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에게

주말에는 항상 나와 커피데이트를 하고 싶어하는 당신. 그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몇 안되는 날, 내 빈자리가 느껴졌다고 이야기해주는 당신. 자주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를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고 말해주는 당신. 내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주는 당신. 어딜 가나 내 손을 꼬옥 잡고 다니는 당신. 손님이 오는 날이면 디저트를 만들어주는 당신. 나의 어린 감성을 채워주기 위해 유치한 행동을 해주는 당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마음으로 상황을 보려고 최면을 걸 때면, 항상 좋은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낙망하지 말라고 현실감을 일깨워주는 당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만히 안아주며 좋은 점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당신. 내가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마음안의 어려움을 눈치채 보듬어주는 당신. 나를 항상 지켜보고 있고 나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신. 항상 겸손하고 변함이 없는 당신. 배움이 가장 재미있다며 그를 옆에서 바라보며 나도 자극받게 해주는 당신. 삶에 대한 올바르고 균형잡힌 태도를 갖고 있는 당신.

이제 당신을 만난지 몇일이면 2년이 되는구나. 내 삶은 당신을 만나서 정말 행복해. 그래서 고맙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자. 🙂

첫 학기를 무사히 잘 마치고

마지막 남은 과목의 성적도 확인했다. 12점. A를 받았다고 이렇게 기뻐한 적은 학부때에도 없었는데. 학점 인플레가 없는 곳이라 A의 의미가 달라서 그런 것인가? 그런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공부에 대한 절박함이 그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라 그런 것 같다.

학부때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고등학교 때 있었던 외환위기와 그에 따른 IMF 구제금융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외환위기를 야기한 최전방에 있었던 종금업계에서 근무하셨기에 많은 일들이 불거지기 전 미리부터 불길함의 전조를 건너 들을 수 있었고, 왜 그런 일이 생긴 것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공부에는 별로 필요도 없었던 매일경제신문을 매일 읽었고, 경제기사 읽는법이라는 책도 사서 읽었다.

재미있긴 했는데, 막상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함에 있어서는 절박함이 없었던 것 같다. 대학교 가면 뭔가 삶도 더 많이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공부할 게 생각보다 많았고, 앞으로의 취직도 걱정해야 했기에 뭐하나 게을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해야되서 했고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 자체는 없었다.

학부초반때 경제학 공부가 재미있긴 했는데, 그 재미가 학년이 올라갈 수록 덜해졌다. 공부의 방향성 설정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남들 듣는 수업 찾아 듣다보니 왜 그 공부를 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부유했다. 이것을 갖고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경영학 이중전공을 했고, 실생활에 보다 적용하기 쉬운 경영학에 보다 큰 관심을 쏟으며 공부하고, 졸업했다.

회사생활을 한지 12년만에 모든 것을 관두고 다시 공부의 삶으로 돌아왔는데,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회사다니는 중간에 한국에서 석사를 한번 했지만, 졸업시험과 경제학에세이라는 것으로 논문을 대체한 나는 뭔가 가라로 석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학부 생활을 다시 한번 한 것 같은 느낌. 회사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한 것이라 한학기 한학기 떼우기 바빴던 시기였다. 다만 그 때 차이가 있다면 그간 나를 괴롭혔던 경제수학과 통계학과 한층 가까워졌던 시기였다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것을 이해하고 그 모르는 것을 질문으로 푸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만은 않다는 걸 회사생활을 통해 배우기도 했고, 내가 모르면 남들도 모를 수 있지 라는 생각으로 질문할 수 있는 배짱도 생겼다. 그때의 그 경험이 이번 석사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유학경험이 없었고, 영어로 하는 세미나에 앉아있으면 장시간 앉아서 집중해 듣는다는게 피곤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수업을 영어로 하고, 읽고, 시험을 보는 것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꽤나 했다. 실제로 계량경제학은 그 컨셉 자체가 어려웠고, 내가 약했던 과목이었기에 더욱 어려웠다. 그래도 몇주가 지나면서 조금씩 수월해졌고, 자신감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출문제를 입수해서 같이 모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제한된 시간 자원속에 나는 혼자 개념 공부에 집중하기로 했다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C. 예상치 못했던 황망한 결과였기에 받고 우울해했다. 여기는 성적 분포표가 인터넷으로 공개되는데, 그게 평균 이상임에 놀랐으며, 그걸 알고도 C라는 글자에 우울해하는 나에게도 놀랐다. 옌스는 평균 이상을 받고 우울해하는 것은 자만이라고 이야기하기에 마음을 애써 추스르긴 했지만 말이다.

