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법

동네 수퍼마켓에 간단히 장을 보러 나섰다. 토요일이지만 옌스는 일을 하러 회사에 나간터라 혼자 나섰다. 큰 수퍼마켓이 아닌터라 통로가 좁은데, 바나나를 집으려는 첫 순간부터 내 앞에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는 할머니가 계셨다. 구경하느라 길을 막고 계신 것도 아니고, 나도 급한 볼 일이 있는 사람도 아니라 굳이 실례한다고 해가며 서두르기가 그랬다. 조금 지나보니 앞에 온 할아버지와 함께 오신 모양이다. 할머니와 갈리 키가 훤칠하신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거동이 편해 보였다. 첫번째 갈림길이 아오는 곳부턴 안의 동선이 자유로워져 멀리 돌더라도 이분들 앞으로 지나가는게 편하겠다 싶어 그리했다.

원하는 것들을 고르고 계산대 앞에 다다르자, 그 근처에서 뭔가 하나를 집어들어 상의하시는 두 분이 눈에 다시 띄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거동이 다소 불편한 나이가 될 때까지 오손도손한 두 분을 보자, 얼마전에 유튜브에서 본 100 Years of Beauty: Aging이라는 동영상이 기억났다. 한달 뒤면 결혼할 20대의 한 커플을 대상으로, 지금부터 90대까지 주요 연령대에 도달했을 때 그들의 예상되는 모습으로 분장을 해서 각자, 그리고 서로에게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의외로 우리는 자신의 미래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는다. 막연한 상상을 할 뿐이지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 상상의 모습이 현실화될 때 깜짝 놀라게 된다.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충분히 예상이 되기에 그들도 그냥 주름에 놀라고 웃고 넘어갔지만, 그보다 나이가 든 모습에서는 눈물을 글썽이고만다. 현재 또는 과거 부모의 모습을 자기의 미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갖추었을때까지의 삶이 어땠을까하고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다. 보는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모습을 본 것도 아닌데, 그들의 늙어가는 모습에 나의 미래를 투영해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 내 앞에서 길을 막고 계신 할머니를 뵈었을 때만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계산대에서 두분의 대화 장면을 보고는 갑자기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지금도 여기저기 다치면 회복이 예전만큼 잘 되지 않고, 운동하다가 반복적으로 부상을 입은 곳은 그냥 약간의 만성적 통증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데, 그 나이가 되면 얼마나 몸이 불편해질까? 우리 엄마, 아빠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만성적인 증상들을 갖고 계실텐데, 지금의 건강한 나로는 그 기분을 잘 모르지만 과연 어떨까? 젊음이 지금 느끼는 것보다 크게 부러워지겠지? 이런 생각이 스쳐감과 함께, 예전에 내가 “나는 60세 정도까지 짧고 굵게 살면 좋겠어!”라고 하던 말이 얼마나 생각없이 했던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경험과 지혜를 쌓아간다는 것과 함께 갖고 있던 것들을 잃어간다는 것이 아닐까? 너무 먼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은 그와 함께 잃어갈 것을 미리 상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옌스와 함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 손주를 보게 되겠지. 그들이 잔디밭을 뛰노는 것을 보면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날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몸이 예전같지 않아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때도 있겠다. 그러다가 내가 아닌 옌스가 먼저 세상을 뜨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나보다 나이가 많고, 여자가 더 오래 살곤 하니까. 소중한 순간이 와서 그걸 그와 나누고 싶어도 더이상 나눌 수 없을 때 그 아픔이 얼마나 클까?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무던해질까?’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수퍼마켓에서 계산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와 함께 부모님을 포함한 소중한 나의 가족, 친구, 친척 등이 떠오르며 그들이 갑자기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침에 괜한 소리로 잔소리를 한 내가 괜히 야속했다.

오늘 아침, 회사 나가기 전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옌스에게, 플라스틱 장식이 달린 숟가락은 가급적이면 쓰지 말아달라고, 식기세척기에 넣기 어렵다며 부탁을 한 것이다. 금속 숟가락이 아직 남아있는데, 같은 부탁을 한번 한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에 잡히는 것을 쓴 것이 약간 신경에 거슬렸고, 말투에 그 마음을 싣지 않고자 노력을 했건만 서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가 그 미묘한 차이를 못느낄 리가 없다. 그런 말을 하자마자 괜한 소리했다 싶어 약간 미안했는데, 내 아침 식사에 들어있는 딸기를 달라는 그의 말에 얼른 분위기를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잔소리를 하며 속상하기 보다는,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하나라도 더 해줘야 하는데, 하면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짜증을 낼 일도 생길 것이고, 잔소리도 하고, 불평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 이런 경험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시 먹는다면 나도 그런 노부부와 같이 오래도록 오손도손 살 수 있을 것이고, 혹여나 그가 먼저 세상을 뜬다 해도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당장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현재를 살라는 말은 너무 현실감 없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간혹은 미래의 모습을 떠올려보고, 그 때도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나를 위해 현재를 잘 살아야겠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그와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 그리고 혹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내 주변에 나의 삶의 반경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돕고, 좋은 마음을 갖고 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곱게 나이를 먹어가고 싶다.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나는 하늘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를 잊고 살게 되었다. 탁트인 파란 하늘은 힘겹게 오른 산의 정상에서 땀을 닦고 숨을 고르면서야나 바라보고 좋아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몰랐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매사 시큰둥해진 모양이라며, 되려 예전엔 안그랬는데 하는 씁쓸함만 느끼기도 했다.

덴마크에 온 이후로 하늘에 다시 관심이 늘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변하는 덴마크의 날씨 때문이려니, 자주 오는 비 탓에 해가 뜨기만 해도 기뻐하며 하늘 쳐다볼 일이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어느 날, 덴마크를 그리워하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쉽게 보여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무릎을 탁 쳤다.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시선을 조금만 멀리 두면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자꾸 보이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국의 하늘과 차이가 눈에 띈다.

차이점을 열거해보자면, 덴마크 하늘은 낮은 구름이 많아서 유독 가깝게 느껴진다. 또 바람이 상시 많이 불어 스모그가 없는 덕에 해만 뜨면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위도가 달라 계절에 따른 일조량과 일조시간, 일출, 일몰의 직전과 후의 색깔이 다르다. 특히 일몰시간의 분홍빛깔 하늘은 오묘하기 짝이없다. (이는 어쩌면 덴마크에 산과 높은 건물이 없어 도심에서도 지평선 근처에서 이뤄지는 일출과 일몰을 쉽게 볼 수 있어서 다르게 느낀 것으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것뿐일 수도 있다.) 구름 모양은 또 어찌나 다른지. 어려서 좋아하던 뭉개구름은 지금도 참 좋지만, 깃털구름을 비롯해 이름도 잘 모르겠는 다양한 모양의 구름을 새롭게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것이 좋은 이유는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왜 다를까?” 하고.

