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전까지 할 일

올 겨울 참 추울 거란다. 지구 온난화는 계절의 양극화와 예측불가능성을 심화시킨다. 그래도 비가 오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겨울보다는 춥고 건조한 겨울이 좋다. 따뜻한 겨울은 거센 바람을 의미한다. 작년에 평균 풍속이 초속 15미터인 날이 20일 가까이 지속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초속 10~20미터의 바람이 계속 분다는 뜻이다. 우산을 쓰는게 큰 의미가 없도록 비가 직각으로 오는 기분이고, 우산도 뒤집어지니 그냥 우비 입고 다녀야 한다. 그래도 얼굴이 젖는 건 어쩔 수 없으니 그 젖은 얼굴이 영상 1도 정도 되는 기온에서 거센 바람에 노출된다고 하면 상상이 되나. 그런 겨울은 정말 최악이다. 그래서 올 겨울 추울 거라는 소식이 반갑기만 하다.

이제 석사 프로그램의 마지막 수업 한과목만 남겨두고 있다. 그게 끝나면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마치고 논문 쓰는 것만 남았다. 물론 1년을 쉴거라 진짜 다 마치려면 1년 반정도 더 있어야 하지만, 정말 끝을 향해 가는 기분이다. 덴마크 사회의 편입을 위해 언어를 배울 시간도 벌면서 내가 조금 더 하고 싶었던 공부를 국가 교육 보조금 받아가며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가 어떻다는 것을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지난달, 이번달 생활비가 확 줄만큼 대외 생활도 줄이고 거의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했는데, 시험도 다 끝났겠다, 리딩리스트도 아직 없겠다, 정말 제로스트레스로 집을 나서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9시경부터 시작된 모닝커피가 점심으로 이어져 책방투어까지 하고 집에 돌아오니 2시 반이 되었다. 빌 브라이슨의 모국어라는 책을 사왔는데, 영어에 대한 책이란다. 요즘 내 마음의 양식을 위해 학업 비관련으로 읽은 책이 너무 없어 마음이 빈곤해진 기분이었는데, 이 책은 정말 학업에 관련이 없는 책이라 사왔다. 이 책 말고 사고 싶은 책들도 있었지만, 이젠 가급적이면 책도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해서 딱 한권만 하면서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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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안쪽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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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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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모국어

출산 전까지 할 일들이 많이 있다.

아기 침대, 유모차 커버, 유모차 안에 들어갈 리프트 등을 사야 하고, 나머지는 애가 나오면 사던가 하려한다. 미리 사놨다가 안쓰는 것 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너무 많이 해와서 이젠 그런 거 안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기에. 편리함과 약간의 할인을 버리면 정말 필요한 소비를 중심으로만 하게 되서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옌스가 한국어 책 한권을 거의 끝마쳤다. 이제 그 안에 써있는 표현들만 갖고 이야기를 하나 써달란다. 출산전까지. 그러면 그걸 싹 다 외워가며 공부하겠다고. 나의 기괴한 유머를 반영한 스토리를 써줘야겠다. 멀쩡한 문장도 이상한 순서와 맥락으로 배열하면 웃기게 되니까. 그러면 외우기 더 쉽겠지. 흠흠…

할머니께 쓰다가 7월말을 기해 중단했던 편지도 다시 써야겠다. 학기가 시작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니 쓸 힘이 안나더라. 사실 편지 쓰는 건 내가 좋아해서 쓰는 일인데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고 나니 내용이 건조해지더라. 머리가 온통 학업에만 쏠려있어서 그런가보다.

피아노도 다시 치려한다. 남들 다 한다는 태교, 난 그냥 경제학 공부로 하련다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는데, 피아노도 좀 치고, 비생산적인 일들도 많이 하면서 정신적인 여유를 찾아보련다.

원래는 6개월 쓰려다가 한국 방문 계획으로 육아휴직을 1년 쓰기로 결정했는데, 아마 복귀하고 나서도 애 보육원 다니면 감기나 이것저것 질병을 옮아와 온전히 논문 쓰는데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 미리부터 준비를 하려한다. 우선 미리 지도교수에게 주제를 받아서 Contract 없이 천천히 자료 수집 및 문헌연구부터 시작하다가 나중에 육아휴직 막판에 애를 보육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슬슬 시작하면 6개월안에 써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희망 지도교수에겐 미리 언질을 해두었고 구두 허락은 받았으니, 이번 블록부터 슬슬 시동을 걸어야지.

이렇게 하고 나면 어느새 1월말이 되서 애를 낳아야 할 시기가 될 거다. 제일 추운 겨울의 정점을 찍었을 때쯤 하나가 태어나면 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삶을 받아들여야 하겠지. 옌스는 아직은 설레고 좋은 것보다는 두렵고 긴장된다고 하는데, 막상 애가 태어나면 정신이 없어서 그런 저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을 것 같다.

시험이나 데드라인 등은 다 좋아하진 않지만, 한템포 끊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좋구나…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뒤죽박죽 장문

부제는 “대학원 생활의 즐거움과 내 정체성”

이번 구술시험은 그간 봤던 시험 중 가장 터프했다. 외부 시험관이 그렇게 많은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며 압박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10분 프레젠테이션에 10분 질문일 거라고 당초에 설명을 들었으나 시험 시간은 30분씩 배정되어 있었고, 막상 들어가서는 프레젠테이션 중간마다 질문이 들어와 발표와 질의응답이 뒤섞인 시간이 되었다. 시간 자체도 35분~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 부분은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답을 한 질문이 2개나 될 정도로 내 질문의 답에 또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그것 때문에 10점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중간에 이것저것 교수에게 귀찮을 정도로 질문했던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사실은 그러한 질문이 10점을 줄 것인지 12점을 줄 것인지를 보기 위해 한 질문이었던 것이었다.