이미 지난번 블록때도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에 딱히 이번 블록이라고 더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두과목 모두 A를 받았다. 계량경제학에서 받은 C에 대한 설움에 보상이라도 받은 듯한 기분이다.

오래간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새로운 지식이 머리로 들어오는 과정이 놀랍게도 재미있다. 물론 딴짓을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날도 있지만, 내가 워낙에 한결같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간의 삶의 시간에서(고등학교 이후…) 지금이 가장 자발적이면서도 꾸준히 공부의 길을 걷고 있는 때라는 것을 자신한다.

학부를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어린 학생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같이 자원경제학 시험을 준비하는 도중 자신들과 나는 공부의 동기부여가 다르다면서, 자기들은 그냥 계속 하던 것을 하는 거라 지겨울 때도 있다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첫학기는 결과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그 과정도 즐겼고, 좋은 동기들도 얻었으며, 결과도 좋았다. 전체 석사과정 중 다음 학기에 가장 중요한 수업들이 진행된다. 1학기에 배운 내용을 갖고 실제 학계를 나가면 쓰게 될 내용들을 공부하게 되기에 가장 큰 도전이 될 과목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 보니 삶에서 공부 또는 배움이라는 것에서 멀어지지 않는 길을 계속 걷게 되었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석사는 안할거라고, 경제학은 더이상 안할거라고 했던 내가 석사를 두번이나 하게 될 줄은, 또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박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그래서 절대…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는가 보다.

한주간의 방학이 이제 거의 끝나간다. 다음주면 새학기가 또 시작이 되는구나. 긴장의 끈을 놓칠 새 없이 다시 달려야 한다는게 부담이 되긴 하지만, 설렘 또한 나를 반긴다. 다시 한번 잘 달려봐야지.

