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언어 아이를 키우며

한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한국어 학습의 니즈가 각각 천차만별이다. 처한 언어환경 또한 제각기 다르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일 수도, 한명은 한국인, 덴마크인이거나 한명은 한국인, 다른한명은 비덴마크 외국인일수도 있다. 둘다 덴마크인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언어권인 사람도 있다. 이처럼 한글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이 다양해진만큼 최소한 한명의 한국인을 부모로 가진 아이에게도 한국어 수준은 정말 다양하다.

나처럼 한국인 부모 한명이 있는 경우에 파트너간 커뮤니케이션이 주로 영어로 이뤄지는 경우 아이는 한국인 부모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기에 그들의 한국어 능력은 꽤나 되는 듯 해 보인다. 아이가 한국에 관심이 많거나, 한국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등에 조금이나마 여러번 다닌 경우, 아니면 조금 길게 다닌 경우, 한국에 한번 가면 길게 있는 경우 등 아이의 한국어 수준은 확실히 높아 보인다. 그와 다르게 나처럼 아이와 덴마크어로 이야기를 하며 아이의 한국어 능력이 높지 않은 집들도 보인다.

우리집이라고 처음부터 아이가 한국어를 못하던 것이 아니었는데, 아이가 어느덧 내가 남편 및 주변 세상과 덴마크어를 사용해 소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덴마크어로 답을 하기 시작했고, 아이의 덴마크어와 한국어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서서히 나도 아이와 덴마크어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요즘들어서야 아이가 다시 한국어에 좀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아이가 한국어로 답을 하지 않기 시작한 이래로 약 7년간 아이의 한국어 교육은 다양한 흥망성쇄의 길을 걸어왔다. 강하게 한국어를 몰아붙이면 된다는 이야기들도 여기저기서 들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빠르게 늘지 않는 한국어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는 엄마와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없냐고 크게 슬퍼하는 아이를 보고나서도 한국어 교육을 위해 그 감정을 무시하자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두명 모두 한국인인 부모를 둔 아이들 중에서도 한국어가 잘 안되고, 부모도 덴마크어가 잘 안되서 아이와 깊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약간 머리를 한대 맞은 듯 했다. 미국에 사는 한인 가정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는데, 덴마크라고 다를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며 지금 애가 어느정도 한국어를 잘한다 해서 나중까지 꼭 그런다는 보장이 없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다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이가 네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 자기는 한국어 사용을 고수하고 있지만, 아이가 아빠와 대화하는 것이 자신과 대화하는 것에 더 깊이가 있음을 느낄 때 큰 마음의 갈등을 느낀다고 했다. 자기가 그냥 덴마크어로 언어를 바꿔야 하는 것인지.

아이가 예전보다 한국어에 많은 관심을 가진 지금, 이것을 최대한 이어가면 아이가 나중에 한국어를 정말로 배우고 싶을 때 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줄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는 목표를 여기로 정했다. 아이는 자신이 한국인의 뿌리와 덴마크인의 뿌리를 가진 사람이지만 덴마크인에 더 가깝다는 정체성을 가졌는데 그정도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아이는 한국어를 열심히 하는 것이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임을 인지했고, 그래서 조금 더 신경을 쓰려하고 있으며, 나도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하니 아이와 관계에 날카로운 부분이 없어졌다. 아이의 한국어 실력 부족이 나의 잘못인 것 같아 그로 인해 아이가 한국어를 하기 싫어하면 날이 서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게 무뎌졌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다보니 아이가 자라면서 끊임없이 어떤 기준을 정하는 문제로 마음의 갈등을 겪곤 하는데, 한국어는 이정도로 정리가 된 것 같다. 7년의 시간이 참 길었는데, 이제 편한 단계가 된 것 같다. 여기에는 물론 나 혼자의 마음의 갈등만 있던 것이 아니고, 남편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한국어를 지금껏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늘리고, 아이에게도 노출을 늘리려 많은 노력을 해온 그가 아니었으면 나도 이렇게 못했을 것이다. 토요일에 한글학교 가는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빠 덕이다. 아빠가 다니고, 엄마도 가급적 항상 학교에 같이 가니까 자기도 가는 거고, 거기에는 작은 한국이 있으니까.