구름에 대해 중학교때 배운 기억이 난다. 날씨에 대해 배우면서 배운 것 같다. 지금도 고기압, 저기압, 한랭전선, 온난전선, 층적운, 적란운 이런 용어들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런 용어만 기억난다. 아마 시험의 정답으로 써야 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구름이 왜 어떤 건 흰색이고 어떤건 회색인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구름이 하얀 것은 햇빛을 반사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회색 구름은 왜 그런 색깔인지. 인터넷을 찾아 구름의 색깔이 왜 다른지 알아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아마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덴마크가 참 좋은 나라라고는 해도 내 모국어를 쓰는 내 나라에서 사는 것과는 달라 힘든 순간이 있다. 어린이처럼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은 그간 당연시 했던 것에 질문을 던지게 하고 그런 것을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한다. 또한 새로이 주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한다. 어린이처럼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은, 간혹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부러워하곤 하는 어린이의 신선한 관점을 조금이나마 다시금 갖게 한다.

지난 3일간 스웨덴 말뫼에 아르바이트 하러 기차로 통근을 했는데, 일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국경을 넘으며 방송이 덴마크어로 바뀌니 어찌나 마음에 편안함이 찾아오던지. 변화는 사람을 일깨우고, 기민하게 만든다. 3일이라는 스웨덴에서의 짧은 시간이 이곳에 적응해가는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해주었다. 2년의 기간동안 이곳에 많이도 적응한 모양이다. 적응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각도 계속 유지해가고 싶다면 내 욕심일까. 예전엔 즐기고 경험하려고 여행을 한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삶을 더 잘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일탈이기 떄문에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다니고 많이 보자. 그리고 다른 눈을 키워가자.

청혼 그리고 결혼계획

올 해 연초, 올 해 안에 결혼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대충 했지만, 프로포즈라기보다는 그냥 상의와 결론에 가까웠다. 비자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인생 계획을 세워야 하는 탓이었다. 따라서 듣기에 형식상의 로맨틱함은 별로 없는 첫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국에서는 커플들이 사귀고 나서 오래 지나지 않아도 적령기면 대충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때로는 소개팅이나 선 단계부터 인생 계획상의 결혼 시기를 대충 밝히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서양에선 그런 법은 없다.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얼마나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판단하게 되고, 소소한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여자들이 영화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프로포즈 받으면 그리 우는 모양이다.

덴마크는 그런 절차들이 갖고 있는 로맨틱함을 이용하는 면이 적은 나라다. 감정의 과잉이 별로 없다고 해야 하려나. 사귀다보면 진지해지고, 진지해지면 같이 살다가, 결혼을 하고 애를 갖거나, 애를 갖고 결혼을 한다. 살아보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타인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확신도 없이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둘이 만나서 관계를 이루는 가장 큰 목표는 평생 함께 사는 것이다. 결혼을 결정할 마음가짐은 물론 매우 큰 일이지만, 결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게 종착지가 아니라 그 이후에 계속 사는 더 중대한 일이 남아있으니. 둘이 같이 산다는 것은 결혼을 중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만 둘이 살아보고 예상하지 못했던 요소로 너무 불행하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둘을 위해 바람직하니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같이 사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논리로는 매우 설득이 되었다. 마음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다른 나라에서 온 두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다름을 어떻게 조율하냐는 것인데, 내가 온 문화에서는 결혼전에 같이 산다는 것은, 존재함에도 숨기곤 하는 일이며, 또는 그리해서는 안되는 일에 가까운 것이라 이 점을 조율해야 했다. 이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막상 생각을 해보니 안될 일은 없었다. 나는 동거라는 관점에 크게 반대해 본 적도 없었고, 실제로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척 하는 많은 일들에 대해 위선적이라고 생각해왔으니, 그냥 남들이 그렇게 느껴한다는 이유로 내가 해서는 안될 일이 아니었다. 난 괜찮고, 내 연인이 꼭 원하는 일인데 못할 일도 아니고.

처음엔 약간 걱정도 했다. 한국에서 하는 방식과 다른데, 이렇게 해도 되나하는 생각. 여태껏 살면서 남들이 가는 길에 얽메인 적 없는 내가 왜 갑자기 그런 시선에 신경을 쓰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하는 길에 대해 나의 확신만 있으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그간 한번도 가진 적 없는 내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 유일한 사람이었고, 처음으로 내 인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갖게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4월초, 둘이 처음으로 한국에 여행을 갔다. 저녁에 호텔방에 앉아 오빠네가 선물한 와인을 마시며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을 만나고 온 터라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우리 둘 모두 조촐한 결혼식을 하기 원하는 것을 확인했다. 둘다 형식에 매우 얽메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프로포즈라는 것 없이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너무한가 싶었는가보다. 호텔방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침대에 다리를 걸친 채로 약간은 쑥스럽게, “올해 안에 결혼해주겠어?”라고 물어보았다.

영화에서 남자가 무릎을 꿇고 “나와 결혼해주겠어?” 라며 갑작스레 청혼하면 여자가 울며 웃으며(엉덩이에 털났으려나?) “물론이고말고!”를 외치는 장면을 보면, 나도 저런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랑 맞지 않는 장면이다.

그의 머쓱하지만, 진심이 담긴 청혼에, “물론이지.”라고 답을 하면서 둘이 손을 꼭 잡았다. 우리 둘의 로맨틱함은 그런 거다.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하는 것, 평소에 그런 느낌을 항상 또는 순간순간 느끼게 해주는 것. 몰론 그러고 나서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주말에는 내가 한두번 정도 요리를 한다. 어제는 아시안 퓨전(내 마음대로 한국풍 음식)을 해먹으면 어떻냐길래, 좋다고 해서 요리를 시작했다. 그는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아무것도 안하는 것에 여전히 매우 어색해한다. 뭘 돕겠다고 해도, 난 그냥 내가 하는게 편해서 내가 한다고 한다. 이제 그런 날이면 의자를 갖고 와서 좁은 부엌에 앉아 내 옆에서 뉴스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결혼 관련 준비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우리 결혼이야기일 것이라고 추정은 했지만, 혹시 몰라서, “다음달에 갈 결혼식 드레스코드에 맞춘 준비?”라고 물어보니, “아니 우리 결혼식.”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속으론 ‘꺄악~!’하고 아직 조금은 남은 나의 소녀감성이 소리를 치지만, 겉으론 침착하게, “응, 이젠 천천히 준비는 해야겠지. 당신 연수 끝나면 준비하자며?” 하고 답을 했다. 올해 계속 바쁠 것 같아서 그냥 지금 조금씩 준비를 시작해야겠다니, 그러기로 했다.

