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은 터뜨려야 낫는 법

시누이에게 페북 채팅방에서 나가겠다고 한 이후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슈까지 겹쳐서 중간에 낀 옌스도 스트레스를 일부 받았으며, 시누는 내가 너무 갑자기 확 터졌다고 생각해서 화를 내고 있었고, 바로 그 주말에 하나와 내 발레 공연에 오기로 한 시누이와 큰조카를 봐야 할 나도 불편했다. 옌스와 크리스마스 관련해 대안 세개를 갖고 얼마만큼 솔직히 이야기할지, 내가 갖고 있는 마음속 갈등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지에 대한 상의를 미리 한 뒤에 만났다.

공연이 끝나고 마치 아무일이 없던 것처럼 집에 잘 돌아와서 시누이와 큰조카는 하나방에 올라가서 약간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나는 점심준비를 하고, 시누이가 내려와서 옌스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히 회덮밥을 준비하기로 한 터라 준비를 금방 끝내고 밥 하는 동안 같이 거실에 앉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양쪽 모두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만이 아니라 시누이도 이러저러한 서운함이 있었고, 우리가 갖고 있는 서운함 또는 이슈 – 주로 나 – 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했다.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인 시누 남편과 관련해서는 시누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시누의 남편이 시누의 주변 인물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오는 여러 갈등에 대해서 설명해주며 그게 우리 가족을 향한 것이 아니고, 그로 인해 자신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골이 깊은 갈등은 아니었지만, 아주 조금씩 시간을 두고 쌓인 갈등이라 이렇게 터지기까지 오래걸렸고, 그래서 마음이 꽤나 오랫동안 불편하긴 했다. 그래서 이번 갈등의 폭발은 어찌 보면 필요했던 일이었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면 잘라내고 끝내고, 갈등에 크게 마음 고생할 일도 없겠지만 가족이라 작은 일에도 상처가 되고,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취약해지는 거겠지. 적당한 갈등의 표출이었다면 이렇게 솔직하게 양쪽 모두 속을 드러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로간에 이러한 감정의 분출이 이해가 되는 상황이 될만큼 각자 쌓인게 있었고, 그게 뚜렷한 갈등의 형태로 드러났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족이기에, 그래서 소중한 관계이기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정의되는 순간 해결에 한걸음 다가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각자 속내를 깊은 곳까지 들춰내 보일 수 있었고, 마지막에는 감정이 다소 울컥해 눈시울을 적시며 포옹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해결해야 할 갈등은 터뜨려야 하는 것 같다. 환부를 도려내지 않도록 그 전에. 물론 양쪽 모두가 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겠지만.

시누이와의 관계 재정립

집안의 대소사에 여자들이 주 역할을 맡는데서 오는 정신적 부담을 멘탈로드라고 하던데, 우리집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와 관련된 모든 일정을 옌스가 열심히 챙기지 않아 내가 챙기다보니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일정부분 주도를 해왔다. 아이의 생일이나 공연 초대, 시댁 방문 휴가, 시댁 행사 관련해서 음식 준비를 하거나 하는 것 등. 내가 할 수 있으니 한 것들인데, 그게 어느새인가 자연스럽게 당연히 내가 해야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시누이네는 아이가 셋이고, 부부 모두 바빠서 일정을 잡는게 쉽지가 않다. 우리는 뭔가 초대를 받으면 꼭 가려는 전제하에 일정에 무리가 있으면 조율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그게 안되면 되는 사람만 간다든지 최대한 맞추려고 해왔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전제가 잘못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걸 맞추려고 할 게 아니었는지도. 우리가 제안을 하면 그 날짜가 안된다고 하면서 다른 날을 찾아보면 좋겠다고 하되 또 다른 날을 제안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날을 물어보면 그 날도 안되는 경우가 많고. 하나의 생일을 축하할 겸 초대하려고 하는데, 날짜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서 짜증이 확 올라와버렸다. 한 두번정도 날짜 조율이 안되면 차라리 그날 못간다고 미안하다 하고 즐겁게 축하하라 하면 되는데, 다른 날짜를 맞춰보자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토요일에 하나 공연이 있는데, 그때 만나서 조율하자고 하는데 거기서 짜증이 확 올라오는거다.