겨울을 버티는 힘

겨울이 되면 해가 짧아져서 아쉽다. 하지만 정해진 환경을 불평하며 탓해봤자 좋아질 게 없으니 좋아할만한 것들을 찾아본다. 크리스마스에 가까워지며 틀게 되는 hyggelig한 음악, 따뜻하게 데워먹는 차와 겨울 음료들을 마시며 가슴 안으로부터 느껴지는 따스함, 간간히 내리는 눈, 포근한 스웨터, 분위기의 온도를 높여주는 작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촛불,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나누는 담소, 담요를 덮고 책을 일거나 뜨개질하기, 겨울 간식의 따뜻한 단내. 그게 있어서 겨울을 버티는 것 같다.

명절

한글학교에서 바자회를 했다. 한글학교는 수업료만으로 학교 재정이 굴러가지 않는 곳으로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 같은 것이다. 내가 돈을 냈으니 애들 잘 가르쳐서 보내겠지, 이런 곳이 아니다. 코펜하겐 시의 재정지원을 받아야 하고, 수익사업을 통해 약간의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코펜하겐 시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문화활동이 일정 비율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아니면 어학원으로 인정되어 아무런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학교는 운영진들과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가정의 봉사활동에 어느정도 의존을 할 수 밖에 없고 바자회 같은 수익활동을 할 때 각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언젠가는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한글학교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하나와 같이 한국어 노출이 평소에 적은 한-덴가정 아이에게 한글학교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어를 하기 싫어서 한글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고,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아서 마음앓이를 하게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또 엄마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모여 그 나라 말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쁘지 않기도 하고, 자기나 엄마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랑 섞여서 놀고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이 때로는 즐겁기도 했을 거다. 토요일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당연히 한글학교를 가는 것으로 생각하니 그것이 하나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는 것이 꼭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걸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어느정도는 할애해서 노력하겠다는 생각에 바자회 준비로 행사장 배치도 돕고 어묵탕도 만들어 팔고 뒷정리도 했다. 그 전에는 나도 뒤로 빠졌던 것이라면 이번엔 운영진에 참여하게 되다보니 그 이름에서 오는 책임감에 더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 일이지만, 그 공동체가 개개인의 참여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임을 이해하고, 아이가 그 공동체에서 누리는 것이 크다는 것을 알게되지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더라.

명절도 그런 것 같다. 한국에는 설과 추석 명절이 있다면 여기는 크리스마스 명절이 있다. 덴마크의 명절은 여자만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갈아넣어 만드는 것인데, 이제 우리 세대가 갈아넣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여자들의 희생으로 치러지던 명절을 보면서 나는 어른되면 안해야지 했는데, 막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엄마와 같이 준비하던 기억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고, 그래서 명절을 치루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 크리스마스도 작년과 같이 시누네 집에서 치르겠지만, 이번엔 우리가 좀 더 음식 분담을 많이 하고자 하고, 26일 크리스마스 이튿날 대가족 모임을 우리집에서 갖기로 하면서 제대로 된 명절맛을 볼 것 같다. 하나에겐 그 모임이 딱 그렇게 재미있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우리집에서 모임을 한다니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그래서 이런 것을 하는구나 싶다. 특히 길고 어두운 겨울, 이런 뭔가 특별한 행사들이 없으면 아마 이 시기를 넘기기 어려워서 그런게 아닐까. 나도 힘들겠지만 막상 치루고 나면 뿌듯할 명절. 그래서 우리는 명절이라는 전통을 계속 이어가나보다.

