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끝 재취업.

재취업.

작년 말부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재취업…

환경경제학으로 1~2년 일한 주니어가 취직할만한 자리는 정부부처 중심으로 나오고, 컨설팅은 프로젝트를 이끌만한 정도의 경력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정부부처는 대부분 탁월한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고 있었고, 분석 보고서를 쓰는 자리에 있어도 대부분 그 보고서가 활용되어 제도를 도입하는 데 역할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법과 가깝게 지낼 수 있어야 했다. 그건 그 직전 직장에서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던 요소 중 한가지였다. 즉, 내가 원하는 자리가 잘 나오질 않았다.

그러니 내가 공부한 것을 활용해서 직장을 다시 잡는다는게 요원해보였고 시작부터 패배주의에 젖어있었다. 안될 거 같다는 내 프로필에 딱 들어맞지 않는 직종 몇군데로 통계청이나 조금 더 제너럴리스트 포지션에 지원해보고 서너번 미끄러지고 나니까 정말 다 안될 거 같아서 더 위축이 되었다.

더군다나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 쪽 길을 다시 걷고 싶어진다면 공백기간이 너무 길어져도 안되니까 뭔가 시도해보려면 지금쯤에는 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애매한 취업활동이었다. 덴마크의 물가를 생각하면 내 개인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은 취미 용돈 벌이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이걸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본격적으로 돈이 벌리는 아이템을 만들던가 다른 걸 하던가 해야했다.

옌스에게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른 공부를 하기엔 대학원 졸업한지 얼마 안되서 입학이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뭔가 기존의 학업과 관련없이 구할 수 있는 일도 생각해봐야했다. 가장 쉽게 떠오른 건 보조보육교사. 유치원과 보조보육교사는 경력이 없이도 취업을 할 수가 있었다. 경력을 요구하는 데도 많지만, 경력 없이도 취업할 수 있는 곳도 많았으니까. 애를 보육원과 유치원에 보내면서 만나게 된 선생님들을 보면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하루하루 손에 쥘 수 있는 그 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정말 hands-on한 일을 하는 것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옌스는 거의 재취업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나를 과소평가하며 다른 길로 방향을 틀려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내가 정말 다른 길을 원한다면 원하는 걸 해보라고, 그냥 회피하기 위해 선택하지 말고 곰곰히 생각해보라 했다. 그리고 그럴거면 이사 간 뒤에 취직을 하라고 했다. 마침 집도 사서 이사와 관련해서 할 일이 많으니까.

당장 일할 건 아니지만 미리 살펴나 보지 하는 마음으로 보조보육교사 채용공고를 살피며 뒤적거리다가, 기대를 내려놔서 마음이 편해져서 그랬는지, 부담 없이 환경경제학 관련 공고도 좀 살펴보게되었다. 마침 눈에 띄는 곳 두군데가 눈에 있었다. 이미 여러번 미끄러져서 기대도 크게 없었는데, 한군데에서 면접을 보자고 했다. 분위기도 좋았고 커뮤니케이션도 화상임에도 아주 매끄러워서, 이제 취업해도 일하는 데 커뮤니케이션이 장벽이 되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탁 들었다. 그새 확실히 늘긴 늘었구나…하는 생각. 사실 두군데 쓰면서 하나를 두개 문서로 나눠 저장한 후 필요한 것만 바꿔 쓰다가 두군데 모두 같은 팀명을 써내는 실수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에 불러준 거라 나의 자신감을 살려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자신감을 얻어 마침 재미있어 보이는 곳, 두군데에 이력서를 또 냈는데 다 면접에 불러주더라. 면접에 들어오는 사람 중 실무자가 기존 일하던 청에서 협업 파트너로 간간히 만나 회의하고 피드백 주고받고 하던 사람이어서 예감이 좋았다. 1차 면접인데, 인성검사에 케이스 테스트까지 있다고 하며 코로나 시대에 물리적인 면접으로 불러내던 이 곳에서 결국 이른 아침 면접을 보고 그날 점심 먹고 다른 곳 1차 면접 보러가는 길에 잡 오퍼를 받았다. 여기는 1, 2차를 구분하지 않고 한번에 다 보는 곳이었던거다. 보스가 될 사람에게 전화로만 통보를 받은 거라 서면으로 오퍼를 받기 전까진 확실하지 않으니까 (법률적으론..) 다른 곳에도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니 오퍼가 서면으로 와있었다. 덴마크에서는 잡오퍼에 고용에 대한 확약의 표현이 있으면 이걸 토대로 기존 직장에 퇴사통보를 해도 안전한 고용 문서가 되기에 집에 와서 옌스와 상의를 조금 한 후 월요일에 있을 다른 곳 2차 면접(나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줬던 그 곳)에 면접 초대 거절 메일을 보냈다.

덴마크어 티칭과 번역, 기타 책 쓰는 일, 유튜브 등은 일부는 꾸준히 하고 있고 일부는 잠시 중단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제 불확실성이 모두 제거가 되었으니 편한 마음으로 오히려 더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잘 하고 못하는 게 뭔지 알고, 그 모든 걸 편하게 인터뷰에서 털어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못하는 걸 할 수 있는 척 해봐야 너무 힘들고 포기할 걸 아니까. 사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일할 수 있는 덴마크어 실력도 전 직장의 혹독한 현장 체험에서 다져진 거긴 한데, 결국 관둔 걸 경험해봤으니… 그걸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고 내 기대와 각오를 다 풀어놓고 나니 채용이 되어도 마음이 조금 더 편하다. 글을 남들처럼 화려하고 멋들어지게는 못쓰겠지만 보고서의 목적에 맞는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에는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도 해두었고, 외국인과 근무한 경험이 있는 상사라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력서나 대화, 케이스 프레젠테이션 등을 보면 언어는 걱정이 없다고 했으니까. (뭐 경쟁소비자청에서도 그랬는데, 이번엔 내 느낌이 다르다.)