짜증이 올라오던 순간 밖에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옌스에게 앞으로 시누이네랑 일정 조정하는 거 당신이 하라고 했다. 왜 그렇느냐고 묻길래, 화가나는 포인트를 이야기해줬더니 시누이가 나쁜 뜻으로 그러는게 아니지 않는가, 애가 많아서 바빠서 그러는 거다 라는 거다. 그 말에 나는 짜증이 더 확 올라왔다. 그러면 그것에 짜증내고 있는 내가 나쁜 뜻이 있는거냐고 받아쳤더니, 그런 뜻이 아니란다.

모든 관계는 쌍방이지 않느냐. 내가 시누이네 애들, 시누이 생일 등 가족행사에 시간 내서 가는 것은 뭐 나라고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 넘치는 시간 내서 가는게 아니다. 시누이네 행사 일정 조율할 때 우리가 이런식으로 힘들게 한 적이 있느냐. 나도 나쁜 마음 먹는 거 아니고, 앞으로도 가게 되는 행사 좋은 마음으로 갈건데, 애써 이렇게 일정 맞춰주려고 노력하지 않겠다는거다, 나도 안되면 그냥 그날 안된다, 대안 제시없이 수동적으로 그냥 다른 날 안되냐고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다보니 결국 이렇게 되는 건 이 상황에 옌스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아서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나가 시누이네 가족과 가까운 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자신의 생일에는 시누이네가 오지 않고, 그쪽 생일에만 우리가 가니까 그게 아쉬웠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생일 초대도 하려고 했던 것인데. 결국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당신이 적극적으로 하나와 시누이네 가족간의 관계에 역할을 하지 않아서 그런거 아니냐, 당신 시누이네 행사에 우리는 다 가는데 – 그것도 아이들이 세명이나 되는 그 집 행사에 모두 – 우리 행사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런건데 왜 우리만 그렇게 해야 하느냐라고 힐난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런거 안하겠다. 그래서 하나가 시누이네를 초대하거나 뭘 같이 하거나 이런거 물으면 당신한테 물어보라고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시누이네랑 뭔가 행사가 없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내말이 틀리냐고, 내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느냐고 불어봤다. 시누네 남편은 그룹채팅에도 없는데, 왜 나혼자 거기에 껴서 이런걸 해야 하냐고.

옌스도 그 말에 내 감정이 드디어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미안하다며 앞으로는 자신이 그 역할을 하겠다고 하더라. 크리스마스도 그간 그 집 조카들이 자기네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고 해서 그 집에서 계속 보내왔는데 그것도 선물 교환때에만 하고 식사는 따로 하는 것으로 했다. 아직 통보하지는 않았지만. 음식준비를 우리에게 넘기지 않아, 우리가 초콜렛이나 뭔가 물질적인 것으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게 하면서도 그 스트레스를 크리스마스 식사 내내 뿜어내는 시누이 남편을 마주하며 받아온 스트레스가 너무 컸기에.

옌스는 그런 상대의 스트레스를 눈치채도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타입인데, 나는 상대의 불쾌함이 너무 많이 느껴져서 그게 나에 대한 게 아님에도 너무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한 상태가 된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가서 릴렉스하게 앉아있는 옌스는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작년에 그 냉랭함이 유독 크게 느껴져서 올해는 정말 가고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옌스한테 여러번 시누이랑 이야기해서 음식 분담을 어떻게 해보든가, 아니면 식사는 따로 하든가 조율해보라고 했는데, 그걸 아직껏 이야기하지 않고 이번 주말에 얼굴 볼 때 이야기해보겠다는거다. 하나랑 시누이네 큰조카도 같이 있는데? 그걸 애들이 있는데서 이야기할 것은 아닌 거 같다고 하고 그냥 식사 따로 하자고 이야기했다.

