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 발레에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보름달과 때마침 스피커에서 흐르는 다소 드라마틱한 음악이 뒤섞이며 갑자기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보고싶었다. 그냥 보고싶은게 아니라 같이 앉아서 시덥지 않은 이야기도 나누고, 엄마가 시키시는 부엌일을 귀찮지만 몸을 일으켜 하는 순간, 아빠도 도우시라며 핀잔도 드리고, 티비에서 재미도 없는 명절특집 프로그램에 깔깔거리는 게스트들의 잡담이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하는 그런 정말 명절일상. 그런게 그리웠다. 약간의 눈물이 눈동자를 가리려고 하는 것을 애써 다시 욱여넣고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나 정말 잘지내는데.

그리움이 커지면 슬플까봐, 슬프면 잘 지내지 못할까봐, 그리움의 감정이 생길라치면 억누르고 있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마음의 욕심이라는게 갈증을 하나 채워주면 더이상 같은 걸로 갈증이 채워지지 않고 더 뭔가 큰 것을 얻어야 갈증이 채워지는 것처럼 보고 싶은 것을 보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고, 또 보고 싶고, 만져보고싶고, 더 경험하고 싶어진다. 정말 충분히 봐서 일정 수준이상 만족도가 채워질때까지는 계속 더 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것을 피하려고 음식도, 사람도, 자연도. 지금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도 부족한데, 또 더 원해? 욕심 아니야? 이런 생각에 스스로를 애써 억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립지만 너무 그리워하지 않고, 적당히 그리울 때 그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균형. 그런 걸 내가 이미 갖고 있다면 한없이 좋으련만, 나는 적당히가 잘 없는 사람이다. 한껏 좋아할 때 흠뻑 빠졌다가 또 멀어졌다가. 어쩌면 그래서 내가 덴마크에 잘 적응했는지도 모르겠다. 덴마크가 좋을 때 언어고 뭐고 한없이 몰아붙여서 그 덕에 내것으로 온전히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일 수도. 하지만 그래서 그리움에 흠뻑 빠진다면 물을 한껏 머금은 스펀지처럼 아주 무겁게 가라앉을 것 같은 두려움이 크다.

너무 깊게 빠지지 말고 아주 잠깐 그리워하자. 덴마크와 한국, 덴마크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한국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모두를 한꺼번에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지금의 그리움을 잘 받아들이고 소화해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할 수 있도록 하자.

첫 돈벌이

아이가 나가서 돈을 벌어왔다. 자기가 갖고 있던 장난감 몇개를 친구와 함께 길에서 판 결과다. 두 아이가 햇볕이 따사로웠던, 햇살 없이는 쌀쌀할 수 있던 가을날 길가 잔디밭에 앉아 물건을 쫙 늘어놓고 판매한단다. 하나는 대여섯개 들고 나가서 네개를 팔았고, 다른 친구는 아주 한보따리 싸갖고 나가서 비슷하게 판 것 같다. 소득은 35크로나. 7000원을 벌어왔다. 사실 누군가에게 팔지 않는다면 멀쩡한 것은 골라 내가 적십자에 기부를 하기 때문에 이건 가정경제 차원에서도 정말 공돈이 생긴 거 같은 셈이다.

누구한테 팔았냐고 물어봤더니 이웃집 조금 어린 여자애가 하나 사갖고 나머지는 좀 더 몇집 떨어진 곳에 산 할머니가 사셨다고 했다. 뭐하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하나가 “안쓰는 물건 팔아요. 할머니는 손주 있으세요?” 하고 여쭤봤단다. 손주가 있다는 대답에 “손주한테 필요한 거 사주세요. 선물 줄만한 거 있나 보세요.”라고 제안을 했는데 “손주들이 다 너무 어른이라 애가 있어서 손주한테 사줄만한게 없네.”는 거절을 또 들었단다. “그럼 증손주한테 사줄 거 보시면 되겠네요!” 라고 말씀드리니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이것저것 사가셨다는 것이다. 결국 그 한 손님 잘 잡아서 둘이서 70크로나어치를 팔았단다.

