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은 터뜨려야 낫는 법

시누이에게 페북 채팅방에서 나가겠다고 한 이후 분위기가 좋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슈까지 겹쳐서 중간에 낀 옌스도 스트레스를 일부 받았으며, 시누는 내가 너무 갑자기 확 터졌다고 생각해서 화를 내고 있었고, 바로 그 주말에 하나와 내 발레 공연에 오기로 한 시누이와 큰조카를 봐야 할 나도 불편했다. 옌스와 크리스마스 관련해 대안 세개를 갖고 얼마만큼 솔직히 이야기할지, 내가 갖고 있는 마음속 갈등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지에 대한 상의를 미리 한 뒤에 만났다.

공연이 끝나고 마치 아무일이 없던 것처럼 집에 잘 돌아와서 시누이와 큰조카는 하나방에 올라가서 약간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나는 점심준비를 하고, 시누이가 내려와서 옌스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히 회덮밥을 준비하기로 한 터라 준비를 금방 끝내고 밥 하는 동안 같이 거실에 앉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양쪽 모두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만이 아니라 시누이도 이러저러한 서운함이 있었고, 우리가 갖고 있는 서운함 또는 이슈 – 주로 나 – 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했다.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인 시누 남편과 관련해서는 시누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시누의 남편이 시누의 주변 인물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오는 여러 갈등에 대해서 설명해주며 그게 우리 가족을 향한 것이 아니고, 그로 인해 자신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골이 깊은 갈등은 아니었지만, 아주 조금씩 시간을 두고 쌓인 갈등이라 이렇게 터지기까지 오래걸렸고, 그래서 마음이 꽤나 오랫동안 불편하긴 했다. 그래서 이번 갈등의 폭발은 어찌 보면 필요했던 일이었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면 잘라내고 끝내고, 갈등에 크게 마음 고생할 일도 없겠지만 가족이라 작은 일에도 상처가 되고,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취약해지는 거겠지. 적당한 갈등의 표출이었다면 이렇게 솔직하게 양쪽 모두 속을 드러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로간에 이러한 감정의 분출이 이해가 되는 상황이 될만큼 각자 쌓인게 있었고, 그게 뚜렷한 갈등의 형태로 드러났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족이기에, 그래서 소중한 관계이기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정의되는 순간 해결에 한걸음 다가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각자 속내를 깊은 곳까지 들춰내 보일 수 있었고, 마지막에는 감정이 다소 울컥해 눈시울을 적시며 포옹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해결해야 할 갈등은 터뜨려야 하는 것 같다. 환부를 도려내지 않도록 그 전에. 물론 양쪽 모두가 해결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겠지만.

시누이와의 관계 재정립

집안의 대소사에 여자들이 주 역할을 맡는데서 오는 정신적 부담을 멘탈로드라고 하던데, 우리집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와 관련된 모든 일정을 옌스가 열심히 챙기지 않아 내가 챙기다보니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일정부분 주도를 해왔다. 아이의 생일이나 공연 초대, 시댁 방문 휴가, 시댁 행사 관련해서 음식 준비를 하거나 하는 것 등. 내가 할 수 있으니 한 것들인데, 그게 어느새인가 자연스럽게 당연히 내가 해야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시누이네는 아이가 셋이고, 부부 모두 바빠서 일정을 잡는게 쉽지가 않다. 우리는 뭔가 초대를 받으면 꼭 가려는 전제하에 일정에 무리가 있으면 조율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그게 안되면 되는 사람만 간다든지 최대한 맞추려고 해왔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전제가 잘못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걸 맞추려고 할 게 아니었는지도. 우리가 제안을 하면 그 날짜가 안된다고 하면서 다른 날을 찾아보면 좋겠다고 하되 또 다른 날을 제안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날을 물어보면 그 날도 안되는 경우가 많고. 하나의 생일을 축하할 겸 초대하려고 하는데, 날짜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서 짜증이 확 올라와버렸다. 한 두번정도 날짜 조율이 안되면 차라리 그날 못간다고 미안하다 하고 즐겁게 축하하라 하면 되는데, 다른 날짜를 맞춰보자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토요일에 하나 공연이 있는데, 그때 만나서 조율하자고 하는데 거기서 짜증이 확 올라오는거다.

짜증이 올라오던 순간 밖에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옌스에게 앞으로 시누이네랑 일정 조정하는 거 당신이 하라고 했다. 왜 그렇느냐고 묻길래, 화가나는 포인트를 이야기해줬더니 시누이가 나쁜 뜻으로 그러는게 아니지 않는가, 애가 많아서 바빠서 그러는 거다 라는 거다. 그 말에 나는 짜증이 더 확 올라왔다. 그러면 그것에 짜증내고 있는 내가 나쁜 뜻이 있는거냐고 받아쳤더니, 그런 뜻이 아니란다.

