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파 면담 후 가을 산책

2개의 블록 사이의 일주간의 방학. 이 타이밍에 산파와의 면담이 딱 걸려서 편히 다녀왔다. 10월 정도부터 배가 좀 불러와서 자전거 타기를 관뒀는데, 그러고 나니 유산소운동이 크게 부족해졌다. (여기 임산부들은 막판까지 타는데, 난 팔이 짧아서 앞으로 많이 숙여야 하는 탓에 그게 불편해진 타이밍부터 열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해가 쨍하고 날도 푹해 옳다구나 싶어 산책을 겸해 병원까지 걸어갔다 왔다.

가는 길 풍경도 좋고, 적당히 싸늘한 공기가 어찌나 쾌적한지 가을이 온 게 행복한 그런 날이었다. 우리보다 위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 해가 드는 각도가 철따라 급격하게 변하는데, 그러다 보면 같은 풍경도 참 달리보인다. 빛이 드는 곳과 그림자가 지는 곳이 바뀌니 그 전엔 눈에 띄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같은 건물조차 다른 느낌으로 보인다. 늦가을에 들어서면서 나무들도 거의 헐벗기 시작하지만, 아직까지 겨울의 잿빛 느낌은 아니고 햇살도 아직 따뜻한 색감을 보여 마음이 아직까지는 춥지 않다. 작은 하천가를 수북히 덮던 수초들도 추워 시들고 나면 물이 좀 더 많이 보인다.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샛소리가 안들린다는 것이다. 남녘으로 갈 철새들은 이미 날아갔고, 텃새들은 동절기 준비에 바쁜 모양이다. 간혹 보이는 까치나 갈매기가 그나마 여기에 새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활엽수의 낙엽들은 축축하게 젖어 땅에 납작하게 붙어있고, 서서히 분해가 시작되어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밑에 작은 곤충류가 얼마나 바삐 움직이고 있을런지. 그런 낙엽들 아래에는 공벌레가 많더라.

예전 사택에서 살 때, 나무가지를 좀 쳐내고 지친 나머지 일주일 뒤에 낙엽들을 치운 적이 있는데, 그걸 들자마자 쏟아져나온 공벌레들에 얼마나 기함을 했던지. 대학원에 들어와서 생태학을 배우면서야 작은 곤충들의 역할에 대해 알 게 되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공포에서 호기심으로 약간 바뀌었다. 벌레와 흙을 만지기 무서워하는 나를 보고 유럽 친구들이 얼마나 나를 신기하고 웃기게 보던지. 어떻게 환경경제를 공부할 생각을 했냐고. 자연에 대해 너무 모르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굳이 내 변명을 하자면, 난 환경 보호에 관심이 있고 그에 접목해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환경에 대해 잘 모르면 배우면 되니까.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쭉 자란 내가 자연에 대해 잘 모르는게 너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삭막하게 자랐나 싶다.

10월 중순쯤에 위치하는 한 해의 42번째 주가 지나면 비가 안오는 날에도 땅이 항상 젖어있고 축축하다. 그래서 그 시기가 지나면 감자가 다 썩는다고 애들 손까지 빌어가며 감자를 캐던 과거의 역사를 반영하는게 42번째 주에 있는 게 가을 방학인데, 감자방학 (kartoffelferie) 으로도 불린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옌스는 땅이 젖으면 바퀴의 그립이 안좋아져서 미끄러지는 등의 사고가 나기 좋다며 이 계절의 도래를 안좋아하는데, 사실 하늘이 맑을 땐 약간 땅이 축축한 느낌이 난 좋더라. 비온 뒤의 상쾌함과 비슷한 기분을 낼 수 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흙과 풀냄새를 많이 느낄 수 있어서 자연에 한걸음 더 가까워진 듯한 착각을 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산파와의 약속이 10시에 있었어서 그게 끝나고 돌아오던 시각은 약 10시 반. 다들 각기 바쁠 시간인지 주택가인 우리 동네에는 사람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적했고, 하천을 따라 걷는 30분동안 몇 명 만나지 못했다. 자주 놀던 오리들도 다 떠나고. 그래서 이 좋은 풍경을 거의 혼자 느끼는 것 같아 사치를 부리는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산파가 내 배를 여기저기 꼼꼼히 눌러가며 만지고 줄자를 대고 길이를 재보고, 레퍼런스 테이블 같은 것을 찾아보더니 대충 하나는 1.3 킬로 정도이고, 자궁의 크기, 아기 보두 내 주차수에 맞게 크고 있다고 해주었다. 하나가 딱국질 할때마다 오른쪽 아래에서 경련이 느껴지길래 애가 옆으로 누워있다보다고 약간 걱정을 했는데, 머리가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쳤지만 아래 있다며 잘 있다고 알려주길래 안심했다. 다들 이렇게 원시적인 듯한 방법으로 해도 애 낳오면 대충 비슷하게 보는 거 보면 산파들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나도 하나 나오고 보면 산파들의 이런 촉진의 정확도를 가늠해 보려 한다.

임신성 당뇨나 단백뇨 수치 등도 모두 정상이고, 혈압도 극히 정상이다. 다음달에 부모준비 교실이 3차례 있다고 해서 병원 가서 열심히 들어보려 한다. 영어로 된 과정은 한시간 반짜리 한번이던데, 덴마크어로 하는 건 두시간짜리 세번짜리 과정이길래, 옌스와 그걸로 가보려 한다. 그거 알아보라고 자꾸 옌스가 재촉을 해대길래 잊지 않고 물어봤는데, 마침 12월에 하는게 있다고 하니 거기 가서 하라는 것들 좀 해봐야겠다. 외국인에 대해 꾸준히 배려는 하지만, 덴마크 살면서 덴마크어 못하면 손해보는 순간들이 꽤 되는 것 같다.

