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휴가 최고의 날

올 여름 휴가 중 오늘이 최고인 이유는 오늘은 일을 안하고 정말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시댁인 보언홀름에 와서도 아침 8시반부터 저녁 5시까지 매일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쓰고 집에 와서도 하나 재우고서는 밤에 또 일을 했는데 오늘은 집에서 오전 일찍 세시간만 일하고 하루종일 놀기로 했다.

첫번째는 미리 예약해둔 레스토랑 방문하기. 작년에 한국 다녀와서 거의 1년만에 처음 좋은 레스토랑을 가기로 한 거였는데 보언홀름에 미슐랭스타 레스토랑 Kadeau가 있어서 거길 가보기로 했다. 전형적인 뉴노르딕 식당이었는데 몇군데 가봤던 뉴노르딕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중에서 제일 괜찮았던 거 같다. 꽃과 인근에서 나는 베리, 발효 식자재를 많이 썼는데 프레젠테이션도 그렇고 맛도 좋았다. 분위기는 캐주얼한 스타일이어서 애들을 데려온 부모들도 많았다. 물론 애들을 동반한 부모들은 잘 즐기지는 못했지만…

스낵으로 나왔던 팬케이크는 꽃으로 뒤덮여있었다. 옌스는 약간 셀러리같은 향이 난다고 했지만 나는 정확히는 어떤 향이라고 표현하긴 힘들지만 셀러리 향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부담스러운 향도 아니었고… 싱그러운 느낌을 더해주는 정도였고 시각적인 부분과 식감 부분을 담당한 것 같다. 팬캐이크는 구수하고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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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약이 워낙 일러서 그랬는지 한 팀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평일인데도 곧 꽉차서 놀랬다. 물론 휴가시즌이라 그럴 것 같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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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왔더니 하나는 유모차에서 잠이 들어있었는데 꽤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주변에서 대화소리가 들리는데도 깨지 않고 계속 잤다. 잠든 얼굴을 보는데 어찌나 커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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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깨어난 하나와 놀다가는 옌스에게 피자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며 피자 두판을 만들어 시부모님과 즐겁게 나눠먹었고, 저녁엔 국민 가수인 Kim Larsen의 야외 콘서트가 바로 옆 콘서트장에서 열리길래 발코니에 앉아 무료 공연을 즐기며 이렇게 블로그 포스트를 쓰고 있다. 물론 잠깐 가서 구경도 하고, 워낙 역사적인 가수인데다가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렇게 공연 가볼 일도 거의 없을 거 같아 셀피도 남겨두었다.

덴마크는 이번 여름 엄청 좋고 평년보다 엄청 더워서 25도를 훌쩍 넘기는 날이 많다. 아직 본격적 여름이 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잘 때 너무 더운 경우가 있는데 (물론 한국 기준으로는 시원하고 열대야도 아니지만, 이제 엄청 시원하게 해두고 자는 데 익숙해 있어서 쉬이 덥게 느껴진다.) 다행히 보언홀름은 20도 내외로 시원했어서 피서를 제대로 하다 가게 될 거 같다. 너무 더우면 하나가 잠을 설치는데 그렇지 않은 게 가장 감사했다.

오늘 아침엔 이력서도 한군데 제출했다. 덴마크에는 석사 타이틀이 구체적으로 정해져있어서 직업을 타이틀로 검색할 수가 있는데,  내 이력에 꽤나 관련된 자리가 올라와있는 거 아닌가. 이력서는 지난번 Marsh라는 회사 graduate program에 지원할 때 써둔 게 있어서 수정할 게 없었고, 지원서만 새로 써야했는데 덴마크어로 써야하다보니 하루를 씨름해야했다. 덴마크에서는 지원서를 내기전에 채용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는 게 아주 일반적이고 그래야 회사가 채용하는 목적 등을 정확하게 확인해서 지원서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전화를 꼭 해야한다. 그 전화를 하기 전에 뭘 물어볼 건지 등을 정하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전화를 하고 담당자가 말해준 내용의 배경을 확인하느라 리서치 하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 다음엔 그걸 덴마크어로 쓰느라 시간이 걸렸고.

저녁에 옌스가 교정을 봐주는데, 문장 구조 수정 없이 마이너한 문법만 몇개 고쳐주고 끝내면서, 나중에 덴마크어로 보고서 쓰는 것도 누가 문법만 초기에 조금 봐주면 큰 문제 없을거라고 했다. 지난번보다 덴마크식 지원서 쓰는 것에 대한 감이 더 잡혔는데, 뭐 되기를 기대한다기 보다는 이렇게 하는 작은 경험들이 쌓여서 조금씩 발전이 되고, 그러다보면 취직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오늘은 아무튼 좋은 날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기억할만한 그런 날이다.