모든 관계는 쌍방이지 않느냐. 내가 시누이네 애들, 시누이 생일 등 가족행사에 시간 내서 가는 것은 뭐 나라고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 넘치는 시간 내서 가는게 아니다. 시누이네 행사 일정 조율할 때 우리가 이런식으로 힘들게 한 적이 있느냐. 나도 나쁜 마음 먹는 거 아니고, 앞으로도 가게 되는 행사 좋은 마음으로 갈건데, 애써 이렇게 일정 맞춰주려고 노력하지 않겠다는거다, 나도 안되면 그냥 그날 안된다, 대안 제시없이 수동적으로 그냥 다른 날 안되냐고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다보니 결국 이렇게 되는 건 이 상황에 옌스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아서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나가 시누이네 가족과 가까운 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자신의 생일에는 시누이네가 오지 않고, 그쪽 생일에만 우리가 가니까 그게 아쉬웠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생일 초대도 하려고 했던 것인데. 결국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당신이 적극적으로 하나와 시누이네 가족간의 관계에 역할을 하지 않아서 그런거 아니냐, 당신 시누이네 행사에 우리는 다 가는데 – 그것도 아이들이 세명이나 되는 그 집 행사에 모두 – 우리 행사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런건데 왜 우리만 그렇게 해야 하느냐라고 힐난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런거 안하겠다. 그래서 하나가 시누이네를 초대하거나 뭘 같이 하거나 이런거 물으면 당신한테 물어보라고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시누이네랑 뭔가 행사가 없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내말이 틀리냐고, 내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느냐고 불어봤다. 시누네 남편은 그룹채팅에도 없는데, 왜 나혼자 거기에 껴서 이런걸 해야 하냐고.

옌스도 그 말에 내 감정이 드디어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미안하다며 앞으로는 자신이 그 역할을 하겠다고 하더라. 크리스마스도 그간 그 집 조카들이 자기네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고 해서 그 집에서 계속 보내왔는데 그것도 선물 교환때에만 하고 식사는 따로 하는 것으로 했다. 아직 통보하지는 않았지만. 음식준비를 우리에게 넘기지 않아, 우리가 초콜렛이나 뭔가 물질적인 것으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게 하면서도 그 스트레스를 크리스마스 식사 내내 뿜어내는 시누이 남편을 마주하며 받아온 스트레스가 너무 컸기에.

옌스는 그런 상대의 스트레스를 눈치채도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타입인데, 나는 상대의 불쾌함이 너무 많이 느껴져서 그게 나에 대한 게 아님에도 너무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한 상태가 된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가서 릴렉스하게 앉아있는 옌스는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작년에 그 냉랭함이 유독 크게 느껴져서 올해는 정말 가고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옌스한테 여러번 시누이랑 이야기해서 음식 분담을 어떻게 해보든가, 아니면 식사는 따로 하든가 조율해보라고 했는데, 그걸 아직껏 이야기하지 않고 이번 주말에 얼굴 볼 때 이야기해보겠다는거다. 하나랑 시누이네 큰조카도 같이 있는데? 그걸 애들이 있는데서 이야기할 것은 아닌 거 같다고 하고 그냥 식사 따로 하자고 이야기했다.

시누이네 초대하고 다 좋은데, 먼저 되는 날짜 조율해서 대안 몇개 갖고서 나랑 그 다음에 조율하면, 음식하고 그런건 하면 되는 거니까 부르라고. 그런데 내가 나서서 부르고 그런건 앞으로 안하겠다고. 마음이 아주 편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역할을 계속 맡는다고 봤을때 느껴질 불편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그냥 그러기로 했다. 그리고나서 시누이에게도 우리 셋의 그룹챗을 나가겠다고 이야기해두었다. 우리 일정을 그들의 일정에 최대한 맞추려는 노력이 일정 조율을 너무 길게 늘어지게 해 나와 그녀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아서 앞으로 옌스가 직접 일정 조율을 도맡아 하기로 했다, 그러면 일정조율도 좀 더 일관적이어질테니 말이다며. 이해해달라고 하고 나왔다.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쳐낼 수 있어야 가족 관계도 오히려 건강하게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다가 더 누적되서 아예 참여하기도 싫다는 상태까지 가는 것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좋지 않은가. 시누네 남편도 참여하지 않는 역할에 나라고 괜히 열심히 참여하다가 괜히 데이지 말고 물러날 때 적당한 선으로 물러나는게 좋다 싶다. 덕분에 올 크리스마스엔 좀 편한 마음으로 보내겠구나. 다행이다.

율 전통 (a.k.a. 크리스마스 전통)

12월 1일이 되기 전 집안을 크리스마스에 맞게 장식했다. 정확히 말하면 Jul. 예수 탄신인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에 기독교의 색깔이 덭칠해진 덴마크의 오랜 전통인 율, 동지 축제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래서 덴마크어로 보면 예수 탄신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지붕 밑 다락, 숲속 등에 사는 요정같은 Nisse이 전통의 핵심을 차지한다.

