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정리 2025 맞이

2024년은 아파서 쉰 날이 한손에 꼽을 수 있을만큼 건강한 한 해였다. 애매한 감기기운은 잦았지만, 또 그렇다고 아프다고 할만큼 한 건 속한번 뒤집어진 것 한번 있었으니 정말 건강한 한해였다. 격년으로 병치레가 돌아오던 것을 생각해보면 올해는 조금 더 자주 아프지 않을까 예상되기도 한다.

2024는 척추와 골반, 온 몸의 체형의 틀어짐을 많이 개선한 한해였다. 어려서부터 척추측만이 있었는데, 강도높은 운동들을 하다보니 이 문제가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척추측만은 발가락, 발등, 발목, 무릎, 골반, 요추, 흉추, 갈비뼈, 견갑, 어깨, 목, 턱, 팔꿈치, 손목까지 정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를 달리 써보려하면 그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통증신호를 보내오고. 일년간 다양한 교정운동, 일상생활 교정 등을 통해 많은 것을 바꿨다. 2023년부터 2년간 노력해온 부분인데, 첫 일년은 한두군데 고쳐보려 하면서 온 몸에 보상행위로 틀어진 곳곳의 문제를 드러내는 시기였다하면, 2024년은 그걸 어떻게하면 고칠 수 있는지 인지도를 높이고 실제 고치는 한 해였던 것 같다. 우리의 몸은 계속 사용하고 바뀌어가는 것이기에 끝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큰 틀에서 척추측만의 많은 부분을 고칠 수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고관절의 사용에 대해서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2024년이었다. 이제 거울을 통해 등을 보면 척추가 S라인을 그리지 않고 곧게 서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개선인지.

발레가 강도높은 운동인 것은 맞지만, 몸을 길게 쓰는 운동인지라 그것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그걸 클라이밍으로 보완해왔다. 코로나 락다운 직전인 2019년 말에 유치원에서 클라이밍벽을 좋아한 하나를 데리고 암장을 처음 찾았는데, 보다 안전한 클라이밍을 시켜주고자 빌레이 코스를 들은 것이 내 클라이밍생활의 시작이었다. 그 전에도 친구 따라 높은 벽을 올라본 경험도 있고, 한국에서도 실내의 작은 암장에 가서 볼더링을 잠깐 해본 적은 있지만, 그게 내 것으로 된 적은 없었는데. 석달 클라이밍 하고 났더니 락다운이 되고, 락다운이 풀리고도 제약이 좀 많았어서 거의 2년정도 완전히 쉬었다. 2022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1년후 한나가 시작하고, 또 반년 후 혜민이 시작했었으니 총 3년정도의 클라이밍에 이 둘이 많은 시간을 함께해주었네. 클라이밍 모임인 쁘게 요한 들이 좀 더 커지긴 했지만, 역시나 같이 한 시간이 길어지고 가까워진만큼 이들 둘과 함께하는 클라이밍이 즐겁다. 함께 성장해가는 시간이 즐겁고, 그와 함께 단단해지는 근육은 보람이자 덤. 2024년은 내가 클라이밍에 있어서 중급의 입문단계에 들어가게 한 시기였다. 2025년에 클라이밍 얼마나 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제 초보티는 확실히 벗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할까. 클라이밍가면 이제 간간히 보이는 얼굴들도 생겨서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덴마크어는 이제 투자하는 노력에 비해 한계적 발전이 크게 떨어졌다. 정말 미묘한 발전들이다. 그래도 그 중 눈에 띄는 것을 꼽자면, 더이상 신문을 보는데 있어서 사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속독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보고서를 씀에 있어서도 문법적 실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웅얼거리면서 말하는 습관이 있는 화자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집중해야 하는 정도가 줄어들었고, 빠르게 전환되는 점심식사의 화제에서 간혹 하는 딴소리의 빈도가 줄어들었다. 어디가서 덴마크어로 말하는 것에 있어서 긴장되거나 하는 게 사라졌다. 더이상 내가 표현하지 못할 게 없다는 사실이 편안함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2025년에는 2024년보다 숙어적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자한다. 주로 일을 하면서 덴마크어를 사용하다보니 내 단어는 문어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좀 더 일상생활에 많이 쓰는 숙어와 섞어보고자 한다. 여름엔 Studieprøven의 말하기 시험도 등록했으니, 그거 완료해서 Studieprøven도 완전히 잊어버리고자 한다. 읽기, 쓰기부분은 이미 2020년에 성적을 받았는데, 구술시험날 아파서 시험을 못봤은게 너무 아쉬웠다. 그 당시는 그냥 학원다니며 덴마크어를 좀 더 공부한 김에 시험을 보려던 것였는데, 이제 시민권 딸 때 요건으로 추가될 가능성도 있어 기왕에 반쯤 한 거 2025년에 끝을 보려고 한다.