연봉협상시즌

덴마크의 겨울은 길다. 아직 가을이 끝나지 않았지만 벌써 절정으로 달려가는 가을의 빛깔을 보면 겨울이 한발짝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우리내 명절도 아니고, 덴마크 명절도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여름방학과 크리스마스 사이 긴 하반기를 즐겁게 보내게 해주는 할로윈도 코앞에 다가왔다. 다채로운 노랑과 붉은 계열 색깔의 향연을 멋지게 뽐내는 이 절정이 지나고 나면 11월은 나무가지가 앙상해지는 쓸쓸한 시간이 된다. 그렇게 가을은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겠지. 올 가을은 해가 좋은 날들이 많았어서 노란색과 붉은 색의 다양한 채도를 또렷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가을은 가장 바쁘면서도 한해의 마무리를 준비해야 하는시기인데, 연봉협상시기이도 하다. 연말 연봉협상시기를 앞두고 센터장과 면담을 했다. 공무원은 대부분 연봉 테이블을 따라가서 협상할 여지가 많지 않은데, 본인이 생각했을 때 특별한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면 승진을 하거나 연봉에 추가 수당을 얹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상사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본인이 노조에 요청해서 임원진과 직접 협상을 해달라고 요청할수도 있고, 상사를 설득해서 상사가 임원진에 이에 대한 승인을 요청할 수도 있다. 다만 전체 조직에서 승진을 시키거나 연봉을 올리는데 필요한 T/O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 부서별로 자신의 부서에 이를 땡겨오기 위해서 임원진간에 합의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상사가 연봉상승안이나 승진안을 올린다고 해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한해 나에게는 조금 힘든 시기였다. 나 뿐 아니라 같은 프로젝트에 들어갔던 인원들 모두 협업 부서와의 갈등으로 고생을 했다. 약간 비열함마저 느껴지는 협업부서 동료들은 해당 부서의 엄청난 인원교체를 유발한 약간 암적인 동료들인데, 은근하게 사람을 힘들게 해서 징계를 하기는 어렵고 끊임없는 주의만 남발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튼 이들이 담당자인 프로젝트으로부터 업무 발주를 받아 우리 팀에서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우리끼리 방문 닫아놓고 욕도 하고, 상사에게 애로사항을 토로하기도 하고, 노조에도 이야기하고 등 여러 조치를 취해볼 정도로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다. 프로젝트가 길게 연장되면서 나는 못견디겠다고 손들고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가면서 한숨 돌렸는데, 정말 퇴사도 고려해보게 할 정도로 힘들었다.

막바지 단계이긴 했지만, 프로젝트를 완수 못하고 나머지 동료들에게 넘겨두고 나만 빠졌던 터라 뭔가 실패를 경험한 느낌이었기에 연봉협상에서 뭔가를 요구하기가 그랬다. 그래서 뭐가 되었든 상사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고 더이상 코멘트하지 않았는데, 상사는 그거 말고도 프로젝트에서 보인 책임감과 질적인 부분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부분을 토대로 추가 수당 부분을 임원진 회의에 상정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평가해주면 고맙다 하고 내년 한 해 좀 더 좋은 프로젝트들로 더 성장할 수 있기를 노력해보겠다며 마무리했다.

중간중간 상사와 면담도 하면서 피드백을 받기도 하지만, 연봉협상시기야 말로 상사의 진정한 평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 상사가 내 성과를 토대로 임원진과 합의를 이뤄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공무원도 구조조정을 하는 불확실성들이 많은 시기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년에 시민권도 신청해야 하는데 시민권이 나올 때까지 직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이 계속 잘 근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 창문의 블라인드를 활짝 열어두고 파란하늘과 노란색의 물결을 흠뻑 느끼며 근무시간을 시작해서 너무 좋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느낄 때

“엄마. 저는 저를 믿어요. 할 수 있다고요. 학교에서 뭐 하다가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 ‘나는 할 수 있어, 내가 나를 안믿어주면 누가 나를 믿어줄거야.’ 라고 말하고 시도해봐요. 저는 수학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반에서 중간은 가는 것 같아서 어려워도 계속 연습하려고요.”

아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 얼마나 소중한 이야기인가.

