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커가는 것을 느낄 때

“엄마. 저는 저를 믿어요. 할 수 있다고요. 학교에서 뭐 하다가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할 수 있어, 내가 나를 안믿어주면 누가 나를 믿어줄거야.’ 라고 말하고 시도해봐요. 저는 수학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반에서 중간은 가는 것 같아서 어려워도 계속 연습하려고요.”

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 얼마나 소중한 이야기인가.

이것 저것 묻는 말에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이런 대화 너무 좋다는데, 어떤 이슈 없이 나와 수다떠는 일이 충분하지 않았었나보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느낀다.

발레에서 균형찾기

한동안 클라이밍에 집중하느라 발레에 소홀했었다. 주 2회에서 주 1회로 줄이고 나니까 확실히 느는 속도가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여름휴가 이후 클라이밍을 조금 줄이고 발레를 다시 주2회 이상 하니까 다시금 느는게 느껴진다.

발레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어찌보면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변화하는 동작속에서 발바닥 또는 발가락에서 균형을 찾고 흐름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발레에서 규정하는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내몸의 사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여러번 표현했는데 아직도 새로운 근육을 발견해나가고 있으며 그의 사용법을 배우게된다. 해부학적으로 그 존재를 알고 있던 근육인데 이를 분절해서 사용하는 법을 새롭게 익히게 될때면 그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 1년전 즈음인 것 같다. Kizzy 선생님이 서있는 축다리 위에 위치한 근육이 있는데 그게 치골방향으로 감싸 누르는 듯한 감각으로 잘눌러줘야 한다고 했는데 알듯 하면서도 잘 모르겠었다. 그 설명을 잊지않고 머리 한켠에 항상 저장해 두었는데 막상 그 근육을 어떻게 실제 동작에서 유기적으로 사용해야 할지는 감이 오질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그 감각이 찾아왔다.

물론 그런 감각이 하늘에서 뚝떨어지듯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근육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은 그근육과 근육을 연결하는 신경 모두 잘 발달되지 않았다는 뜻이기에 그를 사용할 만큼 키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고, 나에게는 제법 긴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이번 외복사근의 발견을 통해 균형잡는 것이 수월해졌고 다리가 골만에서부터 시작되는게 아니라 사실은 외복사근이 있는 곳부터 시작된다고 인지하고 나니까 그간 말로 듣고 이해가 될듯 말듯했던 지적사항들이 확 이해가 되면서 passé 할때 골반이 들리지 않게 할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피루엣 이후 착지도 깔끔하게 할 수 있게되었다.

앞으로도 여전히 배울 것은 많지만 이번 깨달음을 통해 실력이 한계단 올라선 느낌이라 매우 유쾌하다. 핸즈온해주는 선생님이 많으니 실력도 비례해서 느는 느낌이다. 감사하네.

재택근무

재택근무를 하면 출퇴근 시간 합쳐 한시간 반이 빠지니까 하루에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정신없이 문을 나서느라 느끼지 못했던 몸의 신호도 조금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

클라이밍을 좀 힘들게 하고 온 다음날이면 오른쪽 승모근 아래가 약간 뻐근하다. 힘들거나 무서운 구간에서 팔꿈치를 들고 용을 써서 생기는 일이다. 늘어난 상태에서 힘을 써서 생긴 근육통은 스트레칭이 아니라 반대로 약간 수축을 해줘서 풀어야 한다. Theraband를 양손으로 댕겨 잡고 몸 앞에서 뒤로 보냈다가 반대로 되돌리는 동작을 몇번 하면 뭉쳤던 부위가 좀 풀린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발레바를 잡고 스트레칭을 한다. 창밖의 풍경을 천천히 스치듯 응시하면서.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낮의 기온은 높은데 밤 기온은 떨어지니 집 앞 들판에 낮게 안개가 낀다. 눈높이의 안개 위로는 깨끗한 초록과 그 위의 하늘이 어우러져서 마치 산 정상에 올라 구름 위를 보는 것 같다. 잠시 창문을 열어보니 차가운 습이 들어온다. 반바지를 잎은 다리 위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

문을 열어두고 스트레칭을 이어간다. 몸이 구석구석 부드러워진 것 같으면 발레바와 Theraband를 주섬주섬 치우고 가방을 꺼내들어 거실을 업무공간으로 바꾼다. 랩톱을 키면 팬 소리가 작게 윙 하고 들린다. 쇼팽의 노래로 팬소음을 덮고 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오늘도 잘 부탁해.

