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국회의원은 무보수명예직이 아니다.

도대체 덴마크 국회의원이 무보수직이라는 이야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덴마크 총선으로 나라가 시끄럽다고 하니, 덴마크는 국회의원이 무보수 명예직이라 하던데 맞느냐는 질문을 몇번 받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기억이다. 우리나라에서 덴마크 국가의 청렴을 예로 들 때 나오는 것이 무보수 명예직 국회의원에 대한 이야기라는데, ‘돈에 관해 철저한 덴마크인들이 돈도 안받고 저렇게 풀타임으로 일을 할리가?!’ 하는 마음에 궁금해서 찾아봤다.

2015년 4월 1일 기준으로 제시된 국회의원 보수는 다음과 같다. (자료: 덴마크 국회 홈페이지-덴마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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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월별                            연간
기본급 (과세)                                                               52,073.91                   624,887
비용 보조 (비과세)
– 덴마크 거주자                                                             5,008.58                     60,103
– 그린랜드/패로제도 거주자                                            6,678.08                     80,137

월급이 한 850만원에 세금 떼면 대충 400만원 받는 것 같다. 기타 비용 발생부분을 보전해 주기위한 돈은 비과세 대상이다. 따라서 약 80만원 정도라 하면, 총 월 480만원 정도가 된다. 고액연봉자는 아니지만, 현지 급여수준을 생각하면 평균 이상으로 충분히 받는 것이다.

연금은 자기가 일한 기간에 맞추어 환산된 금액이 연금수령 개시시점부터 지급된다.

그런데 이런 풍문의 원천이 어디인가 찾아보니, 군소 지방언론과 일베, 뽐뿌 등의 신뢰하기 어렵고,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게시글인 것 같다. 그러다가 덴마크에 대한 기사를 자주 다루는 오마이뉴스에서, 지난 4월 문재인 대표의 발언에 대한 언론 및 새누리당의 행태를 논하면서 덴마크 이야기를 끌어쓸 때 이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당 기사) 이렇게 출처가 불분명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 것 보면, 인터넷 언론이 포털을 통해 쉽게 복제, 유통되면서 꽤나 널리 읽히기 때문인 것 같다.

얼마전 덴마크 정부에서 발의한, 현금 의무 수납제 폐지 법안에 대해서 중앙일보가 마치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덴마크가 현금사용을 없애려고 하는 것처럼 기사를 썼다. (“덴마크 정부는 ‘현금 없는 경제’를 통해 탈세의 온상인 지하경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라는 문구는 기자의 마음대로 창작물이다.) 그러나 이는 우체국, 약국 등 일부 부문을 제외하고, 현금 수납을 업장에서 선택하게 함으로, 사실상 현금 사용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 있을 거래를 위해 현금 시재를 보유하며 발생하는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는 것이 법안 발의의 핵심이다. 더불어 현금시재 미보유에 따른 강도범죄 피해율을 줄이는 것도 부수적인 긍정적 효과이다. (재미있게도 중앙일보의 보스턴 판인 보스턴 중앙일보는 정확히 기사를 썼다.)

급한 마감을 맞추려고, ‘대충 들은 게 맞겠지.’ 또는 ‘우리랑 비슷한 이유로 이런 정책을 폈겠지.’라면서 확인하지 않고 쓰거나, 혹시나 더욱 심각한 경우로 원하는 결론을 위해 사실과 다름에도 원하는 방향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쓰는 것은, 언론으로서 절대적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덴마크 국회의원은 월급을 받는다! 🙂

덴마크 기상청의 약속에서 시작된 공공부문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

6월부터 여름이 시작이라더니, 정말 그러려나보다. 6월 날씨에 대한 덴마크 기상청의 약속을 믿는다면 말이다. 5분마다 변한다고 하는 하루하루의 날씨가 아니라 기간에 대한 예측이니 대충 맞을 듯 하다. 일중 5~15도의 날씨를 오락가락하는 5월의 봄날씨는 흐리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엔 유독 춥게 느껴진다. 6월 중엔 드디어 25도의 고온도 맛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덴마크는 날씨에 대해 기상청이 약속했다(DMI lovede)고 표현한다. 기상청이 태풍을 약속했다, 태양을 약속했다고. 그 약속은 상당히 자주 지켜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으 보면 덴마크의 약속 개념이 약한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덴마크어 수업에서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보면 유럽 내 덴마크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게 참 재미있다.

우리가 행복한 복지국가 덴마크에 갖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덴마크는 유럽 내에서 가장 해고가 쉬운 나라에 속한다. 실업 복지가 뒷받침을 해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flexicurity model), 좋은 직장에서 자리 잘 잡고 일하는, 좋은 경력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이러한 급작스런 해고통보가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프랑스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일을 잘 하고 있다가, 덴마크 사람과 결혼을 하고 이곳으로 이주해온 한 컨설턴트는 덴마크를 북유럽의 이탈리아, 그리스로 표현하는데, 웃음이 나오면서도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사업부문 정리와 함께 사람들을 대량 해고하는 것이나, 어떤 기한내 일을 처리해주겠다고 하고 잊어버리거나, 회의에 참석하기로 하고 잊어버리는 일도 꽤나 자주 발생하며, 일정의 지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들을 예로 들며, 덴마크는 충분히 신뢰하기엔 의외로 어려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불평은 않는다면서, 지금 구한 곳은 자택근무를 허용해주는데, 두터운 신뢰기반이 받혀주는 덴마크에서나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 또한 공감하는 이야기다.

