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협상시즌

덴마크의 겨울은 길다. 아직 가을이 끝나지 않았지만 벌써 절정으로 달려가는 가을의 빛깔을 보면 겨울이 한발짝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우리내 명절도 아니고, 덴마크 명절도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여름방학과 크리스마스 사이 긴 하반기를 즐겁게 보내게 해주는 할로윈도 코앞에 다가왔다. 다채로운 노랑과 붉은 계열 색깔의 향연을 멋지게 뽐내는 이 절정이 지나고 나면 11월은 나무가지가 앙상해지는 쓸쓸한 시간이 된다. 그렇게 가을은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겠지. 올 가을은 해가 좋은 날들이 많았어서 노란색과 붉은 색의 다양한 채도를 또렷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가을은 가장 바쁘면서도 한해의 마무리를 준비해야 하는시기인데, 연봉협상시기이도 하다. 연말 연봉협상시기를 앞두고 센터장과 면담을 했다. 공무원은 대부분 연봉 테이블을 따라가서 협상할 여지가 많지 않은데, 본인이 생각했을 때 특별한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면 승진을 하거나 연봉에 추가 수당을 얹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상사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본인이 노조에 요청해서 임원진과 직접 협상을 해달라고 요청할수도 있고, 상사를 설득해서 상사가 임원진에 이에 대한 승인을 요청할 수도 있다. 다만 전체 조직에서 승진을 시키거나 연봉을 올리는데 필요한 T/O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 부서별로 자신의 부서에 이를 땡겨오기 위해서 임원진간에 합의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상사가 연봉상승안이나 승진안을 올린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한해 나에게는 조금 힘든 시기였다. 나 뿐 아니라 같은 프로젝트에 들어갔던 인원들 모두 협업 부서와의 갈등으로 고생을 했다. 약간 비열함마저 느껴지는 협업부서 동료들은 해당 부서의 엄청난 인원교체를 유발한 약간 암적인 동료들인데, 은근하게 사람을 힘들게 해서 징계를 하기는 어렵고 끊임없는 주의만 남발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튼 이들이 담당자인 프로젝트으로부터 업무 발주를 받아 우리 팀에서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우리끼리 방문 닫아놓고 욕도 하고, 상사에게 애로사항을 토로하기도 하고, 노조에도 이야기하고 등 여러 조치를 취해볼 정도로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다. 프로젝트가 길게 연장되면서 나는 못견디겠다고 손들고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가면서 한숨 돌렸는데, 정말 퇴사도 고려해보게 할 정도로 힘들었다.

막바지 단계이긴 했지만, 프로젝트를 완수 못하고 나머지 동료들에게 넘겨두고 나만 빠졌던 터라 뭔가 실패를 경험한 느낌이었기에 연봉협상에서 뭔가를 요구하기가 그랬다. 그래서 뭐가 되었든 상사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고 더이상 코멘트하지 않았는데, 상사는 그거 말고도 프로젝트에서 보인 책임감과 질적인 부분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부분을 토대로 추가 수당 부분을 임원진 회의에 상정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평가해주면 고맙다 하고 내년 한 해 좀 더 좋은 프로젝트들로 더 성장할 수 있기를 노력해보겠다며 마무리했다.

중간중간 상사와 면담도 하면서 피드백을 받기도 하지만, 연봉협상시기야 말로 상사의 진정한 평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상사가 내 성과를 토대로 임원진과 합의를 이뤄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공무원도 구조조정을 하는 불확실성들이 많은 시기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년에 시민권도 신청해야 하는데 시민권이 나올 때까지 직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이 계속 잘 근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 창문의 블라인드를 활짝 열어두고 파란하늘과 노란색의 물결을 흠뻑 느끼며 근무시간을 시작해서 너무 좋다.

풀타임 워킹맘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기 힘들어 엄마에게 죄책감을 갖게 한다는 풀타임 워킹맘의 위치. 덴마크의 엄마들은 대부분 워킹맘이고, 대부분은 풀타임으로 일을 하지만 다들 일상을 각자의 힘으로 굴린다. 우리도 시부모님이 멀리 사셔서 애가 아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일년정도였다. 아직 코로나 전이었었고, 재택 개념이 일반 회사원에겐 적용되지 않던 때라 도움이 너무 아쉬웠다. 그나마 그기간 중 애가 두돌가까이 되기 까지는 내가 대학원생이었어서 그냥 내가 석사 논문 쓰는 것을 못하는 정도로 넘길 수 있어서 유연하게 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두돌 지나고 나니 애가 그렇게 자주 아프지 않기도 하고, 중앙정부기관은 아이가 아프면 첫 이틀은 보육 휴가를 쓸 수 있어서 대충 넘긴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어디가 아프면 일하지 못할 정도엔 쉬고 (이건 원래 그랬고), 일할 정도긴 하지만 남에게 옮을만한 증상이 있으면 집에서 일하는게 보편화 되기도 했고, 상황에 따라 재택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풀타임 워킹 부모들의 일상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덴마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게 현실적으로 풀타임워킹맘의 일상을 쉽게해주는 것들엔 뭐가 있을까? (물론 이는 모두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사무직이고, 내가 어느정도 업무시간을 조율하는데 재량이 있는 유연근무재도가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


  • 유연한 근무시간

주당 37시간의 근무시간인데, 나는 중앙정부 공무원이라 30분의 점심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중에서 9시부터 2시 반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근무를 해야 하고, 이 시간을 포함해 나머지 근로시간은 알아서 다른 시간에 배분할 수 있다. 매일 근무시간을 온라인 근로시간기록부에 기재하는데, 프로젝트별로 얼마나 시간을 할애했는지 시간을 기록하면 된다. 이 기록에 따라 초과근무한 시간을 모아서 다른 날 적게 근로할 수도 있고, 많이 모으면 휴가로 쓸 수도 있다. 이를 Flex timer라고 하는데 알아서 조절해서 쓰면 되니 어떤 날은 7시간 일하고 어떤 날은 8시간 일할 수 있다. 우리는 직장이 지방이전하면서 코펜하겐 시내에서 통근버스를 운행하는데, 여기서 일하는 시간도 근로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고,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는 경우, 한시간은 집에서 일해도 된다. 막상 통근버스가 있어도 주로 자차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러니 애를 픽업하고 나서 집에서 일을 더 해도 되고, 애를 데리고 어디 과외활동을 하러 가야하는 경우, 애를 기다리면서 일을 할 수도 있다. 발레학원 데려다주러 가면 거기서 일하는 부모들이 많다.