덴마크 잡설 1

  1. 바람이 정말 많이 분다. 거센 바람이 거의 항상 분다. 과거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매미가 초속 30m의 바람을 동반했는데, 여기선 초속 20m로 바람이 부는 날이 흔하다.
  2. 겨울이 길다. 멕시코만류(난류)의 영향으로 본격적 겨울은 12월부터 시작되서 4월까지 간다.
  3. 비가 많이 온다. 강수량 자체가 많은 것을 아니지만 추적추적 자주 온다. 특히 가을부터 봄까진 흐린 날이 대부분이라 파란 하늘을 보면 감사하게 된다.
  4. 기온으로는 추워봐야 영하 5~10도로 크게 춥지 않지만 거기에 거센 바람과 습한 공기가 결합하면 참 춥다.
  5. 겨울엔 낮이 정말 짧지만 반대로 여름엔 낮이 정말 길다. 흑주, 백야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그에 준한다. 겨울엔 해떠있는 시간이 5시간 정도에 불과하고, 해도 매우 낮게 떠서 하루 종일 해질녘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6. 여름은 짧지만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멕시코 만류가 여름의 기운을 실어다 주기까지 시간이 걸려 여름 또한 7월 정도로 늦게 시작되지만, 9월정도까지 지속되는 여름은 참 아름답다. 기후가 안좋은 해에는 여름이 실종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여름이 실종된다는 것은 여름에도 최고기온 15도 내외로 비가 추적추적내리는 음습한 날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7. 촛불을 많이 켠다. 1인당 초 사용량 기준 세계 1위다.
  8. Hygge를 좋아한다. 겨울이 길고, 음습하고, 밤이 길지만, 집에서 촛불을 켜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나 차, 와인을 마시면 어찌나 아늑한지. 그 분위기를 일컬어 “Hyggelig”하다고 한다.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을 표현하는 동사로 “At hygge sig”가 있다. 다른 나라 말로 번역이 정확히 안되는 단어다.
  9. 커피를 정말 많이 마신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 5위안에 든다. 그러나 대형 커피 체인은 장사가 별로 잘 안된다. 독립 커피점이 잘 되는 나라다. 물론 집에서도 많이 마시지만.
  10. 코펜하겐 사람들은 날씬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날씬하지만, 코펜하겐 사람들은 더 날씬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도시가 운동에 꽂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거리를 누비며 뛰는 사람도 많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철인을 보유한 것처럼 강인한 체력을 소유하는 것을 좋게 생각해서 그런 게 더 큰 것 같다. 날씬하고 건강한게 트렌디한 것이라. 지방으로 나가면 비만 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맥주와 소세시, 돼지를 즐겨먹는 식문화에서 날씬한 사람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11. 다른 코카시안에 비해 얼굴이 조금 더 밋밋하게 생겼다. 눈위 뼈가 도드라지지 않아 눈이 푹 파이지 않았으며, 코도 아주 높거나 크지 않고, 매부리코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하나하나의 얼굴 부위 특성을 따지면 아시아인의 얼굴같은 느낌이 있다. 물론 금발머리가 흔하고, 얼굴 색은 겨울엔 거의 창백하고, 여름엔 구릿빛이 되고(빨개지지 않고 잘 타는 편이라 다른 유럽인들이 부러워한다.)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아시아인같은 느낌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 왈 덴마크인은 잘생긴 편이란다. 처음엔 그닥 공감하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를 갔을 때 공감했다. 덴마크인들이 크다는데 크게 공감하지 않다가 한국 돌아가서 공감한 것과 마찬가지로.
  12. 장을 동네 슈퍼마켓에서 자주 본다. 미국식 대형 슈퍼마켓에서 대량으로 사와 쟁여놓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렇게 사먹으면 신선한 것을 못먹는다는 생각에서 그렇다는데, 그것보다는 장을 자주 볼 수 있을 만큼 여유있게 퇴근을 하거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슈퍼가 충분히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13. 빈번한 외식문화는 한국처럼 발달해있지 않다. 한국에서처럼 매일 사먹으면 가산을 탕진하기 때문이라 그런 것도 있고, 집에 와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 할 시간적 여력도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외식도 자주 안해 버릇하니, 예전 한국에 있을 때처럼 이게 먹고 싶다, 저게 먹고 싶다 이런 생각 자체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14. 전국민이 자전거를 탄다. 나이, 성별 따지지 않고 다 탄다. 그래서 보조 바퀴를 단 자전거를 볼 일이 없다. 눈비 가리지 않고 타는 그들을 보면 놀라울 지경이다. 추운 겨울엔 핸들바를 잡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타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15. 생산성이 높다. 일하는 시간이 짧은 대신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짧고, 업무강도가 높다. 점심시간은 최대 30분 정도 쓰고, 이 또한 그냥 자리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는 것으로 대신하는 사람들도 많다.
  16. 무상복지 패키지는 별로 없다. 국민 연금은 많이 내도 적게 내도 받는 액수엔 큰 차이가 없다. 의료의 대부분은 나라에서 지원하지만, 의약품은 개인 부담이 우리보다 크고, 치과진료, 물리치료 등은 개인 부담이 크다. 대학교육을 제외하고는 보육부터 의무교육기간까지 추가로 학교에 내야하는 돈이 꽤 크다. 한국 사립학교 수준이다. 그렇지만 살림이 어려운 가정에게는 나라에서 추가로 보조해준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소득재분배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17.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사회 계층의 차이가 있다. Hellerup, Rungsted, Chalottenlund 등지의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갖고 있으며, 못사는 집 애들과는 놀지 못하게 하는 부모들도 있다.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이런저런 경험담을 덴마크인을 통해 듣다보면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 하는 생각이 든다.
  18. 세금을 많이 낸다. 최고 평균 세율이 55%이다. 따라서 한계세율을 기준으로 보면 60% 넘게 내는 사람들이 있다.
  19. 1인당 가처분 소득은 세후 기준으로는 한국보다 1.5~2배정도 된다. 그러나 물가가 2배 정도 되기에 검소하게 살 수 밖에 없다.
  20. 전반적으로 다 깔끔하게 하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명품을 든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품브랜드가 한국에서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하지 않다.
  21. 녹지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도시 슬럼화 현상을 먼저 관찰한 후 도시계획을 잘 수립해 중심부가 슬럼화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왔으며, 녹지계획이 그와 함께 잘 수립되어 있어 녹화된 도시로 성장했다.
  22. 종교세가 있다. 국교인 루터교가 하나의 정부 부처로 설립되어 있으며, 종교세 1%를 과세한다. 교회에서 탈퇴하면 안내도 된다.
  23. 젊은 사람들은 영어를 참 잘하지만,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많다. 시부모님이나 시누이가 간혹 원하는 영단어를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 괜히 미안해 한다. 영어를 잘 하셔서 오히려 감사할 일인데 말이다.
  24. 덴마크어의 발음 규칙은 복잡하다. 쓰인대로 읽지 않는다고 외국인들이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쓰인대로 읽지 않는게 아니라 알파벳의 결합에 따라 읽히는 규칙이 다른 언어에 비해 복잡한 것 뿐이다. 영어와 독어를 잘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배운다. 동사 변형이 다른 유럽어에 비해 간단한 편이다. 발음 때문에 사람들이 청해에서 어려움을 느껴 언어 자체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지, 언어 자체가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25. 애플 제품을 정말 많이 쓴다. 대학교에서 맥이 아닌 컴퓨터를 찾는게 더 어렵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애플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한다. 아마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해서 그런게 아닐까.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나는 건 많지만, 다음에 이어가기로 하고…

정신연령이 어려지는 것 같다.