또 공무원이냐고, 공공부문이 체질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공공부문에 있는 이코노미스트일 뿐이다. 내가 받은 교육이 그런 자리에 가게끔 짜여진 거고 (정말 딱 그렇게 짜여져있더라. 난 이 자리에 있기 위한 수업들을 들어왔다.) 그런 일을 주는 자리에 간것 뿐이다. Forsyningstilsynet, 영어로하면 Danish Utility Regulator로 Center for Analyse (분석센터)에서 fuldmægtig økonom, 경제 사무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논문쓴 것에 더해, 논문 지도교수와 협업을 하게 되어 계약직으로 COWI에서 프로젝트 일을 했던 것, 경쟁소비자청에서 하던 일 이게 정말 다 엮이고 잘 엮여서 지금 자리를 얻게 되었기에 얼마나 이 일련의 우연이란 게 우리 인생을 엄청 크게 좌지우지하는구나 하는 것도 느끼고.. 여러모로 느끼는게 많다.

긴장도 되고 설레고… 5월 1일은 진짜 여러면에서 중요한 날이 되었다. 우리 새집 넘겨받는 날, 내 첫 출근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새집 사고, 하나 유치원도 원하는 시기에 시작할 수 있어서 내 올해 운 다 썼나 했더니 이렇게 취직까지. 2021년이 참 좋은 한해가 되는구나.

이제 죽이되든 밥이되든, 일을 잘 하든 못하든 오래 잘 버티고, 장수해보자. 코트라에서 장수한 마음가짐이면 여기서도 장수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겸손하되 패배주의나 냉소주의로 돌아서지 않도록 나에 대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참을성을 가져주자. 차로 30분 가야 하는 곳이라 절반 이상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이니 이 유연함을 통해 애도 잘 키워보고.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일지어다. 이 마음가짐 잊지 말자. 먼 곳이라 차를 또 사야 할 수 있는 곳인데도 흔쾌하게 내 온전한 의사결정을 지지해 준 옌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해외 나와서 취업을 하려는 모든 취준생에게도 이 좋은 기운이 흘러가기를…

Værløse, 새로운 터전

여러가지가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다. 5월 7일부 이사를 가게 되면 새 지자체에서 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제일 이른 날짜가 6월 1일인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치원 자리가 나서 바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보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할 지 몰라서 그냥 보내기로 했다. 안에 들어가서 본 건 아닌데 유치원 밖에서 봤을 땐 규모도 적당하고 괜찮아보였다. 지금 유치원에 익숙해져 있어서 너무나 아쉽긴 하지만, 또 하나에게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말이다. 마침 한국에 다녀온 한달 사이에 친구들의 다이나믹이 달라졌는지, 자기가 놀이를 만들어내는 인기있는 주축이었던 것에서 조금 밀린 탓에 간간히 재미없다고 불평도 하고 집에 있고 싶다고도 하는데, 새로운 유치원에 가기 전에 그런 경험을 작게나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집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넓어보이거나 좁아보이는 곳 등 방이나 구획마다 느낌이 달랐다. 전체적으로 마음에 쏙 들고, 여기가 내 집이 될 곳이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일부러 짐 싸기 전에 불러서 집의 느낌을 보여주는 매도자의 마음 씀씀이도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집을 어떻게 쓸 수 있을 지에 대한 느낌이나 그런 것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실용적인 것들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도 듣고 알찬 한시간을 보내고 왔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대신에 지하 창고도 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공동 공간도 있고, 차고도 널찍하고 해서 이런 곳들에 있는 짐들을 잘 보관할 장소들이 있을까 했더니 왠걸… 다 곳곳에 수납공간이 숨어있었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니 자연이 큰 틀을 차지하고 있는 동네였다. 집집 사이사이마다 작은 공원이나 오솔길이 숨겨져있고, 약간 외곽으로 벗어난 곳 답게 높은 건물이 없어서 시야가 탁 트여있고 말이다. 그 동네 사는 사람들 중에 동네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못봤다. 우리 집을 팔고 나가는 매도인은 바로 같은 길 끝의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가고, 하나 친구네 조부모님도 같은 길에 사신다는데 이번 7월에 같은 동네 다른 집으로 이사가신단다. 나쁘지 않은 사인… 벌써 기대가 너무나 된다. 이사를 가서 우리 터전을 다질 그 시간이…

사람 냄새 나는 이곳

 오래간만에 인스타그램을 컴퓨터로 들어가서 내 계정을 훑어내려갔다. 타일처럼 나열된 사진들을 훑어내리며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했다. 덴마크로 넘어와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구나. 이렇게 많은 것을 경험해도 아직도 경험할 게 새로이 많구나. 한국에 있었어도 새로이 경험할 일이 많았겠지만, 외국에서 경험하는 것이다보니 간접경험의 폭도 적어서 더욱 새롭고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이제는 새로이 집을 사면서 매매절차와 더불어 이사가는 것에 수반된 부대절차와 챙길 일들이 있어 이와 관련된 경험을 하고 있다. 오늘은 나에게도 옌스에게도 신선한 일이 있었다. 오후에 이메일 알람 진동이 드르륵 와서 발신자를 보니 우리가 산 집의 현재 주인인거다. 집 주인이 벌써 우리에게 연락할 일이 뭐가 있지? 해서 열어보니 집을 아직 보지 못한 나를 위해 가구 빼기 전에 집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한국에서 옌스에게 부동산 물건을 찾아서 한 번 가서 보라고 하고, 옌스가 마음에 든다고 하자 집을 사자고 제안한 건 나지만, 막상 덴마크에 돌아오기 전에 계약이 다 끝나서 나는 집을 본 적이 없었던 거다. 귀국 이후 동네에 찾아가서 집 주변과 동네를 둘러보긴 해도 안은 볼 수 없어서 참 아쉬웠는데 말이다.