  • 한국밥상보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저녁식사

평일엔 외식을 잘 안한다. 외식 자체가 비싸기도 하고, 배달은 배달비까지 (한국보다 배달비가 많이 비싸다.) 추가되니 다들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다. 하지만 한국처럼 반찬을 가지가지 해먹을 필요 없이 간단히 메인 요리 하나, 샐러드, 밥이나 감자, 빵 같은 것으로 탄수화물 쪽을 채워주면 되는거라 애 픽업해서 같이 장 봐와서 요리해 밥 먹기가 그렇게 번거롭지 않다.

  • 이른 등교시간

학교 수업자체는 8시에 시작하지만 돌봄교실이 7시정도에 연다. 요즘 예산부족으로 곧 7시 15분으로 조정될 것이긴 한데 학교에 따라서는 6시 반에 등교시킬 수도 있다. 딱히 뭔가 활동이 있는 건 아니고, 아이가 종이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릴 수도, 책을 읽을 수도, 보드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어른들이 있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말이다. 우리 집은 내가 저녁 요리 담당이라 (남편은 설겆이 담당) 회사에 통상 7시 15분 정도에 도착하게 출근을 해서, 남편이 자기 출근하는 길에 7시 반쯤 등교를 시킨다. 그러면 내가 회사에서 3시 좀 넘어서 퇴근하면 4시 좀 전에 픽업할 수 있다. 학교는 시마다 다른데, 우리 시는 – 같은 예산 부족 이슈로 5월부터 15분씩 단축되겠지만 – 월-목까지는 5시, 금요일엔 4시에 문을 닫는다. 수업이 한시까지 진행되고 방과후엔 오전과 달리 조금 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도자기나 뭔가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밖에 나가 놀수도 있고, 아이들도 많으니 할 수 있는게 늘어난다.

  • 아이들의 독립성

어려서 아이들이 뭔가를 스스로 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 아이의 의지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걸 허용할 수 있는 부모의 여유가 있느냐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나도 내가 해주는 게 더 쉽고 빠르기에 애에게 기회를 주고 실패를 경험하고 여러번 시도해서 성공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나에게 꽤나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 나면 뒤로 가면 갈수록 아이도 부모도 수월해진다. 이미 두발자전거를 세돌 반이 되기 전에 마스터했는데,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넘어짐이 필요했고, 낮은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느라 아빠의 허리가 고생을 많이 해야했다.

화장실에 가서 큰 볼일 보고 뒤처리를 함에 있어서도 – 위생을 위해 내가 개입하고 싶어도 – 언젠가 이를 아이에게 완전히 넘기지 않으면 독립을 시킬 수가 없다. 학교에서 0학년 (유치원반) 시작하기 1년전에 만 5세 정도에 화장실 완전히 혼자가는 훈련을 시키는데, 한 3개월정도 자기가 하고 우리가 검사하는 식으로 하니, 독립의 의미가 없어지는 거 같아서 결국 완전히 손에서 놔야 했다. 엉덩이가 가려워지는 경험을 해야 자기도 더 잘 닦게 되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는 것도 다 알아서 한다. 옷을 혼자 찾아 입는 것은 이미 어린이집 다니면서 만 3세경부터 했고, 4세 경부터는 머리도 혼자 빗고, 5세부터는 자기 아침식사는 자기가 차려 먹는다. 뜨거운 밥과 국 이런것을 먹는 게 아니니까 가능하겠지만, 아침에는 그런것을 먹을 여유도 없다. 5시 40분에 일어나서 나도 내 준비해서 애 도시락까지 싸주고 6시 40분엔 문을 나서야 하고, 남편은 6시 반에 일어나서 자기 준비하고 내려와 일곱시 아침 식사할 때쯤이면 나는 이미 나가고 없으니까 애가 알아서 혼자해야하는 부분이 꽤 크다. 자기가 알아서 하니 뭐가 마음이 드네 안드네 할 일이 없다.

  • 완벽하지 않은 집안일

집안 청소는 일주일에 한번만 한다. 화장실 청소도. 그냥 정리만 하고 살다가 주말에 모든 집안일을 한번에 처리한다. 주방이야 항상 치우고 닦는 것이니 일주일 사이클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외엔 다 그렇게 한다. 주택에 사는 것이라 소소하게 집안 관리할 일들도 있기에 그 이상 집안일을 자주 하고 살 수가 없다. 집안일의 퀄리티를 특별히 올리려거나 그런 거에 힘을 쏟기 어렵기 떄문에 꼭 해야 하는 일을 딱 필요한 수준으로만 하고 산다. 엄마가 워낙 깨끗하게 사셔서 나도 집을 지저분하게 두고 살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것처럼 항상 깔끔하게 하고 살 수도 없고, 아이 방은 주말 한번 정리할 때 빼고는 엉망진창으로 어지러워져도 내버려둔다.