올해는 진짜 나무대신 가짜 나무를 사기로 했다. 나무를 매년 자르는 것이 좋지 않다는 하나의 의견에 따라 우리도 편하게 가짜 트리로 옮겨탔는데, 가짜를 할 거면 정말 가짜같은 것을 사야한다는 옌스의 의견과 그도 괜찮다는 하나의 의견을 수렴해 분홍색으로 주문했다.

집에는 문틀, 창틀, 선반 등에 장식을 했고, 작년에 이어 손수 리스를 만들어 집 앞을 장식했다.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올해는 짚으로 만들어진 틀에 작식을 꽂는 것으로 바꿔봤는데, 훨씬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이와 사슬고리를 만들어 창틀에도 달았고, 캘린더 촛대 장식도 만들어서 여기에 매일 불도 붙이며 율레휘게 (julehygge)를 내보고 있다.

굳이 안해도 된다 하고 하지 않던 것을 아이가 생기면서 하게 된다. 덴마크 사람들은 전통이라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게 어디서 내려온 전통을 중시한다기 보다는 우리만의 전통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아이가 좀 크면서 보니 아이들은 어떤 반복적인 것을 좋아하더라. 써프라이즈도 물론 좋아하지만, 그런 써프라이즈 마저도 한번 너무 좋았으면 다음에 또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뭔가 좋아하는 것을 그 시기에 다시금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예측 가능한 즐거움을 좋아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작년에 했던 똑같은 것들을 또 하고 싶어서 기다리게 되고. 그 중 하나는 바로 이 율레퓐트 (julepynt)다

격변의 시대에 자라왔던 나는 그 전통이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이를 간소화하자 이런 움직임을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었기에 전통이 가지는 부담에 초점을 두고 커왔다. 그래서 나에게 그냥 일상 생활 속 전통은 갈수록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것 같다. 해외에서 살면서 더욱 그래왔는데, 아이가 그런 전통을 좋아하고 우리만의 전통을 만들어하고 싶어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이에 동원되었다.

그런데 하다보니 아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전통의 행사와 그 뒷정리에 익숙해지면서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어둡고 칙칙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함도 있고. 율과 신년을 지내는 기간 만큼은 이 어둡고 긴 겨울도 따뜻하고 밟게 느껴지니까.

아이와 율레베이(julebag)라고 율 기간에 먹을 과자를 굽는 것도, 율레퓐트를 만드는 것도 다 휘글리하게 느껴진다. 율레개우(julegave), 즉 선물은 아이에게만 주고 우리끼리는 주고 받지 않는데, 선물 사는 일만 제외하면 포장하는 것부터 다양한 전통들이 나름 기대되고 즐겁다.

이중언어 아이를 키우며

한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국어 학습의 니즈가 각각 천차만별이다. 처한 언어환경 또한 제각기 다르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일 수도, 한명은 한국인, 덴마크인이거나 한명은 한국인, 다른한명은 비덴마크 외국인일수도 있다. 둘다 덴마크인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언어권인 사람도 있다. 이처럼 한글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다양해진만큼 최소한 한명의 한국인을 부모로 가진 아이에게도 한국어 수준은 정말 다양하다.

나처럼 한국인 부모 한명이 있는 경우에 파트너간 커뮤니케이션이 주로 영어로 이뤄지는 경우 아이는 한국인 부모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기에 그들의 한국어 능력은 꽤나 되는 듯 해 보인다. 아이가 한국에 관심이 많거나, 한국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등에 조금이나마 여러번 다닌 경우, 아니면 조금 길게 다닌 경우, 한국에 한번 가면 길게 있는 경우 등 아이의 한국어 수준은 확실히 높아 보인다. 그와 다르게 나처럼 아이와 덴마크어로 이야기를 하며 아이의 한국어 능력이 높지 않은 집들도 보인다.

우리집이라고 처음부터 아이가 한국어를 못하던 것이 아니었는데, 아이가 어느덧 내가 남편 및 주변 세상과 덴마크어를 사용해 소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하기 시작했고, 아이의 덴마크어와 한국어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서서히 나도 아이와 덴마크어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요즘들어서야 아이가 다시 한국어에 좀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아이가 한국어로 답을 하지 않기 시작한 이래로 약 7년간 아이의 한국어 교육은 다양한 흥망성쇄의 길을 걸어왔다. 강하게 한국어를 몰아붙이면 된다는 이야기들도 여기저기서 들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빠르게 늘지 않는 한국어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는 엄마와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없냐고 크게 슬퍼하는 아이를 보고나서도 한국어 교육을 위해 그 감정을 무시하자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두명 모두 한국인인 부모를 둔 아이들 중에서도 한국어가 잘 안되고, 부모도 덴마크어가 잘 안되서 아이와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약간 머리를 한대 맞은 듯 했다. 미국에 사는 한인 가정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는데, 덴마크라고 다를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며 지금 애가 어느정도 한국어를 잘한다 해서 나중까지 꼭 그런다는 보장이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다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이가 네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 자기는 한국어 사용을 고수하고 있지만, 아이가 아빠와 대화하는 것이 자신과 대화하는 것에 더 깊이가 있음을 느낄 때 큰 마음의 갈등을 느낀다고 했다. 자기가 그냥 덴마크어로 언어를 바꿔야 하는 것인지.

