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두려움의 연속

연봉협상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 센터 성과는 좋았고, 나도 내 담당 업무의 목표를 달성했다. 공무원은 크게 협상 여지가 많지 않다는데 얼마만큼 해야하는데 아직 감이 잘 서지 않는다. 덴마크어로 일하는 데서 오는 생산성 손실을 다른 경쟁력으로 얼마나 메우고 있는지도 불확실한 터라 더욱 그렇다.

매일 매일 작은 불안함을 갖고 지낸다.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큰 부담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전달하지 못할까봐서. 또 언어의 부족으로 인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의견의 강약 조절에 있어서 의도치 않게 실패를 할까봐서. 그래서 조직에 피해를 끼칠까봐. 그 결과로 타인의 시선과 단정적 평가를 받을까봐. 그래서 성과 협상은 더더욱 불안하다.

일년의 기간이 흘러 이제 나는 나대로의 위치가 정해졌고 업무 영역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내 위치와 업무 영역은 크든 작든 변해가고 책임도 늘 것이다. 내가 적응을 한다 싶으면 또 변해가겠지.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는 게 두렵다.

사실 정 안되면 관두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일하면 될 것 같기도 하면서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쩌면 한국어로 했어도 가졌을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런 두려움은 앞으로도 계속 원치않는 친구같이 데리고 나아가야할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왜 두려울까? 내가 가진 원래의 가치보다 낮게 보이는 게 두려운 걸까? 생각을 좀 해 볼 문제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있는 걸까? 실제보다 못나보일까 걱정하는 걸까? 좀 못나보이면 어떤가? 남이 어떻게 평가하는 게 왜 나에겐 그렇게 중요할까? 어려서 높은 기대 수준 속에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게 지금도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는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감정을 어떻게 해소하고 달래가야 하나?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이 힘들다는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이 불행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 좋고, 감사한데, 그냥 서서히 그런 두려움을 안고 가는 내가 이해가 안된다. 이해를 하려 하는 이 과정이 두려움을 맞이하는 길이 되겠지. 우선은 덴마크어 공부도 하고 업무도 열심히 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가면서… 올 한해 큰 모델 마무리 짓고 보고서고 발안하고, 입법안 초안도 내고 기타 운영업무도 하면 한 해가 흘러가 있겠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덴마크어 과외 편익 평가

덴마크어 과외를 시작한지도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간다. 이번주만 하면 한달이다. 한달에 85만원… 비싸다… 워낙 비싸기 때문에 길게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대충 여름휴가 전까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비쌈에도 옌스가 흔쾌히 과외를 하라고 한 이유는 기존 학원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반년간 들으면서 실력이 훌쩍 늘은 것을 자기도 목도했고, 지금 수준과 목적에 맞는 수업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이 시기에 내 PD3 분야별 점수가 평균 7점대에서 전분야 12점으로 올랐다.

과외는 일주일에 한시간 반. 내가 쓴 보고서를 봐가면서 첨삭하고 내가 자주 헷갈리는 문법의 예외적 부분 등을 검토하거나 문법적으로 내가 약한 부분을 점검하고 있다. 과외를 하고보니, 이정도 레벨에 다라서는 학생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에 맞도록 수업의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가장 큰 초점을 보고서 작성에 맞추고 있는데, 그 짧은 한달도 안되는 시간 사이에 보고서 작성이 훨씬 수월해졌다. 계속 나를 괴롭히던 소수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니 보고서 작성에 가속이 붙는다. 그리고 덴마크 공식문법사전에 수록된 문법과 예외 관련된 내용을 찾는 법을 배우고 나니 앞으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갈 방법의 실마리도 얻었다.

사실 상사도 내 보고서를 수정해주는데, 그게 실력향상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상사가 수정할 때는 내가 한국어로 보고서를 작성해도 상사가 보면서 고치 것처럼 조금 더 매끄럽거나 상사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맞추도록 문장을 이리저리 매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틀린 문법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 규정에 해당하는 부분들이었어서 ‘왜지?’하는 물음을 지울 수가 없기도 했다.