새로운 근육을 발견하기

발레를 시작한 것이 2012년이었으니까 어느새 13년이 흘렀다. 물론 그 간에 임신, 출산으로 2년 이상을 쉬긴 했지만 부상 등으로 인한 이슈로 쉬는게 아니면 주 1~2회 정도는 꼭 트레이닝을 이어왔다.

발레를 하면서 놀라는 것은 지금조차도 내가 쓰고 있지 않았던 근육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안되지? 하고 고민을 하며 몇년의 시행착오를 겪다가 우연히 그간 못쓰고 있던 근육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는 팁들을 다 이용해보다가 어딘가에서 들어맞는 것. 누군가의 조언이 틀려서가 아니라, 워낙 오랜 기간 고착화된 근육 사용 패턴과 몸의 불균형 등으로 인해 사용하지 않던 근육은 다른 근육이 그 기능을 대체하게 되어 이를 잘 사용하지 못하게 될 뿐이다. 뇌도 계속 기억을 하려다보면 시냅스들이 계속 길을 찾아가며 새로운 시냅스를 만든다는 것처럼 근육도 안쓰던 근육에 전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발레를 오래한 사람들의 정형화된 엉덩이 모양이 있다. 발레가 요구하는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엉덩이 인근의 근육을 특정한 형태로 사용하고 나면 그런 모양이 나오는 거다. 반대로 말하면 그 엉덩이 모양이 안나오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내 엉덩이는 아직도 그 모양이 되지 않았다. 많이 가까워졌지만 아직 사용하지 못하는 근육이 있는 것이다. 정면에서 보면 불과 1년전보다 골반 인근의 모양이 발레를 오래한 사람의 모양에 가까워졌다. 그렇지만 아직 다리를 옆으로 들 어 홀딩할 때 사용해야 하는 근육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나마 좋아진 점이라면 우선 이제 무슨 근육인지 알게 되기라도 한 것이긴 한데 부족하다. 바닥에 옆으로나 등으로 누워서 해보면 어떤 근육인지 얼마전 알게 되었는데, 그걸 서서 중력을 이기며 할 때는 바닥에서 싸워야 하는 방향과 다른 힘이 추가되다보니 다른 근육이 보상을 해버린다.

선생님들이 하는 말씀들 중 몇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매일 매일 내 몸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날 내 균형이 어디에 느껴지는지 찾으라, 골반을 중립으로 해라, 꼬리뼈를 내리지만 tuck-in하지는 말으라, 겨드랑이 아래로 등 근육이 아래를 감싸 내리듯이 쓰라, 옆구리 근육이 앞으로 감싸 내리듯이 쓰라, 등판을 옆으로 길게 해라, 골반을 열지만 뒤집지는 말으라는 등등의 말들. 수도 없이 많은 말들을 내 몸에서 느끼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게 틀려서 또 다르게 해야 하는 것. 발레를 해본사람은 알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오래 했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아직도 못할까라는 생각.

그런데 그래서 발레를 지금도 하는 것 같다. 동료가 물어봤다. 지금도 발레를 더 잘하고 싶고, 발전을 느끼냐고. 크지는 않지만 조금씩 지금도 발전을 느끼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며 어떤 의도의 질문이냐고 물어봤더니 답을 한다. 그냥 그 수준에서 재미로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새로운 질문이었다.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선한 충격을 준 질문이었달까? 물론 지금도 즐기고 있다. 이제 집에서 혼자 발레 바로도 가볍게 몸을 풀기도 하고, 그 끝엔 나만의 춤도 추며 춤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발레를 하는 이상은 끊임없이 더 잘하게 되고 싶을 것 같다. 그게 몸의 노화와 함께 불가능해져 현상유지만으로 기뻐해야 할 타이밍이 오기전까지는… 아니, 마음은 항상 그렇지 않을까?