아이는 너무 잘 크고 있고, 아이와 남편 모두 건강하고, 우리 모두 행복하고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여러 일상에 부침이 있더라도 가족의 베이스가 단단해서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살면서 일상에 대해 감사를 크게 갖지 않고 살아왔는데, 지루할 수 있는 일상도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내 가족이라는 단단한 뿌리 덕이다. 일상의 힘을 느끼게 된다고 할까. 앞으로도 이 일상을 굳건히 키워가기 위해 더 사랑하고 더 노력해야지. 아이와 클라이밍을 좀 더 같이 해봐야겠다.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다른 가족들을 암장에서 보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회사에서 지금 하는 프로젝트는 여러모로 힘들고 지치지만 4월이면 끝난다.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으쌰으쌰하면서 잘 버텨봐야지. 그러고 나면 또 한층 성장해있을 거라는 믿음을 굳게 갖고. 내 업무의 지식의 깊이를 더하는 한해가 되길.

아이와 단둘이 데이트

아이와 단둘이서 하는 데이트들이 즐겁다. 아무래도 아빠도 같이 있으면 어른의 대화에 아이가 중간중간 엉뚱한 주제로 뛰어드는 것이 흔한 패턴인데, 둘만이 있으면 우리 둘만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어서 아이의 만족도가 높아져서 그렇다. 그래서 아이는 간간히 엄마랑 단둘이, 또는 아빠랑 단둘이 하는 데이트가 제일이라고 말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2킬로미터짜리 달리기를 하고 왔다. 아이들은 완주시 메달을 준다고 하니 아이는 기뻐서 참여한다고 했다. 평소 달리기를 따로 하지는 않지만 놀이와 운동으로 체력이 다져진 아이라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참여했는데, 너무나 즐겁게 달리고 왔다.

Nordhavn은 새롭게 개발된 지역인데, 이제 상당부분 완료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지역에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사생활 관점에서는 좋지는 않겠지만 그것 빼고는 살기 좋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다가 너무 가깝다는 점은 여름의 소음문제와 해수면 상승과 태풍시 침수 피해 등을 고려하면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니겠지만.

줄이 길까 싶어 아침 일찍 들러 참가자 등번호를 받아서 산책을 했는데, 도착할때까지만 해도 추적추적 제법 많이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정말 아름다운 아침 산책길을 즐길 수 있었다. 항구의 자락에서 볼 수 있던 풍력발전단지의 평화로운 모습, 정갈하게 정돈된 길 구석구석들, 바다에 설치된 수영시설, 간간히 들리는 이들의 첨벙하는 입수소리,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작은 웅성임, 혹시나 콩고물이 떨어질게 없나 해서 가까이서 걸어다니는 참새들, 해수면에 반사되어 흩어지는 금모래 같은 물결의 반짝임, 선선한 바람이 머리를 날리는 감각, 그전에 본 적 없었던 각도의 코펜하겐과 하이라인. 그 모든게 너무나 아름다웠고, 온 몸으로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뒤이어 달리기 전 행사장에 설치된 놀이시설을 조금 즐기고 나서 사람들과 같이 몸을 푸는데 그 흥겨움. 거기서 오른 텐션으로 2킬로미터를 가볍게 뛰었다. 처음부터 로케트처럼 튀어나가고 싶은 아이를 진정시키며 페이스 조절을 했는데, 중간중간 그렇게 튀어나가버린 아이들이 힘들어서 못뛰고 속상해서 울고 그런게 보였다. 즐겁게 마무리하고 돌아와 조앤더 주스 한잔으로 마무리.