경제학, 생태학, 덴마크어. 요즘 하는 거라곤 딱 이 세가지. 그 밖의 시간에 하는 건 옌스와 보내는 주말과 저녁, 이따금씩 있는 극히 제한된 풀에서의 사회생활.

해당 분야에 대한 사고 이외엔 별로 하지 않으니 생각이 단순해진다.

옌스와 나는 둘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라, 아니 그래서 짝이 맞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간혹 치는 장난들이 남들이 보면 황당해할 어린애들의 것이다. 그래서 그 이전의 어떤 연애때와도 달리 내 안의 어린 나를 많이 보여주게 되고, 그의 그런 모습도 보면서 지내게 된다. 우리 둘다 하는 행동이 굳이 우리 나이에 걸맞는 행동만 하는게 아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젊어서 그런지 여러모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소비의 스케일도 그들의 것을 보며 나도 괜히 검약하게 된다든지, 그들의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에 놀라면서도 영감도 받게된다.

덕분에 정신연령이 어려지는 것 같다. 좋은 의미로.

방학 아닌 1주간의 방학을 보내며

시험이 끝나고 한주간 있는 방학. 딱히 쉬기도 어려운 건 방학이 시작하기 무섭게 주어지는 읽을 거리때문이다. 수업 진행 방향을 미세조정하기 위해 수강생들의 수학배경을 확인하기 위한 설문조사도 이때 이뤄진다.

혹여나 해당 학기 이전에 통과하지 못한 시험이 있는 학생들은 이 주간에 재시험을 칠 기회가 주어진다. 재수강이라는 개념은 없어서 해당학기에 쳐야 할 시험에 이전 학기에 통과하지 못한 시험까지 쳐야하니 부담이 더해진다. 수업을 들은지 한참 지나서 재시험을 쳐야 하니 그것도 고통일 것 같은데, 원하는 결과가 안나올 것 같은 수업의 경우 일부러 시험을 안치고 재시험을 노리는 학생들도 꽤나 되는 것 같다.

읽을거리들을 출력하느라 도서관이 나왔더니, 예상한대로 별로 사람이 없다. 낯이 익은 사람이 다른 누구와 대화하며 재시험 치는 것 때문에 너무 걱정된다고 하는 것 보니, 나와있는 사람 중 몇몇은 재시험을 보는 학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갖고있는 강박중 하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중요하지 않아 넘어가도 되는 부분에 사로잡혀 머리를 끙끙 싸매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급박한 프로젝트가 있는 경우 그 완급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를 잘 하지 못하고 도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많은 고생을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깊이 이해해야 하는지, 과거 다루고 넘어갔던 컨셉이 세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을 경우 얼마나 자세히 복습을 해야하는지 등등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한다. 적당히 넘어가는 포인트를 찾는 것은 아마도 평생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초반에 너무 열정을 투여할 경우 중간에 지쳐서 용두사미처럼 헤이해지기 좋기에 완급 조절은 필수다. 우리 단과대학처럼 제대로된 방학이 여름밖에 없는 경우는 더욱 그렇고, 주당 백페이지가 훌쩍 넘는 리딩이 주어지는 수업은 더욱 그렇다. 다 깊이있게 이해하고 넘어가려 해서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 적당히 선택을 해야한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는 이런 식의 학습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경험으로부터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런 문제가 없는데 – 간혹 받는 실력 향상에 대한 스트레스 빼고 – 일반 학습은 그게 잘 안된다.