예전에 내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나는 정말 교육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 같다고. 다소 낭비같은 상황도 많을 정도로. 나를 너무나 잘 이해한 말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느낀 건 다소 낭비같았던 투자도 사실 큰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디 갖다 버리는 게 아니고 다 내 머리에 쌓이는 정보이니까. 비자타입의 문제로 남들 다 공짜로 배우는 덴마크어를 1년 반 동안이나 한달에 70만원씩 내가며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는데, 그 돈이야 말로 정말 훌륭한 투자였다. 그 때 덴마크어 기초를 닦지 않고 나도 공짜로 다니는 시기를 기다렸더라면 대학원 다니면서 취직 전까지의 수준으로 실력을 늘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 취직을 못했을 거다. 우리 전공이 주로 공기관에서 커리어를 찾게되는 것을 고려해보면 지금 다니는 직장 뿐 아니라 한동안 취업이 어려웠겠지.

과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너무 비싸다, 너무 큰 투자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편익을 따지지 않은 비용만 본 평가라 생각한다. 취업이라는 편익만으로도 이 투자는 빠른 시일내 회수가 가능한데다가 덴마크 생활에서 언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스트레스의 저감, 보육원이나 학교에서 아이의 발달상황에 대한 충분한 대화, 덴마크 사회 안으로 빠르게 동화될 수 있고 주변 현지인과의 관계가 여러 방면으로 깊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그 비용은 미미하다. 그렇게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도 감사하지만, 여유를 떠나 그 투자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건 옌스가 이런 부분을 깊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나와 옌스는 생각이 참 비슷하다.

누군가가 덴마크어 과외 하는 것 어떠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열심히 한다는 가정하에 나는 정말 강추하고 싶다.

2020년 소망사항

길디 길었던 크리스마스 신년 휴가가 끝나가고 있다. 내일 일요일만 지나면 직장에서의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게 된다.

2020년 한해를 맞아 내가 소망하는 일이 몇가지 있다. 목표나 계획이라기 보다는 그냥 소망하고 원하는 것이라고 해두고 싶다.

살을 조금 빼고 싶다. 외양적인 문제보다는 발레를 위해서. 약간의 무게 차이에도 발목과 골반 인근의 근육에 가해지는 하중이 꽤나 달라져서이다. 특히 다리를 들어 올리고 높이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조금 늘어난 1-2 킬로그램의 하중이 부담스럽다.

스크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책을 보는 시간을 늘이고 싶다. 올 하반기 들어서 웹툰을 보는 시간이 늘어서 스크린 사용시간이 많이 늘었다. 조금 더 선별적으로 볼 것만 보고 내려놓고 싶다.

덴마크어 실력을 한단계 올리고 싶다. 연말 마지막날 과거 학원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개인 교습을 받고 싶다고. 학원 강사일을 관두고 사이드로 운영하던 자신의 개인 교습 학원에 전업으로 뛰어든 선생님인데, 이 선생님과 함께하던 5개월 간 실력이 한층 뛰었던 기억으로 개인 교습을 잠시 받아본 적이 있다.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아 프로젝트 일을 하게 되며 시간상의 문제로 관두었는데, 그 이후 바로 취직이 되면서 개인 교습은 더이상 받지 못했었다. 이제 일을 일년 하고 보니 실력 향상에 정체기가 온 듯한 기분이다. 나도 동료들처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정체기. 더이상 내 단계에 맞는 학원이 없어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다지고 싶을 때 쉽지가 않다. 불어처럼 C2 레벨 강의나 시험이 없다. C1 레벨 수업도 매우 제한적이고. 그래서 개인교습을 다시 받아볼 예정이다. 한번 수업에 무조건 최소 한시간 반 (2 lektioner)를 해야 하고 1 lektion에 625kr.니 꽤나 비싸다. 그래도 지난번 수업 들을 때는 895kr.였는데 가격을 많이 내리셨다하니 큰 차이이다. 예전에 돈 내고 학원에서 15명 이상되는 클래스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 6주에 5500kr. 냈던 거 생각하면 개인 클래스에 저렴하다. 아무튼 주당 1회 수업을 들을 예정이다. 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에 하루만 2시부터 한시간 반 수업을 들으려는데 아마 99% 허락해주실 거라 생각한다. 주당 37시간 근무만 채우면 되고 내 일만 마무리하면 되니까. 그리고 업무 역량 향상에 내돈 들이겠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싶다.

