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

아이가 부쩍 크고 있다. 자기만의 선이 뚜렷해져서 그 부분이 명확하게 지켜지기를 원한다. 방에 들어가면 문을 닫고, 꼭 노크를 한 후에 들어오란 소리를 자기가 한 후에 들어오도록 한다. 용돈을 받는 대신에 자신이 해야할 일들이 수행해야 함을 배우고 지키고 있으며, 도시락도 본인이 직접 싸기 시작했다. 학교에 무엇을 챙겨가야하는지에 대해서 자기가 직접 챙기기를 원한다. 못가져가면 본인이 아쉬운 것이니까 딱히 나도 더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밤에 잘 때 자신이 원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엄마아빠가 책을 읽어주고 재워줄 필요도 없다고 한다. 편해지긴 엄청 편해졌는데, 아이가 이렇게 독립적인 영역이 커지니 아쉬움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직도 친구와의 놀이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어린 아이지만 조금 있으면 어린이라는 단어를 떼고 청소년이라는 딱지를 붙여줘야 할 시기가 올 과도기임이 분명하다.

딱 아홉살 생일 전후로 수영, 체조 등 다른 체육활동을 다 정리하고 발레로 올인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클래스 하나 더 듣는다고 해서 다른 것을 유지한채로 하나 더 늘려줬는데, 발레 수업시간이 너무나 후딱 지나간다며 수업을 더 듣고 싶다고 했다. 체조는 자기가 제일 잘하는데, 자기 때문에 진도를 빼주지 않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해서 체조 날짜에 체조를 빼고 그날 가능한 발레 수업을 찾아서 등록해줬다. 그랬더니 수영도 이제 어느정도 할 수 있으니 그날도 발레를 하면 안되냐고 하는거다. 마음 속 갈등이 정말 심했다. 한국과 달라서 집 근처 다니는게 아닌 이상 부모가 다 도와줘야 하는데, 동네에 있는 수영과 체조를 빼고 조금 더 먼거리에 위치한 발레를 추가로? 엄마,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오빠와 나의 학원 드롭오프를 해주셨는지를 느끼며 그러라고 했다. 엄마는 발레가 좋긴 하지만 힘들긴 엄청 힘든데, 너는 안그러냐고 물으니까, 자기도 힘들긴 힘든데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그래. 그렇게 좋으면 니가 원할때까지 한번 해보라고 하고 보내주기로 했다.

한글학교를 다닌지가 벌써 몇년인지 모르겠다. 집에서 한국말 쓰기를 싫어하니 별로 늘지를 않았지만, 그냥 한국 문화를 피부로 느끼고, 한국어에 간접적으로 노출이라도 되라고 보냈는데. 이번학기 반편성이 약간 충격이었던 게, 한국말로만 가르치는 조금 윗반으로 편성된 것이었다. 나는 애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우선 교장선생님이 한번 시도라도 해보라고 하셔서 두고 보기로 했다. 첫날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 그런대로 수월했던 거 같은데, 그 다음 시간에 다른 애들이 더 많이 와서도 괜찮았던 모양이었다. 친구들도 마음에 들었고. 정말 가랑비에 젖듯이 노출된 한국어였고 동기부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냥 습관성 등교였는데, 이번엔 뭐가 꽂혔던 걸까? 집에서 한국어로 이야기해달란다. 물론 자신은 항상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열심히 말해보려고 하고, 내가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해주면 알아들으려고 노력을 한다. 그렇게 2-3주가 지났더니 한글학교 수업이 조금 더 수월해졌다면서 재미있단다. 요즘 그럴 때가 된거니?

아이의 학교 교우관계와 그 안에서 아이의 생각과 대처를 듣다보면 그 안에서도 다름 많은 타협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는구나 싶다. 정말 많이 컸다.

아홉살 인생도 인생이다. 그 머리 안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하루하루 눈에 보이지 않게 성장해서 한달이면 쑥쑥 큰다.

아이의 성장, 8년 10개월

아이의 변화가 느껴지고 있다. 손이 조금씩 여물어간다고 해야할까? 소근육의 발달이 느껴지는 것이, 아이가 뭔가를 해낼때 기존보다 훨씬 미더워졌다. 덕분에 나도 조금 더 여유롭게 아이가 뭔가를 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고, 그게 실패해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빈도가 줄어들었다. 덕분에 내가 도와줄 수 없는 순간에 애가 뭘 해도 되냐고 물어보면 허락을 수월히 해줄 수 있고, 나에게 물어보지 않고 해도 되는 활동들의 범위가 늘어났다. 아이에게 도와달라고 해도 되는 것이 늘어나서 순간순간 깜짝 놀라곤 한다.

