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덴마크인이 아니었어?

작년에 논문을 발표했던 컨퍼런스에 이번엔 그냥 참가자 자격으로 왔다. 나중에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정책 패키지가 통과되면 수자원관리 분야 경제분석을 내가 담당하게 될 관계로 관련분야 전문가와도 네트워킹도 해야하니까. 환경경제학 하는 사람 풀이 크지 않아서 여기 일년이 한번만 와도 아는 사람들과 근황 업데이트 하기는 좋겠더라. 지난번보다 이번에 또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애를 낳고 직장을 구하니 새로운 사람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 네트워킹 하는게 부담스럽지 않다.

올해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애 낳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뀐 계기를 이야기하며 내 생물학적 시계가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이 서른 중반 들면서 들었던 게 하나의 요소인 것 같다고 했더니 내 앞에 있던 사람이 화듦짝 놀랐다. 자기랑 같은 개월수의 애를 키우는 엄마이니 또래일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기함을 하던 모습에 나도 엄청 웃었다.

같은 사람이 오늘 자기는 호텔에서 자야 한다 했다. 오후스에서 와서 출산이후 처음 외박하는 건데 긴장된다고. 나도 외박은 한 적 없는데 돌 전에 덴마크어 학원 다시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애가 제법 울어서 집에 돌아오기 전 한시간을 내리 울었던 때가 종종 있었다 했다. 그러자 그녀가 또 한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덴마크어 학원을 왜 다녀오고 묻는거다. 외국인이니 다녔던 거라 답하자, 너 덴마크인이 아니야? 라고 묻는게 아닌가!!!! 덴마크어 배운 지 오년만에 네이티브로 와인을 받다니 살짝 감동했다. 물론 길게 이야기하면 다 알게되는 순간이 오겠지만 직장 다니면서 덴마크어가 진짜 많이 늘었다. 역시 실전이 최고의 연습은 모양이다. ㅠㅠ 감동의 기억을 기록해야지…

직장생활 반년 후 덴마크어 능력 자가평가

반년이 흘렀다. 아니 며칠 남긴 했으니 반년이 흘렀다고 하긴 그런가?

누구를 만나 건 막상 대화를 하는 데 큰 막힘은 없고 강의를 들으러 가서 상대가 빠르게 말해도 90% 이상 문제없이 이해하니 적응을 거의 다 했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나서 내 소개를 하는 때마다 혹여나 내가 문법에 틀리는 말로 시작하게 될까 그로 인해 상대가 나를 어리숙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마음 속에 자리하는 건 바뀌지 않는 거 같다. 무엇보다 처음을 내가 열어야 하는 상황은 긴장된다고나 할까? 튀는 게 싫은 것 같다.

3개월에 한번 새로 기업부 및 기업부 산하 기관에 임용되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소개강좌가 열리는데 지난 번엔 회의와 겹쳐서 임용된 지 6개월만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다른 기관 사람들도 만나서 인사도 하고, 장관실을 비롯해 기업부 시설을 둘러보았으며, 조직, 전략, 인사 및 총선이후 유의사항 등 다양한 사항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각자 자기 소개를 구체적으로 할 일들이 생기는데, 그럴 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곤 한다. 속으로, “틀려도 된다. 틀려도 된다. 상대는 나를 평가하려는 사람이 아니야.” 이런 말을 되뇌이다보면 긴장이 좀 풀리고 막상 대화를 시작하고 나면 큰 어려움은 없다. 이런 긴장감은 도대체 언제 없어지려는지. 없어지긴 하려는지.

그래도 달라진 건 점심시간에 대화에 느끼던 어려움이 많이 없어졌다는 거다. 조용한 회의시간에 한명씩 돌아가며 조용하게 이야기할 때랑 달리 구내식당에서 여러명이 대화를 동시에 나누는 점심시간은 참 어려웠다.

지난 주 금요일, 1년에 한번 하는 직원축제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저녁 식사와 파티를 하기 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직원들과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 때, 구내식당에 소리가 많이 울리고 사람들이 크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보니 점심시간에 간혹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랬더니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네명 넘는 인원이 말을 하면 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아. 역시… 아무튼 이제는 많이 알아들어서 점심 때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저녁 엄청 시끄러운 속에서도 한껏 멕시코풍으로 장식한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목소리 높여가며 술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춤도 췄다.