전날 클라이밍 힘들게 하고 나서인지라 몸이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는 늘어져 한시간 낮잠을 잤지만, 아이에게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남은 달리기였다. 매년 계속 가자고 하는 거 봐서 이제 여러 달리기에 같이 참여해야겠다 싶었던 하루.

영주권 신청

드디어 영주권을 신청했다. 덴마크에 산지도 어느덧 11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신청할 수 있었다니. 최근 3년 반을 연속으로 풀타임으로 근무했어야 하며, 지난 4년간 근무 기간이 3년 반을 넘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최근 두 직장 사이에 10개월 정도 쉬고 잠시 샛길로 다른 것을 시도해봤던 나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었다. 이제 지금 직장에서 근로한 기간이 곧 조건을 만족하면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영주권 심사에 2~3개월 걸린다니까 2개월 조금 넘긴 지금 신청하면 얼추 심사 시점에 근로 기간 조건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이민을 해서 일정 거주 기간만 만족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나라도 있으니 그에 비해서는 기존 비자 타입에 상관없이 만족해야 하는 조건이 모두 동일한 덴마크의 영주권 요건은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편이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영주권 없어도 비자를 연장하며 지낼 수 있으니 큰 상관은 없기는 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다. 처음엔 2년, 그 다음엔 4년, 지금 것은 6년짜리 비자를 받았는데, 이 비자 기한이 일정 수준 이상에서 제한될 것인지라 잊지 않고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그런 불편함과, 혹여나 조건이 바뀌어서 연장에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등 거주의 안정에 있어서 심리적 불안함을 주는 요소가 있다.

결혼을 통해 이민온 경우 이혼을 하면 비자가 취소될 수 있다. 물론 덴마크 배우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기반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이가 없다가 이혼하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조금 불안할 수 있다. 실제 그렇게 해서 나라를 뜨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딱히 거주의 불안정성이 없는 지금, 나는 왜 영주권을 원할까? 그냥 비자를 받고 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서류작업이 영 불편하고 돈도 제법 많이 들기 때문일거다. 백만원이 넘는 돈을 서류 접수하는데 써야 하고, 아직도 남편 계좌의 일정 돈이 내 비자의 보증금으로 묶여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보증금은 혹시나 내가 사회보장제도의 수급을 받을까봐, 그럴 경우 거기서 돈을 빼가기 위함이다.

시민권…은 아직 모르겠다. 예전에는 필요없다는 주의였다면 지금은 50:50 이니 마음이 많이 시민권 방향으로 기울긴 했는데, 왜인지 하나는 내가 한국 국적을 계속 갖고 있었으면 한다고 한다. 국적이 나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아닐텐데, 하나에겐 국적이 어떤 정체성의 의미를 지니는 것 때문일까? 뭐가 되었든 얼른 영주권이 나오면 좋겠다. 난 여기 계속 살건데, 그 자격을 주시오! 하는 느낌…

국민연금도 덴마크 국세청에 신고해야…

영주권을 따면 영주권을 딴지 5년안에 국민연금을 일시반환금의 형태로 찾을 수 있다. 십년이 넘게 부었지만 채 4천만원이 안되게 부었던 국민연금은 굳이 만기까지 묵혀둔다 해서 덴마크에서 국민연금을 받을 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가입기간 합산이니 뭐니 해도 차라리 내가 그돈을 가져와서 주식투자를 하지 싶은거다.