논문을 쓰며 배운 것들

논문을 쓰면서 또 한번 느낀 것이지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거나 보고서를 쓰는 과정 모두 비선형적이다. 논문을 씀에 있어서 현상에 질문을 던지고 이론을 먼저 익혀 정리하고 실험을 하고 결과를 내어 분석하고 토론해서 결론을 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한마디로 카오스였다. 어쩌면 내가 일을 하는 방식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집안일을 할 때도 한방 한방 싹 정리하기보다 일의 동선에 맞추어서 정리하다보니 집안 전체를 조금씩 조금씩 치워서 한방이 끝날 때 쯤이면 집안 전체가 치워지도록 하는 내 방식 말이다.

큰 프로젝트일수록 작은 일부터 태클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다시 한번 배웠다. 우선 일에 착수하고 중간중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해보고 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더라. 옌스가 했던 말이 있는데, 논문은 쓰기 시작하면 하루에 한페이지나 두페이지 라도 최소한 쓸 분량을 정해놓고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잘 안써지는 날이 있다고 하루 이틀 미루기 시작하면 때려잡을 수 없는 괴물처럼 커져버린다고… 그러니 정말 하기 싫은 날이라도 한페이지라도 쓰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실행을 꼭 해야한다했다.

이런 성실함은 나에게 부족한 면인데, 성실한 남편 덕에 구체적인 실행 아이디어도 얻고 옆에 있다보니 자극도 되서 도움이 된다. 집 청소나 집안일에서 다른 스칸딕 대디에 비해 경쟁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외에는 일적인 면이나 생활 습관 면에서 부모님이나 책에서 배웠던 성실함과 근면함을 그대로 갖춘 옌스다. 기분파인 나와는 얼마나 다른지. 그래도 옌스의 그늘아래 있다보니 조금은 닮아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기적으로 찾아오곤 하던 슬럼프도 약하고 덜 찾아오는 것 같다.

오늘 서론을 다 썼다. 서론에 ambitious한 문구도 써넣었다. 아주 tiny한 구멍이긴 하지만 홍수 분야 문헌에 있는 구멍을 매우는 논문으로 유니크한 밸류프레포지션을 하는 논문이 될거라는… 엄마나야… 내 일에 이런 문구따위는 쓰지 않던 사람인데, 나 혼자 보수적임을 자청하면서 내 논문에 너무 겸허한 자세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  남의 논문들도 읽어봤는데, 좋게 평가할 건 스스로도 칭찬해주더라. 내가 아끼지 않는 자식은 남도 아끼지 않을 거라는 마음으로 내 사랑을 표현해줘야겠다. 이제 남은 건 결론과 perspective 챕터뿐이다. 이론 하나를 조금 수정해야 하고 교수 리뷰를 다음주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8월 전에 제출할 수 있을 것 같다. 충분히 일찍 끝나면 조금 욕심을 부려서 LaTex로 논문의 포맷을 바꿔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는데, 그건 진행상황을 보고서…

논문이 끝나면 덴마크어 수업 외에는 실업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경제가 좋으니 경기가 한풀 꺾이기 전에 빨리 직업을 찾아봐야 할텐데 긴장이 많이 된다. 실업급여는 받지 않기로 했다. 나라에서 학생들 주는 용돈이 있는데, 그나마 들어오던 용돈이 잘리고 실업급여를 안받자니 조금 아쉽다. 하지만 요즘 갈수록 영주권 절차가 까다로워지고 있고 이제 실업급여를 4개월 이상 받을 경우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몇년이더라 2년인가 4년인가 뒤로 밀리는 걸로 바뀌었다. 규정 강화가 일년에도 몇번씩 이뤄지고 있어서 이러다가 갑자기 실업급여를 받으면 영주권을 못받는 것으로 바뀔 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 마저 든다. 물론 비자야 계속 연장하면 되긴 하지만, 가족이 같이 삶에 있어서 종이 조가리에 삶이 자꾸 영향을 받을까봐 불안해하는 자체가 싫다. 나보다도 옌스가 더 그래서 혹여나 자기가 잘리더라도 일년동안 문제없이 살 수 있게 저축한 돈도 있고 현재 실업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그 돈 (그 돈이 사실 세전으론 거의 2백만원 돈이다. 물론 옌스 덕에 내 세율도 높아서 세금 내고 나면 거의 반토막 나겠지만.) 받지 말고 마음 편하게 살자고 하란다. 실업 급여 받으려면 졸업 후 2주 안에 실업급여에 가입을 해야하기 때문에 가입할지 아닐지를 고민하던 차였는데 그냥 지금은 가입하지 않으련다.