우리 그룹 멤버를 모두 불러 각각의 개인시험 결과를 알려주고,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내가 가장 방어를 잘 해서 가장 깊게 물어보았다고. 나보다 먼저 시험을 친 그룹멤버들이 질문이 어렵긴했지만 대충 답변은 다 했다며 편하게 생각하라길래 오히려 내가 더 못봤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초반 2/3까지는 정말 열심히 하다가 막판에 슬럼프에 빠지며 3주를 많이 놓쳤기에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그 앞에 많은 고민을 하고 따라갔던 게 해당 수업의 에센스를 이해하기엔 중요했었나보다.

지난 1년이 약간 넘는 기간동안 영어로 내 주장을 펼치고, 논거를 제시하고, 상대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받아들일 부분을 받아들이고, 반박할 것은 반박하는 부분에 있어서 많은 훈련이 된 것 같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 사회 경험이 수업시간 중 적극적 참여를 가능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훈련이 된 것이다.

목요일에 첫 8시간 에세이 시험이 있다. 공부하다가 이렇게 블로깅으로 딴 짓 하고 있는 건데, Political Ecology라고 선택과목이다. 재미있는 부분도 없는 부분도 있었는데, 텍스트의 유형과 구성 등도 경제학 및 생태학 저널 텍스트와 너무 달라 학기 내내 힘이 들었다. 인류학과 정치경제학, 정치과학, 생태학이 결합된 수업인데다가 많은 텍스트가 철학적이라 정말 적응이 안되었다. 양도 많고, 어휘도 다르고 엄청 방대하다. 뭔가 내가 사용하는 어휘가 이렇게 많다 하고 뽐내는 향연의 텍스트 같은 느낌? 미국에서 온 학생들도 사전을 찾아야 하는 단어가 있을 정도였으니…

이 시험은 내 최초의 4점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편히 접근하기로 했다. 성적이 나쁘게 나오면, 아… 내가 정치과학은 아니었다 하고 변명하기로 하고 말이다. 우선 그렇게 마음 먹고나니 조금 편해져서 설렁설렁이나마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었으면 아마 불안해서 정말 공부가 안되었을 것 같다.

이 늦은 나이에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 다닌 건 어찌 보면 무모해도 보이지만 참 잘한 일이었다. 동기들과 학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화, 정치, 예술, 여행, 스포츠, 파티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항상 열정에 차있고 동기부여되어 있는 그들을 보면 내가 그들과 같은 삶을 다 누릴 수는 없지만 그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달이 된다. 각각의 국가별로 다른 상황에 대해 듣는 것도 즐겁고, 별 중요하지도 않은 농담으로 시시껄렁하게 웃는 것도 좋다. 간혹 힘든 상황이나 여건에 대해서 서로 묻고 의견을 나누며 진지해지는 것도 좋고,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논하며 나에게 조언을 구할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도 기쁘고 고맙기도 하다.

조금 뒤면 엄마가 된 나이지만, 난 사실 모성이 풍부한 엄마는 아니다. 아마 정말 엄마다운 엄마라기보다는 그냥 인생 선배나 친구 같은 엄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신을 한 지금도 애에 대한 대화보다는 다른 것이 더 재미있다. 애가 태어나면 여러 궁금증과 내가 배워야 할 것들 때문에 내 화제의 중심에 아이라는 요소가 더 늘어나긴 하겠지만 세상이 뒤바뀌듯 내가 완전히 뒤바뀌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책임감있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겠지만 아마 애를 물고빨고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애가 일순위에 딱 등장하는 그런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뭘 이야기해도 다 애 이야기로 귀결되는 대화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결혼해봐, 지금 우리하는 이야기가 이해될 걸?”, “임신해봐, 또 달라질 걸?” 이런 질문과 같이, “애 낳아봐, 지금 생각한 대로 될 거 같아?”이라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아마도 “내 인생이 딱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지향하는 방향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기에, 인생에 한가지 정답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가 될 것이다. 하나가 태어나도 나는 하나 엄마가 아니라 나로서 존재할 것이고, 항상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뭔가 삐죽 나와서 튀는 사람이었던 나는 큰 틀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의 존재는 인격적으로 훈련을 할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고, 많은 시행착오와 반성, 기쁨, 괴로움 속에 작고 큰 깨달음을 얻고 조금이나마 더 성장을 할 수 있겠지만, 갑자기 하나의 엄마로 뒤바뀌어 모성이 내 인생의 중심으로 부각될 수는 없다. 그리고 애의 성공이 내 인생사 목표도 아니고, 그게 나를 평가하는 잣대도 아니다. 난 인간이니 실패도 하겠지만, 내가 우리 부모님의 육아상 여러 의사결정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내 시행착오에 대해 크게 자책하거나 나를 비하하고 싶지 않다.

사람의 정체성은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탈바꿈을 하게 마련이다. 엄청난 변화도 있을 수 있고 소소한 변화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재탐구해야 인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탐구가 잘 이뤄지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야할 일만 명확해지면 남은 것은 실행 뿐이다. 실천으로 옮기고 나서는 내가 원하는 것에 최소한 가까운 곳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크게 불평할 것이 없다. 내가 불평을 엄청 하고 있다면 현재 잘못된 곳에 있다는 것. 내가 직장을 관두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것은 바로 그 불평을 엄청하고 있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애를 낳아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의 어려움 등에 봉착한다 해도 그 안에서 최선의 길을 모색하고 나아가도록 노력할 것이고, 내가 노력을 할 동력만 갖고 있고, 실제 노력을 하고 있다면 난 불평하지 않을 거다.