미국인들이 특히 놀라워하는 일은, 앞의 프랑스인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지만, 많은 공사가 지연되고, 공공프로젝트가 허망한 투자로 끝나도 이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하철 공사가 대표적인 예다. 2018년까지 끝나기로 한 프로젝트에 대해 대부분의 덴마크인은 2019년은 되어야 끝날 것이라고 했다. 어느샌지 슬그머니 준공시점 안내문에 2019년이 표기되어 있다. (아마 2020년에 끝나려나보다.) 미국에서는 공기가 지연될 경우 막대한 지연배상금이 일단위로 계산되기 때문에 준공을 칼같이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덴마크에서는 계획은 수정될 수 있다고 보고, 변동되는 현실에 맞춰 합리적으로 프로젝트 기간을 연장한다.

변화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덴마크의 시스템이 있기에 기일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생기지 않거나 적게 생긴다. 그러나 모든 일에 양면이 있듯이, 간혹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며 유야무야 봐주는 경우도 생기고, 대규모 투자가 들어간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게 오랜기간 진행되다가 실패로 드러나는 경우도 생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탈리아에서 도입하려던 IC4 열차 프로젝트이다. 일명 IC4 스캔들이라고도 불린다.

2000년 2월, DSB(덴마크 국영 철도운영사)는 50억 달러 규모의 도시간 철도용 열차를 EU 공공입찰을 통해 발주했다. 12월, 제일 싼 가격으로 이탈리아의 AnsaldoBreda사가 낙찰을 받게 되고, 2002년 12월까지 납품을 받기로 한다. 원래는 2003년 4월부터 운행을 할 목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새로운 열차에 맞춰 주요 역의 플랫폼은 길이 확장을 위해 확장공사도 마쳤다. 그러나, 2004년으로 납품이 연장되고, 납품된 제품은 전기시스템과 열차용 컴퓨터와 기계장치 시스템의 상호작용에도 문제가 발생되어 프로젝트가 좌초위기에 있었다. 감리기업은 프로젝트 중단을 권고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DSB는 매몰비용이 너무 아쉬워, 사실 포기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끌고 나갔다. 결국 2007년 10월 4대의 열차가 최초로 납품이 되어 오후스와 올보 구간에서 운영되었으나, 2008년 2월 열차 매연에서 과다하게 발생되는 악취로 인해 운행을 중단했다.

이는 이 길디 긴 스캔들의 시작일 뿐이라 다 쓰자면 한도 끝도 없어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부 추가 차량이 납품되고, 문제가 생기고, 또 일부는 운영되었으나, 열차 여러개를 연결하는데 문제가 많아 운영할 수 있는 횟수가 극히 제한되어 효용이 크게 떨어졌다. 중간에 열차에 문제가 자주 생겨 별로 운영도 못해본 열차는 유지보수만 잡아먹는 하마가 되었다. 2013년 9월, 드디어 모든 차량 82대가 납품이 되었고, 현재 일부 구간에서 정기적 운행을 하고 있으나, 2014년 2월에는 해저터널에서 열차가 멈춰 다른 열차로 191명이 구조되는 일도 발생해 신뢰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14년 9월, 덴마크 교통부는 이 열차를 폐기하고 분해해 저속의 지역 열차로 개조해 이용하는 것에 대한 경제성 평가를 위한 조사단을 출범했다. 이는 DSB를 파산하게 만들 수도 있는 대형 스캔들이다.

이처럼 덴마크의 공공조달은 이런 유연한 합리성에 의해 많은 예산낭비를 가져오기도 했다.

한국엔 덴마크의 행복, 복지, 녹색 성장, 디자인 등만을 보고 좋은 이야기만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면서 일반화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해답이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뭐 하나만 터지면, 선진국에서는 이러면 책임자 처벌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한다고 전국민이 공분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업무의 절차상 과실과 도덕성에 문제만 없었다면 책임자 엄벌, 이런 것은 여기선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약속 문화도, 서양 선진국은 다 약속 잘 지킨다면서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배웠는데, 알고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다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면서 공분하는 것보다는 우리 내부에서 우리의 상화에 맞는 해답을 계속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잘못된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발전을 할테니까. 그리고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문제점을 이제 인식한 단계로 해답을 찾아가기 전 단계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항상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좋아지길 원할 땐, 우리 좋은 것은 포기할 수 없고 남의 좋은 것만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런 좋은 것은 다른 나쁜 것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덴마크에 갑자기 선거철이 와서(그저께, 6월 총선을 실시하기로 발표가 났다.)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 가운데, 덴마크가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정당간 정책목표가 발표되면서 이곳의 문제가 더 피부로 와닿는다. 그래도 올해는 날씨 좋은 때 선거하니까, 날씨만 좋아지면 행복해지는 덴마크인들에게도 시끄러운 선거철도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말도 안되는 억측을 해본다.

