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돈벌이

아이가 나가서 돈을 벌어왔다. 자기가 갖고 있던 장난감 몇개를 친구와 함께 길에서 판 결과다. 두 아이가 햇볕이 따사로웠던, 햇살 없이는 쌀쌀할 수 있던 가을날 길가 잔디밭에 앉아 물건을 쫙 늘어놓고 판매한단다. 하나는 대여섯개 들고 나가서 네개를 팔았고, 다른 친구는 아주 한보따리 싸갖고 나가서 비슷하게 판 것 같다. 소득은 35크로나. 7000원을 벌어왔다. 사실 누군가에게 팔지 않는다면 멀쩡한 것은 골라 내가 적십자에 기부를 하기 때문에 이건 가정경제 차원에서도 정말 공돈이 생긴 거 같은 셈이다.

누구한테 팔았냐고 물어봤더니 이웃집 조금 어린 여자애가 하나 사갖고 나머지는 좀 더 몇집 떨어진 곳에 산 할머니가 사셨다고 했다. 뭐하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하나가 “안쓰는 물건 팔아요. 할머니는 손주 있으세요?” 하고 여쭤봤단다. 손주가 있다는 대답에 “손주한테 필요한 거 사주세요. 선물 줄만한 거 있나 보세요.”라고 제안을 했는데 “손주들이 다 너무 어른이라 애가 있어서 손주한테 사줄만한게 없네.”는 거절을 또 들었단다. “그럼 증손주한테 사줄 거 보시면 되겠네요!” 라고 말씀드리니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이것저것 사가셨다는 것이다. 결국 그 한 손님 잘 잡아서 둘이서 70크로나어치를 팔았단다.

어느새 아이들이 커서 나름 흥정도 하며 물건을 파는 것이 어찌나 귀엽고도 대견하던지. 앞으로 더 자주 한다더라. 그런거 하고 싶다고 노래를 물러도 하라는 말 외에는 뭔가 행동을 보이지 않는 엄마가 그닥 도와줄 거 같지 않으니 알아서 우물을 파는구나. 그래. 목마른 자가 우물을 직접 파야지. 그렇게 크는 거란다.

선불생활

파트너때문에 해외로 이주를 하는 사람들은 파트너에게 행정 등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의지할 수 있다. 그걸 누군가가 외국인 카드를 쓴다고 표현하던데 재미있는 표현이다.

나는 외국인 카드를 써본적이 없다. 집안의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행정 부분은 업무를 협의해서 분담하고 나 행정 관련은 내가, 남편 건 남편이, 아이 것은 주로 내가 하니까.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도움받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의존이라 생각해 내가 꼭 처리하리라 마음먹을 것 때문이겠지. 인도와 덴마크 주재 정착 초기에도 동료의 도움을 최대한 받지 않고 처리하려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는지 내가 직접 아는게 힘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 사용하는 힘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내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말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힘.

어쩌면 내가 불안이 높은 사람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서류나 이런 것 처리에 있어서 다소간의 강박이 있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서류를 낼 땐, 이게 처리가 안되면 그 다음이 여러가지로 꼬이는 일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정과 절차를 세세히 이해해야 하고 그와 관련된 서류를 완벽히 준비해야 하며, 후속조치 등에 대해서도 미리 숙지해둬야 불안함이 없어진다.

누구한테 물어봤자 대부분 자기한테 해당되는 내용만 자세하게 읽어보고 나머지는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 사람과 다른 사항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고, 담당자에게 물어봤다한들 같은 이유로 뭔가를 빠뜨리고 이야기해주거나 할 수도 있다.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기에 법령과 시행령 등을 세세하게 읽어보고 정확히 확인해야 할 경우 서면으로 질의한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물어봐도 자세히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 나와 준비해야 하는게 다는 사람에게 괜히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줄 가능성도 있으니까.

누군가가 자연분만을 선불, 제왕절개를 후불이라 하더라. 고통이 다 따르기는 하는데, 그게 앞에 오느냐 뒤에 오느냐 하는 걸로 말이다. 외국인카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선불하는 거 같다. 모든 걸 스스로 해둔다는 것은 앞으로 새로운 걸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뭘 어떻게 봐야 하는지, 뭘 처리해야하는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수월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옳고 그른 건 없다. 그냥 나는 선불 생활이 좋고 편하다.