긴 학기가 끝나고 쉬어야 하는데, 별로 쉬지 못하고 새로운 학기에 다시 진입하게되니 아쉽다. 그래도 오개월만 버티면 두달의 방학이 기다리고 있고, 그보다 먼저 두달만 버티면 한국에 잠시 다녀오게 되니 시간이 잘 갈 것 같다. 물론 한국 방문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시험도 있겠지만…

일찍 깬 시험날 아침 이런저런 생각

오늘 드디어 이번 학기의 마지막 시험을 치른다.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생태학 시험을 그저께 성공리에 치르고 나니 자원경제학 시험은 좀 수월한 기분이다. 아침 9시부터 4시간 동안 머리를 굴려야 할 터라, 6시 반인 지금부터 괜히 뇌를 부리지 않으려 블로그에 들어왔다. 시험이라는 이유로 읽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자유로이 하지 못했기에 많이 아쉬웠는데.

한학기동안 쭉 진행되었던 생태학 수업은 15 ECTS, 한국 3학점이 6ECTS로 환산되니, 8학점 쯤 되는 수업이다. 그걸 중간고사 없이 기말에 한번도 마주한 적 없는 구술시험의 형태로 진행하게 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험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감이 없었고, 교수 4명과 외부감독관 1명으로 구성된 시험관이 어떤식으로 학생들을 추가로 시험할 지 몰랐기에 불안했다. 막상 시험 문제를 뽑아보니, 어려운 문제.

학기중 총 9개의 모듈을 공부했는데, Carbon, Nutrient, Water, Biodiversity 등 4개의 모듈 관련 그룹보고서를 제출하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 4개의 프로젝트에서 하나를 뽑기로 뽑고, 100개의 문제은행에서 그룹 보고서의 모듈과 다른 모듈의 질문을 하나 또 뽑기로 뽑은 다음, 별도의 룸에서 30분동안 준비한다. 그리고 나서는 프로젝트와 질문에 대해 각각 5분간 발표하고, 7~8분간 추가 질의응답을 하는 것을 통해 25분의 구술시험이 종료된다.

Carbon 모듈 프로젝트를 뽑고 질문을 뽑았는데, 아싸! Biodiversity 중에서 쉬운 질문이다 생각한 순간, “그 문제는 네 Carbon 프로젝트가 Biodiversity를 연관해 아우르는 프로젝트라 다시 뽑아야 해.”라는거다. 다시 뽑은건 Water… Hydrology와 Nutrient cycle을 연결해서 묻는 질문이었는데, 처음엔 질문도 잘 이해가 안가더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서 준비방으로 갔는데, 내가 원하는 정보가 출력하지 않는 논문에 있어서 인터넷을 하려하니, 내 컴퓨터 인터넷이 먹통… 패닉되려는 순간 마음을 다잡고 이건 치우고 다른 내용에 초점을 맞추자 싶어서 진정하고 준비했다.

프로젝트는 4개 모두 집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내용도 꼼꼼히 다 읽어봤던 터라 자신있는 것부터 시작하는게 기선제압에 좋겠다 싶었는데, 전략이 유효했다. 문제에 대한 발표는 프로젝트보다 덜 매끄러웠지만, 질의응답에 나름 잘 대응했고.

시험이 다 끝나고 방 밖으로 나가 평결을 기다리는데 (구술은 즉각 성적을 알려준다.) 그 3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긴장이 되서 창가에 설치된 예술품을 보며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딴짓을 해가며 시간을 보냈다.

성적이 결정되면 성적과 함께 시험에 대한 평가, 약점, 강점 등을 설명해준다. 약간의 weakness는 있지만, 전체 수업 내용을 다 이해하고 복잡하게 연결된 생태 문제를 잘 풀어낼 수 있도록 모듈 간 지식 융합과 연결을 잘 할 수 있어서 12점을 준다고 했다. 이번 수업에 두명만 만점이었는데, 내가 그 중 하나가 되다니. ㅠㅠ

나보다 옌스가 더 기뻐해줘서 더 기뻤다. 가장 부담되었던 생태학이 잘 끝났으니, 이제 조금 있다가 학교가서 마지막 시험 잘 봐야지.

Procrastination or 미루기

시험기간이 되면 어찌나 시험공부 뺀 모든 것이 다 재미있고 하고싶은지? 심지어는 청소까지.

내일 모레면 치르게 될 구술시험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천은 양이 너무 많아서 하기가 싫다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충분히 준비가 안될까봐서. 사실 그럴 걱정할 시간에 공부하면 되는 건데 불안하니 한자리에 잘 못 붙어있겠다.

도서관에서 하늘이 어둑해질때까지 앉아서 열심히 하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집에서 끄적끄적하면서 딴 짓을 절반 이상 하는 날도 있다.

완벽한 준비는 안될 것 같지만,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되겠지.