하지만 또 동시에 아이가 어린 아이처럼 구는 순간들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 침대로 기어들어와 십분동안 잠을 더 자는데, 그때 내 품으로 파고드는 순간. 학교에 애를 데리러 가면 나를 향해 달려와서 펄쩍 뛰어 나에게 메달리며 안기는 순간.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을 때 대성통곡을 하면서 방에 들어가서 울고 있는 순간. 이런 때면 아직도 어린 아이같은 면이 남아있음을 느낀다.

사회성 측면에서도 크게 발달했음을 느낀다. 친구들에게 밖에서 나무 타고 놀자고 제안했는데 – 자주 하는 놀이이다. – 그 중 한명이 나뭇가지에서 미끄려져 떨어지며 손목이 부러져서 깁스를 했는데, 잠자리에 들어 불끄고 자기 전에 갑자기 자기가 가책을 느낀다며 자기가 놀이를 제안해서 그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어머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책임을 고려하는 모습에서 참 성숙해졌음을 느꼈다. 그냥 그건 사고였을 뿐이라고 해줬다. 마음이 아플 일이긴 하지만, 죄책감을 느낄 일은 아니라고. 다른 친구가 제안한 술래잡기놀이를 하다가 혼자 네가 넘어져 다치면 그건 그냥 사고일 뿐이지 친구의 잘못이 아닌 것이랑 똑같은 거랑 똑같다고 말해줬다.

아직도 대성통곡을 하며 별것 아닌 일을 일부러 드라마로 만드는 순간도 있지만, 또 어른들이 필요에 의해 결정한 일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할 때 빨개지는 눈에서 눈물을 꾹 참고 벌개진 얼굴로 받아들이는 때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상황에 대한 판단에 근거해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늘고 있음에서 성숙함이 느껴진다.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강점이 무엇이고, 타인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자기 객관화를 하는데에서도 성장이 느껴진다. 매일 청소년 뉴스를 시청하며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따라가고 있고 – 뉴스 좋아하는 부모의 아이라 – 자신 나름의 의견을 갖고 우리 일상의 의사결정에도 참여한다. 쇠고기를 덜 먹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나, 요즘 사회에 서서히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는 마약 문제, 크리스마스 트리를 진짜 나무를 베어오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는 플라스틱 나무로 쓰자고 하는 거 (이게 더 좋은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등등 나름의 견해를 갖고 토론이나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이제 만으로 아홉살이 되기까지 두달이 채 안남았는데, 이미 내 손을 많이 떠나간 아이를 보며 시간이 새삼 빠르게 흘렀음을 느낀다. 지금까지의 시간의 삼분지 이만 지나도 거의 어른에 가까워졌겠지. 매년 애가 얼마나 클 지, 어떤 변화를 겪을지 정말 기대가 된다.

이중언어 아이를 키우며

한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국어 학습의 니즈가 각각 천차만별이다. 처한 언어환경 또한 제각기 다르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일 수도, 한명은 한국인, 덴마크인이거나 한명은 한국인, 다른한명은 비덴마크 외국인일수도 있다. 둘다 덴마크인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언어권인 사람도 있다. 이처럼 한글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다양해진만큼 최소한 한명의 한국인을 부모로 가진 아이에게도 한국어 수준은 정말 다양하다.

나처럼 한국인 부모 한명이 있는 경우에 파트너간 커뮤니케이션이 주로 영어로 이뤄지는 경우 아이는 한국인 부모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기에 그들의 한국어 능력은 꽤나 되는 듯 해 보인다. 아이가 한국에 관심이 많거나, 한국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등에 조금이나마 여러번 다닌 경우, 아니면 조금 길게 다닌 경우, 한국에 한번 가면 길게 있는 경우 등 아이의 한국어 수준은 확실히 높아 보인다. 그와 다르게 나처럼 아이와 덴마크어로 이야기를 하며 아이의 한국어 능력이 높지 않은 집들도 보인다.

