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작은 챕터를 무사히 닫고

지난 6개월간 일해온 모델이 원칙적 승인을 받았다. 다음 단계로는 이 모델을 실제 활용한다면 발생할 수 있는 수자원 기업의 투자인센티브 구조변화에 대해 분석하기로 했다. 동시에 실제 이 모델을 활용할 경우 규제당국인 우리와 관련 자료를 보고해야 하는 수자원기업의 행정부담이 얼마나 될 지 현실적 문제에는 뭐가 있을지 등도 조사해야 한다. 기존 다른 유틸리티 섹터 규제에 사용되지 않던 투자수익모델인데다가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방식이라 탐색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대신 이론적으로 우리의 투자수익모델 도입 목적에 더욱 부합하는 방식이라 선례를 만든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적극적 검토를 시작했다. 아마 모니터링그룹 회의에서도 열띤 토론이 있지 않을까 싶다. 


보고 결과로 청장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부청장은 분기 이코노미스트 회의에 사례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게 칭찬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칭찬인지 아주 좋은 결과라는 식의 칭찬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었다. 회의 후 동료들이 축하한다는 말도 하고 센터장이 금요일 주간회의에서 박수를 쳐주라며 훌륭한 결과였다고 치켜세워주는데서야 청장과 부청장의 반응이 아주 우호적인 거였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어디가서 발표를 하든 느끼는 거지만, 목소리와 태도에서 나의 긴장감과 떨림을 통제할 수 있어도 손끝에서 보이는 미세한 떨림과 손바닥을 촉촉히 적시는 땀은 통제할 수 없다. 주로 펜을 꽉 쥐던가 컴퓨터 옆을 쥐던가 해야 그 떨림을 감출 수 있다. 어제 회의에서는 센터장과 동료가 바로 옆에 앉아있었어서 그들은 그 떨림을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덴마크어라 생기는 긴장감도 크지만, 그냥 발표가 가져오는 긴장감 탓이 가장 큰 것 같다.

열심히 하겠지만 항상 잘할 수 없음을 기억하고 잘하지 못할까봐 움츠러듬 없이 꾸준히 노력하고 도전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노력하자. 이또한 노력하자.

갑자기 감기에 걸린 하나 어린이

거의 매일 회사 컴퓨터를 집에 갖고 온다. 일을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애가 아플 경우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서. 그런데 오늘 바삐 나오다가 컴퓨터를 안챙겼다. 집에 다 와서 생각이 났는데, 설마 하나가 아플까 싶었다. 아뿔싸. 정말 아프네. 갑자기 저녁에 열이 오른다.

내일 모레 중요한 발표가 있어서 발표자료 내일 마무리하고 연습해야하는데 타이밍 한번 죽여주는구나. 왜 이런날 컴퓨터를 잊어버렸을까나.

나는 내일 아침 일찍 치과예약을 해뒀는데 옌스는 오후 한시에 미룰 수 없는 회의가 있다고 하고 날이 참 공교롭기도 하지. 치과갔다가 아홉시 넘어 사무실 들렀다가 12시 반까지 집에 오는 건 너무 시간 낭비라 오늘 밤에 컴퓨터를 갖고 오기로 했다. 그 덕분에 하나를 재우고 난 뒤 옌스가 저글링 및 달리기를 마치고 들어오자마자 차를 끌고 나가서 컴퓨터와 보고자료를 들고 돌아왔다.

내일은 출근시간에 나가서 진료를 받은 후 근처 카페에서 발표자료 마무리 짓고 연습 좀 하다가 집에 와서 일을 하는 걸로 했다.

하나가 커서 말이 잘 통하니 좋은 점은 내가 열을 재기 위해 엉덩이에 채온계를 쓰겠다고 약을 넣겠다고 설명을 해줄 수 있고 하나도 정확히 이해는 못할지언정 대충은 이해하고 싫어하면서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고열은 아니고 38도 조금 넘는 정도의 열이긴 한데 애가 머리와 목이 아프다면서 양치질 하기 직전부터 잠자리에 들때까지 계속 울어서 해열진통제인 파노딜을 줬다. 그 약을 썼으니 금방 안아파질 거라면서 침대에 누워서 책 읽는 거 들으라고 했더니 울면서도 말은 잘 듣더라. 그리고나서는 맹장염으로 갑자기 배가 아파진 애가 엄마아빠랑 병원에 가서 검사 및 수술하고 퇴원해 친구들과 다시 만나 수술자리를 보여주는 책을 읽어줬는데, 자기에게 감정이 이입이 되는지 울다가도 울음을 그쳐보며 열심히 듣더라.

