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동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살아왔다. 그게 마음의 병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런 사람이고 싶은데,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은데, 남들이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할텐데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면 나에게 척을 지지 않을까, 내가 이런 모습이 되어서 진가를 보여줘야지, 내가 무시할만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해 줄 거야, 등과 같은 형태로 내 마음에 짐을 지워주고 독이 되게끔 하는 생각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참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었구나.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어디까지 물어봐도 될까? 상대의 말을 깊게 듣고 그 뒤에 할 말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는 답을 어떻게 해야할까를 더 고민하느라 듣는 것을 소홀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곤 했다.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고였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대한 생각은 떨치고, 지금 내가 뭘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든 나라는 사람은 그냥 나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뭔가 궤변같으면서도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거나, 모순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간간히 하곤 했는데, 나를 정의하려 하지 말고 나는 내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최선의 결정을 내려 행동하고, 그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면 또 그걸 수정해서 행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기로 하니 뭔가 이상적인 잣대나 엄격한 잣대로 나 뿐 아니라 타인을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일도 떨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다시금 스물스물 돌아오려하면 그걸 알아차리고 다시금 그런 생각을 내려놓는 방법도 배웠다.

타인의 평가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 평가를 내 존재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행동에 대해 평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되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법도 배웠다.

여러가지로 나에게 자유를 선사한 심리상담에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이를 권유한 옌스에게도 고맙고…

가면증후군, nervous breakdown, 심리상담

나의 능력은 타인의 기대만큼 미치지 못한다, 내 동료들은 나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이상으로 평가한다, 사실 다른 이들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동료들이 알아채면 나는 배척당할 것 같다, 타인이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줘도 그것은 그냥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함인 것 같고, 그 말을 하는 속내에는 크게 실망을 했을 것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을 하고자 할 수록 그 내 머릿 속 타인의 기대와 내 능력의 괴리에 생각이 미쳐 불안감이 커져 집중을 하기 어려워지고, 또 그러다보니 그 불안이 더 커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여름휴가와 각자 다른 재택근무의 날로 내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던 어느날 도저히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었고 breakdown이 찾아왔다. 회사를 관두고 뭔가 지적인 능력을 덜 써도 되고 사람과의 교류가 더 많은 일을 찾아야할 것 같다고 느낀 바로 그날이었다. 옌스는 지난 번 직장을 관둔것과 같은 패턴이라고 느끼고, 회사를 관두는 일을 하기 전에 심리상담을 해보라고 권했다. 

주 1회 하고 있는 상담은 이번주면 네번째 상담인데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내 무의식적 사고의 흐름을 읽어내고 어떤 점을 시도해 이를 바꿀 것인지 보는 인지행동요법인데 이에 따라 행동한 지난 3주간 마음이 크게 편해졌다. 상사와 동료와도 내 상황을 공유하고, 상사가 상담가와 통화를 통해 진행상황을 공유하며 진행되고 있어 일관성있게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내 이야기를 공유하며  나뿐 아니라 비슷한 이유로 상담이나 진료를 받고 있거나 받았던 경험을 가진 동료들도 있다는 점, 내가 갖고 있던 두려움은 나만이 갖고 있는게 아니라는 점 등을 느꼈다. 

사실 그냥 원칙적인 이야기로만 두고 보면 크게 마음이 와닿지 않았을 이야기인데, 내 상황을 기술하고 그에 맞춰 내 마음의 소리를 인지하고 이에 반응하는 방법에 대해 듣다보니 마음에 쏙 와닿는다. 비용이 비싸 처음엔 망설였지만, 회사를 관두는 것도 고민했던 마당에, 관뒀으면 받지 못했을 급여를 생각해보니 못할 것도 없었다. 너무 잘한 결정이었다. 