덴마크 겨울 날씨 이야기. 그리고 해가 쨍한 주말엔 밖으로 밖으로.

북유럽의 추운 이미지와 달리 덴마크는 온도만 놓고 보면 그렇게 추운 나라가 아니다. 해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겨울은 온난하다. 지난 두 번의 겨울은 특별히 따뜻했다곤 하지만, 추워봐야 영하 5도였으며, 추운 해에도 영하 15~20도까지만 내려간다고 한다. 높은 위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따뜻한 기온은 멕시코 난류가 흐르는 대서양을 서편으로 두고 있는 편서풍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느끼기에 겨울이 크게 따뜻한 건 아니다. 습하고 강하게 부는 바람 때문이다.

42번째 주(10월 중순, 덴마크에선 주 번호가 매우 중요하다. 방학은 모두 이 주번호를 따르고, 회의 등 일정을 짤 때도 주 번호로 일정을 논하곤 한다.)를 기점으로 비가 내리지 않아도 아침에 땅이 젖어있는 가을이 된다. 이때부터 덴마크는 습해져, 잔디 아래는 항상 진창이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뼈가 시린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도 서울과 제주도의 기후가 크게 다른 것처럼 비행기로 한시간이면 올라가는 스톡홀름만 해도 겨울이 엄청 춥고 건조하다.)

기온이 높은 겨울은 저기압이 우세한 결과로 비가 많이 오고 강한 바람이 많이 분다. 기온이 낮은 겨울은 고기압이 우세한 결과로 건조하고 매우 춥다. 내가 있는 동안은 따뜻한 겨울만 있었는데, 두번의 유래없는 태풍이 왔으며, 폭우와 흔한 강풍으로 참 힘이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덴마크의 겨울을 춥게 느끼게 하는 것은 지리멸렬하게 긴 겨울의 시간이다. 11월부터 4월까지가 겨울이니, 6개월, 1년의 절반이다. 특히 3월경부터 다른 나라에서 들려오는 봄의 소식을 접하고 있으면 그 두 달이 영원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나마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태양이다. 12월 21일, 동지를 기점으로 해는 매일 5분씩 길어진다. 한국보다 짧던 일조시간은 춘분을 기점으로 빠르게 길어져간다. 아침 2분 30초, 저녁 2분 30초, 열흘이면 50분이다. 하계일광절약시간(썸머타임)을 실시하는 3월부터는 갑자기 낮이 한시간 더 길어지니 하루하루 일조시간이 길어지는게 피부로 와 닿는다.

5월은 본격적인 봄의 시작이다. 칙칙한 갈색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연두색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10시가 되어도 하늘이 완전히 깜깜해지지 않는다. 물론 비가 오는 날은 여전히 많다. 그래서 해가 뜨는 날이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덴마크 사람들은 날씨만 좋아도 행복해지는 소박한 사람들이다. 겨울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웃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봄만 되면 쉽게 웃고 인사한다. (덴마크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 달리, 낯선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다. 길에서 보는 얼굴들에, 왜 이렇게 화가 나있느냐고 묻는 외국인들이 많다. 무표정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막상 길을 물어보면 친절하다.)

주말에 날이 화창하면, 시내가 버글거린다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해를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좋은 날은 주로 주중에 온다. 오늘 낮은 해가 아주 쨍해서 기온이 17도까지 올랐다. 그렇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태양 아래 있으면 따갑고, 그늘 안에 들어가면 추운 날씨였다. 나도 이 날씨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해변에는 바비큐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보였고, 노천 카페는 사람들로 버글거렸다. 공원에도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 산보를 나선 사람으로 가득했다.

해변 잔디밭에서 책을 오래 읽고 싶었지만, 위아래 모두 검정옷을 입고 간 탓에 온 몸이 익어버릴 것 같이 뜨거워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관광객처럼 시내를 돌아다녀보기로 마음을 정하고, 회사 다니는 동안 거의 매일같이 지나다닌 뉘하운(Nyhavn)과 왕립극장(Skuespilhuset, Det kongelige teater)을 지나 코펜하겐 동편에 위치한 캐스틸러 요새(Kastellet)에 도착했다. 항상 이 요새를 둘러 지나갔지 안에 들어가본 적은 없었는데, 관광객처럼 들어가보았다. 군사시설의 느낌이 물씬 났다. 실제로도 안에 국방부 소속 건물이 있어 군인이 눈에 띄곤 했다. 왜 이곳을 안와봤었는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덕수궁에 들어가면 딴세상이 되듯이 이곳도 갑자기 조용한 딴 곳이 되어버렸다.