지금 직장에서 근무한지 3년이 되서 앞으로 4개월 정도 있다가 영주권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국세청에 관련해서 미리 질문을 던져보려고 그전에 관련 규정을 대충이라도 찾아보려고 검색을 하다보니 이런 걸 찾게 되었다. Har du husket at fortælle SKAT om din pension i udlandet? 음? 국외 연금을 덴마크 국세청 SKAT에 신고했냐고? 거의 십년전에 유선으로 질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금 타는 게 없는 연금이면 그냥 둬도 된다고 해서 그냥 묵혀두고 있었는데 올해 새로운 법이 올해 발효되어서 2024년 7월 1일까지 별지의 양식에 따라 신고를 해야한다 . 어머나. 별지양식인 Erklæring L (blanket 49.020) 을 읽어봤는데, 이게 국민연금도 해당되는지가 애매해서 국세청에 질의했다. 모르는 건 담당관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니까. 국민연금의 납부 방식, 나중에 지급되는 연금의 형태 등과 내 납세의무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장황히 곁들인 메일을 보냈더니 신고를 하란다. 일시반환금으로 받는 걸 여기 연금으로 묶어서 지금 찾지 않는 것으로 해 납세 시점을 은퇴시점으로 돌릴 수 있는지도 물었더니, 그건 신고서 제출하면서 추가질의하란다.

신고서를 다운받아 찬찬히 읽어보며 작성을 해보니, 이런 국민연금의 경우 매년 신고할 필요는 없고 한번 신고했다가 나중에 지급사유 발생 등으로 변동이 생기면 그때 신고하면 되는 거였다.

원래 법이 있으면 그게 내 나라든 아니든 꼼수를 부리면 안되겠지만, 타국에 있으면 더욱 더 신경쓰이는 게 거주의 권리와 관련해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내 신고의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신고의무를 게을리하는 경우 벌금형 또는 1년 6개월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고, 공무원은 특히 불법행위를 하지 않아도 윤리강령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면 직위해제될 수 있어 더 유의해야 한다. 나는 공무원이니까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최악의 경우 일시반환금을 그해 소득으로 모두 인정받아 다 과세하고, 이걸 내가 원하는 때 언제고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최선의 경우는 이를 모두 연금으로 묶어서 투자는 내가 원하는대로 하되 이를 연금에서 빼는 타이밍에 그 빼는 금액만큼을 그해 소득으로 보아 소득세 산청에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최고 높은 소득세인 topskat를 내지 않고 있는데, 저걸 한번에 소득으로 산입하면 그해에는 topskat을 내야 해서 이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결론은 신고 자체는 까다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한번 하면 일시반환금 찾는 거 아니면 나중에 연금탈때까지 신경쓸 필요 없다는 점. 그리고 이제 7월 1일부로 신고 안했으면 불법이라는 것.

뿌리내리는 민들레 홀씨

지금의 직장에 출근을 시작한지 거의 만 삼년이 되어간다. 이달 말이면 삼년. 잠깐 십개월 다른 길을 걸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지금 직장을 포함해 중앙정부에서 일한지 벌써 만 사년반이 넘었다.

2019년 초의 나는 지금의 모습과 참 많이 달랐다. 덴마크 중앙정부의 수평적인 듯 미묘하게 숨겨진 위계질서와 같은 문화와 맥락을 잘 읽기 힘들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직장내 행동양식은 이곳에선 당연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양식은 나에게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랐고 타인의 입장에서 나를 찾았다. 나에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어학원을 졸업했고, 일상에서 영어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해서 법령을 읽고 문서와 보고서를 척척 쓸 수도 없었다. 정말 배울 게 많았고 위축되는 순간도 그래서 많았다.

다행히도 이제 나는 더이상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를 찾지 않는다. 덴마크에서의 직장생활은 어학원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달까? 일을 하기는 하지만 언어도 실습하며 다니는 기분. 정말 이 직장이 나를 많이 키워줬구나 싶다. 월급 줘가며 말과 문화도 가르치고 일도 가르치고.