이것 저것 묻는 말에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이런 대화 너무 좋다는데, 어떤 이슈 없이 나와 수다떠는 일이 충분하지 않았었나보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느낀다.

발레에서 균형찾기

한동안 클라이밍에 집중하느라 발레에 소홀했었다. 주 2회에서 주 1회로 줄이고 나니까 확실히 느는 속도가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여름휴가 이후 클라이밍을 조금 줄이고 발레를 다시 주2회 이상 하니까 다시금 느는게 느껴진다.

발레에서 균형을 찾는 것은 어찌보면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변화하는 동작속에서 발바닥 또는 발가락에서 균형을 찾고 흐름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발레에서 규정하는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내몸의 사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여러번 표현했는데 아직도 새로운 근육을 발견해나가고 있으며 그의 사용법을 배우게된다. 해부학적으로 그 존재를 알고 있던 근육인데 이를 분절해서 사용하는 법을 새롭게 익히게 될때면 그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 1년전 즈음인 것 같다. Kizzy 선생님이 서있는 축다리 위에 위치한 근육이 있는데 그게 치골방향으로 감싸 누르는 듯한 감각으로 잘눌러줘야 한다고 했는데 알듯 하면서도 잘 모르겠었다. 그 설명을 잊지않고 머리 한켠에 항상 저장해 두었는데 막상 그 근육을 어떻게 실제 동작에서 유기적으로 사용해야 할지는 감이 오질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그 감각이 찾아왔다.

물론 그런 감각이 하늘에서 뚝떨어지듯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근육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은 그근육과 근육을 연결하는 신경 모두 잘 발달되지 않았다는 뜻이기에 그를 사용할 만큼 키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고, 나에게는 제법 긴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이번 외복사근의 발견을 통해 균형잡는 것이 수월해졌고 다리가 골만에서부터 시작되는게 아니라 사실은 외복사근이 있는 곳부터 시작된다고 인지하고 나니까 그간 말로 듣고 이해가 될듯 말듯했던 지적사항들이 확 이해가 되면서 passé 할때 골반이 들리지 않게 할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피루엣 이후 착지도 깔끔하게 할 수 있게되었다.

앞으로도 여전히 배울 것은 많지만 이번 깨달음을 통해 실력이 한계단 올라선 느낌이라 매우 유쾌하다. 핸즈온해주는 선생님이 많으니 실력도 비례해서 느는 느낌이다. 감사하네.

재택근무

재택근무를 하면 출퇴근 시간 합쳐 한시간 반이 빠지니까 하루에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정신없이 문을 나서느라 느끼지 못했던 몸의 신호도 조금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

클라이밍을 좀 힘들게 하고 온 다음날이면 오른쪽 승모근 아래가 약간 뻐근하다. 힘들거나 무서운 구간에서 팔꿈치를 들고 용을 써서 생기는 일이다. 늘어난 상태에서 힘을 써서 생긴 근육통은 스트레칭이 아니라 반대로 약간 수축을 해줘서 풀어야 한다. Theraband를 양손으로 댕겨 잡고 몸 앞에서 뒤로 보냈다가 반대로 되돌리는 동작을 몇번 하면 뭉쳤던 부위가 좀 풀린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발레바를 잡고 스트레칭을 한다. 창밖의 풍경을 천천히 스치듯 응시하면서.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낮의 기온은 높은데 밤 기온은 떨어지니 집 앞 들판에 낮게 안개가 낀다. 눈높이의 안개 위로는 깨끗한 초록과 그 위의 하늘이 어우러져서 마치 산 정상에 올라 구름 위를 보는 것 같다. 잠시 창문을 열어보니 차가운 습이 들어온다. 반바지를 잎은 다리 위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

문을 열어두고 스트레칭을 이어간다. 몸이 구석구석 부드러워진 것 같으면 발레바와 Theraband를 주섬주섬 치우고 가방을 꺼내들어 거실을 업무공간으로 바꾼다. 랩톱을 키면 팬 소리가 작게 윙 하고 들린다. 쇼팽의 노래로 팬소음을 덮고 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오늘도 잘 부탁해.