다음 블록 리딩리스트도 나오고 했으니, 이제 진정한 의미의 방학은 끝났다. 다음주 시작할 과정 준비를 하며 주말을 보내야하겠다. 그 전에 이런 좋은 날씨가 있어서 상쾌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다. 오늘은 점심으로 삼겹살 김치덮밥을 해 먹어야지. 친구가 선물해준 맛있는 집김치로 메인 재료만 스팸, 연어, 삼겹살로 바꿔가며 김치볶음을 해먹고 있는데, 세번째 여는 오늘이면 다 끝날 예정이다. 덕분에 아주 맛나게 먹었네. 좋은 가을날이다.

 

 

나의 덴마크어 학습방법

모듈 6를 꼭 듣겠다는 마음으로 Prøve i Dansk 3 시험을 계속 미뤄왔다. 모의 시험으로만 보면 우수한 성적은 아니더라도 이미 통과할 수 있었던게 벌써 7~8개월 전이니까. 읽기, 듣기, 구술, 작문 시험 모두 10점 또는 12점을 받아야 모듈 6를 들을 수 있기에 완전히 준비될때까지…라는 마음으로 오기를 부려왔다. 6개월을 쉬고 다시 등록했다가 4번 나가고 수업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대학원 공부만으로 정신적으로 벅차졌고, 새로운 선생님은 시험준비에만 몰입해 수업을 진행하는 탓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배우면 시험은 따라오게 되어있다는게 내 시험 공부의 지론이다. 그래야 시험성적과 언어의 수준이 따로 놀지 않게 되어 있으니까. 이런 건 어떻게 표현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런건 시험에 중요하지 않다고, 시험에 복잡한 문장 쓰지 말고 간단히,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게 적당한 문형을 활용해서 쓰라고 하더라. 같은 모듈 5 선생님인데도 그 전 선생님과는 너무 달랐다. 빠르게 의욕을 잃고나서는 안그래도 큰 마음 먹고 가야하는 덴마크어 수업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덴마크어 공부를 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나 하고 싶은대로 공부하다가 나중에 시험 치고 싶을 타이밍 직전에나 학원에 다시 가야겠다.

그래서 하는게 닥치는 대로 방송을 보는 것이다. 드라마, 뉴스, 다큐멘터리 등. 집에 TV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국영방송인 DR (Danmarks Radio)만 시청할 수 있다. 처음엔 자막을 주로 깔고 보다가 요즘은 자막 없이 보기도 한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는 방법이라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본다.

신문 기사를 하나 정해서 필사를 하며 모르는 단어를 찾는다. 예전엔 대충 이해하면서 읽었다 하면 이제는 완전히 이해하려고 읽는다. 짧은 기사야 금방 읽지만, 신문 양면을 꽉 채운 특집기사는 다 읽는데 두시간 이상 걸린다. 긴 기사를 읽는 건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반복되는 어휘가 몇 개씩 꼭 있어서 그런 단어들을 외우기 좋다. 그리고 이런 기사는 일반적으로 중요한 경우가 많아서 덴마크 사회와 정치, 문화 등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영어를 배울 때부터 느낀 건데, 내 발음이 정확해야 상대 말이 들린다. 우리말 식으로 발음을 해석하지 않고, 원어민을 귀찮게 해서 내 발음과 상대의 발음의 차이를 찾아내서 같게 만들면, 상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귀가 트이는 속도의 차이는 내가 얼마나 그 발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물론 그걸 인지해도 발음으로 복제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걸 해내면 귀가 금방 트인다. 그런데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걸 문장으로 엮었을 때 어디에 강세를 두어야 하는지, 어떤 발음은 흘리게 되는지 등도 알아야 그게 대화로 옮겨졌을 때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듯이 어느 나라 말이든 한 음절 음절 똑똑히 발음하며 대화하는 언어는 설령 있다 하더라도 많지 않을테니까.

예전엔 옌스로부터 인터네이션 교정을 많이 받았다. 신문 기사나 책 등을 한 문장씩 읽어가며 강세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걸 잘 못하면 상대가 내 말을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게 엄청 도움이 되서 이제는 새로운 문장을 읽거나 말할 때 큰 오류 없이 문장 속 중요 어휘와 문법적 요소를 찾아 강세를 바르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발음이나 강세로만 놓고 보면 외국인이란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고 할 정도니 이 부분에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알 수 있다.

2014년 8월 중순부터 덴마크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니 이제 2년 3개월이 되었다. 조금 독학으로 찾아 읽은게 5월부터니까 그것까지 치면 2년 6개월. 대충 2년 정도 지나서부터 유럽 언어공통기준으로 중급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그런데, 언어가 중급 이상으로 늘기 시작하면 더이상 타인 주도의 학습으로는 큰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기가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초급이나 중급에서는 조금만 해도 느는 자기의 말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쉽게 할 수 있는데, 고급부터는 미묘한 문장 구성과 내용의 발전, 어휘의 배가 및 활용도 증진, 언어 구사의 능숙함 등에서 늘어나는 거라 하루가 다르게 느는 것을 느끼기엔 어렵다. 따라서 스스로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고 당근을 주지 않으면 꾸준히 하기 참 어렵다.

덴마크어 수업을 쉬는 동안 드라마 보고 띄엄띄엄 신문 좀 읽는 것 외에는 열심히 안했는데, 대학원 슬럼프 3주간의 기간 동안 지난 시즌 재상영이나 새시즌이 시작된 드라마 3개와 저녁 뉴스를 열심히 봤다. 완전 딴짓은 아니라는 자위를 하며. 그런데 그게 듣기에 도움이 되는게 새삼 또 느껴지니까 또 다시 동기부여가 되더라.

마지막 블록은 어려운 과목 하나만 들으면 된다. (옌스가 듣더니, 그거 어려운 수업인데… 란다. 왠지 더욱 오기가…) 그러면 남은 시간엔 덴마크어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공부하려한다. 그리고 옌스가 책 한권을 다 떼서 그 책에 있는 표현을 갖고 이야기 몇 편을 써달라 한다. 대화체 이야기, 서술형 이야기 등 섞어서. 이미 대화체 한편은 썼는데, 옌스도 참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열심히 한다. 이제 간혹 전화통화 하면 한국어로만 대화하거나, 산책 나가있는 동안엔 한국어만 쓰기 등의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예전 내가 덴마크어를 배우던 초기에 쓰던 방식인데, 그게 참 도움이 되었다. 옌스가 나 말고 한국어라곤 쓸 데도 없는 환경에서 완전 독학으로 이만큼 온 게 놀랍다.