예전에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 수록 와닿는다. 예전엔 ‘어차피 대천명이니, 사람이 크게 노력할 거 없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이게 어찌 보면 ‘평안의 기도’라는 짧은 기도문과도 맞닿아있는 이야기 같다.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요즘 내 머리를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뒤죽박죽 써서 정신이 없는 길고 산만한 글이 되었지만, 이게 말 그대로 내 요즘 머리속에 계속 흐르고 있는 생각들이다. 모성은 나의 성장의 원천이 되겠지만 나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닐 거라는 점, 그리고 더욱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자는 것이다. 난 이제 갓 36살, 앞으로 살날이 산날보다 훨씬 긴 젊은 사람이니 아직도 성장하고 발전을 위해 정진해야 하고, 그런 게 나니까.

시가와 친정사이, 그리고 행복의 레시피

아무래도 남편네 나라에 살다보니 친정보다 시가와 자주 보게된다. 물론 연락이야 비교할 수 없이 친정과 더 많이 하지만 보는 주기는 시가가 훨씬 잦다. 시부모님과 연락은 주로 문자메세지로 이뤄지는데, 간간히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로부터 메세지를 받고 나도 두분께 메세지를 보낸다. 주로  두분을 수신자로 헤딩에 넣어 시어머니께 문자를 보내드리지만, 혹여나 그게 섭섭하실까봐 시아버지께 보내기도 한다. 전화는 주로 시어머니와 이뤄지는데, 내가 전화를 드리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주시기도 한다. 주기로 보자면 한 2주에 한 번 정도?

옌스는 우리 부모님께 직접 연락을 드리지는 않고 내가 연락을 드릴 때 옆에 있으면 안부를 전하곤 한다. 영어로 아빠와는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아직 옌스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나 없이 부모님과 대화를 할 수 없기도 하고. 아마 이부분은 우리 부모님이 조금 섭섭해 하실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한데, 여긴 약간 자기 부모님에 대한 연락이나 그런건 셀프인 부분이 많아서 딱히 내가 뭐라 이야기하긴 애매하다. 시부모님께 연락 드린 것도 시부모님이 먼저 문자로 연락을 주셔서 답을 하다보니 나도 답을 하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아, 내가 조금 너무했나?’ 싶어 전화로 한 번 연락을 드렸더니 그 다음부터 조금씩 전화로도 연락을 주신 거였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아마 내가 좀 역할이 부족했나 싶다. 양쪽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하면 그냥 내가 잘 지낸다고 양쪽에 전할 뿐이지, 안부를 물었다는 사실을 옌스에게 전하는 건 잘 안했다. 옌스는 누가 전화나 문자로 연락하며 내 안부를 물으면 꼭 나에게 그 사실을 전하곤 했는데. 그런 사실을 듣고 나면, ‘아. 그 사람이 내 생각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걸 떠올려보면, 나도 그랬어야 했었는데… 옌스가 괜히 우리 부모님은 자기 안궁금해하나 싶어하겠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국제결혼이라고 시가와의 갈등이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는게 다 똑같다고, 여기도 가족간의 갈등이 다 있는 것이고,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도 집안 따라, 사람 따라, 국가별 문화 따라 갈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렇다. 다행히 난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시댁을 만나 아무런 문제 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는데, 항상 그걸 당연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국제결혼은 양가의 문화가 만나는 것이라 나 뿐 아니라 시가 입장에서도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부모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이 곳의 문화를 내가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는 우리 문화를 시부모님이 받아들일 것이냐 같은 작은 문제부터 그렇다. 옌스는 처음엔 이상할 것 같다고 했지만, 시부모님께 내가 우리 문화를 설명하고 그래도 되겠는지 여쭤봤을 때 시부모님은 매우 좋아하시며 (그런 문화냐고 놀라시긴 했지만) 그러라고 하셨고, 그분들 또한 나를 딸 해인이라고 불러주신다.

시가를 방문해서 집안일을 거드는 문제부터, 시부모님이 우리집에 오셨을 때 어느 방이든 편히 드나드시는 것까지 다 다르다. 이건 그냥 나라간의 문화차이에 집안 차이가 겹쳐 있어, 어느 까지가 나라의 문화고 가풍인지의 경계가 모호하고 나로선 구분해내기가 불가능하다. 간혹 내가 생각하는 시가와 며느리 사이의 경계를 넘어선 행동들에 살짝 놀라는 일이 있더라도, 그게 만약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하실 일에서 벗어나있지 않다면 그냥 별 의미없이 받아들이기로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모여 같이 이동하는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기억이 정확히 안나지만 시어머니께서 옌스 옷인가 소품인가를 하나 챙기시려고 침실 옷장을 여셨던 일이 있었다. 순간은 놀랐지만, 나와 같이 살기 전까지는 매우 편히 드나드시던 아들네 집이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아실 것이고, 옷장을 여는 일이 갑작스레 터부시될 일도 아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며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내가 시부모님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내가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과 같을 수 없듯이 시부모님이 옌스나 시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시부모님이 나를 딸과 똑같이 대하지 않으신다 해서, 아니면 옌스 생각을 하시는 것만큼 내 생각을 안하신다 해서 섭섭하지 않고, 섭섭해 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런걸 느낀 바도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해도…) 같이 사는 아들이 행복하기를 위해서이든 어떤 이유이든 내가 잘 지내고, 잘 지내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어찌 상대에게 기대하랴.

명절 스트레스도 없고, 연락 자주 안한다 타박하는 사람도 없고, 가정 대소사는 다 직접 챙기는 남편이 있으니 시가 문제로는 난 아주 땡잡은 기분이다. 내가 시부모님을 좋아하는 것처럼 옌스도 우리 부모님을 좋아하고, 특히 내년 한국에 방문해 우리 부모님과 지내며 혹여나 엄마와 단둘이 있는 순간이 생길 때에 대비하려고 옌스가 지금 바짝 한국어를 공부하는 걸 보면 참 고맙다.

