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단둘이 데이트

아이와 단둘이서 하는 데이트들이 즐겁다. 아무래도 아빠도 같이 있으면 어른의 대화에 아이가 중간중간 엉뚱한 주제로 뛰어드는 것이 흔한 패턴인데, 둘만이 있으면 우리 둘만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어서 아이의 만족도가 높아져서 그렇다. 그래서 아이는 간간히 엄마랑 단둘이, 또는 아빠랑 단둘이 하는 데이트가 제일이라고 말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2킬로미터짜리 달리기를 하고 왔다. 아이들은 완주시 메달을 준다고 하니 아이는 기뻐서 참여한다고 했다. 평소 달리기를 따로 하지는 않지만 놀이와 운동으로 체력이 다져진 아이라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참여했는데, 너무나 즐겁게 달리고 왔다.

Nordhavn은 새롭게 개발된 지역인데, 이제 상당부분 완료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지역에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사생활 관점에서는 좋지는 않겠지만 그것 빼고는 살기 좋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다가 너무 가깝다는 점은 여름의 소음문제와 해수면 상승과 태풍시 침수 피해 등을 고려하면 항상 좋기만 한 건 아니겠지만.

줄이 길까 싶어 아침 일찍 들러 참가자 등번호를 받아서 산책을 했는데, 도착할때까지만 해도 추적추적 제법 많이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정말 아름다운 아침 산책길을 즐길 수 있었다. 항구의 자락에서 볼 수 있던 풍력발전단지의 평화로운 모습, 정갈하게 정돈된 길 구석구석들, 바다에 설치된 수영시설, 간간히 들리는 이들의 첨벙하는 입수소리,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작은 웅성임, 혹시나 콩고물이 떨어질게 없나 해서 가까이서 걸어다니는 참새들, 해수면에 반사되어 흩어지는 금모래 같은 물결의 반짝임, 선선한 바람이 머리를 날리는 감각, 그전에 본 적 없었던 각도의 코펜하겐과 하이라인. 그 모든게 너무나 아름다웠고, 온 몸으로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뒤이어 달리기 전 행사장에 설치된 놀이시설을 조금 즐기고 나서 사람들과 같이 몸을 푸는데 그 흥겨움. 거기서 오른 텐션으로 2킬로미터를 가볍게 뛰었다. 처음부터 로케트처럼 튀어나가고 싶은 아이를 진정시키며 페이스 조절을 했는데, 중간중간 그렇게 튀어나가버린 아이들이 힘들어서 못뛰고 속상해서 울고 그런게 보였다. 즐겁게 마무리하고 돌아와 조앤더 주스 한잔으로 마무리.

전날 클라이밍 힘들게 하고 나서인지라 몸이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는 늘어져 한시간 낮잠을 잤지만, 아이에게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남은 달리기였다. 매년 계속 가자고 하는 거 봐서 이제 여러 달리기에 같이 참여해야겠다 싶었던 하루.

첫 데이트 5주년

오늘은 우리가 첫 데이트를 한지 5년이 되는 날이다. 사실 27일에 우리가 무슨 관계냐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기에 그날을 기념일로 하는데, 그래도 또 첫 데이트는 첫데이트 대로 좋은 기억이라 떠올리면 항상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서로 메세지만 주고 받다가 백화점 1층에서 만나 어색하게 포옹을 나누며 인사를 했었는데… 옌스가 좋아하던 단골 카페에 나를 데리고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중간에 공짜로 나눠주는 초콜렛들도 받아가며 걸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발렌타인데이 전날이라 초콜렛의 상업성이 정점을 찍는 타이밍이었던 거 같다.

한참을 이야기하며 옌스는 커피를, 나는 차를 마셨었는데 공통점이 있는 부분도 많고 유머코드도 잘 맞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더랬다. 사실 두번째 데이트는 그날 핸드폰도 잃어버려 다시 사고 좀 기분이 안좋았던 날이라 서로 상대가 자기가 마음에 안들었나 긴가민가했었지만.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남자를 만났나 싶을만큼 훌륭한 남자지만 내가 항상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옌스도 나와 만난 걸 항상 기쁘게 생각할 수 있게 하려한다.

난 별로 로맨틱한 사람은 아니라 옌스에게 간간히 핀잔도 듣는데 로맨스가 많이 사라진 애를 둔 부모라도 역시나 이런 기념일에 꽃을 챙기는 옌스덕에 로맨스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런데 선물을 준비한 건 반칙. 우리 기념일은 27일인데다가 기념일엔 아주 작은 선물만 하기로 해놓고. 시부모님 오셨을 때 시어머님의 도움을 받아서 목걸이를 샀단다. 그리고 오늘 준 건 그래야 나를 놀래켜줄 수 있어서였단다. 콩알만하지만 다이아몬드도 박힌. 선물의 가액이나 그런건 전혀 중요하진 않지만 나를 생각하며 선물을 샀다는 것과, 지난 5년이 자기 삶에서 가장 행복한 5년이었다며 앞으로의 50년도 이렇게 보내자고 적은 작은 쪽지가 너무 좋았다.

지난 5년이 어찌 보면 너무 후딱 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것 같은데 5년 밖에 안갔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인생에 이렇게 누군가가 깊게 파고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다. 앞으로 50년이라. 그 긴 시간도 어느샌지 모르게 훅 지나가 있을 거 같다. 그 사이 경험할 많은 일들과 함께 나눌 희로애락, 모든 것이 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