테라스쪽 전경 / 정원은 없는 집이지만, 바로 뒤편에 공터가 크게 펼쳐져 있어서 이를 그냥 정원삼아 누릴 수 있다.
테라스 쪽 공터 전경 / 비가 많이 오면 하수구로 바로 빠지지 않고 지표면에서 물을 지연시킬 수 있는 저장공간으로 활용되는 지역인가 보다. 시에서 여기는 주택용지로 지정하지 않은 지역이다. 탁 트인게 좋다.
공터에는 작은 그네도 있다. 그냥 애들 뛰어다니기에 좋은 곳이다.

매도자인 부부는 옌스보다는 젊고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즉 우리 또래 부부고 아이들은 조금 더 큰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우리 건너편 집에서 다섯집만 더 가면 나오는 집으로 조금 더 넓혀 이사가는 거였다. 즉 동네 이웃으로 남는 거였다. 이메일에는 동네 이웃으로 만나게 된다는 내용과 함께 우리 집 왼쪽 오른쪽편 집 주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고 그 중 한집이 참 오랫동안 레보베이션 하느라 시끄럽게 했으니 이사오면서 조금 시끄럽게 하는 걸로는 신경쓸 필요 없다는 팁도 알려주었다. 더불어 우리가 이사가게 될 즈음에 자연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동네 분위기는 어떤지도 알려주고 말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우리가 먼저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열쇠를 실제 부동산 인수일보다 먼저 넘겨줄 수 있다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럴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옌스가 굳이 그걸 걸어서 계약을 복잡하게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해서 상대가 아무 말이 없는 이상 그냥 내버려두었다. 4월 1일 열쇠를 넘겨받기에 부활절 연휴에 이사를 갈 거 같은데 정확한 일정은 몰라도 다 이사짐을 빼고 나면 열쇠를 넘겨줄 수 있다는 거다. 우리야 그래주면 이사 전에 저녁과 주말 시간을 빼서 집도 청소하고 페인트칠도 미리 완료하고 깔끔하게 이사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은데 말이다.

나쁜 경험은 빨리 잊어버리는 편리한 뇌를 가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덴마크에 와서 나쁘거나 불쾌한 일을 겪기보다는 즐겁고 유쾌하고 따뜻한 경험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내가 여기가 내 땅이 될 곳이라 결심하고 마음을 열었기에 그렇게 느꼈는지, 아니면 그렇게 느꼈기에 마음을 연건지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경험으로 가득 채우는 이곳이 나에겐 더욱 집과 고향처럼 느껴지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벌써 7년

옌스와 연애를 시작한 게 바로 7년전. 뭔가 오래되지 않은 과거 같기도 하면서 7년밖에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이상하다. 덴마크 나와서 딱 반년 지낸 후에 옌스를 만났으니 덴마크 살이도 7년 반이 되었다는 이야기구나.

내 인생에 작고 큰 챕터가 여럿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챕터의 시작은 옌스와의 만남이다. 옌스를 만나고 사랑을 알았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고, 배려가 어떤 건지 배우게 되었다. 나의 장단점을 보다 잘 알게 되었고, 내 단점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인생의 닻과 같이 거친 풍랑이 와도 나를 단단히 붙들어줄 옌스를 만나 나는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와 나는 서로 보완이 많이 되는 존재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사랑을 일상 속에서 느끼게 해주고 나의 존재를 기쁘게 받아들여주는 그가 있어서 힘든 순간에도 버틸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서로를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존재. 옌스를 만나기 전엔 실패한 많은 연애를 거치고 나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고 단언을 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와의 만남으로 그런 생각이 다 뒤집어졌다.

7년의 시간이 지난만큼 우리도 나이가 들었다. 거울을 보면 우리 얼굴에도 주름이 늘었고 머리카락에도 세월의 흔적이 발견된다. 나는 머리 속 새치가 늘어서 간간히 뽑아주느라 바쁘고, 옌스 머리는 갈색에서 회색으로 바뀌었다. 우리 사랑의 결실인 하나가 네돌이 지났으니 놀라울 것도 없지.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오순도순 잘 살아가길…

시간은 흐르는데 머리는 복잡하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 2월이 다 가고 있다. 어쩌면 시간은 이리도 잘 흘러가는지. 올 한해의 1/6이 거진 다 지나간 거 아닌가? 시간이 나이에 비례해 빠르게 흘러간다고 하더니, 내 나이 마흔에 맞춰 시간도 빠르게 흐른다. 인생의 전반전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이구나.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꾼 것도 거의 1년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와 포옹을 나누지 않은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언제 그렇게 포옹을 나누며 살았다고 친구와 만나고 헤어지는 데 가까운 품을 내어주고받지 않는 지금이 매우 어색하고 아쉽다. 제대로 인사나누지 못하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포옹을 나누기에는 혹여나 있을 지 모르는 감염위험이 두렵다. 거리를 확 두는 것도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건 부담스럽다. 내가 옮을까봐서라기 보기는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상황이고 각자가 어느정도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걸릴 수 있는 지 모르는 상태라 내가 옮기든 상대에게 옮든하는 상황이 혹여나 생길까봐서이다.