아이가 예전보다 한국어에 많은 관심을 가진 지금, 이것을 최대한 이어가면 아이가 나중에 한국어를 정말로 배우고 싶을 때 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줄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는 목표를 여기로 정했다. 아이는 자신이 한국인의 뿌리와 덴마크인의 뿌리를 가진 사람이지만 덴마크인에 더 가깝다는 정체성을 가졌는데 그정도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아이는 한국어를 열심히 하는 것이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임을 인지했고, 그래서 조금 더 신경을 쓰려하고 있으며, 나도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하니 아이와 관계에 날카로운 부분이 없어졌다. 아이의 한국어 실력 부족이 나의 잘못인 것 같아 그로 인해 아이가 한국어를 하기 싫어하면 날이 서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게 무뎌졌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다보니 아이가 자라면서 끊임없이 어떤 기준을 정하는 문제로 마음의 갈등을 겪곤 하는데, 한국어는 이정도로 정리가 된 것 같다. 7년의 시간이 참 길었는데, 이제 편한 단계가 된 것 같다. 여기에는 물론 나 혼자의 마음의 갈등만 있던 것이 아니고, 남편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한국어를 지금껏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늘리고, 아이에게도 노출을 늘리려 많은 노력을 해온 그가 아니었으면 나도 이렇게 못했을 것이다. 토요일에 한글학교 가는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빠 덕이다. 아빠가 다니고, 엄마도 가급적 항상 학교에 같이 가니까 자기도 가는 거고, 거기에는 작은 한국이 있으니까.

겨울을 버티는 힘

겨울이 되면 해가 짧아져서 아쉽다. 하지만 정해진 환경을 불평하며 탓해봤자 좋아질 게 없으니 좋아할만한 것들을 찾아본다. 크리스마스에 가까워지며 틀게 되는 hyggelig한 음악, 따뜻하게 데워먹는 차와 겨울 음료들을 마시며 가슴 안으로부터 느껴지는 따스함, 간간히 내리는 눈, 포근한 스웨터, 분위기의 온도를 높여주는 작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촛불,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나누는 담소, 담요를 덮고 책을 일거나 뜨개질하기, 겨울 간식의 따뜻한 단내. 그게 있어서 겨울을 버티는 것 같다.

연봉협상시즌

덴마크의 겨울은 길다. 아직 가을이 끝나지 않았지만 벌써 절정으로 달려가는 가을의 빛깔을 보면 겨울이 한발짝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우리내 명절도 아니고, 덴마크 명절도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여름방학과 크리스마스 사이 긴 하반기를 즐겁게 보내게 해주는 할로윈도 코앞에 다가왔다. 다채로운 노랑과 붉은 계열 색깔의 향연을 멋지게 뽐내는 이 절정이 지나고 나면 11월은 나무가지가 앙상해지는 쓸쓸한 시간이 된다. 그렇게 가을은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겠지. 올 가을은 해가 좋은 날들이 많았어서 노란색과 붉은 색의 다양한 채도를 또렷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가을은 가장 바쁘면서도 한해의 마무리를 준비해야 하는시기인데, 연봉협상시기이도 하다. 연말 연봉협상시기를 앞두고 센터장과 면담을 했다. 공무원은 대부분 연봉 테이블을 따라가서 협상할 여지가 많지 않은데, 본인이 생각했을 때 특별한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면 승진을 하거나 연봉에 추가 수당을 얹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상사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본인이 노조에 요청해서 임원진과 직접 협상을 해달라고 요청할수도 있고, 상사를 설득해서 상사가 임원진에 이에 대한 승인을 요청할 수도 있다. 다만 전체 조직에서 승진을 시키거나 연봉을 올리는데 필요한 T/O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 부서별로 자신의 부서에 이를 땡겨오기 위해서 임원진간에 합의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상사가 연봉상승안이나 승진안을 올린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한해 나에게는 조금 힘든 시기였다. 나 뿐 아니라 같은 프로젝트에 들어갔던 인원들 모두 협업 부서와의 갈등으로 고생을 했다. 약간 비열함마저 느껴지는 협업부서 동료들은 해당 부서의 엄청난 인원교체를 유발한 약간 암적인 동료들인데, 은근하게 사람을 힘들게 해서 징계를 하기는 어렵고 끊임없는 주의만 남발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튼 이들이 담당자인 프로젝트으로부터 업무 발주를 받아 우리 팀에서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우리끼리 방문 닫아놓고 욕도 하고, 상사에게 애로사항을 토로하기도 하고, 노조에도 이야기하고 등 여러 조치를 취해볼 정도로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다. 프로젝트가 길게 연장되면서 나는 못견디겠다고 손들고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가면서 한숨 돌렸는데, 정말 퇴사도 고려해보게 할 정도로 힘들었다.