보육원에 오랫동안 같이 다녀오고 잘 놀던 친구 하나가 있는데 약간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혹 잘 놀다가도 하나를 때리거나 밀고 꼬집고 한 적이 제법 있었다. 하나가 말이 일찍부터 되었는 덕에 그날 있던 일들을 상세히 들어왔고 선생님들을 통해 그 이야기들을 컨펌받아와서 아는 바로도, 내가 직접 본 바로도 그런 일들이 제법 되었다. 애들 놀면서 그렇게 다치고 크는 거지 이렇게 생각은 했었지만 그 빈도가 자꾸 늘어나기도 했고 하나가 그 애가 때린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 슬펐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아이랑 같이 노는 거 재미있냐고 물어보면 또 그렇다고 답을 해서 그러려니 하고 뒀는데 지난주부터 그 아이랑 놀기 싫다고 다른 애들하고만 놀고 싶다 자꾸 그러는 거다. 그런데 오늘 애를 픽업했는데 발에 멍도 들었고 그 아이가 발을 밟고 밀었다는 거다.

그애는 그럴 수 있다. 말이 안통하면 아무래도 자기도 좌절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감정을 폭력적인 형태로 발산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하나는 누가 때려도 자기가 절대 때리는 법이 없는 애라 (보육원 선생님들 이야기도 그렇고 자기는 그냥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외친다고 설명한다. 내가 본 하나가 갑자기 뜬금없이 맞은 상황에서도 그러더라.) 자기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아무런 대응도 없이 친하게 잘 지내라고 하는 것도 의도치 않는 폭력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오늘은 보육원에 둘이 놀 때 그런 폭력적인 상황이 없도록, 또는 그런 상황이 오면 적극적으로 떼어내서 남은 시간 따로 놀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고 요청을 해뒀다.

애가 남을 때리지 않는 건 잘하는 일이다. 원칙에 대한 문제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느 타이밍인가에는 자기 방어에 대한 원칙도 가르치고 격투기 하나 쯤은 가르치려한다. 태권도가 되었든 주짓수가 되었든. 옌스가 주짓수를 했어서 그게 방어기술로는 좋을 거 같다고 하니. 애가 많이 컸고 그러다 보니 이래저래 신경 쓸 일도 많아진다. 수퍼에 갈 때마다 각종 사탕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거 뭐냐고, 사탕이냐고 물어서 그거 사탕은 몸에 안좋아서 안살 거고 그거 우리 거 아니라고 답 하는 일부터 소소한 힘겨루기가 많다. 그래도 참 애가 대화로 설득도 되고 커서 참 좋다.

토슈즈

어제 발레 수업 중 선생님이 토슈즈 신어본 사람 몇명이나 있는지 물어보셨다. 덴마크에 와서 발레 다시 시작하고 일년 쯤 지났을때인가? 그때 선생님이 토슈즈 클래스를 듣는 걸 권유하셨는데 왜 그때 안했는지 기억이 안난다. 부상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것만이었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을 조금 쉬었었는데 왜 그때 쉬었더라…?


그러나 이제라면 토슈즈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올 초에 다시 발레를 시작하면서 쉬는 기간동안 잊어버렸던 것들이 머리와 몸에 서서히 돌아온 것도 있고, 또 그간 이해가 안되서 잘못하던 것이 선생님의 몇마디와 함께 많이 고쳐져서 최근 좀 많이 는 덕도 있다. 그간 그렇게 이해가 안되던 고관절 균형자세와 복근을 풀업하는 방법, 턴아웃 근육을 쓰는 법, 한발로 서서 탕듀나 기타 자세를 할 때의 고관절 모양 등 많은 부분에서 이해가 늘었다. 발레 동작이 안정되고 부상이 없어지는 등의 수확이 있었다. 취미발레인으로 휴식 포함 7년의 기간, 휴식 제외하고 한 4년 정도 열심히 발레를 한 것 같은데 이제는 토슈즈를 시도해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 일상은 발레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주중에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발레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고 주말에는 하나와 함께하는 발레 클래스도 있어서 주말까지 발레가 많은 시간을 채우고 있다. 일요일이면 월요일에 있을 발레가 기다려져서 얼른 월요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이니 말이다. 


