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에게

주말에는 항상 나와 커피데이트를 하고 싶어하는 당신. 그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몇 안되는 날, 내 빈자리가 느껴졌다고 이야기해주는 당신. 자주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를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고 말해주는 당신. 내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주는 당신. 어딜 가나 내 손을 꼬옥 잡고 다니는 당신. 손님이 오는 날이면 디저트를 만들어주는 당신. 나의 어린 감성을 채워주기 위해 유치한 행동을 해주는 당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음으로 상황을 보려고 최면을 걸 때면, 항상 좋은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낙망하지 말라고 현실감을 일깨워주는 당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만히 안아주며 좋은 점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당신. 내가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마음안의 어려움을 눈치채 보듬어주는 당신. 나를 항상 지켜보고 있고 나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신. 항상 겸손하고 변함이 없는 당신. 배움이 가장 재미있다며 그를 옆에서 바라보며 나도 자극받게 해주는 당신. 삶에 대한 올바르고 균형잡힌 태도를 갖고 있는 당신.

이제 당신을 만난지 몇일이면 2년이 되는구나. 내 삶은 당신을 만나서 정말 행복해. 그래서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자. 🙂

첫 학기를 무사히 잘 마치고

마지막 남은 과목의 성적도 확인했다. 12점. A를 받았다고 이렇게 기뻐한 적은 학부때에도 없었는데. 학점 인플레가 없는 곳이라 A의 의미가 달라서 그런 것인가? 그런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공부에 대한 절박함이 그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라 그런 것 같다.

학부때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고등학교 때 있었던 외환위기와 그에 따른 IMF 구제금융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외환위기를 야기한 최전방에 있었던 종금업계에서 근무하셨기에 많은 일들이 불거지기 전 미리부터 불길함의 전조를 건너 들을 수 있었고, 왜 그런 일이 생긴 것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공부에는 별로 필요도 없었던 매일경제신문을 매일 읽었고, 경제기사 읽는법이라는 책도 사서 읽었다.

재미있긴 했는데, 막상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함에 있어서는 절박함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 가면 뭔가 삶도 더 많이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공부할 게 생각보다 많았고, 앞으로의 취직도 걱정해야 했기에 뭐하나 게을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해야되서 했고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 자체는 없었다.

학부초반때 경제학 공부가 재미있긴 했는데, 그 재미가 학년이 올라갈 수록 덜해졌다. 공부의 방향성 설정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남들 듣는 수업 찾아 듣다보니 왜 그 공부를 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부유했다. 이것을 갖고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경영학 이중전공을 했고, 실생활에 보다 적용하기 쉬운 경영학에 보다 큰 관심을 쏟으며 공부하고, 졸업했다.

회사생활을 한지 12년만에 모든 것을 관두고 다시 공부의 삶으로 돌아왔는데,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회사다니는 중간에 한국에서 석사를 한번 했지만, 졸업시험과 경제학에세이라는 것으로 논문을 대체한 나는 뭔가 가라로 석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학부 생활을 다시 한번 한 것 같은 느낌. 회사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한 것이라 한학기 한학기 떼우기 바빴던 시기였다. 다만 그 때 차이가 있다면 그간 나를 괴롭혔던 경제수학과 통계학과 한층 가까워졌던 시기였다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것을 이해하고 그 모르는 것을 질문으로 푸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만은 않다는 걸 회사생활을 통해 배우기도 했고, 내가 모르면 남들도 모를 수 있지 라는 생각으로 질문할 수 있는 배짱도 생겼다. 그때의 그 경험이 이번 석사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유학경험이 없었고, 영어로 하는 세미나에 앉아있으면 장시간 앉아서 집중해 듣는다는게 피곤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수업을 영어로 하고, 읽고, 시험을 보는 것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꽤나 했다. 실제로 계량경제학은 그 컨셉 자체가 어려웠고, 내가 약했던 과목이었기에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몇주가 지나면서 조금씩 수월해졌고, 자신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출문제를 입수해서 같이 모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제한된 시간 자원속에 나는 혼자 개념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C. 예상치 못했던 황망한 결과였기에 받고 우울해했다. 여기는 성적 분포표가 인터넷으로 공개되는데, 그게 평균 이상임에 놀랐으며, 그걸 알고도 C라는 글자에 우울해하는 나에게도 놀랐다. 옌스는 평균 이상을 받고 우울해하는 것은 자만이라고 이야기하기에 마음을 애써 추스르긴 했지만 말이다.