반대로 옌스는 굳이 그렇게 안해도 되는데 자주 시가에 연락을 하는 나에게 참 고마워한다. 자기 가족은 자기가 챙기는 셀프문화가 자리잡힌 이 곳에서 자발적으로 꾸준히 연락을 하고 가까이 지내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연애 초기에, 자기 가족과 내가 만나는 자리가 몇번 있고 나서,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며, “가족과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에게도 좋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너는 나와 함께하는 것이지, 내 가족과 함께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여나 내 가족과 너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하면 난 네 편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옌스이니 물론 내가 가족과 잘 지내길 기대했겠고, 나도 그들이 이미 마음에 들었지만, 저렇게 이야기해준 자체에 마음이 정말 든든해졌었다.

이런 고마운 감정이 조금씩 쌓이는 걸 모아두었다가 간혹 표현하곤 한다. 그러면 옌스나 나나 모두 이런 것들 당연시 하지 말자며 이런 소소한게 삶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에 공감하는데, 이런 게 서로 잘 맞는다는게 참 감사하다.

이제 불과 3년밖에 안된 커플이지만 정말 큰 갈등없이 행복하게 잘 살아온 것에 대해 요인을 분석해보자면,

  1. 우선 라이프스타일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 금전감각과 관리, 건강/체력관리, 가족과의 관계, 인생 전반에 걸친 목표와 생활 태도, 집안 관리 등등
  2. 서로에 대해 어떻게 해주길 기대하는 점이 없다거나, 딱히 기대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려는 점
  3. 서로가 하는 행동이 혹여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게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마음 상하게 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4. 원하는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정확히, 또 솔직히 말하는 것
  5. 상대가 내 요구에 거절하더라도 이유가 합당하면 받아들이는 것
  6. 감사함과 사랑함을 작든 크든 꾸준히 표현하는 것
  7. 침묵 고문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한 바 있다.)
  8. 주말 하루는 꼭 둘만의 데이트 시간을 갖는 것 (하나가 태어나면 다른 형태로 바뀌겠지만)
  9. 서로가 각자의 취미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적당한 수준의 개인 공간/시간/자유를 주는 것
  10. 서로를 위해 상대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에 노력하는 것
  11. 우리 문화가 이렇다고 강요하지 않고 서로 대화를 통해 타협하는 것
  12. 우리의 현재 생활와 주어진 것에 대해 당연시 여기지 않는 것
  13. 이런 우리의 삶의 방식을 친정과 시가 모두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

대충 이런 것 같다.

간혹 국제결혼해서 해외에 나가 사니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데 그게 좋을 수도 있지만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정말 더 힘든 게 될 수도 있다. 실제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커플들도 많이 있고. 사실 옌스를 만나서 한국의 문화 중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겪지 않아 좋은 대신에 한국 문화에서 내게 편하거나 득이되는 것들을 누리지 못해 좋지 않은 점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 생각하면 끝이 없고 서로 자기 좋은 것만 주장하는 것으로 흐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 둘이 합리적으로 판단해 공평하고 서로가 만족스러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늦가을이 물러갈 채비를 하면…

드디어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날이 찾아왔다. 비소식이 있는 내일과 주말동안에 다시 영상으로 올랐다가 그 다음주엔 또 영하인 날들이 지속될 전망이다. 가을이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날이 추워지긴 하지만, 이런 때 내가 덴마크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건, 아직까지 별다른 난방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 난방으로 더워진 공기를 신선하지 못한 공기와 동일시 하며 따뜻한 실내를 참지 못하는 옌스와 살다보니 그런 것도 있지만, 굳이 옌스가 아니더라도 덴마크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춥게 지내는 것 같다. 난방비가 비싼 것도 무시 못하는 요소다. 주택에서 살던 첫 해, 멋모르고 난방하다가 난방비 폭탄으로 몇백만원 낸 기억이 있다. 요금 정산이 전년도 평균을 납부한 후 증감분을 다음해에 사후정산하는 시스템인데, 전 입주자보다 더 많이 썼다가… (사무실과 같은 공간은 난방을 잘 하고 얇게 입고 지내는 게 보통이다.)

집에 있다가 끼니 사이 좀 추워지는 타이밍엔 스웨터를 하나 더 입고, 차나 커피를 한잔 마시고, 그래도 추우면 약간의 맨손체조를 하며 몸을 덥힌다. 스쿼트가 최고.

부활절에 한국 다녀올 때, 미리 엄마한테 모과차를 부탁했었다. 시중에 파는 건 모과 향만 나는 설탕물이니 과일로 담궈달라고. 끝물이라 모과 찾기가 쉽지 않아 많이 담그지 못했다며 주신 작은 두 병중 한병만 후딱 먹고 한 병은 놔뒀다. 아주 얇게 채를 썬 모과를 보며 느껴지는 정성. 오늘 날이 추우니 딱 생각나더라. 모과차. 사실 모과차엔 한과가 딱인데, 한과는 없으니 제껴두고… 그냥 모과차를 끓였다. (샐러드 드레싱에도 아주 유용한 모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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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 땐 역시 모과차. 여름엔 생각이 전혀 안난다.

한국보다 온도는 높지만 습하고 제주도 바람보다 거센 바람이 자주 부는 겨울은 유독 견디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해가 짧고 어두운데다가 4월까지 길게 늘어져서 그럴 거다. 그나마 올 해, 학교내 정원을 가로질러 다니며 2월 초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 꽃을 관찰하며 시간의 변화를 조금씩 느끼다보니 어떻게 봄을 기다릴 수 있는지 나만의 방법을 하나 체득하였다.