어느새 아이들이 커서 나름 흥정도 하며 물건을 파는 것이 어찌나 귀엽고도 대견하던지. 앞으로 더 자주 한다더라. 그런거 하고 싶다고 노래를 물러도 하라는 말 외에는 뭔가 행동을 보이지 않는 엄마가 그닥 도와줄 거 같지 않으니 알아서 우물을 파는구나. 그래. 목마른 자가 우물을 직접 파야지. 그렇게 크는 거란다.

남자애라서 그래

간간히 남자애를 가진 한국엄마들에게 듣는 이야기다. 내가 “여자애”답지 않아서, “여성”스럽지 않아서 느꼈던 한국사회속 좌절을 상기시키는 말이라 그 말들이 귀에 꽂혔다. 거슬렸다가 정답인 것 같다. 그게 내 좌절을 다시금 곱씹게 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때의 프레임을 떠올리게 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용감하고 과감했으며, 씩씩했다. 활발하고 활동적이었으며, 무리를 주도하고 이야기의 중심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어려서는 “걔는 좀 남자같잖아”라는 게 나를 묘사하는 말이었으며, 그게 내 성별의 틀 안에서 벗어나는 이상함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 같아서 상처를 받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좀 여성스러워져야 남자들이 덜 부담스러워하지. 너무 자신감 넘치고 씩씩하고 그러면 남자들이 부담스러워해.”라는 말로 내가 뭔가 잘못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지금은 그게 아닌 것을 알고, 그냥 나는 나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이에게도 여자는 어때야 한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일부러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과거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정리하면서 인간의 개성이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는가, 또한 이런 프레이밍이 스펙트럼의 외곽에 있는 사람에게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던져줄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져 자동적으로 그리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그 개인이 속한 그룹에게 원인을 돌리는 일은 편견의 근간이 될 수 있고 책임을 회피하게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좋은 특성이 개인에게 기인하지 않고 그룹에게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좋은 성향이 특정 그룹에 속한다는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나쁜 특성이 개인이 아니라 특정 그룹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면, 본인의 책임보다는 그룹의 특성이니 이해해야한다는 식의 책임감 회피성을 조장할 수 있다. 과장해 표현한 것이지만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그렇다.

그 이야기를 듣는 그 타이밍에 그 이야기를 딱히 하지는 않았다. 이게 어떤 의식적인 행동은 아니고 무의식에서 나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를 통해 내가 말하는 것에 들어있는 다른 방면의 프레이밍, 편견 등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며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끊임없이 구분하고 구분된 카테고리에 이름을 붙인다. 그래야 다음의 비슷한 상황에 빠르게 이를 적용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게 개개인의 머리속에 있는 프레이밍이다. 따라서 이 자체는 나쁜게 아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 스스로 사유하고 정보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능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남자라서 그래”는 너무 단편적인 프레이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기

벽에서 다음 홀드까지 도대체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머리로 그릴 수 없을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날 것 그대로 강렬하게 다가온다. 일상의 작은 순간 여기저기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두려움은 너무나 미묘하게 다가와서 다른 감정과 섞여 그게 두려움인지 알아차리지조차 못하고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벽에서 느끼는 날 것의 강렬한 두려움을 통해 내가 어떻게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벽에서 떨어지는 감각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우선 떨어진다는 것은 등반완료를 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떨어질 때의 내 위치와 가장 마지막으로 클립한 볼트의 위치의 상대적 관계에 따라 낙하 후 내가 어떻게 진자운동을 하게 될지가 결정되며, 그게 벽으로 향하는 방향일 경우 발과 다리를 이용해 충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한다. 불확실성. 그게 참 싫다.