출산 후 발레 클래스 시간이 맞지 않아 미뤄두는 동안 몸의 라인이 영 별로였는데, 서서히 살도 빠지기 시작했고 온 몸에 다시 라인도 생기기 시작했다. 팔뚝 살도 없어지고 가슴팍에도 근육이 단단하게 붙고 복근도 단단해지고 있다. 등근육도 붙기 시작했지만 이건 따로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다리도 다시 많이 강해졌고. 코어근육 중 다리를 턴아웃해서 드는데 관여하는 장요근 강화가 중요하다. 그래야 부상 없이 다리를 더 많이 들 수 있으니까. 


토슈즈라.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발레샵에 가서 신어보고 천천히 골라봐야겠다. 꼬매고 손질하는데도 시간이 걸릴테니까. 아… 발레여…

첫 MUS를 마치고

MUS (Medarbejderudviklingssamtale, 직원계발면담)은 1. 전반적 직장생활 만족도를 평가하고, 2. 연간 실적을 정리하고, 3. 내년 목표는 무엇인지, 4. 현재 역량의 상황을 평가한 후 5.계발해야 할 역량은 뭐가 있는지, 6. 미래 계획은 뭐가 있는지, 7. 직속상사에게 역량계발지원을 위해 요청할 건 뭔지, 8. 직속상사가 리더로서 개선할 점은 뭐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미리 해당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고 적어가야 한다. 그래야 일년에 두 번 (두번째인 mini-MUS는 MUS에 이야기한 항목에 대해 점검하고 연봉협상을 겸한다.) 있는 이 기회에 상사의 나에 대한 기대와 부응수준, 내가 회사에 나의 발전을 위해 요청할 것 등을 효과적으로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해간 내용을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상사의 평가에 대해 듣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약간 긴장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내가 요청하는 사항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실 지난 8개월이란 시간동안 말도 글쓰기도 많이 늘었다고는 해도 내가 한국어나 영어로 일할 때보다 효율적일 수 없다는 한계 속에, 혹시 나에게 말은 하지 않지만 상사가 채용을 후회하거나 하는 건 없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도 살짝 했었다. 오늘의 면담을 통해 그런 걱정은 싹 털어버렸다. 


다만 상사의 마지막 조언 한마디가 내 마음에 확 와닿았다. Be compassionate to yourself. 내가 나 스스로의 발전에 대해서 야심도 있고 자기에게 엄격한 기준을 갖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내면 인내심을 갖지 못하는 성향인 것 같다며, 남에게 대하듯 나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고 하더라. 이게 발전의 동력이긴 하지만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함을 나도 느껴서 고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렇게 지금껏 살아왔던 터라.


이번을 계기로 직장안정성에 대한 이유없는 불안은 완전히 떨쳐버렸다. 얼마나 안도되는지….

동료들의 편견을 깰 기회

오늘 아침 금요일회의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이주전 다녀온 컨퍼런스에서 보고 들은 것 중 중요하거나 재미있는 걸 추려서 발표해달라고 센터장의 지시를 받은 게 지난 주 목요일. 막상 일이 바빠서 일중에는 도저히 준비를 못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목요일까지도 다 준비가 안되서 할 수 없이 목요일 저녁 집에서 준비를 했다. 애 재우고 준비를 하다보니 열한시가 되서야나 대충 발표할 내용이 정리되었다.

덴마크어로 준비할까도 생각해 봤는데 바빠서 야근을 해야만 준비를 할 판에 이걸 또 덴마크어로 준비한다는 게 시간과 에너지 낭비다 싶어서 그냥 영어로 준비를 했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한 15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서 발표를 했다. 컨퍼런스가 영어로 진행되었고 새로운 인풋 중에는 덴마크어로 모르는 단어가 제법 되는데 영어, 덴마크어 모두가 나에게 외국어라 덴마크어로 모르는 단어만 영어로 바꾸고 하는 게 더 어렵고 헷갈려서 그냥 영어로 하겠다 말했다. 덴마크인 중에 영어 못하는 사람이 별로 안되니까.

전달했던 컨퍼런스의 내용이 실제 흥미롭기도 했고 환경경제가 내 분야이니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정리해서 재미있게 공유한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실 내가 발표한 게 회의도 여러번 있고 이래저래 처음이 아닌데 발표 잘했다면서 동료들이 점심시간이며 커피 내리러 가는 길에 한두마디씩 던지는 거다. 뭐랄까. 영어때문에 그렇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긴 덴마크어로 말하다보면 말이 꼬여서 문장을 리프레이징해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 이렇게 내가 하고싶은 말을 편하게 하는 게 생경하기도 하겠다 싶다.