우린 시청 결혼식 이후 직계가족과 극히 소수의 친구만 초대하거나, 아니면 그것보다는 아주 조금 더 큰 결혼을 할 것 같다. 대충은 우울한 날씨의 11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한국 생각하면 정말 코딱지만한 결혼식이 될 듯하다. 이번 여름, 10박 11일의 여행은 우리의 미리하는 허니문이 되겠으니, 이 여행이 더욱 기대된다.

보리가 이 결혼식에 함께 못할 것 같아서 그게 가장 안타깝다. 잠깐이라도 데리고 오시라고 할까? 고민이 된다.

Having a wonderful partner in life. Declaration of my love to my loving partner.

“There is a right one for you out there, somewhere.” say many people and they also say, “Just be patient. Live you life. Then everything will come along.” I was the one skeptical about this. How do they know that there’s a right one for me? Just like the people who have a great partner in life, there still are a fair share of population that couldn’t find the one till the end. How can I be sure if I am one of those finding the right one?

I still don’t believe that everybody can find the right one in life. As a person, studying economics, I should say, it’s due to market failures, due to inequality in information of possible relationship matches. And I think that it’s impossible to fix this problem. One of main problem, makes it impossible, is that one doesn’t know perfectly about one’s own preferences or even oneself. We, human beings, are so complex and from every day learning we change all the time. So even if we can understand ourselves perfectly at any given moment, we will change soon and we cannot keep on track of that all the time. Therefore we will never know what is best for us in terms of relationships until it happens to us. When it happens, I think it is a miracle and such a nourishing experience.

I finally found the one in my life, letting me say with confidence that I found the one, my Mr. Right.  I have met many people, most of them were not in any serious relationships though. Still I struggled so much that I became skeptical about relationships and having a good family in modern days, where people are being so calculating and materialistic. I wasn’t the most beautiful or feminine or rich girl and many failures in budding relationships were good enough to let me down in the dating markets. But I kept on trying to put myself out there to meet someone, because I still had a little hope that it’s only due to market failures why I couldn’t find the right one.

Now that I am soon turning to 35 in a month, it has been 15 years of searching for someone. There were years that I stopped actively looking, but there were also many countless moments that I felt very lonely for not having a boyfriend.

I didn’t know what I was looking for from a partner, and even worse was that I completely misunderstood what I liked. I thought I was looking for the so called manly quality that one can easily detect even from a glance. But I have been looking for someone who understands me, even the complicated side of me, and who loves me the way I am, which I don’t love sometimes myself. The one should understand the tomboy side of me and elegant side of me, not being confused by extreme spectrum of my characteristics. I have been looking for someone who lets me learn from him not by pushing but by showing his way of life. It is someone that I can intellectually challenge myself, by having many discussions about different topics in-depth. The one has to have those qualities that I could admire but not to brag about those. And the person should be my mental safety net, that I could be sure that the person would love me still, even if I fail for everything, so that I could start over again on a fresh ground. And the one has to be fun to be around and that I can giggle without being conscious about how weirdly I giggle. The one will be someone can laugh for a small thing, and can share small moments to smile upon. The one remembers small remarks and drop a note reminding those, which incredibly makes me happy. And many more. How demanding and picky I am!

I didn’t know that I could find someone like that, because I haven’t experienced that before. It’s a miracle. He makes me happy and makes complicated things so simple.

I have never loved anyone before, because even when I said I loved someone, I was never sure what love was about. But now I know. I am so happy and I love him so much. This is a pure declaration of love to Jens.

How lucky I am to have you in my life. You are the source of the power to let me keep this journey to a new life, away from my home town, my family and friends. Thank you for being a wonderful partner in my life. I love you, Jens.

현지에서 배우는 언어의 학습곡선

언어는 그 말을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 살면서 배우는 게 빠르다는게 맞다는 걸 거의 매일 실감하고 있다. 아직 그린카드비자로 변경이 완료되지 않아 수업료 내면서 비싼 수업을 듣고 있긴 하지만, 학원을 최근 바꾸고 모듈도 3으로 올라가면서 빠르게 늘고 있음을 느낀다. (사족. 요즘 그린카드 발급에 6개월 이상이 걸린단다.)

언어 배우는 것을 취미로 여겨온 터라 언어의 학습곡선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간 몸소 느껴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해당 국가에 직접 살면서 배워본 것은 처음인지라, 이를 보다 명확하고 빠르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초반에는 주변 모든 것에 흥미를 느껴 금방 이것 저것 조금씩 말하는 것이 가능해, 그 전에 하나도 말을 못하던 것에 비하면 빠르게 느는 것 같아서 흥분된다. 길에 보이는 싸인 하나하나도 새롭게 보이고, 그것을 이해하는 나를 보면서 흥분하게 된다. 그 신기함에도 익숙해지고 나서 그런 느낌이 사그라들고 나면 내 실력의 현주소를 다시금 무겁게 확인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모국어로 표현해내는 풍성한 내용인데, 나는 아주 어린 아이와 같은 수준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별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크게 느끼고, 누군가에게 이 언어로 대화를 시도를 하기에 스스로도 답답하다보니 할 수 있는 언어로 전환하고 싶어진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크게 안느는 것 같은 시기가 온다.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현지생활에서 단순하게 쓰는 말들이 익숙해진다.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하거나 등 자주 반복되는 말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도 말 할 수 있게 된다. 내 말을 알아듣기만 해도, 그리고 그 대답을 대충 짐작하고 답변하는 것으로 감동받던 시기는 어느새 과거가 된다. 막상 이런 단순한 대화는 늘었는데, 조금만 주제가 복잡해져도 대화가 삐그덕거릴 때 다시금 이 말은 언제 느는 것인가 하면서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내 말의 속도와 발음이 개선되면서 상대도 평상시처럼 대화를 하면, 다시금 대화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리고 방송과 전화 등 비대면 언어는 알아듣기 매우 힘들다. 분절되지 않은 소리의 덩어리가 뭉게져 스쳐지나간다. 웅얼거리는 것만 같은 소리. 또는 뭔가 들리는 것 같지만 그 소리를 머리에서 처리하기에 실제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와 내 머리에서 언어로 재구성하는 속도사이에 격차가 너무 크다. 새로운 소리가 계속 흘러들어오는 탓에 새로운 말을 듣지 못하거나, 내용의 해독을 할 수가 없다. 매일 듣는 지하철 방송도 무슨 이야기인지 남에게 물어봐서 다 알고는 있지만, 그 소리가 나에겐 완벽하게 들리지 않는다. 매일 듣는 방송도 아직도 안들리다니, 하면서 도대체 언제 느는지 싶고 지친다.