다음주는 시험인데, 이번 시험은 다소 망했다. 이미 예감이 온다.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 만큼 사기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무서워서 공부를 자꾸 미루다가, 에이 좀 망치면 어때! 이런 생각이 드니 다시 공부할 마음이 조금 든다. 내일부터 시험 공부 바짝해서 현재 기준으로 가능한 좋은 성적을 받도록 노력하기로 하고, 초조한 마음은 덮어두기로 했다. 최악의 슬럼프에서만 헤어나왔을 때, 한 블로그 이웃분께서 나보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좋은 의미로) 슬럼프에 빠졌을 때 하나씩 차근히 해보려고 하라고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맞는 말씀인 것 경험으로도 알고 있고, 그게 맞는데, 그걸 이행하기까지 힘든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 그런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아무튼 너무 늦은 건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보고, 그리고 다음 블록 한과목 잘 해서 석사과정 수업들을 잘 마무리해보도록 해야겠다.

블로그도 이런 슬럼프 속에 접어두었는데, 그간 쓰려다가 접고 저장만 해둔 아이들도 보고 시험 끝나고는 다시 열심히 기록을 남겨야겠다.

무력감 탈출

가을 탓인지,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 탓인지, 그냥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에너지 레벨 하락의 탓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무기력해졌다. 왜 그랬는지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간혹 그랬으니까. 중요한 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그런 징후는 조금씩 있었다. 다소 지치는. 학업과 개인 시간의 경계가 애매한 학생의 생활은 생활의 리듬을 흐트러뜨린다.

지난 2주간이 힘들었다. 한주는 수업을 취사선택해 갔고, 그 수업의 리딩으로 허덕였으며 (시간 총량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내가 산만했기 때문에.), 그 다음주는 모든 학업을 중단했다. 리딩이며 수업이며 덴마크어 수업까지.

지난 3일간은 거의 각종 드라마만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 주의 초는 이래도 되는가 하는 감정과 이럴 수 밖에 없다는 감정이 내 안에서 힘을 겨뤘지만, 서서히 그런 생각을 잊고, 이번 주는 아주 아팠던 샘 치자고 마음을 먹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겪었던 리바운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바닥을 쳐야만 제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시기. 흐린 와중에 햇살이 몇줄기 비추는 날씨도 그런 마음을 북돋워주는 느낌이다.

 

임신 7개월차 돌입

오늘부로 임신 7개월차로 접어든다. 거의 2/3선에 다가서는구나.
 
이제 배가 가슴보다 앞으로 나와 헐렁한 옷을 입어도 살짝 눈에 띈다. 이 시기의 자궁은 축구공만한 크기라고 하니, 배가 눈에 띄는 게 이상할 게 전혀 없다.
 
태반이 복벽쪽으로 자리를 잡아 태동을 남들보다 약하게 느낄거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남보다 늦게 느끼기도 했고, 남들 이야기하듯 불편할 정도의 태동은 느끼지 않고 있다. 그래도 그 빈도나 강도는 확실히 처음과 달리 잦고 강해졌다.
 
간간히 자세에 따라 왼쪽 아랫허리나 치골뼈가 아프기도 하고 (살짝 비뚤어진 골반이 이유인 모양이다. 그나마 발레해서 척추측만과 골반의 전반측만이 일부 교정된 덕에 이정도라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수면 자세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번 편한 자세를 찾았나 싶으면 곧 또 그게 아니고, 돌아눕다 보면 앗!하고 싶은 찰나의 통증에 깰 때도 있다.
쉬는 시간 없이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있으면 배가 뭉쳐서 중간중간 꼭 한번씩 일어나 줘야 하는 것도 새로이 생긴 변화다.
또 배에 자주 가스가 차서 의도치 않게 갑작스레 방귀를 뀔 때가 있는데 (ㅠㅠ), ‘아, 이게 내가 원래 이렇게 예의없지 않은데, 하나 때문에 생긴 일이야. 아, 민망해.’ 라며 변명을 하니 옌스가 너무 웃기다며 웃는다. 방귀가 웃긴게 아니라 너무 민망해하며 설명을 하는게 웃기단다. 물론 옌스 앞에서 이런 일이 있었던게 처음은 아닌데, 그냥 아직도 이는 민망하다.
 
내일이면 담당 GP를 임신 초기 검사 이후로 처음 만나는데, 뭘 할 지 궁금하다. 피검사와 자궁 크기와 위치 보고 뭐 대충 그런거 할 거 같긴 한데. 처음부터 좀 부실하게 챙기긴 했지만, 영양제 열심히 안먹고 있는데, 그런 거 답할 때가 제일 부담이다. 먹는 건 열심히 골고루 먹으려 하고 있고, 채소, 과일 이런건 열심히 먹고 있는데.
 
지금쯤이면 하나는 30센치미터 정도의 크기에 600그램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을 것이라 한다. 여태까지는 거의 교과서적인 사이즈로 성장하고 있었기에 대충 실제로도 그정도 크기와 무게가 아닐까 싶다.
 
친구가 선물로 준 루이보스티를 오늘 처음으로 마셨다. 집에 티백으로 몇 개 있을 땐 마셨지만 일부러 사서는 먹게 안되던 루이보스티. 양수를 맑게 또는 풍부하게 해준다고 들었는데, 양수가 충분하다는 검사 결과에 따라 별 신경 안쓰고 있었다. 그냥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냐며. 커피와 달리 차는 수퍼마켓가서 챙겨 사지는 않게 되는 품목인데, 선물로 받은 덕에 끝을 볼 때까지 열심히 챙겨마시려고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마셔야지. 마침 조카가 나의 임신을 축하한다고 만들어준 잔이 생겼으니, 여기에 챙겨 먹어야겠다. 문구는 ‘Tillykke Haein’ (축하해요, 해인숙모: 조카들은 나를 Tante Haein (해인 숙모) 이라고 부른다.)
얼마전 ‘브리짓존스의 아기’ 영화를 보았는데,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간만에 정말 신나고 유쾌한 영화였다. 2편과 달리 억지스러운 장면도 그렇게 많지 않고 브리짓 존스의 다소 성장한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내가 출산을 3~4개월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남 일 같지 않은 장면을 볼 수 있어서 더 그랬던 지 모른다. 출산이 살짝 무서워지기도 했지만, 다시금 엄마라면 누구나 겪는 일인데 싶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사그라들었다.
시간이 잘만 가는구나. 이제 아침 저녁으로 5~10도 정도의 기온 변화가 일어나고 하루종일 세찬 동풍이 부는 계절이 왔다. 이상하게 가을엔 동풍이 자주 분다. (옌스가 카약을 하는 이유로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대해 매일 듣고 보게 되어 이런 이상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달 말이면 썸머 타임도 끝나고, 12월에 들어 겨울이 오고 나면 하나와 만날 날도 후딱 다가와있겠지. 그렇게 싫어하는 겨울도 올 해엔 참 기다려진다.