간혹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분이 들어서 내가 잘해야지 하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내가 뭐라고 한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나. 나는 하나의 개인일 뿐인데. 그런 쓸데 없는 생각으로 나를 부담지울 필요 없이 내가 부족한 점은 부족한 점대로 드러내고 배울 건 배우고 기여할 수 있는 건 기여하며 일하고 이 안에 녹아들다 보면 한국에서 온 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직원으로 나를 스스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동안 더 빨리 늘지 않는 내 덴마크어를 두고 스스로 조급해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는데, 6개월 사이에 많은 발전이 있었으니 앞으로 일년 후엔 크게 바뀌어 있지는 않으려나 하는 희망을 혼자 품어본다.

자녀을 이중언어로 키우는 어려움

애를 이중언어로 키우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아예 옌스와 한국어로도 대화를 하지만 그게 주가 아니고 우리간에 주언어가 덴마크어이다 보니 하나에게 따로 떼어서 한국어로 바꿔 말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 말에는 한 단어로 표현되는 게 덴마크어로는 두 단어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어서 그 차이를 구분해야 할 때 우리말을 쓰기가 어렵다. 그런 덴마크 단어를 한국어 문장에 섞어서 쓰다보면 내 뇌도 혼란스러워서 아예 덴마크어 문장을 말할 때가 있다. 때로는 하나에게 급히 상황을 설명하고 정확히 이해시켜야 하는 때가 있는데 – 예를 들어 위험한 상황 – 하나의 덴마크어 어휘가 한국어의 그것보다 압도적이어서 덴마크어로 설명하는 게 더 나은 경우가 있다. 이러다 저러다 보면 간혹 덴마크어로 아이와 대화하는 순간이 생긴다.

한국어를 꾸준히 가르치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주변의 인풋이 없이 순수히 나에게서 나오는 인풋만으로 덴마크어환경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게 아이의 동기부여 측면에서도, 주변에서 심어주는 맥락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도 다 힘들다.

직장생활을 하고 주말엔 밀린 집안일과 함께 부족했던 가족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른 사람과 만날 시간이 많지 않다. 또 시댁식구와 각자의 친구와 하나의 보육원 친구와 관련된 사람 등과의 일정을 잡으면 한국어 환경에 하나를 노출시킬 시간도 극히 적다. 한국사람이 많은 환경도 아니고, 또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된다는 것도 아니고. 2세가 한국말을 못하는 일이 많은 걸 이제 잘 이해하겠다.

애 한국어 교육을 노력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현실적 제약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을 갖고 죄의식 같은 것도 갖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사는 거지.

나도 여기서 살기 위해 한국어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살려고 하다보니 더욱 그런거 같다…

이놈의 덴마크어는 언제까지 나를 긴장시키려나

덴마크어와 스웨덴어, 노르웨이어는 뿌리가 같은 스칸디나비아언어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노르웨이어는 특히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쓰인 것으로만 보면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고 유럽 제품 안내문에 노르웨이어와 덴마크어는 간혹 함께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또 스웨덴어와 노르웨이어가 발음으로는 꽤나 비슷해서 서로 잘 알아듣는다. 코펜하겐 바로 옆에 붙은 스웨덴의 스코네지방은 덴마크 방송을 많이 봐서 스코네 사람들은 덴마크 말을 잘 알아듣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스코네 억양을 잘 못알아 듣는다. 그런데 스톡홀름 스웨덴어는 덴마크 사람들이 알아듣기 꽤나 쉬운데, 반대로 스톡홀름 사람들은 덴마크어를 상시로 접할 기회가 없어서 덴마크어를 잘 못알아듣는다. 재미있는 것은 서로 형제의 나라이고 말의 뿌리가 같으니 만큼 서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서로의 말을 못알아듣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이 나라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각자 나라의 말을 하고 대화를 하는데 문제는 서로 항상 그렇게 잘 알아듣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옌스와 내가 살림을 합치고 아직 결혼은 하기 전이었던 2015년 상반기, 4개월동안 옌스는 스웨덴 스코네지방에 있는 3대 도시인 말뫼에서 장기 출장형식으로 근무했다. 간혹 같은 단어지만 완전히 다른 뜻을 의미하는 몇가지 단어를 제외하고는 업무 상 쓰이는 말은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한다. 뭘 대화할지도 알고 업무의 흐름도 아니까 더욱 그랬는데 점심시간만 되면 자기한테 뭘 물어보거나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할 정도로 이해도 잘 안되고 대화에도 끼기 힘들었다고 한다. 서로 대화가 이사람 저사람 범위를 바꾸어 이뤄지고 주변도 시끄러워서 잘 안들리는데다가 주제도 예상치 못하게 다양하게 넘나드니 말이다.