스웨덴으로 직장을 구해 이사를 간 스위스 친구가 있다. 언어에 재능이 있고 노력도 하는 친구라 네덜란드에 살며 배운 네덜란드어와 덴마크에 살며 배운 덴마크어를 기반으로 3개월 빡세게 스웨덴어 인텐시브코스를 듣고나서 스웨덴어로 일을 하고 있는 특출난 친구다. 막상 동료들하고는 영어로 대화를 할 일이 없으니 동료들이 그녀의 영어를 들을 일이 없었다. 그녀가 스웨덴어 배운지 몇달이 안되는 걸 알고 있는 동료들도 당연히 그녀의 영어가 스웨덴어보다 훨씬 나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겠지만 그 수준에 대해서는 그냥 지레 짐작할 뿐이었을 거다. 어느날 네덜란드 파트너 회사에서 스웨덴 회사를 방문해서 회의가 영어로 진행되었는데, 그녀가 하는 영어를 듣더니, 나중에 너 영어 되게 잘한다면서 뭐랄까 그녀를 보는 눈이 달라진 거 같다고 했다. 그녀의 언어의 부족으로 인한 대화전개상의 매끄럽지 못함을 그녀의 수준으로 간주했음이리라.

동료들도 내가 이렇게 편하고 매끄럽게 하고 싶은 말들을 세세한 예시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들어가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게 놀라웠던 것 같다. 아무리 내 덴마크어가 늘었다 한 들 영어로 표현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아직 다 덴마크어로 전달할 수 없고, 꼭 해야하는 말을 클리어하게 표현하는 데 가장 큰 초점을 두는 덴마크어가 영어와 같을 수는 없다.

거기다가 아마 간혹은 덴마크어로 하다가 생각안나는 단어를 갖고 버벅대면, 영어로 말하라고 하는데, 머리가 덴마크어 모드인 상황에는 아는 영어단어도 안나올 때가 있었다. 그 말을 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영어로 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 말이다. 아마 그래서 그랬을까? 내 영어도 덴마크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글로 써서 일하는 건 해도 말로 유려하게 표현하며 일하는 건 한계가 있다 생각했을 수도 있고 영어도 그와 마찬가지일거라는 짐작을 했을 수도 있다.

사실 덴마크어를 일상생활에서 열심히 쓰는 과정 속에 도저히 의사 전달이 원하는 만큼 안이뤄져서 상대가 나를 바보로 볼까 싶은 상황들에 자주 맞부딪히곤 했다. 그래서 미안한데 그냥 영어로 하겠다고 말을 바꾸고 나면 상대가 짜증섞인 표정을 갑자기 풀면서 놀랍고 좋은 표정으로 바꾸는 경우를 보면 기분도 상하기도 하고, 참 언어 배우기 어렵다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배워야지만 늘지 이런 마음으로 꾸준히 덴마크어를 쓰고 살았는데, 일터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고 나니 좀 웃기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옛날같았으면 기분나빴을 거 같은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자기들도 내가 멍청이가 아니라는 건 알았을 거고, 뭐 사실 그들이 혹여나 나를 멍청하다 생각하더라도 내가 내일만 잘 처리하면 되니까 상관이 없다 싶기도 하고. 그리고 다 마음 좋은 동료들이니까. 그리고 일부러 나를 얕보려고 해서 그렇게 반응하는게 아니라, 사람이 내가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핸디캡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공정하게 평가하려 노력한다 하더래도 자기가 보고 듣는 것에서 편견을 갖게 되는 건 피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옌스왈, 영어를 잘 해도 네 모국어와 같지 않을텐데, 그들이 한국어로 일하는 네 모습은 못보더라도 영어로 일할 때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공감한다. 아주 간혹은 이런 기회처럼 자리가 있을 땐 영어를 쓰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 자리를 마킹하려면 말이다.