간간히 이러다 직장 못구하면 어떻게 해? 라고 물어보면 혼자 벌어도 돼 라고 이야기하는 옌스. 실업상태보다는 프로필에 안맞는 직장이라도 찾아서 일하고 싶다고 하면 그래도 좋다고 하면서도 프로필에 맞는 직장을 꼭 찾을 수 있다는 옌스. 어떻게든 직장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 같고, 안맞는 직장보다는 실업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잘 모르겠다. 뭐가 좋은 건지…

그냥 지금은 닥치고 논문을 써야겠다. 쓸데 없는 걱정 말고… 슬슬 취직 준비도 시작해보고…

덴마크가 조금 더 열린 세상이 되길 바라며

대학원 친구가 생일이라며 바베큐 파티에 초대했다. 오후 세시에 초대했으니 그때부터 준비하고 뭐하면 대충 5시는 되어야 시작할 게 분명했다. 우리 대학원 친구들은 대충 그러니까. 하나와 집안일, 식사준비 등을 생각하면 저녁까지는 있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가까운 친구라 축하도 해주고 싶었고 해서 옌스에게 하나를 보라고 하고 페달 힘차게 밟아 후딱 다녀왔다. 놀라울 것 없이 역시나 두명을 만나고 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한명 더 만나고 싶은 친구는 늦게 온다 해서 다른 기회를 노리기로 하고.

공부를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라 그런가? 뭐랄까… 잘 모르겠는데 편하다. 한참 어린 친구들인데 그런 생각도 안하게 되고. 가정이 있고 한 탓에 저녁에 파티가고 술마시고 안하다보니 수업시간 외엔 비자발적 아웃사이더를 택했지만 그래도 뭔 일 있으면 끼워주는 친구들 덕에 완전히 아웃되지는 않는 게 다행이다.

스페인에서 온 친구 한명은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열심히 하는 열정 많은 친구인데, 직업을 찾기가 힘이 들었단다. 더이상은 덴마크에 질렸다면서 내일 떠난단다. 한동안 소식을 나누지 못했는데, 안타까운 소식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졸업한 친구들 모두가 취직을 한 건 아니지만 그녀가 취직을 못한 건 사실 좀 안타깝고 의아하다. 아직 내가 취업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아니니까 뭘 알 수는 없지만, 글로벌 기업 몇군데나 직종 특성상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덴마크어는 어쨌건 필요한게 분명하다는 것이 다른 친구들 의견이다. 그 친구는 지난 겨울 물어봤을 때 직업을 구하면 덴마크어를 공부하겠다고, 이 불확실성속에 덴마크어에 시간을 투자하기 아깝다고 했었는데, 그게 이유였을까?

우리 프로그램에는 비덴마크 EU 학생이 많은데, 외국인에게 갈수록 적대적인 정책들이 수립되는것에 다들 불편함을 표한다. 사실 살면서는 아시아인으로서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인 정서를 평소에 겪기는 어렵다. 인종차별이 여기에도 없겠냐만은 그게 아시아인이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 특히 무슬림을 향해있기에 평소에는 별다른 것을 느끼기 어렵다. 주변 사람들은 이건 무슬림을 향한 정책이라고, 전반적인 정서를 담은 건 아니라고 하지만, 경제가 좋은 상태에서도 이런데 경기가 안좋아지면 이런 정책 기조가 사람들에게 반 외국인 정서를 키우는 걸 더욱 자극하지 않을까?

덴마크에서의 내 삶에 만족하고 열심히 살고 있다. 시민권 시험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시험 문제를 풀어보니 너끈히 통과할 만큼 사회 제도와 정치, 경제에 관심을 갖고 언어도 공부하며 사회통합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만큼 이민자로서 남의 나라 땅에 살면서 무슨 소리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괜히 옌스와 하나에게 부끄러운 아내,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물론 옌스가 그런 걸 원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나혼자 그런 것일 뿐이지만. 그리고 주변 이웃이나 내가 만나는 길에서 랜덥하게 만나는 덴마크인들조차 다정하고 열린 사람들이지만. 아무튼 요즘과 같은 반외국인 정책기조는 은근히 불편하다.

작은 나라로서의 불안함을 이해한다. 우리도 한국에서 똑같이 느끼는 부분이니까. 그럴 때 이런 쇄국정책으로 불안함을 해결하려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런게 좋지 않은 건 역사를 통해 배울만큼 배우지 않았던가? 뭔가 다른 정책이 필요한 건 아닐까? 아… 최소한 지금의 외국인 통합부 장관만큼은 정말 아닌거 같다.