시누이네 초대하고 다 좋은데, 먼저 되는 날짜 조율해서 대안 몇개 갖고서 나랑 그 다음에 조율하면, 음식하고 그런건 하면 되는 거니까 부르라고. 그런데 내가 나서서 부르고 그런건 앞으로 안하겠다고. 마음이 아주 편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역할을 계속 맡는다고 봤을때 느껴질 불편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그냥 그러기로 했다. 그리고나서 시누이에게도 우리 셋의 그룹챗을 나가겠다고 이야기해두었다. 우리 일정을 그들의 일정에 최대한 맞추려는 노력이 일정 조율을 너무 길게 늘어지게 해 나와 그녀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아서 앞으로 옌스가 직접 일정 조율을 도맡아 하기로 했다, 그러면 일정조율도 좀 더 일관적이어질테니 말이다며. 이해해달라고 하고 나왔다.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쳐낼 수 있어야 가족 관계도 오히려 건강하게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다가 더 누적되서 아예 참여하기도 싫다는 상태까지 가는 것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좋지 않은가. 시누네 남편도 참여하지 않는 역할에 나라고 괜히 열심히 참여하다가 괜히 데이지 말고 물러날 때 적당한 선으로 물러나는게 좋다 싶다. 덕분에 올 크리스마스엔 좀 편한 마음으로 보내겠구나. 다행이다.

김치 담그기

집에 냉장고가 너무 작아서, 마땅한 김치 보장 용기나 스테인레스 대야 등이 없어서 한포기짜리 김치나 깍두기 등을 한손에 꼽을 만한 회수로 담가먹었을 뿐 덴마크에 와서 제대로 김치를 담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 작은 냉동고를 따로 사고, 기존의 작은 냉장/냉동 겸용고를 아주 손톱만큼 조금 더 높아진 냉장고로 바꾸면서 조금이나마 공간에 여유가 생겨 김치를 담그기로 했다. 이케아에 유리로 된 용기가 크고 납작한 것으로 있길래 그걸 사두었고, 아마존에서 적당히 큰 스테인레스 대야와 채반도 샀다. 마지막으로 무와 배추, 찹쌀가루를 사다가 김치를 담갔다.

기억했던 것보다 일의 규모가 크지 않았다. 물론 프로세스가 길어서 일상의 다른 일정들과 잘 조율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 있긴 했지만 부엌도 예전 아파트보다 훨씬 크고 여유가 있어서 일이 수월했다.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풀을 조금 더 걸죽하게 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배추 절이는 것을 조금 덜 절였어야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요리가 그렇듯이 여러번 해봐야 나만의 레시피가 나오는 것이라 앞으로 꾸준히 해봐야 하겠다. 사먹는 김치가 맛이 갈수록 별로인 것 같아서 담근건데, 생각해보면 가격도 엄청 차이나고… 이래서 자꾸만 집에서 해먹는게 늘어나나보다. 엄마가 해주시던 것 같은 시원한 맛이 날까? 신선한 새우젖 같은게 안들어가서 그렇지 못할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사먹는 것보다는 맛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옛날에 먹었던 김치 맛이 그리워진다.