아이의 한국여행 경험

한국을 방문할때마다 아이에게 자신의 뿌리를 조금씩 소개하는 기분이다. 그 뿌리에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좋은 것들을 많이 알게 되고 그 뿌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 뿌리를 연결하는 엄마인 내 마음이다. K-pop이 전 유럽에서 인기를 얻으며, 그 여파가 약한 덴마크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게 좀 더 많이 알려져서 하나가 한국인임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수월한 것은 장점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무엇인가하는 것은 한국에 가서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금 한국 방문을 좋은 기억으로만 채워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여름이라 너무 더웠던 것을 제외하면 크게 나쁠 것이 없던 여정.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도 좋은 시간 보내고, 부산에서 바닷가도 즐기고 새로운 곳들도 봤다. 분당에서 육촌 언니 오빠와 함께 짧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왔으며, 서울에서는 한국여행에 조인한 고모와 사촌 언니오빠와 함께 색다른 추억을 만들었다.

육촌 언니오빠를 따라간 성당 복사 교육. 교육을 끝마치고, 복사단 교육을 관리하는 한 분이 탈색한 머리가 남아있는 아이에게 염색을 하라며, 복사단은 튀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걸 들은 하나가 자기같은 사람은 머리를 염색해야 복사를 할 수 있는 것이냐고 했다. 자기가 복사를 할 것은 아니지만, 튀는게 안된다며 다 같은 머리색을 하라는 것이 관심을 끈것이다. 머리 색깔이랑 성당에서 복사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는 것. 온갖 머리 색깔을 볼 수 있는 나라에서 온 아이에게 거의 대다수가 어두운 머리의 세상이 특이하게 느껴졌었는데, 그걸 달리 하는 것에 제재가 가해진다는 것은 더욱 특이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자신과 같은 사람은 존재 자체가 틀린 것인가 하는 의문을 주었던 것. 참 설명하기 어려웠다. 다른 것이 튀는 것이고, 그건 좋지 못하다는 것으로 아직도 해석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문화를 아이에게 설명해주면서 한국과 덴마크에서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는 아이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다르게 생기다보니 쳐다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아이를 갑자기 만지거나, 의도치 않은 관심을 사양해도 계속 그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아이에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애초에 누가 이쁘다고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 덴마크에서 살아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아이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 반응을 해주지만,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타인의 애에게 외모 칭찬을 하면서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애가 달라서 이쁘다거나 아빠가 외국인인가보다 하면서 말을 거는 경우들이 있다. 아이가 한국어를 잘 못해도 요즘 꽤나 잘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싫고 불편해한다. 한번은 이상할 정도로 접근을 하고 말을 걸며 아이 주위를 따라다녀 아이가 불편해하니 거리를 둬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뒤를 따라와 머리를 만져대 그만하라고 하고 그 사람이 자기 길을 완전히 갈때까지 땡볕에 서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아이가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어른들이 아이를 이뻐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저 할머니는 그와 달리 많이 이상해서 엄마가 너를 보호했지만, 간혹 그걸 날카롭게 반응하기에 곤란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을 해줬다. 나도 어느 수준에서 잘라내고 반응을 보여야할지 어려웠다.

길에서 걸어다니며 담배피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건물 앞, 옆 코너에서 떼를 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심의 보행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탓에 아이에게는 도심보다 시골이 좋았던 것 같은데, 사람이 미어터졌어도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갔던 것은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이번 한국 여행은 너무 더운 것, 사람들이 만지는 것, 담배피는 사람들 많은 것 빼면 좋았다고 한다. 막상 덴마크가 가고 싶고 그립지만, 또 거기 가면 한국이 그리울 것 같다는 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내가 아이가 느낀 상처를 너무 크게 느낀 것 같기도 하다. 그 일이 있고 아이가 여러 날동안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걱정을 좀 크게 한 것 같기도 하고.

돌아오며 한국어 사용이 많이 늘어난 것은 짧은 여름 휴가의 큰 수확인 것 같다. 8월 말에 다시 시작할 한글학교가 기대된다.