  • 명확한 규칙과 루틴

아이는 하루에 게임을 하던 텔레비전을 보던간에 30분의 스크린타임을 갖는다. 내가 대충 시간을 보고 있긴 하지만 자신이 타이머를 맞추고 한다. 평일에 친구네 집에 가서 놀 경우, 저녁식사를 위해 6시 전에는 집에 돌아온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가방부터 풀어 도시락과 체육복 등 정리할 것부터 정리해야 놀 수 있다. 7시 15분엔 올라가서 목욕을 하고, 욕실을 건조시킨 후 (석회 때문에 스퀴지로 물기를 제거하고 타월로 깔끔히 물기를 닦아내야 한다.) 잠옷 갈아입고 양치질 한다. 우리가 양치질은 한번 더 시킨 후 – 덴마크에서는 충치방지와 모토릭 발달과정상 수준을 고려해 만 10세까지는 부모가 양치질에 개입하라고 권고한다. – 여덟시 쯤 침대에 들어가 남편이나 내가 책을 읽어준 후 여덟시 반이면 잠을 잔다. 이 부분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지킨다. 일찍 자는 것 같지만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기 때문에 8시 반에는 잠을 자야한다. 이 부분 때문에 가족이 다 같이 저녁에 어디가서 늦게까지 있다가 오고 이런건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 애가 10대가 되어야 취침시간이 좀 늦어지고 저녁시간 활용이 좀 더 다채로워지는 거 같다.

  • 신체활동 중심의 과외활동

아이는 주중에 발레와 체조를 다니고, 주말엔 한글학교를 간다. 한글학교는 거의 놀러가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느는 걸 보면 뭔가 배우긴 한다. 학교에서는 숙제도 내주지 않고 나도 딱히 공부를 시키지 않기에 아이는 그냥 노는게 일과다. 그림그리고 책 읽는 시간 빼면 친구랑도 혼자서도 잘 논다.


월화목토는 내 저녁시간, 수금일은 남편의 저녁시간이다. 스포츠를 하거나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저녁시간을 갖지 않는 날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을 한다. 저녁화목토는 내 저녁시간, 수금일은 남편의 저녁시간이다. 스포츠를 하거나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저녁시간을 갖지 않는 날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을 한다. 각자 스포츠를 하더라도 돌아오는 시간이 그렇게 늦지 않으니 우리끼리 시간은 그 남은 시간에 보내면 된다. 애가 하나만이라 가능한 것일 수 있는데, 주변에서도 워킹맘이라 힘들어하고 그런건 의사같은 특수 직종 빼고는 흔히 듣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비유연한 근로시간때문에 한국에서 적용가능한 방식은 아니겠지만, 사회가 좀 더 유연하게 바뀌면 워킹맘도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덴마크 직장 점심식사

내가 있었던 곳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전체 공공부문에 해당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중앙정부는 점심시간 30분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구내식당은 회사의 지원이 어느정도 있어서 1인당 대충 6천원 언저리를 내면 나머지는 회사가 부담하는 형식이고,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도 꽤 된다. 여기서 도시락이라 함은 꼭 다 완성된 음식을 싸오는 것 뿐 아니라 오이, 당근, 토마토, 햄, 치즈, 아보카도, 후무스, 버터 등을 회사 냉장고에 두고 자리에 둔 호밀빵을 가져다가 필요한 것을 얹어 먹는 식의 것도 포함한다.

우선 점심시간이 30분에 불과하기도 하고, 이 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기도 하니 대부분 구내식당에 내려가서 같이 먹는게 일상이다.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나누는데 각자 일상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된다. 배우자와 파트너 이름과 직업, 아이들 이름, 나이, 취미는 뭐고, 주말엔 뭐 했고, 뭐 할 거고, 휴가엔 뭐할 건지 등등 서로 시시콜콜 다 안다. 한국같았으면 ‘어떻게 이런걸 물어보지?’ 싶은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too much information이라고 할법한 것도 이야기해준다. 아마 이런 시간이 “회식”이라는 것 없이도 직장생활의 단합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전직장에서는 간혹 이 점심시간이 부담스러웠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다양하게 다뤄지는 주제들이 난무하는 점심시간은 당시 큰 구내식당의 엄청 울리는 어쿠스틱과 함께 덴마크어 리스닝 시험과 같은 스트레스를 줬기 때문이다. 내 왼쪽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던 왼쪽 사람이 갑자기 오른쪽에 앉은 나를 보며,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음… 나 소리가 잘 안들려서 뭔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네?”라고 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왼쪽 오른쪽, 맞은편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공을 튀기듯이 무질서한 탁구같은 대화를 하는 상황에 나는 뭐를 받아쳐야할 지 몰랐다.

일이 바쁘던 때면 간혹 점심을 책상에 갖고 와서 식사하던 센터장을 보면서 나도 간간히 그랬고, 그게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번은 그렇게 식사를 갖고 와서 책상에서 먹곤 했다. 그당시에만 해도 뭘 물어봐도 되는지, 뭘 물어보면 안되는지를 몰랐기 떄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뭘 물어보면 안될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다 물어보면 되는 거였다는 생각이다.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이 다 알고 있는 그들에게 그게 사석에서 친해서 그런건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나는 안물어봤는데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었던 거다. 간혹 내가 생각하기에 안물어보는게 맞을 것을 물어보는 그들을 보며 취조당하는 기분도 가졌는데, 같은 질문을 지금 들었으면 아마 그런 생각 안하고 흔쾌히 다 답을 해줬을 것 같다.

즐거운 점심 식사/수다시간. 특별히 회의가 겹치거나 하지 않는다면 함께할 것을 기대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익숙해진다면 사실 동료들과 정말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뿌리내리는 민들레 홀씨

지금의 직장에 출근을 시작한지 거의 만 삼년이 되어간다. 이달 말이면 삼년. 잠깐 십개월 다른 길을 걸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지금 직장을 포함해 중앙정부에서 일한지 벌써 만 사년반이 넘었다.