아이와 단둘이 데이트

아이와 단둘이서 하는 데이트들이 즐겁다. 아무래도 아빠도 같이 있으면 어른의 대화에 아이가 중간중간 엉뚱한 주제로 뛰어드는 것이 흔한 패턴인데, 둘만이 있으면 우리 둘만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어서 아이의 만족도가 높아져서 그렇다. 그래서 아이는 간간히 엄마랑 단둘이, 또는 아빠랑 단둘이 하는 데이트가 제일이라고 말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2킬로미터짜리 달리기를 하고 왔다. 아이들은 완주시 메달을 준다고 하니 아이는 기뻐서 참여한다고 했다. 평소 달리기를 따로 하지는 않지만 놀이와 운동으로 체력이 다져진 아이라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참여했는데, 너무나 즐겁게 달리고 왔다.

Nordhavn은 새롭게 개발된 지역인데, 이제 상당부분 완료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지역에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사생활 관점에서는 좋지는 않겠지만 그것 빼고는 살기 좋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다가 너무 가깝다는 점은 여름의 소음문제와 해수면 상승과 태풍시 침수 피해 등을 고려하면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니겠지만.

줄이 길까 싶어 아침 일찍 들러 참가자 등번호를 받아서 산책을 했는데, 도착할때까지만 해도 추적추적 제법 많이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정말 아름다운 아침 산책길을 즐길 수 있었다. 항구의 자락에서 볼 수 있던 풍력발전단지의 평화로운 모습, 정갈하게 정돈된 길 구석구석들, 바다에 설치된 수영시설, 간간히 들리는 이들의 첨벙하는 입수소리,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작은 웅성임, 혹시나 콩고물이 떨어질게 없나 해서 가까이서 걸어다니는 참새들, 해수면에 반사되어 흩어지는 금모래 같은 물결의 반짝임, 선선한 바람이 머리를 날리는 감각, 그전에 본 적 없었던 각도의 코펜하겐과 하이라인. 그 모든게 너무나 아름다웠고, 온 몸으로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뒤이어 달리기 전 행사장에 설치된 놀이시설을 조금 즐기고 나서 사람들과 같이 몸을 푸는데 그 흥겨움. 거기서 오른 텐션으로 2킬로미터를 가볍게 뛰었다. 처음부터 로케트처럼 튀어나가고 싶은 아이를 진정시키며 페이스 조절을 했는데, 중간중간 그렇게 튀어나가버린 아이들이 힘들어서 못뛰고 속상해서 울고 그런게 보였다. 즐겁게 마무리하고 돌아와 조앤더 주스 한잔으로 마무리.

전날 클라이밍 힘들게 하고 나서인지라 몸이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는 늘어져 한시간 낮잠을 잤지만, 아이에게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남은 달리기였다. 매년 계속 가자고 하는 거 봐서 이제 여러 달리기에 같이 참여해야겠다 싶었던 하루.