그 비슷한 감정을 내가 느낀다. 업무는 대충 이야기할 게 뻔하고 이해 못하면 다시 물어보고 확인하면 되고, 주변이 시끄럽지 않아 잘 들리고, 한명 한명 순서를 지켜가며 이야기를 하니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점심 때는 도대체 무슨 주제를 이야기할 지 알 수 없다. 자기 가족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영화나 스포츠 이야기를 하다가 일 이야기도 했다가 여행도 이야기하고.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럭비공 같다. 그리고 서로 말을 끊기도 하고 큰 구내식당의 울림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고 음식을 씹으면서 우물우물 말하기도 하고 꽤나 어렵다. 중간에 몇 단어만 못알아들으면 그 다음 대화에 포인트를 못잡겠어서 이해가 어려워지기도 하니 바보처럼 간혹 씩 웃고 아무런 말 없이 듣기 평가 하면서 밥만 먹기도 한다.

오늘 모니터링 그룹 회의가 있어서 청장님을 처음 개인적으로 마주하며 보고할 일이 생겼다. 시작부터 조금 웃겼던 것은 부청장님은 지난 월요일에 내 이름을 처음에 어떻게 발음해냐 하면서 물어보시길래 해인이라고 가르쳐 드렸는데, 그 날 이미 하인으로 잘못 부르기 시작하시더라, 이제 그 이름으로 완전히 잘 못 외우셨다. 그냥 하도 하인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러시려거니 했다. Ha-ein으로 읽는 모양이다. 모음이 너무 많아서 문제… Hæin으로 개명하기엔 너무 늦었다. 논문을 Haein으로 내서… 이름을 보고 받아 적을 때는 대부분이 Haien으로 쓰고 말이다.

아무튼 보고회의에서 발표하는 건 센터장님을 제외하고는 나와 내 동료 두명이었는데, 동료가 먼저 발표하고 내가 뒤를 잇는 순서였다. 동료가 수행하는 보고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주제만 알고 있었는데 동료와 청장님이 이런저런 질의응답을 나누는데 간간히 못알아듣는 게 나오는 거다. 과연 내 업무에 대한 내용을 잘 설명하고 질의에 답변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게 심장에서 느껴졌다. 귀에 들릴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하는데, 어찌나 긴장되고 손에 땀이 나던지. 심호흡을 하면서 차분해지자며 회의실 안에서 혼자 속으로 명상을 했다.

결론적으로는 다행히잘 끝났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내용으로 배경지식이 없으니 놓치는 단어도 많고 알아듣기 힘든 거였다. 덴마크어는 앞으로도 간간히 나를 긴장하게 만들 거 같다. 항상 뭐든 간에 첫번째 것들은… 예를 들어 업체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거나 그런 거…

오늘 있던 미팅이 중요한 미팅이었어서 남편도 결과가 궁금했는지 회사에 있는데 전화를 했더라. 나도 너무 잘 끝나서 기뻤는데, 남편이 내일 이상으로 기뻐해줘서 더 행복했다. 앞으로 일이 잘 안되는 때도 있을 거고, 새로운 사람이 보스로 와서 안맞는 보스와 일하거나 저평가가 되는 시점도 있을 수 있지만, 잘한 경험이 있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크게 갖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번 경험이 소중했다.

2월 1일, 전직원 월 조회에서 1월 중 입사한 직원들과 함께 자기 소개도 해서 데뷔고 하고, 청장과의 미팅에서 내 개인적인 소개도 구체적으로 하면서 업무적으로 경영진 앞에 데뷔도 한 큰 날이다. 음력으로 2018년 마무리를 잘 한 기분이랄까? 이제 음력이고 양력이고 모두 새해가 될 다음주부터 또 새롭게 시작을 잘 해봐야겠다. 으샤으샤!