2019년 초의 나는 지금의 모습과 참 많이 달랐다. 덴마크 중앙정부의 수평적인 듯 미묘하게 숨겨진 위계질서와 같은 문화와 맥락을 잘 읽기 힘들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직장내 행동양식은 이곳에선 당연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양식은 나에게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랐고 타인의 입장에서 나를 찾았다. 나에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어학원을 졸업했고, 일상에서 영어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해서 법령을 읽고 문서와 보고서를 척척 쓸 수도 없었다. 정말 배울 게 많았고 위축되는 순간도 그래서 많았다.

다행히도 이제 나는 더이상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를 찾지 않는다. 덴마크에서의 직장생활은 어학원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달까? 일을 하기는 하지만 언어도 실습하며 다니는 기분. 정말 이 직장이 나를 많이 키워줬구나 싶다. 월급 줘가며 말과 문화도 가르치고 일도 가르치고.

새로운 제도 도입이 되는 것과 관련해 그 근간이 되는 모델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관련 자료를 읽고 검토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이런건 술술 읽히는구나 싶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보고서를 써도 더이상 큰 난도질을 겪지 않기 시작했고, 어디서 뭔가 이야기를 하는게 긴장되지 않으며, 어떤 자리가 어떤 순서로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이 가고, 거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눈치보지 않게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난 한국인이지만 이제는 덴마크 시민으로의 정체성도 커지고 있다. 덴마크인의 배우자이자 어머니로, 이 사회의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데에 참여하고 있다. 더이상 외국인으로서의 내가 어떤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더이상 객관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어렵게 덴마크 사회와 문화에 통합리 되었다. 아무래도 자격이 되는 타이밍에는 덴마크 국적을 취극한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진짜 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은 여기가 되었으니까.

정작 내 나라에서 뭔가 소속감을 못느껴 뿌리를 못내리고 바람에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가 덴마크에 와서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는 모양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MUS의 철이 왔구나.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MUS (Medarbejderudviklingssamtalen, 직원계발면담). 쥐에 해당하는 단어인 mus와도 발음이 같아서 처음엔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는데, MUS는 덴마크 직장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MUS와 mini-MUS, 임금협상*은 하나의 사슬처럼 얽혀서 굴러간다. 연초에 MUS를 하고나면, 반년뒤에 mini-mus가 있고 오래지 않아 그 뒤로 연봉 협상이 따른다. (*민간에서도 비슷하게 굴러간다하지만, 나는 덴마크에서 민간 경험은 없으므로 중앙부처에 해당하는 Staten만 보자면 우리 사무관급에 해당하는 Fuldmægtig는 거의 개별 협상을 하지 않는다. 수당 정도만 협상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속한 노조가 협상한 결과를 그냥 받아들인다. 자신이 특별하게 더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라면 개별 협상을 물론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난 딱히 내가 더 특별하게 잘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MUS는 Kompetencehjul이라는 툴을 통해 개인 역량 계발을 돕고자 하도록 하는데, 우리 조직같은 경우 구술커뮤니케이션, 서술방식 소통, 협업, 사회성 (사회성이 포함되어있다!), 직무전문성, 창조성 및 발명능력, 업무수행력, 생산성, 수용력 등 9개 분야로 계발분야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면 mini-MUS를 통해 반년 후 진행상황을 점검한다. 임금협상에서는 이걸 토대로 평균보다 잘하고 있을 경우 역량수당 분야에서 개별 협상을 할 수 있다.

먼저 개인이 매뉴얼 따라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그걸 토대로 상사와 면담을하고, 내가 생각하는 중점 계발 분야가 뭔지, 상사가 생각하는 건 뭔지, 그걸 어떻게 계발할지 (연수, 업무 수행, 기타 구체적인 사항 등), 그걸 계발해서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등 양측에서 합의된 내용을 계발계획양식에 채워넣고 사인하고 나면 MUS가 끝난다.

예전엔 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나 그런 생각을 했는데, 작년 MUS 이후 이를 내 일과에 적극 반영하고 난 후에 이게 중요한 툴이란 걸 알게 되었다. 작년에는 구술 및 서술방식 커뮤니케이션 분야와 직무전문성 분야의 계발에 중점을 두고 싶다고 했는데, 여기에 포함된 내 계발분야를 내 업무시간에 평소에 녹여넣으면서 커뮤네케이션 부분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 교육도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서 가서 듣고, 평소에도 이를 활용하다보니 조직내에서 내 위치와 내 스스로 평가하는 내 모습이 같이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조직내 성장보다는 전문가쪽 역량을 키워가는 쪽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커리어 방향도 설정할 수 있었고, 내가 관심있는 직무에 대해서도 이야기함으로서 향후 기대되는 프로젝트의 참여에 대해서 나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좋다.

한국의 인사고과는 정치적인게 컸다면 지금 소속된 조직에서는 MUS를 통해 자기가 능력을 계발, 성장하고 연봉의 형태로 그 보상을 받는 형태로 크게 정치적인 요소가 없다는데서 속이 아주 시원하다. 내가 남보다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내 현재에서 필요한 역량과 그에 맞춰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되는 거니까. 올해 농사를 또 잘 지어봐야지.

프로젝트 중간기록

뭔가를 발표한다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외부 발표 전 내부 발표 리허설이라도 부담스럽다.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 쯤이면, ‘이건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추진한 일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고, 그 피드백을 받아 더 좋은 결과물을 생산하기 위함이다. ‘라는 주문을 마음속으로 건다. 그러면 긴장감을 덜어낼 수 있다. 오랫동안 파고들은 내용이기에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라 틀만 잘 잡아서 자료에 담아두면 된다. 그리고 다 잘 풀릴 것이다라고 주문을 걸고. 

