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트레이너와 함께한 동네 자전거 여행과 덴마크 삶의 소소한 즐거움

CBS에서 MMPI 과정을 듣느라 6월까지 꼼짝없이 바쁜 옌스의 스케줄로 인해 같이 있지만, 따로 활동하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덕분에 집에 면학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SNS를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던 나였는데, 옆에 앉은 그가 독서를 하니, 뭔가 눈치가 보이기 시작해서 나도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옌스는 습관의 사람이다. 습관을 잘 만들고, 한번 만든 습관은 잘 유지한다. 뚝심의 인간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뼛속까지 경제학자라 시간 낭비를 하기 싫어해서 자기에게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해 시간을 잘 배분한다. 난 습관을 잘 못들이는 사람이다. 중요하다고 하는 순간 마음먹고 집중을 해 원하는 결과를 내는 일에는 강하지만, 인생지사 그렇게 짧고 굵게 살 수 없다. 따라서 난 자꾸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 내 스스로 동기부여가 안되면, 옆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스스로를 독려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내가 제일 배우고 싶은 성실함과 뚝심을 갖고 있는 옌스가 내 옆에 있어줘서 참 고맙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순간, 다시 정진하는 길로 돌아올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옌스가 빠뜨리지 않는 것은 체력관리이다. 아침마다 윗몸일으키기 등을 포함해 15분 정도 꼭 근력운동을 하고, 카약과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꼭 2번씩은 한다. 10kg씩 몸무게가 오르락 내리락 변하던 내가 살이 크게 않고 유지하는 것도 옆에서 운동을 장려하고, 나를 데리고 나가는 그 덕분이다. 걸어서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하러 나가자고 한다.

겨울에 한번, 정말 나가기 싫은데 옌스가 산책을 나가자고 하길레 간신히 따라 나선적이 있다. 정말 추웠는데, 조금 걷고 나니 좋았다. 그 날, “앞으로 내가 나가기 싫어해도 사실 나오면 좋아하니까 게으름 피워도 꼭 끌고나와줘.”라고 부탁을 했다. 나가자고 할 때, 기다 아니다는 말을 안하고 미적대고 있으면, “Come on, it’s good to have some fresh air.”라고 하며 독려하는데, 안나갈 수가 없다. 내가 한 말도 있고 하니.

그래서 가급적이면, 나가고 싶지 않아도 옌스가 나가자도 하면, 흔쾌히 좋다고 답을 해버린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 나갈 마음이 생긴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저녁 먹고 8시가 넘었는데, 바람도 많이 부는데, 자전거 투어를 나가자고 한다. 나가면 좋을 것 같기도 해서 알았다고 했는데, 안나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낮에 비가 많이 오고나서 구름이 이쁘게 남았더라. 자전거를 타고 쌩쌩 움직이니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비포장 산책길이라 중간중간 쿵하면서 튕겨 놀라기도 한다. 갑자기 오리 또는 거위때가 나타나기도 하고, 탁트인 호수가 나오기도 한다. 습지인지라 다채로운 생태가 발견되고, 갈대숲에선 바람에 사라락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천국인가 싶은 그런 느낌.

덴마크의 삶은 한국의 삶에 익숙하고, 그 삶의 패턴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에겐 힘든 것이라 생각한다.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출장온 대기업 중역분들 중엔, 여기서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물어보신 분들도 많았다. “차도 비싸 코딱지 만한 차 사야지, 밥 값 비싸지, 맛집도 적지, 술도 비싸고, 문도 일찍 닫고, 세금 많이 내지, 무슨 재미로 살아요?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살기 정말 좋아. 여긴 재미없는 천국이야.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지만.” 판에 박힌듯한 이야기를 해주신 분들이 꽤나 있었다.

다행인건 내가 소비보다는 경험 중심의 삶을 원하고, 북적이는 거 싫어하고, 술 집에서 와인이나 한잔 남친과 기울이면 되고,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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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국회의원은 무보수명예직이 아니다.

도대체 덴마크 국회의원이 무보수직이라는 이야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덴마크 총선으로 나라가 시끄럽다고 하니, 덴마크는 국회의원이 무보수 명예직이라 하던데 맞느냐는 질문을 몇번 받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기억이다. 우리나라에서 덴마크 국가의 청렴을 예로 들 때 나오는 것이 무보수 명예직 국회의원에 대한 이야기라는데, ‘돈에 관해 철저한 덴마크인들이 돈도 안받고 저렇게 풀타임으로 일을 할리가?!’ 하는 마음에 궁금해서 찾아봤다.

2015년 4월 1일 기준으로 제시된 국회의원 보수는 다음과 같다. (자료: 덴마크 국회 홈페이지-덴마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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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월별                            연간
기본급 (과세)                                                               52,073.91                   624,887
비용 보조 (비과세)
– 덴마크 거주자                                                             5,008.58                     60,103
– 그린랜드/패로제도 거주자                                            6,678.08                     80,137

월급이 한 850만원에 세금 떼면 대충 400만원 받는 것 같다. 기타 비용 발생부분을 보전해 주기위한 돈은 비과세 대상이다. 따라서 약 80만원 정도라 하면, 총 월 480만원 정도가 된다. 고액연봉자는 아니지만, 현지 급여수준을 생각하면 평균 이상으로 충분히 받는 것이다.