서로 주고 받거니 하면서 양쪽의 언어를 배우는 건 즐겁다. 고맙기도 하고. 서로의 언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하나가 보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언제 내 덴마크어가 원어민 수준으로 올라갈 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3년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거라는 낙관을 해본다. 2년 뒤엔 취업시장으로 나서야 하는데, 일할 수준으로는 충분히 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이 들어 영어 말고 제2외국어를, 특히 덴마크어를 배워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게 꼭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주말 손님 초대상

지난 주말 손님을 초대했다. 커플 저녁. 친구의 출산 예정일이 그 다음 주인데, 출산 중 첫째애를 돌봐주기로 했다하여 혹시나 그 날 출산하게 되면 갑작스레 못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준 상황. 실제 그 날 낮에 애가 태어나 저녁 식사가 한시간 뒤로 밀렸으나 운이 좋게도 출산이 빠르게 진행되어 계획한 날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유쾌했던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 네시간 동안 계속된 담소가 즐거웠다. 내 커플 인간관계가 옌스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주로 이뤄지는데, 그 중심이 커플 당사자의 양쪽에 어느정도 분배가 되어야 장기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의 인생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둘의 인생이 만난다는 걸 인간관계 형성에서도 느낄 수 있기에. 특히 내가 이민생활을 해서 그런게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역사, 문화를 공유하는 친구가 있는 건 의미가 또 다른 것 같다. 그래서 국제커플간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중요하다.

후무스와 화이트브레드칩, 크렘프레시와 딜로 버무린 연어를 넣은 핑거파이쉘을 에피타니저로 준비하고, 갖은 채소로 만든 바질페스토 쿠스쿠스 샐러드와 모과드레싱과 토스티드 호두를 넣은 사과 윈터샐러드를 곁들여, 감자/고구마를 밑에 깔고 오븐에 구운 닭다리 요리를 메인으로 준비했다. 디저트로는 옌스의 크렘브륄레와 오렌지 소르베에 이어 달콤한 디저트와인과 칸투치니를 내었다. (주 1회 한잔은 괜찮다니까, 나도 한잔. 😉 임산부의 음주라는 사치는 덴마크니까 가능하다. 흠흠. 좋네.)

배가 터지게 먹을 걸 알고 있어서 아침, 점심 간단히 해결했지만, 여전히 배는 터질 것 같았다. 약간 음식을 여유있게 준비했기에 다음 날 저녁 요기거리가 될 만큼이 딱 남았다.

손님을 초대하면 좋은 점이 사치스럽다는 생각 없이 꽃을 집에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나혼자 보자고 꽃을 사올 때면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날엔 자신있게 한다발 집어들고 들어올 수 있는 것. 그리고 손님이 갖고 오는 선물도 기대가 된다. 그날 같이 마실 와인이나 초콜렛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날과 같이 예상하지 못했던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을 수도 있는데, 집에서 직접 담근 맥주와 김치의 맛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

우리가 아주 즐겁고 유쾌한 저녁을 보낸 것처럼 그들도 그런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앞으로 있을 교류가 더욱 기대된다. 이제 임신도 30주차에 접어들었는데,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해서 장 보고,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까지 하루에 바삐 움직이며 다 처리하는게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임신 전에도 항상 토요일 손님초대 = 빡빡한 일정, 이런 공식이 성립되서 다음 날엔 뻗곤 했는데, 이젠 요령이 늘어 다음 날 뻗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배도 좀 뭉치고 힘들더라. 출산 전까지 누군가를 더 초대한다면 (그러려는 계획이었는데) 좀 더 가벼운 디너를 준비하거나 출산 뒤로 미루든가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준비한 만큼 보람이 있었던 즐거운 저녁이었다.

 

시가와 친정사이, 그리고 행복의 레시피

아무래도 남편네 나라에 살다보니 친정보다 시가와 자주 보게된다. 물론 연락이야 비교할 수 없이 친정과 더 많이 하지만 보는 주기는 시가가 훨씬 잦다. 시부모님과 연락은 주로 문자메세지로 이뤄지는데, 간간히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로부터 메세지를 받고 나도 두분께 메세지를 보낸다. 주로  두분을 수신자로 헤딩에 넣어 시어머니께 문자를 보내드리지만, 혹여나 그게 섭섭하실까봐 시아버지께 보내기도 한다. 전화는 주로 시어머니와 이뤄지는데, 내가 전화를 드리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주시기도 한다. 주기로 보자면 한 2주에 한 번 정도?