Modalverber – kunne, måtte, skulle og ville

at kunne bruges

  • om at have mulighed for noget
  • om noget, man har evner for eller har lært

 

at måtte bruges

  • om at have lov til noget
  • om en nødvendighed eller den eneste mulighed

Obs! I denne betydning kan måtte hverken bruges negativt eller i spørgsmål.

  • Der hedder det behøver ikke/behøver:
    • Klokken er ikke så mange, så vi behøver ikke skynde os.
    • Han behøvede ikke at arbejde hårdt for at blive færdig til tiden.
    • Behøver jeg svare på det?

 

at skulle bruges

  • om noget, som er planlagt eller styret af ydre forhold
  • når man stiller forslag
  • om noget, man har læst eller hørt
  • om en handling, der bliver vurderet, efter den er sket

 

at ville bruges

  • når man vil udtrykke et ønske eller en vilje
  • om noget, man ikke er sikker på eller om en forudsigelse om fremtiden
  • om en ikke-virkelig situation (irrealis)

 

Source: Birte Langgaard, 2015. Danske stemmer, pp. 146-147, Gyldendale

시누이의 박사 디펜스 방문기

덴마크의 박사과정은 3년이다. 연구가 늦어지거나 개인적 사정으로 쉬는 경우 이보다 길어질 수 있지만, 우선은 3년을 기준으로 프로그램이 설계되어 있고 펀딩 또한 이를 토대로 한다. 시누이는 5~6년 걸렸다고 들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게 어느새 2년 반 정도가 된 것 같은데, 남편의 인도와 러시아 주재에 동반하느라 나를 만나기 얼마 전에 덴마크로 돌아왔다고 했었다. 그러니 중간에 최소 4년 이상 쉰 것이다. 아이 셋의 엄마로 박사 과정을 마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잘 안간다. 물론 오페어를 하나 두고 있었다지만, 애들 픽업하고 생일 있으면 애와 어른 파티 따로 다 준비하고 명절때면 가족과의 모임을 자기네 집에서 하고 등등 정말 수퍼우먼같은 모습으로 산 것 같다.

시누이는 시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고 한다. 실제 시댁에 가 있으면 며칠동안 하루에 최소 한번은 전화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은 통화가 주를 이뤘지만, 간혹 조금 긴 통화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긴 통화 후 시어머니가 시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보는 시누이는 정말 멋진 여성이다. 항상 여름 햇살처럼 빛나는 환한 웃음을 갖고 있으며,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따뜻한지.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것도 보면 참 대단하다 싶고. 그렇지만 엄마가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 수가 있는게 시누이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아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터라 시누이가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박사과정 중간에 해외로 나간 것도 그렇고, 애들을 학교에서 픽업하고 과외활동 하는 걸 지원하느라 같은 연구소에 있는 남자 동료들이나 양육의 문제가 없는 동료들처럼 연구와 커리어에 더 몰입할 수 없는 것 등 말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연구원으로서 모든 일을 잘 해내려고 하는 그녀가 여러모로 힘든 것은 당연한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박사과정의 디펜스가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퍼바이저와 오포넌트 말고도 연구소 동료, 친구, 가족이 온단다. 그간 고생한 것을 치하하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좋은 선물도 준비하고. 옌스는 이번 주 또 출장을 가 못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몰랐을 땐 그냥 안타까워하는 옌스를 대신해 내가 가야겠다 싶었는데, 안갔으면 영 그랬겠다 싶다. 미리 내가 가겠다고 한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갑을 하나 샀다.

디펜스는 바로 오늘 오후 2시 반. 시내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있단다.덴마크의 가장 큰 병원인 Rigshospital 예방의학과에서 고환암을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곳에서 디펜스를 한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경주용 자전거를 타다가 경추에 금이 가 본홀름에서 이곳으로 헬리콥터 후송되셨던 일이 있다. 이 곳에서 처음 시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번엔 시누이 일로 와보게 되었다. 여긴 시댁 일 아니면 올 일이 없는 병원인 모양이다.

본홀름과 스웨덴을 오고가는 페리 스케줄이 가을부터는 오전, 오후 두편만 있기에 아침 열시에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했다. 지난 두주간 정신없이 바쁘고, 옌스가 출장을 두번이나 가 나 혼자 있었기에 집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다. 사실 정리정돈 잘하고 설겆이 밀린 것 없이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기에 청소를 미뤄두고 있었는데, 시부모님 오신다니 싹 다 청소를 해둬야겠다. 어제 저녁에 못해서 아침 여섯시부터 일어나 식사하고, 엄마와 페이스타임 삼십분한 뒤, 청소하고 화장 끝내니 딱 도착하셨다. 항상 그렇시듯이 초콜렛이며 잼 등 작은 선물들을 갖고 오셨는데, 이번엔 특별히 아이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길 바라며 시어머니의 할아버지가 어딘가에서 발견하셨던 1700년대의 금화 한닢을 옌스에게 전달해달라고 하셨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것을 보다니 덴마크에 살면서 참 다양한 경험을 한다 싶었다.