어느날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낀다. 뭉게져 들리던 소리뭉치가 깨끗한 음절로 분화되어 들리고, 라디오 방송도 들리기 시작한다. 집에 오던 광고 전화에 덴마크어 못한다고 초장부터 이야기하던 내가, 덴마크어로 대화를 끝마친다. 주로 왜 걸었는지 설명 듣고, 옌스가 집에 없고, 언제 올 것인지, 또는 내가 답해줘도 되는 전화이면 그 답을 해주는 정도에 그치지만, 장족의 발전이다.

귀가 뚤린다는 것은 어휘의 증가와 현지인이 말하는 말투에 익숙해지는 것, 내가 기존에 하던 말을 번역하지 않고 그나라 말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 다 결합되어 생기는 일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귀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방송에 나오는 말들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더라도 소리가 정확히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덴마크어 배운지 9개월 거의 가 되어가고 있으니, 대충 만 8개월차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나니 ARS 음성 안내가 더이상 스트레스가 되지 않고, 집에 간혹 전화가 오면 대화를 할 수 있다. 1년 정도면 귀가 뚤린다고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겠다.

영어 공부의 경험을 토대로, 모르는 단어를 맥락으로 파악하고 넘기는 노하우와, 꼭 이해해야 하는 동사를 파악해서 사전을 찾는 노하우가 쌓인 덕에 신문도 이제는 대충 내가 아는 주제의 기사라면 집중해서 읽어낼 수 있다.

옌스와 덴마크어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고, 한시간 대화는 큰 스트레스도 없다. 매일 무슨 일을 했는지, 수업에 무슨 공부를 했는지 설명을 하다보니 반복 학습도 되서 좋다. 덴마크어는 발음만이 아니라 영어와 조금 다른 문장상의 강세 표현이 중요한데, 옌스와 최근 들어 시작한 읽기 연습이 강세표현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게 말을 알아듣는데도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대학원 졸업하기까지 약 3년의 시간 동안 덴마크어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만 늘어준다면, 앞으로 이곳에서의 삶이 참 좋을 것 같다. 주변에서 남친이나 남편이 자기의 덴마크어를 인내해주지 않아서 언어가 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많은데, 연습만이 숙달의 지름길이라면서 채찍질을 해주는 옌스에게 감사의 말을 (본인은 이 글 이해 못하지만…) 하고 싶다. 그리고 빨리 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나에게, 그러다가 또 잘 안되는 날이 오기도 하고, 그게 또 당연하다고 이야기해주는 게 참 고맙다.

물론 덴마크어가 영어와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속도의 발전이 가능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곳에서 살지 않았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학습곡선이다. 이곳에서, 한국에서 산 이상의 시간을 살게 되면 언젠가 영어보다 덴마크어가 편해지는 날도 있겠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제논의 역설이 성립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것은 농담.)

덴마크에서 친구 사귀기

덴마크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 중에 하나다. 특히 덴마크인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특히나 어렵다. 이는 덴마크로 이주해 온 외국인이 흔히 하는 불평중 하나다. 외국인을 위한 덴마크인 이해하기 강좌 등에 가보면, 덴마크인을 코코넛에 비유하곤 한다. 처음에 껍질을 깨고 그 내면으로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스페인 등 남유럽쪽 사람들은 타인을 쉽게 친구로 맞이하곤 하는데, 사실 그 내면 깊숙한 곳에는 단단한 씨앗이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이유로 복숭아 같다고하며 이 둘을 비교해 설명하는데, 다들 참 적절한 비유라고 이야기한다. (어학원에서 만난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에서 온 남유럽 사람들 또한 매우 공감하던 이야기다.) 이는 꼭 덴마크에 온 외국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다가 새로이 코펜하겐으로 이사온 덴마크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덴마크인과 가족이 되지 않고는 덴마크인의 주류 사회로 편입되기까지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친구를 사귀는 길이라고. 그러나 사실 남자친구/남편의 가족은 가족이지만 또 친구와는 다르다. 가족이 있다고 해서 친구가 필요없는 건 아닌 것처럼. 또한 그의 친구는 그의 친구이지, 내 친구는 아니다. 물론 가깝게 지내고 소식 들으면 반갑고 언젠가는 정말 가까운 사람이 되겠지만, 그건 남자친구 또는 남편을 매개로 한 관계이기 때문에 따로 만나고 할 관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덴마크인은 다른 나라에서는 친구로 분류할 사람들을 아는 사람으로 분류할만큼 친구에 대한 정의가 참 까다롭다. 덴마크식 정의로 하자면, 내 친구중의 대부분을 아는 사람으로 쳐내야 할 정도다.

물론 대학생활을 같이 하는 경우는 다소 예외로 봐야 한다. 모든 나라를 가본 것은 아니지만, 감히 섣불리 예단하자면, 많은 나라에서 학생은 쉽게 친구가 되니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고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인 것 같다. 직장은 내 입맛과 상관없이 조직이 원하는 대로 물리적으로 필요한 인간관계가 구성이 되고, 좋든 싫든 만나야 하는 사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친구가 생기긴 하지만, 한국처럼 회식문화가 없는 덴마크에선 그렇게 되기 어렵다. 결혼식 때 직장 동료를 초대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그 때문이다. 가족 중심적인 덴마크 사회에선 근무시간이 딱 끝나면 여러가지 가정 내 의무와 책임을 위해 빨리 퇴근해 집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일 끝나고 한잔?’ 이런 것이 힘들다. 뭘 하려면 최소 1~2주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친구를 사귀려는 관계 초반에 어찌 그렇게 플랜 잡고 하게 되나? 잘 안된다.

결국 외국인들은 주로 외국인을 많이 사귀게 된다. 외국인과 사귀는 게 나쁜 건 절대 아닌데, 정착을 하려는 사람이 아닌 경우, 다 친해지고 나면 떠나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에 친구의 씨앗을 뿌리는 셈인데, 내 친구들도 이미 여기저기 전세계에 많이 흩어져 있는 탓에 이미 익숙은 하지만, 내 일상을 시차 없이, 얼굴 보고 만나서 부담 없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 하나쯤은 자기 사는 도시에 갖고 싶은 것이 인간 마음일 것이다. 미리 몇일전에 약속 잡고 봐야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순간 생각나서 문자 한 통 보내거나, 전화 한 통 해서 얼굴 볼 수 있는 그런 사람.