연금은 자기가 일한 기간에 맞추어 환산된 금액이 연금수령 개시시점부터 지급된다.

그런데 이런 풍문의 원천이 어디인가 찾아보니, 군소 지방언론과 일베, 뽐뿌 등의 신뢰하기 어렵고,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게시글인 것 같다. 그러다가 덴마크에 대한 기사를 자주 다루는 오마이뉴스에서, 지난 4월 문재인 대표의 발언에 대한 언론 및 새누리당의 행태를 논하면서 덴마크 이야기를 끌어쓸 때 이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당 기사) 이렇게 출처가 불분명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 것 보면, 인터넷 언론이 포털을 통해 쉽게 복제, 유통되면서 꽤나 널리 읽히기 때문인 것 같다.

얼마전 덴마크 정부에서 발의한, 현금 의무 수납제 폐지 법안에 대해서 중앙일보가 마치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덴마크가 현금사용을 없애려고 하는 것처럼 기사를 썼다. (“덴마크 정부는 ‘현금 없는 경제’를 통해 탈세의 온상인 지하경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라는 문구는 기자의 마음대로 창작물이다.) 그러나 이는 우체국, 약국 등 일부 부문을 제외하고, 현금 수납을 업장에서 선택하게 함으로, 사실상 현금 사용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 있을 거래를 위해 현금 시재를 보유하며 발생하는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는 것이 법안 발의의 핵심이다. 더불어 현금시재 미보유에 따른 강도범죄 피해율을 줄이는 것도 부수적인 긍정적 효과이다. (재미있게도 중앙일보의 보스턴 판인 보스턴 중앙일보는 정확히 기사를 썼다.)

급한 마감을 맞추려고, ‘대충 들은 게 맞겠지.’ 또는 ‘우리랑 비슷한 이유로 이런 정책을 폈겠지.’라면서 확인하지 않고 쓰거나, 혹시나 더욱 심각한 경우로 원하는 결론을 위해 사실과 다름에도 원하는 방향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쓰는 것은, 언론으로서 절대적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덴마크 국회의원은 월급을 받는다! 🙂

덴마크 기상청의 약속에서 시작된 공공부문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

6월부터 여름이 시작이라더니, 정말 그러려나보다. 6월 날씨에 대한 덴마크 기상청의 약속을 믿는다면 말이다. 5분마다 변한다고 하는 하루하루의 날씨가 아니라 기간에 대한 예측이니 대충 맞을 듯 하다. 일중 5~15도의 날씨를 오락가락하는 5월의 봄날씨는 흐리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엔 유독 춥게 느껴진다. 6월 중엔 드디어 25도의 고온도 맛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덴마크는 날씨에 대해 기상청이 약속했다(DMI lovede)고 표현한다. 기상청이 태풍을 약속했다, 태양을 약속했다고. 그 약속은 상당히 자주 지켜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으 보면 덴마크의 약속 개념이 약한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덴마크어 수업에서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보면 유럽 내 덴마크의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게 참 재미있다.

우리가 행복한 복지국가 덴마크에 갖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덴마크는 유럽 내에서 가장 해고가 쉬운 나라에 속한다. 실업 복지가 뒷받침을 해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flexicurity model), 좋은 직장에서 자리 잘 잡고 일하는, 좋은 경력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이러한 급작스런 해고통보가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프랑스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일을 잘 하고 있다가, 덴마크 사람과 결혼을 하고 이곳으로 이주해온 한 컨설턴트는 덴마크를 북유럽의 이탈리아, 그리스로 표현하는데, 웃음이 나오면서도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사업부문 정리와 함께 사람들을 대량 해고하는 것이나, 어떤 기한내 일을 처리해주겠다고 하고 잊어버리거나, 회의에 참석하기로 하고 잊어버리는 일도 꽤나 자주 발생하며, 일정의 지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들을 예로 들며, 덴마크는 충분히 신뢰하기엔 의외로 어려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불평은 않는다면서, 지금 구한 곳은 자택근무를 허용해주는데, 두터운 신뢰기반이 받혀주는 덴마크에서나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 또한 공감하는 이야기다.

미국인들이 특히 놀라워하는 일은, 앞의 프랑스인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지만, 많은 공사가 지연되고, 공공프로젝트가 허망한 투자로 끝나도 이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하철 공사가 대표적인 예다. 2018년까지 끝나기로 한 프로젝트에 대해 대부분의 덴마크인은 2019년은 되어야 끝날 것이라고 했다. 어느샌지 슬그머니 준공시점 안내문에 2019년이 표기되어 있다. (아마 2020년에 끝나려나보다.) 미국에서는 공기가 지연될 경우 막대한 지연배상금이 일단위로 계산되기 때문에 준공을 칼같이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덴마크에서는 계획은 수정될 수 있다고 보고, 변동되는 현실에 맞춰 합리적으로 프로젝트 기간을 연장한다.