막바지 단계이긴 했지만, 프로젝트를 완수 못하고 나머지 동료들에게 넘겨두고 나만 빠졌던 터라 뭔가 실패를 경험한 느낌이었기에 연봉협상에서 뭔가를 요구하기가 그랬다. 그래서 뭐가 되었든 상사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고 더이상 코멘트하지 않았는데, 상사는 그거 말고도 프로젝트에서 보인 책임감과 질적인 부분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부분을 토대로 추가 수당 부분을 임원진 회의에 상정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평가해주면 고맙다 하고 내년 한 해 좀 더 좋은 프로젝트들로 더 성장할 수 있기를 노력해보겠다며 마무리했다.

중간중간 상사와 면담도 하면서 피드백을 받기도 하지만, 연봉협상시기야 말로 상사의 진정한 평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상사가 내 성과를 토대로 임원진과 합의를 이뤄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공무원도 구조조정을 하는 불확실성들이 많은 시기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년에 시민권도 신청해야 하는데 시민권이 나올 때까지 직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이 계속 잘 근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 창문의 블라인드를 활짝 열어두고 파란하늘과 노란색의 물결을 흠뻑 느끼며 근무시간을 시작해서 너무 좋다.

재택근무

재택근무를 하면 출퇴근 시간 합쳐 한시간 반이 빠지니까 하루에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정신없이 문을 나서느라 느끼지 못했던 몸의 신호도 조금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

클라이밍을 좀 힘들게 하고 온 다음날이면 오른쪽 승모근 아래가 약간 뻐근하다. 힘들거나 무서운 구간에서 팔꿈치를 들고 용을 써서 생기는 일이다. 늘어난 상태에서 힘을 써서 생긴 근육통은 스트레칭이 아니라 반대로 약간 수축을 해줘서 풀어야 한다. Theraband를 양손으로 댕겨 잡고 몸 앞에서 뒤로 보냈다가 반대로 되돌리는 동작을 몇번 하면 뭉쳤던 부위가 좀 풀린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발레바를 잡고 스트레칭을 한다. 창밖의 풍경을 천천히 스치듯 응시하면서.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낮의 기온은 높은데 밤 기온은 떨어지니 집 앞 들판에 낮게 안개가 낀다. 눈높이의 안개 위로는 깨끗한 초록과 그 위의 하늘이 어우러져서 마치 산 정상에 올라 구름 위를 보는 것 같다. 잠시 창문을 열어보니 차가운 습이 들어온다. 반바지를 잎은 다리 위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

문을 열어두고 스트레칭을 이어간다. 몸이 구석구석 부드러워진 것 같으면 발레바와 Theraband를 주섬주섬 치우고 가방을 꺼내들어 거실을 업무공간으로 바꾼다. 랩톱을 키면 팬 소리가 작게 윙 하고 들린다. 쇼팽의 노래로 팬소음을 덮고 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오늘도 잘 부탁해.

서서히 덴마크인이 되어가는 과정

나와 우리 팀 동료들을 괴롭게 했던 지난 일년간의 프로젝트가 대충 마무리 되었다. 프로젝트는 우리 손을 일단 떠난 상태고, 돌아오더라도 다른 팀이 손본 곳 중에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만 수정해서 마무리하게 되었으며, 그또한 프로젝트리더가 할테니 나는 더이상 그 일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한동안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일이 손을 떠나고나자 Brain fog라고 말하는 집중력저하현상도 없어졌다. 역시나 이 모든게 스트레스 때문이었구나.

2년전부터 다른부서로부터 우리 부서가 넘겨받아 내가 1년에 한번씩 발간하는 연간보고서 프로젝트가 있었다. 첫해에는 그렇게 해왔다고 하고 이대로 하면 된다고 해서 발간했고, 작년엔 그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다만 그 전해의 소소한 문제를 개선하는 정도로 발간을 했다. 그러면서 느낀게, EU 법령에 근간해 CEER이 만든 이 보고서의 작성 가이드라인과 우리 보고서가 서서히 괴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매해 발간한다는 것은 매해 새 술을 담근다는 것이니, 이번엔 좀 새 부대에 넣어야 겠다고 느꼈다.

다른 부서들과의 발간 일정 조율 문제가 있어서 – 다들 바쁘니 – 센터장의 권위를 빌리고자 첫 2년은 센터장을 첫 미팅에 동행했는데, 이번엔 내가 홀로 해보겠다고 나섰다. 내가 주재하는 미팅에서 처음으로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긴장감 같은 것을 내려놓고 내가 해야하는 말을 다 하고 질의응답도 하고, 일정 조율 문제에 있어서도 선을 그어야 할 곳에 잘 긋고 물러날 곳에서는 물러나기도 하며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미 덴마크어로 일을 한지 벌써 5년이 넘었는데도, 회의에서 발언하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그걸 완전히 무너뜨려본 첫 경험이었다.