새로운 제도 도입이 되는 것과 관련해 그 근간이 되는 모델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관련 자료를 읽고 검토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이런건 술술 읽히는구나 싶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보고서를 써도 더이상 큰 난도질을 겪지 않기 시작했고, 어디서 뭔가 이야기를 하는게 긴장되지 않으며, 어떤 자리가 어떤 순서로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이 가고, 거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눈치보지 않게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난 한국인이지만 이제는 덴마크 시민으로의 정체성도 커지고 있다. 덴마크인의 배우자이자 어머니로, 이 사회의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데에 참여하고 있다. 더이상 외국인으로서의 내가 어떤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더이상 객관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어렵게 덴마크 사회와 문화에 통합리 되었다. 아무래도 자격이 되는 타이밍에는 덴마크 국적을 취극한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진짜 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은 여기가 되었으니까.

정작 내 나라에서 뭔가 소속감을 못느껴 뿌리를 못내리고 바람에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가 덴마크에 와서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는 모양이다.

물난리. 하지만 따뜻한 위로. 뭐든 아주 나쁘기만 한 건 없다.

집에 물난리가 났다. 물난리라고 표현하기엔 끊임없이 물이 방울방울 여러군데에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너무 과장되긴 한데, 뭐가 되었든 주택을 소유한 입장에서 어딘가에서 물이 새는 것은 정말 난리가 난 일이다. 의심이 가는 것이라곤 부엌의 환풍기가 연결된 외부 환풍구를 통한 것이 가장 유력해보였지만, 사실 집에서 물이 새려면 샐 수 있는 원천은 여기저기 있다. 화장실 바닥난방, 상수도파이프, 라디애이터 배관 등 말이다. 뭐가 뭔지 모른다는 것이 사람을 두렵게 한다.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상상을 하게 되고, 각각의 시나리오별로 생길 수 있는 결과에 따라 각개의 고통을 미리 느낀다. 일어나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니 정말 많은 고통을 끊임없이 느끼게 된다. 그 스트레스라니…

오늘 아침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 받은 심리상담에서 생각했던 스트레스 메커니즘과 사실은 똑같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 즉 내가 지금 답을 알 수 없는 것에 괜한 에너지를 들이고 있구나. 내가 당장 뭔가를 열어보고 고칠 게 아니라면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냥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생각해봤을 때 그 결과는 어떤 것이며, 그 결과를 두고 생각하면 내가 감내할 수 있는지. 최악이라면 부엌과 욕실을 모두 레노베이션 해야 하는 일이고, 그러면 돈이 꽤나 많이 들 것이다. 그 과정도 꽤나 지저분할 것이고. 그럼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냥 그것만 생각하자 싶었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지 말고, 이미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나면 나머지 그보다 나은 상태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테니. 뜨신 물에서 목욕이 필요하면 수영장을 가면 될것이고, 음식은 전자레인지와 오븐으로 해먹을 수 있는 거 해먹고, 샐러드는 만들어진 거 사다가 먹어도 될 거다. 그게 다 비용이다 생각하면 괜찮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도 “엄마, 한국에 저랑 같이 갔던 때를 생각해보세요. 엄마가 저를 눈에다 파뭍고 같이 눈에서 뒹굴면서 엄청 많이 웃었던 기억을 생각해보세요. 진짜진짜 많이 웃었잖아요. 그걸 생각해보면 그 물난리를 조금 잊을 수 있지 않아요?” 라며 해맑게 웃고 안아주는 아이를 보니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아… 우리가 애를 위로해주는 방식을 애가 그대로 배웠구나. 그리고 거기에 우리 스스로가 잊는 지혜가 있었구나. 어쩔 수 없는 거 알면서도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을 지우고 싶을 때, 좋은 것을 떠올려보라던 그 말에 아이가 우리를 이렇게 위로해주는구나…

웬간해서는 잘 스트레스를 표현하지 않는 옌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다. 저녁에 갑자기 한번 안아달라고 한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 이런 때일수록 사랑, 위로와 유머가 필요하다. 날카로워지지 않도록 서로 따뜻함을 유지해야지.