우리집이라고 처음부터 아이가 한국어를 못하던 것이 아니었는데, 아이가 어느덧 내가 남편 및 주변 세상과 덴마크어를 사용해 소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하기 시작했고, 아이의 덴마크어와 한국어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서서히 나도 아이와 덴마크어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요즘들어서야 아이가 다시 한국어에 좀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아이가 한국어로 답을 하지 않기 시작한 이래로 약 7년간 아이의 한국어 교육은 다양한 흥망성쇄의 길을 걸어왔다. 강하게 한국어를 몰아붙이면 된다는 이야기들도 여기저기서 들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빠르게 늘지 않는 한국어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는 엄마와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없냐고 크게 슬퍼하는 아이를 보고나서도 한국어 교육을 위해 그 감정을 무시하자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두명 모두 한국인인 부모를 둔 아이들 중에서도 한국어가 잘 안되고, 부모도 덴마크어가 잘 안되서 아이와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약간 머리를 한대 맞은 듯 했다. 미국에 사는 한인 가정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는데, 덴마크라고 다를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며 지금 애가 어느정도 한국어를 잘한다 해서 나중까지 꼭 그런다는 보장이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다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이가 네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 자기는 한국어 사용을 고수하고 있지만, 아이가 아빠와 대화하는 것이 자신과 대화하는 것에 더 깊이가 있음을 느낄 때 큰 마음의 갈등을 느낀다고 했다. 자기가 그냥 덴마크어로 언어를 바꿔야 하는 것인지.

아이가 예전보다 한국어에 많은 관심을 가진 지금, 이것을 최대한 이어가면 아이가 나중에 한국어를 정말로 배우고 싶을 때 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줄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는 목표를 여기로 정했다. 아이는 자신이 한국인의 뿌리와 덴마크인의 뿌리를 가진 사람이지만 덴마크인에 더 가깝다는 정체성을 가졌는데 그정도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아이는 한국어를 열심히 하는 것이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임을 인지했고, 그래서 조금 더 신경을 쓰려하고 있으며, 나도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하니 아이와 관계에 날카로운 부분이 없어졌다. 아이의 한국어 실력 부족이 나의 잘못인 것 같아 그로 인해 아이가 한국어를 하기 싫어하면 날이 서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게 무뎌졌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다보니 아이가 자라면서 끊임없이 어떤 기준을 정하는 문제로 마음의 갈등을 겪곤 하는데, 한국어는 이정도로 정리가 된 것 같다. 7년의 시간이 참 길었는데, 이제 편한 단계가 된 것 같다. 여기에는 물론 나 혼자의 마음의 갈등만 있던 것이 아니고, 남편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한국어를 지금껏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늘리고, 아이에게도 노출을 늘리려 많은 노력을 해온 그가 아니었으면 나도 이렇게 못했을 것이다. 토요일에 한글학교 가는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빠 덕이다. 아빠가 다니고, 엄마도 가급적 항상 학교에 같이 가니까 자기도 가는 거고, 거기에는 작은 한국이 있으니까.

풀타임 워킹맘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기 힘들어 엄마에게 죄책감을 갖게 한다는 풀타임 워킹맘의 위치. 덴마크의 엄마들은 대부분 워킹맘이고, 대부분은 풀타임으로 일을 하지만 다들 일상을 각자의 힘으로 굴린다. 우리도 시부모님이 멀리 사셔서 애가 아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일년정도였다. 아직 코로나 전이었었고, 재택 개념이 일반 회사원에겐 적용되지 않던 때라 도움이 너무 아쉬웠다. 그나마 그기간 중 애가 두돌가까이 되기 까지는 내가 대학원생이었어서 그냥 내가 석사 논문 쓰는 것을 못하는 정도로 넘길 수 있어서 유연하게 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두돌 지나고 나니 애가 그렇게 자주 아프지 않기도 하고, 중앙정부기관은 아이가 아프면 첫 이틀은 보육 휴가를 쓸 수 있어서 대충 넘긴 것 같다. 코로나 이후, 어디가 아프면 일하지 못할 정도엔 쉬고 (이건 원래 그랬고), 일할 정도긴 하지만 남에게 옮을만한 증상이 있으면 집에서 일하는게 보편화 되기도 했고, 상황에 따라 재택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풀타임 워킹 부모들의 일상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덴마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게 현실적으로 풀타임워킹맘의 일상을 쉽게해주는 것들엔 뭐가 있을까? (물론 이는 모두에 해당하는 건 아니다. 사무직이고, 내가 어느정도 업무시간을 조율하는데 재량이 있는 유연근무재도가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