덴마크어 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된 한 명의 친구, Amanda. 그녀는 나의 이러한 갈증을 채워준 친구이다. 미국인 어머니와 덴마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두가지 문화를 갖고 있으며,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덴마크에서 살 생각으로 완전히 건너왔다. 지금은 수업을 같이 듣지는 않지만, 그 밖에 따로 만나서 저녁도 먹고,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며, 나중에 같이 아프리카 여행도 같이 하자고 이야기한 친구이다. 나와는 나이 차이가 거의 10살 가까이 나지만, 나이라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고, 참 성숙한 친구다. 공통점도 많고, 할 이야기도 많고,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친구이다. 과장이 없고, 담백한, 그리고 인생의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 자신에 대한 사랑도 충분하고, 타인에 대해 사랑할 수 있고, 혼자 설 수 있는 친구이다. 어렸을 적 사귀는 친구는 처음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아도 어린 날 다른 서로에게 고무찰흙처럼 서로 맞추어가면서 친해지고, 장단점 서로 끌어안고 가까워지기 좋지만, 나이가 어느정도 들어서 사귀는 친구는 초반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으면 가까워지기 어려운데, 그녀는 친구로서의 케미스트리도 맞고, 서로에게 수업을 같이 들은 다섯 달이라는 시간동안 서서히 맞춰가면서 성향도 잘 파악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아있고, 항상 서로에 대해 궁금하고, 걱정해주고, 오랫만에 만나도 바로 엊그제 만난 것처럼 멀어지지 않는 절친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는 다르지만, 그들 중 하나가 될 것 같은 그녀. 참 좋다. 지난 2년간 고생해서 친구 두 명을 얻고, 한명은 스위스로 떠나보냈지만, 그래도 한명은 앞으로 이 곳에 계속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하다.

터키 여행을 다녀온 그녀가 샐러드에 넣어 먹을 수 있는 향신료를 사왔다. 터키의 달달한 스위트도 먹어가면서 커피 한 잔 하는 일이 참 편안하고 즐거웠다. 집중력 저하에 대한 극복 방법 등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헤어지고 나니, 그간 뭔지 약간 부족한 듯 했던 마음 한켠이 탁 채워졌다. 내가 한국으로 1주 다녀오고, 그녀가 터키로 1주 다녀올 2주 동안 옌스와 가족 외엔 별로 이야기를 길게 나눌 일이 없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옌스가 아무리 좋고 그래도, 인간은 개인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덴마크에서 친구 사귀기는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만, 좋은 친구 한 명 얻은 것이 어찌나 기쁜지… 오늘 하루 마음이 푸근하다.

덴마크에서 연애하기

나와 내 남자친구(뭔가 아이들이 쓰는 말 같긴 하지만, 약혼자라는 말은 입에 영원히 붙지 않을 거 같다. 애인이라는 말도… 사실 연인은 친구의 기능도 매우 충실히 해야 하며, 나는 이성애자인 관계로 성별은 남자여야 하니, 남자친구란 말이 틀린 것도 없고.)는 남들이 보면 심심할 데이트를 한다. 동네 한바퀴나 코펜하겐 시내를 산책하거나, 근처 공원에 가서 각자 딴 일을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커피숍(맨날 가는데만 가는 사람들…)에 가서 신문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쉴 때 대화를 한다. 아마 같이 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살림을 합치기 전에도 비슷한 생활 패턴이었는데. 주로 집에서 하는 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영화를 보고, 와인을 마시고 뭘 해도 주로 집에서.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할 때, 문화적 차이와 개인적 차이를 구분해 내기란 참 어렵다. 하물며 한국과 같이 작은 나라안에서도 크게 다른 지역적 특성을 찾아볼 수 있고, 그 안에서도 무수히 다른 삶의 양태를 찾을 수 있는데, 뭔가를 덴마크인은 이렇게 한다, 인도인은 이렇게 한다(이 두 나라에서만 살아본 탓에…)고 쉽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니…

그렇지만 주로 집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것 등은 덴마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데이트 방식이다. 그러니 덴마크적 특성이라고 봐도 좋겠다. 많은 연애를 해봤지만(주로 짧은 데이트에 그치고 말았지만…) 대부분이 한국에서 있었던 일인지라, 두나라의 다른 데이트방식에 대해 비교를 하게 되는데, 뭐가 좋고 나쁘고를 따지긴 힘들고, 나에게 어떤게 잘 맞는지를 비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데이트하면, 뭔가 코스가 필요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닌데, 남자친구는 항상 좋은 코스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 코스를 밟아가면서 즐기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어떤 면에선 참 까다로운 나이지만, 우선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에게는 크게 까다롭게 굴지 않는 나였기에 그 준비된 코스가 마음에 안들어서 싸우거나 그런 건 없었다. 착해서는 절대 아니고, 뭐가 되었든 마음에 안들어하면 손해보는 게 나라서 그런 실용주의적 마음에서 그런 것이었다.

형식적인 것을 배격하는 덴마크인의 실용주의는 사회 전반에서 발견된다. 이제 2년 가까이 살고 나니 그런 모습을 여기저기서 많이 느끼게 된다. 밖에 나가서 먹으면 돈이 많이 든다. 물론 어떤 데이트코스를 찾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조금 우아하게 먹고 마시자고 밖으로 나가면 억수로 돈이 깨진다. 예를 들어 일주년 기념으로 옌스가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여기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제일 비싼 미슐랭 스타급 고급 레스토랑 바로 아래급 레스토랑을 갔다. 5코스 식사 2인에 가장 낮은 가격대의 와인 한병, 식전 샴페인 가장 저렴한 것으로 한잔씩 해서 먹고 나니 60만원이 나왔다. 입이 떡 벌어질 가격이다. 이런 밖에서의 식사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한국에서 여러번에 나눠할 외식을 정말 일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몇번 안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주변에 커플들을 보아도, 외식은 잘 안한다. 사실 덴마크에서 외식 엄청하고 살면, 아주 부자가 아닌 한 파산하기 마련이다. 막대한 세금으로, 한달의 가처분 소득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비해 물가가 2~3배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소엔 다들 영화도 집에서 주로 보고, 와인도 집에서 마시고, 식사도 집에서 하면서 데이트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기 참 힘든 것이, 결혼 전에는 주로 혼자 살지도 않고, 외식업이 발달해 있고 경쟁이 치열해서, 밖에서 사먹는게 집에서 비슷하게 해먹는 것보다 딱히 비쌀게 없고, 자주 요리 안해먹는 사람에겐 오히려 집에서 해먹는 게, 기본재료 갖추느라 더 비싸지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누군가를 데려오는 건 결혼할 사람이나 데려온다는 집이 많아서(요즘은 좀 변하고 있으려나…?) 밖에서 봐야 하고…

그리고 한국보다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다. 한국에 비춰진 것처럼 직업에 귀천도 없고, 남 시선 하나도 신경 안쓰고 그런 건 전혀 아니다. 비싼 물건들이 아니라서 그렇지, 여기도 3초백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주 보이는 백팩(스웨덴산 Fjallraven, 한국에서도 엄청 메는 듯?)이 있고, 여자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DAY Birger et Mikkelsen 쇼퍼백이 있으며, ‘덴마크인처럼 보이는 법’이라고 덴마크인의 유행 사랑을 비꼰 글들도 있다. 그렇지만, 자기가 뭔가를 함에 있어서 어거지로 남들눈에 좋아보이는 일이라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굳이 하지는 않는다. 경험의 측면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중시한다.