내 인생은 표류하고 있다. 정확히 뭘 원하는 지 모르겠다. 우선 지금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일하지 않아도 등 따숩게 잘 수 있는 집이, 단란한 가족이 있고, 먹고 입는 것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아이는 쑥쑥 잘 자라고 있으며, 좋아하는 친구들과 선생님과 즐거운 유치원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을 다녀와 한국어에 관심과 자신감이 조금 늘었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경제적 자립이 요원하다는 게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한다. 누가 번 돈이면 어떠랴하고 쿨하게 생각하면 좋은데, 그래도 그렇지가 않다. 너무 힘들다고 관둔게 너무 배부른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들면서도, 엄청 스트레스 받으면서 생활했을텐데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마음도 한켠에 든다. 내가 새로이 벌인 일들에도 좋은 것과 아닌 것들이 섞여 있는데, 경제적인 요소에서 좋지 않은 부분이 있다. 혹여나 내가 전공했던 일들로 돌아가고 싶어진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서 기웃기웃 채용공고를 들여다보고 지원도 하게되는데, 지원 가능한 것들은 대부분 내가 관둔 일과 비슷한 프로필의 일들이라 그게 내가 원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에 망설이게 된다. 솔직히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닌 것인데… 내가 원하는 것일거라 생각해서 뛰어들고 보니 그렇지 않은 시행착오를 자꾸 겪으니까 앞으로 나아가기 망설여진다. 다음 걸음이 또 잘못된 걸음이면 어쩌지? 그게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것을 너무 어렵게 하면 어떻게 하지? 등등 생각이 많이 든다. 벌여놓은 일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고 인생의 판이 확 바뀌고 나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등이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절대, 완전히 등과 같은 말은 섣불리 쓰지 말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 전에도 몸을 쓰고 내 눈 앞에서 결과가 보이는 일들이 재미있었는데, 배운 게 아까워서, 돈을 잘 벌기 어려워서 또는 힘들어서 시도해보지 않은 일들이 많았는데, 그걸 지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 발걸음을 내딛지는 못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천천히 표류하듯이 시간을 보내며 생각을 조금 더 해봐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하다.

코로나 제한조치 속 한국방문 단상

덴마크와 한국 모두 강도높은 코로나 제한조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양태는 다르다.

덴마크는 사적인 공간에서 모이는 것에 대해서는 5명 초과해서 모이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이를 강제하지 않는다. 막힌 공적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쓰게 하지만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수퍼마켓과 약국, 테이크아웃 목적으로 한 카페와 식당을 제외하고는 오프라인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기타 문화 공간도 다 닫았다. 학교는 모두 닫고 온라인 교육으로 돌리고, 근로자의 경우도 물리적 출근이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다 재택근무로 돌렸다. 보육원, 유치원은 정상적으로 운영하지만, 아이들을 소그룹으로 나누기 위해 가능한 8:30-15:30 기간동안만 맡기고, 재택 보육이 가능한 경우 보내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의 학교, 보육, 근로 관련은 모르겠지만, 5인 이상 집합금지과 항상 마스크착용 의무화를 제외하면 거의 일상이 그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영업시간은 제약이 있는 것 같은데 애 있는 엄마로 영업시간 제약은 애초에 느낄 일이 없어서 나에게는 여파가 없었다.

애가 있기도 하고 안그래도 코로나로 사람간 간격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밀폐된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는 시설은 피하기도 했는데다가, 사실 머무는 기간 중 1주일을 제외하고는 누구를 만나거나 만날 계획이 없기 때문에 크게 코로나 제한조치를 느낄 일은 없었는데, 사람이 주변에 거의 없는 야외에 있어도 마스크를 상시 쓰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상속 여파를 덴마크에서보다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써서 그런가? 아니면 사람이 많아서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하도 많으니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포기해서 그런가? 아무튼 사람들이 카페나 상점에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과하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거리를 유지해달라고 하면 아차 싶다는 표정으로 거리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구는 내가 요란스럽게 느껴질 정도였고, 계산대에서는 계산을 하러 줄 선 사람과 계산을 끝내고 나가는 사람의 동선을 분리하는 게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엉키니 거리 유지가 어렵기도 하고.

마스크를 어디 가든 써야 하니까 애를 데리고 사람 많은 곳에 잘 안나가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걸어다녀도 읍내에 나가지 않고는 사람 그림자도 보기 어려워 마스크를 안써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홍천에 쳐박혀 동네 산책 하는 것에 만족하게 된다. 그런데 애랑 오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자연이 있으니 이러저러 활동을 통해 놀이터를 대체시켜줄 수도 있고. 아마 이래서 마스크를 야외에서도 쓰게 하는가보다. 나오고 싶은 의욕을 아예 꺾어버리도록. 그래서 그런가. 산책하면서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통통하거나 마르거나가 대부분이고, 덴마크 아이들처럼 탄탄한 근육을 가진 애들은 보이지가 않는다.

코로나는 우리가 알던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구나. 대충 올 가을까진 꼼짝없이 이 코로나 시국이 유지될 것 같은데, 자연이 바로 코앞에 붙은 곳으로 이사가게 되는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애를 조금 더 편하게 풀어놓고 숲으로 호수로 다니며 야외활동을 늘릴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말이다.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집을 계약했다.