발레를 조금 더 잘하게 되고 싶다. 이건 덴마크어와 마찬가지로 매년 소망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조금 더 새롭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작년 하반기동안 골반 중립과 코어근육 사용방법, 턴아웃 방법, 갈비뼈를 닫는다는 것의 의미, 풀업 등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임신과 출산으로 2-3년 정도 쉬기는 했지만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해오면서 이건가 저건가 끊임없이 고민해오던 이 문제가 올 하반기를 거치며 동시에 풀리기 시작했다. 운동해부학과 발레 관련 동영상과 글을 파고들며 실제 이를 적용한 연습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레티레 상태로 균형을 잡고 서있을 수 있는 요령이 몸에 익었다. 데벨로페 알라세꽁을 90도 이상으로 들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골반에서 소리가 나지 않고 아프지 않게 되었다. 한가지 문제가 아니었었기에 그간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없었던 거다. 이와 함께 턴도 한바퀴 이상을 돌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스포팅이 안좋아서 모멘텀을 금방 상실하긴 하지만. 발레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졌으니 이제 여러 동작들을 조금 더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고 새로운 동작들을 더 배우기에 기반이 다져졌다. 이젠 좀 더 예술적인 표현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싶다. 그리고 포인트슈즈 클래스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된다.

관계적인 측면에서는 하나에게 조금 더 따뜻한 엄마가, 옌스에게 더 상냥한 아내가 되고 싶다. 나의 예민함을 조금 더 잘 다스리고 싶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내려놓고 효율성 개선을 통해 중요한 일에 더 집중함으로서 중요하지 않은 일에서 발생하는 갈등요소를 줄이고 싶다. 크게 싸우는 일도 없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말투에 짜증이 섞이는 일은 종종 생기니 그게 싫다.

조금 더 계획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새해가 된다고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중간중간 계기가 있을 때 현황점검을 하고 소망사항을 들여다보는 것이 작년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내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이렇게 또 한번 소망사항을 적어내려가본다.

직장 생활 속 내 안에 느껴지는 소소한 변화

지금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새 열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다니.
요즘 들어 내 안의 소소한 변화가 느껴진다. 

1. 업무적으로 팀 안에서 내 위치가 확고해졌다. 원칙적 승인을 받은 모델을 모니터링그룹에 발표했는데 큰 호평을 받았다. 센터 안에서도 크게 칭찬을 받고, 발표를 들은 타부처 동료들에게도 내가 큰 전문성을 갖고 해당 모델을 잘 만들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는 평을 직접 또는 센터장을 통해 들었다. 2021년 입법을 위해 내년까지 모델을 만들고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모델이 구체적 형태를 띄기 시작하니 다른 업무와 연계되는 부분에 대한 협의도 늘어나고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자연히 내 위치도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2. 직장 동료들과 친해지고 내안의 내가 만들어낸 소외감이 사라졌다. 사실 업무하느라 바빠서 점심시간이나 회의시간 이외에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지 않다. 간간히 잘 맞는 동료끼리 커피를 내리러 같이 캔틴에 가곤 하는데, 나는 그냥 혼자 내려가는 편이라 기회가 더 적은 편이다. 딱히 누가 날 소외시킨 것이 아닌데, 내가 스스로를 조금 소외시켰다. 별거 아니지만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두려움(사실 실수 해도 될텐데)이 마음속 깊은 곳에 스몰토크에 대한 불편함을 심어준 것 같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인지, 업무적으로 내 영역이 확고해지면서 내 소속감이 강해진 게 기저의 이유가 된 것인지, 뭐가 계기가 된 지는 모르겠지만, 직장동료들과의 관계가 편해지고 다 가깝게 느껴진다.

3. 언어문제가 많이 흐려졌다. 보고서 작성, 내외부 프레젠테이션, 내외부 회의 및 토론, 유무선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점심시간이나 다과회에서 일어나는 다대다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되다보니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엄청 흐려졌다. 말로 인해 긴장하는 게 많이 흐려지다보니 어디 가서도 크게 위축될 일이 없다. 어쩌면 좁은 네트워크 속에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서로 잘 아는 사람이 한둘씩 끼는 상황들이라 위축이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황별 프로토콜에 대한 문화적, 직업적 이해가 늘어나고 언어 문제가 거의 흐려졌다. 특히 어제 회식에서 시끄러운 와중이 이런저런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하는 와중 나도 ‘이게 무슨 이야기지? 나는 어디에 있는거지?’ 하는 백지같은 상태에 빠지지 않고 다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뭐랄까… 언어면에서 궁극의 테스트를 통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어의 발전은 역시 선형적이지 않고 계단식으로 이뤄지는 게 맞다. 한동안 발전이 안느껴졌는데, 지난 일이주 사이에 비약적 변화가 느껴지는 거 보니 말이다.

