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과정 속 오류의 필요성

무언가를 배우는데 있어서 오류를 피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효율성과 효과를 끊임없이 따지는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피할 수 없는 오류를 논하는 것은 다소 착오적이라는 시선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사람은 오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수는 잘못된 것인지 알지만 너무 빠르게 움직이거나 판단하거나 여타 다른 이유로 틀리게 하는 것이라면 오류는 그게 잘못된 것인지 알지 못하거나 옳은게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찌되었든 이를 행하다가 틀리게 하는 것이다. 배움의 효율성은 이런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겠지만 때로는 이런 효율성을 따지면서 플래닝에 시간을 투여하기 보다 앎과 배움을 꾸준히 추구하는 과정 속에 오류를 범하고 이를 통해 배워가는 자체는 낭비가 없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우리가 배우는 수많은 것들은 이 수행의 정교함을 높일 수 있는 수준이 다양하다.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아주 긴 세월동안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하물며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 한 들 우리가 깊이를 더하고자하면 그 정교함의 수준을 올림에 있어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하는데 있어서 누군가는 아주 기초부터 정말 차근차근 초석을 다져가며 정교함을 쌓아갈 수 있고, 누군가는 어느정도 초석이 쌓이면 그 위에 놓일 것들을 슬슬 맛을 봐가며 초석 다지기를 병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인으로서 취미발레를 배우며 느낀 것이자, 클라이밍을 통해 느끼는 것은 배움은 정말 비선형적이라는 것이다. 발레에서 턴아웃이라는 아주 중요한 기초를 다짐에 있어서 이제서야 오류가 아닌 실수의 단계로 들어섬을 느끼고 있다. 그 전에는 턴아웃, 중립 골반에 대한 것이 도대체 뭔지 미지의 것을 탐색해가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뭔지는 조금씩 감을 잡고 움직임 속에서 턴아웃을 끊임없이 수행하도록 노력하고 실수하며 배워가는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완벽하게 다진 후에야 다음 것을 배우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애초에 오류를 경험할 수 없었기에 그를 통해 배우게 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없었으리라 본다. 클라이밍에서도 내가 하기 어려운 단계의 것들도 프로젝팅해 도전을 해보고 그보다 쉬운 난이도의 것들도 꾸준히 하고, 나에게 적당히 어려운 것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조금씩 그 전에 들었던 조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내가 잘못해오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런 생각없이 오류를 반복하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동작을 수행하면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매 순간 자신을 점검할 수는 없지만 기초를 다지는 순간 중요한 것들을 꾸준히 점검하며 오류를 교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을 해야한다. 주변의 조언과 함께 현재의 상황을 자기객관화를 통해 점검하다가 그것이 맞는 것에 올라섰을 때, 그걸을 평가해줄 좋은 코치를 두고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러면 실력 향상의 속도는 모르지만 끊임없는 업다운을 반복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우상향의 방향을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내 안의 목소리, 두려움과 싸우기

리드클라이밍을 하다보면 두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내가 어떤 내면의 목소리와 마주하게 되는지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며 그 상황을 복기하기만 해도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오는 그 순간의 두려움은 사실 본질적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다. 위험 자체보다는 위험이 있을 수도 있는 확률, 즉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다. 바닥으로부터 3미터 정도의 높이를 벗어나면 우리가 다리와 로프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유지하고, 무리하게 높은 곳에 줄을 걸려고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이후에는 자잘한 부상 가능성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등반을 하는 것이다.