서서히 덴마크인이 되어가는 과정

나와 우리 팀 동료들을 괴롭게 했던 지난 일년간의 프로젝트가 대충 마무리 되었다. 프로젝트는 우리 손을 일단 떠난 상태고, 돌아오더라도 다른 팀이 손본 곳 중에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만 수정해서 마무리하게 되었으며, 그또한 프로젝트리더가 할테니 나는 더이상 그 일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한동안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일이 손을 떠나고나자 Brain fog라고 말하는 집중력저하현상도 없어졌다. 역시나 이 모든게 스트레스 때문이었구나.

2년전부터 다른부서로부터 우리 부서가 넘겨받아 내가 1년에 한번씩 발간하는 연간보고서 프로젝트가 있었다. 첫해에는 그렇게 해왔다고 하고 이대로 하면 된다고 해서 발간했고, 작년엔 그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다만 그 전해의 소소한 문제를 개선하는 정도로 발간을 했다. 그러면서 느낀게, EU 법령에 근간해 CEER이 만든 이 보고서의 작성 가이드라인과 우리 보고서가 서서히 괴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매해 발간한다는 것은 매해 새 술을 담근다는 것이니, 이번엔 좀 새 부대에 넣어야 겠다고 느꼈다.

다른 부서들과의 발간 일정 조율 문제가 있어서 – 다들 바쁘니 – 센터장의 권위를 빌리고자 첫 2년은 센터장을 첫 미팅에 동행했는데, 이번엔 내가 홀로 해보겠다고 나섰다. 내가 주재하는 미팅에서 처음으로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긴장감 같은 것을 내려놓고 내가 해야하는 말을 다 하고 질의응답도 하고, 일정 조율 문제에 있어서도 선을 그어야 할 곳에 잘 긋고 물러날 곳에서는 물러나기도 하며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미 덴마크어로 일을 한지 벌써 5년이 넘었는데도, 회의에서 발언하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그걸 완전히 무너뜨려본 첫 경험이었다.

내일 시민권 시험을 본다. 작년에 영주권을 땄고, 앞으로 이곳에서 계속 뿌리를 내릴 것으로 결정을 했기에 시민권을 따기로 마음 먹었다. 나의 뿌리가 한국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고, 한국을 사랑하지만 시민으로서 나의 가치관은 이곳에 정착하게 되며 바뀌어왔기에 내가 일군 가족과 같은 나라의 보호를 받기로 결정했다. 영주권을 받고 2년이 된 타이밍부터 시민권을 받을 수 있으므로 내년 여름에 시민권을 신청할 것인데, 그렇기 위해서는 시험을 미리 봐둬야한다. 국적부여는 1년에 두번, 국회에서 해당 사안을 법안으로 심의하는데, 내가 영주권을 받은 후 2년에 된 후에 심사되는 법안에 내 이름이 들어갈 수 있도록 신청을 해야한다. (법안에 국적취득자의 이름이 다 하나하나 명시된다.) 조건에 부합했는지 검토하는데 대충 빠르면 6개월, 길면 2년정도 걸린다는데, 나처럼 딸린 가족 없이 홀로 국적취득을 신청하는 케이스면 거의 6개월안에 심사된다고 한다. 시험은 너무 오래되면 다시 봐야 할 수 있으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번 시험을 봐두면 여러해 유효한데, 시험도 일년에 두번 치뤄지기 때문에 그냥 미리 봐버리기로 했다.

국적 취득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 상태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 같아서 이번 대선에 처음으로 참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내 권리의자 의무로서 꼭 선거를 해왔는데, 이번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니 대선을 바라보는 시선도 좀 바뀌는 듯하다.

내가 덴마크인인 것처럼 나를 대하는 덴마크인 속에 섞여 덴마크어만 하고 살다보니 나도 서서히 덴마크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국적은 유지하고 영주권만 따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서서히 바뀐 것이기도 하고.