어제 회식간 레스토랑에서 옌스와 하나와 잠깐 통화한 후 한장

거의 올해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의 총평은 여기서 일하게 되서 너무 다행이라는 점, 이건 나에게 큰 네트워크를 선물해주고 성장하게끔 해준 아주 긍정적인 일년이라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에 지원서를 써내고 서류전형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사실 채용되면 일은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성장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런 연유로, 공무원이 급여가 높은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만 보람도 있고, 훌륭한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이곳에서 나는 그냥 오래 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옌스에게 이야기를 했다. 옌스도 자기 일이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더 크고 바쁘고, 우리는 애도 있고 하니, 아무래도 업무강도가 컨설팅 같은 사기업보다 낮은 공무원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 물론 여기도 승진하면 바쁘긴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 같으니 지금 생각할 일은 아니고. 내년이 지나고 나면 더이상 내가 외국인이라 느껴지는 나만의 핸디캡 같은 건 완전히 떨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How wonderful!

너 덴마크인이 아니었어?

작년에 논문을 발표했던 컨퍼런스에 이번엔 그냥 참가자 자격으로 왔다. 나중에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정책 패키지가 통과되면 수자원관리 분야 경제분석을 내가 담당하게 될 관계로 관련분야 전문가와도 네트워킹도 해야하니까. 환경경제학 하는 사람 풀이 크지 않아서 여기 일년이 한번만 와도 아는 사람들과 근황 업데이트 하기는 좋겠더라. 지난번보다 이번에 또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애를 낳고 직장을 구하니 새로운 사람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 네트워킹 하는게 부담스럽지 않다.

올해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애 낳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뀐 계기를 이야기하며 내 생물학적 시계가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이 서른 중반 들면서 들었던 게 하나의 요소인 것 같다고 했더니 내 앞에 있던 사람이 화듦짝 놀랐다. 자기랑 같은 개월수의 애를 키우는 엄마이니 또래일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기함을 하던 모습에 나도 엄청 웃었다.

같은 사람이 오늘 자기는 호텔에서 자야 한다 했다. 오후스에서 와서 출산이후 처음 외박하는 건데 긴장된다고. 나도 외박은 한 적 없는데 돌 전에 덴마크어 학원 다시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애가 제법 울어서 집에 돌아오기 전 한시간을 내리 울었던 때가 종종 있었다 했다. 그러자 그녀가 또 한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덴마크어 학원을 왜 다녀오고 묻는거다. 외국인이니 다녔던 거라 답하자, 너 덴마크인이 아니야? 라고 묻는게 아닌가!!!! 덴마크어 배운 지 오년만에 네이티브로 와인을 받다니 살짝 감동했다. 물론 길게 이야기하면 다 알게되는 순간이 오겠지만 직장 다니면서 덴마크어가 진짜 많이 늘었다. 역시 실전이 최고의 연습은 모양이다. ㅠㅠ 감동의 기억을 기록해야지…

직장생활 반년 후 덴마크어 능력 자가평가

반년이 흘렀다. 아니 며칠 남긴 했으니 반년이 흘렀다고 하긴 그런가?

누구를 만나 건 막상 대화를 하는 데 큰 막힘은 없고 강의를 들으러 가서 상대가 빠르게 말해도 90% 이상 문제없이 이해하니 적응을 거의 다 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나서 내 소개를 하는 때마다 혹여나 내가 문법에 틀리는 말로 시작하게 될까 그로 인해 상대가 나를 어리숙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마음 속에 자리하는 건 바뀌지 않는 거 같다. 무엇보다 처음을 내가 열어야 하는 상황은 긴장된다고나 할까? 튀는 게 싫은 것 같다.

3개월에 한번 새로 기업부 및 기업부 산하 기관에 임용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소개강좌가 열리는데 지난 번엔 회의와 겹쳐서 임용된 지 6개월만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다른 기관 사람들도 만나서 인사도 하고, 장관실을 비롯해 기업부 시설을 둘러보았으며, 조직, 전략, 인사 및 총선이후 유의사항 등 다양한 사항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각자 자기 소개를 구체적으로 할 일들이 생기는데, 그럴 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곤 한다. 속으로, “틀려도 된다. 틀려도 된다. 상대는 나를 평가하려는 사람이 아니야.” 이런 말을 되뇌이다보면 긴장이 좀 풀리고 막상 대화를 시작하고 나면 큰 어려움은 없다. 이런 긴장감은 도대체 언제 없어지려는지. 없어지긴 하려는지.