여기서 살려면 덴마크어를 해야하니까, 그리고 내 애가 한국인이자 덴마크인이고 나도 여기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으니 덴마크어를 계속 열심히 할 것이지만, 여기처럼 영어 잘 하는 나라에서 꼭 덴마크어를 유창하게 잘 해야만 지원자격이 되는 회사들이 대부분인 것은 매우 안타깝다. 스페인에 가서 잘 자리를 잡을 거라고 믿는다. 덴마크에서 그녀가 직업을 굳이 찾으려고 했던 건 다른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였으니까… 굳이 그에 억매이지 않는다면 그녀의 모국에서 원하는 다른 일을 분명히 찾을 거다. 오늘 못봐서 아쉽네…

So drained…

꾸역꾸역 쓰고 있다. 워드카운트가 18600을 넘었는데, 카운트가 늘 수록 그 증가율은 떨어진다. 후루룩 써 내려갈 것만 같은 마음인데, 막상 손이 가면 그렇지 않다. 일상이 정말 건조해지고 있다. 친구도 만나기 어렵고 옌스와도 짧은 대화 외에는 긴 대화를 하기 어렵다. 문화생활도 집에서 짬을 내서 볼 수 있는 TV 시리즈가 고작인 상황으로, 감성면에서 채우는 작업을 할 수가 없다보니 더이상 뺄 물이 없는 빈 욕조가 된 기분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른 걸 미뤄두고라도 논문에 집중할 때다. 한달 열흘이면 최종제출이니… 10시가 넘었으니 논문은 덮어두고 쉬다가 자야겠다. 너무 늦게까지 쓰면 잠에 들 수가 없어 다음날에 지장이 생기더라. 논문을 쓰는 모든 이에게 화이팅!

덴마크에 산지 5년, 한국과 다른 점 1

덴마크에 산 지도 어느새 거의 5년. 한달만 있으면 만으로 5년이 된다.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렀구나 싶게 길지 않은 시간 같다. 하긴 대학원도 거의 끝나가고 애도 낳아서 17개월이 되어가니 이상할 것도 없네. 이제 이곳에서의 삶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여기가 이래서 더 좋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냥 당연하게 느끼게 되어서. 이제 그냥 여기 사회에 동화된 느낌이다.

이런 생각이 들 때 한번 쯤 과거를 돌이켜보며 내가 현재 서 있는 곳에 대한 고마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한국과 다른 점, 또는 이 곳의 다른 문화와 시스템 여건으로 인해 내가 한국에서와 달라진 점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자전거

유모차를 갖고 나가거나 비가 오는 날, 동결 방지를 위해 길에 소금이 뿌려져있는 시기(11월-3월)를 제외하면 가급적 자전거를 타고 나선다. 대학원까지 처음으로 자전거로 가던 날, 집에서 8km인 거리를 40분동안 힘들게 페달밟아 갔다. 구글엔 25분이라고 써있는데, 가는 길은 평균적으로는 약간 내리막이지만 제법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해서 있는 탓에 너무 헉헉대서 그랬다. 요즘은 학교까지는 25분 이내에 크게 힘들지 않게 간다.

대중교통이 비싼 편이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7000원 정도 한다. 오래 살다보니 그냥 여기 가격을 받아들이게 되어 이제는 별 다른 감흥이 없다. 그래도 통근을 자전거로 주로 하는 시기엔 지출 절감에 알게모르게 도움이 된다.

최근 헬스장에서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더니 오늘 시내 가는 길 10km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대학원 처음 다니던 시절이 2015년이니까 한국나이로 36살때였는데… 그때보다는 애를 낳은 지금이 체력적으로 더 좋아졌다. 아마 자전거도 타고다니고 틈틈히 운동도 해서 그렇겠지. 마른 몸보다 근육이 있는 탄탄한 몸을 선호하는 문화 탓에 열심히들 운동하는게 눈에 보여서 나도 조금이라도 더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달리기도 더 하게되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체력을 보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잘 걸어다니지 않을 거리가 여기에선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로 다닐 거리가 되고, 그 덕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더 생기게 되는 거 같다.