옌스는 우리 부모님께 직접 연락을 드리지는 않고 내가 연락을 드릴 때 옆에 있으면 안부를 전하곤 한다. 영어로 아빠와는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아직 옌스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나 없이 부모님과 대화를 할 수 없기도 하고. 아마 이부분은 우리 부모님이 조금 섭섭해 하실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한데, 여긴 약간 자기 부모님에 대한 연락이나 그런건 셀프인 부분이 많아서 딱히 내가 뭐라 이야기하긴 애매하다. 시부모님께 연락 드린 것도 시부모님이 먼저 문자로 연락을 주셔서 답을 하다보니 나도 답을 하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아, 내가 조금 너무했나?’ 싶어 전화로 한 번 연락을 드렸더니 그 다음부터 조금씩 전화로도 연락을 주신 거였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아마 내가 좀 역할이 부족했나 싶다. 양쪽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하면 그냥 내가 잘 지낸다고 양쪽에 전할 뿐이지, 안부를 물었다는 사실을 옌스에게 전하는 건 잘 안했다. 옌스는 누가 전화나 문자로 연락하며 내 안부를 물으면 꼭 나에게 그 사실을 전하곤 했는데. 그런 사실을 듣고 나면, ‘아. 그 사람이 내 생각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걸 떠올려보면, 나도 그랬어야 했었는데… 옌스가 괜히 우리 부모님은 자기 안궁금해하나 싶어하겠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국제결혼이라고 시가와의 갈등이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게 다 똑같다고, 여기도 가족간의 갈등이 다 있는 것이고,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도 집안 따라, 사람 따라, 국가별 문화 따라 갈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렇다. 다행히 난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시댁을 만나 아무런 문제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는데, 항상 그걸 당연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국제결혼은 양가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라 나 뿐 아니라 시가 입장에서도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부모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이 곳의 문화를 내가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는 우리 문화를 시부모님이 받아들일 것이냐 같은 작은 문제부터 그렇다. 옌스는 처음엔 이상할 것 같다고 했지만, 시부모님께 내가 우리 문화를 설명하고 그래도 되겠는지 여쭤봤을 때 시부모님은 매우 좋아하시며 (그런 문화냐고 놀라시긴 했지만) 그러라고 하셨고, 그분들 또한 나를 딸 해인이라고 불러주신다.

시가를 방문해서 집안일을 거드는 문제부터, 시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셨을 때 어느 방이든 편히 드나드시는 것까지 다 다르다. 이건 그냥 나라간의 문화차이에 집안 차이가 겹쳐 있어, 어느 까지가 나라의 문화고 가풍인지의 경계가 모호하고 나로선 구분해내기가 불가능하다. 간혹 내가 생각하는 시가와 며느리 사이의 경계를 넘어선 행동들에 살짝 놀라는 일이 있더라도, 그게 만약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하실 일에서 벗어나있지 않다면 그냥 별 의미없이 받아들이기로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모여 같이 이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기억이 정확히 안나지만 시어머니께서 옌스 옷인가 소품인가를 하나 챙기시려고 침실 옷장을 여셨던 일이 있었다. 순간은 놀랐지만, 나와 같이 살기 전까지는 매우 편히 드나드시던 아들네 집이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아실 것이고, 옷장을 여는 일이 갑작스레 터부시될 일도 아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며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내가 시부모님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내가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과 같을 수 없듯이 시부모님이 옌스나 시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시부모님이 나를 딸과 똑같이 대하지 않으신다 해서, 아니면 옌스 생각을 하시는 것만큼 내 생각을 안하신다 해서 섭섭하지 않고, 섭섭해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런걸 느낀 바도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해도…) 같이 사는 아들이 행복하기를 위해서이든 어떤 이유이든 내가 잘 지내고, 잘 지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어찌 상대에게 기대하랴.

명절 스트레스도 없고, 연락 자주 안한다 타박하는 사람도 없고, 가정 대소사는 다 직접 챙기는 남편이 있으니 시가 문제로는 난 아주 땡잡은 기분이다. 내가 시부모님을 좋아하는 것처럼 옌스도 우리 부모님을 좋아하고, 특히 내년 한국에 방문해 우리 부모님과 지내며 혹여나 엄마와 단둘이 있는 순간이 생길 때에 대비하려고 옌스가 지금 바짝 한국어를 공부하는 걸 보면 참 고맙다.

반대로 옌스는 굳이 그렇게 안해도 되는데 자주 시가에 연락을 하는 나에게 참 고마워한다. 자기 가족은 자기가 챙기는 셀프문화가 자리잡힌 이 곳에서 자발적으로 꾸준히 연락을 하고 가까이 지내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연애 초기에, 자기 가족과 내가 만나는 자리가 몇번 있고 나서,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며, “가족과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에게도 좋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너는 나와 함께하는 것이지, 내 가족과 함께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여나 내 가족과 너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하면 난 네 편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옌스이니 물론 내가 가족과 잘 지내길 기대했겠고, 나도 그들이 이미 마음에 들었지만, 저렇게 이야기해준 자체에 마음이 정말 든든해졌었다.

이런 고마운 감정이 조금씩 쌓이는 걸 모아두었다가 간혹 표현하곤 한다. 그러면 옌스나 나나 모두 이런 것들 당연시 하지 말자며 이런 소소한게 삶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공감하는데, 이런 게 서로 잘 맞는다는게 참 감사하다.

이제 불과 3년밖에 안된 커플이지만 정말 큰 갈등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온 것에 대해 요인을 분석해보자면,

  1. 우선 라이프스타일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 금전감각과 관리, 건강/체력관리, 가족과의 관계, 인생 전반에 걸친 목표와 생활 태도, 집안 관리 등등
  2. 서로에 대해 어떻게 해주길 기대하는 점이 없다거나, 딱히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려는 점
  3. 서로가 하는 행동이 혹여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마음 상하게 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4. 원하는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정확히, 또 솔직히 말하는 것
  5. 상대가 내 요구에 거절하더라도 이유가 합당하면 받아들이는 것
  6. 감사함과 사랑함을 작든 크든 꾸준히 표현하는 것
  7. 침묵 고문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한 바 있다.)
  8. 주말 하루는 꼭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갖는 것 (하나가 태어나면 다른 형태로 바뀌겠지만)
  9. 서로가 각자의 취미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적당한 수준의 개인 공간/시간/자유를 주는 것
  10. 서로를 위해 상대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에 노력하는 것
  11. 우리 문화가 이렇다고 강요하지 않고 서로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것
  12. 우리의 현재 생활와 주어진 것에 대해 당연시 여기지 않는 것
  13. 이런 우리의 삶의 방식을 친정과 시가 모두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

대충 이런 것 같다.