다음 학기엔 조금 더 잘 할 수 있기를… 15 ECTS 수업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

1988 추억팔이

응답하라 1988을 보고나니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추억의 중심엔 올림픽이 서있는데, 온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마음을 졸이곤 했다. 올림픽 개막식 매스게임은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 이후 몇년동안 학교에서는 운동회마다 매스게임을 준비하곤 했는데 그게 얼마나 쿨하게 느껴졌던지.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부채춤도 인기가 있었는데, 부채를 한손으로 펴는 방법을 배운 다음엔 여름마다 부채를 부칠 땐 그 기술을 열심히 활용하곤 했다.

아쉽게 은메달을 따는데 그쳤던 전병관 선수의 역도경기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작기 때문에 그의 경기가 더욱 극적으로 느껴졌던지 지금은 관심도 없는 역도 종목이 마치 가장 재미있는 경기인 것 같았다.

탁구에 유남규, 현정화 선수, 양궁에 김수녕 선수 또한 기억에 남는다. 원래도 땀이 잘 나는 손이지만 경기를 보는 순간만큼은 유독 땀이 많이 흐르는 손을 꼭 쥐고 온가족이 함께 응원을 했다.

오랫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올림픽 개막식 노래 “손에 손잡고“가 생각나 그 당시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그 노래를 유튜브를 통해 다시 봤다. 지금도 느껴지는 그 마음의 설렘이라니. 오히려 지금 그 설렘이 유달리 크게 느껴지는 건, 그 전쟁같았던 폐허에서 일으킨 경제성장을 냉전시대중 가까스로 열린 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알렸을 때 그 성장의 주역, 우리 부모님 세대가 느꼈을 자랑스러움이 이제는 이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보다. 이때만 해도 앞으로 항상 좋아지는 날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한강의 기적이 백년천년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걸 그 때는 몰랐지. 많은 어려운 요소들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짧은 시간 많은 것을 이뤄낸 것을 보면 참으로 자랑스럽다.

그저께 덴마크 공영방송 제1 채널에 프라임타임 뉴스의 마지막에 extended news의 형태로 한국 교육제도의 명암을 담은 내용이 방송되었다. 한국에 대해 요약설명을 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데, 세계 15대 경제대국이라는 표현에서 옌스가 감탄을 표하더라. 우리나라가 나는 아니지만, 그 말에 쑥스럽지만 자랑스러움도 느껴지더라. 양극화를 비롯해 여러가지 내부적 갈등요소를 안고 있으며, 세태에 대한 탄식도 하게 하는 나라지만, 그 모든 것이 내 나라의 단면이 아니겠는가.

해외에 나와 살기에 더욱 나를 우리나라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 이곳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들에게 나는 한국에서 온 사람일 것이기에. 이런 저런 복잡한 모든 것을 포함해 나는 우리나라 사람인 것이 자랑스럽고,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것을 누리게 해준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감사한다.

추억의 크리스마스

어렸을 땐 그렇게도 오지 않던 크리스마스가 나이가 들어서는 자주 돌아온다. 차이가 있다면 더이상 산타할아버지를 믿지 않는다는 것.

남들보다 늦은 시기까지 크리스마스를 믿었는데 그 덕에 많은 에피소드가 생겼다.

잠에 들어야 산타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해서, 부모님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외출하신 사이에 불도 끄고 싶은 잠에 빠져버린 것은 우리만 몰랐던 아주 요란한 사건이었다. 안에 사람이 있을 때 밖에서 열지 못하게 하는 버튼을 눌러 문을 잠그는 게 습관이었는데, 연년생 오빠와 나는 그날도 그렇게 잠그고 잠에 든 것이다. 벨을 눌러도 문은 열리지 않고 열쇠로도 열리지 않는 탓에 부모님은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은 경비원 아저씨가 베란다를 타고 들어와 문을 열어주셨다고 한다. 이웃끼리 가깝게 지내던 시절이라 가능한 일이었는데, 산타할아버지 오시라고 창문은 열어둔 게 불행중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부모님은 애써 사오신 선물도 우리 머리맡에 두지 못하고 이웃집에서 잠을 청하셨겠지.

어느 해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와서 내 방으로 가시는 순간을 잡아 얼굴을 직접 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숨어있으면 모를까 싶어서 그렇게 잠이 들었는데, 순간 빨간 장화가 옆으로 지나다는 것을 보았다. 그 발목을 잡을까 말까 하다가 혹시나 잡으면 선물 안주시고 도망가실까봐 그냥 말았다. 물론 꿈이었겠지. 그렇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게 너무 생생해서 꿈이라고 생각조차 못했고,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증거가 있었기에 아무리 다른 친구들이 산타할아버지는 없다고 해도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까지 그게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느날 부모님께 남들이 그러던데 정말이냐고 여쭤봐 그렇다는 답을 듣고 마음의 상처를 조금 받기 전까진 쭈욱 그랬다.