날씨, 적정온도

비오고 바람부는 날씨가 익숙해졌다. 인도에서 살다가 한국가서 여름에 견디기 쉬웠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내 몸은 어느새 적응을 해가고 있다. 실내에서 적정한 온도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고, 같은 온도와 바람에 입는 옷이 바뀌었다. 여기 사람들은 왜 그리 춥고 비오는 날 얇게 입고 다니나 했는데, 그 날씨에 아직 적응이 안되었을 때 그랬다. 요즘 기후 이변으로 더운 날이 생겨서 그렇지 여기 여름 날씨라고 해봐야 20도 언저리가 흔하다. 거기에 비도 오고 흐리고 바람 불면 한국사람들은 엄청 춥다고 한다. 나도 예전엔 그랬으니까. 요즘은 25도면 더워서 힘들다. 같은 날씨면 예전보다 옷을 한겹 또는 두겹 덜 입는다. 겨울에도.

여기 날씨에 대해 처음에 많이 불평했는데, 겨울에 낮이 좀 짧은 거 빼고는 여기 날씨가 마음에 든다. 물론 겨울이 긴 건 좀 아쉽긴 한데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으니… 이제 한국은 여름과 겨울에는 가급적 방문하지 않는 걸로…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더 이어 쓰는 것으로 해야겠다…

앞으로의 진로 고민

성적증명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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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이쪼가리를 시청에다가 보내면 자기네가 외국인/사회통합청에 사실여부를 확인한 후 가족비자에 딸린 보증금 일부를 돌려준다. 지난번 시부모님 오셨을 떄 이 증서 받으면 그 보증금 돌려받는 일 처리해야겠다고 했더니 옌스왈 그 보증금이라고 해봐야 자기 계좌 안에 못쓰게 묶어논 돈이고, 보증금에서 풀어서 다른 계좌로 옮겨놔도 이자 안나오는 거 마찬가지니 그런 일 번거롭게 할 필요 없단다. 시부모님도 나보고 이자 나오는 걸로 잘못 알고 있었냐면서 농을 던지시는데 머쓱. 아니 아주 조금은 나오지 않았나? 허허허. 뭐 안나오면 괜히 그런 일 할 필요 없는 걸로…

 

박사과정 지원 마감일이 이틀 남았지만, 지원은 안하기로 했다. 나를 아껴주시는 자원경제학 교수님이 자기가 추천이랑 그런 주변 서포트는 열심히 해주겠으니 지원하기로 약속하라고 하셨을 때, 그냥 나는 너무 쉽게 그러마고 답을 했는데… 박사는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문제였다. 진짜 하고 싶은 건지를 모르겠다. 석사를 시작할 때만한 동인이 마음에 없다. 나는 뭔가 주제가 주어졌을 때 그걸 파고 이해하고 하는 걸 좋아하는 거지, 내가 파고 싶은 주제가 없었다. 석사과정을 하면서도 그게 가장 두려웠다.

석사 논문 주제 잡는 것도 다른 친구들처럼 오랫동안 써보고 싶다고 생각해온 게 없었다. 애가 있는 나로서는 서베이 같은 필드조사가 필요한 건 너무 변수가 심해서 안될 거 같았기에 데이터로 모델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 중 수업을 들어보면서 해보고 싶었던 헤도닉 가격 모형을 선택을 했고, 주제에 대해서는 조금 막연하게 사람들이 해수면 상승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비하는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서 이에 대한 걸 써보고 싶다고 했더니 교수가 이런 저런 건 어떠냐 하고 제안을 해왔다. 거기에서 답을 찾아서 주제를 잡아서 다행히 쓰고 있는 중이다.

박사는 3년이란 프로젝트에 어느정도 지도교수의 조언을 받기는 해도 주제 부분이라던가 연구에 있어서는 석사 이상으로 자기 오너십을 갖고 접근해야 하는데, 영 그런 각이 안나온다. 논문 지도교수님은 예전에 박사과정에 합격한 사람들의 지원서를 보내니 참고해보라고 하시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해수면 상승분야에 펀딩 프로세스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서 박사 자리가 날 것 같다고 하셨다. 나를 도와주신다는 교수님은 원래 다들 막연한 아이디어로 시작한다고 하면서 지도교수님에게 도움을 좀 더 받아보라 하시는데, 이건 영 아닌 거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나를 도와주시는 교수님은 뭔가 약간 한국사람 같은 정이 넘치는 분이라 사람은 돕고 사는 거다는 정신이 강하신데, 내 지도교수님은 (나이가 나와 같은…) 나는 약간의 가이드를 해주는 거지 연구는 자기가 하는 거다 하는 쿨한 정신의 소유자이시다. (사실 이 말씀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두면서 내 이 의존적이고 비자발적인 연구태도로 3년동안 내 프로젝트 4개를 끌고 나간다? 나의 부족한 self-discipline으로는 괴로운 3년이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석사 논문 6개월도 이렇게 간신히 끌고왔는데, 이의 6배가 되는 시간을 이보다 더 큰 프로젝트들로 채워야 한다고? 아… No way…. 주변에 물어봤을 때, 박사는 네가 하고싶어서 해야해. 라는 말들을 들어왔다. 이게 거의 유일한 답이었다. 하고는 싶은데 뭘 하고 싶은 지 모르겠어라는 말에 그거 말고 하고 싶은게 뭐가 구체적으로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받고 할 말이 참 없었다. 그래… 내 마음 깊은 곳에 답이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박사라는 타이틀에 관심이 갔던 것 같다. 취업시장은 어떨 지 영 아이디어가 없는데, 박사과정은 지원을 한다면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이고… 괜히 솔깃했던거다. 지금 내 마음가짐과 태도로 시작했다가는 금방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포기할 게 불보듯 훤하다.