불편한 감정

아이를 낳고부터였나. 바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애를 낳고 지금의 순간 그 사이 어딘가에 생긴 변화였다. 극이나 책을 보며 극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게 불편해졌다. 조금이라도 갈등이 고조되는 조짐이 보이는 장면을 보게되면 책을 덮었고 영화를 껐다. 그 감정이 내 안에서 너무 크게 울렸다. 뱃속에 나비가 있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확 와닿는 그런 느낌. 감정이 무뎌져서가 아니라 감정이 너무 일렁이는게 불편해서 그런 감정에 일부러 노출되는 걸 피하게 되었다.

한강작가의 책을 보다가 앞에서 멈추고 덮어버렸던 건 바로 그래서였다. 책을 읽는데 내 속에 뭔가 스멀스멀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나를 뻘로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다시금 이런 감정들을 적극적으로 마주해보고자 한다. 불편한 순간을 피하지 않기로. 책도 영화도 불편함 때문에 고개를 돌려버리지 않기로. 그런 외면이 내 감정에 철갑을 두르고 하는 것 같아서. 다시금 감정을 풍성하게 일깨워보고싶다. 평상심과 안정적 감정의 파도는 좋지만 나이가 들어간다고 그런 감정의 파도가 주는 풍성함 – 때로는 불편할지라도 – 을 완전히 놔버리고 싶지 않다.

풀타임 워킹맘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기 힘들어 엄마에게 죄책감을 갖게 한다는 풀타임 워킹맘의 위치. 덴마크의 엄마들은 대부분 워킹맘이고, 대부분은 풀타임으로 일을 하지만 다들 일상을 각자의 힘으로 굴린다. 우리도 시부모님이 멀리 사셔서 애가 아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일년정도였다. 아직 코로나 전이었었고, 재택 개념이 일반 회사원에겐 적용되지 않던 때라 도움이 너무 아쉬웠다. 그나마 그기간 중 애가 두돌가까이 되기 까지는 내가 대학원생이었어서 그냥 내가 석사 논문 쓰는 것을 못하는 정도로 넘길 수 있어서 유연하게 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두돌 지나고 나니 애가 그렇게 자주 아프지 않기도 하고, 중앙정부기관은 아이가 아프면 첫 이틀은 보육 휴가를 쓸 수 있어서 대충 넘긴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어디가 아프면 일하지 못할 정도엔 쉬고 (이건 원래 그랬고), 일할 정도긴 하지만 남에게 옮을만한 증상이 있으면 집에서 일하는게 보편화 되기도 했고, 상황에 따라 재택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풀타임 워킹 부모들의 일상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덴마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게 현실적으로 풀타임워킹맘의 일상을 쉽게해주는 것들엔 뭐가 있을까? (물론 이는 모두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사무직이고, 내가 어느정도 업무시간을 조율하는데 재량이 있는 유연근무재도가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


  • 유연한 근무시간

주당 37시간의 근무시간인데, 나는 중앙정부 공무원이라 30분의 점심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중에서 9시부터 2시 반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근무를 해야 하고, 이 시간을 포함해 나머지 근로시간은 알아서 다른 시간에 배분할 수 있다. 매일 근무시간을 온라인 근로시간기록부에 기재하는데, 프로젝트별로 얼마나 시간을 할애했는지 시간을 기록하면 된다. 이 기록에 따라 초과근무한 시간을 모아서 다른 날 적게 근로할 수도 있고, 많이 모으면 휴가로 쓸 수도 있다. 이를 Flex timer라고 하는데 알아서 조절해서 쓰면 되니 어떤 날은 7시간 일하고 어떤 날은 8시간 일할 수 있다. 우리는 직장이 지방이전하면서 코펜하겐 시내에서 통근버스를 운행하는데, 여기서 일하는 시간도 근로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고,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는 경우, 한시간은 집에서 일해도 된다. 막상 통근버스가 있어도 주로 자차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러니 애를 픽업하고 나서 집에서 일을 더 해도 되고, 애를 데리고 어디 과외활동을 하러 가야하는 경우, 애를 기다리면서 일을 할 수도 있다. 발레학원 데려다주러 가면 거기서 일하는 부모들이 많다.