이렇게 지나고 보니 직전 직장에서 관뒀을 때 심리상담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 그 사이에 얻은 일도 많고 는 것도 많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면증후군에 시달리다가 공황/우울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이면 관두는 패턴을 이제라도 알아차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 

마흔두살 단상

어제가 생일이었다. 만으로 마흔두살이 되었으니 불혹의 나이렸다. 엄마가 좋은 나이라고 하시면서 본인이 그 나이였을 땐 자신의 결정에 있어서 확신이 있고 흔들리지 않았던 거 같다고 하셨는데, 딱 불혹의 나이와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그게 맞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별로 없던 흰머리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으니 신체의 나이로만 보면 분명 내리막기를 걷고 있는데, 마음의 상태로만 보면 그 어느때보다 평온하다. 내 결정에 대해 확신이 있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에는 그마만한 확신을 실어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나온 시간들을 통털어보면 지금이 가장 강단있는 결정을 내리고, 내린 결정에 대해 뒤돌아보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았다. 실패해도 잃을게 별로 없던 이십대의 시절보다 오히려 가진 게 많아 잃을 게 많은 지금 왜 더 안정적인지. 마음에 괴로움이 없이 평안한지.

첫번째로 가진게 적당히 있고, 앞으로도 일궈낼 수 있는 기반이 어느정도 닦여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초조함이 크지 않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알고 앞으로의 길에 대한 대충의 방향성이 있다. 둘째로 나의 앞날에 대한 기대가 현실적이 되어서 내 앞날에 대한 기대와 현실사이에 큰 괴리가 없다. 또 나같은 경우 커리어를 바꿔서 전문성을 필요로하는 필드로 들어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보니 자리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등 따숩게 몸을 누일 곳이 있고, 배 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고, 춥지 않게 옷을 입을 수 있고, 나를 포함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에서 너무 힘겨워 하지 않고 같이 나아갈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라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이 자체도 사실 꽤나 야심찬 목표일 수 있는데, 이삼십대에는 정확히 뭔지 정의되지 않는 성공이라는 데 목말라있던 것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정말 모르게해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나마 그 중에서 확고했던 게 있다면 해외 생활이었는데, 한국에서의 나라는 사람은 토박이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같이 느껴지는 구석이 있던지라 채 열살이 되기 전부터 남녀평등에 있어서 앞서간 서양에 살고 싶었다. 코트라에서의 삶은 한시적인 주재원인데다가 일적으로 한국문화에 묶여있어서 덴마크에서 살아도 별로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삼십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옌스를 만나고 서서히 이곳 문화에 젖어들고, 덴마크 직장을 구하고 이 안에서 내 네트워크가 얇은 것부터 깊은 것까지 촘촘히 연결되고 난 지금에 들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위로 올라가야한다는 초조함이 없어졌다. 그 어느때보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없고 평온하다.

평온해서 그런지 생각도 단순해지고, 특별히 업다운이 될 일도 없고, 블로그도 조용해지는 것 같다. 그것도 나쁘진 않네.

나와 함께 케이크를 굽겠다고 함께하는 너가 있어서 행복해.

5월의 출근길

바쁜 아침 출근길. 고속도로보다 국도가 빠른 날이면 국도를 선택한다. 요며칠 봄이 정말 완연하게 왔음을 실감한다. 연초록의 잎이 앙상했던 나뭇가지를 촘촘히 메우기 시작해 보송보송함이 사방에 느껴지기 시작할때면 출근길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인간이 하나의 동물임을 느끼는 것은 이처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내 몸과 감정이 함께 일렁이는 것을 느낄 때이다. 봄바람이 분다.

차를 내리는데 회사를 둘러싼 숲에서 청량한 바람이 불어내린다. 살짝 차갑지만 몸이 움추러들지 않을 정도의 차가움. 그래서 폐부의 깊숙한 곳까지 상쾌함을 느끼고 싶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큰 숨을 들이키고 있음을 발견하고 주변을 둘러보게된다.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바쁜 일상에 눈길조차 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고 관찰한다. 못봤던 의자, 표지판, 화분이 보인다.

오월이다. 일년의 삼분지일이 지났다. 어느새. 8개월이 남았다 생각하면 많이 남은 것 같은데, 삼분지 일이 지나갔다 생각했더니 일년의 큰 뭉터기가 잘려나간 기분이다. 시간은 정말 잘 지난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 아끼는 것으로 촘촘히 잘 채워가야지.