그래도 달라진 건 점심시간에 대화에 느끼던 어려움이 많이 없어졌다는 거다. 조용한 회의시간에 한명씩 돌아가며 조용하게 이야기할 때랑 달리 구내식당에서 여러명이 대화를 동시에 나누는 점심시간은 참 어려웠다.

지난 주 금요일, 1년에 한번 하는 직원축제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와 파티를 하기 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직원들과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 때, 구내식당에 소리가 많이 울리고 사람들이 크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보니 점심시간에 간혹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랬더니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네명 넘는 인원이 말을 하면 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아. 역시… 아무튼 이제는 많이 알아들어서 점심 때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저녁 엄청 시끄러운 속에서도 한껏 멕시코풍으로 장식한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목소리 높여가며 술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춤도 췄다.

간혹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분이 들어서 내가 잘해야지 하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내가 뭐라고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나. 나는 하나의 개인일 뿐인데. 그런 쓸데 없는 생각으로 나를 부담지울 필요 없이 내가 부족한 점은 부족한 점대로 드러내고 배울 건 배우고 기여할 수 있는 건 기여하며 일하고 이 안에 녹아들다 보면 한국에서 온 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직원으로 나를 스스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동안 더 빨리 늘지 않는 내 덴마크어를 두고 스스로 조급해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는데, 6개월 사이에 많은 발전이 있었으니 앞으로 일년 후엔 크게 바뀌어 있지는 않으려나 하는 희망을 혼자 품어본다.

자녀을 이중언어로 키우는 어려움

애를 이중언어로 키우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아예 옌스와 한국어로도 대화를 하지만 그게 주가 아니고 우리간에 주언어가 덴마크어이다 보니 하나에게 따로 떼어서 한국어로 바꿔 말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 말에는 한 단어로 표현되는 게 덴마크어로는 두 단어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어서 그 차이를 구분해야 할 때 우리말을 쓰기가 어렵다. 그런 덴마크 단어를 한국어 문장에 섞어서 쓰다보면 내 뇌도 혼란스러워서 아예 덴마크어 문장을 말할 때가 있다. 때로는 하나에게 급히 상황을 설명하고 정확히 이해시켜야 하는 때가 있는데 – 예를 들어 위험한 상황 – 하나의 덴마크어 어휘가 한국어의 그것보다 압도적이어서 덴마크어로 설명하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있다. 이러다 저러다 보면 간혹 덴마크어로 아이와 대화하는 순간이 생긴다.

한국어를 꾸준히 가르치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주변의 인풋이 없이 순수히 나에게서 나오는 인풋만으로 덴마크어환경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게 아이의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주변에서 심어주는 맥락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도 다 힘들다.

직장생활을 하고 주말엔 밀린 집안일과 함께 부족했던 가족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른 사람과 만날 시간이 많지 않다. 또 시댁식구와 각자의 친구와 하나의 보육원 친구와 관련된 사람 등과의 일정을 잡으면 한국어 환경에 하나를 노출시킬 시간도 극히 적다. 한국사람이 많은 환경도 아니고, 또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된다는 것도 아니고. 2세가 한국말을 못하는 일이 많은 걸 이제 잘 이해하겠다.

애 한국어 교육을 노력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현실적 제약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을 갖고 죄의식 같은 것도 갖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사는 거지.

나도 여기서 살기 위해 한국어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살려고 하다보니 더욱 그런거 같다…