변화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덴마크의 시스템이 있기에 기일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생기지 않거나 적게 생긴다. 그러나 모든 일에 양면이 있듯이, 간혹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며 유야무야 봐주는 경우도 생기고, 대규모 투자가 들어간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게 오랜기간 진행되다가 실패로 드러나는 경우도 생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탈리아에서 도입하려던 IC4 열차 프로젝트이다. 일명 IC4 스캔들이라고도 불린다.

2000년 2월, DSB(덴마크 국영 철도운영사)는 50억 달러 규모의 도시간 철도용 열차를 EU 공공입찰을 통해 발주했다. 12월, 제일 싼 가격으로 이탈리아의 AnsaldoBreda사가 낙찰을 받게 되고, 2002년 12월까지 납품을 받기로 한다. 원래는 2003년 4월부터 운행을 할 목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새로운 열차에 맞춰 주요 역의 플랫폼은 길이 확장을 위해 확장공사도 마쳤다. 그러나, 2004년으로 납품이 연장되고, 납품된 제품은 전기시스템과 열차용 컴퓨터와 기계장치 시스템의 상호작용에도 문제가 발생되어 프로젝트가 좌초위기에 있었다. 감리기업은 프로젝트 중단을 권고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DSB는 매몰비용이 너무 아쉬워, 사실 포기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끌고 나갔다. 결국 2007년 10월 4대의 열차가 최초로 납품이 되어 오후스와 올보 구간에서 운영되었으나, 2008년 2월 열차 매연에서 과다하게 발생되는 악취로 인해 운행을 중단했다.

이는 이 길디 긴 스캔들의 시작일 뿐이라 다 쓰자면 한도 끝도 없어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부 추가 차량이 납품되고, 문제가 생기고, 또 일부는 운영되었으나, 열차 여러개를 연결하는데 문제가 많아 운영할 수 있는 횟수가 극히 제한되어 효용이 크게 떨어졌다. 중간에 열차에 문제가 자주 생겨 별로 운영도 못해본 열차는 유지보수만 잡아먹는 하마가 되었다. 2013년 9월, 드디어 모든 차량 82대가 납품이 되었고, 현재 일부 구간에서 정기적 운행을 하고 있으나, 2014년 2월에는 해저터널에서 열차가 멈춰 다른 열차로 191명이 구조되는 일도 발생해 신뢰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14년 9월, 덴마크 교통부는 이 열차를 폐기하고 분해해 저속의 지역 열차로 개조해 이용하는 것에 대한 경제성 평가를 위한 조사단을 출범했다. 이는 DSB를 파산하게 만들 수도 있는 대형 스캔들이다.

이처럼 덴마크의 공공조달은 이런 유연한 합리성에 의해 많은 예산낭비를 가져오기도 했다.

한국엔 덴마크의 행복, 복지, 녹색 성장, 디자인 등만을 보고 좋은 이야기만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면서 일반화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해답이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뭐 하나만 터지면, 선진국에서는 이러면 책임자 처벌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한다고 전국민이 공분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업무의 절차상 과실과 도덕성에 문제만 없었다면 책임자 엄벌, 이런 것은 여기선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약속 문화도, 서양 선진국은 다 약속 잘 지킨다면서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배웠는데, 알고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다 나라별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면서 공분하는 것보다는 우리 내부에서 우리의 상화에 맞는 해답을 계속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잘못된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발전을 할테니까. 그리고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문제점을 이제 인식한 단계로 해답을 찾아가기 전 단계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항상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서 좋아지길 원할 땐, 우리 좋은 것은 포기할 수 없고 남의 좋은 것만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런 좋은 것은 다른 나쁜 것과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덴마크에 갑자기 선거철이 와서(그저께, 6월 총선을 실시하기로 발표가 났다.)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 가운데, 덴마크가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정당간 정책목표가 발표되면서 이곳의 문제가 더 피부로 와닿는다. 그래도 올해는 날씨 좋은 때 선거하니까, 날씨만 좋아지면 행복해지는 덴마크인들에게도 시끄러운 선거철도 즐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말도 안되는 억측을 해본다.

덴마크 겨울 날씨 이야기. 그리고 해가 쨍한 주말엔 밖으로 밖으로.

북유럽의 추운 이미지와 달리 덴마크는 온도만 놓고 보면 그렇게 추운 나라가 아니다. 해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겨울은 온난하다. 지난 두 번의 겨울은 특별히 따뜻했다곤 하지만, 추워봐야 영하 5도였으며, 추운 해에도 영하 15~20도까지만 내려간다고 한다. 높은 위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따뜻한 기온은 멕시코 난류가 흐르는 대서양을 서편으로 두고 있는 편서풍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느끼기에 겨울이 크게 따뜻한 건 아니다. 습하고 강하게 부는 바람 때문이다.