일요일에 옌스가 집을 보고나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방 두개 크기가 생각보다 작은 거 빼고는 괜찮다고 하는데, 좋은 마음을 애써 절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별로였던 마음을 확 드러낸 것 같기도 하고 문자로는 정확히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전화를 했다.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온 것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을 보고 느낀 건 평소에 관리가 잘 된 집이라는 거였는데, 정말 그랬던 모양이다. 이미 매물로 올라온지 한 달이 지났던 터라 뭔가 사진에 안드러나는 하자가 있었나 했는데, 그냥 우연히 그랬던 것 같다.

지난번에 부동산 매매 트렌드를 잘 몰라서 여유있게 움직이며 집 한번 더 봐도 되냐고 물었다가 팔렸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신속하게 움직였다. 괜히 내가 한국에 있다고 기다릴 게 아닌 거 같았다. 이미 옌스가 보러갔던 날 거기에 있던 다른 사람도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옌스랑 역할을 나눠 나는 변호사를 알아보고 부동산에 오퍼를 던지고, 옌스는 은행대출 사전승인을 맡았다.

일요일에 변호사를 찾아두고 월요일 오전에 은행과 변호사에 연락했다. 부동산에 일요일에 이미 연락을 해두었더니 은행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매도인과 상의할 수 있다고 하더라. 빨리 접근해야 괜히 입찰 형식의 가격경쟁으로 흐르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 집 보러가기 전부터 가격 전쟁에는 관심이 없다하며 이미 협상대상 있으면 안보겠다고 부동산에 이야기해두었기에 그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고, 부동산에서는 사실 누가 사든 수수료수입이 엄청 크게 차이나는게 아니니 빨리 확정을 하고 싶을 터였다. 관심있는 사람이 또 있으니 빨리 추진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언질을 주었다는데, 그 내막이야 모를 일이라도 우리는 마음에 들었고 시장에 나온 가격에서 조금 더 깎고 하느라 집을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오후에 이미 은행 사전승인을 받아 부동산에게 오퍼를 던졌고, 다음날 부동산은 우리의 신원 조회 등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기 시작했다. 5년 이상 거주해야 외국인이 부동산을 살 수 있는데, 그거야 문제될 것 없었다. 변호사는 우리가 계약서에 변호사 검토 조건부 계약을 명시하면 혹시 문제되는 요소가 있으면 그때가서 조율하면 되니 계약서상 이견이 없으면 서명을 하라고 했다. 화요일에 집과 관련한 일련의 문서를 다 받고 수요일, 오늘 오전에 계약서를 받아 낮에 서명을 했다. 그리고 바로 오후에 상대도 서명을 했다.

변호사가 관련 문서를 다 검토하고 난 후 다음주 월요일에 변호사와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거기에서 문제가 없으면 계약금 치르고, 집 상태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집소유주 변경 보험 가입하고, 나중에 잔금 치르고 5월 1일부로 열쇠를 넘겨받게된다. 우선 그 사이에 주식시장이 어떻게 될 지 몰라 둘다 후딱 다운페이할 금액에 해당하는 주식을 후딱 팔았다. 장이 좋아서 주식도 눈깜짝할 새에 팔리고…

딱히 집을 수리할 건 아니라서 페인트칠 하고 바닥 좀 갈고 청소 싹 하고 들어가면 될 것 같다. 물론 우리 나올 집도 페인트칠 하고 청소 싹 하고 나와야겠지만… 5월이면 4개월인데, 귀국해서 자가격리도 좀 하고, 하나 유치원 대기도 걸고 집 가구 배치도 고민하고 하다보면 후딱 시간은 갈 것 같다.

첫 집을 이렇게 보지도 않고 계약해서 얼떨떨하고 현실감 없지만, 둘 다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을, 너무나 매끄러운 과정을 통해, 아무런 갈등 없이 계약했다는 점에서 기쁘구나. 이제 집 계약이 아무런 문제없이 매매로 이어지기만을 바라고, 그게 되면 하나에게 말하는 일만이 남았다. 다 마무리 잘되길…

나이 듦과 자연선호의 상관관계

오래간만에 한국에 왔다. 부모님이 계신 홍천까지 공항에서부터 방역콜밴(이라 쓰고 운전자석 옆으로 비닐천막 하나 친 콜밴)을 타고 오느라 22만원이 들었지만, 중간중간 졸기도 하면서 왔다. 우리는 아침에 도착했지만 늦은 오후부터 펑펑 내린 눈으로 서울 교통이 마비되었다니 얼마나 운이 좋으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라 자가격리 2주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가격리가 끝나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지금보다 훨씬 야외활동과 신체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던 시간이었다. 눈이 오면 눈도 쓸고 (퍼내고), 건조해서 뭉쳐지지 않는 눈으로 눈사람도 만들어보고, 삼촌집과 우리집을 빙글빙글 돌며 뛰어다니고, 숨바꼭질도 하고. 겹겹이 둘러싼 산자락을 우리 눈으로 가득히 담아보다보면 가슴이 뻥 뚫어지는 기분이다. 막힌 것도 없었지만 그냥 아주 시원한 기분.

난 정말 도시녀였다. 지하철 환풍기에서 올라오는 바람마저 때로는 도시의 숨결이라며 좋아했던 시기 마저 있었다. 광화문 빌딩 사이로 차갑게 부는 겨울 바람을 맞으며 스타킹에 펌프스를 신은 다리로 벌벌 떨고 코트깃을 여미면서도 광화문 지역의 붐빔을 사랑했었다. 모든게 집적되어 있어서 어디고 사람이 미어터짐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어깨를 밀치며 사람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생명력을 느꼈더랬다.