이미 지난번 블록때도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에 딱히 이번 블록이라고 더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두과목 모두 A를 받았다. 계량경제학에서 받은 C에 대한 설움에 보상이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다.

오래간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새로운 지식이 머리로 들어오는 과정이 놀랍게도 재미있다. 물론 딴짓을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날도 있지만, 내가 워낙에 한결같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간의 삶의 시간에서(고등학교 이후…) 지금이 가장 자발적이면서도 꾸준히 공부의 길을 걷고 있는 때라는 것을 자신한다.

학부를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어린 학생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같이 자원경제학 시험을 준비하는 도중 자신들과 나는 공부의 동기부여가 다르다면서, 자기들은 그냥 계속 하던 것을 하는 거라 지겨울 때도 있다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첫학기는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그 과정도 즐겼고, 좋은 동기들도 얻었으며, 결과도 좋았다. 전체 석사과정 중 다음 학기에 가장 중요한 수업들이 진행된다. 1학기에 배운 내용을 갖고 실제 학계를 나가면 쓰게 될 내용들을 공부하게 되기에 가장 큰 도전이 될 과목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 보니 삶에서 공부 또는 배움이라는 것에서 멀어지지 않는 길을 계속 걷게 되었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석사는 안할거라고, 경제학은 더이상 안할거라고 했던 내가 석사를 두번이나 하게 될 줄은, 또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박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그래서 절대…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는가 보다.

한주간의 방학이 이제 거의 끝나간다. 다음주면 새학기가 또 시작이 되는구나. 긴장의 끈을 놓칠 새 없이 다시 달려야 한다는게 부담이 되긴 하지만, 설렘 또한 나를 반긴다. 다시 한번 잘 달려봐야지.

정신연령이 어려지는 것 같다.

경제학, 생태학, 덴마크어. 요즘 하는 거라곤 딱 이 세가지. 그 밖의 시간에 하는 건 옌스와 보내는 주말과 저녁, 이따금씩 있는 극히 제한된 풀에서의 사회생활.

해당 분야에 대한 사고 이외엔 별로 하지 않으니 생각이 단순해진다.

옌스와 나는 둘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라, 아니 그래서 짝이 맞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간혹 치는 장난들이 남들이 보면 황당해할 어린애들의 것이다. 그래서 그 이전의 어떤 연애때와도 달리 내 안의 어린 나를 많이 보여주게 되고, 그의 그런 모습도 보면서 지내게 된다. 우리 둘다 하는 행동이 굳이 우리 나이에 걸맞는 행동만 하는게 아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젊어서 그런지 여러모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소비의 스케일도 그들의 것을 보며 나도 괜히 검약하게 된다든지, 그들의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에 놀라면서도 영감도 받게된다.

덕분에 정신연령이 어려지는 것 같다. 좋은 의미로.

방학 아닌 1주간의 방학을 보내며

시험이 끝나고 한주간 있는 방학. 딱히 쉬기도 어려운 건 방학이 시작하기 무섭게 주어지는 읽을 거리때문이다. 수업 진행 방향을 미세조정하기 위해 수강생들의 수학배경을 확인하기 위한 설문조사도 이때 이뤄진다.

혹여나 해당 학기 이전에 통과하지 못한 시험이 있는 학생들은 이 주간에 재시험을 칠 기회가 주어진다. 재수강이라는 개념은 없어서 해당학기에 쳐야 할 시험에 이전 학기에 통과하지 못한 시험까지 쳐야하니 부담이 더해진다. 수업을 들은지 한참 지나서 재시험을 쳐야 하니 그것도 고통일 것 같은데, 원하는 결과가 안나올 것 같은 수업의 경우 일부러 시험을 안치고 재시험을 노리는 학생들도 꽤나 되는 것 같다.