여자에게는 남자친구가 데이트코스를 짜줘야만 하고, 좋은 곳에서 밥을 먹어야 하며, 남들 보기 화려한 것을 해야하고, 남자가 가방을 들어줘야 하고, 뻑적지근한 선물을 받아야 하고, 데이트 비용은 주로 남자가 내줘야 한다면, 덴마크의 데이트라이프는 참 고달퍼진다. 남자가 대충 맛있는 사 먹이고, 처음에만 바짝 잘해주고 그다음엔 대충 편한대로 하고, 집안일 잘 못하고, 돈으로 떼우려고 하면 또 참 고달퍼진다. 덴마크에서 연애란 인간대 인간이 만나서 하는 것이다.

옌스의 1주년 기념 선물 Matador DVD와 포장에 써준 사랑스런 메세지

옌스의 1주년 기념 선물 Matador DVD와 포장에 써준 사랑스런 메세지

덴마크는 뭔가 엄청 가족파괴현상이 일어나고 결혼도 기피하는 그런 사회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곪는 관계를 속 썩여가면서 두지 않으려고 하고, 제도적인 것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에 따라 나라 밖에서 보기에 그리 보여지는 것 뿐이다. 가족과 보는 횟수는 더 적어도, 더 자주 연락하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고, 가족간에 챙기는 마음이 한국과 다름 없거나 더하기도 하다. 부양이라는 문제가 가슴을 짖누르는 경우가 한국보다 적기 때문일 수도 있다. 최소한의 복지가 삶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을 주니… 결혼 없이 동거로만 지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게 한국에서 갖는 의무에서부터 자유로우려고 하는게 아니라, 굳이 나라에서 내 가족관계를 인증해줄 필요 없다면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밀당같은거 못하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연애하는 거 좋아하는 나에게 덴마크는 좋은 연애의 장이다. 결혼하면 연애가 끝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그리고 옌스와 함께라면 앞으로 남은 반평생, 혹은 생명연장의 시대에 사니 남은 2/3의 인생동안 계속 알콩달콩 유치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불편한 삶에 익숙해질 수 있다면, 나같은 사람에게 덴마크는 참 좋은 땅이다. (아… 비영어권이라는 거 하나 빼고… 하하하.)

실업자의 게으른 하루

회사에 다니지 않으니 하루를 꾸리는 것이 전적으로 나의 몫이 된다.

아침에 눈을 비비적 거리면서 옌스에게 출근 인사를 하는 것이 시작이다. 의욕에 찬 날이면 미리 일어나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정갈히 입는 정도의 예의를 보여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면 잠옷 바람으로 산발머리를 하고 카페인 공급차 커피한잔 내리는 게 다이다.

항상 짧은 번아웃 주기를 갖고 있는 나에게는 이러한 패턴이 자주 반복된다. 그래도 내리막길로 들어섰을 떄 나를 과하게 힐난하며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거나, 최소한 그렇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는 면에서 적은 죄책감과 함께 오르막길로 다시 돌아서곤 한다.

요 며칠간은 내리막길이다. 내 안의 나을 너무 비난하지 않고 잘 달래서 오르막길로 올라가야 한다.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주변 정리를 하기 싫어지고, 미루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사람과의 연락에서도 좋은 답을 하기 위해 3분이면 답을 할 일도 3일이나 심하면 일주일을 미루게 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고 싶어하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놓아버리는 것이 완벽주의자의 성향인데, 딱 내 이야기다.

오늘은 특히나 밤에 잠을 잘 못잔 탓에 커피 한잔에도 잠이 영 깨지 않아, 침대로 돌아가 누워 잠을 잤다. 8시에 들어가서 10시 반에 다시 일어났으니… 그나마 이시간에 일어난 것은 배꼽시계가 울렸기 때문이다.

요즘 영 입맛이 없다. 냉장고를 열었다가 한숨쉬면서 닫는 게 일상이다. 뭐든 해먹으려면 해먹을 수 있지만, 내가 해먹고 싶은 것은 여기서 재료값이 비싸고, 특정 장소에 가서 재료를 사야 하기 때문에 선뜻 떠올랐을 때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그래도 뭔가는 먹어야 하니… 하면서 떠오른 것은 라면. 수출용 신라면은 별로 맵지가 않다. 달걀을 넣었더니 진라면 같이 되어버렸길래, 이번엔 달걀도 없겠다, 그냥 끓였다. 순간 떠오른 것이 캡사이신 소스. 한국에서 얼마전 특별히 조달해왔다. 아… 과유불급이라 하였던가. 속이 엄청 쓰리다. 국물은 그냥 하수구로 부어버렸다. 아까워라. 결국은 속까지 쓰리길래 옆에 굴러다니는 크래커를 한통 비웠다. 칼로리를 소비해야 하는데, 앉은 자리에서 정크 푸드를 두개나 위에 쑤셔넣었으니.

식기세척기라는 럭셔리는 사람의 게으름을 더 부추기는 아이템이다. 그래도 진정 부엌의 혁신자라고 할 수 있다. 엉망인 부엌도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하나씩 넣다보면, 금방 정리가 끝난다.

덴마크어 학원 가야 하는데, 숙제를 다 하지 못했다. 통제하는 사람이 없으니, 인터넷 서핑을 수시로 하게 된다. 중간중간, 너 이러면 안돼!를 스스로에게 몇번이나 외쳐야 하는지 모른다. 멀티태스킹을 해야하는 회사생활이 오래되다보니, 뇌구조가 변했다보다. 멀티태스킹도 잘 못하지만 모노태스킹에 큰 장애가 생겼다. 빨리 학교생활을 해서, 공부에 쫓겨야만 할 것 같다. 간신히 스스로를 달래가며 숙제를 끝내서 잘 프린트 한다음 가방을 챙기고 수업에 뛰어갔다. 수업시간엔 집중이 잘 되고, 공부가 재미있는 거 보면, 대학원 복학 후 삶이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오는 길에, 저녁 찬거리를 고민하다가 맥도널드에 들렀다. 오늘 하루는 정말 불량식품으로 점철되었다. 집에 와서 이것저것 잡스러운 글을 읽고, 상념에 잠기다보니 시간이 휙하고 흘러갔다.

이제 곧 자야할 시간이다.

To say thank you, admitting that I am ignorant.