Peter Brixtofte 다큐멘터리를 보고…

오래간만에 다큐멘터리를 봤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시장이었던 사람을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눠 세 편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정치인으로서 성공적이던 매력적인 사람으로서의 한 면, 그 성공적이던 정치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던 시기의 모습 한 면, 아버지로서의 모습 한 면. 그는 분명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정치의 방향으로 올곧게 걷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 방향이 남들이 생각하는 바른 방향과 많이 차이가 있었고 그로 인해 4년의 징역살이를 했지만 말이다. 알콜중독에 오래간 찌들어 있었지만, 자신은 그냥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가졌을 뿐이고 문제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 마지막에 그를 고쳐보려 노력했지만 너무 늦어서 충분한 의지가 생길 수 없는 상태에 빠졌던 사람. 결국 그 말로는 홀로 있던 아파트에서 맞이한 쓸쓸한 죽음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세 명의 딸과 연인과의 관계.

단편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참 복잡미묘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이 정치적으로 큰 실패를 했고, 그 경제적인 여파는 이 시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인간적으로 연민도 많이 느껴지고, 가족과의 관계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라. 항상 강하고 문제를 돌파하는 모습을 보이며, 정치라는 것을 통해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인데, 자신의 문제에서는 객관적이 되지 못하는 점,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점 등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크기의 문제야 달라도 다들 그런 점들이 있지 않는가 하며 인간적으로 아픔을 느꼈다. 그의 인생의 말로에 대해서. 전두환씨나 노태우씨처럼 누군가를 학살한 사람도 아니니 더 그런 인간적인 연민을 더 느낀 게 아닌가 싶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가장 크게 느낀 건 나를 단단히 하고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아끼는 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거다. 그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고 나도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나의 문제를 직시하고 회피하지 말자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1년을 천천히 정리하며

2021년을 돌아보자면 변화와 운동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새로운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며 새로운 영역에 몸을 내맡긴 시기였으며, 발레, 달리기, 수영, 이 세 가지에 내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고 애를 하원시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저녁에 옌스가 애를 보는 날이면 발레, 수영 수업에 가고, 틈을 내어 달리기를 했으니 말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12월을 코앞에 두고 있다. 해가 갈 수록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 놀라게 된다. 내년엔 또 어떨지? 

내년엔 옌스의 한국어 공부를 조금 더 도와줄 수 있도록 옌스가 부탁한 일들에 시간을 조금 더 할애해야겠다. 그리고 일상 속에 정리 정돈하는 습관을 조금 더 들여야지. 미루지 말고. 그리고 사유의 시간을 조금 더 가져야 겠다. 행동으로 채우느라 사유가 부족했던 시간이었음이 다소 아쉽다. 물론 그 행동 사이에 낭비한 시간들이 꽤나 많았기에 사실 그 낭비의 시간을 줄이지 못한 게 부끄러운 것이지만.

항상 배워가며 현명해지는 것 아니던가? 천천히 가다보면 목표에 다다르게 된다는 토끼와 거북이 우화의 가르침을 이렇게 느지막히 몸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시기이다. 좋은 습관을 늘리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조금 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발레를 통해 배운 내 몸 사용법

발레를 거의 십년 가까이 하게 되며 내 몸의 사용법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너무나 많다. 상하 좌우로 비틀어진 균형을 맞추는 것은 가장 큰 것중 하나인데 그 덕에 상하체 불균형도 사라지고, 짝짝이 가슴도 없어지고 두 다리간의 두께 차이도 거의 없어졌다. 중립 골반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고, 등판의 근육을 사용하는 법도 배워 더이상 상체가 앞으로 말리지 않게 되었고, 어깨를 내리는 법을 배우면서 목도 길어지고 어깨도 떡대같은 느낌이 사라졌다. 흉곽을 사용하는 방법도 배우면서 폐활량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목을 길게 세우는 법을 배워서 턱의 이중턱이 사라졌으며, 바른 자세를 통해 목과 어깨의 뭉침과 결림 등도 없어졌다. 이 밖에도 내 몸의 사용법에 대해 배운 것이 너무 많다.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원포인트 레슨 등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평생 써오지 않던 근육은 여러번 자극을 이래저래 받지 않으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것이기에 한번 말해준다고 쓸 수 없다. 계속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하면서 틀린 근육도 써보고, 그러면서 주변 근육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서 또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다보면 여러 근육 사용법을 익힐 수 있게 되는 거다.