제2외국어 삶의 피곤한 순간

모국어도, 제1외국어도 아니라 성인이 되어 배운 제2외국어로 일해야 하는 외노자라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언어에서 오는 피곤함이 있을 것이다. 덴마크어로 일한지 5년정도 되지만 지금도 갈 길이 멀다. 제2외국어로 일하는 외노자는 언제 어떻게 피곤함을 느끼는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모국어로는 그냥 들어도 귀에 쏙쏙 박혀서 거의 토씨까지 틀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제2외국어로 들으면 듣는 순간은 다 알아들었는 것 같은데 뭘 들었는지 기억이 안난다던가, 전체적인 맥락은 이해가 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거나, 새로이 접하는 단어지만 그 상황에서는 알아들었는데, 그걸 다시 말하려면 새로운 단어가 기억이 안나서 돌아돌아 설명을 해야한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즉 일을 하는 맥락에서 컨텐츠와 관련된 뇌의 활동 외에 언어와 관련된 뇌의 활동이 동시에 활성화가 되어야 하는데서 오는 피곤함이 있다. 퍼포먼스도 컨텐츠만 갖고 뇌가 프로세싱을 해야할 때보다 떨어질 것이고. 어떤 자료를 읽고 숙지해야 하는 상황, 회의에서 듣고 토론해야 하는 상황 등에서 상황별로 다른 로드가 걸리고, 언어적 로드가 없는 사람에 비해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모국어로 대화를 할 때면 경험할 일이 없으나 제2외국어로 생활하면 경험할 만한 것으로 또하나는 어느 날은 듣기도 더 잘되고, 말도 잘 나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날은 재차 물어야 하거나 점심시간의 대화중 놓치는 게 많고 단어도 딱딱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다는 것이다. 모국어로 느낀 적이 없는 부분이다. 피로도가 원인일까? 뭔지 모르겠다. 그냥 내 덴마크어가 퇴보했나 싶은데, 또 막상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 모습이 느껴지기에 그건 아니고. 실력을 그래프로 그리자면 우상향으로 진보하는 트렌드를 보이지만 일정한 상승이 아니라 그 트렌드 안에서 세부적 그래프는 상승장과 하락장을 경험하는 모양이다.

여전히 토론은 상당한 집중을 요한다. 사실 우리말로도 토론은 집중을 요하는데, 제2외국어 두뇌까지 가동을 해야하니까. 그나마 발전된 것이라면 이제는 생각 안나는 단어는 영어로 생각이 난다는 데 있다. 따라서 혹여나 단어 하나에 딱 막혔을 때 얼어붙지 않게 된다. 과거엔 “영어로 말해도 돼”라는 말이 제일 부담스러웠던 것이, 하도 두뇌가 덴마크어를 돌리느라 풀가동이 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국어 외에는, 또는 한국어 단어로도 기억이 안나고 그냥 백지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의 중구난방 정말 다양한 주제의 대화는 가장 난이도가 높다. 농기구, 건자재, 기계, 사냥, 펜싱, 승마, 집 레노베이션과 관련된 프로세스, 여행, 각 나라와 도시의 덴마크어식 지명, 요리, 문화, 역사, 철학, 각종 인물의 이름, 정치. 두서없이 늘어놓은 이상으로 정말 다양하고 예측불가하다. 그리고 테이블이 양쪽으로 나뉘어 대화가 두갈래로 진행되면… 이제 헛소리 안하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자체로 다행이다. 간혹은 주제가 바뀌고 바로 캐치업이 안되서 1분정도 가만히 듣고 있으면서 파악을 해야할 때가 있다.

대화중 숙어 사용도 이해도를 떨어뜨리는데 기여한다. 어제 유난히 숙어가 많이 인용되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정말 추론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회의가 어땠냐는 물음에 완전 모자와 안경이었다는 것이었다. “모자와 안경?” 그게 뭔 뜻이야 하고 물어볼 수밖에. 엉망진창이었다는 뜻이었다.

간혹 딴소리를 하게 된다. 우리 뇌는 아주 놀랍게도 필터링을 잘한다. 대충 한두단어 안들린 것이 있다 했을 때, 그게 대세에 지장이 클 것인지 아닌지를 자체적으로 신속 판단해낸다. 그런데 이 자체신속판단이 항상 정확한가 하면 아니다. 따라서 간혹 그게 의미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단어인 경우 딴소리를 하게 된다는 것. 귀가 안좋은가 하면 한국말은 잘 들리는 거 보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귀를 탓하고 싶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안되네.

여러모로 피곤하게 하는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길을 희미하게나 밝혀주는 희망의 빛줄기라 하면, 내가 회의에서 이야기를 할 때 긴장하지 않게 된 것, 타인의 얼굴 속에 스치는 “음?”하는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 피곤하지만 덴마크어 사용이 내게 열어준 새로운 기회와 이해의 폭을 생각하면 어찌 불평할소냐.