이놈의 덴마크어는 언제까지 나를 긴장시키려나

덴마크어와 스웨덴어, 노르웨이어는 뿌리가 같은 스칸디나비아언어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노르웨이어는 특히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쓰인 것으로만 보면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고 유럽 제품 안내문에 노르웨이어와 덴마크어는 간혹 함께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또 스웨덴어와 노르웨이어가 발음으로는 꽤나 비슷해서 서로 잘 알아듣는다. 코펜하겐 바로 옆에 붙은 스웨덴의 스코네지방은 덴마크 방송을 많이 봐서 스코네 사람들은 덴마크 말을 잘 알아듣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스코네 억양을 잘 못알아 듣는다. 그런데 스톡홀름 스웨덴어는 덴마크 사람들이 알아듣기 꽤나 쉬운데, 반대로 스톡홀름 사람들은 덴마크어를 상시로 접할 기회가 없어서 덴마크어를 잘 못알아듣는다. 재미있는 것은 서로 형제의 나라이고 말의 뿌리가 같으니 만큼 서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서로의 말을 못알아듣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이 나라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각자 나라의 말을 하고 대화를 하는데 문제는 서로 항상 그렇게 잘 알아듣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옌스와 내가 살림을 합치고 아직 결혼은 하기 전이었던 2015년 상반기, 4개월동안 옌스는 스웨덴 스코네지방에 있는 3대 도시인 말뫼에서 장기 출장형식으로 근무했다. 간혹 같은 단어지만 완전히 다른 뜻을 의미하는 몇가지 단어를 제외하고는 업무 상 쓰이는 말은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한다. 뭘 대화할지도 알고 업무의 흐름도 아니까 더욱 그랬는데 점심시간만 되면 자기한테 뭘 물어보거나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할 정도로 이해도 잘 안되고 대화에도 끼기 힘들었다고 한다. 서로 대화가 이사람 저사람 범위를 바꾸어 이뤄지고 주변도 시끄러워서 잘 안들리는데다가 주제도 예상치 못하게 다양하게 넘나드니 말이다.

그 비슷한 감정을 내가 느낀다. 업무는 대충 이야기할 게 뻔하고 이해 못하면 다시 물어보고 확인하면 되고, 주변이 시끄럽지 않아 잘 들리고, 한명 한명 순서를 지켜가며 이야기를 하니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점심 때는 도대체 무슨 주제를 이야기할 지 알 수 없다. 자기 가족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영화나 스포츠 이야기를 하다가 일 이야기도 했다가 여행도 이야기하고.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럭비공 같다. 그리고 서로 말을 끊기도 하고 큰 구내식당의 울림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고 음식을 씹으면서 우물우물 말하기도 하고 꽤나 어렵다. 중간에 몇 단어만 못알아들으면 그 다음 대화에 포인트를 못잡겠어서 이해가 어려워지기도 하니 바보처럼 간혹 씩 웃고 아무런 말 없이 듣기 평가 하면서 밥만 먹기도 한다.

오늘 모니터링 그룹 회의가 있어서 청장님을 처음 개인적으로 마주하며 보고할 일이 생겼다. 시작부터 조금 웃겼던 것은 부청장님은 지난 월요일에 내 이름을 처음에 어떻게 발음해냐 하면서 물어보시길래 해인이라고 가르쳐 드렸는데, 그 날 이미 하인으로 잘못 부르기 시작하시더라, 이제 그 이름으로 완전히 잘 못 외우셨다. 그냥 하도 하인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러시려거니 했다. Ha-ein으로 읽는 모양이다. 모음이 너무 많아서 문제… Hæin으로 개명하기엔 너무 늦었다. 논문을 Haein으로 내서… 이름을 보고 받아 적을 때는 대부분이 Haien으로 쓰고 말이다.

아무튼 보고회의에서 발표하는 건 센터장님을 제외하고는 나와 내 동료 두명이었는데, 동료가 먼저 발표하고 내가 뒤를 잇는 순서였다. 동료가 수행하는 보고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주제만 알고 있었는데 동료와 청장님이 이런저런 질의응답을 나누는데 간간히 못알아듣는 게 나오는 거다. 과연 내 업무에 대한 내용을 잘 설명하고 질의에 답변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게 심장에서 느껴졌다. 귀에 들릴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하는데, 어찌나 긴장되고 손에 땀이 나던지. 심호흡을 하면서 차분해지자며 회의실 안에서 혼자 속으로 명상을 했다.

결론적으로는 다행히잘 끝났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내용으로 배경지식이 없으니 놓치는 단어도 많고 알아듣기 힘든 거였다. 덴마크어는 앞으로도 간간히 나를 긴장하게 만들 거 같다. 항상 뭐든 간에 첫번째 것들은… 예를 들어 업체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거나 그런 거…

오늘 있던 미팅이 중요한 미팅이었어서 남편도 결과가 궁금했는지 회사에 있는데 전화를 했더라. 나도 너무 잘 끝나서 기뻤는데, 남편이 내일 이상으로 기뻐해줘서 더 행복했다. 앞으로 일이 잘 안되는 때도 있을 거고, 새로운 사람이 보스로 와서 안맞는 보스와 일하거나 저평가가 되는 시점도 있을 수 있지만, 잘한 경험이 있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크게 갖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번 경험이 소중했다.