새로운 근육을 발견하기

발레를 시작한 것이 2012년이었으니까 어느새 13년이 흘렀다. 물론 그 간에 임신, 출산으로 2년 이상을 쉬긴 했지만 부상 등으로 인한 이슈로 쉬는게 아니면 주 1~2회 정도는 꼭 트레이닝을 이어왔다.

발레를 하면서 놀라는 것은 지금조차도 내가 쓰고 있지 않았던 근육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안되지? 하고 고민을 하며 몇년의 시행착오를 겪다가 우연히 그간 못쓰고 있던 근육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하는 팁들을 다 이용해보다가 어딘가에서 들어맞는 것. 누군가의 조언이 틀려서가 아니라, 워낙 오랜 기간 고착화된 근육 사용 패턴과 몸의 불균형 등으로 인해 사용하지 않던 근육은 다른 근육이 그 기능을 대체하게 되어 이를 잘 사용하지 못하게 될 뿐이다. 뇌도 계속 기억을 하려다보면 시냅스들이 계속 길을 찾아가며 새로운 시냅스를 만든다는 것처럼 근육도 안쓰던 근육에 전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발레를 오래한 사람들의 정형화된 엉덩이 모양이 있다. 발레가 요구하는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엉덩이 인근의 근육을 특정한 형태로 사용하고 나면 그런 모양이 나오는 거다. 반대로 말하면 그 엉덩이 모양이 안나오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내 엉덩이는 아직도 그 모양이 되지 않았다. 많이 가까워졌지만 아직 사용하지 못하는 근육이 있는 것이다. 정면에서 보면 불과 1년전보다 골반 인근의 모양이 발레를 오래한 사람의 모양에 가까워졌다. 그렇지만 아직 다리를 옆으로 들 어 홀딩할 때 사용해야 하는 근육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나마 좋아진 점이라면 우선 이제 무슨 근육인지 알게 되기라도 한 것이긴 한데 부족하다. 바닥에 옆으로나 등으로 누워서 해보면 어떤 근육인지 얼마전 알게 되었는데, 그걸 서서 중력을 이기며 할 때는 바닥에서 싸워야 하는 방향과 다른 힘이 추가되다보니 다른 근육이 보상을 해버린다.

선생님들이 하는 말씀들 중 몇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매일 매일 내 몸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날 내 균형이 어디에 느껴지는지 찾으라, 골반을 중립으로 해라, 꼬리뼈를 내리지만 tuck-in하지는 말으라, 겨드랑이 아래로 등 근육이 아래를 감싸 내리듯이 쓰라, 옆구리 근육이 앞으로 감싸 내리듯이 쓰라, 등판을 옆으로 길게 해라, 골반을 열지만 뒤집지는 말으라는 등등의 말들. 수도 없이 많은 말들을 내 몸에서 느끼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게 틀려서 또 다르게 해야 하는 것. 발레를 해본사람은 알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오래 했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아직도 못할까라는 생각.

그런데 그래서 발레를 지금도 하는 것 같다. 동료가 물어봤다. 지금도 발레를 더 잘하고 싶고, 발전을 느끼냐고. 크지는 않지만 조금씩 지금도 발전을 느끼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며 어떤 의도의 질문이냐고 물어봤더니 답을 한다. 그냥 그 수준에서 재미로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새로운 질문이었다.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선한 충격을 준 질문이었달까? 물론 지금도 즐기고 있다. 이제 집에서 혼자 발레 바로도 가볍게 몸을 풀기도 하고, 그 끝엔 나만의 춤도 추며 춤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발레를 하는 이상은 끊임없이 더 잘하게 되고 싶을 것 같다. 그게 몸의 노화와 함께 불가능해져 현상유지만으로 기뻐해야 할 타이밍이 오기전까지는… 아니, 마음은 항상 그렇지 않을까?