그 당시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넣고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특정 포인트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다음 홀드로 넘어가는 것, 그것이 떨어지기 위해 클라이밍 하는 것이다. 떨어지지 않고 다음 홀드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런게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빌레이어에게 나를 거기서 쉬게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다음 홀드로 넘어가기 위해 시도하기. 거기서 떨어지고 나면 다시금 그보다 아래에서 올라가야 하니 에너지가 쓰이기도 하고 정말 떨어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백업 플랜을 생각하지 않고 시도하는 것, 그게 실력을 늘린다고 한다. 즉 내 한계선을 밖으로 밀어내는 행위가 실력향상의 지름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 이게 내 클라이밍을 보여주는 단어였다. 사실 나는 오래 클라이밍을 하고 싶기 때문에 부상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그런 두려움과 회피를 키운 것 같다. 부상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낙하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훈련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자체를 피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회피가 두려움을 키우고 있었다.

이게 내 일상에서는 어떻게 작용할까로 생각이 미쳤다. 한계를 밀어내는 것. 그게 내 요즘 직장생활에서 부족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냥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계를 밀어내는 자체를 하지 않다보면 더 그게 두려워져서 자기 계발에 둔해지는 것 같다. 아마 그게 요즘의 나였던 것 같다.

두려움에 직면하고 이를 경험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것, 그것이 클라이밍에서 요즘 새로이 배운 인생의 레슨이다.

선불생활

파트너때문에 해외로 이주를 하는 사람들은 파트너에게 행정 등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의지할 수 있다. 그걸 누군가가 외국인 카드를 쓴다고 표현하던데 재미있는 표현이다.

나는 외국인 카드를 써본적이 없다. 집안의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행정 부분은 업무를 협의해서 분담하고 나 행정 관련은 내가, 남편 건 남편이, 아이 것은 주로 내가 하니까.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도움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의존이라 생각해 내가 꼭 처리하리라 마음먹을 것 때문이겠지. 인도와 덴마크 주재 정착 초기에도 동료의 도움을 최대한 받지 않고 처리하려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는지 내가 직접 아는게 힘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 사용하는 힘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내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말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힘.

어쩌면 내가 불안이 높은 사람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서류나 이런 것 처리에 있어서 다소간의 강박이 있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서류를 낼 땐, 이게 처리가 안되면 그 다음이 여러가지로 꼬이는 일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정과 절차를 세세히 이해해야 하고 그와 관련된 서류를 완벽히 준비해야 하며, 후속조치 등에 대해서도 미리 숙지해둬야 불안함이 없어진다.

누구한테 물어봤자 대부분 자기한테 해당되는 내용만 자세하게 읽어보고 나머지는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 사람과 다른 사항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고, 담당자에게 물어봤다한들 같은 이유로 뭔가를 빠뜨리고 이야기해주거나 할 수도 있다.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기에 법령과 시행령 등을 세세하게 읽어보고 정확히 확인해야 할 경우 서면으로 질의한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물어봐도 자세히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 나와 준비해야 하는게 다는 사람에게 괜히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줄 가능성도 있으니까.

누군가가 자연분만을 선불, 제왕절개를 후불이라 하더라. 고통이 다 따르기는 하는데, 그게 앞에 오느냐 뒤에 오느냐 하는 걸로 말이다. 외국인카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선불하는 거 같다. 모든 걸 스스로 해둔다는 것은 앞으로 새로운 걸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뭘 어떻게 봐야 하는지, 뭘 처리해야하는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수월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옳고 그른 건 없다. 그냥 나는 선불 생활이 좋고 편하다.