  • 한국밥상보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저녁식사

평일엔 외식을 잘 안한다. 외식 자체가 비싸기도 하고, 배달은 배달비까지 (한국보다 배달비가 많이 비싸다.) 추가되니 다들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다. 하지만 한국처럼 반찬을 가지가지 해먹을 필요 없이 간단히 메인 요리 하나, 샐러드, 밥이나 감자, 빵 같은 것으로 탄수화물 쪽을 채워주면 되는거라 애 픽업해서 같이 장 봐와서 요리해 밥 먹기가 그렇게 번거롭지 않다.

  • 이른 등교시간

학교 수업자체는 8시에 시작하지만 돌봄교실이 7시정도에 연다. 요즘 예산부족으로 곧 7시 15분으로 조정될 것이긴 한데 학교에 따라서는 6시 반에 등교시킬 수도 있다. 딱히 뭔가 활동이 있는 건 아니고, 아이가 종이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릴 수도, 책을 읽을 수도, 보드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어른들이 있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말이다. 우리 집은 내가 저녁 요리 담당이라 (남편은 설겆이 담당) 회사에 통상 7시 15분 정도에 도착하게 출근을 해서, 남편이 자기 출근하는 길에 7시 반쯤 등교를 시킨다. 그러면 내가 회사에서 3시 좀 넘어서 퇴근하면 4시 좀 전에 픽업할 수 있다. 학교는 시마다 다른데, 우리 시는 – 같은 예산 부족 이슈로 5월부터 15분씩 단축되겠지만 – 월-목까지는 5시, 금요일엔 4시에 문을 닫는다. 수업이 한시까지 진행되고 방과후엔 오전과 달리 조금 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도자기나 뭔가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밖에 나가 놀수도 있고, 아이들도 많으니 할 수 있는게 늘어난다.

  • 아이들의 독립성

어려서 아이들이 뭔가를 스스로 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 아이의 의지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걸 허용할 수 있는 부모의 여유가 있느냐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나도 내가 해주는 게 더 쉽고 빠르기에 애에게 기회를 주고 실패를 경험하고 여러번 시도해서 성공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나에게 꽤나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 나면 뒤로 가면 갈수록 아이도 부모도 수월해진다. 이미 두발자전거를 세돌 반이 되기 전에 마스터했는데,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넘어짐이 필요했고, 낮은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느라 아빠의 허리가 고생을 많이 해야했다.

화장실에 가서 큰 볼일 보고 뒤처리를 함에 있어서도 – 위생을 위해 내가 개입하고 싶어도 – 언젠가 이를 아이에게 완전히 넘기지 않으면 독립을 시킬 수가 없다. 학교에서 0학년 (유치원반) 시작하기 1년전에 만 5세 정도에 화장실 완전히 혼자가는 훈련을 시키는데, 한 3개월정도 자기가 하고 우리가 검사하는 식으로 하니, 독립의 의미가 없어지는 거 같아서 결국 완전히 손에서 놔야 했다. 엉덩이가 가려워지는 경험을 해야 자기도 더 잘 닦게 되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는 것도 다 알아서 한다. 옷을 혼자 찾아 입는 것은 이미 어린이집 다니면서 만 3세경부터 했고, 4세 경부터는 머리도 혼자 빗고, 5세부터는 자기 아침식사는 자기가 차려 먹는다. 뜨거운 밥과 국 이런것을 먹는 게 아니니까 가능하겠지만, 아침에는 그런것을 먹을 여유도 없다. 5시 40분에 일어나서 나도 내 준비해서 애 도시락까지 싸주고 6시 40분엔 문을 나서야 하고, 남편은 6시 반에 일어나서 자기 준비하고 내려와 일곱시 아침 식사할 때쯤이면 나는 이미 나가고 없으니까 애가 알아서 혼자해야하는 부분이 꽤 크다. 자기가 알아서 하니 뭐가 마음이 드네 안드네 할 일이 없다.