인간관계 가지치기

인간관계는 유동적이다. 연안가에서 만나는 조류와도 비슷한 것 같다. 밀물과 썰물이 있지만 물이 완전히 빠져 없어지지는 않는다. 깊은 관계는 남아 있고, 가벼운 관계는 드나든다. 그 중엔 드나듦을 반복하는 얕은 관계도 있고, 한번 빠져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않는 관계도 있다. 깊은 관계도 긴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아직도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은 나이와 함께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나 한가지 느끼게 된 것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받게되는 사람이 있다면 멀어지는게 좋다는 생각이다. 뭔가 주제에 미스매치가 있어서 같이 이야기하면 나도 상대도 뭔가 어색하다. 그 사람이 좋고 나빠서가 아니라 나와 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엔 잘 몰랐던 부합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형태를 뚜렷이 드러낸 것이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끊어내고난 후에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가 없어지는 걸 몇차례 경험한 후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해서 생긴 시간과 에너지는 깊은 관계의 친구들뿐 아니라 가볍게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다져진 다른 관계나 다른 활동에 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부정적 에너지 가지치기는 매우 중요하다.

아이의 성장, 8년 10개월

아이의 변화가 느껴지고 있다. 손이 조금씩 여물어간다고 해야할까? 소근육의 발달이 느껴지는 것이, 아이가 뭔가를 해낼때 기존보다 훨씬 미더워졌다. 덕분에 나도 조금 더 여유롭게 아이가 뭔가를 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고, 그게 실패해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빈도가 줄어들었다. 덕분에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순간에 애가 뭘 해도 되냐고 물어보면 허락을 수월히 해줄 수 있고, 나에게 물어보지 않고 해도 되는 활동들의 범위가 늘어났다. 아이에게 도와달라고 해도 되는 것이 늘어나서 순간순간 깜짝 놀라곤 한다.

하지만 또 동시에 아이가 어린 아이처럼 구는 순간들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 침대로 기어들어와 십분동안 잠을 더 자는데, 그때 내 품으로 파고드는 순간. 학교에 애를 데리러 가면 나를 향해 달려와서 펄쩍 뛰어 나에게 메달리며 안기는 순간.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을 때 대성통곡을 하면서 방에 들어가서 울고 있는 순간. 이런 때면 아직도 어린 아이같은 면이 남아있음을 느낀다.

사회성 측면에서도 크게 발달했음을 느낀다. 친구들에게 밖에서 나무 타고 놀자고 제안했는데 – 자주 하는 놀이이다. – 그 중 한명이 나뭇가지에서 미끄려져 떨어지며 손목이 부러져서 깁스를 했는데, 잠자리에 들어 불끄고 자기 전에 갑자기 자기가 가책을 느낀다며 자기가 놀이를 제안해서 그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어머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책임을 고려하는 모습에서 참 성숙해졌음을 느꼈다. 그냥 그건 사고였을 뿐이라고 해줬다. 마음이 아플 일이긴 하지만, 죄책감을 느낄 일은 아니라고. 다른 친구가 제안한 술래잡기놀이를 하다가 혼자 네가 넘어져 다치면 그건 그냥 사고일 뿐이지 친구의 잘못이 아닌 것이랑 똑같은 거랑 똑같다고 말해줬다.

아직도 대성통곡을 하며 별것 아닌 일을 일부러 드라마로 만드는 순간도 있지만, 또 어른들이 필요에 의해 결정한 일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할 때 빨개지는 눈에서 눈물을 꾹 참고 벌개진 얼굴로 받아들이는 때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상황에 대한 판단에 근거해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늘고 있음에서 성숙함이 느껴진다.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강점이 무엇이고, 타인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자기 객관화를 하는데에서도 성장이 느껴진다. 매일 청소년 뉴스를 시청하며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따라가고 있고 – 뉴스 좋아하는 부모의 아이라 – 자신 나름의 의견을 갖고 우리 일상의 의사결정에도 참여한다. 쇠고기를 덜 먹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나, 요즘 사회에 서서히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는 마약 문제, 크리스마스 트리를 진짜 나무를 베어오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는 플라스틱 나무로 쓰자고 하는 거 (이게 더 좋은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등등 나름의 견해를 갖고 토론이나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이제 만으로 아홉살이 되기까지 두달이 채 안남았는데, 이미 내 손을 많이 떠나간 아이를 보며 시간이 새삼 빠르게 흘렀음을 느낀다. 지금까지의 시간의 삼분지 이만 지나도 거의 어른에 가까워졌겠지. 매년 애가 얼마나 클 지, 어떤 변화를 겪을지 정말 기대가 된다.