실업자로 지내는 요즘, 괜히 쓰는 돈이 아까워 집에 많이 있게 되는데, 역시 해가 쨍한 주말엔 밖으로 나서는 것이 정답이란 생각이다. 이제 앞으로 4개월은 덴마크가 찬란히 빛날 기간이다. 자주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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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법

동네 수퍼마켓에 간단히 장을 보러 나섰다. 토요일이지만 옌스는 일을 하러 회사에 나간터라 혼자 나섰다. 큰 수퍼마켓이 아닌터라 통로가 좁은데, 바나나를 집으려는 첫 순간부터 내 앞에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는 할머니가 계셨다. 구경하느라 길을 막고 계신 것도 아니고, 나도 급한 볼 일이 있는 사람도 아니라 굳이 실례한다고 해가며 서두르기가 그랬다. 조금 지나보니 앞에 온 할아버지와 함께 오신 모양이다. 할머니와 갈리 키가 훤칠하신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거동이 편해 보였다. 첫번째 갈림길이 아오는 곳부턴 안의 동선이 자유로워져 멀리 돌더라도 이분들 앞으로 지나가는게 편하겠다 싶어 그리했다.

원하는 것들을 고르고 계산대 앞에 다다르자, 그 근처에서 뭔가 하나를 집어들어 상의하시는 두 분이 눈에 다시 띄었다. 백발이 성성하고 거동이 다소 불편한 나이가 될 때까지 오손도손한 두 분을 보자, 얼마전에 유튜브에서 본 100 Years of Beauty: Aging이라는 동영상이 기억났다. 한달 뒤면 결혼할 20대의 한 커플을 대상으로, 지금부터 90대까지 주요 연령대에 도달했을 때 그들의 예상되는 모습으로 분장을 해서 각자, 그리고 서로에게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의외로 우리는 자신의 미래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는다. 막연한 상상을 할 뿐이지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 상상의 모습이 현실화될 때 깜짝 놀라게 된다.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충분히 예상이 되기에 그들도 그냥 주름에 놀라고 웃고 넘어갔지만, 그보다 나이가 든 모습에서는 눈물을 글썽이고만다. 현재 또는 과거 부모의 모습을 자기의 미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갖추었을때까지의 삶이 어땠을까하고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다. 보는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모습을 본 것도 아닌데, 그들의 늙어가는 모습에 나의 미래를 투영해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 내 앞에서 길을 막고 계신 할머니를 뵈었을 때만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계산대에서 두분의 대화 장면을 보고는 갑자기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지금도 여기저기 다치면 회복이 예전만큼 잘 되지 않고, 운동하다가 반복적으로 부상을 입은 곳은 그냥 약간의 만성적 통증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데, 그 나이가 되면 얼마나 몸이 불편해질까? 우리 엄마, 아빠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만성적인 증상들을 갖고 계실텐데, 지금의 건강한 나로는 그 기분을 잘 모르지만 과연 어떨까? 젊음이 지금 느끼는 것보다 크게 부러워지겠지? 이런 생각이 스쳐감과 함께, 예전에 내가 “나는 60세 정도까지 짧고 굵게 살면 좋겠어!”라고 하던 말이 얼마나 생각없이 했던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경험과 지혜를 쌓아간다는 것과 함께 갖고 있던 것들을 잃어간다는 것이 아닐까? 너무 먼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은 그와 함께 잃어갈 것을 미리 상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옌스와 함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 손주를 보게 되겠지. 그들이 잔디밭을 뛰노는 것을 보면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날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몸이 예전같지 않아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때도 있겠다. 그러다가 내가 아닌 옌스가 먼저 세상을 뜨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나보다 나이가 많고, 여자가 더 오래 살곤 하니까. 소중한 순간이 와서 그걸 그와 나누고 싶어도 더이상 나눌 수 없을 때 그 아픔이 얼마나 클까?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무던해질까?’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수퍼마켓에서 계산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와 함께 부모님을 포함한 소중한 나의 가족, 친구, 친척 등이 떠오르며 그들이 갑자기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침에 괜한 소리로 잔소리를 한 내가 괜히 야속했다.

오늘 아침, 회사 나가기 전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옌스에게, 플라스틱 장식이 달린 숟가락은 가급적이면 쓰지 말아달라고, 식기세척기에 넣기 어렵다며 부탁을 한 것이다. 금속 숟가락이 아직 남아있는데, 같은 부탁을 한번 한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에 잡히는 것을 쓴 것이 약간 신경에 거슬렸고, 말투에 그 마음을 싣지 않고자 노력을 했건만 서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가 그 미묘한 차이를 못느낄 리가 없다. 그런 말을 하자마자 괜한 소리했다 싶어 약간 미안했는데, 내 아침 식사에 들어있는 딸기를 달라는 그의 말에 얼른 분위기를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잔소리를 하며 속상하기 보다는,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하나라도 더 해줘야 하는데, 하면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도 짜증을 낼 일도 생길 것이고, 잔소리도 하고, 불평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 이런 경험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시 먹는다면 나도 그런 노부부와 같이 오래도록 오손도손 살 수 있을 것이고, 혹여나 그가 먼저 세상을 뜬다 해도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당장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현재를 살라는 말은 너무 현실감 없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간혹은 미래의 모습을 떠올려보고, 그 때도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나를 위해 현재를 잘 살아야겠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그와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 그리고 혹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내 주변에 나의 삶의 반경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돕고, 좋은 마음을 갖고 대하면서 살 수 있도록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곱게 나이를 먹어가고 싶다.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나는 하늘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를 잊고 살게 되었다. 탁트인 파란 하늘은 힘겹게 오른 산의 정상에서 땀을 닦고 숨을 고르면서야나 바라보고 좋아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몰랐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매사 시큰둥해진 모양이라며, 되려 예전엔 안그랬는데 하는 씁쓸함만 느끼기도 했다.