벌써 20회 가까이 시도했지만 계속 마지막 구간을 실패하는 루트가 있다. 물론 실패의 종류는 달랐다. 초반의 등반에서는 여러번의 휴식을 취해야 했고, 첫번째 난관의 구간에서 계속 실패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갔고, 한번의 휴식만으로 올라갈 수 있으며 더 클린하고 안정적인 테크닉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최근 도달한 마지막점에서부터는 그 위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등반 각도가 45도 이상으로 눕는 가파른 구간이기도 하고, 이미 거기까지 올라가며 소진한 에너지 탓에 낭비할 시간과 에너지 따위는 없다. 따라서 빠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 내린 결정은 의심하지 않고 믿고 행동으로 바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러번 실패한 이 구간에서 나를 제한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미 너무 힘들어, 여기서 더 뛰어오를 힘도 없어, 뛰어봐야 아래로 떨어질 거야,와 같은 목소리다. 이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에 싸우지 못하고 그 짧은 머뭇거림의 순간 체력도 고갈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면 그냥 포기해버리게된다. 포기하지 않고 시도라도 해보면 잃을 것도 없는데. 워낙 힘든 루트라 한번 가서 도전해볼 수 있는 여력 자체가 많이 없다. 그러면 다음 기회로 또 미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다음에 좀 더 노력해보고 더 노력해보아 지금의 높이까지 다다를 수 있었지만 마지막 홀드들이 너무 힘들어서 그 목소리가 더 크고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이미 떨어지고 나면 너무 가파른 각도 탓에 줄을 잡고 원래 높이 가까이까지 가야 하는데, 나는 그런 힘은 없어서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서 애초에 떨어지기 전에 시도를 해봐야한다. 2~3초의 짧은 시간. 벽과 나밖에 없는 그 순간, 그 목소리가 나를 얼마나 좌절하게 하는지. 지난번 클라이밍에서 이 루트로 그날의 트레이닝을 마무리하며 나에게 너무 화가났다. 다음에는 꼭 다음 홀드를 시도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정도 마음이 아니라, 다음 홀드를 꼭 잡겠다는 마음으로 해야만 실질직인 진전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리드클라이밍을 하면서 나안의 목소리와 두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위기의 순간에 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배우고, 이를 어떻게 개선해야할지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호흡이 얕고 가파라지는 순간 이를 의식하고 깊고 힘있는 호흡을 하며 한손, 한발에 집중을 하며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 이걸 자연에서도 느끼고 싶다. 올해 5월에 클럽에서 나갈 투어에 함께하며 이를 조금 더 잘 느껴보고 싶다.

주 3회는 해야…

월, 화, 목, 토 저녁은 내 활동의 시간이고, 수, 금, 일은 옌스 활동의 시간이다. 각자의 취미 활동 또는 친구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인데, 딱히 친구를 자주 만나지 않는 관계로 우리 모두 취미활동에 이 시간을 할애하곤 한다. 나는 주 4회, 옌스는 주 3회라니까 조금 불공평한 것 같지만, 집안대소사, 일상과 관련해 나의 멘탈로드와 육체적 로드가 모두 더 큰 관계로 옌스의 불만 없이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발레 2회, 클라이밍 2회 하던 것을 발레 1회, 클라이밍 3회로 바꿨다. 요즘은 발레보다 클라이밍에 좀 더 많은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클라이밍 실력향상에 다소 정체기가 온 것 같아 이를 극복해보고자 바꿨는데, 역시나 실력에 변화가 조금씩 느껴진다. 그간 발레와 클라이밍 모두로 느껴온 것은, 주 1회하면 크게 늘지 않고 현상유지가 되고, 주 2회하면 실력이 천천히 늘고, 주 3회하면 실력이 는다는 것이다.

클라이밍은 자기의 체중이라는 무게가 정해져 있는 것이나 가볍게 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운동이다. 따라서 상체운동을 따로 하지 않아 그나마 발레를 통해 미약하게 존재해온 등과 코어 빼고는 상체근육이 없던 나에게 적응 시간이 꽤 오래 걸린 운동이다. 처음부터 강도를 세게 가져갈 수 없었던 이유도 조금만 자주하면 손목이나 팔꿈치 등이 아파오곤 했기 때문인데, 이제 어떤 자세로 운동을 할 때 아픈지도 알게 되었고, 체력도 꽤나 다져졌기 때문에 주3회까지는 몸이 견딜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속 하려면 꾸준한 훈련을 통해 부상 없이, 강인함을 유지해야지. 생각만 해도 너무 좋고 두근거리네. 이번 겨울은 정말이지 언제 지나갔다 싶게 거의 지나가버렸다. 클라이밍 덕분에.

낯선사람들과의 교류

클라이밍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클라이밍이랑 상관없이 다른 스포츠도 그럴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까? 어느 것도 답은 없지만 클라이밍을 하면서 특히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어났다. 내가 잘 안풀리는 문제를 타인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저런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접근하나 싶었던 문제를 누군가가 용을 써가면서 하고 있으면 괜히 응원도 해주게 되고, 그러다가 보면 간혹 작은 대화도 하게 되는 듯 낯선 사람과의 교류가 늘어났다.