이제 충분히 자랐고, 다른 어린이들을 챙겨줘야 해서 이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주신다는 카드를 받았을 때가 4학년 정도 되었던 거 같다. 한 살 많은 오빠는 나보다 왜 일년이나 선물을 더 주셨는고 하며, 나이 많은 오빠때문에 난 선물이 일년 일찍 끝났다며 억울해했다. 오빠는 일찍 아빠의 독특한 필체로 금방 알아챘다고 했는데 나의 상상을 깨주지 않은 거 보면 참 착한 오빠였다.

의외로 아주 옛 기억도 일부 남아있는데 몇년에 걸친 기억이 다 뒤섞여 있어 어느 해의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두돌 지난 나는 일자 앞머리와 버섯머리를 하고선 노란 튜브형 고무줄을 두르고 천기저귀를 찼는데, 장식장 위에 앉아서 엄마, 오빠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마 아빠가 찍어주셨겠지. 이 모습은 내 기억이 아니라 꾸준히 본 사진속의 내 모습과 그 당시 내가 주변의 형성이 뒤섞여서 결합된 이차적 기억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를 별달리 챙기지 않았지만, 내 기억이 있는 시작부터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던 순간까지는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날이었고, 매년 그 날을 기다리며 집안을 꾸미는 것을 돕곤 했다. 도움이 안되었다해도 의도는 최소한 돕는 거였으니. 그때는 뒤틀린 꼬임의 트리장식이 유행했는데, 반짝 반짝 빛나던 플라스틱 트리장식과 지금은 램프에나 쓸만한 큰 크기의 유색 꼬마전구 장식을 플라스틱 트리에 열심히 둘렀다. 엄마는 벽에도 금색으로 코팅된 플라스틱으로 Merry Christmas라 쓰여진 리스를 걸어두셨고. 거기엔 브론즈색을 입힌 솔방울 장식과 빨간 크리스마스 나무 열매도 달려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를 하고 있던 앳된 엄마와 지금 모습에서 시계의 태엽만 거꾸로 감은 듯이 크게 변하지 않은 아빠의 얼굴도 같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밝아진 거리의 모습을 보니 과거 어린 시적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오르며 웃음을 짓게 한다. 우리 집에도 촌스럽게 작게나마 트리장식을 했다. 작년에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 꾸몄던 진짜 크리스마스 전나무와 이쁜 장식은 아니지만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작게나마 뭐라도 꾸미니 포근한 느낌이 든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

 

현재를 살기.

“덴마크인마저 여기 날씨를 싫어하던데, 넌 여기 날씨도 괜찮다면서 좋아하는게 참 신기해.”

대학원에서 알게 된 크로아티아 친구가 급작스레 찾아온 추위에 불평하며 말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맑은 날이 많고 흐리고 비가 오더라도 덴마크처럼 강풍을 동반하지 않아 여기처럼 우산을 써도 거센 빗방울이 얼굴을 때리는 일은 겪을 수 없으니, 그 곳에서 평생을 살다온 내가 여기 날씨을 좋아할 수 있겠느냐고. 일리가 있다. 델리의 날씨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바가 있기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짧은 겨울이 지나고나면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오르기 시작해 4~5월이 되면 낮기온이 50도에 이르고, 습도가 높은 탓에 건물 밖으로 한발만 내딛으면 숨이 턱 막힌다. 에어콘으로 차갑게 유지된 공기속에 있다가 습하고 뜨거운 공기속으로 움직이면 갑자기 피부와 옷이 축축해지는 느낌과 함께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2~3개월에 불과한 우기를 제외하고는 비는 오지 않아 땅은 항상 건조하다. 서쪽에서 간간히 오는 강풍은 그 건조한 흙을 훑으며 모래폭풍을 일으키는데, 열악한 건축마감 기술탓에 창문이 꼭 닫히지 않아 18층 아파트 실내까지 모래가 덮치곤 한다. 하루는 들판에서 내 차를 향해 불어오는 모래 바람이 보여 황급히 차창을 닫은 적이 있다. 창문을 다 닫자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모래가 차를 덮쳤는데 순간의 안도감이 지나자마자 짜증이 나를 휘감는 기분이 들었다. 나무들은 더운 기후에도 생존할 수 있는 잎이 작은 활엽수가 주종을 차지하는데 그나마 있는 그 작은 잎사귀에 흙먼지가 뽀얗게 앉아 초록생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겨울 3개월을 제외하고는 밤낮에 상관없이 에어콘을 달고 살아야 했는데, 전기세가 비싼 건 차치하고서라도 적정온도를 찾기 어려워 밤에 잘 잘 수 없다는 것이 삶을 더 피곤하게 한다.