  • 완벽하지 않은 집안일

집안 청소는 일주일에 한번만 한다. 화장실 청소도. 그냥 정리만 하고 살다가 주말에 모든 집안일을 한번에 처리한다. 주방이야 항상 치우고 닦는 것이니 일주일 사이클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외엔 다 그렇게 한다. 주택에 사는 것이라 소소하게 집안 관리할 일들도 있기에 그 이상 집안일을 자주 하고 살 수가 없다. 집안일의 퀄리티를 특별히 올리려거나 그런 거에 힘을 쏟기 어렵기 떄문에 꼭 해야 하는 일을 딱 필요한 수준으로만 하고 산다. 엄마가 워낙 깨끗하게 사셔서 나도 집을 지저분하게 두고 살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것처럼 항상 깔끔하게 하고 살 수도 없고, 아이 방은 주말 한번 정리할 때 빼고는 엉망진창으로 어지러워져도 내버려둔다.

  • 명확한 규칙과 루틴

아이는 하루에 게임을 하던 텔레비전을 보던간에 30분의 스크린타임을 갖는다. 내가 대충 시간을 보고 있긴 하지만 자신이 타이머를 맞추고 한다. 평일에 친구네 집에 가서 놀 경우, 저녁식사를 위해 6시 전에는 집에 돌아온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가방부터 풀어 도시락과 체육복 등 정리할 것부터 정리해야 놀 수 있다. 7시 15분엔 올라가서 목욕을 하고, 욕실을 건조시킨 후 (석회 때문에 스퀴지로 물기를 제거하고 타월로 깔끔히 물기를 닦아내야 한다.) 잠옷 갈아입고 양치질 한다. 우리가 양치질은 한번 더 시킨 후 – 덴마크에서는 충치방지와 모토릭 발달과정상 수준을 고려해 만 10세까지는 부모가 양치질에 개입하라고 권고한다. – 여덟시 쯤 침대에 들어가 남편이나 내가 책을 읽어준 후 여덟시 반이면 잠을 잔다. 이 부분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지킨다. 일찍 자는 것 같지만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기 때문에 8시 반에는 잠을 자야한다. 이 부분 때문에 가족이 다 같이 저녁에 어디가서 늦게까지 있다가 오고 이런건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 애가 10대가 되어야 취침시간이 좀 늦어지고 저녁시간 활용이 좀 더 다채로워지는 거 같다.

  • 신체활동 중심의 과외활동

아이는 주중에 발레와 체조를 다니고, 주말엔 한글학교를 간다. 한글학교는 거의 놀러가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느는 걸 보면 뭔가 배우긴 한다. 학교에서는 숙제도 내주지 않고 나도 딱히 공부를 시키지 않기에 아이는 그냥 노는게 일과다. 그림그리고 책 읽는 시간 빼면 친구랑도 혼자서도 잘 논다.


월화목토는 내 저녁시간, 수금일은 남편의 저녁시간이다. 스포츠를 하거나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저녁시간을 갖지 않는 날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을 한다. 저녁화목토는 내 저녁시간, 수금일은 남편의 저녁시간이다. 스포츠를 하거나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저녁시간을 갖지 않는 날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을 한다. 각자 스포츠를 하더라도 돌아오는 시간이 그렇게 늦지 않으니 우리끼리 시간은 그 남은 시간에 보내면 된다. 애가 하나만이라 가능한 것일 수 있는데, 주변에서도 워킹맘이라 힘들어하고 그런건 의사같은 특수 직종 빼고는 흔히 듣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비유연한 근로시간때문에 한국에서 적용가능한 방식은 아니겠지만, 사회가 좀 더 유연하게 바뀌면 워킹맘도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혼자 하교하는 아이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면 아이의 20분 조금 덜 걸린다. 아주 먼 것도 아니지만 가깝지도 않은 거리.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미 작년부터 혼자 집에 걸어가는 아이들이 있긴 했는데, 최근에 들어서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이도 집에 혼자 간다고 아이가 말을 해왔다. 그래서 자기도 곧 그렇게 하고 싶다고.