읽을거리들을 출력하느라 도서관이 나왔더니, 예상한대로 별로 사람이 없다. 낯이 익은 사람이 다른 누구와 대화하며 재시험 치는 것 때문에 너무 걱정된다고 하는 것 보니, 나와있는 사람 중 몇몇은 재시험을 보는 학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갖고있는 강박중 하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중요하지 않아 넘어가도 되는 부분에 사로잡혀 머리를 끙끙 싸매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급박한 프로젝트가 있는 경우 그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를 잘 하지 못하고 도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많은 고생을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깊이 이해해야 하는지, 과거 다루고 넘어갔던 컨셉이 세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을 경우 얼마나 자세히 복습을 해야하는지 등등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한다. 적당히 넘어가는 포인트를 찾는 것은 아마도 평생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초반에 너무 열정을 투여할 경우 중간에 지쳐서 용두사미처럼 헤이해지기 좋기에 완급 조절은 필수다. 우리 단과대학처럼 제대로된 방학이 여름밖에 없는 경우는 더욱 그렇고, 주당 백페이지가 훌쩍 넘는 리딩이 주어지는 수업은 더욱 그렇다. 다 깊이있게 이해하고 넘어가려 해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 적당히 선택을 해야한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는 이런 식의 학습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경험으로부터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런 문제가 없는데 – 간혹 받는 실력 향상에 대한 스트레스 빼고 – 일반 학습은 그게 잘 안된다.

긴 학기가 끝나고 쉬어야 하는데, 별로 쉬지 못하고 새로운 학기에 다시 진입하게되니 아쉽다. 그래도 오개월만 버티면 두달의 방학이 기다리고 있고, 그보다 먼저 두달만 버티면 한국에 잠시 다녀오게 되니 시간이 잘 갈 것 같다. 물론 한국 방문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시험도 있겠지만…

Procrastination or 미루기

시험기간이 되면 어찌나 시험공부 뺀 모든 것이 다 재미있고 하고싶은지? 심지어는 청소까지.

내일 모레면 치르게 될 구술시험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천은 양이 너무 많아서 하기가 싫다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충분히 준비가 안될까봐서. 사실 그럴 걱정할 시간에 공부하면 되는 건데 불안하니 한자리에 잘 못 붙어있겠다.

도서관에서 하늘이 어둑해질때까지 앉아서 열심히 하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집에서 끄적끄적하면서 딴 짓을 절반 이상 하는 날도 있다.

완벽한 준비는 안될 것 같지만,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되겠지.

다음 학기엔 조금 더 잘 할 수 있기를… 15 ECTS 수업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

1988 추억팔이

응답하라 1988을 보고나니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추억의 중심엔 올림픽이 서있는데, 온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마음을 졸이곤 했다. 올림픽 개막식 매스게임은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 이후 몇년동안 학교에서는 운동회마다 매스게임을 준비하곤 했는데 그게 얼마나 쿨하게 느껴졌던지.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부채춤도 인기가 있었는데, 부채를 한손으로 펴는 방법을 배운 다음엔 여름마다 부채를 부칠 땐 그 기술을 열심히 활용하곤 했다.

아쉽게 은메달을 따는데 그쳤던 전병관 선수의 역도경기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작기 때문에 그의 경기가 더욱 극적으로 느껴졌던지 지금은 관심도 없는 역도 종목이 마치 가장 재미있는 경기인 것 같았다.

탁구에 유남규, 현정화 선수, 양궁에 김수녕 선수 또한 기억에 남는다. 원래도 땀이 잘 나는 손이지만 경기를 보는 순간만큼은 유독 땀이 많이 흐르는 손을 꼭 쥐고 온가족이 함께 응원을 했다.

오랫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올림픽 개막식 노래 “손에 손잡고“가 생각나 그 당시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그 노래를 유튜브를 통해 다시 봤다. 지금도 느껴지는 그 마음의 설렘이라니. 오히려 지금 그 설렘이 유달리 크게 느껴지는 건, 그 전쟁같았던 폐허에서 일으킨 경제성장을 냉전시대중 가까스로 열린 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알렸을 때 그 성장의 주역, 우리 부모님 세대가 느꼈을 자랑스러움이 이제는 이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보다. 이때만 해도 앞으로 항상 좋아지는 날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한강의 기적이 백년천년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걸 그 때는 몰랐지. 많은 어려운 요소들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짧은 시간 많은 것을 이뤄낸 것을 보면 참으로 자랑스럽다.

그저께 덴마크 공영방송 제1 채널에 프라임타임 뉴스의 마지막에 extended news의 형태로 한국 교육제도의 명암을 담은 내용이 방송되었다. 한국에 대해 요약설명을 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데, 세계 15대 경제대국이라는 표현에서 옌스가 감탄을 표하더라. 우리나라가 나는 아니지만, 그 말에 쑥스럽지만 자랑스러움도 느껴지더라. 양극화를 비롯해 여러가지 내부적 갈등요소를 안고 있으며, 세태에 대한 탄식도 하게 하는 나라지만, 그 모든 것이 내 나라의 단면이 아니겠는가.