국민연금도 덴마크 국세청에 신고해야…

영주권을 따면 영주권을 딴지 5년안에 국민연금을 일시반환금의 형태로 찾을 수 있다. 십년이 넘게 부었지만 채 4천만원이 안되게 부었던 국민연금은 굳이 만기까지 묵혀둔다 해서 덴마크에서 국민연금을 받을 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가입기간 합산이니 뭐니 해도 차라리 내가 그돈을 가져와서 주식투자를 하지 싶은거다.

지금 직장에서 근무한지 3년이 되서 앞으로 4개월 정도 있다가 영주권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국세청에 관련해서 미리 질문을 던져보려고 그전에 관련 규정을 대충이라도 찾아보려고 검색을 하다보니 이런 걸 찾게 되었다. Har du husket at fortælle SKAT om din pension i udlandet? 음? 국외 연금을 덴마크 국세청 SKAT에 신고했냐고? 거의 십년전에 유선으로 질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금 타는 게 없는 연금이면 그냥 둬도 된다고 해서 그냥 묵혀두고 있었는데 올해 새로운 법이 올해 발효되어서 2024년 7월 1일까지 별지의 양식에 따라 신고를 해야한다 . 어머나. 별지양식인 Erklæring L (blanket 49.020) 을 읽어봤는데, 이게 국민연금도 해당되는지가 애매해서 국세청에 질의했다. 모르는 건 담당관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니까. 국민연금의 납부 방식, 나중에 지급되는 연금의 형태 등과 내 납세의무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장황히 곁들인 메일을 보냈더니 신고를 하란다. 일시반환금으로 받는 걸 여기 연금으로 묶어서 지금 찾지 않는 것으로 해 납세 시점을 은퇴시점으로 돌릴 수 있는지도 물었더니, 그건 신고서 제출하면서 추가질의하란다.

신고서를 다운받아 찬찬히 읽어보며 작성을 해보니, 이런 국민연금의 경우 매년 신고할 필요는 없고 한번 신고했다가 나중에 지급사유 발생 등으로 변동이 생기면 그때 신고하면 되는 거였다.

원래 법이 있으면 그게 내 나라든 아니든 꼼수를 부리면 안되겠지만, 타국에 있으면 더욱 더 신경쓰이는 게 거주의 권리와 관련해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내 신고의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신고의무를 게을리하는 경우 벌금형 또는 1년 6개월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고, 공무원은 특히 불법행위를 하지 않아도 윤리강령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면 직위해제될 수 있어 더 유의해야 한다. 나는 공무원이니까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최악의 경우 일시반환금을 그해 소득으로 모두 인정받아 다 과세하고, 이걸 내가 원하는 때 언제고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최선의 경우는 이를 모두 연금으로 묶어서 투자는 내가 원하는대로 하되 이를 연금에서 빼는 타이밍에 그 빼는 금액만큼을 그해 소득으로 보아 소득세 산청에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최고 높은 소득세인 topskat를 내지 않고 있는데, 저걸 한번에 소득으로 산입하면 그해에는 topskat을 내야 해서 이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결론은 신고 자체는 까다롭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한번 하면 일시반환금 찾는 거 아니면 나중에 연금탈때까지 신경쓸 필요 없다는 점. 그리고 이제 7월 1일부로 신고 안했으면 불법이라는 것.

뿌리내리는 민들레 홀씨

지금의 직장에 출근을 시작한지 거의 만 삼년이 되어간다. 이달 말이면 삼년. 잠깐 십개월 다른 길을 걸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지금 직장을 포함해 중앙정부에서 일한지 벌써 만 사년반이 넘었다.

2019년 초의 나는 지금의 모습과 참 많이 달랐다. 덴마크 중앙정부의 수평적인 듯 미묘하게 숨겨진 위계질서와 같은 문화와 맥락을 잘 읽기 힘들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직장내 행동양식은 이곳에선 당연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행동양식은 나에게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랐고 타인의 입장에서 나를 찾았다. 나에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어학원을 졸업했고, 일상에서 영어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해서 법령을 읽고 문서와 보고서를 척척 쓸 수도 없었다. 정말 배울 게 많았고 위축되는 순간도 그래서 많았다.

