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의 의미

내 주변 친구들보다 연애에 호기심을 일찍부터 갖기 시작한 나는 은근히 말썽을 많이 부리는 아이였다. 딱히 불량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 준거집단의 친구들에 비해서는 파격의 반항을 일삼았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하이텔 채팅 한번 한 적 없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연년생 오빠를 둔 덕에 하이텔과 같은 PC 통신 도입시점부터 채팅을 하면서 낯선 이들과 동호회 모임도 하는 등 공부 이외의 딴 짓을 많이 했었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왈가닥으로 소문났던 나이기에 연애는 거리가 멀어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난 이성을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는 반에서 똑똑하고 곱게 생긴 남자애들을 좋아했었는데, 그런 남자애들에겐 내가 딱히 어필하진 못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걔들은 공부에만 관심이 있었거나 아직 너무 어려 연애에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는 여중을 나왔기에 남자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곤 학원밖에 없었는데, 거기서도 속으로만 홀로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방산중학교를 나왔던 것이 기억나는 거 보면 그 때 나름의 속앓이를 하긴 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으로 보자면 과거의 이런 짝사랑은 공부 이외에 뭔가 발산할 곳이 필요했던 나의 딴 짓이었으리라.

외고를 다녔던 나는 정말 공부만 열심히 하는 바른 학생들로 촘촘히 둘러쌓여있었다. 아마 일반고였으면 나는 큰 문제아는 아니었겠지만, 외고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불량학생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의 내 생각으로 불량했다는 것은 아니고, 주변 친구들에게 나는 항상 일탈을 하는 친구였으니 말이다. 우리 학교엔 신문을 만드는 편집부, 방송을 하는 방송부, 그리고 선도부로 3개의 학생조직이 있었다. 나는 편집부에 속했는데, 딱히 다른 능력은 없었고, 집에서 채팅을 많이 한 덕에 빠른 타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내가 편집부에서 한 역할은 주로 타자 친 것밖에 없다. 그러나 역할은 별로 없어도 거기서 많은 일탈을 경험했는데, 연애도 그 중 하나였다.

대학교때부터 옌스를 만나기까지도 또 많은 연애를 했다. 몇 번 만나다만 사람부터 꽤나 많은 정이 들었던 사람까지하면, 연애 전문가에게 비교하면 발톱의 떼같은 경험이었겠지만 충분히 겪을만치 겪었다 할 정도의 수였다. 몇 번 만나면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한다는 우리네 연애문화 덕에 그 연애경험을 통해 나 또한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내뱉어왔다. 그렇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해 항상 궁금해왔다.

한번은 상견례까지 한 사람이 있었다. 결혼에 대한 확신도 전혀 없었고, 내 나이는 만 나이로 25살이었으니 많이 어렸다. KOTRA를 다니면서 해외로 발령을 나가야하는 탓에 결혼 시기를 놓치면 결혼을 못할 수 있다는 경고를 주위에서 자주 들었고, 나도 조바심이 들었다. 남자친구는 나보다 5살이 많았고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했다. 같은 직장을 다니다가 내가 이직을 하면서 불안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그 해 신년을 알리는 보신각 타종을 들은 후 그가 빈 소원을 나에게 알려주었는데, 올해는 결혼이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 전부터 은근히 압력을 가하고 있었으나, 은근한 압력이기에 은근히 무시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급작스러운 폭탄발언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다들 그렇게 어하게 하는 거라고, 알 것 다 알면 결혼 못한다고, 결혼 하자는 사람 있을 때 하라고 했다. 그래서 양가 인사를 다녔는데, 영 불안했다. 뭔가 인사를 드리러 간 순간부터 더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미 결정한 일 무르기 어려울 것 같아서 상견례까지 했는데, 부모님이 상견례 이후 반대를 하셨다. 그 사람에 대한 사생활이므로 밝히긴 어렵지만, 내가 우려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하셨고 반대를 하신 것이다. 그간 쌓아온 정에 마음이 많이 아프긴 했지만, 1주일 후 나 또한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 헤어지고도 그 정에 못이겨 몇번은 만나긴 했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결정을 했다는 사실을 그가 이해한 이후 더이상 본 적은 없다.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에도 사랑이라는 것을 난 모른다고 생각했고, 난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좋아하긴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마음으로, 비록 취소하긴 했지만, 결혼을 결심했던 것이다.

책에서 읽는 위대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을 확신에 차서 할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떠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함을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왔다. 특히 서양에서는 love라는 말을 L-word라고 하여 남녀가 그 말을 꺼내기까지 오랫동안 뜸을 들이고, 그 말을 하고, 듣는 순간을 아주 특별하게 여기던데, 그 감정은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해졌다. 이런 궁금함은 나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구글을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어느날 읽은 글에서 머리를 탁하고 치는 내용을 발견했다. 다음과 같은 세 문장으로 사랑의 단계를 요약한 것이다.

  • I am falling in love with you.(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지고 있다.)
  • I am in love with you.(나는 당신과의 사랑에 빠져있다.)
  • I love you.(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마지막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전의 두 단계인 감정에 휩쓸리는 단계에서 상대를 사랑하는 행위의 단계로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내 의지로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행위의 발로이기에 단순히 달뜨고 두근거리는 로맨틱함만의 감정이 아니라 달고 쓴 맛을 다 갖고 있을 앞으로의 시간을 포함해, 상대의 장점과 단점을 다 포용하며 사랑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기로 했기에 사랑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 기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생활에서 생기는 작은 일에 감사하고, 감사와 사랑은 표현하고, 갈등과 문제가 생기면 대화하고 풀어가게 된다.

이러한 사랑의 의미를 알고 난 뒤 옌스를 만나고 나니 지난 근 2년의 시간동안 작고 큰 어려움이 있어도 잘 헤쳐올 수 있었고, 자신이 힘들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상채기를 내는 일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잘 지내올 수 있었다. 옌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함을 알고 있기에 일말의 불안 없이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다.

어느새 결혼한지 한달이 지났다. 이제 쇠털같이 많은 날을 함께 하면서 여러 일들을 많이 겪겠지. 어려운 순간이 오더라도 아무말 없이 큰 품에 안아주는 옌스와 함께라면 잘 헤쳐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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