One day, I realized that I didn’t say thank you enough in certain situations, even though I felt that way. The situations were mostly at work. (I quit my job lately by the way.) I was supposed to do something but I didn’t know too much about it, maybe because it was something new or I hadn’t learned how to do it yet. Most likely senior colleagues helped me to tackle the tasks. Sometimes  it took a bit long time and the person should stay longer at work only to help me. I wanted to be an excellent and competent person at work who knew how to do anything and everything so well. So those moments, needing big help from others, were embarrassing and I felt sorry about that. I seriously said that I was sorry after just briefly saying that I thanked the person. Or sometimes I even omitted to say thank you, assuming that the person would definitely and telepathically understand that I thank the one. Maybe it is partly a Korean thing, like people abashedly smiling when they made a mistake. But it can vary from a person to the other. So I don’t want to blame our culture.

How I realized that I didn’t say thank you enough was from a conversation with a colleague. He had always been straight forward about his opinion and said that I didn’t thank him enough for his massive help. That struck me. My presumption was wrong and people didn’t know how I felt. And I also realized that I actually didn’t thank others enough seriously. It was more about my ego that hurt. I focused more on how embarrassing I was than how I should be grateful to the person and appreciate his/her efforts.

I was arrogant, though I thought to be humble. I didn’t want to admit that I would make just as many mistakes as others and I was arrogant.

I may act being arrogant sometimes not knowingly, in a sense that being embarrassed to admit that I am ignorant about something. Then I tell myself that there are so many things to learn and there’s no reason to be embarrassed about not knowing things. Danish Janteloven, but in a positive elaboration of which, gives me a great lesson in that sense.

Let’s say thank you, appreciate things that are given. That would make a person humble, happy and be ready to grow and improve. 🙂

Bringing my puppy to Denmark from Korea

I brought my puppy, Boree(meaning barley in Korean and Boree’s color is like barley’s), from Korea and here’s how to bring your puppy to Denmark.

It’s more easier to bring your puppy from EU countries than third countries apart from EU. This information is focused on bringing one from the 3rd countries(which was not even listed in the Annex 2, Part B, section 2 and Part C to EU Regulation 998/2003/EEC  to be more difficult) but you can refer the information, bringing one from EU, from the same website.

Information regarding traveling with living animals to Denmark is provided by the Ministry of Food, Agriculture and Fisheries at its website.

I had to prepare a Veterinary Certificate and get it signed by a competent authority in Korea. The EU form is given in the page above and here is the link of the form.

There are some requirements before preparing the certificate. (This is the most difficult case, since Korea belongs to the third countries not listed in the Annex 2.)

  • Microchip or tattoo (done before the first rabies vaccination)
  • Veterinary certificate or Pet Passport that certifies the requirements
  • Valid rabies vaccination in accordance with the recommendations of the manufactor of the vaccine
  • A blood sample testing the rabies antibody level – must be drawn at least 30 days after vaccination
  • The blood sample must be examined by an EU authorised laboratories
  • The result of the rabies antibody level test must be at least 0,5 IE/ml
  • The animal can not enter Denmark (the EU) until three (3) months after the date when the blood sample was drawn and only if the result is in accordance with the requirements. (This three-month period shall not apply to the re-entry of an EU pet animal whose passport certifies that the titration was carried out, with a positive result, before the animal left the territory of the EU. The antibody test need not be renewed on a pet animal which has been re-vaccinated against rabies before the validity of the previous vaccination expires.)
Source : Ministry of Food, Agriculture and Fisheries

First thing to do is having microchip implanted into your puppy or getting the tattoo. I chose to have a microchip implant. It can be done at your local veterinary clinic. The vet will register the pet information to the relevant authority. The chip should better be conform with the ISO standard so that the information can be read wherever you go.

Then your puppy should have valid rabies vaccination. Boree had already been vaccinated 10 months back which was less than a year, a regular cycle for rabies vaccination. However she had to get re-vaccinated before the regular cycle in due since she didn’t have a ID microchip yet. So the chip has to be implanted first and the vaccination comes later. When it gets vaccinated, the chip information will also be mention on the certificate where the vet signs on.

Then the blood sample should be tested by an EU authorized labs. Make sure that the blood sample be drawn at least 30 days after vaccination.  Here is the list of the EU authorized labs in 3rd countries. There are chances that your vet doesn’t know where are the authorized labs like mine didn’t. So I had to give the contact information to the vet. In Korea, Animal and Plant Quarantine Agency(QIA, http://www.qia.go.kr/) provides the testing services. The result of the rabies antibody level test must be at least 0,5 IE/ml.

The animal can only enter Denmark after 3 months after the date when the blood sample was drawn and complying the testing criteria of rabies antibody level. It means that it takes minimum 4 months after rabies vaccination. If you plan to travel with your puppy, make sure that your time frame could work with it.

And when you book a ticket, make sure with airlines that you are traveling with that you are accompanying your puppy and if the aircraft is capable of carrying it. Some airplanes don’t have the space for pets so chances are that you should change your flight schedules. Boree was lucky to fly without problems. Since there was no direct flight from Korea to Denmark, she also had to transit at the Schipole airport where she got on board with fellow human passengers(though she was covered with a big blanket not to be seen by them.) A cage would be considered as an extra luggage  no matter how light it is.

Anyway, back to the procedures, in Korea, one has to make a reservation for quarantine services prior to the departure. They review the rabies vaccine certificates, health certificates(not mandatory) and check up pets health conditions by looking then sign on the Veterinary Certificates that one has prepared. It doesn’t take a long time. One can do it one or two days before the departure since it could  be a hassle to be done on the departure date. So I did it a day before.

Contact Border Inspection Post before you fly. You could just email them. I tried to call many times but failed. But one day right after I emailed them, they replied.  Here’s the contact information.

Border Inspection Post, Kastrup at Copenhagen Airport
Kystvejen 16

DK-2770 Kastrup
Phone: +45 72 27 64 40
Fax: +45 72 27 64 51
Email: bipcph@fvst.dk

If the puppy is lighter than 5 kgs including the cage weight, it can fly with you under the seat. But Boree was a bit tall to stay under the seat more than 10 hours, so I choose to buy a big cage where I could put her favorite blankets and cushions together and she could rest. It must be stressful in any case, but she had some knee joints issues and I knew that she couldn’t handle 10 hours under the seat. Impossible. Don’t feed your puppy too much before flying so that it won’t throw up.

When you land at the Kastrup airport, go to the odd-sized luggage pick up desk and go through the red custom line. Then they will cut the seal on the cage, check documents and scan ID microchip and release your puppy.

Velkommen til Danmark! (Welcome to Denmark!)