그랬는데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며 갈 수록 그런게 싫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은 나이들어감과 자연에 대한 선호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자연자연할 때, 자연의 풍광은 잠깐이 좋지 도시가 좋다 생각했었는데, 이게 반대가 되었다. 건물숲속을 잠깐은 다닐 수 있어도 그 속에서 살기는 싫어지는 거다. 서울로 들어가는 길 꽉 막히는 길에서 가슴이 꽉 막힌다. 실내에 들어가면 널찍하고 쾌적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오면 답답하다. 그래서 자꾸만 실내생활만 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님이 홍천에 오셨을 때 좋았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땅뙈기는 아담하지만 내 눈과 내 마음이 품을 수 있는 면적은 내 시야가 닿을 수 있는 모든 곳까지이고 그 사이를 가로막아 답답하게 하는 고층건물의 황량함이 없으니 어찌나 좋은지.

나이가 들 수록 자연에 가까워지고 싶어진다. 하나가 마당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마음을 간질인다. 자동차 사고 날 걱정없이 여기에서처럼 그냥 문 열고 나가게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아파트를 뜨고 싶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집이 나서 옌스에게 링크를 보냈다. 웬만해서는 퇴짜를 놓고 회의적인 표현을 하는 옌스가 집 자체만 놓고 보면 사진상으로는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주말에 예약하면 집을 볼 수 있다고 했더니 나 돌아오면 같이 보자길래, 우선 가서 보고 마음에 들면 같이 보자고 했다. 혹여나 마음에 드는 집인데 늦게 가서 혹시 놓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지금 사는 곳보다 살짝 외곽으로 나가는 게 마음에 살짝 걸리는 모양이지만, 그 동네에 사는 이전 상사가 그 동네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던 것 때문에 집이 나온다면 볼 의향은 있을 정도의 거리다.

그저께 저녁엔 혼자 저녁시간에 자동차를 타고 그 동네를 방문해 저녁시간때 동네 분위기를 살펴보고 왔다는 거다. 자기도 많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는지, 부동산 업자에게 관심이 많이 있다며 집을 보고 싶다고 주말에 예약을 했다. 오늘 저녁 통화에는 내일 뭘 보고 와야할 지 포인트를 찝어달라고 하길래 내가 궁금한 사항들을 전달해뒀다. 나는 이미 집이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집과 주변환경 모두. 순수하게 학교의 학업평균수준만 놓고 보면 지금 사는 동네가 더 좋다해도 애가 사는 환경은 지금 보고 있는 곳이 더 좋다. 코로나 시대의 재택근무 환경도 그렇고 앞으로 하나가 크면서 집에서 가족 뿐 아니라 친구를 초대하고 할 일도 많을텐데 외곽으로 조금 나가 더 큰 면적을 확보하고 싶기도 하다.

꼭 이 집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집이었으면, 그래서 그곳으로 이사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부모님댁이나 시댁을 오든, 우리 집에 있든 언제고 자연을 쉽게 눈과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곳에 살면 좋겠다.

2020년 크리스마스 또는 율

하나가 곧잘 같이 잘 노는 유치원 같은 반 친구가 코로나 확진이 됨에 따라, 우리 반은 당초 예정보다 일주일 당겨 크리스마스/신년 방학을 실시한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아이고… 아찔했다. 이틀 전 1월 초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가 일주일 남았는데… 이 모든 게 무산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코로나 검사결과 음성으로 판정된 그냥 호된 감기가 채 다 낫지도 않았는데, 혹시나 여기에 더해 코로나에 걸리면 내가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통상 기관지 쪽으로 호되게 앓는 경향이 많아서 말이다. 다행히 두차례에 걸친 코로나 검사 결과 하나는 음성으로 나왔고, 유치원에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확진된 아이가 유치원에 나온 시기가 아주 이른 잠복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만 해본다. 정말 다행이다.

덴마크도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인지라 율/jul(12월 25일)을 예수 탄신일(크리스마스)로 보내기는 하지만 율이란 게 사실 해가 가장 짧은 동지를 기념하는 페간 축제에 기독교의 확산을 위해 예수탄신일 색채를 입힌 것인지라 덴마크의 율 전통은 기독교적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선물을 가져다주는 율리맨 (julemand, 싼타클로스), 12월에 여러가지 귀여운 말썽을 피우는 율리니쎄 (julenisse, 작은 난쟁이족) 등이 제일 대표적이다. 천주교를 떠나 무신론자가 된 나와 원래 무신론자인 옌스에게 율은 그냥 명절일 뿐이다. 더이상 크리스마스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율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와 같다. 율은 어찌되었건 연중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특히 올해처럼 가족, 친구들과 거리를 두고, 재택근무를 통해 사람간의 접촉을 극히 제한했던 해에 작게나마 가장 가까운 사람과 만나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는 건 더욱 소중한 일이다. 물론 코로나 감염자수를 늘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기에 정부의 권고사항도 다 잘 따르겠지만 말이다.