작년부터 연습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러려면 내가 집에 차를 데고, 걸어가서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지라 겨울들어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날도 밝아지기 시작하고, 주변 친구들의 사례도 보고 하면서 슬슬 연습을 해야겠다 싶었다. 집에 오는 길에 왕복 4차선의 길을 횡단보도로 건너야 하는데, 거기에서 하나가 건너는 방향으로 우회전을 하거나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차량들이 제법 되는 길이라 아이도 확인을 잘 하고 건거야 한다. 또 중간에 보행자 우선 횡단보도가 2개 있는데, 아무래도 신호가 있는 것은 아니니 아이가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휙 지나가는 차들도 있고해서 이도 잘 보고 건너야 한다. 뒤에서 한 300미터 정도 떨어져 아이가 걸어가는데, 사실 애가 어떻게 건너는지 못보는 구간도 제법 있다. 애초에 내가 애가 건너는 걸 잘하는지 보고 감독하기 보다는,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뒤따라가면서 이를 볼 수 있다는 점, 아이도 내가 뒤에 있어서 든든함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좀 더 자기의 보행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점 등 때문에 같이 거리를 두고 걸어가며 연습을 하고 있다.

집에서 보면 어느새 불쑥 큰 모습에 깜짝 놀래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또 이렇게 뒤에서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큰 책가방에 비해 그닥 크지 않은 아이. 사람들 사이로 그렇게 작은 아이가 혼자 책가방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모습 등을 보면 아직도 너무 작은 것 같고. 그러면서도 혼자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앞으로 혼자 걸어나갈 연습을 하는 아이를 통해 나도 아이를 독립시킬 연습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약간 외롭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애를 위해 뭔가 해줘야 하는 기간이 정말 짧게 남은 것 같기도 하고, 보다 열심히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크면 엄마아빠랑 보내는 시간보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더욱더 중요해질텐데 말이다.

시누의 50살 생일파티

시누이 마흔살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이번엔 쉰살 생일파티에 다녀왔다. 호텔에서 뻑적지근한 파티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듬뿍 받고 사랑을 받는 모습을 받는게 정말 좋아보였다. 사람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스피치, 시누이에 맞춰 개사한 노래를 준비한 친구들, 친구들이 준비한 공연 등은 그들이 갖고 온 선물보다도 훨씬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시누네는 파티여는 것을 좋아하고, 멋진 파티를 기획할 줄 알고, 진정 파티를 즐긴다.

시누네와 우리는 성향이 여러모로 다른데, 옌스나 나는 큰 파티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가서 적당히 즐겁게 시간을 잘 보낼 수는 있지만, 가기 전 약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자고 마음을 다잡고 가야하고, 마음 편하게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필요하다. 다행히 파트너를 찢어놓는 자리배치를 하지 않은 덕에 처음부터 끝까지 옌스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내가 아이를 맡기기 어렵다는 것을 핑계로 집에 남으면 어떻겠냐 했더니, 옌스도 나같은 성향인지라 가급적이면 나랑 가고 싶다고 하더라. 누가 말을 걸면 대화를 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직접 가서 먼저 말을 걸고 싶진 않다. 늦게 가면 내가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하니, 가급적 일찍 가서 남들이 인사를 오게 하려고 하고 피곤한 면들이 없잖아 있다. 그러니 우리 생일에 우리가 파티를 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냥 친구 몇이랑 밥먹고 이야기하면 그게 제일 좋다.

남들 댄스파티 시작할 때 우리는 집에 간다고 인사하고 돌아왔다. 집에 오니 열두시가 약간 넘은 시간. 와인 두잔. 취기가 느껴지지 않는 적절한 수준. 옆에 앉은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히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으며, 덕분에 기가 확 빨려 진이 다 빠진 일도 없었다. 다음달에 시누네 막네의 견진성사 때 파티 한번 하면 오랫동안 이런 파티는 없을텐데, 나도 파티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이미 다 써버린 것 같다.

어른들만 초대받은 파티라 하나는 친구네 집에 가서 처음으로 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이제 애가 많이 커서 밤에 깨지도 않거니와, 깨도 다시 혼자서 조용히 잠에 들 수 있는 나이라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중간에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아이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자기도 파티에 갔었으면 좋았겠다고 한다. 워낙 늦은 시간이라 하나를 데리고 갈 수 없기도 했거니와 아이에게 지루했을 시간이라고 했지만, 자기는 지루해도 좋으니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고 한다. 아이고… 이렇게 귀한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