42번째 주(10월 중순, 덴마크에선 주 번호가 매우 중요하다. 방학은 모두 이 주번호를 따르고, 회의 등 일정을 짤 때도 주 번호로 일정을 논하곤 한다.)를 기점으로 비가 내리지 않아도 아침에 땅이 젖어있는 가을이 된다. 이때부터 덴마크는 습해져, 잔디 아래는 항상 진창이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뼈가 시린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도 서울과 제주도의 기후가 크게 다른 것처럼 비행기로 한시간이면 올라가는 스톡홀름만 해도 겨울이 엄청 춥고 건조하다.)

기온이 높은 겨울은 저기압이 우세한 결과로 비가 많이 오고 강한 바람이 많이 분다. 기온이 낮은 겨울은 고기압이 우세한 결과로 건조하고 매우 춥다. 내가 있는 동안은 따뜻한 겨울만 있었는데, 두번의 유래없는 태풍이 왔으며, 폭우와 흔한 강풍으로 참 힘이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덴마크의 겨울을 춥게 느끼게 하는 것은 지리멸렬하게 긴 겨울의 시간이다. 11월부터 4월까지가 겨울이니, 6개월, 1년의 절반이다. 특히 3월경부터 다른 나라에서 들려오는 봄의 소식을 접하고 있으면 그 두 달이 영원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나마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태양이다. 12월 21일, 동지를 기점으로 해는 매일 5분씩 길어진다. 한국보다 짧던 일조시간은 춘분을 기점으로 빠르게 길어져간다. 아침 2분 30초, 저녁 2분 30초, 열흘이면 50분이다. 하계일광절약시간(썸머타임)을 실시하는 3월부터는 갑자기 낮이 한시간 더 길어지니 하루하루 일조시간이 길어지는게 피부로 와 닿는다.

5월은 본격적인 봄의 시작이다. 칙칙한 갈색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연두색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10시가 되어도 하늘이 완전히 깜깜해지지 않는다. 물론 비가 오는 날은 여전히 많다. 그래서 해가 뜨는 날이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덴마크 사람들은 날씨만 좋아도 행복해지는 소박한 사람들이다. 겨울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웃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봄만 되면 쉽게 웃고 인사한다. (덴마크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 달리, 낯선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다. 길에서 보는 얼굴들에, 왜 이렇게 화가 나있느냐고 묻는 외국인들이 많다. 무표정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막상 길을 물어보면 친절하다.)

주말에 날이 화창하면, 시내가 버글거린다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해를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좋은 날은 주로 주중에 온다. 오늘 낮은 해가 아주 쨍해서 기온이 17도까지 올랐다. 그렇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태양 아래 있으면 따갑고, 그늘 안에 들어가면 추운 날씨였다. 나도 이 날씨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해변에는 바비큐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보였고, 노천 카페는 사람들로 버글거렸다. 공원에도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 산보를 나선 사람으로 가득했다.

해변 잔디밭에서 책을 오래 읽고 싶었지만, 위아래 모두 검정옷을 입고 간 탓에 온 몸이 익어버릴 것 같이 뜨거워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관광객처럼 시내를 돌아다녀보기로 마음을 정하고, 회사 다니는 동안 거의 매일같이 지나다닌 뉘하운(Nyhavn)과 왕립극장(Skuespilhuset, Det kongelige teater)을 지나 코펜하겐 동편에 위치한 캐스틸러 요새(Kastellet)에 도착했다. 항상 이 요새를 둘러 지나갔지 안에 들어가본 적은 없었는데, 관광객처럼 들어가보았다. 군사시설의 느낌이 물씬 났다. 실제로도 안에 국방부 소속 건물이 있어 군인이 눈에 띄곤 했다. 왜 이곳을 안와봤었는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덕수궁에 들어가면 딴세상이 되듯이 이곳도 갑자기 조용한 딴 곳이 되어버렸다.

실업자로 지내는 요즘, 괜히 쓰는 돈이 아까워 집에 많이 있게 되는데, 역시 해가 쨍한 주말엔 밖으로 나서는 것이 정답이란 생각이다. 이제 앞으로 4개월은 덴마크가 찬란히 빛날 기간이다. 자주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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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나는 하늘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를 잊고 살게 되었다. 탁트인 파란 하늘은 힘겹게 오른 산의 정상에서 땀을 닦고 숨을 고르면서야나 바라보고 좋아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몰랐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매사 시큰둥해진 모양이라며, 되려 예전엔 안그랬는데 하는 씁쓸함만 느끼기도 했다.

덴마크에 온 이후로 하늘에 다시 관심이 늘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변하는 덴마크의 날씨 때문이려니, 자주 오는 비 탓에 해가 뜨기만 해도 기뻐하며 하늘 쳐다볼 일이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어느 날, 덴마크를 그리워하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하늘이 쉽게 보여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무릎을 탁 쳤다. 굳이 올려다보지 않아도 시선을 조금만 멀리 두면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자꾸 보이니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국의 하늘과 차이가 눈에 띈다.