다행히도 이제 나는 더이상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를 찾지 않는다. 덴마크에서의 직장생활은 어학원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달까? 일을 하기는 하지만 언어도 실습하며 다니는 기분. 정말 이 직장이 나를 많이 키워줬구나 싶다. 월급 줘가며 말과 문화도 가르치고 일도 가르치고.

새로운 제도 도입이 되는 것과 관련해 그 근간이 되는 모델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관련 자료를 읽고 검토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이런건 술술 읽히는구나 싶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보고서를 써도 더이상 큰 난도질을 겪지 않기 시작했고, 어디서 뭔가 이야기를 하는게 긴장되지 않으며, 어떤 자리가 어떤 순서로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이 가고, 거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눈치보지 않게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난 한국인이지만 이제는 덴마크 시민으로의 정체성도 커지고 있다. 덴마크인의 배우자이자 어머니로, 이 사회의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데에 참여하고 있다. 더이상 외국인으로서의 내가 어떤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더이상 객관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어렵게 덴마크 사회와 문화에 통합리 되었다. 아무래도 자격이 되는 타이밍에는 덴마크 국적을 취극한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진짜 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은 여기가 되었으니까.

정작 내 나라에서 뭔가 소속감을 못느껴 뿌리를 못내리고 바람에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가 덴마크에 와서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는 모양이다.

내 사랑 옌스

발레수업이 갑자기 취소되었다. 선생님이 아프시다고 한다. 발레학교가 방학을 했을 타이밍에 보강을 하신다고 메세지가 왔길래 이 저녁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클라이밍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발레 수업을 찾아볼지 등등. 결국은 집에서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온라인 바수업을 유튜브로 보면서 조금 움직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스트레칭이나 좀 하려고.

홀로 삼십분 정도 바워크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나를 재우고 내려온 옌스가 소파에 앉아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왜그러냐고 물어보니, 아름다운 아내가 앉아서 스트레칭 하는 모습이 보기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발레용 워머인 onesie 입고서 머리 질끈 묶어 똥머리를 하고 큰 헤드폰 끼고 있는 와이프가 뭐 그리 이쁠까 싶지만, 그렇게 봐주는 남편이 있어서 행복하다. 그러면 스르르 웃음이 흘러나오며 사랑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연애와 관련해서 자존감이 낮아서 항상 연애가 힘들었던 나에게 온전히 사랑받는게 어떻다는 것인지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었던 옌스. 우리가 함께한지 3개월이면 십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항상 일상 속에서 그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충만해진 감정을 나도 돌려주고 또 받고… 처음과 같은 설렘은 흐려졌지만 지금도 간혹 차려입은 옌스를 보면 마음이 떨리기도 하고, 옌스도 그렇다고 한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옌스를 만나 가정을 꾸린 것이다. 살면서 어떤 풍파가 있을지야 지금으로선 모르겠지만, 이 타국땅을 내땅으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가족의 뿌리를 여기에 잘 내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 옌스 덕임이 틀림없다.

반덴마크인

덴마크 생활이 십년을 넘어섰는데, 어느날 곰곰히 생각해보니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생활한 나라, 한국/인도/덴마크 중 덴마크 생활 기간이 가장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부하느라 정신없었던 유년시절과 학부시절에는 사회에 대한 큰 관심이 없던 시기였기에 그 이후 진정한 의미의 성인기의 가장 큰 부분을 덴마크에서 보낸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큰 일탈 없이 청소년기를 보내느라 소위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불리게 만드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을 새가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나를 분리해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만으로 서른이 넘는 시기에, 그것도 인도에서 경험했다. 집에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는 것, 외박하지 않는 것 등 처럼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지만 전혀 위법할 것이 없는 것들 같은 거 말이다. 엄마는 처음 겪는 딸의 반항에 꽤 충격을 받으셨고, 그때서야 처음으로 나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는 첫발을 내딛으신 것 같다. 경제적인 것부터 여러가지 면에서 부모님과 분리를 이뤄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한국으로 돌아가 2년반을 지내고 덴마크로 나와 그대로 눌러앉아버렸다.