영주권 신청

드디어 영주권을 신청했다. 덴마크에 산지도 어느덧 11년이 넘었는데 이제서야 신청할 수 있었다니. 최근 3년 반을 연속으로 풀타임으로 근무했어야 하며, 지난 4년간 근무 기간이 3년 반을 넘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최근 두 직장 사이에 10개월 정도 쉬고 잠시 샛길로 다른 것을 시도해봤던 나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었다. 이제 지금 직장에서 근로한 기간이 곧 조건을 만족하면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영주권 심사에 2~3개월 걸린다니까 2개월 조금 넘긴 지금 신청하면 얼추 심사 시점에 근로 기간 조건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이민을 해서 일정 거주 기간만 만족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나라도 있으니 그에 비해서는 기존 비자 타입에 상관없이 만족해야 하는 조건이 모두 동일한 덴마크의 영주권 요건은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편이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영주권 없어도 비자를 연장하며 지낼 수 있으니 큰 상관은 없기는 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다. 처음엔 2년, 그 다음엔 4년, 지금 것은 6년짜리 비자를 받았는데, 이 비자 기한이 일정 수준 이상에서 제한될 것인지라 잊지 않고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그런 불편함과, 혹여나 조건이 바뀌어서 연장에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등 거주의 안정에 있어서 심리적 불안함을 주는 요소가 있다.

결혼을 통해 이민온 경우 이혼을 하면 비자가 취소될 수 있다. 물론 덴마크 배우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기반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아이가 없다가 이혼하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조금 불안할 수 있다. 실제 그렇게 해서 나라를 뜨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딱히 거주의 불안정성이 없는 지금, 나는 왜 영주권을 원할까? 그냥 비자를 받고 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 서류작업이 영 불편하고 돈도 제법 많이 들기 때문일거다. 백만원이 넘는 돈을 서류 접수하는데 써야 하고, 아직도 남편 계좌의 일정 돈이 내 비자의 보증금으로 묶여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보증금은 혹시나 내가 사회보장제도의 수급을 받을까봐, 그럴 경우 거기서 돈을 빼가기 위함이다.

시민권…은 아직 모르겠다. 예전에는 필요없다는 주의였다면 지금은 50:50 이니 마음이 많이 시민권 방향으로 기울긴 했는데, 왜인지 하나는 내가 한국 국적을 계속 갖고 있었으면 한다고 한다. 국적이 나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아닐텐데, 하나에겐 국적이 어떤 정체성의 의미를 지니는 것 때문일까? 뭐가 되었든 얼른 영주권이 나오면 좋겠다. 난 여기 계속 살건데, 그 자격을 주시오! 하는 느낌…

늙어가는 몸 바로 쓰기

미레나를 쓰고 있어서 생리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는 관계로 이제 거의 유명무실한 생리이긴 하지만 그간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생리가 유지되어 와서 아직까지는 완경기에 들어서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서서히 희끗하게 세고 있는 것이나, 생리 직전 쯤 되면 관절이 좀 더 뻑뻑한 것 같은 점 등을 보면 호르몬이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의 컨디션은 사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상태이다. 우선 젊어서 지금처럼 운동을 많이 하지 않은 탓에 그 당시 체력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던 이유도 있을 거고, 나이 들은 몸에서 여러 삐걱대는 신호를 보내와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덕도 있는 것 같다. 젊었을 때와 다른 것은, 조금만 잘못 써서 운동하면 바로 그날 몸이 신호를 보낸다는 점이다. 그게 좋은 게 몸의 피드백을 토대로 몸의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골반의 좌우 불균형,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발레를 하면서부터 그 불균형이 여기저기 통증을 불러왔고, 하나를 어드레스하면 다른 곳에서 또 신호가 오고 또 그게 무한 반복 같은… 하지만 그를 통해 서서히 몸이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한번에 모든 것을 고칠 수는 없던 게, 몸이 그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보상작용을 해왔고, 그걸 한번에 고치는 건 당시 내 몸에 대한 인지수준이 낮은 내게 불가능했다.

이 모든 것은 평소의 습관과도 연결되어 있어 한번 고친다고 끝나는게 아니라 항상 관리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해결되고나니 발레에서 느는게 느껴지는 것이다. 통증 관리와 실력 향상이 동시에 되다니.