지도교수님에게 몇 주 연락없이 조용히 집에서 일을 했더니 메일로 안부와 프로젝트 진행여부를 물어오셨다. 이래저래 진행하고 있고 박사는 지원 안하기로 했다했더니, 이해한다며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 자신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하시더라.

 

이제 남은 일은 열심히 논문을 써서 빨리 실업시장으로 나가는 것… 아… 컨퍼런스 발표도 남아있다. 프로그램이 나와서 이젠 정말 빼도박도 할 수 없다. 학계로 가는 게 아니라도 이런 경험이 나쁠 건 없고 또 이렇게 누구와 네트워크를 쌓을 지 알 수도 없는 일이니 성실하게 하도록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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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일주일전 근황 – 뒤죽박죽

다음주 금요일이면 생일이다. 시부모님이 하루 전에 오셔서 생일을 같이 보내시고 토요일에 가신다고 하신다. 손녀 보러도 오시는 거겠지만 내 생일 축하해주시려고 보언홀름에서 먼 길 와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 금요일에는 시어머니랑 밖에 나가서 근사한 외식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옌스가 이번에 45번째 생일이라고 친구들 몇명 초대해서 남자들끼리만 외식을 한 것을 보고 시어머니가 그러면 내 생일에는 옌스 집에 있으라그러고 나가서 식사하라고 하시길래 그럼 같이 하시겠냐고 여쭤봤던 거였는데 그러시겠다고 했었다. 농담이려거니 했는데 일부러 오신다는 걸로 보아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 태어나고 나서 애 없는 오붓한 저녁식사는 처음이 되지 않을까?

16개월이 조금 넘어선 하나는 요즘 빠르게 말이 늘고 있다. 단어가 느니 우리와 커뮤니케이션이 쉬워졌다. 단점으로는 말이 느는 것과 함께 독립심이 늘고 자기 의사가 생기기 시작해 원하는 게 안되면 성깔을 엄청 낸다는 거다. 그 자체가 단점은 아닌데, 어디 데리고 가서 그러면 난처함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도 그에 맞춰서 대응 요령이 생기고 있어서 이런 핑퐁게임은 앞으로 끊임없이 생기겠구나 싶다. 아이는 그냥 사랑스럽다. 힘은 들어도 화는 안나는 거 보면 내 아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늦은 나이에 애를 낳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가 싶기도 하고.

덴마크어 시험은 구술만 남았다. 쓰기와 읽기는 모두 12점이 나왔다. 읽기야 이미 정답을 맞춰보고 틀린게 없음을 확인했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쓰기가 어땠을런지 엄청 긴장했다. 수업의 후반으로 가면서 쓰기가 많이 늘기도 했고, 시험 때 정성들여 쓰고 검토도 차분히 한 만큼 12점 나올 것 같긴 했는데, 사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 지야 나와 봐야 아는 거였으니까. 시험 점수 나오던 날엔 꿈에서 4점을 받고 “이건 꿈일거야! 꿈이어야만 해!” 외쳤던 악몽도 꾸었다. 구술은 선생님 왈 읽기와 쓰기보다 훨씬 낫기 때문에 12점 받을 거라 확신한다고 하셨으니 기출문제 받아온 것만 주르륵 훑어보고 가보려 한다. 이 시험을 보고 나면 중상급을 통과한 거고, 이 뒤로 대학교 진학을 위한 과정을 들어보려고 한다. 대학교를 다시 갈 일이야 없지만, 고등교육을 위한 언어교육은 앞으로 직장생활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니까. 아니 그런 걸 떠나서 앞으로 여기서 계속 살꺼니까 언어는 필요하고, 공부 없이 신문보고 영화보고 뉴스보고 하는 정도의 그냥으로는 느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아니까 지금 박차를 가할 때 가하련다.