나는 다소 관찰자와 같은 시선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내 모든 판단의 준거는 유년기를 통해 내안에 깊숙히 심어넣은 한국문화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덴마크의 가치관과 문화가 그 위에 덮어쓰여지며 어느게 아주 오래된 가치관인지 아니면 새로 덧씌운 가치관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관찰하고 그 관찰한 결과를 주변인과 나누고, 그에 대해서 그들의 설명을 듣거나, 내 관찰을 근간으로 해서 벌어진 토론을 보며 새로운 인풋을 얻고 추가적으로 관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한다는 것은 대충 우리가 동질적인 집단에 속한 사람이니 일종의 편향된 문화적 인풋을 얻게 된다는 뜻이기도 할텐데, 그 안의 세분화된 다양성 속에서 나름의 다양함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경험속에서 관찰자의 시선은 서서히 참여자의 시선으로 바뀌어가는데, 이러한 동화과정이 매우 은밀히 일어나기에 나또한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후 문득 내 가치관이 더이상 한국인의 평균의 가치관에서 많이 멀어져있음을 느끼데 된다.

현지어를 잘 하는 것은 이런 동화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언어가 매게가 되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언어야말로 이 문화의 가장 중요한 매개이자 문화와 문화의 역사가 담겨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언어를 통해 외부인의 시각으로 번역되지 않은 현지의 날것을 직접 흡수할 수 있고, 그렇게 흡수할 수 있는 스펙트럼 자체가 워낙 넓어서 외국어의 안경과 스피커를 통해 보고 듣고 흡수할 수 있는 양이 다르다.

그래서 꼭 현지어를 잘 해야 하냐? 그런건 아니다. 현지어 안하고 영어만으로도 살 수 있는 나라이니까. 하지만 영어만으로는 내가 주체적으로 사회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기에 이방인으로서 살 수 밖에 없는데서 오는 단점이 존재한다. 오래 살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추측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사실과는 다른 경우도 많고, 그래서 오해도 하고, 답답도 하고, 불만도 쌓일 수 있다. 현지어를 잘 하게 되고 그걸 활용해 문화를 이해하고 그 사회에 동화된다는 것은 내가 더이상 나를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게 된다는 것이고, 그건 나에게 편안한 마음을 가져다준다.

나는 내가 한국인이기에 남과는 다른 관점을 갖고 이 사회를 바라보고, 또 그래서 제공할 다른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그건 그거대로 장점을 인지하되, 내가 이방인이기에 움직임이 조심스럽거나 의도치 않게 오해를 한다거나 이런 게 없어졌고, 그게 좋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생기는 불만이 없어졌고, 그냥 어느 사회에나 있는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 덕에 볼 수 있는 방송이나 책이 늘어나는 점도 장점이고, 덴마크어가 늘면서 영어가 간접적으로 늘기도 한다. 영어와 덴마크어가 역사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많이 주고 받은 탓이다. 덕분에 뒤늦게 왜 어떤 표현이 특정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어원을 알게 되면서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하지만 일상을 현지어로 완전히 전환한다는데는 또 다른 이면이 있다. 내 아이에게 내 뿌리를 잘 설명해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음식 문화 이외에 아이가 한국문화를 나에게서 크게 느낄 일이 없다. 아이가 두돌이 되기 전에 우리의 언어가 덴마크어로 서서히 교체가 이뤄졌으며 아이에게 한국어는 조금 알아듣는 외국어, 엄마의 말 정도로만 남게 되었다. 다행히 한글학교를 통해 요즘 한국어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배우고, 한국의 문화도 조금이나마 체험하기 시작했다. 덴마크인 선생님을 통해 이뤄지긴 하지만 이게 가능하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

아마 앞으로 십년정도 더 살고나면 반덴마크 사람이 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쯤 되면 한국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가도 뭔가 낯설어 집에 가는 것 같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시민권 취득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한국의 가족을 넘어서서 그게 나를 한국과 이어주는 끈처럼 느껴지는 것 때문인 것 같다. 시민권이 없어도 덴마크를 내나라나 다름없이 느끼고 있는 지금, 굳이 시민권으로 나를 묶지 않을 필요는 없다고 느끼기도 하고. 그때쯤에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새로운 블로그: 덴마크어 공부

각자 일터에서 자기계발의 목표가 있듯이 나의 자기계발 목표에는 덴마크어 실력 향상이 있다. 이 목표라는게 누가 정해주는 건 아니고, 내가 제안하고 상사가 받아들이면 그게 목표가 되는 건데 내 자기계발 목표 몇가지중 하나가 서면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이다. 여기서 서면 커뮤니케이션이라 함은 좋은 보고서 작성 능력을 이야기하는 거다.