임신상태의 경과를 포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병원으로 향했다. 점심은 병원의 카페테리아에서 가볍게 하고 컨퍼런스룸으로 갔다. 40여명의 사람들이 와있었는데, 시누이의 45분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 오포넌트 2명의 오포지션까지 총 2시간 30분을 모두 꼼짝없이 조용하게 앉아있었다. 임신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은 자리, 딱딱한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던 적이 없던지라 허리도 좀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오랜 기간 연구한 성과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고, 실제 박사과정 디펜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는 것, 오포넌트가 어떻게 디펜스에서 논문에 챌린지를 하는지 보고 듣는 것, 다 흥미로웠다. 나중에 내 석사논문 디펜스에 대해서 감을 잡아볼 수도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애 셋을 돌보며 세개의 manuscript를 성공적으로 저널에 등재하고 (그 중 하나는 세계적인 저널에 등재되었단다. American Journal of Medicine이었나? 아무튼 옌스가 이 저널을 모르냐길래, 당신은 보건경제학자니 아는거고, 나는 환경경제학자라 모른다고 해줬다. – 환경경제학에서 유명한 저널이 뭔지도 난 사실 모른다. 흠흠.) 1년전에는 Young European Sceintist 상인가 뭐도 타서 유명 컨퍼런스에서 발표도 하고 그랬단다. 뭐랄까, 약간 허허실실한 타입이라 잘 몰랐는데, 그 상 탔을 때 이야기 들어보니 항상 열심히 하고 꼼꼼하고, 성과욕도 많아서 뭐든 잘한다고 한다. 사실 그러니 애들과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게 얼마나 스트레스도 될까 이해도 된다.

발표도 여유있게 잘하고 디펜스도 정말 잘해서 누가 봐도 성공적으로 디펜스를 마무리짓는 것을 보았을 땐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내가 박사학위 받는 것도 아닌데 내가 다 뿌듯해졌다. 이번에 고환암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계량경제학 때 배운 내용들이 회귀분석에 사용된 가정이나 방법론 등을 논할 때 다뤄지는 것을 보며, 이런 내용을 몰랐다면 강의를 들어도 크게 이해가 안되었을텐데, 하면서 배우는 만큼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기도 한 고마운 순간이었다. 옌스에게 잘 끝났다고 문자를 하니, 큰 오빠가 자랑스러워 한다며 축하해주라고 하며 정말 기뻐하더라.

디펜스 결과가 박사학위 수여 커미티에게 모두 만족스러웠다는 발표가 이뤄지며 디펜스가 마무리 되었으며, 대학교 측에서 준비한 리셉션을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프리카델라, 샌드위치, 과일과 케이크 등 먹을 거리 뿐 아니라 여러명의 축사와 시누이의 감사인사말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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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중 시누이네 가족

맛있게 먹으며 시누이네 이웃, 시누이 생일 때 만났던 시누이 어릴 적 친구와도 만났는데, 시누이 친구가 Dong energy에서 풍력발전으로 일을 한다길래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독일인이라는데, 뭔가 정말 반 독일인스럽게 더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했다. 여기서는 뭐하는 지 물어보고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생활 침해가 아닌데, 상대도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듯이 나도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는게 익숙해져서 더이상 취조당하는 느낌이 안든다. 처음엔 뭔가 동양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인가 하는 오해에 부담감마저 느꼈는데, 그냥 이들의 관습임을 알게되니 나도 남의 직업 탐방의 시간이 재미있기조차 하다.

내가 덴마크어를 잘 못할 땐 남들이 하는 말 중에 못알아듣는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서 자꾸 질문을 해야하다보니 은근히 위축되고, 시간이 오래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실제 뇌가 언어를 처리하느라 물리적인 스트레스도 받는데 덴마크어 학원을 쉰 지난 6개월간 오히려 덴마크어가 부쩍 늘었다.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방학기간 중 덴마크어 드라마를 엄청 보고, 옌스와 덴마크어 사용 비중을 크게 늘려 90% 정도를 거의 덴마크어로 사용한 게 큰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이상 덴마크어로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게 정신적인 부담이 안된다. 그 전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이런 자리에 나서야 빨리 말에 익숙해지고 적응할 수 있어!’ 라며 스스로를 밀어붙였다면, 이젠 그런 것 없이 설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 얼마나 편안해지던지.

아무튼 그렇고 나니까 주변인들이 나를 챙기려고 부담감 느낄까봐 불편하던 마음도 없어지고 그냥 편해졌다. 그런 편안함과 함께 이방인의 느낌도 많이 없어지고. (그 방안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지만, 내 눈엔 내가 안보이니… 더욱 이질적인 느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흠.)

어느새 시간은 흘러흘러 6시. 시누이네 집에서 개인적으로 준비한 리셉션이 또 있단다. 핫도그 캐이터링을 불렀다고 하는데, 난 학교 친구 생일파티가 있다고 해서 못간다고 했다.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추가로 잡은 약속인데. 아쉽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8시 파티에 가기전 조금 쉰다고 소파에 눌러앉은게 화근이었다. 피로가 몰려와서 한시간만 쉬고 나가려던게 그냥 마냥 소파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그리하여 이렇게 손가락만 놀려도 되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긴 시간을 포멀한 옷차림을 하고 소셜모드로 있었더니 영 피곤했던 모양이다. 혼자서 쉴 시간이 필요했다. 내일 옌스가 출장에서 돌아오는데다가 주말에 공부할 것도 많은데 이정도의 저녁 휴식시간은 필요하다. 이제 다 덮고 조금 일찍 자야겠다. 하나도 많이 피곤했을 것 같고.

덴마크 뉴스 – 2016/09/29

Elever i god kondition scorer højere karakterer

신체건강한 학생이 성적도 잘 받는다.