내 사랑 옌스

발레수업이 갑자기 취소되었다. 선생님이 아프시다고 한다. 발레학교가 방학을 했을 타이밍에 보강을 하신다고 메세지가 왔길래 이 저녁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클라이밍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발레 수업을 찾아볼지 등등. 결국은 집에서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온라인 바수업을 유튜브로 보면서 조금 움직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스트레칭이나 좀 하려고.

홀로 삼십분 정도 바워크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나를 재우고 내려온 옌스가 소파에 앉아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왜그러냐고 물어보니, 아름다운 아내가 앉아서 스트레칭 하는 모습이 보기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발레용 워머인 onesie 입고서 머리 질끈 묶어 똥머리를 하고 큰 헤드폰 끼고 있는 와이프가 뭐 그리 이쁠까 싶지만, 그렇게 봐주는 남편이 있어서 행복하다. 그러면 스르르 웃음이 흘러나오며 사랑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연애와 관련해서 자존감이 낮아서 항상 연애가 힘들었던 나에게 온전히 사랑받는게 어떻다는 것인지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었던 옌스. 우리가 함께한지 3개월이면 십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항상 일상 속에서 그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충만해진 감정을 나도 돌려주고 또 받고… 처음과 같은 설렘은 흐려졌지만 지금도 간혹 차려입은 옌스를 보면 마음이 떨리기도 하고, 옌스도 그렇다고 한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옌스를 만나 가정을 꾸린 것이다. 살면서 어떤 풍파가 있을지야 지금으로선 모르겠지만, 이 타국땅을 내땅으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가족의 뿌리를 여기에 잘 내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 옌스 덕임이 틀림없다.

아이와의 언어를 나의 모국어로 다시 전환하기

아이가 보육기관을 시작하고 어느정도까지는 한국어 발화단어수가 덴마크어보다 더 많았는데, 아무래도 어린이집에서 가장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깨어있는 시간 중 대부분을 보내다보니, 오래지않아 아이의 덴마크어가 더 뛰어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아이의 모토릭과 호기심도 빠르게 늘면서 아이에게 가르칠 일이 늘다보니 덴마크어로 아이와 소통하는 것이 더 편해지게 되었다. 한국어로 설명하려면 더 돌려 설명해야 하는데, 덴마크어로는 아이가 이미 더 많은 어휘를 이해하니까 더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일상 속 덴마크어를 늘려야 하는 나의 숙제도 있었기에 여러가지 이해가 맞물려 선택한 결과였다.

예전 동영상을 보다보면 아이의 한국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던 시기가 있었다. 오히려 지금의 아이보다 어휘가 뛰어난 부분도 있었고. 중간중간 아이의 한국어를 늘리기 위해서 한국어 사용 시간을 조금 늘려보던 시기도 있었는데, 그건 잘 안되더라. 식사시간엔 한국어를 사용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한다 해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보면 옌스에게 덴마크어를 섞어 쓰거나 옌스가 한국어로 표현할 수 없어 덴마크어로 쓴다든지 하면서 다시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한국어를 쓰는 것에 대해 아이가 강하게 저항하는 날도 있었고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한글학교에 하나처럼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반이 개설되었다. 하나처럼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인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 입양된 덴마크인의 자녀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배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의 한국어 학습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는 것도 있는 것 같고, 한글에 대한 관심을 올려주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하나가 나를 이겨보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게 늘면서 풍차돌리기, 외발자전거 타기 등 엄마가 못하는 것을 자기가 할 수 있게 되는 것에서 어른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 같았다. 엄마는 액센트가 거의 없지만, 간혹 어떤 단어에서 발음을 틀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서 미묘한 모음 교정을 해주곤 했는데, 거기서 뭔가 나를 이겨보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날, 어떤 문장의 문법적인 요소에 대해 자기가 틀린 것을 모르고 내가 옳게 말한 것을 고쳐주려 하길래, “내가 확신이 없는 것이라면 들어보고 네가 맞으면 그를 고치겠는데, 이건 네가 틀린 것이다.” 라고 답을 해준 적이 있다. 그랬더니 계속 우기더니 기분이 팍 상했던 모양이다.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달려가 문을 쾅 닫고 들어 앉았다. 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탄수화물로 밥과 파스타 중 어느걸 할까 고민하다가 애한테 고르게 해주려고 뭘 먹겠다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무슨 말 하는지 못알아 듣겠어!”라는 거다. 그 근래에 이런 일이 몇번 있었던 터라 나도 짜증이 확 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에게 “내가 한국어로 말해도 잘 못알아 듣겠고, 덴마크어로 말해도 마찬가지면, 나는 앞으로 그냥 한국말로 말하겠다. 그러면 최소한 네가 한국어를 배우겠지.”라고 말하고 그냥 한국어로 바꿔버렸다. 그게 지난주 월요일.