덴마크에 온 이후로 하늘에 다시 관심이 늘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변하는 덴마크의 날씨 때문이려니, 자주 오는 비 탓에 해가 뜨기만 해도 기뻐하며 하늘 쳐다볼 일이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어느 날, 덴마크를 그리워하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쉽게 보여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무릎을 탁 쳤다.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시선을 조금만 멀리 두면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자꾸 보이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국의 하늘과 차이가 눈에 띈다.

차이점을 열거해보자면, 덴마크 하늘은 낮은 구름이 많아서 유독 가깝게 느껴진다. 또 바람이 상시 많이 불어 스모그가 없는 덕에 해만 뜨면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위도가 달라 계절에 따른 일조량과 일조시간, 일출, 일몰의 직전과 후의 색깔이 다르다. 특히 일몰시간의 분홍빛깔 하늘은 오묘하기 짝이없다. (이는 어쩌면 덴마크에 산과 높은 건물이 없어 도심에서도 지평선 근처에서 이뤄지는 일출과 일몰을 쉽게 볼 수 있어서 다르게 느낀 것으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것뿐일 수도 있다.) 구름 모양은 또 어찌나 다른지. 어려서 좋아하던 뭉개구름은 지금도 참 좋지만, 깃털구름을 비롯해 이름도 잘 모르겠는 다양한 모양의 구름을 새롭게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것이 좋은 이유는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왜 다를까?” 하고.

구름에 대해 중학교때 배운 기억이 난다. 날씨에 대해 배우면서 배운 것 같다. 지금도 고기압, 저기압, 한랭전선, 온난전선, 층적운, 적란운 이런 용어들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런 용어만 기억난다. 아마 시험의 정답으로 써야 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구름이 왜 어떤 건 흰색이고 어떤건 회색인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구름이 하얀 것은 햇빛을 반사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회색 구름은 왜 그런 색깔인지. 인터넷을 찾아 구름의 색깔이 왜 다른지 알아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아마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덴마크가 참 좋은 나라라고는 해도 내 모국어를 쓰는 내 나라에서 사는 것과는 달라 힘든 순간이 있다. 어린이처럼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은 그간 당연시 했던 것에 질문을 던지게 하고 그런 것을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한다. 또한 새로이 주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한다. 어린이처럼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은, 간혹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부러워하곤 하는 어린이의 신선한 관점을 조금이나마 다시금 갖게 한다.

지난 3일간 스웨덴 말뫼에 아르바이트 하러 기차로 통근을 했는데, 일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국경을 넘으며 방송이 덴마크어로 바뀌니 어찌나 마음에 편안함이 찾아오던지. 변화는 사람을 일깨우고, 기민하게 만든다. 3일이라는 스웨덴에서의 짧은 시간이 이곳에 적응해가는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해주었다. 2년의 기간동안 이곳에 많이도 적응한 모양이다. 적응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각도 계속 유지해가고 싶다면 내 욕심일까. 예전엔 즐기고 경험하려고 여행을 한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삶을 더 잘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일탈이기 떄문에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다니고 많이 보자. 그리고 다른 눈을 키워가자.

청혼 그리고 결혼계획

올 해 연초, 올 해 안에 결혼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대충 했지만, 프로포즈라기보다는 그냥 상의와 결론에 가까웠다. 비자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인생 계획을 세워야 하는 탓이었다. 따라서 듣기에 형식상의 로맨틱함은 별로 없는 첫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국에서는 커플들이 사귀고 나서 오래 지나지 않아도 적령기면 대충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때로는 소개팅이나 선 단계부터 인생 계획상의 결혼 시기를 대충 밝히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서양에선 그런 법은 없다.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얼마나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판단하게 되고, 소소한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여자들이 영화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프로포즈 받으면 그리 우는 모양이다.

덴마크는 그런 절차들이 갖고 있는 로맨틱함을 이용하는 면이 적은 나라다. 감정의 과잉이 별로 없다고 해야 하려나. 사귀다보면 진지해지고, 진지해지면 같이 살다가, 결혼을 하고 애를 갖거나, 애를 갖고 결혼을 한다. 살아보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타인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확신도 없이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둘이 만나서 관계를 이루는 가장 큰 목표는 평생 함께 사는 것이다. 결혼을 결정할 마음가짐은 물론 매우 큰 일이지만, 결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게 종착지가 아니라 그 이후에 계속 사는 더 중대한 일이 남아있으니. 둘이 같이 산다는 것은 결혼을 중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만 둘이 살아보고 예상하지 못했던 요소로 너무 불행하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둘을 위해 바람직하니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같이 사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논리로는 매우 설득이 되었다. 마음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다른 나라에서 온 두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다름을 어떻게 조율하냐는 것인데, 내가 온 문화에서는 결혼전에 같이 산다는 것은, 존재함에도 숨기곤 하는 일이며, 또는 그리해서는 안되는 일에 가까운 것이라 이 점을 조율해야 했다. 이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막상 생각을 해보니 안될 일은 없었다. 나는 동거라는 관점에 크게 반대해 본 적도 없었고, 실제로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척 하는 많은 일들에 대해 위선적이라고 생각해왔으니, 그냥 남들이 그렇게 느껴한다는 이유로 내가 해서는 안될 일이 아니었다. 난 괜찮고, 내 연인이 꼭 원하는 일인데 못할 일도 아니고.