논문은 슬럼프다. 쓰긴 써야하는데 쓰기가 싫다. 그냥 꾸역꾸역 쓰고있다. 논문의 주요 결과는 나온 상태라 초록을 컨퍼런스에 보내봤는데 (교수가 보내보래서) 아주 포멀한 컨퍼런스가 아니라 그런지 억셉트도 되었고, 발표를 하려면 어찌 되었든 미룰 수 없이 끝내야 한다. 끝낼 수 있을지 하는 두려움이 계속 스물스물 피어오르지만…

박사과정 지원은 데드라인이 다가오는데 제안서 아이디어도 아주 뜬구름 잡고 있다. 최소 이틀은 할애해서 써야한다는데, 애가 있는 나는 사흘은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지원하지도 않고 나중에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방지하기 위해 지원은 하지만, 내가 박사과정을 할만한 지구력이 있는 깜냥인지에 대한 의문때문에 자꾸 망설여지는 부분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아주 훌륭한 박사과정생만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뭐 떨어지더라도 해보지도 않고 신포도 타령하는 건 후회할 일임일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지원은 해봐야한다.

이번 생일이면 만으로 38. 곧 40이 다가온다. 사실 운동 체력으로만 따지면 20대때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운동 없이 사는 한국의 고등학교 시스템과 그 라이프 스타일대로 그냥 살았던 내 대학교와 직장생활 시절 덕에 기저효과가 물론 엄청 큰 탓이다. 한국에서 막판에 시작했던 발레와 (지금은 잠시 육아로 중단했지만) 기타 웨이트 덕에 지금 체력이 더 좋은데, 이제는 운동을 안하면 근손실도 눈에 띄게 느껴진다. 앞으로 애 키우면서 힘 쓸 일도 많고 할 수도 있는데 체력을 좀 더 다져야겠다. 익숙해졌던 웨이트들의 무게도 조금 늘려야지 이제는 같은 무게로는 근육이 다져지지 않는 것 같다.

지금 필요한 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뭐든 꾸역꾸역 하는 거 같다. 다른 나라에 와서 새로이 뭔가를 계속 개척해야 한다는 건 힘들기도 하지만, 사실 어디에 살아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을 계속 해야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지금의 현실은 어찌보면 특별한 것도 아니다.

아… 생각은 많고 뭔가 하는 건 적다. 제일 열심히 하는 건 드라마 빈지워칭이다. Rejseholdet라고 범죄수사 드라마인데… 재미있다. 느는 건 범죄 수사 어휘…

생각은 많고 행동은 적고 정신상태는 뒤죽박죽… 글도 갈수록 정리되지 않는다. 그냥 기록하려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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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0분의 하늘. 일조시간은 이미 거의 최고로 긴 상태에 다다른 것 같다. 하지를 거치고 나면 이제 다시 짧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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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받고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뭔가가 엄청 재미있으니까 반복하는 거겠지. 중간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되면 짜증을 팍 낸다. 감정 통제가 불가능한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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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역 접종은 쉬웠다. 이때만 해도 접종할 지 모르고 자다 깨서 마냥 좋아하던 하나. 그래도 끝나자마자 건포도 한 팩에 즐거워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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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센터에 있던 아이 놀이터에 작은 집 모형이 있는데, 내가 그 안에 들어갔더니 하나가 좋아하며 들락날락하더라.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하나. 옷은 다 젖고…

Hvor er det svært at stille spørgsmål!

Det at prøve noget nyt er altid svært, selv om den nye ting i sig selv er sjov at prøve. Hvis den er nogen vigtig i ens eget liv, bliver den endnu svær.

Nu skriver jeg mit speciale, og det er ret stressende. Jeg ved ikke om, jeg gør det rigtigt eller ej. Lige nu er det tidspunkt, hvor jeg snakker med min vejleder om, hvad, jeg har skrevet, er ok nok, eller jeg skal gøre det anderledes.

Jeg er altid bange for at stille spørgsmål, måske er det, fordi jeg er fra Sydkorea, hvor det underforstået ikke er acceptabelt at stille dumme spørgsmål. Nu ved jeg godt i mit hoved, at der ikke er noget dumt spørgsmål, men stadigvæk bliver jeg lidt tøvende over for at stille spørgsmål. Inden jeg spørger, tænker jeg over om spørgsmålet på en måde som, ‘Skulle jeg ikke allerede vide det, jeg skal spørge nu, og således skal jeg læse først istedetfor bare at spørge?’ Efter nogen stykke tid opdager jeg næsten altid, at det var dumt ikke at spørge nogen, feks. min vejleder, lige med det samme, da jeg ikke forstod det, jeg var nødt til at forstå.

Det at øve mig at stille spørgsmål er en konstant og måske evig proces for mig. Hvor er det svært!