근무 일주일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매일 7시 반에 출근해서 캔틴에서 갓 구운 롤을 반으로 자르고 버터를 발라 치즈를 한장씩 얹고, 한 쪽에는 캔틴에서 만든 산딸기잼을 얹어 자리에 가져가 먹는다. 그렇게 하면 14크로나. 2400원 쯤 되는 아침 식사. 여기 외식물가가 두 배 정도 되는 걸 생각하면 저렴하다. 물론 제대로 먹는 점심식사가 27크로나 (4500원) 인 걸 생각하면 조금 비싸지만 그래도 저렴하다. 꽤 괜찮은 커피 기계가 캔틴에 24시간 무료로 오픈되어 있어 그걸 곁들이면 훌륭한 아침식사다. 10분이면 자리에 돌아와 앉아 먹으며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잡담은 거의 없다. 업무 이야기를 하며 한두마디 건네는 게 다이고 근무 시간엔 정말 강도높게 일한다. 오리엔테이션 미팅은 지금도 간간히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내 업무에 할당된 자료를 읽고 프로젝트 킥오프를 준비하는 게 가장 크다. 기존 규제방식에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것인데 다른 유틸리티 섹터에 도입된 규제를 참고하고 있다. 상하수도 섹터는 다른 에너지 유틸리티 섹터와 재정운용 방식이 달라서 다른 유틸리티 섹터에 도입된 규제를 그대로 이식할 수 없는데, 상하수도 섹터의 재정운용방식은 바꾸지 않으면서도 정치권에서 해당 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해당 규제 도입은 올바른 결정이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녹여낼지는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최종 보고서가 나와 입법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은 없다.

법 읽는 것은 시간이 생각보다 덜 걸리는데, 우리처럼 꼬아 쓰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여기 법 읽는 것보다 한국 법 이해하는 게 간혹은 더 어려운 것 같으니 놀라운 일이다.

오늘부터는 사전 찾는 시간이 진짜 많이 줄은 것 같다. 덕분에 읽는 속도도 느는데, 지난 일주일간 찾은 단어 숫자가 엄청난 덕이다. 단어장 노트의 반을 거의 다 채운 것 같으니 말이다. 다만 덴마크어를 읽고 이해하는 수동적 어휘와 내가 말을 할 때 꺼내서 쓸 수 있는 능동적 어휘 간에 차이가 많이 나니 간혹은 답답하다.

내 의견을 피력할 때 논리적으로 조리있게 설명하려다 보면 어휘의 한계로 갑갑할 때가 있다. 덴마크어로 머리를 풀가동해 쓰는 거라 생각안나는 단어를 영어로 꺼내기엔 쉽지가 않다. 처음 덴마크어를 배울 땐, 덴마크어->영어, 영어->덴마크어로 번역해 대화를 했기에 말이 안나오면 바로 그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를 뽑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덴마크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그 기저엔 모국어인 한국어가 무의식중에 깔려 있는 거라 덴마크어로 생각이 안나면 아예 이를 중단하고 영어 문장을 뽑아내야지, 한 두단어 갑자기 영어로 전환해서 말하는 게 힘들어졌다. 그러다보니 덴마크어로 말이 막히면 어버버 할 때가 있다.

오늘 잠깐 나의 보스인 센터장님과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본인이 남미에서 몇년 지내신 경험이 있으셔서 그 기분 잘 아신다며, 내 언어의 제약이 내가 멍청해서의 표현이 아님을 아주 잘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걸 다 알고 채용한 거니 걱정 말라시며 내 불안을 잠재워주려 하셨다. 본인의 경험으로 (그 전에 한번 점심 때 이야기 해주신 적이 있었다.) 아시는 거니 빈말이 아닌 거 같아 위안이 더 되었다고나 할까?

3일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일주일이 아니라 사실 일주일하고도 이틀 더 일을 했다. 연말에 쪘던 살도 일 시작하고 나니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는지 다 빠지고 살아있는 기분도 들고 좋다. 그러니까 하나와 옌스도 더 보고싶고 집에 와서 둘에게 더 잘 하고 싶고 그렇다.

얼른 나도 내 업무에 적응하고 덴마크어도 늘어서 온전히 1인의 몫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 날은 언제쯤 오려나. 한달은 너무 야심찬 거 같고, 3월 정도면 좀 그렇게 되려나?

덴마크어로 취직을 하기까지

덴마크어를 공부하기 시작한지 4년 4개월. 정말 언제 늘까 하던 덴마크어로 벌써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불과 작년 3월인가 4월인가 대학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Graduate program (싼 값에 대학원생을 고용해서 2년정도 국내외로 이동시키며 다양한 업무경험을 시킨 뒤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일반적이다.) 에 덴마크어로 처음 지원서를 썼던 게 시작이었다. 영어로 먼저 지원서를 써서 이를 덴마크어로 바꾸어 번역한 뒤 옌스의 첨삭을 받았더랬다. 어찌나 오래 걸렸는지… 하루 꼬박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논문을 쓰던 와중에 거의 막바지 들어 한두개 정도 지원서를 내봤는데, 이렇게 저렇게 작성양식을 바꿔가며 이력서와 지원서를 써봤다. 그때만 해도 내 문장에 정말 자신이 없었고, 한문장 써내려가는게 너무나 힘들었다.