해외에 나와 살기에 더욱 나를 우리나라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 이곳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들에게 나는 한국에서 온 사람일 것이기에. 이런 저런 복잡한 모든 것을 포함해 나는 우리나라 사람인 것이 자랑스럽고,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것을 누리게 해준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감사한다.

추억의 크리스마스

어렸을 땐 그렇게도 오지 않던 크리스마스가 나이가 들어서는 자주 돌아온다. 차이가 있다면 더이상 산타할아버지를 믿지 않는다는 것.

남들보다 늦은 시기까지 크리스마스를 믿었는데 그 덕에 많은 에피소드가 생겼다.

잠에 들어야 산타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해서, 부모님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외출하신 사이에 불도 끄고 싶은 잠에 빠져버린 것은 우리만 몰랐던 아주 요란한 사건이었다. 안에 사람이 있을 때 밖에서 열지 못하게 하는 버튼을 눌러 문을 잠그는 게 습관이었는데, 연년생 오빠와 나는 그날도 그렇게 잠그고 잠에 든 것이다. 벨을 눌러도 문은 열리지 않고 열쇠로도 열리지 않는 탓에 부모님은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은 경비원 아저씨가 베란다를 타고 들어와 문을 열어주셨다고 한다. 이웃끼리 가깝게 지내던 시절이라 가능한 일이었는데, 산타할아버지 오시라고 창문은 열어둔 게 불행중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부모님은 애써 사오신 선물도 우리 머리맡에 두지 못하고 이웃집에서 잠을 청하셨겠지.

어느 해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와서 내 방으로 가시는 순간을 잡아 얼굴을 직접 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숨어있으면 모를까 싶어서 그렇게 잠이 들었는데, 순간 빨간 장화가 옆으로 지나다는 것을 보았다. 그 발목을 잡을까 말까 하다가 혹시나 잡으면 선물 안주시고 도망가실까봐 그냥 말았다. 물론 꿈이었겠지. 그렇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게 너무 생생해서 꿈이라고 생각조차 못했고,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증거가 있었기에 아무리 다른 친구들이 산타할아버지는 없다고 해도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까지 그게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느날 부모님께 남들이 그러던데 정말이냐고 여쭤봐 그렇다는 답을 듣고 마음의 상처를 조금 받기 전까진 쭈욱 그랬다.

이제 충분히 자랐고, 다른 어린이들을 챙겨줘야 해서 이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주신다는 카드를 받았을 때가 4학년 정도 되었던 거 같다. 한 살 많은 오빠는 나보다 왜 일년이나 선물을 더 주셨는고 하며, 나이 많은 오빠때문에 난 선물이 일년 일찍 끝났다며 억울해했다. 오빠는 일찍 아빠의 독특한 필체로 금방 알아챘다고 했는데 나의 상상을 깨주지 않은 거 보면 참 착한 오빠였다.

의외로 아주 옛 기억도 일부 남아있는데 몇년에 걸친 기억이 다 뒤섞여 있어 어느 해의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두돌 지난 나는 일자 앞머리와 버섯머리를 하고선 노란 튜브형 고무줄을 두르고 천기저귀를 찼는데, 장식장 위에 앉아서 엄마, 오빠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마 아빠가 찍어주셨겠지. 이 모습은 내 기억이 아니라 꾸준히 본 사진속의 내 모습과 그 당시 내가 주변의 형성이 뒤섞여서 결합된 이차적 기억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를 별달리 챙기지 않았지만, 내 기억이 있는 시작부터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던 순간까지는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날이었고, 매년 그 날을 기다리며 집안을 꾸미는 것을 돕곤 했다. 도움이 안되었다해도 의도는 최소한 돕는 거였으니. 그때는 뒤틀린 꼬임의 트리장식이 유행했는데, 반짝 반짝 빛나던 플라스틱 트리장식과 지금은 램프에나 쓸만한 큰 크기의 유색 꼬마전구 장식을 플라스틱 트리에 열심히 둘렀다. 엄마는 벽에도 금색으로 코팅된 플라스틱으로 Merry Christmas라 쓰여진 리스를 걸어두셨고. 거기엔 브론즈색을 입힌 솔방울 장식과 빨간 크리스마스 나무 열매도 달려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를 하고 있던 앳된 엄마와 지금 모습에서 시계의 태엽만 거꾸로 감은 듯이 크게 변하지 않은 아빠의 얼굴도 같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밝아진 거리의 모습을 보니 과거 어린 시적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오르며 웃음을 짓게 한다. 우리 집에도 촌스럽게 작게나마 트리장식을 했다. 작년에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 꾸몄던 진짜 크리스마스 전나무와 이쁜 장식은 아니지만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작게나마 뭐라도 꾸미니 포근한 느낌이 든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

 

현재를 살기.