내가 얼마전 곰곰히 생각을 해본 결과 나는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운동을 머리로 하는 편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을 참 헤매면서 배우는 편이었다. 그냥 난 운동 신경이 좋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는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들도 나는 참 오랫동안 씨름을 하면서 배우는 편이다. 다만 나는 정확히 하는 것을 좋아해서 테크닉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엔 남들이 쉽게 배우는 것을 헤매다가도 대충 즐기면 되지 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과 달리 뒤늦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지난 1년간, 아니 특히 지난 3개월간 테크닉적으로 크게 성장했음을 나뿐 아니라 우리 반 선생님, 주변 학생들이 여러번 언급할 만큼 두드러지게 느끼고 있다. 이젠 손끝과 상체 사용에 집중을 할 수 있게끔 말이다.

이를 통해 배운 건 조금씩 하면 좋아질 수 있고 나아질 수 있기에 나만의 페이스로 꾸준히 계속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었다. 말이 쉽지 속으로는 계속 의심의 소리가 울려오는 사안에 대해서도 항상 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이는 인생의 어떤 측면에도 적용할 수 있는 레슨이다.

나는 못한다고 생각해온 달리기를 시작한 것도 이런 마음의 연장선상에서였다. 달리기와 수영은 내가 잘 못하고, 노력했어도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생각했는데, 그 어느 것도 발레만큼 노력한 바가 없는데 조금 해보다가 포기해놓고 어쩜 노력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을까?

폐활량은 이제 충분하다 생각한다. 6킬로를 무리 없이 달릴 수 있으니 수영을 위한 폐활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상하체의 유기적인 사용도 가능하고, 팔이 아닌 어꺠로 움직일 준비도 되었다. 8월부터 발레를 1회 더 하는 대신 수영을 하루 하기로 결정해서 수업도 등록했다. (생활 체육에 대한 나라의 보조금 덕에 1년 시즌 수업권을 끊었는데 22만원 정도 하는 거가 참 놀랍다.) 하나가 11살이 되면 온가족이 같이 카약을 하고 싶어하는 꿈을 가진 옌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라도 수영은 꼭 해내야겠다. 카약을 하려면 600미터를 쉼없이 수영할 수 있어야 하기에…

지금 이미 하나가 그렇긴 하지만, 하나가 나와 옌스를 보면서 운동은 생활속에 항상 하는 거라 생각하며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활동적인 아이로 클 수 있길 바란다.

덴마크 친구들과 한국

발레를 꾸준히 오래 하다보니 이 바닥 좁은 덴마크 성인 취미발레계에 알게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취미가 같다보니 할 이야기도 많고 다들 발레에 큰 열정을 갖고 있다보니 그 공통점에 가까워지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이번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흘간 두시간반에 걸친 발레 여름캠프에 참가하면서 새롭게 알게된 사람도 있고 또 알던 사람과도 더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그 중에 사람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저녁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되는 시간을 가졌는데 발레 공연도 같이 보기로 했다.

재미있는 건 전혀 K-pop이나 드라마의 팬이 아닌데 한국 음식과, 문화, 역사 등에 관심을 갖고 여행을 벌써 두어차례 다녀오고 요리도 레시피를 찾아서 해먹는 사람도 있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다며 한국 여행 가보겠다고 한국어를 자습하기 시작한 사람도 있다. 한국어 배우는 건 요즘 좀 힙한 일 아니냐며… 음? 뭐라고??? 언제 그랬지?

한국 요리를 나에게 배워보고 싶다는 말을 지나가는 듯이 한 적이 있는데, 그럼 한번 우리집에 초대할 테니 같이 만들어보자고 했다. 오늘 종강저녁을 같이한 친구들 모두 너무 좋다며 9월에 자리를 한번 마련하다고 하고 으쌰으쌰 마무리했는데 기대가 된다.

외국인인 것이 언젠가부터 덜 특별할 만큼 국제화 되어가고 있는 코펜하겐이지만 오히려 그게 친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이제사 느낀다. 나때문에 영어로 모든 대화를 바꿔줘야 했을 땐 뭔가 내 스스로 장벽을 느꼈지만 이게 해결되고 나니 옌스가 말한대로 취미활동을 통해, 나만의 특이점을 통해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되었다.

뭐랄까… 한국인이라 덕 봤다는 건 살면서 별로 느껴본 적 없는데 요즘 좀 느낀다.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구나.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했다는 뜻이겠지.