골반이 먼저였는지, 발이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게 해결되고 나니 오랜 기간 나를 괴롭히던 발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고, 예전에 삐었던 발목에서 안에 충돌이 있던 부분이 없어져 볼더링 하면서 뛰어내릴 때 발목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줄어들었다. 로프 클라이밍에서 떨어질 때 벽에 발로 랜딩하는데서 오는 충격 흡수도 마찬가지고.

나이들어간다고 다 나쁜게 아니더라. 젊어서 몸이 그냥 다 견뎌줄 땐 몸을 잘못되게 써도 아프질 않아 잘못된 습관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빨리 반응이 오니까 잘못된 것을 교정할 수 있으니까.

우리 귀한 몸 오래오래 잘 쓰자!

할머니의 죽음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이상하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을까? 하지만 내게 떠오르는 단어라곤 저것밖에 없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고 나니 갑자기 그게 뭘 뜻하는지 가슴에 확 다가와 꽂힌다. 그리고 참으로 복잡한 감정을 남긴다.

내년이면 백세를 맞이하셨을 할머니니 하늘이 내린 시간을 다 채우신 것은 분명할 거다. 그러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당신의 정신은 참으로 맑아서 갈수록 말을 듣지 않는 몸 속에 갇히신 것 같아 힘드셨던 할머니. 정신이 또렷해도 나이가 들면 사람은 어려진다 하지 않던가. 그래서 엄마외 자식들의 마음을 괴롭게도 하셨던 당신. 그러한 엄마의 복잡한 마음을 옆에서 보며나도 복잡한 감정을 가졌더랬다.

나에겐 초등학교 이후로 유일하게 남아있던 조부모님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던 할머니. 그간의 복잡한 감정을 뒤로 하고 이 일을 계기로 나는 할머니와의 시간을 되새기는 추억여행을 하며 내면의 복잡한 소리를 들어본다.

곧 돌아가실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은 탓에 감정적으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막상 그 일이 실제로 닥친다면 엄마의 감정이 어떨까를 생각했다. 내가 어떨지는 생각도 못했다. 밤늦은 시간의 전화. 엄마가 간혹 한국 밤시간에 전화하시면 마음이 떨린건 이 소식이 올까봐였는데, 그게 이번엔 정말로 왔다. 전화를 끊고 할머니를 잘 보내주시라 엄마께 메세지를 남겼는데, 멍했다. 잘 와닿지를 않았다. 갑자기 모든게 똑같은데 세상에서 할머니만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모든게 똑같다는게 이상했다. 엄마를 위로하는게 아니라 내가 할머니에게 작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당장 비행기표를 끊었다. 코로나 이후로 전화 몇통화 외에는 얼굴도 못뵈었던 할머니는 이미 내가 가서 작별하는지 아닌지도 모르시겠지만, 나는 가서 할머니가 존재했던 시간과 작별하고 그 챕터를 닫는 의식이 필요했다. 그간 무심했던 나의 죄책감에 슬퍼하는 것도 잘 못한다면 그것또한 슬플 것이기 때문이다.

헬싱키공항의 스타벅스에 앉아 죽음이라는 단어를 쓴 순간부터 눈물이 주체하기 어렵게 흘러내린다. 누가 위로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위로할 일도 아니다. 난 그냥 할머니를 추억하고, 감사하고, 슬퍼하는 기회를 갖는 거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것만큼 적절한 순간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아끼지 말라는 말이 그렇게 진부하다 느꼈건만, 그렇지 않았다. 그걸 마지막으로 전하지 못했던게 이렇게 아플줄이야.