한국보다 덴마크는 낯선사람과의 인사나눔이 상대적으로 흔한 편이다. 여기도 예전보다 그런 교류가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길에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가벼운 미소를 띄어주는 것이 여전히 흔하고, 이제 나도 그에 맞춰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미소를 활짝 띄어줄 수 있는 순발력을 확보했다. 예전엔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그렇게 빠르게 미소를 짓기에 얼굴 근육도 마음처럼 따라주질 않았고, 애초에 그 순간을 잘 예측하지도 못했다면 이제는 그게 익숙하달까? 모든 건 연습이다.

이제 클라이밍짐에 가면 그런 식으로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과 간간히 마주치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대화도 하고 같이 문제도 풀고 하게 된다. 원체 클라이밍이 재미있어서 혼자 가는 것도 상관없긴 했는데, 그런 식으로 낯선사람과의 사회적 교류가 있다보니 곁가지로 새로운 재미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깊은 교류가 없이 그냥 취미만 공유하는 낯선사람과의 가벼운 관계는 즐겁다. 가까워지기 위한 대화나 탐색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그냥 나눌 수 있는 주제가 이미 딱 정해진 대화라 마음의 부담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물론 그런 관계가 지속되다보면 또 새로운 친구가 생기게 되기도 하고. 주제 탐색에서 진빠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사람과의 교류가 그리 좋기만 하지는 않은 나라 외향적인 듯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사회적 요소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내가 참 외향적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다양한 깊이의 인간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럴 때 보면 참 다행스럽다.

En rigtig fed klatresession

I dag klatrede jeg med Hannah, min gode makker. Vi klatrede to ruter på slab-væggen, to på overhang-væggen og flere på bouldervæggen. Det van en rigtig stærk session med nogle fede oplevelser. Flere forsøg med lidt tvist hver gang førte mig til at sende et par projekter. Hvor er det sejt. Jeg er også meget glad for, at Hannah også klatrede stærk, samt at hendes sikring er blevet meget sikker, hvilket er rigt vigtigt ved lead-klatring. Det er bare mega dejligt, at vi deler en fælles passion.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기

벽에서 다음 홀드까지 도대체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머리로 그릴 수 없을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날 것 그대로 강렬하게 다가온다. 일상의 작은 순간 여기저기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두려움은 너무나 미묘하게 다가와서 다른 감정과 섞여 그게 두려움인지 알아차리지조차 못하고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벽에서 느끼는 날 것의 강렬한 두려움을 통해 내가 어떻게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벽에서 떨어지는 감각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우선 떨어진다는 것은 등반완료를 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떨어질 때의 내 위치와 가장 마지막으로 클립한 볼트의 위치의 상대적 관계에 따라 낙하 후 내가 어떻게 진자운동을 하게 될지가 결정되며, 그게 벽으로 향하는 방향일 경우 발과 다리를 이용해 충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한다. 불확실성. 그게 참 싫다.

그 당시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넣고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특정 포인트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다음 홀드로 넘어가는 것, 그것이 떨어지기 위해 클라이밍 하는 것이다. 떨어지지 않고 다음 홀드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런게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빌레이어에게 나를 거기서 쉬게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다음 홀드로 넘어가기 위해 시도하기. 거기서 떨어지고 나면 다시금 그보다 아래에서 올라가야 하니 에너지가 쓰이기도 하고 정말 떨어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백업 플랜을 생각하지 않고 시도하는 것, 그게 실력을 늘린다고 한다. 즉 내 한계선을 밖으로 밀어내는 행위가 실력향상의 지름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 이게 내 클라이밍을 보여주는 단어였다. 사실 나는 오래 클라이밍을 하고 싶기 때문에 부상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그런 두려움과 회피를 키운 것 같다. 부상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낙하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훈련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자체를 피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회피가 두려움을 키우고 있었다.

이게 내 일상에서는 어떻게 작용할까로 생각이 미쳤다. 한계를 밀어내는 것. 그게 내 요즘 직장생활에서 부족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냥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계를 밀어내는 자체를 하지 않다보면 더 그게 두려워져서 자기 계발에 둔해지는 것 같다. 아마 그게 요즘의 나였던 것 같다.