16개월이 다 되어가는 하나와 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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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 있으면 하나는 16개월이 된다. 키는 대충 재도 80센치니 그보다 큰 것 같고 (어느새 갑자기 훌쩍 컸다.) 몸무게도 10킬로가 거의 다 되는 것 같다. 키에 비해 몸무게가 천천히 느는 거 보니 이제 아기가 아니라 유아기로 들어서는 것이 이에서도 느껴진다. 어금니도 왼쪽 두개는 확실히 나고 오른쪽도 윗니는 터지기 시작해서 하얀 게 보이니 그 아랫니도 금방 열릴 거 같다.

긴 음절의 말은 톤과 소리만이긴 하지만 대충 흉내도 내고, 두음절 단어는 처음 듣는 단어도 곧잘 따라 하곤 한다. 처음 강아지 소리를 듣고는 자기만의 소리로 “앞앞!” 이렇게 표현하더니 모르는 동물은 무조건 앞앞으로 표현한다. 강아지는 멍멍이라고 알려줬더니 멍멍이라고 하고, 고양이는 먀옹이라고 하고, 새는 처음에 집에서 닭 사진을 보면서 가르쳐걸 기억해서인지 무조건 꼬꼬 라고 하더니 각각의 새를 보고 가르쳐 준대로 까마귀를 보면 까까라고 하고 비둘기는 꾸꾸라고 한다. 덴마크어로 아니오의 뜻을 가진 Nej는 아주 여유있고 시크한 톤으로 말해서 나와 옌스를 웃게 하고, 예는 아직 말하지 못하지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서 표현하는 덕에 의사소통이 아주 수월해졌다.

자기 이름을 엄청 좋아하고, 엄마와 아빠는 한국어로만 말하는 하나지만, 그 외에 말은 고맙다는 tak, 만날 때, 헤어질때 하는 인사 모두 Hej, Hej hej, Bye bye 모두 덴마크어와 영어이다. 소방차 소리를 바부바부 내는 걸로 봐서도 역시 덴마크어가 우월한 입지를 차지한게 느껴진다. 보육원을 다니면서 덴마크어 노출이 압도적이 되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하나에겐 항상 한국어만 쓰고, 옌스가 꾸준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식사시간에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 등이 앞으로 하나의 한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논문은 꾸역꾸역 쓰고 있다. 우선 긍정적인 것은 가장 중요한 모델링의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론도 더 쓸 게 있고 몇가지 테스트할 것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델링의 결과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게으름이 뚫고나와서 나를 갑자기 퍼지게 하는 사태를 만들지 않는 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조심하는 부분이다. 교수가 덴마크 환경경제 컨퍼런스에 내 논문 요약문을 제출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왔다. 요약문 쓰는 거는 조언을 해줄 수 있으니 한번 제출해보라길래, 우선 알겠다고 했다. 받아들여져서 발표를 하게될지까지야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기회를 갖는 자체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옌스 말로는 논문 주제가 재미있기도 하고, 우선 모델링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으니 내보란 것 아니겠냐면서,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한다. 박사과정 지원도 한달밖에 안남았으니 이 또한 해야하는데… 뭔가 할 일은 많고 정신은 없다. 지난주까지 2주동안 하나가 아파서 모든게 또 정지해있는 상태였는데, 여름 동안 큰 탈 없이 지내서 논문을 잘 진행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 와중에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는 게 하나 있다면 덴마크어다. 우선 덴마크어 시험 중 읽기는 만점이 나왔다. 쓰기 결과는 나와봐야 알지만, 쓰기 점수는 모의고사를 통해서 꾸준히 올려오기도 했고, 배운 걸 잘 소화해서 시험을 본 만큼 큰 변동 없이 10점이나 12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말하기는 그 어느 것보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많이 연습하고 있는 것이고, 이제 일상생활에서 영어 없이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만큼 upper-intermediate에 해당하는 B2 레벨을 인증하는 PD3 시험은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물론 영어만큼 덴마크어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젠 덴마크어가 더 자연스럽고, 사고의 언어 1순위가 덴마크어가 된 만큼 갑자기 덴마크어에서 영어로 전환하려면 자꾸 덴마크어가 튀어나오려 하는 정도이니 말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생각하는 것만큼 낭비야 없지만, 그냥 조금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그랬다면 지금의 가족은 내 인생에 없었겠으니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기도 하네.

이제 딴 짓 그만하고 다시 논문을 써야겠다. 그런데 어쩌다가 내가 이런 길로 걸어왔을까? 참 인생은 살고 볼 일이다. 끊임 없는 놀라움의 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