졸업을 하고 1개월 정도 프로젝트 알바로 아주 바쁘던 시기와 한국 방문시기만 빼고 1주일에 한개 정도씩 이력서를 냈는데, 두어개를 내보고나니 지원서 쓰기도 조금씩 손에 익었다. 6월까지 덴마크어 수업도 열심히 듣고 8-9월 중 한달간 바짝 들었던 수업이 그렇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걸까? 첫번째 인터뷰에서 덴마크어로 인터뷰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문제없이 하고 나서 나 스스로도 너무 놀랐는데, 덕분에 경쟁소비자청 면접에는 덴마크어에 대한 불안을 상당부분 잠재우고 갈 수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문제제기 부문을 작성하고 관련 정부 정책을 살펴보기 위해 덴마크어 자료를 많이 읽은 게 도움이 은근 되었던 거 같은게 일련의 전문용어는 그런 자료를 읽는데서 습득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쥐가 나는 것 같은 경험은 대학원 1학기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땐 수업시수와 과제만으로도 치였던 계량경제와 생태학에 덴마크어 수업까지 동시에 들으면서 쏟아지는 자료를 읽다가 머리가 쥐가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경력직으로 들어가 (낮은 레벨이긴 하지만) 신규 업무를 익히는데 그걸 덴마크어로 해야하다보니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다. 회의에 들어가서 설명을 들으면서 질문도 해가며 이해해야해서 그렇다. 엄청난 자료 더미를 받았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하려다보니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던 단어도 제대로 확인하고 넘어가야해서 시간이 배로 걸린다. 다행인건 페이지를 넘길 수록 이미 찾은 단어가 다시 반복해 나오고 불확실한 단어나 모르는 단어의 빈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읽고 이해한 데에 그친 단어면 내 능동적 활용단어에 포함시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이걸 미팅에 들어가서 내용을 설명듣고 질문하는데 쓰다보면 머리에 빠르게 남는다. 나에겐 일을 하는 거이자 무료 덴마크어 수업을 받는 거다. 물론 이메일 쓰고 공문 쓰고 하는 일은 심적으로 큰 부담이긴 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맞닥뜨려야만 한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9월, 덴마크어 수업을 끝으로 수업이고 뭐고 내려놓고 본격적 덴마크어 공부도 손에서 잠시 논 후 잘 다져왔던 문법적인 디테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것 같았는데, 지난 며칠 사이에 이런 모든 게 다 빠르게 돌아오는 기분이다. 결국은 이런 도전의 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때 정체되어 있던 언어습득이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물론 이제 도전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앞으로 내 분야에서 내가 전문가가 되어 덴마크어로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야 한다는 게 두렵기만 하지만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차근히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직장 동료들도 자기들이 외국에 가서 영어가 아닌 그나라 말로 취직하려면 너무 힘들 거 같은데 어떻게 4년여 시간동안 덴마크어로 일자리를 구했느냐고 묻는다. 왕도는 없다. 그냥 무조건 부딪히고,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러다보면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늘 거다.

멍청한 실수

나이가 들면서 주의가 부족해진 걸까? 지난번 부모님 비행기표 예매에서 직항인 줄 알고 끊었던 표가 새로고침에서 온 실수 탓인지 뭔지 핀란드 스탑오버행으로 바뀌어 있어서 난리 한번 친 게 불과 4개월 전인데 이번엔 시험 날짜를 잘 못 알았다. 구술시험을 보기 전 채용이 결정되면서 구술시험은 정말 보기가 싫어졌었다. 시험 통과하고 나면 이걸로 내가 덴마크 대학에 갈 수준은 된다고 할려는 목적이었기에 채용 결정과 함께 급격히 의지가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시험 일자 통보후 그저께까지 열흘 가까이 되는 밤마다 시험을 볼지 말지 고민하다가 드디어 시험을 보겠다고 결심을 했더랬다.