아이의 한국여행 경험

한국을 방문할때마다 아이에게 자신의 뿌리를 조금씩 소개하는 기분이다. 그 뿌리에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좋은 것들을 많이 알게 되고 그 뿌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 뿌리를 연결하는 엄마인 내 마음이다. K-pop이 전 유럽에서 인기를 얻으며, 그 여파가 약한 덴마크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게 좀 더 많이 알려져서 하나가 한국인임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수월한 것은 장점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무엇인가하는 것은 한국에 가서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금 한국 방문을 좋은 기억으로만 채워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여름이라 너무 더웠던 것을 제외하면 크게 나쁠 것이 없던 여정.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도 좋은 시간 보내고, 부산에서 바닷가도 즐기고 새로운 곳들도 봤다. 분당에서 육촌 언니 오빠와 함께 짧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왔으며, 서울에서는 한국여행에 조인한 고모와 사촌 언니오빠와 함께 색다른 추억을 만들었다.

육촌 언니오빠를 따라간 성당 복사 교육. 교육을 끝마치고, 복사단 교육을 관리하는 한 분이 탈색한 머리가 남아있는 아이에게 염색을 하라며, 복사단은 튀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걸 들은 하나가 자기같은 사람은 머리를 염색해야 복사를 할 수 있는 것이냐고 했다. 자기가 복사를 할 것은 아니지만, 튀는게 안된다며 다 같은 머리색을 하라는 것이 관심을 끈것이다. 머리 색깔이랑 성당에서 복사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는 것. 온갖 머리 색깔을 볼 수 있는 나라에서 온 아이에게 거의 대다수가 어두운 머리의 세상이 특이하게 느껴졌었는데, 그걸 달리 하는 것에 제재가 가해진다는 것은 더욱 특이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자신과 같은 사람은 존재 자체가 틀린 것인가 하는 의문을 주었던 것. 참 설명하기 어려웠다. 다른 것이 튀는 것이고, 그건 좋지 못하다는 것으로 아직도 해석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문화를 아이에게 설명해주면서 한국과 덴마크에서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는 아이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다르게 생기다보니 쳐다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데, 아이를 갑자기 만지거나, 의도치 않은 관심을 사양해도 계속 그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아이에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애초에 누가 이쁘다고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 덴마크에서 살아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덴마크에서는 아이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 반응을 해주지만,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타인의 애에게 외모 칭찬을 하면서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애가 달라서 이쁘다거나 아빠가 외국인인가보다 하면서 말을 거는 경우들이 있다. 아이가 한국어를 잘 못해도 요즘 꽤나 잘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싫고 불편해한다. 한번은 이상할 정도로 접근을 하고 말을 걸며 아이 주위를 따라다녀 아이가 불편해하니 거리를 둬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뒤를 따라와 머리를 만져대 그만하라고 하고 그 사람이 자기 길을 완전히 갈때까지 땡볕에 서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아이가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어른들이 아이를 이뻐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저 할머니는 그와 달리 많이 이상해서 엄마가 너를 보호했지만, 간혹 그걸 날카롭게 반응하기에 곤란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을 해줬다. 나도 어느 수준에서 잘라내고 반응을 보여야할지 어려웠다.

길에서 걸어다니며 담배피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건물 앞, 옆 코너에서 떼를 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심의 보행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탓에 아이에게는 도심보다 시골이 좋았던 것 같은데, 사람이 미어터졌어도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갔던 것은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

이번 한국 여행은 너무 더운 것, 사람들이 만지는 것, 담배피는 사람들 많은 것 빼면 좋았다고 한다. 막상 덴마크가 가고 싶고 그립지만, 또 거기 가면 한국이 그리울 것 같다는 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내가 아이가 느낀 상처를 너무 크게 느낀 것 같기도 하다. 그 일이 있고 아이가 여러 날동안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걱정을 좀 크게 한 것 같기도 하고.

돌아오며 한국어 사용이 많이 늘어난 것은 짧은 여름 휴가의 큰 수확인 것 같다. 8월 말에 다시 시작할 한글학교가 기대된다.