처음엔 약간 걱정도 했다. 한국에서 하는 방식과 다른데, 이렇게 해도 되나하는 생각. 여태껏 살면서 남들이 가는 길에 얽메인 적 없는 내가 왜 갑자기 그런 시선에 신경을 쓰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하는 길에 대해 나의 확신만 있으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결정했다. 그간 한번도 가진 적 없는 내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 유일한 사람이었고, 처음으로 내 인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신뢰를 갖게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4월초, 둘이 처음으로 한국에 여행을 갔다. 저녁에 호텔방에 앉아 오빠네가 선물한 와인을 마시며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을 만나고 온 터라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우리 둘 모두 조촐한 결혼식을 하기 원하는 것을 확인했다. 둘다 형식에 매우 얽메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프로포즈라는 것 없이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너무한가 싶었는가보다. 호텔방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침대에 다리를 걸친 채로 약간은 쑥스럽게, “올해 안에 결혼해주겠어?”라고 물어보았다.

영화에서 남자가 무릎을 꿇고 “나와 결혼해주겠어?” 라며 갑작스레 청혼하면 여자가 울며 웃으며(엉덩이에 털났으려나?) “물론이고말고!”를 외치는 장면을 보면, 나도 저런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랑 맞지 않는 장면이다.

그의 머쓱하지만, 진심이 담긴 청혼에, “물론이지.”라고 답을 하면서 둘이 손을 꼭 잡았다. 우리 둘의 로맨틱함은 그런 거다.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하는 것, 평소에 그런 느낌을 항상 또는 순간순간 느끼게 해주는 것. 몰론 그러고 나서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주말에는 내가 한두번 정도 요리를 한다. 어제는 아시안 퓨전(내 마음대로 한국풍 음식)을 해먹으면 어떻냐길래, 좋다고 해서 요리를 시작했다. 그는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아무것도 안하는 것에 여전히 매우 어색해한다. 뭘 돕겠다고 해도, 난 그냥 내가 하는게 편해서 내가 한다고 한다. 이제 그런 날이면 의자를 갖고 와서 좁은 부엌에 앉아 내 옆에서 뉴스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결혼 관련 준비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우리 결혼이야기일 것이라고 추정은 했지만, 혹시 몰라서, “다음달에 갈 결혼식 드레스코드에 맞춘 준비?”라고 물어보니, “아니 우리 결혼식.”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속으론 ‘꺄악~!’하고 아직 조금은 남은 나의 소녀감성이 소리를 치지만, 겉으론 침착하게, “응, 이젠 천천히 준비는 해야겠지. 당신 연수 끝나면 준비하자며?” 하고 답을 했다. 올해 계속 바쁠 것 같아서 그냥 지금 조금씩 준비를 시작해야겠다니, 그러기로 했다.

우린 시청 결혼식 이후 직계가족과 극히 소수의 친구만 초대하거나, 아니면 그것보다는 아주 조금 더 큰 결혼을 할 것 같다. 대충은 우울한 날씨의 11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한국 생각하면 정말 코딱지만한 결혼식이 될 듯하다. 이번 여름, 10박 11일의 여행은 우리의 미리하는 허니문이 되겠으니, 이 여행이 더욱 기대된다.

보리가 이 결혼식에 함께 못할 것 같아서 그게 가장 안타깝다. 잠깐이라도 데리고 오시라고 할까? 고민이 된다.

Having a wonderful partner in life. Declaration of my love to my loving partner.

“There is a right one for you out there, somewhere.” say many people and they also say, “Just be patient. Live you life. Then everything will come along.” I was the one skeptical about this. How do they know that there’s a right one for me? Just like the people who have a great partner in life, there still are a fair share of population that couldn’t find the one till the end. How can I be sure if I am one of those finding the right one?

I still don’t believe that everybody can find the right one in life. As a person, studying economics, I should say, it’s due to market failures, due to inequality in information of possible relationship matches. And I think that it’s impossible to fix this problem. One of main problem, makes it impossible, is that one doesn’t know perfectly about one’s own preferences or even oneself. We, human beings, are so complex and from every day learning we change all the time. So even if we can understand ourselves perfectly at any given moment, we will change soon and we cannot keep on track of that all the time. Therefore we will never know what is best for us in terms of relationships until it happens to us. When it happens, I think it is a miracle and such a nourishing experience.