차이점을 열거해보자면, 덴마크 하늘은 낮은 구름이 많아서 유독 가깝게 느껴진다. 또 바람이 상시 많이 불어 스모그가 없는 덕에 해만 뜨면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와 위도가 달라 계절에 따른 일조량과 일조시간, 일출, 일몰의 직전과 후의 색깔이 다르다. 특히 일몰시간의 분홍빛깔 하늘은 오묘하기 짝이없다. (이는 어쩌면 덴마크에 산과 높은 건물이 없어 도심에서도 지평선 근처에서 이뤄지는 일출과 일몰을 쉽게 볼 수 있어서 다르게 느낀 것으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지만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것뿐일 수도 있다.) 구름 모양은 또 어찌나 다른지. 어려서 좋아하던 뭉개구름은 지금도 참 좋지만, 깃털구름을 비롯해 이름도 잘 모르겠는 다양한 모양의 구름을 새롭게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것이 좋은 이유는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왜 다를까?” 하고.

구름에 대해 중학교때 배운 기억이 난다. 날씨에 대해 배우면서 배운 것 같다. 지금도 고기압, 저기압, 한랭전선, 온난전선, 층적운, 적란운 이런 용어들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런 용어만 기억난다. 아마 시험의 정답으로 써야 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구름이 왜 어떤 건 흰색이고 어떤건 회색인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구름이 하얀 것은 햇빛을 반사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회색 구름은 왜 그런 색깔인지. 인터넷을 찾아 구름의 색깔이 왜 다른지 알아냈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아마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덴마크가 참 좋은 나라라고는 해도 내 모국어를 쓰는 내 나라에서 사는 것과는 달라 힘든 순간이 있다. 어린이처럼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은 그간 당연시 했던 것에 질문을 던지게 하고 그런 것을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한다. 또한 새로이 주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한다. 어린이처럼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은, 간혹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부러워하곤 하는 어린이의 신선한 관점을 조금이나마 다시금 갖게 한다.

지난 3일간 스웨덴 말뫼에 아르바이트 하러 기차로 통근을 했는데, 일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국경을 넘으며 방송이 덴마크어로 바뀌니 어찌나 마음에 편안함이 찾아오던지. 변화는 사람을 일깨우고, 기민하게 만든다. 3일이라는 스웨덴에서의 짧은 시간이 이곳에 적응해가는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해주었다. 2년의 기간동안 이곳에 많이도 적응한 모양이다. 적응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새로운 시각도 계속 유지해가고 싶다면 내 욕심일까. 예전엔 즐기고 경험하려고 여행을 한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삶을 더 잘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일탈이기 떄문에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다니고 많이 보자. 그리고 다른 눈을 키워가자.

덴마크 여왕 생일과 군대

덴마크 여왕의 75번째 생일

어제는 한국에서는 세월호 1주년 추모일이었지만, 덴마크에서는 덴마크 여왕의 75번째 생일이었다. 어느 하루가 누구에게는 애도할 날이되고 누구에게는 경축할 날이 된다는게 인생의 아이러니인 것 같다.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애도할 것은 애도하되,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이니… 이러한 가슴아픈 날이 다시금 없었으면 좋겠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같은 대형 사건 이후 이런 일은 설마 또 없겠지 했는데…

덴마크에서 생일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컨셉은 없는 것 같다. 그냥 탄생 경축! 이런 의미인 듯 하다. 우리도 요즘은 거의 그렇게 바뀌었지만, 최소한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우기에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라는 내용이 꼭 들어있었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라 믿는다. 일반적으로는 Rounded Birthday라고 10년 단위의 순 개념을 크게 기념하고, 그 외에는 가볍게 가족끼리 식사하고 선물 주는 식으로 챙긴다. (역시나 애들은 제외… 항상 뻑적지근하게 하며, 우리와 달리 친구들만 초대하는 생일파티와 부모의 친구와 가족, 소수의 애들 친구를 초대한 생일파티 두번 정도 한다.) 그러나 여왕은 또 예외이다. 특히나 5년 단위로 조금 더 뻑적지근하게 하는 것 같다.

여왕 퍼레이드의 시작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의 시작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의 선봉, 왕실근위대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의 선봉, 왕실근위대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와 여왕(에메랄드색)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와 여왕(에메랄드색)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이 잔재(말똥) 청소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여왕 퍼레이드이 잔재(말똥) 청소차량
(Photo credit: Peter Brodersen)

어제 덴마크어 수업 말미에 덴마크어 선생님 Jørgen(요언)이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D. 9. april 1940 blev Danmark besat af tyskerne. D. 16. april 1940 blev princesse Margrette født. Hun bliver i dag 75 år og vi holder meget af hende!” (1940년 4월 9일, 덴마크는 독일에게 점령당했다. 1940년 4월 16일, 마르그레테 공주가 태어났다. 오늘 그녀는 75세가 되고, 우리는 그녀를 매우 좋아하고 아낀다!)