간혹 국제결혼해서 해외에 나가 사니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데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정말 더 힘든 게 될 수도 있다. 실제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커플들도 많이 있고. 사실 옌스를 만나서 한국의 문화 중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겪지 않아 좋은 대신에 한국 문화에서 내게 편하거나 득이되는 것들을 누리지 못해 좋지 않은 점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 생각하면 끝이 없고 서로 자기 좋은 것만 주장하는 것으로 흐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 둘이 합리적으로 판단해 공평하고 서로가 만족스러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늦가을이 물러갈 채비를 하면…

드디어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날이 찾아왔다. 비소식이 있는 내일과 주말동안에 다시 영상으로 올랐다가 그 다음주엔 또 영하인 날들이 지속될 전망이다. 가을이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날이 추워지긴 하지만, 이런 때 내가 덴마크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건, 아직까지 별다른 난방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 난방으로 더워진 공기를 신선하지 못한 공기와 동일시 하며 따뜻한 실내를 참지 못하는 옌스와 살다보니 그런 것도 있지만, 굳이 옌스가 아니더라도 덴마크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춥게 지내는 것 같다. 난방비가 비싼 것도 무시 못하는 요소다. 주택에서 살던 첫 해, 멋모르고 난방하다가 난방비 폭탄으로 몇백만원 낸 기억이 있다. 요금 정산이 전년도 평균을 납부한 후 증감분을 다음해에 사후정산하는 시스템인데, 전 입주자보다 더 많이 썼다가… (사무실과 같은 공간은 난방을 잘 하고 얇게 입고 지내는 게 보통이다.)

집에 있다가 끼니 사이 좀 추워지는 타이밍엔 스웨터를 하나 더 입고, 차나 커피를 한잔 마시고, 그래도 추우면 약간의 맨손체조를 하며 몸을 덥힌다. 스쿼트가 최고.

부활절에 한국 다녀올 때, 미리 엄마한테 모과차를 부탁했었다. 시중에 파는 건 모과 향만 나는 설탕물이니 과일로 담궈달라고. 끝물이라 모과 찾기가 쉽지 않아 많이 담그지 못했다며 주신 작은 두 병중 한병만 후딱 먹고 한 병은 놔뒀다. 아주 얇게 채를 썬 모과를 보며 느껴지는 정성. 오늘 날이 추우니 딱 생각나더라. 모과차. 사실 모과차엔 한과가 딱인데, 한과는 없으니 제껴두고… 그냥 모과차를 끓였다. (샐러드 드레싱에도 아주 유용한 모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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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 땐 역시 모과차. 여름엔 생각이 전혀 안난다.

한국보다 온도는 높지만 습하고 제주도 바람보다 거센 바람이 자주 부는 겨울은 유독 견디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해가 짧고 어두운데다가 4월까지 길게 늘어져서 그럴 거다. 그나마 올 해, 학교내 정원을 가로질러 다니며 2월 초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 꽃을 관찰하며 시간의 변화를 조금씩 느끼다보니 어떻게 봄을 기다릴 수 있는지 나만의 방법을 하나 체득하였다.

다음주는 시험인데, 이번 시험은 다소 망했다. 이미 예감이 온다.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 만큼 사기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무서워서 공부를 자꾸 미루다가, 에이 좀 망치면 어때! 이런 생각이 드니 다시 공부할 마음이 조금 든다. 내일부터 시험 공부 바짝해서 현재 기준으로 가능한 좋은 성적을 받도록 노력하기로 하고, 초조한 마음은 덮어두기로 했다. 최악의 슬럼프에서만 헤어나왔을 때, 한 블로그 이웃분께서 나보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좋은 의미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 하나씩 차근히 해보려고 하라고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맞는 말씀인 것 경험으로도 알고 있고, 그게 맞는데, 그걸 이행하기까지 힘든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 그런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아무튼 너무 늦은 건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보고, 그리고 다음 블록 한과목 잘 해서 석사과정 수업들을 잘 마무리해보도록 해야겠다.

블로그도 이런 슬럼프 속에 접어두었는데, 그간 쓰려다가 접고 저장만 해둔 아이들도 보고 시험 끝나고는 다시 열심히 기록을 남겨야겠다.

임신 7개월차 돌입

오늘부로 임신 7개월차로 접어든다. 거의 2/3선에 다가서는구나.
 
이제 배가 가슴보다 앞으로 나와 헐렁한 옷을 입어도 살짝 눈에 띈다. 이 시기의 자궁은 축구공만한 크기라고 하니, 배가 눈에 띄는 게 이상할 게 전혀 없다.
 
태반이 복벽쪽으로 자리를 잡아 태동을 남들보다 약하게 느낄거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남보다 늦게 느끼기도 했고, 남들 이야기하듯 불편할 정도의 태동은 느끼지 않고 있다. 그래도 그 빈도나 강도는 확실히 처음과 달리 잦고 강해졌다.
 
간간히 자세에 따라 왼쪽 아랫허리나 치골뼈가 아프기도 하고 (살짝 비뚤어진 골반이 이유인 모양이다. 그나마 발레해서 척추측만과 골반의 전반측만이 일부 교정된 덕에 이정도라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수면 자세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번 편한 자세를 찾았나 싶으면 곧 또 그게 아니고, 돌아눕다 보면 앗!하고 싶은 찰나의 통증에 깰 때도 있다.
쉬는 시간 없이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있으면 배가 뭉쳐서 중간중간 꼭 한번씩 일어나 줘야 하는 것도 새로이 생긴 변화다.
또 배에 자주 가스가 차서 의도치 않게 갑작스레 방귀를 뀔 때가 있는데 (ㅠㅠ), ‘아, 이게 내가 원래 이렇게 예의없지 않은데, 하나 때문에 생긴 일이야. 아, 민망해.’ 라며 변명을 하니 옌스가 너무 웃기다며 웃는다. 방귀가 웃긴게 아니라 너무 민망해하며 설명을 하는게 웃기단다. 물론 옌스 앞에서 이런 일이 있었던게 처음은 아닌데, 그냥 아직도 이는 민망하다.
 
내일이면 담당 GP를 임신 초기 검사 이후로 처음 만나는데, 뭘 할 지 궁금하다. 피검사와 자궁 크기와 위치 보고 뭐 대충 그런거 할 거 같긴 한데. 처음부터 좀 부실하게 챙기긴 했지만, 영양제 열심히 안먹고 있는데, 그런 거 답할 때가 제일 부담이다. 먹는 건 열심히 골고루 먹으려 하고 있고, 채소, 과일 이런건 열심히 먹고 있는데.
 