2주 반만 지나면 다음 시즌 발레가 시작되는데 너무 기대된다… 요즘 많이 늘어서 더 추고 싶은 발레… 이제 피루엣도 더블턴을 시작했고… 주 3회로 한번 더 늘려볼까?

Værløse

시작은 내가 원해서였다. 우리가 이사를 결정한 것은. 조금 더 넓은 수납 공간과 부엌 조리 공간에 대한 열망, 복도를 지나거나 길, 주차장 등을 건너지 않고 아이가 안전하게 녹지 공간으로 접근할 수 있는 조건, 충전소를 찾아다니지 않고 차를 충전할 수 있는 여건.

옌스는 기존 아파트가 위치한 동네 여건이나, 코앞에 있는 유치원, 시내로의 높은 접근성, 다양한 놀이터 등 여러가지로 기존 동네를 많이 좋아했기에 – 나도 좋아했지만 그래도 그 집이 만족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아쉬웠다. – 내가 들이대는 어떤 집들도 다 시큰둥해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국에서 발견한 지금 이 집. 나는 보지도 못하고 옌스가 괜찮다고 하자마자 계약을 추진해 사흘만에 샀더랬다.

집도 페인트칠하고 마루도 손질하고 이사하고 이사 나오는 집도 청소하고 집 정리하고 하느라 주변 동네를 탐험하지 못했다. 그나마 나는 여유 시간이라곤 발레학원에 다 쓰고 나니 볼 여유가 없었달까?

발레스튜디오의 이번 시즌 수업이 끝나고 방학을 맞이한 김에 달리기도 하고 산책도 하며 구석구석 둘러보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너무 마음에 든다. 조용한 주변 환경에 자연보존구역, 숲에 주거지를 녹인 도시 계획, 구석구석 숨어있는 산책길. 동네 중심에는 우리가 상시적으로 필요한 건 다 있고. 또한 우리는 막상 시내에 거의 나가지를 않는다. 애 생기고, 애가 좀 커서 주말이면 애와 놀아주라 바쁜데 시내에 나갈 일이 없어졌다. 그러니 오히려 아이와 놀곳과 탐험할 곳이 훨씬 많은 이곳이 우리에게 더 재미있다.

인근 호수엔 물을 가둬 아기들도 수영할 수 있는 그런 수영공간이 있단다. 하나랑 거기도 한번 가볼 예정인데 어떤 곳일지.참 궁금하다.

이전 직장 동료가 이 동네를 입이 마르게 칭찬하고, 옌스 직장 상사도 이 동네를 강추하더니만 이유가 있었다. 첫 인상도 좋았는데 볼매라니.

동네 주민들도 너무나 친절하고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셔서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이 벌써 엄청 늘었다. 하나는 우리 바로 옆집을 자기 발로 혼자 들락날락거리며 놀고. 마치 나 어린 시절 이웃집 드나들던 그런 느낌이다.

앞으로 옌스랑 꼬부랑 영감, 할매 될때까지 잘 살았으면 좋겠다. ♥️

동료가 동네친구로

동료와는 사적으로 만나는 일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드문 이곳에서 옌스의 동료가 아닌 내 동료와 같이 사적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자기 일상이 바쁘고, 기존 친구 만날 시간이 더 중요하니까.

전 직장 동료와 비슷한 시점에 같은 동네로 이사한 사실을 알게되어 연락을 하고 애들과 함께 만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밖에서 보려다가 우리 집에서 보는 것으로 계획이 좀 바뀌고, 잠깐 티타임만 가지려던 것이 밥도 같이 먹자고 즉흥적으로 바뀌어 그녀의 남편도 불러서 밥을 먹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와 그집 하나와 동갑내기 딸이 같은 유치원, 같은 반에 다닌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여기 유치원도 많고 유리 유치원에 반도 하나가 아닌데…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간 일상도 조금 업데이트하고, 요즘 나는 무슨일 하는지도 이야기하고 전직장 이야기도 하고. 하나가 잘 노는 친구의 엄마이기도 해서 더욱 마음이 좋은 게, 나도 좋아하는 동갑내기 동료였어서 같이 만나기도 마음이 참 편해서 말이다.

앞으로 좋은 동네친구가 생겼다. 남편도 말로만 많이 들었던 사람인데 드디어 얼굴도 직접 보고 이름에 매칭도 하고. 너무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