내일 시민권 시험을 본다. 작년에 영주권을 땄고, 앞으로 이곳에서 계속 뿌리를 내릴 것으로 결정을 했기에 시민권을 따기로 마음 먹었다. 나의 뿌리가 한국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고, 한국을 사랑하지만 시민으로서 나의 가치관은 이곳에 정착하게 되며 바뀌어왔기에 내가 일군 가족과 같은 나라의 보호를 받기로 결정했다. 영주권을 받고 2년이 된 타이밍부터 시민권을 받을 수 있으므로 내년 여름에 시민권을 신청할 것인데, 그렇기 위해서는 시험을 미리 봐둬야한다. 국적부여는 1년에 두번, 국회에서 해당 사안을 법안으로 심의하는데, 내가 영주권을 받은 후 2년에 된 후에 심사되는 법안에 내 이름이 들어갈 수 있도록 신청을 해야한다. (법안에 국적취득자의 이름이 다 하나하나 명시된다.) 조건에 부합했는지 검토하는데 대충 빠르면 6개월, 길면 2년정도 걸린다는데, 나처럼 딸린 가족 없이 홀로 국적취득을 신청하는 케이스면 거의 6개월안에 심사된다고 한다. 시험은 너무 오래되면 다시 봐야 할 수 있으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번 시험을 봐두면 여러해 유효한데, 시험도 일년에 두번 치뤄지기 때문에 그냥 미리 봐버리기로 했다.

국적 취득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 상태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 같아서 이번 대선에 처음으로 참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내 권리의자 의무로서 꼭 선거를 해왔는데, 이번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니 대선을 바라보는 시선도 좀 바뀌는 듯하다.

내가 덴마크인인 것처럼 나를 대하는 덴마크인 속에 섞여 덴마크어만 하고 살다보니 나도 서서히 덴마크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국적은 유지하고 영주권만 따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서서히 바뀐 것이기도 하고.

풀타임 워킹맘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기 힘들어 엄마에게 죄책감을 갖게 한다는 풀타임 워킹맘의 위치. 덴마크의 엄마들은 대부분 워킹맘이고, 대부분은 풀타임으로 일을 하지만 다들 일상을 각자의 힘으로 굴린다. 우리도 시부모님이 멀리 사셔서 애가 아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일년정도였다. 아직 코로나 전이었었고, 재택 개념이 일반 회사원에겐 적용되지 않던 때라 도움이 너무 아쉬웠다. 그나마 그기간 중 애가 두돌가까이 되기 까지는 내가 대학원생이었어서 그냥 내가 석사 논문 쓰는 것을 못하는 정도로 넘길 수 있어서 유연하게 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두돌 지나고 나니 애가 그렇게 자주 아프지 않기도 하고, 중앙정부기관은 아이가 아프면 첫 이틀은 보육 휴가를 쓸 수 있어서 대충 넘긴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어디가 아프면 일하지 못할 정도엔 쉬고 (이건 원래 그랬고), 일할 정도긴 하지만 남에게 옮을만한 증상이 있으면 집에서 일하는게 보편화 되기도 했고, 상황에 따라 재택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풀타임 워킹 부모들의 일상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덴마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게 현실적으로 풀타임워킹맘의 일상을 쉽게해주는 것들엔 뭐가 있을까? (물론 이는 모두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사무직이고, 내가 어느정도 업무시간을 조율하는데 재량이 있는 유연근무재도가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


  • 유연한 근무시간

주당 37시간의 근무시간인데, 나는 중앙정부 공무원이라 30분의 점심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중에서 9시부터 2시 반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근무를 해야 하고, 이 시간을 포함해 나머지 근로시간은 알아서 다른 시간에 배분할 수 있다. 매일 근무시간을 온라인 근로시간기록부에 기재하는데, 프로젝트별로 얼마나 시간을 할애했는지 시간을 기록하면 된다. 이 기록에 따라 초과근무한 시간을 모아서 다른 날 적게 근로할 수도 있고, 많이 모으면 휴가로 쓸 수도 있다. 이를 Flex timer라고 하는데 알아서 조절해서 쓰면 되니 어떤 날은 7시간 일하고 어떤 날은 8시간 일할 수 있다. 우리는 직장이 지방이전하면서 코펜하겐 시내에서 통근버스를 운행하는데, 여기서 일하는 시간도 근로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고,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는 경우, 한시간은 집에서 일해도 된다. 막상 통근버스가 있어도 주로 자차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러니 애를 픽업하고 나서 집에서 일을 더 해도 되고, 애를 데리고 어디 과외활동을 하러 가야하는 경우, 애를 기다리면서 일을 할 수도 있다. 발레학원 데려다주러 가면 거기서 일하는 부모들이 많다.