온도는 낮고 바람도 제법 불지만 해가 떠있길래 자전거를 끌고 (시험장 위치가 가까우면서 교통이 애매하다.) 갔는데 고사장 안내가 영 안되어 있었다. 리셉션으로 가서 내 고사실을 못찾겠다 했더니, 오늘은 시험이 없다며 당황한 표정으로 답을 했다. 혹시 내일은 아니냐고 묻는 사람과 그 옆에서 혹시 어제는 아니었냐고 묻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도 당황해서 이메일을 다시 열어보니, 10.12.2018 이라고 되어있었다. 어떻게 12만 읽고 12일이라 생각했을까? 난 이제 덴마크식 날짜 표기에 익숙해있다 생각했는데, 무의식에는 여전히 미국식이 깊게 남아있었던 것일까? 시험 일자 통보가 12월에 되었으니 그래서 앞에 10이 12이려거니 생각하고 보지도 않았던 걸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돌아나왔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시험날짜도 모르고 그저께 시험을 보러 이틀 뒤 나타난 모양새가 어찌나 우스꽝스러웠을런지. 안타까웠을 수도 있고.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시험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거였다. 

조심하고 살아야지… 앞으로 일할 때 특히… 참 멍청한 실수였다. 쩝.

Studieprøven 읽기 및 쓰기 시험 결과

읽기는 10, 쓰기는 4. 아. 쓰리다. 사실 내 실력은 PD3 때에서 크게 늘지 않았는데 일한답시고 수업도 한달만 듣고 작문 연습도 안한 쓰디 쓴 결과다. 이렇게 결과를 받고 나니 구술시험은 더 보기 싫어진다. 이번엔 주제가 세 개 나왔는데, 여기서 하나 무작위로 뽑아서 시험을 봐야한다.

쓰기 주제는 어제 이메일로 통보를 받았는데, 1. Sprog i en globaliseret verden, 2. Ungdomskriminalitet i Danmark, 3. Kunst, kulturliv og kulturpolitik i Danmark, 이렇게 세 개이다. 5분 프레젠테이션하고 질의응답하는 걸로 해서 30분 시험보는데, 5분 프레젠테이션 3개 준비하는 게 왜이렇게 하기 싫은지. 사실 하고 싶으냐 싫으냐를 생각하기 전에 그냥 닥치고 해야 하는 건데…  이번 주말에 시댁 가서 저녁에 조용히 앉아 준비 좀 해야겠다. 시부모님과 브레인스토밍이라도 해봐야지.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 하고 여쭤봐서.

두 군데 1차 면접 후기

지원서를 낸 5 곳 중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집에 돌아가면 쓸 한 곳이 더 있는데, 아직 그 곳은 쓰지 않았으니. 한 군데는 덴마크 에너지협회, 다른 한 군데는 코펜하겐이코노믹스라는 이코노믹스펌(컨설팅펌이 아니라 자기네는 경제학만 컨설팅하니 이코노믹스펌이란다.). 둘다 정확히 내가 제일 가고 싶은 직무는 아니다. 각자 조직내에 내가 하고 싶은 직무의 일이 없는 건 아닌데, 오프닝이 난 포지션은 내가 100% 하고 싶은 일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떨어져있다.

에너지협회 포지션에 관련해서는 수업을 하나 듣긴 했는데, 내가 논문으로 판 분야가 아니다. 그렇지만 모델링과 프로그래밍이 많은 경제학 컨설팅 직무라는데에서는 마음에 든다. 코펜하겐이코노믹스에서는 얼마나 모델링과 프로그래밍을 쓸지 잘 모르겠다. 그들의 환경경제학 직무에서는 많이 쓸테지만 이 통상 직무에서는 말이다. 수업 하나 들은 게 그나마 연관이 있지만, 내가 좋아했던 수업은 아니었다. 기존 코트라에서 쌓아온 경력을 매우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높이살만하나 환경경제학과는 아예 트랙이 다르다는 점에서 매력이 많이 떨어진다.

에너지협회 면접은 1시간 5분동안 진행되었다. 협회 꼭대기 뷰가 아주 좋은 회의실에서 시니어 컨설턴트와 팀장과 만나서 면접을 했는데 순수히 덴마크어로 진행되었다. 전날 옌스에게 뭐 아무거나 물어보라고 해봤다. 바쁜 프로젝트 탓에 아무런 준비를 못했던 탓에 영 신경이 쓰여서 잠깐 연습이나 해볼까 하는 거였는데, “네 강점과 약점에 대해 말해봐라”라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못하겠더라. 결국 강점에 30초 쓰고 단점에 2분을 써서 어찌어찌 대답을 했더니 옌스가 별로 성공적인 세일즈 방식은 아닌거 같다고 했다. 덴마크어라서 할말이 없거나 그런건 아니었는데, 덴마크어라 더 어려운 거 같기도 했다. 그래서 혹시 아이스브레이킹만 덴마크어로 하고 면접은 영어로 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는 건 어떨 것 같은지 옌스와 상의를 했는데, 그것도 괜찮을 거 같다고 옌스도 생각하길래 그러려고 했다.