2월 1일, 전직원 월 조회에서 1월 중 입사한 직원들과 함께 자기 소개도 해서 데뷔고 하고, 청장과의 미팅에서 내 개인적인 소개도 구체적으로 하면서 업무적으로 경영진 앞에 데뷔도 한 큰 날이다. 음력으로 2018년 마무리를 잘 한 기분이랄까? 이제 음력이고 양력이고 모두 새해가 될 다음주부터 또 새롭게 시작을 잘 해봐야겠다. 으샤으샤!

근무 일주일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매일 7시 반에 출근해서 캔틴에서 갓 구운 롤을 반으로 자르고 버터를 발라 치즈를 한장씩 얹고, 한 쪽에는 캔틴에서 만든 산딸기잼을 얹어 자리에 가져가 먹는다. 그렇게 하면 14크로나. 2400원 쯤 되는 아침 식사. 여기 외식물가가 두 배 정도 되는 걸 생각하면 저렴하다. 물론 제대로 먹는 점심식사가 27크로나 (4500원) 인 걸 생각하면 조금 비싸지만 그래도 저렴하다. 꽤 괜찮은 커피 기계가 캔틴에 24시간 무료로 오픈되어 있어 그걸 곁들이면 훌륭한 아침식사다. 10분이면 자리에 돌아와 앉아 먹으며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잡담은 거의 없다. 업무 이야기를 하며 한두마디 건네는 게 다이고 근무 시간엔 정말 강도높게 일한다. 오리엔테이션 미팅은 지금도 간간히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내 업무에 할당된 자료를 읽고 프로젝트 킥오프를 준비하는 게 가장 크다. 기존 규제방식에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것인데 다른 유틸리티 섹터에 도입된 규제를 참고하고 있다. 상하수도 섹터는 다른 에너지 유틸리티 섹터와 재정운용 방식이 달라서 다른 유틸리티 섹터에 도입된 규제를 그대로 이식할 수 없는데, 상하수도 섹터의 재정운용방식은 바꾸지 않으면서도 정치권에서 해당 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해당 규제 도입은 올바른 결정이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녹여낼지는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최종 보고서가 나와 입법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은 없다.

법 읽는 것은 시간이 생각보다 덜 걸리는데, 우리처럼 꼬아 쓰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여기 법 읽는 것보다 한국 법 이해하는 게 간혹은 더 어려운 것 같으니 놀라운 일이다.

오늘부터는 사전 찾는 시간이 진짜 많이 줄은 것 같다. 덕분에 읽는 속도도 느는데, 지난 일주일간 찾은 단어 숫자가 엄청난 덕이다. 단어장 노트의 반을 거의 다 채운 것 같으니 말이다. 다만 덴마크어를 읽고 이해하는 수동적 어휘와 내가 말을 할 때 꺼내서 쓸 수 있는 능동적 어휘 간에 차이가 많이 나니 간혹은 답답하다.

내 의견을 피력할 때 논리적으로 조리있게 설명하려다 보면 어휘의 한계로 갑갑할 때가 있다. 덴마크어로 머리를 풀가동해 쓰는 거라 생각안나는 단어를 영어로 꺼내기엔 쉽지가 않다. 처음 덴마크어를 배울 땐, 덴마크어->영어, 영어->덴마크어로 번역해 대화를 했기에 말이 안나오면 바로 그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뽑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덴마크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그 기저엔 모국어인 한국어가 무의식중에 깔려 있는 거라 덴마크어로 생각이 안나면 아예 이를 중단하고 영어 문장을 뽑아내야지, 한 두단어 갑자기 영어로 전환해서 말하는 게 힘들어졌다. 그러다보니 덴마크어로 말이 막히면 어버버 할 때가 있다.

오늘 잠깐 나의 보스인 센터장님과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이 남미에서 몇년 지내신 경험이 있으셔서 그 기분 잘 아신다며, 내 언어의 제약이 내가 멍청해서의 표현이 아님을 아주 잘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걸 다 알고 채용한 거니 걱정 말라시며 내 불안을 잠재워주려 하셨다. 본인의 경험으로 (그 전에 한번 점심 때 이야기 해주신 적이 있었다.) 아시는 거니 빈말이 아닌 거 같아 위안이 더 되었다고나 할까?