서서히 덴마크인이 되어가는 과정

나와 우리 팀 동료들을 괴롭게 했던 지난 일년간의 프로젝트가 대충 마무리 되었다. 프로젝트는 우리 손을 일단 떠난 상태고, 돌아오더라도 다른 팀이 손본 곳 중에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만 수정해서 마무리하게 되었으며, 그또한 프로젝트리더가 할테니 나는 더이상 그 일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한동안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일이 손을 떠나고나자 Brain fog라고 말하는 집중력저하현상도 없어졌다. 역시나 이 모든게 스트레스 때문이었구나.

2년전부터 다른부서로부터 우리 부서가 넘겨받아 내가 1년에 한번씩 발간하는 연간보고서 프로젝트가 있었다. 첫해에는 그렇게 해왔다고 하고 이대로 하면 된다고 해서 발간했고, 작년엔 그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다만 그 전해의 소소한 문제를 개선하는 정도로 발간을 했다. 그러면서 느낀게, EU 법령에 근간해 CEER이 만든 이 보고서의 작성 가이드라인과 우리 보고서가 서서히 괴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매해 발간한다는 것은 매해 새 술을 담근다는 것이니, 이번엔 좀 새 부대에 넣어야 겠다고 느꼈다.

다른 부서들과의 발간 일정 조율 문제가 있어서 – 다들 바쁘니 – 센터장의 권위를 빌리고자 첫 2년은 센터장을 첫 미팅에 동행했는데, 이번엔 내가 홀로 해보겠다고 나섰다. 내가 주재하는 미팅에서 처음으로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잘 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긴장감 같은 것을 내려놓고 내가 해야하는 말을 다 하고 질의응답도 하고, 일정 조율 문제에 있어서도 선을 그어야 할 곳에 잘 긋고 물러날 곳에서는 물러나기도 하며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미 덴마크어로 일을 한지 벌써 5년이 넘었는데도, 회의에서 발언하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그걸 완전히 무너뜨려본 첫 경험이었다.

내일 시민권 시험을 본다. 작년에 영주권을 땄고, 앞으로 이곳에서 계속 뿌리를 내릴 것으로 결정을 했기에 시민권을 따기로 마음 먹었다. 나의 뿌리가 한국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고, 한국을 사랑하지만 시민으로서 나의 가치관은 이곳에 정착하게 되며 바뀌어왔기에 내가 일군 가족과 같은 나라의 보호를 받기로 결정했다. 영주권을 받고 2년이 된 타이밍부터 시민권을 받을 수 있으므로 내년 여름에 시민권을 신청할 것인데, 그렇기 위해서는 시험을 미리 봐둬야한다. 국적부여는 1년에 두번, 국회에서 해당 사안을 법안으로 심의하는데, 내가 영주권을 받은 후 2년에 된 후에 심사되는 법안에 내 이름이 들어갈 수 있도록 신청을 해야한다. (법안에 국적취득자의 이름이 다 하나하나 명시된다.) 조건에 부합했는지 검토하는데 대충 빠르면 6개월, 길면 2년정도 걸린다는데, 나처럼 딸린 가족 없이 홀로 국적취득을 신청하는 케이스면 거의 6개월안에 심사된다고 한다. 시험은 너무 오래되면 다시 봐야 할 수 있으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번 시험을 봐두면 여러해 유효한데, 시험도 일년에 두번 치뤄지기 때문에 그냥 미리 봐버리기로 했다.

국적 취득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 상태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것은 어폐가 있는 것 같아서 이번 대선에 처음으로 참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내 권리의자 의무로서 꼭 선거를 해왔는데, 이번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니 대선을 바라보는 시선도 좀 바뀌는 듯하다.

내가 덴마크인인 것처럼 나를 대하는 덴마크인 속에 섞여 덴마크어만 하고 살다보니 나도 서서히 덴마크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국적은 유지하고 영주권만 따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것도 서서히 바뀐 것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