다행히 내부 리허설을 잘 마쳤다. 이전에 이미 리허설을 한번 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분석의 틀을 완전히 바꾼 거였다. 영 설명이 잘 되지 않던 부분에 대해서 코멘트를 받고 방향 설정을 완전히 다시 했더랬다. 긴장이 되면서도 그 당시 나왔던 질문에 대해 하나씩 곱씹어가면서 충분히 준비했던 발표인데다가 똑똑한 동료들의 예리한 질문이 아주 다방면으로 나왔기에 그것에 답하며 준비한 것만으로도 포괄적으로 준비가 잘 된다 싶었다. 작게 보완할 것들이 있긴 했지만 별로 그런 게 없었고 나머지는 내가 아닌, 업계에 질문을 해야할 요소들이었다. 

심리상담을 받은 후 얻게 된 새로운 장점은 발표 중 청자의 눈빛이나 자세 등에서 불필요하게 신호를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전엔 혹시나 내 발표에 의구심이 생긴걸까? 내가 발음을 잘못했나? 뭔가 틀렸나? 하는 끊임없는 상상을 토대로 발표 중간에 나를 괴롭히고 집중력을 흐트려뜨렸는데, 이젠 그냥 그런 게 있으면 질문을 하겠지 하고 넘긴다. 그 사람이 손을 들때까지는 불필요한 상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운 게 정말 크다. 그게 몸 속에 아드레날린을 과도하게 분비하게 만드는데, 그게 없으니 차분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업계와 일을 하면 훨씬 더 비판적이거나 원색적인 목소리를 접할 수 있긴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어떤 코멘트를 하던지간에 긍정적인 톤을 유지한다. 그리고 코멘트의 경우 구체적으로 한다. 이런걸 보완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왜 이걸 이런 식으로 만들었냐 이런 비판적이고 불특정적인 피드백은 없다. 

새로운 감시 분야를 개발하는 것이라 시간이 많이 투여가 되고 있긴 하나, 프로그래밍 적으로 배운 것이 정말 많다. R을 훨씬 자유롭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걸로 새로운 연구 분야도 설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결과를 토대로 에너지청도 새로운 연구를 하려고 하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관심이 높아진 분야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먼저 움직인 것이라 재미가 있다. 

긴 호흡의 프로젝트라 중간에 그 흐름 속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아마 이런 긴 호흡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맡아서 끝까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 거 같다. 경쟁소비자청에서도 그런 프로젝트를 하다가 중간에 관두고 나와서 끝까지 하지 못했는데,  그때도 스트레스가 엄청 컸다. 큰 바다속에서 도대체 언제 헤어나올 수 있을지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중간중간 마일스톤 셋업이 힘들었던 것 같다. 여기보다 더 큰 조직에 중간중간 스파링을 할 사람도 너무 높은 사람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여기저기 걸린게 많은 훨씬 큰 프로젝트였던 터라 이해관계자도 너무 많고 비교하기 어렵게 힘들었다. 지금 일보다도 이론적인 프로젝트였어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이번 프로젝트는 오로지 데이터를 갖고 씨름하는 것이라 데이터의 바다에서 헤메이다가 스트레스로 무너질 뻔 했는데, 그걸 잘 넘기고 나니 또 어떻게 어떻게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긴 프로젝트의 장점으로 내가 조금 더 플래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험도 쌓았고.

이제 남은 건 다음 주 중간결과를 업계대상으로 발표하고 최신 데이터를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이걸 정리해서 리포트로 만드는 것, 경영진에게 발표해 승인을 받은 후, 온라인 공청회처럼 이를 대외로 보내 피드백을 받고, 이걸 반영한 최종본을 또 한번 경영진에게 승인받고,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보내 그래픽 등을 이쁘게 만들어 최종 발표하는 거다. 그리고나서는 매년 데이터를 받아 모니터링을 하는 감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만 남는다. 

남은 프로세스들도 한번씩 경험하면 프로젝트 운영 경험도 한번 쌓여서 앞으로의 일이 조금씩 더 수월해지겠지. 하지만 그 남은 프로세스들이 손이 많이 가는 일이 될 거다. 디테일이 중요해지는 단계니까. 열심히 달려보자!

사고쳤는줄 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하루

GIS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열다가 빈 파일을 덮어 저장하는 실수를 했다. 그런 실수를 했음을 안 건 세개의 파일을 그렇게 한 후였다. 열기만 하는 거라서 그냥 공용폴더에서 바로 열었는데 그런 실수를 하다니… 세상에나… 얼른 상황을 상사에게 보고하자 하니 상사는 회의중으로 부재중이다. 얼른 상황을 보고하고 누구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조치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답장이 바로 와서 우선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으나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거다.

점심 내려가면서 같은 사무실 동료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얼굴로는 웃고 있는데 속이 까맣게 타고 있다고 했더니 그거 다 버전 백업 될 거라면서 걱정을 말라하는거다. 정말? 아. 그래도 안정이 안되네…라고 하니까 날짜별로 백업이 이뤄지던지 뭔가 있을거다. 확실하다고. 긴장 풀라고 하니 조금 마음이 안정되더라. 마침 컴퓨터 교체가 월요일이라 서버에 저장이 안되는 것들의 백업을 하면서 긴장감을 없애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더니 상사가 IT담당자를 데려왔다. 세상에. 이게 쉽게 구버전을 복구할 수 있었던거구나! 컴맹이었군!! 이러면서 얼른 상황을 수습했다.