그곳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기에 시간은 더디게 갔고 2년반이 10년의 세월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인도에 사는 외국인은 그를 사랑하거나 싫어하는 두 부류로 나뉜다는데, 나는 싫어하는 편에 속해있었고 여행은 몰라도 다시는 이곳에 살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덴마크에서 평생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 이상으로 인도에서 사는 것을 싫어했기에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내 몫이었다. 내가 아무리 시간이 흐르기를 바란들 더 빨리 흘러갈 시간이 아니라면 그 순간을 잘 살든 못 살든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몫인데… 다시금 한국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불쌍히 여기던 것은 아쉽다. 자주 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음식도 접하고, 언어를 배우고, 현지인과 교류하는 등 그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머리로는 알지만 행하지못하는 것은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라,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라,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는 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류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나도 다 알아. 아느네 그렇게 하는 게 힘든 것을 어떡해?’ 였다. 같은 상황을 두고 누구는 웃고 넘어갈 수 있고 누구는 마음상할 수 있고, 누구는 화를 내고 누구는 용서할 수 있는 것처럼 결국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하는 일이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내가 영향을 받을 때 부처나 예수가 아닌 이상 감정이 동하고 일희일비할 수 있지만 삶의 흐름이 외부에 빈번히 흔들리면 사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우산장수와 부채장수를 아들로 둔 노모의 이야기처럼 매사를 걱정할지 아니면 기뻐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건 아무리 남이 이야기해준다 해서 바뀔 일이 아니고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의 순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기쁨을 직접 느끼고나서 실천해가기 시작해야 바뀔 일이다.

해가 짧아지고 비가 자주오고 바람이 몰아치는 계절이 되면, 해가 나오는 그 짧은 순간이 아름다워져서 좋고, 짙은 회색구름 틈새로 살짝 비쳐 보이곤 하는 파란 구멍을 발견했을 때 반가워서 좋다. 저녁이면 깜깜해져서 일찍부터 초를 키고 그 아늑함을 즐길 수 있어서 좋고, 비가 올 때면 땅이 촉촉해져서 좋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가 도시의 오염물질을 불어내줘서 좋고, 하늘의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몸이 젖어 으슬으슬하면 집이나 실내에 들어와서 몸을 녹일때 느껴지는 부르르하는 감각과 함께 찾아오는 온기가 좋다. 파랗던 나뭇잎이 단풍으로 색을 갈아입으면 그게 아름다워서 좋고, 떨어질 땐 그 아름다움이 좋다. 낙엽이 지고 앙상해진 나무는 수종마다 다른 가지의 구조를 알게 되어 흥미롭고, 나무 끝에 월둥준비를 하며 준비해 둔 새순이 피어날 날을 기대할 수 있어서 좋다. 봄이 오면 어느새 연녹색 새순이 터지며 하루가 다르게 짙은 색깔로 빈 공간을 채워가는 것이 놀랍다.

변하는 것은 변화에서 오는 새로움을 찾을 수 있어서, 변하지 안는 것은 그 항상성 때문에 좋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주변환경의 동력을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좋은 대로 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끊임없이 불평한다면 내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느꼈다.

그 일이 얼마나 작고 크냐에 따라 그 변화에 내가 어떻게 적응하느냐와 그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도 그 노력은 계속될 것이고 이를 행함이 어려운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머리로만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그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갈 수 있고, 그렇게 믿는다.

시험 성적이 나왔는데 평균보다는 잘 했지만 내가 원한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았다. 많이 속상했다. 그렇지만 속상한 마음은 그 날 저녁에 느낀 다소간의 울적함으로 충분하다. 이미 나온 결과에 승복하고 다음 과목 공부에 집중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게 해서 성적을 잘 내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지금 하는 공부가 나에게 가져올 도전과 그 결과물로 쌓일 지식을 받아들이며 공부하면 난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

현재 삶의 순간에서 작은 것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느끼는 것, 그리고 그 순간을 살아내는 일이 소중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