  • 한국밥상보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저녁식사

평일엔 외식을 잘 안한다. 외식 자체가 비싸기도 하고, 배달은 배달비까지 (한국보다 배달비가 많이 비싸다.) 추가되니 다들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다. 하지만 한국처럼 반찬을 가지가지 해먹을 필요 없이 간단히 메인 요리 하나, 샐러드, 밥이나 감자, 빵 같은 것으로 탄수화물 쪽을 채워주면 되는거라 애 픽업해서 같이 장 봐와서 요리해 밥 먹기가 그렇게 번거롭지 않다.

  • 이른 등교시간

학교 수업자체는 8시에 시작하지만 돌봄교실이 7시정도에 연다. 요즘 예산부족으로 곧 7시 15분으로 조정될 것이긴 한데 학교에 따라서는 6시 반에 등교시킬 수도 있다. 딱히 뭔가 활동이 있는 건 아니고, 아이가 종이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릴 수도, 책을 읽을 수도, 보드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어른들이 있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말이다. 우리 집은 내가 저녁 요리 담당이라 (남편은 설겆이 담당) 회사에 통상 7시 15분 정도에 도착하게 출근을 해서, 남편이 자기 출근하는 길에 7시 반쯤 등교를 시킨다. 그러면 내가 회사에서 3시 좀 넘어서 퇴근하면 4시 좀 전에 픽업할 수 있다. 학교는 시마다 다른데, 우리 시는 – 같은 예산 부족 이슈로 5월부터 15분씩 단축되겠지만 – 월-목까지는 5시, 금요일엔 4시에 문을 닫는다. 수업이 한시까지 진행되고 방과후엔 오전과 달리 조금 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도자기나 뭔가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밖에 나가 놀수도 있고, 아이들도 많으니 할 수 있는게 늘어난다.

  • 아이들의 독립성

어려서 아이들이 뭔가를 스스로 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 아이의 의지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걸 허용할 수 있는 부모의 여유가 있느냐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나도 내가 해주는 게 더 쉽고 빠르기에 애에게 기회를 주고 실패를 경험하고 여러번 시도해서 성공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나에게 꽤나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 나면 뒤로 가면 갈수록 아이도 부모도 수월해진다. 이미 두발자전거를 세돌 반이 되기 전에 마스터했는데,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넘어짐이 필요했고, 낮은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느라 아빠의 허리가 고생을 많이 해야했다.

화장실에 가서 큰 볼일 보고 뒤처리를 함에 있어서도 – 위생을 위해 내가 개입하고 싶어도 – 언젠가 이를 아이에게 완전히 넘기지 않으면 독립을 시킬 수가 없다. 학교에서 0학년 (유치원반) 시작하기 1년전에 만 5세 정도에 화장실 완전히 혼자가는 훈련을 시키는데, 한 3개월정도 자기가 하고 우리가 검사하는 식으로 하니, 독립의 의미가 없어지는 거 같아서 결국 완전히 손에서 놔야 했다. 엉덩이가 가려워지는 경험을 해야 자기도 더 잘 닦게 되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는 것도 다 알아서 한다. 옷을 혼자 찾아 입는 것은 이미 어린이집 다니면서 만 3세경부터 했고, 4세 경부터는 머리도 혼자 빗고, 5세부터는 자기 아침식사는 자기가 차려 먹는다. 뜨거운 밥과 국 이런것을 먹는 게 아니니까 가능하겠지만, 아침에는 그런것을 먹을 여유도 없다. 5시 40분에 일어나서 나도 내 준비해서 애 도시락까지 싸주고 6시 40분엔 문을 나서야 하고, 남편은 6시 반에 일어나서 자기 준비하고 내려와 일곱시 아침 식사할 때쯤이면 나는 이미 나가고 없으니까 애가 알아서 혼자해야하는 부분이 꽤 크다. 자기가 알아서 하니 뭐가 마음이 드네 안드네 할 일이 없다.

  • 완벽하지 않은 집안일

집안 청소는 일주일에 한번만 한다. 화장실 청소도. 그냥 정리만 하고 살다가 주말에 모든 집안일을 한번에 처리한다. 주방이야 항상 치우고 닦는 것이니 일주일 사이클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외엔 다 그렇게 한다. 주택에 사는 것이라 소소하게 집안 관리할 일들도 있기에 그 이상 집안일을 자주 하고 살 수가 없다. 집안일의 퀄리티를 특별히 올리려거나 그런 거에 힘을 쏟기 어렵기 떄문에 꼭 해야 하는 일을 딱 필요한 수준으로만 하고 산다. 엄마가 워낙 깨끗하게 사셔서 나도 집을 지저분하게 두고 살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것처럼 항상 깔끔하게 하고 살 수도 없고, 아이 방은 주말 한번 정리할 때 빼고는 엉망진창으로 어지러워져도 내버려둔다.