“덴마크인마저 여기 날씨를 싫어하던데, 넌 여기 날씨도 괜찮다면서 좋아하는게 참 신기해.”

대학원에서 알게 된 크로아티아 친구가 급작스레 찾아온 추위에 불평하며 말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맑은 날이 많고 흐리고 비가 오더라도 덴마크처럼 강풍을 동반하지 않아 여기처럼 우산을 써도 거센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는 일은 겪을 수 없으니, 그 곳에서 평생을 살다온 내가 여기 날씨을 좋아할 수 있겠느냐고. 일리가 있다. 델리의 날씨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바가 있기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짧은 겨울이 지나고나면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오르기 시작해 4~5월이 되면 낮기온이 50도에 이르고, 습도가 높은 탓에 건물 밖으로 한발만 내딛으면 숨이 턱 막힌다. 에어콘으로 차갑게 유지된 공기속에 있다가 습하고 뜨거운 공기속으로 움직이면 갑자기 피부와 옷이 축축해지는 느낌과 함께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2~3개월에 불과한 우기를 제외하고는 비는 오지 않아 땅은 항상 건조하다. 서쪽에서 간간히 오는 강풍은 그 건조한 흙을 훑으며 모래폭풍을 일으키는데, 열악한 건축마감 기술탓에 창문이 꼭 닫히지 않아 18층 아파트 실내까지 모래가 덮치곤 한다. 하루는 들판에서 내 차를 향해 불어오는 모래 바람이 보여 황급히 차창을 닫은 적이 있다. 창문을 다 닫자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모래가 차를 덮쳤는데 순간의 안도감이 지나자마자 짜증이 나를 휘감는 기분이 들었다. 나무들은 더운 기후에도 생존할 수 있는 잎이 작은 활엽수가 주종을 차지하는데 그나마 있는 그 작은 잎사귀에 흙먼지가 뽀얗게 앉아 초록생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겨울 3개월을 제외하고는 밤낮에 상관없이 에어콘을 달고 살아야 했는데, 전기세가 비싼 건 차치하고서라도 적정온도를 찾기 어려워 밤에 잘 잘 수 없다는 것이 삶을 더 피곤하게 한다.

그곳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에 시간은 더디게 갔고 2년반이 10년의 세월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인도에 사는 외국인은 그를 사랑하거나 싫어하는 두 부류로 나뉜다는데, 나는 싫어하는 편에 속해있었고 여행은 몰라도 다시는 이곳에 살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덴마크에서 평생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 이상으로 인도에서 사는 것을 싫어했기에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내 몫이었다. 내가 아무리 시간이 흐르기를 바란들 더 빨리 흘러갈 시간이 아니라면 그 순간을 잘 살든 못 살든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몫인데…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불쌍히 여기던 것은 아쉽다. 자주 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음식도 접하고, 언어를 배우고, 현지인과 교류하는 등 그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머리로는 알지만 행하지못하는 것은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라,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라,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는 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류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나도 다 알아. 아느네 그렇게 하는 게 힘든 것을 어떡해?’ 였다. 같은 상황을 두고 누구는 웃고 넘어갈 수 있고 누구는 마음상할 수 있고, 누구는 화를 내고 누구는 용서할 수 있는 것처럼 결국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하는 일이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내가 영향을 받을 때 부처나 예수가 아닌 이상 감정이 동하고 일희일비할 수 있지만 삶의 흐름이 외부에 빈번히 흔들리면 사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우산장수와 부채장수를 아들로 둔 노모의 이야기처럼 매사를 걱정할지 아니면 기뻐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건 아무리 남이 이야기해준다 해서 바뀔 일이 아니고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의 순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기쁨을 직접 느끼고나서 실천해가기 시작해야 바뀔 일이다.