다른 나를 받아들이는 방법

나는 이방인이다. 훗날 시간이 많이 흘러 이곳의 문화와 생활에 푹 젖어들게되며 이방인이라는 색이 흐려지고, 그래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타인이 눈치채는데 시간이 걸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내가 이방인인 사실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살면서 내가 이방인인 것 같은 경험은 어디에서나 하게 되지 않던가.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쭉 자라온 한국에서조차 내가 이방인인 것 같다는 느낌에 고독함을 가졌던 게 얼마나 잦았던 일인지 생각해보면 굳이 내가 사는 곳이 어디인가를 따지지 않고도 나는 영원히 이방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세상이 다른 사람들로 채워진 곳이라 그렇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참 당연한 사실인데 왜 그걸 이제 알게 되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이다.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달리 태어났다. 그리고 내 삶의 궤적이 그리 평범한 편도 아니다. 설령 내 삶의 궤적이 아주 평범하더라도 그냥 달라도 된다. 내가 어디 살 든 나와 같은 사람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덴마크에 산다 해서 덴마크 사람처럼 살지 않아도 된다. 완벽한 통합은 이상도 아니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서 사회에 새롭게 기여할 게 있다. 내가 사회의 부담이 아닌 이상 그 이상 덴마크인처럼 생각하고 같아져야 할 필요가 없다. 그 같아져야 할 대상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다. 사무실에서 점심시간에 왔다갔다 하는 대화가 잘 안들려 이를 완벽하게 따라잡지 못해도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다 좋아질 일이고, 한국에서도 잘 안들려 못알아 듣는 이야기도 많았는데, 그걸 다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도 기억한다.

그리고 뭔가를 잘 못하는 나도 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머리로는 그래야 하는 걸 아는데 마음으로 와닿지 않던 것이었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고 그게 발전의 원동력이기에 이를 버리려는 건 아니다. 다만, 잘하고 싶은 마음과 현실에 격차가 있을 때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못해도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걸 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못해도 괜찮다. 그냥 지금을 즐기고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거다. 그러면 어느새 그 차이가 줄어들어서 더욱 즐길 수 있게 될 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움추러드니 성장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하나에게도 그걸 끊임없이 알려줘야할 것 같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건강한 거고, 좋은 거지만, 못해도 괜찮고, 그렇게 배우면서 느는 거라고. 현재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고.

내사랑 발레

발레가 너무 좋다. 정말 정말 좋아서 매주 발레 클래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다음주부터는 주 2회로 늘어나니 더 기대된다. 게다가 한번은 로열 발레단에서 개설하는 클래스라서 새롭게 설렌다. 마음에 드는 옷도 새로이 추가장만하고. 아. 이 좋은 걸 이리 늦게 찾게되다니. 그래도 이렇게나마 찾은 것도 감사하지. 러너스하이처럼 발레하고 온 날은 잠에 들기 참 어렵다. 발레가 만나게 해주는 인연들도 소중하고…

너 덴마크인이 아니었어?

작년에 논문을 발표했던 컨퍼런스에 이번엔 그냥 참가자 자격으로 왔다. 나중에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정책 패키지가 통과되면 수자원관리 분야 경제분석을 내가 담당하게 될 관계로 관련분야 전문가와도 네트워킹도 해야하니까. 환경경제학 하는 사람 풀이 크지 않아서 여기 일년이 한번만 와도 아는 사람들과 근황 업데이트 하기는 좋겠더라. 지난번보다 이번에 또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애를 낳고 직장을 구하니 새로운 사람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 네트워킹 하는게 부담스럽지 않다.

올해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애 낳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뀐 계기를 이야기하며 내 생물학적 시계가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이 서른 중반 들면서 들었던 게 하나의 요소인 것 같다고 했더니 내 앞에 있던 사람이 화듦짝 놀랐다. 자기랑 같은 개월수의 애를 키우는 엄마이니 또래일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기함을 하던 모습에 나도 엄청 웃었다.

같은 사람이 오늘 자기는 호텔에서 자야 한다 했다. 오후스에서 와서 출산이후 처음 외박하는 건데 긴장된다고. 나도 외박은 한 적 없는데 돌 전에 덴마크어 학원 다시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애가 제법 울어서 집에 돌아오기 전 한시간을 내리 울었던 때가 종종 있었다 했다. 그러자 그녀가 또 한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덴마크어 학원을 왜 다녀오고 묻는거다. 외국인이니 다녔던 거라 답하자, 너 덴마크인이 아니야? 라고 묻는게 아닌가!!!! 덴마크어 배운 지 오년만에 네이티브로 와인을 받다니 살짝 감동했다. 물론 길게 이야기하면 다 알게되는 순간이 오겠지만 직장 다니면서 덴마크어가 진짜 많이 늘었다. 역시 실전이 최고의 연습은 모양이다. ㅠㅠ 감동의 기억을 기록해야지…

