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기

벽에서 다음 홀드까지 도대체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머리로 그릴 수 없을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날 것 그대로 강렬하게 다가온다. 일상의 작은 순간 여기저기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두려움은 너무나 미묘하게 다가와서 다른 감정과 섞여 그게 두려움인지 알아차리지조차 못하고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벽에서 느끼는 날 것의 강렬한 두려움을 통해 내가 어떻게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벽에서 떨어지는 감각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우선 떨어진다는 것은 등반완료를 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떨어질 때의 내 위치와 가장 마지막으로 클립한 볼트의 위치의 상대적 관계에 따라 낙하 후 내가 어떻게 진자운동을 하게 될지가 결정되며, 그게 벽으로 향하는 방향일 경우 발과 다리를 이용해 충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한다. 불확실성. 그게 참 싫다.

그 당시에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넣고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하며 특정 포인트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다음 홀드로 넘어가는 것, 그것이 떨어지기 위해 클라이밍 하는 것이다. 떨어지지 않고 다음 홀드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런게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빌레이어에게 나를 거기서 쉬게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다음 홀드로 넘어가기 위해 시도하기. 거기서 떨어지고 나면 다시금 그보다 아래에서 올라가야 하니 에너지가 쓰이기도 하고 정말 떨어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백업 플랜을 생각하지 않고 시도하는 것, 그게 실력을 늘린다고 한다. 즉 내 한계선을 밖으로 밀어내는 행위가 실력향상의 지름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 이게 내 클라이밍을 보여주는 단어였다. 사실 나는 오래 클라이밍을 하고 싶기 때문에 부상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그런 두려움과 회피를 키운 것 같다. 부상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낙하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훈련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 자체를 피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회피가 두려움을 키우고 있었다.

이게 내 일상에서는 어떻게 작용할까로 생각이 미쳤다. 한계를 밀어내는 것. 그게 내 요즘 직장생활에서 부족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냥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계를 밀어내는 자체를 하지 않다보면 더 그게 두려워져서 자기 계발에 둔해지는 것 같다. 아마 그게 요즘의 나였던 것 같다.

두려움에 직면하고 이를 경험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것, 그것이 클라이밍에서 요즘 새로이 배운 인생의 레슨이다.

내 무의식적 불안과 그의 고백

칭찬을 많이 듣고 자라서 그럴까? 크게 혼날 때면 밖에 나가라고 혼내시는 엄마가 정말 나가라고 한 거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하면서 문 밖에서 앉아있던 때문일까?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잘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간간히 하곤 했다.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던 부모님이지만 뭔가 내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하면 그걸 숨기고 싶어하고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건 부모님의 엄격한 순간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순간으로 오해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화해의 순간이나 다른 전혀 상관없는 순간에도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도 이야기해주셨고, 나에게 참 다 잘 해주셨던 부모님이었는데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1등을 했더라도 뭔가 실수를 해서 하나라도 틀리면 시험을 보지 않은 척, 금방 드러날 뻔한 거짓말을 해서 혼난 적도 있다. 엄마가 시험 본 거 왜 안봤다고 거짓말했냐고 물어보시는데, 내가 실수했다고 혼날까봐 그랬다고 한 기억이 난다. 엄마의 답은 기억이 안나는데, 그냥 그때 들킨 게 너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나중에 엄마를 통해 들은 엄마의 반응은 역시 당황스러움이었다. 얘가 왜 실수로 틀린 거를 감추는데 급급해서 성적만 놓고보면 잘 한 것조차도 숨겨야했을까,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는 당황과 황당. 그런 마음.

내가 보기에도 객관적으로도 크게 나쁜 것 같지 않은 성과가 엄마 앞에서는 항상 앞을 더 보고 나아가야 하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결과였기에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 느꼈다. 그리고 엄마가 다른 친구의 부모님이나 이웃이 나를 칭찬하는 이야기에 겸양의 형태로, 아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정도로 이야기하시는 내용을 자주 듣다보니,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엇나가려면 엇나갈 수 있는 성향의 나였지만, 시댁과의 갈등 속에서 결혼의 의미를 우리 가족의 화목함, 우리가 잘 자라는 것에서 찾으시련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나는 아주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사춘기의 갈등을 겪으며 컸다. 문제를 일으켜도 되는 범주를 알고 적당히 사고를 치며 자랐다고 할까?

지금도 나는 간혹 두려움을 갖고 산다. 뭔가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시기가 올 때면 다시금 찾아오는 그런 두려움. 내가 부족한 사실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알면 그들이 지금과 같이 나를 바라봐줄까 하는 두려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는 일은 크게 두렵지 않다. 이러나 저러나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니까. 그들이 나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든 무슨 상관이랴. 다만 아끼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달리 바라볼까 하는 걱정과 불안.