저는 덴마크에 제 강아지 보리(밝은 갈색 푸들이라 이름을 보리로 지었어요.)를 한국에서 데리고 왔어요. EU국가에서 덴마크로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것은 제3국(EU 이외 국가)에서 데리고 오는 것보다는 쉬워요. 이 정보는 한국과 같이 제3국(그것도 EU 규정(Part B, section 2 and Part C to EU Regulation 998/2003/EEC)의 부속서 2(Annex 2)에 명시되지 않은 국가라 더 힘들었죠)가에서 덴마크로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방법에 대해서 적은 점을 참고해주세요. 한국에서 데리고 오는 것이 가장 힘든 것으로 그 외 국가의 경우 최소한 같은 난이도이거나 더 쉽습니다. (다른 국가에서의 강아지 동반 입국 방법은 관련 규정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덴마크 애완견 동반에 대한 규정은 농수산식품부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출국하는 것이니 당연히 한국 관련 당국에서 서명한 검역증명서(Veterinary Certificate)를 받아야 했죠. 링크의 EU 양식에 본인이 기재할 부분만 기재해서 검역 당일에 지참해 가시면 됩니다. 나중에 여기에 검역당국에서 담당 검역 수의사가 작성할 부분을 추가 작성해 서명날인함으로써 검역증명서가 발급됩니다.

정상적으로 덴마크에 애완견을 데리고 가기 위해 몇가지 충족할 요건이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부속서 2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라 요건이 가장 복잡하죠.

  • 마이크로칩 또는 문신(최초 광견병 백신 접종전  삽입 또는 문신을 완료할 것)
  • 사전 요건을 모두 만족했음을 확인하는 검역 증명서 또는 동물여권(Pet Passport)
  • 백신 제조사의 권고방식에 따라 유효하게 접종한 광견병 백신
  • 광견병 항체 검사용 체혈은 백신 접종 이후 최소 30일이 경과한 후에 할 것
  • 항체 검사는 EU에서 승인된 실험실에서 할 것
  • 광견병 항체가 최소 0,5 IE/ml이상이 될 것
  • 체혈 이후 최소한 3개월 이상이 되고, 검사 결과가 0,5 IE/ml 이상이 될 때 덴마크 입국이 가능
출처 : 덴마크 농수산식품부

첫번째 할 일은 우선 애완견에 마이크로칩을 삽입하거나 문신을 하는 것입니다. 신분 증명용인데, 전 마이크로칩 이식을 선택했어요. 동물병원에서 할 수 있고, 동물병원에서는 가까운 구청에 해당 칩 정보를 신고합니다. 최근 우리나라도 마이크로칩 이식이 의무화되었던 것 같은데요, 약간의 등록비가 듭니다. 칩 이식때는 반드시 ISO 기준에 부합하는 칩을 삽입해야 다른 나라에서 인식할 때 문제가 없습니다. 아마 이제는 전부 ISO 규정에 부합하는 칩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혹시나 싶어 동물병원에 꼭 그래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광견병 백신 접종을 해야 해요. 보리는 10개월전에 접종을 했고, 다음 접종시기까지 2개월이 남아있었지만, 그 전 접종이 칩 삽입 이전에 이뤄진 것이라 의미가 없어서 다시 접종을 했어요. 접종하고 나서 동물병원에서 발급하는 광견병 백신 접종 확인서에는 ID 칩 번호를 적어줍니다.

이 접종확인서 상 날짜로부터 30일 이후에 체혈을 해야 해요. 혹시나 싶어 31일 이후에 했습니다. EU 승인 실험실 리스트에서 승인유효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곳인 농림수산검역본부(QIA, http://www.qia.go.kr/) 연락처를 동물병원에 전달했습니다. 잘 모르는 병원도 많으니, 본인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중간에 절차가 꼬이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죠.  실험 결과가 EU 기준치에 맞지 않으면 다시 접종하던가 해야 하나봐요. 보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정상적으로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3개월간 기다리는 이후는 혹시 있을 지 모르는 광견병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체혈 이후 3개월이고, 체혈 1개월 전 접종을 해야 하니, 검역까지 최소 4개월이 걸리는 점을 고려해서 출국 전 준비를 해야합니다.

그리고 항공권 예약할 때, 항공사에 애완동물과 여행을 같이 할 것임을 통보해야 하고, 예약한 비행기가 애완동물 수용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모든 비행기가 다 애완동물 수용이 가능한 건 아니라네요. 공간이 없는 기종도 있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공간이 작아 1~2마리만 수용 가능한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저처럼 직항이 아닌 경우, 연결편까지 모두 확인을 해야 하죠. 따라서 한개의 일관된 항공사로 끝까지 비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환승하면서 보리는 코펜하겐까지 1시간 반은 큰 담요를 케이지에 뒤집어 씌운 채로 비행기 맨 뒷편에 승객과 함께 탑승했습니다. 그리고 케이지는 무게에 상관 없이 화물로 실을 경우 추가 수하물로 취급되어 해당 비용이 발생합니다.

다시 검역 절차로 돌아가면, 출국 전에 미리 출국검역신청 예약을 해야 합니다. 검역시 백신 증명서, 항체 검사 결과, 건강증명서(이건 의무사항은 아닌데, 동물병원에서 발급 받았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요구하는 경우가 있나봅니다.) 등을 보고, 임상 검사를 한 후에 미리 본인 작성부분을 다 작성해서 준비해간 검역증명서에 검역 담당 수의사가 서명을 해줍니다. 이는 하루나 이틀 전에도 미리 할 수 있습니다. 출국 당일 할 일도 많은데 정신이 없을 수 있어 저는 미리 했습니다. 이 또한 예약은 농림수산검역본부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습니다.

출국 전에 또 할 일은 덴마크 국경검사포스트에 연락을 해두는 것입니다. 이메일이 편합니다. 전 전화로 몇번 하다가 실패하고 이메일을 보내니 바로 다음날 답장이 왔습니다. 동반할 동물 종류와 입국 시점 등을 보내두니 검역 포스트에 연락해두겠다고 회신이 왔습니다. 연락처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Border Inspection Post, Kastrup at Copenhagen Airport
Kystvejen 16

DK-2770 Kastrup
Phone: +45 72 27 64 40
Fax: +45 72 27 64 51
Email: bipcph@fvst.dk

만약 애완견이 케이지 무게를 포함해서 5킬로그램보다 가벼우면 주인과 함께 기내에 탑승해 앞좌석 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리는 다리가 긴 편이고 무릎 관절에 문제가 있어 무게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그 아래에서 10시간 비행하기엔 아무리봐도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큰 케이지를 사서 보리가 좋아하는 담요와 쿠션과 함께 화물칸에 실었습니다. 탑승전 최소한 4시간 이전에 먹거나 마시는 것을 완료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토할 수 있어선데요, 양도 많이 주지 않는게 좋습니다.

코펜하겐 카스트룹 공항에 도착하면 비규격 사이즈 수하물 코너에서 케이지를 찾아서 통관시 신고할 것이 있는 빨간 줄로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면 담당자가 관련된 케이지에 봉인을 열고 마이크로 칩을 스캔하고 서류를 점검한 후에 애완견을 넘겨줍니다. 얼마나 보리가 낑낑대던지요.

Velkommen til Danmark! (덴마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