기사 링크: http://www.b.dk/nationalt/elever-i-god-kondition-scorer-hoejere-karakterer  (Berlingske)

 

올보어대학교가 올보어 꼬문 8학년-10학년 학생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사회경제적인 여건이나 인종적 배경에 상관없이 신체가 건강한 학생이 학교 성적도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덴마크어와 같은 인문학 과목뿐 아니라 수학과 같은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였다며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의 강도높은 체육활동에 학생들을 보다 더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권고했다.

덴마크 학생들은 전반적으로 날씬하고 근육질인 편인데 학교 체육 활동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여자학생들도 남자학생들과 같이 축구를 하는 등 (성별 섞어서) 여자라고 강도 낮은 활동을 시키는게 아닌 듯 하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듯 체력이 공부에도 중요한 건 개인적으로도 많이 느꼈지만, 이렇게 연구결과로도 나왔다 하니 더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 흠흠.

 

임신에 따른 불편함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향해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던 도중 뭔가 왈칵하고 쏟아지는 기분이 났다. 뭐지? 22주밖에 안되었는데 양수가 터진건가? 피가 흐르는 건가? 큰 길 한복판에 갈 곳이라고는 없어서 그냥 서둘러서 학교로 가야겠다 싶었다. 그런 상태가 조금 더 지속되는가 싶더니 멈춘 것 같기도 하고, 배에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어떻게 되었든 간에 허허벌판 같은 고속도로 옆길에서는 자리를 떠야 했기에.

10분여를 밟아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서둘러 달려갔다. 최소한 혈흔은 아니었다. 딱히 뭐였는지 알수도 없이 무색 무취의 젖은 흔적 뿐이었다. 그냥 물같은 분비물의 경험이 없던 건 아닌데, 뭔가 그 양이 달랐다. 왈칵하는 기분이라니. 시어머니나 시누이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하나? 응급 상황에 연락하라고 산파가 알려준 번호에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책상에 앉아 태동이 있는지 여부를 한 10분정도만 관찰한 후 조치를 취하든 말든 해야겠다 싶었다. 등교전 아침에 바빠서 제대로 앉아있을 수 없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태동을 느낄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았다. 괜히 불안했다. 배를 쪼물락거리고 앉아있는데 ‘콩’하고 배 안을 울리는 느낌과 함께 안도감이 몰려왔다.

나중에 찾아보니 임신 중 흔한 일이라고 한다. 여러 세균으로부터의 감염을 막기 위한 몸의 방어기제의 일환이란다.

저녁에 발레수업들으러 가던 중 옌스에게 전화가 왔다. 잠자리에 들러가는 길이란다. 중국과 이곳의 시차는 한국과의 시차보다 한시간이 부족해 페이스타임을 한다는게 참 힘들다. 이런 일이 있어서 학교 가는 길에 가슴이 철렁했다며, 별 일 없는 거 같다고 이야기 해주었더니 다 지나간 일을 이야기해준 것임에도 엄청 놀랬는가보다. 임신하고 나니 여러가지 일에 엄청 걱정도 하게 되고 놀랄 일도 많다며 너무 과한 걱정을 했나보다고 하니, 늘 항상 조금이라도 걱정은 된다고 한다. 나야 내 몸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태동도 느끼기도 하고 좀 더 긴밀하게 변화 상태를 감지하지만, 그렇지 못한 옌스는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니 더 불안하기도 한가보다. 이런 괜한 걱정은 임신에 따른 하나의 불편함이다.

 

임신을 하고 나니 얼굴이 자주 붉어지고 더워진다. 간혹 이야기하다보면 얼굴이 벌개질 때가 있는데, 수업시간 중 발표나 토론하다가 얼굴이 벌개지면 오해할까 싶다. 뭔가 감정 상했다고 오해할까봐. 그런 생각을 하면 얼굴이 더 달아오른다. 그리고 유독 덥게 느껴져서 나 혼자 창문을 자꾸 열고싶어한다. 요즘 조금 추워져서 그런지 다들 자꾸 창문을 닫으려하는데 말이다. 늘상 환기를 원하는 옌스 덕에 나도 시원함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임신 때문인 것 같다.

 

요즘 걸을 때 치골 부분이 그렇게 아프다. 양 골반뼈를 이어주는 인대가 릴렉신 호르몬에 의해 이완되면서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내가 그 중의 하나인 모양이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된 것 같은 이 치골통은 엄마도 느끼셨었다는데. 계속 심한 건 아니지만 간혹 자면서 옆으로 돌아누울 때가 특히 아프고, 한참 앉아있다가 걷거나 뛸 때 아프다. 자전거 탈 땐 큰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비가 자주 와서 열차를 타고다녀야 하는 일이 늘어날텐데, 그럴 때가 영 번거롭다. 한참 걸으면 오히려 괜찮은데 움직이기 시작하는 초반에 영 불편하다. 아마 자다가 돌아누울 때 아픈 것도 그래서 그런 것 같다. 그 뿐 아니라 나도 모르게 등으로 바로 누워자면 허리 아래쪽이 아파서 깬다든가 등의 이유로 인해 바로 요 몇 일 전부터 잠을 잘 못자겠다. 입덧으로 빠진 4kg도 4.5kg의 체중증가로 원상태를 넘어섰는데, 몇달안에 이렇게 체중이 늘어나니 계단 오르는 것도 서서히 무거워짐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내일이면 만 23주 되는데, 남은 17주동안 5.5kg정도 늘리게 될테니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로 인해 계단오르기도 새로운 차원의 문제가 될 것 같다.

 

이정도 불편한 거 외엔 딱히 아직까지는 심각하게 힘들다는 식의 문제는 없으니, 그냥 아이가 잘 커가고 있다는 것으로 참 감사한 일이다. 열흘 정도 후엔 오래간만에 주치의도 만나고 할테니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