사고쳤는 줄 알았던 순간, 사고는 최대한 빨리 보고하라던 IT 지침처럼 바로 보고했는데, 상사 왈, 사고 치고 오랫동안 뭉개다가 나중에 사고를 보고하는 사람들이 제법 되서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사람이 많다며 잘샜단다. 나도 그 마음은 이해하겠는게 순간 당황스러움, 미안함, 수치스러움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더라. 이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였는줄을 몰랐으니 그렇긴 했지만 그런 성격이 아닌 정말 문제였더라면 어땠을런지. 아무튼 마음이 여전히 시끄럽다. 감정의 잔상이라는 건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남아있는 것이 마치 물에 던진 돌이 일으킨 파동 같다. 그 파동이 멈출때까지 파동이 남아있는 것…

인간관계는 복잡해…

상사와 한 동료간에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깊어진 골은 메우기 어려운 법인데… 인간관계는 각각의 화학작용에 따라 결과가 너무 달라지기에 A-B, B-C는 잘 지내더라도 A-C가 잘 지낸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나는 상사와 잘 지내고 그 동료와도 잘 지내고, 그 둘도 잘 지낼 줄 알았지만 상사와 그 동료는 갈등이 깊었던 거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부딪힐 수 있는 난관에 대해 고려를 잘 해야한다 하는 그 동료의 면을 나는 그 동료가 조심스러운 면이 많다고 느낀 것인데 반해 상사는 그 동료가 매사 부정적이다라고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평가에 대한 피드백의 방식이 그 동료는 적절하지 않다고 느끼고.

간혹 그 동료가 옆자리 다른 동료에게 이런저런 일적인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을 얼핏 듣는 적이 있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끼고 음악을 들으며 일하기에 그런 분위기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점심을 같이 먹는 구내식당에서는 모두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거기서는 그냥 그 직원이 원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분위기를 감지하기 어려웠다.

그 동료가 내 프로젝트에 조인을 한터라 간간히 상사랑 미팅을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이다보니 회의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말을 했기에 별 생각을 못했더랬다. 이제 이 갈등상황을 알게 되고 나니 회의에 들어가서 괜히 눈치가 보인다. 모르는척 하고 나 하던대로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이런 갈등상황이 잘 개선되어 모두가 좀 더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떻게 하는게 좋을 지 모르겠다. 사실 그 동료가 상사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센터 특성상 개개인의 자율성이 엄청 큰데, 호흡이 일년쯤 되는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이 자율성에 묻혀 방향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나도 이런 부분에서 시작된 스트레스가 자아비판과 합쳐져 심리상담가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그 불만의 핵심을 이해한다. 이에 대해 나는 상사의 지원을 요청했고,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상사와 주기적으로 미팅을 하면서 방향성 설정에 도움을 받았는데, 이 방법을 내가 구체적으로 제안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동료가 원하는 것도 상사의 적극적 지원인데, 동료는 이 상사의 적극적 지원과 관리가 상사의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심리상담도 하고 상사랑 조율도 하고 난 후로 자율성 부분과 지원 부분에서 나는 적당한 균형을 찾았는데, 그 동료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상사의 관리를 요구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잘못된 관리상황이라고 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큰 상사의 적극적 지원과 관리를 원하는 동료로서 내가 받은 수준에 못미치는 지원과 관리를 받았으니 마음속 갈등이 얼마나 커졌겠는가.

이미 그렇게 커진 골은 좁히기 어려운 바, 아마 오래지 않아 동료는 사내 팀 이동을 하든가 이직을 할 것 같다. 마음이 뜬 듯 하기 때문이다. 상사도 인간이니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다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면을 피드백을 받는다면 고칠 의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일 것 같은데, 상사를 향한 피드백이 어려운 건 나라를 불문하고 마찬가지인 것 같다. 덴마크는 위를 향한 쓴소리를 잘하는 나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고 본인이 이야기 하지 않는 갈등 문제를 타인이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나 말고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가 상사에게 한번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한번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내가 혼자 하는 프로젝트를 주로 맡다보니 이런 어려움을 모르고 모든게 좋게 잘 돌아가려니…하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왠지 씁쓸하다. 누군가 힘이 들어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불편하다. 감정까지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니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잘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덴마크와 한국 직장생활의 차이점

은행에서 삼년 일한 초년생 시절을 제외하면 참 오랫동안 공공부문에서 일했다. 두번째 직장인 코트라는 공공부문에 일을 했지만서도 준정부기관에서 일한 탓에 그 애매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공무원은 분명 아닌데, 또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준공무원이라고는 해도 이게 기업의 수출과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업무였다보니까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니 그 일을 통해서 내가 배우게 되는 것들을 빼면 일의 성과에서 내 발자국을 찾기가 힘이 들었다. 지금은 내가 하는 일이 실제 덴마크 에너지 인프라 정책에 아주 작은 점이나마 남길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다르다.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과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리에 남아서 계속 기여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기에 중요하다 생각한다. 덕분에 감사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코트라를 나와서 일한 곳이라고 해봐야 덴마크 첫직장 취업 전 잠시 지도교수와 함께 단기로 참여한 컨설팅회사 프로젝트 한달반 정도 하나이고, 그 이후에는 중앙정부기관 두군데 뿐이니 덴마크 직장생활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은 물론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낀 덴마크와 한국 직장생활의 차이점을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근무시간이 유연하다.

근무시간은 주당 37시간이 평균이다. 근무 쉬프트가 중요한 직종 – 예를 들어 병원 의사, 간호사, 환경미화, 선생님, 경찰, 생산직 근로자 등 – 은 유연하게 일하기 어렵지만 일반 사무직종의 경우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정해진 시간텀을 포함해 그 앞 뒤로 시간을 붙여 일해 37시간을 일하면 되니까 언제 출근도장 찍었는지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 간혹 9시에 근태점검을 하던 시절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 근태점검이 출입증을 태그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하는 건지 사무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야하는건지도 갑론을박했었는데. 아무도 퇴근시간은 그렇게 챙기지 않았는데… 그렇게 밥을 먹듯이 넘겨도…

데스크 전화와 데스크탑 컴퓨터가 없다.