지금쯤이면 하나는 30센치미터 정도의 크기에 600그램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을 것이라 한다. 여태까지는 거의 교과서적인 사이즈로 성장하고 있었기에 대충 실제로도 그정도 크기와 무게가 아닐까 싶다.
 
친구가 선물로 준 루이보스티를 오늘 처음으로 마셨다. 집에 티백으로 몇 개 있을 땐 마셨지만 일부러 사서는 먹게 안되던 루이보스티. 양수를 맑게 또는 풍부하게 해준다고 들었는데, 양수가 충분하다는 검사 결과에 따라 별 신경 안쓰고 있었다. 그냥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냐며. 커피와 달리 차는 수퍼마켓가서 챙겨 사지는 않게 되는 품목인데, 선물로 받은 덕에 끝을 볼 때까지 열심히 챙겨마시려고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마셔야지. 마침 조카가 나의 임신을 축하한다고 만들어준 잔이 생겼으니, 여기에 챙겨 먹어야겠다. 문구는 ‘Tillykke Haein’ (축하해요, 해인숙모: 조카들은 나를 Tante Haein (해인 숙모) 이라고 부른다.)
얼마전 ‘브리짓존스의 아기’ 영화를 보았는데,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간만에 정말 신나고 유쾌한 영화였다. 2편과 달리 억지스러운 장면도 그렇게 많지 않고 브리짓 존스의 다소 성장한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내가 출산을 3~4개월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남 일 같지 않은 장면을 볼 수 있어서 더 그랬던 지 모른다. 출산이 살짝 무서워지기도 했지만, 다시금 엄마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데 싶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사그라들었다.
시간이 잘만 가는구나. 이제 아침 저녁으로 5~10도 정도의 기온 변화가 일어나고 하루종일 세찬 동풍이 부는 계절이 왔다. 이상하게 가을엔 동풍이 자주 분다. (옌스가 카약을 하는 이유로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대해 매일 듣고 보게 되어 이런 이상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달 말이면 썸머 타임도 끝나고, 12월에 들어 겨울이 오고 나면 하나와 만날 날도 후딱 다가와있겠지. 그렇게 싫어하는 겨울도 올 해엔 참 기다려진다.

Modalverber – kunne, måtte, skulle og ville

at kunne bruges

  • om at have mulighed for noget
  • om noget, man har evner for eller har lært

 

at måtte bruges

  • om at have lov til noget
  • om en nødvendighed eller den eneste mulighed

Obs! I denne betydning kan måtte hverken bruges negativt eller i spørgsmål.

  • Der hedder det behøver ikke/behøver:
    • Klokken er ikke så mange, så vi behøver ikke skynde os.
    • Han behøvede ikke at arbejde hårdt for at blive færdig til tiden.
    • Behøver jeg svare på det?

 

at skulle bruges

  • om noget, som er planlagt eller styret af ydre forhold
  • når man stiller forslag
  • om noget, man har læst eller hørt
  • om en handling, der bliver vurderet, efter den er sket

 

at ville bruges

  • når man vil udtrykke et ønske eller en vilje
  • om noget, man ikke er sikker på eller om en forudsigelse om fremtiden
  • om en ikke-virkelig situation (irrealis)

 

Source: Birte Langgaard, 2015. Danske stemmer, pp. 146-147, Gyldendale

시누이의 박사 디펜스 방문기

덴마크의 박사과정은 3년이다. 연구가 늦어지거나 개인적 사정으로 쉬는 경우 이보다 길어질 수 있지만, 우선은 3년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이 설계되어 있고 펀딩 또한 이를 토대로 한다. 시누이는 5~6년 걸렸다고 들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게 어느새 2년 반 정도가 된 것 같은데, 남편의 인도와 러시아 주재에 동반하느라 나를 만나기 얼마 전에 덴마크로 돌아왔다고 했었다. 그러니 중간에 최소 4년 이상 쉰 것이다. 아이 셋의 엄마로 박사 과정을 마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잘 안간다. 물론 오페어를 하나 두고 있었다지만, 애들 픽업하고 생일 있으면 애와 어른 파티 따로 다 준비하고 명절때면 가족과의 모임을 자기네 집에서 하고 등등 정말 수퍼우먼같은 모습으로 산 것 같다.

시누이는 시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고 한다. 실제 시댁에 가 있으면 며칠동안 하루에 최소 한번은 전화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은 통화가 주를 이뤘지만, 간혹 조금 긴 통화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긴 통화 후 시어머니가 시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보는 시누이는 정말 멋진 여성이다. 항상 여름 햇살처럼 빛나는 환한 웃음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따뜻한지.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것도 보면 참 대단하다 싶고. 그렇지만 엄마가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는게 시누이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아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터라 시누이가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박사과정 중간에 해외로 나간 것도 그렇고, 애들을 학교에서 픽업하고 과외활동 하는 걸 지원하느라 같은 연구소에 있는 남자 동료들이나 양육의 문제가 없는 동료들처럼 연구와 커리어에 더 몰입할 수 없는 것 등 말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연구원으로서 모든 일을 잘 해내려고 하는 그녀가 여러모로 힘든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박사과정의 디펜스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퍼바이저와 오포넌트 말고도 연구소 동료, 친구, 가족이 온단다. 그간 고생한 것을 치하하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좋은 선물도 준비하고. 옌스는 이번 주 또 출장을 가 못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몰랐을 땐 그냥 안타까워하는 옌스를 대신해 내가 가야겠다 싶었는데, 안갔으면 영 그랬겠다 싶다. 미리 내가 가겠다고 한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갑을 하나 샀다.