이제 일주일이 지난 지금 돌아보자면 일련의 break down이 있었다. 수영장 가서 제일 즐거워야 할 순간에도 엄마가 한국말을 해서 제대로 놀수가 없다면서 펑펑 울었던 때, 뭘 물어봤는데, 내가 대답하는 것을 못알아들으니까 차분히 설명해 줄래도 엄마가 하는 말을 못알아듣겠는데 못알아 듣는 말로 질문에 답을 해주면 어떡하냐며 엄청 성질을 내더라. 하지만 그 강도로 보자면 거부반응이 차츰 사그러드는 강도로 나타나고 있고, 이제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한 거 같다.

예전보다 아이가 훨씬 커서 좀 더 이해하는 방식이 체계적으로 바뀐 것도 한국어를 제2외국어와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요즘 글을 읽는 것을 연습하고 있는데, 덴마크어 뿐 아니라 한글도 읽기 시작하고 있다. 내년 2월말에 부모님이 오시는데, 그 때쯤 되면 자기가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설명해드리고, 말씀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 같다. 그러면 부모님이 아이를 학교에서 하교시키실 수도 있을 거고. 아무튼 주변의 응원을 토대로 마음의 용기를 갖고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마음을 먹었으니 굳게 마음을 먹고 밀고 나가 봐야겠다.

나에게 맞는 직장 찾기 / 동태적 최적화

나에게 맞는 직장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 같다. 이는 한번 찾았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나와 직장, 같이 일하는 사람들 모두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동태적최적화 문제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 22세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기에 내 인생의 절반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낸 것과 마찬가지이니 직장생활은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리고 깨어있는 시간의 가장 큰 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니 진정 중요한 요소이다.

나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기까지 여러번의 실패하는 관계를 토대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겪는다면, 직장도 나에게 맞는 직장을 찾기까지 여러번의 실패를 겪어야 하는 것 같다. 실패가 쓰린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서 다음에 더 좋은, 알맞는 선택을 한다면, 그래서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가볼가치가 충분한 길이다. 간혹 어떤 부분에서는 맞는 배우자나 직장을 찾고서야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알게 되기도 하니 운도 많이 따라야 한다. 또 처음에는 안맞았다가 맞게 될 수도 있고, 맞았다가 안맞을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이 직장을 잡았을 때만 해도 전 직장에서 겪었던 내적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고, 불안한 마음이 내 속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잘 하고 싶었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빨리 아는 게 많아져 문제를 척척 해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의 성격이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었다. 호흡이 긴 프로젝트들에 새로운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분석해 발간, 발표를 해야했다. 끊임없이 배워야 했는데, 복잡한 것들이 서로 얽혀있어 그 안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허우적대다보니 작은 분야지만 이해도도 조금씩 늘어나고 더이상 빠져죽을 것 같은 느낌은 없어졌다. 누가 나에게 내 프로젝트를 물어보면 답을 하고 나눠줄 수 있게 되었고, 작게나마 도움도 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워낙 방대한 분야이기에 배울건 태산이지만, 물어볼 수 있는 동료들이 더이상 부담스러운 대상이 아니고 지식을 공유받을 수 있고 스파링도 할 수 있는 진정한 동료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내가 하는 일을 진정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고, 회의를 느끼지 않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손에 쥐게 되었다. 내 직장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으며, 내 동료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도 부끄럽지 않게 되도록 성장하고 있으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커리어의 방향을 맞춰가며 발전시켜가고 있으며, 일할 수록 도태된다거나 하면 어쩔까 하는 쓸데없는 불안함을 내려놓게 되었다.