율 전통 (a.k.a. 크리스마스 전통)

12월 1일이 되기 전 집안을 크리스마스에 맞게 장식했다. 정확히 말하면 Jul. 예수 탄신인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에 기독교의 색깔이 덭칠해진 덴마크의 오랜 전통인 율, 동지 축제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래서 덴마크어로 보면 예수 탄신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지붕 밑 다락, 숲속 등에 사는 요정같은 Nisse이 전통의 핵심을 차지한다.

올해는 진짜 나무대신 가짜 나무를 사기로 했다. 나무를 매년 자르는 것이 좋지 않다는 하나의 의견에 따라 우리도 편하게 가짜 트리로 옮겨탔는데, 가짜를 할 거면 정말 가짜같은 것을 사야한다는 옌스의 의견과 그도 괜찮다는 하나의 의견을 수렴해 분홍색으로 주문했다.

집에는 문틀, 창틀, 선반 등에 장식을 했고, 작년에 이어 손수 리스를 만들어 집 앞을 장식했다.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올해는 짚으로 만들어진 틀에 작식을 꽂는 것으로 바꿔봤는데, 훨씬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이와 사슬고리를 만들어 창틀에도 달았고, 캘린더 촛대 장식도 만들어서 여기에 매일 불도 붙이며 율레휘게 (julehygge)를 내보고 있다.

굳이 안해도 된다 하고 하지 않던 것을 아이가 생기면서 하게 된다. 덴마크 사람들은 전통이라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게 어디서 내려온 전통을 중시한다기 보다는 우리만의 전통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아이가 좀 크면서 보니 아이들은 어떤 반복적인 것을 좋아하더라. 써프라이즈도 물론 좋아하지만, 그런 써프라이즈 마저도 한번 너무 좋았으면 다음에 또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뭔가 좋아하는 것을 그 시기에 다시금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예측 가능한 즐거움을 좋아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작년에 했던 똑같은 것들을 또 하고 싶어서 기다리게 되고. 그 중 하나는 바로 이 율레퓐트 (julepynt)다

격변의 시대에 자라왔던 나는 그 전통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이를 간소화하자 이런 움직임을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었기에 전통이 가지는 부담에 초점을 두고 커왔다. 그래서 나에게 그냥 일상 생활 속 전통은 갈수록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것 같다. 해외에서 살면서 더욱 그래왔는데, 아이가 그런 전통을 좋아하고 우리만의 전통을 만들어하고 싶어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이에 동원되었다.

그런데 하다보니 아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전통의 행사와 그 뒷정리에 익숙해지면서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어둡고 칙칙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함도 있고. 율과 신년을 지내는 기간 만큼은 이 어둡고 긴 겨울도 따뜻하고 밟게 느껴지니까.

아이와 율레베이(julebag)라고 율 기간에 먹을 과자를 굽는 것도, 율레퓐트를 만드는 것도 다 휘글리하게 느껴진다. 율레개우(julegave), 즉 선물은 아이에게만 주고 우리끼리는 주고 받지 않는데, 선물 사는 일만 제외하면 포장하는 것부터 다양한 전통들이 나름 기대되고 즐겁다.

이중언어 아이를 키우며

한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국어 학습의 니즈가 각각 천차만별이다. 처한 언어환경 또한 제각기 다르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일 수도, 한명은 한국인, 덴마크인이거나 한명은 한국인, 다른한명은 비덴마크 외국인일수도 있다. 둘다 덴마크인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언어권인 사람도 있다. 이처럼 한글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다양해진만큼 최소한 한명의 한국인을 부모로 가진 아이에게도 한국어 수준은 정말 다양하다.