덴마크인의 인식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평등주의를 생각하면, 왕실을 유지하는 자체와 여왕의 생일이라고 사람들이 국기(Dannebrog)를 걸고, 들고 흔들며 여왕에게 환호하는 모습 등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덴마크에 사는 외국인들이 참 아이러니 하다고 하는 부분인데, Jørgen은 바로 이것을 설명한 것이다. 1940년 덴마크가 독일에게 점령당했을 때, 바로 몇일 이후 있었던 공주탄생은 우울한 덴마크인에게 기쁨을 가져다준 존재였으며, 지금과 왕실이 보다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었을 때 이러한 공주탄생은 행운의 상징같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장수하는 것에 대해 덴마크인은 기뻐하고, 75세가 된 것을 경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Jørgen은 자기가 여왕을 지키던 사람이기 때문에,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날이라고 덧붙였다. 자기는 군대에 자원입대했다고. 그래서 네가 물었다. 뽑기에서 낮은 숫자를 뽑았냐고. 그랬더니 맞단다. 그래도 자기는 왕실근위대에 지원했다고 덧붙이면서.

덴마크 군대

덴마크 군대는 징집이 원칙이다. 만 18세가 된 덴마크의 모든 남성은 우선 징집 대상이다. 2014년 10월에 발간된 덴마크 징집위원회의 통계집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에는 대상자 18,216명 중 48.05%가 적합대상자이며, 2015년 1월 발표된 덴마크 국방부 인사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총 4,159명이 징집되었다. 이중 자원입대율이 2014년에 97%에 달한다는 충격적 사실! 또한 전체 복무자 중 여자가 매년 다르지만 10~2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 눈을 끈다.

정부 민원서비스에서 소개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만 18세가 된 덴마크 남성은 국방의 날 행사에 소집을 명하는 편지를 받게된다. 이 날은 국방부와 국가재난재해 관리위원회와 교육 및 직무 기회에 대해 소개하고, 징집대상자의 복무적합도를 측정하는 날이다. 이는 덴마크 거주중인 모든 덴마크남성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여성의 경우에도 만 18세가 되면 국방의 날 행사에 참석할 수 있으며, 자원 입대 희망시 복무적합도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내하는 편지를 받게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징집 방식! 복무 적합이 판정된 징집대상자는 번호표를 뽑아야 한다. 번호는 1번부터 숫자가 나열이 되어 있고, 조커와 비슷한 자유숫자도 있다. 연간 징집인원수가 크게 변동하지 않기 떄문에, 4천~6천명 정도가 간다고 보면 된다. 낮은 숫자를 뽑을수록 징집확률이 높아진다. 1번은 무조건 가는 것이고, 8천번은 안가는 것이다. 그런데 4천~6천번에 해당하는 번호를 뽑은 사람은 내가 징집이 될지 아닐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운이 좋으면 안가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가는 것이다. (역시나, 대부분의 덴마크인도 군대는 안가고 싶어한다. 하하하.)

여기서 자원입대가 생긴다. 물론 그냥 자원입대를 신청하는 사람들도 꽤나 된다. 여성 복무자 모두는 자원입대자이니. 그러나 여기에선 정말 군대가고 싶어해서 가는 사람 말고, 의도치 않게 자원입대하는 사람을 이야기 해보자. 내가 갈지 안갈지 모르는 상황이든, 갈 것을 아는 상황이든 자원을 하면 배치에 있어서 자대배치에 있어서 입대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준다고 한다. (물론 꼭 존중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니, 입대가 거의 확실하다 싶으면 그 해의 배치인원이 발표되어 자기의 입대여부가 결정되기 전에 그냥 자원을 하는 것이다. 최대한 안가고 싶으면, 애매한 숫자를 뽑아도 버티다가 징집되면 가고 아니면 안가려는 사람이 있어서 비자원 입대자 비율이 10%를 밑도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말 군대 가고 싶어서 가려는 자원입대자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전에는 평균 복무기간이 1년정도로 지금보다 길었는데, 요즘 일반 복무가 4개월에 불과하고, 경기병 연대만 12개월, 왕실요트 대네브로(Dannebrog, 덴마크 국기 이름)에 승선하는 부대와 국가재난재해 관리위원회는 9개월, 왕실 근위대는 8개월 복무한다. 우리보다 복무기간이 훨씬 짧기때문에 비자원입대자의 비율이 5% 미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리고 대학교 진학이나 취업을 하기 전에 뭔가 다른 것을 하면서 진로를 고민하는 덴마크 학생들에게 군대가 꼭 불행한 옵션은 아니라고 한다.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기 때문에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덴마크 왕실 근위대 도열장면 (Photo credit: Angelangelv2, wikipedia)

덴마크 왕실 근위대 도열장면
(Photo credit: Angelangelv2, wikipedia)

자원입대가 어쩌구 저쩌구 해고, 결국 덴마크 군대는 뽑기부터 하고 간다는 결론이다. 국방수요가 낮으니 이런 일도 일어난다는 놀라운 사실. 그러나 최근 러시아 비행기가 스웨덴과 덴마크 영공을 돌다가고, 러시아 잠수함이 스웨덴과 덴마크 인근 해역을 오고가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고, 크림반도의 불안정한 정정상태 등을 계기로 국방 규모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그래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뽑기는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한다.