이전에 언급했듯 내가 내 직장과 잘 맞느냐는 것은 동태적최적화 문제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라 이 마음은 내가 변하든 환경이 변하든 하는 과정에서 그 방향이 어긋나면서 바뀔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지금의 상황을 누리련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임윤찬의 피아노독주를 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페이스북 한인 그룹에 올라온 누군가의 포스트를 보고 친구에게 가보지않겠냐고 물어본 데서 시작했다. 임윤찬이 그렇게 어린 피아니스트인지도, 그가 그렇게 유명한지도 몰랐다. 그냥 조성진에 이어 여러번 미디어에서 스치듯이 본 이름으로 그냥 그가 피아니스트라는 걸 알고 있던 정도였다. 그랬던 그의 연주를 보러갔던 날 티볼리 곳곳에 흩어져 여기저기 보이는 한국인들을 보고 좀 대단한 사람인가보다 하고 감만 잡을 수 있었다. 친구를 보고 이야기를 듣고나서야 그 이름의 유명세가 어느정도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티볼리 콘서트홀에 덴마크 대네브로와 함께 힘차게 휘날리던 태극기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덴마크에는 타국의 국기계양과 관련되어 규제가 타이트한 편이라 이렇게 태극기가 휘날리는 걸 보는게 대사관, 대사관저 인근이 아니고서야 힘든데 한개도 아니고 건물 지붕의 정면 모서리를 따라 대네브로와 하나씩 번갈아가며 여러개가 주욱 늘어서 펄럭이는 건 근사한 경험이었다.

임윤찬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 내가 평가하는 건 의미없겠지만, 그 강렬한 연주 바로 뒤에 찾아오는 다음 곡의 여리여리한 피아니시모를 마치 정적속에서 시작한 것마냥 연주하는 그 컨트롤에 놀랐고, 화려하고 빠르게 어우러진 화성 속에 또렷한 울림이 가득한 멜로디가 레이어 바이 레이어 켜켜이 얹어 딜리버리할 수 있는 게 놀라웠다. 콘서트 전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 음반을 몇번 듣고 갔는데 콘서트 홀에서 듣는 라이브가 주는 소리의 질적인 차이를 제외하더라도 마음을 깊은 곳부터 동하게 하는 연주더라.

도대체 어떤 재능에 어떤 연습과 지도를 통해야 저런 음악이 가능할까 싶었다. 엄청난 연습이 따랐겠지만, 독보적이고 특출난 재능이 함께 하기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겠지. 거기에다가 아마도 음악이 전부인 그런 일상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그도 연습이 싫었던 순간은 있었을까? 인간이니까 있었겠지? 아니면 그나마도 없었을까?

그의 연주를 듣고 나서 오랫동안 먼지만 쌓이게 두었던 피아노를 다시 한번 열어보고 연습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건반속에 녹던 그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데 과거에 내가 칠 수 있던 것 대비 실력이 늘지 않는 것에 바쁠 것이 전혀 없는대도 인내심이 사그러들고 손에서 놓게 되더라. 인생에서 쌓아올리는 많은 것은 꾸준함이 기반임을 발레를 통해 배웠기에 앞으로 얼마나 가게 될 진 모르겠지만 한 손가락부터 한번 시작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