덴마크어를 공부한다함은 문법상 틀림이 없는 덴마크어를 쓰겠다는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내용을 타인에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문법상 틀림이 없게 쓰는 건 지금도 가능하지만, 틀릴 확률을 제거하기 위해 어렵지 않은 문장, 확실히 아는 단어로만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건 지루한 일이다. 나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이제는 덴마크어로도 글을 유려하게 잘 쓰고 싶다. 일터에서 그냥 읽고 쓰고, 모르는 단어 사전 한번 찾아보고 스쳐지나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거 같아서 새로운 전용 블로그를 열었다. 나를 위해 연 블로그이지만 나와 같은 여정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또 그에게도 영감과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덴마크를 배워라! 라는 의미를 담아 Lær dansk!로 도메인을 잡고, 블로그명은 ‘나는 덴마크어를 배웁니다.’라는 뜻의 Jeg lærer dansk로 정했다. 관심있을 사람을 위하여 도메인을 공유하자면: https://laerdansk.com/

나에게 맞는 직장 찾기 / 동태적 최적화

나에게 맞는 직장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 같다. 이는 한번 찾았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나와 직장, 같이 일하는 사람들 모두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동태적최적화 문제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 22세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기에 내 인생의 절반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낸 것과 마찬가지이니 직장생활은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리고 깨어있는 시간의 가장 큰 부분을 직장에서 보내니 진정 중요한 요소이다.

나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기까지 여러번의 실패하는 관계를 토대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겪는다면, 직장도 나에게 맞는 직장을 찾기까지 여러번의 실패를 겪어야 하는 것 같다. 실패가 쓰린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서 다음에 더 좋은, 알맞는 선택을 한다면, 그래서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가볼가치가 충분한 길이다. 간혹 어떤 부분에서는 맞는 배우자나 직장을 찾고서야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알게 되기도 하니 운도 많이 따라야 한다. 또 처음에는 안맞았다가 맞게 될 수도 있고, 맞았다가 안맞을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이 직장을 잡았을 때만 해도 전 직장에서 겪었던 내적 갈등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고, 불안한 마음이 내 속 깊은 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잘 하고 싶었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며, 빨리 아는 게 많아져 문제를 척척 해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일의 성격이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니었다. 호흡이 긴 프로젝트들에 새로운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분석해 발간, 발표를 해야했다. 끊임없이 배워야 했는데, 복잡한 것들이 서로 얽혀있어 그 안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허우적대다보니 작은 분야지만 이해도도 조금씩 늘어나고 더이상 빠져죽을 것 같은 느낌은 없어졌다. 누가 나에게 내 프로젝트를 물어보면 답을 하고 나눠줄 수 있게 되었고, 작게나마 도움도 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워낙 방대한 분야이기에 배울건 태산이지만, 물어볼 수 있는 동료들이 더이상 부담스러운 대상이 아니고 지식을 공유받을 수 있고 스파링도 할 수 있는 진정한 동료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내가 하는 일을 진정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고, 회의를 느끼지 않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손에 쥐게 되었다. 내 직장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으며, 내 동료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도 부끄럽지 않게 되도록 성장하고 있으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커리어의 방향을 맞춰가며 발전시켜가고 있으며, 일할 수록 도태된다거나 하면 어쩔까 하는 쓸데없는 불안함을 내려놓게 되었다.

이전에 언급했듯 내가 내 직장과 잘 맞느냐는 것은 동태적최적화 문제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라 이 마음은 내가 변하든 환경이 변하든 하는 과정에서 그 방향이 어긋나면서 바뀔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지금의 상황을 누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