덴마크에서 연애하기

나와 내 남자친구(뭔가 아이들이 쓰는 말 같긴 하지만, 약혼자라는 말은 입에 영원히 붙지 않을 거 같다. 애인이라는 말도… 사실 연인은 친구의 기능도 매우 충실히 해야 하며, 나는 이성애자인 관계로 성별은 남자여야 하니, 남자친구란 말이 틀린 것도 없고.)는 남들이 보면 심심할 데이트를 한다. 동네 한바퀴나 코펜하겐 시내를 산책하거나, 근처 공원에 가서 각자 딴 일을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커피숍(맨날 가는데만 가는 사람들…)에 가서 신문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쉴 때 대화를 한다. 아마 같이 살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살림을 합치기 전에도 비슷한 생활 패턴이었는데. 주로 집에서 하는 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영화를 보고, 와인을 마시고 뭘 해도 주로 집에서.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할 때, 문화적 차이와 개인적 차이를 구분해 내기란 참 어렵다. 하물며 한국과 같이 작은 나라안에서도 크게 다른 지역적 특성을 찾아볼 수 있고, 그 안에서도 무수히 다른 삶의 양태를 찾을 수 있는데, 뭔가를 덴마크인은 이렇게 한다, 인도인은 이렇게 한다(이 두 나라에서만 살아본 탓에…)고 쉽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으니…

그렇지만 주로 집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것 등은 덴마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데이트 방식이다. 그러니 덴마크적 특성이라고 봐도 좋겠다. 많은 연애를 해봤지만(주로 짧은 데이트에 그치고 말았지만…) 대부분이 한국에서 있었던 일인지라, 두나라의 다른 데이트방식에 대해 비교를 하게 되는데, 뭐가 좋고 나쁘고를 따지긴 힘들고, 나에게 어떤게 잘 맞는지를 비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데이트하면, 뭔가 코스가 필요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닌데, 남자친구는 항상 좋은 코스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 코스를 밟아가면서 즐기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어떤 면에선 참 까다로운 나이지만, 우선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에게는 크게 까다롭게 굴지 않는 나였기에 그 준비된 코스가 마음에 안들어서 싸우거나 그런 건 없었다. 착해서는 절대 아니고, 뭐가 되었든 마음에 안들어하면 손해보는 게 나라서 그런 실용주의적 마음에서 그런 것이었다.

형식적인 것을 배격하는 덴마크인의 실용주의는 사회 전반에서 발견된다. 이제 2년 가까이 살고 나니 그런 모습을 여기저기서 많이 느끼게 된다. 밖에 나가서 먹으면 돈이 많이 든다. 물론 어떤 데이트코스를 찾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조금 우아하게 먹고 마시자고 밖으로 나가면 억수로 돈이 깨진다. 예를 들어 일주년 기념으로 옌스가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여기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제일 비싼 미슐랭 스타급 고급 레스토랑 바로 아래급 레스토랑을 갔다. 5코스 식사 2인에 가장 낮은 가격대의 와인 한병, 식전 샴페인 가장 저렴한 것으로 한잔씩 해서 먹고 나니 60만원이 나왔다. 입이 떡 벌어질 가격이다. 이런 밖에서의 식사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한국에서 여러번에 나눠할 외식을 정말 일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몇번 안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주변에 커플들을 보아도, 외식은 잘 안한다. 사실 덴마크에서 외식 엄청하고 살면, 아주 부자가 아닌 한 파산하기 마련이다. 막대한 세금으로, 한달의 가처분 소득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비해 물가가 2~3배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니 평소엔 다들 영화도 집에서 주로 보고, 와인도 집에서 마시고, 식사도 집에서 하면서 데이트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기 참 힘든 것이, 결혼 전에는 주로 혼자 살지도 않고, 외식업이 발달해 있고 경쟁이 치열해서, 밖에서 사먹는게 집에서 비슷하게 해먹는 것보다 딱히 비쌀게 없고, 자주 요리 안해먹는 사람에겐 오히려 집에서 해먹는 게, 기본재료 갖추느라 더 비싸지기조차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누군가를 데려오는 건 결혼할 사람이나 데려온다는 집이 많아서(요즘은 좀 변하고 있으려나…?) 밖에서 봐야 하고…

그리고 한국보다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다. 한국에 비춰진 것처럼 직업에 귀천도 없고, 남 시선 하나도 신경 안쓰고 그런 건 전혀 아니다. 비싼 물건들이 아니라서 그렇지, 여기도 3초백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주 보이는 백팩(스웨덴산 Fjallraven, 한국에서도 엄청 메는 듯?)이 있고, 여자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DAY Birger et Mikkelsen 쇼퍼백이 있으며, ‘덴마크인처럼 보이는 법’이라고 덴마크인의 유행 사랑을 비꼰 글들도 있다. 그렇지만, 자기가 뭔가를 함에 있어서 어거지로 남들눈에 좋아보이는 일이라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굳이 하지는 않는다. 경험의 측면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중시한다.