3일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일주일이 아니라 사실 일주일하고도 이틀 더 일을 했다. 연말에 쪘던 살도 일 시작하고 나니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는지 다 빠지고 살아있는 기분도 들고 좋다. 그러니까 하나와 옌스도 더 보고싶고 집에 와서 둘에게 더 잘 하고 싶고 그렇다.

얼른 나도 내 업무에 적응하고 덴마크어도 늘어서 온전히 1인의 몫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 날은 언제쯤 오려나. 한달은 너무 야심찬 거 같고, 3월 정도면 좀 그렇게 되려나?

덴마크어로 취직을 하기까지

덴마크어를 공부하기 시작한지 4년 4개월. 정말 언제 늘까 하던 덴마크어로 벌써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과 작년 3월인가 4월인가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Graduate program (싼 값에 대학원생을 고용해서 2년정도 국내외로 이동시키며 다양한 업무경험을 시킨 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일반적이다.) 에 덴마크어로 처음 지원서를 썼던 게 시작이었다. 영어로 먼저 지원서를 써서 이를 덴마크어로 바꾸어 번역한 뒤 옌스의 첨삭을 받았더랬다. 어찌나 오래 걸렸는지… 하루 꼬박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논문을 쓰던 와중에 거의 막바지 들어 한두개 정도 지원서를 내봤는데, 이렇게 저렇게 작성양식을 바꿔가며 이력서와 지원서를 써봤다. 그때만 해도 내 문장에 정말 자신이 없었고, 한문장 써내려가는게 너무나 힘들었다.

졸업을 하고 1개월 정도 프로젝트 알바로 아주 바쁘던 시기와 한국 방문시기만 빼고 1주일에 한개 정도씩 이력서를 냈는데, 두어개를 내보고나니 지원서 쓰기도 조금씩 손에 익었다. 6월까지 덴마크어 수업도 열심히 듣고 8-9월 중 한달간 바짝 들었던 수업이 그렇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걸까? 첫번째 인터뷰에서 덴마크어로 인터뷰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문제없이 하고 나서 나 스스로도 너무 놀랐는데, 덕분에 경쟁소비자청 면접에는 덴마크어에 대한 불안을 상당부분 잠재우고 갈 수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문제제기 부문을 작성하고 관련 정부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덴마크어 자료를 많이 읽은 게 도움이 은근 되었던 거 같은게 일련의 전문용어는 그런 자료를 읽는데서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쥐가 나는 것 같은 경험은 대학원 1학기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땐 수업시수와 과제만으로도 치였던 계량경제와 생태학에 덴마크어 수업까지 동시에 들으면서 쏟아지는 자료를 읽다가 머리가 쥐가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경력직으로 들어가 (낮은 레벨이긴 하지만) 신규 업무를 익히는데 그걸 덴마크어로 해야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다. 회의에 들어가서 설명을 들으면서 질문도 해가며 이해해야해서 그렇다. 엄청난 자료 더미를 받았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하려다보니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던 단어도 제대로 확인하고 넘어가야해서 시간이 배로 걸린다. 다행인건 페이지를 넘길 수록 이미 찾은 단어가 다시 반복해 나오고 불확실한 단어나 모르는 단어의 빈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읽고 이해한 데에 그친 단어면 내 능동적 활용단어에 포함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이걸 미팅에 들어가서 내용을 설명듣고 질문하는데 쓰다보면 머리에 빠르게 남는다. 나에겐 일을 하는 거이자 무료 덴마크어 수업을 받는 거다. 물론 이메일 쓰고 공문 쓰고 하는 일은 심적으로 큰 부담이긴 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맞닥뜨려야만 한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9월, 덴마크어 수업을 끝으로 수업이고 뭐고 내려놓고 본격적 덴마크어 공부도 손에서 잠시 논 후 잘 다져왔던 문법적인 디테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것 같았는데, 지난 며칠 사이에 이런 모든 게 다 빠르게 돌아오는 기분이다. 결국은 이런 도전의 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때 정체되어 있던 언어습득이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물론 이제 도전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앞으로 내 분야에서 내가 전문가가 되어 덴마크어로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야 한다는 게 두렵기만 하지만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차근히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직장 동료들도 자기들이 외국에 가서 영어가 아닌 그나라 말로 취직하려면 너무 힘들 거 같은데 어떻게 4년여 시간동안 덴마크어로 일자리를 구했느냐고 묻는다. 왕도는 없다. 그냥 무조건 부딪히고,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러다보면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