  • 유연한 근무시간

주당 37시간의 근무시간인데, 나는 중앙정부 공무원이라 30분의 점심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중에서 9시부터 2시 반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근무를 해야 하고, 이 시간을 포함해 나머지 근로시간은 알아서 다른 시간에 배분할 수 있다. 매일 근무시간을 온라인 근로시간기록부에 기재하는데, 프로젝트별로 얼마나 시간을 할애했는지 시간을 기록하면 된다. 이 기록에 따라 초과근무한 시간을 모아서 다른 날 적게 근로할 수도 있고, 많이 모으면 휴가로 쓸 수도 있다. 이를 Flex timer라고 하는데 알아서 조절해서 쓰면 되니 어떤 날은 7시간 일하고 어떤 날은 8시간 일할 수 있다. 우리는 직장이 지방이전하면서 코펜하겐 시내에서 통근버스를 운행하는데, 여기서 일하는 시간도 근로시간으로 기록할 수 있고,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는 경우, 한시간은 집에서 일해도 된다. 막상 통근버스가 있어도 주로 자차로 출퇴근을 하다보니 러시아워를 피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러니 애를 픽업하고 나서 집에서 일을 더 해도 되고, 애를 데리고 어디 과외활동을 하러 가야하는 경우, 애를 기다리면서 일을 할 수도 있다. 발레학원 데려다주러 가면 거기서 일하는 부모들이 많다.

  • 한국밥상보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저녁식사

평일엔 외식을 잘 안한다. 외식 자체가 비싸기도 하고, 배달은 배달비까지 (한국보다 배달비가 많이 비싸다.) 추가되니 다들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다. 하지만 한국처럼 반찬을 가지가지 해먹을 필요 없이 간단히 메인 요리 하나, 샐러드, 밥이나 감자, 빵 같은 것으로 탄수화물 쪽을 채워주면 되는거라 애 픽업해서 같이 장 봐와서 요리해 밥 먹기가 그렇게 번거롭지 않다.

  • 이른 등교시간

학교 수업자체는 8시에 시작하지만 돌봄교실이 7시정도에 연다. 요즘 예산부족으로 곧 7시 15분으로 조정될 것이긴 한데 학교에 따라서는 6시 반에 등교시킬 수도 있다. 딱히 뭔가 활동이 있는 건 아니고, 아이가 종이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릴 수도, 책을 읽을 수도, 보드 게임을 할 수도 있다. 어른들이 있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말이다. 우리 집은 내가 저녁 요리 담당이라 (남편은 설겆이 담당) 회사에 통상 7시 15분 정도에 도착하게 출근을 해서, 남편이 자기 출근하는 길에 7시 반쯤 등교를 시킨다. 그러면 내가 회사에서 3시 좀 넘어서 퇴근하면 4시 좀 전에 픽업할 수 있다. 학교는 시마다 다른데, 우리 시는 – 같은 예산 부족 이슈로 5월부터 15분씩 단축되겠지만 – 월-목까지는 5시, 금요일엔 4시에 문을 닫는다. 수업이 한시까지 진행되고 방과후엔 오전과 달리 조금 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도자기나 뭔가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밖에 나가 놀수도 있고, 아이들도 많으니 할 수 있는게 늘어난다.

  • 아이들의 독립성

어려서 아이들이 뭔가를 스스로 하게 해주는 것은 사실 아이의 의지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걸 허용할 수 있는 부모의 여유가 있느냐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나도 내가 해주는 게 더 쉽고 빠르기에 애에게 기회를 주고 실패를 경험하고 여러번 시도해서 성공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나에게 꽤나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 나면 뒤로 가면 갈수록 아이도 부모도 수월해진다. 이미 두발자전거를 세돌 반이 되기 전에 마스터했는데,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넘어짐이 필요했고, 낮은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느라 아빠의 허리가 고생을 많이 해야했다.

화장실에 가서 큰 볼일 보고 뒤처리를 함에 있어서도 – 위생을 위해 내가 개입하고 싶어도 – 언젠가 이를 아이에게 완전히 넘기지 않으면 독립을 시킬 수가 없다. 학교에서 0학년 (유치원반) 시작하기 1년전에 만 5세 정도에 화장실 완전히 혼자가는 훈련을 시키는데, 한 3개월정도 자기가 하고 우리가 검사하는 식으로 하니, 독립의 의미가 없어지는 거 같아서 결국 완전히 손에서 놔야 했다. 엉덩이가 가려워지는 경험을 해야 자기도 더 잘 닦게 되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는 것도 다 알아서 한다. 옷을 혼자 찾아 입는 것은 이미 어린이집 다니면서 만 3세경부터 했고, 4세 경부터는 머리도 혼자 빗고, 5세부터는 자기 아침식사는 자기가 차려 먹는다. 뜨거운 밥과 국 이런것을 먹는 게 아니니까 가능하겠지만, 아침에는 그런것을 먹을 여유도 없다. 5시 40분에 일어나서 나도 내 준비해서 애 도시락까지 싸주고 6시 40분엔 문을 나서야 하고, 남편은 6시 반에 일어나서 자기 준비하고 내려와 일곱시 아침 식사할 때쯤이면 나는 이미 나가고 없으니까 애가 알아서 혼자해야하는 부분이 꽤 크다. 자기가 알아서 하니 뭐가 마음이 드네 안드네 할 일이 없다.