할머니. 사랑했어요. 추억 잘 간직할게요. 감사해요. 안녕…

운동부상과 체형교정

마흔 네살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요즘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부쩍 느낀다. 몸의 근육과 관절을 조금만 잘못 쓰면 금방 신호가 온다. 예전엔 운동을 통한 부상을 느끼려면 잘못된 동작을 꽤 장시간 반복해야 했다면 이제는 몇시간만 연속으로 잘못 썼다 하면 바로 알 수 있다. 뜨개질을 하면서 약간 틀어진 각도로 움직임을 반복하면 손목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것이 그 일례다. 물론 뜨개질은 짧은 시간안에 특정 동작을 매우 많이 반복하니 그 총량이 적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일할 때 한쪽 모니터를 많이 쳐다보면 목에도 신호가 오는 것도 그렇다.

어떤 동작이고 간에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 온몸의 곳곳에 퍼진 근육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부상이 오는 것은 전혀 반갑지 않다. 각종 운동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이런 운동과 관련된 자세에서 오는 부상이 가장 무섭다. 발레와 실내벽등반 이 두가지 모두 평소에 하지 않을 동작들을 많이 하기도 하고, 항상 자신의 한계를 밀어내며 그 한계를 더 늘려가는 운동이라 부상의 확률이 높다. 운동이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심혈관계에는 좋을지언정 운동이라는 게 부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

한동안 골반과 척추를 연결하는 부분의 천장관절 부분의 문제가 지속되어왔다. 임신기간 중에도 간간히 아프긴 했었지만 이번에는 햄스트링 통증을 동반한 것이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처음엔 다리를 뒤로 드는 동작을 중심으로 천장관절 통증이 있고, 다리를 높이 드는 동작에서 같은 쪽 햄스트링이 아파왔다. 오래지 않아 견갑과 척추사이 근육이 결리듯이 아프면서 담이와 목 인근 근육이 다 뭉치고 두통까지도 오는 것을 경험했다. 뭔가 해결을 해야만 했다. 담은 이주 정도 지나니 서서히 증상이 좋아졌지만 천장관절과 햄스트링은 통증이 줄어들었다 늘어들었다는 것을 반복하며 완전히 좋아지질 않았다.

이런 부상은 원인이 있다. 뭔가 잘못 쓴다는 것이다. 그게 희망을 주는 신호이긴 하다.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통증을 유발하는 동작을 반대쪽 몸으로 거울로 비추듯이 수행했을 때 문제가 없다면 뭔가 그 동작들 사이에 있는 차이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거울로 비춘 나의 모습에서 양쪽에 차이가 나거나 양쪽 동작의 수행에 있어서 똑같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동작 간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나의 대부분의 부상은 몸 양쪽의 차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속에 나타났다. 십년전 나의 몸과 지금의 나의 몸은 큰 차이가 있다. 상체와 하체 사이의 사이즈 차이가 한때 44, 66과 같은 차이였다면, 지금은 55로 균일해졌고, 옷의 패턴과 내 몸의 형태가 비슷해져서 바지를 샀는데 엉덩이와 허벅지가 꽉 끼고 허리가 남는 것 같은 문제가 더이상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바뀌는 데에는 발레를 통해 그간 쓰지 않았음을 알게 된 근육을 쓰게 된 것에 있고, 그를 통해 생긴 신체의 불균형을 고쳐온 덕이다. 그중 골반과 척추의 틀어짐, 발 아치의 무너짐 등을 많이 교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다. 이 불균형은 도대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그런 것들이었다. 골반과 척추, 어깨 등의 것은 그냥 왼쪽과 오른쪽의 높낮이가 높고 낮고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척추를 중심으로 한 회전의 치우침 등과 삼분면으로 일어나기에 더욱 고치기 어려웠다.