나처럼 한국인 부모 한명이 있는 경우에 파트너간 커뮤니케이션이 주로 영어로 이뤄지는 경우 아이는 한국인 부모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기에 그들의 한국어 능력은 꽤나 되는 듯 해 보인다. 아이가 한국에 관심이 많거나, 한국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등에 조금이나마 여러번 다닌 경우, 아니면 조금 길게 다닌 경우, 한국에 한번 가면 길게 있는 경우 등 아이의 한국어 수준은 확실히 높아 보인다. 그와 다르게 나처럼 아이와 덴마크어로 이야기를 하며 아이의 한국어 능력이 높지 않은 집들도 보인다.

우리집이라고 처음부터 아이가 한국어를 못하던 것이 아니었는데, 아이가 어느덧 내가 남편 및 주변 세상과 덴마크어를 사용해 소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하기 시작했고, 아이의 덴마크어와 한국어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서서히 나도 아이와 덴마크어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요즘들어서야 아이가 다시 한국어에 좀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아이가 한국어로 답을 하지 않기 시작한 이래로 약 7년간 아이의 한국어 교육은 다양한 흥망성쇄의 길을 걸어왔다. 강하게 한국어를 몰아붙이면 된다는 이야기들도 여기저기서 들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빠르게 늘지 않는 한국어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는 엄마와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없냐고 크게 슬퍼하는 아이를 보고나서도 한국어 교육을 위해 그 감정을 무시하자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두명 모두 한국인인 부모를 둔 아이들 중에서도 한국어가 잘 안되고, 부모도 덴마크어가 잘 안되서 아이와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약간 머리를 한대 맞은 듯 했다. 미국에 사는 한인 가정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는데, 덴마크라고 다를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며 지금 애가 어느정도 한국어를 잘한다 해서 나중까지 꼭 그런다는 보장이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다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이가 네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 자기는 한국어 사용을 고수하고 있지만, 아이가 아빠와 대화하는 것이 자신과 대화하는 것에 더 깊이가 있음을 느낄 때 큰 마음의 갈등을 느낀다고 했다. 자기가 그냥 덴마크어로 언어를 바꿔야 하는 것인지.

아이가 예전보다 한국어에 많은 관심을 가진 지금, 이것을 최대한 이어가면 아이가 나중에 한국어를 정말로 배우고 싶을 때 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줄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는 목표를 여기로 정했다. 아이는 자신이 한국인의 뿌리와 덴마크인의 뿌리를 가진 사람이지만 덴마크인에 더 가깝다는 정체성을 가졌는데 그정도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아이는 한국어를 열심히 하는 것이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임을 인지했고, 그래서 조금 더 신경을 쓰려하고 있으며, 나도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하니 아이와 관계에 날카로운 부분이 없어졌다. 아이의 한국어 실력 부족이 나의 잘못인 것 같아 그로 인해 아이가 한국어를 하기 싫어하면 날이 서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게 무뎌졌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다보니 아이가 자라면서 끊임없이 어떤 기준을 정하는 문제로 마음의 갈등을 겪곤 하는데, 한국어는 이정도로 정리가 된 것 같다. 7년의 시간이 참 길었는데, 이제 편한 단계가 된 것 같다. 여기에는 물론 나 혼자의 마음의 갈등만 있던 것이 아니고, 남편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한국어를 지금껏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늘리고, 아이에게도 노출을 늘리려 많은 노력을 해온 그가 아니었으면 나도 이렇게 못했을 것이다. 토요일에 한글학교 가는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빠 덕이다. 아빠가 다니고, 엄마도 가급적 항상 학교에 같이 가니까 자기도 가는 거고, 거기에는 작은 한국이 있으니까.