  • 완벽하지 않은 집안일

집안 청소는 일주일에 한번만 한다. 화장실 청소도. 그냥 정리만 하고 살다가 주말에 모든 집안일을 한번에 처리한다. 주방이야 항상 치우고 닦는 것이니 일주일 사이클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외엔 다 그렇게 한다. 주택에 사는 것이라 소소하게 집안 관리할 일들도 있기에 그 이상 집안일을 자주 하고 살 수가 없다. 집안일의 퀄리티를 특별히 올리려거나 그런 거에 힘을 쏟기 어렵기 떄문에 꼭 해야 하는 일을 딱 필요한 수준으로만 하고 산다. 엄마가 워낙 깨끗하게 사셔서 나도 집을 지저분하게 두고 살 수는 없는 사람이지만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것처럼 항상 깔끔하게 하고 살 수도 없고, 아이 방은 주말 한번 정리할 때 빼고는 엉망진창으로 어지러워져도 내버려둔다.

  • 명확한 규칙과 루틴

아이는 하루에 게임을 하던 텔레비전을 보던간에 30분의 스크린타임을 갖는다. 내가 대충 시간을 보고 있긴 하지만 자신이 타이머를 맞추고 한다. 평일에 친구네 집에 가서 놀 경우, 저녁식사를 위해 6시 전에는 집에 돌아온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가방부터 풀어 도시락과 체육복 등 정리할 것부터 정리해야 놀 수 있다. 7시 15분엔 올라가서 목욕을 하고, 욕실을 건조시킨 후 (석회 때문에 스퀴지로 물기를 제거하고 타월로 깔끔히 물기를 닦아내야 한다.) 잠옷 갈아입고 양치질 한다. 우리가 양치질은 한번 더 시킨 후 – 덴마크에서는 충치방지와 모토릭 발달과정상 수준을 고려해 만 10세까지는 부모가 양치질에 개입하라고 권고한다. – 여덟시 쯤 침대에 들어가 남편이나 내가 책을 읽어준 후 여덟시 반이면 잠을 잔다. 이 부분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 지킨다. 일찍 자는 것 같지만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기 때문에 8시 반에는 잠을 자야한다. 이 부분 때문에 가족이 다 같이 저녁에 어디가서 늦게까지 있다가 오고 이런건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 애가 10대가 되어야 취침시간이 좀 늦어지고 저녁시간 활용이 좀 더 다채로워지는 거 같다.

  • 신체활동 중심의 과외활동

아이는 주중에 발레와 체조를 다니고, 주말엔 한글학교를 간다. 한글학교는 거의 놀러가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느는 걸 보면 뭔가 배우긴 한다. 학교에서는 숙제도 내주지 않고 나도 딱히 공부를 시키지 않기에 아이는 그냥 노는게 일과다. 그림그리고 책 읽는 시간 빼면 친구랑도 혼자서도 잘 논다.


월화목토는 내 저녁시간, 수금일은 남편의 저녁시간이다. 스포츠를 하거나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저녁시간을 갖지 않는 날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을 한다. 저녁화목토는 내 저녁시간, 수금일은 남편의 저녁시간이다. 스포츠를 하거나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 저녁시간을 갖지 않는 날에 아이를 재우는 담당을 한다. 각자 스포츠를 하더라도 돌아오는 시간이 그렇게 늦지 않으니 우리끼리 시간은 그 남은 시간에 보내면 된다. 애가 하나만이라 가능한 것일 수 있는데, 주변에서도 워킹맘이라 힘들어하고 그런건 의사같은 특수 직종 빼고는 흔히 듣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비유연한 근로시간때문에 한국에서 적용가능한 방식은 아니겠지만, 사회가 좀 더 유연하게 바뀌면 워킹맘도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혼자 하교하는 아이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면 아이의 20분 조금 덜 걸린다. 아주 먼 것도 아니지만 가깝지도 않은 거리.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미 작년부터 혼자 집에 걸어가는 아이들이 있긴 했는데, 최근에 들어서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이도 집에 혼자 간다고 아이가 말을 해왔다. 그래서 자기도 곧 그렇게 하고 싶다고.