다음날 교수와 만나서 프로젝트 회의를 좀 하고 막바지 프로그래밍에 박차를 가하다가 면접을 보러 걸어갔다. 학교 도서관에서 15분 거리에 떨어진 곳이라 마음도 정리할 겸 걸어갔다. 내 강점과 약점이 뭔지 좀 생각해보면서. 너무나 오래간만에 신은 힐에 (제일 편한 낮은 힐이었는데도…) 발바닥이 영 불편했다. 준비한 게 없으니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또 생각해보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뿐인 자리이고 덴마크에서 첫 인터뷰이니 경험삼아 하는 것 뿐이지, 기대하지 말자면서 편한 마음으로 가려고 노력했다. 출산때 써본 날숨을 길게 내쉬는 복식호흡법도 써가며… 결국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정시에 나를 데리고 올라갔다.

정말 내 생애에 가장 편하게 본 면접인 거 같다. 이렇게 준비를 안한 면접도 없었는데 어쩌면 그랬기에 미리 준비해 둔 모범답안도 없었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아둥바둥 준비해야하는 면접은 나에게 안맞는 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내가 야심없는 타입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애써 그냥 팔게 아니라 자리가 나에게 맞는 자리인 지도 알아보고 서로 자연스러운 상태로 교감하고 탐색해야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안맞는 자리 가서 고생해봐야 나도 상대도 좋을 게 없지 않는가.

내 장점, 단점, 여러가지 생각에 대해서 솔직히 이야기했다. 나쁘지 않았던 거 같다. 어쩌다보니 그냥 면접을 덴마크어로 진행하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큰 무리없이 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뇌가 긴장의 끈을 붙들고 자기를 풀가동해 준 덕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에 물어볼 거 없냐는 질문에 몇가지 물어보면서 덴마크어에 대해서도 물어봤는데, 지금 정도 하는 거면 나중에 일하면서 느는 정도로 충분히 괜찮을 거 같다고 했다.

면접에 대한 느낌은 나는 나쁘진 않았는데, 상대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2차 면접에 대해서는 가을 휴가 이후에 답을 주겠다고 했다. 부협회장이 보는 면접이 되는 거라 일정 잡는 일이 자기네도 그렇게 빠르게 되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2차 면접을 이미 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하는 건지, 아직 그건 정해지지 않았지만 보게 된다면 일정이 그 뒤에 잡힌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물어보진 않았다. 나중에 어차피 알게되겠지 하면서.

인상깊었던 점은 자기네와 같이 일할 문화 면에서 부딪힐 면이 많이 없는 사람인지 보는 게 가장 중요해보였다. 물론 업무역량은 최소한의 것은 맞춘 후에지만. 예를 들면 만점에 거의 가까운 내 학점에 대해서, 완벽주의가 있는 건 아닌지를 물어보았고, 그게 내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는 거라며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답을 했더니 후속 질문으로 다수 프로젝트의 데드라인과 완벽주의가 상충할 때 어떻게 할 지 등을 물어보았다. 심리분석을 자기네 기준에 맞춰 열심히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대답을 통해 나도 나에 대해 별 생각없었던 부분에서 조금 더 잘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좋은 경험이었다.

코펜하겐이코노믹스 면접은 1차 스크리닝면접을 외부 컨설턴트를 통해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그들과 6년간 같이 일해왔다는 컨설턴트는 알고보니 옌스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스카이프를 통해 면접을 했는데, 전화를 끊기 직전에 “내 남편이 네 이름 이야기를 듣더니 흔치 않은 이름이라며, 자기 고등학교 동창인거 같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 이름을 말해보라기에 알려줬는데, 자기가 그 동창 맞다면서 세상 참 좁다는 거다. 진짜 세상 참 좁다.