겨울을 버티는 힘

겨울이 되면 해가 짧아져서 아쉽다. 하지만 정해진 환경을 불평하며 탓해봤자 좋아질 게 없으니 좋아할만한 것들을 찾아본다. 크리스마스에 가까워지며 틀게 되는 hyggelig한 음악, 따뜻하게 데워먹는 차와 겨울 음료들을 마시며 가슴 안으로부터 느껴지는 따스함, 간간히 내리는 눈, 포근한 스웨터, 분위기의 온도를 높여주는 작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촛불,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나누는 담소, 담요를 덮고 책을 일거나 뜨개질하기, 겨울 간식의 따뜻한 단내. 그게 있어서 겨울을 버티는 것 같다.

명절

한글학교에서 바자회를 했다. 한글학교는 수업료만으로 학교 재정이 굴러가지 않는 곳으로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 같은 것이다. 내가 돈을 냈으니 애들 잘 가르쳐서 보내겠지, 이런 곳이 아니다. 코펜하겐 시의 재정지원을 받아야 하고, 수익사업을 통해 약간의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코펜하겐 시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문화활동이 일정 비율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아니면 어학원으로 인정되어 아무런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학교는 운영진들과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가정의 봉사활동에 어느정도 의존을 할 수 밖에 없고 바자회 같은 수익활동을 할 때 각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언젠가는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한글학교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하나와 같이 한국어 노출이 평소에 적은 한-덴가정 아이에게 한글학교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어를 하기 싫어서 한글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고,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아서 마음앓이를 하게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또 엄마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 그 나라 말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쁘지 않기도 하고, 자기나 엄마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랑 섞여서 놀고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이 때로는 즐겁기도 했을 거다. 토요일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당연히 한글학교를 가는 것으로 생각하니 그것이 하나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는 것이 꼭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걸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느정도는 할애해서 노력하겠다는 생각에 바자회 준비로 행사장 배치도 돕고 어묵탕도 만들어 팔고 뒷정리도 했다. 그 전에는 나도 뒤로 빠졌던 것이라면 이번엔 운영진에 참여하게 되다보니 그 이름에서 오는 책임감에 더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 일이지만, 그 공동체가 개개인의 참여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임을 이해하고, 아이가 그 공동체에서 누리는 것이 크다는 것을 알게되지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더라.

명절도 그런 것 같다. 한국에는 설과 추석 명절이 있다면 여기는 크리스마스 명절이 있다. 덴마크의 명절은 여자만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갈아넣어 만드는 것인데, 이제 우리 세대가 갈아넣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여자들의 희생으로 치러지던 명절을 보면서 나는 어른되면 안해야지 했는데, 막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엄마와 같이 준비하던 기억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고, 그래서 명절을 치루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 크리스마스도 작년과 같이 시누네 집에서 치르겠지만, 이번엔 우리가 좀 더 음식 분담을 많이 하고자 하고, 26일 크리스마스 이튿날 대가족 모임을 우리집에서 갖기로 하면서 제대로 된 명절맛을 볼 것 같다. 하나에겐 그 모임이 딱 그렇게 재미있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우리집에서 모임을 한다니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그래서 이런 것을 하는구나 싶다. 특히 길고 어두운 겨울, 이런 뭔가 특별한 행사들이 없으면 아마 이 시기를 넘기기 어려워서 그런게 아닐까. 나도 힘들겠지만 막상 치루고 나면 뿌듯할 명절. 그래서 우리는 명절이라는 전통을 계속 이어가나보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느낄 때

“엄마. 저는 저를 믿어요. 할 수 있다고요. 학교에서 뭐 하다가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할 수 있어, 내가 나를 안믿어주면 누가 나를 믿어줄거야.’ 라고 말하고 시도해봐요. 저는 수학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반에서 중간은 가는 것 같아서 어려워도 계속 연습하려고요.”

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 얼마나 소중한 이야기인가.

이것 저것 묻는 말에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이런 대화 너무 좋다는데, 어떤 이슈 없이 나와 수다떠는 일이 충분하지 않았었나보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