작년부터 연습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러려면 내가 집에 차를 데고, 걸어가서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지라 겨울들어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날도 밝아지기 시작하고, 주변 친구들의 사례도 보고 하면서 슬슬 연습을 해야겠다 싶었다. 집에 오는 길에 왕복 4차선의 길을 횡단보도로 건너야 하는데, 거기에서 하나가 건너는 방향으로 우회전을 하거나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차량들이 제법 되는 길이라 아이도 확인을 잘 하고 건거야 한다. 또 중간에 보행자 우선 횡단보도가 2개 있는데, 아무래도 신호가 있는 것은 아니니 아이가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휙 지나가는 차들도 있고해서 이도 잘 보고 건너야 한다. 뒤에서 한 300미터 정도 떨어져 아이가 걸어가는데, 사실 애가 어떻게 건너는지 못보는 구간도 제법 있다. 애초에 내가 애가 건너는 걸 잘하는지 보고 감독하기 보다는,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뒤따라가면서 이를 볼 수 있다는 점, 아이도 내가 뒤에 있어서 든든함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좀 더 자기의 보행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점 등 때문에 같이 거리를 두고 걸어가며 연습을 하고 있다.

집에서 보면 어느새 불쑥 큰 모습에 깜짝 놀래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또 이렇게 뒤에서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큰 책가방에 비해 그닥 크지 않은 아이. 사람들 사이로 그렇게 작은 아이가 혼자 책가방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모습 등을 보면 아직도 너무 작은 것 같고. 그러면서도 혼자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앞으로 혼자 걸어나갈 연습을 하는 아이를 통해 나도 아이를 독립시킬 연습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약간 외롭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애를 위해 뭔가 해줘야 하는 기간이 정말 짧게 남은 것 같기도 하고, 보다 열심히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크면 엄마아빠랑 보내는 시간보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더욱더 중요해질텐데 말이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아이

한국어에 대한 자기 평가가 야박한 아이. 아무래도 다른 건 자기가 노력하는 만큼 금방 느는데 반해 한국어는 그렇지 않아 유독 그런 것 같다. 딱히 평소에 자기 평가가 야박한 아이는 아닐지언데, 한국어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것이니, 나에게 말을 안해서 그렇지 나름 자기 마음 속에 한국어와 관련된 힘듦이 있는 것 같다.

한글학교에서 이번학기에 윗반으로 아이를 올려보냈다. 처음 시작한 방울새반은 말도 잘 못하고 한글도 못읽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덴마크어로 강의를 하는 반인데, 거기서 1년 반 정도 수업을 듣다가 이번에는 한글을 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종달새반으로 올라갔다. 한글을 뗐다는 건 능숙하게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한글자 한글자 씨름을 하며 실수도 하면서 읽을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글을 떼면서부터는 한국어 습득이 다른 양상을 띌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 이미 모국어로서의 한국어 습득시기는 놓친 아이이기에 외국어로서 한국어 습득을 해야하는데, 글을 통해서 문장을 뜯어보고 자신의 모국어와 비교해가며 이해를 해볼 수 있게 된다.

아이가 파괴된 형태의 문장을 구성해서라도 나에게 한국말을 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잘하고 싶다고 이야기도 하고. 나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아이에게 한국말을 잘 가르치지 못한 것은 내가 덴마크어를 잘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어서기도 해서, 아이가 나에게 덴마크어로 대답을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서서히 나도 한국어를 놓아버린 탓이다. 나를 앞에 두어서 그랬는데,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기에 아이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겹치는 이 순간을 놓쳐버리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아이의 양육에 내 품이 들어가는게 줄어들면서 나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는데, 아이에게 시간을 더 할애해야할 시기가 온 것 같다. 학습이나 놀이 등 에 있어서 짧은 시간이나마 에너지를 할애해 아이가 원하는 것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간 말이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 어쩌면 이런 아이가 내 세상으로 들어왔누…

아침 루틴

아침 6시 40분이면 문을 나선다.

5시 50분. 아침에 아이와 일어나 명상음악을 틀고 짧은 스트레칭과 온몸을 구석구석 마사지해 깨우고 오늘 하루에 기대되는 일을 돌아가며 두 개씩 이야기하고 나면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이가 1학년 시작하면서부터 한 루틴인데, 둘이 침대 위에 마주 앉아 각자 몸을 구석구석 주먹으로 두들기고, 손바닥과 손가락 끝까지 하나씩 꾹꾹 눌러주고 나면 잠이 확 깨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처음엔 비몽사몽한시 50분. 아침에 아이와 일어나 명상음악을 틀고 짧은 스트레칭과 온몸을 구석구석 마사지해 깨우고 오늘 하루에 기대되는 일을 돌아가며 두 개씩 이야기하고 나면 침대에서 일어난다. 아이가 1학년 시작하면서부터 한 루틴인데, 둘이 침대 위에 마주 앉아 각자 몸을 구석구석 주먹으로 두들기고, 손바닥과 손가락 끝까지 하나씩 꾹꾹 눌러주고 나면 잠이 확 깨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음악을 틀면 처음엔 마치 몽유병에라도 걸린 모냥으로 비몽사몽한 눈으로 스트레칭하고 목을 휘적휘적 돌리던 아이도 몸을 두들기기 시작하면 서서히 잠이 깨는게 눈에 보인다. 덕분에 아침에 애 깨우느라 고생한 적이 없었다.