두려움에 직면하고 이를 경험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것, 그것이 클라이밍에서 요즘 새로이 배운 인생의 레슨이다.

자유낙하에 대한 공포

그냥 자유낙하네 대한 공포라는 말을 쓰는 자체로 바로 손바닥에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해 순식간에 흥건해진다. 리드 자격증을 딸 때 첫 추락 연습에서 내 빌레이 버디가 나보다 체중이 많이 무겁고, 줄에 슬랙을 거의주지 않은 탓에 벽에 강하게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클립한 곳으로부터 추락한 높이가 워낙 짧았기에 내 몸이 벽으로 너무 강한 힘으로 끌려갔고, 발목이 그 힘을 흡수하는 과정에 발목 인대에 충격이 가해졌다. 사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발목 가동성이 떨어져서 발레하며 플리에를 하는 게 조심스러워졌었다. 그 이후 내가 마지막으로 클립한 위치보다 위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커졌다.

클라이밍은 신체 능력도 중요하지만 멘탈관리가 정말 중요한 운동이다. 무서우면 아무래도 내 발과 내 다음 동작을 신뢰하기 어렵고 그러면 늘기가 어렵다. 안전하게 추락하는 방법에 대해 잘 이해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 뭐가 있는지를 생각하며 그 공포를 이겨내는 게 필요하다.

리드 클라이밍을 할 때 톱로프로 올라갈 때보다 그레이딩을 낮출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줄을 클리핑 할 때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물론 클리핑을 하는 동안 한 손은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실제 같은 등반 난이도의 루트를 탄다 할지라도 톱로프보다는 어려울 수 밖에 어렵다. 대회에서 같은 높이를 올라갔다 하더라도, 클립을 하고 떨어지느냐, 클립을 하지 못하고 떨어지느냐에 따라 점수를 달리 주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팀 트레이닝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덕에 빌레잉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추락에 대한 공포와 싸워보고자 한다. 예전에 빌레이 버디를 해주던 친구가 같은 팀에서 트레이닝을 하기도 하고, 다들 나보다 오랜 기간 클라이밍을 한 사람들이라 빌레잉에 대한 신뢰도가 충분해 추락 훈련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듯 하다.

첫 트레이닝에선 한 네번 쯤 떨어졌나? 워낙 루트가 가파랐던 곳에서는 중간에 힘들때 버디에게 잡아달라 그렇지 않고 손을 딱 놓고 추락을 했고, 나머진 톱을 잡고 나서 떨어졌다. 혹여나 주변에 부딪힐까 싶어 제일 안전할만한 곳에서 연습하려다보니 톱에서 하게 되었는데, 정말 매번 홀에 다들릴 거 같은 샤프한 비명을 지르면서 떨어지곤 했다. 제일 마지막 추락은 톱을 잡고 마지막 클립을 안하고 떨어지다 보니 꽤나 낙하 거리가 길었는데, 얼마나 심장이 벌렁거리던지. 아드레날린이 전신을 빠르게 돌며 온 몸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기분이었다.

다음번 트레이닝은 다양한 추락 훈련을 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어떤 훈련을 할지 궁금하다. 이렇게 주 1회 팀 트레이닝하고, 따로 한번 정도 하면 체력이 좀 많이 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지구력 측면에서. 12월까지 얼마나 늘지 궁금하네. ❤

늙어가는 몸 바로 쓰기

미레나를 쓰고 있어서 생리가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가는 관계로 이제 거의 유명무실한 생리이긴 하지만 그간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생리가 유지되어 와서 아직까지는 완경기에 들어서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서서히 희끗하게 세고 있는 것이나, 생리 직전 쯤 되면 관절이 좀 더 뻑뻑한 것 같은 점 등을 보면 호르몬이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의 컨디션은 사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상태이다. 우선 젊어서 지금처럼 운동을 많이 하지 않은 탓에 그 당시 체력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던 이유도 있을 거고, 나이 들은 몸에서 여러 삐걱대는 신호를 보내와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덕도 있는 것 같다. 젊었을 때와 다른 것은, 조금만 잘못 써서 운동하면 바로 그날 몸이 신호를 보낸다는 점이다. 그게 좋은 게 몸의 피드백을 토대로 몸의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골반의 좌우 불균형,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발레를 하면서부터 그 불균형이 여기저기 통증을 불러왔고, 하나를 어드레스하면 다른 곳에서 또 신호가 오고 또 그게 무한 반복 같은… 하지만 그를 통해 서서히 몸이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게 한번에 모든 것을 고칠 수는 없던 게, 몸이 그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보상작용을 해왔고, 그걸 한번에 고치는 건 당시 내 몸에 대한 인지수준이 낮은 내게 불가능했다.