해가 짧아지고 비가 자주오고 바람이 몰아치는 계절이 되면, 해가 나오는 그 짧은 순간이 아름다워져서 좋고, 짙은 회색구름 틈새로 살짝 비쳐 보이곤 하는 파란 구멍을 발견했을 때 반가워서 좋다. 저녁이면 깜깜해져서 일찍부터 초를 키고 그 아늑함을 즐길 수 있어서 좋고, 비가 올 때면 땅이 촉촉해져서 좋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가 도시의 오염물질을 불어내줘서 좋고, 하늘의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몸이 젖어 으슬으슬하면 집이나 실내에 들어와서 몸을 녹일때 느껴지는 부르르하는 감각과 함께 찾아오는 온기가 좋다. 파랗던 나뭇잎이 단풍으로 색을 갈아입으면 그게 아름다워서 좋고, 떨어질 땐 그 아름다움이 좋다. 낙엽이 지고 앙상해진 나무는 수종마다 다른 가지의 구조를 알게 되어 흥미롭고, 나무 끝에 월둥준비를 하며 준비해 둔 새순이 피어날 날을 기대할 수 있어서 좋다. 봄이 오면 어느새 연녹색 새순이 터지며 하루가 다르게 짙은 색깔로 빈 공간을 채워가는 것이 놀랍다.

변하는 것은 변화에서 오는 새로움을 찾을 수 있어서, 변하지 안는 것은 그 항상성 때문에 좋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주변환경의 동력을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좋은 대로 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끊임없이 불평한다면 내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느꼈다.

그 일이 얼마나 작고 크냐에 따라 그 변화에 내가 어떻게 적응하느냐와 그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도 그 노력은 계속될 것이고 이를 행함이 어려운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머리로만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그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갈 수 있고, 그렇게 믿는다.

시험 성적이 나왔는데 평균보다는 잘 했지만 내가 원한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다. 많이 속상했다. 그렇지만 속상한 마음은 그 날 저녁에 느낀 다소간의 울적함으로 충분하다. 이미 나온 결과에 승복하고 다음 과목 공부에 집중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게 해서 성적을 잘 내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지금 하는 공부가 나에게 가져올 도전과 그 결과물로 쌓일 지식을 받아들이며 공부하면 난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

현재 삶의 순간에서 작은 것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느끼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살아내는 일이 소중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엘니뇨 현상으로 올 겨울은 온화한 계절이 예상된다고 한 것을 들은 지 오래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북풍한파가 닥쳤다. 거센 바람과 함께 눈폭풍이 들이치기 전에 부모님이 타신 비행기는 한국을 향해 떴다. 아슬아슬하게 한파를 피해가신 탓에 늦가을의 끝자락을 겨울이 오기 직전까지 함께하고서야 돌아가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무서운 눈폭풍이 가라앉고 난 뒤 통상 찾아드는 고요함과 함께 밝은 햇살이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부모님의 빈자리가 갑자기 느껴진다. 계신 동안 학교 수업이 시작되며 바빠져 제대로 마지막 한 주를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일상은 계속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엄마가 떠나기직전 남기고 가신 편지 한 장이 내 마음을 크게 울린다. 이를 쓴 엄마의 마음이 한 글자, 한 글자 온전히 마음에 다가오기에 이를 읽을때마다 눈물이 난다. 내 진짜 독립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닌가한다. 이미 독립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또 다른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이 순간을 맞이해 나를 떠나보내는 마음과 인생을 살아가다 지칠 때 나를 다시 추스를 수 있도록 하는 그 글에서 더이상 내가 부모님 품 안의 자식이 아님을 느낀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날기 싫은 마음마저 갑자기 들지만, 그간 무수히 연습만 해왔던 비행은 앞으로 떠날 긴 진짜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이 편지는 깊고도 소중한 곳에 묻어둔다. 언젠가 타국의 삶이 힘들고 나를 지치게, 주저앉게 할 땐 이를 꺼내 마음의 위안을 얻으리라. 지금은 그 마음에 울며 읽지만, 지금 알 수 없는 미래의 힘든 그 순간엔 이 종이 한 장이 참으로 따뜻한 마음의 울림을 주리라. 그리고 난 다시금 용기와 힘을 내어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

IMG_2891IMG_2876

IMG_2987

My wedding speech :)

I would do my speech both in English and Korean as I have guests from different backgrounds. So it will be exceptionally long for a bride’s speech. It is okay to fall asleep.