디펜스는 바로 오늘 오후 2시 반. 시내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있단다.덴마크의 가장 큰 병원인 Rigshospital 예방의학과에서 고환암을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곳에서 디펜스를 한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경주용 자전거를 타다가 경추에 금이 가 본홀름에서 이곳으로 헬리콥터 후송되셨던 일이 있다. 이 곳에서 처음 시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번엔 시누이 일로 와보게 되었다. 여긴 시댁 일 아니면 올 일이 없는 병원인 모양이다.

본홀름과 스웨덴을 오고가는 페리 스케줄이 가을부터는 오전, 오후 두편만 있기에 아침 열시에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했다. 지난 두주간 정신없이 바쁘고, 옌스가 출장을 두번이나 가 나 혼자 있었기에 집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다. 사실 정리정돈 잘하고 설겆이 밀린 것 없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기에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는데, 시부모님 오신다니 싹 다 청소를 해둬야겠다. 어제 저녁에 못해서 아침 여섯시부터 일어나 식사하고, 엄마와 페이스타임 삼십분한 뒤, 청소하고 화장 끝내니 딱 도착하셨다. 항상 그렇시듯이 초콜렛이며 잼 등 작은 선물들을 갖고 오셨는데, 이번엔 특별히 아이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길 바라며 시어머니의 할아버지가 어딘가에서 발견하셨던 1700년대의 금화 한닢을 옌스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셨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것을 보다니 덴마크에 살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한다 싶었다.

임신상태의 경과를 포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병원으로 향했다. 점심은 병원의 카페테리아에서 가볍게 하고 컨퍼런스룸으로 갔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와있었는데, 시누이의 45분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 오포넌트 2명의 오포지션까지 총 2시간 30분을 모두 꼼짝없이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임신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은 자리, 딱딱한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던 적이 없던지라 허리도 좀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오랜 기간 연구한 성과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실제 박사과정 디펜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는 것, 오포넌트가 어떻게 디펜스에서 논문에 챌린지를 하는지 보고 듣는 것, 다 흥미로웠다. 나중에 내 석사논문 디펜스에 대해서 감을 잡아볼 수도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애 셋을 돌보며 세개의 manuscript를 성공적으로 저널에 등재하고 (그 중 하나는 세계적인 저널에 등재되었단다.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이었나? 아무튼 옌스가 이 저널을 모르냐길래, 당신은 보건경제학자니 아는거고, 나는 환경경제학자라 모른다고 해줬다. – 환경경제학에서 유명한 저널이 뭔지도 난 사실 모른다. 흠흠.) 1년전에는 Young European Sceintist 상인가 뭐도 타서 유명 컨퍼런스에서 발표도 하고 그랬단다. 뭐랄까, 약간 허허실실한 타입이라 잘 몰랐는데, 그 상 탔을 때 이야기 들어보니 항상 열심히 하고 꼼꼼하고, 성과욕도 많아서 뭐든 잘한다고 한다. 사실 그러니 애들과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게 얼마나 스트레스도 될까 이해도 된다.

발표도 여유있게 잘하고 디펜스도 정말 잘해서 누가 봐도 성공적으로 디펜스를 마무리짓는 것을 보았을 땐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내가 박사학위 받는 것도 아닌데 내가 다 뿌듯해졌다. 이번에 고환암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계량경제학 때 배운 내용들이 회귀분석에 사용된 가정이나 방법론 등을 논할 때 다뤄지는 것을 보며, 이런 내용을 몰랐다면 강의를 들어도 크게 이해가 안되었을텐데, 하면서 배우는 만큼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기도 한 고마운 순간이었다. 옌스에게 잘 끝났다고 문자를 하니, 큰 오빠가 자랑스러워 한다며 축하해주라고 하며 정말 기뻐하더라.

디펜스 결과가 박사학위 수여 커미티에게 모두 만족스러웠다는 발표가 이뤄지며 디펜스가 마무리 되었으며, 대학교 측에서 준비한 리셉션을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프리카델라, 샌드위치, 과일과 케이크 등 먹을 거리 뿐 아니라 여러명의 축사와 시누이의 감사인사말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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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중 시누이네 가족

맛있게 먹으며 시누이네 이웃, 시누이 생일 때 만났던 시누이 어릴 적 친구와도 만났는데, 시누이 친구가 Dong energy에서 풍력발전으로 일을 한다길래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독일인이라는데, 뭔가 정말 반 독일인스럽게 더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했다. 여기서는 뭐하는 지 물어보고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생활 침해가 아닌데, 상대도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듯이 나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는게 익숙해져서 더이상 취조당하는 느낌이 안든다. 처음엔 뭔가 동양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인가 하는 오해에 부담감마저 느꼈는데, 그냥 이들의 관습임을 알게되니 나도 남의 직업 탐방의 시간이 재미있기조차 하다.

내가 덴마크어를 잘 못할 땐 남들이 하는 말 중에 못알아듣는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서 자꾸 질문을 해야하다보니 은근히 위축되고, 시간이 오래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제 뇌가 언어를 처리하느라 물리적인 스트레스도 받는데 덴마크어 학원을 쉰 지난 6개월간 오히려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방학기간 중 덴마크어 드라마를 엄청 보고, 옌스와 덴마크어 사용 비중을 크게 늘려 90% 정도를 거의 덴마크어로 사용한 게 큰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이상 덴마크어로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게 정신적인 부담이 안된다. 그 전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런 자리에 나서야 빨리 말에 익숙해지고 적응할 수 있어!’ 라며 스스로를 밀어붙였다면, 이젠 그런 것 없이 설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편안해지던지.

아무튼 그렇고 나니까 주변인들이 나를 챙기려고 부담감 느낄까봐 불편하던 마음도 없어지고 그냥 편해졌다. 그런 편안함과 함께 이방인의 느낌도 많이 없어지고. (그 방안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지만, 내 눈엔 내가 안보이니… 더욱 이질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흠.)