여기는 영어가 공용어라 영어로 면접을 봤다. 1시간 15분에 걸친 면접이었는데, 면접을 하면 할 수록 이 일이 내 일이 아니란 생각이었다. 세일즈에 대한 강조가 엄청난 포지션이었다. 일을 10이라 하면 이중 4가 세일즈라니… 시니어 포지션이라 그렇다는데, 기존에 유럽에서 쌓아온 네트워크가 없는 나에게 바로 세일즈가 중점인 포지션은 아닌 거 같았다. 세일즈나 네트워킹과 관련된 인성 쪽을 파보는 질문이 너무 많았다. 면접 마지막 무렵에 “너와 면접을 할 수록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는 일인 거 같다.”라고 하니 자기가 너무 겁을 줬나보다면서 휴가기간 중이라니 그 기간중에 잘 생각해보고 다음 면접 때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이 일은 아닌 거 같다. 내가 이 직종에 엄청 꽂혀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손을 뗀지 3년반이나 흘렀고, 네트워크를 갖고 들어오는 시니어를 뽑는 자리에 유럽내 네트워크라고는 제로인 내가 세일즈를? 내 역량에 맞지 않는 자리다. 이건 그냥 내려놓는 게 맞다.

나에 대한 탐색 및 사고와 두 회사에서 일련의 면접을 통해 느낀 건 내가 야심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것, 코트라 직무처럼 여러방면에 걸친 일보다는 전문적인 일을 잘 해내고 싶어하고 잘한다는 것 정도인 것 같다.

옌스가 면접 볼 때 입으라고 사줬던 가을 신상 정장이 있었는데, 과연 이 정장을 입을 일 없이 겨울을 맞이할까 (물론 겨울에 입을 수 있는 정장이긴 하다.) 싶었더니 다행히 한번은 입을 일이 있었다. 좀 살이 쪄서 무리가 있으려나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흠흠…

지금 프로젝트 하고 있는 회사에 포지션이 하나 나서 거기를 지원할까 하는데, 사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진짜 싼값에 좀 부려먹는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면이 있어서 다소 망설여지는 면이 있다. 이 프로젝트만 아니면 엄청 열정적으로 지원했을 거 같은데… 옌스는 어디나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있고, 내가 정식직원이 아니라서 과하게 부려먹으려는 면이 또 있는 거 같다며 그 경험을 토대로 회사에 대한 인상을 결정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가 일해본 (10년전 이야기지만) 바에 의하면 조직 분위기는 참 좋다며. 우선 이번 프로젝트는 가을 휴가가 끝난 후 다시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 그거를 잘 하면서 지원서를 써봐야겠다. 이 프로젝트 경험이 회사 지원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벌써 10월 중순이다 실업 기간이 벌써 한달 반이네.  얼른 취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만약 취업이 될 거라면, 조금만 쉬고 취업이 되었으면 하는 게 간사한 사람의 욕심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본격 실업자 생활 첫주를 마무리하며

실업자가 되고나니 어찌 더 바쁘다. 주 2회 덴마크어 학원에 주 1회 덴마크어 과외, 그에 따른 숙제, 주 1회 덴마크어 이력서 작성, 집안일, 애보기, 이게 다일 뿐인데 마치 풀타임 학생에 덴마크어 학원 주 2회 다닐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마 과외에 애보기가 추가돼서일 듯하다.

우선 최초 2달 정도는 내가 꼭 내고 싶은 직장에만 이력서를 내기로 해서 정부부처를 중심으로 나는 이코노미스트 포지션에만 지원하려고 한다. 사실 큰 기대는 없다. 포지션 백그라운드 정보 서치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지원서 한장 쓰는데만 3시간여가 걸리는 덴마크어로 일을 한다면 모든 직무능력이 같은 덴마크인과 경쟁한다고 했을 때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다만 덴마크의 고용시장이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라고 하니 나와 같은 수준의 이력인 사람이라면 더 나은 곳에 지원을 했기를 바라며 지원을 하는 것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문한 것은 딱 하나. 지원을 계기로 삼아 관련 분야의 덴마크어 어휘를 익히고 작문 스킬을 늘리는 것이다. 내 생애에 코펜하겐 대학원 시작 직전 자발적 6개월을 제외하고는 실업기간이 없었기에 졸업 후 처음으로 맞이한 실업기간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초조해 한다고 달라질 게 없으니까 이 시기를 덴마크어 집중훈련의 시기로 삼기로 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직장이든 구해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직 새로운 일상의 리듬이 안잡혔다. 거의 자동적으로 일상을 지켜갈 수 있도록 어떻게 현재의 스케줄을 돌려갈지 최적화를 천천히 하고 습관화 해야겠다.

언젠가 성공적으로 취업이 되어서 그 성공적으로 된 지원서를 공유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