하나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고, 내 감기도 코로나가 아니었고,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시누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테스트를 받는다.) 3년반에 걸친 두바이 주재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시누네 가족에서 예년과 같은 율리 아픈 (juleaften, 크리스마스 이브)을 보낼 수 있었다. 보른홀름에서 페리를 타고 스웨덴 육로를 경유해 시누네로 오신 시부모님의 경우, 당신들이 셸란섬에 도착하신지 몇시간 이내에 스웨덴이 국경을 약 한달간 닫기로 하면서 – 덴마크에 이미 번진 감염성이 더 심한 영국 변종 코로나 확산을 차단한다며 국경을 갑작스레 차단했다 – 하마터면 못오실 뻔 했었다. 다행히 돌아가는 편은 다른 경로로 예약을 하실 수 있었는데, 코펜하겐행 페리는 신년까지 예약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니… 정말 이번 율은 여러모로 변수가 많았다.

구글포토가 옌스네 가족이랑 처음으로 보냈던 율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2014년 겨울, 즉 6년전 겨울에는 시누네 아이들도 정말 어렸고, 시누네 막내는 하나 나이 뻘이었는데 지금은 그게 믿기지 않을만큼 다들 훌쩍 커 있다.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구나. 하긴 그 당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하나도 올해 율을 아주 흠뻑 즐길만큼 컸으니 시누네 애들이 그리 큰 게 놀라울 일이 아니구나. 모두가 이렇게 커버렸으니.

올해는 명절 노동을 조금 더 나눈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담당하기로 한 초콜렛을 직접 만들어갔다. 스모케야 (småkager)도 직접 구워 가져가고. 일은 크게 돕지 못했는데, 부엌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자리가 별로 없어서 식사 준비 중에 발생하는 요리 설겆이 잠깐 하는 거랑 점심 식사, 중간 티타임 테이블 정리 조금 돕는 걸로 끝났다. 예전엔 어떻게 도와야 하는 지 잘 몰라서 좌불안석했었는데, 이젠 그냥 좀 알아서 적극적으로 돕고 쉴 땐 편히 쉬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큰 집에 살기도 하고 요리도 잘하고 좋은 와인도 섭렵하고 있는 시누네가 이렇게 항상 명절을 담당하니까 우리는 좋은 음식과 술을 즐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하면 좋고 편한데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우린 하나에게 율리맨이란 건 없고, 그냥 재미있으니까 하는 이야기라 해뒀는데 시누이 남편이 율리맨 분장을 하고 베란다 문으로 들어와 하나에게 선물을 주고 가서 하나가 아주 깜빡 넘어갔다. 하나라는 애 있냐고 외치는데 하나가 나서서 그거 자기라고 하니까, 율리맨이 이거 오늘 마지막 선물이라면서 하나에게 선물을 주고 갔다. 하나가 율리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더니, “율리맨이 하나라는 애 있냐고 물어봐서, 제가 하나라고 했어요!”하면서 너무 좋아하는 거다. 우리도 깜짝쇼라서 배꼽을 잡고 웃으며 비디오로 녹화했는데, 하나가 자주 보여달라고 해서 벌써 몇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검사 받기 무섭다는 하나에게 이 검사 안받으면 밖에도 못나가고 율도 우리끼리만 보내야 한다고 해서 검사 협조를 유도했는데, 이렇게 기대한 이상 즐거웠던 율을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겠지 싶다.

이렇게 간만에 만난 걸 계기로 시누랑 그간의 업데이트를 나눴는데 두바이에 돌아와서 암병동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똑똑한 그녀도 내가 일터에서 느끼던 고충들을 비슷하게 겪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내 마음에도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병가를 내지 않고 그냥 관둔 것을 두고, 자기는 그게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면서 자기도 지금 일이 너무 힘들면 병가 내지 않고 관둘 생각이라면서, 병가 낸다고 돌아올 때 일이 바뀌는 거 아닌 걸 아는 이상 병가 기간 중 스트레스가 더 쌓이면 쌓이지 없어지지 않을 거라 이야기를 해주는 거다. 일의 스트레스에서 도망쳤다는 내 표현에 그렇지 않다면서 이야기해주는 그녀가 참 고마웠다.

올해는 코로나 규제권고로 26일에 항상 모였던 대가족 모임이 취소되었는데,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좀 더 수월하고 편한 명절이 되었다. 각자 음식 한가지씩 해서 26일 점심에 Faxe에 가서 모이는데, 가는 시간이 한시간 반 걸리는 거 생각하면 새벽같이 음식을 한가지 해야해서 좋지만 동시에 부담도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2020년 연말은 여러모로 오붓하게 보내게 되지만 하나와 또 시댁 식구들과 즐거움과 따뜻함이 가득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기에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으로 또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게 돼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옌스라는 좋은 사람을 캤더니 고구마 줄거리처럼 좋은 사람들이 넝쿨째 들어오는구나 싶다.

이제 아홉밤만 자면 한국행이구나. 신년 저녁 우리 세가족 만찬 준비하는 거 하나만 하고 나면 2020년과 작별을 하겠구나. 여러가지 의미로 다사다난했던 2020년, 힘들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고마웠다 2020년! 이제는 2021년 잘 맞이해봐야지.

아이가 진정 스승이구나 싶은 순간

네돌이 불과 한달정도밖에 남지 않은 요즘, 하나가 부쩍 컸음을 새삼 느낀다.

얼마전에 하나가 볼일을 본다고 화장실을 가더니 뭔가 놀라거나 당황했을 때 낼 법한 소리를 질렀다. 나는 부엌에서 저녁식사 재료를 손질하며 손에 물을 뭍히고 있었고 옌스는 거실에서 재택근무의 연장을 하고 있었기에 조금 더 손쉽게 갈 수 있는 옌스가 하나에게 달려갔다. 갑자기 애가 화를 내는 비명 소리를 지르고 발로 바닥을 구르고 아빠에게 성을 내길래 나도 손의 물기를 닦고 화장실로 나섰더랬다.