랩탑, 핸드폰은 입사시 지급되는 기본 IT기기이다. 도킹 스테이션과 모니터 두개,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어서 앉거나 서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디폴트라 자리를 바꾸는 경우 랩탑과 핸드폰만 들고 이동하면 된다. 데스크 전화는 없다. 민간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는데, 정부기관은 기본이 그렇다. 전화에 전화번호관련 솔루션이 탑재되어 있어서 소속기관 전화번호부가 깔려있다. 카톡 등 개인것을 업무에 섞지 않는다. 물론 회사 전화를 개인전화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하는 기관도 있다. 그럴 경우 복지혜택에 수급으로 판단해 세금을 더 내야한다. 지난번 근무 기관은 이게 허용이 되었는데, 지금 직장은 허용이 되지 않아 다들 전화를 두개씩 들고 다닌다.

헤드폰을 끼고 일해도 된다.

헤드폰을 요청할 수 있다. 소음차단이 되는 헤드폰을 달라고 해서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해도 된다. 대부분 자기 자리에서 전화를 받지는 않지만 업무상 이야기가 아주 길어지지 않는 경우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꽤 되니까 집중에 방해가 되는 걸 피하려고 헤드폰을 끼고 일한다. 전화가 오는 경우 진동으로 되어 있어서 헤드폰 꼈다고 못듣고 그런게 아니니 피해줄 일도 없다.

타인 앞에서 깨지지 않는다.

피드백 할 게 있으면 따로 불러서 하고, 그걸 타 부하직원에게 공유하지 않기에 상사로부터 타인 앞에서 깨지는 일이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리더로서의 자격을 의심받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상사로부터 깨지는 걸 본 일이 없다. 좋은 일은 반대로 타인 앞에서 칭찬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깨진 일도 없지만, 깨지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남들 앞에서 호되게 혼난다든지 하는 걸 걱정할 일이 없다.

복장 규정이 없다.

복장 부분은 많이 자유롭다. 문화가 있어서 각자 알아서 맞추는 분위기이나 간간히 안맞추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갖고 대놓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 물론 간혹 특별한 경우 뒤에서 놀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다. 그런 거 생각했다면 그렇게 튀게 입지 않을 사람들이기에 이러나 저러나 뭐라 하지 않는 거 같다. 언제 한번 배꼽이 보이는 탑을 입고 온 사람이 있었다. 나와 다른 직원 한명이 그녀를 구내식당에서 보고 큰 눈을 뜨고 눈빛을 교환한 뒤 놀랐다며 한마디씩 했다.

휴가 가면 연락이 안된다.

휴가 가는 기간 중 연락이 되어야 하는 경우는 정말 특별한 거 같다. 상사들은 조금 연락이 가능한데,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연락이 될 거라고 기대해서도 안되지만, 대부분은 이 기간에 연락을 극도로 피한다. 일반 사원급에서는 연락이 대부분 되지 않는다. 회사 전화도 컴퓨터도 두고 간다. 회사 전화의 VPN이 없으면 회사 시스템 접속 자체가 안되니까 연락이 될리가 없다. 따라서 휴가 기간에는 그냥 연락을 서로 하지 않는다.

회식이 거의 없다.

일년에 네번정도 회식이 있다. 두번은 팀빌딩 같은 걸로 세미나 같은 거 하고나서 저녁 먹는 거 하고, 두번은 여름 휴가 전에 파티 한번 하고, 겨울에 크리스마스 가까워서 연말 파티 한번 하는거다. 나는 한번 직원들 초대해서 식사 같이 한 적 있는데, 그때 다들 왔던 거 제외하고는 정해진 회식 외에는 따로 소규모 회식을 해본 적이 없다.

상사와 1대1 면담이 대충 한달에 한번정도 있다.

삼십분정도 할애해서 직속 상사랑 1대1 면담을 한다. 업무 관련 팔로우업도 하고, 주제는 없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직원에게 일상의 애로사항이 있는지 등도 들어보고 한다.

사수 부사수 개념이 없다.

대부분 입사 후 1달정도 정착을 도와줄 버디를 정해주는데 회사내 일상 생활과 관련해서 알아야 할 것, 중요 규정들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지, 회사 건물 안내, 건물 안내시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새직원 소개 등을 해준다. 그거 외에 꼭 알아야하는 것은 인사팀에서 입사 전에 이미 읽어볼 규정들을 보내주기도 하고 인트라나 인트로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시스템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되어있다. 사수 부사수 개념이 없고 모두 동료들이기 때문에 물어보면 친절히 다 알려준다. “누구씨. 이런거 꼭 말로 해줘야 알아요? 그정도는 학교에서 배우고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하는 신경질적인 말투를 들을 일이 없다.

자기 발표는 자기가 준비한다.

필요한 자료와 관련 수치는 관련 담당자에게 요청을 한다 하더라도 최종 발표자료는 발표자가 준비한다. 상사의 발표자료는 상사가 만든다. 부하직원이 만들어가면 이렇게저렇게 만들라고 수정요구를 하고 다시 수정해 가져가면 또 수정하고 하는 무한반복을 안해도 된다. 심지어 청장들도 그렇게 한다. 자기가 만들어야 자기도 발표할 때 자신있게 발표할 게 아닌가! 이런데서 오는 생산성 향상이 엄청 크다. 낭비를 제일 싫어하니까.


