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

오늘 친구와 잠깐 메신저로 짧은 대화를 하다가 자기연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연민이 많은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실 나도 자기연민이 참 많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걸 언제부터 떨궈냈었더라?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30대에 들어서 정신적으로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동시 다발적, 유기적, 총체적인 변화라 어떤 계기로 언제 변했는지를 꼽기는 참 어렵다. 그렇지만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난다.

지금도 머리에 남아있는 자기연민에 대한 민망한 기억 한조각. 버스에서 찔찔 짜며 나는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고 앉아있었다. 마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인냥. 이유는 잘 풀리지 않는 연애였다.

나에게 있어 성공한 연애는 옌스와의 연애 뿐이다. 결과만 두고서가 아니라 그냥 과정 자체가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했을 땐 나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전전긍긍하며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관계까 만족스럽지 않은 점 등 말이다. 그 균형이 맞는 관계가 있었다면 지금 이곳에 옌스와 부부가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 날, 자기연민의 주제는 외로움이었다.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냐며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는데, 핸드폰을 열어 주소록을 훑어보니 마땅히 전화할 사람이 없던 거였다. 그때만 해도 화면이 두개라 듀얼이라고 한 애니콜 듀얼폴더 폰을 썼었던 것 같다. 나의 외로움을 마음편히 토로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해져 어찌나 내가 불쌍하던지.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서울역 연세빌딩앞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콧물을 훌쩍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요즘 소위말하는 중2병같은 감성이었던 것 같다. 물론 힘들었던 것은 맞지만 자기연민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오히려 더 부풀려서 극적으로 만들어 필요 이상으로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참 민망한 기억이다.

자기연민이란게 완전히 지울 수 없는 감정이라 그 감정 완전히 지우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각자가 갖고 있는 그 감정의 크기는 많이 차이 날 수 있다. 이는 꼭 사람사이의 차이만이 아니라 개인의 과거와 현재사이에도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좋지만 자기연민은 좋은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완전히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라도 잘 다스려서 불필요하게 취하지 않는게 좋은 그런 감정. 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걸어온 게 나중에 다시금 늘리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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