“무슨 일이 생긴거예요?”

하나는 엄청 서럽게 울면서 아빠가 속옷을 들춰 엉덩이를 봤다며, 유치원에서도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미안하다면서 바지에 혹시 오줌 싼건가 놀래서 본 거라고 양해받을 만한 일인 것처럼 가벼이 넘겼는데, 애 마음은 아닌 거였다. ‘아… 애가 이제 사생활의 영역에 대한 개념이 생겼구나… 엄마나 아빠가 아직도 큰 일 보고나면 엉덩이를 닦아주니까 그런 점은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자기가 허락하지 않은 타이밍에서의 신체에 대한 사생활을 이제 존중해 줘야 하는 거구나… 우리가 미처 생각을 못했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엉덩이를 봐서 하나가 속이 상했어요?”

“오줌 쌌다해도 유치원에서는 속옷을 열어보고 엉덩이를 확인하지 않는단말이예요! 그렇게 하는 거 아니랬어요!

기저귀를 뗀 이후에 유치원에서 바지에 오줌을 싼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마 유치원에서는 욕실에 데리고 가서 씻기기 전까진 오줌을 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바지 뒷춤을 들춰보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 신체 부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교육하는 모양이다.

얼른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에게 아빠가 잘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엄마와 아빠가 세심하지 못했다며 속상한 마음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볼일 다 본 후에 손 씻고 아빠한테 가서 아빠가 잘못한 거고 사과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라고 했다.

이날 저녁, 양치질을 하기 전에 꼭 뻔히 보이는 숨바꼭질을 즐기는 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꼭 자기 침대에 이불 덮고 숨는 하나. 숨바꼭질에서 우리가 못찾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이 루틴을 즐기는 거다. 아빠랑 하나가 만든 루틴에 나도 하나의 요구로 동참하게 되서 나는 나식대로 숨바꼭질 술래 역할을 했다. 이불 아래 숨은 하나를 발부터 찾아서 킁킁 냄새를 맡은 후에 “이 쉰내나는 발가락은 하나 발가락인데!”하면서 “하나 맞구나!” 하고 찾아냈었더랬다.

덴마크에 얼레리 꼴레리에 해당하는 “Øv, bøv, bussemand, sure tæer i saftevand”이란 노래가 있다. “얼레리 꼴레리, 코딱지, 주스에 담근 쉰내나는 발가락” 이런 내용인데, 여름에 간혹 하나 발에서 쉰내가 날 때 이 노래를 부르면서 발을 씻어주면서 가볍게 놀린 일이 있었다. 이후에도 발에 쉰내가 나지 않아도 몇번 그걸로 놀린 적이 있었는데, 사실 하나 발에 쉰내가 계속 나면 그걸로 안놀렸을텐데, 쉰내가 안나니까 놀렸던거다. 그런데 그게 속상했나보다. 애들이 유치원에서 금요일마다 따돌림 방지 교육을 받는데, 거기서 받은 교육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간 쌓여온 게 어제 터진 모양이다.

“발가락에 냄새 나는 것만으로 그게 저인 걸 맞출 수는 없는 거예요. 발가락에 냄새 나는 사람이 저만 있는게 아닌데, 발가락에 냄새 난다고 그게 어떻게 저인지 아는 거예요? 그리고 발가락에 냄새가 나는 걸로 자꾸 놀리면 안돼요! 같은 걸로 자꾸 놀리면 안된다고 했어요!”

아차…

“미안해요. 엄마가 하나 발가락에서 냄새가 안나니까 그렇게 놀려도 놀리는 거라 생각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엄마 착각이었네. 진짜 놀린 거는 아니예요.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안할게요. 미안해요.”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아닌 것으로 놀리는 것이든 맞는 것으로 놀리는 것이든, 상대가 아주 재미있다며 유쾌하게 웃고 있어도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게 남을 수 있다는 건 나도 경험한 바 있는데, 상대가 아이라고 해서 그냥 재미있게 받아들일 거라 착각했었다. 그리고 뭐가 되었든 반복적으로 놀리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오늘, 하나가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면서 엄청 우렁찬 소리로 힘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감자튀김 똥이 나온다면서 (이건 도대체 어떤 똥인지..?) 힘을 또 끙차하고 주는데 나랑 옌스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동시에 키득 거렸다. 그러자 하나가 묻는다.

“왜 웃는 거예요?”

우리가 그냥 웃는 거라고 답을 하자

“제가 낸 소리 때문에 웃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그렇게 비웃으면 안되는 거예요!”

라고 훈계를 한다.

“아.. 비웃은 건 아니고, 너무 재미있어서 웃은 거예요! 미안합니다!! 다음부터는 안웃을게요!”

라고 답을 하자

“그렇게 성의없이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면 안돼요! 미안할 일을 만들지 않게 기억을 하고 미안할 일을 하지 말아야죠!”

라고 쏘아 붙이는데, 할 말이 없더라. 내가 한 말을 고대로 나에게 되돌려주고 있더라. 아… 반성해야지 싶었다. 그래서 옌스랑 우리 좀 주의해야겠다고 나지막히 대화를 나누는데, 하나가 화장실 문을 탁 닫더라. 그래. 너도 화장실 문을 닫는 법도 배워야지…

아무튼 애가 어리다고 애 다루듯 대하면 안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에피소드가 많았던 지난 이틀이었다. 참 많이 컸구나. 대견하고, 뿌듯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