덴마크 사람들은 딱 계약서에 써 있는 만큼만 일하려 한다. 성장하려는 욕구가 없다. 이기적이다. 개인적이다. 등등 덴마크 사람들의 근로 문화를 두고 이를 비판하는 한국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반대로 놓고보면 우리가 “주인의식”이라는 미명하에 알아서 계약서로 합의된 이상으로 스스로를 갈아넣는 것에 너무 익숙한 거 아닌가 싶다. 실용주의가 뼛속까지 박힌 이들은 형식에 크게 얽메이지 않고 서로를 인간대 인간으로 대하며 각자 할일 하는 것에 집중하는 걸 제일 중시한다. 완벽하다는 게 아니다.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같이 단점이 따라오지 않는가. 그런 단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나면 이 문화가 인간의 정신건강에 크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면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뿐이다.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하면 정말 안될까?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했더니 국제채용 및 통합청 (Styrelsen for International Rekruttering og Integration, SIRI)에서 경고 서한을 받았다며 ‘무슨 이런 천국이 있냐?’ 또는 ‘이렇면 사회가 발전을 할 수 있나?’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그러면 정말 덴마크에서는 주당 37시간 일하면 안되나?

절대 그럴리가 없다. 주변에 주당 37시간 근무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아무도 경고를 받지 않는다.

가까이는 사기업에 다니는 남편부터 그렇다. 밀린 이메일을 처리한다고 주말에도 간간히 일하는 남편은 평일에 평균 9시간정도 근무를 한다. 주당 근로시간이 50시간 좀 안되게 일하고 그런 일상적 야근은 이미 임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며 별도의 추가 수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휴가떄도 이메일이 쌓이면 복귀후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틈틈히 이메일을 체크한다. 연간 6주의 휴가가 제공되지만 항상 조금씩 남겨서 다음해로 이월하는데, 이렇게 이월할 수 있는 한도가 제한되어 있고, 사용하지 못한 휴가는 휴가비로 지급되지도 않는다. 예전엔 휴가비로 지급받을 수도 있었던 모양인데 요즘은 그렇게 안된다고 한다.

나는 공무원이라 조금 다른데 우리나라의 사무관에 해당하는 fuldmægtig로서 주당 37시간의 근로시간을 지킬 수 있다. 근로시간을 매일 시스템에 기록하는데, 하루 기준 7,4시간에서 어떤 날은 더 많이, 어떤 날은 더 적게 근무할 수 있다. 9시부터 2시 반 사이에만 사무실에 있으면 되고 이 시간에 앞뒤로 시간을 추가해 평균 7,4시간을 일하면 된다. 마이너스 한도와 플러스 한도가 있는데, 마이너스 한도는 이틀정도 되고 플러스 한도는 영업일로 10일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이었던 거 같다. 이 한도를 넘겨 일하면 휴가를 써야 하고, 너무 바빠서 휴가를 쓸 수 없는 경우에는 승인을 받도록 한다. 이걸 flekstimer라고 해서 근로시간 시스템에서 밸런스를 보면서 알아서 자기 근로시간을 관리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중에 직원이 이를 한꺼번에 몰아서 자기가 가고 싶은 기간에 휴가를 왕창 몰아서 써서 근무에 차질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함이 하나 있고, 상사의 권한 남용으로 직원이 과다하게 일만 하고 자기 권리인 휴가를 못쓰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 또 하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승진을 해서 다음 직급으로 올라가면 flekstimer에 제약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쌓아놓고 날리는 flekstimer가 많다. 이 시스템은 직급이 올라가면 갈 수록 어느정도 야근은 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깔고 있는 거다. 부서장급은 flekstimer의 컨셉이 없다. 그냥 휴가 딱 쓰는게 끝이다. 그나마 공무원은 이런게 가능한데 사기업은 그렇지 않다.

우리 집 이야기 말고도 많다. 컨설턴트나 법조계 사람들은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경고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왜 외국인에게는 이렇게 경고 서한이 날라오는 걸까? 이건 모든 외국인에게 오는 경고서한은 아니고 근로비자로 와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외국인청(Udlændingestyrelsen)에서 비자를 받아 와 있는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고, 국제채용 및 통합청에서 비자를 받아 와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근로비자로 오는 사람에게는 근로시간과 급여 등 여러가지 세부정보가 국제채용통합청에 다 통보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덴마크 국내 고용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고를 하는 것이다. 정해진 급여만 주고 과도하게 외국인 노동력을 착취하면 덴마크 노동력을 채용하지 않을테니까. 그러면 같은 급여만 준다 쳤을때 외국인을 고용하려는 인센티브가 커질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을 다수 채용하는 기업을 대상으로는 국제채용통합청에서 관리감독을 한다. 근로 여건이 근로 계약에 부합하는지를 대상으로 말이다. 영주권을 따면 더이상 그런 경고는 받지 않는다.

덴마크 사회도 끊임없이 발전을 한다. 그래갖고 어떻게 회사가 굴러가나 싶은 제도들이 많지만 많은 기업들과 조직들이 우리나라보더 훨씬 적은 인력으로 같은 일을 수행한다. 생산성이 높은 거다. 한국처럼 일이 빨리 돌아가지 않는데! 라고 불평한다면 같은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고용인원이 훨씬 적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1인당 생산성은 높다. 그러려면 불필요한 절차를 최소화하고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런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예를 들어 공무원 조직은 민원인과 접촉하는 전화시간, 방문 시간 등이 우리보다 짧게 잡혀있어서 일하는 중간중간 오는 전화에 업무 리듬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는다. 이걸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공무원은 일을 안하나? 일찍 퇴근한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민원상담시간을 따로 정해둔 것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덴마크에서 주당 37시간 이상 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다. 근로비자 받고 일하는 외노자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