회사를 관뒀을 땐 도망친 거였다. 나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던 기후변화관련 모델링과 법제 작업에서 빼준다고, 나와 같이 초기에 프로젝트에 들어가있던 선임이 빠지고 다른 선임이 프로젝트 리더로 들어왔던 이유도 유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상사가 이야기했을 때도 나는 두려웠다. 6개월 안에 도래할 다른 내 프로젝트의 법제 작업이 무서웠다. 2-3년의 기한을 가진 장기프로젝트를 끌어가는 게 너무 부담이 컸다.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이 걸려있고 큰 돈이 걸려있는 프로젝트라는 것도 갈 수록 부담이 되었다. 옌스에게 스트레스를 적당히 이야기했지만, 조금 더 버텨보면서 다른 할 거리를 생각해보며 좀 준비가 되면 관두라고 했는데, 관두는 것에 대한 옵션 자체가 화제로 오르자마자 관둘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옌스야 내 미묘한 변화를 다 아는 사람이라 굳이 숨긴다고 오래 숨길 수 있는게 아니라 내 밑바닥부터 다 알고 있는 사람이고, 내가 부모님 만큼이나 밑바닥부터 신뢰하는 사람인지라 그런 좌절을 다 공유한다.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알고 있었고 그게 어마나 지배적으로 커지고 있는지도 지켜보았다. 그래도 좋은 직장을 선뜻 관두는 게 큰 리스크로 느껴했고 나도 그의 입장을 알고 있는지라 섣불리 관둘 수 없었다. 어느날 무슨 사업 같은 거 할 거리가 있으면 자본은 내가 델 수 있으니 그런 거 해보면 되지 않느냐고 묻길래, 그러면 번역이랑 덴마크어 강의 같이 내가 해보고 싶던 거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봤다. 깊이 알아본 일도 아니었고 그냥 막연했다.

그렇게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였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시간이 지나보니 시장조사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더라. 번역인세가 덴마크의 소득세를 떼고 나면 너무 박한 소득이고, 그렇다고 번역을 할만한 책을 발견해 계약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강의는 재미있고 보람도 있지만,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드는 일이라 다른 일을 할애할 시간을 제법 줄여야 했다. 책을 쓰는 일은 대충 주제는 잡았지만 덴마크어를 학습하는 것에도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었다. 유튜브는 재택근무로 집에서 엄청나게 많은 회의를 하는 옌스와 함께하다보니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가 되었다. 어느 방향으로도 제대로 가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순간, 나는 내 민낮을 마주해야했다. 이 프로젝트는 전혀 깊이 고려되지 않은, 찰나의 호기어린, 전 직장에서로부터의 도주를 감추는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말이다.

퇴사한지 만 4개월. 아직 다시 직장을 찾기에 휴식이 길지만은 않았던 기간. 다시금 취업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오늘 하나의 진정한 이력서를 내고 본격적으로 취업을 다시금 알아보려한다. 이러저러한 하부프로젝트의 경험 속에서 취업을 하더라도 사이드로 이끌어갈 일들을 확인했으니 다 접는 것은 아니다.

이런 내 민낯을 나 스스로도 제대로 들여다본 게 바로 요며칠이다. 이런 고민의 형태가 드러나고 나서 차마 이런 고민을 옌스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잠을 잘 못자는 것 같고 낮에 그 여파로 피곤에 찌든 것 같아 보이는 나에게 괜찮느냐고 물어보는데, 그에 구체적으로 답을 할 수 없어서 요리조리 답을 피하다가 이야기를 해야했다. 부모님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아도, 내가 실수하면 실망하시지 않을까, 걱정하시지 않을까 반사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처럼, 옌스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반사적으로 나에게 실망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일련의 고민을 나눌 수 없었다.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데 내가 아닌 타인은 오죽할까 하는 불안은 뿌리깊은 비이성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다.

내가 이런 나를 알기에, 그리고 과거에 이런 상황에서 옌스에게 고민을 나누며 그가 어떤 반응을 했는지 알기에 이번엔 보다 빨리 내 고민을 나눴는데, 역시나 옌스는 내가 항상 예상한 바 또는 그 이상으로 나를 보듬어 주었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냥, 시부모님께도, 부모님께도 같은 내용을 전했는데, 모두 참 한결같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와 내용으로 나를 보듬어주셨고 나에게 너무 혹독하게 굴지 않기를 원한다며 말씀해주셨다.

엄마와 가까운 친구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가 너무 일맥상통했는데, 사람은 흔들리는 속에서 살아내고 그 역경을 이겨내는 데에 인생의 의미가 있는 거지, 잘 사는 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그들이 나를 아끼는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잘 하지 못할 때 태도 때문이라는 것에서 내가 참 잘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이야기였다. 내 부족함때문에 떠나갈까 걱정했던 사람들이 사실은 그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모습 때문에 아낀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충격이던지. 사실 엄마의 이야기는 내가 엄마가 되면서부터 엄마가 자식에게 어떤 마음을 가질 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떤면에서 예상할 수 있는 바도 있지만 친구는 또 달랐다. 그녀의 이해와 포용, 나에 대한 다독거림이 정말 내 마음의 불안함을 싹 녹여내더라. 그래서 내가 얼마나 생각이 얕고 부족했는지, 그런 지혜로운 친구를 곁에 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봤다. 그리고 그 따뜻한 말에 대한 고마움에 흐르는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이렇게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을 계속 아끼고 가꿔가야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