어느새 시간은 흘러흘러 6시. 시누이네 집에서 개인적으로 준비한 리셉션이 또 있단다. 핫도그 캐이터링을 불렀다고 하는데, 난 학교 친구 생일파티가 있다고 해서 못간다고 했다.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추가로 잡은 약속인데. 아쉽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8시 파티에 가기전 조금 쉰다고 소파에 눌러앉은게 화근이었다. 피로가 몰려와서 한시간만 쉬고 나가려던게 그냥 마냥 소파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그리하여 이렇게 손가락만 놀려도 되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긴 시간을 포멀한 옷차림을 하고 소셜모드로 있었더니 영 피곤했던 모양이다. 혼자서 쉴 시간이 필요했다. 내일 옌스가 출장에서 돌아오는데다가 주말에 공부할 것도 많은데 이정도의 저녁 휴식시간은 필요하다. 이제 다 덮고 조금 일찍 자야겠다. 하나도 많이 피곤했을 것 같고.

덴마크 뉴스 – 2016/09/29

Elever i god kondition scorer højere karakterer

신체건강한 학생이 성적도 잘 받는다.

기사 링크: http://www.b.dk/nationalt/elever-i-god-kondition-scorer-hoejere-karakterer  (Berlingske)

 

올보어대학교가 올보어 꼬문 8학년-10학년 학생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사회경제적인 여건이나 인종적 배경에 상관없이 신체가 건강한 학생이 학교 성적도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덴마크어와 같은 인문학 과목뿐 아니라 수학과 같은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였다며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의 강도높은 체육활동에 학생들을 보다 더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권고했다.

덴마크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날씬하고 근육질인 편인데 학교 체육 활동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여자학생들도 남자학생들과 같이 축구를 하는 등 (성별 섞어서) 여자라고 강도 낮은 활동을 시키는게 아닌 듯 하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듯 체력이 공부에도 중요한 건 개인적으로도 많이 느꼈지만, 이렇게 연구결과로도 나왔다 하니 더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 흠흠.

 

덴마크 뉴스 헤드라인 – 2016/09/28

Hvad er en ‘rigtig’ mor egentlig?

‘진정한’ 엄마란 정말 무엇인가?

기사 링크: http://www.b.dk/nationalt/hvad-er-en-rigtig-mor-egentlig  (Berlingske)

약 2주 전에 한 로펌의 여변호사가 출산 몇시간전까지 이메일을 쓰고 일하다가 일주일만에 일선으로 복귀한 기사가 베얼링스커 1면을 장식하며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른 적이 있다. 어느 나라나 아이를 양육하는 문제에 대해서 엄마의 전통적 성역할을 강조하듯이 덴마크 또한 그렇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보육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웨이팅 리스트가 긴 보육원을 제외하면 6개월부터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엄마는 직업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다. 전업주부로 눌러앉는 것은 사회의 복지시스템에 커다란 짐이 되기에 (덴마크 사회복지 시스템은 심신이 건강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일을 하며 세금을 낸다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비난하는 시선도 있지만, 엄마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아이를 남편이나 오페어(Au pair, 입주 가정부)에게 양육의 상당부분을 맡기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시선도 존재한다.엄마가 야근 열심히 하고, 애를 보육원에 일찍 맡기고, 늦게 픽업하면 비난의 시선이 꽂히고, 남편에 대해서는 이중적 잣대가 적용되어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인다. 결국 여기도 수퍼맘을 원하는 것이다.

해당 여변호사의 열혈 근로의욕에 대해서 진정한 엄마가 아니라는 평론도 실리는 등 뜨거운 토론이 되고 있는데, 오늘 기사는 오후스와 코펜하겐을 원거리로 통근하며 일주일 2회는 코펜하겐에서 지내되, 근로시간을 주 31시간으로 단축해 금요일은 집에 머물며 애들을 보육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에 대해서 다뤘다. 그녀의 경험담과 의견을 통해, 양육이 부부 양측의 합의에 의해 잘 조율되고 애들이 만족한다면 상관 없는 일이 될 것도, 자신의 이런 근로 방식에 대해 비난의 눈길이 쏠리는 현상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해당 여변호사처럼 열혈로 근무를 해야 커리어 우먼이 된다고 프레이밍하는 것도, 그렇다고 엄마가 애를 시스템이 수용해주는 대로 일찌감치 보육원에 보내고 일을 한다고 진정한 엄마가 아니라고 프레이밍하는 것도 모두 반대한다. 이런 때 보면 덴마크의 성평등은 진정한 의미의 성평등이 아니라 사회가 기반으로 설계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도 세금을 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를 가능하게 하려 남성이 양보를 조금 한 강요된 성평등의 면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진정한 의미에서 애를 키우는 것은 애가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18년이다. 그 외에는 더이상 키우는 게 아니라 같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족으로 함께 살고, 서로 기대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18년의 시간동안 나는 내 인생의 일부분을 희생해야 할 것이고 그게 힘들 것이지만 그 대신 얻게되는 기쁨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 그렇지만 양육이 내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렇게 큰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면, 난 내 인생의 공허함을 느낄 것임을 내 성향으로 보아 충분히 알고 있으며, 나중에 그러한 희생이 내 아이에게 짐으로 작용할 것 또한 알기 때문이다. 내가 투사가 되어 페미니즘의 선봉에 서거나, 남편에게 나의 커리어 성공을 위해 당신이 무조건 양보하라 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편을 위해 내 커리어를 마냥 희생하고 싶진 않다. 솔직히 보면 남편보단 내가 권력욕이나 사회적 성공 욕구가 더 크기에 나의 희생이 효율적이지도 않다.

우리보다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진보적인 이 나라도 아직도 나아갈 길이 멀다. 오늘 기사에서 인터뷰한 여성이 언급한 것중에 크게 공감한 부분이 있다. ‘왜 남편이 잘 하고 있어도 내가 떨어져 있으면 애들이 불쌍하다고 하는 것인가? 우리 남편은 좋은 아버지이고 남편이 비는 날 내가 그의 빈자리를 잘 메우듯 그 또한 나의 빈자리를 잘 메울 수 있는데. 그리고 내가 떨어져 있음으로 애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 불쌍한 건 내 아이들이 아니라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