여자에게는 남자친구가 데이트코스를 짜줘야만 하고, 좋은 곳에서 밥을 먹어야 하며, 남들 보기 화려한 것을 해야하고, 남자가 가방을 들어줘야 하고, 뻑적지근한 선물을 받아야 하고, 데이트 비용은 주로 남자가 내줘야 한다면, 덴마크의 데이트라이프는 참 고달퍼진다. 남자가 대충 맛있는 사 먹이고, 처음에만 바짝 잘해주고 그다음엔 대충 편한대로 하고, 집안일 잘 못하고, 돈으로 떼우려고 하면 또 참 고달퍼진다. 덴마크에서 연애란 인간대 인간이 만나서 하는 것이다.

옌스의 1주년 기념 선물 Matador DVD와 포장에 써준 사랑스런 메세지

옌스의 1주년 기념 선물 Matador DVD와 포장에 써준 사랑스런 메세지

덴마크는 뭔가 엄청 가족파괴현상이 일어나고 결혼도 기피하는 그런 사회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곪는 관계를 속 썩여가면서 두지 않으려고 하고, 제도적인 것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에 따라 나라 밖에서 보기에 그리 보여지는 것 뿐이다. 가족과 보는 횟수는 더 적어도, 더 자주 연락하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고, 가족간에 챙기는 마음이 한국과 다름 없거나 더하기도 하다. 부양이라는 문제가 가슴을 짖누르는 경우가 한국보다 적기 때문일 수도 있다. 최소한의 복지가 삶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을 주니… 결혼 없이 동거로만 지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게 한국에서 갖는 의무에서부터 자유로우려고 하는게 아니라, 굳이 나라에서 내 가족관계를 인증해줄 필요 없다면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밀당같은거 못하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연애하는 거 좋아하는 나에게 덴마크는 좋은 연애의 장이다. 결혼하면 연애가 끝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그리고 옌스와 함께라면 앞으로 남은 반평생, 혹은 생명연장의 시대에 사니 남은 2/3의 인생동안 계속 알콩달콩 유치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불편한 삶에 익숙해질 수 있다면, 나같은 사람에게 덴마크는 참 좋은 땅이다. (아… 비영어권이라는 거 하나 빼고… 하하하.)

덴마크의 크리스마스 – 달력시리즈

덴마크의 크리스마스는 한국과는 사뭇 다릅니다. 실용주의의 대표주자인 덴마크인이 딱히 종교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전통을 따르는 것을 보면 기독교의 영향이 중세 이래로 유럽 곳곳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크리스마스는 사실 따지고 보면 기독교 전통도 아닌지만 말입니다. (유럽의 파가니즘에 따르면 동짓날이 해가 가장 짧은 날로 빛의 죽음 또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로부터 3일 이후에 빛이 부활한다는 믿음을 기초로 명절삼아 지내던 크리스마스를 나중에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예수탄신일로 정했다고 하죠.)

덴마크에서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게 뭐가 있을까요? 달력시리즈, 율리프로고스트, 독특한 캐롤, 크리스마스 이브 전통 등이 떠오는데요, 오늘은 그중 달력시리즈를 다룰까 합니다.

12월이 되면 덴마크에는 각종 달력이 넘쳐납니다. 초콜렛, 선물, 초, 스납스(감자로 만든 덴마크 전통 독주로 40도에 달합니다. 우리 소주와 비슷하나 독한 느낌이죠.) 달력과는 무관해보이는 이것들은 달력과 함께 소소한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으로 재탄생됩니다.

덴마크 아이들은 12월이 되면 초콜렛달력이나 작은 선물들이 달린 달력을 선물받습니다.  아이들이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목이 빠지게 기다릴 동안, 매일 하나씩 열면서 인내심을 갖게해주는 작은 수단이라고 하네요. 착한 어린이는 하루에 하나씩 열어보고, 그 이상 열어보면 선물은 없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 말 잘 듣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나씩 열어보면서 신나한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덴마크에서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에 남편이 선물달력을 준비해서 이를 열어보는 소소한 재미를 즐기고 있다 하네요.

달력초콜렛

선물달력

아이들을 위해서 초콜렛과 선물이 있다면, 어른을 위해선 스납스가 있지요.

Holmegaard라는 덴마크 유리그릇제조사는 매년 병 오른쪽에 1부터 24까지 눈금이 새겨져 있는 병을 출시합니다. 바로 아래 사진이 2014년 에디션인데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매일 스납스를 한잔씩 홀짝홀짝 마시는 거죠.  저도 벼룩시장에서 몇 개 샀어요.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매년 다르게 나오는 병 모양이 어찌나 이쁘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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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는 온 가족이 어두침침한 저녁을 밝히면서 하루를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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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인이 행복한데는 큰 데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이렇게 소소한데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즐기는 태도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