Undskyld mig for ikke at tale også på dansk. Det er min brudens tale og jeg vil gerne udtrykke mine tanker og følelse fuldtud. Men mit dansk er ikke så godt nok til at gøre det. Så jeg vil bare tale på engelsk og koreansk. Måske allerede er der nogle gramatiske fejl.

First of all, thank you so much for everyone once again who came all the way from different parts of Denmark and the world. I am very grateful that I could share this precious moment in life with people that I care about.

우선 먼 곳에서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 인생의 소중한 이 순간을 제가 아끼는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I met Jens at an online dating site. As an economist, I wanted to be most efficient and effective even in terms of dating someone. Jens was my first date at the site, and he became my husband. It cost only 100 kroner to find my husband and he has been the most amazing and the best man that I have ever known! So, that 100 kroner was very cheap but the most efficient and the most valuable investment in my life.  

저는 옌스를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에서 만났어요. 경제학자로서 저는 누군가를 데이트하는 순간마저도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고 싶어했지요. 옌스는 거기에서 만난 첫번째 데이트였고, 제 남편이 되었어요. 제 남편을 찾기까진 단돈 100 크로나가 들었을 뿐인데, 그는 제가 여태껏 알아온 중 가장 훌륭하고 놀라운 남자였답니다. 그러니 이 100 크로나는 아주 쌌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가치있는 투자였어요.

Since there are some of guests, who didn’t have enough time to get to know him well, I would like to introduce him a little bit. Maybe this proud introduction would be against Janteloven in Denmark, unwritten rule telling people not to be proud, but I would do it anyway as it is my wedding dinner. 🙂 Jens is an incredibly sweet, caring, loving, artistic, hard-working, good-looking, keeping house clean, intelligent, humorous, calm, relaxed, down-to-earth, humble, tall, lean, no-smoking, not-drinking-heavily man. I should cut it here, because it will take nearly this whole night to descibe good things about him.

He didn’t make me nervous by playing games, and has made me smile or laugh by sending me some witty SMS’es from the beginning. One day after our first date, he sent an SMS starting like this, “The rules said that guys should wait 2-3 days before contacting a girl for the next date, otherwise the guy would look too desperate. And I was desperate.”

옌스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간단히 소개해드릴께요. 이런 자랑스러운 소개를 하는 것이 자만하는 것을 금하는 덴마크의 얀테법에는 다소 어긋나겠지만, 오늘은 제 결혼파티날이니까요. 옌스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다정하고, 잘 챙기고, 사랑하며, 예술적이고, 근면하고, 잘생겼고, 집을 깨끗이 관리하고, 명석하고, 유머러스하고, 침착하고, 여유가 있으며, 현실적이고, 겸손하고, 키크고, 잘생겼으며, 담배도 안피우고 술도 과하게 마시지 않는 남자에요. 여기까지만 할께요. 옌스의 좋은 면을 다 설명하려다가는 오늘 밤이 다 가 버릴테니까요.

그는 한번도 밀당 게임을 하는 식으로 저를 불안하게 한 적이 없었고, 처음부터 아주 위트있는 메세지를 보내며 저를 미소짓거나 웃게 만들었죠. 첫 데이트 이후 바로 다음날, 그는 이렇게 시작하는 문자메세지를 보낸 적이 있어요. “데이팅 법칙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랑 다음 데이트를 정하기까지 2~3일은 기다려야 절박하게 보이지 않는다고들 하지요. 그런데 저는 절박했어요.”

Jens. Thank you for being you and being with me, accepting me as your life partner to spend the rest of our life together. Thank you for being patient. I still remember our first walk around our neighborhood, trying to talk only in Danish, though it was even before for me to have a proper Danish education. That one hour was incredibly long, mostly filled with Umm… Jeg… umm… You have been patient always to listen to what I was trying to say. It was not just my Danish. But my feelings, my ideas, how my life is in Denmark, how my study is. You have not just been my partner, but have also taken over the roles that my parents had taken for me, and have been so much more than I could have imagined what a partner could be like.

I love our childish moments and jokes, and our economists’ dance turning into judo or wrestling. I love our small rituals such as three kisses or kyskyskys. I will love you until we cannot properly walk, and until the only sports we could play together is balloon tennis at a nursing home. You will always have your husband’s rights to have massages every four hours as you demand. I will complain just a little bit like, saying okay, okay, okay. I love you. Jeg elsker dig.

