안함과 함께 이방인의 느낌도 많이 없어지고. (그 방안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지만, 내 눈엔 내가 안보이니… 더욱 이질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흠.)

어느새 시간은 흘러흘러 6시. 시누이네 집에서 개인적으로 준비한 리셉션이 또 있단다. 핫도그 캐이터링을 불렀다고 하는데, 난 학교 친구 생일파티가 있다고 해서 못간다고 했다.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추가로 잡은 약속인데. 아쉽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8시 파티에 가기전 조금 쉰다고 소파에 눌러앉은게 화근이었다. 피로가 몰려와서 한시간만 쉬고 나가려던게 그냥 마냥 소파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그리하여 이렇게 손가락만 놀려도 되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긴 시간을 포멀한 옷차림을 하고 소셜모드로 있었더니 영 피곤했던 모양이다. 혼자서 쉴 시간이 필요했다. 내일 옌스가 출장에서 돌아오는데다가 주말에 공부할 것도 많은데 이정도의 저녁 휴식시간은 필요하다. 이제 다 덮고 조금 일찍 자야겠다. 하나도 많이 피곤했을 것 같고.

덴마크어 발음은 독일어와 너무 다르다.

게르만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덴마크어이기에 많은 단어가 독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생김새도 독어와 비슷한 경우가 많아, 독어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들은 어떻게 발음해야할 지 잘 모르는 단어를 그냥 독어식으로 읽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독일인들은 덴마크어를 빠른 속도로 배우지만 자기네식 발음을 못버리는 경우가 많아 발음이 나쁜 나라 사람들로 낙인이 찍혀있다는 것이다.

덴마크어의 모음과 자음은 우리와 상이한 게 워낙 많아 우리네 한글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이를 독일어식 발음으로 치환해서 한국어로 표현할 경우는 원래 발음과 너무 달라진다. 덴마크에 여행객도 늘고 유학생 및 워킹홀리데이 방문자도 늘어나면서 블로그에 덴마크 지명과 브랜드명 등이 많이 소개되는데, 완전 잘못된 발음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쉬운 점이 많다. 짧은 기간 지내는 사람들이라 덴마크어를 배우지 않고 그렇다고 현지인에게 해당 발음을 듣는게 아니라 여기서 비슷한 목적으로 온 사람들을 통해 구전에 구전으로 발음과 정보가 공유되기에 앞으로 오는 많은 사람들도 잘못된 정보를 안고 전파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Nørreport (뇌어폿 O – 뇌레포트 X), Nørrebro (뇌어브로 O – 뇌레브로 X), Torvehallerne (토(우)어핼러네 O – 토브할렌 X), Amelienborg (아멜리엔보어 O – 아멜리엔보그 X), Kongens Nytorv (콩엔스 뉘토우 O – 콩겐스 뉘토브 X), Carlsberg (칼스베어 O – 칼스베르 X), Tuborg (투보어 O – 투보그, 투보르 X), Helsingør (헬싱외어 O – 헬싱괴어 X), Skagen (스케인  O – 스카겐 X) 등이 있다. 네이버 블로그 이웃님의 추천으로 누락된 것과 하나 더 추가하면 Amager (아마 O – 아마게르, 아마거 X), Strøget (스트로이엘, 스트로이엣 O  – 스트뢰엘, 스트뢰엣, 스트뢰이에트 X) 등이 있다.

덴마크의 R은 한글의 첫자음 자리에 해당하는 발음이 될 때는 불어 R에 가까우나 더 목구멍에 가까운 데에서 나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받침자음 자리에 해당하는 발음이 될때는 ‘어’의 발음이 난다. 따라서 -borg, -berg는 보어, 베어 식으로 발음이 나고, -bro에서는 브로 식으로 발음이 난다.

V는 첫자음 자리에 오는 경우가 아니면 ‘우’의 발음으로 바뀐다.  Vogn은 웨건의 뜻을 가진 단어인데, 이는 보운으로 발음이 나지만, 코펜하겐의 덴마크어 원어인 København은 쾨벤하븐이 아니라 쾨벤하운으로 발음한다. Nytorv의 v도 우로 발음한다.

G도 첫자음으로 올 땐 g의 발음이 나지만 그 외의 자리에 올 경우 다른 모음의 발음을 변형시킨다거나 다른 자음을 변형시키는 역할을 하지 독립적으로 g의 발음을 내지 않는다. 따라서 Kongens는 콩겐스가 아니라 콩엔스로 발음이 난다.  Skagen도 스카겐이 아니라 스케인인 것, Helsingør가 헬싱괴어가 아니라 헬싱외어인 것, -borg, -berg에서 마지막 g가 발음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남유럽 사람들이나 동유럽 사람들, 중동 사람들이 특히 이 g발음을 못버려 수업시간에 자주 지적되곤 한다. 내 관찰이 아니라 수업에서 해당 지역 사람들의 발음 특성에서 주로 거론되는 특징인데,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는 발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그냥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알고는 대부분 쉽게 고치는 것 같으니 말이다.

-ager로 끝나는 단어는 원래는 ‘-에이어’ 식으로 말음되다가 이제는 ‘-아’ 식으로 발음된다. Amager, tager 등 모두 아마, 타로 발음하면 된다.

Øj, øg는 많은 경우 ‘-오이’로 발음된다. 따라서 Strøget이 스트로이엘, 스트로이엣 식으로 발음되는데, -et는 원래는 엣으로 발음되다가 현대에 와서는 -ed식으로 발음되면서 엘로 많이 발음된다. 한국 엘과는 전혀 다른, 처음 시도하면 왠지 구토를 유발할 거 같은 발음인데, 얼핏 들으면 영어식 엘로 발음한 것처럼 들린다. 미국이나 영국 원어민 모두 공감하는 바이다. 24시까지 여는 Døgn netto도 같은 원리로 도인 네토라고 발음하면 된다.

‘발음이 뭐 중요해, 말만 통하면 되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덴마크에서는 이말이 안통한다. 정말 안통한다. 정확한 발음을 워낙에 강조하는 나라이고 거기에서 어긋나면 못알아듣는게 일반적이다. 이로 인해 처음 덴마크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자기 딴에는 엄청 비슷하게 발음한다고 말을 해도 상대가 못알아 들어 좌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좌절을 계속 극복하고 꾸준히 발음을 연습해야 대화의 문이 트이고, 문이 트여야 연습도 자꾸해서 늘게 된다.

위에 쓴 예시들은 한국인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푸느라 현지어 발음을 우리 한글로 풀어낸 것이기에 실제 발음을 들으면 또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발음을 한국어식, 다른 나라 사람일 경우 자기네 나라 발음으로 대입해서 공부하면 평생 외국인의 액센트를 달고 살 수밖에 없기에 절대 이렇게 공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덴마크에 대해서 쓴 많은 블로그 글에 완전 off한 발음들이 구전에 구전을 거듭하여 먼 한국까지 전파되는 게 안타까워 오지랖이 넓게도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