I finally found the one in my life, letting me say with confidence that I found the one, my Mr. Right.  I have met many people, most of them were not in any serious relationships though. Still I struggled so much that I became skeptical about relationships and having a good family in modern days, where people are being so calculating and materialistic. I wasn’t the most beautiful or feminine or rich girl and many failures in budding relationships were good enough to let me down in the dating markets. But I kept on trying to put myself out there to meet someone, because I still had a little hope that it’s only due to market failures why I couldn’t find the right one.

Now that I am soon turning to 35 in a month, it has been 15 years of searching for someone. There were years that I stopped actively looking, but there were also many countless moments that I felt very lonely for not having a boyfriend.

I didn’t know what I was looking for from a partner, and even worse was that I completely misunderstood what I liked. I thought I was looking for the so called manly quality that one can easily detect even from a glance. But I have been looking for someone who understands me, even the complicated side of me, and who loves me the way I am, which I don’t love sometimes myself. The one should understand the tomboy side of me and elegant side of me, not being confused by extreme spectrum of my characteristics. I have been looking for someone who lets me learn from him not by pushing but by showing his way of life. It is someone that I can intellectually challenge myself, by having many discussions about different topics in-depth. The one has to have those qualities that I could admire but not to brag about those. And the person should be my mental safety net, that I could be sure that the person would love me still, even if I fail for everything, so that I could start over again on a fresh ground. And the one has to be fun to be around and that I can giggle without being conscious about how weirdly I giggle. The one will be someone can laugh for a small thing, and can share small moments to smile upon. The one remembers small remarks and drop a note reminding those, which incredibly makes me happy. And many more. How demanding and picky I am!

I didn’t know that I could find someone like that, because I haven’t experienced that before. It’s a miracle. He makes me happy and makes complicated things so simple.

I have never loved anyone before, because even when I said I loved someone, I was never sure what love was about. But now I know. I am so happy and I love him so much. This is a pure declaration of love to Jens.

How lucky I am to have you in my life. You are the source of the power to let me keep this journey to a new life, away from my home town, my family and friends. Thank you for being a wonderful partner in my life. I love you, Jens.

현지에서 배우는 언어의 학습곡선

언어는 그 말을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 살면서 배우는 게 빠르다는게 맞다는 걸 거의 매일 실감하고 있다. 아직 그린카드비자로 변경이 완료되지 않아 수업료 내면서 비싼 수업을 듣고 있긴 하지만, 학원을 최근 바꾸고 모듈도 3으로 올라가면서 빠르게 늘고 있음을 느낀다. (사족. 요즘 그린카드 발급에 6개월 이상이 걸린단다.)

언어 배우는 것을 취미로 여겨온 터라 언어의 학습곡선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간 몸소 느껴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해당 국가에 직접 살면서 배워본 것은 처음인지라, 이를 보다 명확하고 빠르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초반에는 주변 모든 것에 흥미를 느껴 금방 이것 저것 조금씩 말하는 것이 가능해, 그 전에 하나도 말을 못하던 것에 비하면 빠르게 느는 것 같아서 흥분된다. 길에 보이는 싸인 하나하나도 새롭게 보이고, 그것을 이해하는 나를 보면서 흥분하게 된다. 그 신기함에도 익숙해지고 나서 그런 느낌이 사그라들고 나면 내 실력의 현주소를 다시금 무겁게 확인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모국어로 표현해내는 풍성한 내용인데, 나는 아주 어린 아이와 같은 수준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별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크게 느끼고, 누군가에게 이 언어로 대화를 시도를 하기에 스스로도 답답하다보니 할 수 있는 언어로 전환하고 싶어진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크게 안느는 것 같은 시기가 온다.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현지생활에서 단순하게 쓰는 말들이 익숙해진다.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하거나 등 자주 반복되는 말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도 말 할 수 있게 된다. 내 말을 알아듣기만 해도, 그리고 그 대답을 대충 짐작하고 답변하는 것으로 감동받던 시기는 어느새 과거가 된다. 막상 이런 단순한 대화는 늘었는데, 조금만 주제가 복잡해져도 대화가 삐그덕거릴 때 다시금 이 말은 언제 느는 것인가 하면서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내 말의 속도와 발음이 개선되면서 상대도 평상시처럼 대화를 하면, 다시금 대화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리고 방송과 전화 등 비대면 언어는 알아듣기 매우 힘들다. 분절되지 않은 소리의 덩어리가 뭉게져 스쳐지나간다. 웅얼거리는 것만 같은 소리. 또는 뭔가 들리는 것 같지만 그 소리를 머리에서 처리하기에 실제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와 내 머리에서 언어로 재구성하는 속도사이에 격차가 너무 크다. 새로운 소리가 계속 흘러들어오는 탓에 새로운 말을 듣지 못하거나, 내용의 해독을 할 수가 없다. 매일 듣는 지하철 방송도 무슨 이야기인지 남에게 물어봐서 다 알고는 있지만, 그 소리가 나에겐 완벽하게 들리지 않는다. 매일 듣는 방송도 아직도 안들리다니, 하면서 도대체 언제 느는지 싶고 지친다.