이 모든 것은 평소의 습관과도 연결되어 있어 한번 고친다고 끝나는게 아니라 항상 관리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해결되고나니 발레에서 느는게 느껴지는 것이다. 통증 관리와 실력 향상이 동시에 되다니.

골반이 먼저였는지, 발이 먼저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게 해결되고 나니 오랜 기간 나를 괴롭히던 발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고, 예전에 삐었던 발목에서 안에 충돌이 있던 부분이 없어져 볼더링 하면서 뛰어내릴 때 발목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줄어들었다. 로프 클라이밍에서 떨어질 때 벽에 발로 랜딩하는데서 오는 충격 흡수도 마찬가지고.

나이들어간다고 다 나쁜게 아니더라. 젊어서 몸이 그냥 다 견뎌줄 땐 몸을 잘못되게 써도 아프질 않아 잘못된 습관을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빨리 반응이 오니까 잘못된 것을 교정할 수 있으니까.

우리 귀한 몸 오래오래 잘 쓰자!

운동부상과 체형교정

마흔 네살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요즘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부쩍 느낀다. 몸의 근육과 관절을 조금만 잘못 쓰면 금방 신호가 온다. 예전엔 운동을 통한 부상을 느끼려면 잘못된 동작을 꽤 장시간 반복해야 했다면 이제는 몇시간만 연속으로 잘못 썼다 하면 바로 알 수 있다. 뜨개질을 하면서 약간 틀어진 각도로 움직임을 반복하면 손목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것이 그 일례다. 물론 뜨개질은 짧은 시간안에 특정 동작을 매우 많이 반복하니 그 총량이 적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일할 때 한쪽 모니터를 많이 쳐다보면 목에도 신호가 오는 것도 그렇다.

어떤 동작이고 간에 일상을 유지하는 데 있어 온몸의 곳곳에 퍼진 근육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부상이 오는 것은 전혀 반갑지 않다. 각종 운동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이런 운동과 관련된 자세에서 오는 부상이 가장 무섭다. 발레와 실내벽등반 이 두가지 모두 평소에 하지 않을 동작들을 많이 하기도 하고, 항상 자신의 한계를 밀어내며 그 한계를 더 늘려가는 운동이라 부상의 확률이 높다. 운동이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심혈관계에는 좋을지언정 운동이라는 게 부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다.

한동안 골반과 척추를 연결하는 부분의 천장관절 부분의 문제가 지속되어왔다. 임신기간 중에도 간간히 아프긴 했었지만 이번에는 햄스트링 통증을 동반한 것이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처음엔 다리를 뒤로 드는 동작을 중심으로 천장관절 통증이 있고, 다리를 높이 드는 동작에서 같은 쪽 햄스트링이 아파왔다. 오래지 않아 견갑과 척추사이 근육이 결리듯이 아프면서 담이와 목 인근 근육이 다 뭉치고 두통까지도 오는 것을 경험했다. 뭔가 해결을 해야만 했다. 담은 이주 정도 지나니 서서히 증상이 좋아졌지만 천장관절과 햄스트링은 통증이 줄어들었다 늘어들었다는 것을 반복하며 완전히 좋아지질 않았다.