옌스. 당신이어서, 나와 함께 해줘서, 나를 여생을 함께 보낼 인생의 반려자로 맞이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항상 인내심을 가져줘서 고마워요. 나는 아직도 덴마크어로만 말하며 걸었던, 우리 동네에서의 첫 산책을 기억해요. 그땐 아직 제대로된 덴마크어 수업을 받기도 전이었죠. 그 한 시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길었고, 대부분이 음. 나는. 음으로 채워졌었죠. 당신은 항상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듣기위해 인내심을 가져줬어요. 그건 단순히 덴마크어뿐 아니라, 내 감정, 생각, 덴마크에서 내 삶이 어떤지, 내 공부는 어떤지 말이죠. 당신은 단순히 내 파트너일 뿐 아니라, 내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역할도 이어받았으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파트너란 어때야 하는 것인가 이상의 사람이 되어주었어요. 나는 우리의 유치한 순간과 농담들, 유도와 레슬링으로 바뀌곤 하는 우리 경제학자간의 춤을 사랑해요. 그리고 우리만의 삼세번의 키스와 같은 의식들도 사랑하죠. 나는 우리가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스포츠라곤 양로원에서 하는 풍선 테니스가 될 때까지 당신을 사랑할께요. 당신은 당신이 요구하는대로 매 네시간에 한번씩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남편의 권리를 항상 가질 수 있으며, 나는 알았어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는 작은 불평을 할 거에요.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IMG_20141231_202557

You are my king! 😀

Thank you so much mor og far for bringing up your son to this fantastic man and letting me be his life partner. And thank you also for being my another parents in Denmark. New family is a beautiful by-product of the marriage. I now have amazing family members on top of my loving family in Korea. Mor, far, Gry, Frederik and all the other family members, thank you for welcoming me to your family. I would be your another loving daughter and sister. Tusind tak!

어머님, 아버님, 당신의 아들을 지금의 아주 훌륭한 남자로 키워주셔서, 그리고 덴마크에서 제 또다른 부모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가족은 결혼의 아름다운 부산물이에요. 저는 한국의 제 사랑하는 가족에 더해 어머님, 아버님, 아가씨와 아주버님, 그리고 다른 친척까지 좋은 가족을 얻게 되었어요.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환영해주셔서 감사하고, 저 또한 사랑하는 딸과 여동생이 될께요.

I am happy to have my parents and aunt all the way from Korea, and Sunse and Dennis from Switzerland. Thank you for flying over to Denmark only to celebrate our wedding in this dready time of the year. This long distance sucks, but that does not mean that our distance in mind is also long. Even though I am away from you, and may not be in touch with you as frequent as before, I am caring and loving you my family and friends, missing you even more.

한국에서 여기까지 먼 길 와주신 부모님과 이모, 스위스에서 온 순재언니와 데니스 형부, 이 음울한 계절에 단지 제 결혼을 축하해주러 덴마크까지 먼길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 장거리는 참 몹쓸 것이지만, 그 거리가 마음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멀리 떨어져있고, 그 전처럼 연락을 자주 하지는 못하더라도, 제가 여전히 제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하답니다.

Sometimes, it feels like I am an undutiful daughter leaving my own country flying half way around the world in distance, not being able to be next to you mom and dad, but I know that you are happy for me that I met my Mr. Right, the perfect match and that you bless me and this marriage. Thank you for being my parents. You brought me up to have my life full of happiness, enlightened my life with your loving care, lessons of life and the education. You have been my mentors and you will always be. I will always dream, pursue, learn, love and be considerate or at least try to do or be so as you have taught me to. And I will be happy, I promise.

때로는 지구의 반바퀴를 날아와야 하는 곳에 떨어져있다는 사실이 제가 불효녀인 것처럼 느껴지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운명의 짝을 만나게 된 것을 엄마 아빠가 누구보다 행복해하고 계심을, 저와 이 결혼을 축복해주심을 잘 알아요. 저의 부모님이어 주셔서 감사해요. 제 삶을 행복으로 가득하도록 저를 키워주셨고, 사랑과 삶의 교훈과 교육으로 제 삶을 밝혀주셨죠. 제 인생의 멘토가 되어주셨고, 앞으로도 계속 그리해주시겠죠. 저는 항상 꿈꾸고 그를 추구하며, 배우고,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께요. 그렇게 못되더라도 최소한 그리 노력하고 살께요. 그리고 항상 행복할께요. 약속해요.

제 긴 스피치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all for being patient to listen to my long speech.
Jeg elsker dig, sk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