천천히 해결하자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통증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게 계속되어 밤에 숙면을 취하는 것마저 어려워지니 발레를 쉬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한번 쉬면 복귀하기까지 힘든데 하는 생각에 두려움도 생기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인스타와 유튜브 등에 많은 체형교정 관련 다양한 자료가 있다는 거였다. 완전하진 않지만 방법을 찾았고 쉽진 않지만 교정을 진행하고 있다. 양쪽 불균형의 원인을 해결하고 나니 발레의 피루엣에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것도 양쪽 모두. 원래의 악습이 자꾸만 돌아오려해서 일상의 모든 동작 뿐 아니라 운동 시 동작에 있어서 이들까지 신경쓰려니 발레와 클라이밍 중에 머리가 훨씬 복잡하지만, 한동안 행동을 제약하던 통증들을 잡고 나니 너무나 다행이다.

이 모든 것이 무료로 공개되는 자료들을 활용하면서 가능하다는 것에 우리 새로운 정보 과잉의 시대에 감사함이 얼마나 큰 지 모르겠다. 내 인스타 대부분이 발레, 클라이밍, 체형교정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걸 만드느라 고생한 사람들의 노력 덕에 오늘도 나의 늙어가는 몸을 끌고 가는 취미생활은 맥을 유지할 수 있구나.

덴마크 직장 점심식사

내가 있었던 곳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전체 공공부문에 해당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중앙정부는 점심시간 30분이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구내식당은 회사의 지원이 어느정도 있어서 1인당 대충 6천원 언저리를 내면 나머지는 회사가 부담하는 형식이고,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도 꽤 된다. 여기서 도시락이라 함은 꼭 다 완성된 음식을 싸오는 것 뿐 아니라 오이, 당근, 토마토, 햄, 치즈, 아보카도, 후무스, 버터 등을 회사 냉장고에 두고 자리에 둔 호밀빵을 가져다가 필요한 것을 얹어 먹는 식의 것도 포함한다.

우선 점심시간이 30분에 불과하기도 하고, 이 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기도 하니 대부분 구내식당에 내려가서 같이 먹는게 일상이다.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나누는데 각자 일상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된다. 배우자와 파트너 이름과 직업, 아이들 이름, 나이, 취미는 뭐고, 주말엔 뭐 했고, 뭐 할 거고, 휴가엔 뭐할 건지 등등 서로 시시콜콜 다 안다. 한국같았으면 ‘어떻게 이런걸 물어보지?’ 싶은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too much information이라고 할법한 것도 이야기해준다. 아마 이런 시간이 “회식”이라는 것 없이도 직장생활의 단합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전직장에서는 간혹 이 점심시간이 부담스러웠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다양하게 다뤄지는 주제들이 난무하는 점심시간은 당시 큰 구내식당의 엄청 울리는 어쿠스틱과 함께 덴마크어 리스닝 시험과 같은 스트레스를 줬기 때문이다. 내 왼쪽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던 왼쪽 사람이 갑자기 오른쪽에 앉은 나를 보며,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음… 나 소리가 잘 안들려서 뭔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네?”라고 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왼쪽 오른쪽, 맞은편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공을 튀기듯이 무질서한 탁구같은 대화를 하는 상황에 나는 뭐를 받아쳐야할 지 몰랐다.

일이 바쁘던 때면 간혹 점심을 책상에 갖고 와서 식사하던 센터장을 보면서 나도 간간히 그랬고, 그게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두번은 그렇게 식사를 갖고 와서 책상에서 먹곤 했다. 그당시에만 해도 뭘 물어봐도 되는지, 뭘 물어보면 안되는지를 몰랐기 떄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뭘 물어보면 안될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다 물어보면 되는 거였다는 생각이다.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이 다 알고 있는 그들에게 그게 사석에서 친해서 그런건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나는 안물어봤는데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었던 거다. 간혹 내가 생각하기에 안물어보는게 맞을 것을 물어보는 그들을 보며 취조당하는 기분도 가졌는데, 같은 질문을 지금 들었으면 아마 그런 생각 안하고 흔쾌히 다 답을 해줬을 것 같다.

즐거운 점심 식사/수다시간. 특별히 회의가 겹치거나 하지 않는다면 함께할 것을 기대받는 시간이기도 하다.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익숙해진다면 사실 동료들과 정말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