방을 치우고, 환기하고, 각자 옷 갈아입고 양치질하고 머리빗고 하면 6시 20분. 나는 아이의 도시락을 싼다. 샌드위치 식빵 세 조각에 버터를 바르고 하나엔 살라미, 또 다른 하나엔 브리치즈, 마지막 하나엔 초콜렛판을 얹고, 스낵 치즈를 넣으면 빵종류를 담은 통 하나가 완성된다. 다른 통에는 당근스틱, 오이 슬라이스, 사과 또는 다른 과일을 넣어 마무리 하고, 마지막 작은 통엔 후무스를 넣는다. 물통에 물을 채우고, 보온통에 같이 넣을 냉매를 꺼내 준비한 후 아이에게 도시락 챙기라 하면 집에서의 내 아침 일과는 끝이난다.

그 와중에 아이는 빵과 얹어먹을 것을 그날 취향에 맞게 꺼내어 아침 식사를 홀로 한다. 옌스는 내가 도시락을 싸고 있는 중간에 일어나 씻고 출근 준비를 시작하는데, 내려와서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나는 작별인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그러면 아이는 학교가기 전까지 여유시간에 자기 혼자만의 놀이를 즐긴다. 사부작사부작.

그렇게 아침에 나와 회사에 7시 20분정도면 도착하는데, 오랫동안 출근길 전부가 어두웠다. 그러다가 최근에 하늘 끝자락이 푸르스름한 것이 보였다면 이제 7시면 환해진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지만 해뜨기 직전에 완전 동튼 느낌. 이제 출근길이 훨씬 안전한 느낌이다. 이 겨울의 끝자락 아침 동트기 전 하늘이 참 이쁜 것이 파스텔 핑크, 하늘이 묘하게 어우러진 느낌? 그리고 들판에는 안개가 마치 낮은 구름처럼 층을 이뤄 끼어서 신비스러운 느낌을 조성한다.

겨울이 가고 있다. 올 겨울 가장 추위를 보이는 요즘이지만 이 끝에 봄이 오고 있는게 느껴진다.

Børnenes sociale liv

Børnene har deres eget sociale liv. Det, at de er små, gør ikke deres problemer i relationer med venner mindre. I dag sagde min datter, Hannah, at hun ville opføre sig irriterende over for sin veninde, som ofte selv virker irriterende. Jeg var ved at sige, at det ikke er en god måde at reagere på, når andre opfører sig sådan, men jeg lod det ligge. Måske får jeg en anden chance for at snakke med hende om det senere – efter hun selv har prøvet det. Om det var sjovt, om det føltes godt, eller om hun alligevel lod være. På det tidspunkt kan jeg tage udgangspunkt i mit lille råd om hendes relationer.

Hannah har en anden veninde, som hun er så glad for. Hun bor tæt på os, og de kan rende ud af døren og lege sammen, når som helst de har lyst. Det gør mig glad, at hun har fundet en så god veninde så tæt på. Men ifølge Hannah vil veninden bestemme, især i skolen, hvornår Hannah må være med i legen, hvem der ellers må deltage, og hvad de skal lege – eller ikke skal lege. Hun kan hurtigt blive jaloux og sige ting, der gør Hannah ked af det. Der er altid to sider af en historie, men jeg tror på Hannah og det, hun fortæller. Hun er en pige, der prøver at opføre sig så pænt som muligt og er meget lydhør over for voksne, regler og autoritet. Hun har integritet – et alt for tungt ord for et barn på otte år, men ikke desto mindre passer det på hende.

Jeg kan godt mærke, at Hannahs veninde er god til at bruge sin sociale magt over for sine venner, for hun ved jo godt, at hun er populær. Hun har en manipulerende tilgang og kan sige noget nedgørende om de ting, hun bliver jaloux på. Hun vil straffe sine venner, hvis de ikke gør, som hun ønsker, og belønne dem ved at være sød, hvis de til gengæld adlyder hende.

Jeg kan sagtens forestille mig, at Hannah på et tidspunkt vil blive ked af det, hvis deres relation begynder at føles toksisk. Jeg kan også forestille mig, at hun alligevel vil forblive veninde med hende. Jeg skal ikke blande mig i, hvem hun bliver venner med, eller hvordan hun danner relationer. Men jeg kan i det mindste give hende råd om, hvordan hun beskytter sit hjerte i sådan en relation – hvis det ender med at blive nødvendigt. Jeg kan også minde hende om, at relationen fra mit perspektiv virker toksisk, så hun selv kan vurdere, hvor tæt et venskab hun ønsker at have.