발레, 내 몸을 알아가는 여정

올해 늦봄부터 발레를 다시 시작했다. 자동차를 산 덕에 저녁준비를 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도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클래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신 중기 이후 휴식을 하면서 그 사이 너무나 그리웠는데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부터 시작한 발레이니 발레와 연을 맺은지도 만으로 7년이 되었구나. 휴식을 취했어도 운동을 할 때도 플리에와 탕듀 등 기초 동작을 트레이닝해왔으니 그 끈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정도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중간에 오른쪽 고관절에 문제가 생겨서 물리치료도 받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골반이 왼쪽으로 약간 돌아간 탓이었다. 그건 발레와 상관은 없이 오래된 자세의 문제였는데 잘못된 체형에 장기간의 발레와 덴마크 와서 장거리를 뛰곤 한 자전거 페달밟기가 얹어서 문제가 불거진 거였다. 


발레를 시작한 지 오래되면서 내 몸의 목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읽기 시작했다. 급성이 아닌 만성 부상은 뭔가 잘못된 자세에 부담이 오랜시간 얹어지면서 발생하는 바, 만성 부상이 생기면 뭔가 고칠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왼다리로 섰을 때 턴아웃이 잘 안되어 자세가 풀리는 것이 왼다리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로 인해 오른쪽 다리를 드는 자세에서 고관절에 자꾸만 부담이 되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두 문제는 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같이 생기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오른쪽 골반을 잡아주는 근육이 약해서 그게 밀리니 아무리 왼쪽의 턴아웃을 잡으려 해도 자꾸만 풀리는 거였다. 오른쪽 다리로 서는 건 안정적인데 왼쪽 다리로 서는 건 이 이유로 불안정하고 자꾸만 흔들리고 옆으로 무너지고, 간신히 서게 되도 종아리와 발에 부담을 많이 줘야나 가능했는데, 오른쪽 골반을 안정시키는 데 같이 신경을 쓰니 자연히 왼쪽을 축으로 하는 동작이 안정되는 거다.
남이 몸을 보고 교정해주는 것만으로는 맞는 자세를 찾을 수 없다. 각자 해부학적인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도 보기에 맞아보이는 자세를 찾아주면서도 맞는 동작은 이런 느낌이어야 한다며 움직일 때 느낌을 시각화해서 설명해주는 것이다. 즉 누구에게나 완벽하게 들어맞는 동작의 공식이 아니라 원칙적 공식에 각자 자기의 몸에 맞게 오차 보정을 해야하는 거다. 


여러 선생님을 거쳐오며 선생님들이 설명해준 내용을 조합해보고 내 몸의 소리를 들어가다보니 그간 고생해오던 고관절 부상은 없어졌다. 어깨도 그렇고. 의외로 내 몸의 오른쪽 소속 관절들이 왼쪽보다 불안정한 것 같다. 이런 불안정성을 교정하면 할 수록 몸의 근육부피 차이도 줄어든다. 짝짝이 가슴도 거의 같아졌고.


다른 운동과 달리 발레는 이런 몸의 소리를 세세하게 듣게 만들어준다. 각자 좋아하게 되는 운동과 그 이유가 다르듯이 모두에게 같지는 않겠지만 이런 이유로 나는 발레를 사랑하고 아마 지금 클래스에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가 많이 들어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Bernstorff Slotshave

겐토프트 한 복판에는 베언스토프성과 부속 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택에 살 때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자주 가던 공원인데 거기 사는 동안에는 그 반쪽만 가봤었다. 간혹 자전거를 타고 주변 동네 중 안가봤던 길을 지나가곤 하는데, 삼 주 전인가 살면서 안다니던 길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그냥 이끌리는대로 가봤더니 그 반대쪽 끝편에 이런 잘 정리된 정원이 있는게 아닌가!

공원에는 사과나무, 배나무와 자두나무가 가득하고 거기에서 열리는 과일은 마음대로 따먹어도 된다. 문화부에서 관리하는 과거 왕실소유 성인데 이곳 나무는 코펜하겐 대학교 자연과학부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5월부터 10월 여름에는 주말마다 이 정원 가운데에 있는 루이스 여왕의 찻집 (Dronning Louises Tehus)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 찻집이라 커피는 없는데 간단한 요기거리와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다. 괜찮은 찻집이었다. 같이 먹은 샌드위치도 굳. 막 빼어나게 맛있다 이런건 아닌데, 여기 산책 온 김에 쉬면서 먹는 걸로는 훌륭하다.

여름에 겐토프트에서 산책할 곳을 찾는다면 여기도 강추!