  • 명확한 규칙과 루틴

아이는 하루에 게임을 하던 텔레비전을 보던간에 30분의 스크린타임을 갖는다. 내가 대충 시간을 보고 있긴 하지만 자신이 타이머를 맞추고 한다. 평일에 친구네 집에 가서 놀 경우, 저녁식사를 위해 6시 전에는 집에 돌아온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가방부터 풀어 도시락과 체육복 등 정리할 것부터 정리해야 놀 수 있다. 7시 15분엔 올라가서 목욕을 하고, 욕실을 건조시킨 후 (석회 때문에 스퀴지로 물기를 제거하고 타월로 깔끔히 물기를 닦아내야 한다.) 잠옷 갈아입고 양치질 한다. 우리가 양치질은 한번 더 시킨 후 – 덴마크에서는 충치방지와 모토릭 발달과정상 수준을 고려해 만 10세까지는 부모가 양치질에 개입하라고 권고한다. – 여덟시 쯤 침대에 들어가 남편이나 내가 책을 읽어준 후 여덟시 반이면 잠을 잔다. 이 부분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지킨다. 일찍 자는 것 같지만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기 때문에 8시 반에는 잠을 자야한다. 이 부분 때문에 가족이 다 같이 저녁에 어디가서 늦게까지 있다가 오고 이런건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 애가 10대가 되어야 취침시간이 좀 늦어지고 저녁시간 활용이 좀 더 다채로워지는 거 같다.

  • 신체활동 중심의 과외활동

아이는 주중에 발레와 체조를 다니고, 주말엔 한글학교를 간다. 한글학교는 거의 놀러가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느는 걸 보면 뭔가 배우긴 한다. 학교에서는 숙제도 내주지 않고 나도 딱히 공부를 시키지 않기에 아이는 그냥 노는게 일과다. 그림그리고 책 읽는 시간 빼면 친구랑도 혼자서도 잘 논다.


월화목토는 내 저녁시간, 수금일은 남편의 저녁시간이다. 스포츠를 하거나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저녁시간을 갖지 않는 날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을 한다. 저녁화목토는 내 저녁시간, 수금일은 남편의 저녁시간이다. 스포츠를 하거나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저녁시간을 갖지 않는 날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을 한다. 각자 스포츠를 하더라도 돌아오는 시간이 그렇게 늦지 않으니 우리끼리 시간은 그 남은 시간에 보내면 된다. 애가 하나만이라 가능한 것일 수 있는데, 주변에서도 워킹맘이라 힘들어하고 그런건 의사같은 특수 직종 빼고는 흔히 듣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비유연한 근로시간때문에 한국에서 적용가능한 방식은 아니겠지만, 사회가 좀 더 유연하게 바뀌면 워킹맘도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혼자 하교하는 아이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면 아이의 20분 조금 덜 걸린다. 아주 먼 것도 아니지만 가깝지도 않은 거리.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미 작년부터 혼자 집에 걸어가는 아이들이 있긴 했는데, 최근에 들어서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이도 집에 혼자 간다고 아이가 말을 해왔다. 그래서 자기도 곧 그렇게 하고 싶다고.

작년부터 연습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러려면 내가 집에 차를 데고, 걸어가서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지라 겨울들어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날도 밝아지기 시작하고, 주변 친구들의 사례도 보고 하면서 슬슬 연습을 해야겠다 싶었다. 집에 오는 길에 왕복 4차선의 길을 횡단보도로 건너야 하는데, 거기에서 하나가 건너는 방향으로 우회전을 하거나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차량들이 제법 되는 길이라 아이도 확인을 잘 하고 건거야 한다. 또 중간에 보행자 우선 횡단보도가 2개 있는데, 아무래도 신호가 있는 것은 아니니 아이가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휙 지나가는 차들도 있고해서 이도 잘 보고 건너야 한다. 뒤에서 한 300미터 정도 떨어져 아이가 걸어가는데, 사실 애가 어떻게 건너는지 못보는 구간도 제법 있다. 애초에 내가 애가 건너는 걸 잘하는지 보고 감독하기 보다는,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뒤따라가면서 이를 볼 수 있다는 점, 아이도 내가 뒤에 있어서 든든함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좀 더 자기의 보행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점 등 때문에 같이 거리를 두고 걸어가며 연습을 하고 있다.

집에서 보면 어느새 불쑥 큰 모습에 깜짝 놀래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또 이렇게 뒤에서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큰 책가방에 비해 그닥 크지 않은 아이. 사람들 사이로 그렇게 작은 아이가 혼자 책가방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모습 등을 보면 아직도 너무 작은 것 같고. 그러면서도 혼자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앞으로 혼자 걸어나갈 연습을 하는 아이를 통해 나도 아이를 독립시킬 연습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약간 외롭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애를 위해 뭔가 해줘야 하는 기간이 정말 짧게 남은 것 같기도 하고, 보다 열심히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크면 엄마아빠랑 보내는 시간보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더욱더 중요해질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