이런 부상은 원인이 있다. 뭔가 잘못 쓴다는 것이다. 그게 희망을 주는 신호이긴 하다.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통증을 유발하는 동작을 반대쪽 몸으로 거울로 비추듯이 수행했을 때 문제가 없다면 뭔가 그 동작들 사이에 있는 차이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거울로 비춘 나의 모습에서 양쪽에 차이가 나거나 양쪽 동작의 수행에 있어서 똑같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동작 간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나의 대부분의 부상은 몸 양쪽의 차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속에 나타났다. 십년전 나의 몸과 지금의 나의 몸은 큰 차이가 있다. 상체와 하체 사이의 사이즈 차이가 한때 44, 66과 같은 차이였다면, 지금은 55로 균일해졌고, 옷의 패턴과 내 몸의 형태가 비슷해져서 바지를 샀는데 엉덩이와 허벅지가 꽉 끼고 허리가 남는 것 같은 문제가 더이상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바뀌는 데에는 발레를 통해 그간 쓰지 않았음을 알게 된 근육을 쓰게 된 것에 있고, 그를 통해 생긴 신체의 불균형을 고쳐온 덕이다. 그중 골반과 척추의 틀어짐, 발 아치의 무너짐 등을 많이 교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다. 이 불균형은 도대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그런 것들이었다. 골반과 척추, 어깨 등의 것은 그냥 왼쪽과 오른쪽의 높낮이가 높고 낮고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척추를 중심으로 한 회전의 치우침 등과 삼분면으로 일어나기에 더욱 고치기 어려웠다.

천천히 해결하자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통증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게 계속되어 밤에 숙면을 취하는 것마저 어려워지니 발레를 쉬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동시에 한번 쉬면 복귀하기까지 힘든데 하는 생각에 두려움도 생기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인스타와 유튜브 등에 많은 체형교정 관련 다양한 자료가 있다는 거였다. 완전하진 않지만 방법을 찾았고 쉽진 않지만 교정을 진행하고 있다. 양쪽 불균형의 원인을 해결하고 나니 발레의 피루엣에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것도 양쪽 모두. 원래의 악습이 자꾸만 돌아오려해서 일상의 모든 동작 뿐 아니라 운동 시 동작에 있어서 이들까지 신경쓰려니 발레와 클라이밍 중에 머리가 훨씬 복잡하지만, 한동안 행동을 제약하던 통증들을 잡고 나니 너무나 다행이다.

이 모든 것이 무료로 공개되는 자료들을 활용하면서 가능하다는 것에 우리 새로운 정보 과잉의 시대에 감사함이 얼마나 큰 지 모르겠다. 내 인스타 대부분이 발레, 클라이밍, 체형교정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걸 만드느라 고생한 사람들의 노력 덕에 오늘도 나의 늙어가는 몸을 끌고 가는 취미생활은 맥을 유지할 수 있구나.

소셜스포츠 클라이밍

상체 근력이 약한 관계로 오버행 벽에서는 수직벽에 비해 난이도를 한단계 내려 타도 고생을 한다. 클린하게 한번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지난번엔 아무리 시도해도 못해 포기했던 벽을 오늘은 두번의 휴식을 포함해 완등했다. 다음의 목표는 휴식을 한번으로 줄이는 거다. 아예 쉬지 않는 목표는 너무 거창한 거 같고.

벽을 타다보면 여러가지 이유로 파트너가 바뀌게 되는데 – 파트너가 멀리 이사를 간다거나, 여자친구가 생기면서 등반 시간대를 옮긴가거나 – 그런 때를 대비해 새로운 인물과 기분을 열심히 쌓아두어야 한다. 왠지 혼자인 듯 한데 실력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 같은 사람에 있다? 혼자 왔냐 묻고 파트너가 있는지 물은다음 없다, 상대도 누군가를 찾는다 이러면 바로 작업들어간다. 같이 타보겠냐고.

그렇게 만난 체코인 파트너와 클라이밍을 하고 탈의실에서 짐 챙기는 중 홍콩인을 만났다. 왠지 나를 흘끗흘끗 보는데, 말 거려나? 생각하며 손을 씻는데 입술에 묻은 초크가 너무 무서워서 실소가 터진다. 입술에 하얗게 자주 초크 바르고 다니게 되서 거울 보다가 깜짝 놀래곤 한다고 말의 물꼬를 텄다. 그러자 자기도 종종 그런다면서 나 리드 벽타는 거 구경했다는거다. 쉬다가 리드 타는 거 봤는데 잘 하더라, 하면서.

덴마크 온 지 두달 된 학생인데 파트너가 없어 혼자 클라이밍을 한다고 하길래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친구랑은 또 다르지만 클라이밍이 은근히 소셜한 스포츠라서 이렇게 사람 만나는 재미가 또 있다. 벽 위에서는 혼자의 싸움같지만, 또 그 안전을 도모해주고 내려와서 담소를 나누고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서 꽤나 소셜한 취미이다.

오늘 힘든 루트 두개 했더니 팔이 후들후들…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