아이와 한국어

2월이면 아이의 한글학교가 개강한다.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를 대상으로 덴마크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방울새반에 다닌지도 어느새 2년이 흘렀고 이제는 한글을 어느정도 읽을 수 있게 되어 다음반인 종달새 반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아이는 꽤나 당황하고 두려워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아이들과 총 다섯명이 함께 넘어간다고 했음에도 자기는 그렇고 싶지 않다는데, 우선 너무 어려우면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한 한달만 해보자고 하고 설득을 했다. 다행히도 그런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고려해 교장선생님께서 다른 선생님들과 상의 후 종달새반에 덴마크어 가능 보조교사를 배치하였다고 공지를 해주셨다.

원체 내가 한국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기는 했지만, 쓸려고 해도 저항하는 시기가 제법 있었기에 아이 한국어 교육은 집안에서 꽤나 부침을 겪는 항목이었다. 내가 덴마크에 살기 위해 덴마크어에 유창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만한 대가는 아이의 이중언어교육 분야에서 톡톡히 치른 셈이다.

요즘은 중간중간 뜬금없이 한국말로 이야기해도 못알아듣는다고 덴마크어로 바꾸려는게 아니라 모를겠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고, 이를 최대한 한국어로 설명해주려고 할 때 짜증을 내지 않는다. 예전보다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 작용한 것도 있는 것 같고, 여러가지 한국문화컨텐츠가 덴마크에도 퍼지면서 한국어 사용으로 인해 자신의 다름이 두드러지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줄어든 것도 있는 것 같다. 데릴러 가면 아이들 앞에서 자신이 주도해서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에서 그게 가장 두드러진다. 로제와 브루노마르스의 아파트 노래가 히트를 치며 아이들의 틀린 “아파트”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하면서 자신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봐도 그렇고.

나도 한국인이지만 덴마크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지며 덴마크 거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해지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이를 드러내는 문화적 향유나 표현을 크게 하지않는 것을 생각해볼 때 아이가 한국인이라고 강하게 느끼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안다. 한국에 휴가로나야 다녀온 곳이라 자세히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이가 지금보다 한국어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나중에 자신의 뿌리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랄뿐이다.

첫 돈벌이

아이가 나가서 돈을 벌어왔다. 자기가 갖고 있던 장난감 몇개를 친구와 함께 길에서 판 결과다. 두 아이가 햇볕이 따사로웠던, 햇살 없이는 쌀쌀할 수 있던 가을날 길가 잔디밭에 앉아 물건을 쫙 늘어놓고 판매한단다. 하나는 대여섯개 들고 나가서 네개를 팔았고, 다른 친구는 아주 한보따리 싸갖고 나가서 비슷하게 판 것 같다. 소득은 35크로나. 7000원을 벌어왔다. 사실 누군가에게 팔지 않는다면 멀쩡한 것은 골라 내가 적십자에 기부를 하기 때문에 이건 가정경제 차원에서도 정말 공돈이 생긴 거 같은 셈이다.

누구한테 팔았냐고 물어봤더니 이웃집 조금 어린 여자애가 하나 사갖고 나머지는 좀 더 몇집 떨어진 곳에 산 할머니가 사셨다고 했다. 뭐하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하나가 “안쓰는 물건 팔아요. 할머니는 손주 있으세요?” 하고 여쭤봤단다. 손주가 있다는 대답에 “손주한테 필요한 거 사주세요. 선물 줄만한 거 있나 보세요.”라고 제안을 했는데 “손주들이 다 너무 어른이라 애가 있어서 손주한테 사줄만한게 없네.”는 거절을 또 들었단다. “그럼 증손주한테 사줄 거 보시면 되겠네요!” 라고 말씀드리니 할머니가 웃으시면서 이것저것 사가셨다는 것이다. 결국 그 한 손님 잘 잡아서 둘이서 70크로나어치를 팔았단다.

어느새 아이들이 커서 나름 흥정도 하며 물건을 파는 것이 어찌나 귀엽고도 대견하던지. 앞으로 더 자주 한다더라. 그런거 하고 싶다고 노래를 물러도 하라는 말 외에는 뭔가 행동을 보이지 않는 엄마가 그닥 도와줄 거 같지 않으니 알아서 우물을 파는구나. 그래. 목마른 자가 우물을 직접 파야지. 그렇게 크는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