어느날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낀다. 뭉게져 들리던 소리뭉치가 깨끗한 음절로 분화되어 들리고, 라디오 방송도 들리기 시작한다. 집에 오던 광고 전화에 덴마크어 못한다고 초장부터 이야기하던 내가, 덴마크어로 대화를 끝마친다. 주로 왜 걸었는지 설명 듣고, 옌스가 집에 없고, 언제 올 것인지, 또는 내가 답해줘도 되는 전화이면 그 답을 해주는 정도에 그치지만, 장족의 발전이다.

귀가 뚤린다는 것은 어휘의 증가와 현지인이 말하는 말투에 익숙해지는 것, 내가 기존에 하던 말을 번역하지 않고 그나라 말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 다 결합되어 생기는 일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귀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방송에 나오는 말들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더라도 소리가 정확히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 덴마크어 배운지 9개월 거의 가 되어가고 있으니, 대충 만 8개월차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나니 ARS 음성 안내가 더이상 스트레스가 되지 않고, 집에 간혹 전화가 오면 대화를 할 수 있다. 1년 정도면 귀가 뚤린다고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겠다.

영어 공부의 경험을 토대로, 모르는 단어를 맥락으로 파악하고 넘기는 노하우와, 꼭 이해해야 하는 동사를 파악해서 사전을 찾는 노하우가 쌓인 덕에 신문도 이제는 대충 내가 아는 주제의 기사라면 집중해서 읽어낼 수 있다.

옌스와 덴마크어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고, 한시간 대화는 큰 스트레스도 없다. 매일 무슨 일을 했는지, 수업에 무슨 공부를 했는지 설명을 하다보니 반복 학습도 되서 좋다. 덴마크어는 발음만이 아니라 영어와 조금 다른 문장상의 강세 표현이 중요한데, 옌스와 최근 들어 시작한 읽기 연습이 강세표현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게 말을 알아듣는데도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대학원 졸업하기까지 약 3년의 시간 동안 덴마크어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만 늘어준다면, 앞으로 이곳에서의 삶이 참 좋을 것 같다. 주변에서 남친이나 남편이 자기의 덴마크어를 인내해주지 않아서 언어가 늘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많은데, 연습만이 숙달의 지름길이라면서 채찍질을 해주는 옌스에게 감사의 말을 (본인은 이 글 이해 못하지만…) 하고 싶다. 그리고 빨리 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나에게, 그러다가 또 잘 안되는 날이 오기도 하고, 그게 또 당연하다고 이야기해주는 게 참 고맙다.

물론 덴마크어가 영어와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속도의 발전이 가능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곳에서 살지 않았다면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학습곡선이다. 이곳에서, 한국에서 산 이상의 시간을 살게 되면 언젠가 영어보다 덴마크어가 편해지는 날도 있겠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제논의 역설이 성립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것은 농담.)

Mennesker, Folk og Personer

Mennesker

1. Især efter et eller flere andre ord, som det er “sammen med”.

Eksempler

– Jeg tror, der er over tusind mennesker med det her tog.

– Der er altid så mange mennesker med toget om morgenen.

– Jeg gider ikke høre andre menneskers private telefonsamtaler i toget.

2. Man dropper tit mennesker og siger bare fx de fleste, mange, nogle, unge

Eksempler

De fleste sidder og kigger ud ad vinduet. Der er også mange, der sidder og sover i toget.

Nogle læser, og mange unge hører musik.

3. Man siger aldrig mennesker sammen med et nationaltetsadjektiv. Man siger danskere/danskerne.

4. Mennesker “alene” betyder mennesker som biologisk art (altså ikke Gud, ikke dyr, ikke maskiner).

Eksempler

– Mennesker kan tale. Det kan dyr ikke.

Folk

Som regel “alene”

Eksempler

Folk bliver så aggressive, når der er meget trafik.

– Jeg kan ikke lide, når folk har lange private telefonsamtaler i toget.

Personer

1. Mest sammen med tal og med et praktisk formål.

(formål: purpose)

Eksempler

– En taxa til 6 personer, en 3-personers sofa.

2. Også ofte i forbindelse med statistik og officiel information.

(forbindelse: connection, i forbindelse med: in connection with)

Eksempler

– Gennemsnitligt antal personer pr. bil: 1,7.

(gennemsnitligt: average, antal: number)

Source : Det Kommer! Dansk som andetsprog på mellemtrin. Bodil Jeppesen og Grethe Maribo, 2008 Alfabeta, København

Starting a 30 day squat challenge

After having a small injury in my right hip joint from extreme stretch, it has been difficult to go for ballet training on a regular basis. What a shame. I took a break for a while due to busy schedules and a trip to Korea, and felt a little hasty to get back to the normal fitness. So, there I made a mistake, stretching too much while not warming up the body enough. Urghhh. I got this pain in my right hip joint and I remember that it takes several months to get back to normal.

Turning out, an essential part of ballet, can be dangerous for hip joints, if practiced wrongly like I did.

I am gaining weights again because of my gaining appetites. I am losing my muscles and definitions in muscles. NO GOOD. Something really has to be done.

30 day squat challenge. It can be hard on the knees, but it can also be prevented. So, today is the first day. 50 squats. After dancing ballet, 50 squats are not difficult any more. However 250 squats could be a real challenge. I would like to see the result at the end this challe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